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교육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짚어보기 시작했던 ebs의 <다큐 프라임>은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공부 못하는 아이>란 기획을 1월5일부터 5부작으로 방영했다. (종합 1월 11일, 18일) 5부작은, 1부<공부 상처>, 2부<마음을 망치면 공부도 망친다>, 3부<성적표를 뛰어넘는 성공비밀>, 4부<지능이 아니라 마음이다>, 5부<마음이 자라는 180일>로 이루어진다. 

다큐 프라임은 이를 위해, 2013년 12월부터 1년 동안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공모전을 열었고, 여기에 모인 300여 편의 수기, 애니메이션, 포스터, 영상 작품등을 통해 <공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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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른바 '공부 못하는 아이'란 누구일까? 대한민국의 초,중, 고생들 중 누가 자신을 공부 못하는 아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1년간의 <공부 못하는 아이로 산다는 것은>의 공모전은 놀라운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전한다. 이 공모전에서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들을 공부 못하는 아이라 정의내린다. 전교 1등이면서도 아이는 공부가 무섭다고 하고, 공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 둔 아이도 있었다. 동영상 속 미국 소녀가 말하듯, 부모들은 열 살 먹은 아이가 당장 내일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을 치루기라도 하듯, 그렇게 아이들을 닥달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공부로 인격조차 순위를 매기는 학교에서, 그리고, 그런 학교 성적때문에 다시 닥달하는 부모로 인해 씻을 길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대한민국 학생 중 99%가 공부로 인해 상처를 받는 현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다. 

2부, 다큐에서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실험을 한다. 수학 시험을 치루기 십 분 전, 한 그룹의 아이들에게는 기분나빴던 일을 쓰게 하고, 그렇지 않은 다른 그룹과 함께 시험에 임하게 한다. 놀랍게도 단지 기분 나빴던 일을 쓰기만 했던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평균 5점의 점수 차이가 난다.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80여 문제를 한 그룹은 강압적으로, 또 다른 그룹은 원하는 대로 풀게 만들었을 때, 두 그룹의 집중력 시간은 물론, 문제를 푼 갯수에서 조차 현격한 차이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 결과와 정반대로, 성적을 올리겠다는 집념으로 부모들은 마치 경주마를 닥달하듯이 자신의 자식을 닥달한다. 아이들이 잠시라도 숨을 쉴 여유조차 없이. 결국 그런 부모들의 닥달에 반발하는 아이는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고, 폭력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전문가는 말한다. 그런 부모의 조바심은 결국, 입시 지옥을 양산하는 이 사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다고.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대안을 찾기 위해 다큐는 시선을 외국으로 돌린다. 하버드 대 교육 대학원 토드 로즈 교수, 그는 현재 하버드 대 교수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전과목 f를 받아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를 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학교에서 내친 그를 믿어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의 부모들이었고, 그런 부모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현재 그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수업 시간 토드 로즈 교수는 말한다. 4000 명의 비행기 조종사들을 측정해 보니, 이른바 비행기 조종사의 전형이라 불리우는 수치에 딱 맞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라 말한다. 이른바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의, 혹은 전형의 방식은 없다고. 

제작진은 수능을 본지 10년이 지난 30세 젊은이들의 현재를 조명했다. 경제적 안정을 비롯한 삶의 행복 지수 5가지에 만족도를 보인 상위 20% 그룹들을 분석한 결과, 그들이 대부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가고픈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던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로 인한 부모님과의 갈등이 적었고, 부모님에게서 정서적 지지를 얻었던 그룹들이 서른이 된 현재도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을. 결국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 그가 함께 한 가족들과의 정서적 유대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미국으로 돌린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연설에서 한국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한 적도 있듯이,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의 뒤떨어진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Race to the top' 정책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주에 걸쳐 높은 수준의 시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각 학교에 대한 지원을 달리 하기로 했다. 그 결과, 느슨했던 미국의 교육 현장은 되풀이 되는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한 시험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갔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교육 정책과 함께 늘어난 것은, 은 높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학생들의 숫자였다. 그렇다고, 오바마 행정부가 원하는 만큼 학생들의 성적이 오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학생들의 등교 시간을 늦추고, 하루를 온전히 뒤떨어진 학생들에게 할애한 학교 등에서 아이들의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결국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부모와 선생님의 사랑이요, 관심이었다. 


사랑과 관심까지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상처를 받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실은 공부에 상처를 받았는데, 그것을 들여다보기는 커녕, 지레 공부 못하는 아이라 낙인찍어버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5부에서는 장장 180일에 걸친 실험을 실시한다. 한 고등학교에서 뽑힌 7명의 아이들, 그들은 높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로 인해 시험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에서부터, 본인은 부모 말도 잘 듣고, 공부도 하려고 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 그리고, 외국에서 살다 온 후 한국의 학업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까지 다양한 아이들과 함께, 공부의 상처를 치유하는 180일의 시간을 보낸다. 
우선, 시작은 사사건건 아이의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부모를 제거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방문을 허락없이 열고 들어와서 무엇을 하나 감시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부모의 시선이 없어진 것에서 의아해 하며, 그동안 못했던 프라 모델 놀이를 마음껏 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스스로 하기 시작한다. 도무지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아이들을 위해, 공을 던져보며 원리에서 부터 공부에 대한 흥미를 가져보도록 유도한다. 그저 단 한 번, 그 원리를 함께 알아봤을 뿐인데도, 아이들은 달라져 갔다. 뿐만 아니라, 그 과목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성적표를 보여주고 싶을 때 보여주면 된다는 부모들의 말에, 시험을 봐도, 성적표를 받아도 아이들은 여유를 가지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도를 닦는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교육 방송의 새해 첫 기획 다큐가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늘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하는가 라는 그 방법에만 골몰하던 교육이, 그렇지 않은 외각 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여전히 어떻게 해서 그들을 공부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학생들 99%가 '공부 상처'를 받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다큐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교육 다큐는 다양한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심리적으로 그들을 들여다 보고, 다양한 심리 실험등을 통해, 그들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현실은 냉정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잠시 잠깐이라도 한 눈 팔 틈을 주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고, 그 여유 없음은, 그들이 우리 사회로 부터 느끼는 압박감으로 부터 비롯된 공포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그렇게 한 발 짝이라도 삐끗하면 벼랑으로 떨어질 사회 속에서 공포를 느끼며 사는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한 선택지를 위해 아이를 닥달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여린 마음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다. 상처받아 불뚝거리는 어린 새싹들은, 그럼에도 부모의 따스한 말 한 마디, 애정 어린 관심 한 움큼만으로도 변화하기 시작하니까. 부모의 따스한 손길만으로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다큐는 끝을 맺는다. 여전히 세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지만, 그 험난한 세상에서 조금 덜 불행해 질 수 있는 선택지는 유효한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내려놓은 사회, 욕심을 내놓은 부모가, 결국 아이들의 행복의 나라이다. 


