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은 변함없이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사라진 '골목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일으켰고, 추억이 된 그 시절의 학창시절과 문화들을 불러왔다. 하지만 왜 하고많은 80년대의 시간 중에 88년이었을까? 그저 그리운 '추억'만의 이름으로 그 이전 시대를 불러올 수 없었던 이유를 9월 25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빨간 선생님>이 답해준다. 




<빨간 선생님>의 시대적 배경은 1985년, 장소는 문화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 경상도의 한 여자 고등학교이다. 85년은 3s 정책(섹스, 스포츠, 스크린 등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배기 정책')의 정점이 된 '어우동(감독 이장호 )'이 흥행에 성공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정책과 달리, 일상의 삶은 <빨간 선생님>에서 인터넷도 없던 시절 솟구쳐오르던 학생들의 호기심이 학교 훈육의 대상으로 통제받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통제의 눈을 피해 '성'에 대한 궁금증을 이른바 '빨간 책'을 통해 풀었고, 그 '빨간 책'을 둘러싼 웃지못할 해프닝을 드라마 스페셜 <빨간 선생님>은 풀어낸다. 

변태남 사랑에 눈뜨다. 
주인공은 김태남(이동휘 분) 선생, 노총각 선생, 웬만한 여학교의 노총각 선생이라면 학생들에게 인기남일 만도 하지만, 그의 별명은 '변태남', 한창 호기심많은 여학생들에게 그는 고루하고 완고한 '단속'의 상징일 뿐이다. 게다가 가르치는 과목조차도 '수학'이다. 교감 선생님에게 '총애'를 받는 그는 앞장서 학생들을 '다잡았'으며, 그 수단으로 '매'는 일상이었고, 온갖 언어적 모욕과 수모는 그의 특기였다. 아, 노골적인 촌지와 편애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제 아무리 노총각 선생이라 해도 여학생들에게 그는 '로망'은 커녕 '원흉'일 뿐이다. 특히 아버지가 안계신 장순덕(정소민 분)에게 다음에는 아버지를 모셔오라며 가슴에 못을 한번 더 박는 말을 무신경하게 내뱉는 그에게 반골 기질이 다분한 순덕은 '선생' 취급을 아예 하지 않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머리 길이를 가지고 한바탕 학생들을 뒤집은 그가 퇴근 후 우연히 들른 책방, 거기서 그의 눈에 띤 한 권의 '빨간 책'이 있었으니 바로 장군의 아내와 부하가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그 제목에 솔깃해 몰래 책을 사온 김선생, 문제는 그가 독서 이후 함부로 버린 그 책이 순덕의 손을 거쳐 성문화에 갈급한 전교생에게 순식간에 퍼져 버린 것. 장군이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던 서재 앞에 등장하는 그 순간에, '계속'이라는 말로 1권을 마무리한 그 책의 다음 편에 대한 갈증은 결국 아버지의 타자기를 유품으로 가진 순덕에게 2편을 쓰는 동력이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순덕의 창작 생활은 태남의 눈에 띄게 되는데. 

지금까지 태남의 방식대로라면 당연히 순덕을 비롯한 그 '빨간 책'을 돌려 본 학생들을 '취조'하듯 닥달하며 처벌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1권에 감동받았던 독자 태남은 예의 그 훈육 방식 대신, 순덕에게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도 하라는 말까지 돌려 말하며 순덕 버전 '빨간 책'의 또 한 사람의 독자가 된다. 심지어 '좀 더 야하게'라는 후기까지 적으며. 

하지만 독자였던 태남과 달리, 그 빨간 책을 알게 된 교감은 그 책의 저자를 색출하고자 하고, 가정 환경 조사서를 뒤져 타자기를 가진 순덕의 집으로 선생들과 향한다. 하지만 정작 순덕의 집에서 찾은 타자기는 빨간 책 속편을 친 그 마침표가 없는 타자기가 아니었다. 순덕의 타자기가 무사했던 이유는 바로 애독자 김선생의 기지 덕분. 그 일로 김선생은 순덕의 가정 형편을 알게 되고 순덕을 이해하고 이제 비밀 친구로 순덕과 편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어쩌면 순덕의 신변에 닥칠 지도 모를 일이 걱정된 김선생은 책을 소각시키며 순덕의 잠시 잠깐의 재능을 좋은 길로 유도하고자 한다. 

변태남에서 참 스승으로의 비극적 행로
하지만 김선생의 우려는 그가 태워버린 책으로 잘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순덕의 학교를 벗어난 빨간 책은 날개를 달고 서울로 상경한다. 그리고 어느날 학교에 들이닥친 국가안전기획부, 이른바 안기부 요원은 장군에서 국가 원수가 된 그 분을 떠올리게 하는 장군 아내의 부정이 담긴 이 책을 국가 원수 모독의 혐의가 있는 '금서'라며 지은이를 색출하고자 한다.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갈 뻔한 빨간 책이 이제 금서와 불순분자가 되어 되돌아 온 것이다. 그 해프닝의 중심에 서게 된 김선생, 여전히 순덕에게 김선생은 교감 바짓가랭이 사이까지 들어가는 속물이지만, 김선생은 위기의 순간 자신을 던져 순덕을 구한다. 결국 '빨간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서 쫓겨나버린 김태남, 그의 진실이 순덕에게 닿기까지는 몇 년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학생이 쓴 빨간 책에 반해버린 웃긴 해프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해프닝이 벌어진 1980년대라는 시공간을 드러내며 웃지못할 비극으로 귀결된다. 교감에게 잘 보이면 장땡이었던 속물 선생님은 학생이 쓴 책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뜸과 동시에,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했고, 그가 되찾은 인간미는 그에게 '진정한 선생'으로서의 길을 되찾게 함과 동시에 처절한 댓가를 선물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던 순덕의 아버지에 이어, 좋은 스승이 된 김태남이 걸을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행로는 바로 '인간적인 선택'이 비극을 담보할 수 밖에 없는 80년대 한국을 상징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응답하라>가 그리움과 추억만으로 그 시절을 소환할 수 없는 진짜 이유다. 

몇 달만에 돌아온 드라마 스페셜은 극본 공모 가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그간 tv 드라마가 그려내지 않았던 신선한 소재와 시절을 담으며,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응답하라>의 그저 웃기는 이웃 친구였던 이동휘는 노총각 변태 선생님에서부터 참 스승으로의 성장을 '페이소스'넘치게 그려낸다. 웃음과 연민, 그리고 슬픔을 넘나드는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빨간 책이란 소재를 통해 비극적인 80년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 권혜지 작가와 유종선 피디의 조합은 최근 kbs 드라마 약진의 저력을 증명한다. 
by meditator 2016. 9. 26. 11:29

oecd 이혼율 1위의 국가, 하지만 현실에서 맞닦뜨리는 것은 오히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융통성있는(?) 사고보다, 그 반대급부적인 '강고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다. 명절만 지나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사회, 높아지는 이혼율로 인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것은 '가족'이요, '결혼'이다. 하지만, 그 '신봉하고 있는' 결혼과 가정의 현실은 어떨까? 연예인이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의심만 들어도, 혹은 그 '바람'의 대상이었다는 의혹만으로도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이름보다 욕으로 불리워지는 세상이지만,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주말드라마까지 드라마를 견인하는 것은 숱한 불륜들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불륜' 드라마가 주중 미니 시리즈도 첫 선을 보였다. 바로 <공항 가는 길>이다. 




얼마 전 종영한 <굿와이프>, 미드를 각색한 이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와 여주인공 김혜경(전도연 분)이 남편 이태준(유지태 분)과 옛친구이자 현재의 동료인 서중원(윤계상 분) 사이에서 애정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극중에서 김혜경은 남편을 만나고 난 후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중원과 키쓰를 하는 모습을 통해 '욕망'에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작 미드 굿 와이프가 몇 시즌에 걸쳐 여주인공 앨리시아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과 달리, 단 16부작으로 김혜경의 일과 사랑을 다룬 <굿 와이프>는 독자적인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보다, 결국 두 남자 사이에 불륜과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모습에 치중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사랑의 선택이란 측면에서, <굿 와이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륜'이란 꼬리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이러니다, 여주인공의 파격적인 사랑이 화제가 되면서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그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네'라고 불리는 아내와 아내 몰래 딸을 그리는 아빠의 만남
9월 21일 시작한 <공항 가는 길>은 심지어 남녀 두 주인공이 모두 유뷰남, 유부녀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어차피 불륜 드라마'라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처지가 되었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두 남녀의 두 번째 사춘기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두 기혼자가 주인공인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제작을 맡은 김철규 피디는 '불륜 드라마라고 확정지어버리면 할 말이 없다.며,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위로'와 '관계'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21일 1회에 이어, 22일 방영된 2회는, 김철규 피디가 공언한 '위로'와 '관계'의 주춧돌을 쌓기 위해 공을 들인다.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 승무원인 최수아(김하늘 분), 직장에선 똑부러지는 그녀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의 일상은 달라진다. 그녀를 '자네'라 부르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과 그녀의 관계는 '부부'라지만 상하 관계에 가깝다. '기내식'처럼 아내가 랩으로 싸놓은 반찬으로 만나는 이들 부부는 하나있는 딸의 교육에 있어서도 아빠의 욕심이 먼저다. 아내의 의견을, 그저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남편, 그리고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에 여념없는 시어머니 앞에, 워킹맘 수아의 딸 수호작전은 역부족이다. 

