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지만 금비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애완동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키우는 건 귀여워서 키운다치지만, 만약에 아프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그래서 아플까봐, 먼저 죽을까봐 키우지 못한다도 지레 방어막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애완동물과 사람을 견주는 건 그렇지만, 이런 질문의 근저에 깔린 의문은 바로 '생명에의 책임'이다. 그 답을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담백하게 말한다. '가족'이라고. 물론 그 책임이 버거워 한 해 버려지는 수많은 애완동물들이 있다.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버겁다고 학대하고, 아프다고 외면하는 인간과 인간들의 관계도 있다. 아니다. 요즘은 한층 간결하다. 산전 검사를 통해 상당수의 장애아들이 중절이란 과정을 통해 제거된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니, 피를 나눈 가족 운운이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빛 좋은 개살구'인가를 증명하는 셈이다.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고, 한 집에 산다고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집에 살면서 기꺼이 그 어떤 생명을 '책임'지려 한다면, 그게 바로 진짜 '어른됨'의 시작이 아닐까? 그리고 8회를 경과한 <오마이 금비>는 바로 이 '어른됨'의 과정을 다룬다.




-니만피크 병에 걸린 금비(허정은 분), 죽었다는 엄마, 유일한 보호자였던 이모라는 사람조차 병에 걸린 금비를 감당하지 못한 채 '아빠'라는 사람의 주소만을 쥐어준 채 떠났다. 그리고 만난 아빠라는 사람 모휘철(오지호 분)

-그렇게 금비와 휘철은 휘철의 법정에서 만났다. 거추장스러워 어떻게 해서든 떼어버리려 했더 ㄴ껌딱지같던 아이, 하지만 휘철은 금비를 만나고, 그리고 강희(박진희 분)를 만나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강희 말대로 가끔은 빛이 나는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피 한 방울 나누지 않는 가족
이렇게 어른같은 아이 금비와, 아이같은 어른 휘철이 만나서 벌이는 눈물겨운 가족 만들기가 <오마이 금비>의 주된 내용이다. 껌딱지떼듯 금비를 떼어버리려 했던 휘철은 금비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고, 이제 아픈 금비를 위해 사기 대신 다리를 다쳐가며 일을 해서 약값을 번다. 한 세상 대~충 한 몫이나 잡아보려 했던 그가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살아보려 애쓴다. 

왜? 금비가 딸이라서? 8회 드디어 나타난 생모 유주영(오윤아 분), 휘철을 평생의 원수로 여긴 차치수(이지훈 분)으로 인해 금비의 보험 신탁금을 알게 된 주영은 휘철을 찾아가 딸을 내놓으라 요구한다. 휘철이 간절히 자신과 금비를 놔둘 것을 요구하자 돈때문이라 생각한 주영은 휘철과 금비의 유전자 검사서를 들이밀며 다그친다. 어라, 그런데 휘철이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금비에게 시간이 없다며 자신과 금비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다. 

<오마이 금비>는 어른스런 딸내미로 인해 철이 들어 가는 아빠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이 드라마의 역설적 반전은 그 아빠가 그 딸내미의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8회 엄마인 주영이 의기양양하게 유전자 감식 결과를 들이민 것과 달리, 아빠인 휘철에게 이미 금비가 친딸인가 아닌가는 문제가 아니다. 처음 금비를 떼어놓으려고 유전자 감식 의뢰를 했던 휘철은 금비가 마음에 들어온 순간, 자신 앞으로 배달된 그 결과를 태워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순간 휘철은 이미 금비가 자신의 친딸이든 아니든 자신 앞에 나타난 이 껌딱지를, 잔소리많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으로 자신에게 징글징글하게 잔소리를 해대는 이 꼬마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니까. 



어디 휘철뿐인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사기꾼 부녀 휘철과 금비를 거둔 강희는 한 술 더 뜬다. 뻔히 사기꾼인 듯한 휘철을 그가 가끔 빛날 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금비가 어린 시절 자신때문에(?) 죽은 동생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거둔다. 금비의 '언니'가 되었지만 강희는 사실 길바닥에 나앉은 이 부녀의 실질적인 보호자다. 

자신의 자식도 버리는 세상에, 아니 당장 자신의 친딸임을 알고도 주저하더니, 변호사가 유산이 있다고 하자 다짜고짜 찾아가 딸을 내놓으라며 차부터 보고 다니는 주영과 달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세 사람은 세상 그 어느 가족보다 진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친엄마 주영을 상대로, 아픈 금비를 보살피기 위해 밤일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집을 담보로 돈까지 꾸려하며. 

상처를 마주보기, 어른되기 
그렇다면 이 말도 안되는 금비로 인해 급조된 가족애의 반대 급부는 무엇일까? 이 석연찮은 가족애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오마이 금비>가 준비한 것은 바로 휘철과 강희의 어른되기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8회 후반부 '진실 게임'에서 드러난다. 휘철과 금비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모처럼 사람사는 집 같다고 했던 강희, 진실 게임에서 비로소 그토록 쉽사리 입을 열수 없었던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말한다. 

어린 동생이 귀찮아서 놀아주지 않았던 강희, 혼자 놀러 나갔던 동생은 후진하던 차에 치어 세상을 뜨고, 그 사건을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강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망도 하지 않았고, 괜찮다고도 하지 않았고. 강희는 말한다. 아마도 강희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 같다고.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했던 어머니와 아버지 덕에 강희는 어린 나이부터 동생의 죽음을 내내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집의 미술품을 탐내던 오빠가 그걸 넘겨주자 그때서야 니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너도 어렸을 뿐이라고 말할 때까지. 아니 오빠가 말해서가 아니다. 동생이 죽은 그 순간에 머물러 있던 강희는 휘철과 금비 부녀를 돌보며 '비로소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들여다 보며 이제야 자신의 아픔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어른이 된 것이다.



휘철도 마찬가지다. 그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잔소리해주는 어른없는 아이처럼 막 살았던 휘철도 금비를 만나, 금비의 보호자가 되면서 이제야 쉽사리 입밖에 꺼낼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진실 게임 속 휘철과 강희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그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 속에 감정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아픔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는 '객관화'의 과정이자, '마주보기'이다. 그렇게 마주보고 끄집어 내자 아픔은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견딜만한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딱지가 떨어진 오래된 흉터일 뿐이다. 흉터는 조금 보기 흉하지만, 이젠 아픈건 아니니까. 

<오마이 금비>는 이렇게 어른됨을 정의내린다. 몸이 크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어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피를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니다. 어른은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야 하고, 타인의 아픔조차 감쌀 아량을 가져야 한다 말한다. 그리고 가족은 아프든 아프지 않든 서로를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과 아이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피를 나누는 따위의 혈연주의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드라마는 도발적으로 선언한다. 

by meditator 2016. 12. 9. 15:23

깃올린 바바리, 그것도 80년대 유행하던 목깃의 컬러가 다른 색으로 된 나그랑 스타일의 올드 패션, 그걸 입고 김사부(한석규 분)가 휘적휘적 걸어가면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한 선율의 전자 기타음, 그리고 등장하는 빌리 조엘의 목소리, 바로 <낭만 닥터>의 ost 'the stranger'가 드라마와 어울려지는 순간이다. 


Well we all have a face That we hide away forever

글쎄요 우리 모두는 영원히 숨기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And we take them out and Show ourselves

그리고 우리는 그 얼굴을 내밀고 우리 자신을 보여주죠

When everyone has gone

Some are satin some are steel

어떤 얼굴은 악마이고 어떤 얼굴은 철판이며

Some are silk and some are leather

어떤 얼굴은 비단이고 어떤 얼굴은 가죽이에요

They're the faces of the stranger

그것들은 낯선 사람들의 얼굴이에요

But we love to try them on

하지만 우리는 그런 얼굴을 하기 좋아하죠





드라마는 이제는 의학계에서 추방된 부용주, 그리고 이젠 돌담 병원 김사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김사부는 빌리 조엘의 노래 제목처럼 이방인이요,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사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이사장을 모시고 온 강동주(유연석 분)의 조인트를 까며 그를 돌려보내고, 위기의 윤서정(서현진 분)을 대신하여 자신의 희생을 자청하는가 싶더니 사진 한 장으로 일갈을 하며 서정을 방에서 내모는 김사부의 진짜 얼굴, 심지어 그를 몰아내려는 도윤환(최진호 분) 등은 그를 사이코패스라고 까지 모는 상황에서 그의 진심은 더더욱 모호해지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10회를 마친 <낭만 닥터>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의 돌담 병원 속칭 '사부'처럼, 회를 거듭할 수록 부용주의 진짜 모습이 '사부'라 믿고 싶어진다. 아니 믿어지게 된다. 왜?

the stranger 김사부 
그건 그의 앞뒤 모를 얼굴이 아니라, 상황, 상황, 아니 위기의 상황에서 그가 선택하는 '선의'의 본질에 대한 믿음이 깊어가기 때문이다. 
본원의 모략에 의해 돌담 병원에 들이닥친 감사팀은 결국 김사부의 치료 행위를 막는데, 강동주도, 도인범(양세종 분)도 없는 상황에서 김사부는 기꺼이 불법임을 감수하면서도 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박은탁(김민재 분)이 나서서 주먹질을 해보아도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6중 충돌 교통사고 환자까지 들이닥치는데. 