by meditator 2015. 1. 18. 21:25

새롭게 시즌2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에 대해 <삼시세끼>를 흉내냈느니, <1박2일>을 흉내냈느니, 구설들이 많다. 솔직히 제 아무리 그럴싸한 변명을 해도, 시골 외딴 집에 떨어뜨려 놓은 것은 <삼시 세끼>요, 여섯 남자에게 딸랑 한 조각의 아침 식사 토스트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미션을 제시하는 것은 <1박2일>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1박2일>의 원년 멤버인 은지원까지 데려다 놓았고, 은지원은, 그가 <1박2일>에서 하던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으니, 더 그럴 밖에. 하지만, 그렇게 이리 갖다 붙이고, 저리 갖다 붙이며 구박덩어리가 된 <인간의 조건>이 진짜 문제인 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이, 이젠 <인간의 조건>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소모해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삼시세끼>를 통해 슬로우 라이프의 예능화에 성공한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가기 전 런칭한 프로그램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파일럿으로 시작한 <인간의 조건>에서 三無, 즉 컴퓨터, 텔레비젼, 그리고 핸드폰 없이 사는 삶을 제시했을 때, 그건, 그가 tvn으로 이적하여 추구했던, 아날로그화된 슬로우 라이프 예능의 단초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조건>은, 최근 예능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가능성으로 품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2015년 현재, <삼시세끼>를 흉내내고 있다, <1박2일>을 모방한다며 욕을 먹고 있는 <인간의 조건>은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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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텔레비젼, 핸드폰을 빼앗겼던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우리가 텔레비젼을 통해 만나던 연예인이 아닌 여섯 남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마치, <삼시 세끼> 속 이서진이,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만나던 이서진이란 탈렌트가 아니라, 좀 까칠하지만 젠틀한 노총각처럼 말이다. 그래서, 뚱보 개그맨이 아니라, 감수성넘치는 김준현이 드러났고, 웃기는 개그맨이 아니라 엄마같은 정서를 가진 정태호가 발견이 되었었다. 겪의없는 선배 김준호도, 정말 웃기고 싶어하는 박성호도 그렇게 알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영석이 사라진 <인간의 조건>은 그때부터, 이른바 '인간답게 살기 위한' 미션들의 전시장이 되었다. 그래도, 초반에 물없이 살기, 쓰레기없이 살기, 지갑없이 살기까지는, 그래도 어찌어찌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미션을 위한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었다. 그래도, 미션을 위한 미션을 버텨 간 것들은, 애초에 인간적 매력을 듬뿍 선사했던 개그맨들 개개인의 인간적인 면면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마저 소진된 프로그랭은, 결국, 여성판 인간의 조건으로 화제를 돌렸고, 급기야는 멤버들을 개편하고, 아이돌들을 비롯한 게스트들을 초청하며 연명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그 조차도, 소진되어 버리자, 이제 시즌2라는 이름으로 물갈이를 하고 등장하였다. 

그런데 어쩐다. <인간의 조건2>라고 해서 새롭게 보는 사람들이야, <삼시세끼>랑 비슷하다 하고, <1박2일>이랑 비슷하단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인간의 조건>을 쭈욱 시청해 온 시청자 입장에서는, 시즌2의 <인간의 조건>이 그전의 인간의 조건이랑 너무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마치, 시즌 1의 멤버들이 생명을 다하자, 슬쩍 몇몇 멤버들을 물갈이 하고, 그들에게 미션을 준 것처럼, 남성 멤버들이 인기가 없어지자, 여성 멤버들에게 남성 멤버들이 하던 미션을 고대로 주고, 도돌이표를 한 것처럼, 새롭게 시작된 <인간의 조건2>의 이른바 5無라이프는 마치 몇 번째 되풀이 되는 도돌이표 노래를 다시 듣는 것 같다. 

오죽하면, 그들이 쓰레기를 없이 살기 위해 하는 고군분투도 다 한번씩은 본 것같고, (심지어 본 것들이 다수이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모습도, 컴퓨터, 핸프폰, 텔레비젼 등이 없어 아쉬워하는 모습들도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분명 출연자들은 전혀 달라졌는데, 하는 내용이 똑같으니, 마치 군인들이 군대에 가면 똑같이 되듯, 매뉴얼을 실행하는 듯한 상황을 지켜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끔은 아마도 다음에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출연자들의 반응에 실소를 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그간 <인간의 조건>을 충실하게 지켜본 시청자라면 공감하게 될 부분일 것이다. 딴에는 새롭게 시골에다 그들을 풀어 놓았는데, 그것도 이미 남성판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다해본 것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도대체, 바쁜 도시의 삶에서 고민해야 될, 컴퓨터, 텔레비젼, 핸드폰 없이 살기를 시골에서 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미션의 의미도, 가치도 둥둥 떠다닌다. 

심지어 새로운 출연자들인데, 출연자들의 면면도 새롭지 않다. 윤상현은, 예능에서 소진된 캐릭터가 아님에도, 그가 보이는 행동의 면면은, 그가 드라마 속에서 보여주던 캐릭터와 그리 이반되지 않아 새롭지 않다. <삼시세끼>의 매력이, 이서진이라는 인물, 연예인이 가진 반전 매력에 상당 부분 기대어 있는 것과 달리, 이상하게 윤상현은, 연예인 윤상현과 별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 합류한 은지원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이미 소진될 대로 다 소진된 '은초딩' 캐릭터를 모두가 예능 초짜인 배우들 예능에 끼워넣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 제작진의 선택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고 은초딩 캐릭터를 넘어서 은지원이 배우들 가운데 예능적 조화를 이루는 것도 아직은 난망이다. 그나마 신선하다면, 케이블 예능을 통해 가능성을 보인 봉태규 정도이지만, 역시나, <인간의 조건>은 그가 케이블에서 보여 주었던 그 이상을 끄집어 내지 못한다. 허태희가 가능성이 보이지만, 아직은 미지수고, 현우나, 김재영은 굳이 왜 예능에 나왔는지 아직 타당한 이유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마치, 배우들 예능이 대세라니, 우르르 몰려나온 모양새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르르 몰려 나온 그들에게 개연서을 부여해주는 것이, 제작진의 몫이지만, 이미 <인간의 조건> 앞 시즌에서 보여지듯이, 그것을 하기엔 늘 미션 우선의 제작 방식이 발목을 잡는다. 

시즌에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1박2일>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조건>이 출연자들을 갈아치우고, 남성편, 여성편에 이제 시즌2까지 거듭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남성편, 여성편을 하고, 시즌2를 하는데, 새로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데 있다. 심지어, 이제는 <인간의 조건>이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이, 타 프로그램의 아류만 말이나 듣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조건>을 쭈욱 지켜보며, 줄곧 지적했던 지점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없이 살고, 쓰레기 없이 살고, 물없이 살고, 돈없이 사는 미션을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삶을 되돌아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었다. 그것은 번다한 미션 후에, 몇 마디 멘트로 설명할 수 없는 프로그램의 정서다. 물론, 제작진은 이 시대 인간들의 삶을 되돌아 보기 위해, 숱한 조건들을 고민해 왔다. 하다하다 심지어, 피부 미용에 탈모까지. 하지만 언제나, <인간의 조건>에서 2% 부족했던 것은, 바로 나영석 피디가, 지금 <삼시세끼>를 통해 펼쳐보이고 있는 바로 그, 아날로그화 된 슬로우 라이프였다. 그것은 다채로운 미션, 다양한 출연진들만으로 메꿔줄 수 없는 프로그램의 철학인 것이다. 늘 그것의 빈자리가 아쉬웠던 <인간의 조건>이 결국, 타 프로금의 아류로 지적당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귀결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단 8회의 분량으로 트렌드가 된 <삼시세끼>와 몇 년을 거듭한 <인간의 조건>을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매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공중파 피디의 안타까운 숙명을 상기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1박2일> 시즌3가 <1박2일>이지만, 심지어 그 전의 멤버 김종민과 차태현이 있는데도, 그들의 앞선 시즌에서의 활약이 전혀 떠올려지지 않듯이, 시즌2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이라면, 다른 버전에 대한 준비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도시에서의 멤버들을 시골로 옮겨놓고, 여러 가지 미션을 한데 뭉뚱그려 충격파를 더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2015년에 생각해 볼 만한, 진짜 인간의 조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 하겠다. 부디, <인간의 조건>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생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5. 1. 18. 13:11

우리 사회에서 '귀촌'이나, '귀농'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중년의, 혹은 초로의 나이에 선택가능한 삶의 행보 중 하나로 뚜렷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그 또 다른 삶의 선택지는 <삼시세끼>의 그 한량스러운 삶처럼 느긋하게 포장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삶의 고달픔이 거기라고 다를손가. 1월 17일 방영된 <다큐 공감-소나무 마을 8가족 생존기>는 귀촌, 귀농이라 쓰고, 멋들어지게 포장되어왔던 전원의 이상적 삶의 포장지를 뜯고, 그 안의 가감없는 진솔한 삶을 전해주려 애쓴다. 


