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평양까지 이만원>은 어쩐지 반갑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산다는 정체불명의 청년, 그 청년의 숨겨진 사연을 풀어가는 단막극은 일찌기 <베스트 셀러 극장> 혹은 <tv문학관>을 통해 소개되었던 익숙한 플롯의 작품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래전의 단편 소설을 읽은 듯 '고전적인 소재와 주제 의식'을 깔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물론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시대와 엇물리지 않은 구름잡는 이야기같을 수도 있겠지만, 출생의 비밀과 그로 인한 청춘의 고뇌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음을 고통받게 하는 가장 '본원적'인 주제 중 하나이니, <평양까지 이만원>은 서가에서 고전을 꺼내 통독하는 느낌으로 오래된 듯하지만, 그래서 신선한 감상으로 다가온다. 



구부러진 못, 영정 
대리 운전을 하는 한 청년이 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규칙을 위반한 다른 대리운전 기사에게는 씨알도 안먹히게 단호하던 그가, 사장조차도 의심스럽다는 서울 한복판의 산동네 길에서 만난 아줌마가 꽃을 한 송이도 못팔았다고 하자 선뜻 지갑을 연다. 화장실은 수리중이고, 방안 전등은 댕강 끊어졌는데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한다. 도대체 왜?

그의 모호한 정체가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은 그를 찾아온 신부님으로부터이다. 그를 동생처럼 여기는 차준영 신부(김영재 분), 그와 함께 술을 먹으며 사제를 하지 않겠다고 뛰쳐나간 그가 그렇다고 세속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있다며 놀린다. 하지만 그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듯 연신 걸려온 전화에 당황한 듯 자리를 뜬 신부의 뒤로 나타난 소원(미람 분)과 뜻하지 않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부제직까지 수여받은 후 뛰쳐나온 박영정(한주완 분), 그리고 그의 주변에 느닷없이 등장한 여성 소원과, 그녀로 인해 가장 그와 막역하던 관계에서 불편한 긴장이 팽배한 관계로 변한 차신부의 현실적 갈등은 이후 드러날 박영정의 환속의 사연과 맞물린다. 그가 본의 아니게 얽혀든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사랑의 굴레는 그로 하여금 환속을 풀어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 계기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구부러진 못'이다. 박혀있다 뽑혀나온 못, 그 형상은 흡사 사제의 길을 가다 이제 하루하루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영정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그렇게 속에 머무르지만 정처없는 영정처럼 구부러져 쓸모가 없어진 못을 그가 만난 소원은 기꺼이 거둔다. 그것이 악마를 쫓아주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부적이라며. 

하지만 소원이 말한 그 구부러진 못의 부적의 주문은 이후 차신부의 입을 통해 재연되고, 술자리에서 그의 토로에 따르면 그건 그가 외면했던 어머니의 미신이었던 것으로 인연의 끈을 풀어간다. 그는 외면하지만 소원과 차준영을 통해 그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 보게 되는데, 거기엔 지금 그가 얽힌 관계처럼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과거의 악연이 있다. 그리고 그 '악연'은 그로 하여금 사제직을 떨치고, 어머니를 모르는 사람이라 외면하는 현실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그리고 용서 
가장 간절한 순간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 기도를 하게 되는 영정, 그로 인해 그는 비로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도망치려 한 그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어깃장을 놓으려 했지만 차신부와 소원의 진심을 외면할 수 없었던 영정, 그들을 통해 그는 비로소 '사랑'을 용서하게 된다. 차신부와 소원의, 그리고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하지만 아버지였기에 자신을 신부직에서 토해놓았던 또 한 분의 신부님과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고 뒤늦게 펼쳐본 아버지로써의 사랑을.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다. 구부러진 못 그 전설의 시작을. 마치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사랑했다는 아버지의 고백처럼, 그 사랑은 '구부러진 못'을 행복의 메신저로 변화시켜, 자신을 구부러진 못으로 내던져버린 영정을 찾아온다. 그리고 그 미신과도 같았던 전설은 그가 차신부와 소원,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으로,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으로 본분을 다한다. 그의 아버지는 마치 그가 그럴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겨진 편지에 구부러진 못을 그려놓았었다. 결국 우리에게 '용서'라는 힘을 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평양까지 이만원이란 제목답게 드라마의 마지막은 처음과는 다른 밝은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은 영정의 모습을 마무리된다. <평양에서 이만원>은 그 흔한 '사랑'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고전적인 주제이지만, 2016년에는 가장 생경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 생경하고도 고전적인 주제를 풀어가기 위해, 현실에 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있는 '신부'라는 소명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드라마는 종교직으로서의 신부 이전에 '인간'의 사랑을 논한다. 그리고 로만 칼라를 벗어버린 차신부와, 영정을 잉태하였음에도 신부로서의 소명을 성실히 수행한 존경받은 신부로 남은 그의 아버지를 통해, 용서와 사랑의 한계를 묻는다. 그리고 출생으로 인해 소명으로 부터 튕겨져 나온 영정의 방황은 성과 속의 포용을 반문한다.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이 시대에 생뚱맞은 하지만 언제나 영원불멸한 진리인 '사랑'과 '용서'를 설득한다. 


by meditator 2016. 10. 24. 05:55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란 속담이 있다. 

일찌기 유교 문화권이었던 우리 나라에서는 죽은 조상은 확실히 모셨지만,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한 존중이라기 보다는, 그 '죽은 조상의 음덕'으로 현실 세계를 잘 살게 해달라는 현세주의적 욕망이 앞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단 속담은 바로 그런 우리 문화의 현실적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주고 있다. 

첫 회 다짜고짜 여주인공에게 '암선고'를 내렸던 <판타스틱> 16부의 대장정을 마치며, 그래도 여전히 여주인공을 살려놓는다. 개똥밭은 커녕, 사랑도, 일도, 삶도 '행복'에 겨워. 하지만 그저 '살려놓았다'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라고 한다면 <판타스틱>이란 드라마에 대한 '오독'이 될 것이다. 남녀 주인공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때론 그가 진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었던 홍준기(김태훈 분)을 통해 인생의 끝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죽음, 즉 웰다잉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남긴다. 



암선고를 받으며 시작된 '시한부 로코'
잘 나가는 방송 작가 이소혜(김현준 분), 하지만 방송 작가로서 성공적인 외양과 달리 그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작가라지만 막상 새로 들어가는 작품에는 '발연기'의 대가라는 한류 스타 류해성(주상욱 분)이 주인공을 맡아서 대본 리딩에서부터 실소가 터지게 만드는가 하면, 개인사에 있어서도 유일한 혈육인 오빠와 언니는 늘 그녀에게 손을 벌리는 처지다. 바쁜 삶, 기댈 곳 없는 인간 관계, 그런 그녀에게 느닷없이 '암'이라는 재앙이 찾아왔다. 

그렇게 드라마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여주인공에게 '암'이라는 데미지까지 주며 최악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뜻밖에도 인생의 암담한 종착역이라 생각되었던 '암'선고 이후 그녀의 삶은 오히려 '역전'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이 드라마 <판타스틱> 16부의 여정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삶을 달리 만든 건 바로 그녀의 주치의 홍준기다. 드라마를 쓰기 위해 도움을 받으러 찾아간 그, 그의 권유로 생각지도 않았던 건강 검진을 하게 되고 '암'선고를 받아 망연자실해 있는 그녀에게 홍준기는 전무후무한 서브남으로 찾아온다. 그녀의 주치의지만, 그 역시 암 투병 환자임을 밝힌 홍준기는 '암'으로, 그리고 그 보다 더 막막한 삶으로 주저앉아버린 그녀에게 '암' 선고가 인생의 끝이 아님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때론 그녀 앞에 발연기 남주로 등장하여 첫사랑의 사연을 지닌 지고지순한 해성과의 연적으로 아웅다웅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좌절하고 절망하는 암환자 그녀에겐 때론 환우로, 때론 주치의로, 그리고 결국은 '죽음'의 멘토로 16부의 여정을 함께 했던 홍준기를 통해 이소혜는 변화한다. 