드라마틱하게도 드라마는 바로 그 위급 환자 가운데 병원 감사팀의 딸을 끼워 넣는다. 이 작위적인 상황, 감사팀은 당황스러워하지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해야하는 고지식한 감사팀장은 자신의 일을 포기할 수 없다 하고, 그런 그에게 김사부는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라고, 나는 나의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김사부의 선언, 자신의 일이란 오직 한 가지, '살린다', '환자를 살린다' 뿐이라고. 

이사장을 통한 편법적 선의 대신 김사부가 선택한 것은 원칙, 의사로서의 원칙이다. 그리고 미담처럼, 감사 직원의 딸을 수술을 통해 살려낸다. 당혹스러워 하며 원하는게 뭐냐고 묻는 감사 직원에게 김사부가 던지는 한 마디, '못나게 살지는 말자'고. 

다른 때와 달리 10회 엔딩 부분, 김사부의 진료실에서 윤서정은 그의 오래된 테잎 하나를 튼다. 거기서 울려퍼지는 건 신디 로퍼의 'true colors'

You with the sad eyes
슬픈 눈을 한 당신

don't be discouraged
용기를 잃지 마세요

oh I realize
전 알 수 있어요

It's hard to take couragein a world full of people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용기를 가지는 건 쉽지가 않죠

You can lose sight of it all
당신은 그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and the darkness inside you can make you feel so small
당신 안의 어둠이 당신을 작게 느껴지게 할수 있어요

But I see your true colors shining through 
하지만 나는 당신 안에서 빛나는 진짜 색깔을 볼 수가 있어요

I see your true colors and that's why I love you
나는 당신의 진정한 색깔을 보고, 그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에요

so don't be afraid to let them show your true colors
그러니 당신의 진정한 색깔을 다른 사람 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김사부의 'true colors'
때로는 위악적이고, 종종 모질고, 그래서 사이코패스라는 험담이 어색하지 않을 김사부이지만, 시청자들은 그의 의료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진짜 얼굴과 색깔에 매료된다. 그 진짜 얼굴은 10회 드러난 감사 직원과의 해프닝에서 보여지듯 못나지 않은 인간됨이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인간적'이라는 그 막연하지만, 이제는 마치 올드팝처럼 낯설어지는 선의. 마치 부용주가 걸친 오래된 바바리처럼 경쟁과 욕망이 점철된 세상에서 자꾸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인간적 선의, 그래서 '낭만'이란 접두어가 붙여지는 선의가 드라마 <낭만 닥터>의 주제 의식이다. 

하지만 그 김사부의 선의는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돌담 병원에 들어온 환자는 무조건 살린다는 '용기'있는 모토이지만, 이사장을 이용하려는 강동주의 얕은 수에 김사부는 말한다. 지금은 자신의 편인 듯 보이는 이사장은 그저 '돈주'일 뿐이라고.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경계가 없는 도윤환을 원장으로 앉힌 그의 본질을 혼돈하지 말라고. 그가 자신을 필요료 하는 건, 그저 자신의 수술뿐이라고. 

매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권력과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곁들인 나레이션과 부제를 곁들인 드라마는 소박한 인간적 주제 의식과 달리, 이 사회에 맴도는 어설픈 편먹기와 선의를 경계하며, 진짜 '인간주의'를 향해 성큼성큼 나간다. 

주중 드라마로 물론 강동주와 윤서정의 긴장넘치는 사랑이 곁들여 지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아님에도 일일 드라마의 고지를 넘긴 채 20%를 훌쩍 넘긴 이 드라마의 장점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와, 그것을 관통하는 휴머니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by meditator 2016. 12. 7. 15:19

시대 착오적인 컨셉으로 이어가던 <진짜 사나이>가 종영한 후 그 뒤를 이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첫 방송은 그래도 앞에 방영된 <복면 가왕> 덕분일까 6.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동시간대 <런닝맨>(6.2%)를 앞지른 수치상으로만 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성과이다. 하지만 과연 꼴찌가 아닌 시청률로 프로그램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또, 또, 또 돌아온 몰매 카메라
제목은 거창하게 '은밀하고 위대하'다 했지만, 실상 프로그램은 '돌아온 몰래 카메라'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몰래 카메라'라고 하면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바로 이경규라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전국민적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구가하게 했던 90년대의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실상 내용은 출연한 연예인을 속여 먹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 준비와 과정에서 보이는 '이경규'의 연출력이 뻔한 프로그램의 재미를 담보해 냈었다. 그러기에 이경규가 출연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나 <남자의 자격> 등 방송마다 양념처럼 '몰래 카메라'가 등장했었고, 2016년 설에는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시 또 '돌아온'이란 수식어를 달고 방영되기도 했다. 

누군가를 속여 넘기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그 과정이 중계된다면? 그러기에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는 마치 '성악설'에 기초하듯 뻔한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시청자를 '솔깃'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된다. 그래서일까? 설 특집으로 마련된 <몰카 배틀-왕좌의 게임>은 11%의 양호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젠 그뿐, 특집용을 넘어선 <마이 리틀 텔레비젼> 속 코너 속의 코너로 등장했던 데프콘이나 김완선의 몰래 카메라는 혹독한 반응으로 오죽하면 이경규가 자신이 준비한 몰래 카메라 대신 축구 중계를 하는 해프닝을 벌였을까.

하지만 그렇게 코너 속의 코너에서도 쉽지 않았던 몰래 카메라가 무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고정 코너로 등장했다. 그것도 그 주인공이라 할 이경규도 없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란 이름으로. 



새로 시작한 <은밀하게 위대하게>, 은밀하게 다가가 위대한 작전을 수행한다는 '타깃' & '의뢰인' 맞춤형 프로그램이라 내세웠지만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 프로그램이 '몰래 카메라'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 차린다. 하지만 거기에 이경규는 없었다. 굳이 이경규가 없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한 이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은 새 mc로 윤종신-존박-김희철-이수근-이국주 등의 집단 mc 체제와 설 특집에서 등장했던 '배틀' 방식을 꾀한다. 거기에 나름 몰래 카메라와의 차별성을 주기 위해 '의뢰인'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가 유행할 당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당당하게 이경규가 없는 몰래 카메라를 프로그램화 하듯 sbs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꾸러기 카메라' 등을 진행했지만 지금도 기억되는 건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아류의 우려를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다시금 반복한다. 그리고 역시 '아류'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은밀하지도 않고, 위대하지는 더더욱 않고 
실제 방송은 비틀즈를 좋아하는 이적 앞에 분장한 링고 스타가 등장하는 것과 타로 카드를 좋아하는 설현에게 그 패를 이용하여 갖가지 해프닝을 벌이는 두 가지 내용이 방영된다. 이 내용에 대한 평가에 앞서 과연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몰래 카메라가 인기를 구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도 회자되듯이 90년대 당대의 스타 최진실, 고현정에서 소설가 김흥신, 과학자 조경철에서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방송인 한선교, 이계진 등에 이르기까지 각계를 망라한 핫한 인물들이 몰래 카메라의 희생양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바로 이런 트랜디한 인물들의 뜻밖의 모습에 열광했고, 당한 당사자는 억울했지만 당대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몰래 카메라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유명도를 가늠해볼 척도가 되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프로그램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정규 프로그램화 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매주 그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프로그램의 트렌디함을 답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연 첫 회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그런 화제성을 몰고 왔는지에 대해서 아마도 그 답에 대한 고민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더 깊으리라 본다. 



