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드라마 콘텐츠 지수(cj와 닐슨 코리아 공동 조사에서 케이블 드라마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미생>이 화제 속에 종영했다. 19,20회에 가면서 원작과의 괴리, 필요 이상의 캐릭터 구현으로 아쉬운 점을 남기긴 했지만, 고달픈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에서 길어낸 위로를 보낸 모처럼 따스한 드라마 한 편이었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미생>을 2014년 후반기 대표작으로 만든 곳엔, 김원석이란 pd가 있다. 작품 앞에, 누구의 작품인가가 들어가는 스타 pd의 시대이다. 특히, tvn의 적극적 후원 아래, 이적한 신원호, 나영석 등이, 각각, '응답하라' 시리즈와,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장인'으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생>을 통해, 김원석이란 이름 또한 그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이미, 2010년, <성균관 스캔들>이란 청춘 신드롬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바로 김원석이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잘금(지나가기만 해도 여자들이 맥을 못출 정도로 잘 생긴 꽃미남)4인방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원석은 예상과 달리 이 작품 이후  kbs를 퇴사하고 cj계열로 들어간다. 하지만, 김원석의 길이 바로 탄탄대로로 열린 것은 아니다. 아직 tvn이 채 정비되지 않고, m.net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cj미디어에서, <성균관 스캔들>과 같은 작품을 기대했던 그가 만든 후속작이래봐야, 슈스케 참가자들을 데리고 만든, 슈스케 뮤직 드라마 정도였다. 비록 이제는 스타가 된 김예림, 버스커 버스커, 그리고 고인이 된 울라라 세션의 임윤택 등이 함께 했던 드라마는 <슈퍼스타 시즌3>의 막간극으로 잠시 등장했지만, 여전히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김윤석 감독의 정서가 잘 반영된 뮤직 드라마였다. 

슈퍼스타k 특집극이나 만들던 김원석 감독이, 드디어 2013년 5월 그의 작품을 들고 등장했다. 바로 tvn과 m.net을 통해 동시에 방영되었던 <몬스타>가 그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김원석 감독은, <미생>에서도 함께 할 정윤정 작가를 만나게 된다. 정윤정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만족감이 컸'으며, 케이블로서는 시청률도 잘 나왔다' 자부심과 달리, 제2의 박유천이 될 것인가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남자 주인공 역의 비스트의 용준형은 결국 부족한 연기력의 벽을 넘지 못했고, 음악을 통해 청춘을 논하고자 했던 드라마는 어설픈 시도로 평가 받게 되었다. 

<성균관 스캔들>, <몬스타> 그리고 <미생>까지, 비록 뒤의 두 작품과 <성균관 스캔들>은 작가는 달랐지만, 거기에 구현되 '청춘'의 정신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을 김원석 월드의 주제의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한. <미생>이 다음 시즌을 기약하고 마무리 된 이 시점, 세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는 김원석이 구현하고자 하는 '청춘'의 실체를 찾아보자. 

우선, <성균관 스캔들>, <몬스타>, 그리고 <미생>까지, 주인공들은 당대의 녹슬지 않은 파릇파릇한 청춘들이다.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은 이제 막 새로이 학기가 시작된 성균관의 신례과 선진들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건, 이선준의 아버지 '노론'으로 대표되는 기성권력이요, 그들에 합류한 성균관 장이와 그 수하들의 대리 권력들이다. 노론이지만, 노론으로서의 특권보다는 그가 책을 통해 채득한 원칙을 깐깐히 지키고자 하는 이선준과, 정권에서 소외당한 남인, 서인, 그리고 반쪽 자리 양반인 김윤희, 문재신, 구용하의 우정과 반항이, 정조의 개혁 정책과 맞물려 역사 속 이야기 이상의 불의한 시대에 맞선 청춘상을 구현해 낸다. 

<성균관 스캔들>이 노론의 시대에 맞선 청춘들이라면, <몬스타>에서 청춘을 가로막는 것은, 기성 교육 제도이다. 성적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교육 체계, 공부만을 강요하는 학교, 집안과 성적에 따라 베풀어 지는 특혜, 이런 기성 교육 제도에 대해, 아이돌 출신의 윤설찬(용준형 분), 뉴질랜드에서 양치다 온 4차원 소녀 민세이(하연수 분) 등이 자신들만의 무기인, '음악'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렇게, 역사 속, 그리고 교육 제도 속 기득권은, 이제 <미생>으로 오면, 대기업으로 대변되는, 우리 시대의 조직화된 경쟁 사회가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한다. 자격증과 학력이 조선시대의 '노론'처럼 보증서가 되는 세계에서, 그 무엇도 가지지 못했던 남장 여자 남인 출신의 김윤희처럼, 대학조차도 나오지 못하고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장그래가 대기업 원인터내셔널에 던져진다. 그리고, 역시나 잘금 4인방처럼, 그의 곁엔, 때론 그의 적이 되고, 동지가 되고, 결국엔 우정이 될, 안영이(강소라 분), 장백기(강하늘 분), 한석률(변요한 분)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지닌 듯하지만, 때론 문재신같이, 때론 이선준같이, 그리고 때론 구용하처럼, 각자 자신의 사연을 가지고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장그래와 우정을 엮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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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김원석 월드를 통해 구현된, 정조 시대, 기성 교육 제도, 그리고 이제 대기업 중심의 조직 사회에 던져진 청춘들의 이야기는, 결국, 그것이 역사 속 사실이든, 현실에서 길어진 사연이든, 당대 청춘들의 고민과 열정을 대변함으로써 그것을 시청하는 '청춘'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다. 특히나, <미생>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 같다'는 소감을 잊지 않는다. <몬스타>의 경우, 시대적 공감을 얻기에 시기를 놓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유지하고 있는 문제 의식에서는 큰 궤리가 없다. 심지어, <성균관 스캔들>의 경우, 그것이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케이블에서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고, 드라마 속 대사가, 곧, 내 청춘의 고민의 그것으로 대변될 만큼, 타협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내 이야기가 될 드라마가 되었다. 

그렇게 청춘들의 이야기를 대변한 드라마였기에,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곧 청춘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이, 드라마상 주인공들로는 전무후무하게, 이제는 모두 당대의 대표적인 스타로 성장하게 되었듯이, 상대적으로 화제에 못미친 <몬스타>조차도 하연수라는 신성을 배출하고, <미생>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장그래 역의 임시완을 비롯하여, 주인공 4인방 모두가 주목받는 미래의 재목이 되었다. 

하지만 김원석이 만든 드라마에는 '청춘'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의 드라마에는, 그 당시 청춘들이 공감할 '멘토'상이 등장한다. 어쩌면, 진짜 김원석 표 드라마의 매력은, 열망하는 청춘이라기 보다는, 그런 청춘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하는 그 시대에 어울리는 '멘토'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그런 역할을 정약용 역의 안내상과, 정조 역의 조성하가 해내었다. 안내상이 갈등하면서도 김윤희를 보담고,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는 스승의 역할을 해내었다면, 정조는 불의한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정치적 스승으로 본보기가 되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멘토'였던 안내상은 이어 <몬스타>에서도 한때 인기 작곡가였지만 이제는 실의에 빠진 과거의 스타로 등장,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표현하고했던 '몬스타'들의 '멘토'로 등장한다. 그리고 <미생>에서는 심지어 주된 '러브라인'이라 칭해지는 오차장 이성민이 장그래 뿐만 아니라, 자기 보신에 급급한 이 시대에, '사람'을 책임지는 제대로 된 어른의 대명사가 된다. 
이런 멋진 멘토들의 존재 덕분에, 사람들은, 청춘들의 고민에 동조하면서, 멘토들이 제시하는 길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어 더욱 드라마에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김원석 드라마에는 멋진 주인공들과, 그들을 꿈으로 인도하는 멘토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주변에서 드라마를 풍성하게 이끌어 주는, 화려한 조연진의 군단이 존재한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잘금 4인방에 대적할 장이 하인수(전태수 분)와 그 수하들은 물론, 노론의 거두 이정무(김갑수 분)를 비롯한 쟁쟁한 권신들의 배후 역시 만만치 않았다. 또한 젊음이 넘치는 대학가를 연상케 하는 성균관의 다양한 캐릭터 들 또한 이 드라마의 빠질 수 없는 묘미였다. 
<몬스타>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윤설찬, 하연수만이 아니라, 정선우(강하늘 분), 심은하(김은영 분), 차도남(박규선 분), 박규동(강의식 분) 등의 몬스타 멤버들이 보인 열연이 더 화려했다. 심지어 <몬스타>를 통해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박규동 역의 강의식의 애절한 노래요, 차도남의 랩이었다. 
<미생>에 이르면 말하기가 입이 아플 정도이다. 영업 3팀은 물론, 실제 보다도 더 실제같은 대리 군단이라고 칭해질 원인터내셔널 각 부서의 대리들이, 젊은 신입 사원들과 치고 받으며, 드라마의 재미를 만들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대리군단 뿐인가, 과장, 부장, 간부사원까지, 너무도 실감나는 인물 하나하나가 만들어가는 '미생'의 이야기에, 드라마가 대변하는 현실의 이야기는 깊어져 갔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합주로 오캐스트레이션되는 김원석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는, 묘하게도 '브로맨스'이다. 
물론, 그의 드라마에 '멜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중심 줄거리 중 하나는 이선준과 남장 여자 김윤희의 사랑이요, <몬스타> 역시 하연수를 둘러싼 윤설찬과 정선우의 삼각 관계가 주된 이야기였다. <미생>도 주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원작에 비해 여성적 캐릭터로 등장한 안영이와 장백기, 그리고 장그래와 유치원 선생님의 풋풋한 로맨스가 양념처럼 등장한다. 
<성균관 스캔들>부터, 이미 다른 드라마들이 그런 시도를 하기 전에 김원석 감독은, 이른바 '남남 캐미'에 주목한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심지어 이선준과 김윤희의 로맨스의 미혹된 지점은, 김윤희가 남자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끌리는 이선준의 갈등에 있다. 또한, 연말 시상식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받을 정도였던, 구용하와 문재신의 캐미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다. 
<몬스타> 역시, 이런 브로맨스를 빼놓지 않았다. 윤설찬과 정선우, 그리고 차도남과 박규동의, 친구인듯, 친구 이상인듯 사연있는 우정은, 실제 여주인공 하연수와의 멜로 라인보다 더 애절하게 드라마를 이끌었다. 
<미생>은 심지어, 19회에 이르면 최전무가 장그래의 정규직을 놓고 오차장과 딜을 할 만큼, 장그래는 극중 여주인공이 해야 할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오차장은, 그저 후배 부하 직원을 아끼는 수준을 넘어서 장그래의 정규직에 자신의 직장 생활을 걸고 딜을 할 만큼, <미생>의 오차장과 장그래는, 명목상은 멘토와 멘티지만, 실제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은, 멜로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하는 역할을 맡게 한다. 어디 오차장 뿐인가. 원작과 달리, 한석률 역시 일관되게 장그래에 엉겨붙는 일편단심 캐릭터로 설정한다. 장백기와 강대리의 미묘한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Mnet·tvN ‘몬스타’ 포스터

