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촌각을 다투며, 심지어 헬기를 타고다니면서까지 강연을 다니던 김정운 교수가 사라졌다. 그러던 그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책, [에디톨로지]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2015년 새해 벽두부터, kbs2tv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장장 3부작에 걸쳐 드러낸다. 

2012년부터 홀로 일본에서 지내며 일본 옛그림을 배웠다는 김정운은 홀로 지냈던 시간이 너무 외로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는 조금은 아니, 많이 업된 자신을 양해해 달라며 흥겹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굳이 그가 소개한 하버드 대학의 빌 게이츠와, 스탠포드 대학의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흥이 자서, '자뻑'을 빈번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새로운 학문, '에디톨로지'를 통해 풀어낸 '수다'는 '영양가'를 떠나, 그 어떤 개그 프로그램보다도 즐겁다.

 

그런가 하면, 흔들림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에 진력하던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평론가라는 그의 직업에는 생소한 장르, 토크쇼의 mc로 '수다 한 판'을 풀어낸다. 이미 <금요일엔 수다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김태훈과 함께 진행했지만, 그 역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이었기에, 본격적인 외도라 할 만하다. 
이동진이 새롭게 mc를 맡은 <시간여행자k>는 온전히 '수다'의 한 판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변화되어 왔던 시간들을, 개그맨 이윤석, <비정상회담>의 타일러 라쉬,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 독고탁으로 상징되는 만화가 이상무, 배우 김부선, 가수 레이디 제인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인물들이 모여, 온전히 '입'으로만 터는' 시간이다. 

일찌기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도발적 저서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통해, 오로로 '일'밖에 모르며 늙어가는 이 시대의 남자들을 도발하기 시작했던 김정운은, 그의 새 책, <에디 톨로지>를 통해, 일한 만큼, 늙어가는 시간이 남아도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창조는 재미다>, <재미는 창조다>, <데이터베이스가 공부다>를 통해, 정보가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정보의 늪에 빠지는 대신, 주체적으로 그 정보를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편집하며, 자신의 삶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여기서 김정운이 추구하라고 하는 삶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달려왔던 '성공'이 아니다. 그 자신이 바쁜 교수와 강연의 늪에서 빠져 나와, 일본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듯이, 결국 은퇴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삶에 연연하지 말고, 진짜 자신이 즐기며 행복해할 공부를 하라고 충고한다. 

'편집'으로 부터 시작하여, 재미와 행복으로 넘어가는 김정운의 수다는 현실적이다. 더 많은 정보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을 담론으로 삼을 수 없는 '저성장, 고소비'의 사회를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이 ,'공부'하는 것이라며. 그가 말하는 공부가 별거 아니다. 우리 나라 최고의 명강사였던 그가, 일본 작은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듯, '재미'를 느끼는 것에 몰두하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물론, 정신적 만족의 함정도 놓치지 않는다. 그저 나 좋은 것만에 탐닉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자신이 느끼는 재미,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물어야, 재미가, 자기 만족적 탐닉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말한다. 
그가 들고온 새로운 그의 이론이 재밌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발을 디고 사는 삶의 현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요, 50세 이후의 오래될 늙음과, 쉬이 성공을 기대하기 힘든 젊음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3일에 걸쳐 김정운 교수의, 아니 교수가 적성에 안맞아 때려 친, 저술가 김정운의 수다가 질펀하게 드리워진 한편에서 조용히 새로 시작된 또 다른 수다 프로그램은 <시간 여행자k>다.
첫 시간 주제 한국인의 몸, 피비린내 나는 전란 속에서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를 시작으로, 변화되어가는 여성의 몸과, 그 한편에서, '살찌는 약'을 광고하고,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던 못살던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mc와 패널들의 수다로 온전히 짚어간다. 


이런 수다의 관건은 결국, 시각이다. 어떤 관점에서 지나온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 것인가? 더구나 최근 지나온 과거의 역사에 대해, '칭송'과 '폄하'의 양 극단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그런 <시간 여행자k>의 관점은 건강하다. 
전란의 과정에서도 수영복 심사를 받는 미스코리아 후보들을 바라보는 심사위원들의 관음적 시각을 짚을 수 있는 관점과, 변화되어가는 육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시선, 그리고, 이제 다시 '마름'이 트렌드가 된 세상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까지, 70년이란 시간을 훑어보는 시각들이 편향되어 있지 않다. 
가끔은 열혈 투사 배우 김부선의 입을 통해 거친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스스로, <100분> 토론인가 라며 자정하는 센스를 보였고, 이제는 고전이 된 만화 독고탁의 만화가 이상무 옹의 시선은 노회하지 않았다. <썰전>에서 말 한 마디 하기 힘들던 이윤석은 모처럼, 그 자신의 탁견을 펼치며 신이 났고, 중년의 김희재와, 젊은 레이디 제인이, 여성이라는 공감대에서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 이방인 타일러의 낯섬이 어색하지 않고, 또 다른 다양함으로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다름이 튕겨가지 않고, 지나온 70년의 격동의 세월처럼, 그저 한데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그간 영화 평론을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폄하보다는, 장점을 짚어보려 하고, 열연을 했던 배우와 감독에 대한 존중감을 놓치려 하지 않았던, 평론가 이동진의 객관성이 돋보였다. 그의 넉넉한 시선 아래, 김부선의 튀는 언어도, 이상문의 고답적 시선도, 타일러의 색다른 시선도, 모두 그럴 수 있는 생각들이 된다. 19금의 야한 이야기도, 지레 얼굴이 빨개지는 이 mc덕에, 수즙은 생각으로 돌변한다. 

과연 현재 kbs라는 공영 방송의 토요일 8시대에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할 수있을까?라는 회의를, <시간 여행자k>는 얼마든지, 건강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고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름을 차이나, 차별로 읽지 않고, 그저, 다름의 개성으로, 역사로 읽어낼 수 있음을 <시간 여행자k>는 보여주었다. 과거를 지레 미화하지도, 섣불리 그리워하지 않으며, 지나온 시간으로 덤덤히 짚어보며, 오늘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 건강한 수다 한 판, <시간여행자k>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비록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더라도 ,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건강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4. 15:48

최근 새롭게 선을 보이고 있는 kbs예능의 화두는, 교양과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인 듯 하다. 얼마 전 선을 보인, ,<발칙한 사물 이야기>를 통해, 인문적 상식과 토크쇼의 조화를 추구하더니, 1월2일 파일럿으로 새롭게 선보인 <나비효과> 역시 아예 대놓고 예능과 교양의 접목을 내세운다. 


부제도 거창하게, 미래 예측 버라이어티라 내세운 <나비 효과>는 도무지 무엇을 보여주려는 프로그램인 지 예측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이 정체모를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애초에 이 프로그램의 mc로 예정되었던 김구라가 건강 상의 이유로 프로그램이 출격하기도 전에 mc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가쉽성 기사였다. 그것 외에는, 이른바 스타 mc의 출연도 없이, 화제성있는 패널의 등장도 없는 무엇을 하겠는지로 모를 <나비 효과>는 '오리무중' 그 자체였다. 


첫 회, 김구라의 퇴진으로 '어부지리'로 mc자리를 꿰어 찬 최동석 아나운서와 박지윤 전 아나운서의 mc 조합이 화제에 오를 때까지도 이 프로그램의 정체는 모호했다. 
<비정상회담>의 구도를 떠올리게 하는 양 측으로 늘어선 채 마주 보는 패널들, 거기에 한 쪽은 이른바 의사, 변호사, 심리상담가, 미래학자까지 전문가군은 종편의 흔히 보는 토크쇼 패널을 연상시키고, 맞은 편의 봉만대, 레이디 제인, 사유리, 미노 등은 케이블의 19금 상담 프로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드디어 등장한 첫 번째 '나비 효과',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에 실린, '남자가 집안 일을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식의 단호한 귀납적 정의는, <스폰지>을 통해 익숙한 '화법'이다. 