또한 남을 속여먹는 것이 무조건 재밌다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첫 회 <은밀하게 위대하게>각 솔선수범해서 보여주고 말았다. 분장한 유명인이란 컨셉도, 타로 카드와 같은 운명론의 컨셉도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이경규가 몰래 카메라로 속여 넘기기 위해 연출했던 긴장감을 새로운 mc와 제작진은 전혀 자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재미 중 반은 누군가를 속인다는 그 야릇한 긴장감의 조성이고, 그 부분에서 이경규의 걸출한 능력이 있는 건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mc진은 누구랄 것도 그 면에서 아쉬움을 보인다. 

무엇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첫 방을 두고 재밌다 재미없다를 떠나, 일요일 밤 온가족이 둘러 앉아 볼 주말 예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시대 착오적인 군대 문화 속에 연예인을 끼워넣고 어거지를 부리던 <진짜 사나이> 대신 등장한 '속이기' 프로그램이라니. 제작진은 안이하게 '몰래 카메라'의 흥미에만 주목하고 90년대 이 프로그램이 웃기기에 혈안이 되어 교육 현장과 애국가 등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로 결국 종영을 하게 된 문제점은 짚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안그래도 전국민이 통치자와 그 이너 서클들이 감쪽같이 국민을 속여 넘긴 것에 분노하여 매 주말 마다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이 시점에 공중파 주말 황금 시간대를 저런 식의 성의도 없고, 아이디어는 더더욱 없는, 무엇보다 시대 착오적인 프로그램을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by meditator 2016. 12. 5. 11:28

드디어 신이 강림하셨다. tvn으로 간 김은숙 작가의 신작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렇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간 tvn금토 드라마의 고지였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방 시청률(6.7% 평균,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을 너끈히 넘겼고(6.9%), 2회만에 수도권 10%를 넘기며(10.0234%)를 넘기며 신기록을 갱신했다. 역시 명불허전 김은숙이라는 성공 신화를 이어나갔다. 




김은숙과 이응복의 절묘한 콜라보 
물론 <도깨비>가 첫 방영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데 있어 역시 김은숙이라고만 한다면 아쉬울 사람이 있다. 바로 첫 회 여성은 물론 남성 시청자들의 눈마저 사로잡을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환타지 사극으로서의 면모를 가감없이 선보인 이응복 연출이 그 주인공이다. 2013년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최고 시청률 25%를 넘겼지만 작품 초반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이응복 피디 연출의 <비밀>에 작품면에서나 시청률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김은숙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적과의 동침'. 다음 작품에서 방영 채널을 kbs2로 옮긴 김은숙 작가는 이응복 피디를 연출자로 합류시키며 <태양의 후예>라는 2016년 최대의 히트작을 빚어낸다. <태양의 후예>는 <상속자들>에서 김은숙 작가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스토리 텔링의 부실함을 김원석 작가의 든든한 원작으로 채우고, 거기에 그리스를 배경으로 이른바 '응복내'라 속칭 칭해지는 이응복 피디의 예술적 미쟝센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킨다. 덕분에 결국은 의사와 군인이 연애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리스의 풍광과 외국의 전장에서 피어나는 인류애라는 정서를 더한 <태양의 후예>는 그 평범한 이야기를 보편적 인간애의 고급함으로 전달한다. 

그렇듯 12월 2일 첫 선을 보인 <도깨비> 역시 김은숙이라는 이름보다는 이응복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올릴 오프닝을 선보인다. 어린 왕의 시샘으로 역적으로 몰려 죽음에 이른 장수의 서사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지만, 그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cg로 버무려져 환타지 사극으로 등장하는 순간, 신선하고도 웅장한 세계로 시청자를 흡인시켜 버린다. 

이 웅장한 환타지 사극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 예전 만화에서 등장했던 오래된 빗자루나, 그릇들이 변신한 깨비깨비 도깨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 옛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장수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신격화시켜 무속의 신으로 등극했던 최영 장군이나, 삼국지의 관우같은 '신'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억울함과 백성들의 숭배라는 역설적 조건을 '도깨비'의 필요 조건으로 등장시키고, 거기에 전장에서 수많은 피를 보았던 장수라는 존재론적인 한계를 몸에 칼을 꽂은 채 죽음을 향해 영생의 세계를 떠도는 원혼이라는 절묘한 운명론적인 장치로 더해 '도깨비 김신(공유 분)'라는 한국적 신을 완성시킨다. 오랫동안 도깨비라는 작품을 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 운명적 서사와 캐릭터에서 극 초반 단박에 시청자의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 그 영생의 저주를 풀 인물로서 그의 신부로 등장하는 '무명'이란 이름의 죽어야 했을 운명의 소녀 지은탁(김고은 분), 그녀의 슬픈 운명 역시 도깨비의 신부답게 시선을 잡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을 쫓을 저승 사자 (이동욱 분)와, 아직은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캐릭터만으로도 두드러진 써니(유인나 분), 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가는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도깨비>는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신선한 서사, 그 서사를 압도하는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2회에서 분명해졌듯이<도깨비>의 본질은 바로 슬픈 운명의 신인 도깨비 김신과 그 운명적 상대자 지은탁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군인에서 신까지, 구원자들
여기서 한번쯤 주목해야 할 것은 2016 올 한 해 시청률 고공행진을 갱신한 작품들이 주인공들의 면면이다. 앞서 언급한 최고 시청률 38.8%의 <태양의 후예> 속 남자 주인공은 전 국민에게 졸지에 '말입니다'란 어색한 심지어 이제는 군대에서조차 쓰지 않는 군대 용어를 습관으로 만든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기 분)이다. 그는 특전사 대위라는 사실상 군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직책이 무색하게 드라마 속에서 도대체 안되는 것이 없는, 심지어 총에 맞고도 다음 날 바로 실전에서 활약하는  능력자로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는 물론 대다수이 여성들을 매료시킨다.

유시진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최고 시청률 23.3%의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박보검 분)이다. 그 역시 여주인공을 위해서라면 세자의 신분으로 사신에게 칼을 겨눌 정도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와 졸지에 자웅을 겨루게 된 공중파 수목 드라마의 <푸른 바다의 전설>의 주인공은 셜록의 능력치에 최면술까지 구사하는 능력자 사기꾼이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 그의 진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2회 마지막 엔딩씬에서이다. 이모의 빛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당한 은탁은 간절히 김신을 원하고, 그에 응대하듯 납치 차량이 달리던 가로등이 하나씩 꺼져간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등장하는 검은 실루엣, 그 씬만으로 이 드라마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아마도 김신은 죽을 운명의 무명이었던 은탁이란 존재로 부여하듯 그녀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이렇게 고공 시청률 행진을 보이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능력자다. 2016년만이 아니다. 일찌기 전설을 썼던 <푸른 바다의 전설> 박지은 작가의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은 외계인, 그리고 그에 앞서 <구르미 그린 달빛>의 모태가 된 <해를 품은 달>은 조선의 가상 왕이었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면서 '로맨스'드라마들은 그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으로 향상되는 것과 더불어, 남자 주인공의 능력치도 업그레이드 되며,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사랑을 수행한다. 시청자들은 외계에서, 해외의 전장으로, 과거로, 그리고 이제 신계까지 넘나들며 그 능력으로 여성을 구원하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으로 행복해진다. 현실이 암울할 수록,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더욱 능력치를 갱신하며 이 드라마를 보는 이들을 위무한다. 과연 이 '블록버스터급 위로의 사랑'이 어디까지 펼쳐질 지, 신 그 이상의 사랑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물량과 스타로 대형화된 한국형 로코물의 진화 역시. 

by meditator 2016. 12. 4. 18:37

연일 공중파 주중 미니 시리즈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월화 드라마 쪽은 <낭만 닥터(sbs)>가 21.7%로 20%의 고지를 넘기며 기염을 토하고 있는 반면, 시청률 불패의 수애에게 3.5%를 안기는 <우리집에 사는 남자(kbs)>와 6.2%의 <불야성(mbc)>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목 드라마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허술한 스토리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전지현, 이민호 두 스타를 앞세운 <푸른 바다의 전설>이 18.9%로 20%의 고지를 노리고 있는 반면, <역도 요정 김복주(mbc)>와 <오 마이 금비(kbs)>는 각각 4.6%와 5.5%로 좀처럼 반등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대중적인 스토리, 의학 드라마와 로맨티 코미디, 그리고 스타라는 잘 짜여진 조합의 부익부의 점령으로,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잘 기획된 상품의 독점이라는 공중파의 주중 드라마 라인으로 퉁치기엔 아까운 작품들이 있다. <오 마이 금비>가 그중 한 작품이다. 

