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전부터 김상중, 박해진, 조동혁, 마동석 등 쟁쟁한 출연진에, 범죄자들이 범죄자를 소탕한다는 흥미로운 소재로 관심을 끌었던 <나쁜 녀석들>은 중반을 넘긴 지금, 평균 시청률 3.8%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화제성을 끌고 있다. 심지어 동시간대 남자 시청자 10명 중 3명이 이 드라마를 시청할 정도로 보통 젊은 층이 주시청층인 케이블 드라마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그러나, 중반을 넘기면서, 각자 자신이 가진 장기를 이용해, 종종 1대 100을 넘는 상황에서도, 한번 가는 인생, 뭐 아낄게 있냐면서 거침없는 액션으로 시선을 끌던, <나쁜 녀석들>이 이야기 상에서는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쁜 녀석들>의 여주인공은 이정문 역의 박해진이란 우스개가 있다. 실제 여주인공인 유미영(강예원 분)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며, 심지어 사연많은 사이코패스로서, 늘 다른 동료 나쁜 녀석들이 구해주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이정문은, 캐릭터로 보면 여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대놓고, '브로맨스'는 아니지만, 매회, 이정문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발사하며, 그를 죽여야 함에도 죽이지 못하는 박웅철(마동석 분)에 이르면, <나쁜 녀석들>의 주 멜로 라인은 이정문과 박웅철이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정문이 누군가,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이다. 하지만, 만나서 으르렁거리는 것도 잠시, 마치 전쟁터의 전우처럼 함께 몇 번의 작전을 벌였던 이들은, 쉽게 동료애에 빠져 이정문을 죽이라는 청부 살해 요청을 수행하지 못한다. 청부 살해 요청을 수행하지 못하는 건 그렇다손 쳐도, 매회, 이정문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쯤이면, '나쁜 녀석', 심지어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이라는 이정문에 대한 감정적 특혜가 지나친 게 아닐까?

 

논외지만, 드라마 상에서, 이정문은 7회에 도달했는데도 오리무중이다. 천재 사이코패스라는데, 드라마 중 그의 활약은 언제나 어설픈 액션이기 십상이고, 천재성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런데 반해, 의심스러운 눈초리와 상관없이 동료들의 그에 대한 편애와 믿음은 절대적이다.

 

드라마는 이런 범죄자에 대한 연민을 우회적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박웅철에게 이정문 살해 요철을 한 것은, 그가 오랫동안 모시고 있던 형님이다. 하지만, 이미 이정문에게 동료애를 느낀 박웅철은 그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러자, 형님은 그러면 너를 대신 죽여야 한다며, 박웅철을 묻는다.

7회에 등장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정태수가 이정문을 살해하라는 청부 요청을 거절하자, 정태수를 죽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이려던 정태수의 대부같은 임종대 등이 살해되었다.

즉, 애초에 이정문에 대한 동료애, 측은지김에 대한 개연성 부족을, <나쁜 녀석들>은 박웅철과 정태수의 측근들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힘으로써, 메꾸어 가고자 한다.

 

(헤럴드 경제)

 

몇 번의 범죄자 소탕 과정을 거치면서, 박웅철과 정태수는, 정태수의 말대로, 범죄자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죄책감, 연민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그 예전, 함부로 사람을 죽이던 조폭이나, 청부 살해업자가 될 수 없다.

물론 그들의 작전 참가에 따라 복역 기간이 줄어드는 특혜를 얻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상해를 입혔던 범죄자이다. 그것은 그들이 죄책감과 연민을 얻게 되는 것과 별개의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이정문 역시 마찬가지다. 보호해 주고 싶은 애처로운 존재요, 자기 자신이 사이코패스인 줄 확신을 가지지 못한 미궁 속의 인물이지만, 그 역시 범죄자이다. 귀요미 박웅철에, 자신이 살해한 남자의 아내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오열하는 정태수라 하더라도 말이다. 다짜고짜 동료애에서, 그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나쁜 녀석들은 그래서, 추동하는 스토리에 딜레마를 내포한다.

 

결국 남은 회차 동안, <나쁜 녀석들>은 이런 이정문에 대한 무한 보호, 사랑이란 딜레마를 이야기로 설득해 내야 한다. 또한, 진심으로 개과천선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쁜 녀석들이었던 그들에 대한 범죄자에 대한 미화가 아닌  설득력있는 마무리도 필요하겠다.

by meditator 2014. 11. 16. 02:40

<미생>9회, 원인터내셔널에 신입 사원으로 들어간 네 명,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률의 고난사가 펼쳐진다. <미생>을 보는 시청자들이, 군대건, 사회건, 혹은  알바를 하는 곳이었던 자신이 처음 맞닦뜨렸던 사회에서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사인사색으로 펼쳐진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서의 모든 일에서 배제되는 안영이,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커피 심부름부터 쓰레기통 비우기까지 부서의 모든 허드렛 일을 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 마따나,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있는 모든 수단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 안영이와 정반대로, 자신을 너무 잘 대해 준다고 자랑이 입에 붙었던 한석률의 경우도 알고보면 나을 게 없다. 입에 발린 말 뒤에, 결국 자신의 일까지 떠맡긴 상사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지 못한 장백기는 회사를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겨우 이제 한 팀으로 인정받는가 싶었던 장그래 앞에는 인격적 모욕을 마다하지 않는 박과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을 보는 시청자들은 자신이 겪었던 그 어느 구비의 일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울컥한다.

 

모든 일에 순응하는, 심지어 박과장(김희원 분)의 신발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는 장그래에게 김대리(김대명 분)는 결국 볼멘 소리를 하고 만다. 당신은 마치 사회에 나온 갓 나온, 그래서 어떻게 하든 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는 장기수와 같다고.

그런 김대리의 불만에 장그래는 덤덤하게 말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역류에 대응하는 방법에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역류가 거셀 때, 때론 그저 순한 흐름이 되어 그 역류를 맞이하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라고.

 

<미생>은 현실 삶을 복기하는 듯한 공감을 준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촌철살인의 해석을 곁들인다. 역류를 견디는 방법 같은 식이다. 거기에, 그저 현실을 반영하는 감동을 넘은 <미생>이란 드라마의 힘이 있다.

하지만, <미생>이 주는 힘은 '자기 계발서'들이 앞다투어 말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던가, '백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던가, 아파도 괜찮아 식의 덕담과는 궤를 달리한다.

 

애초에 드라마의 제목, '미생'이 바둑 용어에서 출발하고, 겨우 회사에 살아남은 장그래를 보고, 오과장(이성민 분)이 '완생'을 운운하듯이, 드라마 <미생>은 '바둑'을 빗대어 회사 생활을, 사회 생활을 설명한다.

그런데 바둑이란 무엇인가, 이제는 게임으로서의 바둑이라지만, 그 원류는 가로 세로 40여 센티의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장기판처럼 노골적으로 왕과, 차, 포, 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세를 불려, 적의 집을 에둘러 잡아먹는 살벌한 먹고 먹히는 전쟁터가 바로 바둑판이다. 그리고,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스스로 말하듯, 비록 실패했지만, 승부사로 조련되어진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승부사가 원인터내셔널에 던져졌다. 40여센티의 바둑판에서 상사로 전쟁터만 바뀐 것이다. 이렇게, <미생>은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직장인을 전제로 한다.

