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 후, 함께 본 아들에게 물었다. 애플의 로고인 사과가 앨런 튜링을 상징하는 건 줄 알았냐고. 하지만 아들들은 금시초문이었단다. 

1976년에서 1998년까지 어언 20년 동안 애플의 로고는 무지개 빛의 한 입 베어 문 사과였다. 그리고 그건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 앨런 튜링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로 낙인이 찍혀 강제로 화학적 거세 치료를 받던 중 앨런 튜링은 스스로 청산가리를 묻힌 사과를 베어물고 목숨을 끊었다. 사과의 무지개 빛은 성적 소수자의 상징 색이며 게이였던 앨런 튜링을 의미한다.

영화<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대전 중 암호 해독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전쟁 후 국가에 의해 버림받다시피 방치되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천재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가 종료된 후 자막으로 설명하다시피 영국 정부는 2009년에야 앨런 튜링을 동성애자로 몰아부친 것을 사과했고, 2013년 영국 여왕은 그를 사면했다고 한다. 그 오랜 기간 앨런 튜링은 역사의 바깥에서 쓸쓸히 사라진 한 사람의 천재일 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인공 지능의 창시자와 같은 앨런 튜링을 추모하기 위해 그를 상징하는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자신이 만든 컴퓨터에 로고로 사용했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낸다.
영화의 시작은 뜻밖에도 전쟁 후 홀로 연구에 몰두하는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베치 분)의 집에 든 도둑을 잡기 위해 들이닥친 경찰들에게서 시작된다. 전후 냉전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교수 출신의 정체모를 앨런 튜링은 스파이 색출에 열성적인 한 경찰의 눈에 걸린다. 그의 지난 흔적을 찾아보지만 찾으면 찾을 수록 의심만 더해져, 결국 앨런 튜링은 경찰서에 잡혀오게 된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죄목은 남자를 성매수한 혐의. 자신을 결국 엉뚱한 죄목으로 경찰서로 끌려오게 만든 경찰과 심문 테이블에 앉은 앨런 튜링은 지금부터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는 2차 대전 중으로, 동시에 앨런 튜링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독일군의 도발에 고전하고 있는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 세력, 그 이유 중에는 1590억의 10억배의 암호 조합을 가진 독일군의 암호 퍼즐 애니그마에 무기력한 영국군의 정보력에도 있었다. 그 일을 집중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레츨리 파크', 그곳에 앨런 튜링은 스스로 찾아든다. 
하지만 날마다 달라지는 독일군 암호 퍼즐을 풀기 위해 만들어진 정보 해독팀에 합류한 앨런 튜링은 퍼즐을 풀기위해 고심하는 동료들과 달리, 근본적으로 암호 체계를 분석하는 '튜링 머쉰'을 만들고자 하여 갈등을 빚는다. 

단지 해독의 방식을 달리할 뿐만 아니다. 앨런 튜링이 스스로 고백하듯, 그가 바라본 세상 사람들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소통하기에 앨런 튜링은 더더욱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즉, 동료들은 점심 시간이 되자, 앨런 튜링에게 말한다. 우리 샌드위치 먹으러 갈려고 하는데? 이 말의 속뜻은 '함께 점심 먹으로 가지 않을래?'이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대화의 속뜻을 이해할 수 없는 앨런 튜링은 그저 '샌드위치 좋아하지 않는다'며 되풀이 대답할 뿐이다. 그의 그런 담백한 대답을 이해 할 수 없는 동료가 그에게 등을 돌렸을 때 그는 뒷북을 친다. '나 지금 배고픈대.' 

영화는 성적 소수자로서의 앨런 튜링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세상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없는 그의 면모를 부각시킴으로써 그의 '다름'을 설명하고자 한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는 잘했지만 다른 학생들과 소통할 수 없어 놀림감이 되곤 했던 앨런 튜링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 게이로서의 '다름'이나, 학우들 혹은 동료들과의 소통할 수 없는 '다름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다름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2차 대전 시 영국에서 여성이라는 존재의 '다름'도 마찬가지다. 

그가 자신이 창안한 기계에 이름을 붙였던 '크리스토프', 그를 인정했던 유일한 친구, 그래서 그가 사랑했던 친구 크리스토프는 앨런 튜링에게 말한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니까.'라고. 
그리고 그 말을 앨런 튜링은 당시 '지적인 사회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인식되던 사회적 존재였던 여성인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에게 똑같이 전한다. 
영화는 일찌기 학창 시절부터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그래서 여전히 사회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존중받을 수 없는 '캐릭터'인 앨런 튜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결국은 동료들조차 설득해내며 크리스토프를 성공시켜 대 독일 암호 해독전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또한 그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또 하나의 전쟁'넘어, 성적 소수자들이 벌이는 '또 다른 전쟁'을 묵묵히 그려나간다. 

친구들에게 놀림받던 앨런 튜링을 시한부 생명의 크리스토프가 알아봐주었듯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시험볼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조안에게 앨런은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녀의 탁월한 능력을 살려내기 위해 그녀의 부모님을 설득하고, 심지어 그녀와 결혼까지 감행한다. 
게이이며 도무지 사회적 소통 능력이라곤 없는 그가 끈질긴 연구에 대한 집념으로 동료들을 설득해 내었듯이, 조안 역시 여성이라는 성적 특수성을 넘어 뛰어난 수학자로서 해독팀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독일의 애니그마를 해독하는 기계 크리스토프을 성공시킨다. 



당신이 평범하지 않기에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된 걸요
크리스토프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을 세상에 널리 알리지 못한 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마치 독일군의 암호 체계에 농락당하는 양 '이미테이션 게임'을 하며 전황을 유리하게 끌어가야 했던 앨런 튜링의 팀은, 전쟁 후 그들이 했던 모든 성과물을 태워 없애 버렸듯이 역사의 행간 속으로 소멸되어져 간다. 그리고 쓸모가 없어져 버린 개를 삶아 먹듯이, 그 팀의 대표적 인물 앨런 튜링은 간첩 혐의를 받아, 그 조차도 여의치 않으니 남창 혐의를 씌워 화학적 치료를 받는 처지에 이른다. 

앨런 튜링이 합류한 암호 해독 팀에서 스파이 색출 사건이 벌어진다. 알고보니 범인은 뜻밖의 인물이었고, 영국 정보부는 그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후 뜻밖에도 앨런 튜링이 잡혀간 계기는 스파이 혐의. 이것은 국가를 위협하는 스파이조차, 자신들의 구미에 따라 이용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것이 국가라는 것을 드러내며, 결국 '스파이'라는 국가적 범죄조차도 사실은 자의적 '도그마'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필요에 따르면 게이는 물론, 사회적 부적응자, 여성조차도 이용하던 정부가, 그들이 필요로 되지 않을 때, 얼마든지 소모품 취급하며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그려낸다. 조안이 위해를 당할까 그녀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종용했던 앨런 튜링의 간곡한 부탁은, 결국 앨런 튜링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을 통해, 국가 권력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3월 3일을 기준으로 <킹스맨>에 이어 박스 오피스 2위을 차지하며 120만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여전히 '좌빨'이라는 프레임이 먹히며, '성적 소수자'의 폄하가 비일비재한 한국 사회에서, 앨런 튜링의 업적을 넘은, 사회적 소수자의 비극적 삶을 다룬 실화가 꾸준한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by meditator 2015. 3. 4. 10:25

첫 아이를 낳은 엄마는 아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기성 세대의 육아 방식이 마땅치 않은 엄마는 '책'에서 육아의 길을 구하고자 했다. 그때 읽은 여러 육아 서적들이 있지만, 지금도 기억이 남는 것 중 하나는 아이에게 심심해할 시간을 주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를 홀로 놔두면 왠지 미안해 한다. 엄마가 뭐라도 아이에게 '교육'을 시켜 주어야 할 것 같은 강박 관념까지 가진다. 하지만 그 육아 서적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아이가 '심심해' 하면서 뒹굴거리는 순간, 아이의 뇌세포는 가장 활성화된단다. 스스로 '심심해'하면서 머리를 굴리는 그 순간, 아이 속에서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저 세상 숱한 교육 이론 중 하나이겠지만, <영산도 섬소년-바다의 노래>을 보면, 그 시절 그 육아 서적의 '지론'이 떠오른다. 그리고 새삼 '교육'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교육이 무엇일까 반문하게 된다.

 

영산분교 전교 일등 최바다는 외로움을 크는 아이이다. 남도 끝자락 흑산도에서도 배로 십 여분을 더 가야만 하는 영산도의 학교, 영산 분교의 유일한 학생은 최바다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최바다가 전학을 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영산 분교에는 이 최바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한 분 뿐이다.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싶은 선생님과, '국어'와 수학 대신 체육이나 하고 싶은 최바다 학생은 오늘도 실랑이를 벌이며 하루 해를 보낸다.

