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에서의 리얼리티 예능으로 단 2회 만에 <삼시세끼> 어촌편은 케이블임에도 시청률 10%를 넘보며 화제의 방송이 되었다. 하지만 물가로 간 예능은 <삼시세끼> 어촌편만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 with 프렌드>는 신비의 섬 팔라우를 찾았다. 그뿐이 아니다. 1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용감한 가족> 역시 캄보디아의 톤샤레프 호수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금요일 밤 찾아든 세 편의 예능이 모두 물가를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삼았다. 물가를 배경으로 한다지만, 각 프로그램 별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삼시세끼> 어촌편이 목포에서 배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가는 외딴 섬 만재도에서의 삼시 세끼 먹방에 촛점을 맞춘다면, <정글의 법칙>은 언제나 그래왔듯, 살길이 막막해 보이는 정글에서의 날 것으로서의 생존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후발주자인, <용감한 가족>은 어땠을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용감한 가족>의 출연진은 가상의 가족 형태를 띠고 구성되었다. 시골 머슴 출신 아버지 이문식, 심태후라 불려지는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 심혜진,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맏딸 최정원, 자상한 아들 강민혁, 그리고 막내딸 설현에, 천덕꾸러기 삼촌 역할을 하는 박명수까지, 대가족이, 캄보디아의 거대한 호수 톤샤레프의 수상가옥 촌에 둥지를 튼다.

 

'가족'의 형태로 구성된 예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mbc에서 <사남 일녀>를 통해 연예인들이 형, 동생이 되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만나러 간다는 예능을 구현했었다. 현재 화요일 밤 11시 sbs의 <룸메이트>도 한 집에 살면서 대안 가족을 이루는 연예인 예능을 지향하고 있다. 그와는 좀 경우가 다르지만, 장근석이 하차한 ,<삼시세끼>의 경우도, 차승원과 유해진을 차줌마와, 바다 사나이로 캐릭터를 만들면서, 부부의 상으로 맞추어 내고자 유도한다. 그런 면에서, 출연진의 면면은 새롭지만, 야심차게 시도한 <용감한 가족>의 가족 형태가 결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선하지 않지만, 그 가족들이 보이는 모습은 새로운가? 안타깝게도, '수상 가옥'에 산다는 것 외에는 다 어디선가 본 것들이다. 동남아 국가에서 말 한 마디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으며 사는 모습은  이미 강호동을 앞세운 <맨발의 친구들>을 통해 그다지 대중적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거기에 톤샤레프 호수의 수상 가옥이란 조건은 신선하지만, 낯선 가족들이 모여 이물감을 느끼다, 함께 밥 해먹고 부대끼며 어느 틈에 한 가족처럼 변해가는 모습은, 이미 <룸메이트>나, 심지어 <나 혼자 산다>에서 조차 익숙한 광경이다. 톤샤레프 호수라는 삶의 조건에서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고, 그래서 첫 날 허탕을 치고, 그곳에서 신기한 고기잡이 과정을 담는 것은, 굳이 외국을 나가지 않아도, 이미 <삼시 세끼>에서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아쉽게도, 출연진의 면면과 함께 하는 호흡이 적절하지도 않다. 출연진 각자는 충분히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2회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이 사람들이, 연기를 하는 것인지, 리얼리티를 하는 것인지, 애매한 어색함들이 프로그램을 가득 메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색한 사람은 뜻밖에도 예능에서 잔뼈가 굵은 박명수이다. 새삼 유재석이 그의 옆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그가 보이는 각각의 액션, 리액션은 어색하거나, 튀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도무지 주변에서 조율해주거나, 해명해 주는 사람이 없이, 그의 행동은 늘 생뚱맞을 뿐이다. 설현의 머리를 밀치는 해프닝도 그런 무리수의 연장 선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무한도전>에서야 그런 박명수가 이해되고 그러려니 하지만, 새로운 가족, 새로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무도>의 거성처럼 행동하니 불편한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예능도, 시트콤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를 내리 연출하고 있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이 연기 잘 하는 이문식과 심혜진, 그리고 똑부러지는 최정원에, 주말 드라마등을 통해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는 강민혁, 그리고 아이돌 그룹이지만 연기도 시작하고 있다는 설현이라는 멤버를 데리고, 이 어디선가 본듯한 뻔한 리얼리티 예능을 만들 것이 아니라, 차라리 드라마를 한 편 찍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런 생각을 강력하게 하는 건, 막장이라 해도 시청률이 무난하게 나왔던 <사랑과 전쟁>을 폐지하고, 일요일 밤 늦게라도 감지덕지했던 <드라마 스페셜>조차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만든 상황에서, 겨우 만들어 낸 것이, 이렇게 어정쩡한 예능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들어, kbs는 야심차게 새로운 예능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드라마 스페셜>을 대신할 만한 깜냥이 되는 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고전 중인 주중 kbs 드라마의 미래를 위해서도, 어설픈 예능 여러 편보다, 신선한 <드라마 스페셜> 한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나영석 피디의 예능을 통해 연기자들의 새로운 면이 부각되면서, 너도나도 다수의 연기자들이 예능의 수혜를 받고자 산과 바다로, 그리고 심지어 군대로까지 뛰어든다.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예능이 필수가 되어가듯이, 이러다 연기자도 비슷한 상황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을 알리려는 연기자들, 그리고 좀 재밌어 보이는 연기자들이 너도 나도 예능의 한 자리를 꿰어찬다. 하지만, 복벌복의 결과를 낳고 있다. 지명도를 높이는 것이 광고로 이어질 지는 모르나, 그것이 곧 연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용감한 가족>이 톤샤레프라는 이방의 수상가옥을 배경으로 뻔한 예능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찮게 캄보디아에 살게 된 가족의 생존기였다면, 조금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실소가 나오는 계란 한 알을 둘러싼 가족의 신경전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갈구하는 정황도, 좀 더 실감나게 다가왔을 것이다. 뻔히 짜고 치는 예능인 줄 알면서, 지레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가족의 위기를 어거지로라도 만들려고 애쓰는 <용감한 가족>이 하나도 용감해 보이기는 커녕, 안쓰러워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31. 06:25

공교롭게도 mbc와 sbs의 수목 미니 시리즈에는 다중인격 장애를 지닌 재벌남들이 등장하여 경쟁을 벌이고 있다. sbs 의 <하이드 지킬 나>의 웹툰 원작가인 이충호 작가가 표절을 주장하고 나설 만큼, 두 드라마는 동일하게, 다중인격, 정확하게는 해리성 인격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지닌, 그러면서도 재벌가의 자제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충호 작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킬미 힐미>가 앞서 시작한 선점 효과에 더해, 자그만치 7중 인격의 캐릭터를 앞세워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반해, <하이드 지킬 나>의 경우, 현빈, 한지민 등 스타를 앞세워 화제몰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첫 방을 선보인 후, 상대적으로 밋밋한 캐릭터와 연기로 인해, 동시간대 꼴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1위를 하거나, 꼴찌를 하거나, 결국 공중파의 수목 드라마는 세 개 중, 두 개가 이상 인격을 가진 재벌남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킬미 힐미>건, <하이드 지킬 나>건 채널을 돌리다 문득, 왜 우리가 이런 정신 이상 재벌남 이야기나 보고 있어야 하는가? 란 반문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공중파만이 아니다. 미생의 후속 작품으로 tvn에서 한참 방영 중에 있는 <하트 투하트> 역시 외관상으로는 정신과 의사인 남자 주인공 고이석(천정명 분)이 대인기피증 차홍도(최강희 분)를 치료하는 듯 보이지만, 기실 들여다 보면, 차홍도가 없으면 환자 조차 치료할 수 없는 고이석의 정신적 문제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고이석 역시 직업은 정신과 의사이지만, 자전거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고상규 회장의 단 하나뿐인 손자라는 점에서, 이른바 재벌가 남주의 계보를 잇는다.