이렇게 어디서 본 듯한 구도와 구성과 달리, <나비 효과>의 내용은 신선했다. 말 그대로 '나비효과', '남자가 집안 일을 하면'이라는 예상 외의 조건이, '집값이 떨어진다'라는 뜻밖의 결과를 낳는 행간을 연예인 패널과 전문가의 해석이 곁들여져, 황당한 정의가, 풍성한 상식으로 이어진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먹지 조차 못해 애를 쓰는 미노의 난처함과, 오랜만의 예능의 당황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붐의 여전한 예능감에, 19금을 불사하는 사유리의 당돌한 발언, 그리고 전혀 19금스럽지 않은 말을 해도 19금이 되는 봉만대 감독의 해석, 그리고 그런 봉만대 감독과 이미 영화 프로그램을 통해 호흡을 맞추어, 갑론을박의 묘미를 살려내는 전문가 그룹의 김태훈에, 아직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전문가적 식견을 넘어, 패널로써의 묘미를 살려낼 가능성을 제시한 전문가 그룹들이, 황당한 나비효과 명제들을 예상 외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덕분에 '남자가 집안 일을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를 통해 천편일률적인 부부 역학 관계에 대한 모색은 물론, 거기서 더 나아가, 성적 매력과, 친밀도라는 19금을 넘나드는 남녀 사이의 미묘한 관계까지 짚어보고, '샤워를 오래하면 벌레 버거를 먹게 된다'를 통해서는 뜻밖에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실감나는 고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남자가 스키니를 입으면 남성이 멸종된다'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힘도, 권위도, 심지어 성적 능력에 있어서 조차 무기력해져 가는 남성에 대한 공감을 공유하는,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한 명의 여성을 포함한 전문가 그룹의 강한 반대를 낳는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은 결과로, 프로그램은 교양을 넘어 예능으로의 가능성을 살려낸다. 

뜻밖의 결과를 낳는 명제를 제시하며, 거기에 행간을 메꿔가는 이 프로그램은,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미 <스폰지>를 통해 익숙한 예능 화법이다. 거기에, 종편과 케이블에서 이미 검증된 패널과 구도를 더해, 새로운 <나비 효과>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스폰지>의 깜짝쇼같은 일상의 경이로움이, 이제 문화적 트렌드를 타고, 인문, 시사 영역으로 그 범위를 확장한 듯한 모양새다. 이런 익숙함을 넘어, <나비 효과>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국, 새롭게 판을 짠, 연예인과 전문가 패널의 신선함과, 매력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김구라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아직은 예능의 초보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진부해지는 김구라 대신, 부부가 함께 시작한 최동석, 박지윤의 진용은 신선하다. 최동석의 미흡함은, 오랜 자숙 끝에 돌아온 붐의 매끄러운 진행 능력으로 이미 충분히 보완되는 듯하다. 
거기에, 박지윤의 아줌마스러움은, 뜻밖에도, 이미 영화 프로그램을 통해 합의 묘미를 보여준, 봉만대와 김태훈의 조합이 뜻밖에도 19금스러운면서도, 19금스럽지 않은 풍부한 상식의 토크로 보완해 간다. 아직 채 시동을 걸지 않은 가능성으로 잠재해 있는 전문가진용이 그들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때까지, 두 사람의 활약은 돋보일 듯하다. 하지만 이미 첫 회에서, 전문가 이상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졌다. 
연예인 패널도, 연예인이라는 비전문가 영역을 넘어 오히려 전문가같았던 이현이나, 그저 4차원을 넘어선 시선을 제시한 사유리의 활약이 돋보였다. 하지만, 끝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조차 힘들어 하던 미노와, 동문서답의 김태원의 존재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아 할 듯하다. 또한 '미모'만으로 버티기에 에릭남 역시 버거워보인다. 최소한 토크쇼라면, 연예인 패널에서도, 대화나 토론이 가능한 상대가 등장해야 할 듯하기 때문이다. 

스타 MC나 뻔한 신변잡기류의 토크쇼를 넘어, 이미 KBS가 전통으로 가지고 온, 교양과 예능의 콜라보라는 영역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신선한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도가 반갑다. 부디, 이런 프로그램들이 잘 정비되고, 다듬어져 정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높여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5. 1. 3. 12:54

1월 1일, 2일에 걸쳐 kbs2tv는 새로운 시도, 창극 시트콤 <옥이네>를 선보였다. 우리 소리와 코믹한 시트콤의 콜라보레이션, 옥이네는 한 편의 난장을 보는 듯 어수선하기도 하였고, 조금은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그다지 어색하지만은 않은 조합이었다. 


창극 시트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선 창극이 무엇인가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겠다. 흔히 우리 소리라 하면, '판소리'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다면, '판소리'와 '창극'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판소리 열 두 마당 등, 전통의 우리 소리로 알려진 판소리는 북을 치는 고수 한 명을 두고, 광대 한 명이 극 한 편을 온전히 끌고가는 1인극을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1인극이던 판소리가 20세기 들어 근대적 극장인 원각사의 설립과 함께 형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극장의 공연을 위해 1인극이 남창과 여창으로 나뉘고, 각각의 배역이 나뉘고, 배역에 따른 사실적 연기를 하게 된 창극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제 시대 암흑기를 맞아  크게 위축되었던 창극은 해방 후 국립 국악원이 설립 된 이후 여러 창극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1962년 국립 창극단이 결성된 이후 서양 오페라에 비견되는 우리의 음악극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거창한 역사가 아니더라도, 한때는 당대의 명창이던 조상현, 안숙선 명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창극이 안방 극장을 찾아들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의 급격한 발전 아래, 판소리 전통의 계승이라는 장르적 한계에 갇혔던 창극은 어느새  tv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게 이제는 이름조차도 생소해져가는 창극이 시트콤과 합체를 했다. 1월 1일, 2일에 걸쳐 방영된 <옥이네>가 그것이다. 
시트콤으로 돌아 온 창극의 배경은 우리 것의 잔향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전주, 전주 한옥 마을 골동품 가게가 바로 옥이네 집이다. 여주인공 옥이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파는 골동품을 자식처럼 아껴서 팔기조차 아까워 하는 골동품가게 주인이요, 옥이는 그 할아버지의 사라진 아들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자,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pd이다. 

전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걸맞게, 이야기도 전주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임진왜란 당시 각지에서 소실된 왕조 실록과 달리, 전주 유생들에 의해 지켜진 왕조 실록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그 역사적 전통이 오늘에도 면면이 이어져 가고 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담았다. 선비 사(士)자를 심볼로 내세우며 현재에도 여전히 일본에 의해 수탈된 문화재를 찾아오기에 고심하는 비밀 결사 단체 '검은 선비단'의 활약이, 창극 시트콤<옥이네>의 숨겨진 이야기이다. 우리 소리로 풀어내는 창극에 걸맞는, 적절한 소재의 이야기로, 극중 등장하는 각종 국악의 배경 음악과, 극중 인물들의 소리가 우리 문화재 지킴이라는 검은 선비단의 이야기와 이질감없이 어우러져 풀어진다. 