 

애초부터 영산분교에 이렇게 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영산 분교 1회 졸업생인 이 영산도의 보물 영산분교도 한때는 70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흑산도에서 떨어진 외딴 섬 영산도의 사람들이 자꾸 떠나가고, 얼마 전 6학년 졸업생 세 명이 졸업을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산분교에는 4학년 최바다만이 홀로 남았다.

 

섬에 닿는 여객선의 도선 작업을 돕고, 낚시하러 온 손님들을 상대로 낚싯배를 운영하는 바다 아버지와 무릎이 아픈 할머니, 그리고 바다, 이렇게 바다네 식구들은 세 사람이다. 엄마는 6개월된 젖먹이 바다를 두고 떠났다.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어른들은 영산 분교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홀로 남은 바다가 안스럽다. 그런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바다는 자기가 2년만 더 버티면 된다며 의젓하게 말한다. 그런 속내에는 오랫동안 외로움에 시달린 소년의 또 다른 속내도 숨어있다. 목포로 전학을 생각해 보라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자주 볼 수 없어 싫다는 바다는, 낯선 타지에서 모르는 아이들 속에서 또 다시 외톨이가 되느니 여기서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났다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라면을 다섯 개씩 혼자 먹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에 몰두하는 바다에겐 가족과의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러나 하룻밤 다녀간 사진가 선생님과의 이별에서 '눈에 물이 들어가듯이' 소년의 외로움은 쉽게 허물어 진다.

 

이렇게 외로움이 깊은 소년의 유일한 친구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이자, 그와 온종일 놀아주는 친구이자, 동네 어른들이 바다을 버릇없게 만든다고 잔소리를 할 만큼 외로운 바다의 모든 것을 헤아리며 받아주는 속깊은 어른이기도 하다. 군대를 가기 전에 부임하여 군대를 다녀와서도 다시 영산 분교를 지원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 선생님은 바다처럼 선택의 기로에서도 다시 영산분교에서 바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갓 들어온 조기 입학생과 바다를 가르치다 격무에 시달려 고열로 쓰러질 정도로 책임감을 가지고 학교를 지킨다. 대체 근무할 선생님이 없어 일주일 앞서 퇴원을 해야 하는 것도 선생님의 몫이지만, 선생님은 선한 미소를 띠며 영산 분교로 돌아온다.

 

▲ MBC <MBC 다큐스페셜> ⓒMBC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을 앞세우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바다와 선생님의 놀이인지, 공부인지 모를 교육 현장은 헷갈린다. 더구나 친구도 없는 당연히 전교 일등이 되는 단 한 명의 학생이라니! 기껏 신입생이라고 들어왔는데, 바다와 다섯 학년이나 차이가 나고, 이 아이를 가르치면 저 아이가 놀고 있고, 저 아이를 가르치면 이 아이가 놀고 있는 콩가루같은 교실은 하나라도 도 내 아이의 몫을 놓칠세랴 눈을 번득이는 도시의 부모들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다. 심지어 대체 근무할 교사 자원이 없어 선생님이 아픈 동안 학교는 자연 휴교다. 아마도 당연히 정상적인(?) 부모라면 '전학'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게 목포로 가 공부를 하라는 바다 아버지는 자기보다도 바다가 더 낚시를 잘 한다며, 바다가 저렇게 바다를 좋아한다면 그냥 이렇게 이곳 영산도에서 살도록 둘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단 한 명의 전교생인 영산분교생인 바다에게 목포로 나갈 것을 권하다가도 바다가 머문다니 다시 홀로 학교에 남긴다.  영산 분교 소풍날이면 바다가 외로울 까봐 온동네 어른들이 바다와 함께 소풍을 간다. 조촐한 동네 잔치가 되는 것이다. 바다를 보살피는 정상호 선생님에게는 세상에 저런 선생님이 없다며 선생님이 방학을 맞아 뭍으로 갈라치면 동네 잔치를 벌이는 마을 분들이다.

 

그렇게 친구는 없지만 함께 소풍을 가주는 동네 어른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바다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선생님,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도 없고, 친구도 없어 외로운 바다는 카메라가 지켜보는 2년 동안 성숙해 간다. 애초에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함께 공을 찰 아이들이 없어 축구를 포기하고 대신 카메라를 벗삼은 바다는 도시의 아이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영산도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얼굴과, 영산도의 섬세한 자연을 배운다. 노인들만 그득한 영산도에서 유일한 초등학생인 바다는 도회로 공부하러 간 동네 누나의 친절을 기억하고, 그 집 할머니를 도우면서, 자신들을 가르치느라 제대로 아프지도 못한 선생님의 마음의 헤아리며 철이 든다. 카메라가 지켜보는 2년 동안 혼자 라면을 먹으며 게임에 몰두하던 철부지 소년은 어느새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젓한 소년으로, 공부를 땡땡이 치던 소년은 혼자 영산도의 자연을 '시정' 넘치게 담는 꼬마 사진사로 성장한다.

 

컴퓨터를 공부하다 보면 하드에 가급적이면 적은 용량을 담아야 컴퓨터가 원활하게 돌아가며 오랫동안 고장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배운다. 우리의 교육은 하다못해 컴퓨터 만도 못하다. 잔뜩 지식을 찔러넣어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와 같은 아이를 지향한다. 바다는 아주 깨끗해서 언제라도 무한한 기능을 펼칠 수 있는 컴퓨터와도 같다. 도시의 교육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연의 처지조차 저버린 채 외로움 속에서 자란다. 하지만 그 외로움조차도 그를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어른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바다처럼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영산도 섬소년-바다의 노래>는 증명해 낸다. 2년에 걸친 바다의 성숙만으로도 홀로 영산분교를 지키는 정선생님의 보람은 충분하다. 비록 더 좋은 근무 환경과, 더 많은 아이들의 선생님 노릇을 할 수는 없지만, 단 한 마리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양을 구하러 떠난 양치기의 사명을 영산분교 분교장 정상호 선생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영산도 홍보 책자에 실려 어떤 훌륭한 사진가의 작품이냐는 질문을 받을 수준에 이른 바다의 사진 작품 전시를 끝으로 마무리된 섬소년 바다의 이야기, 아들에게 사진전을 선물한 아버지는 사진에 대한 바다의 추억이 그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저 남도 끝자락 영산분교 외로운 소년 바다와 그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교육'의 본질을 되돌아 보게 한다.

by meditator 2015. 3. 3. 06:04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3.1절 프로그램들이 찾아왔다. sbs스페셜은 조선의용대의 마지막 분대장 김학철씨가 돌아가시기 까지 최후의 몇 개월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1938년 약산 김원봉에 의해 창립된 조선 의용군은 해방의 그날까지 일본군에 맞써 싸웠던 무장 독립 단체이지만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독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남과 북 모두에게서 외면받았던 단체이다. 그 단체의 최후의 분대장으로 끝까지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애썼던 김학철씨의 마지막 여정을 담는다. 또한  sbs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신분인 기생들이 일제 앞에 나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기생 독립단'사건을 다룬 <꽃들의 저항, 기생 만세 운동>을 특집 다큐로 제작 방영한다. 김구 선생이 '건국 영웅'이라며 자신의 책에서 밝혔던 기생들은 보석과 패물을 팔아 독립 자금을 댔으며, 자신의 피로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 선언물 수천장을 뿌리며 일제에 맞섰었다. 

특히 이번 3.1절 특집 프로그램 중에 돋보인 것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일제에 저항하며 '수요 집회'를 열고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화한 것이다. mbc라디오는 1939년 통영에서 일본군 강제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섯 소녀들의 이야기를 <나는 후미코가 아니오>를 통해 그려낸다. 여섯 명의 소녀들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중 다섯 분이 돌아가시고, 단 한 분, 김복득 할머니만 생존해 계시다. 김복득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일본의 진정성있는 사과를 받는 일.김복득 할머니의 증언과 주변인의 인터뷰를 모아, 나문희씨의 나레이션에 얹어 광복 70년의 의미를 되새긴다. 