 

드라마 킬미힐미 인기. 킬미힐미 황정음과 지성이 계약을 맺고 함께 살게 됐다. /MBC 킬미힐미 방송화면 캡처

the fact

 

여심을 흔드는 재벌가 남주의 등장은, 이미 로맨틱 코미디를 비롯하여 여성들을 주시청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는 빼놓을 없는 설정이 되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트렘펫을 불며, 거기에 매너까지 완벽했던 강풍호(차인표 분)라는 캐릭터를 통해 신출내기 차인표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1994년작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만 해도 재벌가 남주는 가난한 여성을 위해 준비된 키다리 아저씨였다. 그러던 것이, <하이드 지킬 나>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빈의 히트작이 된 2010 <시크릿 가든>에 들어서면, 재벌가 남주는 가진 것은 많되 '찌질하기' 이를데 없는 보살펴 주어야 하는 캐릭터로 변모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주군의 태양>의 주중원(소지섭 분)을 거치며 정신적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 아예 대놓고 해리성 장애라는 반사회적 정신적 증후군의 환자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그런 해리성 장애를 가진 주인공에 대한 반응이 갈린다. 원작 <지킬앤 하이드>를 전복시킨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여자의 손을 물고, 자신을 쫓아오는 여주인공을 엘리베이터에서 밀어버리는 싸가지 없는 행동으로, 비도덕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여, 원성을 사는 것과 달리, <킬미 힐미>의 차도현은, 재벌가의 불우한 혼외 자식으로 뒤늦게 재벌가에 입성한 사연에, 기억을 잃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감당키 힘든 7인격을 만들어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애처로운 존재로 대접받는다.

구서진이 '땅콩 회항'의 주인공인 모 재벌가 자제의행동을 연상케 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비난을 사는 반면, 차도현은 극중에서도 그를 설명하는 단어로, 책임감이란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만큼, 자신은 물론, 자신의 나머지 인격에 대한 뒤치닥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존재로 설정한다.

 

하지만 실제 '땅콩 회항' 사건이, 물론 그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할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건에 손가락질을 하는 동안, 정작 어쩌면 더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정치적 사안들이 물에 물 탄 듯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처럼, 그저 구서진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불쾌감으로, 혹은 차도현이란 캐릭터에 대한 연민으로, 실은 구서진이나, 차도현이나, 한 기업의 중요한 직책을 맡기에는 심각한 결격 사유를 가진 인물이란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해리성 장애'는 정신과 질병 중에서도 중증 질환으로, 과연 이런 질환을 가진 인물이, 한 기업, 놀이 동산이나, 엔터테인먼트라는 공익적 성격이 농후한 사업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 드라마는 전혀 반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가, 책임감있는가라는 그 일개인의 자질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가 분분할 뿐, 기본적으로 그 기업이 가진 본질적 전횡과, 부조리에는 무감각하듯이 말이다. <하트 투 하트>에서는 자신의 질병을 숨긴 채, 고이석은 차홍도를 대동한 채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을 재연한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드라마 속에서 재벌이라는 조건에서 용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보아야 하겠다. 차라리 주말 드라마의 부도덕한 그래서, 지탄받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등장하는 재벌들이 더 현실감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런 공적 직함을 가질 수 없는 재벌남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들이다.

<하이드 지킬 나>의 여주인공 장하나(한지민 분)는 서진의 전속 테마 파크에 소속된 서커스단의 단장이자, 배우이다. 하지만, 첫 회, 당장 구서진에 의해 서커스단의 해체를 통보받는다.

<킬미힐미>의 여주인공 오리진은 정신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이다. 하지만, 차도현의 승진그룹의 입김으로 6개월 휴직 처리를 당한다.

<하트 투 하트>의 차홍도는 어떤가, 대인기피증 치료를 위해 고이석을 찾아간 환자이다.

드라마 속 그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을'이다. 하지만, 을인 그녀들은, 을로써의 불이익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갑'인 남자 주인공들과 사랑에 빠질 예정이다. 심지어,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보듬어 주고, 감싸안아주고, 치유해 줄 예정이다. 정신과 의사인 <킬미힐미>의 오리진이야 그렇다 치고, 서커스단을 이끄는 장하나와, 사람만 만나면 얼굴이 빨개지는 차홍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물론 이런 갑을 관계를, 을의 정신적 우위, 도덕적 우위를 통해 설명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 '을'로써의 분노와, 저항을 해야 할 존재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갑을 보다듬어 주고, 치유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들로 인해 상처받고, 치유되어야 할 존재들이, 오히려 저들을 치유하는 존재로 등장하니, 제 아무리 '사랑'이야기라지만, '을'인 그녀들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이건 뭐, '계급 화해'라기에도 무색한 퍼주기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드라마는, 재벌이라는 캐릭터, 혹은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을 넘어, 정신적으로 혼돈스런 세상에서 여전히 순수한 그 어떤 사랑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대상이, 재벌, 그것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재벌을, 을의 위치의 여성들이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이 전형적 구도는, 청년 실업이 짖누르는 21세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도 허황한 설정이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5. 1. 30. 06:33

우리집에선 끼니 때가 되면 자연스레 리모컨을 찾는다. 리모컨이 반찬이나 밥이 아닐진대, 마치 그것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은 듯 온 식구가 수저를 들지 않고 리모컨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리모컨을 찾아 tv를 켜면, 대부분 채널의 제 1순위는 올리브 채널이다. 그리곤, <오늘 뭐 먹지?>를 하는지 확인하고, 이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으면 그것을 반찬 삼아, 마치 성시경과, 신동엽과 함께 식사를 하는 듯 그들의 때로는 어설픈 요리와, 요리를 넘어서는 입담에, 그 밥에 그 나물인, 우리 밥상을 잊는다. 예전에는 밥상을 마주하고 tv를 켜면 당연히 채널은 그 날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고정되었었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그 뉴스를 보다보면 밥이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힘들던 그 언제인가부터, 우리 식구는, tv속 요리 프로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bs의 <오늘의 요리>는 tv 속 요리 프로그램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요리가 문화로 대접받기 시작하고, 아프리카 tv 등에서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tv 속 요리 프로그램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우선은 mc와 게스트들이 이 집 저 집 맛집을 찾아 순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매일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음식명은, 그날 각종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음식들이기 십상이다. 정준하는 여전히 예의 그 먹성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함께 하는 여성 mc들을 갈아치우며 여러 식당들을 순회하고 있고, <테이스티 로드>의 여성 mc 교체를 둘러싸고, 프로그램의 열성팬들의 신랄한 설전이 게시판을 메우는 건, 여전히 이런 맛집 순회 프로그램들의 건재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엑소 떡볶이 vs 한 뚝볶이 하실래예. 냉장고를 부탁해에 인턴 셰프가 등장했다. 냉장고를 부탁해 이원일 인턴 셰프는 25일 방송에서 한 뚝볶이 하실래예를 만들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캡처t

the fact

 

맛집 순회 프로그램이 몇 개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정리되면서, <올리브 tv>에서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살려, 전국 각지 요리의 진검 승부를 가린, <한식 대첩>과 요리 버라이어티 <올리브 쇼>가 시즌을 거듭하며 안착해 가도 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요리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식 대첩>은 증명해 내었고, 셰프들이 그저 요리만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주인이 되어 끌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올리브 쇼>가 증명해 내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정재형, 성시경, 신동엽 까지 트렌디한 연예인들을 주방으로 끌어들여, <프랑스 가정식>, <오늘 뭐 먹지?> 등 각 인물의 특성에 맞는 요리의 예능화를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요리 전문 채널로써 올리브 tv가 '먹방'의 인기에 힘입어 요리 전문 채널을 넘어, 예능 일반으로 안착하면서, 케이블과 종편에서도 앞다투어 새로운 요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한 <삼시세끼>나, <꽃보다>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나 먹방이다. <삼시 세끼>의 경우, 아예 작정하고, 프로그램의 미션이 하루 세끼를 해먹는 것 단 하나이다. 정선편에서는 정선이란 시골 마을의 텃밭과 정선 장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어촌편은 만재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상을 마련하는 그 과정이, 온전히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꽃보다> 시리즈에서도 여행을 간 연예인들이 하는 건,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의 맛난 먹거리를 먹는 것이다.

 

그 중에서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이다.

게스트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옮겨와,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게스트가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세프 군단이 대결을 통해 만들어 낸다.

