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시작했으니, 햇수로만 치면 10년 째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진부한 말답게, 500회를 맞이한 <라디오 스타>를 보면, 스스로 '어쩌다'와 '기적'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황금어장-무르팍 도사> 끝자락에 낑겨, '다음 주에 만나요, 제발~'하지만 500회 특집에서 말하듯이 때론 5분여의 방송 시간이란 갖은 수모를 겪었던 짜투리 방송 <라디오 스타> 하지만 이제 10년의 세월을 겪고 거의 유일한 '토크' 예능으로 수요일 밤의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기적같은 500회
mc들 각자에게 거한 수상(결혼식에 쓸 500인분의 국수라던가, 혹은 곧 회수할 것이지만 500회의 식권이라든가, 퍼프라던가, 건빵이라던가)을 하며 화려하게 오프닝을 장식한 500회의 <라디오 스타>, 그 자리를 축하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은 강호동이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의 격세지감의 산 증인은 강호동이 아닐까? 수요일 밤을 호령하던 <무르팍 도사>로 <라디오 스타>를 짜투리 방송으로 만들었던 그가, 세금과 관련된 구설수로 물러나고, 이제 타 방송사의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맡아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전해주는 광경이야말로, <라디오 스타>가 걸어온 지난 10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500회 특집의 출연자 면면도 그렇다. <무르팍 도사>에서 강호동과 함께 했던 건방진 도사 자격으로서 유세윤과 올라이즈 밴드 우승민의 참석은 강호동의 부재만큼이나 <라디오 스타>의 또 다른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유세윤은 사라진 <무르팍 도사> 이후 바로 <라디오 스타>의 5 mc 체제로 갈아타고, 역시나 규현의 전임 mc였던 김희철이 합류하여,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회고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윤종신이 개근상을 탈 만큼 mc들의 구설수가 많았던 <라디오 스타>, 500회 특집에서도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신모씨로 불리워야 하는 신정환에서 부터, 지금은 큰 소리를 치지만 역시 한때 자리를 비웠던 김구라, 그리고 이제는 초대 게스트 석에 앉아있는 유세윤까지 바람잘 날 없는 지난 시간이었다. 과연 거센 입담의 <라디오 스타>에서 온순한 김국진이 살아남을까라는 기우가 무색하게 500회를 함께 한 김국진의 내공도 만만치 않고. 그리고 이제 대놓고 군대를 갈 규현의 차기 mc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여러 명의 mc들이 오고가는 와중에서도 자투리 예능에서 수요일 밤의 스테디셀러로 거듭난 <라디오 스타>가 가능했던 것은 집단 mc 체제가 가진 장점을 십분 살려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다는 김구라의 자화자찬과, 그런 김구라를 키웠다는 윤종신의 또 다른 자화자찬, 그리고 출연 게스트들의 증언으로 이제야 확인된 김구라의 마지노선 김국진, 그리고 그런 거센 형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버텨온 규현까지, 신정환의 부재라는 엄청난 리스크조차 순조롭게 관리하며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불문율을 스스로 거듭 깨어가며 집단 mc의 균형을 절묘하게 시스템화 시킨 것이 오늘의 <라디오 스타>가 아니었을까? 

<라디오 스타>만이 할 수 있던 것
무엇보다 처음 <라디오 스타>가 출범할 때만 해도 tv로 온 dj라는 생소한 컨셉에, 나뉘는 대화란 b급 코드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없는 수습되지 않는 대화들이었던, 그래서 마니아들을 불러모았던 <라디오 스타>, 하지만 500회를 지내는 동안, b급 코드의 토크 프로그램은 이제 뜨고싶은 연예인들이라면 꼭 한번 출연하고픈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스튜디오 예능의 침체와 함께 <무르팍 도사>는 물론, <승승장구>, <야심만만>, <화신>  등 타 방송사 토크 예능 프로그램들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해피 투게더>만이 명맥을 잇지만 부진의 늪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라디오 스타>의 건재는 스스로 평가하듯, '기적'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그런 '기적'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라디오 스타>만의 게스트 섭외 방식이다. 물론 11월 9일 방송에서도 김희철과 이수근의 출연에서 보여지듯, 여전히 특정 소속사에 편중된 출연 관례가 없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이제는 <해피 투게더> 등에서도 벤치 마킹을 하듯, <라디오 스타> 이전만 해도 '인지도'가 있어야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었던 관례를 과감히 깨고, <라디오 스타>에 출연시켜 화제를 만드는 신선한 구성이 무엇보다 오늘의 <라디오 스타>를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든 핵심적 요소이다. 



덕분에 9일의 특집에서 '라스를 빛낸 100명의 위인들'로  소개된 조세호, 박나래 등 다수의 개그맨과, 드라마 등에서 조연으로 겨우 얼굴을 알렸던 연기자와, 무명을 갓 벗은 한동근 등의 가수등이 <라디오 스타>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었다. 이들은 얼굴을 알려서 좋고, <라디오 스타>는 신선한 출연자로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더해서 좋았으니, 이보다 더한 꿩먹고 알먹고 구성이 있으랴. 

또한 일찌기 신정환을 위시해서 김구라로 이어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토크의 방식도 <라디오 스타>가 만들어 낸 전통이다. 토크 프로그램에 나오면 마치 '주례사'처럼 서로 덕담이나 나누고, 미담이나 만들어 내던 기존의 예능 방식을 뒤집은 채, 출연자들을 탈탈 털다 못해, 거의 싸우다시피하던 <라디오 스타>의 토크 방식은 나날이 드세어가는 세상의 코드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이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 물론, 그 예전의 신정환으로 상징되던 b급 코드는 스테디 셀러가 된 이즈음에는 대상까지 받은 김구라의 삿대질식의 평론 토크로 변화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라디오 스타>만이 가능한 날카롭고 기발한 토크의 방식이 지난 500회를 떠받쳐 왔다. 

물론 그래서 이제는 아쉽기도 하다. 기발하고 톡톡 튀었던 대화 대신, '갑질'같은 김구라 등의 '지적질'이 된 변화가. 9일 방송에서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지자 예전과 달리 눈치를 보게 되었다는 스스로의 평가처럼 이제는 종종 출연자에 대한 혹독한 털어내기나 무리한 요구가 구설수를 만드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그러기에 9일 방송에서 500회니까 훈훈하게 가자며 서로 '덕담'과 '미담'을 만들어대는 방식에서는 찾을 수 없는 반성과 비젼이 아쉬웠다. 어쩌면 늘 그렇듯 스테디셀러가 된 500회의 <라디오 스타>는 자화자찬만 하기엔 이제 너무 몸집이 커져버렸다. 조만간 빈 자리가 될 규현의 자리를 놓고 노골적인 신경전을 벌였지만 궁금하다. 과연 이 격동의 시기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는 철밥통처럼  sm 전용석이 될른지. 그리고 종종 '갑질' 논란까지 벌어지는 '권력'이 된 프로그램은 그 권력을 어떻게 전횡하지 않을 것인지. 그 궁금증을 답하기엔 500회 특집은 너무 자화자찬으로 끝났다. 
by meditator 2016. 11. 10. 05:19
일찍이 공자님은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요즘 한참 '공부'를 해야 하는 청춘들에게 전해준다면 당장 읽던 책이 날라올 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회에서 공부란 곧 밥벌이를 뜻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인생 충고 세 번째,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연봉 4만 달러가 될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그 교시에 충실한 공부이다. 일찌기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안타깝게도 연봉 4만 달러를 보장하지 않는 불경기로 인해 또 공부를 시작한다. 전공과 상관없이 각종 고시와 자격증을 따기위한. 이런 형편에 놓인 이들에게 공부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의 도구다. 그러니 절바감은 있을 지언정, 즐거움은 얼어죽을 놈의 소리다. 그러니 취직에 도우이 되지 않는 '문과'는 '문송합니다'가 되는 것이다.