기사 관련 사진
▲ 눈길
ⓒ kbs



풍성한 특집 속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
mbc 라디오에서 실존 위안부 할머니의 육성을 통해 일제의 참혹한 만행을 전달하고자 했다면, kbs 1tv는 특집극 <눈길>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그린다. 드라마 속 위안부 할머니들은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다. 한 마을에 살던 번듯한 집안의 공부 잘 하던 소녀 영애와, 그녀를 동경하고, 그녀의 오빠를 마음에 품었던 가난한 소녀 종분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똑똑한 소녀 영애(김새론 분),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독립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주재소로 끌려간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 때문에 오빠도 징용으로 끌려가고, 황국 신민으로 앞장서던 영애도 마찬가지 처지에 이른다. 
영애가 아버지로 인해 근로 정신대에 자원했다면, 종분(김향기 분)은 그런 영애를 부러워하면서 자신도 영애를 따라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어준다는 정신대에 자원하겠다고 나섰지만 동생을 돌보라는 엄마 말에 그만 주저않고 만다. 하지만 그날 밤 종분의 집에 쳐들어온 정체 모를 무리의 남자들은 종분을 끌어가 정신대 무리에 던져 버린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 그 소녀의 오빠랑 결혼하는게 꿈이었던 소녀, 이렇게 한 마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소녀들은 일본군 막사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겠다는 영애를 다독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자며 다독이는 종분, 두 소녀들은 죽음보다 비참한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며 슬픈 우정을 키운다. 
거듭된 패전으로 이오지마로 퇴군해야 하는 일본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그만 영애는 목숨을 잃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온 종분, 하지만 그토록 그리던 엄마와 동생은 죽거나 그녀를 찾아 실종된 상태다. 심지어 정신대를 다녀왔다는 소문은 고향에서 조차 그녀를 밀어내고 만다.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들은 238분이시다. 그 중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이제 53분만이 생존해 계시다. 생존해 계신 분들도 고령으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상황이다. <눈길>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할머니들, 한때는 꿈많은 소녀였던, 아직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던 아이였던 그 청춘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나라를 빼앗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의 꽃다운 시절조차 강탈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죽음보다 못한 삶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기사 관련 사진
▲ 눈길
ⓒ kbs



현재형으로 이어지는 위안부 할머니의 역사
<눈길>은 노인이 된 종분(김영옥 분)이 여전히 고향을 등지고, 도시의 지하 단칸 방에서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뜨개질로 근근히 생활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자다 끌려가는 바람에 종분이란 이름조차도 지킬 수 없었던 그녀, 친구 영애의 이름으로, 그래서 아직도 그녀 곁을 맴도는 영애의 영혼과 함께, 외롭게 노년의 삶을 이어간다. 
그런 그녀의 곁에 등장한 불량 소녀 장은수(조수향 분)가 등장한다. 가족이 없어 보살핌을 받지 못한 소녀 은수, 그런 은수를 사회조차 보듬어 주지 않는다. 그렇게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소녀 은수를 통해, 일제 시대 역시나 그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두 소녀의 처지에 공감을 불어넣는다. 그녀들도, 어쩌면 은수처럼, 그리고 은수도 그녀들처럼, 한참 철없을 나이였고, 꿈많을 나이였지만, 어른들의 보살핌을, 사회의 보살핌을, 나라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꿈많을 시절을 강탈당하고 만다고. 

<눈길>은 위안부의 일을 다루지만, 그 일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꿈많을 소녀들 두 사람에 집중한다. 그들이 일제 시대라는 시대적 압박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꿈을 잃고, 삶을 잃어가게 되었는가를 통해, 위안부라는 직접적 묘사 이상의 공감을 설득해 간다. 왜 아직도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수요 집회를 이어가고 계신가를, 드라마는 소녀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형상화해나간다. 그것은 돈이나, 그럴 듯한 몇 마디 형식적 말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는 그녀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시간이었음을 굳이 강변하지 않아도, <눈길>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홀로 살아가던 종분은 이웃집 소녀 은수를 통해, 돌보아 주지 않아 일제에 의해 짓밟혔던 지난 시간을 새삼 복기하게 된다. 그래서, 은수의 손을 잡아, 은수의 편을 들어 비로소 종분의 목소리를 낸다. 은수를 이용하고 방치한 어른들을 향해, 그 시절 자신을 짓밟았던 일제에게 했어야 할 분노를 비로소 끄집어 낸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방치된 소녀 은수와, 역사적으로 방치된 소녀였던 종분은 손을 잡는다. 시간을 거스른 '연대'이다. 오늘날 일본은 물론, 우리조차도 곁등으로 흘려버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우리 사회 속 외면받은 은수와 같은 소녀들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드라마는 각인시킨다. 이는 드라마 소개에서 밝히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베트남 성폭력 피해자들의 손을 잡은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도 반성하고 되새김질 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잘못된 역사에서라면 언제나 되풀이될 이야기라고 말하며 드라마는 끝맺는다. 이렇게 <눈길> 속 위안부 할머니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그녀들이 이제 우리 앞에 할머니의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그녀들의 삶도 과거형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처럼, 그 역사 역시 과거형으로 마무리될 역사가 아니라고 드라마는 강조한다.

은수의 손을 잡아 준 종분, 그런 종분에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준 종분에게, 은수는 말한다. 종분이 은수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듯이, 은수 역시 종분의 분노를 대신 드러내 준다.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은수를 통해서 자신을 비로소 찾아낸 종분은 오랫동안 빌려 쓴 영애의 이름을 돌려주고, 자신의 이름을 비로소 찾는다. 영애와의 오랜 우정이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by meditator 2015. 3. 2. 10:02

mbc는 2월 22일과 28일에 걸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것은 'UCC(user created contents)가 가장 진화한 형태인 1인 방송'을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한 개인이 '아프리카 TV'등을 통해 자신만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개인의 시청자들을 끌어모아 인테넷을 넘어,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여 지게 된 컨셉을 과감히 예능 콘텐츠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결국 이 프로그램의 관건은 사람들이 흔히 인테넷 방송을 통해 느꼈던 재미는 물론, 그것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화 했을 때의 소통으로 제대로 확장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렸다. 

첫 선을 보인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하 마리텔)>은 여섯 개의 작은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여섯 명의 출연자들을 제한 시간을 두고 그 스튜디오에서 각자 1인 방송을 하도록 한다. 또한 이들의 방송은 다음 팟을 통해 실시간 생방송으로 방영되어, 
그리고 외식 사업가 백종원, 방송인 김구라, 김영철, 가수 홍진영, 정준일, AOA초아 등이 첫 출연자들로 합류했다. 


마리텔을 대하는 여섯 가지 자세 
이들이 <마이텔>에 대하는 자세는 저마다 제 각각이다. 시작 버튼을 누르지 못해 시작부터 어설픔을 드러냈던 정준일이 있는가하면, 프로그램 중 옷을 갈아입는 것 조차 마다하지 않으며 고군분투 며칠 동안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리는 등 화제가 된 초아도 있다. 
김구라는 최근 화제가 된 개인의 신상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며 '트루 스토리'를 내건다. 또한 자신이 자신있는 올드팝을 소개하는가 하면 일신상의 문제로 인해 앓게 되었던 공황 장애를 예을 들어 중년의 건강을 화두로 삼아, 자신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까지 초빙한다. 
백종원은 외식 사업가로 알려진 그의 유명세 뒤에 가려진 쉐프로서의 면모에 충실한다. 가볍게 오이 볶음, 계란 말이에서 부터 시작하여 닭볶음탕, 간짜장까지 다종다양한 요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다. 
영어하는 개그맨으로 이름을 날린 김영철은 역시 자신의 특기인 영어를 들고 나온다. 'actually' 등 을 통해 실제 영어와 한국적 영어의 갭을 설명하며, 실용적인 영어 강의를 풀어 나간다.
이미 개그감이 있는 가수로 널리 알려진 홍진영은 자신의 강점을 발휘한다. 인터넷 방송에 맞게 먹방에서 부터, 댄스 등 다종다양한 장기를 선보이고자 한다. 
정준일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호소력있는 그의 노래로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초아는 화제의 걸그룹 aoa의 후광을 넘어, 민낯에서부터 '고양이'같은 애교있는 외모를 탄생시킨 화장법에서 부터,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소화해내는 가창력가지 뽐내며 가장 화제성있는 출연자가 되었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플랫폼과, 그것을 다시 공중파 예능의 콘텐츠로 걸러낸 <마리텔>은 두번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성과 숙제를 남겼다. 
무엇보다, 1인 방송이라는 인터넷 방송의 포맷을 어떻게 살려내는가의 문제이다. 시작은 '창대하게' 여섯 명의 출연자가 여섯 가지의 콘셉을 가지고 시작하였지만, 막상 실시간 접속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노잼'으로 나오거나, 프로그램이 종영할 즈음에는 백종원의 '요리'를 제외하고는 각 컨텐츠의 특성도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 차별성조차 두드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정규 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 출연자의 차별성있는 콘텐츠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김구라의 방송이나, 김영철의 방송은 그 자체로 재미가 있었고, 심지어 유익하기 까지 했지만, 정작 실시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에서 보여지듯이, 이런 개인 방송에 접근하는 시청자층의 특성이 연령대나 관심 분야에 한계가 있다는 면에서 또한 프로그램의 과제로 남겨진다. 결국은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먹방'이나, 아이돌의 민낯이나 망가짐이 관심을 끈다면, 결국은 인터넷 방송의 폐해라고 하는 자극적인 경쟁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인터넷 방송의 묘미인 실시간 시청자들과 1인 bj간의 소통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결구 <마리텔>이란 프로그램의 특성인데, 그 면에서 역시 아직 <마리텔>은 숙제를 남긴다. 실시간 시청자들의 반응을 전달하기 위해 프로그램은 말 풍선이나, 접속수에 따른 벌칙 등을 도입해 그 반응을 전하기에 고심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가장 큰 관건은 bj들이 시청자들과 얼마나 호흡하는가가 인터넷 방송의 묘미인데 이런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한 출연자들은 그 점에서 미흡했다. 시청자들이 '노잼'이라는 반응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실시간 시청자들의 세세한 반응에는 둔감했다. 오히려 백종원이 요리를 하면서 자신이 볶은 간짜장을 '아스팔트'라 지적한 시청자들의 반응에 자연스레 반응한 반면, 초아 등은 그저 자신이 준비해온 것을 보여주는데 급급하여, 실시간의 '호흡'을 간과했다. 