이 프로그램이 여타 요리 프로그램과 차별이 되는 것은, 대표적으로 만화가 김풍과, 전문 셰프샘 킴의 대결에서 보여지듯이, 그간 요리 프로그램의 정석을 살짝 비껴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분명, 전문 셰프인 샘 킴과 김 풍은 요리의 내공으로는 비교가 될 상대가 아니고, 김풍은 오랜 자취 생활의 내공으로 이른바 '야메 요리'를 추구하는 요리계의 아웃사이더인데, 이  두 사람이, 게스트의 냉장고의 재료로, 게스트의 입맛에 간택을 받는데 있어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격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미 올리브 tv를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요리의 영역이 조금씩 등장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 <냉장고를 부탁해>가 되는 것이다.

<삼시 세끼>에서 차승원이 조미료가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볶은 햄에,

할라피뇨, 계란 후라이를 얹은 칼로리 폭발의 요리가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 '현실적 요리'가 멋들어진 요리 문화 속에 자신의 지분을 얻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몸에 좋은 요리만 찾다가, 라면을 먹고 속시원하게 트림을 하듯, 현실태로서의 요리의 세계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거기에, 고명을 얹는 건, 셰프와 아마츄어의 대결을 흥미진진한 게임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김성주와, 정형돈의 만담에 가까운 진행이다. 각자 자신만의 입맛이 두드러진 mc진이 객관적 위치를 넘어, 사심에 가까운 진행을 통해, 먹고싶은 프로그램의 실감을 살려낸다.

 

이렇게 굽고 지지고 볶고 tv화면 속 '그림의 떡'임에도 보는 이의 식욕을 한껏 부양하는 각종 요리 프로그램들이 앞 다투어 방영되고 있는 가운데, tvn의 <수요 미식회>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한다. 비록 자료 영상으로 각종 맛집의 풍성한 음식들이 보여지기는 하지만, 스튜디오에 앉은 mc와 패널들은 오로지 그들의 세치 혈로만 그날의 음식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로지 그들이 맛본 음식에 대한 현란한 소개만으로도, 스튜디오에서 지지고 볶는 요리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 이상 '먹방'의 갈증을 불러 일으킨다. 오히려 패널들이 먹지 않고, 말로써 먹는 그 과정이 먹방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맛집을 언젠가는 가보리라는 다짐을 끝내 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시아 투데이

 

다종다양한 요리 프로그램들의 양산은 결국, 누가 더 맛있게 먹고, 누가 더 잘 요리하며, 어디가 더 맛있게 하는가를 서로 경주한다. 몸에 더 좋은 것을 견주더니, 이젠, 몸에 좋은 것도 좋지만, 결국은 내 입에 맞는 게 최고라며 인스턴트와, 조미료를 양지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수요 미식회>에서 황교익 요리 평론가의 '언제부터 마블링이 고기맛을 좌우하게 되었나?'라던가, '칼국수를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촌철살인이, 새삼, 더 맛있는 것에 탐닉하던 잠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즈음에 진짜 되돌아 보아야 하는 것은,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 시점이다.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먹방'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당장 우리집만 해도, 밥상머리에 앉아도 대화 한 마디 하기 힘들어 서먹한 관계를 메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방'을 찾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흥건한 재료와, 배가 터지도록 되풀이 되는 맛집 순례의 저편에서, 하루 3000원 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라면을 얼마나 먹었는지 세기 힘들 정도로 하루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망각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고단함과, 고달픔과 반비례하는 먹방, 그 흐드러진 잔치가 끝나고 나도, 어쩐지 마음의 허기는 여간해서 가시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5. 1. 29. 06:03

이번엔 중식이 밴드다!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 게 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오네. 월세 내랴 굶고 안해본 게 없는 라는 장미 여관 '서울 살이'를 통해   '전월세 대란, 서민은 서럽다'의 페이소스를 한껏 심화시켰던 <mbc다큐 스페셜>이 이번엔 1회 인디뮤지션 대상을 받은 중식이 밴드의 음악을 통해 이른바 '3포 세대'의 서러움을 그려낸다

 

군대를 다녀온 아들이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 다녀오자마자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애인을 만나러 다니느라 불철주야 바쁘다. 하지만 해를 넘기는가 싶더니,결국 헤어져 버렸다.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쉴 틈이 생겼다며 한 숨을 내쉰다. 아르바이트를 두 탕, 세 탕 뛰면서 하는 연애는 연애가 아니라, 녀석에겐 그저 쉴 여가마저 없는 버거운 과제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연애는 젊음의 향유이자, 권리라 여겨지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mbc다큐 스페셜-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는 이렇게 연애조차 버거운 젊음 세대, 결혼, 출산, 육아, 그것을 포기하는 세대가 아니라, 아예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게 아니나며 반문하는 세대의 이야기를 그 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중식이 밴드의 음악과 함께 전한다.

 

 

'친구야 꿈이 있고 가난한 청년에겐 /어쩌면 사랑이란 사치다.

빚을 내서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은 해도 취직은 못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 알바 하러 간다' (중식이 밴드, 선데이 서울)

 

이렇게 피씨방 야간 알바를 전전하던, 하지만 그래도 노래를 하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그 청년은 여전히 노래를 부른다. '선데이 서울'이던 노래는, '아이를 낳고 싶다니'로 바뀌었다.

젊은이들 중 겨우 30%만이 하고 있다는 연애를 운 좋게 8년째 하고 있지만, 그의 여자 친구는 더 이상 그에게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낮에 연습하고, 저녁에 공연을 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밤 11시부터, 땅 속으로 들어간다. 지하철에 통신 케이블을 깔기 위해, 위험한 천장을 딛고 다닌다. 피씨방 알바는, 통신 케이블 업체의 야간 임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단지 노래를 하고 싶은 중식이 밴드의 보컬 이야기만이 아니다.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가 보여준 청춘들의 삶은 대동소이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시원에서 지내며 도서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며 알바와 공부를 오가는 삶에 연애란 사치이다. 심지어 대학 등록금, 아니,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커피 전문점 화장실을 치우는 야간 알바는 하는, 그러면서도 다시 다음 학기 휴학을 하는 처지에 놓인 대학생에게, 역시나 연애나 결혼은 그저 저절로 어느 틈에 포기해 버린 미래이다.

신혼집을 구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1억에서 2억, 결혼 비용이 남자 1억 5천 만원, 여자 9천 만원을 넘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결혼을, 그리고 그 결혼의 전제 조건인 연애를 포기한다. 아니, 당장, 살아가기 위해 연애를 할 시간조차 없다. 25세에서, 29세 남녀의 평균 미혼율이 무려, 8,90%를 넘는다. 거꾸로 가는 경제 정책을 내놓은 최규환 부총리에게, 순순히 아이를 낳아주지 않겠다는 대자보가 연세 대학교에 붙었다. 이른바 명문대학 대학생들이라고 해서 더 나은 삶이 아니다.

 

어디 결혼 뿐인가?

아이를 낳고 싶다니....../ 나 지금 니가 무서워/ 너 우리 상황 모르니/ 난 재주도 없고 재수도 없어/ 집도 가난하지, 머리도 멍청하지, 모아놓은 재산도 없지/아이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학교도 보내잔 말이지/ 나는 고졸이고, 넌 지방대야/ 계산 좀 해봐/ 너와 나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 뭐 애만 없으면 돼/ 너랑 날 지금처럼 계속 사랑만 하며 살기로 해(중식이 밴드, 아이를 낳고 싶다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바보 아냐? 라고 반문하는 중식이 밴드의 노랫말이 하나도 허투루가 아님을 다큐를 보다보면 저절로 공감이 간다. 통신회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가 승계해주지 않는 임시직 때문에,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살던 애인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낮에는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밤에는 겨우 대리 운전을 하며 연명하는, 하지만 밀린 월세에 시달리는 그에게 이제 결혼은 꿈깥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을 게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앳된 고등학생 시절 만나, 이제 남자가 서른이 훌쩍 넘긴 나이가 된 커플은 여전히 연애 중이다. 그저 함께 만나있는 시간만으로도 좋지만, 그들에게 결혼은 감히 엄두를 낼 수도 없는 사안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린 밤, 남자는 홀로 사는 단칸 방에서, 여자는 엄마의 병구완을 위해 각자 홀로 밤을 보낸다.

 

결혼을 했다고 그다지 달라지는 건 없다.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아이를 낳고 집에서 누가 애를 봐/ 우리는 언제 얼굴 봐/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가 밥만 먹냐'

는 중식이 밴드의 가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 삶이 이어진다.

