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던(평균 시청률 3.4%) <아이언맨>이 결국 애초에 하기로 했던 20부에서 2회가 줄어든 18회로 조기 종영되었다. 남주인공 주홍빈(이동욱 분)의 등에서 칼이 솟는 기괴한 설정을 시청자들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 기괴함 너머에, 밤하늘을 쏟아질 듯 채운 별과, 섬진강의 아스라함, 그리고, 깍아지를 듯한 빌딩, 기하학적 미감의 극치를 보여준 집과 푸근한 재래시장과 오래된 주택가의 대비, 그리고 그것을 채워가던 동화같은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어렵사리 도달한 두 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세대간의 화해에도 시선을 맞출 수 없었다. 비록 애초에 하고자 했던 20회를 채우지 못했지만, 굳굳하게 <아이언맨>의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에둘러가지 않았다. 마지막 회, 엔딩, 다시 만나 힘껏 포옹하며 하늘로 치솟는 두 주인공들처럼, <아이언맨>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고지순하게 지켜냈다.  왜 굳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칼'을 설정했을까란 의문이 무색하게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어려웠다. 항상 최고만을 요구했던 엄격한 아버지를 피해 가지고 싶은 걸 사랑하는 소녀의 부모님이 하던 문방구에 숨겼지만, 모든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결국 사랑하는 소녀를 빼앗겼다. 가장 사랑하는 걸  빼앗긴 소년은 상실의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그 분노는 소년의 몸에서 자라난 칼이 되었다.

 

그리고 칼이 돋아나기 시작한 소년 앞에, 어린 시절 사랑했던, 그래서 아버지로 인해 잃었던 첫 사랑의 소녀의 냄새를 지닌 또 다른 소녀가 나타난다.

 

 

 

<아이언맨>의 여주인공 손세동(신세경 분)은 마치 '바리데기'와도 같다. 주홍빈의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은 태희(한은정 분)를 찾아가 자신이 세동이로 인해 달라졌음을, 잘못했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한 세동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자신의 외면때문에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처럼 될까봐, 그런 세동이, 창이를 만나고, 창이로 인해 주홍빈을 만나고, 다시 주홍빈으로 인해 주홍주와 주장원을 만나면서, 닫혀있던 이들의 마음에는 생명의 피가 흐르고, 굳었던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세 부자만이 아니다. 생명을 앗아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은 태희와 주장원, 그리고 그로 인해 꽉 막혀버린 태희와 주홍빈의 관계에도 '해원'을 풀 시간이 주어진다.

 

마치 죽은 부모님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숱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생명력을 소생시킨 바리데기처럼, 손세동은, <아이언맨>에서 묵은 해원과, 굳은 관계와, 그 속에서 고사되어져 가던 인간성을 살려내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언맨>에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려냄으로써(?) 자기 자신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받았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 누군가를 보살펴주는 사랑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랑을 찾는다.

 

(아시아 투데이)

 

 

 

<아이언맨>은 진짜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대 최고의 게임 회사의 ceo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무서워 장난감을 숨기고, 장난감을 빼앗겨 분노하던 아이에서 한 치도 성장하지 못한 채 분노를 칼이 되어 뿜어내기만 하는 주홍빈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저버리면서까지 희생하던 손세동은, 역시,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해 지는 어른이 되었다.

 

무조건적인 희생도, 무조건적인 분노도 넘어, 성숙하게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상처받은 아이들의 성장담, <아이언맨>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받은 아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있다. 그저 그가 아는 삶의 해법이라곤, 높은 건물을 올리듯,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쌓는 것만이었던, 그리고 그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시대의 어른,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 아버지로 인해 상처받고, 빼앗긴 그의 자식과 남의 자식들이 있다.

 

 

 

<아이언맨>은 그런 아버지 세대와 '화해'에 대해 고민한다. 자식들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고, 자식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버린 이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아이언맨>의 숨겨진 화두다.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손세동의 아버지를 외면해 빨리 수술을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주장원에게 손세동이 요구한 것은 '사과'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시인과,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진심어린 사과.

 

주장원은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그저 자기 잘 살겠다고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일인줄 몰랐다고,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누군가도 자신처럼 자식을 가진 부모라는 걸 염두에 두겠다고.

 

그리고 손세동에게 배운대로, 주장원은 죽어가는 태희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노골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세동의 아버지는 죽었고, 태희 역시 주장원의 속내를 헤아린 윤여사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버린,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 '세치 혀' 주장원의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작가는 감옥 한번 다녀오고, 절에 한번 다녀오고 나서, 사죄를 했네라며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벌'이 '처벌'이 아니요, 어쩌면 '처벌' 보다는, 진심어린 '사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마지막회 어린 시절 주홍빈이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중하게 숨겨놓았던 딱지가 알고보니 아버지가 곱셈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홍빈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것이라는 걸 밝혀진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임에도,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야 했던 아이러니한 사랑의 상징이라니! 그 '불화'의 상징이었던 딱지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 아버지와, 분노를 거두고, 누군가를 책임질 어른이 된 아들의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물론 주장원이 그리도 바라던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가 이룬 부는 그의 두번 째 아내의 수중으로 사라졌고, 윤여사가 바라던 주홍빈의 집도 얻어지지 못했다. 텅빈 방에 홀로 서있는 주장원과, 홀로이 떠나는 윤여사의 모습으로, 즉 그들이 어쩌면 핏줄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을 상실케 함으로써, <아이언맨>의 단죄는 마무리된다.

 

 

 

'바리데기' 같은 여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고도 성장' 시대의 아버지와, '분노'의 시대를 살아온 아들이 다시 손을 맞잡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같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도, 어렵사리 도달한 세대간 화해도, 주인공의 등에서 돋아난 기괴한 칼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니, 여전히 '고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와, '분노'를 성숙하게 다스릴 줄 모르는 아들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진심어린 사과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사랑은 정말 동화 속 이야기같기만 했기 때문이라는게, 진짜 <아이어맨>이 외면받은 이유가 아닐까?

 

 

by meditator 2014. 11. 14.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