신선한 시도가 고정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1인 bj의 방송을 도입, 예능의 새로운 영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마리텔>은 신선했다. 그 신선한 시도만큼 화제도 되었다. 하지만, 첫 회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과 달리, 2회에 이르러서는 결국 백종원의 '요리'만이 득세를 하는, 마지막 즈음에는 모두가 손을 놓다시피한 컨셉에 대해서는 좀 더 다각적인 고민과 시도가 필요할 듯하다. 
시청률 1위의 수상 상품이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1분 역시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1분을 자신의 아내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으로 승화시킨 백종원이 있었기에 특별한 1분이 되었다. 

정작 인터넷 방송의 시조라 했던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에서 장기였던 '욕'을 버리자 평범해져 버렸고, 예능에서 입담으로 날렸던 김영철이나 홍진영은 고전했다. 트렌드인 '요리'를 통해 자신만의 장기와 평범한 1분 소개 시간에서도 진심을 끌어낸 백종원같은 출연자, 그리고 단박에 시청자들의 눈기를 사로잡았던 초아와 같은 출연자가 화제가 되었다는 점, 그것이 <마리텔>의 묘미이자, 숙제이다. 
by meditator 2015. 3. 1. 13:13

평균 시청률 13.3%(닐슨), 동시간대 공중파, 케이블, 종편을 통털어 1위, 바로 신드롬급의 인기를 매주 이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차줌마'차승원이 해내고 있는 음식들이 화제가 되고, 차승원, 유해진누리고 있는 <삼시세끼>어촌편이 이뤄내고 있는 기록들이다.

, 그리고 새로이 합류한 손호준등이 보이고 있는 인간적인 매력에 대한 극찬이 이어진다.

 


 

<삼시 세끼> 어촌 편의 매력

<삼시 세끼> 어촌편은 <삼시 세끼> 농촌 편에 이어 말 그대로 삼시 세끼를 해먹는 프로그램이다. 농촌으로 간 이서진과 옥택연이 그들이 함께 했던 드라마에서처럼 형제애를 보이며 매주 방문하는 게스트들과 함께 정선 텃밭에서 거둬낸 자연 먹거리로 '삼시 세끼를 해먹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어, 만재도로 간 어촌편은, 텃밭 대신, 보다 광활한 바다라는 '텃밭'을 이용하여 삼시 세끼를 꾸려나가야만 했다. 처음 출연자로 정해졌던 장근석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자진 하차하면서 과연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만의 조합으로 프로그램이 제대로 풀려 나갈 수 있을까란 우려가 무색하게 어촌편은 '농촌'편을 뛰어넘는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어촌으로 간 두 남자 차승원과 유해진은 '브로맨스'를 넘어 아예 대놓고 '차줌마'에, '참바다씨'라며 부부 코스프레를 한다. 거뭇한 콧수염에 몸에 착 달라붙은 스키니한 올 블랙 의상에도 무색하게 손이 마를 사이 없이 끼니를 챙기는 차승원에게 이제 더 이상 '차줌마'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다. 그런가 하면 벌써 고기를 못잡은 지 여러 날 되건만, 매번 허탕을 치면서도 바다를 향하는 '참바다'씨 유해진은 능력없지만 사람 하나는 좋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 딱 그대로 이다. 그들은 분명 남자와 남자지만,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는 우리네 엄마 아빠보다도 더 엄마 아빠같다. 이제 거기에 말 잘 듣는 착한 아들 손호준까지 가세하고, 애완견 산체와 애완 고양이 벌이까지 합세하니, 금상첨화다.

 

이렇게 가족이 된 <삼시 세끼>의 세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마치 그들이 우리의 가족이나 친지라도 되는 것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더구나 만재도라는 육지에서 6시간이나 떨어진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바다에서 나는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갖가지 먹거리는 물론, 화덕을 만들어서 까지 구워낸 빵에, 도시에서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토마토 케첩까지 만들어 내는 삼시 세끼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만큼의 정성들이 느껴져서 더더욱 그들이 남같지 않다. 까짓 도시에서는 그냥 때우면 그만인 끼니에 온갖 정성을 들여 섬이라는 조건을 뛰어넘어 가족을 위한 만찬을 차려내는데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가족애'를 새삼 느끼게 되어 뭉클해진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정우

이렇게 사람들이 어느덧 차줌마와 참바다씨, 그리고 착한 아들 손호준을 '우리'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삼시 세끼에 위로를 받으면서 부작용도 발생한다. 그들의 진정어린 삼시 세끼에 어울리지 않는 혹은 거스릴는 것들, 혹은 인물에 대해, 마치 우리 가족을 모욕하는 것과 같은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양'이 된 것은 바로 지난 주와 이번 주에 걸쳐 출연한 정우였다.

 

아마도 차줌마네 가족에 대해 그렇게 '애착'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정우'가 보인 행동들이 경상도 남자의 투박한 행동으로 치부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재도와, 거기에 깃들인 차줌마네 가족, 그리고 거기서 묘기에 가까운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차줌마에 대해 '감탄'을 넘어, '감동'을 느끼고 있는 즈음, 그런 배경 지식이 없이 단 하루 동안 만재도를 방문한 정우의 무심한 행동들에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정우의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배를 타고 온 속에 제 아무리 손호준이 설명을 곁들였어도 그 '빵'을 먹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냥 '빵'이 아니라, 장발장의 눈물겨운 빵 못지 않은 히스토리를 가진 차줌마의 빵이었기에 그런 정우의 거부가 불쾌함을 불러 일으켰다. 그저 선배의 동정이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에, 아마도 <응답하라 1884>가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그 즈음이라면 '쓰레기'처럼 눈치없는 정우라며 예능에 서투르다고 넘겨 주었을 지도 모를 질문 하나에도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더구나, 그가 출연했던 영화가 구설수에 얹혀 관객들의 반응조차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결국은 '홍보차' 방문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가족'인데 우리 가족을 자기 홍보에 이용하고자 오면서, 태도마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엄마가 잔뜩 고생해서 손님을 대접하려고 하는데, 나이도 어린 손님이 집에 와서 어른 대접도 안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비춰졌던 것이다.

 

그런 논란이 부담이 된 듯 27일 방영분에서는 어떻게든 미운 털이 박힌 정우를 보다듬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음 날 바로 차승원과 함께 떠나야만 하는 정우에게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설겆이를 해도, 이제야 분위기를 알아챈 듯 차승원 말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봐도, 손호준에게 아쉬움을 문자로 전해도, 이미 그 전회에 박힌, 지난 한 주 동안 그의 행동으로 인해 숱한 게시판을 달구었던 그 논란이 잊혀지기엔 역부족이었다. 언제나 나영석 피디가 해왔던 방식으로, 이서진이나 이승기, 그리고 윤상이 그랬듯이, 논란을 일으키고 반전 매력으로 그것을 뒤짚는 식으로 정우를 그려내보고자 했지만 그러기엔 지난 한 주를 달구었던 '정우'논란을 뒤엎기에 27일 정우의 분량을 너무도 미비했다.

 

오히려 27일 방영분은  '엄마없는 하늘 아래, 휴일을 만끽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유있는 하루'에 방점이 찍혔다. 정우는 일찌감치 사라져 버리고, 정우의 존재를 넘어, 하루를 비우면서도 노심초사하는 엄마 차승원과, 그런 엄마의 우려는 아랑곳없이, 엄마없는 여유에 한없이 자유로운 아버지와 아들의 한가로움이 시선을 잡는다. 결국 정우는 홍보하러 왔다가, 홍보는 커녕, '쓰레기'로 쌓은 이미지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고 돌아가 버린 셈이다.

 

 


 

<삼시 세끼> 가족주의의 함정

실제 정우가 어떤 사람일 지는 모른다. <삼시 세끼>의 정우는 지극히 제작진에 의해 편의적으로 편집된 화면에 의해 조장된 이미지이다. 그의 진심과, 진면모와 상관없이, 우리가 된 차줌마네 가족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다, 가족에게 민폐만 끼치고 떠난, 객식구 노릇만 하고 사라진 것이다. <삼시세끼> 농촌 편이 이서진과 옥택연이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주인에, 그보다 나이가 많았던 대부분의 게스트들로 서열이 역순이었다면, <삼시 세끼> 어촌편은 이제는 방조차 각 방을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 두 분을 모시고 하는 수직적 가족 관계의 예능인 것이다. 정우의 문제라면 그런 분위기와, 그런 분위기에 대한 시청자의 열광적 반응에 대한 사전 준비없이, 6시간 걸려 고생하며 배를 타고 하룻밤을 머물다 간 것이다.