그런 그녀 앞에 서도우가 나타난다. 국제 학교에 보내진 딸과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의 아빠, 그리고 그 딸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고통받는, 하지만 그 역시 그런 그의 마음을 아내와 소통할 수 없어 하던 차에, 사소하게 그를 배려해주는 수아와 서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 1,2화의 내용이다. 



자식을 둔 부모들, 하지만 부모라는 공통점만으로 함께 나눌 수 없는 부부, 거기서 벌어진 틈을 드라마는 세밀하게 그려낸다. 항공사 기장으로 국제화 시대에 능력있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욕망에 충실한 박진석과, 자신의 일에 열심이지만 소박한 가정을 꿈꾸는 그의 아내가 빚어내는 긴장과 딸을 그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미스터리하게 딸을 어떻게든지 멀리하려하다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그런 상황에서도 잔인하리만치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려는 아내의 독기 사이의 불협화음을 섬세하게 드라마는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런 소통할 수 없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외로워진 두 영혼이 서로를 들여다봐주는 작은 소통을 통해 선뜻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으로서의 만남 이전에, '위로'와 '관계'를 전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로'와 '관계'의 전제 속에, 질문이 던져진다. 과연 이들 '부부'는 무엇일까? 하고. 

<공항 가는 길>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타고, 요즘 흔한 드라마의 템포에서 한 발짝 비껴선다. 남과 여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 대신에, 함께 살지만,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에 천착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알아주는 눈 밝은 이에게 어쩔 수 없이 열리는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반문한다. 아마도 이 느리게 감정을 쌓아가는, '욕망의 전차'로서의 불륜 드라마로서의 화제성도 부족할 지도 모를  이 드라마가 이 가을의 대표작이 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 허허로운 마음에서 솟아오른 질문 한 자락이 있다면 한번쯤 귀기울여볼만한 드라마란 생각이 들게한다. '불륜'이라는 방패가 아니라, 김철규 피디의 바램대로, '성숙한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드라마로 끝까지 완주해 주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9. 23. 05:44

추석에 연이어 주말이 이어져 유독 길고 긴 연휴, 가족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잠시, 장시간 귀향길에 지친 몸을 끌고 또 북적이는 영화관이다 뭐다 다니는 것도 시들하다면 이 넘치는 연휴의 시간에 드라마 몰아보기 한 판어떨까? 까짓거 맘만 먹는다면야 하루 날 잡아서 16부작 드라마 전회 정도는 너끈히! 그래서 연휴 기간 동안, 그동안 못봤던 드라마, 혹은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준비중인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몰아보기권장 드라마! 그 두 번 째로, 최근 <무한도전>무한상사로 파트너쉽의 건재를 보여준 장항준, 김은희 부부다.

 

<무한도전>은 우리 시대 대표적 예능이다. 언제나 화제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늘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들을 창출해 내왔다. 그런 <무한도전>의 여러 콘텐츠들 중 출연 멤버들이 회사원으로 등장하여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그려낸 무한상사는 스테디셀러이다. 2011년 첫 선을 보인 무한상사탄생에서부터, ‘야유회’, ‘종무식과 새해인사’, 신입사워 gd, 그리고 뮤지컬 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여왔다. 2015년에는 나는 액션 배우다를 예고했지만 선보이지 못했던 <무한도전>은 그 아쉬움을 보상하려는 듯 2016년 액션 블록버스터 무한상사를 방영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대장정을 통해 한 편의 영화처럼 ‘2016년 무한상사를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이다.

 



1.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부부의 또 다른 콤비 플레이가 궁금하다면?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 부부가 대중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방영된 <싸인>을 통해서이다. 당시로서는 드문 범죄 스릴러물에 신선했던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싸인>은 이 새로운 설정을 뛰어넘어, 매회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심지어 마지막 회에 주인공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기상천외한 엔딩으로 25.5%의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초반에는 감독으로, 후반에는 함께 대본 작업을 하며 협업을 펼친 두 사람의 <싸인>은 아직도 범죄 스릴러물의 대표적 작품으로 오르내린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호흡을 함께 한 것은 <싸인>이 첨이 아니다. 불운의 괴작으로 이 드라마를 봤던 소수의 시청자들에게 기억되는 <위기일발 풍년빌라>tv 드라마로는 첫 작품이다. 2010년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케이블 방송국 tvn의 초창기 작품으로 풍년빌라라는 음산한 빌라를 배경으로 아버지에게 3000만원짜리 빌라를 유산으로 받았지만, 그로 인해 자신도 원치 않았던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오복규(신하균 분)의 해프닝을 그린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장항준 감독 특유의 기발함과 초창기 김은희의 스릴러적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풍년빌라>을 주행해 볼 일이다.


싸인        위기일발 풍년빌라

 

2. 김은희 작가하면 역시?

암만해도 최근 김은희 작가라 하면 올 한 해 최고의 화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시그널>이 떠올려 질 것이다. <미생>의 김원석 피디와 만나, 조진웅, 이제훈, 김혜수라는 배우들의 새로운 면모, 그리고 과거와의 대화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아니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신랄하게, 하지만 인간미넘치게 그려낸 수작이다.

하지만 <시그널>만이 아니다. 김은희 작가는 이미 <싸인> 이래 줄곧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대항하여 자신을 던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왔다. 또한 그 방식과 서사에 있어서도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다. <싸인>에서 법의학자를 내세워 의 견고함에 자신을 내던지도록 했다면, 2012<유령>에서는 사이버 수사팀장 김우현(소지섭 분)을 내세워 사이버 세계권력에 대항하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2014<쓰리데이즈>에서는 단 3일간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경제적 권력 앞에 무기력한 대통령(손현주 분)과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경호원(박유천 분)을 통해 당시 세월호 사건 등으로 침통했던 상황 속에서 국가지도자에 대해 질문한다. 2016무한상사에서도 이어진 작가 김은희의 질문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묻혀져서는 안될 사회의 근본에 대한 물음들이다.

몇 편의 김은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재미로 보는 관전 포인트 하나, 김은희 장항준 부부의 친구이기도 한 장현성은 김은희 작가 작품에는 단골 손님이다. 그것도 주로 악역으로, 변호사로, 경찰국장으로, 경호원으로, 다시 경찰로 장현성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악역 열전 또한 숨겨진 볼거리라 할 수 있다.


유령       쓰리데이즈 시그널      드라마의 제왕




 

3. 장항준의 단독 플레이는?

장항준은 김은희 작가와 함께 <풍년빌라>, <싸인>을 감독하기에 앞서 이미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후 <전투의 매너(2008)>등 몇몇 작품을 연출했지만 대중들의 뇌리엔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소득을 얻지 못했던 장항준 감독은 tv로 넘어와 김은희 작가와 함께 연달아 두 작품을 한 후 서로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가 달라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김은희 작가와 작품적으로 이별한 장항준 감독의 첫 작품이자, ‘무한상사이전의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의 제왕(2012)>이다. 최고 시청률 8.9%로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한 이 작품은 김명민의 코믹한 연기와 드라마판의 까발린 이면으로 그 이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벤치 마킹할 정도로 아직도 종종 이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현실 사건으로 등장하며 종종 언급될 정도의 리얼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우리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블랙코미디를 맛보고 싶다면 장항준 감독의 <드라마의 제왕>을 권해본다

by meditator 2016. 9. 17. 15:05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드라마

 

추석에 연이은 주말, 가족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잠시, 장시간 귀향길에 지친 몸을 끌고 또 북적이는 영화관이다 뭐다 다니는 것도 시들하다면 이 넘치는 연휴의 시간에 드라마 몰아보기 한 판어떨까? 까짓거 맘만 먹는다면야 하루 날 잡아서 16부작 드라마 전회 정도는 너끈히 몰아볼 수 있잖은가. 그래서 연휴 기간 동안, 그동안 못봤던 드라마, 혹은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준비중인 드라마 덕후들을 위한 몰아보기권장 드라마! 그 첫 번째로, 요즘 한참 상종가를 치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구르미 그린 달빛

822일부터 kbs2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츤데레 왕세자 이영과 남장 내시 홍라온의 궁중 위장 로맨스 사극

<응답하라 1988>의 저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로 모성 본능을 울렸던 박보검이 왕세자로서 한껏 매력을 풀어내고,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왕세자 이영과 내시 홍라온의 감옥씬이 키스씬보다 더 가슴을 설레게 했던 김유정의 성숙해진 면모, 그리고 남장을 할 여인네를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세자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긴장감 넘치는 관계, 그것들을 아름다운 화면에 담아내며 20%의 고지를 앞두고 있다.(6회 닐슨 코리아 18.8%)

 

구르미 그린 달빛

 

1-1.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사극이 궁금하다면?

