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계에는 공공연하게 '버리는 카드'란 말이 통용된다. 적지않은 비용이 투자된 드라마에 '버리는 카드'란 말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지만, 상대작이 워낙 압도적 위용을 드러낸다면, 그에 상대하는 경쟁사들은 무모하게 붙어서 처절하게 터지느니 차라리 누가 보기에도 '버리는 카드'같은 드라마를 편성하여 무안함을 덜자는 '보신'의 전략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새로이 시작되는 공중파 3사의 수목 드라마이다. 


sbs의 신작 전지현, 이민호 주연의 <푸른 바다의 전설>에 누가 감히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이에 kbs는 어린 금비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웠고, mbc는 주연이 처음인 신인들을 앞세웠다. 결과도 예상대로 였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첫 회부터 16.4%(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치고 나간 반면, 그나마 금비 역의 허정은과 아빠 역의 오지호의 뜻밖의 '캐미'가 5.9%(닐슨 코리아 전국)의 양호한 결과를 도출했다. 반면에 mbc의 신인들은 3.3%(닐슨 코리아 전국)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혹자는 차라리 조용히 망해서 사라지면 이런 드라마가 있었는 줄 몰라 주인공들에게 부담이 적을 것이라 하지만, 2회까지 마친 <역도 요정 김복주>더러 조용히 사라지라 하기엔 그 '청춘의 서사'가 아깝다. 



물론 처음부터 <역도 요정 김복주>가 볼만했던 건 아니다. 1회 시끌벅적하게 드라마를 연 것은 체육대학 학생들이다. 한얼 체대 그리고 거기에 역도부와 리체부의 알력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역도부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행사만 있으면 의자를 날라야 하는 역도부의 수모로 시작되었다는게 더 정확할까? 그리고 그 역도부에는 '역도'라는 종목으로 연상되는 체형과는 좀 다른 체형을 가진 꺽다리 김복주(이성경 분)란 체대 2학년 학생이 있다. 김복주의 전국 체전 우승이란 영광도 잠시 역도부의 일과는 '리듬 체조' 선수들의 운동에 방해되지 않게 의자를 나르고 정리하는 '수모'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수모는 세탁실에서의 두 운동부의 알력과 힘겨루기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힘을 쓴 김복주의 사과와 이어진 행운의 운동복 실종 사건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김복주를 둘러싼 해프닝 한 편으로 이 드라마의 또 한 명의 주인공 수영부 정준형(남주혁 분)의 되풀이되는 스타팅 실수와 그 실수로 인해 의기소침한 준형의 일상이 엇갈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세탁실 빨래 도둑을 쫓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쫓는 사람과 쫓기는 변태로 조우하게 되는데. 

이 장황해보이는 1회, 하지만 학교에서 인정받는 운동부와 그렇지 못한 운동부의 알력과 애환은 언젠가 보았던 '운동' 드라마의 데자뷰처럼 느껴지고, 매번 경기에만 나가면 실수를 되풀이 하는 에피소드 역시 어디선가 본듯하다. 꼭 모든 이야기들이 신선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청춘 드라마의 첫 회라기엔 어쩐지 맥이 빠지는 출발인 것이다. 



2회, 청춘의 서사가 비로소 빛을 발하고 
하지만 2회로 들어선 드라마는 1회에 왜 그랬어? 라는 반문이 나올 정도로 비로소 이 드라마가 본래 내려고 했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무지 호감이라고는 쉽게 느껴지지 않던 빽빽거리던 <치즈 인더 트랙>의 이상한 백인하같던 이성경도 2회에 들어서니 키가 자랐지만 여전히 어릴적 뚱이었던 그 아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자의식에 쪄들어 겉멋만 들려보였던 준형도 김복주가 뚱이인 걸 알게 되면서 뚱이와 함께 학교를 다니던 그 유악한 아이의 면모를 찾아간다. 씩씩한 소녀 복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외롭고 고통스러운 하지만 이제 뚱이 복주를 만나 어린 시절의 그 청량함을 되찾아 가는 준형과 그들과 맞물려 들어가는 체대생들의 일상이 드디어 공감가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뚱이라 부르는 준형이 그저 부담스럽기만 하던, 하지만 거침없이 스쿠터를 타고 바쁜 아버지 대신 치킨 배달을 하는 여전히 '소녀'인 복주가 우연히 자신을 '여자' 취급해주는 재이(이재윤 분)을 만나 설레이며 드라마는 청춘 드라마로서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늘 침잠해 있던 준형이 복주를 만나며 장난꾸러기 소년이 되는 그 시점부터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렇게 복주와 준형은 이제 저마다 청춘의 입문 과정에 서서히 한 발씩을 내딛으며 드라마도 함께 빛을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청춘의 빛만 있는 건 아니다. 학교 행사를 위해 그리 의자를 날랐건만 돌아오는 건 운영비 30% 삭감으로 인해 교수와 코치의 눈물겨운 사연과, 태릉에서 돌아온 시호(경수진 분)의 불안한 연습 등은 성과 중심주의 엘리트 체육정책 아래 힘겨워하는 체육대생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전 여친, 남친이던 그들이 일상에서 웃고 떠들지만 각자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잔잔하게 <역도 요정 김복주>는 띠운다. 



운동을 매개로 한 드라마가 어떤 것이 있나 찾아보면 <마지막 승부(1994)>에서부터 꽤 많다. 그 중 체대생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체대생은 아니었지만 태릉 선수촌에 입소한 운동 선수들의 청춘담을 그렸던 홍진아, 홍자람 자매 작가와 이윤정 피디를 청춘물의 대명사로 만들어 준 <태릉 선수촌>이 <역도 요정 김복주>와 가장 흡사한 구조를 지녔다. 그래서 <태릉 선수촌>을 그리워했던 시청자들은 체육대학이란 공간적 배경만으로 <역도 요정 김복주>가 그못지 않은 청춘과 우정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첫 회 보여준 상투적인 에피소드는 그 기대마저 무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진 그 누군가가 있어 2회를 본다면, <태릉선수촌> 못지 않은 2016년찬 청춘서사가 도래할 것이란 예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1. 18. 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