'브로맨스'가 등장하기 전에 '브로맨스'에 주목하고, '멘토' 열풍이 불기도 전에 '멘토'에 주목하였으며, 다른 드라마들이 환타지적 사랑 놀음에 매달릴 때 '현실'의 이야기를 불어오며, 김원석 표 드라마들은, 당대의 대표작들이 되었다. 
그러나, 늘 그의 드라마들에 장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원작이 없었던 <몬스타>가 시대를 늦게 타고 났다는 평가를 받듯이, 원작이 없는 김원석표 드라마는 상상하기 힘들다. <성균관 스캔들> 역시 정조 사후의 살벌한 노론 치하의 세도 정치로 들어선 것과 달리, 드라마는 알콩달콩한 이선준과 김윤희의 결혼 생활과 환타지 같은 구용하와 문재신의 후기로 역사에 천착했던 애청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미생>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원작을 비껴간 순간, 언제나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 '현실'의 정신에서 미끄러져 갔다. 심지어, 오차장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사건에서의 장그래의 역할의 민폐적 설정,  그리고 20회 장황한 요르담 로케를 하면서까지 강조한 오차장과 장그래의 '완생'담은, 위로는 커녕, 지금까지 무엇을 보았나 싶은 헛헛한 회의까지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과연, 지금까지 김원석이 구현한, <성균관 스캔들>과 <미생>의 젊은 군상들의 이야기가, 원작빨인지, 드라마빨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것이 김원석 월드의 남겨진 과제이리라. 

사족; 언제나 좋은 드라마에, 좋은 음악이 빠질 수 없듯이, 김원석 표 드라마에 좋은 음악들 역시 놓칠 수 없는 약방의 감초다. <성균관 스캔들> 당시 방송을 통해서는 만날 수 없었던 이선준 역의 박유천이 있는 그룹 jyj의 절창이 빼어났던 '찾았다'를 비롯하여, 아직도 각종 프로그램의 시그널로 등장하는 ost들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몬스타> 역시 허술한 스토리와 달리, 그 스토리를 메꾸어 주던, 마치 '응답하라'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그 시절의 음악들이, <몬스타>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생>에 이승열의 '날아'와, 장미여관의 '로망', 볼빨간 사춘기의 '가리워진 길'이 없었다면, 그 정서가 제대로 살아났을 리 없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2. 21. 17:15

어린 시절 집에서 뒹굴던 노란 테두리의 책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어떤 그림 책도 보여주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황홀한 자연, 그리고 그 곳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간들의 희노애락, 그것들이 가감없는 직설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사진의 세계, 내셔널 지오그라픽이었다. 이제 그 노란 테두리의 책은, 당당히 한 케이블 채널을 차지하고, 전 세계 곳곳의 현실감넘치는 풍경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하지만, 정작, 다른 나라의 풍광과 사람사는 모습에 빠져들면서, 우리의 모습을 거기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찌기, 다양한 자연 다큐멘타리의 독보적 성취를 보이고 있는, kbs가 비로소, 한반도의 '지오그래픽'을 만들어 내었다. 10월2일부터 12월18일까지 거의 두 달간 매주 목요일 방영되었던 <코리안 지오그래픽>이 그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코리안 지오그래픽>도,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한 종, 특정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환경, 문화, 지리적 가치를 지닌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 인문, 생태적 비밀을 풀어'가고자 한다. 


12월 18일 마지막으로 방영된 <코리안 지오그래픽>은 남해의 죽방렴을 다룬다. 다큐가 시작되고, 바다를 잇닿은 남해의 풍경이 비추어 진다. 누런 밭을 가는 농부의 바쁜 일손, 그 옆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오란 유채꽃, 그렇게 화면은, 흥건한 색감으로 봄을 알린다. 죽방렴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바다로 옮겨진 카메라의 시선, 육지와 그리고 섬이 즐비어 늘어져 있는 사이, 좁은 바다, 지족해협, 그곳에, 5백년의 전통을 가진, 바다의 문전옥답 죽방렴이 있다. 멸치를 유인하는 기다란 나무 울타리, 그 끝에 그들을 가두는 둥그런 나무 그물. 죽방렴의 봄은, 한 해를 넘겨 낡아진 나무 그물, 죽방렴을 수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말이 수선이지, 얕게는 몇 십센티, 깊게는 1,2미터에 박혀있는 참나무 기둥을 하나 빼고 박는 일은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참나무를 베고, 다듬고, 바다에 담구어 1년을 보내고, 다시 힘을 합쳐 겨우 기둥 하나를 세울 수 있는 수고가 필요한 공사다. 어디 기둥만이랴, 멸치를 가두는 대나무 그물은 또 어떻고, 그물을 꼼꼼하게 박는 어부는 말한다. 대나무 그물에 긁힌 손때문에 악수하기가 부끄럽다고. 그렇게, 그저 바다에 박혀 놓고, 멸치를 거저 얻는 것처럼 보이는 죽방렴 속에 스며들어 있는 어부의 땀을 카메라는 태풍을 거쳐 멸치 농사가 끝나는 계절까지 꼼꼼하게 지켜본다.  어디 시간의 길이 뿐이랴, 물때를 맞춰, 새벽이고, 밤이고를 가릴 것없이, 노년의 부부가 잠을 설치며 멸치를 수확하는 그 시간의 깊이도 놓치지 않는다. 하릴없이 태풍이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자연에 순응하며 늙어가는 노년과, 달관의 중년, 그리고 3대의 자부심을 느끼는 아들의 얼굴은 이미 죽방렴의 일부인 듯하다. 
하지만, 죽방렴이란 자연 속에 드리워진 그물 속에는 인간의 삶만이 무르익어 가지는 않는다. 그 속에서 포획되는 멸치의 삶도 놓치지 않는다. 치어에서 부터 시작된 멸치의 화려한 군무와, 인간 못지 않게 그들을 사냥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갈치, 우럭들의 현란한 사냥기도 소리없는 전쟁이 되어 등장한다. 어디 그뿐인가, 죽방렴에 깃들여 사는 건 인간뿐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죽방렴이지만, 이제는 자연의 일부가 된 죽방렴에, 수달과, 바다새는, 알속만 빼어가는 단골 무전취식자이다.

이렇게 10부 죽방렴에서 보여지듯이, <코리안 지오그래픽>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한반도를 이룬 그 누구 하나의 관점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죽방렴 아래에 멸치의 세계가, 그리고 거기에 깃들여 사는 또 다른 생물의 삶들을 '죽방렴'이란 대상 아래 모여든 '공존'의 세계로 바라보고자 한다. 그렇게 금강도, 제주 앞바다도, 동강도, dmz도, 백령도도, 지리산도, 대관령도 담는다. 굳이 강변하지 않아도, 우리가 사는 한반도가, 그저 인간의 것만이 아님을, <코리안 지오그래픽>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 절절하게 '공감'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큐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죽방렴의 멸치를 알리기 위해, 멸치 농사 한 철을 고스란히 담듯이, 생명공동체로서의 다랑논 1년이, 폭설로 대변되는 이면의 아름다운 대관령의 사계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내성천의 1년이, 장산곳매와 괭이 갈매기 가족의 역사가 담긴 시간들이 기록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어쩌면 몇 년 후면 그저 기록으로 남을 지도 모를, 인간의 이기심으로 사라져가는 내성천의 모래나, 멸종 위기에 처한 금강의 꾸구리, 감돌고기, 퉁사리처럼, 한반도의 토종들을 담기 위해 고심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dmz이나 백령도 nll, 오름 아래 동굴 들은, 천혜의 자연을 신비롭게 보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척박한 돌 투성이 산간 벽지에 물을 가두어 쌀을 품게 만든 다랑논을 찍은, 피디는 다랑논의 구불구불한 모양과, 그곳을 일군 농부의 주름이 유사함을 말한다.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숨비소리' 역시 어느 덧 제주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폭설을 견디며 살아가는 대관령의 사람과 동물들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다. 멸치를 기다리고 거두다 한 평생 늙은 어부는 그저 삶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연에서 멀리 떨어진 듯 살아가는 '문명(?)'의 시청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코리안 지오그래픽>은 일깨워 준다. 


by meditator 2014. 12. 19. 11:21

윤지숙 법무부 장관(최명길 분)이 커피에 프림을 탄다. 탁해지는 커피, 그리고 그렇게 탁해지는 커피를 빗대 공안판사를 하던 이태준(조재현 분)이 검찰총장이 되면, 검찰의 물이 흐려질 것이라 자신의 반대 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그런 법무장관의 반대에, 이태준은 설탕을 한 숟가락 퍼서 그걸 라이타로 달군다. 검게 변한 설탕, 그걸 먹으며 '아이고 달다'며, 검으나, 희나 설탕이기는 마찬가지라 당당하게 주장한다. 검찰총장의 자격에 '공안 검사' 출신이 무슨 문제냐 는 것이다. 이렇게, <힐러>의 주인공 검찰총장 내정자가 된 이태준은 검은 설탕으로 비유된 자신의 삶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펀치 김래원 조재현