이소혜보다 앞서 암을 선고 받았기에 결국 이소혜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 그, 하지만 '죽음에의 여정조차, '소풍'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홍준기는 '웰다잉'의 표본을 보여주며 앞서간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소혜에게 선물한 앨범을 통해 드라마 초반 우울한 가정사에 쉴새없이 사건 사고가 터지는 일 속에서 삶의 활기라고는 없던 그녀가 오히려 암 이후 얼마나 밝아지고 활기차 졌는가를 보여주며 결국 삶은 '어떤 병이나 사건'이란 외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죽은 이후 조차도 이소혜의 '섬망'으로 등장하여, 삶에의 의지를 북돋는다. 그리고 그런 홍준기를 통해 시청자들조차 그를 멘토로 삼아, 삶과 죽음을 반추해보도록 드라마는 유도한다.

죽음의 멘토,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삶의 멘토가 된 홍준기를 통해, 삶의 절망에 빠져있던 이소혜와, 소혜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던 해성이 변화하고 성장하고,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로코'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드라마는 '암'과 '죽음'을 배경으로 하지만, 우울하거나 칙칙하지 않고 그 어떤 로코보다 역동적인 사랑과 삶의 과정을 다룬다. 결국 홍준기는 멘토와 서브남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한 후 그의 보람된 인생을 천상병 시인처럼 '소풍'으로 설명하며 생을 마감한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웰다잉, 그리고 소풍같은 삶 
홍준기를 웰다잉으로 이별한 대신, 드라마는 '로코'의 본분을 살려, 여주인공 이소혜를 사랑의 힘으로 살려낸다. 홍준기는 소풍을 마치고, 이소혜의 소풍은 끝나지 않았지만, 끝나고 끝나지 않고 여부를 떠나 암과 죽음을 화두로 삼았던 드라마는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 의지를 개진한다. 그저 자신에게 몰아닥친 삶에 휘말려 한 세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소풍'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즐기고 보람을 찾을 것을 주장한다. 그런 잘 죽기 위한 건강한 여정으로서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인해, 암과 죽음을 담은 드라마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삶에 대한 생생한 의지로 가득찼다. 

그 덕분에 일 중독이었던 이소혜는 홍준기, 류해성의 사랑을 통해, 일도, 사랑도, 관계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되찾았고, 철부지같았던 한류 스타 류해성은 연기 변신은 물론, 최진숙의 손아귀를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는 사랑의 주체로 거듭났다. '로코'답게 사랑하고 성공했지만, 암' 투병을 넘어설 만큼 건강했다. 그것이 가능케 한 것은 이제는 그 어떤 역할에서도 안정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는 김현주의 연기와, '발연기 한류 스타'라는 배우로서는 난감한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며 연기 지평을 넓힌 주상욱,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연적이자, 멘토로 판타스틱이란 드라마의 주제를 넉넉하게 이끌어낸 김태훈의 변신에 힘입은 바 크다. 

앞서 <청춘 시대>를 통해 2016년 현실에 걸맞는 청춘에 대한 신선한 해석으로 화제가 되었던 jtbc 금토 드라마는 그 뒤를 이어 또 한번 '죽음'이란 화두를 '로코'로 변주해 내며, 치열한 주말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다. 특히나 <추적자>, <황금의 제국>의 조남국 피디가 jtbc로 이전하며 <라스트>에 이어 새로운 장르로 선보인 <판타스틱>은 여전히 최진태(김영민 분) 일가를 둘러싼 비리를 그려내는데 있어서는 그의 날선 감각이 변함없음을 아낌없이 보여주는가 하면, 발연기 남주에, 시한부에 작가인 여주인공, 거기에 멘토이자 서브남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버무린 신선한 '로코'로 조남국 월드의 가능성을 확장해 보였다. 


by meditator 2016. 10. 23. 11:57

만약 저녁 무렵 당신의 집에 낯 모르는 그 누군가가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해달라고 한다면?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그 누군가가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라면? 그에 대한 반가움은 있겠지만, 그래도 준비되지 않는 우리집 저녁 밥상을 '개그맨'을 빙자한 방송에 공개한다는 건 어쩐지 무리수다. 차라리 아쉽고 말지. 10월 19일 첫 선을 보인 <한끼 줍쇼>의 1회을 요약한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결국 큰 소리를 치며 숟가락 하나만을 달랑 들고 야심만만하게 떠난 강호동과 이경규의 여정은 7시간의 행보 끝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궁여지책 편의점에서 식사하는 여고생들 틈에 껴서 컵라면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음 회를 기약하며, 그런데 다음 회엔 가능할까?




이경규, 강호동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저녁을 잃어버린 삶
지금도 재래 시장에 가면 간혹가다 만나기도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에 경문을 외며 집집마다 '보시(施)'를 받으러 다니는 탁발승이 있었다. 스님은 음식을 얻으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그를 통해 자신의 업을 덜 수 있다하여 '구원'해주는 길이라 당당했다. 이렇게 '보시'가 가능했던 것은 담이 낮았던, 그리고 담만큼이나 인심이 넉넉했던 우리 집과 외부가 열린 '마을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오늘날이라면 아파트라면 경비실을 넘지 못할 것이요, 혹시라도 넘는다 하더라도 당장 업무가 불성실하다 경비 아저씨가 경고를 먹을 일이 될 것이다. 단독 주택이나 빌라라면 문이 열리기는 커녕, 인터폰으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시골이라면 다를까?

그래서일까? 도시의 이경규와 시골의 이경규는 달랐다. 지난 6월 22일 종영한 <예림이네 만물 트럭>을 몰고 오지를 돌던 이경규는 그의 딸 예림이와 유재환과 함께 시골 마을을 누볐다.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드리는 목적에서 였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홀로 계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집에서 이경규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마을 노인정에서도 무사통과였다. 하지만 그렇게 어르신들에게 프리패스였던 이경규가 '도시'로 오니, 그의 '자신만만'이 무색하게 옹색해 진다. 당장 거리로 나서니, 그의 수제자이자, 파트너라는 강호동의 너스레는 백발백중인 반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싶게 인지도부터 떨어진다. 

하지만 강호동의 너스레라고 다 통하지는 않는다. 제 아무리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천하장사'를 내세워도 닫힌 문은 요지부동이다. 예능 대부 이경규라는 이름표도, 철 지난 강호동의 '천하장사'란 타이틀도 무색해지게 결국에 쫄쫄 굶고 만 <한끼 줍쇼>, 첫 회니 '규동'이라 이름붙인 '망원동 브라더스'의 어정쩡한 조합을 각인시키기 위해, 거기에 오히려 굶어서 '한 끼'가 부각될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위해 굶을 만도 하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때늦어 버린 건 아닌가라는 노파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능은 아닐까?
프로그램 말미 강호동은 실패했다 하지 말고 성공하지 못했다로 하자며 자위한다. 그리고 비록 밥은 얻어 먹지 못했지만, '망원동'이라는 동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맨땅에 헤딩이란 수식어답게 몇 십년만에 처음 지하철을 타고 망원동에 내려 해가 저물도록 다리 품을 팔았지만, 애써 강호동이 '문학적'이란 수식어를 내세우며 강조한 것도 무색하게, '망원동'이란 동네가 그리 정겹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를 가나, 인기척 대신 꽏 닫힌 문들로 점첩된 도시의 동네를 마주하게 될 뿐이다. 심지어 해가 지니 으슥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매번 거절 당하기도 하였지만, 과연 저 집들 중 얼마나 되는 집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까 하는 회의가 먼저 든다. 