2010년 함께 전원 생활을 꿈꾸는 까페에 가입해 있던 우루사(닉네임)은 모래(닉네임)에게서 온 '좋은 땅을 찾았어요'라는 한 통의 문자에 다짜고짜 송금을 했고, 충남 아산시 소나무 마을 8가구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큐의 시작은 그리 황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전원 생활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과 달리, 오직 개를 기우고 싶어 전원 생활을 시작했다던 가장은 이제 개가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또 다른 가장은 물 내려가는 소리가 이상하자, 헐레벌떡 마당으로 향한다. 아파트에 살면 경비 한번 부르면 될 것이지만, 이제 허투루 지내보낸 물 소리 한번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채득했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 유독 눈이 많이 왔다던 아빠의 말끝엔 원망이 서려있다. 아이들은 아빠가 계단을 메워 만들어 준 미니 눈썰매장이 신나지만, 그 곁엔 눈삽을 들고 허망한 아빠의 노고가 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어느 집 가장은 진급이 여유로운 도시의 직장에서 이곳으로 전근을 했고, 또 다른 가장은 여전히 서너시간 걸리는 도시의 삶을 위해 새벽 길을 나선다. 하다못해 삼십 분 거리 인근 번화가에서 술 한 잔을 해도, 대리기사가 돌아가는 돈까지 셈해주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주변엔 마트도 없고, 치킨이나 피자 배달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소나무 마을에 모였을까? 이들을 소나무 마을에 모여들게 한 직접적 계기는 인근에 위치한 '거산 초등학교'이다. 10년 전 줄어드는 학생으로 인해 폐교 위기를 겪은 이 학교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노력으로 '생태학교'로 거듭났고, 이후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거산 초등학교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나무 마을 17명의 아이들도, 모두 이 학교를 다니니, 거산 초등학교가 이들의 귀촌의 직접적 원인인 셈이다. 
이게 쉬는 시간인가 싶게, 아이들의 수업 시간은 왁자지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판을 벌린 건 윷놀이요, 칠판은 졸지에 윷놀이 판에, 아이들은 저마다 편을 먹고, 이길 전략을 짜느라 분주하다. 아이들이 목이며 팔에 주렁주렁 매달린 중년의 남자가 선생님이란다. 그 반 만이 아니다. 유치원 아이들은 엄마와 선생님의 손을 잡고 눈 내린 겨울 산 산행을 즐긴다. 개구리 한 마리 쯤 잡는 일이야 이 아이들에겐 예사로운 일이다. 
아이들의 분주함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집의 아이가 하나건, 둘이건, 학교가 끝난 아이들은 이집으로, 저집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냉장고를 털고, 거실을 저지레하며, 떠들썩하게 논다.
부모가 말 안듣는 아이들을 항복시키는 제일 기막힌 말은, '학교 보내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는, '퇴근'이란다. 


하지만 행복한 아이들을 위해 소나무 마을 사람들이 감수할 삶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양지바른 곳에, 논으로 훌쩍 트인 '좋은 땅'은 분명했지만, 그곳에 집이 세워지기 까지, 마을 사람들과 멱살잡이를 하며 물싸움도 하고, 허락을 내주지 않는 관계 기관과 법률적 실갱이를 벌이고, 여덟 가구 중 누군가는 자기 몫을 희생해야 하기도 했다. 인터넷 까페에서 모여, 전원 생활을 즐기자고 시작한 의도가, 현실이 되었을 때 녹록하지 않음을 여덟 가구는 혹독하게 경험했고 경험하는 중이다. 

카메라가 찾아간 소나무 마을 식구들은 늘 분주하다. 위치를 생각지도 못한 채 화목 보일러를 놓는 바람에, 땔감 한번 들일 때마다, 남편과 아내가 갖은 고생을 하고, 비용 치레도 만만치 않았던 집은 땔감을 창고로 넣느라 쩔쩔 맨다. <삼시 세끼>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짠! 하고 만들어 졌던 아궁이를 만드느라 또 다른 가장은 하루 종일 흙과 벽돌로 씨름한다. 그나마 목수였던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가장이 가장 여유롭다. 
도시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도시의, 아파트의 삶에 맞춤으로 제작된 세상에서, 시골에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건 온전히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고달픔만은 아니다. 서너시간의 출퇴근을 감수할 만큼, 고단한 삶의 끝에 맛보는 보람을 준다.
아내를 졸라 멋진 목공 기계를 선물 받은 가장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아이들의 다락방을 자랑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성장해도, 이곳이 아이들의 추억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인근에 없는 마트 대신, 아내들은, 직거래 농산물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지역에서,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저 사고 파는 관계를 넘어, '생명'이 있는 먹거리를 향한 행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하루를 걸려 만든 화덕에 불이 들여지고, 솥에서 연기가 나자, 자연스레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 

물론 함께 사는 건 녹록치 않다. 비가 오는 날 모처럼 번개를 한 주부들이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친해진 것은 아니다. 한 마을에서 살기에 당연히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이들의 관계를 어렵게 했던 적도 있었고, 함께 부대끼는 속에서의 외로움도 저마다 겪었다. 하지만, 이제 4년 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모나고, 거친 것들이, 조금씩 무뎌지고, 둥글어지는 과정이다. 
모처럼 마을 회의 시간, 일년에 두번 함께 하는 여행에, 아내들은 '서울 구경'을 주장할만한 시간이 흘렀다. 


<다큐 공감>은 소나무 마을 여덟가구의 삶을 '생존기'라는 표현을 썼듯이 가급적이면 가감없이, 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물론, 전해지는 삶은 고달프다. 물 내려가는 소리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듯이, 농촌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끝가지 사는 사람의 노력을 요구한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소나무 마을이 얹힌 주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도 늘 숙제다. 지금은 거산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진학도 고민거리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하나둘씩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 이제 여덟 가구가 생기니, 말 그대로, '마을'이 이루어 졌다고. 17명의 아이들 중엔 소나무 마을 에서 태어난 '토박이'도 있다고 마을 주민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불편함이 불편함이 아니라, 삶의 당연한 과정으로 익숙해져 가고, 그것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도시의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단어, '마을', 그게 소나무 마을에 있는 것이다. 사람사는 맛이 저건가 싶다. 


by meditator 2015. 1. 18. 11:58

60여년이 넘은 분단의 역사는, 우리에게 '이산 가족'의 아픔을 전해주었다. 기성 세대의 화법으로, 기성 세대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국제 시장>에서 '가족사'의 고통이 배태되는 곳은 그래서, 흥남 부두 철수 과정에서 야기된 '이산'의 아픔이었다. 하지만, <국제 시장>이 어른들만의 이야기라는 논란처럼, 반 세기를 넘은 분단은 이제, 오래된 흉터처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1월 9일 새로이 시작된 <스파이>는 기존의 이산 가족과는 분단이 낳은 가족의 아픔을 배경으로 한다. 

10월 16일 방영된 <스파이>에는 두 가족의 고통이 극렬하게 전해진다. 바로, 여주인공 박혜림(배종옥 분)과, 간첩 수연(채수빈 분)의 가족들이다. 
중국에서 스파이 활동 중 자신의 목표물이었던 김우석(정원중 분)을 사랑하게 된 박혜림은 과거 자신의 흔적을 지운 채 선우(김재중 분)와 영서(이하은 분),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 앞에, 과거 그녀의 연인이자, 그래서 그녀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황기철(유오성 분)이 등장하면서, 박혜림의 가족은 위기에 빠진다. 몇 십년 만에 나타난 황기철이 요구하는 것이 다름아닌, 국정원에서 일하는 그녀의 아들 선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쪽에서 공작원 신분을 접은 채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혜림에게 공작원이었던 그녀의 과거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면, 이제 막 '자수'를 한 수연의 발목을 잡은 건, 그녀가 북에 남기고 온 가족들이다. 
자수는 했지만, 북의 가족을 보호하고 싶었던 그녀,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소망은 아랑곳없이, 남한의 수뇌부는 그녀의 신분을 드러내는 귀순 기자 회견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선우는 그런 상황에서 희생양이 될게 뻔한 그녀의 가족들을 구하고자, 무리한 작전을 기획하지만 그 마저도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방송사 keshet tv에서 제작하여 이스라엘 평균 시청률 26%를 기록하며, 영국 가디언지 선정 '놓치면 안되는 세계 드라마 6편'에 들었던 <마이스>가 <스파이>의 원작이다. 
우리처럼 분단의 비극을 안고 있지마는 않지만, 중동 여러 국가에 둘러 싸여있는 지정학적 조건에, 정치적으로 팔레스타인과 군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스파이물 <마이스>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그 배경은, 우리나라에 있어 여전히 휴전이 아닌, 정전 협정의 상황인, 분단 60년의 역사로 등치되어 적용된다. 거기에, 기존에 분단하면, 상징적으로 등장하던 '이산 가족'이 아니라, 분단의 역사가 현재성으로 불러 일으킬만한 가족의 비극을, <스파이>는 담았냈기에, 현재적 공감의 재미을 얻어낼 수 있다. 