텐아시아


아니 오히려, 당당하다. 자동차 회사 오너인 그의 형이 경비를 착복하기 위해 불량 부품을 써서 급발진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검찰에 소환당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걸 자신의 심복인 박정환(김래원 분)에게 뒤집어 씌우려 할때 그를 수몰당한 자기 부모 무덤이 있는 강가로 부른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 이장하라고 준 정부의 보조금으로 자신과 형이 대학 등록금을 냈었다며 과거를 회고한다. 그렇게 부모를 물에 잠기게 하고 달려온 자신의 길이, 결국 이렇게 멈추게 되었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입지전적 자수성가의 이태준,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제 검찰 총장을 바라본다.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상대 후보자 아들의 뒤를 캐는 정도는 약과이고,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날 온갖 잡음들, 이제 그것조차 불리해 지자, 도마뱀 꼬리 자르듯 왼팔 격인 박정환에게 떠밀고 검찰총장으로 금의환양하고자 한다. '법'의 수장으로 가기위해, 그가 택한 수단들은 지극히 '탈법'적이지만, 어렵게 자수성가 해온 그에게, 검찰총장도 하고, 법무부 장관까지 하고 싶었던 그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태준 정도의 거물은 아니지만, 자신의 성공 때문에 '비리'를 눈감은 '법조인'은 또 한 사람있다.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최민수 분), 그의 부하 직원인 구동치(최진혁 분), 한열무(백진희 분), 강수(이태환 분)의 뒤얽힌 인연은 결국 문희만이 저지른 교통사고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재건 그룹을 잡기 위해, 자신이 저질렀던 교통사고를 덮었던 그, 하지만, 구동치에게 그가 밝힌 진실은, 재건 그룹을 잡으려고 했던, 그래서 뺑소니를 쳤던 자신이, 재건 그룹을 무너뜨리려 했던 화영 그룹의 '장기판의 말'같은 존재였다고 토로한다. 그가 저지른 '뺑소니' 사건은 재건 그룹 붕괴 커넥션의 일부였던 셈. 하지만 문희만은 살아남기 위해, 그런 '비리'를 눈감는다. 그리고 이제, 후배 검사에게 말한다. '진짜 센 놈을 잡기 위해선, 다른 힘센 놈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이곳의 역사'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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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이렇게, <펀치>의 이태준과,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이 법조계 비리에 일조하고 있는 가운데, <힐러>의 악의 축으로 등장한 김문식(김문식 분)은 메이저 언론 제일신문의 회장이다.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사람 목숨쯤이야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그 역시 한때는 해적 방송의 일원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권력의 시녀로써, 아니 적극적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일원이 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펀치> 이태준 역의 조재현, <힐러> 김문식 역의 박상원, 그리고 <오만과 편견> 문희만 역의 최민수는, 당대 내노라하던 청춘의 꿈과 열정을 연기하던 청춘 연기자들이었다. 조재현이란 이름을 처음 알린 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의 선장에 반항하던 젊은 어부였다. 박상원과 최민수, 그들은 더 거들 것도 없이, 80년대를 상징하는 드라마, <모래 시계>의 두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중후한 나이가 되어, 아버지 세대의 역할을 한다. 그들이 연기하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때를 묻혀간다. 모래 시계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 검사는 이제,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권력을 뒷배로 삼아 세상을 주무르려는 언론사 회장이 되었다. 박상원이 연기했던 모래 시계 원 주인공의 모델이었다던 홍준표 검사가, 이제, 젊은이들 앞에서 비웃음을 사는 기성 세대가 되었듯이. 그리고 그 과정은, 부모님의 이장비로 등록금을 내던 이태준이, 비리 기업을 법의 심판대로 세우고자 예각을 세웠던 문희만이, 해적 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자 애썼던 김문식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나아가 권력에 편승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런 자신의 삶을, 검으나 희나 설탕이라 합리화하거나, 더 큰 세력의 농간에 휩쓸리는 것이 역사라 자조한다. 심지어,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거나. 

한경 와우스타

그들이 편승한 권력의 수단이 주목할 만 하다. 법과 언론,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혀주어야 하는 잣대와 등대들이, 스스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권력과 한 배를 탄다. 그리고, 야망을 위해, '법'과 '권력'을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 '권력'이 되고자 하는 기성 세대가 된, 한때는 소나무같은 젊은이였던 이들이 월화 드라마의 악의 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우리 시대, '권력'이 된 한때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의 야망의 수단이 된, 이제 그저 '권력'의 한 편인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애꿏은 모자의 운명을 가르고, 7000여 노동자의 목숨줄 정도는 즈려 밟고, 그런 진실들이 은폐되게 만드는 '법'과 '언론'의 수호자가 된다. 그래서, <펀치>, <힐러>, <오만과 편견>에서 처럼, 이 시대의 법과 언론은, '정의'와 '진실'의 수호자대신, 권력의 시녀, 정권의 나팔수 역을 자임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기꺼이 맡은, 야망의 세대는, 추한 기성세대가 되어, 다시 한때 그처럼 열정에 불타오르는 젊은이들과 일전을 앞두고 있다.


by meditator 2014. 12. 16. 14:57

사람들이 스스로를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자살', 거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불황이 깊어가면서, 두드러진 이유로 등장하는 것이 '경제적 이유'이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은행에서 빌린 대출 이자 기일에 쫓겨, 사금융에 기대게 되고,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화에 견디다 못해, 개인의 물적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갈 때' 종종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고자 한다.
하지만, <다큐 프라임> 2부작 '삶과 죽음의 그래프'는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던 선입관을 완전 뒤집어 버린다. 그리스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일본의 시기별 각종 자살율 지표와 자살 대책 등을 제시하며, 한 국가의 정책이, 개인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강변한다. 굳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예로 들지 않아도, 2부작 다큐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뚜렷해 진다. 


'이코노사이드(econocide)' 경제와 자살이란 단어를 합친 이 말은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것을 의미한다. 1928년 대공황기, 고급 호텔 투숙객에서 프론트는 '머무실 겁니까, 뛰어내리실 겁니까?'라고 질문하곤 했다고 한다. 대공황으로 몰락한 금융인들이 많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고, 그런 상황에서 '이코노사이드'란 단어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대공황기의 금융인들이란 특정 직업의 사람들이 아니라, 중산층 전체의 위기로, '이코노사이드'가 다가왔다. 

1부, '이코노사이드'를 설명하기 위해 다큐는 경제 위기를 겪는 그리스로 촛점을 맞춘다. 2012년 평생 약사로 살던 한 노인이 그리스 헌법이 발효되었던 산카그마 광장 나무 아래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 '평범하게 살아온 삶이 모욕을 당했다. 내 존엄을 위해 쓰레기 통을 뒤질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그날 저녁,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유언을 부르짖으며 광장에 모여 시위를 했다. 


그리스는 풍부한 자원, 따뜻한 날씨에, 후한 직업 연금제도, 실업 수당, 실업지원제도, 공공 의료까지 든든한 사회 안전망, 거기에 그리스 정교에서의 자살을 금기시하는 전통에 힘입어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자살율을 자랑하던 국가였다. 심지어 1인당 3만불의 국민 소득에 세계 30대 부자국에 드는 '살찐 소'같은 세계 1위 해양대국이자, 관광 대국이었다.

 

하지만, 경제 위기를 겪으며 정부는 좋은 나라가 갖추어야 할 모든 예산을 삭감했다. 긴축 정책을 실시하며 각종 연금과 정부에서 주는 수당을 삭감하거나 없앴다. 그래서 국립 병원은 폐업을 하고, 사람들은 일을 잃고 아픈 몸도 치료 받을 수 없어, 무료 진료소를 전전하게 되고, 결국 노인처럼 자신의 삶이 모욕을 당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율이 급증하게 된다. 

2011, 12년의 그리스 자살율을 분석한 학자는 정부가 지출은 1% 감소할 때마다, 자살율은 0.43% 증가한다는 통계적 결과를 내놓는다. 경기 침체가 오면 정치인들은 손쉽게 그 위기를 에산 삭감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그런 예산 삭감은 알코올 중독과 자살, 전염병을 증가시킨다. 즉, 위기를 예산 삭감으로 해결하면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큐는 이런 학자들의 결론에 힘을 싣기 위해, 똑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국가로 시선을 돌린다. 바로 아이슬란드이다. 

2차 대전 이후 경제 기적을 일으켜, 지난 3,40년간 부국으로 살아왔던 아이슬란드 역시 금융 규제를 풀어 외국 투자자를 유치하다 거품이 꺼지면서, 세계 5위의 부자 나라에서 일인당 5억의 부채를 가진 국제 채무국이 되었다. 

그런 아이슬란드에게 imf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재정 지출 삭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오히려복지 예산을 늘렸다. 불과 몇 년 사이에 4배나 늘어난 실업자를 위해 실업 문제에 집중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늘려 실업자 중 과반수가 이 프로금의 혜택을 얻도록 하였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벌였다. 불황이 계속 되는 가운데 일자리를 쉽게 얻지 못하는 실업자들을 위해 실업 수당 수급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렸다. 빚에 허덕이는 가구와 기업들을 위해 7000여 가구의 부채와 유망 중소기업의 부채를 탕감했다. 건강 보험 예산을 늘리고, 집세, 양육비, 실업 수당의 보조를 늘렸다. 고소득층에 세금을 인상하고, 파산한 저소득층의 세금을 내렸다. 

그리스와 정반대의 정책을 실시한 아이슬란드가 선택한 결과는 경이롭다. 그런 정부의 정책 이후, 불평등 지수가 감소하며, 자살율은 증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정부의 정책이 견인차가 되어 , 아이슬란드는 2013년 2.8%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었다. 경제 위기 이후 6년이 지나도 여전히 거리엔 자신들에게 살 길을 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는 그리스와 대조적인 결과이다. 
이런 아이슬란의 성취는 lmf의 결정마저 변화시켰다. imf의 보고서는 성장에만 집중하는 건, 불균형을 증가시키며,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성장마저 지속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한 사회가 평등할 수록 장기간에 걸쳐 성장 가능하며, 적당한 재분배는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2부는 '미끄럼틀  사회를 구하라'에서는 일본을 다룬다. 2부의 대상 국가가 일본이 된 것은, 그저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과 우리 나라의 상황이, 미끄럼틀 사회로서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반면교사'로서 일본의 사례를 든 것이다. 