미니 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에 빛나는 
<오 마이 금비>는 kbs에서 주최한 경력 작가 대상 미니 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이다. 그 당사자인 전호성 작가를 도와 <장영실>의 이명희 작가가 합류한 드라마로, 3회부터는 전호성 작가의 단독 집필로 이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할 사람도 있겠다. 극본 공모 당선작이라는데, 겨우 '치매'와 '시한부'를 다룬다고? 그렇다. <오 마이 금비>는 그 명칭조차 생소한 니만피크 병에 걸린 열살 소녀 금비가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노인 치매도 아니고 아동 치매를 등장시킨 이 드라마는 벌써 그 설정만 봐도, '누선'을 작정하고 자극하겠다는 '신파' 드라마인 듯하다. 그런 뻔한 드라마가 당선작이라니?

이제 6회를 마친 <오 마이 금비>, 여전히 시청률은 6%의 고지조차 좀처럼 넘지 못한 채 5%의 영역에서 머물고 있지만, 왜 이 드라마가 극본 공모 당선작이었는지는 충분히 증명해 내고 있는 중이다. 

니만피크 병에 걸렸다는 열 살 소녀 금비(허정은 분), 하지만 아픈 소녀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기억을 잃을까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는 아이이지만, 일찌기 어른답지 않은 보호자들을 만난 소녀는 웃자라 어른 뺨치게 어른스럽다. 그 '어른스럽다'는 방식이 되바라지거나, 당돌하게 말을 어른 뺨치게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여전히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 돌보기를, 아니 심지어 자신을 돌보고 주변을 돌보기조차 '성숙'하게 해내어 '누선'을 자극하는 아이 어른이다.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는 니만피크 병 주치의는 보호자로 추정되는 모휘철(오지호 분)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사기도 제대로 못치는 휘철의 사정을 아는 금비는 보육원 행을 스스로 결정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올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스스로 담담하게 처리해 나가고자 한다. 이미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 조들호의 딸로 나와 간절한 부녀애를 재연했던 똘망한 허정은의 돋보이는 연기로 대번에 금비는 안쓰럽지만 대견한 아이의 사연으로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저 처연한 아이 어른의 사연만으로 드라마가 채워지는 건 아니다. 커다란 한옥에서 값나는 고미술품에 둘러싸여 있지만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로 웃음을 잃은 고강희(박진희 분)와 모휘철의 수목과학원 연구사와 사기꾼이 조합이라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도, '가끔은 빛날 때가 있다'는 그 대사 한 마디를 '상실'이란 공통 분모로 설득시켜낸다. 

아이같은 어른과 어른 아이가 빚어내는 
드라마 속 어른들은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어른'들이지만, 그들은 어른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을 짖누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그 시절을 넘어 성장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는 아이 어른이다. 그런 아이 어른들 앞에 불현듯 나타난 어른 아이 금비를 통해, 금비를 어쩌지 못하다가 아이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이제 '아빠'라 부르라며 '어른'이 됨을 수용하는 과정을 드라마는 차분하게 그려간다. 



'치매'라는 불가항력의 병을 다루는 만큼, 매회 드라마는 누선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며 흘리는 눈물은 그 예전 '엄마없는 하늘 아래' 식의 애 어른을 보며 흘리는 '신파'의 눈물과는 다르다. '상처'를 지켜봐주는 눈물, 그리고 그 상처를 스스로 담담하게 수용하는데서 오는 안쓰러움의 눈물이 한 해를 마감하는 몇 안되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즉 상처를 드러내어 토해내는 '한풀이'가 아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데서 오는 교감과 수용의 '힐링'이 뜻밖에도 아동 치매를 다룬 <오 마이 금비>의 힐링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파'조의 드라마가 '힐링' 드라마로 거듭난 것에는 여주인공 금비 역의 허정은을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김영조 피디의 감성 가득한 연출이 한 몫을 한다. 뜻밖에도 <징비록>, <장영실> 등의 사극을 주로 연출했던 김영조 피디는 <오 마이 금비>의 전작 <공항 가는 길>이 드라마의 주제를 돋보이는 연출로 드라마 속 등장했던 도시와 제주의 감성을 한껏 살려냈듯이, 다시 한번 '신파'을 '감성'으로 전환하는 연출의 묘를 재연해 낸다. 덕분에 늦가을, 그리고 초겨울의 정취와 함께 금비와 휘철의 부녀, 그리고 강희의 상처는 그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비록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로 빛을 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이 저물지 않을 은근한 매력을 빛낸다. 

by meditator 2016. 12. 2. 16:29

광장이 뜨겁다. 한 겨울의 추위도 비바람도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를 식히지 못한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지만 꺼지기는 커녕, 갈수록 그 목소리는 커지고 열기는 뜨거워져만 간다. '하야'로 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하지만 과연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한 사람이 청와대에서 떠날 것만을 바래서 모여들었을까? 유시민 작가가 작금의 사태가 그 한 사람과 그 한 사람을 등에 업은 배후 세력의 농단만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형광등이 백 개'운운했던 방조와 부역의 결과라 정의내렸듯이, 그 한 사람과 그 배후 세력으로 대변되는, 그리고 그들에게 부역하고 방조했던 무리들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때문이라는 것이 옳바른 해석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울분과 분노의 대상이 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이에 sbs의 2016 창사 특집 대기획이 답한다. 바로 수저 계급주의라고. 




<최후의 제국(2012)>, <최후의 권력(2013)>, <바람의 학교(2015)> 등 '창사 특집'을 통해 신선한 다큐의 실험적 시도를 거듭했던 sbs가 2016년에 들고 돌아온 것은 <수저와 사다리>3부작이다. 

권력과 제국을 탐험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교육을 실험하기 위해 제주도에 학교를 지었던 그간의 시도에 비해 개그맨 김기리를 데리로 땅을 보러다니기 시작한 그 시작은 전작에 비해 소소해 보인다. 

수저 계급주의, 걷어차진 사다리를 논하다. 
이른바 처음으로 시도된다는 리얼 땅 버라이어티 전국에서 가장 싼 땅을 사서 땅부자가 되겠다는 제작진의 초대에 응한 김기리는 산넘고 물건너 자신의 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제일 싼 땅을 향한다. 왜 이런 우스꽝스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초등학생 장래 희망으로 떠오른 '건물주'라는 직업(?)때문이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차지한 아시아에서 가장 소득이 불평등한 나라 대한민국, 95년 이래 가장 급격하게 불평등해진 나라, 그 이유 중 하나가 불평등한 '소유'로 부터 시작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대한민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그 중 72명은 손바닥만한 땅조차 없다. 땅을 가진 사람은 단 28명, 그중에서도 단 한 명에 해당하는 토지왕이 대한민국 땅의 55%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땅은 증여와 상속을 통해 미성년을 불문하고 대물림되는 등 '세습 자본주의'를 굳힌다. 바로 이렇게 '사다리'가 걷어차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리얼 땅 버라이어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어디 소유뿐일까? 일을 해서 버는 돈보다, 돈이 돈을 버는 난라 대한민국이 그 불평등을 더한다. 그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은 '주인 의식만 있다면'을 외치는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업체 사장님의 언더커버 보스 리얼리티이다. '닭'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사장님이 시급 백만 원을 받는 동안 아르바이트생들은 시급 7200원을 받고 있다. 그 중요한 일을 한다던 사장님이 하루 일하고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의 강도로. 그를 통해 다큐는 묻는다. 과연 7200원과 백만원의 차이를. 또한 프랜차이즈 대표 사장님이 해마다 늘어나는 사업체에 미소지을 때, imf로 회사를 짤리고 치킨 집을 개업한 또 다른 사장님은 배달인원을 둘 형편이 돼지 못해 홀로 닭튀기고 배달하느라 한겨울 동상에 화상에 상해투성이다. 과연 '주인 의식'만으로 이 다른 삶의 조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이렇게 1부에서 소유에의 불평등, 2부에서 임금 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을 짚어보던 다큐는 3부 <모두의 수저>를 통해  비로소 판을 벌였던 속내들 드러낸다. 정치인, 요트회사 사장, 변호사, 철거민, 싱어송라이터, 강사, 학생 등 각계 각층의 사람 8명이 모여 각자 뽑은 수저 계급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 게임으로 3부가 열린다. 



