<히든 싱어>를 통해, 관객과 가수가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예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jtbc가 또 하나의 관객과 가수가 소통하는 예능을 발주했다. 31일밤 9시 30분 첫 선을 보인 <백인백곡-끝가지 간다(이하 끝까지 간다)>가 바로 그것이다.

 

가수가 나와 자신의 곡이 아닌 곡을 불러 '서바이벌' 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은 tvn의 <퍼펙트 싱어vs>가 있었다. <퍼펙트 싱어vs>(2013,8~2014,2)는 기존 가수와, 가수가 아닌 타 분야의 출연자가 나와, 노래방 기기 앞에서 한 곡을 놓고 우열을 가르던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서 가수들은 미리 정해진 곡을 연습하고 나올 수 있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그와 동일한 곡을 연습한 기성 가수가 아닌 라이벌에, 그것을 판정하는 것이 관객이 아닌, 노래방 기계라는 함정을 지닌 프로그램이었다. 때문에 가수가 제 아무리 관객을 감동시킨 절창을 해도, 노래방 기계가 요구하는 정확성을 놓치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퍼퍽트 vs>의 매력이자 한계가 되었다.

 

이런 <퍼펙트 싱어vs>가진 기계에의 의존을 <히든 싱어>는 뛰어 넘는다. 대신, <히든 싱어>라는 제목에서부터 보여지듯이, 부르는 가수의 존재가 훼이크(fake)가 되는 것이다. 1회전부터 시작된 미션은 가수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지만, 그와 함께 부르는 몇 명의 모창 가수가 등장하여, 시청자들을 비롯한 관객들은, 진짜 가수를 알아맞추는 것이, <히든 싱어>의 매력이자, 관건이 되는 것이다.

 

 

<끝까지 간다>는 거기서 성큼 한 발을 더 내딛는다. 가수는 <끝까지 간다>에서 아무 준비 없이 등장한다. 노래를 준비해 온 것은 관객이다. 가수는 100 명의 관객 중 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가 준비한 노래를, 그와 함께 성공적으로 불러 마지막 라운드까지 진출하면 '미션'이 클리어' 된다.

 

첫 회를 연 <끝가지 간다>에서 관객과 함께 노래를 부를 가수로 등장한 사람들은, 김태우, 이정, 문희준, 김현숙, 김소현이다.

가수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무대에 등장하여, 100 명의 관객 중 한 사람을 선정한다. 그러면 mc인 김성주와 장윤정이 관객이 선정한 노래와, 그 사연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 노래가 시작되면 그 노래를 선택한 관객의 선창이 이어지고,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가서, 노래 가사가 퍼즐처럼 제시되고, 가수는 그것을 조합하여 성공적으로 노래를 부르면, 미션이 성공되는 것이다. 물론, 가사 퍼즐은 1,2,3차 미션이 거듭할 수록 복잡해 진다. 3차에 이르면 화면을 가득 메운 뒤섞인 가사에, 그 노래를 잘 알았던 이정조차 혼란을 느낄 정도로 난해함을 준다. 하지만, 그 난해한 퍼즐을 잘 맞춰서 김현숙처럼 미션을 성공하면, 그녀가 선택했던 관객들과 함께, 선택한 여행지 보라카이의 여행 상품권이 주어진다.

 

첫 회 성공을 거머쥔 사람이 뜻밖에도 가수가 아닌, 그녀의 전작 드라마에서 '개똥벌레'를 부르는 장면이 운좋게 있었던 김현숙이었듯이, <끝가지 간다>에서 가수란 직업은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그저 예전 아이돌, 그것도 H.O.T의 서브 보컬이라 가창력에 믿음이 가지 않았던 문희준의 절창을 확안하게 되는 뜻밖의 재미도 있다.

 

오히려 가수의 노래보다는 <끝까지 간다> 첫 회가 보여준 묘미는, 각양각색 100명의 관객들이 보여준 연예인 못지 않은 흥과 끼와 사연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가 더 어울리겠다는 언급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머리가 희끗해진 나이에 바닥을 훑으며 보여주는 격한 댄스에, 결혼을 해주기를 고대하는 구혼곡에, 죽은 아내의 노래 음성이 담긴 감동적인 핸드폰 녹음 메시지까지 구구절절 다양한 사연이 한 회를 가득 메운다.

또한 누가 어떤 곡을 가지고 나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션을 맞이한 가수가 관객과 '딜'을 벌이는 광경 또한 <끝까지 간다>의 또 다른 묘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희준의 숨겨진 노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는 하지만, 김태우나, 이정의 절창을 그저 한 마디의 클라이막스로 만족해야하거나, 그 마저도 초반에 탈락하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김태우같은 가수가 등장하여, 한 회 내내 제대로 된 노래 한번 부르지 못하고, 리액션이나 하다 마치게 되는 것은, 예능적으로는 재미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의 출연을 통해 기대했던 부분이 만족된 것은 아니었다.

즉, 노래의 주도권이 관객에게 있고, 또한 노래의 대부분을 관객이 부르고, 그저 클라이막스 한 소절의 흥망성쇠에 프로그램의 열쇠가 주어지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가수가 무대 중앙에 등장해도, 주객이 전도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이 개선된다면, <끝가지 간다>는 <히든 싱어>에 이어, 불타는 금요일의 시청자를 ,tv앞으로 불러모을 jtbc의 효도 상품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1. 1. 11:51

안영이(강소라 분)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직원이 쓰러졌다. 세 번째 임신으로 인한 과로란다. 그러자, 같은 부서의 부장은, 덕담은 커녕, 그로 인해 손실된 인원만 안타까워하며, 도대체 몇 번 째 임신을 할꺼냐며 볼멘 소리를 한다. 이래서 여자들은 문제라고 툴툴거리고, 그 옆의 부하 직원은, 상사 말에 맞장구를 친다.

회사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자 직원인 선차장(신은정 분)은, 가정과 일, 육아와 일의 병행에 짖눌리다, 후배 직원에서, 말한다. '일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결혼하지마!'라고.

10월 15일 방영된 <미생>에는, 직장에 다닌 여성들의 서로 다른, 하지만, 결국은 여성으로서 봉착하게 되는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그려내었다.

 

사법 연수원생 중 여성 비율이 2014년에 들어 40%를 넘어서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출과 활약은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녀들을 제약했던 '유리천장'은 그녀들의 독보적인 활약에 기를 못추는 기세인 듯하다. 심지어, 교사직의 경우는 이제, 역으로 남성 성비 보존을 운운할 처지에 놓여있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여성의 성취와 다르게 그 속에서 맞닦뜨리는 여성들의 현실은 <미생>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아들을 낳아 기르는 엄마들이, 아들의 행복한결혼을 꿈꾸지만, 딸을 낳아 기르는 엄마들은,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딸들의 미래를 꿈꾼다는 우스개가 있을까?

 

일찌기 여성학의 고전으로 불리우는 [여성의 신비]에서 베티프리단은 '아내, 어머니를 칭송하는 여성의 신비 문화가 여성을 가정에 머물며, 아이나 키우며 물건이나 사대는 '주부'라는 직위에 머무르게 한다'고 성토했다. 그리고 1963년 당시 혁명적이었던 이 책이 모색해낸 이상적인 대안은 '가정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직장과 집안 일을 성공적으로 병행하는 슈퍼우먼'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여성들은 '신비로운 여성'에서 자유로워졌을까?