판소리나, 창극이나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의 형식이요, 서양의 오페라에 대응하는 우리의 음악극이듯이, <옥이네>는 이런 음악극의 요소를 고루 살리고자 한다. 극중 남주인공 격인 풍남문(이현우 분)을 흠모하는 아니, 모든 남자들을 흠모하는 노처녀 아나운서로 등장하는 안세련(이예림 분)의 노처녀가를 비롯한 코믹한 '혼자소리'에서부터, 10년간 이별한 부녀의 정을 풀어낸 남창과 여창의 합주, 2회 마지막 조선 왕조 실록을 빼돌리려 한 김관철 관장(박상규 분) 일행에 맞서 모인 검은 선비단의 웅장한 의분을 담은 '떼소리'까지 다양한 창극의 요소를 담으려 애쓴다. 

물론 아쉬운 점은 남는다. 일단 여주인공 역을 한 화영의 경우, 창극에 어울리는 발성은 물론, 그저 노래를 부르기에도 조금은 버거운 음량에, 시트콤을 '오버'라 해석한 과잉된 코믹 연기가 그녀의 미모로 덮어지지 않는 아쉬움을 남긴다. 극중 감초 역할의 이예림 역시 발군의 소리와 달리, 과잉된 연기와 캐릭터에 아쉬움을 남긴다. 여전히 시트콤= 오바 연기라는 잘못된 해석이 극을 관통하는 듯하여 시청자들의 집중을 흐트린다. 그와 함께 전체적으로 창극으로서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소리들이 등장했지만, 첫 시도로서의 노력 이상으로 잘 어우러졌는지에 대해서는 반성할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학'을 한 정서로 하는 우리 소리를, 시트콤이라는 현대적 장르와 콜라보레이션 하고자 한 시도 자체는 반길만하다. 우리 문화재 탈환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검은 선비단의 수장 할아버지 한길이라는 코믹하면서도 우직한 캐릭터를 통해, 그리고 그의 곁에서 얽히고 섥힌 가족들의 다양한 사연과 캐릭터를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가진 흥미진진함과, 거기에 곁들인 우리 소리가 신선했다. 때로는 '오글거리는' 소리의 등장이, 시트콤의 코믹한 요소로 여겨질 만큼. 부디 다듬고 발전하여, 창극 시트콤이 그저 우연한 시도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5. 1. 2. 21:08

결국 '임진왜란'이 터지고야 말았다. 풍전등화 앞의 조선, 하지만, 나라의 흥망이 눈 앞에서 오고가는데도,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자신의 입장을 놓을 수 없다. 그렇게 왜적이 침입한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른 속내를 펼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왕의 얼굴>은 갈리는 운명으로 풀어낸다.

 

왜적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수도 한양을 위협하는 상황이 다가오자, 선조(이성재 분)는 파천을 결정한다. 대신들에게 내건 명목이야, 좀 더 명에 가까운 곳으로 옮겨, 명에게 원병을 청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왕의 파천 행렬을 막아선 백성들의 분노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자기 한 몸 살겠다고 도망가는 거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도망가는 위정자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하다. 6.25 전쟁이 나고, 수도 서울을 버리고 한강 다리까지 폭파해버린 채 도망가던 이승만 대통령은 도망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도 서울의 사수를 내세웠다. 심지어, 후에 서울이 수복된 후 자신들이 다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공산치하에 내던져졌던 사람들을, '사상검증'의 잔인한 '인민 재판'앞에 던져 버린다.

 

왕의 얼굴

tv데일리

 

그렇게 도망가는 선조가 자기 대신 왜적의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은 다름아닌 '광해'였다. 명목이야, 맏아들 임해가 왕재가 아니요, 신성군은 너무 어린 탓이요, 왕자 들 중 가장 왕의 재목에 어울리는 현명함을 가졌다지만, 결국 왜적들의 손에 잡혀 목숨을 잃어도 어쩌지 못할 만만한 대상이었음을 드라마 <왕의 얼굴>은 밝힌다.

하지만 그런 선조의 '응큼한' 속내에 아랑곳없이,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큰 아들 임해군과 신성군은 자신들이 세자가 되지 못함이 먼저이다. 왜적이 들이닥치건 말건, 나라가 없어지건 말건, 자신들의 '자리'가 먼저인 그들은 어떤 면에서 가장 아비를 닮은 아들들이다.

그런 형, 동생들과 달리, 드라마 속 현명한 왕재 광해는, 그런 자신의 운명을 익히 알고 있으며서도 기꺼이 아비를 대신해 수도 한양에 남겠다고 말한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왕재'가 그저 헛운명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임란 속에서 위기에 빠진 왕가의 궁여지책으로 세자가 된 광해와 달리, 스스로 '왕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있다. 바로 김도치(신성록 분)다. 대동계의 수장으로, 평등 세상을 꿈꾸는 그들의 앞에 나선 모든 일들을 진두 지휘하던 김도치, 하지만 정작 선조를 암살하려던 대동계의 일원을 스스로 죽여버리면서까지 선조의 총애를 얻으려 했던 그의 속내가, 13회에 분명해졌다. 자신의 부모 형제가 억울하게 죽어갔던 분노를 '대동 세상'을 만드는 것을 통해 '승화'하는 대신, 그 자신이, 왕이 될 '역심'을 품는다. 왕의 재목이 별거냐며, 도망간 왕이 비운 자리에 자신을 앉혀본다.

 

국난의 시기에도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일신의 안녕을 우선하여, 발빠르게 도망했던 왕, 스스로 국경을 넘어 명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겨우 국경 근처에 머물렀던 왕, 비겁한 왕 선조와, 그런 아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세자가 되었던 광해, 그리고 결국 궁여지책이 그를 왕으로까지 만들었던 운명의 이야기를 <왕의 얼굴>은 '관상'이란 운명론적 서사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파천을 앞둔 전날 선조는 용상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왕이 되어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는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왕의 재목이 아니라, 결국 왜적들에게 나라를 내주게 되었다며.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관상을 통탄하고 있는 선조의 운명론의 맞은 편에 한양에 남아 광해를 돕겠다는 가희(조윤희 분)의 운명론이 있다. 왕의 후궁이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그녀, 하지만, 그녀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운명을 맞이하겠다며 광해를 돕기 위해, 남장을 하고 활과 목검을 챙긴다. 그런 그녀에게 당대의 최고 관상가 백경은 타고난 '관상'을 이겨내는 것이 '심상'이라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하지만 백경이 존중해 주지 않는 '심상'도 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도치에게 백경은 그에게 독초를 먹여 죽이려다 차마 죽이지 못했던 과거 자신의 우유부단을 후회한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도치의 결단은, 그저 왕재로 타고나지 못한 운명론을 넘어선 의지론이라기 보다는, 자신과 함께 했던 대동계의 동지들마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희생시키는 선조와 다르지 않는 '일신의 안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는 도치의 야욕 앞에 자신의 관상에 따라 진정한 왕의 재목으로 거듭나는 광해가 있다.

 

<왕의 얼굴>은 전란에 빠진 조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운명적 선택을 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상'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서사의 방식이, <왕의 얼굴>의 매력이자, 또한 한계가 된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인물들은, 결국 그로 인해, 다른 역사적 결과물을 낳지만, 드라마는, 그걸 원심력있는 역사로 풀어내는 대신,'관상'이라는 운명론으로 귀결시켜 버린다.

그래서 왕은, 나라를 버리고 달아나는 전날, 결국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나라를 이 지경에 빠진 자신을 반성하는 대신, 자신의 관상탓이나 하고 있다.