무엇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란 드라마의 재미는 내시로 궁궐에 들어온 여자 홍라온이 가져온 긴장감이다. 궁궐에서의 만남 이전에 서로 해프닝처럼 얽혀진 인연, 그리고 궁궐에서의 조우, 친구인 듯, 신하와 왕세자인듯하며 위기를 겪어가며 이영과 홍라온의 맘이 깊어져 가는 이야기는 궁궐이라는 배경이 성균관으로 다를 뿐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로맨스 사극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이미 익숙한 이야기이다. 금서 배달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이선준(박유천 분)과 김윤희 아니 김윤식(박민영 분)이 과장에서 다시 만나 성균관의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은 로맨스 사극의 원형이 되었다. 운종가의 연애 비법서를 쓰고, 정치적으로 이영과 척을 지게 되는 가문의 자손 홍라온의 캐릭터는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홍라온의 키다리 아저씨역할을 하는 김윤성(진영 분)과 이영의 오른 팔 김병연(곽동연 분)이 이 두 사람과 엮어가는 이야기 역시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유아인 분)와 여림(송중기 분)와 두 주인공이 엮어가는 우정인 듯, 남녀간의 연모인 듯, 그리고 브로맨스를 연상케하는 지점, <성균관 스캔들>의 재미 포인트를 <구르미 그린 달빛>은 고스란히 옮겨오고 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 <성균관 스캔들>에서 성균관의 참 스승이자, 김윤식 아버지와 함께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김윤식의 보호자로 등장했던 정약용이 같은 역할을 했던 안내상에 의해 다시 한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등장한다. 과연 이번에도 정약용은 <성균관 스캔들>에서처럼 참 스승과 여주인공의 보호자가 될까?


성균관 스캔들

 


1-2. 왕세자의 사랑이 궁금하다면?

똥궁전이라 칭해질 정도로 예와 법도따위는 나 몰라라 궁궐의 골칫거리인 세자 이영, 그런 이영과 비슷한 또 한 사람의 세자가 있다? 바로 신예 김수현을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2012년작 <해를 품은 달>이 그것이다. <해를 품은 달><구르미 그린 달빛> 벌써 제목부터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두 작품은 정은궐의 로맨스 소설과 유지수의 웹소설로 전혀 다른 장르의 작품이다. 하지만 골칫덩어리 세자 이영과 스승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악동 왕세자 훤은 비슷한 캐릭터이다. 심지어 무기력한 왕과 세자의 위치를 넘보는 무리들까지, 그런 정치적 위협 속에서 운명적으로 세자는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지만, 원치않는 사람과 결혼까지 해야하는 설정까지 두 작품은 흡사하다. 과연 이영은 이훤처럼 왕이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영으로 못다한 왕세자의 사랑을 좀 더 만끽하고 싶다면, 최고 시청률 42.2%라는 기록을 세웠던 <해를 품은 달>에 도전해 보심이!


해를 품은 달


 

 

2. 원작이 궁금하다고? 각색도 만만치 않다.

유지수가 쓴 <구르미 그린 달빛>웹 소설 1, 누적 조회수 42백만, 평점 9.9’를 기록하며 웹소설계의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총 다섯 권의 장편이다. 현재 바영되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은 단 18부작, 장황한 서사의 원작 소설을 18부작의 깔끔한 스토리로 뽑아 낸 것은 바로 김민정, 임예진 두 사람의 작가다. 이들 두 사람의 작가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 앞서 역시나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성윤, 백상훈 피디와 함께 <후아유-학교 2015>를 집필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달라진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장담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평가받았던 <후아유>, 김민정, 임예진 작가의 필력이 궁금하다면 강추!

양념으로 김민정 작가가 쓴 드라마 스페셜 <happy 로즈데이(2013, 8, 14방영)>,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2013, 11,3)>도 한번 찾아보시길!



 

3. ‘예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연출이 궁금하다고?

150억이라는 엄청난 규모와 이미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보보경심-><구르미 그린 달빛>의 대결을 앞두고 세간에서는 전자의 압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김성윤, 백상훈 피디의 유려한 화면에 담긴 두 젊은이들의 풋풋한 만남은 단박에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고 말았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같은 마치 청춘을 화면에 담은 듯 녹음이 흐드러진 화면은 청춘 로맨스 사극으로 <구르미 그린 달빛>에 걸맞는 배경 그 이상으로 작동한다. 보고있는 시청자들이 광합성이라도 하게 만들 기세의 푸른 화면만이 아니다. 라온이와 세자가 풍등 축제에서 조우하는가 하면, 거기서 또 윤성마저 얽힌 관계, 그리고 그런 젊은이들의 인연 위로 날아가는 풍등을 바라보는 왕의 근심까지, 아름다움 그 이상의 감정을 절묘하게 배치하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이렇게 150억 대작을 소소한 준비로 대번에 ko시킨 김성윤, 백상훈 피디의 전작은 무엇이었을까? 각색을 한 김민정, 임예진 작가와 함께 한 <후아유-학교 2015>가 그것이다. 그에 앞서, 김성윤 피디는 <태양의 후예>의 이응복 피디와 함께 2014년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연애의 발견>도 연출했다. , 드라마 스페셜 4부작 <사춘기 메들리>도 놓칠 수 없다. 김성윤 피디와 함께 <연애의 발견>을 연출했던 이응복 피디는 또 다른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백상훈 피디와 함께 한다. 이들 세 사람은 일찍이 2011<드림 하이 1>에서 백상훈 기획, 이응복, 김성윤 연출로 함께 팀웍을 갈고 닦은 사이다.

 

by meditator 2016. 9. 16. 18:11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최근 빈번하게 제작되고, 흥행에 있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연 '과거'를 보는 '시각'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 '과거'의 알려진 일부 사실을 '현재'의 잣대로 '편집'할 수 밖에 없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왜곡' 혹은 '오역'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e.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명제에 대해 주인공 에드워드가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란 해석을 내놓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최근 개봉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과거'를 빌미로 '민족'이라는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과연 근대적 산물인 '민족'이라는 개념을 그것이 탄생하기도 전인 '조선'이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논'하는 것이 옳은 가의 문제이다. 즉, 현재의 '민족적 감성을 부추키기 위해 '과거'를 이용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에서 최근 한국 영화들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역시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진왜란 1592>는 현답을 제시한다. 




조선의 바다를 지킨 사람들
1회에서 선조는 도읍 한양을 버리고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평양성을 향했다. 하지만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왜군에, 2회 선조는 다시 평양성을 버리고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 이미 유성룡의 <징비록>을 통해 이미 알려졌듯이, 조선의 임금 선조는 서슴없이 자신의 나라 조선을 버리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하려 했다. 망한 조선의 왕족들처럼 그래도 자신은 강국의 그늘에서 거둬질 수 있으니 라며. 그렇게 임금조차 떨어진 짚신 짝처럼 버리는 나라, 과연 그 나라를 지켰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군에 의해 도륙당하는 조선의 바다에, 단 한 사람 아직 지지않는 장수가 한 사람 있었다. <임진왜란 1592>는 그 한 사람의 장수 이순신에 대해 굳이 설명을 덧대지 않는다. 그가 남긴 징한 기록 <난중일기> 속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적었을 뿐인데, 구구절절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1회 이순신의 몇 마디 말로, 그가 조선의 바다를 지키려는 그 심정과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 그리고 2회, 그런 이순신을 따라,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그려낸다. 