죄송한 공부가 즐거운 공부가 되다. 
그런데 그 '죄송한' 문과 공부가 사회로 나오면 처지가 달라진다. '인문학 열풍'의 당당한 주역이 되는 것이다. 이 '공부'의 갭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를 위해서 장미 여관의 뇌가 순수한 남자 육중환이 나섰다. 최고의 성적 반에서 32등, 양치기를 즐겨했던 38년의 인생 동안 단언컨대 단 한 번도 공부를 해본적이 없는 그가 mbc스페셜-공부 중독의 프리젠터로 나섰다. 말이 프리젠터지 본의 아이게 읽어야 할 책을 받아든 육중완, 도무지 읽어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을 붙잡고 씨름하다 결국 책의 저자 유시민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서 들은 뜻밖의 '풀밭론'

유시민은 묻는다. 과연 당신은 몇 평의 풀밭이 필요한 사람이냐고? 평생 세 평의 풀밭에 만족하는 토끼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초원이 필요한 사람인지 알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각자 사회적 경험을 쌓은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 공부에 빠져든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하던 김승호씨는 퇴직 후 사회와 삶으로부터 고립된 선배들을 보며 찾아온 우울증을 공부로 치유했다. 주변에서는 '돈'이 되는 공부를 하라지만, 돈은 덜 되지언정 비어있던 삶을 채워준 공부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답한다. 청도 농사꾼 김형표씨 부부는 농사일 하는 틈틈이 팟캐스트로 '공부'를 한다. 자식을 키우고, 손주까지 키우워 낸 후 노년의 허탈함을 7순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들어간 방송 통신대학 공부로 달랜다. 가정 대신 공부를 택한 남편이 괘씸했던 아내도 이젠 남편 못지 않은 과학 매니아가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 복직한 직장에서 권고 사직을 당한 후 세상에서 밀려난 소외감을 '힐링' 시켜준 것도 공부다. 



공부가 즐거운 사람들
중년 이후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고자 시작한 공부는 이제 '도끼 자루 썪는 줄' 모르는 늦바람이 되었다. 그 골치앞은 과학을 배우는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의 회원은 6000명을 넘어섰다. 몽골로 떠난 학습 탐사, 이들은 털털거리는 버스에서도 촌음을 아껴 공부에 빠져든다.  꼭 책으로 하는 공부만이 아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의 공부 관련 팟캐스트가 6000개가 넘었다. 구청, 도서관에서 열리는 교양 강좌가 가득차고, 도서관에는 취업 준비를 하는 젊은이들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들이 자리 경쟁을 한다. 이렇게 '밥벌이'가 되지 않는 공부를 하며, 어른들은 비로소 '공부가' 재밌어 졌다고 한다. 허무했던 중년 이후의 삶이 충만해 졌다고 한다. 



책 한 장을 넘기기 힘들어 했던 육중완도 달라졌다. '공부'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공부'의 재미를 알 수 있는 사회, 이 '아이러니한' 공부 중독은 '성장주의' 한국 사회가 낳은 기현상이다. 즐겁지 않은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 그래서 공부의 즐거움을 놓치는 사회, 뒤늦게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회. 다큐는 늦바람난 중년 이후의 공부를 '보람'되게 그려냈지만, 그 재미진 공부 중독 이면의 씁쓸한 사회는 쉬이 가려지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6. 11. 8. 13:49

계절은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다시 피어난다. '오겡끼데스까'라는 절규가 하얀 설원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우리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겨져 있었을까? 얼마전 종영한 <구르미 그린 달빛>이 청춘 남녀의 사랑을 '엽록소'가 터져나오는 봄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 싱그러움이 한껏 돋보일 수 있었을까?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 속 계절은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중요한 배역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 계절에는 편애가 존재한다. 청춘의 봄이거나, 이별의 가을이거나, 혹은 겨울이거나, '삼복더위'의 그 무더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그리 흔치 않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라면 모를까? 그런데, 여름, 그것도 딴 곳도 아닌 경상분지에 위치한 무더운 안동이라니. 하지만 그 여름엔 무지 덥고, 겨울엔 무지 추운 안동이 <드라마 스페셜-국시집 여자>를 통해 싱그러운 여름의 도시로 거듭 태어났다. 




왜 하필 여름이었을까?
드라마 속 안동에서 만나게 된 두 남녀, 좀 더 정확하게 미진(전혜빈 분)의 국시집에 들렀다 첫 눈에 안동 촌구석 국시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회적 분위기의 미진에게 시선을 빼앗겨 안동에 내려올 때마다 참새가 물레방앗간 드나들 듯 국시집을 들른 진우(박병은 분), 왜 하필 이들은 여름에 안동을 휩쓸고 다녔던 것일까?

두 사람은 국시집에 안동 국시를 먹으러왔다는 핑계로 드나드는 진우와, 그런 진우의 속이 빤히 보이는 추근거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미진과의 안동댐을 비롯하여, 도산 서원 등 안동의 주요 명소를 연애인지, 동행인지 모를 행보로 돌아다닌다. 그 쨍쨍한 여름날에. 드라마는 '여름'의 햇빛을 화사한 화면에 잔뜩 머금고, 그 빛을 반사해 안동을 비춘다. 

그러나 그 쨍쨍한 햇빛 속의 두 남녀의 처지는 그리 밝지 못하다. 일단 유부남인 진우, 아내와 결혼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어, 병원을 가보자는 요청을 받는 처지의 그가, 죽은 선배의 원고 정리를 핑계로 주말마다 안동에 내려온다. 그런 그가 들른 국시집 미진도 도대체 이런 곳에서 국시집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모호한 존재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진의 이름도 모른 채, 진우의 정체도 모른 채 안동의 여름을 거닌다. 진우가 사준 양산까지 쓰고. 

여름은 '욕망'의 계절이다. 봄에 돋아난 새싹은 더운 여름의 열기를 업고 청록빛의 녹음을 발산한다. 온도가 올라가는 만큼 생명력을 그 속에서 저마다 한껏 자신을 열어제친다. 바로 그런 '욕망'의 계절에 미진과 진우는 안동이란 고장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모른 척 방기하며 관계를 지속시킨다.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솔직해진 욕망
하지만 사랑인 듯 불륜인 듯 관계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의 존재는 물을 막아선 안동댐의 수문처럼 닫혀있다. 진우가 들려준 선배 도근(김태우 분)의 소설 속 사랑하는 연인의 자살을 목격하고 후각을 상실한 조향사가 미진이듯이, 진우 역시 도근의 소설을 통해 드러나듯 한때 소설을 써보려했던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후각을 잃고 도시의 삶을 포기한 미진과 꿈을 덮은 채 도시에서 살던 진우가 여름의 안동에서 만나, 짖눌렀던 '욕망'의 한 자락을 슬며시 내보이기 시작한다. 병원에 가는 대신 조금 더 노력해보자는 아내의 말에 슬그머니 뒤돌아 눈을 감던 진우가 미진과의 모텔행을 꿈꾸고,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서 잃고 사랑을 포기했던 미진이 그와 같은 체취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아슬아슬하던 욕망인지, 욕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관계는 유부남이었던 진우, 미진과 상규(오대환 분)의 관계를 오해한 진우를 통해 어긋나기 시작한다. 손 한번 잡지 못했던 그저 흘러오는 체취만으로도 아찔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해와 어긋남이 드러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솔직해 진다. 



