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두 편의 새로운 예능이 선보였다. kbs2의 <밥상의 신>과 mbc의 <컬투의 어처구니>가 그것이다. 


두 편 중 kbs2의 <밥상의 신>은 지난 설 명절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밥상의 신>이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이다. 파일럿으로 방영되었던 설 특집과 동일하게 mc인 신동엽이 입맛이 까다로운 왕의 컨셉으로 등장하고, 여러 게스트가 문제를 맞추어 음식을 먹는 방식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단지, 설 특집이 설 특집 답게 팔도 음식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면, 4월 10일 방영된 첫 회는 봄을 맞이하여 만물이 소생하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나른해 지는 봄이라는 계절에 맞춘 '활력'을 주는 음식들이 첫 선을 보였다.

함께 하는 게스트들의 면면도 달라졌다. 설 특집에서 보조 mc였던 강민경 대신에, 장항선이 대령 숙수로서 왕인 신동엽의 옆에 자리잡고 예의 구성진 목소리로 음식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설 특집에서 함께 했던 김준현과 박신혜가 양 진영의 대표로 굳건하게 자리잡은 것과 달리, 설특집에서 함께 했던 김신영, 최양락, 홍진영, 김종민 등 대신에, 김준호, 신보라, 한상진, 보라가 양 진영에 합류함으로써 설특집의 산만함을 정돈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먹방이 대세인 시대에, <밥상의 신>은 이미 설 특집에서 동시간대 매번 명절마다 인기를 끌었던 mbc의 <아이돌 풋살 양궁 선수권 대회>와, sbs가 야심차게 준비한 <스타 vs. 국민 도전자 페이스 오프>를 누르고 동시간대 1위로 기선을 제압했었다. 그에 이어 목요일 저녁 8시 55분에 편성된 <밥상의 신>은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순항을 할 듯이 보인다. 

그에 반해 mbc의 <컬투의 어처구니>는 방송 마지막, 컬투와 mc 최희가 다시 만나고싶어요를 간절하게 소망하듯 mbc가 이 프로그램에 이어 3주동안 방영될 파일럿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운명이다. 다음 주에 방영될 강호동의 <별바라기>와 전현무의 <연애 고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컬투의 어처구니>는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프로그램의 제목인 어처구니에 대한 해석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너무나 예상 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히다는 어처구니란 단어의 뜻에 맞게 봉만대, 김동현, 박철 등의 여섯 어처구니 헌터들이 소개하는 세상의 이상하고 특이한 현상과 사람들에 대한 소개 프로그램이다. 

그 특징에 맞게 첫 파일럿 프로그램에 소개된 내용은 이미 sns를 통해 유명해진 포항의 폭탄주 제조 아줌마에서 부터, 세계 7대 인형녀 중 한 사람인 우크라이나의 인형녀 아나스타샤, 고려 시대 공부 비버에서 부터 오늘날의 공부 감옥, 그리고 세계 최대의 피자에, 7000 만원에 상당하는 운석 등까지 다양한 분야의 희한한 것들이 소개되었다. 

사실 <컬투의 어처구니>는 새로운 명칭을 달고 등장했지만 프로그램의 컨셉은 2월 28일 종영된 매주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8시 55분에 방영되었던 <컬투의 베란다 쇼>를 압축시켜놓은 듯했다. 내용으로 따지자면 고려 시대 이규보의 공부 비법이나, 운석 에피소드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연상되었고, 우크라이나 인형녀는 역시나 종영된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에 등장했을 법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sns에서 화자되는 폭탄주 제조 아줌마의 등장은, 단 몇 회만에 종영한 tvn의 <공유 tv 좋아요>가 떠올려 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내용을 다루었던 <컬투 베란다 쇼>의 엑기스 버전이랄까. 하지만, 한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던 프로그램 중 화룡점정을 모아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컬투 어처구니>는 산만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닥터 후의 전화 박스 깜짝쇼가 무색하리만치. 

게다가 함께 한 어처구니 헌터들의 면면도 파일럿이라는 시험대에 어울렸는가 질문해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미 <라디오 스타>를 통해 그 예능감을 뽐냈던 봉만대 감독을 제외하고는, 박철, 김창렬 등은 재밌지만 신선하지 않았고, <마녀 사냥>에서 펄펄 날던 곽정은이나 ufc 선수 김동현은 안타깝게도 어처구니 헌터라기엔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했다. 

(사진; 뉴스엔 )

물론 익숙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은 <컬투의 어처구니>만은 아니다. <밥상의 신> 역시 설 특집 <밥상의 신>을 보지 않았더라도, 서로 편을 갈라 음식과 관련된 퀴즈를 맞추고, 맞춘 편만 음식을 맛보는 먹방을 선보이는 방식이 새롭기 보다는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것들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먹방과, 그것과 관련된 퀴즈를 맞추고, 이긴 편만 먹으며 의기양양하는 그 방식의 친숙함이, 결국 돌고 돌아 뻔한 음식들임에도 <생생 정보통>의 먹방이 매번 화제가 되는 것처럼, 그 시간대의 <밥상의 신>에겐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내용만 익숙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을 통해 이미 호흡을 함께 했던 김준현, 김준호의 콤비는 신선하지 않았지만, <개그콘서트>에 이어 <인간의 조건>을 함께 했던 환상의 호흡은 <밥상의 신>의 예능적 재미를 한껏 부추겨 주었다. 상대편 박신혜, 한상진, 보라는 개그맨들 팀만큼 재미를 주지는 않았지만, 신선한 면모와 진지함으로 <밥상의 신>의 균형추를 맞춘다. 

단지 그 익숙한 것들이, 8시 50분이라는 시간에 안착함으로써 익숙하지만, 그 시간대에 큰 무리없이 어울릴만한 것들이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컬투의 어처구니>는 과연 이 프로그램이 다음주 강호동, 그 다음 주 전현무를 상대로 승산이 있을 것인가에서 부터, 만약에 고정이 된다해도 유재석의 <해피 투게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데 의문 부호가 찍힌다. 차라리 그 전에 하던 대로, 8시 55분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잡다하지만 저런 신기한 내용들을 관심있어할 누군가를 호청자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깐 아쉬움이 들었다. 그저 살벌한 목요 예능의 서바이벌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내용에 걸맞는 제 자리를 잘 찾아갈 수 있는 기회가, <컬투 어처구니>에게 주어지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4. 11. 02:24

자, 문제 하나 풀어보시라.

