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아니 기적은 없었다. 심지어, 13회 시청률은 2.8%(닐슨 코리아 기준)로 떨어졌다. 마지막 회, <닥터스>의 수도권 시청률이 시청률 표의 '지붕을 뚫는' 그 순간, 그나마 종영의 미덕으로 3.2%로 면피했을 뿐이다. 13회의 2% 남짓 시청률, 보는 사람조차도 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왜? 그걸 답해주는 건, 올림픽을 핑계로 결정된 '조기 종영'이다. 지난 몇 회간 <뷰티플 마인드>가 보여준 '질주'는 조기종영이 드라마에 미치는 악영향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차라리, 애초에 ocn이나 tvn처럼 시청률을 담보로 조기 종영이 없는 케이블로 갔더라면, 이런 무리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뷰티플 마인드>는 비록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래도록 두고두고 회자될 '명작'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하지만, '조기 종영'이라는 결정으로, 드라마는 그저 불친절한 괴작으로 남고 말았다. 


중층적 갈등구조, 불친절한 서사 
14회를 시작하는 건,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찰해야 하는 의사, 이영오(장혁 분)가 반대로 환자복을 입은 채 수술실로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법적으로 금지된 '폐이식' 수술, 심지어 생체 이식의 위험성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공여자가 한 사람에게 폐를 이식하도록 되어있는 수술, 하지만 급격하게 나빠진 계진성(박소담 분)의 폐는 이식의 순번은 물론 또 한 사람의 공여자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영오는 그의 불법적 시술로 인해 두 사람의 말기 뇌종양 환자를 살렸던 그 때처럼 서슴없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다. 단지 이번엔 그가 의사의 입장인 대신, 폐 이식 공여자로. 



하지만, 이전의 불법 시술과, 계진성의 불법 폐 생체 공여가 같은 불법이라 하더라도, 그에 주도하고, 가담한 이영오는 달라져 있다. 스스로 보석상을 털며, 감옥행을 감행하며 자신의 삶을 땅바닥에 후려쳤던 뇌종양 환자의 이율배반적인 삶의 의지를 읽어냈던 공감 장애 사이코패스 이영오는, 이제 공감의 문제를 넘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살아있고 싶다던 말기 암 환자의 죽음 앞에서, '의사로서의 최선'을 고민한다. 스스로를 '모탈리티 컨퍼런스(motality conference; 환자의 사망 과정과 원인을 살펴 재발을 방지하려는 회의)'에 세우며, 의사로서의 본분을 의심했던 이영오, 그런 이영오의 모탈리티를 주도한 아버지이자 병원장인 이건명(허준호 분)은 비록 환자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지만, 의사로서 이영오는 최선을 다했다며 면죄부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면죄부'에 대한 이영오의 대답은 뜻밖에도 '최선에 대한 거부'. 

아버진 이건명은 아들의 의료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했지만, 이는 곧 십여년 전 자신이 했던 아들 이영오에 대한 수술에 대한 '최선'이었다는 자신의 의료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최선'을 통해 그리고 이어진 '최선'의 교육을 통해 사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던 이영오가 사이코패스 이영오가 되었듯, 이영오는 말한다. 환자가 죽어버린 의사에게 '최선'이란 말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런 아버지 이건명과 아들 이영오 사이의 의사로서의,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관계와 존재론은, 아들 이영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식 공여자로 수술대에 오르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십 여년 전에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했던 수술에서 당시의 의료 기술 미비로 말미암아, 의료 사고가 되었던 이영오, 그런 자신의 실수를 용서할 수 없다는 아들 이영오에게 아버지 이건명은 모탈리티 컨퍼런스에 스스로를 세운 아들에게 '최선'이란 말로, 아들과 자신을 구원하려 한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탈리티 컨퍼런스, 하지만 거기서 이야기 되는 것들은 과거 이건명의 의료 행위로부터, 아버지 이건명과 아들 이영오의 관계까지, 중층적이고, 중의적인 관계와 서사들이다. 드라마는 이를 통해, 의사로서의 존재론과,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론까지, 복잡한 사회적, 가족적 의미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 

조기 종영의 참사 
하지만, 졸지에 '조기 조영'이 선포된 드라마는 이 복잡다단한 서사를 '사건' 위주로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뷰티플 마인드>처럼 중층적 구조와 갈등 구조를 가진 드라마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역학 관계와 심리가 전제 되어야 하는데, 시간에 쫓긴 드라마는 그런 갈등을 풀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을 채 달구지 않은 채, 사건 위주로 극을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는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처럼, 한 회에 갈등을 벌였던 아버지와 아들이, 다음 회에선 아버지가 나서서 아들을 변호하고,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이해하고, 해고 위기에 처한 아들을 아버지가 구해내는 미담으로 급마무리된다. 사건들은 이어지지만, 그 사건의 토대가 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고민이 부족하다 보니, 각 인물들이 결정에 시청자들이 쫓아가기에도 급급한 모양새가 되었다. 심지어,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 즈음, 이건명을 찾은 현석주가 이건명에게 진통제 운운하는 대사를 통해 이건명의 몸에 어디 이상이 생겼음을 알 수 있지만 시간에 쫓긴 드라마는 그걸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한 장면이 조기 종영으로 말미암마 <뷰티플 마인드>에게 벌어진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저 시청자들이 헤아려 짐작해서 이해해야 하는 드라마. 



그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주제 의식조차도 사건을 통해 선언하듯 허겁지겁 그려낸 드라마가 주변 인물들에겐 오죽했으랴. <뷰티플 마인드>가 꽤 괜찮았던 드라마인 이유에는 등장했던 인물들이 허투루 쓰인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동하(양성은 분)에서, 장문경 간호사(하재숙 분)까지 에피소드를 통해 생생하게 살려내려 했던 드라마, 하지만 조기 종영 결정이 내려진 후 드라마에서 등장하지만 사라진 인물들이 여럿 있다. 무엇보다, 7년간의 고시 공부 끝에 순경이 되어 그 순수한 열정이 방송 초반 민폐로 묘사되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박소담이 분한 계진성은 정작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강력반으로 전보된 이후, 직업적으로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드라마 속 계진성은 여느 드라마에서 처럼 그저 이영오의 와이파이로서만 그 역할을 다한다. 현석주(윤현민 분) 역시 마찬가지다. 계진성의 짝사랑 상대로 등장하여, 이영오란 공감 장애 의사와 대비되는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의사였던 그가, 자신과 동료들이 헌신했던 줄기 세포 치료제의 성공을 위해 도덕적 신념조차 저버리게 되는 파격적인 행보를 드라마는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주인공 이영오의 주변 가장 중요한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단선화되고, 갈등자로서의 풍부함이 사라지며, 드라마는 오로지 공감 장애 사이코패스 이영오만이 독주하는 단조로운 드라마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렇게 인물간의 심리 묘사에 대한 곡진한 설득이 필요한 드라마를 '조기 종영'이란 결정으로 그저 사건 나열의 불친절한 드라마로 만들어 버린 그 이면에는, 개연성도 없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그저 시청률만 보장된다면 좋은 드라마가 되었던 한국 드라마의 관행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깔려있다. 무엇보다, 하나의 드라마를 시청률을 담보로 한 '장사'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 '작품'으로서의 드라마에 대한 무지와 천박한 속내 역시 드러나 보인다. 차라리 이 드라마가 장르물에게 너그러운 혹은 장르물 전용의 케이블로 갔었더라면 어땠을까? 성급하게 계진성과 이영오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대신,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사이코패스 의사 시리즈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의 조기 종영으로 하나의 드라마가 묻혀 가는 것이 아니라, <뱀파이어 검사>나, <특수 사건 전담반 ten>처럼 괜찮은 의학 스릴러 시리즈 콘텐츠를 상실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에 깜냥이 안되면 편성을 하지 말던가,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를 상대로 진지한 심리 의학 스릴러를 배짱으로 편성할 때는 언제고, 시청률이 안나오자, 후다닥 '조기 종영'이란 카드로 드라마의 완성도조차 무너뜨려 버린 이 결정의 댓가는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작품의 완성도를 훼손하지 않으려 애쓴 김태희 작가와,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쫓김이 드러나지 않는 화면을 그려낸 모완일, 이재훈 피디, 그리고 그의 또 한번의 인생 캐릭터가 된 이영오를 연기한 장혁에서 부터, 초반의 고전을 딛고 와이파이로서의 존재감을 상큼하게 보여준 박소담, 그의 모처럼의 복귀가 반가웠던 이건명의 허준호, 그리고 독수리 5형제까지 그 누구하나 허투루 연기하지 않았던 출연진의 열연에 경의를 표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마무리가 아쉬웠음에도 불구하고 <뷰티플 마인드>는 오래오래 좋은 드라마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6. 8. 3. 12:26