그리고 파탄 이후에 비로소 솔직해진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비로소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찌질하게 미진 앞에 아내까지 데리고 와서 호기를 부리다 이혼까지 당해버린 진우는 이제 좀 어른이 되어보라는 아내의 말에 비로소 '소설'이라는 진짜 욕망을 마주설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후각을 잃었다는 이유로 안동까지 도망쳤던 미진 역시 진우와의 알듯모를 듯한 관계가 깨진 후 여전히 삶을 내던질 수 없는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인정한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의 열기 속을 기꺼이 거닐던 두 사람은 그 여름의 열기만큼이나 여전한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비록 이제 거리에서 마주쳐도 그저 스쳐지나갈 인연이 되었지만, 여름, 그리고 안동의 한 시절은 두 사람을 비로소 자신으로 드러내게 만든다. 

이렇게 여름이라는 계절과 안동이라는 아름다운 고장을 배경으로 탄생된 <국시집 여자>는 마치 고등학교 미전의 수채화같은 드라마다. 지난 여름의 열기를 망각하고, 여름의 안동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여름이, 그리고 안동이 이렇게 싱그러운 계절이었으며, 아름다운 고장이었는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드라마는, 그저 계절과 고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배경과 그 배경 속의 이야기를 절묘한 상징의 고리를 통해 설명하고 드러내 줌으로써, 완성도 높은 단막극으로 탄생된다. 특히 빗속에서 안동댐 수문의 방류와, 그런 모습을 보며 삶의 욕구를 되찾는 미진이라던가, 여운을 잔뜩 남긴 두 사람의 재회 장면 등은 드라마 스페셜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단막극의 묘기를 한껏 풀어낸다. 물론 이런 배경과 서사의 절묘함을 더욱 맛깔나게 만든 건 분위기있는 전혜빈과 모호한 박병은의 안정감있는 조화이다. 
by meditator 2016. 11. 7. 17:09

또 한 편의 불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불륜이라도 새로이 시작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대한 반응은 앞서 방영된 <공항 가는 길>에 대한 반응과 온도 차가 난다. 김하늘, 이상윤 주연의 <공항 가는 길>은 방영 전부터 '불륜'을 미화하는 것이냐는 '정서적 반발'에 부딪쳤다. 제작진은 부디 예단하지 말고 작품을 보고 판단해 달라 읍소하며 이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진화하는데 고심했다. 하지만, 같은 불륜을 다루는데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는 그런 풍문이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제목에서 부터 노골적으로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데? 벌써 '불륜'에 익숙해 진 걸까? 아니 그것보다는 로맨틱한 멜로로 그려진 불륜인 듯한 <공항 가는 길>과 달리, 피해자 남편 도현우(이선균 분)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적 상황을 고심한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jtbc 금토 드라마, 이는 이미 2007년 일본에서 방영된 바 있는 동명의 드라마 리메이크 작이다. 일찌기 <여왕의 교실(2013)>에서부터 최근 김희애 주연의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의 반응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적 실정에 맞지 않은 무리한 각색의 일본 드라마는 시청률은 물론, 출연한 배우들에게조차 부담을 안기며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에 어두운 기운만 불어넣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외주 제작사의 피디 도현우와 슈퍼우먼인 그의 아내 정수연(송지효 분)라는 현실적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또한 아내가 바람을 피게 된다는 도현우의 개인적 위기와 그가 소속된 외주 제작자가 지금껏 해오던 영화 프로그램 대신 '자극적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불륜을 소재로 한 아침 방송을 준비하게 되는 것으로 '불륜'을 끌어들인다. 거기에 도현우의 친구이자, 이웃 사무실을 쓰고있는 바람둥이 최윤기(김희원 분)을 등장시켜 '불륜'을 다각화시킨다. 일본 원작 드라마가 있음을 알고 보면 상당히 '일본 드라마적' 설정이지만, 1회에서 부터 이선균 특유의 권태로운 생활인으로서의 연기 톤을 앞세워 아내의 불륜을 끌어들인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그 자체로 한국적 상황에 걸맞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도치않게 아내의 불륜으로 의심된 문자를 보게된 남편 도현우, 기존 한국 드라마가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아내의 '배신감'에 촛점을 맞추거나, 지금 방영되고 있는 <공항 가는 길>처럼 불륜보다는 사랑을 부각한 드라마들이었던 데 반해,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최근 변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신선하게도 피해자가 된 남편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정작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를 더욱 신선하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 남편보다, 그가 아내의 바람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이 드라마가 2007년작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것이라지만, 일본 드라마 역시 2005년 한국에서도 발간된 바 있는 동명의 소설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리얼 스토리'이다. 고민과 답변을 주고 받는 일본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goahead란 아이디로 올린 고민에 2주만에 1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언론에 화제가 되어 '부부의 사랑'에 대해 일본 사회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네티즌과 함께 불륜을 고민하다. 
한국 버전의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역시 원작 리얼 스토리의 방식을 고스란히 옮겨온다. 고민 상담 사이트 대신, 최근 우리 사회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디씨 인사이드의 주식 갤러리라는 익숙한 인터넷 공간을 배경으로 도현우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 고민을 털어놓은 남편, 그리고 그가 소속된 불륜 프로그램에 고민을 호소해온 남편, 이 상황은 '해프닝'이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는 우리 사회 남자들의 막막한 사회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술자리에서 가장 솔직한 듯하지만, 정작 자기 가정의 솔직한 이면을 고백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지지 못한 남자들의 현실적 모습을 드라마는 솔직하게 까발린다. 



또한 그런 익명의 게시판에 토로된 남편의 고민에 연달아 달리는 댓글들의 양상은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한 사람들이라는 너무도 익숙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묘한 공감대를 얻어 간다. 함께 한강에 가자부터, 시시껄렁한 농당 따먹기, 그리고 가장 진지한 댓글까지, 현재 각 인터넷 게시판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모습을 드라마는 복기한다. 드라마는 주, 조연 배우들과 함께, 그 댓글을 다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우리 시대의 풍경을 묘사해 간다. 그러면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도현우 개인의 바람에서 마치 그 예전 이웃집 사건에 감놔라 배놔라 했던 마을 주민처럼, 인터넷 마을의 이웃들의 참견을 통해 부터 우리 시대의 만화경으로 구도를 확장해 간다. 정작 도현우 본인은 심각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다보면 그의 심각함보다 그에게 참견하는 직장 동료를 비롯한 미지의 이웃들의 면면이 더더욱 관심을 끄는 인터넷판 시트콤이랄까. 

<송곳(2015)>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올드 미스 다이어리>와 <청담동 살아요>의 김석윤 피디가 연출이라 하면 그도 그럴만 하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처음 이선균-송지효로 시작된 한 가족의 평지풍파는 김희원-예지원을 넘어, 이선균 네 사무실 식구들로, 이제 김영옥, 김혜옥, 우현 등의 쟁쟁한 특별 출연진들의 네티즌들로 확대되며 신선한 드라마적 시도가 된다. 도현우네 가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직간접적 참견들을 통해, 우유부단하고 찌질한 도현우는 부화뇌동하며, 아내의 불륜을 추적해 간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원작 리얼 스토리가 익명의 게시판 댓글들을 통해 부부의 사랑을 생각해 보았듯이, 도현우 역시 주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며 분노와 배신을 넘어, 불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현우네가 만드는 '불륜' 프로그램과 함께 이런 일련의 해프닝들이 이혼율 세계 1위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 된 '불륜'을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다. 
by meditator 2016. 11. 5. 06:19

매주 월요일 녹화를 하는 <썰전>은 늘 '시의성'에 있어서는 한 발 밀릴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제발 사건들이 화요일 이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전원책 변호사의 볼멘 소리처럼, 녹화가 있는 월요일 이후 급변하는 정세에 종종 썰전은 '전스트라무스'가 되어 예지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또한 종종 뒷북이 되고만다. 물론 대선 특집처럼, 시의성을 살리기 위해 다시 녹화를 하기도 하지만, 불가피하게 '뉴스'가 지나간 후 '추수'를 해야 하는 처지인 경우가 언제나 <썰전>의 딜레마였다. 