어떻게 아이를 하나 낳아도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 아니,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현재의 삶에서 부부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니, 맞벌이를 위해 시어머니를 주말 부부를 만들며 겨우 지탱하는 삶에서 또 한 명의 아이란 사치이다. 직장에서 만든 좋은 유치원이 있지만, 직장 근처의 집값이 너무 비싸, 아내는 먼 경기도에서 좌석 버스를 한 시간 여 타고 직장을 다닌다. 종종 걸음으로 퇴근하여, 아이를 찾아 돌아온 집, 엄마는 밀린 집안 일을 하느라 바쁘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엄마의 휴대폰을 가지고 논다.

 

 

이렇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 3포가 아니라, 선택의 기회조차 놓쳐 버리고 사는 젊은 세대의 삶에 대해, 대학 교수는 결혼 하지 않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문화가 되어가는 사회를 염려한다. 실제 일본에서, 4,50대 되어서야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대학 교수는 말한다. 이 상태로 가면, 인구의 1/3이 줄어드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문화가 된 사회, 더 이상 출산을 하지 않아 국가 경쟁력이 문제가 되는 사회, 하지만, <연애만 8년째, 결혼 할 수 있을까?>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대학 교수들의 분석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화나,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꽃다울 나이의 젊은이들이, 가장 본능적인 남녀간의 구애조차 미루며, 보장할 수 없는 미래의 스펙과 정규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 아니, 현재를 연명하기 조차 버거워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 그렇게 젊은이들을 '지옥도' 속으로 몰아넣은, 그 체계를 만든 기성 세대의 일원으로 '석고대죄'를 올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미안했다. 경쟁과, 스펙과, 더 나은 삶과, 발전을 위해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신기루의 그늘에서, 현재의 젊은이들은 젊음을 유보 당한 채, 생존하기 위해 신음하고 있는 중이다. 그걸, 그저 '문화'라 규정하고, 국가 경쟁력을 논하기에 당대의 젊음은 너무 처연하다. 도대체 이들의 젊음을 보상하고 책임질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by meditator 2015. 1. 27. 12:28

기영재(오광록 분)가 죽었다.

해적 방송을 한 이유로 정치범이 되어 12년의 감옥살이를 한 그가, '힐러'라는 의심을 받고(아니 스스로 힐러라 자청하며)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의문의 독살을 당했다.

기영재의 시신이 모셔져 있는 장례식장, 한때 그와 함께 '언론의 자유'를 위해 해적 방송을 불사했던 친구 김문식(박상원 분)이 찾아와 오열한다. 그리고 오비서(정규수 분 )에게 가장 비싼 비용을 들여 그를 보내줄 것을 주문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족 한 사람없는 오랜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서럽게 추모해주는 유일한 친구, 더할 나위없는 우정이다.

 

하지만, 김문식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그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가장 슬프게 눈물을 흘리지만, 그런 김문식과,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오비서를 두고, 동생 김문호(유지태 분)는 동전 앞 뒤처럼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내린다. 김문식이 양지에서 그 분의 하수인으로 그럴 듯한 언론의 대표로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동안, 오비서는 음지에서, 김문식이 할 수 없는 온갖 불법적인 뒤치닥거리를 한다. 기영재의 죽음도 오비서의 사주를 받은 박형사의 범행이다. 김문호는 말한다. 과연, 김문식이, 오비서가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모르겠냐고.

 

그렇다면, 김문식의 추모가, 위선, 심지어 위악이라면, 기영재의 억울한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하얀 보자기가 씌워진 상자에 담긴 기영재, 그 상자는, 슬며시 바꿔치기당한다. 김문식이 가장 슬픈 표정을 짓고 가짜 기영재의 유골함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설 때, 또 한 사람 기영재를 사부로 모셨던 진짜 힐러, 서정후(지창욱 분)가 진짜 기영재를 들고 그곳을 떠난다.

 

처음 기영재가 자기 대신 힐러임을 자청하고 경찰서로 잡혀가 심문을 받다 죽었다는 사실을 안 후, 서정후는, 모든 통신기기를 끊고, 기영재가 남겨 준 아지트에 칩거, 세상과의 소통을 끊었다. 늘 밉다고 했지만, 그 누구보다 그리워했고, 믿었던 어쩌면 그의 유일한 가족, 사부, 기영재가 자기 대신 죽어갔다는 사실을 서정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서정후와 소통하던 동업자 조민자(김미경 분)가 그녀의 아지트를 나선다. 그리고 채영신(박민영 분)을 찾아가 서정후의 아지트 위치를 가르쳐 준다. 지금의 서정후를 그곳에서 구출해 낼 유일한 사람이 채영신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판단이 틀리지 않게, 채영신은 서정후를 구출해 냈고, 다시 기운을 차린 서정후는 김문호를 찾아간다.

 

기영재의 제자 서영후, 그리고 늘 기영재를 낯도깨비라 불렀던 조민자, 그리고 기영재를 형이라 불렀던 김문호는 그리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영재를 추모한다.

 

뉴스1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그저 골방에서 죽은 기영재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짓거나, 그의 죽음을 억울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채영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경찰서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그 죽음의 복수를 가장 멋지게 해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 서정후는 위험을 무릎쓰고 경찰서에 들어가, 조민자를 위해 경찰서 보안 망을 뚫고, 다시 박형사의 집으로 찾아가 숨겨진 그의 대포 통장과 기영재를 죽이는데 사용한 독극물을 찾아낸다.

그리고 힐러인 서정후와, 조민자가 함께, 밝혀낸 박형사의 비리와, 그 배후 오비서가 함께 찍힌 사진을, 김문호는 사이버 대응센터 팀장 윤동원(조한철 분)에게 전달하는 한편, 박형사를 검거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취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썸데이'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공개한다.

 

박형사 사건의 말미, 김문호의 앵커 멘트는 비장하다.

 '세상에는 언론에서 다루어 지지 않는 숱한 억울한 죽음들이 있다. 그 모든 사건을 다룰 수는 없더라도, 단 하나의 억울한 죽음이라도 거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게 김문호와 서정후, 조민자의 합작으로, 기영재의 죽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드디어  그간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던 오비서가 경찰에 연행된다.

<힐러>를 통해 송지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추도의 방식이다. 죽은 자를 그저 그리워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방식은, <힐러>에서 보여지듯이, 그 억울한 속내를 샅샅이 밝혀내는 것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있는 추도의 방식은, 2014년 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작가의 발언이기도 하다.

같은 날 jtbc 뉴스는,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 유족과 생존자들의 대장정을 보도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그저, 세월호를 인양하여, 숱한 억울한 죽음의 속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달라는 것! 그리고 손석희 앵커는, '부끄러움'에 대한 논평을 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그것을 이념 논쟁의 먹잇감으로 던져버린 악폐가, 사회 전반적으로 후안무치한 범죄들을 잇달아 벌어지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힐러>에서, 사부를 잃고 분노하며 달려가는 서정후를 붙잡아 세운 것은, 그래서 함께 복수를 하자고 달랜 것은 김문호이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실의에 빠진 서정후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채영신을 찾아간 것은 조민자였다. 젊은 세대들이, 다시 힘을 얻고 싸울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김문호와, 조민자같은, 어른다운 어른들의, 부끄러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듯한 기자로, 유능한 음지의 해커로 살아왔던 그들이,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반성과 회한,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 대한 실천이 선행될 때, 젊은 세대들은 좌절에서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그런 그들의 자각과 실천은, 그 반대편에서 쉽게 항복하고, 그 항복을 통해 자신의 입신양명을 얻어낸 김문식의 후안무치함과 비교된다. 비록 김문식이 느네들이 겨우, 몇몇의 느네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비웃었지만, 김문호의 말처럼, 억울한 한 사람의 죽음을 밝혀냈다. 그 끝마저 창대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의 뒷받침으로 이제 막 힘을 얻기 시작한 젊은이들, 이들이 함께,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추모의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5. 1. 27. 05:45

원래 1월 16일 방영 예정이었던 <삼시 세끼> 어촌편은 장근석 소속사의 탈세와 관련된 구설수로 인해, 한 주 방영이 미뤄졌다. 과연 애초에 홍보를 해왔듯이,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이 세 사람의 어촌편 <삼시 세끼>가 단 한 주 만에, 물의를 일으켜 스스로 물러난 장근석을 드러내고, 얼마나 완결성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일찌기 <1박2일>에서 부터 시작하여, tvn으로 이적한 후,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까지 트렌드를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하던 나영석 피디의 위기가 지레 점쳐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1월 23일 첫 방송을 선보인 <삼시 세끼> 어촌편은 과연 이 프로그램에 장근석이 합류했었는가를 기억하기 조차 힘들게, 차승원, 유해진의 <삼시세끼>어촌편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그에 앞서 방영되었던, 이서진, 옥택연의 <삼시 세끼> 정선편과는 또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삼시세끼>를 빚어 냄으로써, 나영석의 위기가 아니라, 능력자 나영석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시간이 되었다.