'시위',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공공연하게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이다. 물론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1인 시위'의 경우처럼, 한 개인이 주체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시위'는 '대의 민주주의'가 대세가 된 현대 정치에서, '대의'로 표현되지 않은 국민들의 이익을 현장에서 표출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4.19를 비롯하여, 5.18, 6월 항쟁까지  민족사의 구비구비마다, 역사적 전환점이 된 그 고비에서 대중들의 '시위'가 도화선이 되어왔다. 가깝게는 광우병 촛불 시위를 통해, 다수의 학자들이 '네티즌 직접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을 예언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장기간 펼쳐진 '미국 월가의 시위' 역시 곪아터진 금융 자본주의의 현실을 고발했다. 이렇듯, 세계 역사에서, 혹은 우리의 역사에서 '시위'는 역사적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문화, 혹은 현실 속 '시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아니 여전히 '부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정치와 사회가 보수적, 혹은 개인주의화 되어갈 수록, 공공의 목적을 위해 분출하는 '시위'에 대해 '불편한 심리적 기제'를 조장한다.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정의로운 주인공의 도구가 된 제 정신이 아닌 1인 시위자
7월 30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끝에서 두 번째 사랑>,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고상식에 대해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는 안전 무사고 주의의 5급 공무원이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책임감이 투철한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사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어디에서나 발 벗고 나서는 믿음직한 인물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 '고상식(지진희 분)'이란 인물의 믿음직한 면모를, 아내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를 뛰어넘는 그의 헌신성을 설득하기 위해 뜬금없이 '개념없는 아니 거의 제 정신이라 보기 힘든 1인 시위자'를 등장시킨다. 구청에서 한참 업무와 관련하여 후배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고상식, 그때 주변이 웅성거리며 한 명의 시위자가 등장한다. 얼굴을 우스꽝스런 가면으로 가리고, 온 몸을 피켓팅한 그는 양 손에 불을 붙인 화염병을 들고 등장하여 다짜고짜 시장을 나오라 외치며 구청 복도를 질주한다. 시청에는 지키고 있던 사람들도 없었던 양,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있을 고상식의 활약상을 위해 모두들 앞다투어 소리를 지르며 피해가고, 시위자는 순조롭게 계단을 올라 고상식이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복도에 이른다. 화염병을 든 시위자를 발견한 고상식, 당연히 그는 말로 그와 대화를 나누려 한다. 하지만, 그런 고상식에게 시위자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고, 고상식은 그런 폭력에도 주저치 않고 온 몸으로 화염병을 든 그를 저지라려 하고, 그러다 화염병이 떨어져 불이 붙고, 그 과정에서 고상식은 어떻게든 그 피해를 막아보려다 다치게 된다. 이 장면이 1회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고, 다음 장면 고상식은 응급실에서 여자 주인공 강민주(김희애 분)와 나란히 눕는 것으로 이들의 남다른 인연이 예고된다. 

왜 하고 많은 드라마를 놔두고, 그저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시위자'를 건드냐고? 그러면 이렇게 반문하게 된다. 왜 하고 많은 설정을 놔두고, 남자 주인공의 정의로움을 들먹이기 위해,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 응급실에서 여주인공과의 인연을 설정하기 위해 애꿏은 1인 시위자를 도구로 사용해야 했냐고? 

드라마는 마치 1인 시위자에 대한 편견을 피해가기라도 하는 듯, 시위의 내용을 '농작물 피해주는 캣할머니'로 희화화시켰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동물 보호에 대한 혐오'를 앞세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위자가 뒤집어 쓴 피켓의 내용이 아니다. 과연,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 그 문구가 먼저 들어왔을까? 오히려 그 보다는, 그가 1인 시위자라는 점, 화염병을 들었다는 점, 거기에 '대화'는 통하지 않고 무작적 자기 목적을 위해 '폭력'도 불사한다는 점이 우선 시선을 끌지 않았을까? 그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항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든 화염병을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상해를 입히는 도구로 소모한다. 뿐만 아니라, 암묵적으로 '시위'자는 자신의 목소리만 높일 뿐, 타인과의 대화에는 소통 불능인 제 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그려낸다. 바로 이런 무의식적으로 다루어 지고 있는 1인 시위'자에 대한 편견이, 주말 10시대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의 정의로움을 설득해 내기 위해 '소모적', '편의적'으로 다루어 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우리 사회 시위 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암묵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드라마 속 '시위'는 대부분 그 집단 행동이 긍정적이거나, 드라마의 전개 상 개연성을 가지고 등장하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인 비일비재하다. 

즉자적이거나, 무기력한 반응으로서의 '시위'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의 아들 유괴 사건을 빌미로 방영되는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을 그리고 있는 sbs 수목 드라마 <원티드>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범인의 요구에 맞춰 리얼리티 방송을 마련한 정혜인을 비롯한 원티드 팀, 그들에 반대하여 방송을 하게될 ucn 방송사 앞에는 '시위'대들이 상주한다. 현실적으로 범인의 요구에 맞춰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을 한다는 사실 자체는 충분히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그에 반대하는 '시위'는 있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시위대'는 어쩐지 그런 시의적절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의식적 목소리라기 보다는, '대중의 감정적이고 즉자적인 반응'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하동민 원장이 출연하는 회차에서, 시위대는 그의 사주를 받은 그로부터 호혜적 시술을 받은 환자의 엄마가 시위대의 일원이 되어 등장하여, '시위'의 목적성을 훼손한다. 물론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이른바 '관제 시위' 등의 현상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런 부정적인 일면을 지적하고자 하기엔, 그에 반한 '시위'의 긍정성에 대한 주목이 드라마의 전개 상 취약했다. 그저 <원티드> 속 '시위대'는 배려심없는 대중의 즉자적 반응이거나, 조작된 반응으로 다루어 지며, 대중에 대한 '냉소'를 깊게 한다. 

그런가 하면 <38사기동대>에서의 시위는 무기력하다. 극중 최철우 회장은 '마석동'을 재개발 하려고 하고, 이에 마석동 주민들은 철거 반대 시위를 한다. 그 중에는 백성일(마동석 분)과 양정도(서인국 분)가 즐겨찾는 국밥집 주인 할아버지도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마석동을 찾은 천성일 시장(안내상 분), 하지만 최철우 회장의 계략에 따라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천성일 시장에게 달걀을 투척하고, 그 과정에서 국밥집 할아버지는 '폭력 시위' 주동자로 경찰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38사기동대>는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시위 현장에서의 '불순 과격 시위' 조장자에 대한 이면을 까발리며, 철거 시위의 속내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잃은 마석동 주민들이 하는 일은 없다. 시위를 하지만, 국밥집 할아버지처럼 억울한 법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현대판 홍길동을 그려내는 <38사기동대>의 활약을 위해, 철거민들의 애닮은 사연과 무기력함은 드라마를 위해 한껏 조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드라마는 힘없는 자들의 반격을 위해, 힘없는 주체들을 '소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선 피해갈 수 없다. 



물론 지난 4월 13일 방영되었던 sbs의 2부작 <나청렴 의원 납치 사건> 처럼, 철거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 납치까지 감행하는 역대급 슈퍼 을들의 반란을 통쾌하게 그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막극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시위'에 나선 군중이나 개인은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에서처럼 도구적이거나, <원티드>에서처럼 즉자적이고 감정적인 우중이거나, <38사기동대>에서처럼 무기력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미지들인 반복되다 보니, 이미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지배되어 있는 '시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개선될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든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통치 방식은 '분할주의'이다. 우리 사회 세월호에 이어, 최근 성주 군민들처럼,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나서는 사람들을 대다수의 군중으로 부터 고립시키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고, 특히나 군사적 전체주의 문화에 아직도 길들여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분할 통치 방식은 매우 잘 먹히고 있는 편이다. 그리하여 세월호든, 성주군민들의 사드 시위 등은 모두,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 그래서 좀 있다보면 듣기 지겨워지는 남의 소리로 우리 사회에서 '매장'되어져 간다. 그런 분할주의 통치 방식 이면에는, 우리 역사에서 분명 '혁혁한 역사적 도화선으로' 자리 매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위 문화'에 대한 대중 매체의 표현 방식도 한 몫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by meditator 2016. 8. 1. 16:11

애초에 기획된 16부작을 14부작으로 '조기 종영'하기로 결정난 <뷰티플 마인드>, 하지만 끝없는 '부진'이라는 말에 아랑곳없이, '조기 종영'이라는 불명예가 무색하게, 이제 12회까지 종주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뷰티플 마인드>의 서사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다. 주제 의식은 명징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괴물의 아이, 이영오
그의 눈을 가렸던 선그라스를 벗고, 계진성에게 '사랑'을 다시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다짐했던 이영오, 묵직했던 이야기가 드디어 말랑말랑한 '연애사'로 참기름 칠이라고 하는가 싶더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처럼 '사랑'을 해보고 싶다던 그의 욕심을 의사 이영오(장혁 분)가 처한 상황이 다시금 뭉개버린 것이다. 레지던트 동하가 살려낸 친구가 햇빛을 피해야 하는 루푸스라는 질병에도 불구하고 다시 먹고 살기 위해 뜨거운 햇빛 아래 실외기를 달기 위해 건물을 오르다 추락하여 응급실에서 젊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의 철부지 친구였던 동하를 비롯한 응급실의 모든 스텝은 오열하고 만다. 하지만, 그 순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단 한 사람, 이영오는 결국 다시 김민재가 권했던 뇌 ct를 찍고 자신의 전두엽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한다. 계진성을 만나 두근거렸던 심장조차 결국은 '학습'이라 결론내린 이영오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사랑'마저 포기하고 만다. 