지난 주 유시민 작가의 외유로 인해 두 패널의 활약이 적었던 <썰전>, 대신 mc 김구라의 단독 진행으로 각계의 의견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한 가운데, 속시원한 이재명 성남 시장의 발언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특집'으로 마련된 3일자 <썰전>의 두 패널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특집' 썰전은 특집다웠을까? 아쉬움은 남지만, 그럼에도 저마다의 '프레임'으로 최순실 정국이 혼돈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썰전>은 정론으로서의 제 몫은 해낸 것으로 보여진다. 



언론의 10가지 과제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 회의실에서는 전국 언론 노동조합, 한국 기자협회, 한국 pd연합회 등 12개 단체가 참여한 언론 단체 비상 시국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열렸다. 날마다 최순실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비상'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로 그 때문이다. 연일 계속되는 보도로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가운데 지나치게 한 인물에 촛점이 맞춰진 채 '가쉽성' 보도로 논점이 흐려지고 있다는 판단이 언론 단체들을 '비상 시국 대책회의'로 결집시켰다. 

이에 대책 회의는 비상 시국에 언론이 보도해야 할 10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외교 사안에서 대통령은 어디까지 최순실에 의존했는가 △예측할 수 없고 돌발적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최순실의 영향인가 △재벌과 대기업들은 최순실과의 거래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최순실·차은택이 사유화하고 검열한 문화·행정 사업의 끝은 어디인가 △이화여대 정유라(최순실 씨 딸) 특혜의 배경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최순실의 청와대·공직 인사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했는가 △공영방송은 최순실 인사 전횡에서 자유로웠는가 △최순실과의 관계에 침묵하는 자는 누구인가 △산적한 의혹 규명에 나선 검찰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등 모두 10가지다.

10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즉 최근 벌어진 사안에서 한 개인에 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건의 본질인 대통령의 책임과 시민들의 삶에 대한 관점에서 현재의 사건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특집 <썰전>의 평가도 이루어 져야 한다. 

jtbc 뉴스룸의 보도로 시작된 만천하에 알려진 최순실이란 이름 석자,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국민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국정 농단 사태, 하지만 이 사태를 둘러싼 각 정치 집단, 언론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태를 재해석하고 있다. 심하게는 주변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그분이 불쌍하다는 식에서 부터, 하야와 탄핵까지 각 집단의 입장은 편차를 가진다. 하지만 날마다 최순실과 관련된 '숨겨진 사실'들이 드러나며, 그 '사실'은 지극히 흥미 위주의 '가쉽성' 기사로 도배되며 대중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jtbc 뉴스룸은 날마다 충격적인 사실들을 보도하지만, 그에 뒤질세랴 종편을 위시한 각 언론들이 연예인 신변잡기 다루듯 최순실을 훑어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집으로서 본질을 짚다. 
이런 상황에서 2주만에 비로소 자리를 함께 한 패널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범람하는 사실들 속에서 가쉽 최순실게이트가 아니라, 이 사건의 본질이 박근혜 게이트라는 것을 정확하게 짚는다. 키맨으로서의 고영태, 그리고 새로운 실세 차은택의 부각과 함께, 태블릿 피씨가 입수된 뒷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건 가쉽으로서가 아니라, 최순실이란 인물의 비공식적인 인간 관계, 그리고 그런 인물을 의지하는 대통령의 무능한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이란 또 다른 배후 인물의 존재를 드러내며 이 사건이 최순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결국 최순실이 가공할 만한 국정 농단이 가능토록 한 대통령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음을 조목조목 따져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 특집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즉, 최순실이든, 최순득이든, 혹은 정유라, 정시호든, 그들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를 가능케 하도록 하는데 있어 대통령 박근혜의 책임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날의 결론이다. 또한 그런 박근혜의 무능, 무지, 그리고 몰지각한 책임 전가에 대해 최근의 사태를 두고 가급적 거리를 두려는 새누리당의 책임성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더불어 31시간을 자유로이 놔두는 등 조율된 행보를 보이는 검찰에 대한 예리한 분석도 빠지지 않았다. 

즉 대책회의가 내세운 10가지 항목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어떻게든 대통령과 거리감을 두려는 여당의 작태도 낱낱이 고발한다. 물론 아쉬움도 남긴다. 대책회의의 문항에서 보여지듯이 ''썰'로 존재하는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해 문화, 경제, 그리고 국방에 이르기 까지의 '농단'을 조목조목 밝혀 주는데 있어, 130분은 부족했던지, 그에 대한 설명은 아쉬웠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에 따라 <특집 2>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실 보도의 공은 jtbc뉴스룸의 몫이라 여겼는지.

또한 그토록 단두대를 소리높여 외쳤던 전원책 변호사, 특집의 마무리에서 여전히 호기롭게 '올단두대'라 외치는 전원책 변호사가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된 언급에서 '문민 정부'를 들먹이며 그간 모든 대통령들이 대통령을 할 만한 깜냥이 안될 만큼 무식했었다는 '양비론'식의 평가는 유시민 작가의 지적처럼 물타기였다. 목소리를 높인데 반해, 전원책 변호사의 분석은 두루뭉수리했고, 시스템의 지적은 박근혜의 책임 소재를 자칫 흐트릴 우려가 높았다. 그런 전원책 변호사의 물타기를 간파하며 유시민 작가의 발군의 분석력과 위트로 현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준다.

물론 이번에도 노스트라다무스의 도움이 없었던지, 두 사람은 과연 누가 박근혜 정부의 녹을 먹고자 하겠는가란 현답을 내렸지만, 여전히 세상의 '권력'을 향한 욕망이 지극하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을 서둘러 결정된 총리와 비서진의 일방적 발표가 증명한다. 또한 유시민 작가의 하야라는 최악의 사태 대신 이제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남은 임기를 잘 해내시라는 충고는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기력지고 만다. 또한 최근 영화의 독점을 반대하는 법안을 입법한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에 대한 '인물론적' 평가는 조만간 다가올 대선 정국에서 경솔하다 싶기도 하다. 만능이나, 전지전능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각자의 프레임으로 최순실 정국이 논점이 흐려지는 시점에서 <썰전>은 그 본질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것만으로도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하지만 대책회의의 10가지 의제를 향한 갈 길은 아직도 멀다.


by meditator 2016. 11. 4. 05:26

3포세대, 5포세대, 젊은 층을 상징하는 저 '포기'의 규정 안에 꼭 들어가는 요소가 있다. 바로 결혼! 인구 1000명당 결혼하는 사람 5.9건, 남성 40%, 여성 58%가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라고 답하는 시대, 결혼이 미친 짓이 되어버린 시대, '비혼'이 사회 문제가 되고, '결혼 고시'라는 말이 등장하는 시대, 결혼적령기에 달한 28살의 피디가 직접 발로 뛰어 청춘들의 결혼 실태 보고서를 작성했다. 바로 <mbc 다큐 스페셜-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다. 




결혼은 언감생심, 청춘의 사라진 봄날
결혼식장 예약은 차고 넘치고, 청첩장은 이제 진화를 거듭하여 카톡으로 전송되는 세상, 하지만 과연 누가 결혼을 하는 것일까? 피디 5년차, 이제 막 정규직이 된 피디가 만나본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 청춘의 봄날조차 막연한다. 24일 방영된 1부는 그 청춘들의 결혼은 커녕, 연애조차 꿈꾸기 힘든 현실을 다룬다.