얼마전 종영한 kbs2<태양은 가득히>, 현재 방영중인 sbs의 <쓰리데이즈>, 그리고 새로이 시작한 kbs2의 <골든 크로스> 의 공통점은?
바로 배우 이대연이다. 극 중 이대연은 <태양은 가득히>에서 정세로의 아버지, <쓰리데이즈>의 한태경의 아버지, 그리고 이제 <골든 크로스>에서 김강우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그것도 보통 아버지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의 인생의 궤도를 바꿔버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사진; 리뷰스타)

<태양은 가득히>에서 배우 이대연이 분한 정도준(이대연 분)은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사기꾼으로 그로 인해 자신은 목숨을 잃고 고시에 합격한 아들 정세로(윤계상)마저 살인 누명을 쓰고 복수에 칼을 가는 인물로 변모시켜 버린다. 
<쓰리데이즈>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이대연 분)은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거대한 트럭에 부딪혀 비명횡사한다. 그리고 청와대 경호관이었던 그의 아들 한태경은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혀가면서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들게 된다. 
그리고 <골든 크로스>의 오프닝에서 강도윤(김강우 분)의 아버지 강주완(이대연 분)은 친딸의 살해범으로 체포되어 예비 검사인 아들의 삶을 180도 급전락시키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태양은 가득히>와 달리, <쓰리데이즈>와 <골든 크로스>에서 이대연의 역할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쓰리데이즈>의 한기준 수석과, <골든 크로스>의 강주완은 이 두 드라마가 딛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 현실의 모순을 그 자신이 고스란히 품어 안은 캐릭터라는 점에 있다.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시작된 <쓰리데이즈>는 이제 11회를 맞이하면서,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저 대통령의 암살범을 찾으면 되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과거 대통령이 개입된 양진리 주민 학살 사건이라는 과거사의 잔상이 드라마를 뒤덮고, 거기에 이어, 이제 다시 오늘에 다시 그 양진리 사건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제 2의 양진리 사건이 벌어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극중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은 과거 양진리 사건 당시 의도치 않게 자금 전달책을 맡았던 인물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16년 동안 줄기차게 매달린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던 그가 대통령의 특검 발표를 앞에 두고, 그간 작성한 조작되지 않은 진짜, '기밀 서류 98'을 특검에 전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이제 11회 드라마는 그저 남북의 협잡으로 인한 양진리 사건이, 사실은 김도진이라는 재벌과 그와 결탁한 팔콘 등이 무지막지한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 획책한 사건이라는 것을 밝힌다. 드라마는 밝힌다.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를 구하려고 애썼던 IMF와 같은 경제 위기가 상위 1%의 가진 자들에게 무한 배팅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드라마에서처럼 다시 언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울 한복판에서 폭발물을 터트리는 테러 정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밝힌다. 즉 한 나라의 위기가, 그 나라의 국민이지만, 그 나라를 그저 이용가치만으로 판단하는 소수의 누군가에겐 그저 굴려먹을 판돈 정도로 취급된다는 것을 우리는 <쓰리데이즈>를 통해 단순명쾌하게 학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극중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재벌 개혁을 주창하던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기준이 당연히 과거의 양진리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런 일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의 재연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 했을 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쓰리데이즈>가  IMF를 다루었다면, <골든 크로스>가 딛고 있는 현실은 그보다 조금 더 2014년에 가깝다. 
극 중 이대연이 분한 강주완은 과거 은행에 근무하다, 정부의 부실 은행 정리 과정에서 해고된 아버지다. 그로 인해 가족에게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상고 출신임에도 회계 전문가로 대접받는 그는 우직하게 자신의 삶에 대한 성실성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아들은 어머니의 가게를 위해 25억만 대출해 오라고 닥달하고, 은행에선 눈 한번 감아주면 50억짜리 집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골든 크로스> 역시 한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바로 드라마 속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국장 서동하(정보석 분) 등 상위 1%의 그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의 입맛에 따라멀쩡하던 은행도 하루 아침에 부실 은행이 되어 그 은행에 근무하던 직원들의 밥그릇이 날아가고, 또 다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서류를 조작하여 그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배경으로 삼는다. 
극중 이대연이 분한 강주완 캐릭터는 상징적이다. 허구헌 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가장 무능한 가장으로 대접받고, 심지어 아들에게 그깟 돈 하나 못구해 오냐며 대놓고 다그침을 당하는 처지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호구지책이 누군가에게 가장 만만한 미끼로 여겨질 뿐이다. 그는 자신이 무단횡단 한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 하나, 그에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요, 기만이다. 

(사진; 뉴스엔)

현실의 우리들을 규정하는 건 바로 우리들의 밥그릇, 먹고사는 문제이다. 그러나, <쓰리데이즈>와 <골든 크로스>는 말한다. 당신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는 동안, 저 위쪽의 누군가는 그런 당신들을 장기판의 졸로 여기며 당신들의 밥그릇을 가지고 투전판을 벌이고 있다고.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의 암살 음모가 궁극적으로 귀결되는 것이 제2의 양진리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해 되풀이 되는 제 2의 IMF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또한 <골든 크로스>의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서동하의 직책이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이라는 것 역시 정경 유착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우리가 골치 아파하는 정치가 귀결되는 곳은 나의 밥그릇이라고 드라마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쓴다. 
덕분에 <쓰리데이즈>는 딱딱한 정치적 설명과 그 배경이 되는 경제적 해석을 논하느라, 드라마가 건조하다. 상위 1%의 협잡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강주완 일가의 몰락을 그리는 <골든 크로스> 역시 어둡기 그지 없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 재벌가 자녀들의 사랑 놀음과, 외계에서 온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여배우에 눈을 빼앗겼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쓰리데이즈>나 <골든 크로스>는 역부족이다. 덕분에 시청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의 의미를 단지 시청률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시청률이 좋기로 치자면야, 막장 오브 막장의 진수를 보여준 <왕가네 식구들>만한 드라마가 어디 있겠는가. 해외의 인기? 지금 중국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는 <쓰리데이즈>에 대해 한국에서 막장이나 로코가 아닌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느냐 라는 반응이 등장하고 있다. 그간 한국 드라마가 잘 먹히는 몇몇 장르에 한정된 뻔한 상품이었다면, <쓰리데이즈>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새롭게 재평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이 보는, 잘 팔리는 것만 하다보면, 결국 매양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누구네집 쌈박질이요, 누구랑 누가 사귀는 이야기 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또 세상은 IMF를 반복할 수도, 은행 부실이 재연되어 이번엔 내 밥 그릇이 날아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재미없다 하지말고, 못알아 먹겠다 하지 말고, 성의있게 드라마가 우리 현실에 대해 말을 할 때 좀 귀 기울여 보자. 그깟 결국 떨어지고 말 벚꽃에 미혹되지 말고. 

중국 정법 대학 교수는 <쓰리데이즈>가 만들어 지는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그것이 곧 한국적 정치 상황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라는 웨이보 멘션을 날렸다.  낯 부끄러운 자긍심이라도, 시청률에 휘돌리지 않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좋은 드라마가 자꾸 만들어 지길 바란다. 막장도 자꾸 보면 중독되듯이, 딱딱한 드라마도 자꾸 보다보면 친근해 진다, 더불어 정신도 번쩍 든다. 금상첨화다. 


by meditator 2014. 4. 10. 15:54

4월 9일 방영된 11회 중반,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아직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병실에 누워있는 이차영 경호관을 그의 동료 한태경이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런 장면에 회상씬 하나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차영과 한태경이 함께 보냈던 지난 시간들, 혹시나 이 둘 사이에 동료 이상의 감정이 생겨났을 지도 모를 과거의 어떤 해프닝들이 한태경의 눈빛 저 너머로 흘러나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단호하게 그런 장면을 배제한다. 오히려 이차영이 총을 맞은 그 순간, 정신을 잃어가는 그녀를 한태경이 부등켜 안았을 때 등장한 회상씬은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실수로 대통령에게 가야하는 소중한 서류를 놓쳐서 그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이중 스파이가 되어야 했던 이차영의 그 순간이 삽입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병실에서 정신이 돌아온 이차영은 말한다. 나는 나의 신념에 따라 나의 일을 한 것이니, 나에게 미안해 하지 말고,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그래서 더 애닮다. 한참 사랑도 하고, 젊음을 만끽해야 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고군분투하는 것이. 