'평범한 사람'과 '사이코패스'의 간극에서 좌절하고 만 이영오, 하지만 <뷰티플 마인드> 12회는 그 이영오의 좌절, 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괴물의 슬픔, 그 이면의 진실을 폭로한다. 이미 앞선 회차에서 이영오의 사이코패스성이 아버지 이건명(허준호 분)의 의료 과실이었음을 드러낸 바 있었던 드라마, 하지만 12회, 그 알려진 비밀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아버지 이건명은 '보통 사람'처럼 '확률'이 아닌 '마음'으로 환자를 지켜보는 아들 이영오를 통해 '사람'을 학습시킨 자신의 교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건명은 아들 이영오에게 그랬듯이, 이번에도 줄기 세포의 연구에 대한 신념 대신 해외 자본 투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해외 자본을 등에 업고 나타난 그의 예전 동료는, 그가 예전 이영오에게 그랬듯이 여전히 '정의'를 가장한 채, 자신의 이기심으로 가득찬 인간임을 폭로한다. 이영오는 이건명의 의료 과실이 아니라, 예전의 미흡한 의료 기술로 말미암은 오진이었던 것이다. 즉, 이영오는 전두엽에 장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두엽에 장애가 있다고 믿은 이건명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키워진 것이다. 결국 이건명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이영오를 장기간에 걸쳐 '교육'이란 명목으로 '정신적 학대'를 했고, 그 결과 이영오는 진짜 전두엽의 장애를 가진 인물로 자라난 것이다. 

누가 진짜 괴물일까?
12회에 드러난 사이코패스가 아니지만,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린 이영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애써 예를 들려 하지 않아도 '자식을 위해서'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의 입신양명에만 힘쓴 많은 부모들이 떠올려진다. 결국 그들은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자식을 위해서의 본심은, 드라마에서처럼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에서 부터 자신의 명예, 자신의 위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걸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폭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이건명을 '괴물'이라 지칭하면 끝날까? 그러기엔, <뷰티플 마인드>를 통해 드러난 괴물들이 너무 많다. 당장 이건명은 평생을 받쳐, 더 이상 '외과 의사'가 필요없는 세상을 위해 신약 계발에 매진해 왔다. 이건명이나, 현석주(윤현민 분)가 자신, 혹은 누군가의 명예를 위한 이기심에 휩쓸렸다지만, 하지만 그를 비롯한 연구진의 열정은 '현성'이라는 자본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자본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원장이 된 이건명을 과거의 오명으로 흔드는 건, 외국 자본의 앞잡이가 된 친구요, 그와 손을 잡은 건 당연히 '자본' 현성이다. 

11회, 한때는 중학교 같은 반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았던 급우가, 이제는 병원에서 실려온 환자와 의사로 만나게 되듯, 그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의사가 '우정의 선심'으로 고쳐놔도, 몇 시간 만에 결국 생계의 전선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듯,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시스템'은 한 개인을 넘어선다. 드라마는 곳곳에서 개인들의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갈등들을 분출해 내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건, 안타깝게도 시스템이다. 개인의 명예도, 자식을 위한 사랑도, 순수한 열정도 모두 '자본'이란 시스템 속에 휘말려 버린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사이코패스,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의사가, '인간적 유혹'에 무딘 가슴이 뛰지 않는 의사가, 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강직하고, 가장 선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술'을 펼치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아니, 이런 것은 비단 드라마 내적인 문제 만이 아니다. 4%조차 넘기 힘들어 조기 종영당하는 <뷰티플 마인드>의 곳곳에서 만나는 문제들, 그리고 툭툭 내뱉어 지는 대사들은, 마치 이 드라마가 현 시점에서 '조기 종영' 당할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인 양 시의적이다. 드라말 속 현성이란 자본 속의 의사들은 '환자'를 생각하기 전에, 서슴없이 '돈'을 떠올리고, 의사로서의 위상을 앞세운다. 

<뷰티플 마인드>는 올림픽을 이유로 해서, 애초에 기획되었던 16부대신, 14부로 조기 종영된다.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에 붙인 기사는, 마치 12부로 조기 종영할 것을 선심쓰듯이 14부로 마무리할 것이라 언급한다. '자본'으로 돌아가는 드라마 시장에서, '광고'가 붙지 않는, 그래서 ppl조차 감사한, '젊은 한류 스타'가 붙지 않아 해외 시장 판매조차도 쉽지 않은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은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당연한 듯이 치부된다. 초반의 매끄럽지 않은 진행으로 책임이 물어지기도 한다. '자본'의 시장에서, '예술'이나, '고상한' 주제 의식은 사치인 양 손가락질 받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kbs2는 '시청료'를 받는 방송국이다.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공영 방송인데, 이곳에서 '광고'니, '자본'이니를 들먹이며, '조기 종영'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인지. 

이런 일련의 조기 종영을 둘러싼 불협화음들은 묘하게도 현성 병원 속 자본의 논리와 맞물리며, 그 속에서 사람답지 않은 마음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영오는, 사람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주제 의식과,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조기종영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뷰티플 마인드>에 겹쳐진다. 사이코패스 이영오 뒤에 그를 키운 괴물 아빠 이건명, 그리고 그의 명예심을 가지고 그를 뒤흔드는 '자본' 현성, 그리고 20부작이래도 아쉽지 않을 드라마를  몇 프로의 시청률을 들먹이며 '완주'를 발목걸고만 방송국, 과연 끝판왕 괴물은 누구일까? 
by meditator 2016. 7. 27. 13:46

우리나라에는 종묘, 해인사 대장경판, 석굴암 등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훌륭한 조상들의 문화 유적이 많다. 조상들이 물려주신 유산이 세계인들 사이에서 어깨를 당당히 펴고 한 자리 차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우리 시대는? 우리 시대의 것중, '유산'이 되어 세계인은 둘째치고, 후손들에게 남겨 줄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대답엔 그 누구도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건설 입국'의 나라에서, '오래된' 것의 가치를 기리기 전에, '오래된' 것은 곧, '철거 대상'이 공식인 나라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는 세대가 될 지로 모를 일이다. 그런 우리의 풍토에서, 7월 24일 방영된 kbs1 <다큐 공감>을 통해 방영된 <낙원 상가 살리기, 내 인생의 콘서트>는 바로, 이런 우리 시대 문화 유산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현답'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40년 된 세계최대의 악기 상가, 낙원 상가 
낙원상가는 1968년에 지어진 곳이다. 5층의 상가에 15층짜리 아파트가 함께 하는 이 곳은 지어질 당시 한국 최초의 주상 복합 건물이었다. 1960년대식 한 글자가 실종된 '낙원삘'이란 건물 명패가 남겨져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아직도 건재한 채 오늘에 이른다. 처음 다양한 상품을 팔던 이곳은 '악기 상가'들이 하나 둘씩 자리잡으면서 이제는 300여 개의 악기상들이 모여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상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물론 '낙원 상가'라고 해서 '세월'을 순조롭게 넘기지는 못했다. '건설 입국'의 재개발 열풍이 이곳에도 휘몰아쳐, 2000년대 '도심 재창조' 명목으로 '철거' 위기가 닥친 것이다. 하지만, '건물 안전 진단' 결과, 한강의 모래와 자갈돌이 뒤섞여져 만든 이 건물은 여전히 못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100년은 끄떡없다는 진단으로 '철거'의 광품을 피해갔다. 무엇보다 '철거'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여(?) 이곳의 '악기 상인'들이, 악기상의 메카인 낙원 상가를 지키려는 꿋꿋한 의지가 시대의 얄팍한 욕심을 이겨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울 중심의 '낙원 상가'처럼 곳곳의 특색있는 거리들이, 정부의 '도심 재창조'를 통해 전통이 무색하게 건물의 일부로 그 존재감을 상실하거나, 아예 둥지를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과는 다른 '거주민 의지'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세월을 거스르기는 힘든 법, 한때 도심의 중심 번듯한 주상 복합 건물은 종로 3가 도심의 한 구석에 웅크린 채, '최대 규모의 악기 상가'라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행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는 것이다. '통키타'붐이 일었던 시대에는 '기타'를 사기 위해 젊은이들이 뻔질나게 발길을 하던 곳, 그리고 '피아노' 열풍이 불던 때, '조율'과 '수리'의 메카였던 곳이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낙원 상가는 '낙후된 건물'이나, 추억의 장소로 여겨질 뿐이다. '낙원 상가'의 상인들은, '악기'가 필요한 사람들만 찾는 특수한 곳인 '낙원 상가'가 다시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민이 깊어진다. 