 

‘미생’ 이성민, 김희원 부정 이해하며 “보상이라 생각했을 것”

 

그렇다면 전쟁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떨까? 물론, 정윤정 작가의 각색을 걸쳐, 김원석 피디의 디렉팅으로 다듬어진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원작, 윤태호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윤태호 작가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얼마전 윤태호 작가가 완성한 작품에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진짜 6.25 전쟁 속에 던져진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맏형 상근은 뒤늦게 한강 철교를 건너 피난을 가던 중 폭격을 맡아, 몸의 반쪽이 날아가버린 불구가 되어버린다. 그런 가장을 만난 가족들, 그가 살아있다는 기쁨도 잠시, 흉측해진, 그리고 이젠 가장으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가족은 살고자 한다. 부인은 남편을 업고 다니며 구걸을 하고, 때론 필요하다면 부역 연설까지도 한다. 물론, 그런 그들의 살기 위한 행동은 그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남은 그들의 아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서도, 자신조차 죽을까 차마 아들인 척 하지 못한 아이는 살아남는다. 굶어죽는자가 태반인 전쟁 후 거리에서, 죽은 자의 주머니를 뒤지고, 거리에 나뒹구는 먹을 거를 마다않고 살아남는다. 신문 연재분 만화의 마지막은 생존의 형형한 눈빛으로 미군이 주는 초코렛을 받아먹는 아이에게서 끝난다.

 

전쟁 속 인간 군상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속이고 기만한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이후 그의 삶이 결정된다.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동생은 허망하게 상륙 작전의 희생양이 되고, 부역을 마다하지 않은 형은 결국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 전쟁터에서 윤태호 작가가 말했던 것은, <미생>의 전쟁터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는 듯하다. 여기서도 삶은 우리에게 가혹하다. 그리고 그 전쟁터와 같은 삶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역류에 맞서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겼던 건, 장그래가 선택한 방식이다.

 

10화가 그려낸 박과장의 몰락은, 그가 선택한 방식이 자초한 결과다. <미생>의 박과장은, 성희롱을 하고, 인격 모독을 하는 나쁜 놈이었지만, 오과장은, 그런 그를 '보상'이란 단어로 설명한다. 상사라는 전쟁터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지만, 한끼의 회식 외에 돌아오는 보상이 없는, 회사에서 스스로 자신의 보상을 찾으려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가상의 회사로 인해, 감사를 받고, 사법적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다. 그저 나쁜 놈이 아니라, 원인터내셔널이란 전쟁터에서 그가 선택한 삶의 결과다. 이런 그의 방식은, 접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때문에 갖은 수를 다짜내던 오과장의 선택의 맞은 편에 있다.

 

스스로 '보상'을 취했던 박과장도, 그 누구 알아주지도 않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애쓰던 오과장도, 그리고 인격적 모독조차 받아내는 장그래도, 결국, 따지고 보면, 한낯 '넥타이 부대' 혹은 '유리지갑'이라고 만만하게 여겨지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전쟁터의 졸처럼 쓰고 버려져도, 혹은 가끔은 10회의 장그래처럼, 때로는 역류가 되어 반격을 해도, 그까짓 바둑판과 같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까짓 바둑 이기건 지건 세상은 달라지지 않듯이, 원인터내셔널 직원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사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생>은 한 마디를 더한다. 그래도 바둑이라고. 그건, '자기 계발서'의 위로로 설명될 길 없는 삶의 엄정함이요, 한 개인이 짊어지고 갈 삶의 무게다. 어린 시절 고사리 손으로 바둑 돌을 집어들기 시작한 이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인생을 온전히 걸었던 그 시간의 무게같은, 아니 , 때로는 그 무게보다 더하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곳이 겨우 가로 세로, 40여 센티의 바둑판이다. 그리고,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 보기엔, 겨우 그것이라도, 내가 짊어 지고 갈, 내 삶인 것이다. 삶의 비극성조차 내것으로 받아들인 긍정성이다<미생>이 보여준 삶의 긍정성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흔한 덕담이나, 위로와 다르게 묵직하다.

by meditator 2014. 11. 16. 02:06

11월 13일 <밥상의 신>이 마무리 된 목요일 밤 8시 50분에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이 한 편 찾아왔다. <도서관이 살아있다>

마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연상되는 이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출연진들이 각종 게임을 벌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우승한 사람은 영국 도서관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단지 영국 도서관 탐방인지, 탐방의 미명 아래, 영국 관관인지는 알 길 없으나)

그런데,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이 살아남으로써 박진감 넘치는 모험을 선보였던 영화처럼 <도서관이 살아있다>도 생생한 도서관 체험이 되었을까? 요즘 도서관이야 여러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책을 보러 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파일럿 <도서관이 살아있다>를 보고 기억하는 한 권의 책이라도 있을까?

 

오히려, 한 권이라도 기억나는 책이 있기보다는,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오히려, <런닝맨> 도서관 특집 같았다. 아니, 도서관 특집도 아니다. <런닝맨> 도서관 특집이라면 조금 더 서가에있는 책을 활용하기라도 할 것 같았다. <무한도전>이 잠깐 이용한 도서관보다 책의 활용 방식이 낮다. 책장을 들춰 본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책을 찾고, 정보를 이용하는 도서관의 기능은 소개가 되었지만, 정작, 그것을 통해 찾아 본 책에 대한 접근도는 낮다. 오히려 종회무진 도서관을 뛰어다니기만 한다.(사실 도서관은 그렇게 뛰어다니면 안되는 곳이다) 그렇다고, 장소를 제공한 국립 세종 도서관의 웅장한 외관과 달리, 도서관으로서 그곳의 고유성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저 서가와, 컴퓨터, 어느 도서관에나 있는 그런 것들이 보여질 뿐이다. 그래서, 파일럿 <도서관이 살아있다>를 시청하고 난 후,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라고, 그저 도서관이란 지리적 공간을 배경으로 <런닝맨> 같은 예능하기 였는지, 예능을 통해 도서관을 알리기였는지? 그 목적 여하에 따라 이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패를 판단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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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스타)

 

두 명씩 짝을 이뤄 네 개로 팀을 나눈 출연자들은 도서관 광장에 제시된 힌트에서 전화 번호를 유추해 내는 것으로 첫 번째 게임을 시작한다. 출연자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상식에 따라, 혹은 도서관에 비치된 사전의 도움을 받아 전화번호를 알아내 다음 힌트를 얻는다.

두번 째 힌트로 제시된 것은, 도서관 서가 분류 번호를 찾아, 책을 찾아내, 그 제목으로 부터 힌트를 얻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의 제목에 붙여진 스티커의 단어를 모아, 한 인물을 연상해 내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인물 추적에 성공한 팀은 다음 단계로 올라가, 제작진이 제시한 이순신 장군의 해전 순서를 알아내는 다음 단계의 퀴즈를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알 수 있는 책을 이용하고, 도서관 정보 이용을 위한 컴퓨터를 활용해 문제를 풀어간다.

이렇게 두번 째 과정까지 넘어 최후의 승자가 된 커플은 이제 마지막 영국 도서관 탐방을 위한 티켓을 걸고, 주어진 택들의 제목들 속에서 한 권의 책 제목을 찾아내는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 결국 영국 도서관 탐방권은, 한 팀이었던 줄리안을 제치고 '홍길동전'을 알아낸 신봉선에게 돌아갔다.