'저녁이 있는 삶', 모 정치인의 슬로건으로 시작된 이 단어, 하지만 도시민의 '저녁'은 그리 녹녹치 않다. 이제는 '가족'을 이루어 사는 집보다 홀로 사는 이의 가구가 더 많아져 버린 나라에서 아이들이 뛰놀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음식 냄새 풍기는 집을 향해 각자가 달려가 퇴근하신 아버지와 함께 밥상머리에 빙 둘러 앉아 한 끼를 나누던 그 저녁은 이제 '추억'의 한 장일 뿐이다. <응답하라>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붐'을 이루는 것은 이제는 잃어버린 도시 공동체를 기억 속에서 '소환'했기 때문이었으니. 6시부터 8시까지라고 저녁 시간으로 정해놓고 망원동을 두 mc가 헤매는 시간, 그들이 헤맨 골목에는 불이 켜진 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겨우 불 밝혀진 집으로 찾아가면 거절 당하기 일쑤니. 지하철에서 만난 신혼의 아내 고백처럼 하루에 한끼도 밥을 나누지 못하는 부부들이 사는 세상에서, 애초에 밥 숟가락 하나 얹을 저녁상을 받을 집이 '희박'한 것이다. 

취지는 좋다. 도시의 저녁을 함께 나누며 잃어버린 도시의 온기를 느껴보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 밥 한 끼의 낭만은 어쩌면 이제 시대 착오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한끼 줍쇼>가 고민해야 할 것은 25년만에 처음으로 만나 어색한 '규동' 커플의 어울리지 않음이 아니라, '저녁'을 잃어버린 '도시'가 아닐지. 그건 그 옛날 '양심 냉장고'같은 캠페인으로 해결될 길 없는 시대의 삭막함이다. 


by meditator 2016. 10. 20. 05:52

사이보그(cyborg), 이 단어는 사이버네틱스(cynetics 인공 두뇌학)와 생물(organism)의 합성어이다. 여러 영화와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이들은 진화하는 기계인 '로봇'과 달리, 인간이 '기계'와 일체화되어 진화를 이룩한 존재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이보그'의 문학적 경계가 형성된다. '인간'이지만,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선 존재. 과학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거듭 놀라운 성과로 '로봇'을 만들어 내지만, 늘 그 '기계적 존재'는 '인간'의 영역에는 함량 미달인 결과로 나온다. 물론 '알파고'처럼 이제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전존재인 인간에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에 대해 '인간은 자부심을 느낀다. 즉 인간과 닮았지만 아직은 인간에 한참 못미치는 존재, 하지만 '인간을 닮거나, 넘어설까 위협을 주는 존재, 이 아이러니한 이중성이 우리가 '기계 인간'에 대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실체가 아닐까? 그래서 <즐거운 나의 집>에서 시간에 맞춰 등장한 사이보그 남편에 대한 감정도 바로 이런 미묘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날마다 8시 29분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와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남편, 천재 과학자인 아내가 맞춘 메뉴얼에 따라, 아내를 사랑해 주는 남편, 하지만 첫 장면부터 아내 세정(손여은 분)은 그 다정한 남편이 건네는 하얀 국화를 뿌리친다. 메뉴얼에 맞추어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남편, 하지만 그 메뉴얼의 빈틈을 발견한 세정은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아니다. 그녀의 불안함은 이미 그 이전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다. 

미스 프랑켄슈타인, 세정, 그리고 그녀의 사이보그 남편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이름이 있다. 1818년 메리 셸리가 썼던 <프랑켄슈타인>, <즐거운 나의 집> 속 세정의 대학 시절 별명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살리려 했지만 그것이 오해가 되어 자신의 실험을 위해 강아지를 죽였다고 오해를 받은 그녀에게 '프랑켄슈타인'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대학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스치듯 지나간 이 별명, 하지만 <즐거운 나의 집> 속 세정과 그녀의 사이보그 남편 성민(이상엽 분)의 관계는 이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버전과도 같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괴물'을 일컬어 쉬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 원작 속 '괴물'은 피조물(the creature)라고 불려졌다. 그게 아니면 괴물이나, 악마로, 정작 그 '괴물같은 피조물을 만든 사람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불려지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오히려 이 어긋난 명명은 이 소설의 진실을 말한다. 시체를 조각조각 이어붙여 생명으로 탄생된 피조물, 그는 그 흉칙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그저 '생명'이었다. 하지만 그 흉한 몰골에 자신을 탄생시킨 프랑켄슈타인은 물론 사람들은 그를 '괴물'로 치부했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그의 소원마저 묵살당했다. 즉 세상은 그저 '생명'인 존재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자신이 저질러 놓은 '생명'의 과업을 주체하지 못한 채 방기한 프랑켄슈타인, 어쩌면 그가 진짜 괴물이라는 것을 '오명'은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즐거운 나의 집>은 그 원작의 슬픈 사연과 오명의 역사를 사이보그 남편과 인간 아내의 이야기로 옮겨온다. 학우들에게 외면받은 자신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성민, 그런 성민에게 세정은 이미 그 이전부터 마음이 가있었다. 거기서 부터 시작된 그와 그녀의 인연, 그 결과물은 지금 여기서 사이보그가 된 남편 성민과 그런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세정의 불안한 관계이다. 

드라마는 '미스터리'하게, 그리고 '호러틱'하게 성민과 세정의 불안한 관계를 그려낸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성민과, 그것을 안간힘을 써서 막으려 그를 조정하는 세정의 초조함, 그들의 어긋난 기억 속에 삽입되는 등장하는 과거의 진실 들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한껏 북돋은다. 서로의 다른 기억과 진실들이 배우들의 혼란스런 표정과 겹쳐지며, 즐거우려 했지만 결국 즐겁지 않은 결혼의 이면을 들춘다. 사이보그 남편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에게 그럼 아버지는 인간인 어머니에게 왜 그랬냐고 반문하는 세정처럼, '인간'으로서의 결혼에 대해 물음표를 남긴다. 



처음엔 남편을 불신했지만, 결국 자신이 꿈꾸던 '즐거운 나의 집' 속에서 자신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걸 깨달은 세정은 극단의 결정을 내린다. 세정을 배신하고 또 배신했던 성민, 그런 성민을 갖기 위해 그의 생명을 난도질한 세정, 드라마는 '사이보그 남편'이란 불안한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인간' 존재에 대한 냉소로 마무리 된다. '사이보그'가 되어서야 '진정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 인간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바탕으로 한 사이보그 남편과 인간 아내의 슬픈 사랑 이야기, 그 원작에 걸맞게 한껏 커튼이 드리워진 아파트, 밀실과도 같은 방, 그 속에서 벌어지는 스토커와 같은 '통제'시스템, 그리고 정작 그런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해 약으로 버티는 세정의 모습과 불안함은 이 즐겁지 않은 결혼 생활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리고 이런 '결혼'과 '사랑'에 대한 '사이보그'라는 신선한 소재를 도입한 '미스터리 호러' 장르는 드라마 스페셜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김지현 피디가 작가도 겸업한 mbc의 <퐁당퐁당 러브>처럼, <어셈블리>의 연출 최윤석 피디의 작가 겸업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한 신선한 시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어셈블리>에서 열연을 펼쳤던 송윤아, 옥택연, 정희태의 까메오 출연을 반갑게 만든. 
by meditator 2016. 10. 17. 12:12

'국수'에 이어 '빵'이더니, 이번엔 양복이다! 

바로 <월계수 양복점>의 작가 구현숙이 그려내고 있는 소재들의 이야기이다. 2013년 mbc 주말 드라마였던 <백년의 유산>은 삼대에 걸쳐 운영되는 국수집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이듬해 역시나 mbc 주말 드라마였던 <전설의 마녀>에서는 부모와 자식대가 '빵'을 매개로 어울려 졌다. 그리고 이제 자리를 바꿔, kbs2 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월계수 양복점>에서는 '비스포크', 즉 맞춤 양복을 통해 화해하고 모색하는 부자의 삶을 그린다. 