낙원 상가가 나이들어 가는 법
그 고민의 결과물은 '문화 유산으로서의 '낙원 상가'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다. '중고 악기 기부 캠페인'을 통해, 이전에 악기를 사용했던 시민이나, 음악인들에게 악기를 기부 받아, 낙원 상가의 기술력을 통해 그 악기를 '소생'시켜, 악기가 필요한 꿈나무나, 학교, 직장들에 악기를 나눠주어, '음악'하는 문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또한, '반려 악기'캠페인을 통해 은퇴한 음악인이나 대중 음악인들의 품앗이를 통해, '음악하는 문화'의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낙원 상가'는 그저 악기를 팔고, 수리하는 '상점'이 아닌, '문화 유산'으로서의 존재감을 새로이 정립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7월 24일 다큐가 다루고 있는 것은 7~80년대 인기를 끌었던 통기타 동아리 상투스 초기 멤버들의 콘서트이다. 낙원 상가에서 악기를 샀던 유명인들도 많다는 데 왜 상투스였을까? 1968년에 세워진 '낙원 상가', 그 상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의 통기타 붐과 함께 였다. 그리고 통기타 동아리 상투스는 70년대 만들어진 대학생들의 통기타 동아리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젊은이들은 통기타를 사기 위해 낙원 상가를 들렀고, 당시 산 기타와 함께 이젠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노년들이 되었다. 바로, 그들이 '낙원 상가'를 있게 한 음악의 향유자들이었고, 그런 그들과 함께 낙원 상가도 나이들었기에, 이 40년지기 벗들이 함께 한 공연의 의미는 남다르다. 기타를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기타'로 밥을 벌어먹고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기타'로 인해 인생이 행복하다는 사람들, 바로 그들의 존재가, 낙원 상가가 40여년을 버텨오고, 100년을 버텨갈 힘이 되는 것이다. 바로 악기를 나누어 주고, 평생 악기를 함께 할 문화를 만들 듯, 그렇게 '악기'와 함께 살아온 벗들의 공연이 바로 '낙원 상가'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을 끌기 위해 낙원 상가 4층 야외에 마련된 공연장, 거기에서 어스름 저녁에서 시작하여, 어둠을 밝히며 진행된 공연, 한때 장발의 머리로, 나팔 바지를 휩쓸며 기타를 둘러맨 젊은이들은 여전히 청바지를 입었지만 이젠 아들과 손자가 있을 정도로 희끗희끗한 머리를 숨길 수 없다. 그러나, 그 노년들이 무대에 서서, 서로가 눈빛을 교환하며 화음을 맞춰, 통기타 시절에 유행하던 팝송들을 다시 입을 모아 부를 때, 그들은 여전히 젊음이다. 그리고, 그 젊음을 소환해낸 낙원 상가는 '이 시대의 문화 유산'으로 멋지게 늙어가는 모습을 증명해 낸다. 

물론 콘서트는 조촐했다. 하지만, 도심의 한 구석에서 낙후된 건물로 늙어가는 대신, 그 늙음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부단히 모색하는 낙원 상가의 모습은, 이 시대 우리의 문화 유산의 방향을 제시한다. 영국의 오래된 서점 거리 '헤이 온 와이(hay on wye)가 이제 영국에 가면 들러봐야 할 유명 여행지가 된 이유는, 그곳을 즐겨 찾는 영국인들의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국의 부커상이 전 세계에 중계될 정도로 '책'이 문화가 된 풍토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러기에 '세계 최대'라는 악기 상가의 이름표 대신, '문화 공간'으로서 '낙원 상가'를 모색하고자 하는 모습을 다룬 <다큐 공감>은 소소한 도전이지만, 소중하다. 
by meditator 2016. 7. 25. 15:42

<운빨 로맨스>에 이은 <w>가 첫 선을 보이고, 새로운 수목 드라마 대전이 시작되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던 <함부로 애틋하게>가 12.9%로 안정적으로 1위를 선점한 가운데, 이종석, 한효주 두 배우를 앞세운 <나인>의 송재정 작가의 야심작 <w>가 전작에 바통을 받아 8.6%로 희망적인 출발을 했다. 두 드라마 모두 장르는 다르지만 스타급 배우들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려가거나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의 접전이 점쳐진다. 




그런 가운데, 그렇다면 새로운 수목 드라마 대전의 희생자는? 안타깝게도 '미스터리'한 구조에 있어 <w>와 시청층이 겹쳐있는 sbs의 <원티드>이다. 그간 7%대의 안정적 시청층을 유지하던 <원티드>는 7월 20일 5.4%로 내려앉았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유난히 7회 방영분이 재미없었던 것일까? 아니 오히려, '사랑' 놀음을 기대하기 힘든, 이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진실 찾기' 게임보다는 미스터리해도, 그래도 선남선녀의 '사랑'이 예고된 새로운 드라마가 더 구미가 당긴 것이리라. 

시청률은 떨어졌지만, 주제 의식은 명징
하지만 시청률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20일 방영된 <원티드> 7회는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 회차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공기'처럼 우리와 호흡하는 '방송'과 나아가 '언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의 아들 현우 납치 사건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범인의 요구에 따라 실시간 생방송 리얼리티 쇼로 미션을 수행해 나간다. 가정내 아동 학대로 시작하여,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임상 약물 시험 등 아동과 관련된 듯한 사건은,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여, 드디어 7년전 정혜인의 전남편이자 sg그룹 막내 아들 태영의 죽음으로 모아진다. 그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조남철, 경찰청장의 죽음이 이어진다. 사건의 가닥은 잡혀가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폭로와 죽음이 이어지고, 정작 범인에 대한 추적은 모호해지며, 이제 8회를 앞두고 방송사 건물에서 한 여인이 떨어져 죽음으로써 이 사건과 방송국 내의 인물과의 관계가 좀 더 부각되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사건만 보면 대략 이렇다. 하지만 정작 <원티드>라는 드라마가 생방송 리얼리티 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우 납치 사건과 그 이면의 거대한 음모들을 밝혀가는 것과 달리, 이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들이 미디어의 민낯이다. 



자신이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리얼리티 쇼를 감행할 것을 요구한 범인은 시청률 20%를 마지노 선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현우를 찾고자 하는 정혜인 이하 방송팀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20%의 고지를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걸 위해 정혜인은 아들이 납치당한 상황을, 그리고 그 상황의 해법인 리얼리티 쇼를 홍보하기 위해 또 다른 리얼리티 쇼에 게스트로 참석하는 것은 물론,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리얼리티 쇼의 현우의 새아빠이자, 정혜인의 현 남편인 ucn의 사장 송정호(박해준 분)의 협조로 가능해진다. 거기에 합류한 정혜인의 지인인 ucn 드라마 국장 최준구(이문식 분), 방송국 파워 게임에서 밀려난 전직 피디 신동욱(엄태웅 분), 최고의 방송 작가 연우신(박효주 분) 등이 합류한다. 

괴물이 된 방송, 하지만 그 '괴물'을 키우는 건?
현우 찾기라는 의로운 목적으로 시작된 방송, 하지만 방송은 20%라는 시청률, 즉 시청자의 시선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로 변해간다. 아들을 잃은 엄마 정혜인은 아들을 찾기 위한 방송의 사활을 위해, 그룹은 물론, 이제는 검사까지 찾아가 sg그룹의 고문 변호사 자리를 놓고 딜을 하는 막후 교섭자가 된다. 방송을 책임진 신동욱 피디는 이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 잡기 위해서는 범인에게 인질로 잡힌 동료을 구하기 보다 카메라를 먼저 들이대는가 하면, 조남철이 죽은 현장조차 가감없이 방송을 통해 내보낸다. '현우'를 찾아야 하는, 그래서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방송에 참여한 저마다의 인간 군상의 민낯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그 속에서 <원티드>는 인질에 잡혔던 연우신을 통해, 그리고 가장 어린 스텝 박보연(전효성 분)의 갈등을 통해, 방송의 목적과 수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의문은 7회에 드디어 직격탄으로 제시된다. 전국민의 관심을 받아 무난하게 시청률 20%를 달성했던 <원티드>,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이 터져나온다. 애초 방송 시작과 함께, 방송사 앞을 점거하며 왜곡된 수단으로써의 리얼리티 쇼에 대한 시위는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현우를 납치한 범인이 나수현(이재균 분)으로 드러나면서, 나수현에 대한 동조 여론은 이제 그를 '주군'으로 받드는 인터넷 모임까지 결성되며 뜻밖의 파문으로 번진다. 그간 <원티드>를 통해 보여졌던 범죄가 '유전무죄'라는 시민적 각성이 왜곡되어 드러난 현상이다. 그리고 그 파급의 결과, 7회 모방 범죄까지 저질러 지는 결과에 이른다.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이를 데려다 주려 유치원에 간 연우신이 목격한 아이들의 원티드 놀이이다. 시청률 20%, 어느덧 전국민적 방송이 된 <원티드>는 유치원 아이들조차, 범인으로 삼은 아이에게 밧줄을 묶어 꿇어 앉혀 놓고 재밌다고 웃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렇게 <원티드>는 지난 7회 현우 납치 사건과 그 사건의 미션으로 진행된 리얼리티 쇼 <원티드>를 통해 우리 사회 벌어지는 미디어의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방송을 이용하는 범인,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방송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사연이 밝혀질 수 없는 '유전 무죄'의 사회, 하지만 이런 비리와 모순이 방송이라는 '프레임'을 거치며 때로는 좀 더 자극적으로, 때로는 왜곡된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드라마 <원티드>를 통해 고발된다. 