베티 프리단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진 다수의 여성들은, 맞벌이란 짐에 허덕이고 있다. 일과 가사의 병행은, 그녀들을 자유롭게 하기는 커녕, 그녀들을 '성공'이란 이름으로 혹사시키고 있을 뿐이다.

 

10월 30일 방영된 <미생>에서 아이를 맡기는 문제로 실랑이하는 선차장의 마음을 역시나 아내가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 오과장(이성민 분)은 헤아린다. 육아가 문제가 되면, 언제가 그건 여자의 몫이라는 것을, 회사에서 차장이란 직위에 여자가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는지, 차장이란 직위 정도가 되면, 그만큼 요구되는 것들이 많은 지는, 여자, 엄마, 아내라는 이름앞에서는 무기력해 진다는 것을.

 

그래서 여자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일과 결혼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것인가, 아이를 낳은 뒤 계속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를 외치며 가정 밖으로 나올 것을 외치던 1963년에는 '행복한 전업 주부'가 환타지였다면, 이제 2014년에는,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슈퍼맘'이 여자들을 들들 볶는다. 둘 다 성공할 수 있다고, 둘 다 놓쳐서는 안되다고.

 

하지만 다큐 보다도 더 다큐같은 <미생>은 말한다. 인턴 사원 중 가장 촉망받던 안영이는, 처음 배치받은 부서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고, 선배 직원은 맘놓고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간부직이 된 선차장은 여전히 아이 때문에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온 그녀에겐, 밀린 집안 일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가 그린 엄마는 얼굴이 없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를 향해 뒤돌아 서서 한껏 포옹을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에게 엄마의 얼굴을 보여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미생'인 그녀들의 완생은 이 사회에서 여전히 요원하다.

by meditator 2014. 11. 1. 10:51

10월 30일 방영된 <썰전>은 모처럼 가장 첨예한 정치적 사안 '개헌'에 대해 다루었다.

최근 김무성 의원이 '개헌'에 대해 언급한 것에 대해 청와대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김무성 의원이 우연한 실수라고 사과를 했지만, 과연 중국까지 건너가서 기자들을 앞에 놓고 하는 기자 회견장에서까지 하는 말이 실수였는가를 짚어보며, 그렇지 않다면, 지금시기에 김무성 의원이 꺼내고자 하는 개헌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며, 지금 현재 국회를 들뜨게 만드는 가장 핫한 주제 개헌은 현실성있는 대안인가에 대해 모처럼 진지하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우선 실수였음을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무성 의원의 개헌 논의 제기가 그저 스쳐지나가는 발언이 아니었음을, 그런 김무성 의원의 차기 대권까지 염두에 둔 정부 개혁안에 대해, 레임덕을 우려한 청와대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것임을 <썰전>은 밝힌다.

또한 김무성 의원이 원하는 개헌의 방식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외치, 즉 외교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상징적 대통령으로, 그 아래 내정을 책임지는 총리로서의 이원집정부제를 원하는 김무성 의원과, 이런 김무성 의원과 달리, 미국식을 원하는 문재인 의원의 또 다른 이원 집정부제 등, 그리고 막상 내각 책임제의 개헌론이 되었을 때의 박대통령의 득실과, 그것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꿈꾸는 국회의원 중심의 정치 구도에 대해서까지 살펴본다.

 

30일 개헌론에 대한 고찰을 통해, 결국 도달한 것은, 현재 여, 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의 로망이 된 개헌론을 통해 도달하게 된 것은, 오픈 프라이머리( 투표자가 자기의 소속 정당을 밝히지 아니하고 투표할 수 있는 예비 선거. 오픈 프라이머리는 국민의 선거 참여 기회를 확대해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당원의 존재 의미가 약화되고 정당정치의 실현이 어려워진다는 부정적인 면도 갖는다)등의 현실화를 통해, 현직 국회의원의 장기 집권 가능성이며, 그 과정에서, 요원해지는 것은,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집권 가능성과 상관없이, 현재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국회의원직이 공고해질 개헌론을 환타지처럼 갈망하고 있다고 <썰전>은 밝히며, 이런 개헌 논의가 내년 이후에는 현실화 될 것임을 예언한다.

 

이렇게 현 시국에 가장 예민한 사안인 개헌 논의를 상세하게 다루고 나서, mc김구라를 비롯하여, 강용석 등은, 이런 정치적 사안을 다루었는데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면, 이젠 더 이상 <썰전>에서 정치 뉴스를 다루지 말아야 한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간 대중적으로 보다 친밀하게 접근하고자 생활 밀착형 뉴스를 많이 다루었지만 하며 말 끝을 흐리면서, 생활 밀착형 정보 프로그램이냐,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다룬 정치 비평 프로그램이냐라는 <썰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피력해 보인다.

 

'썰전' 방송인 김경란-김상민 의원, 결혼 소식 다룬다

 

불감청 고소원이라되 되는 것처럼, 10월 30일 방영된 <썰전>은 그 이전 회차(2.08%, 닐슨 코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변동폭으로 상승했다.(2.45%, 닐슨 코리아) 결국 시청률이 말하는 대로 따르면, <썰전>은 앞으로도 쭈욱 정치적 사안을 다루어야 하겠다.

 

<썰전>의 시청률과,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뉴스룸의 시청률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jtbc뉴스룸 평균 시청률 2.053%, 닐슨 코리아) 하지만 <jtbc뉴스9>이, <jtbc뉴스룸>으로 시간을 늘려가며 각종 시사 문제에 있어 가장 첨예한 시선을 견지하는 것은 물론, 생활 밀착형 다양한 화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반해, <썰전>은 상대적으로, 정치 평론 프로그램으로서 그 위치를 잃어가는 듯한 모양새다. 가장 민감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 예전 <썰전>의 이철희와 강용석의 입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이젠 손석희 앵커의 예리한 질문을 기대한다. 그리고 <썰전>의 고민은, 생활밀착형이냐, 민감한 정치 뉴스냐가 아니라, 바로 이렇게 달라진 위상의 원인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종편의 뉴스, 각종 정치 평론 프로그램들이, 정치를 하나의 가쉽으로 소비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뉴스의 시대>에서 말하듯이, 현대의 미디어들은, 각종 사안들에 대해 가쉽성 정보들을 양산해 냄으로써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하듯이, 최근 종편의 각종 프로그램들은 그런 알랭 드 보통의 분석을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다. 이미 미국의 폭스 뉴스가 했던, 그리고 보수층을 결집하는데 성공했던 전략들이다. 그리고 <썰전>은 처음 프로그램을 열었던 예리한 정치 비평의 시각에서 한 발 물러나, 이런 가쉽성 정보 처리에 자신의 색을 덧입혀 왔다. 실제 30일 방영분에서도, <썰전>의 포문을 연 건, 개헌이 아니라, 최근 발표한 김경란 아나운서와, 여당 정치인의 결혼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결혼 소식을 다루는 양식도, 김경란 아나운서가 돈을 보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는 식의 다분히 가쉽성 정보로 다루었다. 여타의 종편과 그리 다를바 없는 시선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 다를바 없는 <썰전>의 각종 사안 다루기는, 애초에 <썰전>을 통해 신선하고 예리한 시선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시선을 돌렸다.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은, <썰전>보다 더 무수한 가쉽성 정보가 넘쳐나는 타 종편 프로그램을 볼 것이요, 첨예한 관점을 원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손석희의 <뉴스룸>을 보고 마니, 굳이 이도저도 아닌 <썰전>에 시선을 돌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썰전>의 뒤를 이어 방송되는, 예능 심판자의 한심한 처지는 이날 방영된 제주도에 사는 연예인들이라는 정보성 내용 뒤에, 얹힌 제주도에 대한 부동산 정보나 다루고 있는 것이 아쉽다는 허지웅의 유감스런 한 마디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심판은 커녕, 제주도에 누가 얼마짜리 집에 사는지를 알려주는 '예능 심판자'는 초반에 비평 프로그램으로 흉내라도 내려고 했던 것과 달리, 이젠 타 연예 프로그램과의 변별력을 잃어가고 있다.

