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 온 대학생 아들은 노부부의 변함없는 사랑을 전했다. 하지만, 나이가 이슥한 엄마가 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평생을 삶의 동반자로 살아 온 부부의 죽음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똑같은 영화임에도, 세대를 달리하여 감상이 다르다. 변함없는 사랑과 삶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서로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뭐 커다란 범주에서 보면 그렇기도 하지만, 또 딱히 따지고 보면 그렇다기도 그렇다. 젊은 사람들의 눈에 결혼이란, 사랑의 과정이라면, 나이가 먹은 자의 눈에 결혼은, '삶의 동반' 과정, 그 자체이다. (물론, 모든 젊은 자와, 나이든 자가 그렇다고  보편화할 수 없는 정의는 아니다) 서로 다른 성의 두 남녀가 모여 일가를 이루는 '결혼', 과연, 그것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아내의 불륜으로 시작된 <일리있는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결혼의 의미를 조곤조곤 짚어나가고 있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to say', 번역하자면,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영화 <러브스토리>의 전설적인 대사다. 하지만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순애보를 상징하던 이 대사가, <일리있는 사랑>에 와서 고전 중이다.

장희태(엄태웅 분)는 김준(이수혁 분)을 마음에 담았던 아내 일리(이시영 분)가 한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괘씸하다. 남편인 자신을 놔두고, 외간 남자와 바람을 핀 주제에, 너무도 당당하고 뻔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런 희태에게 일리는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tv리포트

 

여기서, <일리있는 사랑>에 등장하는 '미안하다'는 희태와 일리가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대사다. 고등학교 학생과 선생이라는 사제 지간으로 만나, 생명의 은인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부부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의 청혼 대사는, 묘하게도, 내가 너를 지켜줄게이다. 사랑하니까 함께 하자가 아니라, 아내인 일리가 희태를, 그리고, 남편인 희태가 일리를 서로 지켜주겠다고 말하며, 이들의 부부 생활도 시작되었다.

남편이 놓고 간 이혼 서류를 들고 집으로 뛰쳐 온 일리, 그녀의 눈에 뜨인 건, 형광등이 나가고, 밥 한 끼 제대로 해먹은 흔적이 없는 흐트러진 집이다. 그 모습을 본 일리는, 뒤늦게 희태에게 '미안하다'며 사정한다. 용서해 달라고,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당신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고, 밥을 짓고, 형광등을 갈겠노라고.

일리의 사랑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아파 누운 남편의 옷을 태우며, 자신이 없으면 옷 한 벌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이 다 챙겨주어야 하는데, 어쩔꼬, 하는 할머니의 사랑이다. 그 온전히 삶을 함께 하는 사랑 속에, 일리는 자신의 일탈조차도 이해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이 흔들렸던 준에게,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다시 만나지 말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희태는 '수컷'으로서의 자기 모멸감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아내인 일리에게, 자신을 선생과, 보호자, 남편, 그리고 남자 그 중 어느 것으로 바라보았냐며 회의어린 질문을 하고, 자기 대신 준을 보고 설레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미안하다며 그의 앞에서 오열하는 아내를 보고서도, 여전히 자신의 기억을 놓지 못해 고개를 돌린다.

뒤늦게 추억 속의 음악을 듣고, 그들이 함께 해왔던 7년 아니, 그 이전 사제 지간으로 만나 사랑을 일구었던 그 시절을 깨닫고, 아내를 붙잡지만, 이제 아내가 그의 손을 뿌리친다.

 

이렇게, <일리있는 사랑>은 부부로 7년을 살아왔지만, 그 7년 후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궤멸되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결혼의 정체가 무엇인가 들여다 본다. 일리는 외간 남자를 만나 잠시 설레이고 흔들렸지만, 결혼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희태는, 일리의 그런 흔들림 자체가 결혼의 서약을 붕괴시켰다고 믿는다.

처음 일리의 불륜으로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당연히 희태와 일리의 결혼은 이제 끝장이 나겠구나 했던 희태와 일리의 결혼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이혼을 하겠다고, 아니 희태가 이혼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면서, 두 사람의 가족들이 그 일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고, 결국, 그 마저도 정리되어가는 과정에 이르면서,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이, 그저 좋아서, 사랑해서 사는 그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불륜을 저지르고도 결혼 생활을 고집하는 일리가 정당하고, 아내의 외도에 분노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희태가 어쩐지 속이 좁아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다. 드라마가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결혼이, 그 결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지기는 한다. 아내의 불륜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결혼, 두 삶의 진정한 이해와 화합, 그리고 동반, 그것이 사랑만으로 지탱하기 힘든 결혼의 실체가 아닐까 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지상주의 시대에, 그런 질문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외침'으로 허공으로 산화할 가능성이 높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와, 오랜만에 돌아온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이 합심하여 만든 <일리있는 사랑>에서는, 김일리라는 건강하고 당찬 여성 캐릭터의 건강함도 여전하지만, 드라마 전체를 흐르는 정서는, <연애시대>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이혼을 했으면서도 뻔질나게 도너츠 집에서 만나, 사사건건 간섭하며, 자신들의 이혼을 복기했던 이동진(감우선 분)과, 유은호(손예진 분)의 또 다른 버전을 김일리와 장희태를 통해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만이 아니다. 그들 주변에서, 각자의 사연과 삶의 깊이를 가지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연애 시대>의 많은 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흔하디 흔한, 외도와 이혼, 이라는 이제는 우리 시대의 일상사가 된 부부의 사건들을, 여전히 삶의 따스함를 놓치지 않는 시각으로 다시 짚어보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인스턴트 시대, 남녀 간의, 심지어 부부간의 사랑 조차도, 깃털처럼 가벼워져만 가는 시대에, 뚝심있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과정의 온기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지그시 바라본다.

by meditator 2015. 1. 13.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