구현숙 작가가 그려내는 전통 
구현숙 작가의 드라마에는 늘 '장인'과 '전통'이 그 중심에 있다. 산업화가 극대화된 세상에서, 그런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의 '기술'을 밑천으로 우직하게 '전통'을 꾸려낸 명장들이 등장한다. '국수', '빵', '양복'이라는 소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소재들은 바로 근대 문명이 우리 땅에 들어오며 받아들인 문물들이다. 즉 근대사의 증거물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산업화'라는 새로운 조류 앞에서 기계화되고, 공장 제품화 되면서, '장인'을 밀쳐버린 제품들이기도 하다. 구현숙 작가는 바로 그런 명장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놓쳐버린 지난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온 '부모' 세대의 사연과, 그 사연의 결과물로 등장한 자식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주말 드라마의 가족사의 영역를 구축해 왔다. 



<월계수 양복점>은 그렇게 구현숙 작가가 기존에 그려왔던 근대적 전통으로서의 소재라는 지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되, 기존 mbc주말 드라마로써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가졌던 <백년의 유산>과 <전설의 마녀>와는 좀 다른 궤도를 보인다. 즉 전통의 유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악연'과 복수극이라는 구조를 가졌던 전작들과 달리, 최근 등장하고 있는 '슬로우 라이프'라는 새로운 조류의 삶의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이는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비스포크, 즉 맞춤 양복과 절묘하게 조응한다. 

선친에 이어 월계수 양복점을 운영하는 이만술씨(신구 분)는 공장제 기성복이 대세를 이루는 세상에서 여전히 맞춤 양복을 고집한다. 당연히 그의 양복점은 운영이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 양복점을 운영했던 그지만, 패션 회사 부사장이 된 아들은 가업에 뜻이 없다. 

비스포크와 대를 이은 양복점 
여기서 이만술씨가 고집하는 맞춤 양복을 뜻하는 말이 비스포크(bespke)이다. 비스포크는 been spoken for의 줄임말로, 이른바 '말하는 대로'라는 뜻이다. 고객의 취향에 맞춘 '나만의 양복'을 뜻하는 말로, 고객의 취향에 따른 원단과 디자인을 상담 결정하고, 신체 사이즈를 재서 가봉(몸에 맞는 지 보기 위하여 듬성듬성 대강 꿰매어 맞춘 상태)을 하여 고객의 몸에 맞는 지 확인 한 후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뜻한다. 공장제 양복, 기성복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양복은 당연히 양복점에 가서 맞추는 것이었지만, 기성복이 야곰야곰 맞춤 양복 시장을 잠식하며, 어느 덧 거리마다 한 두곳씩은 있던 양복점은 이제 구시대의 유산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더불여 '소비'적 부분에서 '명품', '한정판' 등 '하이엔드'한 물건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양복을 비롯한 '비스포크'한 물건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월계수 양복점>은 바로 양복의 변천사를 드라마적 배경으로 담는다. 

그런 변화하는 시대, 그리고 거기에 따라 맞춤 양복의 수요가 달라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면서, 거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담는다. 패션 회사 사위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이만술 씨의 아들 이동진(이동건 분)은 아버지의 초라한 양복점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배다른 형제와 그 어머니의 음모로 졸지에 밀려나고 급기야 사표를 쓰고 이혼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성공'을 화두로 '사랑'도 없는 결혼을 꾸려가던 그가 자신의 삶에서 튕겨져 나왔을 때, 비로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의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아버지는 이유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수석 제자였던 배삼도(차인표 분)가 다시 돌아와 아버지 대신 양복점을 사수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스러져 가는 전통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이제 그 아버지의 전통을 잇기 위해 돌아온 두 명의 남자들을 등장시킨다.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밀려나는 맞춤 양복 시장 때문에 실패하고 아내의 닭집이나 도왔던 배삼도와, 역시나 성공이라는 담론으로 자신을 밀어부쳤던 이동진, 두 사람 그들은 이만술의 가출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꿈과,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매개로 양복점을 삼는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듯 돈을 벌고, 성공을 따르던 두 남자가 삶의 속도에서 튕겨져 나와 돌아온 곳, 그 본의든, 본의 아니든 선택한 '다른 속도의 삶에는 '느리게 만들어지는 양복' 비스포크가 있다. 

15회, 아버지와 똑같은 양복을 부탁했던 청년은 배삼도만 만든 가봉한 양복을 보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버지의 단벌 양복, 자신의 퇴학을 막기 위해 선생님 앞에서 무릎 끓고 벌을 섰던 그 양복, 그래서 아들을 개과천선 시켰던 그 양복을 이제 아들은 첫 출근의 양복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동진은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살피고, 그와 똑같은 원단을 구하기 위해 원단 시장을 헤매고, 그러고도 배삼도는 여전히 스승님의 양복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한숨을 쉰다. 원단을 찾고, 치수에 맞춰 가봉을 하고 완성품까지 대략 두 달여가 걸린다는 과정, 기능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아직도 멀었다는 완성품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가 써놓은 메모의 뜻을 헤아리는 아들의 모습은 흡사 '수련'의 과정과도 같다. 

이렇게 드라마는 '속도전'의 시대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고집스레 전통을 고수하던 아버지, 뒤늦게 나마 그 아버지대의 전통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뒤를 따르려는 제자와 아들, 그 철 지난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최근의 비스포크 붐에 편승하여 드라마의 힘을 준다. 그리고 더불어 그 철 지난 이야기에 가능성을 연다. 전통이라지만, 새로운 전통이다. 독짓던 늙은이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자신을 불에 놓았고, 방망이를 깍던 노인은 뒤늦은 사과를 받을 사이도 없이 자리를 떴다. 그렇게 오래전 전통이 사라진 사이, 서구의 문물이 우리 땅에 와서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마저도 밀려났던 근대적 전통이 새로운 삶의 스타일에 힘을 얻어 돌아온다. 

 



by meditator 2016. 10. 16. 01:27

양심과 소신 대신 이익을 쫓는 전문가는 

   연쇄살인범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악한 존재, 가장 나쁜 사회 악입니다.
                                                             -표창원

10월 11일 방영된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이 법정에 올랐다. 극중 야구선수 강현호가 수술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자 그의 아내는 남편의 사인을 '의료 사고'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의료 과실이라는 아내의 주장을 '묵살'하기 위해 과실의 주체가 되는 의사 및 그의 재판을 맡은 오성 측이 남편 강현호가 1차 수술 뒤 무리하게 음주를 했다는 주장을 하여 강현호 선수의 죽음이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뜻밖의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씨의 죽음이 떠올려지는 사건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는 신해철 씨의 사건 외에도 최근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무고'범죄와 관련된 사건을 k-fact의 대표 함복거가 억울하게 연루된 범죄로 고스란히 재연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그 피해자인 연예인들만이 그 이름이 까발려지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사건, 그리고 그에 이어 신해철 씨의 억울한 죽음과 같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극중 주인공들이 맡은 사건의 내용으로 등장하며 시선을 끈다.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시의적'이어서 접근성이 좋지만, 동시에 '소재주의'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즉 최근 이슈가 되는 사건을 다루는 것만으로 '화제성'에 기대어 가고자 하는 안이한 의도말이다. 더욱이 아직도 신해철 씨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아픔으로 남겨진 상황에서 더더욱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이런 '소재주의'의 함정을 넘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주제 의식을 북돋우는 소재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의료 사고의 화제성을 넘어 '쯩'의 존재론을 묻다
즉 사건 그 자체로써의 화제성을 넘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전문가와 비전문가,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구축된 기득권층의 비리'와 '존재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0월 11일자 경향 신문의 김민아 논설 위원 칼럼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법학자 손기병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 양극화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실력주의, 업적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사람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체제로, 지능 지수와 노력에 의해 수월성(merit)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그 메리트를 오직 시험에 의해서만 증명할 수 있기에 전형적인 메리토크라시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5,6회에 걸쳐 벌어진 사건 강현호 선수의 죽음과 관련된 의료 과실 사건은 위의 '메리토크라시'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술 시 과오로 인해 강현호 선수의 몸에 ;천공(perforation 장기의 일부에 어떤 병적변화가 일어나거나, 또는 외상에 의하여 구멍을 만들어, 장기외의 부분과 통하는 것) 을 만든 심원장(김원해 분),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병원 내 권력을 이용하여 조수였던 강선생을 비롯한 수술방의 스태프들에게 함구를 요구한다. 이런 심원장의 파렴치한 부인과 왜곡은 최근 백남기씨 부검 논란과 관련하여 더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와 오성의 사건 연습을 거듭한 작전 앞에 골든트리의 반격은 쉽지 않다. 심원장과의 의료 분쟁에서 진 피해자들을 방청성에 앉히고 거듭 심원장에게 천공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지만 결정적 증거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이었던 강선생이 심원장의 결백에 동의하고 법정을 빠져나가자, 방청석에 앉아있는 간호사가 증인을 자처하며 재판은 판도가 달라진다. 심원장의 잘못된 시술로 인해 생긴 천공으로 잘려지게 된 소장을 스스로 폐기했다고 증언하는 간호사, 하지만 앞서 강선생의 증언을 들먹이며 오성은 '간호사'와 '의사',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격을 들먹이며 반발한다. 