 

애초에, 처음 <썰전>이 생겼을 때 반가웠던 마음은, 어설픈 정보로 눈과 귀를 홀리지 않는, 예리한 여, 야의 정론의 시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강용석의 흥건한 정보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무딘 이철희의 한 마디가 곁들여진, <썰전>을 기다릴 이유가 그다지 없어졌다. 실제 10월 30일 방영된 '개헌'에 대한 내용은, 이미 팟 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등을 통해 밝혀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비해 한껏 반등한 시청률이 보여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썰전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점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썰전>의 심기일전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10. 31. 13:28

태희(한은정 분)가 살아돌아왔다. 아니 엄밀히 말해, 태희는 죽은 적이 없으니, 살아돌아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겠으나, 태희가 죽은 줄 알았던 주홍빈(이동욱 분)에게도, 엄마가 저 멀리 별로 간 줄 알았던 창이(정유근 분)에게도 태희는 다시 살아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태희가 그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그녀와 관련된 과거의 사건들 역시 봉인이 풀릴 여지가 보인다. 그러자, 태희를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야 했던 무리들은 돌아온 태희의 존재에 위험을 느낀다. 당연히 다시 봉인해제된 태희를 그 이전 상태로 돌리고자 한다.

 

그간 태희를 만나왔다는 홍주(이주승 분)의 말을 듣고, 홍빈이 태희를 찾아나선 그곳, 하지만 그곳에 홍빈이 그리워했던 태희는 없었다. 그저 김태희라는 이름표를 건 또 따른 아가씨가 있었을 뿐. 하지만 그건 홍빈이 찾아온 줄 알고, 벌인 태희의 작은 눈속임이었다. 홍빈이 떠난 후 태희는 홍주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지만, 그녀의 바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태희의 아버지를 따라나섰던 세동(신세경 분)에게, 그리고 자신이 갔던 재래 시장에 태희 아버지가 내렸다는 운전사의 전언으로 홍주에게까지, 결국 태희의 존재는 드러나게 되었다.

 

(사진; 뉴스엔)

 

그렇다면 돌아온 태희는 어떤 모습일까?

단발의 웨이브에, 기다란 가디건 속에 남방, 그 안에 받쳐입은 흰 티의 소박하지만 자유로워보이는 모습?  그도 아니면 여전히 홍빈이 사랑했던 추억 속의 그 아리따운 외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니, 그 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상징적 우화로서 <아이언맨>이 그려내고 있는 태희의 모습이다. 드라마 속 태희를 없애고자 했던 세력, 그들의 상징적 주구는 바로 주홍빈의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지, 아닌지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주홍빈의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는 자기 아들의 눈을 멀게 한 보잘 것 없는 집 딸 태희가 사라지기를 원했고, 아버지의 측근이었던 윤여사(이미숙 분)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태희를 없애는 더러운 일을 자처했다. 윤여사가 바랐던 것은 큰일 하시는 아버지가 작은 일에 마음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하시는 큰 일이란, 그가 다시금 벌이듯이, 태희 아버지가 사는 섬진강 변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자연을 허물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건물을 지어 올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15회 태희가 사는 곳을 찾아가는 태희 아버지의 행적을 쫓다보면, 오래된 재래시장이 나온다. 태희의 아버지는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재래 시장을 지나, 철거 예정 지역이라되 된 듯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진 구불구불한 미로같은 골목을 지나, 허름한 이층집에 다다른다. 태희가 사는 곳이다. 홍주가 태희를 만났다는 곳은 또 어딜까? 고물상같은 그곳은, 사람들이 쓰다버린 옷가지와 책들 중에서 쓸만한 것을 모아, 볼리비아 같은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에게 보내주는 유니세프 휘하의 단체이다.

 

개발 시대의 상징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맞은 편에, 개발이란 이름 속에 스러져갈 철거 예정지에 살며, 문명 사회가 쓰레기가 버린 것들에서, 가난한 아이들의 구원이 될 것들을 길어올리는 일을 하는 태희, <아이언맨>은 그저 재벌집 아들을 사랑한 가난한 집 딸의 전형적인 멜로의 구도를 넘어, 개발과, 그 개발 속에 스러져 간 희생자들이라는 사회적 구도로서, 주인공을 사이에 둔 아버지와 첫사랑을 그려낸다.

 

태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홍빈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아버지가 세동이에게 했던 것처럼, 세동이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이 자신이 했던 일의 과정에서 생겨난 불행이었음을 우회적이나마 사과했던 것처럼, 자신의 첫사랑 태희에게도 그렇게 '사과'해줄 것을.

그런 홍빈에게, 아버지는 오히려 반발한다. 홍빈이 사랑하는 태희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아 갔다고. 그리고 아버지가 생각하는 태희가 빼앗아 간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아들 홍빈이었다.

즉, 개발 시대의 아버지는, 그저 아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아들을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땅을 파헤치고, 사람들을 몰아내고, 종종 사람들을 헤치기까지 했다. 그저 아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하지만, 정작, 아들의 사랑을 얻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부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었는데, 아버지는 그걸 외면한 채 왜곡된 사랑을 얻으려, 아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조차 빼앗아 버린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개발이란 이름으로 놓쳐버린 것들을 <아이언맨>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무의식적 사주로 인한 폭력으로 인해 머릿속에 뼈조각이 돌아다녀 시한부의 삶을 사는 태희는, 개발이란 이름 아래 위기에 놓인 섬진강변처럼, 개발 이란 이름 아래 사라져갈  자연과, 우리가 소중히 여겨왔던 추억들을 상징한다.

 

<아이언맨>의 스토리는 상투적이다.

아들의 가난한 사랑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위해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둠의 세력, 그리고, 시한부의 운명을 가지고 절묘한 시기에 다시 나타난 첫사랑, 그리고 그 첫사랑을 다시 음해하려는 세력 등,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부한 클리셰들이, 우리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우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진부함은, 다른 진동으로 다가온다. 뻔한데, 다른 울림을 준다. 스토리를 채색해 간 배경의 다름때문이다. 또한 스토리를 바라보는 시각의 다름때문이요, 그 갈등의 해법의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사랑하는 아들을 빼앗은 세동에게 아버지 주장원이 우회적이나마 사과를 통해 해원을 풀었듯이, 돌아온 첫사랑 태희에 대한 주장원의 결자해지를 <아이언맨>답게 풀어내는 것이, 이 드라마를 개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우화로 완성시킬 관건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0. 31. 13:25

10월 26일  밤 10시 mbc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전설의 마녀>와, 오랜만에 선을 보인 tvn 아침 드라마인 <가족의 비밀>은 전혀 다른 방송국, 전혀 다른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임에도 막상 보고 있노라면,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모양새이다.