불공정 게임으로 시도해본 '기본 소득' 실험 
1000만원으로 10개의 땅, 500만원으로 5개의 땅, 100만원으로 1개의 땅으로 시작된 게임, 주사위를 굴려 나온 지역을 지날 때마다 낸 땅의 주인이 거두어 들인 돈은 전반전이 끝나자, 빈익빈 부익부의 우리 사회 현실과 판박이가 된다. 1, 2부에서 다큐로 설명되었던 '불공정'한 사회가 게임을 통해 그 운용 원리가 드러나고 참여자들을 통해 적나라한 반응이 보여진다. 100만원이라는 돈으로 의욕적으로 살아보려는 흙수저들, 하지만 주사위를 던지면 던질 수록 빚이 늘어나것과 비례해 게임에의 의지도 상실해 간다. '노력'과 '주인 의식'만으로 해결될 길이 없는 구조를 불공정 게임은 단번에 설명해 내고만다. 

이어진 후반전 게임의 룰이 바뀐다. 건축비의 10%를 무조건 세금으로 걷고, 어느 정도 모여지면 그걸 골고루 나누어 주는 '기본 소득' 실험이 게임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게임의 결과,  결국 가진 자의 것을 뺏어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포퓰리즘' 운운하던 이준석의 반론과 달리, 게임이 끝난 후 가진 자 금수저의 재산은 줄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은수저의 재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흙수저는 달라졌다. 저마다 주렁주렁 목에 걸었던 빚대신, 처음 받은 100만원을 유지하건, 그보다 조금 늘었건, 빚이 조금 남았건, 게임 자체를 자포자기하던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누구 한 사람, 혹은 몇 명만 부자가 되는 대신, 모두가 조금씩 더 행복해 진 것이다. 

행복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처음 건축비에서 10%를 거두어서 당혹스러워했던 참가자들은 세금이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늘어났지만, 그것이 게임의 룰이 되자,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금을 내고,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기본 소득'의 운용 원리와 그 필요성에 대해 저마다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시청자도 더불어. 

스위스에서 '기본 소득'에 대한 국민 투표를 한다고 하자, '붐'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한동안 '기본 소득'에 대해 백가쟁명식의 토론이 벌어졌다. 그리고 냄비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sbs 창사 특집 대기획은 그 화제속으로 사라진 기본 소득을 우리 사회에 걷어차버려진 사다리를 복구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2005년 종합 부동산세는 강남에 사는 35.9%에게서 평균 2%의 세금을 거두는 부의 재분배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2008년 mb 정부의 셀프 절세를 통해 부동산 정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이 정부는 담배 한 갑의 세금을 강남 9억원짜리 집에 매긴 세금과 동일하게 매겼다. 

기본 소득 과연 스위스의 부결로 한 여름밤의 꿈으로 사라진 것인가? 핀란드는 내년부터 매달 70만원을 전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기본 소득 실험을 할 예정이다. 이미 하고 있는 곳도 있다.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알래스카는 해마다 석유를 팔아 번 돈 중 일부를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배당금의 형식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 나미비아 역시 기본 소득 제공으로 실업률과 빈곤율을 0%로 만들었다. 인도에서는 아동들이 정상 체중을 회복했고, 진학률이 높아졌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이재명 시장의 성남시가 시행하고 있는 청년 수당과 이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인 수당 등이 모두 기본 소득의 일환이다. 언제나 그렇듯 복지에는 꼬릿말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실제 핀란드 등에서는 풍족한 실업 수당으로 인해 1,2년씩 장기 실업으로 인한 높은 실업률이 골치거리다. 맞춤형 복지냐, 기본 소득이냐의 선택과 비용의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결국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들 배를 불리워 준다는 호혜성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 불공평이 그리도 문제일까? 3부에 걸친 다큐는 매회 '미친 짓'같은 시도를 보여준다. 시애틀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 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댄 프라이스 사장은 스스로 110만 달러였던 자신의 연봉을 7만 달러로 낮추고, 직원들은 오히려 높였다. 그 결과 놀아웠다. 매출은 두 배로 늘었고, 이직율은 역대 최저가 되었으며, 만 통의 우수한 인력의 입사 지원서가 쇄도했다. 뿐만 아니라 연봉이 늘자 직원들은 너도 나도 아이를 가져 '베이비 붐'이 일어났다. 연봉만이 아니다. 디즈니의 손녀인 아비가일 디즈니는 뉴욕 상위 1%의 부호이다. 그녀는 뉴욕의 백만 장자 40여 명과 함께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달라는 청원을 넣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아비가일 디즈니는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 답한다. 

이 이상적인 행위들, 하지만 3부 불공정 게임의 참가자의 말을 주목할 만 하다. 변호사인 참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도 한때 이상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기본 소득도 마찬가지다. 성인 남녀 1000 명을 대상으로 기본 소득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찬성과 반대의 비율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 소득을 위한 세금을 더 걷는 것에 대해 반대의 인원은 59.2%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물론 거기엔 현실에서 보여지는바의 '부조리'에 대한 불신도 한 몫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16 창사 대기획>이 벌인 불공정 게임의 의의가 짚어진다. 당위론으로서의 기본 소득이 아닌, 함께 실행해보고, 짚어보는 실험으로서의 기본 소득, 게임 전과 후 계급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세금에 대한 거부감 대신 돌아오는 소득에 대한 환희가 빛났다. 당위가 실험을 통해 가능성으로 변화되는 시간, 바로 2016 창사 대기획의 소득이다. 

by meditator 2016. 11. 28. 17:40

11월 27일로 <2016 kbs드라마 스페셜> 10부작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2016에 유일하게 만날 수 있었던 단막극 10편, 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2008년 3월 종영으로 사라졌던 kbs의 단막극은 2010년 5월 <kbs드라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노희경 작가의 <빨간 사탕>을 가지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토요일 밤의 11시 황금 시간대는 다음 해 일요일 밤 11시로 밀렸고, 2014년 잠시 주중 수요일 밤 11시의 고지를 확보하는가 싶더니, 결국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 모를, 즉 단막극을 보라는 건지, 출근을 위해 일찍 자라는 건지 모를 시간대 11시 55분이 방영시간이 되었다. 고군분투 끝에 금요일까지 노오력(?)해보던 <2015드라마 스페셜>은 같은 해 10월 방영분은 토요일로, 결국 2016시즌이 되면 일요일 밤으로 복귀(?)하고 만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인정 투쟁의 시간 
인정투쟁과도 같은 시간대의 전쟁만이 아니다. 회차의 전쟁으로 보자면 지난 몇 년간의 드라마 스페셜의 역사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생존사와도 같다. 그래도 처음 <드라마 스페셜>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매주 방영이었다. 그러나 2010년 24부작, 2011년 23부작에서 2014년 27부작까지 매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각종 특집 등에 밀려 스무 편 남짓을 방영하고 만다. 하지만 되돌아 보면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손현주 배우 등 배우들의 단막극 회생을 위한 출연료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드라마 스페셜>에 돌아온 것은 명목상이나마 '매주' 방영 대신 '시즌제'라는 이름의 회차 감소였다. 2015년 연작제 시도까지 합쳐서 총 15부작을 방영했던 <드라마 스페셜>은 2016년 9월에 이르러서야 단 10편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2017년에도 <드라마 스페셜>이 생존할 수 있을지? 결국 일요일 밤이란 외곽 지대에서 숙명이 된 낮은 시청률, 당연한 낮은 제작비로 다음 해엔 몇 편의 단막극이 만들어 질 수 있을지? 마치 생존의 의지를 가졌지만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 시한부 환자를 보는 안타까운 심정이 바로 <드라마 스페셜> 애청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애잔한 생존사에 비해 작품의 내용으로 들어서면 입장이 달라진다. 9월 25일 드라마 극본 가작 <빨간 선생님>으로 부터 시작하여 우수작 11월 27일 <피노키오의 코>로 마무리된 10편의 단막극들은 드라마 애호가들에게는 갖가지 장르가 구비된 풍성한 밥상이었다. 또 한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그 시절 선생님과 학생들간의 해프닝으로 시작된 <빨간 선생님>은 뜻밖에도 시국사범 아버지 때문에 불순분자로 몰리게 된 제자를 위해 희생하는 선생님을 통해 비극의 시대를 돌아본다. 그렇게 뜻밖의 수작으로 시작된 <드라마 스페셜>은 왕따 문제를 코믹하게 풀어낸 <전설의 셔틀>, 미혼부 문제를 휴머니틱하게 풀어낸 <한 여름밤의 꿈>, 사이보그란 첨단 과학적 소재를 통해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 <즐거운 나의 집>, 사랑과 용서의 문제를 다룬 <평양까지 이만원>, 발칙하고 대담한 성장 스토리 <동정없는 세상>, 한 편의 단편 소설과도 같은 <국시집 여자>, 웃음의 해학을 통해 고된 삶을 논한 <웃음 실격>, 연극과 드라마의 콜라보라는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 <아득히 먼 춤>, 그리고 15년 동안 묻혀진 진실을 통해 살펴본 가족애 <피노키오의 코>까지 중첩되지 않은 주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을 선보였다. 