'쓰리데이즈' 박유천이 손현주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 SBS '쓰리데이즈' 방송화면 캡처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는 보통 드라마와 다르게 없는 것이 많다. 
드라마가 시작된 지 10여 회가 지났는데, 주인공들은 밥 한끼 편하게 먹은 적이 없다. 한태경이 먹은 거라곤, 깡소주에, 겨우 달걀 하나? 그 흔하게 등장하는 멋진 남자 주인공들이 흔히 하는 샤워기 아래에서 고뇌하는 장면 따위도 없다. 며칠이 지났는데, 주인공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자는지 걱정이 될만큼. 심지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에서, 참모총장, 비서진까지 모두 싱글인 듯 싶다. 함봉수 경호실장은 경호관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일신의 안녕을 포기했고, 신규진 비서실장은 정권을 안녕하게 만들기 위해 워커홀릭이 되었다. 도무지,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눈요기꺼리나, 여담으로 덧붙일 재미라곤 없다. 

대신 <쓰리데이즈>에는 다른 드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신념!'
자기와 자기 가족을 죽인 원수에 대한 복수나, 입신양명에 대한 야망 대신, 그 이름도 이젠 생소한 '신념'이란 것이 묵직하게 자리잡는다. 

11회, 그토록 대통령의 반대편에 서서, 대통령을 무너뜨리려고 애쓰던 신규진 비서실장이 죽었다. 
이 정권이 대통령과 자신이 함께 어렵게 이룬 정권이라며 배신에 치를 떨며, 스스로 참모총장을 죽이고, 김도진에게 비밀문서를 갖다 바치던 그가,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명예로인 죽음을 맞았다. 

처음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를 소개할 때, 출연진들이 말했다. 이 드라마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서로 이해가 갈리며 또 함께 하게 되는 드라마라고. 
그리고 그런 애초의 의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또 그렇게 죽어간다. 그래서 묘하게도, 신념을 지키며 죽어간 인물들은, 죽음을 통해 오히려 드라마 속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난다. 함봉수 실장이 그랬듯이, 신규진 비서실장도 그렇다. 

처음, 대통령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경호실장이던 함봉수가 대통령을 저격한 것도, 그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간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후 자신의 소신에 따라 암살범이 되었었다. 
신규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신규진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 허사가 아니듯, 그저 대통령이나 되고 싶었던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정말 좋은 정치를 하고 싶었던 신념에서 움직였던 인물이라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한다. 이동휘가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눈 꾹 감고 대통령이 되어 속죄하려 했듯이, 신규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사했던 전국 각지에서 사라진 폭발물의 조사 자료가, 그의 죽음 이후, 대통령과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움직일 힘이 된다. 그가 죽어가면 남긴, 자신과 대통령은 다르다는 그 말의 의미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르게 명치를 울린다. 

쓰리데이즈
(사진; 텐아시아)

11회의 <쓰리데이즈>에 대해 드라마의 만듦새를 가지고 역시나 왈가왈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11회는, 그런 것들이 걸리적거리지 않을 만큼, 깊은 감동을 남긴다. 

특히나, 법과 수호를 지킨다던 대통령이, 이차영을 사지로 몰아넣는 무리수를 썼던 사실을 수긍하기 힘들었던 한태경이, 국무회의실에 홀로 앉아,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통령을 향해 이제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아마도 오래오래 회자될, 명장면이 될 것이다. 

뻔히 이차영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무리수를 써가면서도, 다시 팔콘의 개가 되겠다는 속임수를 써가면서도 눈 앞에 닥친 위험을 피해보려 했던 대통령, 하지만, 결국은 홀로 국무회의실을 지켜야 하는, 그래서 그곳을 찾은 특검과 한태경에게 비로소 속내를 비추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 그리고 그런 대통령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는 단 두 사람 특검과 한태경. 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깊은 곳의 그 어떤 것을 상기하게 만든다. 

그저 드라마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먹고 사느라 잊었던,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신념'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드라마는 그 어떤 잔재주도 부리지 않고,  1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단어를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해 묵묵히 달려온 것이다. 덕분에, 11회를 통해 드러난 이 주제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고뇌에 어느덧 보는 시청자들조차  전염되었다. 잊고 살았던 그 단어가 다가온다. 


by meditator 2014. 4. 10. 03:06

kbs가 준비한 또 다른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가 첫 선을 보였다. 2주에 걸쳐 선보였던 <미스터 피터팬>에 이어 또 하나의 남자 예능이다.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선포한 <나는 남자다>는 파일럿으로 방영된 첫 회,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남중, 남고, 공대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남자 250명을 스튜디오에 모아 놓았다. 거기에 mc도 유재석을 필두로 해서, 노홍철, 장동민, 임원희, 허경환 까지 다섯 명의 남자들만으로 이루어 졌다.

거기에 첫 번째 게스트 역시나 공대를 다니고 있는 임시완이, izi의 응급실을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공대를 다니면 미팅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다는 등 남자들의 심정을 담은 곡으로 부르며 나타나 방청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다음 게스트 고유진은 250명 남자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 endless를 부르며 등장해 거의 교주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수지가 등장하자, mc 유재석의 진정하라는 소리가 묻힐 만큼 포효하기 시작했다. 

image
(사진; 스타 뉴스)

쇼의 시작과 함께 장동민이 말했다. 마치 분위기가 306 보충대 같다고. 그보다 <나는 남자다>를 대변할 적절한 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처음 훈련소를 들어가는 그때처럼 서로가 낯설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자리는 더 낯설었던 250명의 남자들이,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훈련소 동기들처럼 친밀해져 간다. 그리고, 유재석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멘트를 하자, 처음에 남자들만 모여 있다고 징그러워 하던 그 남자들이 40여일 간의 지긋지긋한 훈련소를 마침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헤어진다는 그 사실하나 만으로도 부등켜 안고 서운해 하던 그 심정이 되어 아쉬움을 드러낸다. 

굳이 남자들만의 소셜 클럽이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남중, 남고, 공대라는 공통점을 가진 250명의 남자들과 보낸 한 시간 여의 <나는 남자다>를 지켜보면, 바로 이 프로그램이 어떤 정서로, 무엇을 나눌 것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첫 시도로써 남중, 남고, 공대라는 컨셉은 영리하다.

물론 파일럿으로 선보인 <나는 남자다>는 공중파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특정한 타겟층을 대상으로 한 예능이지만, 프로그램 초반에 중복하여 언급하고 있듯이, <나는 남자다>는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그래서 오히려 여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각자의 닉네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부터 소소한 재미가 시작되더니, 실제 endless를 열창하는 모습이나, 수지를 보고 넋이 나갈 듯한 남자들의 모습은 생경해서, 혹은 익히 잘 알아서 재미가 있었다. '고래'를 잡거나, '첫사랑과의 스킨쉽' 이야기는 뻔한 듯 했지만,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재미가 생겨났다. 마지막에 사진으로만 뽑은 킹카는, 남자들의 쇼에서도 결국은 킹카 타령인가 했는데, 사진과 다른 출연자의 면면이 화룡점정이 되었다. 