감옥에 갇힌 네 명의 사연많은 여자를 추적해 들어가는 <전설의 마녀>와 사랑하는 외동 딸을 잃게 된 <가족의 비밀>이 새롭게 미스터리 형식을 가미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이들 두 작품 모두 최근 중장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막장' 드라마들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이겠다.

 

하지만 음험한 비밀과 복수, 치정이 얽힌 '막장'의 공식을 답보하는 이들 드라마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주 시청층을 노리는 흥미 위주의 서사를 넘어, 섬뜩한 현실 인식이 들어 있어 서늘해 진다.

 

우선, <전설의 마녀>와, <가족의 비밀> 모두 대기업의 며느리가 된 평범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전설의 마녀>여주인공 역할의 문수인(한지혜 분)은 고아에 지방 대학 출신이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집안에서 축출되기를 마다하지 않겠다던 남편은 신화 그룹의 맏아들(고주원 분)이다. 그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 신화 그룹의 며느리가 되었지만, 문수인의 처지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은 신화 그룹 후계자의 며느리인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불철주야 모시는 등,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이 죽자, 하루 아침에 내처지게 된 처지일 뿐이다.

 

(사진; 부산일보)

 

<가족의 비밀>의 한정연(신은경 분)도 다르지 않다. 역시나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집안의 딸인 그녀는 진왕 그룹 후계자인 고태성(김승수 분)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녀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새롭게 연 진왕갤러리의 관장이란 직함이 뜨악할 정도로, 시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은 그녀를 자기 집안 사람으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계단을 굴러 다리를 절면서도 시어머니 말 한 마디에 전전긍긍하며, 그녀는 진왕그룹 며느리의 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면 이들 두 재벌가 며느리이면서도 며느리답지 않은 그녀들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그 어떤 사회적 비판 의식이 뚜력한 미니 시리즈보다도, 자본. 즉 '돈'이 지배하는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전설의 마녀>의 신화 그룹, <가족의 비밀>의 진왕 그룹은 그 자체가 '돈'의 힘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권력이요, 권위이다. 신화 그룹의 실세 마태산(박근형 분) 회장의 한 마디라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없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두들 그 앞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세계이다. 지금까지 그의 맘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 아들의 결혼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제 아들의 죽음 앞에, 탐탁지 않은 며느리는 처리 대상이 될 뿐이다. 진왕 그룹의 진주란(차화연 분) 회장 못지 않다. 19살 먹은 손녀를 그녀의 어머니인 한정연을 내치는 조건을 딜을 하여, 법조계 중요 집안의 아들 검사와 약혼을 밀어부칠 만큼 집안 내 무제한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그룹의 대표인 아들도, 딸도 그녀의 눈빛 한 마디에 좌불안적 전전긍긍할 만큼, 그녀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두 드라마는 이런 재벌 그룹의 며느리가 된 평범한 집안의 딸인 여주인공을 통해 '돈'으로 움직이는 '괴물'같은 세상을 가감없이 드러내는데 진력한다. '돈'이 전부인 세상, 하지만, 결국 '돈'만 있는 세상이다. 인간의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고, 가족의 소중함도, 가족 간의 정도, 도덕도 '돈' 앞에서 무기력한 세상이다.

 

 

그렇게 돈의 세계로 결혼이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성공적으로 입성한 여주인공의 현실은 재벌가의 안주인이란 그럴 듯한 명목과 달리 보잘 것없다. 그녀들만이 아니다. 그녀들의 남편처럼 보장받은 재벌가의 후계자는 아니지만, 재벌가의 딸들과 결혼한 극중 사위들 역시, 천덕꾸러기인 처지이다. 실제 얼마전 재벌가 딸의 이혼 소식과 함께, 중요 직책을 맡았던 그의 남편의 재벌 그룹내 직위해 해제되었다는 소식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 내 이런 상하 관계 관계들이 그저 극중 재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현실은 말해준다.

그렇게 재벌가 실세의 말 한 마디에 내처질 수 있는 처지에 놓인 며느리와 사위들의 처지를 통해,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강고한 '핏줄'과 결혼 제도를 통한 '신분 상승'의 허명을 드라마들은 통속적으로 폭로한다.

 

하지만, 그런 허명의 관계임에도, 그녀들을 핍박하는 '시월드'의 존재는 강고하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집안이거나, 재벌가의 집안이거나,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닌, 그러면서, 우리 집안보다 못한 존재인 며느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구박하는 건, 만고 불변의 진리처럼 드라마 속에 등장한다. '돈'이 있건 없건, 한 집안의 며느리란 존재는, 영원한 우리 집안의 타자요, 화합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비밀>과, <전설의 마녀>에서 여주인공은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 예전 드라마들이,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이 드라마의 결말인 것과 달리, 최근 드라마들은, 바로 이 지점, 성공의 그 지점에서 시작하여, '결혼이란 제도의 공허함을 증명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를 압박하는 제도일 뿐이다.

 

또한 이런 결혼이란 제도의 무능함을 증명하는데, 드라마 속 남편들은 일조를 마다치 않는다. 뜻밖의 비명횡사를 하거나, 함께 결혼 생활을 하더라도, 외도를 하거나, 그것이 설사 알려지지 않아도, 가족내 실세인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아내의 편을 들 수 없다. '사랑'을 통해, '결혼'이란 제도로 가족을 이루었지만, 남편은 무기력하고, 아내의 삶에 실제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 '결혼'에 기대할 것이 더더욱 없다.

그나마 그녀를 '결혼'이란 제도에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남은 사랑이라 믿는 그녀의 성실성이나, 혈연으로 이루어진 자식이라는 관계들 뿐이다. 그것마저 붕괴된 상황에서, 더는 결혼은 그녀에게 일말의 미련이 남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드라마들은 말한다. 세상에 믿을 건 너 자신 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혼을 통해 얻은 부도, 그럴 듯한 신분도, 결국은 다 '도로아미타불' 아니냐고,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편의 무기력함은 어떻고, 그래서, 드라마들은, '돈'과 '시월드'에 배신 당하고, 남편의 도움조차 받지 못한 그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을 극진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현실에서, 역시나 '돈'이 없어 고달프고, 무기력한 남편에게 지치고, 시월드에 여전히 상처받은 우리네 여성들에게 위로가 된다. 드라마 속 그녀들도 나와 다르지 않는데 하면서 말이다

by meditator 2014. 10. 30. 12:00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된 유나(김옥빈 분)는 다른 패거리들이 찜을 한 사람의 지갑을 먼저 터는 바람에 좇기는 신세가 된다. 쫓기던 유나가 숨어든 곳은 폐업한 식당, 그곳에서 홀로 지내던 창만(이희준 분)은 쫓기던 유나를 숨겨주고, 그녀의 다친 발을 치료해 준다.이렇게 우연히 시작된 만남은 창만이 유나의 권유로, 전 거주인이 자살한 유나의 옆방으로 이사오면서 이어지고, 창만의 유나에 대한 짝사랑으로 발전된다.