10가지 진수성찬의 희열 
극본 공모 우수작인 <피노키오의 코>가 뜻밖의 반전을 선보였지만 '가족'이라는 주제 의식에 머물러 있는 반면, 상투적일 수 있는 스승의 은혜를 시국에 얹어 신선한 작품이 된 <빨간 선생님>처럼 수상작의 우열과 작품의 우열은 또 다른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작품으로서의 단막극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전설의 셔틀>이나 <동정없는 세상>이 그간 <드라마 스페셜>에서 줄곧 그려왔던 성장 서사와 궤를 함께 하고, <한 여름 밤의 꿈>이 역시나 <드라마 스페셜>만의 '따로 또 같이'의 가족애적 전통을 따른다면, 동시대 청년의 삶을 다룬 <아득히 먼 춤>이 시의적이었지만 실험적 터치로 신선했다면, <평양까지 이만원>은 청년의 삶이지만 본원적 질문에 가까웠다. 빠질 수 없는 '사랑'이란 주제를 다룬 작품이 <즐거운 나의 집>과 <국시집 여자>로 두 편이었지만 두 편 모두 '사랑'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 내며 '사랑' 그 이상의 영역으로 드라마를 확장시킨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10편의 드라마를 통털어 보면 장르적으로 겹치는 부분도 없고, 주제 의식 면에서도 단막극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구현했다. 하지만 1년에 단 10편이라는 제한된 편수에서 오는 다룰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덕분에 <간서치 열전(2014)>, <붉은 달(2015)>와 같은 신선한 사극을 볼 수 없어 아쉬웠고, <원혼(2014)>, <라이브 쇼크(2015)> 등의 공포물의 흔적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가만히 있으라(2015)> 와 같은 본격 사회물이 적었던 것이 아쉽다. 다양한 진수성찬을 즐긴 거 같은데 되돌아 보니 <드라마 스페셜>만의 특색있는 찬이 빠진 거 같은 서운함이랄까?



그러나 서운함은 서운함일뿐, 늘 시청률에 애달복달하여 뻔한 이야기만 돌려막는 듯한 주중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스페셜>은 마치 상업 소설에 지친 독자가 모처럼 집어든 순수 문예 창작물의 희열을 전해준다. 아마도 2015년 11월 이후 거의 1년만에 만나는 것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 '순수한' 행복의 기쁨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고 싶다. 공영 방송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그 시간을. 
by meditator 2016. 11. 28. 11:29

드디어 2016 드라마 스페셜도 그 '대미'를 향해 가고 있다. 벌써 9번 째 작품, 그 어느 때보다도 장르와 형식면에서 풍성했던 2016 드라마 스페셜, 아홉 번째 작품 <아득힌 먼춤>이야말로 드라마 스페셜이기에 가능했던, 드라마스페셜의 존재의 의의를 가장 드러낸 작품이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을 채운 건 마치 현대 무용처럼 난해한 몸짓으로 가득한 연극의 한 장면이다. 그 뜻모를 몸짓이 끝나고 나면, 한 예술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신파랑, 스물 여덟살, 젊은 연극 연출가,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안그래도 순수 연극이 동토인 이 시대에 sf물인 <로봇의 죽음>이다. 당연히 무대에 올리기도 전에 단원들은 '망했다'를 대놓고 입에 올리고, 아니 그 이전에 연극을 공연하는 단원들도 결말을 이해할 수 없는, 아니 그보다 더 심했던 것은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연출이었지만 술에 취해있거나, 잠에 취해있었던 신파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대한 반목과 불신이 더 컸었던 연극, 그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신파랑은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버렸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제 죽은 젊은 예술가를 추모하는 동문 후배들과 졸업 작품 커트라인을 통과해야 하는 작가이자 후배 최현(이상희 분)에 의해 다시 무대에 올려질 작품<로봇의 죽음>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에 따라 첫 공연 당시 자신이 납득할 수 없었던 <로봇의 죽음> 결말을 이제 자신의 졸업 공연이란 명목으로 다시 뜯어 고치기 위해 고민하며, 부모님의 부탁을 받고 본의 아니게 파랑의 남은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 현의 시선과, 파랑이 무대에 올렸던 <로봇의 죽음>이 '극중 극'으로 전개되며 드라마를 끌어간다. 

연극의 배경은 태양이 과열되기 시작한 먼 미래, 그 태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인류는 절멸하고 만다. 살아남은 건(?) 태양의 에너지를 자원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 하지만 인류를 절멸시켰던 태양의 열기도 그 생명을 다해가고, 안드로이드들 역시 인류와 마찬가지로 '멸종'의 길에 접어든다. 이에 류적 사망선고를 받은 안드로이드들 중 역사 기록소 소장, 행정과장, 테이터 팀장은 사멸한 인류를 통해 자신들의 방전에 대처하고자 한다. 이들은 금지된 구역에 남겨진 인류의 테이터베이스를 탐험하고, 거기서 만난 인류의 흔적에게 자신의 얼마남지 않은 에너지를 충전하여 절멸에 대응한 답을 얻고자 한다. 

안드로이드들이 인류에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신들과 달리 '유한성'의 삶을 살았던 인류가 그 유한성의 불안함을 어떻게 벗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이미 죽음이 예견되어 있는 삶, 그럼에도 불안과 공포로만 점철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안드로이들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어주며 답을 구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그들의 절박한 질문에 인류가 남긴 지혜는 '춤을 추라'였다. 



이 황당한 연극의 결말, 연출가 파랑은 이를 고집했지만, 작가 현, 그리고 단원들, 후배들 중 그 누구도 이 결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추모 공연이자, 자신의 졸업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이 연극의 결말을 현은 당연히 자신의 이해할 수 있는 결말로 바꾸려 한다. 

누구나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리던 장례식 과정에서 너무도 담담했던, 아니 심지어 유서 한 장 남겨놓지 않고 죽음 파랑에 화가 났던 현은 누군가 먹으라고 줬던 개 염소를 키우며 살았던 파랑의 집을 찾으며 파랑과의 지난 일을 다시 반추한다. 

후배 현을 찾아와 함께 연극을 하자던 파랑, 하지만 그는 연극을 준비하는 내내 불성실했다. 그런 파랑을 불신했던 현과 동료들. 철거 현장이었던 조연출 슬기의 집에 찾아갔다가 파랑이 철거단원으로 일한 전력이 드러나자 그 갈등은 극에 달한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냐고 다그치는 단원들에게 꼬박꼬박 쥐어준 월급이, 브로슈어와 밥값을 위해 돈을 많이 주는 일이 필요했었다고 소리친다. 그런 그에게 슬기는 철거로 고생하는 엄마에게 조만간 월급이 나올꺼라 위로했다며 울부짖고, 철거한 돈으로 받은 월급으로 철거한 집을 고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파랑의 죽음 이후 슬기의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연극 내내 선문답같은 질문을 던진 파랑에게 현은 냉담하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 답한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 차기작을 하자고 찾아온 그에게 야멸차게 다시 한번 도장을 찍듯 답한다. 그의 옷에 낀 머리카락을 라이터불로 지져서 끊어내듯이. 