 

mc 김국진과,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그 분위기에서는, <느낌표>의 책책책을 읽읍시다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 도서관을 소개하고, 매주 한 권의 책을 베스트 셀러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도서관이 없는 곳에 새로운 도서관까지 만들었던 '계몽주의적' 예능이었던 '책책책을 읽읍시다'와 달리, 첫 방송을 한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먼저 달려 힌트를 선점하고, 문제를 맞추는 <런닝맨>의 포맷에 가까워 보인다. 사전을 뒤적이고, 서가에서 책을 찾지만, 그들이 찾아낸 책에서 소용된 건 그 제목들 뿐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참가한 해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을 뒤적이지만 어떤 책을 찾아보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책이 매개가 된 퀴즈이지만, 거기서 소용된 것은 책의 제목들 정도지, 그 이상, 책에 깊이 접근하는 문제는 없다. 서가에 책은 잔뜩 쌓여 있건만, 진득하게 다가간 한 권의 책이 없다. 그들이 책 제목을 통해 찾아낸 인물은 책 속의 주인공도, 위인전의 인물도 아닌, 뜬금없는 슈퍼맨이다. 단계별로 도서관 이용이 심화되지도 않는다. 마지막 결승자를 가리는 문제는 심지어, 책들을 늘어놓고 또 다른 책 제목 유추하기 같은 책과 관련있지만, 독서와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도서관을 매개로 예능을 하고자 하는 의도는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서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게임이 아주 기발하지도 않다. 재밌기는 했지만, 다음에 또 그걸 보기 위해 채널을 고정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문부호다.차라리 도서관에서 만난 한 권의 책에라도 조금 더 천착하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추리 였다면 신선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과연 이 프로그램의 주시청층이 누굴까 라고 한다면, 케이블의 현란한 프로그램에 눈을 빼앗긴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이 싱거운 도서관 게임에 눈을 돌릴까 싶다. 그렇다고 중장년이 보기에도 어정쩡하다. 공중파 예능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도 명색이 <도서관이 살아있다>라면, 생생한 도서관을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해줄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 싶다. 아니 애초에 주중 8시 50분 예능에 도서관이 어불성설일까?

 

by meditator 2014. 11. 14. 12:29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던(평균 시청률 3.4%) <아이언맨>이 결국 애초에 하기로 했던 20부에서 2회가 줄어든 18회로 조기 종영되었다. 남주인공 주홍빈(이동욱 분)의 등에서 칼이 솟는 기괴한 설정을 시청자들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 기괴함 너머에, 밤하늘을 쏟아질 듯 채운 별과, 섬진강의 아스라함, 그리고, 깍아지를 듯한 빌딩, 기하학적 미감의 극치를 보여준 집과 푸근한 재래시장과 오래된 주택가의 대비, 그리고 그것을 채워가던 동화같은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어렵사리 도달한 두 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세대간의 화해에도 시선을 맞출 수 없었다. 비록 애초에 하고자 했던 20회를 채우지 못했지만, 굳굳하게 <아이언맨>의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에둘러가지 않았다. 마지막 회, 엔딩, 다시 만나 힘껏 포옹하며 하늘로 치솟는 두 주인공들처럼, <아이언맨>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고지순하게 지켜냈다.  왜 굳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칼'을 설정했을까란 의문이 무색하게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어려웠다. 항상 최고만을 요구했던 엄격한 아버지를 피해 가지고 싶은 걸 사랑하는 소녀의 부모님이 하던 문방구에 숨겼지만, 모든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결국 사랑하는 소녀를 빼앗겼다. 가장 사랑하는 걸  빼앗긴 소년은 상실의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그 분노는 소년의 몸에서 자라난 칼이 되었다.

 

그리고 칼이 돋아나기 시작한 소년 앞에, 어린 시절 사랑했던, 그래서 아버지로 인해 잃었던 첫 사랑의 소녀의 냄새를 지닌 또 다른 소녀가 나타난다.

 

 

 

<아이언맨>의 여주인공 손세동(신세경 분)은 마치 '바리데기'와도 같다. 주홍빈의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은 태희(한은정 분)를 찾아가 자신이 세동이로 인해 달라졌음을, 잘못했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한 세동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자신의 외면때문에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처럼 될까봐, 그런 세동이, 창이를 만나고, 창이로 인해 주홍빈을 만나고, 다시 주홍빈으로 인해 주홍주와 주장원을 만나면서, 닫혀있던 이들의 마음에는 생명의 피가 흐르고, 굳었던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세 부자만이 아니다. 생명을 앗아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은 태희와 주장원, 그리고 그로 인해 꽉 막혀버린 태희와 주홍빈의 관계에도 '해원'을 풀 시간이 주어진다.

 

마치 죽은 부모님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숱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생명력을 소생시킨 바리데기처럼, 손세동은, <아이언맨>에서 묵은 해원과, 굳은 관계와, 그 속에서 고사되어져 가던 인간성을 살려내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언맨>에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려냄으로써(?) 자기 자신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받았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 누군가를 보살펴주는 사랑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랑을 찾는다.

 

(아시아 투데이)

 

 

 

<아이언맨>은 진짜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대 최고의 게임 회사의 ceo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무서워 장난감을 숨기고, 장난감을 빼앗겨 분노하던 아이에서 한 치도 성장하지 못한 채 분노를 칼이 되어 뿜어내기만 하는 주홍빈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저버리면서까지 희생하던 손세동은, 역시,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해 지는 어른이 되었다.

 

무조건적인 희생도, 무조건적인 분노도 넘어, 성숙하게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상처받은 아이들의 성장담, <아이언맨>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받은 아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있다. 그저 그가 아는 삶의 해법이라곤, 높은 건물을 올리듯,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쌓는 것만이었던, 그리고 그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시대의 어른,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 아버지로 인해 상처받고, 빼앗긴 그의 자식과 남의 자식들이 있다.

 

 

 

<아이언맨>은 그런 아버지 세대와 '화해'에 대해 고민한다. 자식들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고, 자식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버린 이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아이언맨>의 숨겨진 화두다.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손세동의 아버지를 외면해 빨리 수술을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주장원에게 손세동이 요구한 것은 '사과'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시인과,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진심어린 사과.

 

주장원은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그저 자기 잘 살겠다고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일인줄 몰랐다고,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누군가도 자신처럼 자식을 가진 부모라는 걸 염두에 두겠다고.

 

그리고 손세동에게 배운대로, 주장원은 죽어가는 태희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노골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세동의 아버지는 죽었고, 태희 역시 주장원의 속내를 헤아린 윤여사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버린,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 '세치 혀' 주장원의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작가는 감옥 한번 다녀오고, 절에 한번 다녀오고 나서, 사죄를 했네라며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벌'이 '처벌'이 아니요, 어쩌면 '처벌' 보다는, 진심어린 '사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마지막회 어린 시절 주홍빈이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중하게 숨겨놓았던 딱지가 알고보니 아버지가 곱셈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홍빈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것이라는 걸 밝혀진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임에도,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야 했던 아이러니한 사랑의 상징이라니! 그 '불화'의 상징이었던 딱지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 아버지와, 분노를 거두고, 누군가를 책임질 어른이 된 아들의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물론 주장원이 그리도 바라던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가 이룬 부는 그의 두번 째 아내의 수중으로 사라졌고, 윤여사가 바라던 주홍빈의 집도 얻어지지 못했다. 텅빈 방에 홀로 서있는 주장원과, 홀로이 떠나는 윤여사의 모습으로, 즉 그들이 어쩌면 핏줄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을 상실케 함으로써, <아이언맨>의 단죄는 마무리된다.