유나를 사랑한 창만은, 유나가 소매치기라는 사실에 가슴아파한다. 그리고, 그녀를 언제 잡혀갈 지 모를 소매치기의 늪에서 구해내고자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손을 자르면서 이제 소매치기를 그만하라고 당부해도, 자기 맘대로 살겠다, 자기보다 더 큰 도둑놈들이 있는데, 자기 정도가 무에 그리 큰 문제냐며 당당한 유나 앞에, 창만의 설득은 무기력하다. 고심 끝에 창만이 생각해 낸 것은, 어린 시절 유나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어린 유나가 외로움과 생존의 수단으로 선택했던 소매치기를 버리게 하기 위해서는, 그 외로움의 근원을 치유해야 한다고 창만은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극진한 창만의 사랑으로 유나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이제 소매치기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유나가 소매치기에 손을 씻고,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정작 창만의 사랑은 어렵게 되었다.

'유나의 거리' 행복한 김옥빈 보며 눈물 흘리는 이희준

내로라하는 기업의 안주인이 된 유나의 친엄마, 처음에 머뭇거리던 것과 달리, 유나를 받아들이기로 한 엄마는 적극적으로 유나를 자신의 환경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꽃뱀인 미선(서유정)의 방에 얹혀 살던 유나는 이제 어머니가 사주신 번듯한 아파트가 생기고, 멋진 외제차가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해 가는 유나의 환경을 보면서, 창만은 자신이 스스로 발등을 찍었음을 깨다게 된다. 유나는 그토록 그리워 하던 엄마를 창만으로 인해 만나게 되었지만, 정작 창만은, 엄마로 인해 달라진 유나에게 범접하기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고뇌하던 창만은 유나를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사랑하기에 이별하노라'라는 진부한 사랑의 공식을 창만은 구현 중이다. 

사랑하기에 유나를 소매치기로 부터 빼내오기 위해 고군분투, 심지어 때로는 위험에 노출되기까지 했던 창만이 결국 내린 선택은, 바보같이 유나의 행복을 위해 유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 뻔한 '사랑하기에 이별하노라'라는 공식이, 그런데, 45회를 이끌어 온 우직한 창만이란 캐릭터로 인해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그런데 바보같은 사랑을 하는 건 창만만이 아니다. 
유나를 만난 남수(강신효 분)와 윤지(하은설 분)는 바닥 식구인 자신들이 유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 이제 그만 보자고 말한다. 그토록 자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창만은 이제 주춤 한발 물러날 태세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유나의 존재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새 아버지와 엄마는 유나에게 새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유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 창만과 인연을 끓으라고 말한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 인자한 새 아버지와 따뜻한 여동생, 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넓은 아파트, 멋진 차, 그리고 그에 부응하는 부, 그 모든 것들을, 지금까지 소매치기로 살던 삶과 바꾸어야만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역시나 고뇌하던 유나는 어머니와 번듯한 환경과 부를 택하는 대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오던 삶과 바닥 식구들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유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부정하는 것이었지만, 유나는, 그러지 않기로 한 것이다. 비록 소매치기를 하고, 장물을 팔며 살아가지만, 유나를 위해 언제라도 솔선수범하며 나서주는 진짜 가족같은 바닥 식구들, 그리고 유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마저도 포기하는 창만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동시에, 비록 전과 몇 범의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처지이지만, 자신의 소매치기로 살아왔던 삶을 부끄럽게만 여기지 않았던 유나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이 바보같은 커플의 선택은 흡사,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탐스러운 머리채를 자른 아내, 멋드러진 금시계를 잡힌 남편, 그들이 선택한 것은, 아름다운 머리를 장식한 머리핀과, 금시계에 어울리는 시계줄이었다. 이 웃픈 커플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오래도록 고전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자기 희생적인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조차 포기하고, 자신이 어렵게 찾은 혈육과 부를 포기한 또 다른 바보같은 커플의 사랑이 감동을 주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45회에 이르는 동안 우직하게 쌓아 온 의리의 유나와 창만이란 캐릭터가 주는 감동이기도 하다.  가진 것을 다 내려놓은 이 커플의 사랑의 길이 부디 순탄한 해피엔딩이기를 기원한다. 


by meditator 2014. 10. 29. 11:58

영국 bbc가 행한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라는 앙케이트 조사에서,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결국 여성 작가로는 세계 최고라는 의미이다. 또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젊은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연애담이 주된 내용인 그녀의 작품이기에, 20세기 이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제인 오스틴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으로 회를 거듭하여 영화화되는 이 작품을 책은 아니더라도, 영화로라도 접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0월 27일 새로이 시작된 mbc월화 드라마는 바로 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오만과 편견'을 자신의 제목으로 내세운다.

 

책 '오만과 편견'의 이야기는 제목만 봐도 훤히 드러난다. 귀족적 편견에 사로잡힌 다아시와, 그런 다아시를 자기 나름의 척도로 예단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 베넷이, 그들의 눈을 가린 선입견을 넘어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이다.

이 제목을 이어받은 드라마 <오만과 편견> 역시, 첫 회부터, '오만한' 남자와 '편견'에 사로잡힌 여자를 그려내기 위해 고심한다. 19세기 영국의 계급적 편견은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와, 검사라는 직업적 계급으로 재탄생된다. 고졸 출신의 수재 검사, 구동치(최진혁 분)는 원작의 거만하고 예의없는 다아시가 울고갈 만큼 얼굴을 마주친 한열무(백진희 분)가 그를 오해하기에 충분할 만큼,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 오만한 구동치의 맞은 편에는, 과거의 악연으로 인해, 구동치에게 복수하기 위해 검사가 되었다는 한열무가 있다. 당연히 그녀 눈에 비친 구동치는 '거만하고 예의없으며', 엘리자베스 베넷이 처음 느꼈던 감정처럼, 구동치가 속해있는 검찰팀 역시, 구동치의 팀처럼 '속물'답다.

드라마는 시작과 동시에, 수석 검사와 신입 검사라는 '신분적 차이(?)'에는 아랑곳않고, 과거의 인연에 발목잡혀 '으르렁'거리는 두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원작의 '오만과 편견'의 의미를 고스란히 살려내려고자 한다.

 


                    4종 포스터 공개! <오만과 편견> '공소시효 3개월 전, 검사가 됐다' 이미지-1

 

그리고 그렇게 편견에 사로잡힌 한열무의 태도는, 단지 수석 검사 구동치에 대한 태도를 넘어 그의 팀에게로 향한다. 뱀같은 눈매를 하고서는, 찬밥 신세라며 대놓고 처지를 드러내는 문희만(최민수 분) 부장검사,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 강수(이태환 분) 수사관에, 여자 검사는 더 싫다며 대놓고 감정을 표현하는 유광미(장혜성 분)수사관까지, 그녀가 새로 만난 팀들은 모두 구동치와, 또 다른 구동치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견습 처지인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첫 사건부터 대놓고 수석 검사인 구동치에게 자신에게도 사건을 달라 요구하고, 피의자를 풀어주는 팀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한다.