또한 일부 평론가가 남자들의 예능이 결국 19금을 지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중간, '고래'나, '야동' 등 19금을 연상할 만한 내용이 나왔지만, 그 누구보다 그런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왔던 유재석은 결코 이야기를 찌질한 남자을의 뒷담화로 넘기지 않은 선의 재미로 요리한다. 남자들이 모이면 그저 그런 이야기나 할 것이라는 편견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파일럿 <나는 남자다>는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남자다>의 매력은, 굳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지 않더라도, 동성의 남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면서, 무르익어가는 그 분위기라 할 것이다. 마치 남고의 오락시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쭈볏쭈볏하던 방청객들이 나중에는 서로서로 손을 들며 프로그램과 어우러져 즐기는데서 오는 그 정서가 가장 강점이다. 연예인들이 모여 제 아무리 극한의 리얼리티를 해도 뽑아낼 수 없는, 월요일 밤의 강자<안녕하세요>를 이끄는 바로 그 정서 말이다. 

(사진; osen)

그런 <나는 남자다>의 정서를 이끌어 낸 1등 공신은 역시나 유재석이다. 
최근 신동엽이 각종 토크쇼를 통해 과거의 전성기 이상의 능력을 뽐내고 있지만, 되돌아 보건대, 유재석 역시 <놀러와> 등을 통해 다수의 일반인 게스트 들과 함께 발군의 능력을 뽐냈던 mc였다. 그런 유재석이기에, 모처럼 일반인 250명과의 소셜 클럽에서 역시나 그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그간 소모되지 않았던 유재석의 또 다른 장기를 맘껏 뽐내 보였다. 
노홍철은 너무 익숙하고, 장동민은 늘 자신이 하던 대로 하고, 허경환은 세련되었지만 남자들에겐 무엇을 해도 비호감이고, 임원희는 아직 굳어있지만, 그런 보조 mc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심지어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250명의 사람들을 상대하기에 유재석 혼자로도 너끈했다. 또한 거기에 덧붙여, 마치 유재석과 연출진의 쌍두마차인 듯, 유재석이 던지고, 카메라가 캐취해 내는 식의 섬세한 연출 방식 역시 기대해 볼만한 요소다. 

이미 케이블 등에서 자동차나, 패션 등의 소재로 남자들의 예능이 순항 한 지 오래되었다. 19금의 이야기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덧붙여, 프로그램 초반 유재석이 실토하듯이, 공중파 라는 한계(?)를 지닌 남자들의 예능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우려가 대다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파일럿 프로그램<나는 남자다>는 19금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모든 성에게 열려있지 않은 특정 대상을 상대로 한 프로그램이라도 충분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아마도 순조롭게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하지만, 첫 회에 이미 많은 남자들의 보편적 정서가 다 등장해 버리지 않았나 싶은게,  과연, 첫 회에서 등장했던 남자라서, 혹은 남자들만의 그 주제를 매회 신선하게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유재석이라는 mc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 프로그램의 고유성을 살려낼 수 있을까 라는 점은 숙제로 남겨두고 싶다. 


by meditator 2014. 4. 10. 02:06

10회,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무진으로 떠난 김수현(이보영 분)과 기동찬(조승우 분)은 딸 샛별이 스네이크의 테오(노민우 분)의 집에서 찾은 사진 속 인물들에 대해 추적을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수정을 죽인 범인이 기동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그 사진 속 누군가가 수정을 죽였으며, 그 사실을 덮기 위해 지금의 사건을 벌이고 있다는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드디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가 싶었던 드라마는 10회 말 수현의 집에 뜬금없이 등장한 주민아(김진희 분)의 샛별이 가해 및 자해 소동으로 궤도를 이탈한다. 졸지에 주민아의 상해범으로 경찰에 잡힐 뻔한 수현은 딸 샛별을 데리고 친정 어머니가 있는 강릉까지 가게 된 것이다. 미리 친정 어머니를 매수(?)한 남편으로 인해 졸지에 수현은 정신병원 행이 되어버렸고, 갑자기 등장한 검은 무리 사내들을 피해 샛별과 외할머니는 하고많은 차 중에서 냉동 탑차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간 타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등장해 왔던 냉동탑차의 클리셰는 아니나 다를까 외할머니를 사경에 헤매게 만들었고, 어린 소녀 샛별이를 맥가이버로 탄생시켰다. 제 아무리 외할머니가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한들, 외할머니가 장시간 냉동탑차에 갇힌 덕분에 정신을 잃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어린 샛별이는 기력이 쇠진하기는 커녕 기동찬과 게임을 하며, 그의 지시에 따라 해물 중 문어를 골라, 가지고 있는 라이터를 이용해 냉동 탑차 문을 여는 신기를 선보인다. 물론, 탑차 구멍에 문어 먹물을 넣고, 그것이 어는 것을 이용해 탑차 문을 여는 방식은 신기했다. 하지만, 단 한 순간에 먹물이 얼어버릴 정도의 상황에 여전히 쌩쌩한 샛별이의 상황은 조소를 금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회에 범인들의 윤곽을 거의 잡아가는 듯한 드라마에서 뜬금없이 이런 장면을 넣은 이유을 알 수 없게 만든 회차였다.

그리고 12회, 마치 지난 회에 한 바퀴 에돌았던 이야기를 보상이라도 하는 듯 단 한 회만에 <신의 선물-14일>은 일사천리로 많은 사건들을 해결했다. 그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라는 시청자들의 추궁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샛별이가 납치 된 이후 엄마 수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동성있게, 그리고 기민하게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대통령을 만나 사진을 쥐언 준것이 그저, 딸을 잃고 정신나간 엄마의 해프닝이 아니라, 설사 그 사건을 공표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에게 쥐어준 이상 사건을 조사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포석을 깔 정도의 '셜록 홈즈' 저리 가라는 수준의 두뇌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전 샛별이가 죽음에 이르른 과거와 달리, 수현과, 그녀의 조력자 기동찬은 샛별이가 생방송을 하던 그 시간에 납치가 된 것이 아니며, 우여곡절 끝에 집에 까지 갔다가 다시 집을 나섰다가 사라졌다는 사실까지 알아내게 되었다. 또한 샛별이가 발견한 사진 속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미쳤으며, 사진 속 인물 외에, 반지를 낀 의문이 인물이 또 한 사람 존재한다는 것을 일사천리로 알아내게 되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라 라고 하는 듯 한 회만에 많은 실마리를 풀어내고, 또 그것에 걸맞는 반지남의 등장이라는 깜짝쇼까지, 장르 드라마로서 풍성한 한 회를 12회 동안 보여주었다. 덕분에, 그간 기동찬 네 집에 들락날락거리던 추병우(신구 분) 회장의 비밀도 드러났고, 대통령의 미묘한 포지션도 밝혀 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수현이라는 캐릭터의 맹목적인 성격처럼 드라마는 늘 한쪽 궤도로만 직진한다. <신의 선물-14일>을 보면 가장 묘한 것이, 수현과 그녀의 남편 한지훈(김태우 분)이 샛별을 잃어버리기 까지 가장 사이가 좋아보이는 부부였음에도 드라마 상에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수현이 자신이 과거로 부터 돌아왔다는 고백을 한지훈이 믿어주지 않아서, 그리고 이어서 밝혀진 한지훈의 불륜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드라마는 12회에 몰아치기 위해, 11회에 장구한 궤도를 돌아오듯, 마지막 깜짝 반전쇼를 준비하기 위해 히든 카드로 한지훈을 매번 아낀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샛별이가 사라진 순간에도, 자기 핸드폰에 숨겨진 번호와 통화를 시도하며, 모든 사건의 해결 현장에서 멀어진다. 정작 수현도 샛별이가 공개 수배 시간에 납치 되지 않은 걸 알아내고, 그 시간에 그런 녹음 방송을 내보낼 이유가 있었음에 의문을 가졌으면서도, 더 이상 사고를 진척시키지 않는다. 그녀와 기동찬은 가장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려 분주하지만 언제나 그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곳은 가장 허수인 듯한 지점이다. 12회가 모처럼 재미있었던 것은 그렇게 허수를 제거하던 그 두 사람이 모처럼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의 선물-14일>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을, 가장 멀리, 에돌아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마치 가족 간의 단절과 불신이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라도 되는 듯,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신호와 말에 무지하다. 대신 아내는 아내대로 사건의 흔적을 쫓아 뛰어다니느라 바쁘고, 남편은 남편 대로 자신이 가진 사건의 실마리에 매달린다. 그래서 수현이 뛰어다니며 모든 허수를 제거하고, 마침내 사건의 실체에 얽어매어진 남편을 발견할 때까지, 시청자들은 두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 마치 한 송이 국화 꽃을 만나기 위해 봄부터 우는 소쩍새의 소리를 듣듯, 다음 주, 그리고 또 다음 주, 수현의 발로 뛰어다니며 해결해 가는 사건의 실체를 기다리기 위해, 눈 꾹 감고 남편 한지훈을 꿀떡 넘겨야 하는 것이다. 

