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의 또 하나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두근두근 로맨스 30일>

일반인 남녀들이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 30일 동안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5가지의 규약에 의거한 데이트를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삼부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이휘재, 이정민 아나운서를 메인 mc로 김지민, 정일훈 , 이명길 등이 패널로 출연하며, 세 쌍의 연애 커플이 등장한다.

프로그램의 방식은 연예인 커플의 가상 결혼을 다루는 <우리 결혼 했어요>와 비슷하다.  세 쌍의 커플의 연애 과정이 리얼리티로 보여지고, 스튜디오의 mc와 패널들이 그들이 벌이는 각각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반응과, 평가를 내린다. 특히 연애 전문가라는 이명길이 함께 해, 전문가의 입장에서 등장한 연인들의 상황을 정리한다. 

처음 이상형을 만나고 싶다고 등장한 세 명의 주인공은, 배우 지망생 박종찬, 아나운서 정다은, 플로리스트 최민지였다. 
제작진은 이들이 원하는 이상형을 조사한 뒤 300 명의 지원자 중 연애 전문가와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뽑은 적임자를 파트너로 선정한다. 그에 따라, 정다은 아나운서에겐 축구코치 김주경이, 플로리스트 최민지에겐 한의사 송영섭이, 23살의 박종찬에겐 동갑인 대학생 김지안이 파트너로 등장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30일 동안 '매일 만나기',' sns를 통해 공유하기', 1박2일 여행하기 '등 다섯 가지의 등으로, 제작진은 이상형을 통해 만나게 된 커플인 만큼 진짜 커플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고 했으며, 이들의 만남을 통해 실제 2,30대의 연인들이 조언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포부를 보인다. 

(사진; 리뷰스타)

각자 원하는 이상형에 부합된 사람들이라지만  세 명의 출연자의 첫 반응은 갈렸다. 언뜻 보기에도 코 밑 수염을 길러 험상궃어 보이는 외모의 김주경을 보고 당황한 정다은 아나운서는 자신이 제작진에게 이상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힐 걸 그랬다고 실망을 돌려 표현한다. 반면, 훤칠한 외모의 송영섭을 본 최민지는 그에게서 후광이 비췄다며 반색을 한다. 또래라는 이유로 쉽게 말을 놓은 박종찬과 김지안은 첫 만남임에도 마치 1년을 만난 연인처럼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첫 인상이 다가 아니었다. 부담스러웠던 첫 인상과 달리, 김주경은 정다은을 배려하는 이벤트로 만남을 거듭할 때마다 정다은을 즐겁게 해주며 반전을 보였다. 그에 반해, 훈남 한의사인 줄 알았던 송영섭은, 당황해서인지, 원래 성격인지, 도무지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자신의 반응을 가감없이 드러내 갈등을 조장했다. 첫인상의 반응과 달리, 정다은 커플은 나날이 순조로워지는 반면, 최민지 -송영섭 커플은 매일 만나야 된다는 규약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위기를 맞게 된다. 

제작진은 가장 어울리는 이상형을 고심해서 선택했다고 했지만, 막상 첫인상에서 어긋났던 김주경이나, 첫인상은 좋았지만 만나보니 어긋났던 송영섭의 케이스를 보면, 출연자를 배려했다기 보다는, 매칭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에 좀 더 충실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물론 배우 지망생도 포함되었지만, 아직 연예인이 되지 않은 그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리얼리티로 연애를 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보자면, <두근두근 로맨스 30일>은 얼마전 출연자의 불의의 사고로 말미암아 폐지된 <짝>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그러기에, <짝>에 출연했던 일반인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었던 면모로 인해 화제가 되고, 혹은 그로인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처럼 <두근두근 로맨스 30일>역시 언제라도 그와 비슷한 물의를 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이다. 즉,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서 방송 중에 보였던 일반인의 반응이, 프로그램화되면서 공인의 그것인양 도마 위에 올라 대중들의 난도질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 말이다. 이미 첫 회에서 김주경이 첫인상과 달리 호의적으로 보인 것에 반해, 송여섭은 환자를 대하는 직업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하무인이라는 느낌을 방송은 여과없이 내보낸다.

또 하나, 최근 <마녀 사냥>의 융성과 더불어, 범람하기 시작한 각종 연애 정보성 프로그램들의 방식을 또한 <두근두근 로맨스 30일> 역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녀 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될 수 있는 이유, 답은 '이현령, 비현령'이다. 마치 프로그램을 보면, 연애에 정답이 있는 것같지만, 매주 등장하는 연애 사례만큼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정답이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를 비롯하여, <마녀 사냥>, 혹은 그 아류의 연애 정보 프로그램들은 마치 남녀 사이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기존 우리 사회가 가진 '남자는 이래야 한다. 혹은 '여자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선입견에 의거해, 그리고 그것을 이제는 연애 전문가라는 특정인의 입을 빌어 확정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마치 그런 개별적인 의견을 교과서처럼 여과없이 수용하여, 자신의 연애, 혹은, 자신의 남녀관에 도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남의 연애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만큼 재미진 것은 없는 것처럼 <두근두근 로맨스30일>은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그러나 물의를 일으키고 <짝>이 사라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시 일반인 매칭 프로그램을 그것도 ,kbs2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기에 굳이 저런 짝짓기 파일럿을 시작해야 했는지는 더더욱 아쉽다. 


by meditator 2014. 5. 1. 03:32

<쓰리데이즈> 팬들 사이에 우스개 소리로 '태쓰노트'라는 말이 있다. 

영화 <데쓰노트>를 빗댄 말로, <쓰리데이즈>의 주인공 한태경과 엮인 사람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는 드라마 속 상황을 빗댄 말이다.
그런 '태쓰노트'가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14회 태경의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대통령은 걱정말라며 자기가 지키겠다던 그 말이 복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호실장 김상희(안길강 분)는 마지막 한 사람의 경호원이 되어 대통령을 도망가게 하고 총을 맞았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태쓰노트'가 아니다. '동쓰노트'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14회 이동휘의 회상씬에서 처럼, 그와 함께 하기 위해, 혹은 그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 갔다. 