 

 

 

'바리데기' 같은 여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고도 성장' 시대의 아버지와, '분노'의 시대를 살아온 아들이 다시 손을 맞잡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같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도, 어렵사리 도달한 세대간 화해도, 주인공의 등에서 돋아난 기괴한 칼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니, 여전히 '고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와, '분노'를 성숙하게 다스릴 줄 모르는 아들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진심어린 사과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사랑은 정말 동화 속 이야기같기만 했기 때문이라는게, 진짜 <아이어맨>이 외면받은 이유가 아닐까?

 

 

by meditator 2014. 11. 14. 10:29

'제발 다음 주에 만나요`'라며 다음 주를 애절하게 기원하던 <무르팍 도사>의 짜투리 프로그램이었던 <라디오 스타>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요새를 향해, 진격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리고 파일럿으로 편성된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그 난공불락 요새로 돌진하는 홀홀단신 용병으로 첫 차출된 프로그램이었다. 차출된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의 성과는 2%(닐슨 코리아)다. 이래서야, 이제는 겨우 5%대로 체면 치례를 유지하는 <라디오 스타>라는 요새의 문을 부셔버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일까, 정규 편성의 변 대신, 다음 주엔 <즐거운 가>가 수요일을 차지한단다.

 

첫 술에 배부르랴 라고 하기에,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의 시작은 장황하다. 뜻하지 않은 사건을 막을 내린 <짝>의 제작진이 만든 프로그램답게,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이게 <짝>인가? 싶어 프로그램 제목을 확인하게 할 만큼, <짝>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온다. 김세원 성우의 농밀한 나레이션을 배경으로,<짝>에서 애정촌으로 사용된 흔적이 벽에 남겨진 산채로 첫 출연자 강풀과 서장훈을 부른다. 리무진에, 기자 회견에, 레드 카펫에, 경호원에 오글거리면서도, 번거로운 격식은,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30분이 지나도록 지속된다. 강풀의 만화를 좋아해서, 서장훈이 보고 싶어 채널을 고정했던 시청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 시간 mbc의 <라디오 스타>에서는 요즘 한참 주목받고 있는 조연 연기자들의 입담이 스튜디오를 메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 한 살 동년배의, 강풀과 서장훈의 조합은 신선했다. 그리는 작품마다 화제와 인기를 얻고 있는 당대 최고의 만화가가 된 강풀과 달리, 동갑인 서장훈은, 농구 선수로 살아왔던 그의 인생의 정점을 넘었다. 2013년 3월 19일로 농구 인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시간만 나면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전화를 거는 강풀에게는, 그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가정이 있다. 하지만, 서장훈은, 이혼으로 인해 은퇴를 미뤄야 했을 만큼, 아픈 상처가 남아있을 뿐이다. '좌빨'이라며 사람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모습을 거부하지 않으며 당당한 강풀과 달리, 재계, 연예계에 인맥을 가지고,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된 서장훈은 뭐 하나 서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

 

 

 

(일간 스포츠)

 

그렇게 나이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룻밤을 보내며 인간적 깊이를 쌓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의 의미는 존중받을 만 하다.

서로 만나,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만큼 어색했던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그리고 함께 술을 마시면서, 말을 놓고, 결국 친구가 되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강풀이 말하듯, 어색했던 하룻 밤을 보낸 두 사람은 '우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까탈스런 서장훈은 여전히 가족도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지만, 그런 서장훈을 이제 이해하게된 강풀은 그럼 자기 집으로 초대하면 된다고 그래서 혹독한 육아를 체험하게 하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과의 거리두기에 한 치의 틈도 없던 서장훈이, 아내와 아이와 다정스레 전화를 주고 받는 강풀을 보며, 싱글 라이프인 자신의 삶과 미래의 아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서장훈이 이룬 부에 대한, 그리고 26년이 대표작이 되어버린 강풀의 사상성에 대한 솔직한 질문이 오간다.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2013년 3월부터, 8월까지 방영되었던 <땡큐>와 프로그램의 성격을 같이 한다. 서로 다른 길을 걸은 두 명의 명사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인생을 반면교사로 삼아보는 변형된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낮은 시청률로 조용히 사라지게 된 <땡큐>의 색채를 없애고자, '군주'라는 어색한 호칭과, 장황한 격식으로 프로그램의 성격을 달리 보이게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그 형식적 장치가 <땡큐>가 풍겼던 '힐링'의 성격마저,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보면서, 과연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가 추구하고자 했던 프로그램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 질 정도로.

 

강풀과 서장훈은 1박2일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밤을 보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앞뒤가 끊긴 채 단절적인 경구처럼 전달된다. 강풀을 알고, 서장훈을 이해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다. 오히려 진수성찬이 마련된 매 끼니의 식사는 대화 한 점없는 식사 시간이 증명하듯, 두 사람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지 못한다. 하다 못해, <식사합시다>처럼 함께 음식을 차려가는 과정에서 다가가는 묘미도 없다. 즉, 형식이 출연자의 거리를 좁히는데, 출연자의 이해를 돕는데 별 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형식은 강고한데, 그 형식이 강풀이란 사람과, 서장훈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니, 형식은 형식대로, 그 안에서, 사람은 사람대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득, 아무 것도 하는 것없이, 하루 삼시 세끼 밥만 해먹는데도, 출연자에 대한, 한번 들르는 게스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져 가는 <삼시 세끼>가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결국 프로그램의 형식을 벗어난 '잠행', 술에 의존하여 풀어내는 길 밖에 없다. 서먹했던 강풀과 서장훈이 말을 놓고, 속깊은 이야기를 하게 된 건, 하루가 꼬박 지나, 밤이 이슥한 중국집에서였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야, 낯을 가렸던 두 사람의 속내를 듣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미디어에 낯선 강풀이란 사람과, 꿈을 이룬, 그리고 아직도 꿈에 대한 미련을 채 접어넣지 못한 은퇴 농구 선수인 서장훈의 속내를 어렵게 읽어가는 시간은 소중했다.

당대 최고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그림을 잘 못그리니 스토리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며 피를 쏟는 치루에 걸릴 정도로 고된 작업을  반복하는 만화가라는 직업과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와 첫 눈 오는 날을 희생하며, 하지만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살아온 다른 인생을 엿보게 된 건 그 자체로 의미있었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키가 커서 부모님이 농구 선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이에 대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와, 잘 하는 해야 한다 라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답변처럼, 전혀 다른 인생관을 가진 두 마흔 한 살의 중년 초입의 남자들을 통해, 치열한, 혹은 치열했던 세상을 엿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꿈은 만화가가 아니었다며, 만화가가 직업임을 강조하는 강풀과 농구선수 외에는 생각해 본 것이 없다는 서장훈을 통해, 꿈과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꿈을 이룬 서장훈에게, 그러면 무엇을 하고 싶을 때까지 놀라는 강풀의 지혜처럼, 세상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해법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미흡한 결과물을 안은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가 정규 편성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규 편성이 되기 위해서는 '만남'이란 소중한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아니, 그 만남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형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저 새로운 것만으로 설득하기에,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진부했다.

by meditator 2014. 11. 13. 11:37

11월 2일 sbs수목 드라마로 첫 선을 보인 피노키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조수원 콤비가 다시 한번 뭉쳐 선보인 드라마다.