물론 드라마는 차금주의 설득으로 다시 돌아온 강선생으로 인해 골든 트리의 승소, 강현호 선수의 명예 회복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결정적 순간, 똑같이 수술방 스태플로 참여했음에도 '간호사 주제'라며 제쳐지는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메리토크라시'에 의한 계급 폐해를 고발한다. 그리고 이는 주인공 차금주의 문제로 회귀된다. 

차금주를 통해 '쯩'을 반문하다. 
도망치다시피하는 강선생을 맨발로 쫓아간 차금주, 그녀는 자신을 사시만 5번 떨어져 '면허'의 중요성을 모를 수도 있다며 말문을 연다. 그에 앞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의 집에 찾아갔다가 배가 부른 남편의 동거녀를 마주하게 된 차금주, 그 이혼의 울분을 남편의 차에 마구 퍼부은 바람에 경찰서 신세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보증할 그 무언가를 묻고, 그런 경찰에게 차금주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꼭 무엇이어야 하는 사람이냐고 반문한다. 무엇이어야 하는 사람,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여주인공 차금주는 사시는 비록 5번이나 떨어졌지만, 가장 유능한 변호사 사무장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늘 그녀는 밀려나고 무시당한다. 그런 그녀의 울분이 응축되어 그녀의 신분을 묻는 경찰에게 '아무것도 아니면 어떠냐고' 반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차금주의 설움은 바로 다음 장면 디스패치가 연상되는 가쉽지 함복거가 등장하자, k-fact가 안기부 소속이 아니냐고 굽실거리며, 마치 그녀가 정부 요원일 지도 모른다며 운을 띠우는 함복거의 한 마디에 허리가 꺽어지는 경찰. '면허'쯩과, 그 면허 쯩을 가진 전문가에 약한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한 발 더 나아가 그간 암약하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해결사의 뒷배가 어쩌면 오성의 이동수(장현성 분)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며, <캐리어를 끄는 여자> 속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범죄의 최종 보스가 결국 로펌, '법조계의 신성 가족'임을 드라마는 암시한다. 

결국 심원장도, 그리고 이제 그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는 이동수도, 의사 면허를 따고, 변호사 쯩이 있는 메리토크라시의 핵심인 그들이야말로 '민나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 놈みんな泥棒です) 이며 연쇄살인범 저리가라할 파렴치범이자, 진짜 사회악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추악한 관료를 빗댄 저 단어가, 1982년 드라마 <거부실록>을 통해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빗댄 단어로 회자되었고, 이제 2016년 한국 사회을 좀먹는 연쇄살인범보다 더 악독한 기득권층이 되어 고발당한다. 결국 그간 법조계를 다룬 다른 드라마들처럼 결국 기승전 최종 보스로서의 로펌을 등장시킨 <캐리어를 끄는 여자>, 하지만 그저 사회악의 고발과 폭로만이 아니라, 쯩이 없는 여주인공을 통해 '면허'의 존재를 묻는다. '쯩'에 약하지만, '쯩'이 '의무'보다는 '권리'로 쓰이는, 어쩌면 그저 종잇장에 불과한 허상은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어서 설움을 받은 차금주에게 함복거는 '억울하니 출세하라'고 권유한다. 즉 다시 변호사 시험을 보라는 것이다. 실력에 없어서가 아니라,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변호사 시험을 포기했던 차금주, 그 쯩이 없어 설움을 당하던 차금주, 도망치던 강선생을 붙잡고 면호는 '권리'이자, '의무'라며 의사로서 진실을 밝혀줄 것을 호소하던 차금주는 과연 변호사가 될까? 


by meditator 2016. 10. 12. 06:23

2015년 간통법이 폐지되었다. 그 이전 간통법이 폐지되기 전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 것을 피해 배우자가 신고하면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 간통법은 '개인'의 결혼에 대해 '국가'가 법적으로 개입하는 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법'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불륜'은 사회적 금기를 어기는 대표적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불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의 속내는 무엇일까? 거기엔 최근 성과 관련된 보고서(2016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남성의 53.7%, 여성의 9.6%가 외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런 확률은 연령대 별로 4%씩 증가하며 40대에서는 6%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에 성실한 반면,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고, 결국 그로 인해 여성들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륜'에 대한 노골적 불편함은 이런 여전한 결혼제도를 둘러싼 남녀의 '불평등'한 관계의 반증이다. 그러기에 여성들이 주된 시청층인 tv에서 불륜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진짜 사랑이 뒤늦게 찾아온다면?
이런 조심스러운 '불륜'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공항 가는 길>이 취한 해법은 바로 '사랑'이다. 그것도 뒤늦게서야 찾아온 진정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핵심은 '소울 메이트'이다. 말 그대로 당신 영혼의 짝이 뒤늦게서야 나타난다면? 이다. 효은 엄마, 애니 아빠로 애니의 죽음을 매개로 얽히게 된 두 사람, 최수아(김하늘 분), 서도우(이상윤 분)은 각자 아이들로 인해 겪게되는 가정의 위기 속에서 정작 각자의 남편, 아내 대신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고, 서로에게 공감한다. 
서도우는 딸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딸을 지워버리려는 아내와 달리, 빗속에서 잠시 차를 가지러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을 대신하여 '애니'의 유골이 든 가방을 꼭 끌어안고 기다려주는 최수아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마음 둘 곳 없는 시어머니의 집에서 뛰쳐나온 수아의 다친 마음을 쉬게 해주는 건 서도우이다. 

하지만 그 정도론 이들의 '사랑'을 진척시키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느꼈을까? 아니, 그 보다는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대한 '유부남', '유부녀'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경계'를 그리기 위해, 드라마는 한번 더 에돌아 간다. 서로를 찾아 헤매면서도 굳이 만지지도 말고, 애써 만나려 하지도 말고 운운하는 3무의 관계를 설정한다. 서로의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만나면 죄책감이 느껴지는 관계에 대한 일말의 책임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3무란 경계선은 흐르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을 조장하는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 드라마는 애니의 죽음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가정이란 경계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는 두 사람을 서도우 어머니의 죽음이란 '극단적 상황'을 통해 감정의 봇물을 터트린다.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의 죽음이란 극약 처방을 통해서야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심리적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한 것이다. 

애니의 죽음 앞에서 냉정한 아내 때문에 홀로 딸의 죽음을 가슴에 접어두어야 했던 서도우, 그런 그가 달려오는 수아의 품에서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린다. 애니의 죽음에서부터 참고 참았던 모든 설움을 한껏 토해낸다. 서도우의 불행을 두고 물불 안가리고 달려온 수아와, 그런 그녀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서도우, 이 절정의 공감과 위로가, 이들이 '서로의 영혼'을 공유하는 진짜 '사랑'임을 드라마는 역설한다. '불륜'이라는 도덕적 잣대가 아닌 불가항력의 인간적 감정임을 설득하고자 한다. 