쓰리데이즈 방송화면
(사진; 텐아시아)

김도진은 드라마의 시작부터 이동휘 대통령에게 말한다.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을 거라고.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김도진은, 악착같이 자신의 그 말을 실천한다. 
그렇다면 그간 <쓰리데이즈>를 통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이동휘 때문일까? 15회, 그의 마지막 위령탑 추모 길에 동행하느라 숨져간 경호관들을 보면, 그냥 가만히 청와대에 있다가 사임할 것이지, 왜 거기는 가가지고 라는 생각이 들만큼, 경호관들의 죽음이 안타깝다. 
마지막에 홀로 적들을 맞써 싸우다, 함께 가자는 이동휘 대통령에게 어서 도망가서 당신이 할 일을 하라는 김상희 경호실장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서 박힌다. 이제 이동휘는, 또 다시 자신 때문에 죽어간 저들 경호관때문이라도 죽을 수 없다.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을 다 이룰 때까지. 

김도진의 수하들에게 쫓기어 홀로 찻길로 뛰어든 이동휘를 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진리 사건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였다. 혹시나 그 아내가 10년 전 일로 인한 억하 심정에 이동휘를 다시 저들에게 넘겨줄까 싶었는데, 아내는 말한다. 고맙다고. 
그저 택시 운전기사였던 남편이 친구들과 술 한 잔 먹겠다고 갔다가 개죽음을 당한지 10년, 딸에게 조차 아비가 왜 죽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어미는 이동휘 대통령이 밝혀준 진실에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김도진에게는 그저 돌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 양진리 추모탑에 새겨진 가족의 해원이 이동휘의 속죄로 그제야 풀렸던 것이다. 

이동휘는 드라마 내내 무기력한 대통령이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집권 초기 높았던 지지율은 그의 정책의 실패로 말미암아 곤두박질쳤고, 이제 김도진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그나마 그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의 기반들이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그의 뜻에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이동휘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경제를 더 좋아지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자신의 지난 과오를 밝히기 위한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15회에서 보여지듯이 이동휘가 밝히려고 했던 과오가 과거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그저 드러나는 것은 김도진이라는 미치광이의 이동휘에 대한 한풀이이지만, 취조실의 문신만의 토로처럼, 그 뒤에는, 김도진이라는 미친 놈이 휘저어 주면 줄수록 혼란에 빠지는 대한민국에서 이해를 얻는 그 누군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그저 사는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하며 덮었던 과거사들이 우리의 오늘을 규정하고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쓰리데이즈>는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동휘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다. 

또한 결전의 날이 지나고, 심판의 날이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드라마의 여명은 밝아오지 않는다. 그나마 이동휘를 지키던 경호관들마저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속 시원한 한 판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적들의 기관총에 무기력하게 대통령을 지키다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경호관들 뿐이었다. 
<쓰리데이즈>는 말한다. 당신들이 원하는 환타지는 그리 쉽게 오는게 아니라고, 심판은 더더욱 쉽게 얻어지는게 아니라고. 어쩌면 당신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세상의 고됨을 잊고자 틀어놓은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세상과 반대되는 위로를 얻기를 원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재벌을 서민과 사랑을 나누고, 가진 자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기어코 그들의 코가 납작하게 복수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속 시원하다 한다. 

(사진; osen)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지독하다.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사람들, 진실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김도진의 예언처럼 모두 죽거나 다친다. 이제 남은 한태경과 이동휘, 다음 회 그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쓰리데이즈>는 마지막까지 말한다. 종교적 용어로 흔히 쓰이는 '심판'을 굳이 <쓰리데이즈>의 세번 째 3일에 가져다 쓴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끝에서야 어렵게 얻어지는 그 무엇을 상징하게 위해서 였던 듯하다. 종교에서도 심판은 한 개인으로는 죽음 후에, 혹은 한 세상의 종말이 온 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듯이, 새로운 세상은 피를 먹고 태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하지만, 10년의 한이 풀렸다는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동휘 한 사람의 결심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이제 마지막으로 이동휘 곁에 남은 경호관 한태경이, 즉 단 1%의 진심만이라도 움직여 진다면, 어쩌면 세상은 조금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16회, 기대해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4. 5. 1. 02:00

<밀회>12회, 함께 여행을 떠난 혜원(김희애 분)과 선재(유아인 분), 선재는 혜원을 위해 음악 어플을 다운받아주고, 친절하게 혜원이 좋아할 만한 90년대 음악까지 다운받아준다. 그런 선재에게 혜원은 말한다. 자신은 그 시절에 유행하던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고. 대신 혜원이 선재에게 들려달라고 했던 음악은 혜원도, 선재도 태어나기 전의 음악이라는 1973년에 발표한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다. 피아노를 통해 교감을 이루고, 그 교감을 바탕으로 사랑으로 맺어진 이들에게,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맨]만큼 적절한 음악은 없을 것이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들으며 선재는 그 노래에 심취하고, 혜원은 조용히 오열한다. 

하루 전날 방영된 <마녀의 연애>3회에서 반지연(엄정화 분)과 윤동하(박서준 분) 역시 음악을 논한다. 반지연이 자신이 좋아하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불러주지만 윤동하는 그 노래를 모른다. 이어서 반지연이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부르자, 윤동하는 그건 '동방신기'의 노래라고 답한다. 겨우 서로 아는 노랜가 싶어 함께 부르기 시작한 '붉은 노을'을 반지연은 '이문세'의 버전으로, 윤동하는 '빅뱅'의 버전으로 엇갈려 부른다. 하지만,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노래는 불협화음 속의 화음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다음 날 윤동하는 함께 와인을 마시는 순간 좋은 노래라며 반지연이 좋아했던 변진섭의 '희망 사항'을 들려준다. 