 

여기서 지난 한 주 내내 달궜던 논란이 어쩌면 그저 정우란 사람이 '다른' 것인데, 그것을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데, 제작진이 강조한 '가족주의'가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이면에 흐르는 선후배간의 엄격한 서열 또한 무시하지 못할 노릇이다. '가족주의'든 '선후배 문화'든 결국은 그 본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철저한 '우리'라는 높은 울타리이다. 조금이라도 '우리'와 다를 것 같으면 밀어내어 버리는 철벽같은 '우리'말이다. <삼시 세끼>어촌편은 농촌편에 이어, 퍽퍽하고 여유없는 우리 삶에 제대로 쉼표를 찍어주는 휴식같은 예능이다. 또한 '먹기 위해 사는' 삶의 본질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가족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가 애착을 가진 것들에 대한 복귀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우리'에대한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되돌아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5. 2. 28. 06:53

2월 25일 kbs2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첫 회부터 요란뻑적지근했다. 

안국동 강선생이라 불리워지는 요리 선생 강순옥(김혜자 분) 여사의 두 딸 김현숙(채시라 분), 김현정(도지원 분)과 현숙의 딸 정마리(이하나 분), 할머니와 두 딸, 그리고 손녀까지 모계로 이루어진 이 가정에 평지풍파가 일어난 것이다. 



엄마와 딸의 파란, 그 운명적 공통점은?
우선 그 파란의 첫번 째 주인공은 이 집의 둘째 현숙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퇴학을 당한 이래 도무지 풀린 일이라고는 없는 그녀, 딸과 함께 어머니 집에 얹혀살던 그녀가 어머니의 집까지 담보로 삼아 투자한 곳에 문제가 생긴다. 죽으려고 해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그녀는 이판사판 친구의 돈을 빌어 도박장에서 한 탕을 해서 어머니 돈을 갚아보겠다고 하지만 그 조차도 불법 도박을 근절시키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로 인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것 같이,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현숙에게도 유일한 삶의 보람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딸 장마리이다. 국문학 강사로 전임 자리를 엿보던 그녀, 하지만 학생들의 환심을 사고자 캠퍼스에서 벌인 짜장면 파티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사석에서 농담처럼 흘린 피라미드식 학생 유인책이 방송을 타고, 마치 전임 자리를 위해 학생들을 학점과 갖은 방법을 낚은 부도덕한 강사가 되어 하루 아침에 강사직에서 짤린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호구지책이었던 논술 학원 강의조차 소문에 발빠른 학부모들로 인해 날아간다. 

이렇게 사고와 말썽으로 범벅이 된 두 모녀에 비해 그래도 여전히 솔직한 입담을 자랑하며 수강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이 집의 실질적 가장 강순옥 여사나, 여전히 싱글이며 후배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지만 그래도 굳건하게 앵커자리에 버티고 있는 현정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첫 회는 주인공 현숙와 그녀의 딸 마리의 수난사로 시끌벅적했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찍힌 이래 현재 어머니의 집까지 날릴 처지에 놓인 현숙과, 오로지 공부를 통해 엄마의 자부심이 되어 대학 강사까지 되지만 하루 아침에 강사직은 물론 논술 강사직까지 날린 마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곧이곧대로 살아보려 했던 '착한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의 학구열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1등부터 60등까지 성적순으로 앉힌다는 선생님에게 유일하게 부당하다며 반기를 들었던 현숙, 그렇게 원칙을 준수하고자 했던 그녀의 삶은 하지만 거기에서 부터 어긋난다. 선생님은 그녀를 찍었고, 학생들은 그녀를 따돌렸다. 
그녀의 딸 마리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로 인문학 강의의 어려움을 사석에서 토로하고, 짜장면까지 사주며 학생들을 독려하려 했지만, 그녀의 의도와는 반대로 학생들을 피라미드식으로 모집하려는 사심어린 강사로 찍혔을 뿐이다. 
엄마인 현숙과, 그녀의 딸인 마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불행이 바로 엄마인 현숙이 고등학생이던 시대의 이른바 학력을 둘러싼 '경쟁 우선주의'와, 이제, 딸 마리가 사는 이 시대 역시나 또 다른 대학 사회의 '경쟁 우선 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즉 약삭빠르게 옆의 사람이 어떻게 되건 말건 나 한 사람 잘 되면 되는 세상에서, 엄마인 현숙과, 그녀의 딸인 마리는 영 젬병이다. 엄마는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지식한 태도로 결국 신분 상승의 기본적 수단을 제공하는 학교에서 밀려났고, 이제 겨우 인문학 나부랭이를 가르치며 강사 자리라도 유지하려던 마리는 그녀가 가진 생각이 오해를 불러 역시나 또 다른 신분 보증의 수단인 대학 사회에서 밀려난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착한(?) 현숙과 마리가 불행해지는 이유는, 결국 엄마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현재 마리가 사는 세대까지 우리 사회에 일관되게 이어지는 '경쟁'이 내재화된 사회이다. 



착하다지만 착하지만은 않은 그녀들의 행보 
하지만 이렇게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 현숙이 1회 동안 벌이는 해프닝은, '착한' 그녀라기엔 어쩐지 '착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집까지 담보로 해서 무리한 투자를 벌인다든가, 친구의 돈까지 빌어 도박판에 가담하는 모습은, 비록 그것을 통해 제도권에서 밀려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의 제한성을 보인다 하더라도, 어쩐지 고지식해 일찌기 밀려났던 현숙의 캐릭터와는 이율배반적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말리는 내한한 팝스타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벌을 서는 현숙처럼 말이다. 

이렇게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현숙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그녀를 학교 밖으로 밀어버린 결정적 역할을 한 선생님 나말년(서이숙 분)이다. 될성 부르지 않은 학생은 일찌감치 찍어내버려야 한다는 것처럼 가혹하기 한 자신의 교육관을 당당하게 부르짖는 나말년의 소신이, 현숙이란 애매모호한 캐릭터를 추동하는 발연재로 쓰인다. 

그런 면에서는 딸 마리도 마찬가지다. 선의에 의한 것이지만 결과론적으로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소지가 있는 행동을 벌인 마리의 짜장면 해프닝을 통해 마리의 캐릭터 설명하기에는 어쩐지 애매하다. 그를 위해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정황을 부여한 이두진(김지석 분)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엄밀하게 보면 '착하다'고만은 하기엔 어정쩡한 그녀들, 하지만 단 1회 동안, 돈 날리고, 경찰에게 쫓기고,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가장 현실적인 사건들이, 그녀들, 그녀들의 이후 삶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분명 엄마의 집까지 담보로 삼고, 그 돈을 보상하겠다고 친구 돈을 빌어 도박판으로 향하는 현숙은 이해받기 어렵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가혹한 에피소드는 현재의 허황한 그녀조차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며, 나말년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그녀의 다짐에 동조하게 만든다. 마리의 무리수인 짜장면 파티도, 어렵사리 된 강사직조차 놓쳐버리고 논술 강사직까지 잃은 채 초라하게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그녀의 모습으로 마음을 돌리게 만든다. 과정이야 어떻든 가진거 다 잃고 이제 식구들마저 거리에 나앉게 생긴 현숙네 가정에 닥친 폭풍, 그 폭풍의 운명성이 삶의 희노애락에 시달려 본 동년배들의 시선을 끌 가능성이 높다. 
by meditator 2015. 2. 26. 06:06