2회에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 1회 도륙당하는 경상도에서 왜군의 칼에 맞아 죽어가는 아들을 짊어진 채 이순신의 군영을 찾은 막둥이 아빠(조재완 분)를 등장시킨다. '군영'이니 당연히 '민간인'을 들일 수 없는 형편, 하지만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짊어 진 아버지는 읍소한다.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런 그를 막아서는 병졸들, 하지만 이순신의 수하 이기남(이철민 분)이 호통을 친다. 죽어가는 아이를 데리고 경상도에서 전라도 좌수영까지 그 먼 길을 찾아온 백성을 여기서 내치면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며. 그리고 그런 이기남의 '군율'에 어긋난 행동을 이순신은 모른 척한다. 하지만 이미 이기남이 보기에도 죽어가던 아이는 좌수영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귀선(鬼船), 즉 거북선의 첫 출정, 이순신과 좌수영의 야심작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배는 홀로 전장의 선봉에 서야만 했다. 죽음을 각오한 이기남이 귀선의 격군들에게 이 출정이 '죽을 자리'일 수도 있음을 알리고 살 길을 터놓는다. 그때 격군이 아닌 막둥이 아빠가 귀선을 뛰어 들어와 노를 잡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미 아이는 죽어버린 상황, 아내 역시 일찌기 왜군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에게 귀선에 노를 젖는 일은 곧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죽인 왜군과 싸우는 일이었다. 막둥이 아빠가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말한다. 나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받는다. 나는 동생이, 그렇게 귀선의 격군들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왜군을 향한 '복수'의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노에 자신의 손을 묶는다. 

'민족'의 어설픈 이데올로기 대신, '민초'들이 지켜낸 나라 
바로 이 지점이다. 어설픈 민족주의 사관은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하고, 그와 그를 따라 전장으로 나갔던 이들을 '민족'이란 테두리로 묶어 세우려 하지만, <임진왜란 1592>가 그려낸 그날 전장의 그들을 묶어낸 것은 다름아닌 내 사람들을 잃은 그 '울분'이며, '통한'이다. 그리고, 임금조차 버린 나라에서, 군복을 벗지 않아 쉬이 낫지 않은 상처를 무릎쓰고 지지않고 싸우려는 이순신은 바로 그들이 '조선'이라 일갈한다. 그들이 죽지 않아야, 죽지 않고 이겨 살아돌아와야 조선이 살 수 있다고 덧붙인다. 

나랏님이 버린 조선에서 바다에서 이순신과 그의 군사들이 7년동안 단 한번도 지지않는 가운데, 도륙된 육토를 지키려고 나섰던 사람들은 바로 '의병'들이다. 신분제 사회 조선, 늘 양반에게 빼앗기기 바빴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땅과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떨쳐일어선 것이 '의병'이다. 역사는 그들의 지도자중 일부였던 '양반'을 중심으로 '의병'을 기록하지만, 그 지도자들을 따라 목숨을 바쳤던 다수의 '의지'들은 바로 자신의 터전을 지키려는 <임진왜란 1592> 2회가 그리고 있는 '그들'이다. 그 '의병'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던 그 마음을 드라마는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1회에 제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제대로 된 '지도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상황이 어떻게 역전될 수 있는가를 이순신을 통해 보여주었다면, 2회에는 그 한 사람의 지도자를 뒷받침해주는 '그들'의 헌신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애쓴다. 이순신의 전과가 커져갈 수록, 그를 상대하고자 하는 왜군의 규모도 나날이 커져만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곱 장수 중 한 사람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111척의 배을 이끌고 이순신을 향해 온다. 그런 왜군에 대항해 싸울 이순신의 배는 불과 26척. 

1회에서도 양 측의 전술과 무기 배치를 통해 이순신의 승전을 재해석해냈던 <임진왜란 1592>는 2회에서도 그 '사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습, 아직 전열이 채 다듬어 지지 않은 조선 수군, 선봉장인 귀선과 이기남을 비롯한 귀선의 군사, 격군들은 이 선봉에서 자신들의 귀환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주먹질을 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던 이기남 장군의 저돌성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홀로 79척의 적진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철심과 단단한 송판으로 무장을 했다해도 왜군들이 쏘아대는 조총의 물량 공세에 결국 귀선의 이기남을 비롯한 다수는 목숨을 잃고만다. 



그렇게 귀선이 목숨을 던져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그 뒤를 이순신이 뒤따르고, 26척의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이순신의 대장선은 불과 50보의 사이를 두고 첫 포성을 울린다. 하지만 그도 잠깐,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다시 한번 포를 장전하는 사이, 왜군의 전략 '키리코미' (배에 올라타 칼로 사람을 베어 죽이는 전술)명령을 내린다. 이미 사전 함포 사격 연습에서 일본의 키리코미에 장전이 이겨낼 수 없음이 드러난 상황, 바로 그때 이순신은 배를 돌리고, 반대편에 장전되어 있던 함포를 포격한다. 불과 26척의 배로 학익진을 만들어 낸 그 전략이 가장 절묘하게 진가를 발휘하는 그 지점, 그 결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59척을 배을 잃고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 드라마는 승전보의 팡파레 대신, 이순신이 그의 난중일기에 남긴 귀선에 탄, 그리고 죽어간 병사들의 모습과 그 이름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 승전이 바로 순천에서 온 이기남을 비롯하여 막둥이 아빠, 박개춘, 조언부 등 그리고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출전 전의 잠시나마 흥겨웠던 그 순간들을. 이순신이 장궤에 자신의 이름을 뺀 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승전이 그들로 인해 가능했음을 조정에 올리고, 난중일기에 남겼듯 드라마도 이 장면을 통해 조선의 바다에 있던 '그들'을 증명해 낸다. 나랏님도 버린 나라를 지킨 '민초'들을. 나라의 진짜 주인들을. 시대를 구한 영웅 이순신의 필요충분 조건이 된 사람들을. 

by meditator 2016. 9. 9. 06:12

kbs2 vs. sbs의 월화극 대결 1라운드, 김래원, 박신혜 주연의 <닥터스> vs. 장혁, 박소담 주연의 <뷰티플 마인드>였다. 동일한 의학 드라마를 편성한 이 '핓빛어린 대결'은 싱겁게도 <닥터스>의 압승이었다. <닥터스>가 20%를 오르내리는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너끈히 수성할 때, <뷰티플 마인드>는 최고 시청률이 4.7%(3회, 닐슨 코리아 기준)였다. 물론 이 두 드라마의 대결은 '외연적'으로 보면 '의학 드라마' vs. 의학 드라마라는 동일한 장르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구조였던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였던 <닥터스>를 상대로 하여, 사이코패스 의사의 성장담이자, 병원을 둘러싼 비리를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이며, 나아가 '교육'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심리'드라마였다. 일반적인 시청자들이 선호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비리와 인간의 속내를 훑어보는 이 드라마가 결국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에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드라마 판에선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다른 주제와 내용을 다룬다 해도, '의학'이라는 소재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같은 장르의 드라마의 격돌은 '전파 낭비'가 아니냐는 반응이 뒤따랐다.  2                                                 



sbs vs. kbs2의 두 번의 월화극 혈전, 장군멍군
하지만 전파 낭비따위, 마치 승자 독식이 순리가 된 세상에서, 압도적 시청률의 승리는 그만큼 매력적이었던 것이었을까? kbs2와 sbs는 다시 한번 '사극'이라는 장르로 2차전을 벌였다. <닥터스>를 통해 승기를 잡았던 sbs, 방영 전 이미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던 <보보경심>의 리메이크 작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를 포진시키며 2차전에서도 압승을 예언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150억 대작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김규태 피디가 선보인 <달의 연인>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 압도당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차전의 <닥터스> vs. <뷰티플 마인드>의 시청률이 고스란히 반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장군멍군인 셈이다. 

그래도 <닥터스>에 대해 고전했던 <뷰티플 마인드>는 비록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웠지만,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사이코패스와 그를 둘러싼 병원과 가족의 관계를 '해부'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받았었다. 그런데 <구르미 그린 달빛>에 기를 못펴는 것은 물론, 동시간대 방영중인 <몬스터> 시청률에도 한참 뒤처진 <달의 연인>은 안타깝게도 <구르미 그린 달빛>과 시청층이 겹치는 '과거'에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9월 6일 방영된 <구르미 그린 달빛> 6회, 세자 이영(박보검 분)은 청의 사신에게 수청을 들게 된 동궁전 내시 홍삼놈(김유정 분)을 구하기 위해 다짜고짜 사신이 머무는 곳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내시에게 칼을 들이댄다. 드라마는 제 아무리 궁중의 법도 따위는 밥 먹듯이 무시하고 지내는 '똥궁'이라지만 외교적 절차를 무시한 이 '사태'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사태의 진행 과정을 생략한 채 세자의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는 작전에 집중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법도'와 외교적 상식을 무시한 세자의 무례 대신, 사랑하는 여인에 눈이 먼 사랑에 빠진 남정네의 과감한 행동에 홀리게 된다. 