 

물론, 첫 회가 가기 전에, 그런 한열무의 편견이, 오직 그녀 자신의 편견이었음을 <오만과 편견>은 마치 '속았지'?하며 놀래키는 식으로, 문희만 부장 검사 휘하 '민생 안정 '팀의 능력을 보여준다. 오만하게만 보였던 구동치가 사실은 매의 눈으로, 그 어떤 피의자도, 지나쳐갈 뻔한 증거 하나도 쉬이 놓치지 않는 능력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속물처럼, 피의자편을 들었던 부장 검사의 언변과, 팀의 결정이, 사실은 거짓말에 능한 피의자를 유인하기 위한 '페이크'였음을 '반전'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오만에 사로잡힌 수석 검사와, 그런 검사에 대해 편견으로 사사건건 튕겨 오르는 신입 검사의 해프닝과, 그런 편견을 뒤집는 반전을 보인, <오만과 편견>의 첫 회는, 무난했다.

제 아무리 제인 오스틴의 고전으로부터 비롯된 캐릭터라지만, 왜 드라마 속 전문직 여주인공은 항상 그리도 위, 아래 없이 당돌한 것인지, 응급남녀의 오창민인지,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인지 그저 의사 까운을 검사 양복으로 갈아입은 것처럼, 일관되게 잘 생기고 잘 나가면 오만한 것인지 '클리셰'에 가까운 설정들, 한 눈에 보기에도, 서로에 대한 오해인 게 뻔한 상황들에, 반전이라기엔, 일찌기 <수사반장>이래 익숙한 '페이크'의 설정들이, <오만과 편견>을 새로운데 새롭지 않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고전이 되었듯이, 거만한 남자와, 그런 남자을 향해 냉소를 퍼붓는 여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럼에도 진부하지만, 매력을 잃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성'문제를 첫 회의 화두로 꺼낸, 성추행범과, 성 노출증 범죄자의 물고 물리는 증인 설정은, 결과가 예측되면서도 결말이 궁금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미 케이블에서 화려한 성취를 보이고 있는 수사물의 장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오만과 편견>은 재료가 조금씩 부족한 심심한 맛을 보이지만, 매력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발연기라 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운 주인공들의 연기에, 뻔한 듯하면서도 무리없는 복선까리 깔린 수사극은 딱히 채널을 돌릴 이유를 찾기 힘들게 만든다.

아니, 무엇보다, <오만과 편견>을 돕고 있는 것은, 딱히 트집잡을 것 없는 주인공들과 무난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감하기 힘든 음악 성장극 속에서 고전하고 있는 <내일은 칸타빌레>와, 사극임에도 대중적 공감을 잃은 <비문>이다. 이 두 드라마의 고전이, 무난한 <오만과 편견>의 승기를 뻔히 예측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4. 10. 28. 09:54

13회 <아이언맨> 아들 주홍빈(이동욱 분)은 자신이 장관을 만나며 아버지를 도운 일이 다름아니라, 바로 자신의 첫사랑 태희(한은정 분)의 부모님을 그분들이 사시는 섬진강변에서 내쫓게 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아버지에게 달려가 분노를 터트린다. 그런 아들의 태도에, 아버지는 뜻밖이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아들을 생각해서, 그래도 그 부모님에게, 시세의 두배에 달하는 보상을 해드렸는데, 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르 하냐는 것이다. 그렇게 '돈'으로 모든 것을 셈하는 아버지 앞에, 아들은 말을 잃는다.

드라마의 이 장면이, 몹시도 가슴아팠던 것은, 그 소통할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이, 지금, 바로,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 분쟁이 일어나는 곳곳에서, 그렇게 주장원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과, 주홍빈 아들같은 사람들이 평행선을 달리며 싸운다. 한쪽에선 개발을 해서 잘 살게 해주고 돈도 주겠다는게 무슨 불평이냐고 하고, 그에 반대하는 쪽에선 겨우 깃들어 사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데, 돈이 다 무슨 소요이냐는 것이다. 
이렇게 지구 끝까지 가도 만날 수 없는 양자의 가운데에 서서, 그것을 정책으로 이끌어 내는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이다.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우리의 정치는, 만날 수 없는 입장의 중재는 커녕, 불난 곳에 부채질을 하거나, 변죽만 울리다 지 밥그릇  싸움에 날이 샐 지경이다. 그렇게, 정치판에서 날이 샌 정치를 보다 못해, tv가 나선다. 

본격 정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치열한 갈등의 현장으로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치의 두 고수가 찾아가, 갈등의 양쪽 입장을 듣고, 조율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첫 회를 연 프로그램에서 현장으로 찾아든 두 고수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주호영 의원과,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과 함께 변호사 임방글이 함께 한다. 두 사람은, 원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된 삼척을 방문한다. 


배를 타고 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원전 건설 예정 부지인 대진리이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주호영 의원은 원전이 건설되면 어업권이 보상되지 않느냐고, 어부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주호영 의원의 말에, 어부는 고개를 젓는다. 땅 가진 사람들이야 보상을 받고 부자가 될 지 몰라도, 바다만 파먹고 사는 사람들은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자미 밭인 이곳 대진리 앞바다에 원전이 들어오면, 가자미에 기대어 사는 자신들의 생계는 막막해진다는 것이다. 

대진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원전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주민들이다. 이미 정치인들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 주민들은,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의 방문에도 불만이 거세다. 오면 뭐하느냐는 거다. 그런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호영 의원과, 노회찬 의원은 그렇게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며 차분히 설득해 마주 않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한 밤의 만찬에 주민 대표를 초대하기에 이른다. 

해가 진 삼척 장근항 소통을 위한 공간인 포장 마차가 마련된다. 그리고, 주호영 의원과 노회찬 의원이 직접 찾아가 설득하여 초대한 변형철 원전 반대 투쟁 위원장과, 김양호 삼척 시장이 원전 반대측 대표로, 문재도 산업 통상부 차관과 이상현 마을 이장이 찬성 측 대표로 자리하게 된다. 

삼척 주민 들은 원전 건설을 놓고 주민 투표를 거쳐 참여 68%, 반대 85%로 원전 건설 반대의 의견을 분명해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방자치법 7조를 들어 국가적 목적을 위해 이미 결정된 사항은 주민 투표의 대상이 아니라며 주민 투표 결정 사항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민들은, 이전 시장이 작성한 엉터리 주민 동의서에 근거한 핵발전소 건립은 애초에 적절한 의사 결정 과정이 아니었다고 반발한다. 
이런 주민들의 의견에, 노회찬 의원은 주민자치법 8조를 들어, 국가 정책이라도 해당 자치 단체장이 주민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그런 반대에 대해, 삼척 울진 지역은 발전이 낙후되어 있으며, 경제를 살리고, 일거리를 살리기 위해서도 원전 유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 맞선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서 어디든 원전을 건설해야 우리나라의 전기 자급률이 가능한 현실에서 정부측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는 읍소도 이어진다. 

