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yg 양현석 대표의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던 충고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 이유를 알았다. 그 해답은 바로, 12월 8일 방영된 <힐링 캠프> 김봉진, 김영하 편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베스트 셀러 작가 김영하는 대놓고 말한다. 스펙에 창의성까지 요구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꿈을 꾸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고. 만약 자신이 2%의 저성장을 기록하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실직한 아버지와, 빛으로 남은 대학 등록금이 있었다면, 몇 년의 습작 기간을 거쳐 작가로 등단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작가로 먹고 살기가 버거운 시대, 그래서, 쉽게 누군가에게 작가의 길을 가라고 충고할 수 없다고.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쉬운 희망과 노력을 말하는 시대에, 12월 9일의 두 멘토들은 차가운 현실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방법을 제언한다. 그래도 현실감있는 힐링이다.


배달 음식이 먹고 싶으면 뒤적뒤적 전단지를 찾기 시작해야 했던 삶의 관행을 통채로 뒤바꿔 놓은 이가 있다. 더구나 배우 류승룡의 개인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광고로 단박에 다른 배달앱을 제친 이 배달앱은 이제 배달앱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로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신종 사업, 배달앱의 ceo 김봉진씨가 <힐링 캠프>를 찾았다. 

힐링캠프 김봉진
(tv데일리)

자신을 경영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ceo 김봉진씨는 한때 디자이너였고, 오래도록 디자이너이고 싶은 소망으로 창업을 해 첫 사업을 망하고, 이제 다시 경영 디자이너로 배달앱을 성공시킨 입지전의 인물이다.
하지만, 성공의 아이콘이 된 그의 소회는 솔직하다. 중년을 넘어서도 디자이너로 생존할 수 없었기에 사업을 벌였다고 말하고, 사업 실패 후 내 자식이 다른 집 아이들보다 못한 기회를 얻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한다. 그래도 그에겐, 그를 밀어주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가 시간을 준 덕분에 그는 대학원에 갔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대한민국에서 사업 실패 후 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신선한 영감의 원천을 '책'이라고 말한 그 답게, 매번 토크의 고비마다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평생을 디자이너로 살고 싶은 자신의 목표는 80이 넘어서도 내일 더 스시를 잘 빚고 싶은 일본 스시 장인의 이야기를 빌어오고, 사업가로서 5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유치한 비결을 위해서는 책을 통해 얻은 사람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은 책략이 아니라, 진심이라며, 인간대 인간적 관계의 소중함을 피력했다. 

'성공'의 열매를 움켜쥔 그의 성공 전략은 때론 소박했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리를 헤매며 전단지를 줏어 모았고, 학력에 대한 질문에는,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자신만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며, 자신이 고등학교 때 담배피고 놀 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하루 두 세시간 자며 공부했다며, 그 노력의 시간들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맞먹을 노력이 필요하다고 현실적인 충고를 한다. 아직은 충분히 자리잡지 않은 배달앱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토로한다. 미래에 대해서는, 솔직히, 3년 후, 10년 후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현실적인 사업가 김봉진의 뒤를 이어, 책꽂이 뒤에서 툭 튀어나온 이는, 소설가 김영하이다.  
단 한번 간 군부대 강연에서 장병 모두에게 달콤한 잠을 선물했다던 김영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번쩍 드는 멘토링을 선사한다. 
향후의 삶에 대해 질문한 군인에게, 아마도 쉽게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장병들의 달콤한 잠을 달아나게 한 경험 그대로, <힐링 캠프>에서도 소설가답지 않게,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꿈을 꾸기 어려운 이 시대를 설명나간다. 
자신이 살던 80년대, 그 시대는 연평균 성장률이 10%를 상회해, 무엇을 해도 먹고는 살겠지라는 낙관이 충만했던 시대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2%의 저성장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대는 그렇게 삶을 낙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자신의 내면조차 기꺼이 돈을 벌기 위해 바쳐야 하는 그런 시대라고 정의내린다. 

그렇다면 자신조차 희생해야 겨우 돈을 벌까 말까한 이 시대에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소설가'답게 김영하는 '감성 근육'에서 찾는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아니, 남들의 기준에 쉽게 흔들지지 않은 자신만의 감성을 가진다면, '자기'조차 헌신해야 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위해 소설을 일고, 오감을 이용해 글을 써보면서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감수성을 키워나갈 것을 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로 성공한 ceo 연예 기획사 yg의 대표는 꿈을 가지라고 말할 때, 그 보다 사회적으로 덜 성공해 보이는, 두 사람, 김봉진과 김영하는,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현실을 말한다. 사업에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나락에 빠질 수 있는 현실, 꿈은 커녕, 현실에 맞춰가는 것도 버거운 세상, 최고의 ceo가 말했던 가슴뛰는 일은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힘들 것이란 걸 이들은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곰곰히 들여다 보면 또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들이 모두, 개인적이며, 어떻게 보면 고립적이다. 
사업에 실패한 김봉진이 선택한 길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개인적 충전의 시간이었다. 김영하가 제시한 감성 근육도, 이런 김봉진의 해법과 통한다. 철벽과 같은 세상,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이들은 각자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세상과 홀로 싸우라고 말한다. 
대신, 그들은, '성공'의 담론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성공'보다는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하라고 한다. '성공'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세우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자족적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성공'이 화법을 전복시키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김영하는 말한다. 어차피 '성공'하기 힘들다고, 거기에 매달리지 말고, 당신들만의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그렇게 다른 삶의 의미는,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도시의 바닥을 휩쓸고 다니며 전단지를 주운 성과가, 기념일의 마음대로 퇴근이요, 무한정 제공되는 책값의 복지로 보상된다. 그것도 괜찮지 하다가, 그것 밖에 없을까 란 질문이 슬며시 든다. 

(스포츠 동아)

2주에 걸쳐, '물음 특집'을 선보인 <힐링 캠프>는 모색의 시간이다. 이제는 고갈된 게스트군들에 대항해, 이미 출연했던 여러 게스트들을 모아놓고 집단 토크를 하거나, '물음 특집'처럼 젊은이들의 멘토가 될만한 게스트들을 불러다, '멘토링성' 강연과 질의 응답을 시켜 보는 중이다. 때론 면죄부가 되었지만, 이제는 토크 소재의 한계와 출연자 고갈에 시달리는 <힐링 캠프>로서는 지금까지보다는 나쁘지는 않았다. 
더구나, 다수의 젊은이들을 동원한 질의 응답 시간은, 종종 정곡을 찌르는 솔직한 질문들이 등장하며,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 mc진의 진부함을 보완해 준다. 다만 아쉽다면 아쉬운 것이고, 혹은 그래서 그것이 어쩌면 현실의 솔직한 징후일 수 있는 것이, 여전히 젊은이들이 제시한 질문들이, 스펙과 학력 혹은 창업이라는 현실적 경계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 뜬금없어 보일 만큼, 젊은이들에게 드리워진 현실은 짙고, 희망은 멀어보인다. 

모색에 들어간 <힐링 캠프>에 필요한 것은 솔직한 질문이겠다. 2%의 저성장 시대, 스펙에 창의성까지 요구되는,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세상에서, 사람들을 진정 '힐링'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이제,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현실 진단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 해법은, 각자 알아서 잘 살자라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런 해법을 넘어설 진정한 '힐링'은 없을까? '성공' 대신 '성장'으로 얼버무리는 어쩐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듯한 썩 개운치 않은 대안 말고는, 사람들을 구원할 길은 없을까? 아마도 이에 대한 고민이, <힐링 캠프>가 생존할 길이기도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2. 9.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