<신의 선물-14일>을 보면, 역시나 긴 호흡을 가진 장르 드라마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체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매회 긴박감 넘치게 장르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가 여실히 보여진다. 장르물에서 매회 깜짝쇼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마도 11회의 '문어의 난'과 같은 무리수가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토당토 않은 11회를 인내하니, 또 속시원한 12회가 떠억하고 등장하니, 이런 것이 또한 한국형 장르물의 매력이라고 해야 하나? 명품이라기 보다는 실험작에 가까운 <신의 선물-14일>이지만 부디 마지막까지 좌초하지 않고 순항하여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4. 9. 02:34

도대체 왜 애초에 이 드라마의 제목을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라고 지었을까? 마지막 회까지, 이런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 정세로는 한영원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젊은 청년 톰 리플리의 야망과 좌절을 다룬 영화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청년 톰 리플리가 자기 또래의,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달리 부호의 아들로, 멋진 요트와 아름다운 애인을 가진 청년 필립을 만나, 결국 그에 대한 질시를 못이겨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태양이 작렬하는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그리로 그 이후 요트에 달린 시체가 발견되기 까지 청년 톰 리플리의 동인은 오로지 그의 야망이었고, 태양을 닮은 야망의 좌절과 그로 인한 살인에,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치명적인 그의 젊음에 빠져들어 버렸다.

KBS 월화드라마 복수에서 시작되는 사랑 태양은가득히 KBS2TV 매주 월/화 밤 10시 방송

하지만 굳이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와 동명의 제목을 건 <태양은 가득히>라는 드라마의 시작은 태양과 전혀 반대의 느낌을 주는 눈 쌓인 벌판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려고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눈 정세로(윤계상 분)로 시작된다. 타인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것을 가지고자 했던 톰 리플리와 달리, 정세로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막내리고자 한다. 

그렇게 전혀 태양을 닮지 않은 정세로의 인생을 <태양은 가득히>는 내내 그려낸다. 작렬하는 태양이 빛나는  남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떠난 것도 잠시, 그의 아버지는 차에 치어 사경을 헤매고, 정세로는 한영원(한지혜 분)의 약혼자의 살인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박강재(조진웅 분)의 말만 믿고 한영원에게 복수를 다짐하지만, 정세로의 '복수 혈전'은 시작부터 삐끗거린다. 첫눈에 반해버린 한영원때문에 16회 내내 정세로는 복수심과, 사랑의 애증으로 내내 헤매어 버린다. 

드라마는 야심차게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을 내걸고 한영원과 그의 아버지 한태오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영원의 '벨 라페어'로 잠입하지만, 그의 사랑은 늘 그의 발목을 잡는다. 오히려 아버지 한태오의 야심에 희생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발목이 잡힌 처지가 되어 버린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사경에 헤매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게 자신을 얽어매어 버린 악연에의 분노로 시작된 정세로의 복수전은 야망이라기엔 너무 취약했으며, 결국 복수라 하기에도 사랑에 발목 잡힌 이도저도 아닌 처지의 이야기로 둔갑해 버렸다. 심지어, 15회에 이르러, 그가 복수하려 했던 대상 한태오와 자신의 아버지 정도준(이대연 분)이 그리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세로는 그간 자신이 해왔던 모든 행동의 근거를 상실한 채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박강재의 말만 믿고 복수를 한다 하더니, 이제 복수의 대상인 여자를 사랑한다 하여 복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버지가 나쁜 놈이니, 내가 대신 죽겠다고?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지는 주인공이라니!

오히려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서 정세로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정세로를 이용해 먹으려 했던 박강재(조진웅 분)가 가장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와 유사한 캐릭터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 조차도, 결국 정세로에 대한 정에 못이겨, 그리고 재인(김유리 분)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 결국 야망이 아닌,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증으로 점철된 16회였다.

당분간은 '태양'으로 시작되는 제목의 드라마가 만들어 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공중파의 드라마로써, 종편의 <밀회>보다도 낮은(물론 종편의 시청률 집계가 애초에 공중파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시청률로 16회에 이르기까지 굴욕을 맛보았다.

(사진; 뉴스엔)

윤계상, 한지혜라는 두 주연 배우의 선택에 있어서, 그간 자신들이 해오던 역할보다 보다 폭넓은 역할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정세로, 한영원이라는 캐릭터가 두 배우로 인해 보다 빛났는가 라는 점에선 의문을 남길 수 밖에 없다. 김영철, 조진웅, 전미선 등 빛나는 조연들의 호연은 빛났지만,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가 신선하게 다가왔는가 하면 그 역시 어디선가 이 배우들이 했던 이 비슷한 역이 떠오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복수극도 아닌 것이, 애정물도 아닌 것이, 심지어 기업물도 아닌, 그 어디선가에서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는 그래서 보다보면 어디선가 본 것 같고, 다음엔 어떻게 될 것이 뻔한 그래서 정세로가 감옥에 가도, 죽음의 위기가 와도, 심지어 두 주인공이 헤어져도 다음에 예측되는 뻔한 힘이 떨어지는 이야기에 기인한 바는 가장 크다 할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 곁들여, 시청자들은 뻔히 아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모른채 고민하고 고뇌하는 방식의 진부한 전개, 복수를 한다 하면서도, 신파적 감상주의에 휘감싸여있는 두 주인공을 견디어 내기엔, 요즘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 트렌디해졌달까. 나와 내 가족을 망가뜨린 사람과 기업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도한다고 다 <비밀>이 되는 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랴, 그 하는 과정과 사람의 문제라는 걸, <태양은 가득히>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태양은 가득히>가 낮은 시청률로 종영하게 됨으로써 공중파 드라마의 고민은 깊어졌다. 시청률 집계 산정의 근거 자체가 신빙성이 점점 떨어져 가고 있는 판국에, <태양은 가득히>의 시청률만은 문제 삼는 건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화제성에 있어서 조차, 아직도 그 드라마가 하고 있느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라면 분명 재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더구나, jtbc의 <밀회>처럼 명확한 주시청층을 타겟으로 한 드라마들이 만들어 지는 상황에서, 세 개의 공중파 드라마의 경쟁 속에서 균분 분할이 아니라, 몰아가는 시청률의 분포에서 공중파의 선택은 더 신중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신중함의 근거는, 어디선가 본듯한 드라마의 재탕은 결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에 있어야 한다. 시청률이 1위를 하지 않더라도, 매주 화제가 되고 있는 sbs의 <신의 선물>처럼, 신선한 시도와 기획만이, 치욕스런 종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by meditator 2014. 4. 9. 01:21