중간에 원전 반대 주민들이 난입하는 등 위기에 봉착했던 토론은, 결국 진정 과정을 거쳐, 원전 안정성이라는 원론적 질문으로 들어간다. 
원전 안전성에 대해 문재도 산업통상부 차관은 과학의 시대에, 원전의 안전성은 당연히 과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원론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예로 들은 삼척 주민 의견에, 우리 나라의 원전은 일본의 그것과 다르다는 의견으로 불안을 잠재우려고 한다. 
그런 정부측 의견에 대해 반대측 의견은 예리하다. 삼척 시장은, 그렇다면, 여의도에 원전을 하나 지으면, 앞장 서서 삼척에 유치하겠다고 뼈있는 우스개로 응답한다. 
노희찬 의견은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문재도 차관 의견에, 오히려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현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가동 중단된 원전은 어쩔 것이며, 평균 3,40년, 길어야 60년을 사용하는 원전을 우리가 편하고자 사용하고서, 저준위 폐기물 300년, 고준위 폐기물 1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비효율, 비과학적인 원전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첫 회를 연 <거리의 만찬>에 대해 임방글 변호사는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한 하루였다고 자평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진 삼척의 원전 건설 갈등은, 쉽게 만나질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것을 확인케 해준 시간이었다. 프로그램 중반에 나온 이야기지만, 발전과, 개발이라는 산업 시대의 화두와, 복지와 안녕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만날 접점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몰랐을, 내 문제가 아니라 제껴 두었던 삼척 지역 주민들의 갈등을 수면 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자체가 <거리의 만찬>이 이룬 성과였다. 일부 특정 방송을 통해 어느 한 편의 입장이나, 정부측 결정 사항만, 혹은 시위대의 모습만 보여지던 것들이, 허심타회하지는 않더라도, 속시원하게 가감없이 개진되었다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거리의 만찬>이 이룬 성취는 크다.

굳이 소통의 가능성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외된 지방 자치의 현실과, 주민들의 원맘ㅇ, 그리고, 그속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원전이라는 현실이 읽혀질 수 있다. 판단은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거리의 만찬>은 가감없이 삼척의 현실을 짚어주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는 현실은 비감하다. 주호영 의원은 정부는 안전하지 않다하고, 국민은 안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정부는 앞장서서 괜찮다 하다가, 이곳저곳에서 원전 사고가 터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고,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주민들이 나서서 투표도 하고, 시위도 해야 될까말까 한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없는 것, 정치를 tv가 찾겠다고 나선 현실은 안슬프다. 

하지만, 정치의 외면, 혹은 정치의 스캔들화, 정치의 무용론이 그것을 노린 누군가의 목적이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정치판에서 배제된 정치를 나서서 해주겠다는 시도가 갸륵하다. 더구나, 하루 종일 정치로 판을 벌리는 종편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양자의 입장을 공평하게 전해줄 공중파의 정치 버라이어티의 시도는, 정치의 왜곡의 펴줄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모처럼 뻔한 연예인들의 예능을 넘어선 버라이어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부디, 첫 방송에, 보여준 진솔한 태도들이 앞으로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0. 26. 15:50

'형태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예술상 가치가 높은 문화재'(네이버 시사상식 사전)를 무형(無形) 문화재라 한다. 그 존재가 실존하는 유형 문화재와 대를 이루는 무형 문화재는 구체적으로는 음악, 무용, 공연, 공예 기술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지칭하며, 형태가 없는 특성에 따라, 그것을 보유한 사람이 그 대상이 된다. 처음 무형 문화재가 지정된 것은 1964년 '종묘 제례악'이었다. 그로부터 50년, 무려 126개의 종목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그 중 16개가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무형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2014년, kbs는 무형 문화재 지정 50주년을 맞이하여, 무형 문화재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며, 그 첫번 째 시간으로 마련된 것이, '풍류'로서의 무형 문화 유산이다. 


<kbs파노라마>의 한국 무형문화 유산 50주년 특집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무수한 우리의 문화 유산을 '풍류'라는 관점을 통해 계통을 세우고, 특징을 잡아내려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풍류'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풍류'는 바로 '풍류를 즐긴다'의 그 의미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네이버 지식백과)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풍류란 단어에는 그것을 해석하는 학자나 입장에 따라 다양한 뜻이 담겨있다. 가장 쉽게는 앞서 말한 바 멋이 있고, 예술을 알고, 여자도 알고, 여유가 있다는 삶의 방식에서 부터,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라는 미학적 평가까지 다양한 수준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kbs파노라마>에서는 숙명여대 송혜진 교수와 우리 옛그림에 대한 글로 유명한 손철주씨가 함께 한 풍류 음악 콘서트 현장에서 소개된 옛 그림 속 풍류의 현장을 통해 '풍류'를 접근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김홍도, 신윤복 등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의 수많은 옛그림과, 그 그림을 재현하고, 그 속에 등장했을 법한 음악을 함께 들려주면서, 정의내려진 풍류는, 글과 그림, 악기와, 춤이 한 공간에서 종합 예술로서 만나게 되는 음풍 농월의 현장이다. 

옛 그림 속 선비들은 자연 속에 드리운 공간 정자에 머물며 자연과 함께 하며, 달 아래 노닐며,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벗이 있어 함께 하면, 함께 해서 즐겁고, 혼자라도 즐길 수 있는 것이 풍류에 다름 아니다. 선비들의 풍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석천한유도'를 통해서는 선비의 문방사우처럼, 말과 칼, 매, 기생, 혹은 가야금 등의 악기와 함께 하는 무인들의 풍류를 알 수 있으며,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에서는 기생의 인생이 담긴 풍류를 엿볼 수도 있다. 

거문고를 타고,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시를 읊조리던 조선 전기 선비의 풍류는 '세간의 어떤 일인들 내 마음 속에 들어오랴'는 식의 마음 수양을 그 목적으로 하는 듯했다면,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상업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중인층이 대두되면서, 본격 전문적인 풍류객과 풍류방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른바 '한량'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윤복의 '상춘야흥'을 통해 드러난 기악, 춤, 노래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은 우리 음악의 기본적 형태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그의 또 다른 작품, '주유청강'의 한강에 배띠우고 악공과 기생들이랑 노니는 풍류는 당시 선비들의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이처럼, <kbs파노라마>는 조선의 옛 그림을 통해, 주류 계층이었던 선비들, 그리고 후기 중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통해, 당시 조선의 예술을 규명하고자 한다. 실제 '백사회야유도'에서도 보여지듯이, 당시 홍대용,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풍류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 졌으며, 홍대용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중국에서 악기를 들여와 개량하는 등 풍류의 길을 개척하는데 앞장 섰음을 밝힌다. 또한 술 자리에 합석하는 여인을 넘어, 예술가로서 기생의 존재로 새롭게 부각시킨다. 그리고 이들 예술가로서의 기생들에 의해, 궁중에서 실연되던 검무가, 진주검무등의 무형문화유산으로 계승발전될 수 있었음을 간과치 않는다. 

또한 이런 조선 시대로 부터 이어진 종합 예술로서의 '풍류'가 오늘날 '한류'로 특징지워진 우리 문화의 본류였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풍류를 이어가기 위한 고궁의 음악제 등 노력도 놓치지 않는다. 