기승전 '사랑'의 두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은 조선 순조 때 세자인 '효명 세자'로 그려진다. 역사적 인물인 효명 세자는 아버지 를 대신하여 19의 나이에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를 상대로 수렴 청정을 했을 정도로 영민한 인물로 전해진다. 또한 이덕일의 책 <조선 왕 독살 사건>을 비롯하여 일부에서 그의 죽음이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세력에 의한 죽음으로 전해지기도 하는 세도 정치의 중심에 놓여있던 '정치적 인물'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과도한 업무 등으로 인해 4년 동안 거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과로사'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워커 홀릭'에 가까운 면모를 기록으로 남긴 인물 효명세자, 하지만 그 세자가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게 '사랑꾼'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은 여자지만 내시로 궁에 들어온 홍삼놈을 '친구'로 여긴 세자는 그가 김윤성(진영 분)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시기하여 내치거나, 그에 대해 화를 내며 어쩔 줄 모른다. 홍삼놈이 등장하기전 세자는 비록 '똥궁전'이지만 안동 김씨의 세도에 대응하며 정치적 반전을 꾀하는 인물이었던 반면, 홍삼놈의 등장 이후 그의 모든 행보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 연애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기승전 스토리이다. 

<달의 연인>도 그리 다르지 않다.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 후에 광종이 되는 왕소(이준기 분)는 역시나 결혼 정책으로 34명의 자식을 둔, 극중 8명의 왕자들과 피튀기는 권력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이다. 하지만, 어머니에 의해 얼굴에 흉터까지 지닌, '늑대'라고 불리우는 이 사내는 볼모로 잡혀있던 곳에서 개경으로 온 이후 현재에서 타임슬립한 해수(아이유 분)와 얽히며 '사랑'에 눈이 멀기 시작한다. 

아니 드라마 속 사랑꾼은 이들 남자 주인공만이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무소불위 권력가 김헌의 유일한 아들로 등장하는 김윤성 역시 홍삼놈을 만난 이후로 줄곧 끌린다. 김헌과 이영은 한때 우정이었으나, 이제 여인 홍라온 앞에서 '권력'을 내건 연적으로 자리 바꿈을 한다. <달의 연인>은 고려 판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란 우스개가 떠돌 정도로 극중 8왕자 들이 대부분 왕실의 예법에서 자유로운 해수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인연'을 만들어 가며 '사랑'의 볼모가 되어간다. 심지어 해수의 육촌 언니의 남편 8왕자 왕욱(강하늘 분)까지도. 

드라마는 조선 순조 때 안동 김씨 세도가에 대항하는 세자 이영과, 태조 왕건 시기의 결혼 정책으로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세자들을 내세우지만, 결국 그들의 '권력' 투쟁이자, 정치적 위기는 '사랑'을 극적으로 그려가기 위한, 보조적 장치일 뿐이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그들은 사랑꾼이요, 사랑에 웃고, 울고, 자신의 많은 것들을 거는, '역사'와 무관한 '로맨스 가이'들이다. 심지어 이영이나, 왕소나 모두 어머니가 없거나, 어머니에 의해 버림받은 '모성 유발'의 남성들이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항해야 하는 운명적 인물들이다. 그렇게 태생적으로 '불운'한 그들 앞에 그들의 맘을 위로하는 '밝은' 소녀같은 여인이 등장하여, 벗인양, 그들과 어울리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 안타깝게도 두 드라마의 공통적 설정이다. 



그런 면에서 익숙한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정통 사극의 모양새를, 유려한 화면으로 그려내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그보다 시대적 배경이 먼, '고려'를 배경으로 한 <달의 연인>에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만다. 만약에 <달의 연인>이 고려판 <꽃보다 남자> 설정 대신, 초반 왕소의 치명적 존재를 중심으로 태조 왕건 시기의 권력 싸움에 집중했더라면, 이런 정치 사극에 흥미를 가진 '남성 시청자 층'의 호응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의 연인>은 그런 가능성 대신, 무엇을 해도 사극과 이질감을 주는 해수 역의 아이유와 왕자들과의 '로맨스'에 매진하며, 이미 몰입도가 강한 이영과 홍삼농의 로맨스에 스스로 '하수'로 자리매김하고 만다. 

이런 <달의 연인>의 안이한 선택은 그보다는 다층적 서사를 그려냈던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에 매료되었던 팬들을 이반시키는 자충수이며, 동시에 스스로의 차별성을 닫아버리는 결과물이 되고만다. 하지만, <달의 연인>의 패착이든, <구르미 그린 달빛>의 승기든, '사극'을 표방한 역사를 배경으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드라마는 그 시청률의 성취와 상관없이 가장 '안이한' 시청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얼마전 서울 드라마 어워드에서 <육룡이 나르샤>의 작품상 수상이 무색해지는 드라마 시장의 답보다. 


by meditator 2016. 9. 7. 06:45

5월 <스타 꿀방 대첩 좋아요>를 기점으로 쏟아진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들, 하지만 쏟아부은 물량에 비해 성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몇 달간의 시행 착오를 거친 끝에 정규 편성 이후 금요일 밤의 강자 <나 혼자 산다>에 이어 최근 화제가 되었던 <언니들의 슬램덩크>까지 제치며 <미운 우리 새끼>가 연속 2회에 걸쳐 동시간대 1위를 달성했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7.2%) 그에 이어 새롭게 안착한 <꽃놀이패> 역시 파일럿의 아쉬운 점을 개선하여 호의적 반응을 얻고 있다. 




<미운 우리 새끼>와 <꽃놀이패>의 묘수 
이렇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거나 정규 편성된 두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와 <꽃놀이패>는 묘한 공통점을 가진다. 두 프로그램 모두 신규 프로그램이지만 '신규'라기엔 어쩐지 익숙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그건 바로 두 프로그램을 보면 모두 어떤 프로그램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마치 이미 성공적으로 검증된 모 프로그램들의 '아류'라는 오명을 둘러댈 길 없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우리 아들이 혼자 산다>라는 우스개가 떠돌듯 동시간대 mbc의 <나 혼자 산다>가 없었으면 등장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미운 우리 새끼>의 소재는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싱글 라이프', 하지만 <미운 우리 새끼>는 거기에 '모성'이라는 조미료를 친다. 그래서 엄마가 지켜보는 우리 아들의 혼자 사는 모습이 <나 혼자 산다>의 싱글 라이프와는 다른, '가족애'라는 변주를 가능케 하며 <나 혼자 산다>보다 광범위한 시청층을 흡수해 낸다. 

<꽃놀이패> 역시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이 모여 지정된 장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포맷은 <1박2일>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거기에 이미 <1박2일>에서도 자주 등장한 바 있는 두 편으로 나누어 '비교 체험 극과 극'의 여행 과정, 잠자리 복불복 역시 익숙한 것이다. <꽃놀이패>는 이런 이미 익숙한 포맷에 '환승권'과 '투표'라는 변주를 주어 새로움을 낳는다. 꽃길과 흙길로 나뉘어진 팀, 제작 발표회에서 기자단의 노골적인 거수 투표로 흙길 팀장을 고르는가 싶더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역전'이 가능한 '환승권' 추첨으로 여행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꽃길과 흙길의 맛보기 여행이 끝난 밤, 출연자들이 익명으로 제출한 시를 통해 네티즌의 투표로 출연자들의 운명이 갈린다. 

<미운 우리 새끼>나 <꽃놀이패>의 전략은 sbs가 시도했던 다른 파일럿 프로그램 <신의 직장>이나 <스타 꿀방 대첩 좋아요>가 보여주었던 이질감과 생소함을 우선적으로 넘어서는 유리함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거기에 두 프로그램이 가미한 '조미료'는  이 프로그램들이 본딴 프로그램의 시청층을 확장하거나, 포인트를 달리하며 새로운 재미를 창출한다. 마치 <나는 가수다>로부터 시작된 가요 프로그램들이 <복면가왕>까지 변주되는 것처럼. 하지만 이미 타 방송사에서 스테디 셀러인 프로그램을 '조미료'만 곁들였다는 점에서 콘텐츠적 안이함이나 비겁함을 핑계댈 말은 딱히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가 방영되는 가운데, <불후의 명곡>을 런칭하는 관행이 이제 더는 치사하다고 욕먹을 일조차 되지 않는 방송가의 현실에서 새로울 것도 없는 '콘텐츠의 변주'이다. 