사랑, 그리고 결혼 
거기에 이런 이들의 '금기'에의 도발에 대한 '알리바이'를 위해, 두 남녀의 파트너에 대한 '신뢰'에 먼저 금이 가게 만든다. 서도우는 애니의 죽음 앞에 동요하기는 커녕 애니의 기억조차 없애버리려 애쓰는 아내를 보며,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애니에 대한 기억의 조작을 보며, 이제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한 발 나아간다. 그런가 하면 '자네'라며 아내에게 문자로 지시하는 '시드니의 신사' 최수아의 남편, 그가 가진 이중성이 자꾸 삐져나온다. 그렇게 드라마는 두 사람의 순애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미 그 이전에 '신뢰'가 무너진 결혼을 그려간다. 즉 사랑에 빠진, 그리고 이제 '불륜'으로 들어설 두 남녀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애써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현실에서 불공정한 '불륜'대신에 가장 아름다운 환타지로서의 '사랑'을 통해 결혼에 찾아든 변수를 질문한다. 



불성실한 배우자, 심지어 애초에 '신뢰'할 수 없었던 결혼, 그리고 이제 서로의 세계관조차 엇물리는 배우자, 그리고 그런 배우자와 달리, 눈빛 하나로도 서로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소울메이트의 출현, 드라마는 뒤늦게 찾아온 '진짜 사랑'을,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소통'을 얻는 관계를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거기서 던져지는 반문은 '결혼'에 대한 것이다. 아마도 최수아와 서도우의 사랑이 아름답고 공감되면서도, 쉽게 그들의 손을 들 수 없는 건 여전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제도 때문일 것이다. 과연 현재 우리 사회의 결혼은 무엇일까? 여전히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일까? 공정한 불륜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불성실한 상대방을 어디까지 참아내며 지속시켜야 하는 제도일까?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파트너와의 결혼 생활은 불가능한 것인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은 파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사랑이 곡진할 수록, 이 반문도 깊어진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소울 메이트와의 사랑에 빠져든 두 사람이 봉착할 문제도 결국 '제도'로서 그들이 얽어매어진 결혼이다. 
by meditator 2016. 10. 7. 05:26

얼마전 인터뷰에서 배우 윤여정은 자신이 tvn의 열혈 시청자라며 그 이유를 새로운 것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단 윤여정씨만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아예 tvn에 채널을 고정해 놓는 사람들도 있다. <시그널>이 tvn에서 방영했으니 망정이지, 공중파에서 했다면 아마도 '러브 라인'에 치중했을 것이라는 우스개처럼 공중파 드라마하면, '사랑 이야기'라는 공식이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 조기 종영한 <뷰티플 마인드>의 경우 애청자들은 차라리 ocn이나 tvn으로 갔다면 드라마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 안타까워 했으니. '신선한 시도'로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tvn 을 비롯한 케이블 드라마의 성공은 곧 공중파의 위기가 되었다. 주중 미니 시리즈가 20%를 넘기는 경우가 가물에 콩나듯 쉽지 않은 상황, 안되면 심지어 케이블보다 낮은 3%의 수모를 겪는 상황에서, 그 위기를 타파하고자 공중파가 꺼내든 칼은 바로, 케이블의 인기 작가들의 공중파 유입이다. 




<W>의 송재정 작가 
그 대표적 작가가 바로 얼마전 종영한 <W>의 송재정 작가다. 송재정 작가는 1998년 <순풍산부인과>를 시작으로 <똑바로 살아라(2002)>, <거침없이 하이킥(2007)>, <크크섬의 비밀(2008)> 등 공중파에서 시트콤을 주로 집필해왔다. 그러던 중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를 시작으로 TVN으로 자리를 옮겨 미니 시리즈를 전환을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의 인연이 현대에 다시 만나 이어지는 '운명적 사랑'을 통해 방영 당시는 물론, 종영이 된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TVN의 작품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의 송재정을 있게 한 것은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2013년 방영된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이다. 향 9개로 20년전 과거로 돌아가 미스터리한 인연의 끈을 풀어가는 이 드라마는 '시간'을 매개로 삼는다는 점에선 <인현왕후의 남자>의 바통을 이어받지만, 흔한 역사적 시간과 현재의 타임워프물 대신, 주인공의 주변 인물과 얽힌 20년이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얽히고 설킨 '인연'과 '운명'이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왕세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활약을 다룬 <삼총사>의 부진을 딛고, 송재정 작가는 2016년 MBC로 자리를 옮겨 <W>를 인기몰이를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역사적 인물의 타임 워프를  다뤘던 송재정 작가는 <나인>을 통해 주인공 가정사의 비밀이 벌어진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다. 그렇게 '시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송재정 작가가 <W>에선 시간 대신, 현실과 웹툰이라는 '공간'적 상황을 등장시켜 다시 한번 젊은 시청자들을 열광케 한다. 2016년 서울이라는 공간은 같지만 만화 속 등장인물인 강철(이종석 분)과, 그의 열혈 독자 오연주(한효주 분)가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사랑과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이렇듯 송재정 작가의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미스터리와 운명적 사랑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나인>에서 미스터리한 운명을 풀기 위해 진력했던 주인공은 이제 공중파로 오면, '사랑'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웹툰과 현실 세계를 오간다. 덕분에 <나인>의 치밀한 전개를 기대했던 전작의 시청자들은 <W>의 전개가 어설프다는 평가를 내리는 반면, 다양한 연령대를 흡인할 수 있는 복잡하지 않은 전개와 스타 배우들의 러브 스토리가 <나인>과 다른 <W>의 장점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간 공중파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송재정 작가의 공중파 재입성은 의미있다. 엉성하던 혹은 단순하든 <W>는 일부 매니아 층을 거느렸던 <나인>과 달리, 최고 시청률 13.8(7회 닐슨 코리아 기준)를 찍으며 동시간대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 가서 9.3%(16회)까지 하락한 시청률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이는 송재정 작가의 차기작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권음미 작가
송재정 작가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 역시나 MBC 월화 드라마로 돌아온 권음미 작가이다. 권음미 작가는 화성 연쇄살인을 <시그널>에 앞서 다루어 화제를 일으켰던 <갑동이>의 작가이다. <살인의 추억>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갑동이, 그 진범과 카피캣의 물고 물리는 흥미진진한 스릴러는 TVN 장르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권음미 작가 역시 송재정 작가처럼 공중파 출신이다. 2008년 <종합병원>으로 첫 발을 내딛은 권작가는 이후 이제는 범사가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재벌가의 이면을 파헤친 <로열 패밀리(2011)>를 집필했다. <로열 패밀리>에서 크리에이터로서 박상연, 김영현 작가의 도움을 받았던 권작가는 이후 TVN으로 이적하여 드디어 자신의 색채가 듬뿍 담긴 <갑동이>를 통해 권음미라는 작가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연 권음미 작가는 역시나 공중파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9월 26일부터 <캐리어를 끄는 여자>를 시작했다. 



독특하게도 사법 시험에 매번 미끄러져 사무장이 된 여자 차금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권작가는 앞서 <갑동이>처럼 잡히지 않는 연쇄 살인마를 최종 보스로 선정한다. 경찰의 손아귀를 비웃듯 그 뒤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주인공을 지켜보며 그의 목을 죄어오는 설정은 <갑동이>에서 <캐리어를 끄는 여자>로 이어진다. 하지만 좀 더 장르물의 색채가 강했던 <갑동이>와 달리, 역시나 공중파라는 다중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캐리어을 끄는 여자>는 그보다는 말랑말랑하게 로맨틱 코미디와 법정 드라마, 그리고 스릴러의 절묘한 배합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이혼녀가 된 차금주(최지우 분)와 그를 스카웃하여 함께 미지의 범죄를 해결하고자 하는 파파라치 언론 대표 함복거(주진모 분), 그리고 풋내기 변호사 마석우(이준 분)의 삼각 관계와 협업이 이 드라마의 묘미이다. <원티드> 등의 스릴러 드라마들이 고전했던 것과 달리,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런 미스터리물의 단점을 로코라는 당의정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고, 이제 3회에 불과하지만 압도적 <구르미 그린 달빛>을 제치지는 못하지만 동시간대 2위까지 치고 오르는 성과를 보건대 어느 정도 그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듯보인다. 