한 드라마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 드라마의 '드라마 갤러리'가 연관 검색어로 등장할 만큼, 디시인사이드의 드라마 갤러리(이하 드라마 갤)는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더 이상 생소한 인터넷 문화가 아니다. 새롭게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면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 함께 자신들이 즐기는 이 드라마에 대한 소감을 공유할 공간으로 드라마 갤을 생성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런 반응이 되었고, 이런 팬들의 소원(?)을 모아 디시인사이드에 청원을 넣으며 새로운 드라마의 갤러리가 탄생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드라마를 응원하는 팬들은 자신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하고, 그 마음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물질적 선물로 이어지며 여기서 이른바 '조공 문화'가 탄생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조공 문화'의 시작은 아이돌 스타에 대한 팬들의 물질적 사랑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인터넷 상에서 다양한 분야로 이어졌고 드라마 제작진에 대한 '조공' 역시 그 흐름의 연관 선상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드라마에 대한 조공 문화는 다양하다. 드라마를 방영하는 중간에 시간에 쫓기며 촬영을 이어가는 제작진에 대한 응원차 '밥차'를 비롯한 음료수, 간식 거리 제공에서 부터, 드라마 종영 후 감사의 표시를 각종 리뷰와 응원의 글을 모은 글모음집이나 드라마 캐릭터 클레이 혹은 케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서로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가상의 인터넷 공간에서 모여 함께 드라마를 즐기는 공간이 가지는 불가지, 불특정의 특성이 조공 문화의 폐해를 낳기도 한다. 
특히나 조공 문화의 경우, 누군가 적극적인 사람이 나서서 이른바 '총대'가 되어 그런 일정을 진행해야 하기에 그 부작용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최근 새로이 시작된 모 드라마의 경우 자신의 푸드 트럭을 알리고자 하는 업자가 드라마 갤의 팬인 양 행세하면서 자신의 업체를 조공에 이용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애초에 이 드라마 갤러기 조공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 된 것은 사람들이 돈을 모은 것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하게 보내진 조공 물품에서 비롯되었다. 투명한 비닐 팩에 담긴 낱개 껌 하나, 레모나 2개, 사탕 2개, 핫팩 1개 등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초라한 물품에서 비롯된 이 드라마의 조공 사건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즉, 그 초라한 물품보다, 함께 들어간 '떡꼬치' 등의 분식 차가 문제가 된 것이다. 화장품 냄새 등으로 그날 제공한 분식의 상당 부분을 먹지도 못했다는 후문이 전해진 이 분식 차의 주인공은 알고보니 가장 적극적으로 총대를 맸던 '조공'을 진행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추적을 해보니 이 사람은 이 드라마 갤 뿐만 아니라 다른 드라마 갤에서도 이런 식으로 총대를 메고 자신의 업체를 조공 과정에 끼어넣는 전횡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단지 이 드라마 만이 아니라,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에서 부터 최근 종영한 드라마까지 몇몇 드라마에서 발생했던 일이라는데서 그 심각함은 더해진다. 
팬들이 드라마를 응원하는 마음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조공'을 하고자 하지만, 개인의 이해를 숨긴 업자가 팬인양 드라마 갤러리에서 활동하며 그런 팬들의 순수한 정성을 자신의 업체를 홍보하거나 이윤을 남기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갤러리라는 곳이 개인의 신상을 드러내고 가입을 하는 곳도 아니고, 드라마가 방영하는 동안 한시적으로 열렸다가, 드라마가 끝나면 그 드라마 갤러리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방치되고 마는 한정적인 공간이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개인적 이해 관계로 진행하거나, 금전적 이익을 남긴 '총대'에 대해 어떤 법적인 제재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총대'의 경우, 배우 개인의 팬들이 강력하지 않은 드라마만 찾아다니며 그런 일을 벌이니 더더욱 추적이나 응징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드라마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이른바 '물질적으로 승화시킨' 조공 문화 자체에 대한 반성도 이어진다. 물론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정도전>의 경우, 팬들이 이 드라마를 응원하고자 음료수 트럭을 현장에 보내 응원하였을 때, 그런 문화에 생소했던 배우들이 이 트럭 앞에서 서로를 찍으며 좋아했던 사진들이 드라마 갤에 올라오면서, '응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기도 한다. 실제 밥때조차 놓치며 촬영에 매진하는 제작 현장에서 팬들이 보내주는 작은 성원하나가 어렵게 일하고 있는 스텝들의 기운을 담뿍 불어넣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실제 당회분 드라마를 그 바로 전주에 찍어 올리는 급박한 한국 드라마 현실에서, 시간에 쫓기는 촬영 일정 가운데, 팬들의 '조공'을 끼워넣는 것도 만만찮은 노릇이다. 실제 모 배우 팬들의 경우 어렵게 조공을 준비했다가 일정이 취소되어 물질적 손해를 입은 경우가 있기도 하다. 또한 앞의 사건에서 처럼 생각지도 못한 업자가 등장하여 조공 자체를 훼손하거나, 팬들의 성의를 모은 '조공'을 자신의 능력인 양 행사하여 눈길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존재하니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 그저 개인의 취미를 넘어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되어가는 이즈음, '조공 문화' 역시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타 드라마에서 이렇게 조공을 했는데 라며 비교까지 하면서 '남이 하니 나도 할 수 밖에 없는' 의무가 되고마니, 결국 이렇게 개인 업자가 전횡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시청률이 좋으면 좋으니, 시청률이 나쁘면 그래서 더 응원을 하기 위해서 라는 물질적 호혜의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제고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개인 업자의 전횡이 역시나 같은 디시 인사이드의 게시판을 통해 밝혀지고, 개인 업자의 신상조차 분명하게 명시되며 이후에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자체 정화를 하고자 하지만, 그 드라마를 사랑하여 호주머니를 털은 팬들의 상처받은 마음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누군가 나서서 고소를 하지 않은 이상 법적인 제재 조치가 불가능한 것이 인터넷 상의 제약인 것이다. 실제 문제가 된 드라마에서는 '법무팀'을 모집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이번 기회에 '조공' 자체가 '누구의 떡이 더 큰가'라는 경쟁 문화가 아닌, 선의의 응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보다 적절한 대책 마련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5. 2. 25. 13:40

 


14%가 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리고 시청률을 뛰어넘는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의 마지막 6개월을 신드롬으로 만들며,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로써, <추적자>을 통해 정치 권력, 그리고 <황금의 제국>을 통해 재벌의 권력, 마지막 <펀치>를 통해 검찰의 권력을 조명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부패한 권력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며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냉엄하게 그려내었다. 이렇게 현실의 잔혹한 이면을 그려내었던 <펀치>를 보며, 그 권력의 귀추에 숨죽이던 시청자들은 <펀치>의 종영 이후 어떤 선택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펀치> 종영 이후 첫 주에 제일 먼저 미소을 지은 것은 그간 꾸준히 <펀치>를 추적하던 <빛나거나 미치거나>였다.

 

 

아쉽게도 단점이 돋보이는 후발 주자들; <풍문으로 들었소>, <블러드>

<펀치>을 선보였던 sbs는 후속작으로 권력의 비리에 이어, 상류 사회 갑들의 부조리한 삶을 다룬 <풍문으로 들었소>을 선보였다. 장르 상으로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 사회 '갑'들의 이면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작품이다. 이미 <아내의 자격>, <밀회>에 이어 jtbc를 통해 상류층의 부조리를 형상화시켰던 정성주, 안판석 콤비가 공중파로 진입하며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 경햠을 연장, 발전시켰다며 밝히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안판석 pd 특유의 고상한 상류층의 분위기를 한껏 드러낸 미쟝센이, 이번에는 너무 힘을 줬는지, 뜻밖에도 어둡고 칙칙하다는 반응에 부딪치며 정성주, 안판석 월드에 시청자가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영화<표적>을 통해 가장 악랄한 악역의 면모를 보인 것과 달리, tv에서는 언제나 좋은 이미지로 등장했던 유준상의 한정호 연기나, 역시나 선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유호적의 최연희 연기 역시 아직은 낯설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또한 당찬 여고생 서봄 역의 고아성이 그 누구보다 자연스런 연기를 선보인데 반해, 싸이코패스로 익숙한 이준의 어리버리한 고딩 연기는 연기면에서나, 캐릭터의 개연성 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형편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에 비해 한 주를 먼저 선보인 <블러드>의 경우는 더 쉽지 않은 처지에 봉착해 있다.

케이블 작품 <뱀파이어 검사>나 미드를 통해 이미 익숙해진 '뱀파이어'라는 캐릭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파 미니시리즈라는 대중적 장르로 안착하기에는 아직 생경한데다, 그 뱀파이어를 연기하는 남주인공 안재현의 연기나, 여주인공 구혜선의 연기마저 시청자들이 적응하기에는 생경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

게다가 전작 <굿 닥터>를 통해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의사라는 직업과 매치시켜 '인간 승리'의 미담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던 것과 달리, 뱀파이어와 의사의 만남은 어쩐지 갓을 쓰고 양복을 입은 듯 아직은 어색한 만남의 분위기를 일소해 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무난한 스토리, 거기에 가속 패달은 배우들의 호연; <빛나거나 미치거나>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야심차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정성주, 안판석 콤비와 박재범 작가가 전작의 영광이 무색하게, 전작의 정서조차 아직 충분히 펼쳐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던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뜻밖에도 <펀치>의 빈 자리를 여유있게 차지한다. (13회 13.1% 닐슨 )

 

고려 광종을 주인공으로 삼은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경우,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마저도 외면할 수 있는 왕실 권력 쟁탈전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지고지순한 남녀의 순애보를 그려내는 전형적인 사극으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맞아들인다.