하지만 <원티드>가 놀라운 것은 그저 방송 현실, 미디어의 속성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원티드>는 그렇게 '괴물'이 되어가는 방송, 미디어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 대한 의문을 남긴다. 시청률 20%를 제시한 범인, 그리고 그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동료도, 잔인한 시신의 모습도, 절체절명의 순간도 방송으로 내보내는 제작진, 과연 그것이 가능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말이다. 아들을 잃은 모성도, 매회 벌어지는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미션조차도, 그제 '게임'처럼 소비하는 주체, 대중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한 아이의 생사가 달린 리얼리티를 대중은 그저 '쇼'로 소비한다. 드라마 속 거리의 소녀는 <원티드>를 '재밌다'고 반응한다. 모방 범죄에 가담한 자들 역시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혹은 어줍잖은 흑수저의 분노로, 혹은 자신도 tv에 주목을 받고자 또 하나의 범죄를 모의한다. 방송 초반 진실을 폭로한 간호사의 목적이 알고보니 5억원이었다던가, 나수현의 반지를 제보한 사람이 보상금에 대한 요구를 당당히 하는 장면, 그리고 결국 아이들조차 '재밌다'고 원티드 게임을 하는 상황에 이르른 드라마 속 현실은, 클릭 수에 목매달아 '각종 찌라시성 기사'를 양산하는 언론과, 공공의 전파를 통해 아니면 말고 식의 '황색 보도'를 일삼는 방송들의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도록 한다. 


by meditator 2016. 7. 21. 15:52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올린다. 하지만 이건 거짓이다.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고 느끼게 하는 건 바로 우리의 뇌, 그 중에서도 전두엽의 감정 중추이니까. 하지만 그런 과학적 사실을 다 알고 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심장이 울리는 내 가슴에 손을 얹어 내 마음을 표현한다. 어쩌면 '과학' 이전에, 심장의 떨림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공감'의 느낌에 솔직한 건 아닐까. 




이영오식 인간학, 인간을 헤집다 
이영오(장혁 분), 은혜원의 205번째 아이,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살리기 위해 이영오를 수술하다, 자신의 아이를 잃고 이영오의 전두엽 감정 중추까지 손상시킨 이건명(허준호 분)은 자신의 의료 사고를 책임진다며, 이영오를 이영오란 이름으로 입양한다. 그리고, 책임이란 이름 아래,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흉내를 내도록 이영오를 '훈련'시킨다. 하지만, 그는 이영오가 자신과 같은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감정이 없는 너는 불가능하다고 반대한다. 그 누구보다 이영오를 잘 아는 이건명은, 이영오가 환자의 복잡한 감정을 공감하지 못해 시한부의 환자를 살려내고, 결국 그의 아내가 그를 죽이는 결과에 이르자, 서슴없이 이영오에게 '괴물'이라 칭한다. 아버지의 허물마저 덮어주려 애썼던 이영오에게 돌아온 아버지의 대답은 '괴물'이었고, 애써 사랑을 노력했던 김민재(박세영 분)에게서 되돌려 받은 것은 사이코패스 이영오에 대한 폭로와 치밀한 연구였다. 그렇게 보통 사람으로 더불어 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며 따돌림을 받는다. 그와 함께, 그가 쌓아왔던 읽어서 도달했던 '인간들 마음'의 세상도 흐트러진다. 

첫 회 병원을 난입한 강철민의 테이블 데쓰와 국회의원 김명수의 라이브 서저리, 그리고 이어진 신동재 원장의 죽음, 심은하 사망 사건으로 <뷰티플 마인드>는 현성 재단이 운영하는 현성 병원에서 벌어진 새로운 신약 계발에 따른 임상 실험의 부작용을 둘러싼 비리와 음모라는 굵직한 갈등으로 진행된다. 거기서,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화려하게 현성 병원으로 입성한 이영오는 '공감 능력 제로의 사이코패스'이기에, 각자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현성 병원 속 잇달은 '연쇄 살인' 속에서, 오히려 '의사'로서의 평점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이 평생 이루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 '진실' 대신,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거짓'의 진실을 추구한다. 하지만, 오히려 '공감'할 수 없었던 이영오는 그들의 거짓을 넘어, 진실을 추구하고, 그런 이영오는 그가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 그가 그들이 덮어두고자 하는 '진실'을 끄집어 내는 불편한 존재라서 외면받게 된다. 

<뷰티플 마인드>는 의학 드라마로 시작하여, 병원 내 신약 계발 비리와 관련된 스릴러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질문한다. 그것도 바로 우리가 가장 경외시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존재를 통해. 드라마 속 이영오는 각자 자신이 보고싶어 하는 진실만 보는 인간 세상의 '리트머스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는 그의 말대로 어떤 가치 판단에 흔드리지 않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의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의로움'은 편의적인 인간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배척받는다. 마치, '모난 돌이 정맞는다'라는 속담을 비껴가지 못하듯이, 김민재를 내세운 현성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영오가 사이코패스라 돌팔매를 던지지만, 사실은 그들의 '거짓'된 속내가 들통날까 두려운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어 마음을 표현하듯, 이영오 마음을 배우다
그렇게 지난 시간 사람이 되기 위해 '학습'했던 '인간학'의 붕괴를 경험한 이영오, 자신이 학습해온 인간에 대한 논리, 확률의 세상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다행히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 <뷰티플 마인드> 첫 회부터, '진상' 노릇을 톡톡히 했던 계진성, 그 '진상'이, 여전히 '진상'답게 남들이 다 외면한 이영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진상'이 희망이 되는 순간! 그리고 그 '진상'의 '희망'을 통해, 이영오는 '와이파이'처럼, 그가 놓쳐버린 인간 세상의 숨겨진 신호를 찾아간다. 그가 '학습'을 통해서 외웠던 도식,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또 은밀한 '마음'의 신호들을. 

여전히 그는 스스로의 입으로 덤덤하게 말하듯 자신은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라 하지만, 그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는, 현성에서 폐암 말기의 자포자기 환자도, 가정 학대를 받은 어린 환자에게도 '공감'이 넘치는 의술을 펼친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와이파이가 필요해서라고 하지만, 이영오는 '희망'을 전해준 계진성바라기가 되어있다. 이제 '사랑'까지 시도해 볼 용기를 낼 정도로. 비록 그는 전두엽의 상흔으로 공감할 수 없지만, 아버지 이건명으로 부터 받은 기억으로 어린 가정학대 환자의 마음을 짚어내듯이, 그가 경험했던 '역지사지'로 가장 지혜로운 의사로 거듭난다. 마치 마음이 없는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가 마음을 경험하듯. 



숨가쁘게 현성 병원을 둘러싼 음모와 그 음모에 따른 인간 군상의 이합 집산을 사이코패스 이영오를 통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인간에 대한 회의와 질문으로 집요하게 따라붙었던 <뷰티플 마인드>는 이제 중반, 7회에서 10회차를 거치면서, 리트머스 시험지의 자가 발전을 위한 '쉼표'와 같은 시간을 가진다. 더불어, 단선적인 캐릭터였던 계진성에 대한 존재 이유도 더해진다. 덕분에 '비인간적'이었던 확률 기계 이영오는 이제 여전히 사이코패스라지만, 어쩐지 귀엽기까지 한 종종 그가 공감 능력 제로가는 것이 의심스럽기까지 한 현명한 의사로 거듭났고, 고지식해서 답답했던 계진성은 그래서 이영오의 와이파이가 될 수 있는 순수한 진짜 첫사랑이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들과 달리, 복잡한 갈등 구조에, 첫 회에 단번에 매료시키는 주인공들은 아니었지만, 회차를 거듭할 수록, 볼 재미가 깊어지는 드라마이다. 부디, 남은 회차동안, <뷰티플 마인드>의 건투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6. 7. 20. 15:12

'딸이 없어서 어쩐대요. 나이 들어 마음 알아주는 딸도 없고, 함께 수다 떨 딸도 없어서', 아들만 둘을 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소리다. 마치 딸을 두지 않은 것이 가장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벗이 없는 것인 양 말을 해댄다. 그렇게 딸 가진 것을 유세하고, 딸의 효용 가치를 논하던 사람들, 하지만 현실의 딸들은 그렇게 엄마 마음을 알아주고, 엄마의 따스한 말벗이 되는 '딸'의 역할에 비명을 지른다. 7월 4일과 11일에 걸쳐 방영된 <mbc다큐 스페셜>의 이야기다. 