이에 앞서 TVN에서 <로맨스가 필요해>시즌을 썼던 정현정 작가가 이미 KBS2로 넘어와 <연애의 발견>에 이어 주말극 <아이가 다섯(2016)>을 선보이는가 하면, 일찌기 JTBC를 통해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하명희 작가는 그 이후 <따뜻한 말 한 마디>, <상류 사회>, <닥터스>까지 공중파의 인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정현정 작가나 하명희 작가가 특유의 '사랑 이야기'로 케이블에서 공중파로 재진입에 성공했다면, 위의 송재정 작가나, 권음미 작가의 경우는 그간 공중파가 시도하지 않았던 신선한 이야기를 통해 공중파 드라마의 경직된 영역을 뚫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이들 작가들이 애초에 그 시작이 대부분 공중파였고, 자신만의 특별한 서사를 케이블을 통해 드러냈듯이, 그 반대의 경우로 그간 공중파에서 작업을 하다, 편성이 여의치 않자 케이블로 가서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청춘시대>의 박연선 작가가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할 수 있다. 

by meditator 2016. 10. 4. 06:22

10월 2일에서 3일 연휴의 마지막 날을 넘어가는 밤 11시 40분, kbs 드라마 스페셜  2016 두 번 째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 주 80년대의 학교로 갔던 단막극은 이번 주 또 다른 시대, 현재의 학교로 시선을 옮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말도 안되는 학칙으로 학생들을 얽어맸던 학교는 이제, 그 보이는 규칙 대신, 이른바 '짱'이라는 학교 폭력의 또 다른 권위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다.


클리세가 된 유구한 학교 폭력 
<빨간 선생님>이 그 배경을 여자 고등학교로 삼아서 그랬을 뿐이지, 이제는 전설이 된 영화<말죽거리 잔혹사>의 그 '잔혹'한 배경이 바로 개발 열풍이 한참 불어제치던 80년대의 말죽거리, 오늘의 양재동을 배경으로 한 것이고 보면, 정권보다 그 생명력이 유구한 게 '학교 폭력'인 셈이다. 그리고 <학교> 시리즈를 비롯하여 주로 남자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치고 '학교 폭력'에 대해 다루지 않은 드라마가 거의 없으니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학교 폭력은 이제 거의 '클리셰'에 가깝다. 이 '뻔한 소재'에 대한 고민을 <전설의 셔틀>은 '희극(comedy)'이라는 장르를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소개에 따르면 '명실상부, 자타공인' 명성 고등학교의 짱 조태웅(서지웅 분), 그의 천하독존 권위를 설명하기 위해 드라마는 빵 셔틀을 위해 달리는 학생들의 급박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빵을 토스하며 조태웅 앞에 빵과 딸기 우유를 대령하는 학생들, 하지만 조태웅은 그런 학생들의 단말마적 경주에 대해 시간을 재며, 다음에는 좀 더 분발하라 으름짱을 놓는다. 그렇게 '권위'의 조태웅이 선생님 앞에서도 여유롭게 빵을 베어무는 그 반에, 이미 소문으로 17대 1로 학생들을 때려눕혔다 하는 서울의 강찬(이지훈 분)이 전학을 온다. 대뜸 새롭게 등장한 '전설의 주먹'을 눈빛으로 선제 공격하고 나선 조태웅과 달리, 피씨방에서부터 조태웅과 실랑이를 벌이던 조폭인 듯한 다짜고짜 끌고나가 때려눕히는 것에서부터 강찬은 태웅의 세계에 친밀하게 스며들어 온다. 하지만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하기 힘든 법, 찬의 관용적인 태도는 태웅의 강팍한 태도와 대비되며 태웅 일인독재 하에 신음하던 학교 아이들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데.....

'희극'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풍자'와 '해학'이다. 나아가 '페이소스'도 좋은 희극의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이런 그저 웃기는 것을 넘어 진짜 희극의 맛을 위해 <전설의 셔틀>이 등장시킨 캐릭터는 바로 한때 빵 셔틀로 자살까지 생각했었으마 전학이라는 인생 역전의 계기를 통해 다시는 셔틀을 하지 않기 위해, 17대1의 일진으로 자신을 조작한 전학생 강찬의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태웅과 아이들 앞에서는 강한 눈빛을 부라리며 전설의 짱인 척 하다가 뒤돌아 서며 그 상황을 모면했다, 혹은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안도, 혹은 기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찌질한 한때 빵셔틀이었던 이면을 보여주는 강찬의 이중적 캐릭터가 이 학교 폭력을 희화화한 <전설의 셔틀>의 묘미이다. 

하지만 그저 잘 속아넘겼던 안도의 묘미는 기존의 태웅과 달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 어쩔 수 없이 태웅에게 당하는 아이들을 위기에서 번번히 구출해 주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강찬에 대한 아이들의 호의, 그리고 뜻하지 않게 조우하게 된 찬이로 인해 빵 셔틀이 되었던 서재우(김진우 분)의 등장으로 인해 그저 순탄하게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 일진 흉내를 냈던 강찬이 결국 조태웅과 맞장을 떠야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캐릭터는 흥미롭고, 이야기가 재밌긴한데 
전학을 간 학교에서 다시 빵셔틀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조작하고 소문을 퍼뜨려 17대1의 전설적 영웅이 되어 나타난 강찬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하지만 극 초반 그런 강찬의 캐릭터와 그가 조태웅 그룹의 일원으로써 겪는 해프닝으로 끌고가는 전개는 어쩐지 좀 버거워 보인다. 그의 지난 빵 셔틀로서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이제 일진으로서 난처한 상황이 빚어내는 아이러니와 거기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피해를 줄여보려는 강찬의 고군분투는 분명 신선하지만, 그런 서사의 반복 혹은 점층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끌고가기엔 좀 버거워보였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를 선생님의 대사로 되풀이하여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유오성으로부터 신입생 유준상 등의 카메로 군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것이 애초의 서사의 단조로움인지, 연출의 단순함인지, 아니면 연기의 단면성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남는다. 



외려 조태웅과 일전이 끝난 후 그때야 비로소 서재우와 둘이 앉아 마음을 터놓고 하는 이야기들, 공부만 하던 엄친아였던 서재우가 먼저 학교에서 늘 얻어터지던 강찬에 대한 폭력을 외면해서 미안했다던 속내와 그런 서재우에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빵 셔틀의 자리를 넘길 수 밖에 없었던 강찬의 피치못했던 상황에 대한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서재우 역시 강찬이 떠넘긴 빵 셔틀, 즉 학교 폭력의 희생자로 전학을 택한 듯한데, 그 사연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강찬의 보조적 캐릭터로만 소모된 점이 극을 단조롭게 만든데 일조한 듯 보인다. 