 

<1박2일>이 융성하자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예인들을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미션을 주는 프로그램을 시도했으나 <1박2일> 외에 그 어떤 프로그램도 생존하지 못했다. <꽃보다> 시리즈가 트렌드가 되자, 이번에는 연예인들을 데리고, 전 세계로 떠나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역시나 그 중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프로그램들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삼시 세끼>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생활을 예능화하자, 또 여기저기서 배우 출신의 연예인들을 역시나 시골 마을로 끌어들이지만,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다면, 후속 주자의 불운을 탓하기에 앞서, 다른 프로그램들과 나영석 피디가 만든 프로그램들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엑스포츠 뉴스

나영석 피디가 만든, 아니 정확하게는, 나영석 피디 사단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나영석 피디, 이우정 작가, 그리고 <꽃보다 청춘>에 이어, <삼시 세끼> 어촌편을 함께 하는 신효정 피디 등, 나영석 피디와 함께 하는 일군의 무리들을 나영석 사단이라 지칭한다면, 이들 나영석 사단의 특징은, 패러다임를 새롭게 창출해 내고 있다.

일찌기 <1박2일>을 통해, 야생 버라이어티의 새 장을 열었다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그저 젊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예능에 할배와 누나, 그리고 중년들을 초빙함으로써, 전 세대가 공유하는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 <꽃보다> 시리즈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서진을 활용해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스핀 오프처럼 시작된 <삼시 세끼>를 통해, 슬로우 라이프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능의 트렌드로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런 나영석 피디의 예능이 늘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가 했던 전작들이, 다음 작품에서 버전업, 버전 업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1박2일>은 야생의 조건에서 강고한 미션을 주어, 리얼리티의 극한을 밀어부쳤다. 까나리 액젓까지 시음하는 열악한 조건에서, 출연하는 멤버 각자의 성격에 따라, 캐릭터가 부여되었고, 그 캐릭터들의 이합집산, 이것이 <1박2일>을 전국민적 예능으로 끌어올린 강력한 견인차가 되었다.

이렇게, 야생이라는 조건과 거기에 주어지는 미션이라는 성격은, <삼시 세끼>까지 이어지지만, 그 강도와 조건은 달라졌다. 극한의 조건, 강력한 미션이라는 상황은 둔화되고, 오히려 그 속에서, 이서진, 옥택연이라는 인물의 정서와 캐릭터가 프로그램을 이끌고 간다. <1박2일>때도 그저 다섯 사내들이 청소년들처럼 청소년들처럼 잠자리와 먹거리에 목숨을 걸듯이 게임을 하는 그 과정을 보기 위해 매주 채널을 고정시켰다면, 그것이 <삼시 세끼>에 와서는, 오히려,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매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정선 시골 마을이라는 조건도, 거기서 매 끼닌 앞의 텃밭에서 나는 먹거리와 정선에서 장을 봐온 것들만으로 세 끼를 해먹다는 미션들이, 온전히 '그딴 걸 왜해?'하면서, 도시의 삶을 칭송하는, 하지만, 결국은 기왕에 하는 거 꼼꼼하게 해내고야 마는, 이서진이라는 인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었다.

 

슬로우 라이프는 이미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오기 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도한 <인간의 조건>에서 선을 보인 것들이다. 나영석 피디가 사라진 <인간의 조건>이, 인간적 삶을 위한 다양한 미션들로 진화한 반면, tvn으로 온 나영석 피디는, <삼시세끼>라는 오히려 <인간의 조건>과는 정반대로, 정해진 공간, 정해진 미션 안에서, 인물이 살아 숨쉬는 말 그대로, 느긋한 삶의 조건을 프로그램으로 재연해 냈다. '미션'이라는 이름의 흉내가 아니라, 안착한 공간에서, 자연에 스며들어가는 도시인의 모습에서, 삭막한 도시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들이 밥해먹는 것만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묘한 경지를 맞보게 한 것이다. 또한 이미 그 단초는,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바쁜 삶을 평생 이어오던 할배들의 노년의 선물과도 같던 여행, 누나들의 휴식과도 같은 여행, 그리고, 90년대의 전성기를 보냈던, 이제는 아버지가 된 뮤지션들의 변함없는 열정을 확인했던 여행 속에서, 빠쁘게 살아가는 삶에 쉼표를 찍는 여행 시리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삼시 세끼> 어촌편은 어떻게 버전 업이 되었을까?

앞서도 말했다시피 애초에 <삼시세끼>는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세 사람의 만재도에서의 삶을 다룬 것이었다. 나영석 피디가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만들고자 했던, <삼시세끼> 어촌편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지만 도무지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삼시세끼> 어촌편을 보면, 세 사람의 그림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도 완벽하게, <삼시 세끼>어촌의 그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일찌기 <이장과 군수>를 통해 시골 마을 두 친구의 걸쭉한 삶을 재연해 냈었던 두 사람은, 두 사람 스스로가, <이장과 군수>가 연상된다고 하듯이, 손발이 척척 맞는 호흡을 선보인다. 가리고 비껴가도 종종 장근석의 뒤통수와, 다리 한 짝이 등장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이 신경쓰이지 않는다. 때론 차승원이 아내가 되고, 유해진이 남편이 되고, 또 때론 그 반대가 되는 상황이 되기도 하며, 그저 오래된 중년의 두 친구의 그림 속에, 또 다른 사람의 여지가 쉽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저 정선의 시골 마을에서, 만재도라는 여섯 시간 배을 타고 가야 하는 어촌으로 옮긴 상황만 변화된 것이 아니다 차승원과 유해진이라는 인물이 빚어내는 상황이, 단적으로 <삼시 세끼>를 <삼시두끼>로 변화시키듯, <삼시 세끼>와는 전혀 다른 맛의 프로그램을 창출해 낸다. 정선 시골 마을에서 매사에 툴툴 거리면서도, 곧이 곧대로 제작진이 시키는 삼시 세끼를 순순히 만들어 내었던 이서진, 옥택연과 달리, 온전히 풍광 좋은 만재도에 와서, 하루 종일 통발을 살피고, 땔감으로 불을 피우고,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단조로운(?) 삶에 반기를 들고, 차승원과 유해진은 삼시 두끼만 먹을 것을 결정한다. 예전 <1박2일>같았으면 어림없을 결정이, <삼시세끼>에선 가능해 진 것이다. 마치 일정을 마친 최지우가 이순재 선생님 일행과 함께 하루를 더 보내게 되듯이 말이다. 사람사는 생활에서 가능한 일탈과 해프닝들이 자연스레 프로그램의 일부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해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땔감을 쪼개 불을 피우는 대신, 귤로 아침을  때우고, 만재도 산의 바람을 맞고, 차승원은 늦잠을 즐긴다.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귀여운 강아지의 지분은 여전하지만, 세프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기에 조미료를 피할 수 없다는 차승원식의 요리가 스리슬쩍 눈 깜짝할 사이에 등장하고,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집착하는, 하지만 차승원의 급한 성격에는 곧 꼬리를 내려주는 유해진의 넉넉함이, 그저 어촌이라는 환경의 차이를 넘어, 새로운 버전의 <삼시 세끼>에 대한 기대를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위기를 그저, 솎아내기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볼 줄 아는, 나영석 사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이렇게 끊임없이 새롭게 버전업 되는 나영석 피디의 예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로그램에 일관된 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사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늘, 나영석 피디 사단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엔 사람사는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래서, 야생 버라이어티가 되었든, 할배들의 여행이 되었든, 시골 마을의 슬로우 라이프가 되었든, 인지상정으로 자꾸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24. 06:59

1월21일 새롭게 선보인 sbs수목 드라마<하이드 지킬, 나>는 나름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흔히 이중인격하면, '지킬앤 하이드'처럼 선한 주인격과, 그 주인격을 넘보는 악한 두번 째 인격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첫 선을 보인, <하이드 지킬, 나>는 정반대이다. 주인격인 원더랜드 상무 구서진(현빈 분)은, 전형적인 싸가지 없는 재벌이다. 심장 박동기를 차고 수시로 자신의 심장 박동수를 체크하고, 요가를 하고, 심호흡을 하며 혹시나 심장 박동수가 올라갈까 노심초사 그가 두려워 하는 것은 지난 5년간 나타나지 않았던 그의 또 다른 인격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장하나(한지민 분)를 밀치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지만, 순간 증폭하는 심장 박동 끝에 나타난 그의 또 다른 인격 '로빈'은 옥상으로 달려가 위기에 빠진 장하나의 목을 조르는 괴한을 물리치고, 떨어지는 그녀를 구하고자 함께 물에 뛰어든다. 싸가지 없는 주인격과 전혀 다른 '의로운' 제 2의 인격이라니! 신선하다.