(사진; osen)

그저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즐기는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을 통해 제법 나이 먹은 여자들의 연애를 다룬 두 드라마 <밀회>와 <마녀의 연애>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밀회> 역시 <마녀의 연애>와 다르지 않게 선재는 혜원을 배려하여 그녀의 시대의 음악을 골라준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 시대는 없다. 그것은 마치 그녀에겐 삶이 없다는 의미로 전해진다. 대신 그녀에겐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친구이자 오너였던 서영우(김혜은 분)를 기다리던 그 시간의 노래가 혜원의 노래가 된다.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피아노 맨'을 통해 혜원과 선재는 다시 한번 공감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만은 둘 사이의 나이차이란 무의미하다. 마치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빌리 조엘의 음악처럼. 

반면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인 <마녀의 연애>에서 기준은 윤동하가 얼마나 반지연을 이해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자기 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무려 14살이나) 서른 아홉살의 반지연을 스물 다섯의 윤동하가 이해할수만 있다면 이 연애는 오케이다. 그래서, 기센 팀장님이던 반지연은 번번히 윤동하 앞에서 여성으로서의 갸날픔을 들키고, 그래서 윤동하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거기에, 직업 여성으로서의 멋짐은 옵션이다. 반지연을 이해하고, 어느 틈에 그녀를 사랑스러워 하기 시작한 윤동하의 무장 해제는 그가 선택한 음악 '희망 사항'으로 대변된다. 

먹을 만큼 먹은 그녀들의 연애라지만, <마녀의 연애>에서 반지연의 나이는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팽팽한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실감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반지연이 서른 아홉이건, 서른이건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서른 아홉이라며 스스로 질색하지만, <마녀의 연애> 속 그녀에게서 나이로 인한 연륜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반지연으로 분한 엄정화가 서른 즈음에 하던 로맨틱 코미디와, 그녀가 서른 아홉의 반지연이 되어 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별 차별성이 없다. 그저 세상에 많고 많은 연상연하의 사랑 중 하나일 뿐.

하지만, <밀회>라는 드라마를 가득 채우는 것은 선재와 혜원의 사랑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재를 사랑하고 되돌아 보니, 미국 조그만 카페에서의 시간만큼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혜원의 삶이다. 열 네살이나 차이가 난다면서도 덥석 엄마 앞에서 사귀는 남자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혜원에게는 없다. 비단 유부녀라서가 아니다. 선재와의 일탈이 혜원의 삶 전체를 벼랑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그녀도 몰랐던 그녀 자신의 위태로운 도박으로 드라마는 충만해진다. 가질 만큼 가지고, 조금 더 하면 더 큰 욕망을 채울 것같았던 중년의 삶이, 사랑으로 인해 괴멸되는 그 중년의 허무함이 <밀회>의 공기다. 

'마녀의 연애' 엄정화의 맞선에 박서준이 불안함을 드러냈다. ⓒ tvN 방송화면
(사진; 엑스포츠 뉴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이건, 치명적인 멜로이건, 두 드라마 모두, 드라마의 관점은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때론 심하게 상투적이거나, 평면적이다 싶을 만큼 여주인공의 편에서 전개된다. 그들 삶의 결정권은 여주인공에게 달려있다. 남자 주인공들을 등장할 때마다, 자기 자신보다는 여주인공들을 걱정하고, 어쩌면 그렇게 여주인공들이 원하는 것만 해준다. 마치 텔레비젼의 리모컨을 쥐고 있는 중년들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결의라도 다진 양. 그게 아니라도, 너도 나도 결혼 따위는 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젊은 여성들에게, 걱정마라, 당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멋진 연하남을 만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처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입장은, 처음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하던 반응이 무색하게,  '스물 다섯이라니, 땀 냄새도 향기롭겠다던' 반지연의 친구의 심정과도 같을 것이다. 서른 아홉 노처녀에게 다가온 친절하디 친절한 훤칠한 청년이건, 마흔이 넘은 중년의 위기로 다가온 천재 피아니스트이건, 마치 자신이 회춘이 되는 듯, 그저 감사할 따름일지도.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감사함에 옵션이 따른다는 것이다. <밀회>나, <마녀의 연애>나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갑'이다. 잡지사 팀장이거나, 문화 재단 부대표 정도는 되어야, 그래서 특종을 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기자이거나, 천재를 한 눈에 알아봐줄 정도의 식견을 있어야, 저렇게 설레이는 훈남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언제적 아름다운 여성을 쟁취하는 것이 팀장님이거나, 재벌남이었듯이 말이다. 아, 거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다. 서른 아홉이건, 마흔이건 절대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와 몸매 말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한참 젊은 연하남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정말 현실의 남자들이 조선시대 꼬마 신랑처럼 자기 보다 열살 이상 많은 여자들을 여자로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by meditator 2014. 4. 30. 02:12

낚시밥으로 사용하는 지렁이를 한 움큼 움켜쥐고 입에 털어 넣으며 생명을 구걸하던 이인임이 4월 28일 31회 드디어 유배에 처하던 도중 생을 마감한다. 다음 회, 이성계와 길고 지리한 싸움 끝에 땅끝으로 유배를 당했던 최영도 명나라 사신의 안전을 위해 처형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일전일주제로 이성계파의 혁명적 전제 개혁을 무마시킨 이색의 저항은 다음 회 그의 수족에 대한 제거 작업을 시작으로 조만간 끝을 맺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인임, 최영, 이색의 몰락과 함께 고려도 무너져 갈 것이다.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개국 과정을 다룬 <정도전>은 그간 사극에서 간신 혹은 역적 이인임, 명장 최영, 고고한 학자로만 그려졌던 이색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 캐릭터로 재조명해냄으로써 사극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정도전 이인임 박영규
(사진; tv데일리)