가진 것 없는 피아노 지망생에서, 친구의 뒷바라지로 시작하여, 이제 서한 예술 재단의 기획실장에 오르기 까지 오혜원(김희애 분)이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친구 서영우(김혜은 분)에게 뺨을 맞는 건 예사요, 그녀와 사귀었던 남자 강준형(박혁권 분)을 자신의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일도 할 수 있었고, 회장님의 집에 마작 게임에 초대 받기까지 오혜원이 한 일은 그저 예술 재단의 눈에 보이는 그런 일들만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닐터이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삶에 모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 얼굴의 상처를 보고서도 차를 가져다 달라는 냉정한 남편에게 가진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속내를 언뜻 비춘다. 회장님의 여자 심부름으로 만난 국밥집 아주머니의 맥주 세례에 몸둘 바를 몰라한다. 예전의 그녀라면, 서영우에게 따귀를 맞은 그날처럼 한숨 한번 내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일상의 그녀로 돌아가련만 이제 오혜원은 그럴 수 없다. 자꾸만 자신이 초라해 진다. 그럴 듯해 보이던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 

물론 시시각각으로 오혜원의 주변이 그녀를 견딜 수 없도록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예전의 그녀라면, 오히려 그것을 자신이 보다 더 유리해지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바로 선재(유아인 분)때문이다. 

<밀회>에서 오혜원의 자각은 선재와의 만남과 궤를 같이 한다. 선재와 교감하고, 그를 마음에 두기 시작하면서, 오혜원은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갈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무얼 의미할까? 
가장 원초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재생산하고픈 본능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런 재생산에 대한 욕구는, 결국, 삶의 에너지이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더 확산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 된다. 영화<은교>에서 70대의 노작가는 은교를 사랑하게 되면서, 20대 못지 않은 젊음을 발산한다. 30대의 제자가 감히 내려가지 못하고 주저하던 벼랑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가, 은교를 발 동동거리게 하던 거울을 구한다. 70대의 노인도 펄펄 뛰게 만드는 사랑이건대, 하물며 마흔의 여자임예랴.

중년이란 나이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안정기에 들어선 나이이겠지만, 중년에 들어선 사람들이 그럼에도 상실감을 어쩔 수 없어 하는 이유는, 더 이상 그들에게 젊은 시절과 같은 사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실감이다. 하지만, 이제 중년이 되어서도 젊고 팽팽한 그들에게, 사랑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 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나듯, 오혜원은 거부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거부할 수 없는 선재를 마음에 두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에덴 동산이라 여겼던 서한 예술 재단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중년이라 가둬두었던 삶의 열정적 에너지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사랑은 그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눈뜨면서, 개울 물에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듯,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과연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반문한다. 오혜원도 마찬가지다. 선재와의 모텔 행을 앞에 두고, 홀로 돌아와 목욕을 하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눈물 짓던 그녀는 자신의 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직 순수한 청년 선재 앞에 내보이기에는 자신의 나이든 몸만큼이나 부끄러운 자신의 삶.

다시 영화<은교>에서, 노작가는 자신이 은교를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닫고 거울 앞에 서서 나신이 되어 자신의 몸을 샅샅이 바라본다. 그는,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지만, 그리고 육체적 능력으로는 모자랄 것 없지만, 그럼에도 늙어가는 육신에 괴로워한다. 마찬가지다. 오혜원도, 젊은 선재 앞에, 중년의 육신과, 어쩌면 그 보다도 더 노회한 자신의 삶에 딜레마를 느낄 것이다. 사회적 통념과, 윤리를 넘어선, 보다 본능적인 사랑하는 이로써의 부끄러움이다. 

오혜원을 연기하는 배우 김희애는 자신의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기에는 여전히 너무 아름다운 딜레마를 지니지만, 그녀만큼 우아하면서, 모멸감을 느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하는 배우도 드물다. 드라마 <장희빈>에서 어색했던 유아인은 모처럼 제 몸에 맡는 배역을 맡은 듯하다.  배우만이 아니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늘 두 주인공을 훔쳐보는 듯한 시선을 유지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하여금, 관음의 아찔한 감정을 오가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젊은이와의 사랑, 그와 함께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는 그녀 주변의 상황을 급박하게 이끌어내는 정성주 작가의 내공은 역시 대단하다. 영화 <색계>의 파멸을 항해가는 위험한 사랑에 매력을 느꼈듯, <밀회>에 빠져들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4. 4. 8. 02:49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한 장면,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이란 학생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내는 확신'이라고 대답한다. 또 다른 학생 토니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답한다. 그것이 어느 것이 되든 결국 역사란 그것을 해석하는 후자들의 몫이라는 의미에서 두 정의는 공통점을 가진다.  


매주 토, 일요일 9시 40분에 방영되는 <정도전>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정도전이 그리는 새로운 국가에 대한 이상의 출발점을 부패한 고려 사회로 짚었다.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그 의지를 펴보지 못한 신진사대부 정도전은, 궤도를 틀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대업을 꿈꾸고, 그것을 함께 할 사람으로 이성계를 고른다. 하지만, 그런 정도전의 대업에의 권유에 대해 이성계는 냉정하다. 자신이 고려를 무너뜨릴만한 힘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은 욕심 이상의 그 어느 것도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드라마 <정도전>은 당신에게 대업은 하늘이 내린 일이라고 강변하는 정도전과 그에 대해 부정하지만, 결국 회군을 하고, 최영을 제거하고, 왕을 패하며 고려의 멸망에 한 발 한 발 다가갈 수 밖에 없는 이성계의 고뇌를 담는다. 그의 고뇌가 깊을 수록, 그가 세우는 국가가, 그저 그 자신과 정도전 등 소수의 집단에 의한 쿠데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역사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드라마는 설득해 낸다.

image

사실 이성계가 어땠는지, 정도전이 어땠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조선을 건국한 승자들인 그들이 남긴 기록을 가지고,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부정확한 확신일 수도, 그들의 거짓말에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하며 조선의 건국이란 사건이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그 사건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즉, e.h.카가 말하듯, 역사는 과거와 그 과거를 해석하는 자들의 대화라고 했을 때, 방점은 과거를 해석하는 자들에게 찍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에 와서 다시 해석되는 이성계의 촛점은 무엇일까?

배우 유동근씨가 이성계가 아닌, 그의 아들 이방원 역을 맡았던, 그 당시 화제가 되었던 <용의 눈물>의 경우는 조선을 건국하고 왕자의 난을 거쳐 가는 과정에서 보여진 '왕권 확립'의 과정을 다룬다. 즉 정통성도 있지만, 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지도자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촛점을 맞추었다. 왕자의 난을 거쳐 아버지를 배신하고 왕이 되는 이방원과, 그에 의해 세자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양녕대군의 모습이 화제를 되었던 이 작품에서 지도자는 한 나라를 카리스마있게 이끌어 가는 강력한 리더쉽이 중시되었다.