장기 불황을 겪는 사회에서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받쳐 주는 것은 '사회 안전망'이다.  고용, 사회 보험, 공적 부조로 대표되는 이들 사회 안정망이, 경기 침체 속에서 비정규직, 자영업자, 무직자의 고통을 덜어준다. 고용이 안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은 쉽게, 정규 사회에서, 낙오자로 '미끄럼틀'을 타게 된다. 그리고, 다중적 채무자, 즉, 실직을 하거나, 사업이 망하고, 은행 대출마저 갚지 못해, 고금리 대부업체를 이용하다, 다중 채무를 지게 되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과, 우리나라는 같은 유형의 '미끄럼틀 사회'이다. 대기업 직원도 미래가 걱정되고, 노동 인력 시장은 파리를 날리며, 상가들은 문을 닫고, 노숙인이 늘어나는 일본의 현상은 낯설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실정은 '이코노사이드'를 양산한다. 

97,8년 '금융 위기의 시기' 대형 금융사가 파산하고, 그 여파가 사회 전반에 불어 닥쳤을 때, 일본 사회의 자살율은 34%나 증가했다. 2003년 취직, 고용이 최악인 시기, 역시나 자살율은 급증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자살이 단지 일개인의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장년층의 자살이 타 연령층 보다 는 것도 역시나 경제적 이유가 큰 탓이다. 실업률과 자살율 역시 정비례의 상관 관계를 보인다. 

후지산 북서쪽 '나무의 바다'라 불리우는 천혜의 비경이 남아있는 숲, 하지만 한 해 평균 100여 명의 자살자들이 빈번하게 발견되는 '죽음의 숲'이기도 하다. 이 숲 곳곳에는 '돈때문에 죽지 마세요. 우리도 그랬습니다. 빚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씌인, 전국 신용카드, 빛 피해자 협의회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20년간 불황, 그리고 아베노믹스가 남긴 잔해의 흔적이다. 

일본은 2007년 늘어나는 자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1차 자살 예방 대책을 국가 차원에서 모색했다. 그 당시에는 정신적 이유와,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자살자 전반에 대한 각종 대책을 마련했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2차 자살 예방 대책이 마련되면서, '자살에 떠밀리지 않는 사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제적 이유의 자살을 구제하는데 집중했다. 자살 유형을 분석하여,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한 것이다. 경제적 궁핍, 사업 부진, 실업, 채무 등은 우울증을 낳고, 하지만, 이런 원인으로 발생한 우울증에, 병원 의사만으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이유를 해결하여, 정신적 이유로 인한 자살까지 해결하겠다는 거시적인 정책을 수립한 것이다. 

실제 '시장이 '비상상태'를 선포할 정도로 높은 자살율을 보였던 구리하라시는 시가 앞장서, '구리하라시 희망론'을 만들어 기존 은행보다 더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직장을 아선해주는 등 정책을 펼치면서, 자살율이 반이나 줄어, 전국 평균율보다 적은 수의 자살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구리하라 시처럼, 경제에 집중한 자살 구제 정책을 펴면서, 일본 사회 전반의 자살율이 낮아졌다. 즉, 경제 위기가 와도, 국가가 대책만 잘 마련한다면,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사람들을 구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2부 '미끄럼틀 사회'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에서 이탈되는 '미끄럼틀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수평 안정망'이다, 법률 상담의 문턱을 낮추고, 저금리 대출이 마련되며, 구직 상담과 대책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며, 생활 보호가 이루어지는, 정부, 법률 기과, 은행, 병원, 사회 단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미끄럼틀 사회 방지책'이다. 

이렇게 2차 자살 예방 대책을 통해 경제적 자살에 집중하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일본보다 낮은 자살율을 보이던 한국이, 이제 역전,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1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 자살 충동 1위의 원인이 '돈'인 사회가 되었다. 바로 지금 한국의 현실이, 2부작, 이코노사이드와, 미끄럼틀 사회, 즉 그리스와 아이슬란드의 전혀 다른 선택과, 일본의 국가적 자살 예방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삶과 죽음의 그래프'는 경제적 호황과 불황이라는 객관적 상황을 핑계 댈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4. 12. 15. 14:14

신해철이 떠나간 자리, 그 거대한 구멍을 과연 누가 메꿀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첫 회만 녹화하고, 신해철을 떠나 보낸 <속사정 쌀롱>의 숨겨진 과제였다. 이제는 트렌디한 인물이 아닌 논란의 대상이 된 에네스 카야까지 출연시켜, 시치미 뚝 떼고 하는 그의 거짓말의 화려한 언변을 더해보았지만, 첫 회 자신의 경험담까지 내보이며 진정성있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했던 신해철의 진중함을 대신할 사람은 없었다. 

6회, 이런 <속사정 쌀롱>의 고민을 해결할 대체재로 찾은 건, 요즘 한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영화 평론가 허지웅과,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여자 mc 모델계의 김구라라 평가받는 이현이였다.
그리고 이들의 등장과 함께, <속사정 쌀롱> 자체도 색깔을 변화시킨다. 

신해철이 함께 했던 첫 회, 그리고 새로운 mc진이 보강되기 전까지만 해도, 진중권의 학문적 설명이 곁들여진 심리 실험이 프로그램의 메인 코너를 차지했다. 진중권이 원고를 보며, 유수 어느 대학 실험진의 이론을 들먹일 때마다. 제 아무리 장동민이 '또 외국 대학이냐고?' 퉁바리를 줘도, 확고한 이론에 밑바탕을 둔 이론은 어김없이 등장하였고, 그런 이론에 밑바탕을 둔 심리 상황 실험, 거기에 곁들인 mc와 게스트들의 토크가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예능'이라기보다는, <비타민>식의  '에듀테인먼트'에 가까웠달까.

`속사정 쌀롱` 이현이, `눈 앞에서 600만원 사기 당해`
이데일리

그러던 첫 시도가, 허지웅, 이현이의 등장으로 변화되었다. 학자적 권위를 내세우며 국내외 유수의 심리 실험을 소개하던 진중권도, 이제는 그저 토크쇼에서 살아남아야 할 예능 mc진의 일원일 뿐이다. 인문학적 지식이 드러나 보이던, 심리토크쇼는, 여전히 '심리'적 상황에 한 발을 담그되, 예능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진중권의 박학한 소개에 곁들인 각종 심리 실험은, 그런 아카데믹한 성격을 벗어던지고, 새로 보강된 mc 이현이를 상대로 한 '비호감 실험'을 하듯, 보다 일상성을 강조한 친숙한 '심리'로 변모되었다. 이전의 <속사정 쌀롱>의 심리학이 학과 과정으로서의 강의를 그대로 전달해낸 듯한 느낌을 주었다면, 이제 변모된 <속사정 쌀롱>의 '심리학'은 숙성된 자기 것이 된'심리학'으로 받아들여진다. 외국 대학 연구진이 이렇게 말했대를 기반으로 한 <비타민>류의 심리실험은, 이현이를 상대로 달라진 상황에서 변화된 mc진의 호감도나, 7회 mc진의 지갑을 정신과 의사가 분석해 주는 토크쇼 안으로 천착된 심리적 상황으로, 보다 mc진의 토크를 강화시킨 것이다. 

덕분에, 제 아무리 장동민이 반발해도, 늘상 진중권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 같았던 mc진의 형태는, 이제, 그날의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라디오 스타>가 연상되는 토크쇼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미 <마녀 사냥>을 통해 단련되어, 이제는 논객이라기 보다는, 예능 mc로서 적응된 허지웅의 존재는 적절한 선택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제는 가르치는 선생과 말 안듣는 학생 같았던 장동민은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막연한 심리는 '자기 합리화'의 아이콘 윤종신과, '자격지심'의 아이콘 장동민이 등장하면서, 남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친근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속사정 쌀롱` 진중권 vs 허지웅, `폭행전과 이혼남` 두고 설전
이데일리

특히나 7회, 두번 째 코너, '사생활의 천재'에서, 가정 폭력으로 이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연 속의 남자를 두고 벌인 진중권, 허지웅 두 논객의, sns가 아닌 스튜디오 배틀은 <속사정 쌀롱>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귀한 장면이 되었다. 
스튜디오에 mc로 앉아있는 진중권을 보고 허지웅이, 자신이 갖은 욕을 먹고 tv에 오자, 진중권은 레드카펫을 밟고 왔다고 하듯, 이전의 상황에서 앙금이 남은 듯한 두 사람은 결국, 폭력의 경험을 가진 이혼남 사건을 두고 설전을 벌이고 만다. 폭력은 사적 영역을 넘어 사회적 영역이라며 이런 사람은 '배제'시켜야 한다는 진중권과, 그런 진중권의 격한 언어적 표현에 '발끈'하는 허지웅의 설전은,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sns의 논객마저도 품어내는, <속사정 쌀롱>의 예능적 한 표현이 되었다. 아니, sns의 논객마저 '예능'이 되어가는 세상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아직은 '예능'이 낯설어 자주 눈치를 보고, 종종 생경한 언어를 선보이며, 그럼에도 그의 언설은 녹슬지 않은 진중권과, 그가 먹은 '예능'물이, 그를 한때의 논객이나, 평론가 보다, mc가 더 어울려 보이게 된 허지웅의 노련함, 그리고 여전히 자기 이야기에만 충실한 두 사람 사이에서,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윤종신의 노회함, 그런 쟁쟁한 mc진에 결코 주눅들지 않은 장동민의 솔직함과 호쾌함, 여성임을 의식하지 않게 어우러져 들어간 이현이의 능숙함까지, 새롭게 진용을 짠, <속사정 쌀롱>은 한결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심리'을 양념으로 친 토크쇼가 되었다. 무엇을 배운다는 호기심은 유지하되, 부담감은 덜어내고, 조금은 '고상한 듯한' 토크쇼를 보기 위한 선택재가 되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7회 게스트 유상무의 존재에서 보여지듯이, 물론 그가 장동민과 막역한 사이라는 걸 전제 한다 해도, 한국말을 잘 하는 유상무와, 그 자리에 앉았던 한 주를 비운 mc 강남의 차이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강남이 요즘 트렌디한 인물이라 해도, 아직은 한국말에 서툰 그가,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껏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어, 종종 토크의 흐름이 끊어지던 것과 달리, 한국말을 넉넉히 알아듣고, 거기에 보탤 수 있는 유상무의 존재는, 아직은 이방인인 mc 강남의 존재를 숙제로 남겼다. 


by meditator 2014. 12. 15. 11:08

'폭력'을 통해 '폭력'을 정죄하겠다며 수감자 네 명을 모아놓았던 '나쁜 녀석들', 하지만 회를 거듭하다 보니, 그들의 구성에는, 강력계 형사 오구탁(김상중 분)의 슬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결국, 10회 마지막, 서로의 악연으로 오구탁이 이정문(박해진 분)에게 총구를 겨누고, 다시 그런 오구탁을 정태수(조동혁 분)가, 그리고 다시 이정문을 박웅철(마동석 분)이 죽이려고 한다. 