 

bnt뉴스

 

그런 왕을 대신하여, 졸지에 나라를 떠맡은 광해의 운명은 애처롭고, 그 상황에서 의연한 모습은 대단해 보이지만, 어쩐지, 그런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운명론적 영웅을 보는 듯, 단선적이다. 비록 최근 들어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새롭게 하여,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폭군'이 아니었음이 새롭게 부각되어지고 있지만, 정말, 적군의 총발받이로 남겨진 세자가 된 그가, 한번도 자신의 애꿎은 운명을 탓하지 않은 채, 그토록 애닮게 '백성'만을 생각하는 성군이었을까? 도망가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자신을 음해하고, 죽이려고 드는 형과 동생을 대신하여 화살을 받고, 총알을 기꺼이 받는 광해는 '순교자'적이긴 하지만, 매력적인 역사적 인물은 아니다. 광야에서 악마에 시달리며 자신의 운명을 놓고 울부짖던 시간이 있어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더 숭고하듯이, 인간적 고뇌조차 제껴두고, 오로지 백성만을 걱정하는 광해는,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럴 수록 생동감있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현실감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광해에 비하면, 오히려, 타고난 운명을 거슬러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김도치란 인물이 드라마적 흥미를 일으킨다. 하지만, 일찌감치 대동계의 인물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시킴으로써, 드라마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으려 한다. 신분제 사회 조선을 넘어서려는 김도치란 인물을 그저 결국 나쁜 놈으로 그려냄으로써, 그리고 '왕재'의 관상을 타고난 광해를 지고지순한 영웅으로 그려냄으로써, 운명론적 역사관에 스스로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2. 10:51

수능이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별력없는 수능이란 제도가 문제 되고, 그 속에서 제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처지가 논해지고, 새로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논의되는 대학 입시 제도, 교육이 곧, 수능이요, 공부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대학이 보내는 것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수능이 바뀌면 바뀔 수록, 점점 더 '공교육'이 제대로 서기는 커녕, 더 이른 사교육을 받고, 재빨리 특목고로 갈아탄 아이들이 유리해질 뿐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 심지어 학교 밖으로 튕겨져 나온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 조차 낙오자들 취급하는 교육 현실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여기 한 편의 연극이 공연되었다. 지금부터 쓰는 '리뷰'는 그 연극 자체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연극이 아니라, 그 한 편이 연극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보고 쓴 '감상문'이다. 12월 27일, 28일 양 일에 거쳐, kbs1tv를 통해 방영된 2부작 특집 다큐<우리는 두번 째 학교에 간다>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두번 째 학교에 간다>라는 연극을 공연할 주인공들은 학생들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아이들을 학생들이라 말할 수 있을까? 

2014년 교육부가 조사한 초중고 학생 학업 중단 현황을 보면, 학교 밖을 튕겨져 나온 학생들이 6만 여명, 이는 전체 학생 중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하지만 이들만이 아니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해도 조퇴와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깨어 있다가 수업 시작 종과 함께 잠을 청하는 아이들, 이렇게 학교와 세상의 경계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끼어 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집계 조차 되지 않는다. 그저, 공부 못하는, 혹은 안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우리는 두 번 째 학교에 간다>는 이렇게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나, 학교 밖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마포에 위치한 대안 교육 센터에서, 용인대학교 연극과 교수 박미리 교수의 지도 아래, 8명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나레이터로,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아 주는 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최불암 선생이 있다. 

8명의 아이들에게는 각각의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일찌기 선생님의 폭력으로 인해 학교 생활을 접어버린 아이, 강남 학군으로 이사 온 후 성적으로 이한 부담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둔 아이, 가출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 중학교 시절 화장을 하다 선생님의 눈 밖에 난 아이, 일반고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미용학교로 옮긴 아이, 부모님이 안계셔서 이 쉼터, 저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 오토바이 사고로 보호관찰을 받는 중인 아이,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 이른바 '문제 학생'이라 칭할 수 있는 8인 8색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연극은, 세상이 그저 '문제'라고 바라보는 이 아이들의 사연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 아니, 자기 자신을 올곧이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연극을 위한 모임 자체가 여덟 명의 아이들로 다 구성되기가 힘들다. 학교에서 쉬이 빠져나가던 아이들은, 규칙적인 연극을 준비하는 모임 자체에 성실한 것이 힘들다. 각자의 사연들도 그들로 하여금 연극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배달 알바를 하는 형이랑 사는 아이의 생활도, 이 쉼터, 저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의 생활도, 밤늦게 까지 미용실 알바를 하는 아이의 생활도, 학교가 끝나자 마자 pc방으로 직진하는 아이의 생활도.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모임에 아이들은 열중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폭력, 그리고 폭력이 아니더라도 폭언, 무시 등, 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들이 당했던 상처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스란히 아이들의 속에 남겨져 있다. 학교만이 아니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나이임에도 그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처지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면서, 묻어 둔 자신의 상처를 비로소 제대로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두 번 째 학교에 간다>라는 다큐가 가진 독특한 지점은 우리 사회가 제껴 놓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노회한 할아버지 최불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철딱서니 없다 라는 어른들의 시선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가끔은 참다 못해 너희들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떻게 그렇게 불성실하냐며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없이 아이들을 철없이만 보던 할아버지 최불암도,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변화한다. 그들을 문제아로 만든 것이, 그저 그 아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2회의 다큐 동안, 변화된 최불암의 시선을 통해 '어른'인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공연 바로 전날 까지도 저 아이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완성해 낸다. 그들이 가졌던 상처, 그리고 지금의 그들이 가진 두려움, 좌절, 그리고 혼란을 가감없이 자신들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걸 주변의 어른, 친구들과 나눈다. 그들이 완성한 연극, 그것이 바로 그들의 두번 째 학교였다. 

기적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아들은, 정말 두번 째 학교를 졸업한 사람처럼 달라졌다.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지려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자 한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의 연극을 지켜보며 변화한 어르신 최불암처럼, 아이들의 연극을 지켜 본 어른 들도 감회가 남다르다. 부끄러움에서 부터, '모든 아이들을 몰아넣은 공교육'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까지. 그저 '생각없는 아이'들이었던 아이들에게 진솔한 고민과 고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 자신도, 그들을 바라보던 어른들도 달라졌다. 진짜 '교육'이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진정한 질문이 던져진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12. 28. 23:59

2014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각 방송사 별로, 연예, 가요, 연기 부문의 시상을 한다 하여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각종 시상식이 즐비한 가운데 차분하게, 하지만 엄정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바로 시사프로그램들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영돈의 현장 속으로>와 <그것이 알고싶다>는 2014년의 사건, 사고들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jtbc는 12월 13일 발생한 세트장 화재 사건으로 방영이 불확실시 되고 있는 드라마 <하녀들> 대신 이적한 이영돈 pd의 <현장속으로>를 편성했다. 이영돈 pd가 예의 그다운 방식으로 2014년의 사건, 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사고의 위험성을 체험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 사고를 비롯하여, 판교 환기구 참사, 잠실 싱크홀 등 지난 1년 우리 사회를 경악에 빠뜨렸던 사건, 사고들의 현장에 이영돈 pd가 나섰다. 
사건들의 보도 이후, 이pd는 '하인리히 법칙'을 제시한다.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300여 개의 전조 증상과 29개의 작은 사고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300여 개의 전조 증상과, 29 개의 작은 사고들이 도미노 게임이 되어, 결국 하나의 대참사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삼풍 백화점 참사 사건을 든다. 개발과 발전이 중심 화두 가 된 사회, 건설 과정에서 보다 높은 건물을 빨리 짓기 위해, 몇 개의 부속이나, 몇 개의 기둥 정도 빼먹는 것은 쉽게 눈감아주는 관행이, 결국, 삼풍 백화점이라는 이 거대한 건물을 버티는 기둥이 몇 개 밖에 되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결국 참사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수 대교를 비롯한 각종 사건 사고들이 삼풍 대참사를 예언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관행적으로 부실을 눈감았고, 사업자들은 이익에만 눈이 멀었으며, 시공자들은 공기를 단축하는데만 급급하여, 결국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뉴스엔