<mbc다큐 스페셜>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이 가깝다고 하는 사이 엄마와 딸에 대해 입을 뗐다. 하지만, 사랑과 헌신의 관계이자, 화기애애한 사이인 줄 알았던 우리 사회 모녀 사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갈등을 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부, <착한 내 딸의 반란>과 2부, <엄마처럼 안 살아>이다. 



착한 내 딸? 엄마가 미워요.
젊은 사람들 중에는 자식을 하나만 낳아야 한다면 '딸'을 낳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식에 의한 노후 봉양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렇다면 기왕이면 키우는 재미가 있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딸을 가지고 싶다는 변화이다. 

하지만 '친구 같은 딸'의 현실은 다르다. 익명을 빌어 인터넷 게시판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모녀 갈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올라온다. 부모가 자식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 '불효'라고 손가락질 받는 한국 사회에서, 모녀 갈들이 '정신과'에 갈 정도의 사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엄마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 같이 착한 딸에 대한 기대치는 '딸'들을 짖누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모녀 간에 빚어지는 갈등은 '컴플렉스'의 수위를 넘고 있다. 다큐의 1부는 우리 사회에 보여진 화기애애한 모녀 관계 이면에 숨겨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갈등의 현주소를 낱낱이 다룬다. 

천사 엄마, 현모양처 은정씨에게 엄마는 그녀가 극복해낸 암보다도 더 위협적인 존재이다. 엄마만 보면 솟구쳐오르는 화를 주체할 길이 없다. 그리고 엄마에게 화를 내는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상담 전문가 현아씨, 가정 불화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를 위로해주던 그녀가 언제부턴가 자꾸 엄마에게 신경질만 내고 있다. 좋은 학벌, 좋은 직업으로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지영씨는 이제 엄마와 인연을 끊으려 한다. 그녀에게 엄마는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었다. 그녀의 지난 인생은 그저 엄마의 꼭두각시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엄마로 인해 고통받는 딸들, 그런 딸들이 서운한 엄마들, 그리고 나아가, 그래서 인연을 끊고 싶어 하는 딸들, 유령 취급을 받는 70대 노모, 엄마에 대한 분노로 섭식 장애를 겪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 들, 이렇게 모녀 관계에서 문제를 빚고 있는 엄마와 딸들이 모여 2016 모녀 힐링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저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로 설득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를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불행의 대물림, 그 근저엔
엄마와의 갈등을 겪는 대부분의 딸들은 '난 엄마처럼 안 살아'라고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 아예 엄마처럼 될까봐, 자식을 낳는 것을 두려워하기 까지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모녀 관계의 근저엔, 엄마들의 '딸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혹은 소망으로 부터 비롯된 왜곡된 기대, 그리고 엄마의 굴곡진 삶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는, 현실의 굴곡진 모녀 관계로 부터, 그 갈등의 근원을 유추해 들어가고자 한다. 수십년 전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여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던 미하 씨, 그녀는 이제 그간 보험까지 하며 가정을 돌보느라 분주했던 지난 시간 못다했던 엄마 노릇을 다하기 위해 딸의 산구완을 해주려 했지만, 딸과 얼굴만 마주치면 갈등을 빚는 처지가 되었다. 오죽하면 딸은 한 달을 다 채우지 않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덟 남매의 막내로 자란 지현씨는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안아줘'라며 매달리는 딸이 귀엽기는 커녕 부담스럽다. 심지어, 몇 년전 딸에게 모질게 매질한 기억이 그녀를 내내 괴롭힌다.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홈스쿨링'까지 했던 엄마에게 딸은 엄마와 딸의 관계가 상전과 시종의 관계였다고 단언한다. 

다큐가 주목한 것을 현재의 불행이 아니다. 현재 엄마와 딸의 갈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현재의 갈등을 불러오게 만든, 엄마의 히스토리, 즉, 엄마가 그 엄마와 가졌던 관계, 그리고 나아가 우리 한국 사회의 가족의 역사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것은, 현재의 가족 관계까지도 짖누르고 있는 '가부장제'의 그늘이다. 

딸의 산구완조차 미처 마치지 못한 엄마 미하씨는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다. 8개월의 만삭으로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끓여대며 시누이 산구완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아이를 낳고 받은 것은 미역 몇 줄기가 들어간 멀건 국물이었다. 그렇게 모질게 시집살이를 겪은 그녀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딸, 하지만 그렇게 엄마의 학대를 지켜본 딸은 괴로웠다. 그 학대의 가해자 역시 그녀의 피붙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엄마의 고통스런 역사에 대한 배설구가 온전히 자기 밖에 없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거기에 생계을 위해 외면받은 자신의 시간에 대한 불만도 켜켜이 얹혀진다. 

경우는 달라도 근원은 비슷하다. 딸의 스킨쉽이 부담스러웠던 엄마의 기억 속엔 8남매를 키우느라 늘 자신에게 냉랭했던 엄마가 남아있다. 고된 생활에 지쳐 종종 부지깽이를 집어들던 매질의 기억과 함께, 결국 지금 자신의 냉랭함과 모진 매질의 유래가 자신의 엄마에게서 부터 기인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딸과의 관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문제가, 그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모녀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감정의 끈을 풀어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처럼, 자신의 어머니도 힘들게 살아왔음을 '역지사지'로 헤아리며 눈물마저 흘린다. 



하지만, 다큐는 이런 모녀 관계의 해소에 만족하지 않는다. '착한 딸, 친구같은 딸'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가부장제의 상흔이, 온전히 딸을 통해 감정적으로 해소되고 있는 우리 사회 왜곡된 관계의 구조가 현실의 모녀 갈등을 빚는다고 짚는다. 즉 지난 시절 가부장제로 인해 고통받은 어머니들의 고통을 사회가 알아주고 풀어주지 않으니, 엄마들은 딸에게 매달리고, 결국 자신의 삶도 살기에 버거운 딸들은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그런 어머니를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부장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왔던 우리 사회 모녀 관계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오늘날의 모녀 갈등인 것이다. 

모녀 갈등을 다루고 있는 2부작 <mbc다큐 스페셜>에서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박완(고현정 분)과 난희(고두심 분)의 모녀 갈등이 떠올려 진다. 두 모녀는 16부의 드라마 내내 참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심지어 딸 완이는 자신의 삶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 엄마 앞에서 자해를 하며 난리를 쳤고, 엄마는 그런 딸을 부등켜 안고, 때리며 울부짖는다. 물론 이 모녀 관계의 갈등은 엄마 난희의 암으로 인해 극적으로 해소되었고, 친구같이 서로가 이해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도 사사건건 손아귀에 쥐려 했던 완이를 그렇게도 반대했던 장애인 애인이 있는 곳으로 떠나보낸다. 딸 완이는 다큐가 주장하듯, 나의 엄마를 넘어, 불행했던 여성, 그리고 이제 암 앞에서 한없이 약한 사람 난희를 한 인간으로 직시한다. 서로가 나의 엄마, 나의 딸이라는 '소유적' 관계를 넘어, 한 '인간'으로 객관화시킨다. 더 나아가 마지막 회 훌훌 떠나는 어르신들처럼, 결국은 부모 자식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잔인하지만(?) 서로의 삶에 충실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제 아무리 착한 딸이라도, 딸이 지난한 엄마 삶의 피난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7. 12. 16:16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00세 시대라는 것은 그저 100세 까지 오래 산다는 것을 우리 사회 전반에,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삶에 대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즉, 오래 산다는 것은, 오래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고, 거기엔 오래 활동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가 따라붙는다. 그래서, 100세 시대를 맞이한 나이들어가는 삶은 그래서 녹록치 않다. 중년을 넘긴, 혹은 초로의 나이들어 가는 이들에게 이 후의 삶은 안락한 노후가 아니라, 또 다른 선택과 고민의 시간이 된다. 바로 이런 나이들어 가는 삶에 대한 선택에 대해 공교롭게도 7월 10일 밤 두 다큐가 길을 제시한다. 바로 kbs1의 <다큐 공감>과 <sbs스페셜>이다.


하루는 혜화동 고갯마루에 앉아있는데 마을 버스가 그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거예요. 평생을 혜화 전철 역에서 대학로 거리만을 오가며 쳇바퀴처럼 살아왔던 은수나 저희나 황혼기에 접어들도록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충분히 뛸 수 있는데도 은퇴 위기에 놓인 마을 버스의 모습이 저희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마을 버스와 세 남자, 세계를 가다
7월 10일 <다큐 공감>은 '은수 교통' 출신의 마을 버스 '은수'를 타고 2014년부터 지난 2년간 페루에서 출발하여 중남미를 거쳐, 유럽을 지나, 이제 아시아 일주 중인 '중년'의 세 남자를 만난다. 