물론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못한다. 총은 던져지고, 칼은 멈추어 진다. 애초에 그들이 모였던 의도, '폭력'을 '폭력'으로 정죄하겠다는 그들의 목적이 무력해 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오구탁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애초에 자신의 아들을 죽인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이들을 모았던 남구현(강신일 분) 경찰청장이 죽어가며 건 전화이다. 죽어가며, 남구현은 말한다. '악'을 '악'으로 정죄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짐승'의 길, 그건 자신이 죽음으로 갚고 갈 터이니, 이제 그만, '짐승의 길'에서 놓여나라고. 

무기력한 경찰을 대신하여, 범죄자들을 모아, '법'의  테두리를 뛰어 넘어 '범죄'를 추적하고자 했던 '나쁜 녀석들'. 애초 그 시도엔, 수사 도중 죽어간 형사였던 아들의 보복을 하고자 했던 남구만 경찰청장의 사적 복수가 있었고, 그 이후 경찰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연쇄 살인범을 쫓아가던 과정 속에서 드러난 이정문 암살 의뢰, 그기로 거기에 얽혀든 박웅철과 정태수의 사적 인연들의 몰락에는, 오구탁 반장의 개인적 원한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구탁 반장이 오해한 개인적 원한, 이정문 사건의 배후에는, 다시 또 오재원검사(김태훈 분)의 사적인 원한이 들어있었다. 

결국 방법을 제 각기 다를 지언정, 오재원 검사, 오구탁 반장, 그리고 남구만 경찰청장까지, 자신들의 혈육을 잃은 통한의 감정, 그리고 그것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하는 '법'의 한계를 넘어, '단죄'하고자 했던 '짐승'의 길'이 이정문을 연쇄살인범으로 만들고, 박웅철과 정태수를 보복의 꽃놀이패로 삼았다. 

뉴스엔

하지만 그런 '짐승의 길'은 오구탁 반장의 말대로, '나쁜 짓만 하던 놈들이, 사람답게 살아보니, 살 맛이 나냐?'라고 반문했듯이, 애초에 의도야 어찌되었든, 오구탁 반장과 함께, 자기 보다 더 나쁜 놈들을 정죄하는 과정에 함께 했던 박웅철, 정태수, 이정문이 짐승의 길에서 벗어나, 오구탁 반장을 죽이지 않는데서, '사적 보복'의 악순환은  끊어진다. 
가장 '법'의 최전선에 있던 검사, 경찰청장, 형사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적 복수의 잔치판을 벌이고, 정작, 그 장치판의 꽃놀이패였던 '나쁜 녀석들'이, 그 잔치만을 마무리한 것이다. 
오구탁 반장이, 남구만 경찰청장이 시작할 때만 해도, 착한 놈을 패면, 폭력이지만, 나쁜 놈을 패면 '정의'가 된다고 자부하던, '나쁜 녀석들' 프로젝트가, 결국, 방법을 달리했을 뿐 의도가 같았던 오재원 검사에 이르면, 똑같이 '짐승의 길'이었음을 자인하게 된다. 오구탁 반장의 '증오할 대상'이 필요했다는 고백처럼.

이렇게 그럴 듯한 수미일관한 '주제 의식'으로 마무리된 <나쁜 녀석들>이란 드라마의 묘미는, '폭력적 카타르시스'이다. 착한 놈을 패면 폭력이지만, 나쁜 놈을 패면 '정의'라는 '나쁜 녀석들'의 슬로건을 충실히 이행하는, '처절한 폭력'이다. '미친 개'들을 자부하는 오구탁을 비롯한 폭력의 절대 고수들이, '개처럼 달려들어 갈기갈기 물어뜯는' 그 정당화된 '폭력'이 바로 '나쁜 녀석들'의 정수이다. 그의 드러난 모공조차도, 연기의 일부처럼 보이는, 흑화된 김상중의 다크한 캐릭터에서 부터, 무지막지한 근육만큼이나, 절대 괴력을 선보이는 마동석의 주먹, 이른바 '간지가 철철 흘러내리는' 자태에서 비롯된 정제된 폭력의 조동혁, 심지어 사이코패스로 그의 두뇌가 한 역할을 하겠다는 기대와 달리, 전기 충격기까지 들이대며 폭력을 거드는 박해진까지 멋지고, 폼나고, 잘 생기고, 아름다운 남자 주인공들이 뿜어내는 '폭력적' 액션의 미학이 드라마를 전반적으로 이끌어 간다. 제 아무리 줄거리는 어디서 본듯해도, 남자 주인공들의 액션 한 방이면 통쾌했던 것이 <나쁜 녀석들>이었다.

또한 무기력했던 여자 출연자 강예원의 존재가 아쉽지 않게, 박웅철, 이정문, 정태수, 그리고 오구탁, 남구만 등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묘한 남남 캐릭터의 조합이, <나쁜 녀석들>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멜로 라인은, 박웅철과 이정문이 담당하며, 히로인은 이정문이라는 농담이 무색하지 않게.

이렇게 통쾌한 액션과, 트렌디한 '브로맨스'의 정서로 금요일 밤을 달궜던 드라마였지만, 지난 11회의 과정이 꼭 후련한 것만은 아니다. 
각종 영화와, 미드를 대놓고 베낀 듯한 설정들이 매회 등장하여, 영화와 미드 마니아들의 조소를 산 것이 무엇보다, 대놓고 시즌2를 겨냥하는 시즌1을 마무리한 <나쁜 녀석들>의 과제로 남는다. 결과만 좋고, 반응만 좋다면, '오마주'의 수준을 넘어선 베끼기라도 괜찮은 건지.

결국, 흑화된 오재원 검사를 법의 심판대로 보내면서, 폭력이 정의가 되었던 '나쁜 녀석들'의 활약도 마무리되었다. 그간 '폭력'을 수단으로 삼았던 그들의 활동은, 네 사람이 나란히, 경찰들 앞에 순순히 잡혀가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이 과정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었던 이정문이 혐의를 벗고, 박웅철, 정태수가 폭력의 면죄부를 얻는 절차이고. 또한 사적 보복의 그늘에서 허덕이던 오구탁이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이들은, 각자 개인의 원한과, 인연에서 벗어나, 시즌2에서 자유롭게, '폭력적 정의'를 실천할 '자유(?)'를 얻는다. 


by meditator 2014. 12. 14. 12:41

3.1%, 3.9%, 2.3% 이건 종편이나 케이블의 시청률이 아니다. 주중 공중파 예능의 시청률이다. <룸메이트> 11회 3.1%(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에코 빌리지 즐거운家> 13회 3.9%(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헬로 이방인> 9회 2.3%(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이 그 현실이다. 이 중 주말을 책임지던 <룸메이트>가 평균 7%의 시청률을 보이다 주중으로 보면서 3%대로 폭락했고, <에코 빌리지 즐거운家> 역시 그나마 5,4%대가 나오던 시청률이 주중으로 오면서 3%대가 되었다. <헬로 이방인>의 경우, 어느 시간대를 가던지 3%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프로그램, 이른바 요즘 트렌드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예능들이다. 외국인에, 전원 생활의 세컨드 라이프에, 셰어하우스까지. 자연을 벗삼아, 혹은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선남선녀 혹은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생활한다. 굳이 <삼시세끼>랑 다를게 뭐 있겠는가 싶다. 그런데 케이블인 <삼시세끼>가 8%대를 넘으며 놀라운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는 것과 달리,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는 이들 예능들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왜 kbs를 떠나 오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나영석 피디는 끝도 없이 계속 되어야 하는 공중파 예능을 든다. 자신에게서 퍼낼 아이디어가 다 고갈되고, 체력마저 방전되어도, 담주 방영분을 찍고 또 찍어야 하는, 끝없는 순환선같은 공중파 예능이, 예능 피디로서 자신을 지치게 만들었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한때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것도 잠시 결국은 대중들의 외면 속에 쓸쓸히 사라지는 예능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그의 소망이, 공중파를 떠나오게 하였고, 그의 소원대로, 그는, tvn에서 짤막한 시즌제의 예능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나날이 치솟는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삼시 세끼> 이번 시즌은 겨우 11부작, 이제 겨우 3회를 남겨두고 있다. 

이런 나영석 피디의 예언을 가장 잘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나영석 피디가 런칭한 <인간의 조건>이다. 토요일 밤, 아날로스적인 삶을 예능에 도입해 화제가 되었던 <인간의 조건>이지만, 89회를 맞이한 지금, 소재 고갈로 화제성은 커녕, 존립에 위기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헬로 이방인>의 경우, 추석 특집 파일럿으로 방영되었을 때만 해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정작 본방이 되자, 사람들의 관심을 차갑게 식어갔다. 요즘 인기를 끈다는 강남이 들어와도, 에네스 카야가 인기가 있자, 그와 같은 나라 사람인 핫산을 등장시켜도, 열일곱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젊은 시절을 닮은 꽃띠 소년을 등장시켜도 시청률은 요지부동이다. 결국 파일럿을 넘어설 기획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셈이 되고만다. 이국주 등 요즘 인기가 있는 화려한 멤버로 의욕적으로 시작된 룸메이트 시즌2의 화제성도 몇 회를 넘기지 못했다. 연예인들이 모여 스스로 집을 짓겠다는 에코 빌리지 즐거운家 역시 화제의 인물 장동민이 있어도 어쩌지를 못한다. 인기를 끌고 있는 <삼시 세끼>도 11부작을 하는 마당에,  결국, 애초에, 이들 프로그램이 장기 프로그램으로 기획되기엔 무리가 아니었을까란 뒤늦은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이다. 