그 중 이인임은 역사 속에서 왕의 장인으로서 혹은 역적의 주모자로 단편적으로 제시되었던 인물이다. 그저 그런 흔하디 흔한 역사속에서 만났던 간신이었던 이인임을 박영규라는 배우의 열연을 통해, 고려 말 권문 세족의 대표자로 새롭게 제시한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비를 제거하고, 그 아들의 양아버지가 되는, 어떤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노회한 정치가로써의 이인임은 아마도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그려낸 고려 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던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권력의 경구들은, 때론 보는 시청자들조차 매료시킬만큼 정치판의 본질을 관통한다. 그의 활약 덕분에, 드라마 <정도전>은, 그리고 조선의 건국은 단순한 논리의 혁명을 넘어, 보다 복잡한 정치적 세계의 혼돈으로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인임의 예언처럼, 고려를 지탱해 왔던 이인임을 필두로 한 권문 세족의 몰락은, 무장 최영의 기대와 달리, 고려의 종말을 앞당긴다. 
이인임을 제거하고 야심차게 고려의 실권자로 등극했지만, 정치적 안목도, 변혁에의 청사진도 없었던 그저 결국 소박한 무장에 불과했던 최영의 치세는, 또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함께 단명하고 만다. 그리고 이런 최영의 몰락은 일찌기 무신 정권 이후 후기 고려를 지탱했던 무신 세력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역적 이인임을 노회한 정치가로 그려내듯이, 역사 속 의인이었던 최영 또한 순수한 애국심은 있었으되, 그 애국심의 한계가 고려 왕조의 틀 속에 갇힌 협소한 시야의 인물로 그려내는데 고심한다. 한 인물의 열정과 노력이, 그 시야가 한정적일 때 가져오는 역사적 불행을 최영이라는 무장을 통해 철저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요, 제 아무리 한 개인적으로는 양심적 인물이라도, 백성의 삶을 걱정하지만, 정치적 야심에 있어서는 현실을 보살필 수 없었던 고려의 무장이라는 현실적 존재를 뛰어넘지 못한 역사적 존재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내 보인다.

부패한 권문 세족을 제거했지만, 그보다 앞선 많은 무신 정권들이 그러했듯이, 결국 왕이라는 언덕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순수한 하지만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그의 열정은 자신은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거라는 형장의 애처로운 외침으로 끝을 맺고 만다. 

정도전
(사진; 텐아시아)

그렇게, 고려를 지탱해 왔던 권문 세족과 무신 세력이 축출되었지만 여전히 고려를 지탱하던 마지막 희미한  등불이 남아있었다. 바로 이색을 중심으로 한 신진 사대부 세력,.
고려 말에 과거 제도를 통해 정치 내에 개혁 세력으로 등장했던 이들은, 어느 새 그 자신들이 권문 세족과 같은 대농장의 주인은 아니지만, 지주로 안정된 자리를 잡으면서, 정도전 등이 제시한 사전 혁파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신진 사대부 세력 내의 정치적 대립은, 결국 그 근간에서는 잃을 것이 많은 땅을 가진 지주와, 그렇지 않은 혹은 그것을 지양하고자 하는 혁명적 세력의 대립으로 귀결된다. 
역사적으로 학자로 이름을 떨친, 조선 건국 이후 새로운 나라에 봉사하지 않았던 고려의 충신으로 칭송받았던 이른바 이색학파 등 재야 학자들의 본질을 드라마<정도전>은 낱낱이 폭로한다. 또한 어느새 중앙 정치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 개혁의 반대 입장에 서게 된 신진 사대부들의 행태는, 또한 조선 건국 이후 조선의 한계를 규정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정도전> 속 정치는 경제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땅의 경계가 하도 넓어 산과 강을 경계로 땅을 나눌 수 밖에 없었던 세력이 정치의 실권자가 되어 고려를 농단했고, 그런 현실을 거들떠 보지 않은 정치적 열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저 조금이라도 좀 더 가진 자가 된 사람들 앞에 학문적 원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폭로한다. 이인임, 최영, 그리고 이제 이색이 축출로 이어지는 조선 건국의 과정은, 고려라는 나라의 정치 경제적 모순의 해결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정치적 쿠데타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을 지양하고, 나라의 근간을 뒤짚어 엎는 혁명으로서의 조선을 그려내는 고심의 과정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4. 28. 09:06
세월호, 그 일이 있고나서 텔레비젼 속 시간은 멈췄다. 모든 드라마와 예능들은 정지했고, 대부분의 시간들은 현지의 상황 보도와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가를 분석하는데 할애되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고 조심스레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주말이 되어가며 일부 방송에서는 예능 프로그램도 다시 선보이기 시작되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모든 방송이 다시 예전처럼 재개될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드라마를 보아도, 다시 시작한 예능을 보아도 예전의 그 드라마와 예능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섣부르게 시작된 예능에 대한 비판의 소리마저도 나온다. 과연 이런 시기에 방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한 주가 넘는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은 그저 누군가의 일이 아니다. 그 사건이 실시간 시시각각으로 보도되면서, 전국민이, 그것이 자기의 일인양 몸서리쳤고, 그 후속의 이어지는 부실한 사태 해결 과정에서 또 한번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예전처럼 흘러가려 한다. 

물론 의연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씩씩하게 웃으며 지내려 하는 것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 방송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 4월 26일자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서처럼, 9,11사태 뒤 '뉴욕이 다시 일어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방관들과 시장이 오프닝을 맡아 재개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각 sns에서 나부끼는 노란 리본처럼, 실종자가 사라지는 그 날까지 아직 사람들은 그 기억 속에 놓여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상처는 진행중이다.