평생을 가장으로 '일벌레'임을 자임하며 살아왔던 임택(57세)씨, 그는 자신과 같은 운명이라 느껴진 마을 버스 은수와 함께 평생의 버킷리스트인 세계 일주를 계획한다. 그런 임택씨와 동행한 것은 IT회사에서 23년간 우직하게 일해왔던, 가정과 일밖에 몰랐던 정인수(47세), 하지만 그의 성실함에 아랑곳없이 2년 전 회사는 문을 닫았다. 하루 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 그는 '여행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고, 여행작가 모임에서 만난 임택씨와 함께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이제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위태로운 아시아 지역을 일주하기 위해, 그들의 '페친'이자 팬인 호주에서 온 실업자 총각 임성택(40세)가 합류했다. 

꿈을 찾아 떠난 여행이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9년6개월을 대학로를 오가면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늙은 버스 은수는 종종 불협화음을 냈고, 이제는 여유롭게 빨래를 하지 않고 오래 옷을 입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전파하기까지 여정은 험란했다. '쌀이 떨어졌다'던 아내의 말을 접어두고, 은수에서 자고, 밥을 해먹으로 한 달에 60여만으로 유럽을 일주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당장 가장으로 호구지책 대신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선택했다. 규정속도 60KM에 묶여있던 은수는 그 속도를 처음 넘어섰을 때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제 고속도로에서 유유히 화물트럭을 앞지를 정도로 능력자가 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70 정도의 은수가 해내었듯이, 세 사람의 여정도 그렇다. 돈을 벌어다 주는 가장 대신, 세계 곳곳에서 만난 우리의, 혹은 이방의 젊은이들이 그들을 '아부지'라 부르며, 그들을 통해자신의 꿈에 대한 의지를 얻는다. 이제 마지막 여정, 그들은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도전과 도전을 하려는 의지가 살아있고, 실행에만 옮긴다면 아직 청춘이다.'



젊음도 성형할 수 있나요?
이렇게 쳇바퀴같은 삶의 공간을 박차고, 새로운 도전을 한 '중년들이 있는가 하면, 7월 10일 방영한 <SBS스페셜>의 중, 노년들이 '젊음'을 추구하는 방법은 젊어지는 인위적 방식을 통해서이다. 

”젊었을 땐 사는 게 바빠서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는 게 돈 벌어야 되고 애들 길러야 되고, 나라는 존재가 나를 잊어버리고 살다가 딱 보니까 내가 너무 늙어가지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우울하고 마음이, 이거 아닌데. 나 10년만 좀 약간만 댕겨가지고 10년만 즐겁게 해피하게 (살고 싶어요)“ (석현자씨 대화 中)

다큐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수술대위에 눞는 '어르신'들을 찾는다. 2008년 서울시에서 4만8천 명의 가구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40대 이상의 가구원들 중 40%가 성형 수술에 대해 긍정했다. 33.4%, 24.1%의 2,30대에 비해 높은 수치이다. 과연 나이든 사람들에게 성형 수술은 어떤 의미일까?

위의 석현자씨(57세)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젊음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인 경우가 그 하나다. 이들에겐 '젊음' 자체가 인생의 목표요, 자신을 '사랑'하며, '존재감'을 회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석현자씨의 말처럼 이제는 그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자신을, 앨범 속 젊은 모습을 통해 보상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조금 더 절실한 욕구도 있다. '어르신'이란 소리가 싫었던 최홍선씨(70세)는 눈 성형을 비롯한 몇 번의 성형으로 자신의 평가론 해운대 백사장을 당당하게 활보할 젊음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늙은 자신의 프로필만 보고 외면했던 직장이 성형 수술 이후에 생겼다는 것이다. 몇 번을 더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젊음을 유지하여, 80까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이렇게 최홍선씨처럼, '젊음 예찬 사회'에서 나이 먹음은 곧, 사회적 퇴출로 여기며, 사회적 기회를 얻기 위한 절박한 선택으로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무모한 도전' 역시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성형 수술 후 젊어진 자신의 모습에 거울을 놓칠세랴 만족을 표하는 석현자씨와 달리, 그녀의 남편은 주름을 당기기 위해 찢어진 눈매가 낯설다. 그나마 낯설기만 하면 다행, 조금 더 젊어지려는 도전들이 때로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안면 리프팅과 코 수술을 함께 받았던 이윤정씨는 수술 후 차오르는 고름과 함께 '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젠 마스크가 없이는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최근 범람하는 성형외과들로 인해, 이윤정씨 처럼, 애초 의도와 달리, 과도한 성형 권유가 빈번해지며 부작용의 위험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것보다는 젊어지고 싶은 욕구가 컸다는 석현자씨처럼, 2014년 12월 기준 성형 시장의 규모는 7조 5천억에 도달했다. 그 중 주름 제거, 필러, 보톡스 등은 2010년 31.6%에서, 2014년 48.6%로 4년 사이 17%나 증가 추세에 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하지만 100세 시대는 젊지 않음을 용인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명퇴를 해도, 살아갈 세월은 창창하고, 부양할 가족은 여전하다. 그 남은 세월을 어떤 삶으로 살 것인가, 우리 시대의 그 방식에 대해, <다큐 공감>과 <SBS 스페셜>은 서로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공통점은 늙음에 안주하지 않고, 청춘에의 욕망에 기꺼이 답한다는 것이다. 답은 쉽지 않다. 쌀이 떨어진 가족을 두고 떠나는 가장의 길도, 기꺼이 수술대에 올라 젊음을 되찾는 방식도. 그들의 꿈에 쉬이 박수를 쳐주기에 우리 사회의 현실은 각박하고, 성형 수술로 젊음을 되찾으려는 노년을 비웃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젊음'을 숭배한다. 노년의 바람직한 문화, 아니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한 삶에 대한 공감이 없는 사회에서, 결국은 나이들어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우리 사회 중, 노년의 삶, 그리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다. 

by meditator 2016. 7. 11. 17:32

이번엔 라디오 스타다.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서 이제 더 이상 메인 mc로서 프로그램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패널로서 장렬하게 산화하겠다고 선포했던 이경규, 그의 공약은 현재 진행중, 그 도정이 드디어 <라디오 스타>까지 도달했다. 6월 29일에 이어 7월 7일 연달아 <라디오 스타>는 '킹경규와 네 제자들'을 내걸고 이경규 사단을 소집했다. 




6월 29일 프로그램 초반, 이경규는 <라디오 스타> 출연에 대한 부담감을 솔직히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출연자를 '탈탈' 털어내는 것이 장기인 <라디오 스타>에 제 아무리 예능의 제왕으로 오랜 시간 군림해 왔던 이경규라 한들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라디오 스타>의 mc진들 김국진을 비롯하여 김구라, 윤종신은 다들 한때는 이경규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기에, 이경규를 너무도 잘 알아, 그래서 더 이경규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은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김구라를 붉은 장군 복식의 이경규에 대비하여, 푸른 장군복을 cg로 입히며, 전의를 돋구웠지만, 정작 이경규가 부담스러워한 것은 김구라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시간'의 내공을 자랑하는 꼿꼿한 김국진이었다. 어쨋든 선비같은 김국진이든, 물불 안가리고 떠들고 보는 김구라든 부담스럽긴 매일반, 하지만 부담스럽다고 하면서, 종종 그들의 노골적인 언사에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면서도, 백전 노장 이경규는 이젠 그런 '폭로' 조차도 여유롭게 자신의 일부분인 양 여유롭게 '패널'로 2회분 <라디오 스타>를 장악해 냈다. 엠씨들의 '폭로'조차도 결국은 이경규라는 웃음의 제국에 또 다른 '경의'가 되었다. 

츤데레 이경규와 나이불문 우정어린 벗들 
이경규를 제외한 출연자의 면면은 익숙한 듯 새로웠다.  이경규라고 하면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다니는 규라인 서열 이윤석, 거기에 서열 2위라고 주장하지만 늘 어딘가 아쉬운 윤형빈, 그리고 그의 출연만으로도 검색어에 올랐던 배우 한철우에, 최근 이경규와 <예림이네 만물 트럭>을 함께 하고 있는 음악인 유재환까지. 이경규야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 출연하자마자 '눕방'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듯이 그의 등장만으로도, 그리고 그의 몇 마디 말 만으로도 스튜디오를 흥건한 웃음으로 채우기엔 넉넉했지만, 6월 29일 첫 회 방영분에서 그의 규라인 '제자'들의 소개 분량은 언제나 그렇듯 버럭 이경규와 그의 그늘에서 전전긍긍하는 '라인'들의 에피소드로 친근했지만, 종종 그래서 지루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함께 한 패널이 좀 약하지 않냐는 mc의 지적에 이경규의 솔직한 토로가 이어졌고, 한철우가 한번이라도 웃기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자폭성 멘트까지 덧붙여 졌다. 

하지만 2부의 분량을 장담했던 이경규의 확신답게, 익숙한 웃음으로 판을 벌렸던 규라인의 출연은 2부인 7월 6일 방송분에서는 그저 방송가의 흔하디 흔한 줄타기 '라인'을 넘어, 그들의 '진한 우정'으로 넘어가면서 '감동'으로 진해진다. 