'룸메이트' 잭슨이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흥분했다. ⓒ SBS 방송화면

<삼시세끼>가 수수를 벤다면, <룸메이트>엔 여섯 포대의 콩 폭탄이 터졌다. 삼시세끼가 텃밭의 농작물만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면, <에코 빌리지 즐거운 家>는 아예 텃밭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삼시세끼>가 강원도 산골에 떨어진 고립된 생활을 다루었다면, <헬로 이방인>은 서해안 삽시도의 섬마을에 외국인들을 떨어 뜨려 놓았다. 다르지 않은 거 같은데, 막상 보면 이들 프로그램은 천지 차이다. 
말 그대로 '삼시세끼'를 해먹는 것이 미션의 전부인 <삼시 세끼>는 '슬로우 라이프'를 처음 도입한 예능답게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일주일에 하루 방영하는 하루분의 방영 시간 동안, 출연자들이 오고 장을 봐다 밥을 해먹다 보면, 금세 하루 해가 지나간다. 기껏해야, 고깃값으로 수수 좀 베다 말뿐이다. 게스트라 봐야, 하룻 저녁 거나하게 지내고 아침녁에 부리나케 줄도망치기 태반이다. 
그에 반해, 다른 프로그램들은 왁자지껄하다. 출연자들부터, 누가누구인지 다 익히기에 한 회차가 모자를 때가 있고, 그들이 모여 늘 무언가를 번다하게 한다. 끊임없이 미션이 주어지고, 출연자들은 그것을 해내느라 분주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초창기 버전을 여전히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이 하는 미션이 새롭지 않다. <룸메이트>는 폭탄으로 맞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기 위해, 두부를 만드는데 필요한 맷돌과 가마솥을 사기 위해 황학동 만물 시장을 갔다. 황학동 만물 시장, 이곳은 마치 예능의 필수코스인 것처럼, <무한도전><나혼자 산다>를 비롯하여 모든 예능이 한번씩 거쳐간 곳이다. <룸메이트>도 어김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추억'을 되새기며 새롭지 않게 그곳을 다녀온다. 
<헬로 이방인>이 다녀온 삽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삽시도라는 섬은 새로울 지 몰라도, 거기서 이방인들이 하는 갯벌체험은 이제 예능에선 올드한 아이템이다. 
공교롭게도 10일 방영분, <에코 빌리지 즐거운家>와 <라디오 스타>에는 걸스데이 혜리가 동시에 출연했는데, <에코 빌리지 즐거운家>에 혜리가 출연한 사실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걸스데이 전 그룹이 출동하여, 머리가 산발이 되도록 일을 했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한 주가 이제 막 시동을 거는 화요일 밤, 늦은 시간, 텔레비젼 속 연예인들이 함께 모여 멋들어진 셰어하우스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모습은, '휴식'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위화감'에 가깝다. 그들의 셰어 하우스는 너무 그림같고, 그들이 하는 '셰어'하는 삶은 여전히 작위적이다. 그저 연예인들의 함께 살기 코스프레란 감상을 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김병만을 비롯한 멤버들이 제 아무리 진정성있게 열심히 일을 해도, 세컨드 라이프의 <에코 빌리지 즐거운家>의 정서 역시, <룸메이트>를 넘지 못한다. 수요일 역시 그런 연예인들의 왁자지껄한 놀이를 보고 즐기기엔 버거운 시간이다. 전주에, 폐광촌 모운동 마을에, 삽시도 까지 이방인들이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다녀도, 어쩐지 1박2일 짝퉁같기만 하다. 무엇보다, <룸메이트>건, <에코 빌리지 즐거운 家>건 다 거기서 거기다. 셰어 하우스의 특징도, 세컨드 라이프의 신선함도 회를 거듭할 수록 희박해 진다. 외국인들이 등장해도 별 다르지 않다. 사람만 다르고, 배경만 다를 뿐 '동어반복'의 지루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한 주가 시작되는 화요일부터, 왁자지껄 미션이 범벅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쩐지 버겁다. 

사실 <삼시세끼>는 꽃보다 시리즈의 스핀 오프같은 성격의 프로그램이다. 이미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통해 이미지가 구축된 도회적인 이서진이란 인물을 전혀 다른 환경인 강원도 정선에 풀어 놓음으로써 빚어지는 이질적 분위기와, '삼시세끼'라는 단촐한 슬로우 라이프의 정서가 프로그램을 지배한다. 거기에,그와 함께 하는 옥택연을 비롯하여,  이서진을 찾아오는 게스트들도 시청자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제 아무리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았다 하더라도, <참 좋은 시절>이라는 드라마로 그와 함께 가족을 이루었던 연예인들이, 가족처럼 그를 찾아들기 시작한다. 연예인인데, 어쩐지 그들이 가족같다. 손호준도, 고아라도 이서진과 일면식이 없지만, 이미 낯설지 않다. 심지어, <꽃보다 청춘>의 손호준보다, <삼시세끼>의 손호준이 더 '해태'같다. 그래서, 이미 친숙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삼시세끼>를 보면서, 새롭게 출연자와 게스트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시청자들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다. 출연자도, 미션도, 편안하다. 별 거 안하는데, 그 익숙함에, 느긋함에 미소를 지으면서 보고 있다. 
'미생'과 같은 전투를 치르고 난 한 주, 머리를 식히기에 딱 알맞은 정서의 프로그램이다. 

<삼시 세끼>를 비롯하여, <룸메이트>, <에코 빌리지 즐거운 家>, 그리고 <헬로 이방인>까지를 보고 있노라면, 뭐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것 같다. 놀고, 먹고, 즐기고, 미션이랍시고 힘 좀 쓰고,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다루는 방식과 정서의 차이가. 이들 프로그램의 생사를 가른다. 누군가의 명언처럼, '문제는 '디테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 끗차이의 디테일이 공중파 예능을 무덤으로 보내고 있다. 


by meditator 2014. 12. 12. 18:24

 입꼬리가 올라 가는 걸 보니, 자기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군, 좋은 패가 들어 온 게 틀림없어'

12월 11일 방영된 8회 <왕의 얼굴>에서 김귀인의 오빠 김공량(이병준 분)과 장수태(고인범 분)의 장부를 놓고 내기를 하게 된 광해(서인국 분)의 나레이션이다. '관상'에 능통해진 광해가 상대방의 얼굴 표정만으로 그가 가진 패를 읽어내는 순간이다. 

영화 <관상>의 설정을 허락도 없에 베꼈다 하여 방영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왕의 얼굴>은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자, 영화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이 될 얼굴이란 설정의 시작은 비슷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은 역적이었던 조상때문에 벼슬길에 나서지 못해 관상쟁이가 된 주인공이, 왕의 얼굴을 판가름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역사의 풍파 속에 휩쓸리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굵직한 흐름은 단종과 세조 대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마는 민초의 이야기를 근저에 깔고 간다. 

그에 반해, 드라마 <왕의 얼굴>은 대놓고, 왕이 될 관상을 지니고 있지 않아 컴플렉스를 가진 왕 선조(이성재 분)를 등장시킨다. 영화<관상>에서 왕이 될 얼굴이 아님에도 왕의 자리를 노리는 수양대군과는 같은 듯 다른 캐릭터이다. 한 사람은 왕이 될 얼굴이 아니지만, 스스로 왕의 자리를 쟁탈하는 자요, 또 한 사람은, 운명적으로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왕이 될 깜냥이 아니라는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정신병리학적 증후군의 인물이다. 왕이 될만하지 않은 인물로 인해 일어나는 역사적 갈등을 다루었지만, 영화 <관상>이 제목이 관상임에도, 등장인물들이 '관상'이라는 운명론적 세계관에 휩쓸리지 않는 것과 달리, 드라마는 시작부터 거기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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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스타

그리고 그런 자격이 없는 아비에게서 왕이 될 얼굴을 가진 광해가 태어나고, 그의 등장은 아버지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자신이 왕실의 적자가 아니기에 늘 불안감에 시달리는 왕 선조, 하지만 그에게는 정작 정실 부인인 의인 왕후에게서 난 자손이 없다. 그래서 공빈 김씨의 소생인 두 아들들이 가장 유력한 왕의 계승자이지만, 그런 것이 선조에게는 늘 마땅찮은 구석이 된다. 더구나 그 중에서도 난 놈인 것 같은 광해가 그의 눈에 걸린다. 드라마 <왕의 얼굴>은 이렇게 자신의 아들이지만,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린 광해가, 아버지 선조와의 갈등을 일으키며, 그리고 그런 수난을 겪는 와중에 백성들의 삶에 눈을 뜨고 진정한 군주의 상으로 거듭나는 성장드라마를 그리고자 한다. 

이렇게 태생적 아니, 왕재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왕이 되어야 했던 선조의 컴플렉스를 '관상'이란 운명론적 세계관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시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과연 왕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데 대한 의문을 가진 광해가 스스로 관상에 입문 능통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관상'은 전가의 보도처럼 씌여진다. 11일 방송에서 처럼, 광해는, 그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마다, 게임의 필승 아이템처럼 '관상'을 꺼내 무기로 써먹는다.  마치 인간계에 등장한 마법사처럼 말이다. 당연히 상대방의 운명과 얼굴을 읽을 줄 아는 그의 능력 앞에 보통 사람은 나가 떨어질 밖에. 어디 광해 뿐인가, 궁중에 떠억하니 자리잡은 관상감하며 과거 시헙보듯이 관상 시헙을 보고 궁중에 입궐하는 김도치(신성록 분)까지. 