<전설이 셔틀>이 학교 폭력을 그려내는 방식은 <목포는 항구다> 등의 조폭 코미디와 같은 방식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주인공이 다른 집단에 들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그로 인해 해프닝을 버이게 되는, 즉 극 속의 폭력은 심각하지만, 몇 번의 해프닝을 통해 희화화되고, 쉽게 마음을 나누고 해소되는 갈등들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전설의 주먹으로 속여낸 강찬은 조태웅과 맞짱을 뜨게 되는 위기에서 뜻하지 않은 서재우를 비롯한 학생들의 도움과 역시나 우연히 내지른 발차기로 조태웅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런 강찬과의 일전에서 패자가 된 조태웅은 '보복' 대신 곱게 강찬의 친구로 거듭나고, 학교는 평화를 되찾았다는 '동화'같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런데 한때 옥상에 올라가 자살마저 생각했던 강찬의 인생역전을 '가볍게' 그려내는 방식이 그 상황을 그저 타자로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그 당자사에겐, 그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소모하는 방식이 아닌가란 우려를 덧붙이고 싶다. 특히나 현재 사회문제로서 '폴리스'가 학교 안에 상주해도 쉬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소재적'으로 접근한 방식이 아닌가에 대한 노파심이다. 

by meditator 2016. 10. 3. 15:32

2010년 기준 한국의 다이어트 관련 산업은 3조원에 육박한다. 그 '다이어트'의 강박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국내 비만 인구는 오히려 1.6배 늘어났고, 그중 초고도 비만 인구도 2배 넘게 증가했다. 2025년이 되면 인구 17명 중 한 명이 비만이 될꺼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비만'과 '비만'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의 부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오죽하면 '비만은 전염병'이며, '비만세' 도입이 현실화되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여러 시사 프로그램이 '건강' 혹은 '다이어트'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1년 사이 여러 다큐 프로그램들이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방영했지만 그 중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은 <mbc스페셜>과 <sbs스페셜>이다. 이들 다큐는 기존 우리가 건강과 건강 관리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 건강이데올로기의 새 장을 열었다. 첫 포문을 연 것은 sbs였다. 



비만의 주범, 얼굴이 바뀌다.
2015년 9월 <콜레스테롤을 허하라>라는 획기적인 기획으로 기존 건강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렸다. 기존 건강에 대한 상식은 단적으로 '기름진 음식에 대한 극단적 터부'였다. 건강 검진 기록부에 등장하는 총콜레스테롤, HDL, LDL, 중성 지방 등은 비만의 지표였고, 그로 인한 부작용의 증거였다. 하지만, 미국 식생활지침 자문위원회가 콜레스테롤을 우려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발표에 근거하여, 이 다큐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콜레스테롤과 혈중 콜레스테롤 사이에는 연관이 없음을 주장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콜레스테롤의 주범으로 몰린 '계란, 버터' 등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했다. 
이렇게 포문을 연 SBS에 맞대응한 것은 11월 <MBC스페셜-채식의 두 얼굴>이다. 역시나 비만을 피하기 위해 선호되는 '채식'에 대해 '건강식'이 아니며 오히려 몸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주장을 방영했다. 
이렇게 기존의 건강관에 의문을 제기한 다큐는 2016년 4월 <SBS스페셜-설탕 전쟁>과 마찬가지로 4월에 방영한 <MBC스페셜-밥상을 뒤집다. 탄수화물의 경고>로 이어지면, 기존 비만의 주범이라 여겨졌던 콜레스테롤 등 대신 '탄수화물'과 '당'이라는 새로운 주범을 찾아냈다. 이들 다큐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비만의 원인은 바로 혈중에서 지방으로 전환되는 '당'에 있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가 '과다'하게 섭취하는 당은 몸안에서 뇌와 에너지를 위해 쓰여지는 약간의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방이나 콜레스테롤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과중한 '당'의 섭취를 소화해 내기 위해 과도한 인슐린 분비 등의 몸의 호르몬 체계가 무너지고, 그 결과 당뇨 등의 합병증이 생겨난다고 이들 다큐는 밝히고 있다. 즉 그동안 우리가 알던 비만의 주범, 그 얼굴이 바뀌는 순간이다.  



호르몬이 문제라는데
다큐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지난 7월 방영된 <SBS스페셜-다이어트의 종말, 마인드 풀 이팅>은 호르몬에 집중한다. 즉 과도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몸의 호르몬 체계를 파괴하여 제 아무리 식단을 조절해도 살이 찌는 최악의 요요를 불러오며, 결국 자신의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신체의 균형을 맞춰가는 호르몬 조절 다이어트를 주장한다. 이런 몸의 균형, 나아가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한 SBS와 달리, 지난 19일에 이어 26일 방영된 < MBC스페셜-밥상 상식을 뒤집다, 지방의 누명 1,2부>는 역시나 파괴된 호르몬 체계를 되돌리는 다이어트 방식으로 '고지방 식이요법'을 주장한다. 

이 다큐가 주장하고 있는 다이어트 방식은 스웨덴 국민 20%가 실천하고 있다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식(LCHF)이다. 즉 몸에서 지방으로 축적되는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거나 먹지 않고, 그 반대로 유일하게 먹어도 혈당이 변화하지 않는 지방을 통해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이다. 이 다이어트의 장점은 그간 '다이어트'라면 굶거나 식단을 조절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동반했던 것과 달리,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것 외에는, 버터를 듬뿍 넣어 고기를 볶고, 국에 치즈를 더하는 등 포만감을 충족시키는 다이어트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난 1년간 양 방송사를 통해 방여되었던 다큐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신봉시되었던 콜레스테롤에 대한 신앙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비만의 원인에 대한 새로운 조명,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서의 몸의 균형, 호르몬의 균형과 조절을 내걸며, 탄수화물이나, 지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고하고자 한다. 



백가쟁명의 귀결점, 그 아쉬움
이를 위해 다큐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에 의거하여 비만한 사례자들의 다이어트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 제기 방식이 옳았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한결같은 방식을 전파한다. 심지어 <밥상을 뒤집다>는 그간 신봉되어왔던 심장병 발병 원인 데이터가 편의적 결과물이었음을 밝히고, <콜레스테롤을 허하라>는 세계적 의약품 1,2위를 다투는 심장병약 스타딘의 음모론을 제시하며 기존의 '건강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짚는다. 

문제 제기와 해결책 제시, 그 해결책에 따른 사례자의 성공이라는 방식을 공통적으로 답보하는 건강 다큐들이 이제 도달한 '호르몬 균형 및 조절'을 위한 심리 치료나 고지방식이라는 지점은 신선하지만, 그 역시 되돌아 보면 또 다른 다이어트의 도정이다. '콜레스테롤을 허라라'라는 문제 제기에서부터 '고지방식'까지 불과 1년의 과정에서 의견은 일취월장하고, 그 해결책은 '백가쟁명'이다. 어찌보면 건강한 문제 제기이지만, 하버드식 건강 식단에서부터, 호르몬 조절 요업, 그리고 이제 고기를 기름에 찍어먹는 과격한 고지방식까지 저마다 유일한 해법인 양 제시하는 것들이 완벽한 마침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날씬한 건강'을 원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건강 요법'을 제시하는 다이어트가 등장할 때마다 솔깃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점, 결국 문제는 탄수화물, 혹은 당의 과도한 섭취로 인한 비만이라는데, 과연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풍족한 식생활과 그로 인한 비만을 '탄수화물'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옳을까?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년에 고기 한 두번이나 먹을까 말까 하던 식생활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떡 벌어진 진수성찬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탄수화물' 탓이라는 지적은 어쩐지 자가당착이란 물음표가 뒤따른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사나바의 원시인을 운운하기 전에, 무엇을 먹더라도 '과잉'이 된 현대인의 딜레마가 문제가 아닌 건지. 

뿐만 아니라, <지방의 누명> 등에서 제시된 새로운 식이요법의 방식도 그렇다. 추어탕에 밥 대신 집어넣는 치즈 몇 장, 그리고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녹아내리는 버터 등, 외국에서 실용화되고 있는 식재료들을 '다이어트'의 명약인 양 보여주는 그 '무신경'이 안타깝다. 최근에야 우리에게 알려진 카카오닙스니 코코넛오일에서 부터, 브로콜리, 버터, 치즈 등, 우리 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들기름 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이 먹던 먹거리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식재료들이 오늘의 비만을 구하는 전도사들이라니, 어쩐지 또 따른 '황제 다이어트'를 보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담론, 그것을 발빠르게 소개해야 하는 사명감, 그리고 그에 발맞춰 변화하는 검색어, 하지만 이제 추어탕에 치즈를 넣어먹는 방식을 권장하는 기괴한 만병통치식 식이요법 대신,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가 쉬이 찾을 수 있는 것들에서 건강의 전도사를 찾아봄이 어떨까? 스웨덴이나, 미국의 명성에 기대기전에. 


by meditator 2016. 9. 27. 1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