오히려 이런 때 한번쯤은 그간 우리의 방송을 되짚어 보면 어떨까? 뻥뻥 비워져 나간 예능으로 가득찼던 방송 시간표 속에서, 시청률에 연연하는 사이에, 어쩌면 조금 더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거나, 미뤄지고, 그 사이를 그저 흥청망청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들이 채워진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전직 한겨레 기자의 김규원의 책 [마인드 더 갭]을 보면, 그가 영국을 가서 가장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와 방송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다. 즉 영국은 우리나라만큼 예능이나 드라마가 많지 않다는 것이 그 하나요, 국회의원들의 국정 활동이 고스란히 텔레비젼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현실적 방송 환경이 그를 놀래킨 두번째 였다. 막상 따분할 것 같은 그 국회 중계를 보며, 그는 영국 사회가 가진 민주적 전통의 근간이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 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했다고 자신의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의 책 제목 '마인드 더 갭'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듯이, 그간 우리 방송은, 어쩌면 정작 들여다 보고 살펴보아야 할 많은 것들은 제외한 채 '엔터테인먼트'만이 방송의 주목적인 채 달려오지 않았나 하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시점에 한번쯤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전국민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입힌 이 상황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해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심리학자 정혜신씨의 견해에 따르면,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대해 아픈 것은 아프다 할 수 있는 과정이 치유의 가장 빠른 회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희망 버스'의 일원이 되어 쌍용차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 곡곡의 고통받은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희망 버스'가 방송계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4월 26일 새로 시작된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그런 치유의 미덕을 보인 적절한 방송으로 보여진다. 일찌기 설 특집으로 선보인 이 프로그램은, 당시에도 차마 아버지의 부재를 어린 딸에게 알리지 못한 채 힘겹게 버티어 가고 있는 엄마와 두 자녀의 가정을 찾아가 치유의 만찬을 제공한다. 그저 밥 한끼였지만, 방랑식객 임지호 씨의 삶의 철학이 담긴 밥상을 받은 엄마는 아빠가 없는 빈 자리를 버겁게 메고 버티어 오던 삶에 위로를 얻었고, 어린 딸에게 힘겹게 아빠의 부재를 전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특집 방송에서부터 시작된 치유의 만찬은 26일 시작된 첫 방송에서도 이어진다. 이날 밥 한  끼를 청한 사람은 23살의 대학생 김재민, 재민군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밥상을 차려드렸으면 하는 소망을 밝힌다. 하지만 정작 재민군의 인도 아래 찾아간 곳에는 그의 친부모님이 아니라, 2010년 연평 해전에서 전사한 고 문광옥 씨의 부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김재민군은 문광옥씨의 뒤를 따라 입대한 친구 23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방랑 식객 임지호씨는 아들이 죽은 뒤 술로 세월을 보내다 위가 수축되어 식사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던 돼지고기는 먹을 수도 없었던 부모님들을 위해서 치유의 만찬을 마련한다. 꿈과 미래의 메시지가 담긴 벚꽃으로 치장을 한 돼지고기 음식을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나누며 고 문광옥씨의 부모님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듯이 보였다. 

밥상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야심찬 시도를 한 프로그램답게, 특집에 이어, 첫 방송에서, 부재한 가족의 빈 자리에 힘겨워하는 나머지 가족들을 위한 치유의 밥상이 마련되었고, 공교롭게도, 그 밥상은, 지금의 시기에 그걸 보는 우리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바로 이런 프로그램들이 모두가 보기 힘든 토요일 아침 8시 40분이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 위로의 메시지를 건넸으면 한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돌아가는, 그래서 어느 틈에 드라마를 보다가, 예능을 보다가 선뜻 자기 마음의 그림자에 섬뜩해지는 시간을 치유해 주는 적극적 시도들말이다. 
by meditator 2014. 4. 26. 20:52

설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가 정규 편성되어 토요일 아침 8시 40분에 첫 방영되었다.


포맷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설 특집 방송 때처럼 방랑 식객 임지호씨와 mc가 함께 '밥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취지 하에 전국 방방 곡곡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치유와 치료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설 특집 방송에서 mc의 자리에 있던 김혜수가 이젠 게스트의 자리로 옮겨 앉아 첫 회를 빛내주었다는 것이다. 대신 mc의 자리는 이영자가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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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고수부지에서 첫 만남을 가진 방랑식객 임지호씨와, 이영자, 김혜수는 방랑 식객 임지호씨의 특성에 맞춰 그곳에서 나고 자란 풀들을 이용하여 첫 만찬을 즐긴다. 
여의도 고수부지에 즐비하게 자란 조팝나무와 소루쟁이, 결코 임지호씨가 아니라면, 그것들이 감히 음식이 될 거라 상상할 수 없는 고수부지의 지천인 식물들이, 방랑 식객의 손을 거쳐 땅의 미역이라 이름 붙여진 소루쟁이 된장국과, 참기름내가 진동하는 조팝나무순 주먹밥으로 재탄생된다. 

먹방 도중, 이영자는 묻는다. 여의도라면 차도 많이 다니고, 먼지도 많은데 이런 걸 먹어도 되냐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지호씨는 현답을 내린다. 이미 그 오염된 환경에서 뿌리내린 식물은 이미 그 오염된 환경을 이겨낸 결과물이라고, 그러니, 사람들이 이 환경 속에서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가는 식물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설 특집 방송을 통해, 자동차가 너무 많이 다니는 곳은 피해야 한다는 말도 하셨다. 1회 방송된 여의도는 보리를 키우는 등 식물들이 충분히 자랄 만한 여건이었다) 늘 사람이 사는 주변 환경의 식물이 바로 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음식이라는 그의 생각처럼, 한강 고수부지의 그 식물들은, 서울 하늘 을 함께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시나 필요한 식물이라는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첫 만찬을 통해 다시 한번 방랑식객 임지호 씨의 생각과, 그의 그런 취지에 발맞춘 프로그램의 성격을 드러내 보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차를 달려 첫 번 째 의뢰인을 찾아나선다. 