11일 방영된 김공량과 광해의 투전 대결은 게임 관전처럼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관상'이라는 능력을 탑재한 광해 앞에 김공량은 그저 밥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광해 앞을 가로막은 장애들은 제거된다. 이러다, 광해와 김도치가 조우하게 된다면, 마치 중국 무술 영화의 각종 비기를 장착한 무림 고수들이 장풍을 쏘며 대결하듯, '관상'대 '관상'의 환상적인 대련이 보여지는 건 아닌지. '관상'이란 요소는, 대중적으로 흥미를 느낄 소재이긴 하지만, 여전히 운명론적이며, 중국 무협 영화의 장풍만큼이나, 막연한 요소인 것이다. 

드라마는 대동계의 역모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가희와의 인연 때문에, 그녀를 보호하고자 하다, 폐서인으로 되어 궁궐 밖으로 내처지게 된 광해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여인을 보호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은, 그녀가 살던 세상, 그리고 백성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희, 그녀를 구하려는 광해의 시도는, 나아가 백성들의 삶을 구제하는 계기가 되어간다. 

이는 최근 역사학계에서도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개혁군주로서의 광해에 대한 밑그림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구상이다. 하지만, 그런 광해가 가진 '관상'이란 능력은 지금은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지지만, 딜레마가 된다. 갖은 곡절을 이겨내고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그 자신이 결국 왕의 자리에서 내쫓기는, 그래서 '왕의 이름' 한 자리 지니지 못한 채, 광해군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이 존재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정작 자신의 운명은 헤아리지 못한 '관상'의 능력자 광해라니.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에스컬레이터가 되었던 능력을 과연 이 드라마는 어떻게 설명해 낼 것인지. 

그런 능력자 광해에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비문>에서도 등장했지만,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아비와, 정통성에, 진취적 세계관까지 가진 능력자 아들이라는 단선적인 갈등 구조도 한 몫 한다. 왕의 깜냥이 아님에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신들의 비리를 눈감아주며, 능구렁이 된 아비와, 그런 아비와 달리, 권신들의 비리를 척결하고자 의지를 다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유토피아같은 세상을 꿈구는 아들이라는 대결 구도가 극을 이끌어 가다보니, 등장한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으로 광해는 왕의 계승 서열에서 그의 아비 선조와 같이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결코 왕이 되기 힘든 인물이었다. 역사는 그의 형 임해가 광폭하여 왕이 될 깜냥이 되지 못한 듯 그려내지만, 그 역시 폭군 광해처럼 후대의 해석일 뿐이다. '임진왜란' 때 도망간 아비를 대신하여, 전쟁터에서 성실하게 왕자의 자리를 지킨 그의 공로가 그를 왕의 자리에 까지 올렸다. 드라마는, '왕의 얼굴'이라는 운명적 요소로 그의 왕좌를 설명하지만, 정작 그를 왕위에 올린 건, 전쟁터를 지킨 그의 책임감이자, 능력이다. 

이렇게 우연과, 우연 속에 드러난 광해라는 인물의 신실한 캐릭터를, 굳이, '관상'이라는 운명론적 요소를 개입시켜, 개연성을 부풀릴 필요가 있을까? 8회까지 진행된 드라마에서, 가희와 얽히면서 폐서인이 되기까지 광해의 파란만장해진 삶 만으로도 드라마는 충분히 내적 동력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김공량과의 투전 대결에서 등장한 '관상' 아이템처럼, 절대 무한 능력까지 장착시켜, 운명론을 배가시켜야 했는지, 이건, 마치, 조선 건국을 '용비어천가'로 설명하는 식처럼, 광해란 인물을 입지전적 인물로 형상화하기 위해 둔 무리수는 아닌지. 하지만 제 아무리 이제 와 개혁 군주로서의 면모가 재조명된다 한들, 그 역시 장단점을 가진 역사적 인물에 불과할 진대, 드라마 <왕의 얼굴>은 정통성을 가진 아비에 대비하기 위해, 광해를 너무 '완벽한 캐릭터'로 키워가고 있는 건 아닌지. 진취적 성향을 가진 개혁 군주라는 또 하나의 볼모에 잡히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제 본격적인 광해의 활약이 시작되는 즈음, <왕의 얼굴>에 덧붙이는 아쉬움이다. 


by meditator 2014. 12. 12. 11:11

mbc수목 드라마 <미스터 백>이 끝나갈 무렵이면 늘 등장하는 ost가 있다. xia(준수)가 부르는 '널 사랑한 시간에'가 그것이다. '하루 지나도 어제만 남아서 나는 그댈 보고 싶어 눈을 감아요. ....널 사랑한 시간에 머물수는 없는지, 너의 향기가 지워지지가 않아'라며 애절한 김준수의 목소리가 최신형(신하균 분)과 은하수(장나라 분)의 안타까운 사랑을 배경으로 흘러나온다. 가사인 즉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최신형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최신형과 은하수가 데이트 같은 걸 하는 장면에게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청춘을 돌려다오'라며 거의 비명처럼 지르는 ost가 <미스터 백>에는 딱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널 사랑한 시간에'는 가사는 맞지는 어쩐지 겉돌고, '청춘을 돌려다오'가 맞춤 옷같은 상황, 바로 <미스터백>이란 드라마가 처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최고봉(신하균 분)이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조각을 삼킨 덕분에 젊은 최신형으로 거듭나, 젊은 인생을 다시 살아보게 되는 이야기가 <미스터 백>의 주된 줄거리이다.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 신하균의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에도 불구하고, 사실 매회 그다지 별다른 스토리의 전개가 없음에도 동시간대 미니 시리즈 1위를 수성해 왔던 건, 아마도 바로 그 되찾은 젊음이 펼쳐가는 환타지에 대한 관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젊어진 최신형의 가슴을 우선 채운 건, 되찾은 젊음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자식도 나 몰라라라 하며 사업에만 매진해왔던 허무한 70평생에 대한 회한이었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거의 사기꾼급으로 자신의 회사를 농단할 생각이나 하고, 피붙이라고는 한 술 더 뜨면 더 떴지, 그에 밀리지 않는 상황,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어머니와 자신을 외면한 채 돈 버는 일에만 몰두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삶을 내던져 버리니, 젊음을 되찾고 본 자신의 인생은 한심하다. 심지어 그가 자부했던 자신의 사업조차 이제 동생댁의 음모로 비리 사업가로 남게 생겼다. 

뉴스엔

그렇게 젊어졌다 좋아했던 것도 잠시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으로 고통받던 최고봉, 아니 최신형 앞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니, 그건 바로, 타인에 대한 배려로 똘똘 뭉친 은하수의 등장이다. 이미 젊어지기 직전부터, 그녀가 자꾸 마음에 쓰이기 시작한 최신형은 젊은 몸으로 은하수 앞에 등장, 드디어 그녀의 마음을 얻기에 이른다. 
그런데 웬걸, 그녀를 마음에 둔 사람은 최신형만이 아니다. 그처럼, 아니 아버지인 그로 인해 상처받고 비틀려 살아왔던 아들 최대한(이준 분) 역시 은하수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이다. 
돈을 버느라 사람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살아왔던 최고봉과, 아버지로 인해 마음을 닫고 살았던 아들 최대한이 누군가의 아픔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 은하수를 통해 위로받고 끌리게 되는 건 어찌보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인지상정'을 넘어, 최신형과 은하수가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키스'까지 하는가 싶더니,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 최대한이 은하수에 대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나선다. 결국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들 최대한과 아버지 최신형이 한 여자를 두고 갈등을 드러내고, 은하수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뛰쳐 나오려는, '멜로드라마'의 정석까지 보이고 만다.

은하수가 함께 해보고 싶은 일 첫 번째로 아버지와 함께 갔던 낚시를 하자고 하고, 함께 낚시를 간 곳에 방해하러 아들 최대한이 등장해서 아버지 최신형과 아웅다웅하는 상황이, 삼각관계로 시작하여,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미처 다하지 못한 '추억 만들기'로 이어지듯이, <미스터 백>의 애정 전선의 노림수가 그저 '막장'의 코드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상, 한 여자를 두고 멱살잡이 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보니, 어쩐지 껄쩍지근한 것이다. 사람구실 못하는 아들에 대한 불철주야 걱정과, 젊어진 선물과도 같은 사랑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는 최신형의 최대의 딜레마가, 어쩐지 <미스터 백> 자체의 딜레마가 된 듯하다. 

최신형과 은하수의 애정 행각은 참 달달하다. 마치 은하수가 삶의 유예 기간이 얼마 안남은 사람처럼 느꺼지듯이, 은하수는 최신형과 함께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함께 누리고 싶어하고, 그런 은하수를 사랑하는 최신형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간 자신이 미처 되돌아 보지 못한 삶의 행복과 함께, 유한한 시간에 대한 회한에 젖어든다. 
그렇게 젊어졌지만, 늘 노년이 함께 공존하는 최신형과 은하수의 관계는 그래서 그저 젊은 연인들의 관계로만 보이지 않고, 항상 70 노인 최고봉이 공존한다. 그래서 어쩐지, 은하수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키스까지 나누는 순간이 그가 누려보지 못한 행복이어서 안타깝고, 또 그러면서도, 70 노인과 이십대 아가씨인데 라는 불편함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미스터 백>에서 최신형이 배려넘치는 은하수에게 마음이 끌리는 건 이해가 가지만, 11회에 이르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은하수라는 젊은 여성이 왜 시대 착오적인 행동을 보이는 할아버지 같은 최신형을 먼저 키스를 할 정도로 사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치 그녀는, 젊어진 최신형을 위해 준비된 선물처럼 최신형 옆에 머물다, 그를 사랑해준다. 

<미스터 백>이란 드라마는 그래서 늘 이런 딜레마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고 해왔다. 행복의 만끽을 넘어서 70 평생에 대한 회한을 놓치지 않았고, 은하수에 대한 사랑 앞에서도 아들 최대한에 대한 우려를 덮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젊어져서도, 노인 최고봉의 포지션을 놓치지 않은 듯하던 드라마는, 11회 결국 사랑에 굴복하고 만다. 
11회는 <미스터 백>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회차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은하수에 대한 감정은 극에 달해, 두 사람을 갈등으로 이끌어 가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아들 최대한을 바라보던 홍지윤(박예진 분)의 감정이 드러난다. 서로가 주저하고 조심하던 감정들이 노골적으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다할 것은 아니지만, 시청률에서 보여지듯이(전회 평균 10.1%에서 이번 주 평균 9,4%로 하락) 시청자들은, 그런 최신형과 최대한의 갈등이 어쩐지 불편한 듯 싶다. 