오랫동안 평범한 주부로 살았던 공작원 박혜림이 자신의 신분이 들통나자 제일 먼저 선택한 방법은,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로 살아왔던 자신의 행복한 삶을 포기한 채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작원이었던 그녀를 기꺼이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많은 것을 감수했던 남편의 설득에, 박혜림은, 황기철이 협박을, 아들 대신, 부부가 대신 그것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렇게 선우를 넘겨주는 대신 '스파이' 작전에 돌입한 부부, 그들에게 제일 먼저 주어진 임무는, 다름아닌 아들 선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다. 
한 집에서, 아들이 샤워하러 간 사이, 아들의 핸드폰과 노트북에 감시용 스파이웨어를 심는 엄마, 그것도 모른 채 샤워를 끝내고 방문을 열려는 아들에게 물 한 컵을 가져다 달라며 위기를 모면해주는 아빠, 거기서, 이른바 '가족 스파이'극의 묘미가 드러난다.
첫 장면이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이라면, 다음 장면, 출근 하기 전에 애인 집에 들러 그녀와 식사를 하고 입맞춤을 나누는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감시 작전은, 부모와 자식이기에 빚어지는 애증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스파이>의 강점으로 자리매김한다. 상황은 비극적인데, 마치 그 상황이, 자식을 손에 쥐고 흔드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하기에 공감되고, 웃긴 것이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특수하지만, 가장 익숙한 상황, 그리고 정서를 배경으로, 남북의 스파이 작전이 등장하면서, 스파이 물의 묘미에, 가족극의 정서가 더해지며, <스파이>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남한, 박혜림에게만 가족이 있는 건 아니다. 과거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끊어버린 채 남한 행을 택했던 박혜림과 달리, 자수를 한 수연은 여전히 북에 남아있는 자신의 가족을 접어버릴 수 없다. 그래서, 선우에게 자신의 가족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가족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황기철과의 위험한 접선을 감수한다. 
어렵사리 연결된 어머니와의 통화, 수연은 어머니를 걱정하고, 어머니는 정작 자신들은 상관없으니 수연의 생명을 우선으로 할 것을 당부한다. 그 두 사람의 통화가 슬픈 것은, 황기철을 잡기 위한 볼모로 쓰일 수연의 운명처럼 북한의 가족들 역시 배신자로 낙인찍힌 수연에 따라, 생명을 보장받기 힘들 것이 뻔한 상황이기에, 박혜림보다 더 애절한 가족사를 연출한다. 

이렇게 <스파이>는 현재 남과 북이 대치하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근간으로 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스라엘 드라마의 원작을 가져와, 그저, 국가와 국가의 대치라는 보편적 스파이물의 상황으로 둔갑시킨다.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드러난 황기철이라는 '악'보다도, 언뜻 드러난, 일보다는 자신의 입신양면을 우선으로 하는  남과 북의 또 다른 악이, 이들 가족의 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데올로기적 전쟁이 아니라, 일반적인 스파이물의 반전처럼, 결국, 양 쪽의 부패된 권력 집단을 상대로 한 일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거기에, 공중파에 어울리는, 전 세대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가족주의'를 주된 주제로 이야기를 끌고 감으로써 스파이물이라는 장르성을 넘어, 남녀노소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전달된다. 굳이, 누가 나쁜 놈이고, 좋은 놈인지 복잡하게 따지고 들 것도 없이, 행복하고 안온했던 박혜림 가족에 닥친 위기만으로도 드라마는 충분히 볼 거리를 제공한다. 

이렇게 해외 드라마의 화법으로 남과 북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화법으로, 하지만 결국, 우리네 안방에 가장 익숙한 '가족' 이야기로 둔갑한 <스파이>, 케이블 금요일 약진의 대항마로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by meditator 2015. 1. 17. 12:19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 온 대학생 아들은 노부부의 변함없는 사랑을 전했다. 하지만, 나이가 이슥한 엄마가 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평생을 삶의 동반자로 살아 온 부부의 죽음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똑같은 영화임에도, 세대를 달리하여 감상이 다르다. 변함없는 사랑과 삶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서로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뭐 커다란 범주에서 보면 그렇기도 하지만, 또 딱히 따지고 보면 그렇다기도 그렇다. 젊은 사람들의 눈에 결혼이란, 사랑의 과정이라면, 나이가 먹은 자의 눈에 결혼은, '삶의 동반' 과정, 그 자체이다. (물론, 모든 젊은 자와, 나이든 자가 그렇다고  보편화할 수 없는 정의는 아니다) 서로 다른 성의 두 남녀가 모여 일가를 이루는 '결혼', 과연, 그것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아내의 불륜으로 시작된 <일리있는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결혼의 의미를 조곤조곤 짚어나가고 있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to say', 번역하자면,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영화 <러브스토리>의 전설적인 대사다. 하지만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순애보를 상징하던 이 대사가, <일리있는 사랑>에 와서 고전 중이다.

장희태(엄태웅 분)는 김준(이수혁 분)을 마음에 담았던 아내 일리(이시영 분)가 한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괘씸하다. 남편인 자신을 놔두고, 외간 남자와 바람을 핀 주제에, 너무도 당당하고 뻔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런 희태에게 일리는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tv리포트

 

여기서, <일리있는 사랑>에 등장하는 '미안하다'는 희태와 일리가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대사다. 고등학교 학생과 선생이라는 사제 지간으로 만나, 생명의 은인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부부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의 청혼 대사는, 묘하게도, 내가 너를 지켜줄게이다. 사랑하니까 함께 하자가 아니라, 아내인 일리가 희태를, 그리고, 남편인 희태가 일리를 서로 지켜주겠다고 말하며, 이들의 부부 생활도 시작되었다.

남편이 놓고 간 이혼 서류를 들고 집으로 뛰쳐 온 일리, 그녀의 눈에 뜨인 건, 형광등이 나가고, 밥 한 끼 제대로 해먹은 흔적이 없는 흐트러진 집이다. 그 모습을 본 일리는, 뒤늦게 희태에게 '미안하다'며 사정한다. 용서해 달라고,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당신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고, 밥을 짓고, 형광등을 갈겠노라고.

일리의 사랑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아파 누운 남편의 옷을 태우며, 자신이 없으면 옷 한 벌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이 다 챙겨주어야 하는데, 어쩔꼬, 하는 할머니의 사랑이다. 그 온전히 삶을 함께 하는 사랑 속에, 일리는 자신의 일탈조차도 이해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이 흔들렸던 준에게,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다시 만나지 말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희태는 '수컷'으로서의 자기 모멸감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아내인 일리에게, 자신을 선생과, 보호자, 남편, 그리고 남자 그 중 어느 것으로 바라보았냐며 회의어린 질문을 하고, 자기 대신 준을 보고 설레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미안하다며 그의 앞에서 오열하는 아내를 보고서도, 여전히 자신의 기억을 놓지 못해 고개를 돌린다.

뒤늦게 추억 속의 음악을 듣고, 그들이 함께 해왔던 7년 아니, 그 이전 사제 지간으로 만나 사랑을 일구었던 그 시절을 깨닫고, 아내를 붙잡지만, 이제 아내가 그의 손을 뿌리친다.

 

이렇게, <일리있는 사랑>은 부부로 7년을 살아왔지만, 그 7년 후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궤멸되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결혼의 정체가 무엇인가 들여다 본다. 일리는 외간 남자를 만나 잠시 설레이고 흔들렸지만, 결혼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희태는, 일리의 그런 흔들림 자체가 결혼의 서약을 붕괴시켰다고 믿는다.