그런데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정도전>에서 이성계는 어떤가? 그는 계속 고뇌한다.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 백성을 위한 일이 아닌가? 혹시 그저 자신의 욕심이 아닌가? 회군이 정말 고려를 위한 일인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하며 최영과 맞서는 과정이 정말 옳은 길인가? 정도전은 그에게 대업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이성계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번민할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협잡과 거짓을 밥먹듯이 했던 이인임과 권력의 자리에 앉자 강직했던 무장의 모습을 잃은 채 명예와 명분에 빠져버린 최영과 더욱 대비된다. 드라마 <정도전>은  무장이지만,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못지 않게 고민하는 인간형인 이성계를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의 모습을 말한다. 

<정도전>의 이성계에 못지 않게 또 한 사람의 고뇌하는 대통령이 있다. 바로 <쓰리데이즈>의 이동휘 대통령이다. 그는 양진리 사건의 주동자로 특검에 기소되었지만, 사실 그는 양진리 사건이 그렇게 집단 학살극이 될 줄 몰랐던 재벌과 다국적 기업의 개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쉽게 내뱉듯이, 나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라고 발뺌하면 될 것을, 그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미 대통령인데도, 자신이 불가피하게 그 일원이 되었던 지난 역사적 과오를 밝히고자, 책임지고자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법을 수호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원칙을 지키고자 애쓴다.

이동휘가 그를 만류하는 비서실장에게 '그게 옳은 일이잖아요' 라고 반문하듯, <쓰리데이즈>의 이동휘 대통령과, <정도전>의 이성계가 가고자 하는 길은 단순하고 명백하다.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권력의 유지가 아니라, 지도자가 가져야 하는 원칙적인 길을 가고자 하는 담백한 목표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들이 담백하게 고수하고자 하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이동휘 대통령은 그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고, 대통령 자신은 탄핵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성계는 피하고자 하지만, 그가 존경했던 최영도, 그가 받들겠다고 했던 왕도 제거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원칙을 위해 이동휘는, 대통령으로서의 법과 수호를 지키는 대신에 다시 김도진과 팔콘의 개가 되는 길을 택하게 되고, 이성계는 역모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정통 사극을 표방한 <정도전>은 당연히 고려말 조선 건국을 다룬 역사 정치극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과거의 것이고, 이미 조선이라는 승리의 결과물이 분명한 사건이기에, 그 승자에 감정 이입하며 이성계의 원칙이 승리하는 과정을 흔쾌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불편해 한다. 정작 자신이 몸담고 사는 세상의 정치 이야기는 껄쩍지근하다고 한다. 자신이 백기들고 사는 현실을 소환해내는 드라마가 불편하다고 한다. 역사는 즐길 수 있지만, 현실은 삶의 무게감으로 다가오니, 힘들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현실의 정치는 버겁다고 한다. 

승자들의 거짓말이라도, 그리고 불편한 현실이라도, <정도전>과 <쓰리데이즈>를 통해 그려지는 고뇌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바로 이 시대 우리들이 가슴 속에 품고 그리워하는 그것들이다. 21세기 드라마의 햄릿형 지도자들은, 바로 자신의 권력 유지나, 이권이 아니라, 굼민을 위한 지도자가 가는 길을 고민하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 속 소망이다. 결국 그것이 몇 백년전의 과거의 사건이듯, 혹은 현실이든, 결국 모든 역사적 결정의 끝에는 지도자의 선택이 있다. 양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고뇌하는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을 수록, 드라마는 푸르게 빛난다. 
그래서, 그저 몇 프로의 시청률로 퉁칠 수 없다. 그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지켜봐주고, 함께 그 고민을 나눠주길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4. 4. 7. 16:22

<sbs스페셜>은 3월 30일과 4월 6일 2주에 걸쳐 <숲으로 간 사람들>을 다루었다. 그 중 1부 '새 생명을 얻다'는 숲을 통해 암 등의 질병을 고친 사례를 들어 숲이 가진 자연 치유력을 증명한다. 그에 이은 2부 '새 인생을 얻다'는 아예 숲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례를 들어, 삶의 대안으로서의 숲을 제시하고 있다.



낮 시간의 방송이나 케이블 방송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것 중 하나는 보험 광고 방송이다. 가장 신뢰할 만한 연예인들을 내세우며, 묻고 따지지도 않고 보험을 들어주겠다며, 이 보험을 들면 치료비 걱정은 없다고 꼬신다. 전 국민 의료 보험 시대라 하지만, 막상 암과 같은 질병이 생기면 넉넉한 집이 아니고서는 집안 거덜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는 것이 지금의 의료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앞날의 병원비를 대비하여 여러 가지 보험을 들어둔다. 하지만 보험을 들어둔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제 아무리 돈이 있다 한들, 현대 의학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렇게 현대 의학도 포기한 사람들을 숲이 품어 고쳐주었단다. 

혈액암 말기, 간암 2기, 위암 2기의 환자들이 숲을 걷는다. 물론 처음부터 이들이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숲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겠다고 들어선 숲에서, 신승훈씨는 뜻밖에도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그리고 6년 암과의 전쟁터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백완섭씨의 경우는 아예 작정을 하고 숲에 들어섰다. 위암 수술을 받은 그는 암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이 살았던 도시의 삶을 버린다. 전기,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숲 속에서 4년 째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실제 검사 결과 이들에게서 암세포는 사라졌고, 면역 상태는 거의 일반인 수준이었다. 그 수많은 장비와 명의가 있는 병원에서도 고칠 수 없었던 질병이 그저 숲을 거니는 것으로, 숲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병을 안겨주었던 도시의 삶을 벗어난 그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 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일주일에 한 두번이라도, 아니 그게 안되면 한 달에 한번이라도 숲을 다녀오는 것으로 인간의 몸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치유력을 가진다. 말 그대로 생명력 넘치는 숲의 신비다. 

2부 '새 인생을 얻다'는 이렇게 생명력 있는 숲으로 삶의 공간을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부에서도 보여지듯이, '암'등의 병을 가져온 것은 스트레스로 넘쳐나는 도시의 삶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뻔히 암유발적인 생활인 줄 알면서도 도시에서의 삶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전부인 줄 안다. 바로 그런 고정 관념을 벗어던진 이들을 2부, '새 인생을 얻다'는 다루고 있다. 

부부가 하루에 한 마디를 나누기도 힘든 도시의 삶을 살았던 이태인 씨 부부는 전기, 수도, 휴대폰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살면서 애인처럼 지낸다. 한때 잘 나가던 디자이너였던 이오갑씨는 이제 전국 백수협회 대표가 되어 산속에서 할 수 있는 100가지의 즐거움을 찾아 하루를 보낸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편리함과 넉넉함으로 유혹했던 문명의 속도, 경쟁 등이다. 숲으로 들어와 병도 치유하고 삶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게 되었던 1부의 환자들처럼, 숲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이들은, 조금 불편하지만,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행복을 얻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숲에 사는 부부는 매양 얼굴을 마주 보며 웃는다. 혼자 외롭게 살건만 이오갑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다. 