사실 <미스터 백>은 젊어진 최신형의 일과 사랑을 다루지만, 최고봉 회장의 사업을 둘러싼 음모와 갈등은 늘 해프닝 수준이고, 사랑은 썸인 듯 사랑인 듯 미적이면서 별 다른 스토리의 기복이 없다. 이렇게 별 다른 스토리가 없음에도 동시간대 1위를 해온 것은, 젊음에 대한 '환타지'가 컸던 탓이요, 그런 돌아온 젊음과 공존하는 노인을 연기하는 배우 신하균의 실감나는 연기에 의존한 바가 크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환타지와 '회한'의 균형점을 아슬아슬하게 지켜왔던 균형감이랄까. 

하지만 11회에 이른 <미스터 백>, 여전히 극적 갈등은 해프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의 멱살잡이까지 하며 '막장'을 넘보는 중이다. 과연, 지금까지 놓치지 않던 삶에 대한 회고와, 돌아온 젊음이 준 선물이 낸 파열음을 어떻게, 선물처럼 주어진 십여일 동안 잘 수습해 낼 것인지가 사랑놀음 '막장'이 아닌 훈훈한 드라마<미스터 백>의 관건이 될 것이다. 

'회고'와 돌아온 젊음에 대한 이야기로는 '회춘'한 판타지 <미스터 백>처럼 젊음을 다시 되찾지는 않지만, 최근 베스트 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있다. '이젠 죽어야지' 하다가 창문 밖 세상으로 떠나 경찰의 추적을 받으며 모험을 즐기는 노인, 그리고 그런 노인의 모험의 행간에서 드러난, 지난 100년간 역사에 본의 아니게 개입하여 온 노인의 삶, 그것을 통해, 어떤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여유와 낙관을 놓치지 않은 알란이란 인물을 읽어 낼 수 있다. 
<미스터 백>도 비록 짠돌이 회장님 최고봉이지만, 그 자신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했던 그의 삶에 대한 애착이, 그저 돌아온 젊음을 기회로 삼은 한 여자와의 사랑 놀음만이 아닌, 몸만 젊어진 회장님의 '회춘' 프로젝트 로코가 아닌, 그래도 '책'도 좀 남겼던 열심히 살아왔던 한 인물에 대한 회고이자, 유종의 미가 되길 바란다. 그저 젊어졌다고 사랑 놀음이나 하다 가는 아버지는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2. 11. 10:44

지난 주 yg 양현석 대표의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던 충고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 이유를 알았다. 그 해답은 바로, 12월 8일 방영된 <힐링 캠프> 김봉진, 김영하 편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베스트 셀러 작가 김영하는 대놓고 말한다. 스펙에 창의성까지 요구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꿈을 꾸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고. 만약 자신이 2%의 저성장을 기록하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실직한 아버지와, 빛으로 남은 대학 등록금이 있었다면, 몇 년의 습작 기간을 거쳐 작가로 등단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작가로 먹고 살기가 버거운 시대, 그래서, 쉽게 누군가에게 작가의 길을 가라고 충고할 수 없다고.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쉬운 희망과 노력을 말하는 시대에, 12월 9일의 두 멘토들은 차가운 현실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방법을 제언한다. 그래도 현실감있는 힐링이다.


배달 음식이 먹고 싶으면 뒤적뒤적 전단지를 찾기 시작해야 했던 삶의 관행을 통채로 뒤바꿔 놓은 이가 있다. 더구나 배우 류승룡의 개인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광고로 단박에 다른 배달앱을 제친 이 배달앱은 이제 배달앱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로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신종 사업, 배달앱의 ceo 김봉진씨가 <힐링 캠프>를 찾았다. 

힐링캠프 김봉진
(tv데일리)

자신을 경영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ceo 김봉진씨는 한때 디자이너였고, 오래도록 디자이너이고 싶은 소망으로 창업을 해 첫 사업을 망하고, 이제 다시 경영 디자이너로 배달앱을 성공시킨 입지전의 인물이다.
하지만, 성공의 아이콘이 된 그의 소회는 솔직하다. 중년을 넘어서도 디자이너로 생존할 수 없었기에 사업을 벌였다고 말하고, 사업 실패 후 내 자식이 다른 집 아이들보다 못한 기회를 얻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래도 그에겐, 그를 밀어주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가 시간을 준 덕분에 그는 대학원에 갔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대한민국에서 사업 실패 후 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신선한 영감의 원천을 '책'이라고 말한 그 답게, 매번 토크의 고비마다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평생을 디자이너로 살고 싶은 자신의 목표는 80이 넘어서도 내일 더 스시를 잘 빚고 싶은 일본 스시 장인의 이야기를 빌어오고, 사업가로서 5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유치한 비결을 위해서는 책을 통해 얻은 사람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은 책략이 아니라, 진심이라며, 인간대 인간적 관계의 소중함을 피력했다. 

'성공'의 열매를 움켜쥔 그의 성공 전략은 때론 소박했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리를 헤매며 전단지를 줏어 모았고, 학력에 대한 질문에는,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자신만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며, 자신이 고등학교 때 담배피고 놀 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하루 두 세시간 자며 공부했다며, 그 노력의 시간들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맞먹을 노력이 필요하다고 현실적인 충고를 한다. 아직은 충분히 자리잡지 않은 배달앱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토로한다. 미래에 대해서는, 솔직히, 3년 후, 10년 후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현실적인 사업가 김봉진의 뒤를 이어, 책꽂이 뒤에서 툭 튀어나온 이는, 소설가 김영하이다.  
단 한번 간 군부대 강연에서 장병 모두에게 달콤한 잠을 선물했다던 김영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번쩍 드는 멘토링을 선사한다. 
향후의 삶에 대해 질문한 군인에게, 아마도 쉽게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장병들의 달콤한 잠을 달아나게 한 경험 그대로, <힐링 캠프>에서도 소설가답지 않게,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꿈을 꾸기 어려운 이 시대를 설명나간다. 
자신이 살던 80년대, 그 시대는 연평균 성장률이 10%를 상회해, 무엇을 해도 먹고는 살겠지라는 낙관이 충만했던 시대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2%의 저성장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대는 그렇게 삶을 낙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자신의 내면조차 기꺼이 돈을 벌기 위해 바쳐야 하는 그런 시대라고 정의내린다. 

그렇다면 자신조차 희생해야 겨우 돈을 벌까 말까한 이 시대에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소설가'답게 김영하는 '감성 근육'에서 찾는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아니, 남들의 기준에 쉽게 흔들지지 않은 자신만의 감성을 가진다면, '자기'조차 헌신해야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위해 소설을 일고, 오감을 이용해 글을 써보면서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감수성을 키워나갈 것을 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로 성공한 ceo 연예 기획사 yg의 대표는 꿈을 가지라고 말할 때, 그 보다 사회적으로 덜 성공해 보이는, 두 사람, 김봉진과 김영하는,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현실을 말한다. 사업에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나락에 빠질 수 있는 현실, 꿈은 커녕, 현실에 맞춰가는 것도 버거운 세상, 최고의 ceo가 말했던 가슴뛰는 일은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힘들 것이란 걸 이들은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곰곰히 들여다 보면 또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들이 모두, 개인적이며, 어떻게 보면 고립적이다. 
사업에 실패한 김봉진이 선택한 길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개인적 충전의 시간이었다. 김영하가 제시한 감성 근육도, 이런 김봉진의 해법과 통한다. 철벽과 같은 세상,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이들은 각자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세상과 홀로 싸우라고 말한다. 
대신, 그들은, '성공'의 담론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성공'보다는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하라고 한다. '성공'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세우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자족적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성공'이 화법을 전복시키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김영하는 말한다. 어차피 '성공'하기 힘들다고, 거기에 매달리지 말고, 당신들만의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그렇게 다른 삶의 의미는,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도시의 바닥을 휩쓸고 다니며 전단지를 주운 성과가, 기념일의 마음대로 퇴근이요, 무한정 제공되는 책값의 복지로 보상된다. 그것도 괜찮지 하다가, 그것 밖에 없을까 란 질문이 슬며시 든다. 

(스포츠 동아)

2주에 걸쳐, '물음 특집'을 선보인 <힐링 캠프>는 모색의 시간이다. 이제는 고갈된 게스트군들에 대항해, 이미 출연했던 여러 게스트들을 모아놓고 집단 토크를 하거나, '물음 특집'처럼 젊은이들의 멘토가 될만한 게스트들을 불러다, '멘토링성' 강연과 질의 응답을 시켜 보는 중이다. 때론 면죄부가 되었지만, 이제는 토크 소재의 한계와 출연자 고갈에 시달리는 <힐링 캠프>로서는 지금까지보다는 나쁘지는 않았다. 
더구나, 다수의 젊은이들을 동원한 질의 응답 시간은, 종종 정곡을 찌르는 솔직한 질문들이 등장하며,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 mc진의 진부함을 보완해 준다. 다만 아쉽다면 아쉬운 것이고, 혹은 그래서 그것이 어쩌면 현실의 솔직한 징후일 수 있는 것이, 여전히 젊은이들이 제시한 질문들이, 스펙과 학력 혹은 창업이라는 현실적 경계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 뜬금없어 보일 만큼, 젊은이들에게 드리워진 현실은 짙고, 희망은 멀어보인다. 

모색에 들어간 <힐링 캠프>에 필요한 것은 솔직한 질문이겠다. 2%의 저성장 시대, 스펙에 창의성까지 요구되는,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세상에서, 사람들을 진정 '힐링'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이제,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현실 진단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 해법은, 각자 알아서 잘 살자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런 해법을 넘어설 진정한 '힐링'은 없을까? '성공' 대신 '성장'으로 얼버무리는 어쩐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듯한 썩 개운치 않은 대안 말고는, 사람들을 구원할 길은 없을까? 아마도 이에 대한 고민이, <힐링 캠프>가 생존할 길이기도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2. 9.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