어쨋든 최근 <동상이몽, 괜찮아괜찮아(이하 동상이몽)>에 이어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이하 신의 목소리)>, <스타킹>, <오 마이 베이비>까지 줄을 이어서 폐지되고 있는 sbs 예능의 빈 자리를 <미운 우리 새끼>와 <꽃놀이패>가 순조롭게 바톤을 이어 받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제작비 부담의 고육지책이 낳은 
그런데 앞서 폐지된 예능과 이제 새롭게 자리를 잡기 시작한 예능 사이에는 차별점이 두드러진다. <동상이몽>, <신의 목소리>, <스타킹> 등이 일반인 관객들을 비롯하여 다수의 출연자등 제작비에서 부담을 주었던 프로그램들이다. 그에 반해 새롭게 편성된 <미운 우리새끼>나 <꽃놀이패>는 보다 적은 수의 출연자들과 스튜디오라는 '경제적 예능'이라는 점에서, 최근 공중파의 예능 부진에 따른 제작비 부담을 한결 덜어낸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도 두 프로그램은 불황 속 공중파를 구제할 구원 투수이자,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로서 주목할 바가 크다. 


또한 제작비의 부담을 가졌던 sbs 예능이 그 모색으로서 거대 연예 기획사 yg와 손잡았다는 점에서 <꽃놀이패>는 또 다른 변수를 낳는다. 이미 대표적 연예 기획사 sm이 예능을 비롯한 다수의 드라마에서 초반 부진을 넘어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빅뱅의 군입대가 예견된 시점에서 수익성 창출에 고민해 왔던 yg의 예능 참여는 또 다른 국면을 연다. 

그러나 'sm의 저주'라는 용어가 떠돌 정도로 sm의 아이돌들을 비롯한 소속 연예인을 중심으로 꾸렸던 sm발 작품들이 연달아 부진의 늪에 빠졌던 전례를 예능 프로그램을 처음 제작한 yg 역시 비껴가지 못한다. 정규 편성된 <꽃놀이패>는 제작 발표회장에서 출연자 조세호를 통해 이 프로그램의 정규 편성이 yg 소속 유병재때문이라는 조크인지, 진실인지 모를 언급이 등장하는가 하면, yg 수장 양현석의 처남인 이재진을 합류시켜 두 사람이 yg 소속 아파트에서 사는 대화 등을 가감없이 내보낸다. 과연 이런 자사 소속 연예인을 대거 출연시킨 yg 예능, 혹은 yg 예능에 출연한 yg 연예인들이 '저주'를 피해갈 것인지, 그 귀추도 주목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과 달리, 제작과 배급의 독점을 규제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영화계가 일부 대기업에 의한 제작과 배급의 독과점으로 인해, 영화 배급 시장의 왜곡 및 영화 수준의 하향 평준화를 이뤄, 이제 그 돌파구를 외국의 거대 자본에 기대어야 하는 웃픈 현실이 tv에서도 재연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이미 예능 mc에 sm 소속 mc들의 과점과 <라디오 스타>에서도 보여지듯 sm 소속 연예인의 잦은 출연처럼, 이미 관행처럼 정착되고 있는 연예거대 기획사의 전횡이 더더욱 고착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접어둘 수가 없다. 
by meditator 2016. 9. 6. 06:20

캥거루족, 어미의 육아낭 속에서 1년 여를 보내는 캥거루에 빗대, 부모에게 경제적 이유 등으로 얹혀사는 젊은이들을 뜻하는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을 이웃 일본을 통해서이다.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 늘어나며 나이가 들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격세지감이라고 그로부터 미처 십년이 되기도 전에 일본이 맞닦뜨린 그 '불황'은 이제 한국 사회를 덮쳤고. 우리 사회에도 '신(新) 캥거루 족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낯설지 않은 신 캥거루 족에 대해 9월 4일 <sbs스페셜-우리 집에 신 캥거루가 산다>가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웃 일본의 캥거루 족, 그리고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생소하지 않은 신 캥거루 족이지만, 전세계적 불황 속에 이런 독립할 수 없는 젊은 세대는 전세계적 고민이 되고 있다. 미국에는 대학 졸업 후 경제적 독립을 못해 결혼도 못한 채 부모에게 얹혀사는 트윅스터(Twixter) 족이 있고, 눈치없는 자식과 부모 사이의 내전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에서 유래된 탕기족이 프랑스에는 있다. 영국에는 부모의 은퇴 수당을 좀먹는 키퍼스가 있고, 중국에도 일정한 수입이나 직업없이 부모를 '갉아먹고'사는 컨라오 족이 있다. 

평생 엄마 아빠 그늘 아래 쉬고 싶다-효도가 최고의 재테그 
프랑스 영화 <탕기>의 주인공 탕기의 말처럼 캥거루 족은 '평생 엄마 아빠 그늘 아래 쉬고 싶'은 자식들이다.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985 9.1%에 비해 2010년 26.4%로 부모와 같이 사는 미혼 자녀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미혼 자녀만이 아니다. 경제적, 혹은 육아의 이유로 부모와 같이 사는 기혼 자녀의 비중도 4.2%나 늘었다. 물론 이 통계 안에 자녀의 편의가 아니라, 부모를 모시는 전통적인 '관례'가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급격한 증가율이다. 2016년 대한민국 청년 실업률 1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저임금 고용불안 등으로 대졸 청년들 가운데 51%가 여전히 부모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캥거루 족에 대해 신 캥거루 족의 원래 의미는 결혼 한 뒤에도 부모와 같이 사는 자식들을 뜻하는 말이지만, 9월 4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결혼한 자녀는 물론, 결혼할 나이의 자녀들이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사례를 '신캥거루족'의 범주에 넣어 다루고 있다. 



다큐는 여러 유형의 신 캥거루 족을 보여준다. 대기업 협력 회사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안덕호 씨 정년이 2년 남은 그지만 최근 그가 종사하는 산업의 불황 여파로 그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아직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 아빠가 되어 25살이 된 현재 세 아이를 둔 핸드폰 업체에 근무하는 큰 아들 내외와 대학원 다니는 딸까지 그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직장은 다닌다지만 한 달 벌이가 150만원 여, 하지만 안덕호씨네 한 달 생활비는 300만원이 넘고, 그건 온전히 아버지 안덕호 씨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은퇴 후 귀농을 하고 싶지만 후에 봉양을 할테니 집을 두고 가라는 아들 내외, 아버지가 능력이 되는 한 아버지 그늘에서 버티고 싶다는 아들의 의지에 아버지는 불가항력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서른 다섯이 되도록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인디 밴드 로맨틱 펀치의 기타리스트 강호윤 씨도 아버지가 여유 자금을 털어 실용 음악 학원까지 내주며 아들을 뒷바라지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끼니를 책임진다. 그런가 하면 서른이 되도록 직장을 잡지 못한 취업 준비생 아들 김경한 씨와 김은정씨의 딸도 당연히 부모의 책임이다.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대신해서 목욕탕에서 일하는 가장 어머니에게 딸은 밀린 핸드폰비라도 내달라 '애걸'하는 신세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와주자니 끝이 없고, 외면하자니 능력이 없는 딸 앞에서 언제까지 너를 보살펴야 하냐고 오히려 읍소한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81세의 고충진씨 노부부는 곰팡이가 핀 낡은 지하 전셋집에 산다. 마흔이 넘은 아들이 있지만 이집엔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중동 공사 현장에서 일해 번듯한 아파트까지 마련했던 아버지, 하지만 대학원까지 나와 사업을 했던 아들은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아버지 집까지 날려 버렸다. 이제 노부부는 자신의 집도 없이 남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현실에 안타까워하지만 희망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자식 몰입 사회 한국, 하지만 결국 문제는 개인이 독립할 수 없는 사회
세계적 불황, 거기서 비껴가지 않는 한국 사회에 신캥거루 족은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이기에 더 특별한 이유도 있다. 6,25전쟁 이후 자식 교육만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을 담보한다 생각했던 그 후 현대사에게 온전히 자식에게 몰입했다. 그래서 전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자식에 대한 헌신은 화려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일구었지만, 그 결과 2016년 대한민국 현실에서 보여지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그리고 그 반대 급부로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은 자식을 여전히 '아기'처럼 여기는 '독립'하지 못한 부모와 자식이라는 성숙되지 못한 '가족 관계'를 낳는다. 다큐는 이런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가족적 인식을 '노후에 봉양할 테니 지금은 가능한한 부모의 도움을 받겠다'며 당당히 손을 내미는 자식들과, 심지어 '아기'라 부르며 끼니에서부터 벌이까지 노심초사 뒷바라지를 하는 , 그러면서도 독립할 능력도 되지 않는 자식에게 결혼과 아이를 바라는 부모들을 통해 다큐는 보여준다. 



