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임진왜란인가 싶었다. 일찌기 kbs1을 통해 방영되었던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했던 <불멸의 이순신(2004)>에서 무려 천만 하고도 700만이 더 보았던 (17,615,057 영진위 기준) <명량(2014)>가 있었는데, 또 이순신이라니. 그것도 웬만한 위인은 다 해본 거 같은 최수종의 이순신이라니.  임진왜란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지겹다'는 느낌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런 소재적 진부함에 대해 9월3일 첫 회를 방영한 <임진왜란 1592>은 '팩추얼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돌파하고자 한다. 




팩츄얼 드라마로 다룬 임진왜란 
인물, 사건, 이야기 모두를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둔 드라마를 '팩추얼 드라마(factual drama)라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 케이블 채널 HBO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와 <더 퍼시픽(2010>>을 들수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 지오그라픽에서 <임진왜란 1592>처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추얼 드라마인 <초한지(2013)>, <킬링 링컨(2013)> 등을 제작한 바 있다. 특히나 최근 '일제 시대'나, 그 이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만들어지면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경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지만, '자의적 해석'이나 심지어 '왜곡'이 두드러진 영화들이 흥행을 이어가며, 역사적 상상력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런 논란 속에서 팩추얼 드라마로써의 <임진왜란 1592>가 내세운 것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실적이고 생생한 임진왜란이다. 첫 회 과연 이전의 사극들속 임진왜란과 <임진왜란 1592>의 임진왜란은 어떻게 달랐을까?

첫 회 <임진왜란 1592>는 5부작이라는 길지 않은 회차의 난관을 임진왜란에 대한 서사적 접근 대신, 바로 난중의 영웅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선다. 파죽지세로 조선 땅을 침략해가는 왜군, 그런 적들에 대해 조정은 맞서 싸우는 대신 임금은 돌아오겠다는 기약없는 약속만을 남긴 채 서둘러 한양을 떴다. 그렇게 무구공산 적들의 잔인한 도륙만이 곳곳에서 자행되는 조선에서 전라도 좌수영의 이순신만이 홀로 그곳을 지키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 번을 싸워 세번을 이긴 이순신, 하지만 그런 그에게 부하 나대용은 그 누구도 지키려 하지 않는 조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가치가 있는가 물으며, 자신의 목숨부터 지키라 읍소한다. 하지만 그런 부하의 절망적인 요구에 이순인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라는 우문현답으로 답한다. 그리고 단 26척의 판옥선으로 결코 져서는 안될 전장으로 향한다. 





구체적 전투 상황을 조명하며 살려낸 전쟁의 박진감 
<임진왜란 1592>가 이순신의 영웅담 중에서도 촛점을 맞춘 것은 바로 귀선, 바로 거북선이다. 임진왜란이 나기 하루 전 완성된 거북선,  하지만 견내량 전투 이전까지 귀선은 한번도 전투 경험이 없었다. 매번 왜군에 지고 있는 조선 수군들, 당시 왜군은 최대한 가까이 조선 수순의 배에 접근하여 그들의 최신 무기인 조총을 쏘고, 갈고리로 판옥선에 올라 육박전을 벌이는 방식의 전술을 썼었다. 그런 왜군의 전투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조총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소나무로 배를 뒤덮고, 거기에 혹시라도 배위에 오를 시 귀선 등에 촘촘히 박힌 칼고 창등을 동원해 만든 철송곳에 찔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녹독에 당하도록 만든 귀선을 만드는 과정을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보여준다. 

하지만 귀선의 만듬새나 쓰임새만이 첫 회의 관전 포인트가 아니었다. 마치 전쟁사처럼 그동안 두루뭉수리하게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결사항전을 강조했던 다른 드라마와 달리, 우리에겐 이젠 익숙한 '학익진' 등의 전투 대형을 넘어 단 26척의 판옥선과 한 척의 귀선으로 엄청한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순신의 전술을 꼼꼼히 살펴본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화포, 순천의 실패을 거름삼아 이순신은 판옥선에서 멀찌감치 포를 쏘았을 것이란 그간의 정설을 뒤엎고 가까이 접근하여 활을 쏘며 조총을 무력화시킨 다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확히 조준하여 포를 쏘는 방식으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가설에 따라 구성한다. 



그에 따라 그려진 새로운 각도의 견내량 전투, 수군들과 장수들, 그리고 무엇보다 후방에서 지휘를 해야 할 이순신이 앞서 활을 쏘며 독려를 하는 상황과, 불리한 조건에서도 가장 정확한 포격과 귀선의 종횡무진 활약은 그간 드라마틱하게 당시의 상황을 그려냈던 다른 드라마나 영화못지 않은, 심지어는 사실적이라 더 박진감넘치는 임진왜란사를 탄생시킨다. 거기에 사극하면 역시 최수종이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김명민이나 최민식이 떠오르지 않은 정말 전장의 이순신이라면 저랬을 것같은 움푹 패인 볼과 초쵀한 모습과 곳곳에 검댕이마저 묻은 얼굴의 최수종의 이순신은 또 한 사람의 이순신을 각인시킨다. 또한 최수종 못지 않은 능숙한 일본어로 등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김승수나, 실제 일본 배우가 연기한 일본 장수들, 거기에 이기남이란 인물을 재발견하게 해준 이철민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열연이 사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덕분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실적인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가 등장한다. 

이런 신선한 시도의 포문을 연것은 극본과 연출을 겸한 김한솔 피디의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역사 스페셜>, <한국사 傳>, <문명의 기억 지도> 등의 역사 다큐를 거쳐온 그의 내공이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를 통해 피어난다. 거기에 한, 중, 일 삼국이 합작하여, 지금까지 '조선의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을 조선, 명나라, 일본이 참가한 동아시아 최대 전쟁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포부를 얹어, 명나라는 중국의 배우들이, 왜는 일본의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며 합작 드라마로써의 각을 살리고자 한다. 물론 우려되는 바도 있다. 합작 드라마로써 명과 일본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가 여부이다. 첫 회 일본의 야만적 침탈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우선은 이런 우려를 기우로 접어두게 한다. 과연 첫 회의 순조로운 출발이 5회까지 이어질지, 그 여부에 따라 새로운 시도 팩츄얼 드라마의 앞날도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첫 회만으로도 최근 그 어떠 사극보다도 흥미진진했다. 
by meditator 2016. 9. 4. 0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