연극 속 안드로이드들은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에너지를 나누어 얻은 '춤을 추라'는 답에 당혹스러워했지만 결국 손과 손을 맞대어 춤을 추며 방전된다. 마치 그 모습은 선사 시대 인류들이 남긴 벽화를 연상케 한다. '죽음'으로 그들은 '유한함'을 넘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은 영생을 얻었듯이 말이다. 먼 미래의 안드로이드들을 통해 연극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서의 본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철학적 명제에 도달한다. 



하지만 파랑이 공연했던 연극과 달리, 현실의 젊은 예술인 파랑은 좌절한다. 그가 올리고 싶은 공연을 위해, 단원들의 열정 페이 대신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정당한 열정을 위해 철거반원 일까지 감내해야 했지만 동료는 물론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연극을 포기할 수 없었고, 돌아온 건 함께 할 수 없는 불통, 결국 그는 홀로 쓰러져 간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쓰러지는 소리를 그 누군가 들어주길 원했던 나무처럼. 

'닿을 일 없는 각자의 궤도를 도는 사람들, 온몸으로 판독 불가의 춤을 춘다. 당신에게 닿기를 원하며'

<아득히 먼춤>은 극중 극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인간을 정의내린다. 하지만, 그 정의가 2016년으로 돌아오면 '현실'이라는 거세된 태양아래 젊은 예술가는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의 순수한 예술혼은 이해받을 수 없으며, 세상은 순수를 품을 여력이 없다. 그럼에도 예술을 포기할 수 없는 예술가는 자신의 증명을 죽음으로 밖에 해낼 수 없다. 비극적 2016년판 젊은 예술가의 초상,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파랑의 삶에 끼어든 현은 동물 보호소로 갈 운명의 파랑의 개를 구해내듯, 파랑의 연극을 그의 의도대로 무대에 올린다. 아득히 멀었을 뿐, 닿을 수 없었던 건 아니다. 

예술과 존재, 그리고 그걸 풀어나가는 sf형식의 전위적 연극과, 초라한 현실, 그리고 주인없는 파랑의 공간이 상징적으로 엇물린 <아득히 먼 춤>은 드라마로서는 참 '아득'하다. 하지만, 그 '아득'함이야말로 드라마 스페셜만이 해낼 수 있는 당위이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익숙한 이야기, 뻔한 주제를 말해야 하는 '드라마'라는 대중적 공간에서, 가장 철학과 현실에 대한 심오한 주제와 형식을 선보인 <아득히 먼 춤>은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던 그 분의 취미가 회자되는 이 시점에 대중의 눈높이에 안주하지 않는 이 실험적 도전으로서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낸다. 1.3%의 <아득히 먼 춤> 이야말로 아무도 없는 숲에서 홀로 쓰러져 가는 나무요, 닿을 길없는 궤도를 도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판독 불가의 춤이다. 
by meditator 2016. 11. 21. 16:08

드라마계에는 공공연하게 '버리는 카드'란 말이 통용된다. 적지않은 비용이 투자된 드라마에 '버리는 카드'란 말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지만, 상대작이 워낙 압도적 위용을 드러낸다면, 그에 상대하는 경쟁사들은 무모하게 붙어서 처절하게 터지느니 차라리 누가 보기에도 '버리는 카드'같은 드라마를 편성하여 무안함을 덜자는 '보신'의 전략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새로이 시작되는 공중파 3사의 수목 드라마이다. 


sbs의 신작 전지현, 이민호 주연의 <푸른 바다의 전설>에 누가 감히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이에 kbs는 어린 금비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웠고, mbc는 주연이 처음인 신인들을 앞세웠다. 결과도 예상대로 였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첫 회부터 16.4%(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치고 나간 반면, 그나마 금비 역의 허정은과 아빠 역의 오지호의 뜻밖의 '캐미'가 5.9%(닐슨 코리아 전국)의 양호한 결과를 도출했다. 반면에 mbc의 신인들은 3.3%(닐슨 코리아 전국)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혹자는 차라리 조용히 망해서 사라지면 이런 드라마가 있었는 줄 몰라 주인공들에게 부담이 적을 것이라 하지만, 2회까지 마친 <역도 요정 김복주>더러 조용히 사라지라 하기엔 그 '청춘의 서사'가 아깝다. 



물론 처음부터 <역도 요정 김복주>가 볼만했던 건 아니다. 1회 시끌벅적하게 드라마를 연 것은 체육대학 학생들이다. 한얼 체대 그리고 거기에 역도부와 리체부의 알력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역도부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행사만 있으면 의자를 날라야 하는 역도부의 수모로 시작되었다는게 더 정확할까? 그리고 그 역도부에는 '역도'라는 종목으로 연상되는 체형과는 좀 다른 체형을 가진 꺽다리 김복주(이성경 분)란 체대 2학년 학생이 있다. 김복주의 전국 체전 우승이란 영광도 잠시 역도부의 일과는 '리듬 체조' 선수들의 운동에 방해되지 않게 의자를 나르고 정리하는 '수모'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수모는 세탁실에서의 두 운동부의 알력과 힘겨루기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힘을 쓴 김복주의 사과와 이어진 행운의 운동복 실종 사건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김복주를 둘러싼 해프닝 한 편으로 이 드라마의 또 한 명의 주인공 수영부 정준형(남주혁 분)의 되풀이되는 스타팅 실수와 그 실수로 인해 의기소침한 준형의 일상이 엇갈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세탁실 빨래 도둑을 쫓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쫓는 사람과 쫓기는 변태로 조우하게 되는데. 

이 장황해보이는 1회, 하지만 학교에서 인정받는 운동부와 그렇지 못한 운동부의 알력과 애환은 언젠가 보았던 '운동' 드라마의 데자뷰처럼 느껴지고, 매번 경기에만 나가면 실수를 되풀이 하는 에피소드 역시 어디선가 본듯하다. 꼭 모든 이야기들이 신선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청춘 드라마의 첫 회라기엔 어쩐지 맥이 빠지는 출발인 것이다. 



2회, 청춘의 서사가 비로소 빛을 발하고 
하지만 2회로 들어선 드라마는 1회에 왜 그랬어? 라는 반문이 나올 정도로 비로소 이 드라마가 본래 내려고 했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무지 호감이라고는 쉽게 느껴지지 않던 빽빽거리던 <치즈 인더 트랙>의 이상한 백인하같던 이성경도 2회에 들어서니 키가 자랐지만 여전히 어릴적 뚱이었던 그 아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자의식에 쪄들어 겉멋만 들려보였던 준형도 김복주가 뚱이인 걸 알게 되면서 뚱이와 함께 학교를 다니던 그 유악한 아이의 면모를 찾아간다. 씩씩한 소녀 복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외롭고 고통스러운 하지만 이제 뚱이 복주를 만나 어린 시절의 그 청량함을 되찾아 가는 준형과 그들과 맞물려 들어가는 체대생들의 일상이 드디어 공감가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뚱이라 부르는 준형이 그저 부담스럽기만 하던, 하지만 거침없이 스쿠터를 타고 바쁜 아버지 대신 치킨 배달을 하는 여전히 '소녀'인 복주가 우연히 자신을 '여자' 취급해주는 재이(이재윤 분)을 만나 설레이며 드라마는 청춘 드라마로서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늘 침잠해 있던 준형이 복주를 만나며 장난꾸러기 소년이 되는 그 시점부터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렇게 복주와 준형은 이제 저마다 청춘의 입문 과정에 서서히 한 발씩을 내딛으며 드라마도 함께 빛을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청춘의 빛만 있는 건 아니다. 학교 행사를 위해 그리 의자를 날랐건만 돌아오는 건 운영비 30% 삭감으로 인해 교수와 코치의 눈물겨운 사연과, 태릉에서 돌아온 시호(경수진 분)의 불안한 연습 등은 성과 중심주의 엘리트 체육정책 아래 힘겨워하는 체육대생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전 여친, 남친이던 그들이 일상에서 웃고 떠들지만 각자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잔잔하게 <역도 요정 김복주>는 띠운다. 