그런데, 굳이 박혜련/조수원이란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전작을 드러내지 않아도, 첫 회 <피노키오>를 보고 있노라면, 박혜련 작가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떠오른다.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차용한 제목을 붙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는 신체적 약점이자, 동시에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는 증상을 가진 소년 수하(이종석 분)가 등장한다. 어릴 적 사고로 상대방의 눈을 보면 그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증상을 가진 소년 수하는, 하지만 그 슈퍼맨의 능력같은 자신의 증상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항상 들려오는 누군가의 마음의 소리로 인해 괴로워하는 그는, 그걸 막고자 항상 음악이 흐르는 헤드폰을 끼고 있다.

<피노키오>에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소녀가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사는 사회는, 흰 거짓말, 검은 거짓말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말 장난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못베기는 사회를 합리하듯, 진실만을 말하고서는 살아가기 힘들다. 그런 사회에서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인하(박신혜 분)는 거짓말을 하려하지만, 그때마다 딸국질이 그녀를 폭로한다. 이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소녀가, 거짓 세상 속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곧 <피노키오>의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피노키오> 모두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사건이 그들 삶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다. 민준국에 의해 아버지를 잃게 된 소년 수하, 그런 수하를 돕기 위해 법정에 서서 진실을 증언하게 된 혜성(이보영 분), 그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인연은 깊어졌고, 혜성의 세상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피노키오>에도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있다. 기억력이 좋은 작은 아들을 동네방네 자랑하지 못해 좀이 쑤시는 순박한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출동했던 공장 화재 사고에서 공장 직원의 발뺌으로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살인자이자, 그 사건으로 부터 자신만이 살아남아 도망다니는 파렴치범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죄과는 고스란히 가족들의 짐으로 떠넘겨지고, 그로 인해 가족은 산산조각나고 소년의 삶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동심의 세계는 단 한 순간에 파괴되고, 어린 시절의 주인공들은 그들을 보호해줄 보호자를 잃고 세상을 떠돈다. 잔혹 동화다.

그런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피노키오>에서도, 이 잔혹 동화를 빚어낸 건,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회의 어른들이다. 동심의 세계를 파괴한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 속에서, 자신만의 이해를 추구했던 어른들의 타산적 행동이다. 그런 어른들의 탐욕으로, 아이들은 보호받을 그늘을 잃었고, 영원히 씻지 못할 상처를 가진다.

그리고 그렇게 동심의 세계를 파괴한 어른들의 사건은 드라마의 주제가 될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내던져지듯 들어간 법정에서,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범죄자의 시선 앞에서 진실을 고백했던, 하지만 무기력했던 소녀의 증언은, 법 앞의 진실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사실에 앞서, 대중들의 흥미를 쫓는 보도 관행 앞에 파괴되어버린 가정은,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사명이란 원론적 질문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sstv)

 

하지만 동시에, 깨어진 동심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아이들은, 주저앉아있지 않고 그로 부터 어른이 된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 인권 수호자는 커녕 철면피한 국선 전담 변호사가 된 혜성의 직업이 그것이다. 잔인하기까지 했던 기자들의 세 치 혀로 인해 아버지의 생환을 기뻐하지도 못하고, 어머니마저 잃게 된 소년은 기자가 될 예정이란다.

 

첫 회를 선보인 <피노키오>는 단 1회이지만, 사연많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그로인해 빚어진 주인공들의 캐릭터, 그리고 그들을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모순까지 명쾌하게 그려낸다. 사실을 보도한다 하면서도, 그 사실의 선을 넘나들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칼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언론의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그런 무심한 누군가의 사회적 행위로 인해, 어린 시절을 잃은 주인공들의 사연을 선연하게 그려낸다. 상처받은 아이에서 히어로가 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들처럼, 동화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피노키오>의 주인공들은 또 어떤 어른이 되어, 우리 사회를 밝혀줄까,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4. 11. 13. 09:21

지난 주 정리 해고 게임에 이어, 대통령 게임을 선보인 <라이어 게임>,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 이 드라마는, 드라마 속 게임을 통해, 갑론을박 속에 가리워진 현실 속 진실을 오히려 명료하게 드러낸다. 


3라운드에 돌입한 참가자들, 이번 게임은 외부에서 대통령이 될 만한 후보들을 게임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남다정의 도움을 얻은 참가자들은 남다정이 선택한 후보를 믿고 따르기로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조달구(조재윤 분)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한 남다정 앞에 흔들린다. 그런 남다정의 후보에 맞서, 진짜 국회의원 보좌관(장승조 분)은 자신이 모시는 국회의원을, 그리고 국장과 커낵션이 있는 제이미는 강도영을 대통령 후보로 끌어들인다. mc 신분으로 게임 참가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지만, 차라리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상대편이 낫다는 하우진(이상윤 분)의 결정에 강도영은 대통령 후보로 합세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질 것 같아'라는 호언장담과 출연자들 모두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결국 3라운드 대통령 게임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은 심리학 교수 하우진조차 속아넘긴 강도영이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 대통령의 선출 방식의 숨겨진 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통령 게임의 운영 방식은 총 3번의 투표로 이어진다. 각각의 투표 과정에서 후보자는 유세를 하며, 유세 후 각가 개별적으로 참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유세의 내용은, 세번 중 한번을 거짓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참가자들이 제대로 판별하는가에 따라, 상금과 탈락 여부가 결정된다. 

당연히 참가자들은 후보자 유세 내용의 참, 거짓을 판가름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운다. 조달구를 후보로 내세운 하우진과 남다정은 상대장의 진실 여부에 따라, 조달구의 처지가 달라지기에, 더더욱 예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후보 조달구는 1차전에서 승리를 확보할 수 없었다. 나름 머리를 써다던 2차전 역시 패는 갈리었다. 승기가 강도영에게 넘어간 3차전은 더더욱이나 패배를 예감할 수 밖에 없다. 