가는 길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들을 방아간에 모셔다 드리며 그 짧은 시간의 이별이 서운해 눈물을 비출 만큼, 아주머니들의 사연과 자식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까지 알뜰하게 담아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드디어 의뢰인이 있는 군산에 도착한다. 의뢰인은 김재민, 23살의 대학생, 청년은 자신의 부모님들께 밥 한 끼를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이 인도하는데로 찾아간 곳에서 정작 마주친 것은, 그의 친 부모님이 아니었다. 그가 가슴으로 맞아들이 부모님. 청년의 선배였던, 고 문광옥씨의 부모님이었다.

고 문광옥씨는 해병대에 입대한 후 2010년 11월 11일 연평도에 배치를 받았다가, 11월 23일 연평해전 교전 중에 전사한 해병대원이다. 그리고 김재민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문광옥씨의 뒤를 따라 입대한 친구, 후배 23명 중 한 사람이었다. 

아들을 잃은 대신 23명의 아들을 다시 얻었다고 말하는 문광옥 씨의 아버지지만, 아들이 죽은 후 5개월 동안 밥을 먹지 않은 채 술로 세월을 보내는 바람에 위가 수축되어 지금도 밥을 잘 못먹는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꿈에서 아들을 만났다고 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첫 휴가때 사가지고 온 쌀을 아직도 뜯지도 못한 채 보관한다.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던 돼지 고기를 좋아했던 아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죽은 후 돼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에게 임지호씨는 말한다. 
아들이 사가지고 온 쌀을 놔두지 말고, 그의 기일에 밥을 해서 함께 먹으면서 풀어내라고, 그러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좋아했던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찬을 차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봄의 생기를 머금은 과일과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군산의 벚꽃 봉오리가 요리의 하일라이트다. 
굳이 벚꽃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임지호씨는 열매라는 건 꿈, 그래서 열매를 이용한 요리는 미래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는다고 덧붙이며. 

아들이 생각나 차마 먹지 못하던 돼지고기였지만,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방랑 식객의 정성스런 손맛으로 변주된 돼지고기를 고 문광옥씨의 부모님들은 조심스레 맛을 본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며. 

설 특집 <잘 먹고 잘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에서도 방랑 식객 임지호씨가 차린 상은,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하지만, 차마 아버지가 죽었다고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한 엄마와 두 남매에게 위로의 밥상이 되었다. 그저 밥 한끼가 아니라, 힘들게 버텨 온 일상 속의 선물과 같은 밥상은, 자녀들과 제대로 살아보려 버티느라 힘들었던 엄마에겐 치유를, 그런 엄마의 기대를 부응하고자 버거웠던 아들에겐 여유를 주었다. 그 밥상을 함께 하고 엄마는 힘들게 용기를 내어 아직 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딸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알렸다. 
그리고 이제 첫 방송을 시작한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그 흐름을 이어받아, 가족의 부재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고 문광옥 씨 가족에게 따스한 밥 한끼를 대접한다. 

물론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이영자가 넌즈시 그래도 아드님이 자랑스럽지요 라는 상투적인 질문에 아버지는 자랑스럽다고 말을 못하겠어요 라며 말끝을 흐린다. 살아있다면 몰라도 죽은 자식을 어떻게 자랑하겠느냐고. 하지만, 마음으로 얻은 또 다른 아들들과, 방랑 식객이 차린, 익숙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어쩌면 먹을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주었던 돼지고기 요리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시 시름을 잊고 수저를 든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를 보고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지금 팽목항에 자식을 기다리는 또 다른 부모님들, 그분들도 언젠가 잠시 고 문광옥 씨 부모님처럼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음식을 드실 그 날이 올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에 귀결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그분들도, 저런 시간이 오길 바래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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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투데이)

음식을 통한 치유, 나아가 음식을 통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야무진 시도를 내보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하지만 그 시도가 안타깝게 이 프로그램에 배정된 시간은 모두가 모처럼 늦잠을 자거나, 혹은 좋은 볕을 찾아 바깥으로 나가기 좋은 토요일 아침 8시 40분에 방영된다. 세월호와 함께 정지해버린 텔레비젼 예능 프로그램 들 속에서 조심스레 첫 발을 내보인 이 프로그램의 흔적은 그래서 희미하다. 

예능이 정지된 시간, 그저 언제 다시 시작해 볼까 눈치만 볼게 아니라, 사실 이 시간에 필요한 것은, 그간, 이 정지된 시간들을 채웠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우리가 그간 너무 흥청망청 웃고 떠들지만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저 시간이 지나 조금 무뎌졌다고 다시 예전 처럼 그럴 것이 아니라, 세월호의 부모님만이 아니라, 전국민이 마음의 상처 하나씩을 얻은 이 시간을 치유하는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좋은 프로그램임에도, 시청률이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밀쳐지게 된, 토요일 오전 이른 시간의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의 존재가 아쉽다. 


by meditator 2014. 4. 26. 19:01

노르웨이의 작가 한스 올라브 랄룸의 범죄 스릴러 시리즈의 첫 권의 제목은 [파리인간]이다. 왜 하필 파리일까? 작품 중에서 크리스티안센 경감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파트리시아는 파리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즉, 파리가 쓰레기더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인간들 중에는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사람들을 파리인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의에 걸맞게 책 중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협박하고, 무엇인가를 없애려 하며 범죄의 용의자가 된다. 그리고 그 중 살인범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과거의 사건을 지우려 살인에 살인을 거듭하고 만다.

그런 한스 올라브 랄룸의 파리인간처럼, <갑동이>의 주인공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한 상황과 입장은 다르지만 저마다 20여년 전 일탄에서 벌어진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사건에 사로잡혀 오늘을 살아가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위의 책에서 굳이 저자가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사는 사는 사람들을 하고 많은 생물 들 중에 굳이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의 파리에 비유한 것은, 바로 그 과거가 결국 그 사람의 현재를 사로잡고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는 주제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갑동이>의 주인공들도 파리인간이다. 과거의 기억이 그들의 현재를 파먹어 가고 있으니까. 