 

또한 한껏 망가지는 코믹과, 운명적인 삶의 비극적 정서가 그 누구하나 어색함이 없는 호연을 통해 자연스레 전달되는 것이 무엇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장점이라 할 것이다. 이미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추노>의 대길이 같은 연기를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특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장혁이, 다시 한번 그 캐릭터를 사극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시킴으로써 언제나 한껏 진지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코믹 캐릭터까지 영역을 넓힌다. 예의 대길이 같은 웃음과 표정의 오글거림을 극복하고 나면, 어느 장면에서 성실한 장혁과, 그런 장혁과의 호흡에서 딸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는 오연서의 호연에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제 아무리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와, pd의 작품이라도, 결국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그것을 풀어가는 배우들의 호연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기는 함든 것이다. 거의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반 토막에 불과한 나머지 두 작품들의 시청률이 버거워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첫 번째 대결이 마무리됐을 뿐이다. 30부작 <풍문으로 들었소>는 이제 막 첫 단추를 풀어 헤쳤을 뿐이고, 여전히 단 한 장면에서도 정성주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고, 안판석 pd의 구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블러드> 역시 박재범 작가의 장기인 병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풀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두 작품들이 부지런히 선방하고 있는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우선 낯선 주인공들의 연기부터 친숙하게 만들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니, 갈 길이 만만치 않다.

by meditator 2015. 2. 25. 05:47

sbs는 2월 21일에서 22일 양 일에 걸쳐 3D특집 2부작 드라마 <인생 추적자 이재구>를 방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인생 막장에 몰린 노무사 이재구(박용우 분)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지만, 만약 좀 더 정확하게 드라마의 제목을 짓는다면,  아니 부제라도 붙인다면 '회사원 김태수(엄효섭 분) 씨의 억울한 죽음'이라고 하는 편이 어떨까? 물론 노무사 이재구의 드라마틱한 활약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보다는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회계 업무에 종사하던 김태수 씨가 영업사원으로 급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버티다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되는 우리 사회 '을'의 슬픈 자화상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노무사 이재구가 맡은 김태수 사건 
8년 동안 고시를 준비하다 실패를 거듭한 채 결국 노무사가 된 이재구,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노무사 생활은 여의치 않다. 오랜 고시 실패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3년 째 별거에 이혼을 신청 중이고, 병원에 장례식장을 전전하며 '목숨값을 받아드린다'고 명함을 돌리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분노한 유족이 쏟은 육개장 국물이다. 

실의에 잠긴 그를 찾아왔던 김태수 씨를 병원에서 다시 만나고, 불법 영업으로 쫓기다 졸지에 형 동생으로 의기 투합한 이재구는 그날 밤 김태수 씨의 집에까지 함께 하며 김태수 씨의 사연을 헤아리게 된다. 

김태수 씨는 의료 기기를 파는 GB메디컬에서 회계 업무를 보던 직원이다. 하지만 20년 째 근무하던 회사는 하루 아침에 그를 사무직에서 영업직으로 발령낸다. 의료기기라는 걸 팔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이미 기존 영업 사원들이 차지하고 남은 할당을 맡아 실적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간 이재구 노무사의 충고대로, 그는 거의 드러내놓고 회사에서 나갈 것을 종용하며 견디기 힘든 일만 골라 맡기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참고 견디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새벽부터 지방으로 영업을 돌던 그는 그만 계단에서 굴러 뇌에 출혈이 생기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채 밤 늦게까지 접대를 돌다, 다시 또 다른 지방 영업을 하기 위해 가던 중 교통 사고를 내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김태수 씨가 하던 일이 반품된 의료기기를 몰래 처분하는 일이었기에 회사 측에서는 그의 지방 행을 무단 결근으로 처리한다. 당연히 그의 사고는 그 개인의 사고일 뿐이다. 억울한 아내는 집까지 왔던 노무사 이재구를 찾아가고, 만류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며 남편의 행적을 쫓는다. 

드라마 속 김태수 씨는 입사 동기였던 GB메디컬 이사의 비리를 알게 되는 바람에, 그리고 그 비리에 동조한 또 다른 입사 동기의 비리를 폭로할 수 없어서 영업직으로 좌천되고, 갖은 수모를 겪는 걸로 드라마는 그려낸다. 하지만, 그런 김태수 씨의 특정한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건, 우리 사회 '을'들의 보편적인 억울한 사연들이다. 


김태수라는 개인을 넘어선 우리 사회 보편적 '을'의 이야기
하루 아침에 자신이 일하던 부서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대부분 영업직으로 쫓겨나는 것은, 말이 전출이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한 명예 퇴직 강권의 징조이다. KT의 수많은 사원들이 그렇게 졸지에 전봇대에 올라가게 되고, 전단지를 돌리기도 한다. 증권맨이 하루 아침에 이 식당 저 식당에 명함을 모으러 다녀야 한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해오던 일이 아니니 잘 할 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GB메디컬 박이사로 상징되는 '갑'들은 그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 라고 말한다. 그렇게 개인의 문제로 밀어부치며 코너에 몰린 '을'들은 그래도 '가장'이란 이름 아래, 어떻게든지 그곳에서 버티려고 한다. 생전 들어보지 않은 무거운 기기를 들고, 생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굽신거리며, 생전 해보지 않은 접대를 한다. 하지만 동료들의 눈은 차갑고, 회사는 어떻게든 몰아내기 위해 더 몰아가기만 한다. 심지어, 극중 김태수 씨처럼 업무 중에 다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의 죽음값조차 아까워 갖은 편법을 통해, 개인의 죽음을 온전히 개인의 과실로 밀어부치고자 한다. 

물론 드라마는 이혼을 하고 아이까지 잃게 된 노무사 이재구가 '배수진'의 심정으로 노무사로서의 본령을 찾아 김태수 씨의 사건에 매달리고, 아내 송연희(유선 분)가 남편에 대한 중상 모략은 물론, 갖은 회유와 협박, 심지어 집에 빨간 딱지가 붙는 상황에서도 굳굳하게 남편의 죽음을 밝히고자 하는 의연함을 보였기에 김태수 씨는 죽음값이 아니라, 인생의 값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2부작의 과정 중에, 김태수라는 사람의 사고, 그리고 죽음을 무마하기 위해 사측이 벌이는, 김태수 라는 개인을 무능력한 사람에서, 비리 사원으로까지 몰고가며 가족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한 사람의 '을'이 그 죽음의 과정에서 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게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노무사로 삼고 있듯이, '을'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 을이 을로써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위치의 사람들이 얼마나 제 몫을 해내는가를 주목한다. 
극중 주인공 노무사 이재구는 처음 김태수 씨의 사건이 났을 때, 그의 명함에서 대놓고 '목숨값을 받아드린다'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아내 송연희에게 사측과 협상을 권유한다. 그는 그가 그간 해온 노무사 일의 과정에서 한 개인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를 몸소 체험한 결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재 보상 위원회 위원장은 의료 기기 업체인 GB메디컬 측의 회유에 손쉽게 넘어가 공적인 그의 일을 쉽게 사적 이익 아래 희생한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개인이 자신의 일을 사적 이익에 희생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2부작 <인생 추적자 이재구>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재구가 노무사로서 자신의 본령에 섰을 때 결국 김태수 씨의 인생을 보상받을 수 있듯이, 공적인 그들이 사리사욕을 넘어 제대로 할 일만 한다면, '갑'의 횡포를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덧붙인다. 결국 노동부의 산재 조정 위원회에서 증거도 없이 GB메디컬을 몰아가야 하는 이재구 노무사의 편에, 김태수 씨의 입사 동기였던 이성식(이기영 분) 과장이 선 것을 통해,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를 말이다. 김태수 씨는 자신이 영업 사원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동료였던 이성식 과장을 보호하기 위해 박이사의 비리를 눈감는다. 하지만 이성식 과장은 정작 김태수 씨의 사고와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자기 안위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재구는 한 회사원의 산재 보상은 결국 동료 직원의 도움이 없이는 받기 힘들다며 이과장을 설득한다. 그리고 결국 이 과장은 보상 위원회에 선다. 이는 그저 드라마틱한 결말을 위한 극적 장치일 뿐이 아니다. '을'의 정당한 댓가, 정당한 대우는 결국 또 다른 '을'과의 연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라마가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3D 특집 드라마로 특이하게도(?) 우리 사회 '을'의 억울한 위치와, 그들을 돕기 위한 공공직 노무사의 직업 윤리를 돌아본 드라마 <인생 추적자 이재구>, 박용우, 안석환 등의 노무 법인 공수래의 활약은 어쩐지 단 한 번의 특집 드라마로만 보기엔 좀 아깝단 생각이 든다. 공익적 차원에서, 시청률 차치하고, 시리즈로, 아니 그게 어렵다면 시즌제로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영국의 <셜록>처럼 1년에 한 번이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 억울한 을들의 사정이야, 차고 넘치니 이야기가 고갈될 이유는 없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5. 2. 23. 06:13

또 하나의 가족 관계가 tv 속으로 들어왔다. 