<뉴스웨이>

하지만, 조달구의 승패를 떠나, 후보자의 유세의 참, 거짓과, 그것을 믿고 뽑는 참가자들의 유세 방식은 적나라하다. 유세가 참이었을 경우, 그것을 믿고 뽑은 참가자들은 유세의 내용에 따라, 국고에 있는 선거 자금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참가자들이 선택하는 기준은, 결국 유세자들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느냐 라는 것이다. 참, 거짓의 판가름은 그 다음이다. 가장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후보가 선택의 관건이다. 현대 사회 선거가 가지는, 배금주의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도시 정비 계획 하나로, 노인 연금 하나로  들먹이는 선거판의 복기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참가자들의 얕은 속내는, 결국 복벌복이 된다. 가장 확실한 이익을 보장할 것 같았던 2차 투표의 승리자 강도영을 뽑은 참가자들이, 그가 보장한 이익을 확인하고자 자신들의 금고를 열었을 때, 텅비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참가자들은 후보자가 말하는 유세 내용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숨겨진 비자금처럼, 후보자의 생각은 '거짓'이 아니라도, 전혀 다른 속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3차의 승리 이후, 대통령이 된 이후, 강도영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말바꾸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금고를 까보이며 비자금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는 하우진과 남다정 등에게 강도영은 냉소적으로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며 비웃는다. 게임의 룰에 골몰하는 하우진등에게, 중요한 것은 게임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강도영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드러난 진실에도 불구하고, 실세를 운운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강도영 앞에서 '비자금의 진실' 조차도 헷갈려하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은 '비자금' 조성 자체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하우진과 강도영의 동전 게임을 통해, 강자를 확인한 사람들은, 강도영에게 몰표를 던진다. 진실보다는 현실의 강자를 택한, 3차의 투표 과정은, 실체적 진실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승자 독식 주의에 가세하고자 한 표를 던졌던 우리가 경험한 선거를 적나라하게 복기한다.

그렇게, 강도영은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따랐던 참가자들을 외면하고서도,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 그를 뽑은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서 떨어질 떡고물을 기대한다. 하지만, 강도영의 떡고물은 그를 뽑은 참가자들 몫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변호사는 탈락했지만 유명 로펌에 고용되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 국회의원을 배신한 보좌관은 차기 국회의원 입후보를 위한 자금을 확보한다. 정작 강도영을 뽑은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저 다음 라운드까지 연명할 수 있는 기회뿐이다. 승자의 편에 서기만 하면, 자기에게도 무언가 이득이 생길거라며 표를 던졌던, 보통 사람들의 적나라한 현실이요, 우리 사회 투표권자들에 대한 은유이다. 

일본 원작 드라마에서, 능력자 하우진의 캐릭터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 건너 온 <라이어 게임>에서 하우진은 그 누구의 심리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자이지만, 현실의 막강한 권한을 내보이는 실력자 강도영에게 역부족이다. 일본 원작의 절묘함을 넘어, 한국 현실의 먹먹함을 고스란히 가미해낸 <라이어 게임>, 리메이크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 리메이크가 복기해낸 선거의 추억은 씁쓸하다. 


by meditator 2014. 11. 12. 12:47

<유나의 거리> 첫 회, 창만이가 살던 방에 먼저 세들어 살던 여자가 스스로 목을 매죽었다. 그런 그녀에게, 집주인 한만복(이문식 분) 는 젊은 그녀의 미처 다 피지 못한 죽음을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남의 집에서 함부로 죽었다며,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소문에 쉬이 사람이 들기 힘들 그 방 걱정을 먼저 한다. 그렇게 남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던 싸가지없던 한만복이 문간방 노인을 요양원으로 보내며 하염없이 안타까워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와 함께 맞장구를 치던, 아니 한 술 더 뜨던 그의 아내 홍여사는 이제 집을 떠나는 도끼 노인, 창만, 유나를 위해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을 마련한다. 그런 그 부부에게 '소매치기'라 냉대받기도 했던 유나는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를 남긴다. 연적이었던 부부의 딸과는 우정어린 포옹을 한다. 


이런 한만복과 그의 아내가 보여준 변화(?)가 바로 2014년 5월부터 시작하여 여섯 달 동안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유나의 거리>가 보여준 인간사 소득이다. 제 각기 자기 앞가림하기도 빠듯했던  유나네 거리 사람들은 어느 틈에, 함께 울고 웃으며, 다가올 이별에 서글퍼하는 소중한 '인연'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시청자들 역시, 그들과의 이별이 서글프다. 마치 오래된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다. 이렇게, 가슴 진하게 따스했던드라마를 또 만날 수 있를런지. 


치매에 걸려서도 한결같은 창만이는 결코 잊지 않으면서도 정작 모시고 살았던 한만복은 오락가락 기억하는 도끼 노인(정종준 분)이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을 기억해 내고, 언제나 얌체같다고 얄미워했던 자신에게, '만복이 넘 참 착해'라는 한 마디를 남긴다. 얌체같은 짓도 많이 했고, 얄미운 말도 골라했지만, 그래도 다세대 사람들 모두가 '효자'라고 입을 모아 말했던 한만복이 도끼 노인에게 얻은 댓가는, '그저 너는 착해'이다. 
마지막 회,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유래가 한만복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집을 나와 오갈데 없이 벤치에 '노숙자'처럼 앉아있던 도끼 노인을 한만복이 찾아가고, 그런 그에게 도끼 노인은 한만복네 문간방 얘기를 꺼냈단다. 그냥 들어와서 살라는 한만복의 말에, 도끼 노인은 그럴 수 없다며, 매달 자신에게 나오는 정부 보조금에서 십만원을 꼬박꼬박 집세로 내며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같았던 이들 인연의 속내이다. 

가진 것 없지만, 자존심마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베풀 줄 아는 조금 더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대가는, 그저 도끼 노인의 '넌 참 착해'와 같은 인정과 인간적 유대. <유나의 거리>가 그토록 훈훈했던 이유이다. 

오갈데 없이 미선(서유정 분) 집에 얹혀 살며 하루 소매치기를 하며, 하루를 살던, 심지어 아픈 아버지가 있는 교도소에 면회갈 돈이 없어 동동거리던 유나는 창만의 노력 덕에 소매치기에서 손을 씻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까지 만나게 되었다. 
게다가 금상첨화, 유나를 버리고 갔던 엄마는 이제 재벌집 사모님이 되어, 유나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있다. 자신들의 가족 안으로 유나를 수용하기 위해, 유나의 기존 인연을 끊어 낼 것을 요구하던 엄마와, 새아버지는, 그들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 대신, 사랑과 인연을 가지고 가겠다는 유나의 결심에 마음을 바꾼다. 유나를 자기들처럼 바꾸는 대신, 자신들이 변화한다. 출소자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하고 싶었던 새 아버지는, 그 대상을 유나와 같은 소매치기들로 변경한다. 소매치기 전력이, 전과가, 스펙이 되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기업이 하는 일은, 독거 노인들 등을 위한 도시락 배달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었다 생각하는 전과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굴절된 마음도 펴고, 일도 떳떳하게 하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음이 뒤틀린 그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심리 상담까지 제공한단다. 