처음 일리의 불륜으로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당연히 희태와 일리의 결혼은 이제 끝장이 나겠구나 했던 희태와 일리의 결혼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이혼을 하겠다고, 아니 희태가 이혼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면서, 두 사람의 가족들이 그 일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고, 결국, 그 마저도 정리되어가는 과정에 이르면서,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이, 그저 좋아서, 사랑해서 사는 그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불륜을 저지르고도 결혼 생활을 고집하는 일리가 정당하고, 아내의 외도에 분노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희태가 어쩐지 속이 좁아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다. 드라마가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결혼이, 그 결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지기는 한다. 아내의 불륜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결혼, 두 삶의 진정한 이해와 화합, 그리고 동반, 그것이 사랑만으로 지탱하기 힘든 결혼의 실체가 아닐까 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지상주의 시대에, 그런 질문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외침'으로 허공으로 산화할 가능성이 높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와, 오랜만에 돌아온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이 합심하여 만든 <일리있는 사랑>에서는, 김일리라는 건강하고 당찬 여성 캐릭터의 건강함도 여전하지만, 드라마 전체를 흐르는 정서는, <연애시대>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이혼을 했으면서도 뻔질나게 도너츠 집에서 만나, 사사건건 간섭하며, 자신들의 이혼을 복기했던 이동진(감우선 분)과, 유은호(손예진 분)의 또 다른 버전을 김일리와 장희태를 통해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만이 아니다. 그들 주변에서, 각자의 사연과 삶의 깊이를 가지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연애 시대>의 많은 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흔하디 흔한, 외도와 이혼, 이라는 이제는 우리 시대의 일상사가 된 부부의 사건들을, 여전히 삶의 따스함를 놓치지 않는 시각으로 다시 짚어보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인스턴트 시대, 남녀 간의, 심지어 부부간의 사랑 조차도, 깃털처럼 가벼워져만 가는 시대에, 뚝심있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과정의 온기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지그시 바라본다.

by meditator 2015. 1. 13. 11:31

빛나는 청춘의 아련한 슬픔과 공감어린 사랑을 그려내는데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던 <커피 프린스>의 이윤정pd가 2009년 그녀를 연출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던 <트리플>이후 오랜만에 미니시리즈로 돌아왔다. 그간, <골든 타임>과, 2014 드라마 페스티벌 <포틴>을 통해 예의 연출력을 선보였지만, <커피 프린스>의 이윤정을 기다리던 팬들에게 흡족함을 주기엔 미흡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tvn으로 이적하면서, 드디어 이윤정이라는 이름의 색채가 첫 회부터 잔뜩 드리워진 <하트 투 하트>로 그녀를 기다렸던 사람들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이윤정 pd가 들고 온 <하트 투 하트>는 맨 얼굴로 세상에 나서면 얼굴이 붉어져 헬맷을 써야만 하는 대인기피증 여주인공 차홍도(최강희 분)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렇게 맨 얼굴로는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그녀가 택한 또 다른 세상살이에는, 돌아가신 할머니로 분장하는 방식도 있다.

그런데, 어라, 어쩐지, 그런 차홍도의 '변장'이 익숙하다. 그렇다. 바로, 자신의 본 모습으로 세상과 만날 수 없었던, <커피 프린스>의 고은찬(윤은혜 분)가 떠올려진다. 2007년의 고은찬이 옥탑방에 사는 소녀 가장으로 자신의 꿈인 바리스타를 하기 위해 남장을 해야 했다면, 2015년의 차홍도는, 대인기피라는 자신의 반사회적 증상을 덮기 위해 헬맷을 쓰고, 할머니 분장을 한다. 2007년에 꿈을 위해 남장을 하던 소녀는, 이제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상처를 입은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달라진 것은, 대인기피증을 앓는 여주인공만이 아니다.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많다던 쿨가이, 하지만 커피전문점의 사장이 되어, 소년같은 고은찬의 '키다리 아저씨'같던 남자 주인공 최한결(공유 분)도 달라졌다.

<하트 투 하트>의 첫 장면은, 얼굴이 빨개지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의자 위에 책을 놓고, 넥타이를 골라 목을 매려는 남자 주인공이 장식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자전거를 만들어 파신 할아버지에 하버대 대학을 나온, 거기에 베스트 셀러 작가이신 이 주인공, 하지만 알고 보면, 자가용과 진찰실 곳곳에 술병이 상비되어 있는 알콜 의존증이요, 여자랑 사랑은 나눠도 잠을 잘 수 없는 이상 증후군을 가진, 여주인공 말대로, 진짜 미친 놈이다.

심지어 첫 회를 장식한 해프닝은, 바로 그가 술로 인한 블랙 아웃 상태에서, 진료하던 환자가 그가 쓰던 만년필로 자해를 하는 바람에,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e스타

 

이렇게, 그림같은 커피 전문점을 배경으로 동성애인가, 이성애인가 헷갈리는 사랑을 키우던 꿈많던 청춘은, 이제 2015년에 이르면, 각자 자신이 짊어진 정신병리학적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중생이 되어 등장한다.

전셋값 500만원 인상에 이사를 고민하는 여주인공은, 세상으로 부터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할머니 분장을 하며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고, 그런 그녀의 상대가 될 예의 재벌남 남주인공은, 번듯한 이력의 이면에서, 심각한 자아 분열을 겪는 중이다.

드라마는 그런 두 사람의 현재를, 어린 시절 그들로 부터 지금까지, 단 몇 컷의 성장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구구절절 설명이 없이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감을 잃어, 그  증상으로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하여, 결국 세상의 끈을 놓치고 마는 과정이나,  눈이 나빴던 소년이 자신의 컴플렉스인 안경을 벗어 제끼며, 자신의 자의식을 포장하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컷의 연결은, 경우는 다르지만, 우리 시대를 사는, 가진 자는 가지고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지 못해 소외된 청춘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그렇게 간략하게 설명된 두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통해, 드라마는 뻔한 스펙 좋은 재벌남과, 가난한 여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넘어, 우리 시대를 사는 상처받은 상징적 젊은 존재들의 만남과 소통, 그리고 치유를 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비록 <트리플>을 통해서는 주저 앉아 버렸지만, 일찌기, <태릉 선수촌>과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당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섬세한 결로 지켜 보았던 이윤정 pd의 내공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또한 <하트 투 하트>가 기대되는 지점은, 일찌기, 그들의 20대 시절 이래, 로맨틱한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던, 최강희와, 천정명이 모처럼, 자신들에게 맞춤한 옷으로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늘 해왔던 것이라 하더라도, 천연덕스럽게 노인 행세를 하고, 질펀하게 욕을 해대는 최강희에게서는 역시나 최강희라는 찬사가 나올만한 내공이 느껴지고, 까실한 정신과 의사로 등장한 천정명 <리셋>의 어색함이 한 풀 벗겨진 듯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져 반갑다. 그들과 함께 등장한 장두수 역의 이재윤과 고세로 역의 안소희 역시 버거워 보이지 않는다. 이 반갑고도 신선한 조합의 앙상블이 그려내는 맛깔나는 로맨틱 코미디로서, <하트 투 하트>가 또다른 볼거리다.

by meditator 2015. 1. 10. 05:37

mbc 수목 드라마로 새로 시작된 <킬미힐미>는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일곱 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라는 난해한 캐릭터로 인해, 전작인 <미스터 백>이 중반을 향하도록 캐스팅이 결정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모 배우의 경우, 기사까지 난 후임에도 결정을 번복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구원투수로 지성이 남자 주인공 차도현 역을 맡게 되었고, 그의 파트너로, 이미 드라마 <비밀>을 통해 멋진 앙상블을 선보였던 황정음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됨으로써 <킬미힐미>는 지난한 캐스팅의 장벽을 넘게 되었다. 하지만, 우려도 있었다. 전작 <비밀>에서 조미혁과 강유정으로 치명적 사랑을 선보였던 두 사람이 과연 전작 캐릭터의 그늘을 지울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2회를 마친, <킬미힐미>에서, 도무지 <비밀>의 조민혁과 강유정의 흔적을 찾을 길은 없다.