과거 갑동이의 사건과 흡사한 사건이 다시 20여 년만에 일탄에서 벌어지는 <갑동이>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캐릭터는, 바로 과장으로 영전했음에도 결국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집착으로 일탄으로 돌아온 성동일이 분한 양철곤이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달리, 그를 지배하는 것은, 과거 자신이 과거 사건의 범인으로 하무염(윤상현 분)의 아버지를 염두에 두었던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그 사건 당시 어린 하무염이 아버지의 결정적 증거였던 윗옷을 태워버렸던 일로 인해, 결정적 증거를 놓치게 되었다는 생각이, 결국 자신이 하무염의 아버지를 범인으로 포착했던 그 생각이 옳았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념이, 현재의 하무염을 또 한 사람의 연쇄 살인범으로 몰고가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사진; 뉴스엔)

그런 의미에선 하무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공소 시효가 지난 날, 살 의미조차 잃어버린 듯하던 그가, 다시 과거와 같은 살인이 일어나자, 양철곤이 말하듯, 짐승같은 본능이 되살아 나는 모습은, 그래서 홀로 사건을 해결하려다, 결국 3회 마지막에, 그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려가는 모습은 그 맹목성에 있어 양철곤과 다르지 않다.

또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면서도, 범인을 찾기 위해 전과자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불사하고, 범행이 예정된 날 가장 범인의 먹이가 될 만한 빨간 색으로 온 몸을 치장한 채 범행 장소에 나타나는, 과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오마리아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범인을 놓친 자, 아버지가 범인으로 몰린 자, 그리고 범인의 유일한 목격자, 그들은, 입장은 다르지만, 20년 전의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놓여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윤색된 기억 속에서 헤맨다. 

흔히 범죄 스릴러 물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쉽사리 피해자와 범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협조하는 것과 달리, <갑동이>는 과거 사건에 매어 있으되, 그 사건이 가져다 준 상흔으로 인해, 결국에 있어서는 범인을 잡겠다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있어서, 극과 극의 처지에서 대립하는 인물들을 묘사한다. 양철곤의 손가락과 하무염의 사지가 걸린 얼토당토 않은 두 사람의 대결은,  두 사람이 매어있는 과거의 기억의 대결이요, 자신들이 믿어 온, 믿고 싶은 신념의 대결이다. 불편할 정도로 맹목적으로 하무염을 옭아매려고 하는 양철곤의 집착을 보며, 그것이 불편하면서도, 기실 그것이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나게 되는, 대화도 통하지 않았던 절벽같은 누군가의 민낯 같아 더 섬뜩해진다. 또한 하무염의 맹목성 역시 다르지 않다. 틀리지 않았지만, 스스로을 옭아매고 마는 그의 행보 역시 낯설지 않다. 

인간의 기억이란 것이, 또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얼마만큼 자기 중심적이며, 그로 인해 또 다른 현실의 고통들이 파생되며, 비합리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 군상을 스케치하는데  드라마 <갑동이>는 골몰한다. 그런 면에서 <갑동이>가 포착한 캐릭터들은 예리하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주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스릴러 <갑동이>의 위상은 그저 단순히 과거의 연쇄 살인범을 잡는 수사 드라마에서,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 함께 할 수 없을 것같은 다른 인간들의 조우에 촛점을 맞추며 인간의 존재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드라마가 되어 갈 듯하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은, 그저 과거의 연쇄 살인범을 잡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서로 조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나지고, 해소해야 하는 인간사의 과제가 더 화두가 되지 않을까도 섣부르게 예측을 해본다. 


by meditator 2014. 4. 26. 01:33

13회 마지막 더 이상의 희생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어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 그런 그를 수행하는 경호실장(안길강 분)이하 경호관들.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런 그들의 모습에 조마조마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런 그들 중 누군가가 김도진과 한 편이 되어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넣는데 조력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13회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은 바로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새로운 경호실장이었다. 그가 통화를 끝내면서 한 한 마디 '오케이'는 해석 여하에 따라 암살 작전의 완료처럼 보였으니까.


SBS '쓰리데이즈'

(사진;텐아시아)


다행히 14회 시작과 더불어, 그의 '오케이'는 대테러특공대와의 암살 시도 척결을 위한 작전 준비 완료의 시그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스개지만, <쓰리데이즈>가 시작한 이래, 매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첫 회부터 14회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의심을 받은 이를 들라면, 바로 새로운 경호실장 역을 수행하고 있는 안길강이란 배우가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저격 음모가 있을 거라는 그 시점부터 사람들은 믿음직스런 풍모를 지닌 장현성이 분한 전직 경호실장 함봉수가 아니라, 그의 옆에서 눈치가 수상한 안길강을 의심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관된 의심을 받으며 14회를 버텨온 그는 오히려, 믿음직스럽던 전직 경호실장이 대통령의 암살범으로 목숨을 잃고 사라진 그 자리를 대신 수행하며, 13회에서 14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홀로 맞선 김도진의 암살 시도를 막아내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런 그에게 흔쾌히 의심해서 미안해요라는 말을 전하면서, 국무회의장에서도 홀로 회의실을 지키던 이동휘에게 경호실장 휘하 경호관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듬직함 이상의 감정이 든다. 

<쓰리데이즈>의 첫 회, 화면을 가득메운 사람들은 멋들어진 검은 정장에, 이어캡을 쓰고, 무표정의 엄중한 눈빛으로 대통령을 수행하던 경호관들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한태경은, 아버지가 병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순간에도, 자신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대통령 경호에 나섰고, 결국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함봉수 비서실장은 그런 한태경에게 호된 질책을 마다하지 않았다. 만약 네가 놓친 것이 폭탄이었으면 어떻게 했냐면서 그러면 우리는 vip를 잃었을 거라고. 그리고 한태경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랬다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시말서까지 쓰면서 기꺼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감수한다. 