그리고 이런 삼풍 참사의 전례는 고스란히 세월호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pd가 제시한 세월호와 같은 회사가 운영한 세모 유람선의 실태와 사고는 소름끼치게 세월호의 그것과 흡사함을 보인다. 쭈르륵 밀려 쓰러지는 도미노들, 그 중 단 하나의 도미노판이 제거 되어도 결정적 참사 한 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가 나야 문제점이 뭔지 알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성수대교 20주기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후진국형 사건 사고가 빈발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사고는 계속 일어 날 거'라는 예언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데서, 2014년을 보내는 마음이 착잡해 지는 것이다. 
부산 고층 건물 사고 이후 여전히 화마의 이동 통로가 되고 있는 각종 배관 통로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땜질식 처방이나, 방화문의 부실한 관리, 그리고, 판교 참사 이후 개선되지 않는 환풍구 관리와, 싱크홀 이후에도 잠실 땅을 파대는 각종 공사들이 또 다른 도미노 게임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이영돈 pd의 현장속으로>가 예의 이영돈 pd의 현장성을 살려, 2014년의 사건 사고를 되돌아 보았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1년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었던 각종 사건 사고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저 지난 1년간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식의 나열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올해 초 방영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형제 복지원' 사건이었다. 왜 형제 복지원인가? <그것이 알고싶다>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형제 복지원 사건을 보다, 한 남자가 통곡을 했다고 한다. 바로, 열 살 먹은 해 부산 역에서 형제 복지원에 잡혀 가 청소년 시절까지 무려 5년을 각종 구타와 고문, 노역에 시달렸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부러진 어깨뼈가 흉터로 남듯, 그의 마음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이 중년이 된 지금에도 남아있다. 하지만, '사죄'만이라도 해주기를 바란다는 그의 아내의 말처럼, 형제 복지원 당사자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부랑아'라는 꼬리표를 단 채, 피해자가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형제 복지원 사건으로 말문을 연 이유다. 

'개인'의 잘못이었다가, 사호 복지 법인의 문제였다가, 국가 정책의 문제임이 이제서야 조금씩 드러나는, 하지만 여전히 30여년이 흐른 이후에야 본인들이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 '끝이 나지 않는 사건'에 대해 <그것이 알고 싶다>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형제 복지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뼈동굴'로 넘어간다. 우연히 발견된 뼈 무더기가 발견된 동굴,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다. 6.25전쟁을 전후로, 100만명이 살상된 민간인 학살의 흔적들이, 남한 곳곳에 뼈무덤으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제서 발굴되어 플라스틱 상자에 들어있는 뼈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받아들 일 수 없기 때문이다.
4.19 이후 사회적 환기를 불러 일으켰던 민간인 학살 사건이, 5.16 발발과 더불어, 그것을 제시한 사람들초자 '빨갱이'로 몰면서 우리 사회 '레드 컴플렉스'가 발효되기 시작했다고, <그것이 알고싶다>는 진단한다. 2005년 어렵사리 진실 화해 위원회가 발기되고, 과거사 진상 조사가 시작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진실의 햇살은 그림자가 지고 만다. 

우리의 대통령은 일본에게 말한다. '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것의 방향을 우리에게 돌린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는 용기를. 20여년 만에 텔레비젼에서 형제 복지원 사건을 보고 통곡하는 중년의 가장의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그리고 여전히 갈곳을 찾지 못해 플라스틱 상자 안에 채곡채곡 쌓여있는 유골들에서 보여지듯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과거사 라 해서 잊혀지고, 지워져서 되는 걸까요? 라고 묻는, <그것이 알고싶다>가 귀결된 곳은, 2014년 최대의 사고였던 '세월호', 겨울 바람이 부는 팽목항, 인적이 드문 그곳에,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가장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사람들은 지겹다, 그만하자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가장을 기다리는,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가족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의문 투성이의 해명되지 않은 사건에 불과하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말한다. 형제 복지원, 6.25 민간인 학살처럼,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상흔으로 남겨진다고. 따박따박 짚어본다. 세상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가 있은 이후, 더 이상 세월호 이전과 우리 사회가 같아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2014년이 마무리 되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이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말한 그 이전과 달라진 사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사회인데, 과연, 세월호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 사회가, 정말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회냐고? 반문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스포츠 월드

흥청망청, 그래도 살만했어 라며, 수고한 사람을 찾아 상을 주며, 어떻게든 보람을 만들라며 애쓰는 연말, 시사 프로그램들만은 자신들의 본분을 놓치지 않고, 올 한 해 우리 사회의 실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것이 여전한 사건 나열식이든, 그것을 넘어서, 본질을 간파한 것이든, 떠들썩한 세밑에서 올 한 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놓치고 있는 것들을 논한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다' 


by meditator 2014. 12. 28. 14:03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인간의 몸으로, 솔선수범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바로 그 사랑의 현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날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해는 크리스마스치고 경기가 예년만 못하다며, 덜 흥청거리는 인파를 걱정할 지언정. tv도 마찬가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어수선함을 보이되,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의 특별함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저 <라디오 스타> 박준형의 말처럼, 최고의 'holiday'일 뿐이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성탄 특집 다큐 한편이 찾아왔다. <천상의 엄마>가 그것이다. 하늘이 보내 준 엄마를 기록하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무려,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큐가 시작되고, 대 여섯살이나 될까 하는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놀러 나간다. 그들을 인솔하는 건 초로의 수녀님 한 분, 아이들은 서로서로 수녀님에게 매미를 잡아달라, 물놀이를 해달라 며 매달린다. 그런데, 이 아이들, 수녀님에게, '엄마'라 부른다. 왜 '엄마'라고 부르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머리에 쓴 두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머리엔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린 초로의 수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웃는다.  할머니라 불러도 무방할 나이에, 아이들은, 그래도 자신들을 '엄마'처럼 돌보아 주는 수녀님을 엄마라 부른다. 그리고 수녀님도 어쩐지 아이들이, 자신을 '엄마'라 불러주지 않고, 수녀님이라 부르면 섭섭하시단다. 

부산시 암남동 산자락에 자리한 마리아 수녀회, 이곳엔 80여명의 엄마와, 그 엄마들이 키우는 600명의 아이들이 있다. 생후 1개월에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의 18살까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수녀님을 엄마 삼아 이곳에서 자란다. 6.25 전쟁 후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미국인 알로이시오 신부가 만든 이곳이, 2014년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존재한다.

▲ KBS 1TV <천상의 엄마> ©KBS
pd저널

그리고 이곳에서 수녀님들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돌본다. 영, 유아반, 초등반, 중고등반, 각가 다른 생활관에는 수녀 엄마들은 적게는 대, 여섯명에서 많게는 열 댓 명까지의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뒹구는 방 한 편, 문을 열면, 이층 침대 하나로 가득한 골방이 나온다. 침대 이층에는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으로 가득찬, 그 아래 겨우 몸 하나 누일 공간이 남은 곳 이곳이, 아이들의 엄마 노릇에 몸이 부대끼면 잠시 들어와 몸을 누일 엄마 수녀님만의 공간이다. 벽에 걸린 몇 벌의 수녀복, 그것이 수녀님의 전재산인 이곳이, 수녀님은 편하다며 웃는다. 

엄마 수녀님들의 일상도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어떻게라도 좋은 음식 한 첨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마음도,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의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아이가 아프면 수녀복의 권위건 뭐건 다 내팽개치고 대뜸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리는 것도, 그저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녀님들은 늘 진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안쓰럽다. 초로의 몸이 닳도록 아이들에게 스킨 쉽을 해줘도 열 댓명의 아이들에게 충만한 모정을 채워줄 수 없는 부족함에, 청소년기의 제 멋대로인 아이에게 한 잔소리가 행여나 마음의 생채기를 더할까 노심초사한다. 심지어, 이제는 다 커서 자식을 데리고 온 아이에게, 뒤늦게 서른 몇 명의 엄마로 살던 파릇파릇한 청춘의 멋모르던 엄마 시절의 잘못을 되새긴다. 그래도 품 안의 자식이라 고등학교 때까지는 거둘 수 있어도,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진짜 혼자가 되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말끝을 맺지 못한다. 