운동을 매개로 한 드라마가 어떤 것이 있나 찾아보면 <마지막 승부(1994)>에서부터 꽤 많다. 그 중 체대생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체대생은 아니었지만 태릉 선수촌에 입소한 운동 선수들의 청춘담을 그렸던 홍진아, 홍자람 자매 작가와 이윤정 피디를 청춘물의 대명사로 만들어 준 <태릉 선수촌>이 <역도 요정 김복주>와 가장 흡사한 구조를 지녔다. 그래서 <태릉 선수촌>을 그리워했던 시청자들은 체육대학이란 공간적 배경만으로 <역도 요정 김복주>가 그못지 않은 청춘과 우정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첫 회 보여준 상투적인 에피소드는 그 기대마저 무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진 그 누군가가 있어 2회를 본다면, <태릉선수촌> 못지 않은 2016년찬 청춘서사가 도래할 것이란 예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1. 18. 05:31

11월 15일 16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로 늦게 방영된 jtbc 뉴스룸을 상대로 10.0%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제외하고는 주욱 8~9%로 주중 월화 미니 시리즈 중 2위를 유지하며 미묘한 포지션을 유지해왔다. 소위 쉽게 '망했다' 거나, '흥했다'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경계선의 성과이다. 





이 성과를 좀 더 파고들어가 보자. 법정 드라마를 내세운 장르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나름 '선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지우'라는 '스타'를 내세운 '로맨스'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흡족한 성과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늘 지난 몇 십년간 '멜로'의 대명사로 '발음' 문제가 그녀를 따라붙었던 연기력 논란의 배우 최지우가 능력있는 사무장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거듭난 전문직 드라마를 깔끔하게 이끌어내다는 지점에서 본다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최지우라는 배우에게 있어서는 또 한번의 질적 전환을 가능케 해준 드라마가 된다. 드라마가 한 편 마무리되었다고 해서 그걸 꼭 편가르듯 가를 필요가 있겠냐 싶지마는 그래도 그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볼 때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생각해 볼 많은 여지를 남긴다. 

선방한 스릴러 
올 한 해 여러 편의 장르 드라마가 선을 보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모두 저조한 시청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 최고 시청률 7.6%(16회), <원티드>가 역시나 최고 시청률 7.8%(2회), 그리고 <뷰티플 마인드>로 가면 최고 시청률이 4.7%(3회)였다. 심지어 요즘 대세라는 박보검, 서인국이 주연으로 나온 <너를 기억해>도 최고 시청률이 5.3%(14회)였으니 누가 나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심각한 드라마 기피증'으로 인해 아니 진지하게 주제에 천착하면 천착할 수록 드라마의 시청률은 반비례하는 암울한 성과를 올 한 해도 넘지 못했다. 이 상황이라면 공중파에서 주제에 천착한 장르물의 시도는 더더욱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법정 드라마'에 '스릴러'를 가미한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평균 8~9%대의 시청률, 그리고 마지막 회에서 두 자리를 찍은 성과는 굉장히 흡족한 결과물이다. 결국 <시그널>이 공중파로 오면 '사랑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우스개를 '법정 로맨스'라는 장르물로 나름 넘어선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증명해 버린 셈이 된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능력있는 사무장이었던 차금주(최지우 분)가 의도치않게 노숙 소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백마탄 왕자, 아니 찌라시 언론사주 k팩트의 함복거(주진모 분)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의 양식을 띠기 시작한다. 거기에 순정어린 연하남 변호사 마석우(이준 분)까지 합류하면서 삼각 관계의 구도는 완벽해진다. 



하지만 드라마는 전직 검사였던 함복거가 사표를 던지게 했던, 그리고 차금주의 모든 것을 빼앗은 노숙 소녀 살인 사건과 그 배후의 '오성'이라는 로펌, 그리고 재벌가, 그리고 그들의 부도덕한 성스캔들을 '법정'을 배경으로 풀어내며 '법정'과 '사랑'이라는 양 날의 검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 벼려진 두 날을 자유자재로 휘두르기 위해 배후의 사건은 다분히 '음모'적이고, 매우 구조적이지만, 그 다루는 방식에서는 찌라시 언론사 사주가 남자 주인공이고, 짝퉁 빽에 연연하는 속물 사무장이 여주인공이듯,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절히 코믹하게 강온 전략을 쓴다. 

결국 '법정'과 재벌가의 부도덕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정의'를 다룬 장르물이라는 지점에서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달달한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새로운 '법정 로맨스'방식은 시청률 면에서 그 이전 장르 드라마들과 달리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아쉽다. 노숙 소녀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여 결국 재벌가의 부도덕한 성스캔들, 나아가  스폰서 의혹의 상징 '미식회'라는 드라마를 끌고 갔던 굵직한 줄기가 속시원하게 풀어졌는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볼 때 물론 15,6 회 마지막까지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며 주제에 천착하려 했지만 어쩐지 아쉽다.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의 주범과 배후와 미식회의 핀트가 어긋나며, 시청자들이 '분노'의 촛점이 애매모호해졌고, 물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쓴 소년은 재심으로 굴레를 벗어났지만 과연 무엇이 해결되었는지 어리둥절한 채 드라마는 마무리되었다. 과연 그 악의 주체가 오성이라는 재벌이었는지, 그 재벌가를 장악한 며느리의 위악이었는지, 그게 아니면 재벌의 개라는 오성 로펌이었는지, 정작 드라마는 '개'들만 이리저리 몰다 끝난 건 아닌지 고개가 꺄우뚱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잔뜩 심각하게 벌여놓고 마치 실밥 풀리듯 쉬운 마무리에 결국은 '로코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쉬움의 원인이 드라마 중반부에 들어서서 작가가 천착한 '로맨스'가 오히려 이들 장르물의 사건 전개에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건 '공중파'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렇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권음미 작가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갑동이>에서도 이와 같은 갈짓자 행보로 인해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남긴 바 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은 연쇄살인, 그 와중에 등장한 모방범,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가장 가까이에서 암약했던 진범, 하지만 드라마는 애초에 드라마가 천착했던 연쇄 살인의 본질에 다가가는 대신, 카피캣이었던 류태오(이준 분)과 갑동이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형사 하무영(윤상현 분)과 오마리아(김민정 분), 마지울(김지원 분)간의 지리한 애증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궤도를 이탈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참 차금주에 의한 '오성' 로펌에 대한 수사로 속도를 붙여할 드라마는 뜬금없이 함복거와 마석우 사이의 애정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해 버린다. 물론 애초에 <갑동이>와 다르게 '법정 로맨스'라는 취지를 내세운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로맨스'에 천착한다는 게 어패는 없지만 최소한 드라마가 이끌어 가는 본래의 궤도에서는 이탈하지 말아야 하는데, 권음미 작가는 <갑동이>에 이어 또 한번, 드라마를 전혀 다른 드라마로 만들어 버리며 호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갑동이>에서 양철곤(성동일 분) 형사의 활약이 아쉬웠든, 초반에 흥미진진했던 이동수(장현성 분)나, 강 프로(박병은 분)의 캐릭터가 서사의 횡보와 함께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그와 그녀보다, 오히려 신선했던 그녀들의 이야기  
그 뻔한 첫 눈에 반한다는 식의 함복거와의 오글거리는 사랑도 그렇고, 다짜고짜 순정파인 연하남 변호사의 저돌적 애정도 그러려니 하면서 보긴 했지만, 오히려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신선했던 것은 '여성'들이다. 

최지우라는 배우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준 사랑스러운 속물 사무장 혹은 변호사 차금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그녀와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다 동료가 된 구지현(진경 분), 그리고 16회까지 애증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배다른 동생 박혜주(전혜빈 분)의 캐릭터도 신선했다. 거기에 재벌가의 며느리에서 재벌가의 비자금을 장악하고 안주인이 된 조예령(윤지민 분)도 매력적이었다. 차라리 어설픈 '로맨스' 대신 이들 여성들의 '육박전'으로 드라마를 치열하게 전개했다면 더 신선하고 멋진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마석우가 가장 멋있던 장면은 안타깝게도 16회 마지막 그가 검사가 되어 차금주와 법정에서 팽팽하게 대립했을 때였다. 차금주가 멋졌던 것도 함복거처럼 법정에서 능력자로 그 능력을 십준 발휘할 때였다. 물론 장르물로써의 고심을, 그래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지만, 좀 더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위해, 권음미 작가가 잘 하는 것에 좀 더 천착한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11. 16.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