유나에게 재벌집 사모님이 된 엄마의 등장과 함께, 그 아버지가 유나와 그 동료들을 위해 벌인 사회적 기업의 이야기에 이르면, 역시나, <유나의 거리>에도 환타지처럼 재벌이 등장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환타지'라고 하면, 애초에, 유나가 살던 거리 그 자체가 환타지다. 현실의 서민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기로 정평이 나있는 김운경 작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세상에 버림받거나(서울의 달), 일확천금의 꿈은 커녕, 겨우 포장마차 하나 장만하여 근근히 먹고 사는(파랑새는 있다) 현실로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2014년 <유나의 거리>의 엔딩은 유독 환상적이다. 작은 아버지에게 도둑으로 몰려 고향을 떠나, 타향을 전전하던 고아 창만은 콜라텍 매니저를 거쳐, 유나 아버지가 하는 사회적 기업의 팀장으로 금의환양한다. 그뿐인가, 그동안 들락날락 <유나의 거리> 속 이야깃거리를 만들던 여러 소매치기를 비롯하여, 이웃집에 반백수이다시피한 일용직 노동자 칠복(김영웅 분), 심지어 미선의 등을 쳐먹던 제비 민규(김민기 분)까지 사회적 기업의 일원이 될 예정이다. 잠시 잠깐 다시 한눈을 팔던 남수(강신효 분)도 우직하게 고물상 일을 이어간다. 
뜨내기 인생들이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간다. 살 길이 모색된다. 강팍했던 김운경작가 히트작들의 주인공들의 삶과 달리, 2014 <유나의 거리>는 환상적인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그때보다도 희망과 기대가 없어진, 우리네 삶이라서 김운경 작가가 억지로라도 드라마에서라도 '해피 바이러스'를 전해주고 싶어 그런거 같아 역설적이다. 50회까지 드라마를 끌고 오면서, 김운경 작가가, 자꾸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고 살라고, 당신이 내민 한번의 손길에,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나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치지 말고, 다같이 조금씩 도우면서 살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더불어 살기를 잊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조곤조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달래는 것 같다. 

다시 한만복과 도끼 형님의 이야기로 돌아와, 노숙자가 될뻔한 도끼 형님을 구한 것은, 그래도 제법 돈푼이나 만지게 된 전직 조폭 나부랭이 한만복이었다. 그 덕분에 요양원에 가기 까지 도끼 형님은 마치 가족들의 품안에서 살듯 노년을 푸근하게 보낼 수 있었다. 
환타지 같은 유나 새 아버지의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의 약간의 추렴(?) 덕분에, 많은 거리를 헤매이던 소매치기와 어려운 사람들이, 더 이상 거리를 방황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결국,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의 아량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계몽드라마' 같은 <유나의 거리> 마지막에 힘주어 말한다. 그렇게 한다고, 한만복의 삶이 그리 크게 축나지 않았다. 유나 아버지 기업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대신, 고아로 자란 한만복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 생겼다. 오랫동안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잠을 못이루던 유나 엄마에게 잠들기 편한 나날이 이어졌다. 이것이 김운경 작가가 생각하는 호혜적 평등 사회다. '복지' 좀 한다고, 좀 사는 사람들 삶이 그리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충만되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진 덕분에 요양원에 간 도끼 노인은 마지막까지 외롭지 않다. 요양원에 가는게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행복한 관계를 위해 서로서로가 조금씩 틈을 내어주자는 것을, 작가는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말한다. 그간 <유나의 거리> 속 모든 문제덩어리들이 행복해지는 가능성을 열어준 드라마,  재미와, 감동과, 교훈까지, <유나의 거리> 덕분에 몇 달이 행복했다. 


by meditator 2014. 11. 12. 11:19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차용한 mbc월화 드라마는 원작의 모티브에 충실하게, 남자 주인공의 '오만'과 여주인고의 '편견'을 설득해 내기에 고심한다. 특히, 지난주 방영되었던 4회와 5회에 걸쳐, 남자 주인공 구동치(최진혁 분)를 유괴되어 살해당한 자신의 동생 살인범으로 몰아간 한열무(백진희 분)의 편견은 정점에 이른다.

 

작가 이현주는 <학교 2013>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자 주인공에게, 천형처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준다. 구동치 역시 마찬가지다. 의대에 너끈히 갈 수 있는 수능 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그는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 아버지가 일하는 폐공장을 찾아든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유괴범과 유괴된 아이였다. 구동치의 찢겨진 수능 성적표 뒤에 씌여진 아이의 ''살려줘'라는 글씨를 보고 구동치는 아이를 구하고자 했고, 하지만, 아이를 안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정신을 잃어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 경험은 의대에 지망하려던 구동치를 검사 구동치가 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구동치의 사연에 아랑곳없이, 단지 구동치의 수능 성적표라는 이유만으로, 여주인공 한열무는 다짜고짜 구동치를 유괴범으로 몰아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해를 하는 단선적 캐릭터의 전형이다. 드라마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유괴범으로 모는 여주인공을 안쓰러워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 남자 주인공의 배려로 어설프게 복수심에 마음만 앞서다, 제대로 검사로 성장하게 되는 여주인공의 성장담을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성장담이라지만, 말끝마다,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와서 제대로 검사가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1차원적 편견에 사로잡힌 여주인공의 단선적 캐릭터는, 생각 외로 흥미진진하게 수사극으로서의 묘미를 가져 가고 있는 <오만과 편견>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더구나, 연달아 드라마에 출연해서 일까,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와 검사 초보라는 캐릭터보다는, 성마른 고등학생에나 어울릴법한 여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은 더더욱 몰입에 방해 요소가 된다.

 

‘오만과편견’ 시청률, 자체 최고 기록 경신 ‘거침없는 상승세’

 

오히려 회를 거듭할 수록, 시선을 끄는 것은, 어설픈 남여주인공의 '오만과 편견' 코스프레보다는, 쉽게 파악하기 힘든 캐릭터 부장검사 문희만과 그가 이끄는 수사팀의 수사극이다.

말끝마다 한열무에게 법학 전문 대학원을 운운하는 그는 딱 속물 부장 검사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미끼가 되어 들어온 범인을 눈빛 한번으로 제압하고 쥐락펴락 하는 순간, <오만과 편견>은 집중력이 배가된다. 어거지같던 구동치의 오만도,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며 그래도 검사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도 어색한 이장원(최우식 분)이나, 유광민(정혜성 분)도 그와 함께 합을 맞추면, 그럴듯한 캐릭터로 살아난다.

선한 사람은 아닌데도, 범인을 잡고, 범죄 수사에 있어서는, 노회하기가 뱀같은 그의 진두 지휘아래, 수사가 시작되면, 늘어졌던 극이 중심을 잡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어거지로 사연많은 검사 남녀의 '오만과 편견' 보다, 문희만의 '수사반장'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 예전 '수사반장'에서의 수사반장 아저씨는 낡은 버버리 코트를 입고 한량없이 사람 좋은 미소와, 그러면서도 범죄 앞에서는 단호한 강직한 선인이었다. 하지만, <수사반장>이 인기를 끌던 시대로 부터 몇 십년이 흐르고, 이제 더는 사람들은, 경찰이나, 검찰에 대해서, 마음씨 좋은 최불암 아저씨를 연상치 않는다. 가장 속물적이면서도, 자신의 일에 철저한, 문희만이야말로, 요즘 세상에, 설득력을 지닌 새로운 수사반장의 캐릭터가 아니까 싶다.