한때 규라인이었으면서도 연신 '규라인'의 '이간질을 시도하는 김구라의 방해 공작에 때론 넘어가는 듯하면서도, 결국 이경규의 제자들은, 그저 독불장군 이경규의 그늘 밑에서 숨죽인 '시녀'들이 아니라,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벗'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천하의 박찬욱 감독을 한 대 패버리겠다면서 웃음을 주었던 이윤석은 그저 이경규의 시중드는 사람을 넘어, 믿음과 존경의 관계가 되었고, 이경규 성대 모사에 재미가 들렸던 윤형빈을 통해 '츤데레'한 형님 이경규의 면모가 드러났다. 무엇보다, <나쁜 녀석들>출연자 중 유일하게 뜨지 못한 한철우에 대한 '치킨집 알바' 운운에서 부터, 시작된 에피소드는, 윤종신의 말처럼, 막연한 위로나 동정이 아니라, 어려움을 나누는 벗의 자세를 알게된다. '선배님~' 외에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유재환조차 '공황장애'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환우가 된다. 때론 이경규의 전화가 부담스럽고, 이제는 '폭로'에 재미가 들린 '제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경규라인을 기꺼이 자부할 만큼, 이해에 맞춰 기꺼이 이합집산하는 방송가의 풍토에서 진득한 우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웃음의 제왕 그 비결은?
이런 나이를 막론한 우정과 더불어, 2회분의 <라디오 스타>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이경규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웃음의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면모이다. 자신의 입으로 B급 방송이라며 출연을 위해 방송 작가가 귀찮을 정도로 카톡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이경규에서부터, 결국 <라디오 스타>의 출연 자체도 더 이상 나이가 들면 할 수 없을 공연을 위해 기꺼이 나왔다는 노골적인 홍보에, 혹시나 방송인이라는 편견이 자신의 작품을 훼손할까 시나리오를 2년에 걸쳐 고치고 또 고치는 프로패셔널한 예술인으로서서의 면모까지, 나이가 무색하게, 스스로의 일에 완벽하게 매진하는 열정적인 한 인물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그런 열정 속에서 얼핏얼핏 비춰지는 '공황 장애'나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이루는 연예인의 압박감과 딸의 사춘기보다 자신의 갱년기가 더 고통스러웠던 유명세의 그늘은 웃음기 머금은 페이소스로 남는다. 한 시대 '웃음의 제왕'으로 머물기 위해 기꺼이 '패널'로 연예대상을 넘보는 이경규가 감당한 열정 페이 역시 웃음으로 마무리된다. 

이경규의 2회 보장 장담에도 불구하고, 2회분의 <라디오 스타>는 웃음 폭탄으로서의 성과로서는 아쉬운 성과로 마무리되었다. 첫 회에서 보여진 익숙한 '규라인'의 면면이 아마도 더 감동적이었던 2회의 시청으로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또한 '패널'로서 '폭주'하고 있는 이경규의 출연이 잦아진 만큼, 그가 보여준 웃음 폭탄의 여파도 그 파급력이 줄어든 탓도 크다. 이는 이미 <마이 리틀 텔레비젼> 출연의 소모성으로 지적된 바 있다. 공연이 아니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란 이경규의 지적이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의 운명을 예견한 셈이 된 것이다. 최근 <런닝맨>에 이어, <snl코리아>, 그리고 <라디오 스타>까지 이경규의 행보는, <런닝맨>과 <snl코리아>를 통해 '갓경규'의 면모를 확인했다면, '츤데레'한 형님 이경규를 알 수 있어 좋았지만, <라디오 스타>는 조금은 더 아껴 두어도 좋았을 패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부디 '패널' 이경규가 소모되지 않고, 종종 웃음의 폭탄으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by meditator 2016. 7. 7. 15:45

도대체 누가 편성을 했길래?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게 kbs2와 sbs는 월화 드라마로 동일하게 의학 드라마로 격돌했다. 하지만 '의학'이라는 동일한 소재에도 두 드라마의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sbs의 <닥터스>가 19.7%로 20%를 목전에 둔 채 '대박'의 찬스를 맞은 반면, <뷰티플 마인드>는 애국가 시청률을 벗어나 4%를 회복한 게 자랑(?)인 된 처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의학' 드라마라는 외피를 벗어내고 보면, 두 드라마의 행보는 판이하다. 애초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앞세워, 거기에 '키다리 아저씨'까지 토핑으로 얹어 결국은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닥터스>의 시청률 고공 행진은 '순리'이다. 그에 반해, 역시나 매력임을 강조했으나, 졸지에 민폐가 되고만 여주인공의 고군분투가 붕 떠버린 <뷰티플 마인드>는 그저 여주인공의 캐릭터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이 드라마가 목적하고자 하는 바가,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다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목엣 가시'같은 껄끄러운 이야기라는 점이다. 물론 1,2회의 전개가 아쉽긴 하지만, 그 이후라도 제 아무리 이영오 선생의 장혁이 발군의 연기력을 보인다 하더라도, 애초에 대중적으로 선호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트렌디한 맛집과 쓰디쓴 독초로 만든 자연식의 비교랄까? 그러기에, <닥터스>와 <뷰티플 마인드>를 시청률만 놓고 비교한다는 건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너를 기억해>의 계보를 잇는 <뷰티플 마인드> 
오히려 <뷰티플 마인드>의 기조는 2015년 방영되었던 <너를 기억해>의 정서를 연상케 한다. 안티 소셜 디스오더(anti social disorder), 결국 사이코패스(psycho-pass)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뷰티플 마인드>와 <너를 기억해>는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으로 '공감'할 수 없는 정서를 가진 이들이 '범죄자'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나, '인간'을 치료하는 '의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또한 동일하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배척받아 마땅한 그 특징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일에 '천재'가 된다. 사이코패스이기에 범죄자의 심리에 능통한 <너를 기억해>의 이현(서인국 분)은 그래서 '범죄'를 꿰뚫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없는 이영오는 다른 이들이 '이해'와 '편견'으로 뒤틀린 현상을 꿰뚫어,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으로 환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주인공이, 가장 '인간적인' 일을 해내는 스릴러라는 점에서 두 드라마는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이들로 가득찬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현재의 인간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 주인공의 불행한 성격에, 물론 태생적 '낙인'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들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 '비인격적인' 대우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는 동일하게, '인간'의 책임을 묻는다. 



거기에, 이들의 조력자, 혹은 상대역으로서, 상처받았지만, 인간성이 훼손되지 않은 '성처녀'와 같은 여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이들의 상실된 캐릭터를 부추기고, 보듬어 안는다. <뷰티플 마인드>의 계진성(박소담 분)이 그러하고, <너를 기억해>의 차지안(장나라 분)가 그 역할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남자 주인공과, 그의 조력자로서 가장 '인간적'인 여성 캐릭터의 합주로, 그들에게 닥치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며, 결국 부조리한 '인간' 사회의 허물을 벗겨간다. 

이렇게, <너를 기억해>와 동일한 캐릭터의 범주로 진행되고 있는 <뷰티플 마인드>, <너를 기억해>가 범죄를 매개로 했다면, <뷰티플 마인드>는 좀 더 복잡하게, 의학 드라마인 듯 하다가, 범죄 드라마인 듯 하다가, 이제 조금 더 한 발 나아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탐구로 발을 디딘다. 

마음에의 탐구, 인간 그 본연에 대한 질문
강철민 살인 사건에서, 신동재 원장 테이블 데쓰로, 그리고 심은하 사망까지 이어진 사건들을 통해 드라마는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안티 소셜 디스오더 이영오를 통해, '이익'을 위해 인간의 목숨까지 거두는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폭로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렇다고 해서, 쉬이 이영오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마음이 없어 '인간'의 무리에서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에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영오, 하지만, 결국 그의 '텅 빈 마음'은 '사고'를 치고만다. 강철민 살인 사건에서 부터 늘 언제나 제일 처음으로 '용의자'로 몰리며, 심지어 공개 석상에서 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폭로되며, 거짓말 탐지기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며 이영오는 돌아왔다. 하지만, 응급으로 들어온 교모 세포종 환자의 '심정지' 상황에 대한 그의 '판독'은, 복잡한 '인간사'를 읽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학습했지만, 그의 학습으론 도달할 수 없었던 '김민재에 대한 '사랑'과 함께, 노력하면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영오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그렇게 무너진 이영오, 그리고 그런 이영오를 거침없이 괴물로 지칭하는 그의 아버지 이건명(허준호 분), 그리고 현성 병원의 사람들을 통해 <뷰티플 마인드>는 그저 흔한 병원 속에서 벌어진 부도덕을 넘어, '인간'의 모습을 탐구해 간다. 그래서, 모호하고, 그래서 어렵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이렇게 깊숙하게 인간에 대한 질문을 언제 던졌나 싶게 신선하다. 그래서 용기있다. 그 어렵고 모호한 퍼즐에 동참한 자들은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 박수를 치는 사람이 적을 뿐. 모두가 환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섣부르게 한 여배우에게 희생양을 씌우거나, 작품성을 따질 일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6. 7. 6.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