 

<킬미힐미> 이것이 궁금해! 지성이 앓는 정신병 'DID'란? 이미지-3

 

대를 이어 불운한 사고를 당한 재벌 집의 손자인 도현은, 5개 국어를 장착한 엘리트에, 운동까지 잘하는 능력자인 승진 그룹의 승계 순위 1위의 인물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재벌에 대한 선입관과 다르게 그는, 말끝마다 '괜찮습니까?'를 덧붙이는 친절하고 세심한 사내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는, 숨겨진 또 다른 여러 자아들이 있다. 첫 회, 그가 같은 학교 친구를 찾아간 곳에서 그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과정에서 뛰어나온 인격은, 신세기, 샌님같은 차도현과는 정반대로, 온몸에 문신을 드리우고, 스모키한 눈매에 자신을 때린 학우의 아버지를 '눈에는 눈'식으로 때려 눕히고야 마는, 야성남이다.

 

반듯한 모범생같은 주인공의 또 다른 인격 야성남, 여기까지는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다. 극중 여주인공의 입을 빌어 등장한, '지킬앤 하이드'의 양 극단의 캐릭터가 그러하고, 가깝게는, 미드 <닥터 제이슨>의 설정과 흡사하다. 더구나, 주인공을 제치고, 스스로 자신이 주인격의 자리를 넘보며, 그를 통제하고자 하고, 그의 첫 사랑조차 손에 넣으려는 설정은, <닥터 제이슨>의 그것을 거의 빼다 박은 듯하다. 게다가 밤의 사나이로, 가죽 잠바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거침없이 거리를 질주하며, 열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 '섹슈얼'한 캐릭터는 또 어떻고. 그저, 신경 외과 의사 닥터 제이슨과, 그의 또 다른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인격 '이안 프라이스'의 미드를 우리식 로코로 둔갑한 것이 <킬미힐미>가 아닐까란 우려가 들만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킬미 힐미>는 차도현과 신세기가 '지킬앤 하이드'와 비슷하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논하더니, 2회 마지막, 가죽 잠바를 찾기 위해 볼모로 잡힌 오리진(황정음 분)을 위해, 얻어 맞으며 불러 내려던 신세기 대신, 여수 사투리를 걸쭉하게 내뱉는 페리 박이 등장하면서, 전혀 새로운 궤도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반듯한 차도현과, 거친 신세기까지는 그렇다치고, 어쩐지 경박한 여수 사투리를 쓰며 등장한 페리 박에 이르르면, 왜 이 드라마가,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의 작품이었음에도 선뜻 남주 주인공이 결정되기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페리 박뿐인가, 안요섭에, 미지의 인물 x에, 심지어 여성 캐릭터 안요나에 7살 나나까지, 대기중인 캐릭터가 네 명이나 더 남았고, 개성이 강한 그들을 온전히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연기력으로 커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많은 타 배우들이 지레 물러서고, 결국 그 몫이 배우 지성에게 떨어진 것이, <킬미힐미>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입자에서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 되었다는 것을, 단 2회만에, 그것도 페리박의 경우, 단 한 장면만으로도, 증명해내었다. 남은 네 인격의 등장이 기다려 질 만큼.

지성만이 아니다. 제작 발표회에서, 지성이 화려한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말에 어울리게, 여주인공 황정음 역시, <비밀>의 강유정이 떠올려지지 않는, 오리진 그 자체이다.

황정음만이 아니라, 그 외의 인물 면면이,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적재 적소의 캐스팅으로,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물론, <킬미힐미>가 지금까지 선보인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재벌가의 부의 승계를 둘러싼 암투와, 갈등이, 드라마의 주된 줄기를 이룬다. 하지만 뻔한 재벌가의 이야기임에도, 재벌가의 승계 순위 1위의 남자 주인공의 변주만으로도, 드라마는 전혀 새로운 색채를 띤다. 게다가, 그가 가진 일곱 인격의 사연과 상관 관계가, 흔한 재벌가의 암투를 넘어선, <킬미힐미>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그리고 이미 신세기가 선언하듯이, 주인격을 둘러싼 여타 인격들의 살벌한 한 판, 그리고 그를 통한 '힐링'이 새로운 이야기로 이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5. 1. 9. 05:13

7일 밤 새로이 시작된 예능, <투명인간>은 아마도 케이블은 tvn의 히트 드라마 <미생>이 없었다면 태동되지 않았을 프로그램인 듯 보인다. 이 시대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감있게 그려낸 <미생>의 인기를 보면서, '아! 저걸 예능에 응용해 볼까?'란 의도가 매우 농후하다. 케이블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킨, 마치,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스핀 오프 시리즈로, <삼시세끼>가 등장한 듯한, 공중파의 예능이라,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첫 회를 방영한 <투명인간>은 말 그대로, '미생'이다. 직장인들을 예능의 대상으로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야 겠다는 지점에서, '완생'의 길이 멀어보인다. 

우선, 왜, 하고 많은 직장인들에 대한 '위로' 중에서, 하필, 1;1 로 웃기기 게임을 프로그램의 기본 아이템으로 설정했을까? 방영된 1회를 보는 내내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직장인 팀 한 부서를 상대로, 연예인 팀의 한 명, 한 명이 그 중 한 명을 찾아가, 제한 시간 내에 웃음기어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연예인이 직장인을 선택하고, 반대로, 직장인이 연예인을 선택하는 전,후반부의 제한 시간 동안, 연예인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춤, 노래, 콩트, 그리고 심지어 사정과 위협을 동원하며 직장을 웃기기 위해 애를 쓰고, 직장인들을 그것을 참아내느라 애쓴다. 그리고 첫 회 승리한 직장인들이 그 댓가로 얻은 것은, '휴가'이다. 굳이 '직장인'들을 위로한답시고 찾아가, 웃기기 게임을 벌이며, 그 포상으로 건, 휴가라니!  어쩐지 웃프다. 

일간스포츠

하지만 달콤한 휴가를 얻기 위해 그들이 참아내야 하는 연예인들의 원맨쇼는 한 마디로, 참 보기가 '거시기했다'.
김범수가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대고, 세계 27위의 모델이라는 사람이 웃기는 춤을 추고, 하하는 그 특유의 화법으로 들이대고, 강호동은 결국 소리를 지른다. 그나마, 게스트로 등장한 하지원이 제시한, 그녀의 전화번호와 옆자리 영화 관람 정도가, 매혹적인 아이템이라고나 할까? 오죽하면 직장인들 중 한 명이, '아직 준비가 덜 되신 것 같다'는 평을 할까?

무엇보다, 제작진은,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예능'이라는 지점에 꼿혔을 뿐이지,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웃음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지 않은 티가 첫 회에 너무도 역력하다. 그저, 포상으로 휴가나 던져주면 장땡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투명 인간> 자체가 아주 별로는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무턱대고 직장인들을 상대로 웃겨보마고 나선 어설픈 판에서도, 가능성을 보인 지점이 있다. 
바로 그건, 연예인들이 아니라, 직장인 그들 자체였다. 그들 각자의 다양한 캐릭터와, 준비된 예능감들이, 어설픈 연예인들의 장기보다, <투명인간>의 가능성으로 드러났다. 
그러기에, 연예인과 1;1로 마주선 장면보다, 상무님을 모시고 한, 뿅망치 게임 등에서, 그들간의 조합이 훨씬 더 신선하고, 재미를 자아냈다. 생글생글 웃음이 만발한 신입에게, '말을 안듣는다'며 단호한 평가를 내리는 대리와, 마지막으로 '느끼함을 불살라 보겠다'는 부장님, 이런 캐릭터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1 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실패했지만, 정태호의 쵸사이언 변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과 달리, 선글라스에서 부터, 팔을 잘라낸 와이셔츠, 그리고 콧구멍을 들이비춰도 웃음기를 참아내는 내공들은, 연예인들을 앞선다. 차라리, 연예인을 앞세운 1;1 웃기기 게임이 아니라, 직장인들의 장기를 드러낸, 직장인들의 연예인 웃기기가 오히려 낫지 않을까 싶은 지점이다. 그래야, '휴가'를 쟁취하는 맛도 나고. 