하지만, 그저 한국적 특수한 가족 관계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런 '전근대적 가족' 관계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넘어, 현재 한국 사회가 '신캥거루 족'을 배태한 원인을 다큐는 '사회'로 귀결시킨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일찌기 독립하여 병원에서 일하게 된 김현두씨 계약직으로 전국을 전전했던 그녀는 이제 또 '해고'도 못되는 '계약 해지'의 현실에서 절망한다. 돈을 벌면 부모님을 도와줄 수 있으려니 했지만, 계약직으로 전전한 그녀가 결국 향하게 되는 것은 고향 집이다. 

청년층이 첫 직장을 잡는데 걸리는 기간 평균 12개월, 하지만 그 조차도 상당수가 계약직인 고용 불안이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녀들에게 '경제적 독립'은 먼 꿈과도 같은 일이다. 또한 한 개인의 경제적 실패를 온전히 그 개인, 그리고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가족 책임'의 사회에서 부모는 책임의 수레바퀴에서 쉬이 벗어날 수 없다. 4,50대의 70%, 그리고 6,70대의 53%가 은퇴 준비 대신 자녀를 우선 지원하겠다는 부모 세대의 인식은 이런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를 견디는 버팀막이 되고 있고, 그 현실이 '신캥거루 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다큐는 강조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6. 9. 5. 06:53

또 임진왜란인가 싶었다. 일찌기 kbs1을 통해 방영되었던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했던 <불멸의 이순신(2004)>에서 무려 천만 하고도 700만이 더 보았던 (17,615,057 영진위 기준) <명량(2014)>가 있었는데, 또 이순신이라니. 그것도 웬만한 위인은 다 해본 거 같은 최수종의 이순신이라니.  임진왜란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지겹다'는 느낌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런 소재적 진부함에 대해 9월3일 첫 회를 방영한 <임진왜란 1592>은 '팩추얼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돌파하고자 한다. 




팩츄얼 드라마로 다룬 임진왜란 
인물, 사건, 이야기 모두를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둔 드라마를 '팩추얼 드라마(factual drama)라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 케이블 채널 HBO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와 <더 퍼시픽(2010>>을 들수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 지오그라픽에서 <임진왜란 1592>처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추얼 드라마인 <초한지(2013)>, <킬링 링컨(2013)> 등을 제작한 바 있다. 특히나 최근 '일제 시대'나, 그 이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만들어지면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경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지만, '자의적 해석'이나 심지어 '왜곡'이 두드러진 영화들이 흥행을 이어가며, 역사적 상상력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런 논란 속에서 팩추얼 드라마로써의 <임진왜란 1592>가 내세운 것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실적이고 생생한 임진왜란이다. 첫 회 과연 이전의 사극들속 임진왜란과 <임진왜란 1592>의 임진왜란은 어떻게 달랐을까?

첫 회 <임진왜란 1592>는 5부작이라는 길지 않은 회차의 난관을 임진왜란에 대한 서사적 접근 대신, 바로 난중의 영웅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선다. 파죽지세로 조선 땅을 침략해가는 왜군, 그런 적들에 대해 조정은 맞서 싸우는 대신 임금은 돌아오겠다는 기약없는 약속만을 남긴 채 서둘러 한양을 떴다. 그렇게 무구공산 적들의 잔인한 도륙만이 곳곳에서 자행되는 조선에서 전라도 좌수영의 이순신만이 홀로 그곳을 지키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 번을 싸워 세번을 이긴 이순신, 하지만 그런 그에게 부하 나대용은 그 누구도 지키려 하지 않는 조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가치가 있는가 물으며, 자신의 목숨부터 지키라 읍소한다. 하지만 그런 부하의 절망적인 요구에 이순인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라는 우문현답으로 답한다. 그리고 단 26척의 판옥선으로 결코 져서는 안될 전장으로 향한다. 





구체적 전투 상황을 조명하며 살려낸 전쟁의 박진감 
<임진왜란 1592>가 이순신의 영웅담 중에서도 촛점을 맞춘 것은 바로 귀선, 바로 거북선이다. 임진왜란이 나기 하루 전 완성된 거북선,  하지만 견내량 전투 이전까지 귀선은 한번도 전투 경험이 없었다. 매번 왜군에 지고 있는 조선 수군들, 당시 왜군은 최대한 가까이 조선 수순의 배에 접근하여 그들의 최신 무기인 조총을 쏘고, 갈고리로 판옥선에 올라 육박전을 벌이는 방식의 전술을 썼었다. 그런 왜군의 전투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조총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소나무로 배를 뒤덮고, 거기에 혹시라도 배위에 오를 시 귀선 등에 촘촘히 박힌 칼고 창등을 동원해 만든 철송곳에 찔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녹독에 당하도록 만든 귀선을 만드는 과정을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보여준다. 

하지만 귀선의 만듬새나 쓰임새만이 첫 회의 관전 포인트가 아니었다. 마치 전쟁사처럼 그동안 두루뭉수리하게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결사항전을 강조했던 다른 드라마와 달리, 우리에겐 이젠 익숙한 '학익진' 등의 전투 대형을 넘어 단 26척의 판옥선과 한 척의 귀선으로 엄청한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순신의 전술을 꼼꼼히 살펴본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화포, 순천의 실패을 거름삼아 이순신은 판옥선에서 멀찌감치 포를 쏘았을 것이란 그간의 정설을 뒤엎고 가까이 접근하여 활을 쏘며 조총을 무력화시킨 다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확히 조준하여 포를 쏘는 방식으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가설에 따라 구성한다. 



그에 따라 그려진 새로운 각도의 견내량 전투, 수군들과 장수들, 그리고 무엇보다 후방에서 지휘를 해야 할 이순신이 앞서 활을 쏘며 독려를 하는 상황과, 불리한 조건에서도 가장 정확한 포격과 귀선의 종횡무진 활약은 그간 드라마틱하게 당시의 상황을 그려냈던 다른 드라마나 영화못지 않은, 심지어는 사실적이라 더 박진감넘치는 임진왜란사를 탄생시킨다. 거기에 사극하면 역시 최수종이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김명민이나 최민식이 떠오르지 않은 정말 전장의 이순신이라면 저랬을 것같은 움푹 패인 볼과 초쵀한 모습과 곳곳에 검댕이마저 묻은 얼굴의 최수종의 이순신은 또 한 사람의 이순신을 각인시킨다. 또한 최수종 못지 않은 능숙한 일본어로 등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김승수나, 실제 일본 배우가 연기한 일본 장수들, 거기에 이기남이란 인물을 재발견하게 해준 이철민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열연이 사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덕분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실적인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가 등장한다. 

이런 신선한 시도의 포문을 연것은 극본과 연출을 겸한 김한솔 피디의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역사 스페셜>, <한국사 傳>, <문명의 기억 지도> 등의 역사 다큐를 거쳐온 그의 내공이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를 통해 피어난다. 거기에 한, 중, 일 삼국이 합작하여, 지금까지 '조선의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을 조선, 명나라, 일본이 참가한 동아시아 최대 전쟁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포부를 얹어, 명나라는 중국의 배우들이, 왜는 일본의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며 합작 드라마로써의 각을 살리고자 한다. 물론 우려되는 바도 있다. 합작 드라마로써 명과 일본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가 여부이다. 첫 회 일본의 야만적 침탈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우선은 이런 우려를 기우로 접어두게 한다. 과연 첫 회의 순조로운 출발이 5회까지 이어질지, 그 여부에 따라 새로운 시도 팩츄얼 드라마의 앞날도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첫 회만으로도 최근 그 어떠 사극보다도 흥미진진했다. 
by meditator 2016. 9. 4. 04:56

<다시 쓰는 육아 일기!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운 우리 새끼)>는 사실 동시간대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와 그리 다르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홀로 사는 연예인의 싱글 라이프를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의 '관음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나 혼자 산다>에 옥탑방에 사는 육중완이 나와도, 그리고 생후 584개월에 이르는 김건모가 나와도, 사실 그들은 시청자들이 그 이름만으로도 그들을 알 수 있는 이미 검증된 연예인이다. 그런 알려진 연예인의 삶은 우리 이웃의 필부의 삶과 다르게 정해진 프레임 속에서 생존의 전투에서 일정 정도 보장된 삶을 사는 '프레임' 속의 삶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들의 거꾸러질 일 없는, 하지만 인간이기에 겪는 희로애락의 공감대를 유지하며 적당히 '편안하게'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원래 즐거움 중에 가장 짜릿한 것 중 하나가 '엿보기' 아닌가. 그 부담없는 엿보기가 <나 혼자 산다>를 스테디셀러로 만들었고, 이제 그 아류인 <미운 우리 새끼>를 순탄하게 정규 방송화시키고 있다. 