통계청 발표 2016년 청년 실업률 12%, 그러나 체감 실업률은 34%, 입시를 통과하여, 대학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청년들은 여전히 '시험 준비' 중, 혹은 구직 중이다. 그런 청년들에겐 '결혼'은 먼 나라의 일, 심지어 연애조차 사치가 되었다. 결혼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취업을 해야 결혼도 꿈이라도 꿔보지, 하지만 사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청년들에게 결혼은 먼 미래의 일, 당장 연애조차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 먹어도 쉽지 않다. 한국의 결혼 비용 2억 7천만원, 장갑을 만들어 파는 28살 예비 신부가 잠도 안자고 50살까지 만들어야 댈 수 있는 금액이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불황을 이제 넘어서고 있다는 일본, 하지만 장기간 경기 침체가 낳은 것은 젊은이들의 '결혼 포기' 풍속도, 이제 일본의 젊은이들은 '러브 호텔'이 폐업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거나, 그 욕구를 아예 봉쇄한 '신족속'으로 일본이란 사회의 재생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연애를 학원에서 배우기에 이르렀을까. 

중국이라고 다를까? 경제 성장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부국 중국, 하지만 그 경제 성장의 열매가 모두에게 고루 나뉘어 지는 것은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차별적 성과는 중국의 젊은이들의 결혼 풍속도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북경 출신의 있는 집안 자제들은 '돈을 뿌리는 결혼 이벤트를 벌인다. 하지만, 그런 부의 그늘 속에서 북경으로 올라온 지방의 젊은이들은 부동산 시장의 버블 현상 속에 4차 독신 혁명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에 놓여있다. 

결국 중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자본주의 사회는 고도화되어가지만, 그 속에서 그 경제의 성과물이 젊은이들에게 고루 배분되어지지 않고, 오히려 이제 '결혼'과 연애를 사치로 여길 정도로 '젊은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음을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보여주고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래도 하늘 아래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이런 현실을 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결혼에 도전하는 '용자'가 있을 텐데, 10월 31일 방영된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2부는 바로 '결혼의 용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그 용자 중 한 명은 이 당돌한 다큐를 발로 뛴 피디 자신이다. 

이제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에 안착하게 된 피디, 연하의 남친도 생겼다. 당연히 결혼 말도 나올만, 두 사람은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의 여정에 함께 돌입해 본다. 하지만, 그 첫 여정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돈', 전셋집을 알아보려니 엊그제 1억이라던 전셋집이 며칠 뒤에 1억에 4천을 얹어줘도 없단다. 결국 서울에서 집 구하기를 포기하고 길을 떠난 두 사람, 경기도 언저리의 아파트, 아니 빌라는 얻으려 하니, 1층의 식당 들에서 흘러오는 고기 굽는 냄새를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주거 조건이 열악하다. 그러면 우선 집은 뒤로 미루고, 결혼식 비용은? 겨우 골랐다는 드레스는 제일 비싼 거고, 그 남들 다간다는 몰디브 신혼 여행 비용은 1인당 천만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겨우 대학 등록금 융자를 다갚고 다시 빚을 얻어 결혼을 하려 하니, 빚만 갚다 마는 청춘이란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난다. 과연 이렇게라도 해서 결혼을 해야 할까?

그런 피디의 회의는 결혼이란 제도를 다르게 통과하고 있는 커플에 시선이 돌려진다. 중식이 밴드의 리더 중식씨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여성, 그 두 사람은 결혼이란 형식에 소비되는 비용이 너무 아깝단다. 결혼을 해도 헤어지는 것이 비일비재한 세상에, 당장 자기 앞가림도 힘든데, 돈을 들여 결혼을 하다니, 그래서 두 사람은 짐을 합치고, 아기 대신 아기같은 강아지 두 마리와 산다. 향후 5년, 아니 최소한 3년은 이 생활을 책임질만 하단다. 

아기가 없는 부부는 또 있다. 각각 직장 생활을 하는 박준모-박미정 부부, 두 사람의 명절은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하는 대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불효 캠핑을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서로를 집이라는 직장의 동료라 칭하는 두 사람은 아기 대신 고양이를 키우고, 육아 대신 자기 계발을 위해 기꺼이 2년간의 해외 근무를 자원한다. 

물론 결혼도 하고, 아기를 낳은 부부도 있다. 만화가 김영석-전정미씨 부부, 그들은 서울 살이 대신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으로 내려와 아이를 낳았다. 함께 아이를 돌보는 두 사람의 일상을 채우는 것은 그들의 이쁜 아들, 그래도 남편은 만화 연재를 계속하지만, 아내는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아 주기 시작한 최근에 이르러서야 다시 만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단돈 500만원으로 결혼하기 란 만화로 이름을 알렸던 부부, 하지만 부부는 입을 모아 말한다. 결혼은 돈을 안들이고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무조건 주변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아이러니하게도 2부의 다큐에 등장한 세 쌍의 부부, 그 세 커플 중 인간의 아이는 오로지 한 커플에게만 있다. 나머지 커플의 아이는 개와 고양이, 인간의 아이보다, 동물들이 '아이' 노릇을 하는, 결혼을 어찌어찌 했지만, 아이는 부담스러운 현실을 다큐는 의도적이지 않게 증명하고 만다. 

물론 다큐는 이제 막 불투명한 앞날에도 불구하고 , '사랑'이란 이름만으로 결혼을 감행한 부부의 인터뷰를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1부에 이어, 2부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2부 마지막의 그 희망적인 언급이 마치 인지 부조화처럼 느껴진다. 아직 남편이 학생이라는 부부는 그 평균 2억 7천만원이라는 결혼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결국 '북경 토박이'의 화려한 결혼식처럼 부모님이라는 뒷배가 없었다면 그렇게 '사랑'이란 이름을 내걸고 결혼을 감행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 육아의 도움을 받는 만화가 부부는 또 어떻고. 야심차게 이제 직장도 생겼으니 결혼을 해볼까 하다가, 실제 결혼 준비 과정에서 멘붕에 멘붕을 거듭하다, 졸업하자 마자 등록금 융자를 갚다가, 그게 끝나니 주택 융자, 그게 또 끝나면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없을 현실과 미래의 삶에 눈물을 보이고 만 피디처럼 2부작 <우리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는 청춘들을 자발적 비혼으로 떠밀어 버린 사회, 결혼이 미친 짓이 된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들고 있던 건강한 노동의 기본 단위였던 '가정'을 제도 자체가 파괴하는 딜레마를 증명한다. 과연 청춘들의 건강한 재생산조차 보장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 가치가 있을까? 


by meditator 2016. 11. 1. 05:52

구글에서 '길거리'를 검색하면 어떤 것들이 뜰까? 영어(street)나 일어(‘通り)로 검색하면 일반적인 길거리 사진들이 뜬다. 하지만 한국어로 '길거리'를 검색하면, '맙소사!', 거리의 풍경 대신 짧은 치마나 반바지, 스키니를 입은 여성들의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촬영한 '몰카'사진들이 대거 뜬다( 10, 16일 여성신문 보도)


이는 대한민국이 몰카의 왕국임을 증명한다고 '여성신문'은 결론내린다. 이에 덧붙여,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관음적 행위'의 결과물인 '몰카'에 대해 대다수의 남성들이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우스개처럼 혹은 마치 훈장인 양 여성을 훔쳐보는 것을 관행화시킨다. 그래서 수영 선수로 부터 의대생, 의사, 경찰 등 평범한 사람들이 몰카를 찍은 혐의로 법적인 수사 대상이 된다. 