<투명인간>은 <안녕하세요>, <우리동네 예체능>을 이어갈, 일반인 예능의 계보를 타고 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의 상대가 되는 일반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살릴 수 있게 고민이 좀 더 배가되어야 할 듯하다. 
<안녕하세요>가 매회 다양한 일반인들의 사연을 등장시켜, 일반인 예능으로 안착한 반면, <우리 동네 예체능>이 '우리 동네'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양한 연예인들의 돌려막기로,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 된 지점을 '벤치마킹'하여 <투명인간>의 행보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지점에서, <안녕하세요>에는 있는데, <우리 동네 예체능>에는 없는 것이, <투명인간>에도 없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딜레마로 작용할 듯하다. 바로, 일반인들의 그것을 풀어낼 mc의 능력말이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웃기기를 하겠다는 설정은, 다분히 강호동이라는 mc를 배려한 아이템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한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들이대고, 소리지르고 하는 예의 강호동 식이다. 회사원들은, 어색한 연기를 보인, 강호동을 두고, 머리가 좋다느니 어쨌다느니 했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그저 오그라들 뿐이다. 정작,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회사원들의 캐릭터를 살려주는 센스를 보인 것은, 하하와 정태호였으며, 히든 카드는 뜻밖에도 게스트 하지원이었다. <투명인간>에서 필요한 것은, 기가 센 mc가 아니라, 센스있게 직장인들이라는 미지의 인물들을 파악하고, 그들을 '예능'이란 장에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mc들이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스타킹>을 진행해온 이력이 무색하게, 첫 회부터 강호동은 프로그램의 짐처럼 느껴졌다.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을 보고, 직장인들을 위로 한다고 하여, 직장으로 들어가 하다못해 복사 라도 한 장 해주며, 그들의 고달픈 삶을 덜어주는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무색하게, <투명인간>은 직장인을 이용한 그저 어디선가 해본 듯한 예능이었다. 더구나, 여전히, 이 프로그램에서 조차, 기계음이 귀를 막는 공장도, 국자와 칼이 번쩍이는 주방도, 미생들의 또 다른 삶터일진대, '직장인'은 칸막이가 쳐진 사무실에서, 번듯하게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는 화이트칼라들이다.  이렇게 해서야, 제 아무리 '휴가'를 건다해도, '미생'들의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런지. 첫 술에 배부를 리야 없겠지만, 첫 술에 벌써 지레 먹기 싫게 만들어 버려서는 안되지 않을까, 부디, '미생'들의 위로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배려로 탄생되는 진짜 위로잔치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1. 8. 11:52

공교롭게도, 2015년 새해 벽두부터, 공중파 3사의 월화 드라마는, 비리와 권력으로 더렵혀진 세상을 향해 전쟁중이다. 물론, 3사  드라마 각자가 싸우는 대상도 다르고, 싸움의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드라마가 굳굳하게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것만은 같다. 포기하지 말고 싸우자!


sbs <펀치>의 등장인물들은 피터지께 싸우는 중이다. 처음에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싸우더니, 이제 그 형의 비리를 들고 싸우고, 그리고 그 형이 원죄를 뒤집어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 형의 복수와, 거기에 얽힌 관계를 놓고 대결한다. 그런 싸움 속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법'과 '정의'도 있지만, 아들의 병역 비리, 입지전적 성공에의 갈망과, 사업하는 형의 정경유착 비리, 그리고, 구속된 아내를 풀려내기 위한 타협과 협박 등 각자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법'으로 굴러가야 할 사법 체계를 일그러뜨리는 동안, 여주인공인 신하경(김아중 분)만이 줄곧 우직하게 '법' 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 

서울경제

아이를 사고로 몰아넣은 진짜 범인, 이태준(조재현 분)의 형 이태섭을 잡으려 하다가, 검사로서 직을 던지고 스스로 청문회장에 서기도 하고, 결국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된다. 남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태섭 회장의 자술서로 타협을 한 줄 알게 된 신하경은, 자신을 구하기위해서라는 걸 알면서도, 애초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큰 그림인 오션 캐피탈 김회장과 이태준의 밀착 관계를 밝히기 위해 뛰어든다. 심지어 그토록 믿고 따르던 윤지숙(최명길 분) 장관의 수사 종료 지시에도 따르기 힘들다. 

우직한 검사들은 또 있다.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최진혁 분)와 한열무(백진희 분)가 그들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놓쳐버린 유괴범 때문에, 그리고 유괴로 인해 죽임을 당한 동생 때문에 검사가 된 두 사람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못해 용의자까지 되고 마는 민생 안정팀의 팀장 문희만의 회유와, 드러내놓고 위협을 마다하지 않는 실체, 그리고 그 하수인인 검찰국장등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15년전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속해있는 민생 안정팀이 해체되는 위기에 빠져도, 그 자신들이 신체적 위해 등의 위협을 당해도, 그리고 검사로서의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우직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을 향해 '정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구동치 자신은, 15년전 그날, 자신이 백곰의 살인범일 지도 모른다는 혐의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15년전 사건 현장으로 다시 한번 뛰어든다. 

이렇게 <펀치>의 신하경이, 그리고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와 한열무가 우직하게 '정의'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굽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그 '법'적인 정의를 실천할 도구를 가진 검사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검사들이, 그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법적'인 정의가 바로 세워질 수 있음을 밝힌다. 물론, 그 과정은 갖은 협박과 위협과, 회유가 반복되는 과정이지만, '법'이라는 수단을 구현하는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어렵게 밝혀가는 중이다.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늘 만만한 건 아니다. <힐러>의 김문호 기자는 그가 진행하던 뉴스에서, 방송국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직구를 하고, 결국 자신이 진행하던 데스크를 박차고 나오기에 이른다. 상위 1%의 기자이지만, 이제 그가 세상을 향해 소리치던 '마이크'를 잃었다. 하지만,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늘 '언론'의 정의를 실현하려던 자신을 회유하고 방해하던 거대 언론대신, 비록 '찌라시'의 수준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올곧이 전할 수 있는 언론사를 꾸려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서울 시장 후보자 언론 인터뷰 현장에서 허락된 기자들만이 출입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김문호 기자가 몸담고 있는 '썸데이' 는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정공법'이 안된다면, '게릴라'식으로 허를 찌르는 방식을 택한다. 바로 옆 약혼식장의 측근으로 위장한 서정후(지창욱 분)와 채영신(박민영 분) 커플이 화려한 복장으로 봉쇄 라인을 뚫고 들어가고, 채영신이 도발적 의상으로 인터뷰 장 한 가운데로 뛰어나가 서울 시장 후보자에게 그와 관련된 섹스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이어, '썸데이' 뉴스의 김문호 앵커의 그와 관련된 멘트가 이어진다. 세상에서 주어진 방식이 진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캐가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들이 비리를 밝히고자 하는 하며 싸우는 대상, 혹은 그런 그들과 부딪치는 대상들과, 이들의 차이점은 사실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한 발자국' 바로 거기에서, 지금의 현격한 차이가 만들어 진다. 
이른바 '어르신'의 집안으로 들어가다, 김문호의 형이자, 메이저 언론사 사주이며, 권력의 '개'로 살아왔던, 김문식(박상원 분)은 자신의 그 첫 '한 발자국'을 회상한다. 한때 자유 언론의 수호자로 개조된 트럭을 몰고, 서울 하늘 곳곳에 진실을 알리기에 용기를 냈었던 김문식은, 그 자신과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정의'를 외면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만과 편견>의 끊임없이 정의와 타협의 길을 오고가는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 역시, 수사를 하던 과정에 저지른 뺑소니 사고, 그것을 덮기 위한 한 걸음이, 그를 '화영'의 개로 만들었다. 
<펀치>에서, 우직하게 '정의'의 편에 섰던 윤지숙 장관의 한 걸음은 바로 병역 비리를 저리른 아들이었다.
기성 세대가, 일신상의 이유로, '정의'의 편에서 물러서서, 세상과 타협하는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그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무너져 내렸던 것을 알기에, 아니, 그 실체를 모르더라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에, 젊은 그들은 우직하게, 자신들의 정의를 고수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 수록, 그들의 정의가 위태위태하고, 때론 안타깝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펀치>에서 유일하게 강직한 인물을 여주인공 신하경이지만, 보는 시청자는 그런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때론 그 고지식한 정의가 안타까울 정도로 '융통성 없어 보일'뿐이다. 
그런 그녀보다는, 때론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때론 입신 양명을 위해, 때론 모시는 분을 위해,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 박정환(김래원 분)에게서 인간적 향기를 맡는다. 
<오만과 편견>도 마찬가지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직한 구동치와 원론적 질문을 던지는 한열무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를 저울질하면서, 그래도 차악을 선택하려 애쓰는 문희만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그녀의 아이를 외면하고, 평생 그것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김문식의 사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젊은 그들의 정의는 어쩐지 불안하고 어설픈데, 노회한, 그래서 '타협'이 익숙한 저들의 편의는 익숙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화법'이 거기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오만과편견
tv데일리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들은, <펀치>에서도,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리고 <힐러>에서도 밝혀지는 권력층의 비리, 섹스 스캔들을 비롯한, 온갖 협잡과 권력형 비리들이, 결국, 누군가의 개인적 이해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들이다. 인간적이어 보이는, 그들의 '한 발자국'이 결국, 이렇게 갈짓자, 흐트러진, 썩은내 나는 권력형 비리와 스캔들로 이어진게 된다는 것을, 각종 사건들로 드라마는 상징적으로 설명해 낸다. 