그렇게 해도 해도 다해지지 않는 '엄마'의 길을 지탱해 주는 건 바로 수녀님들의 신앙이요, '기도'이다. 그 바쁜 '엄마'의 일상 속에서도 빠짐없이 채워지는 하루 세 시간의 기도는, 그녀들이 '엄마'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근원이요, '엄마'로서 자신을 반성하며 채근하는 시간이요, '엄마'로서의 소명을 주신데 대한 감사의 시간이다. 아이들 걱정에 번거로운 생각에, 혹은 피로한 몸을 이기지 못하는 졸음에, 왜 자신이 '기도'에 온전히 충실핮 못할까 반성하면서도, '엄마' 수녀들을 버텨주는 건, 역시 온전히 '하느님'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도'이다. 

이곳에 있을 때는 착한 딸이었던, 그리고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아이는, 오랜만에 '엄마'를 찾아와, 늙은 엄마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신다. 엄마로 사는 수녀님의 삶이 너무 고되다고. 
하지만, 이제 '엄마' 노릇도 힘에 겨워 손을 놓고, '경비'를 하며 소일하는 걸음마저 절뚝거리는 늙은 '엄마' 수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예외다. 그건, '고생' 이 아니라, 삶이라고. 엄마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그걸 고생이라고 어디 생각하냐고. 평생을 아이를 돌보다 허리가 꼬부라지고, 눈꺼풀이 내려앉은 수녀님은 반문한다. 내 얼굴이 행복해 보이지 않냐고. 사진 속의 꽃같았던 아가씨였던 초로의 엄마는, 내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의 엄마로 살수 있었던 '소명'을 주신 것에 새삼 감사한다. 
다큐의 마지막, 한때 이곳에서 엄마의 자식 중 한 명이었던 아이가, 이제 엄마가 되겠다며 서원을 한다. 엄마가 되어 이곳으로 돌아온 아이를 박수를 치며 반기는 수녀님들의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그 고되고 보람찬 삶에 들어온 아이에,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소회다.

'불경기'라도, 어떻게 하든, 영화 한 편이라도 보며, '놀아야' 하는 '크리스마스', 우리가 잊고 사는, 이타적 사랑에 대해 <천상의 엄마>는 되돌아 보게 한다. 그리고, 엄마 수녀들의 조건없는 사랑에, 이기적 사랑조차 반추해 보게 만든다. 진짜 크리스마스는 여기에 있다. 


by meditator 2014. 12. 25. 13:31

잠에서 깬 한열무(백진희 분)는 옆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엄마에게 말한다. 동생 한별이를 죽게 만든 범인을 잡았노라고, 동생이 죽음에 이르게 된 건, 누가 동생을 미워해서가 아니고, 그저 운나쁘게 동생이 사건에 휩쓸려서 그렇게 된 거라고. 그러니 이제, 두 다리를 뻗고 잘 순 없어도, 한 다리라도 뻗고 주무시라고. 

<오만과 편견> 17회는, 드라마 전체의 흐름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동생 한별이를 납치해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검사가 된 한열무, 그리고 자신이 구하려고 했지만 구할 수 없었던 아이 때문에 검사가 된 구동치(최진혁 분)가, 그들의 15년 묵은 포원을 단방의 일격으로 풀어버리는 회차였기 때문이다. 
동생 한별이를 납치해 죽이도록 사주한 범인이 과연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일까? 이종곤 검찰 국장(노주현 분)일까? 미로 속을 헤매던 이야기가, 이종곤 국장으로 가닥을 잡아갔지만, 검찰의 수뇌부가 된 이종곤 국장의 뒤를 파면 팔 수록, 문희만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명확해지고, 수사를 하는 민생안정팀의 생사는 기로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7회, 문희만의 자신감에 찬 설득과 지시로, 그리고 이제는 노회하기까지 한 구동치의 팀플레이와, 15년의 원한으로 국장실의 문턱을 넘은 한열무의 담판으로, 반전, 결국, 이종곤 국장의 손에 수갑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 월드

그런데, 이렇게 드라마틱한 회차였음에도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긴박감이 실감나지 않는다. 핑퐁 게임처럼 누가 진범일까 라며 범인을 추적하는 구동치 휘하 민생 안정팀의 팀플레이는, 절박한데, 문희만이 취조실에 앉아있는 이후 구동치 역을 맡은 최진혁의 느긋한 말투처럼 느슨하다. 
무엇보다, 수석인 구동치의 지시를 어기고, 한별이의 수사를 계속하기 위해 성접대 동영상을 넘겨주면서까지 민생 안정팀을 지키려고 했지만, 그런 그녀의 마지막 승부수마저 무시당한 상태에서, 이른바 '검사의 고소'를 무기로 여론화라도 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이종곤 국장과의 담판을 한 한열무의 독대씬은, 전율이 느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오글거린다. 

<오만과 편견>이 지금 다루고 있는 이종곤 국장 사건은, 드러나기는 한별이 납치 살해 사건이지만, 문희만의 정리처럼, 특검의 독직 사건이다. 법치를 실행해야 할 검찰 권력이, 자신의 법치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애꿏은 서민을 희생자로 삼은 사건이다. 자신의 한 순간의 실수로 윗사람의 실수를 덮어주어야 하는 문희만과, 그 사건의 직, 간접적 희생자이자, 엄한 혐의자인 구동치, 한열무를 민생안정팀이란 한 팀에 모아놓고,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다시 한번 조작 은폐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거기엔 또 다른 재벌을 뒷배로 삼고, 이른바 '나랏일'이라는 사명감을 앞세워 자신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검찰권력이 있다. 