 

하지만 어쩌랴, 안타깝게도, 그 신선함은, 이미 5회를 맞이한 <킬미힐미>에서 지성이 연기하고 있는 7다중이 앞에 초라해져 버리고 만다. 분명 타인에 대한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주인격에, 그런 그와 정반대의 정의로운 제 2의 인격은 신선한 발상이지만, 선한 주인격 차도현과, 그를 넘보는 막가파 야성남 신세기에, 사제 폭탄을 들고 설치는, 하지만 '배 한 척'이란 소리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페리박, 심지어 일곱 살 여자 아이 니나까지 등장하는 <킬미 힐미>를 한 회라도 보고나면, 어쩐지 <하이드 지킬, 나>가 심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이드지킬나’ 첫방, 두 명의 현빈과 한지민의 만남 ‘특급 로코 예고’

 

무엇보다,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과, <킬미 힐미>의 차도현, 두 사람 다 재벌가의 인물들이기에, 캐릭에서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결국, 둘 중 어떤 캐릭이 더 화려한 변주를 선보이느냐가 관건이 되버리고 마는 상황에서, 두 주나 후속 작품이면서, 이미 앞선 작품이 화려하게 7 캐릭의 변주를 예고하는 있는 가운데, 겨우, <지킬 앤 하이드>를 한번 뒤틀었다는 자부심만으로 <하이드 지킬, 나>로 관심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구서진이란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현빈은 이른바, '업계의 불문률'을 어기고, 동시간대 드라마 <킬미힐미>를 퇴짜 놓은 것을 기사로 흘려 문제가 된바 있다. 그것이, 현빈 측이건, 제작사건, 동시간대에 맞붙을 상대작을 '팽'하고 상대작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킬미 힐미>는 캐스팅의 부담을 안고 시작해야만 했다. '현빈이 거부한 작품이란 꼬리표에, 7다중이란 부담으로 실제로 첫 방을 시작하기 얼마전에야 겨우 지성이 주인공으로 결정되었고, 그런 우려 속에 <킬미힐미>는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7다중이란 우려를 불식하고, <해를 품은 달>의 작가 진수완은, 지금까지 등장한 차도현의 또 다른 인격들을 개연성있게 풀어내고 있고, 그 서로 다른 설정의 다중이들은, 지성이 '작두를 탄 것 마냥'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오죽하면, <킬미힐미>의 주인공과, 서브남이, 주인격 차도현과 신세기가 되었고, 여주인공 오리진을 둘러싼 이 두 사람의 쟁탈전이, 세간의 흥미를 끌며, 똑같은 사람이 연기함에도 차도현파와, 신세기파의 흥미로운 갈등마저 양산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정작 논란을 일으키면서 까지, <하이드 지킬, 나>를 선택한 현빈의 경우,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아직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하이드 지킬, 나>는 <지킬앤 하이드>와 역전된 캐릭터로 승부수를 띠웠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겐 그런 작가의 의도보다는, 익숙한 현빈의 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정확하게는, 현빈이 아니라, 그가 군대가기 전에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야심차게, 역전된 캐릭터로 신선함을 선사하고 싶었지만, 정작 시청자들에게, 그 역전된 캐릭터는 마치 '놀이공원'을 인수한 김주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제 아무리 연기자 본인이 다른 헤어 스타일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을 해도, 싸가지 없는 재벌 캐릭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현빈이었기에, 몇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각인된 전작의 캐릭터의 기억을 쉽게 놓을 수 없다.

지성이, 심지어 전작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황정음과 다시 한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에서 했던 재벌가의 자제로 등장하면서도,  차도현에게서나, 또 다른 인격 신세기에게서 <비밀>의 조민혁을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것과 달리,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은, 여전히 김주원같다는데, <하이드 지킬, 나>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또 다른 숨은 복병이다.

혹시나 현빈이, <시크릿 가든>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하기 위한, 자기 복제였다면, 그 선택은, 7다중이 지성의 과감한 연기 앞에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남자 주인공만이 아니다. 생기발랄한 여주인공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킬미 힐미>의 오리진 역의 황정음과 <하이드 지킬, 나>의 한지민의 대결에서도 아쉽지만 <킬미힐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비록 첫 회만으로 평가를 하는 것은 섣부를지 모르겠으나, 고릴라를 조련하고, 공중 줄타기를 하며 고군분투하는 한지민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연기는 조금은 음을 높게 잡은 채 노래를 부르는 듯 아직은 붕 떠있는 느낌이다. 반면, 종종 발음이 분명하지 않고, 떽떽거리는 소리는 귀가 아플 지경이지만, 이미 시트콤을 통해 단련된 황정음의 코믹 연기는 지성의 원맨쇼를 돋보이게 할 만큼 자연스럽다.

 

물론 아직 첫 회에 불과한 <하이드 지킬, 나>와 이미 물이 오르기 시작한 <킬미 힐미>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얄궃게도 동시간대 시청자를 놓고, 이중인격과 다중이가 경주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후속작이면서 비슷한 재벌에, 정신 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을 들고 돌아온 , <하이드 지킬, 나>의 애꿏은 운명을 탓할 수 밖에. 아니, 진짜 안타까운 것은  수, 목요일 10시, 그저 이중인격 아니면, 다주인격의 재벌가 자제의 자아 찾기 중 골라잡을 수 밖에 없는 시청자들의 선택 폭이 좁은 시청권이다.

 

by meditator 2015. 1. 22. 05:55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핀다면? 이란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 외로 다수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자신이 알 수 없기를 바란다고 대답한다. 이'아이러니한' 대답의 숨겨진 의미는,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었든, 아니면 그쳐 스쳐지나가는 정말 바람이었든 그런 '사건'이 오랜 결혼 생활 가운데 불가피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배우자가 바람을 핀 것을 알게 되었다면? 사태는 달라진다. 우선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자고 약속했던 그 '신성한' 약속에 대한 배반에서부터, '사랑'을 기반으로 한 남녀의 결합이란 결혼 제도에 대한 배신까지, 자신들이 생각해온 결혼을 어그러뜨려버린 상대방의 행동에, 쉽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설사 그것을 '꿀떡' 삼켰다 해도, <일리있는 사랑> 희태(엄태웅 분)의 어머니 고여사처럼, 치매가 온 상태에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여 남편을 거렁뱅이 취급을 하며, 무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리있는 사랑>의 희태의 분노와, 그가 선택한 결혼에의 파국은 개연성을 가진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에 기반한 현재의 결혼 제도에서 그의 결정은 타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은 이렇게 뻔한 우리 시대의 당위론적인 결론에 자꾸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래야 하는 거냐고? 결혼이 그런거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가장 완고한 존재였던 희태의 어머니, 고여사에게 '치매'라는 천형을 주었다.

 

일리 있는 사랑

tv데일리

 

고여사, 자고 일어나 보니, 아침에 자신이 입었던 옷과 다른 옷을 입고 있고, 자신이 입었던 옷이 세탁기 속에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있는 것을 보고, 깔끔하고 까다로운 자신의 변모에 당혹스런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정작 치매 증상이 도지기 시작한 그녀는, 완고하고 까다로운 시어머니의 거죽을 훌훌 벗어던지고, 그 옛날 미스터 장에게 반했던 미스고로 돌아가 버린다. 그래서, 그녀의 기억 속에 미스터 장을 찾아, 이쁜 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집 문을 나선다. 정작 그녀의 남편이 되어, 평생 바람을 피며 그녀로 하여금 세탁실에서 홀로 소주를 기울이게 한 미스터 장은 본체만체 하면서, 그녀의 기억 속에 멋진 사내였던 미스터 장을, 다름아닌 며느리 일리가 바람난 장본인인, 김준(이수혁 분)에게서 찾아낸다.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혼비백산 돌아다니던 아들 희태는, 잔뜩 설레이는 표정으로 김준의 팔을 잡고 오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그리고 되뇌인다. '우리집 여자들은 왜 다.........'