육아 예능으로 골몰하던 tv 속 아이들이 자랐다. 이젠 성장한 딸과 아버지들이다. 
sbs는 설 특집으로 <아빠를 부탁해>를 선보였다. 어릴 때부터 국민 아빠와 딸로 낯설지 않은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를 비롯하여, 배우 강석우와 그의 딸 강다은, 조민기와 그의 딸 조윤경, 조재현과 그의 딸 조혜정, 그들의 부녀 관계가 예능의 이름을 빌어 등장했다. 
출연자의 면면을 보면, 이경규를 제외하면 모두 다 배우로 정평이 난 사람들로 예능엔 첫 선이다. 그렇게 따지면, 최근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배우 예능의 연장 선상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tv 로 들어온 부녀 관계
아빠와 딸', 참 어려운 관계다. 
일찌기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표현하셨다. 불면 날아갈세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고. 아들을 두고는 그렇지 않았다
한 가족 안에 존재하는 이성, 그들은 철이 들기 전에는 부대끼며 한없이 가까울 수 있는 관
계이지만,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성이 요구하는 세계로 집중하면서, 아빠는 아빠대로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바빠지면서 가장 멀어지는 관계가 되기 쉬우니, 한때 국민 아빠와 딸이었던 이경규와 딸 예림이의 관계가 딱 그렇다. 조민기와 그의 딸 조윤경도 비슷하다. 
서양의 경우, 아버지를 둘러싸고 어머니와 딸 사이에 애증의 삼각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런 서양의 가족 관계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도 최근엔 강석우씨네처럼 아내조차 질투하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조재현처럼 일관되게 자신의 일로 바쁜 아빠와 그런 아빠 해바라기에 지친 딸들도 우리 사회엔 존재한다. 이렇게 <아빠를 부탁해>를 보면 어느 집에서나 아, 저건 우리집!이라고 감탄할만한 경우의 부녀 관계가 연예인의 경우를 빌어 등장한다. 

첫 회, 관찰 카메라를 네 집에 잔뜩 설치해놓고 이경규, 조민기, 조재현, 강석우의 부녀 관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예능인답게 이경규가 첫 스타트를 끊는다. 하지만 첫 스타트가 무색하게, 10시간 집 안에 감금된 이경규는 몸서리를 친다. 도무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는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하기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오로지 그 집에 사는 개들만 활개를 친다. 강석우 말대로 개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모양새다. 
다음 조민기네 집은 조금 낫다. 모처럼 유학에서 돌아온 딸, 그 딸을 위해 아버지는 대낮부터 고기를 굽는 성찬을 마련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설겆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가 잔뜩 부추켜야 아버지 안마를 해주는 딸처럼, 어느새 웃자란 딸에게 아빠는 조금 어색한 사이다. 
첫 스타트가 무색하게 강석우와 조민기의 비웃음을 샀던 이경규를 살려준 건 조재현이었다. 붐을 일으킨 드라마 <펀치>에서 열연하고 있는 조재현, 드라마 촬영 중이었던 그에게, 딸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방문을 열어 놔도, 아빠 앞에서 피곤하다며 몸을 푼다며 운동을 한답시고 알짱거려 봐도, 아빠는 한번 쳐다보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여태 딸내미가 밥을 먹는지, 뭘 먹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자신의 일 등 자기 자신에게만 골몰하고, 그런 자신에게 사투리를 가르쳐 주며 맞추어 주는 아내만이 편하다. 
그렇게 관심없는 아빠에게 무안해져 버린 딸로 인해 눈물이 핑그레 돈 조재현을 무색하게 만든 아빠는 딸 바보 강석우였다. 자고 일어나서는 웬만하면 눕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게 외국어 공부에서 음악까지 아침부터 분주한 그는, 딸의 기상에서 부터 아침식사까지 일상인 양 자연스럽게 준비해 준다. 또 딸과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딸의 머리를 넘겨주며, 딸과 함께 외국의 입양아에게 편지를 쓴다. 딸을 곧잘 시키지만, 딸이 도와줄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마지막은 추운 날 운동가는 딸의 마중까지 완벽한 아빠다. 

기사 관련 사진
▲ 아빠를 부탁해
ⓒ sbs



첫 회가 끝난 후 각 게시판을 도배한 이 프로그램, 아니,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녀들에 대한 의견처럼, <아빠를 부탁해>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각 부녀 관계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렸으며, 심지어 누군가의 딸의 옷차림에서 부터, 누구는 불쌍하다. 좋겠다에서 부터, 어떤 아빠의 에티튜드까지 호사가들의 말은 끊임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예능으로 들어온 아버지와 딸들의 모습은 애초에, 연극 영화과를 다니는 딸들의 연예계 입문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과 달리, 각 집안의 실제 부녀 관계에 빗대어 tv 속 부녀 관계에 골몰한 현상이었다. 

모범답안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드디어 화제에 얹힌 2회, 관찰 카메라를 넘어 아빠와 딸은 함께 무언가를 해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관찰에 머물던 부녀 관계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이경규는 모처럼 딸과 함께 떡국을 먹고 개들을 데리고 동물 병원을 간다. 조재현 역시 딸과 함께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딸과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대학로를 향한다. 조민기는 홀로 사는 딸에게 청소법을 가르치고, 강석우는 딸을 위해 침대에 케노피를 설치한다. 

막상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하니, 첫 회에 드러난 부녀 관계의 설정이 더 강화되기도 하고, 변화되기도 시작한다. 
여전히 이경규는 딸보다도 자신을 찍는 vj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하다. 딸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며, 여전히 그에게 딸은 화장도, 술도 하지 않는 천연지대여야 한다. 그러니, 딸에게 할 말은 화장하지 마라, 살쪘다는 잔소리 뿐이다. 그런 그가 딸과 소통할 수 있는 건 함께 기르는 개들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개들조차 딸에게 더 친근한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가정에 무심한 아빠인가가 다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애지중지하던 개를 떠올리며 흘리는 딸의 눈물 앞에 무심한 아빠 이경규는 어쩔 줄 모른다. 
딸과 함께 버스를 타고, 대학로 거리를 거닐다 스티커 사진까지 찍은 아빠 조재현은 딸이 하자고 하는 것을 할 때마다 반문한다. 이게 정말 좋냐고. 자신의 세계에만 충실하던 아빠 조재현에게 딸의 세계는 낯설다. 

첫 번째 방송에서 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는 이경규나, 두번 째 방송을 시작하며 세상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신과 같다며 큰 소리를 치는 조재현의 마음이 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두 사람 다 딸이 누군가와 결혼을 할 거라는 걸 상상할 수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딸은 아주 깊은 곳에 자리잡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 보물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그들은 정작 모른다. 방송을 보면 이경규냐 조재현이 딸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난다. 즉, 그들에게 사랑은 감정이지, 관계가 아니다. 딸뿐만 아니라, 아내와도 눈을 점점 더 마주치지 못한다는 이경규를 보면 전형적인 우리네 아버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딸들은 현재를 산다. 아빠와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 하는 조재현의 딸을 보면, 딸의 바램이 그지 큰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단 한번 개 산책을 시키면서 관계의 희망을 가지는 예림이도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이경규나, 조재현, 참 바쁜 아빠들이다. 자신의 세계로도 차고 넘치는 아빠들이기도 하다. 그런 아빠들에게 딸과 함께 살아갈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가장 우리네 일반 아빠들의 모습이며, 그래서 이경규나 조재현의 모습이 친근하고 걱정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그리고 딸과의 관계가 완벽해 보이는 조민기나 강석우네 모습도 두번 째 가니 조금은 달라보인다. 모처럼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두 아빠는 모두 아빠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한다. 
조민기는 딸에게 청소법을 가르치고자 하고, 강석우는 딸을 위해 케노피를 설치한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를 가르친다고 하더니 잔소리가 범벅이다. 깐깐해 보이는 아버지 조민기의 방식은 웬만한 사람이 보기에도 참 어렵다. 그런데도 딸은 꾸역꾸역 아빠의 잔소리를 참아가며 청소를 배운다. 
강석우도 만만치 않다. 딸을 위해 케노피를 해준다더니, 그 모든 과정에 함께 해야 한다. 아빠와 함께 재료를 고르는 일에서 부터, 케노피를 만드는 과정 모든 것에. 아빠 말대로 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빠는 어떻게 저걸 했을까 싶게, 딸의 조수 노릇은 만만치 않다. 
케노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딸의 의견을 무시하고 굳이 번거롭게 일을 하는 강석우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조민기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사랑에 자부하는 또 다른 기성세대를 발견한다. 강석우나 조민기는 자신들의 사랑이 넘친다고 자랑하지만,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눈엔 그런 극성스런(?) 어른을 참아주는 착한 딸들이 보인다. 역시나 여기도 관계다. 아빠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그런 사랑을 견뎌주는 딸들이 한편에서는 있는 것, 이 역시 만만찮은 관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아빠를 부탁해>의 정규 편성의 가능성이 보인다. 첫 회 딱 한번만 봐도 순위가 딱 매겨지는 네 아빠들의 모습이, 단 2회만에 조금씩 각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전혀 소통이 되지 않거나, 소통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빠의 일방 통행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모범 답안이 분명해 보이던 것이, 다시 보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가 헷갈려 가면서, 각 가족만의 답을 찾아가지 시작하는 과정, 거기에 <아빠를 부탁해> 존재 이유가 생긴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가 아니라, 이경규는 이경규답게, 조재현은 조재현답게, 조민기는 조민기네에 어울리고, 자부심에 넘치는 강석우도 자신의 부녀 관계를 새롭게 들여다 보는,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가족들도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아빠를 부탁해>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2. 22.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