관음이 일상화된 대한민국 
이러한 우리 사회의 '관행적'인 관음적 범죄를 통해 드러난 것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공간 '길거리'가 사실은 여성들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요, 심지어 그녀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범법 장소'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0월 30일 방영된 <sbs스페셜-불안한 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여성들이 안심할 수 없는 '일상의 공간'에 시선을 돌린다. 

여성 중 70%가 넘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잠재적으로 범죄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왜? 남성과는 다른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혹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받은 교육때문에. 하지만 다큐는 바로 그 여성들의 공포의 근원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공간의 공포로 부터 비롯된 바 크다고 주장한다.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치안의 질서가 안정되어 있다는 대한민국, 그러나 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실존은 드러난 치안율의 수치와 다르다. 실제 강력 범죄 희생자 중 84%가 여성, 전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살해되는 몇몇 나라에 속하는 대한민국, 그것이 바로 여성들이 안심하고 '거리'를 나다닐 수 없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공포가 된 일상적 공간 
이런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다큐는 실제 사례로 접근한다. 바쁜 일과에 틈을 내어 자신의 몸을 단련하는 여성, 그러나 그 여성의 속내는 복잡하다.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잠시 찾아간 화장실, 거기서 만난 취객은 다짜고짜 그녀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동료들의 제지로 더 이상 폭력은 없었다지만, 그녀에게 그 남성의 억센 손길과, 폭력적인 태도와 눈빛은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다. 가장 대중적인 장소인 화장실, 하지만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곳은 여기 뿐만이 아니다. 

이 글의 처음에서 등장한 길거리는 '몰카'를 넘어 여성들에게는 언제라도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공간'이다. 해가 진 거리에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으슥한 골목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같은 장소를 향해 가는 오빠와 누이 동생, 하지만 그들의 행보는 다르다. 지름길이라는 이유로 일직선상의 어두운 골목을 덤덤하게 향하는 오빠와 달리, 여동생은 큰 길을 에돌라 약속 장소로 온다. 외향적인 성격임에도 늦은 밤 귀가가 두려워 일찍일찍 집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여동생은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거리에 식구들의 마중을 받는다. 

거리만이 아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이동수단이 된 지하철, 그리고 건물 내의 이동수단이 엘리베이터에서도 늘 여성은 '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홀로 탄 엘리베이터, 그리고 사람으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늘 여성은 긴장하고 두려움에 떤다. 

그렇다고 집이라고 안심이 되는 건 아니다. 홑가구가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 홀로 사는 여성들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너무나도 많다. 집앞에 몰래 달아놓은 몰카를 통해 비밀 번호를 알아내, 늦은 밤 도어락을 여는 검은 손, 그리고 혹시나 거리에서 부터 쫓아온 괴한이 혹시라도 집까지 쫓아올까 집에 들어서도 한 동안 불을 켜지 못하는 안슬픈 상황이 우리 여성들의 현실이다. 



이렇게 일상의 공포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공포심은 실제 공포 영화를 볼 때보다도 더 극심했다. 더욱이 언젠가 단 한번이라도 겪은데서 잠재되어 있는 트라우마는 언제나 비슷한 상황이면 공포를 되살려 낸다. 

여성학자들은 인류 역사의 지난 2000여년간을 남성 지배의 역사라 규정한다. 남성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약자로서, 을로써 언제나 그 존재를 보장받기 힘들었던, 그래서 자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 그나마 당당해졌던 여성. 거기에 한국 사회가 가진 전근대성은 그런 남성 중심 사회의 퇴행적 모습을 강화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관행화되었던 '성적인 관례'들이 앞다투어 고발되어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들은 여전히 육체적 약자로서, 그런 여성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분노를 투영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키는 남성들에 의해 여전히 삶의 공간 곳곳에서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을 다큐는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여성들의 존재론적 공포감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by meditator 2016. 10. 31. 05:48

누군가는 그럴 지도 모른다. 아직도 해? 라고. 2009년에 시작해 벌써 햇수로 8년 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요일 밤, 아니 금요일이라고도 말하기 민망한 밤 12시하고도 한참 넘은 30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유스케는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마치 그 예전에는 <수요 예술 무대>를 비롯하여 '음악'이 목적이었던 무대들이 늦은 밤이라도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었다. 


하지만 마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 앞 인디 뮤지션들의 무대가 사라지듯, '시청률'이라는 방송의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은 '음악'만이 목적이었던 프로그램들을 하나 둘씩 잠식하고 이젠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물론 '음악' 프로그램들이 없는 건 아니다. <뮤직 뱅크> 등도 건재하고, <복면 가왕>처럼 새롭게 인기를 끈느 프로그램들도 눈에 띤다. 하지만 아이돌도, 아이돌이 아닌 가수들이 온전히 자신의 노래만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제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생존해 있다. 이제 '노래'도 예능이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마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승한 임대로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홍대 앞 공연장과도 같다. 



10년 생존을 위한 야심찬 포석 
애국가 시청률보다도 낮은 1,2%의 시청률로 안간힘을 쓰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처음엔 프로그램의 '품격'을 위해 버티던 '아이돌' 등에게 무대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건 프로그램의 성격을 하향평준화시키며, '유스케'만의 고집에 애착을 가지던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아이돌 위주의 프로그램인 <뮤직 뱅크>등이 낮은 시청률을 고집하듯, 생각 외로 그들의 합류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시청률엔 도움이 안됐다. 이제 노래도 '복면'을 쓰거나, 남의 노래를 새롭게 편곡하거나 해야 볼거리가 되는 세상에, 일찌기 그런 시도를 앞서서 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늦은 밤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기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이제 10주년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한 새로운 포석을 둔다. 그 방식은 '음악'이 예능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원론적'인 방식의 접근이다. 바로 '월간 유스케'의 형식을 띤 한 가수의 온전한 콘서트로 꾸며진 한 시간이다. 



월간 유스케, 익숙한 용어의 조합이다. 그렇다. 일찌기 월간 윤종신이 있었다. 2010년 4월부터 시작하여 2016년 10월 50호가 된 윤종신의 디지털 싱글 앨범이다. 이는 기존의 앨범 단위로 신곡을 발표하는 것이 뉴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그 의미가 퇴화해 가자,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고자 아티스트 윤종신이 마련한 플랫폼이다. 과연 예능인으로서 분주한 윤종신이 가능할까?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이제 햇수로 6년째, 50에 이르렀다. 

이렇듯 월간 윤종신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유연한 적응이듯이, 10월 29일 첫 선을 보인 <월간 유스케> 역시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서의 새로운 모색이다. 우선 그간 애매했던 불금의 밤 대신, 조금 더 여유로운 토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그리고 매달 한번씩 한 아티스트가 온전히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특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그간에도 신곡을 낸 뮤지션이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음악을 서너곡씩 불러주는 코너가 있었다. <월간 유스케>는 그런 코너의 확장판이다. 최근 내노라하는 가창력있는 가수들이 설 무대라는게 듀엣으로 부르거나, 타인의 곡을 재해석해서 부르거나, 일반인과 함께 해야만 가능한 상황에서, 월간 유스케는 오히려 그런 흐름에 역행하는 가장 본원적인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선택을 한다. 