근대 이후 등장한 세계관은 인류의 역사가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산업 혁명 등의 물질 문명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입장이었다. 즉, 물질 문명이 발전하듯이, 인류의 역사는 그 물질의 발달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이제 더 이상 인류의 진보만을 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으 입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석유라는 한정된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인류 문명의 유한성을 들먹이는 사례가 석유 매장량이 적어지는 것에 반비례하여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지금껏 진보라고, 발전이라고 믿었던 인류의 문명이 가져온 것은 자원의 고갈과 병든 지구라는 반성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런 반성은 석유 문명 이후의 삶에 대한 대안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2부작에 걸친 <숲으로 간 사람들>은 바로 그런 문명론적 고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계가 등장한 것은 자연에 의존하던 삶을 사람들을 자본주의 제도하에 몰아넣기 시작한 그 즈음부터라고 한다. <모던 타임즈> 속 사람들은 거대한 시계에 짖눌려 신음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굳이 시계가 없어도, 우리 안에 내장된 속도감에 짖눌려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속도전에 길들여진 우리 삶의 대안으로, 석유 문명이 가져다 준 이기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안으로 <sbs스페셜>은 숲을 제시한다. 

굳이 주렁주렁 보험을 들어도 고칠까 말까하는 병원이 아니라도, 매년 올라가는 집세에 시달리는 아파트가 아니라도, 남들보다 밀릴까 조마조마한 경쟁이 아니라도, 조금만 비우고 버리면 행복해 질 수 있는 대안으로 숲이다.  


by meditator 2014. 4. 7. 03:06

화제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4>의 후속 드라마라는 부담을 안고 시작했던 <응급남녀>가

평균 시청륭 5%대로 선방하며 종영되었다. 


제목에서도 대번에 알 수 있듯이, <응급남녀>는 우리나라 의학 드라마의 전형대로, 응급실이라는 병원의 공간을 배경으로, 이혼을 했던 커플 오진희(송지효 분)와 오창민(최진혁 분)가 다시 조우하게 되어 벌이는 해프닝을 다룬다. 그리고 역시나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벗어나지 않고, <응급남녀>는 주인공 두 사람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는 tvn 드라마에서 로맨틱 멜로 장르의 특징이라도 되어가는 것처럼, 결론이 뻔한 스토리를 오글거리는 상황의 미장센으로 메꾸어가는 방식에서 <응급 남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만나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대던 두 주인공은 어느새 다시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되어 낭만적인 장면을 마구 양산하며 행복한 결말에 이르른다.

이혼을 했던 이 두 사람이 결국 다시 이루어 지게 된 이유는 결국 '정'이다. 그들이 이전에 이혼을 했던 이유는 아직 미성숙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함께 하는 결혼을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에 벌였던 잘못된 판단이라는 전제 하에, 응급실 인턴으로 만난 두 사람은, 그 이전의 자신들의 상황을 복기하며, 여전히 서로에게 미련이 남아있음을 매 해프닝을 통해 확인한다.

이혼 부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응급 남녀>의 문제 의식은 신선하다. 하지만,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개연성을 차치하고, 자신과의 결혼이라는 세번 째 결혼으로 대미를 장식하며, 우리 사회 결혼의 문제를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자 했던 것과 달리,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해피엔딩이라는 결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응급 남녀>는 오창석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함께 살았던 정에 의지하며 두 주인공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잡아죽일 듯이 굴었던 시어머니 역시 시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언제 그랬냐는 듯 며느리와의 앙금을 가라앉힌다. 그러고서는, 가장 쿨한 방식인 것처럼, 다시 결혼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식으로, 지금의 좋은 관계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마무리를 짓는다. 자신을 되돌아 보며 남발되던 나레이션은 행복의 감탄사형 종결 어미로 마무리된다.


’응급남녀’ 결혼, 이혼, 그리고 재회…사라져봐야 알수있는 것들
(사진; 뉴스24)

오히려 뻔한 두 주인공의 애정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응급남녀>를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사랑의 훼방꾼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멘토였던 국천수(이필모 분)였다. 

미성숙한 주인공이 여러 가지 의학적 사건들을 겪으며 제대로 된 의사가 되는 것은 의학 드라마의 전형적 클리셰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미성숙한 주인공에게 표본이 되는 멘토의 존재다. 그래서 <골든 타임>, <브레인> 등 인기를 끌었던 대부분의 의학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멘토의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기업이 되어가는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인간적 냄새를 풍기며 생명을 살리는 의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존재로 등장한다.
 
<응급 남녀>의 국천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덥수룩한 머리, 깍지 않은 수염에, 구멍난 양말을 신고, 하지만, 생명이 오고가는 응급실에서 그 어떤 사소한 실수로 용납하지 않는 절대 능력치의 의사로 등장한다. 또한 그러면서, 생명에 경각에 달린, 하지만 보호자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는 환자의 보호자 란에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써넣으라고 말하는 휴머니즘의 구현체이기도 하다. 그런 허술해 보이는 외모에 숨겨진 완벽한 매력은 당연히 여주인공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매료시킨다. 

캐릭터의 본원적 매력에 덧붙여 그것을 상승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필모의 연기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최진혁도 로맨틱 물의 주인공으로서 나쁘지 않았고, 그간 드라마를 통해 주로 사극 연기에 치중했던 송지효는 자신의 몸에 맡는 옷을 입은 듯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의 두 주인공의 연기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마치 국천수 그 자체처럼 보였던 이필모의 연기이다. 멘토이면서, 동시에 오진희를 사랑하는 연기에서, 선생이면서, 동시에 사랑에 눈뜨는 연기를 과장하지 않고, 하지만 국천수의 눈빛만 봐도 그의 감정이 전달될 수 있도록 깊게 이필모는 연기를 해냈다. 그런 이필모의 내공이 뻔한 로맨틱물로써의 <응급 남녀>를 독특한 맛으로 빚어낸다. 

<그레이 아나토미> 등 외국의 의학 드라마들이 멘토와 애인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과 달리, 여전히 우리나라의 의학 드라마에서 멘토들은, 마지막까지 점잖게 멘토로서의 자기 선을 지키며 한 명의 수컷이기보다는 멋진 선생으로 남겨진다. 드라마의 중반까지 가장 설레이며 오진희에게 다가갔던, 그래서 예정된 커플 오진희-오창석보다, 현실적으로는 오진희-국천수가 더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국천수는, 오진희-오창석의 관계를 알면서 주춤거리고 그들의 멘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이혼이 잘못은 아니라면서도, 이혼을 했음에도 그 둘을 묶었던 관계는, 또 다른 사람의 침입을 용인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아니 국천수가 끼어들까봐 서둘러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향해 치달린다. 마지막 회에 가서야, 사실은 너를 좋아했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아니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한번의 결혼이 가진 관계가 낙인처럼 잔존한다는 것을 드라마는 은연중에 말한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멘토가 아니라, 인간 이상의 멘토를 그려내며 인간에 대한 환타지를 키워간다. 응급실 취프로서의 국천수도, 오진희를 사랑한 국천수도, 그래서 현실에서는 더욱 존재할 수 없다. 

<응급 남녀>의 무난한 성공은, 주말 저녁 8시 4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대에 안착한 tvn주말 드라마의 안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로맨틱 물 <응급 남녀>에 이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후일담을 다룬 장르물 <갑동이>까지, 주말이면 뻔한 가족드라마를 강요당하는데 지친드라마팬들에게는 주말의 선택이 풍성해졌다.


by meditator 2014. 4. 6. 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