한열무의 다그침에도 당당한 이종곤 국장, 그런 그에겐 대의를 위해 한 아이의 목숨 정도야 별 거 아닐 수 있다는, '나랏일을 하는 자의 사명감'이 있었다. 그러기에, 검사의 고소라는 극단의 조치에도 눈도 끔쩍하지 않던 그가, '쓰레기'라는 외마디에 자백에 가까운 감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다. 
드라마는 이렇게 사슬처럼 이어진 검찰 권력의 구조적인 '갑질'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감넘치는 젊은 검사들을 등장시킨다. 민생 안정팀에 모인 구동치, 한열무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젊다고 정의감이 넘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된 세상에 어쩐지, 그들의 '정의감'은 서걱거린다. 사실, <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현실감넘치며 살아 움직이는 젊은 검사의 캐릭터는 안타깝게도 조연인 이장원(최우식 분)의 캐릭터다. 그가 연기하면 진짜 검사인 듯하다가, 구동치랑 한열무가 등장하면, 어쩐지 그저 극중 캐릭터만 같다. 그런 이질감을 방지하기 위해, 작가가 마련한 장치는 15년 전 의협심에 납치된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다 실패한 구동치와, 동생을 납치범에게 잃은 한열무라는 개인적 원한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를 만든다. 그들이 검사로서 정의감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사건의 목격자이자, 희생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15년이 지나, 수석 검사와, 수습 검사가 된 그들은, 15년 전 자신들이 희생자가 된 사건을 직접 수임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다. 하지만, 그들이 해결하려 들면 들수록 사건은 미로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증거를 발견해도, 그 증거를 가지고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이 그들의 수사망은 옥죄어진다. 누가 범인인가를 넘어, 눈 앞에서 범인을 보고도 놓쳐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른바, 여론을 불러 일으키는 '검사의 고소'를 빌미로 한 담판이요, 결국 그 역시, 15년 전 범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범죄를 시인하게 만드는, '자백'인 것이다. 
그토록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두뇌 싸움을 벌이던 드라마는, 결국 이종곤 국장이 범인인 것을 밝히기가 무섭게, 민생안정팀의 해체라는, 두 손, 두 발을 묶어 버리는 극단의 장치를 쓰는가 싶더니, '자백'이라는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한다. 
동생의 범인을 눈 앞에 두고도 놓치는 막막한 상황, 성접대 동영상까지 넘겨주는 무리수를 쓰면서도 수사를 계속 해보려던 상황이 막혀버린 절막감을 심어주면서, '자백'의 장치를 극적으로 몰고가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수사극에서 손쉬운 해결 방법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재계와 밀착하여 권력을 이어가는 법치의 세계, 눈 앞에 범인을 두고도 권력의 의중에 따라, 춤 출 수 밖에 없는 재판, 그리고 거기에 희생된 애꿏은 서민들의 구도는 명확하지만, 그것을 극적으로 풀어내는 회심의 일격으로, 한열무와, 이종곤 국장의 독대씬은 도무지, '크레센도'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화영'이라는 뒷배와의 딜을 통해 해결을 했다는 문희만의 복선과 무관한 극적 감흥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뜬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절박감도, 마지막 말로 묵은 포원이라도 풀어 보겠다는 듯이, '검사의 고소'라는 카드를 들고 국장실을 찾은 좌절감도 어쩐지 실감나게 풀어내지 못한 여주인공의 연기이다. 안그래도 남자 주인공의 연기도 건들건들 설렁설렁이라는 캐릭터 설정을 넘어, 설렁설렁 해보이는데, 여주인공의 연기는, 15년 묵은 포원이라기엔, 너무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종곤 국장의 '사명감 넘치는 자신감'마저 덤덛하게 만들 정도로. 그녀의 앳되고 해맑은 얼굴과 덤덤한 말투는 야무지고 당돌하고 밝긴 하지만, 그 이상, 15년전 동생을 잃고 공부만 했던 한열무라는 인물을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문희만이 등장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다가도, 그가 사라지고 나면, 그 어떤 극적인 행동을 해도 느슨해져 버리는 것, 그게, <오만과 편견>의 딜레마다. 제 아무리 문희만이 분위기를 잡고 긴장감을 부여해도, 결국, 중반부를 넘어서는, 기성 세대의 비리를 척결하는 젊은이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주저 앉아 버리니, 여러모로 아쉽다. 

물론, 여전히 '화영'이라는 재벌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과 손을 잡은 문희만의 행보, 과연 그가 구동치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그리고 범인을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임을 깨달은 구동치의 행보 역시 남은 <오만과 편견>의 관전 포인트이다. 하지만, 17회처럼 드라마를 풀어낸다면, 애초의 주제 의식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설익은 젊은 배우들의 연기와 쉬운 해결이 드라마를 용두사미로 만들 지 않기를. 


by meditator 2014. 12. 24. 15:09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불경기가 뭐다 하지만 변함없이 흥청거리는 거리, 하지만, pd수첩의 시선은 이 흥청거리는 거리에서 그 흥겨움을 함께 나눌 수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갑도, 을도 될 수 없는, 진짜 '미생' 인턴 사원의 이야기이다. 


<썰전>에서 우리 사회 인턴 사원의 현실태를 점검하며, 인턴 사원 중 실제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거의 미미함을 짚었었다.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서 흘러가듯 짚어봤던 우리 사회 인턴의 현실, 하지만, 실제 카메라가 쫓아간 그 곳에서 한 청년의 죽음이 목격된다. 

2013년 4월, 대기업의 인턴 사원이 되었다며 식구들과 주변 친지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았던 청년, 그러나 그는 인턴 사원으로 근무한 지 불과 4개월만에 자기 자취방에서 목을 맸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기 얼마전, 그는 누나에게 자신이 인생의 패배자이며, 사회의 낙오자라며 자책했다고 한다. 대기업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그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고를 보였던 그가, 불과 4개월만에 '낙오자'라고 낙인찍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엔

자살을 한 청년이 근무했던 대기업은 '동부금융 네트워크'이다. 다수의 청년들을 기수별로 인턴사원으로 뽑는 이 대기업이 인턴사원들을 뽑아서 시키는 일은, 커피 심부름도, 복사도 아닌, 뜻밖에도 '보험 영업'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성취한 보헙 영업의 결과를 '정규직' 전환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조건'을 성취하고 정규직 전환을 이룬 인턴 사원이 있었을까? 이 회사의 정규직 전환율은 0%, 단 한 명의 인턴 사원도 정규직이 될 수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 간부 직원은 당당하게 말한다. 그들이 내세운 조건에 도달한 인턴 사원이 없었다고. 하지만, 이 회사가 내건 '영업 조건'은 일반 전문 보험 모집인들의 평균 실적을 상회한 것이었으니,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인턴 사원들에게는 애초에 도달하기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불가능한 조건을 향해, '대기업의 정규직'에 볼모가 된 인턴 사원들은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영업의 스트레스로 위천공이 와서 수술까지 받았던 청년은 더욱 실적의 강박을 느꼈고, 결국 보험 모집을 위해 측근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던 상황이 대인 기피로 이어지며, 결국 자신을 '인생의 낙오자'로 낙인찍기로 귀결시켰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너도 나도 '대기업 정규직'이 되고자 찾아들었던 이 회사는, 기실, '대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동부 그룹 조직표 속에 존재하지도 않은, 한 지점 격에 불과한, 고갈된 보험 모집 자원을 충당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이었다. 하지만, 취직이 절박한 청년들의 눈에는, 그런 조직 체계 외의 조직도, 그들이 내건, 보험 모집의 조건도, 모두, 정규직으로 가는 '관문'처럼 보일 뿐이었다. 

금융계 쪽에서 인턴 사원들을 '이용해 먹는'건 비단 동부 그룹만이 아니다. 실제 시중 은행에 인턴 사원으로 취직한 다수의 젊은이들이, '통장 개설' 등 은행 영업의 일선에 몰린다. 하지만, 그들이 '잡아온' 영업 실적은 팀장의 실적으로 둔갑하기 일쑤이고, 주변 친지들을 동원한 실적이 무색하게, 인턴 기간이 끝난 그들에게, 정규직의 기회는 요원하다. 

금융계 쪽만이 아니다. pd수첩은 '영업'의 일선으로 몰린 또 한 사례를 다룬다. 이번에는 우유 영업이다. 업계 후발 주자로 출발한 일동 후디스는, 다수의 인턴 사원을 뽑는다. 이들의 계약 기간은 11개월, 그 기간동안, 젊은이들은 발에 티눈이 박히고, 굳은 살이 밸 정도로 아침부터 언제 끝날 지모르는 우유 판촉 사업에 동원된다. 하루에 두 개, 할당을 달성하지 않으면 퇴근 할 수 없는. 

하지만, '정규직'이 되고 싶은 젊은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더우나, 추우나, 회사에서 나누어 준 우유 가방을 들고, 밀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꾀를 부리지도 않는다. 잠시 앉아서 쉬어도, 팀장의 채근이 무섭다. 

역시나, 이 '정규직'이 볼모가 된 인턴 사원들에게 진짜 정규직은 돌아오지 않는다. 11개월을 버텨 정규직이 된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이전에 그들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우유 판촉 활동을 했으며, 오히려 정규직이란 이유로, 실적 수준이 높아져, 월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다른 업무도 배우고 싶다는 인턴들의 말을 외면한 채 거리를 돌게 만들면서, 정작 회사에 필요한 인원은, '경력직 사원 모집'을 통해 충원했다. 