창간호, 그 이름값에 걸맞았던 박효신 
그리고 그 첫 무대는, 야심찬 포석답게 최근 7집 앨범 <I am a dreamer>로 앨범 차트를 석권한 박효신이다. 무엇보다 박효신의 무대는 방송 출연이 흔하지 않은 그의 7년만의 방송 출연이라는 점, 거기에 199년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통해 방송을 데뷔했던 그의 기념비적인 복귀라는 점에서 '월간 유스케"의 창간호에 걸맞는 무대가 되었다.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밤을 뜨겁게 달군 그의 콘서트는 지난 야생화 앨범에 이어 다시 그와 작업을 한 정재일의 피아노 반주에 맞춘 그의 새 앨범의 '꿈',  '홈(home)' 등의 신곡과 이전 앨범의 야생화 그리고 군대 가기전 앨범의 히트곡들이 메들리로 불리워졌다. 이날 박효신의 방송은 이미 그의 콘서트가 거의 10분만에 매진되듯, 5만 여명의 신청자로 화제가 되었고, 바뀐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연만으로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는 등 그간 아쉬웠던 유스케의 화제성을 단번에 회복시켰다. 음원이 아니고서는 그의 음악을 듣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의 달라진 음색에 갑론을박하며 그의 복귀를 반겼고, 덕분에 창간호, 거기에 월간 유스케라는 야심찬 포석이 헛된 시도가 아니었음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증명했다. 그저 숙제는 이런 박효신의 화제성을 이을 다음 호, 그리고 특집이 아닌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의 입지를 예능으로서의 음악이 융성한 시대에 마련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0. 30. 03:36

<썰전>에서 전화로 인터뷰한 이재명 시장의 말처럼 전국민이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시간까지는 참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무능과 부패의 주체가 국민들이 권력을 이양한 대통령이 아니라, 그 배후의 듯도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한 개인과 어처구니없는 개인적 친분의 측근들이라니, 연일 그들의 정체와 그 정체를 둘러싼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연의 실마리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보도를 접한 시청자들은 '어이를 상실'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나비 효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의 근원은 깊다. 범서방파가 구속이 되고 그 수사 과정에서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의 100억대 도박 사건이 터졌다. 한 개인의 도박 사건은 다시 그의 롯데 면세점 선정 로비 의혹을 통해 롯데 그룹으로 확대되고, 롯데 비자금 수사의 불을 당긴다. 또한 동업자 김모씨의 폭로로 홍만표 변호사가 전관 예우로 막대한 이익을 취득한 것이 드러나고 거기서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연결 고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기에 조선일보는 넥슨의 뇌물을 받은 진경준 게이트에 더해 우병우 부동산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우병우 게이트는 윤곽이 커져간다. 우병우가 문제의 중심이었던 사건, 하지만 우병우를 비호하기 위해 청와대가 이의 문제 제기를 한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비난하고, 이에 조선일보는 k스포츠와 미르 재단에 청와대가 압력을 넣어 기업들로부터 상납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다시 대우조선 해양 접대로 송희영 주필이 사퇴하는 등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일진일퇴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겨레가 조선일보가 제기한 k스포츠와 미르 재단의 중심에 최순실이 있다는 것을 폭로하며 드디어 최순실이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와 맞물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 및 학사 처리 과정에서의 부당한 대우 등을 기사화시키고 이에 이대 학생 및 교수들의 반발로 이어지며 이른바 이 정권의 실세 최순실이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치 나비의 날개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키듯 한 기업인의 도박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국정을 농단한 배후 인물의 실체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검찰의 수사와 그에 맞물리는 언론의 보도 사이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사건과 사실, 그리고 가쉽이 뒤엉킨 형태를 지닌다. '도박'이라는 파렴치한 사건은 집권 세력의 도덕적 불감증내지는 부도덕으로 이어졌고, 한 여학생의 부정 입학과 더 부정한 학사 행위라는 개인적 파행은 결국 k스포츠와 미르 재단이라는 국정 농단의 사태와 동전의 앞뒤면처럼 밀착된다. 사람들은 가쉽처럼 사건을 들여다 보다, 결국 정권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고, 언론의 가쉽성 폭로 기사는 결국 정권의 목줄을 죄는 단죄성 결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이제 손석희라는 인물을 전국민적 영웅이라 해도 반발심이 들지 않게끔 지난 월요일 이후 <jtbc 뉴스룸>을 통해 그간 구름잡듯이 그려져 왔던 최순실이란 인물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 지고 있다. 이에 그간 눈감고 귀막으며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방송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다투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사안들을 너도 나도 폭로하기에 나선다. 



폭로와 가쉽의 프레임 속에서 
그도 그럴 것이 최순실의 가장 최측근이라 하여 각종 실권을 행사했던 고영태의 전직은 의심스러우며, 그와 최순실, 그리고 '황태자'라는 전근대적 별칭으로 불리는 차순택이라는 인물이 만나게 된 과정은 너무도 '사적'이니 화수분처럼 파도파도 폭로할 꺼리가 넘치니 말이다. 독일로 달려가 최순실의 행적을 쫓는 jtbc의 특종을 뒤따라가는 종편 등의 보도 프로그램은 그런 빼앗긴 특종 대신 가장 손쉬운 '신상 털기'식의 가쉽성 보도로 앞다투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래서 이제 그간 입을 꾹 다물었던 kbs가 정유라와 관련된 사안들을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종편들은 고영태와 관련된 과거 사실과 그에 관련된 연예인들을 입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고영태의 과거 사진 속 연예인의 실명을 들먹이고, 고영태가 관여한 연예인 야구단에 함께한 연예인들을 손가락질 한다. 또한 또 다른 실세로 등장하는 최순실 언니의 딸 장시호(장유진)이 과거 친분이 있다는 연예인들의 이니셜로 퍼즐 게임을 하도록 유도한다. 

대통령의 뒤에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을 비롯한 그 측근들에 대한 이렇게 흘러넘치는 가쉽성 기사는 국민들을 '수치'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쉽게 그들을 '조롱'하게 된다. '무당'이나, '호빠'라는 단어로 폄하하며 비웃는 것으로 '분노'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심지어 그러다 보니, 김주하 앵커처럼 그런 사람들에게 당한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식의 동정론으로 유도되기도 한다. '미친 년'에게 당한 '정신 나간 사람' 수준으로 사건의 프레임이 변화된다. '조롱'은 쉽지만, '분노'에는 '실천'이 따른다.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또 다른 가쉽이 없나 찾아 헤매는 사이 분노의 열기는 어느새 연예인 가쉽 뒤지던 그 습관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난 여름 우병우 사건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사건이 무엇이었나를 최신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들보다 미디어 영향력이 컸던 연예인은 술집 여성의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한 남성 연예인이었다. 검찰 수사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연예인과 달리, 검찰 조사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여러 언론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던 성폭행 당사자라는 여성과 그의 친척이라던 사실상 조폭 집단의 확인 되지 않은 사실을 쏟아부었던 것이 바로 지금 최순실과 그 측근들의 가쉽을 '정의로운' 양 쏟아내고 있는 언론들이라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앞서 기억해야 사실도 있다.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대통령의 7시간을 비롯하여, 해경의 수상한 행동, 그리고 사건을 덮고 무마하려는 시도 대신, 엉뚱하게도 유병언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의 이상한 종교와 행태, 그리고 그의 추적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도 바로 지금의 최순실과 그 측근들의 '사실'들을 쏟아부었던 언론이라는 것이다. 