그래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정의'가 주는 울림은 강하고 깊다. 어렵게 다시 마련된 앵커의 자리, 좁은 스튜디오, 단 한 대의 카메라, 그것을 앞에 두고, 김문호는 말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썸데이'의 뉴스가 계속될지, 이번 한번이 될지, 혹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썸데이'는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말을 맺는다. 그저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여운이 오래 간다. 이 희박하고도, 어려운 '진실'을 말하기 위해, <힐러>, <펀치>, <오만과 편견>은 고군분투 중이다. '희망'으로 시작되는 한 해다. 


by meditator 2015. 1. 7. 12:37

영화 <국제 시장>이 4일 현재, 누적 관객수 720만 1055명을 기록하며,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3일 방영한 <무한도전 -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는  29.6%를 기록(tns 수도권 기준), 요즘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였다. 


이렇게 천만 관객을 앞둔 영화,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30%에 육박하는 프로그램에 두고, 뭐라 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가. 심지어, 그것을 보고 즐기고, 눈물 흘리면 됐지, 뭐라 말하기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 '감읍'한 감동을 뒤로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쓰기에 앞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무한 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90년대 화려한 문화계를 공유했던 사람도 아니요, <국제 시장>의 고생담을 공유한 세대도 아니다. 그저, 이 세대도, 저 세대도 아닌, 어중간한 세대의 기자가 본, '그들'의 추억에 대한 감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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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 시장>이 개봉하기 전부터 다수의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딱 한 마디로, 영화 평론가 김태훈의 말처럼, 맨날 듣던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극장에 가서 또 들을 필요까지 있겠는가 였다. 문제는, 그 아버지의 이야기의 '화법'이었다. 극단적으로는, 허지웅 식으로, '반성이 없는 어른 세대'의 그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당파성'을 떠난 고생담에 대한 미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새정치 연합 문재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가족의 가치를 확인하고, 부모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으며, 이런 문재인 의원의 생각과, '우리 역사가 굴곡이 많은데, 그 고비마다 고생을 많이 하고."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서의 '소회'가, 이성을 앞선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박대통령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들어,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세 라는 결론을 냈고, 엄밀하게 이 말은, 문재인 의원의 '애국은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는 가치다'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여봐란듯이, 여야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없이 영화<국제 시장>을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보고 눈물을 흘린다. 

당파성을 떠나, 중견의 여야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그들의 '추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살지 않은 기자 조차도, 때론 tv를 통해 보여지는 '대한늬우스'에 시큰해지는 걸 보면, 지나간 것에 대한 '감상'은 인간의 누선을 약하게 하고, 마음을 여리데 만드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에, 그리도 쉽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에는, 역시나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비평과 평가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논외의 대상이란 의미도 된다는 것이다. 그저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살아왔기에, 그것만으로도 다 용서되고, 설명이 되는 것이, 여전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그 '과거'는 선택적이다. 그들은 <명량>을 보고, <국제 시장>을 보지만, 2014년 개봉한, imf시절을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을 다룬, <해무>를 보러 가진 않았다. 자신의 배와, 가족, 그리고 생존을 위해, 피치 못할 범죄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또 다른 우리 기성 세대의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당대의 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카트>는 조용히 극장에서 내려왔고, 용산 참사를 다룬 <소수의견>은 극장에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역사는 엄밀히 말하면, 편집된 역사이다. 영화 <국제 시장>의 역사가, 지극히 보고 싶은 면만 보여준 아버지의 역사이듯이.

그렇게, <국제 시장>이 보고 싶은 우리의 고생담만을 칭송할 때, tv를 통해 보여지고 있는 90년대의 열풍은 어떨까?
이미 그 조짐은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예견되었다. 과연, 90년대의 음악이 ost로 깔리지 않은 <응담하라> 시리즈가 지금처럼 장안의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경제적 부흥의 마지막, 문화의 르네상스, 90년대의 화려함은, 당대의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차려진 문화의 진수성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90년대 르네상스의 복귀는, 2014 말과, 2015년 초 <무한 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시청했던 사람이라면 <무한도전-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가 생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청춘 나이트' 라는 특집을 통해, 90년대의 가수들이 나와, 그 시절의 음악을 재현해 내었던 것을 먼저 한 것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저했던 특집을, 보다 대중적인 영향력을 지닌 <무한도전>이, 그 시절 가수들의 이야기까지 얹어,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만드니, 밥을 먹던 식구들까지 서서 tv를 보며 몸을 흔들게 만든, 흥겨운 잔치상이 되었다. 

이미지중앙
해럴드pop

그런데, <무한도전 -토토가>는 그저 90년대의 오마주랑 다르다지만, 정말 무엇이 다를까? 그 시절의 가수들이 등장하여, 그 시절 못지 않은 여전한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시간, 과연, 그 시간을 통해 시청자들이, '접신'하고자 한 경지는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음악 프로를 봐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돌들이, 한 주 만에 1위를 하는, 저들만의 음악 세상이 된 세상에서, 음악을 즐겼던 그 시절에 대한 회귀?, 댄스 뮤직에서 부터, 발라드, 아이돌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성찬처럼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던 풍성한 음악에 대한 그리움? 아니면 한때 자신이 즐기고 좋아했던 가수들에 대한 여전한 팬심? 

안타깝게도, 그 화려한 잔칫상의 너머로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무엇을 해도 될 꺼 같았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아닐까? imf라는 경제 위기로 마침표가 찍어지기 전까지, 경제 호황과, 성장, 그리고 발전이라는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란 말이다. 기약할 수 없는 저성장과, 취업난과, 고소비의 아득한 현재가 아니라. 

아버지의 세대가 지나온 시절을 반성없이 고생담만을 늘어놓는다 하면서, 정작 그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이룬 호황 속에 흥청망청 했던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무한도전-토토가> 열풍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tv가 말하는 90년대에 왕년에 잘 나가던 가수들은 있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이 부서지던 졸속 시공과 부실 공사가 거듭되던 imf로 결단날 허술한 대한민국은 없다. 정말, 환호하며 반기는 그'토토가' 열풍이, 정말 온전히 그 가수들에 대한 그리움과 반김인지, 한번쯤, 조금은 더 젊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나간 것을 그리워 하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나이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나간것을 그리워하는 순간, 어느새 사람은, 조금씩 '보수적'이 되어간다. 그 시절의 가수들과 함께, 자신의 화려한 젊음을 반추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자신의 회고 방식이, 과연 <국제 시장>을 보며 눈물 흘리는 어른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한번쯤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14-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종교에 억눌렸던 인간 본연의 정신을 되살려내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인문 정신을 불러 들였다. 고대 그리스의 그것은 분명 과거의 그것이지만, 암흑의 중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안티 테제였다. 
어른들은 <국제 시장>을 보고 눈물 흘리고, 젊은이들은 90년대의 음악을 다시 부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과거를 쉽게 이야기하고, 90년대 문화는 트렌디 셀러가 될 듯하다. 부디 지금 불러낸 이 과거의 '망령'들이 그저 과거를 '미화'하고 '칭송'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충전재'가 될 수 있기를. <국제 시장>과, <무한도전-토토가> 사이에 낀 세대의 작은 새해 희망이다. 


by meditator 2015. 1. 4.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