<나 혼자 산다>와는 다른 질감의 <미운 우리 새끼>의 싱글 라이프 
그런데, 똑같이 싱글 라이프인데 거기에 '엄마'라는 존재가 곁들여 지면서 <미운 우리 새끼>는 다른 질감을 가져오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의 명칭인즉슨 생후 몇 백 개월을 들먹이며, 육아 일기를 다시 쓴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사십 줄, 오십 줄의 홀로 사는 아들의 삶을 전혀 몰랐던 엄마들에겐 그들의 싱글 라이프가 '깜짝 쇼'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엄마들의 '충격'파는 <나 혼자 산다>와 다르게, 가족적 공감대라는 신선한 볼거리의 지형을 연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아들들의 싱글 라이프가 전개되고 그리고 그런 아들들에 대한 엄마들의 입장이 분명해 지면서 <미운 우리 새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세 mc 신동엽, 서장훈, 한혜진과 함께 스튜디오에 자리잡은 어머니들, 어머니들의 일관된 입장은 우리 전통의 가족관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들이 마흔이 넘었건 오십이 넘었건, 여전히 '육아'의 관점에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여전히 맹목적으로 아들의 결혼과 안정된 결혼 생활을 바란다. 하지만 첫 회만 해도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소개팅도 하고 그러던 아들들은 회를 거듭하면서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정규 편성과 함께 합류한 박수홍, 방송에서의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미운 우리 새끼>의 박수홍은 클럽을 좋아하는 반전의 모습을 보인다. 미스코리아를 만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평소 집에서 아저씨처럼 뒹굴던 모습을 뒤로 하고 말끔하게 꽃단장(?)을 하고 외출한 박수홍, 친구의 집에 시커먼 사내들만이 포진해 있자, 노골적으로 실망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주도적으로 클럽 행을 부추키고 일행을 이끌고 밤 나들이에 나선다. 

이런 박수홍의 모습을 본 박수홍의 어머니는 당혹감을 넘어 어머니의 뒷배경으로 등장하는 분출하는 화산처럼 화를 좀처럼 누르지 못한다. 무려 마흔 일곱의 아들, 그 아들의 클럽 행이라는 '취미 생활'에 어머니는 여전히 스무 살 아들을 대하듯 못마땅해 한다. 이런 식이다. 프로그램의 제목 그대로, 스튜디오에 나란히 앉은 어머니들은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몇 십년의 생을 살아온 아들들을 '육아'의 관점에서 애를 끓인다. 아들들은 우리 사회에서 다 저마다의 커리어를 가지고 이제는 중견조차 넘어선 위치에 있는 인물들인데, 여전히 어머니에게는 '품안의 자식'인 것이다. 이게 좋게 말하면 '모성'이자, '가족애'이지만, 달리 보자면, 성인이 된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를 객관화시키지 못하는 지점인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미운 우리 새끼>의 예능적 재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빚어진다. 출연자들과 모두 안면이 있는 신동엽은 때론 어머니들의 그런 '노심초사'를 부추키고, 때론 진화를 시키며 적절하게 아이러니한 가족애를 조장한다. 

가족주의를 말하려 하지만, 오히려 가족에의 일탈이 드러나는 
하지만 그 조장에도 불구하고, 9월 2일 방송에서 보여지듯, 이제 마흔 줄, 오십 줄에 넘어선 아들의 삶은 이미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는 '가족주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드러낸다. 

클럽 애호가인 박수홍, 하지만 주말 저녁 그의 클럽 행은 결국 예약 혼선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친구들과 결국 해장국 집에서 늦은 저녁인지, 야식인지를 먹게 되는데, 그런 클럽 행 이전에 친구의 집에서 박수홍은 어머니의 간곡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해장국집에서도 변함없다. 오랜 연애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었던 상처를 가진 그는 그 과정에서 믿었던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당시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했더라면 하고 반문해 보면, 과연 행복한 결혼을 유지할 수 있을까란 회의가 든다고 한다. 그러기에 박수홍은 사랑은 감정이지만 결혼은 현실이라며 회의론에서 한발 도 나서지 않는다. 



박수홍만이 아니다. 상처로 인한 어려운 터득이라는 점에서 허지웅도 그리 다르지 않다. 모처럼 남자 친구들과의 여행, 오랜 지기들과의 격의없는 대화에서 허지웅은 연애는 가능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no라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아이'는 바란다. 허지웅만이 아니다. 오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철이 없는 소개팅 자리에서도 개구장이처럼 굴다 끝내버린 김건모의 속내도 외롭지만 그렇다고 결혼은 글쎄다. 찾아온 후배 김종민이 이리저리 그의 생활을 들쑤시자 못견뎌하는 김건모, 남들이 외로워 보인다 하건 말건, 이미 그의 삶은 김종민이 함부로 흐트러 놓을 수 없는 그의 물건처럼, 나름의 궤도를 가지고 움직인다. 때론 외롭지만, 그래도 나날이 게임을 하든, 피아노를 치든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그. 

프로그램은 어떻게든 어머니들의 입장과 그 어머니들의 입장에 맞춘 프레임 속에서 아들들을 마치 예전 어른들이 장가를 못가면 영원히 성인 취급을 못해주듯, 생후 몇 백 개월을 들먹이며 철이 덜 난듯이 취급한다. 이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삶의 단계로 규정짓는 '가족주의'의 편견이다. 프로그램은 그 편견을 '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엄연한 자기만의 궤도를 가진 아들들의 삶에 덜 떨어짐이라는 시선을 얹는다. 

하지만, 9월 2일 방송에서 드러난 것은, 흔히 '세대 차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간극이다. 어머니는 그 예전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아들들이 살아가길 바라지만, 이미 아들들이 사는 세상은 어머니들이 살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되었음을 아들들은 증명한다. 오십이 넘은 아들은 비록 외롭지만, 그 외로움을 여백으로 삼으며 음악과 게임, 그리고 자신만의 취미 생활로 나날을 이어간다. 또 다른 마흔 후반의 아들은 나이가 무색하게 클럽을 적극적으로 즐긴다. 한번의 실패를 겪은 또 다른 아들은 연애는 하고, 아이는 갖더라도 결혼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워야 '정상'인 세상과 다른 세상을 이미 아들들은 오래전부터 살아왔고, 프로그램이 그리려고 하듯, 이 철없는 아들들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어머니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왔던 것일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은 '육아일기'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의 관점에서 아들들을 예단하려 시도하지만, 오히려 그 결과로 회를 거듭할 수록 드러나는 것은 이미 자신만의 삶의 구조가 탄탄해진, '가족' 밖의 아들들이다. 문자를 자주 하고, 수시로 아들의 집에 쳐들어가 보지만, 하지만 이미 아들들은 어머니의 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족'의 울타리에서 한참을 벗어나있다. 프로그램은 '가족'의 언어로 이야기하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들들의 언어는 다른 세상의 언어다. 프로그램은 '육아'를 통한 '연대'와 '관계'를 끊임없이 모색하지만, 그 속에서 보여지는 것은 서로 다른 세대의 가치관과, 그 불협화음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들들이 어머니의 입장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여전히 아들들은 어머니의 메시지에 바로 답을 하는 순종적 아들이다. 하지만 아들의 달디 단 대답과 달리, 아들들의 삶이 말한다. 이미 우리는 어머니와 다른 세대를 산다고. 그러나 아들의 외국인과의 결혼조차도 양보할 수 없는 어머니, 여전히 양갓집 규수와의 반듯한 결혼 생활을 꿈꾸는 어머니와 아들의 공감은 평행선이다. 그리고 이는 프로그램 속 모자의 평행선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 어머니 세대와 아들 세대의 평행선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6. 9. 3. 0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