이 회사의 인턴 사원 기간이 11개월인 이유는 절묘하다.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11개월, 퇴직금 줄 필요 없이 책임 질일 없이  쓰고 버리기에 딱 좋은 기간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쓰고 버리기에 딱 좋은 11개월이 젊은이들에겐 금쪽같은 시간이다. 졸업 연도가 취직에 관건이 되는 사회, 졸업한 지 조금만 지나도 '퇴물' 취급을 받는 사회, 그래서 졸업 연도를 맞추기 위해, 휴학을 해야 하는 사회에서, '정규직'의 볼모로 잡힌 채 보낸 1년 여의 시간을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아니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정규직'을 볼모로 이들이 내처진, 보험 영업과, 우유 판촉 사업이, 이들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스스로 목숨을 거둔 젊은이 만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는 취업 전선에 다시 설 자신감을 잃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 회사 우유를 사먹이지 않을 만큼 증오의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다수의 젊은이들이, '영업'의 시간으로 인해, 살벌한 취업 전선에서 한 발 밀려났다. 

꿈을 볼모로 잡힌 젊은이들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부푼 꿈에 부풀었던, 심지어 외국 유학의 스펙까지 가진 젊은이들이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들이나, 디자인 회사의 인턴 사원이 되어, 젊음을 저당잡히고 있다. 참다못한 이들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앞에서 '실밥만을 먹으며 살 순 없다'고 생존권을 외친다. 

'꿈을 가지고 도전하라' 해놓고서는, 그 꿈을 담보로 사기치는 사회, 젊은이들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런 의문에 대답은 커녕,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만 궁리하는 기성 세대의 사회, 그들이 결국 등쳐먹는 것은, 자기 아들 세대라는 걸, 그들은 모를까? 그래놓고는 알량한 '인턴' 사원조차 취업율에 넣어, 우리 사회 실직율이 낮다고 떠드는 정부는 또 어떤지. 젊은이들이 가장 흥청망청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by meditator 2014. 12. 24. 12:30

12월21일밤 12시 15분 또 한 편의 새로운 예능이 조용히 등장했다. mbc의 <정의 본색>이 그것이다. 

김구라, 김보성, 윤형빈, 그리고 아이돌 틴탑의 니엘, 요즘 주목받고 있는 분야인 모델 출신의 강철웅, 또한 빠지지 않고 외국인mc 샘 해밍턴과 샘오취리까지 구색을 맞춘 mc군단이, 서울시 고충해결 상담소에 의뢰된 실제 사례들을 해결하고자 나선다. 이른바 방송을 통한 '정의 사회 구현'이다
4회 예정의 이 파일럿 프로그램은 애초에 mbc에브리원, mbc드라마넷, mbc뮤직, mbc퀸을 통해 매주 목요일 9시에 방송되고 있는 중으로, 그 공익적 가치를 높이 사 일요일 밤 공중파 mbc에서도 방영되게 되었다. 

<정의 본색>의 첫 번째 고충 해결 사안으로 등장한 것은 길거리 간접 흡연이다. 
아이를 데리고 가다,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던 사람이 피우던 담뱃불에 아이의 손을 덴 주부가 직접 아이와 함께 나와 길거리 흡연의 피해 사례를 전한다. 그에 이어, 서울 각 지역에 설치된 cctv를 이용하여, 거리 흡연이 빈번한, 그래서 계도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선정한다. 

그렇게 길거리 흡연자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찾다 제작진의 '매의 눈'에 걸린 곳은 '건대 전철역 2번 출구 옆'이었다. 
그곳 휴지통 옆에서 담배를 피고, 꽁초를 마구 버리는 길거리 흡연자들을 설득하고자, mc진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모델 출신의 연기자 지망생 강철웅은 묘령의 여배우와 함께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남친에게 '이별'선고까지 하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윤형빈은 거리의 청소부로 변장하고, 흡연으로 망가진 폐 모양 재털이를 마련하고, 흡연자들에게 담배를 끌 것을 요구한다. 김보성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가면을 쓰고 야심차게 흡연자들의 눈길을 끌고자 한다. 니엘은 아이돌답게 여학생들을 찾아가 금연송을 만들고자 한다. 


아직 금연 미션이 완료되지 않은 1회에서 mc진은 저마다, 흡연자들의 금연을 위해 갖가지 방안을 내놓는다. 그것을 보다보면, 과연,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공익인 '길거리 흡연 방지'인지, 길거리 흡연을 매개로 한 '예능'인지 모호해진다. '공익'과 '예능'의 결합이라지만,  길거리 막장극이며, 청소부 코스프레가 정말 길거리 흡연 방지에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한 건지 의심스럽다. 그저, 여러 출연진이 저마다 돌아가며, 출연 분량을 만들면서, 예능으로 구색을 맞추려고 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번다한 미션들은, 그곳에, 흡연 박스를 놓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비흡연자들의 권리도 보호하고, 흡연권마저 인정해 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키 위한, 긴 여정이라기엔, 어쩐지 어디선가 본듯한 뻔한 설정의 나열이 아닐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공익 예능'이라며 대뜸 길거리 흡연을 들고 나온 것부터이다. 
물론, 길거리 흡연이 불법이며, 거리에서 마구 담배를 피는 사람들 덕에,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들이 원치 않는 간접 흡연을 하게 되는 불편함을 겪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그램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들이 버리고 간, 즐비한 담배 꽁초의 불쾌함 역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정의'를 내세우며 장황하게 '정의'에 대한 '정의'로 오프닝을 장식한 '공익'을 내세운 '예능'이 하필이면 첫 회에 내세운 것이 길거리 흡연인가 말이다.
이건 마치, 정부의 세금이 부족한데, 정작 세금도 잘 안내고, 돈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말 하기 어려우니, 만만한 흡연자들의 담뱃값을 올려 세금을 충당하겠다는, 정부의 최근 행보와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거창하게 '정의 본색'이라 내세운 프로그램인데, 정말 우리 사회가, 사람들이 '길거리 흡연'을 마구 해서, '정의 사회'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지? 정말 사회 '정의'가 뭔지는 알고나, 프로그램 제목을 붙인 것인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이런 공익 예능적 시도가 처음도 아니다. 지난 10월2일에는 과거 공익 예능의 대명사 이경규를 앞세워 <국민 고충해결단-부탁해요>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내보내고, 거리의 신호 지키기 란 공익 과제를 내세우더니, 이번엔 <정의 본색>이라며, 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을 다잡겠단다. 

두 프로그램의 과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익'이란 명목으로,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해주겠다면서, 결국은, '시민'에게 무엇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차선을 지키는 것이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지 말라는 것이든, 그 대상이 시민이다. 시민이 잘못했으니,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우리 사회가 고충을 겪고,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 게, 시민들이 제대로 된 시민 의식을 가지지 못해서라는건가? 전형적인 뭐 묻은 뭐가 뭐 나무라는 식이다. 

진짜 우리 사회 시민들이 고충을 겪고, 정의가 외면받는 현장은 제쳐두고, 만만하니, 돈없고, 빽없는 시민들을 상대로 '훈장질'이나 하겠다는, 심뽀, 이게, 최근 빈번하게 시도되고 있는, mbc의 '공익 예능'이 아닌가 싶다. 정작 mbc 내 '정의 구현'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서, 만만하니 거리의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인가? 거리에서 흡연을 안하면, 정의 사회가 구현되는 사회, 참 만만한 '정의'다.


by meditator 2014. 12. 22.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