지난 여름과 2014년 세월호 사건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그 하나는 사건을 가쉽화하고, 그것을 대중들이 가장 만만한 먹잇감으로 여기는 연예인으로 귀결시킨다는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실체가 드러나기 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얼마나 '고소'를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성 연예인들이 대중들의 도덕 재판에 끌려나왔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손쉽게 호기심에 그걸 클릭하고 욕을 하는 동안 얼마나 중요한 사건들이 묻혀졌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중 기혼의 한 연예인은 실제 가정사의 아픔까지 겪게 되었는데, 과연 그게 그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 책임만일까? 그저 한 개인의 사적 문제, 혹은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유명인의 억울한 무고 사건, 그게 아니라도 검찰 재판 결과까지 기다려도 될 사건을 앞서가며 여론 재판으로 끌어들이며 신물이 나오도록 씹도록 만들었듯, 이제 또 다시 최순실과 관련되어 연예인 이름이 오르내리는 프레임의 변화를 그래서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유병언 사건과 최순실 사건의 공통점은 똑같이 대중들이 이질적으로 여기는 '종교'를 들먹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등을 믿는 국민이 다수인 현실에서 '사이비'라는 말은 곧 '적대감'을 자연스레 발산시키고, 동시에 우리 밖의 적이라는 감정을 부추긴다. 또한 이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저 미워하고 밀어내야 할 대상으로 상대방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이비 교주, 혹은 무당이란 프레임은 사실 그가 진짜 해치워 버린 정권 차원의 비리를 뒤덮어 버리고, 그저 '나쁜 사람'이란 대상으로 단순화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는 대신, 돌 몇 개 던지는 것으로 침 뱉어 버리는 것으로 분노를 단순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몇 달동안 질리고 질리게 유병언을 떠들던 그 시절의 종편은 실컷 떠들고 나더니, '지겹다'라는 프레임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기에 가쉽에 혹해 쉬이 지겨워 지지 말고 사건의 본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형광등이 백개 켠 아우라'라며 떠들었던 조선일보가 이제 가장 우국의 선봉대가 되어있는 상황, 엊그제만 해도 용비어천가 부르짖던 여타 종편과 공중파가 앞다투어 '사건'을 '가쉽성'으로 끌고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여당이 한 통속이듯, 그들도 한 통속이었다는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또 다시 그들이 제시하는 프레임에 시선을 빼앗긴 채 이 정국의 주도권을 넘겨, 그들이 원하는 다음에 끌려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0. 28. 18:08

별일 아니'라고 했지만 별 일이 아닐 수 없덨다던 최수아(김하늘 분)는 자신의 일상을 흐트러트린 서도우(이상윤 분)와 이별을 한다.  3무 사이라, 그리고 2무 사이라 애써 자신들을 변명하며 서로를 놓지 않으려던 했던 두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몰려온 개인사들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를 핑계대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불륜'을 핑계대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11회 제주의 공항에서 결국 다시 조우하고 만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드라마는 '불륜'을 정당화하기 위해 '운명'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의 운명적 재회를 통해 <공항 가는 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운명'처럼 보이는 '재회'의 필연이 아닐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 10월 10일에서 13일까지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3부작은 대한민국 부부의 현실을 들여다 보고자 했다. 전통과 개인의 중간 지점에 놓인 한국의 결혼, 그래도 현재 한국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 남녀의 결합이다. 하지만 '사랑'의 관계로서 결혼은 아이의 출산과 함께 그 '사랑'의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해 간다. 즉 대한민국 부부는 사랑하는 개인의 결합을 넘어 남편은 돈을 벌어다주고, 아내는 아이를 키우는 자녀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 기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된 부부의 성격은 아이가 다 성장해서 부모의 품을 떠날 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그때까지 대한민국에서 부부로서 살아가는 만족도는 현격하게 떨어진다.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 자녀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서 부부의 현실에서 시작된다. 서도우-김혜원 부부, 두 사람은 비록 서도우의 친자는 아니지만 '애니'라는 아이를 매개로 시작된 부부이자, 애니를 아껴주는 할머니, 형과 같은 민석(손종학 분)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이룬다. 민석이 친형은 아니지만, 도우가 돌아가신 어머니만큼 믿는 형이듯이, 애니가 친자는 아니지만 도우도, 애니도 가장 애틋한 부녀지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진짜못지 않던 유사 가족은 친모 혜원의 도발로 인한 애니의 죽음으로 파괴되어간다. 애니가 죽고, 애니의 죽음을 애처로워하다 자신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애니에 대한 아내의 배신을 알고 분노하며, 결별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수아네 역시 마찬가지다. 애니와 룸메이트였던 수아의 딸 효은(김환희 분)은 애니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런 딸의 고통을 공감한 수아는 무작정 말레이시아에서 딸을 데리고 귀국한다. 하지만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박진석(신성록 분). 국제화 시대의 경쟁력을 내세우던 현실주의자인 그는 아내의 무모한 결정에 분노하고 아내의 직업으로 인한 육아의 공백을 아내와 딸을 시어머니 집으로 강제 입주시키는 것으로 분풀이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남편, 홀로 남겨지는 딸을 견디지 못한 수아는 결국 사표를 쓰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국제학교' 행이라 거짓말을 하고 딸과 함께 제주도로 향한다. 

양육의 경제적 단위로서의 부부, 그 이면엔?
이렇게 드라마는 '자녀 양육 단위'로서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부부로서의 그 기반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가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 때 두 부부를 들여다 본다. 

애니의 죽음이후 급격하게 파괴되어져가는 서도우 부부, 하지만 그건 '애니'라는 의붓딸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딸 애니를 미혼모로 자신이 어렵게 키워왔던 딸이라 속인 혜원은 딸을 이용하여 서도우와 결혼해야 할 만큼, 서도우, 그리고 재벌가와 막역한 인간문화재 그의 어머니 고은희 여사(예수정 분)의 그늘이 필요했다. 결국 애니와 고은희 여사의 죽음 이후 벌어진 사이는 이 부부를 부부로 포장해 왔던 포장지가 사라진 부부로서의 민낯을 드러낸다. 

수아와 진석의 부부도 다르지 않다. 딸 효은의 육아로 인해 번번이 충돌하는 부부, 아내를 자네라 부르며 '가부장'적으로 군림하는 남편 진석은 아내의 의사는 커녕, 아내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조차 짜증내 한다. 아내와 딸이 없는 집에서 홀로 자유로워하는 남편, 그리고 오래전 연인이었던 아내의 친구 송미진(최여진 분)에게 거침없이 도발하는 남편, 무엇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양육과 아이의 생각을 먼저인 양육 태도를 상징으로 대립되는 두 사람의 가치관은 자녀 양육의 단위로서 부부의 삶조차 충실해 질 수 없게 된다. 

결국 드라마는 '자녀'라는 대한민국 부부의 허울을 벗겨버리고 난 자리에 이질적인 두 사람으로 남겨진 두 부부의 민낯을 펼쳐보인다. 불륜이 문제가 되었을 때, 과감히 둘의 관계에 공백을 제시할 만큼, 최수아나 서도우에게 있어, 불륜이 가정 파괴의 주범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파괴된 부부'가 있었음을 드라마는 설득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아내가 외면한 애니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수아에게 마음이 열렸던 도우,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때 수아를 품어주었던 도우처럼 서로의 '정서'만으로 무작정 서로에게 끌렸던 두 사람이 이제 제주에서 다시 조우하게 함으로써, <공항 가는 길>은 그저 불륜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교감으로서 불륜을 생각하고자 한다. 

물론, 아직도 박진석의 아내이고, 김혜원의 남편인 두 사람은 여전히 결혼이란 제도 속에서 놓여있다. 그러기에 그래도 불륜은 불륜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저 막연한 끌림으로 혼돈에 빠졌던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삶을 '느리게', '새롭게' 시작하는 제주에서의 만남은 삶의 방향을 정한 이후의 또 다른 각도의 불륜을 전개하게 한다. 과연 삶의 태도에서조차 결단을 내린 두 사람은 이제 다시 운명적으로 찾아온 이 필연의 만남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이런 수아와 도우의 이후의 행보를 통해, 드라마는 '자녀'라는 허울에 씌여 사는 부부들을 거울 앞으로 내몬다. 

by meditator 2016. 10. 27.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