 

한 화면에 잡힌 어깨까지 구부정한, 이젠 홀애비 냄새까지 난다는 중년의 희태와,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에도 훤칠하고 잘생긴 김준의 대비는 확연하다. 굳이 우리집 여자들은 왜 다..... 이후의 말 줄임표을 구구절절 덧붙이지 않아도, 그가 느끼는 열패감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신줄을 놓은 어머니가 그러하듯, 김준에 대한 일리의 감정도, 어쩔수 없는 교통사고 같은 불가항력이라는 걸, 드라마는 그려낸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며느리가 바람 난 남자를 사모하는 시어머니라니!

그런데, 오랫동안 남편의 바람기에 시달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꼼짝 못하고 누운 신세에, 이제 아들까지 며느리가 바람을 펴서 이혼을 당한 상태에서 '치매'로 정신줄을 놓은 시어머니의 해프닝에 실소가 나오면서, 동시에 눈물이 난다.

자신을 놓칠까 안절부절했던 그녀의 삶은, 여전히 강팍한데, 정작 정신줄을 놓은 그녀는 해맑게 행복해 보이니, 아들과 몸싸움을 하면서까지 김준을 찾아가려는 그녀의 순정이 애처롭다. 그녀가 잃어버린 또 다른 삶을, 그녀의 치매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여사를 바라보는 감정은, 희태의 아내로 7년을 살아왔던 일리라는 여성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진다.

 

ufo를 타고 안드로메다에 가서 사과나무를 심고 싶었던 여고생 일리는, 희태와의 결혼 7년 후, 그저 자신의 연구에 빠져 종종 집을 비운 남편을 기다리며 친정 식구에, 시댁 식구 뒷바라지를 하는 페인트공이 되었다. '지켜주겠다'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남편은 물론, 꼼짝 못하는 남편의 누이와, 까탈스런 시어머니, 무심한 시아버지에 말썽꾸러기 백수 시동생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대신 ufo를 타려던 꿈을 접었다. 의젓한 맏딸로, 든든한 며느리로, 아내로 살아가기 위해, 접었던 그녀의 남다른 감수성이, 뜻밖에, 김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톡'하고 터진 것이다.

 

형식은 '바람'인데, 결국 그 내용은, 고여사의 치매처럼, 눌러왔던 자아의 어떤 부분이라고,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은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해 일리는, 그저 '교통사고 ' 수습하듯이 덮어두려 했지만, 정작, 주변의 잔인한 장난으로, 남편 희태가 알고,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폭로된 일리의 바람은, 물론 과거의 사건이라지만, 수없이 바람을 피면서도, 내가 이 가정의 가장입네 하는 희태 아버지의 바람과 대비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리의 외도는 당연한 사실이고, 희태는 여전히 그것을 용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희태만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결혼 제도를 지탱하고 사는 다수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움' 조차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것을 희태가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결혼이란 제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혹은,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 진정한 이해와 용서가 무엇일까, <일리있는 사랑>은 자꾸 되물어 온다. 아니,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족'이란 공동체를 유지가, 진정 한 인간의 존재에게, 특히 한 여성에게 유익한 것이냐고 회의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5. 1. 21. 05:55

mbc다큐 스페셜은 새해를 맞이하여 신년특집으로 광복 70주년 대한민국 3부작을 마련했다. 1부, 아버지가 세운 나라, 2부, 어머니가 지은 나라, 3부, 자식들이 만들어 갈 나라,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유교 경전의 한 문구가 떠오르듯, 3부작 대한민국은 제목만으로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다큐들이다. 


제목에 걸맞게 이야기도 진행된다. 1부, 국민배우 최불암, 반도체 신화의 주역 진대제, 현대 문학계의 거장 김홍신, 가수 김도향,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등이 모여, 광복이 되던 해 태어나, 산업 역군으로 대한민국을 일궜던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천만을 달성한 영화<국제 시장>에서 구구절절 설명되었던 그 이야기이다. 나라는 일본으로 부터 해방되었지만 6.25를 거치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동생의 학비를 벌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버지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전으로, 지하 수백 미터의 독일 땅 속으로, 태양이 작렬하는 중동 땅으로 떠났고, 그들이 벌어온 외화가, 가장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2부 어머니가 지은 나라도 다르지 않다. 1부가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를 다큐로 다시 복원했다면, 2부가 그려낸 어머니 상은 신경숙 작가의 베스트 셀러 <엄마를 부탁해>의 그 어머니이다. 광복 후 70여년을 자식에게 배고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가발공장에서, 청계천 봉제 공장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던,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면서도,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냈던 '장한 어머니' 바로 그들의 이야기이다. 

국제시장

영화 <국제 시장>이 논란 속에서, 아니 오히려 감독의 말처럼 논란이 밑거름이 되어 천만 달성을 수월하게 하였듯이, 다시 다큐<대한민국>은 영화 <국제 시장>의 서사를 고스란히 되풀이 한다. 이렇게 잘 사는 대한민국을 너희들에게 물려 주었다며 자랑스레 말한다. 
그런데, 정말 자랑스럽기만 한 대한민국이었을까?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를 만들어 낸 부모 대의 성과는 정말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구나, 전세계적으로 불황기에 들어선 경제 기류에서, 정체기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그런 경제적 기적은 더더욱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의 반쪽 자리 역사이다.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집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온갖 자기 자랑을 하는 그런 식의 역사 서술인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이 집안이 들썩거리게 손님 초대를 해서, 집안 자랑을 하고 있을 때, 골방에선, 신음소리를 내며 또 다른 자식들이 숨죽여 울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독일은 전후, 히틀러 치하에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전쟁 범죄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가해자였음에도,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를 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쪽일까?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6.25의 상흔을 겪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던 대한민국의 시작은 철저히 피해자의 그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였던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유수의 잘 사는 국가가 되기 위해 거쳐왔던 과정에 대해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왜 베트남 민족의 피의 역사인 베트남전이 우리에겐 그저 총알을 뚫고 외화벌이를 해온 자랑스런 추억담이 되어야 할까? 그 외화를 벌어오고 '고엽제'에 시달리는 군인들은 왜 화려한 잔칫상에 끼일 수 없을까?  해외로 까지 나아가 외화를 벌어온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화려학 복원하면서, 가발공장에서, 청계천 봉제 공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업 역군으로 일한 여공들의 이야기는 하면서,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자신의 몸을 불태운 전태일과, 극악한 노동 조건을 견디지 못해 떨쳐 일어났던 여공들의 노동조합 운동은 왜 한 줄도 끼어들지 못하는가 말이다. 축약된 경제 성장의 과정을 거치느라, 결국은 드러나고 말았던 성수대교 붕괴에서 시작하여, 삼풍 백화점을 거쳐, 결국 세월호에 이르고야 말았던 부실한 대한민국 경제의 흔적은 왜 애써 그려내지 않은 것인지.

허긴, 남들에게 내 살아온 역사를 이야기 할 때 구차히 내 속의 구질구질한 것들을 끄집어 내기 싫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로지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잘 살기 위해, '경제적 동물'로 살아온 지난 날의 역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생각해 보았는가? 결국, 아비가, 어미가 니들을 키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으니, 이제 너희들도 국민소득 4만불의 시대를 향해 발에서 땀나게 다시 뛰어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뛰고 싶어도 뛸 곳이 없다는 젊은이들과, 뛰어보니 돌아오는 건 명퇴요, 폐업이라는 중년의 절망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물론 다큐는 3부 자식들이 만들어 갈 나라에서, 계층간 갈등이 심각해진 현재를 짚어보고, 이 해결책을 위해 독일의 사례를 끌어온다. 그리고 그 이유를 급격한 경제 성장이라고도 짚는다. 하지만, 그 경제 성장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극단적 갈등의 늪에 빠졌는지 짚어보지 않는다. 그저 부모들은 열심히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 애썼는데, 왜 이제와 너희들은 그러니? 라는 식이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말한다. 한 치의 반성도 없는 세대와, 그런 세대를 비판하는 세대 사이에, 무슨 대화가 이루어 질까?