더구나, 뭔가 어거지로 사연을 만들어 가는 듯한 남여 주인공의 사연과 달리, 회를 거듭하면서, 마약 운반책 장공철의 죽음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과, 그 사건들이 매듭처럼 이어져 가며 그려가는 큰 그림은, 어설픈 주인공들의 연기를 차치하고도 <오만과 편견>을 보고싶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이공들의 러브라인보다, 차라리 문희만을 중심으로 한, 2014 수사반장 시리즈로 '오만과 편견'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싶은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1. 11. 11:30

<꽃보다 청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상이 <힐링캠프>에 출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유희열, 윤상, 이적의 <꽃보다 청춘>을 재밌게 봤던 터라, 그리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윤상을 다시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터라, 그의 <힐링 캠프>의 출연분이 기다려 졌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다는 소식이 들린 지 한 계절이 지나고, 유희열, 이적, 윤상이 출연했던 <꽃보다 청춘>이 끝나고, 응답하라 팀의 <꽃보다 청춘>도 끝나고, 새로운 프로그램인 <삼시 세끼>가 중반이 지날 즈음에야, 윤상은 비로소 <힐링 캠프>에 모습을 드러냈다. <꽃보다 청춘>의 열기를 뒤로 하고, 9월 17일에 발매된 그의 새 앨범 '날 위로하려거든'이 피고 지고도 한참 뒤에야 말이다. 그렇다고, 초겨울이 되어서야 찾아온 윤상의 <힐링 캠프>가 새롭게 그를 각인시키는 시간이 되었는가 라면 어쩐지 아쉽다. 어떻게 규정짓기 힘든 윤상이란 뮤지션을, 세상이란 틀 속에 어거지로 우겨넣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꽃보다 청춘> 때도 그랬다. 첫 회가 방영되고 나서, 윤상은 '비호감'의 딱지를 붙이고, 출연의 통과 의례를 톡톡히 치뤘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나영석 피디가, 막판 반전이 가득한 윤상이란 캐릭터를 이해시키기 위한, 깜짝쇼의 서장이었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민폐 캐릭터였던 윤상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세상에 보기 드문 섬세한 감성의 그리고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뮤지션이자, 좋은 아빠가 되기 셀레이고 노력하는 착한 심성의 윤상으로 거듭났었다.

 

그리고 <힐링 캠프>도 시작은 그랬다. 함께 출연했던 이적, 유희열의 '변태'너스레로 시작하여, 자신을 찾아온 팬들에게, '왜 나를 좋아하냐고?'라고 까칠하게 말하는 청춘 스타, 그리고 녹음실에 들어간 가수들에게 면박을 주는 야멸찬 작곡자 윤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힐링 캠프>가 다룬 윤상은, 인간 윤상이기 보다는, 90년대의 스타 윤상이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매회 출연하던, '몰래 카메라'의 단초를 제공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신을 찾아온 게스트 '핑클'에서 왜 나를 좋아하지 않나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스타였었다.

 

(한겨레)

 

스타였지만, 자신이 스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스타, 하지만,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을 느낀, 그리고 자신의 스타성에 '뒤끝'마저 있는 스타로서 말이다. 물론, 90년대를 풍미했던 스타로서의 윤상도 좋다. 하지만, 그 스타였던 윤상을 채웠던 음악이 채워지지 않은 윤상은 공허할 뿐이다.

윤상이 mc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른쪽 우측 위에 자막으로 곡명이 소개되면서, 그의 음악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의 배경에 들러나오는 음악들을 통해, 그의 주옥같은 음악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녹음실에서 이쁜 여가수를 야멸찬 말로 울리고, 당대 청춘의 심볼이었던 남자 가수에게 막말을 했던 에피소드 뒤에 나와야 할 것은, '음악'에 대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성을 추구하는 윤상에 대한 이야기여야 했다. 서른 다섯에 버클리 음대에 유학을 가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 앞에 전제 되어야 할 것은, 서른 다섯이나 먹은, 이미 우리나라 대중 가요계에서 이룰만큼 이룬 뮤지션이 굳이 다시 유학을 가야 하는 이유였었다. <꽃보다 청춘>에서 유희열, 이적이 증언하듯, 그를 불면증의 나날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완벽한 음악에 대한 강박증에 가까운 추구, 그런 뮤지션 윤상에 대한 설명이 없는, 스타 윤상에 대한 복기는, 그저 그런 지나간 스타에 대한 소비에 불과할 뿐이다. 매회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던 스타였던 그가, 그런 당대의 위치를 아낌없이 버리고 유학이란 결정을 내렸던 음악적 계기에 대해서는 그저 스쳐지나간다. '몰래 카메라'의 단초를 제공했던 당대 스타가, 가졌던 연예인으로서의 회의는 한낯 우스개의 대상이 된다.

 

'비호감' 소동을 일으켰으면서도 <꽃보다 청춘>이 좋았던 이유는, 굳이 어떤 틀에 끼워넣지 않은, 아니 끼워 넣을 수 없는, 그저 그런 사람 윤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문제에서 부터 매사에 쉽게 넘어가는 거 없어 함께 여행하기엔 부담스러운 사람, 하지만, 그런 개인적 딜레마를 가지면서도, 아끼는 동생들과의 여행이란 이유만으로 기꺼이 먼 길을 나설 있는 사람 착한 형, 그리고, 서툴었지만,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여, 기꺼이 변화되어 가는 아빠, 그리고 그 모든 것 앞에 전제된 그의 알콜릭조차 설명할 수 만든 뮤지션 윤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힐링 캠프>의 윤상은, 까칠한 90년대 잘 나가던 스타, 그리고 미국 유학을 가서도, 나이 차 많이 아내에게도 여전히 마이 페이스였던 스타를 넘어섰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난감해 하면서도 피력할 때, 그런 그의 생각에 성유리나 김제동은 어쩌면 저럴 수가 하는 식으로 반응을 보인다. 그에 반해, <힐링 캠프>의 '아저씨' 아이콘 이경규는 그런 윤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하면서, 윤상을 그저 자신과 같은 아저씨의 부류에 집어 넣고자 애썼다. 물로 이런 것이 윤상에 대한 쉬운 이해, 혹은 예능적 재미를 위한 것이라지만, 윤상이란 쉽게 정의내리기 힘든 감성의 소유자를 어쩐지 편협한 세상의 틀에 재단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를 시달리게 하던 불면증은 알콜릭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아이들을 위해 이십여년 동안 의지했던 술을 끊은 좋은 아빠 윤상은, 친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아버지를 찾아뵈는 불효자 윤상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 된다.

그의 말 대로,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페이스의 윤상은, 세상 사람들의 편한 잣대로 보기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묘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윤상이 어떤 사람인가에 앞서, <힐링 캠프>가 과연, <꽃보다 청춘>처럼, 윤상이란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 했는가 묻고 싶어 지는 것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윤상의 캐릭터는, 결국 <힐링 캠프>의 딜레마이다. 그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이경규라는 막강한 속물적 캐릭터를 기준으로, 혹은 성유리라는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를 기준으로 재단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스트가 그런 기준에서 요리되기 편한 사람이라면 프로그램은 물 마난 듯이, 활력을 띠는 반면, 윤상처럼, 그런 기준에서 설명하기 난해한 존재라면, 자기 편한대로 재단해서 짧으면 늘리고, 길면 잘라버렸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경규와 소통할 수 있는 90년대 스타이거나, 알콜릭 환자, 그리고 사연있는 아빠 말고는 윤상을 이해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쉬웠던 것은, '윤상이이까 잠시 멈춰서 음미해도 좋다'는 '각종 이펙트로 사운들에 질감을 부여하고, 각 악기들의 소리를 주파수 단위로 조절해 공간감을 쌓아 올리며, 어느 한구석 물샐틈없이 조밀하게 효과음과 리듬 패턴을 채워넣어 구조적을 탄탄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 만족할 때까지 소리를 만지느라' 수면제나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작업한 뮤지션을 이해할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다. (한겨레, 이승한)

by meditator 2014. 11. 11.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