풍속화를 통해 본 풍류 음악 콘서트라는 기왕에 진행된 공연 형식에 맞춰 조선의 무형 문화 유산을 짚어 본 <kbs파노라마>는 그림를 실현해 보이는 노력을 경주하며, 조선의 풍류를 규명하고 애썼다는 점에서, 무형 문화 유산의 재정립에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또한 기왕에 진행된 공연에 맞추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보니, 콘서트의 설명과, 때로는 다큐의 내용이 적확하게 맞물리지 못해 산만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풍류를 설명하는 과정이, 만연체이다 못해, 중언부언인 듯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또한, 조선 전기와 후기의 풍류의 주도 계층을 구분하여 설명한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과연, 120가지가 넘는 우리의 문화 유산 중, 그런 주도적 계층 외에, 서민들의 '풍류'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것은 '옛그림을 통해 본' 형식의 한계에 맞물리는 프로그램의 형식 때문이리라. 그저 풍류 음악 콘서트에 기대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선 시대의 '풍류'에 대한 정리를 했더라면 조금 더 깔끔한 프로그램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무형문화 유산 50주년에 특집으로 마련된 우리 문화 유산 풍류 특집에 대한 작은 아쉬움이다.  


by meditator 2014. 10. 25. 17:34

후줄근한 아버지 양복, 머리 하나는 작은 왜소한 몸집, 자신만이 이방인듯한 표정과 눈빛, 원 인터내셔널에 이른바 '낙하산'이 되어 출근한 장그래(임시완 분)는 처음에 그랬다. 하지만 그가 차츰 달라진다. 대학물을 먹은 쟁쟁한 스펙을 가진 동료들 사이에서 고졸 검정고시라는 존재하기 힘든 경력을 가진 그가, 종합 상사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또 하나의 좌절은, 그가 이전에 프로 바둑 기사로 입문하지 못했던 좌절을 복기게 만든다. 과거 자신의 패배가, 지금의 자신을 규정하여, 그를 또 좌절에 빠뜨렸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장그래가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 실패한 것이라며 자신의 지난 날을 치부했던 그가, 바둑판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졸 사원들이 수두룩한 종합 상사에서 생존의 돌을, 승부수를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별거 아닌 딱풀 때문에 장그래가 오해를 받아 전무의 지적까지 받게 된 사건에서 오상식(이성민 분) 영업 3팀 과장은 '우리 애'라는 말로 은연 중에 장그래를 자신의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그가 경험을 앞세운 석률(변요한 분)에게 사사건건 무시당하는 듯한 장그래에게, 경험으로 보나, 잔머리로 보나 지는 게 당연한 그림이지만, 태풍의 핵을 빗대어, 무작정 그의 수에 말리지는 말라는 충고를 전한다.

 

자신을 받아들여 준 오상식에게 연서(?)로 감사함을 전하기 까지 한 장그래는 그의 충고에 고무된다. 그리고, 초를 다투며 승부를 가렸던, 배수진의 전쟁과도 같은 바둑판에서 승부사로 길러졌던 자신의 경험을 길어 올린다. 더는 어수룩한 낙하산이 아니다. 비록 검정고시라는 동료 인턴 사원들이 무시하는 경력의 소유자지만, 남들이 공부를 하고, 진학을 하는 동안, 오로지 승부를 위해 수를 놓았던 시간의 경험을, 되살려 낸 것이다. 흑돌과 백돌의 승부의 세계가, 종합 상사 직원 장그래에게 산 경험이 된다. 조치훈, 조훈현 등 숱한 명인들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결국은 홀로 바둑판에서 수를 결정해야 했던 그 시간이, 이제 대기업 낙하산이 된 장그래의 승부수가 된다.

 

'미생' 방송화면

(사진; 텐아시아)

 

그리고 그런 장그래의 바둑을 통한 경험은, 오히려 이제 오상식에게 배움을 준다. 종합 상사라는 또 하나의 전쟁터에서, 늘 이기는 싸움에만 익숙하여, 물러나기를, 무릎 꿇기를 주저하던 그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고, 물러나는 것이 또 하나의 승부수라는 것을 장그래는 역으로 가르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석률과의 피티 과정에서, 그저 밀려나지 말 것만을 주문하는 오상식을 넘어, 장그래는 석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무작정 그를 누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른바 그가 내세운 경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또 하나의 승부수가 될 수 있음을 장그래는 십여년의 바둑 수련생의 통해 길어올린다.

 

이렇게 <미생>은, 그 누가보기에도 말이 안되는 검정고시 출신의 낙하산 장그래가, 전쟁터 같은 종합 상사 원인터내셔널에서, 그의 숨겨진 경력을 통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과정을 그려낸다. 지난 회까지, 그저 실패의 복기였던, 그의 숨겨진 이력, 십 여년의 한국 기원 연구생의 경험은, 그저 입단 실패의 쓰라린 추억이 아니라, 이제 종합 상사 직원이 될 만한 경험치로서 손색이 없는 스펙이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학력을 통해서만이 증명되는, 우리 사회의 경력들이 얼마나 일면적인가를 <미생>은 보여준다. 비록 프로 바둑 기사로 등단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장그래의십수년의 세월이 공부에만 매달려 학력을 쌓은 동료 인턴 사원들에 밀리지 않음을, 심지어 때로는 그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생존력있음을 드라마는 증명해 낸다. 그래서, 1회, 그저 불쌍해 보이기만 하던, 장그래가 조금씩 총명한, 때로는 오상식 과장조차, 섣부르게 폄하하지 못할 존재로 보이게 된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만화 <미생>이 바둑이라는 특정한 경험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과 달리, 바둑에 문회한이 다수의 tv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임을 배려하여, 바둑의 구체적인 수를 배제한 이야기들이, 때로는 드라마 속 대사들을 그저 '명언'이나, '경구'처럼만 전달되게 되는 점이 아쉽다. 실제 바둑판에서, 서로의 능력이 차이가 나는 흑돌과 백돌이 경합을 벌여, 때로 수가 밀리는 흑돌이 승리할 수 있는 인생의 묘미를 보여주는 바둑의 매력이 드라마 속에서는 보여지지 않으니, 미생으로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장그래를 설명하는 매력이 반감되어 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검정고시 출신 장그래가, 우월한 학결을 코에 걸고 경쟁만을 내세운 종합 상사에서, 자신의 과거를 바탕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대학생들은 소위 일반고 출신이다. 자사고, 특목고, 그리고 그 나머지 아이들이 간다는 일반고, 요즘 세상 사람들은 마치 일반고에는 공부를 못하는 찌그레기 들만 모아놓은 듯 쉽게 규정을 한다. 학습 분위기와 수업 집중도만을 가지고, 일반고의 아이들을 평가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열반'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우리 사회에서 성공의 한 지름길처럼 여겨진다. 우리집에 같이 사는 대학생들은, 남들처럼 좋은 학원에, 훌륭한 과외 선생님을 통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대학이란 곳을 통과했다. 그래서, 학원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 때로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홀로 견뎌야 하는 대학 생활에 불안감에 여전히 고등학생같은 생활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달리, 대학 이란 사회를 상대적으로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그들과 달리, 그들이 지내 온 일반고 경험에서, 일률적이지 않은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폭넓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쌓기도 한다. 청소년 시절 성공의 잣대처럼 여겨지는, 특성화고에서는 얻지 못할 경험이요, 자신감인 것이다. 아니 우리집 대학생들의 여유를 차치하고, 장그래를 그저 패배자로만 여기는 원인터내셔널 직원 및 인턴 사원의 협소한 시야, 그리고, 공무원 등 사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결코 세상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스펙좋은 그분들의 탁상공론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간의 잣대로만 측정되어지는 평가 기준에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다. 십 여년의 연구생 생활에 대한 복기를 통한 장그래의 생존이, 그래서 더 가치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0. 25.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