그 좋다는 대화와 타협이 공허한 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럴듯한 해결 사례로 제시한 독일 비행장 활주로 건설, 결국 비행장 측은 소음 공해에 시달리는 주민들 각자에게 방음창과 방음 온실을 제공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 수십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법원의 판결이 바뀌지 않는 사회에서 선택지는 높은 굴뚝 밖에 없는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그런 사회에서도, 아비, 어미는 열심히 돈을 벌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공치사만 하고 있을텐가 말이다. 대화와 타협을 하라며, 강정 마을 해군 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벌금 폭탄을 
때리는 나라에서 도대체 대화와 타협은 어떤 식이어야 하는 것인지. 

만약에, <국제 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베트남에 돈을 벌러 간 것이 아니라, 참전 용사이고, 그곳에서 고엽제로 인해 평생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면, 그 영화가 천만 관객이 들었을까? 보고 싶은 역사, 양지의 역사만으로는, 2015년 대한민국을 양분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말이 좋아 국민소득 4만불이지, 젊은이들은 결혼과, 집과, 아이를 포기하는 3無시대, 계층격차가 심화되어 가는 시대에 대한 설명을 이룰 길이 없다. 다시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살면 국민소득 4만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입에 발린 희망과 타협과 대화로는 불가능한 미래이다. 

'아버지가 만들고, 어머니가 지어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가 된 경제적 논리 이면에, 정치적으로 독재로 점철되었던 핍박의 역사와, 그 가운데에서 가치를 외면받은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도 정확히 짚어야만 한다. 부모의 세대가 천착해 왔던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그들이 무지하고, 외면했던 '인간적 가치'에 대해 논하고 재정립해야, 저성장의 시대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용비어천가'식으로 노래하면 할 수록, 아이러니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고, 고달파지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만들고 어머니가 지은 나라'의 공허한 결론이다. 


by meditator 2015. 1. 20. 12:20

2014년 8월에 방영되었던 <야경꾼 일지>의 역사적 배경은 조선시대였다. 하지만 등장한 임금은, 해종, 실제 조선의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왕이었다. 왜 해종이었을까? 드라마 <야경꾼 일지>는 말이 사극이지, 왕실을 위협하는 귀신과, 그에 맞서 싸우는 황당무개한 이야기를 전개해야 했기에, 실제 조선에 실존했던 왕을 등장시킬 수 없었던 딜레마를, 해종이라는 가상의 왕과 그의 아들들을 통해 풀어나가고자 하였다. 드라마는 귀신이야기라는 환타지를 실존하지 않은 왕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빠질 수 있는 역사적 함정을 피해가고자 하였으나, 방영되는 내내 사극이라기엔 정체 불명의 이야기로 인해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해를 바꿔 2015년 1월 19일, 다시 월화 드라마로 또 한 편의 사극이 등장하였다. 바로 현고운 작가의 <빛나거나 미치거나>가 그것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고려 태조 왕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등장인물도,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그의 네번 째 아들 왕소(장혁 분), 사촌 동생 왕식렴(이덕화 분) 등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첫 회를 연 드라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실제 고려 역사에서 고려의 네 번째 왕이 되어, 왕실을 위협하는 호족들을 정리하고, 고려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전혀 다른 역사적 상상력을 펼친다. 태조 왕건의 네번 째 아들로 태어난 그였지만 (역사적으로는 세번 째 아들로 추측된다), 왕실에 피바람을 몰고 올 별자리를 가지고 태어난 덕분에 8살 때 궁궐에서 쫓겨나 금강산에서 홀로 자라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 리뷰> 이 악문 장혁, “이제 와서 날 부른 이유는 뭡니까” 이미지-1

 

하지만 실제의 광종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 역시 일개 호족에 불과했던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주변 호족들의 힘을 한데 모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이른바 '결혼 정책'을 통해 여러 호족과 인척 관계를 형성하며 고려라는 나라를 구성했다. 하지만, 막상 나라를 이룩하기는 했지만, 그가 그 과정에서 편의적으로 맺은 결혼이라는 관계를 통해 맞아들이 29명의 부인과 거기서 태어난 34명의 자식들이, 왕건 이후의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벌일 수 밖에 없는 비극을 잉태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고려 초는, 왕위 쟁탈을 둘러싼 왕자의 난이자, 그 왕자들의 후견인인 호족들의 전쟁이었다. 그런 상황을 종식시키고 왕권을 안정시킨 이가, 바로 다름아닌 광종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광종이 고려 초의 불안한 정국을 정리하고 왕으로 등극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바로 그의 외가, 당시 호족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충주를 대표한 유씨 집안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전혀 다른 궤도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광종이란 인물을 입지전적인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별자리라는 운명을 끌어들여 어린 시절 궁으로 부터 내처지는 인물로 그려내었을 뿐만 아니라, 외가의 절대적 후원에 힘입어 왕이 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성인이 되어 아버지 왕건의 부름을 받고, 궁으로 돌아온 그를 본 그의 모친의 반응은 다짜고짜 아들의 뺨을 때리며 아비의 목숨까지도 잡아먹으려고 궁궐로 돌아왔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린 시절 궁에서 버림을 받아, 아비를 끝끝내 황제라 부르던 왕소, (후의 광종)은 왕건의 처소를 위협하는 자객들이 들이닥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비의 목숨을 구하는데 앞장서고, 심지어 그 자객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의 오해도 풀지 않은 채 다짜고짜 아비의 목숨을 구하려는 아들이라니, 제 아무리, 피가 땡기고, '부자유친'이 우선인 고대 세계라 하더라도, 왕소를 신율을 만나게 하기 위한 장치로는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 더구나, 굳이 역사적으로 분명한 광종 대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까지, 끌어들인 상상력이 바다 건너 중국으로 가, 신율이라는 발해의 또 다른 버림받은 공주를 만나기 위해서라니, 사극 속 인물의 위상으로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역사적 상상력이라기엔 광종의 캐릭터가 허무맹랑함은 둘째치고, 최근 mbc사극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탈 역사적 장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해를 품은 달>이라는 가상의 역사극에서, 등장하여 재미를 본, 점성학이 그 이후부터, 사극의 중요 장치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쟁이들이, 등장인물, 그 중에서도 주인공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캐릭터로 등장한다. <야경꾼 일지>에서는 물론,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도 왕소의 운명은, 하늘의 뜻을 살필 줄 아는 지몽(김병욱 분)에 의해 달라진다. 하지만, 실제 고려는 불교 국가이다. 태조 왕건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불교적 교리에 따라 유언인 '훈요십조'를 남긴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의 재위 당시, 전통적 민속 신앙의 재례였던 '팔관회'마저 불교적 내용으로 개편하여 국가적 행사로 만든 이가 다름 아닌 태조 왕건이었다. 그런데, 그런 태조 왕건은,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편의적으로 점성학을 믿는 황제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편의적인 사극의 장치들이, 단지 과거의 이야기란 이유만으로, 등장인물들의 삶을, 운명론적인 세계관으로 끌어들이고,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점성학'의 타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매번 사극의 주요 동인을 운명론적 역사관으로 끌러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지점이다.

 

운명론적인 역사관만이 아니다. 고려 초의 의복에 대한 고증은 해봤는지 의심스러운 정체 불명의 복식에서 부터, 사극만 하면 익숙하게 등장하는, 두건을 둘러쓰고 궁궐의 담을 마구 질주하는 괴적의 무리들에, 중국하면 편하게 차용되는, 중국 무협 영화에서 익숙한 주점의 모습 등이 어느새 우리 사극의 클리셰가 되어가고 있는 지점도 아쉽다.

 

과연 이렇게 역사적 상상력이라기엔 왜곡에 가까운 역사적 인물을 애써 차용하면서 까지 첫 회를 선보인 <빛나거나 미치거나>가 과연, 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저 왕소와 신율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기 위해, 이 많은 역사적 장치들이 필요한 것이라면, 역사가 너무 소모적이지 않은가 우려가 된다.

by meditator 2015. 1. 20.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