드라마 <쓰리데이즈>가 한편에서 재벌과 그들과 결탁한 정관계의 세력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반성하는 대통령 이동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은 그런 이동휘의 곁에 끝까지 남아있는 경호관들의 이야기이다. 한태경은 그런 그들의 대변자요, 상징이다. 

대통령을 저격하려는 함봉수 실장에게 한태경은 울부짖으며 말한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치지 않으셨냐'고. 그리고 그런 함봉수를 쓰러뜨리고 난 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한태경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하는 경호관의 직을 수행할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에돌아, 대통령의 진심을 알게 된 한태경은 결국 '대통령에게 지켜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경호관의 직으로 돌아온다. 

한태경의 약속처럼, 14회 초, 대통령이 저격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태경은 홀로 서있는 대통령을 향해 몸을 던진다. 그의 저격을 자신의 몸으로 막기 위해. 그런 그의 모습이 처음이 아니다. 동료 이차영 경호관을 향해 킬러가 총을 겨누었을 때, 한태경이 한 일 역시 그녀를 몸으로 막은 것이었다. 
부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말고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이 생명 육신이 신의 소용에 의해 쓰여지더라도

오직 한 분의 생명은 지켜주소서

 한태경이 그의 방에서 홀로 읽었던 경호관의 기도처럼.


드라마 중간에 종종 삽입되는 한태경을 비롯한 경호관들의 훈련 장면에서 그들은 보통 인간의 본능에 반하는 훈련을 거듭한다. 즉, 생명에 위협이 느껴졌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위험을 피하는 방향으로 몸을 피하지만, 경호관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위험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던진다. 자신이 지키는 vip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훈련받은 그들은 14회 초반 자신들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대통령을 향해 애닳아 달렸고, 한태경과 함께 대통령을 에워싸 지켰다. 그리고 14회 마지막, 양진리 위령비 앞에서 위기에 빠진, vip를 향해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다. 번번히 그들은 자신의 몸을 방패로 그들의 vip를 지킨다. 이동휘의 말처럼, 그들 역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일진대. 

아마도 그런 그들의 모습이 유독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않은 사람들때문에 희생이 더 커진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치 그런 사실이 있기를 예견이라도 한듯, <쓰리데이즈>의 작가 김은희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자신의 직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호관들을 드라마의 주인공들로 내세웠다. 그녀의 전작 <싸인>의 검시의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실을 밝혀내려 했다면, 이제 <쓰리데이즈>의 주인공 경호관들은 상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vip를 지키고자 한다. 한태경이 마음에 들어온 윤보원 앞에서 경호관들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다녀올게'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정확하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고 덤덤히 말하는 그 직업 정신이,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쓰리데이즈>의 굵직한 주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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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bn스타)

한 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통령, 권위의 상징이자, 절대 권력이었던 그가, 기득권을 가진 그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편에 들었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나가고, 홀로 남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서 그를 지키는 사람들은, 신념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으로 그를 보호하는 경호관들이다. 그림자처럼 존재하던 그들만이, 직업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동휘의 곁에 남아있는 14회에 이른 <쓰리데이즈>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바로 다음날이면 대통령 직을 끝낼 지도 모를 사람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그가 위험에 빠지자 그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세운다. 누군가가 재신 그룹의 초대장 하나에 자신을 파는 순간에도, 직업으로서의 자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 <쓰리데이즈>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주는 또 하나의 위로다. 


by meditator 2014. 4. 25. 01:53

운동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은 어떻습니까? 먹고 사느라 바쁜데 운동이라뇨?,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운동은 무슨! 혹은 꾸준히 운동할 만한 게 없어요. 라던가, 그게 아니면 운동 너무 힘들어요일까요. 그도 아니면 보는 건 즐기지만, 직접 하기에는...... 입니까?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견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갈수록 뚱뚱해지는 대한민국에서, 정작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 10명 중 단 4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한참 뛰고 움직여야 할 젊은 세대로 가면 상태는 더 심각합니다.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사람들 중 60%가 전형 운동이란 것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여성, 노인, 장애인 등 운동 취약 계층에게 운동이란 더더욱 남의 일이 되어버리곤 하지요. 


일본의 속담에 규칙적 운동이 부자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운동은 하루를 짧게, 인생을 길게 만든다는 명언도 있지요. 단련된 신체만이, 삶을 건강하게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빗대어 만든 경구입니다. 하지만 정작 스포츠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제 아무리 부자를 만든다 한들 꾸준히 재미있게 규칙적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올림픽 경기 종목에서도 보여지듯이, 그 옛날 그리스 시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경기에서 시작된 대다수의 남성 중심 스포츠에서는 여성, 노인, 어린이는 소외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런 지금까지의 스포츠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뉴 스포츠'입니다. ebs는  4월 22() ~ 4월 24()  오후 12시 10분, 3회에 걸쳐 대안으로서의 뉴 스포츠의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름도 생소한 뉴 스포츠라는 건 무엇일까요?
다큐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경쟁'과 '훈련'이 목적인 기존 스포츠에 대한 대안으로서 남녀 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첫 회 방영된 타큐에서는, 유방암을 앓았던 주부, 혹은 흡연과 학교 폭력에 찌들었던 아이들, 심지어 마약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뉴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삶의 활로를 찾았다는 사례를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 대구 중학교에서 한 달간 누구가 하기 쉬운 뉴스포츠를 경험하게 한 결과, 한달 만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들의 인지적 능력에 변화가 생겨난 사실을 그 예로 듭니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원반 던지기인 플라잉 디스크같은 것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학생들은 좀 시시하다는 반응이었지만, 정작 한 달간 다양한 뉴스포츠 경기를 꾸준히 진행한 결과, 그 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학생 상호간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협동심에 대한 인식이 발전됩니다. 심지어, 학교 올 이유를 찾지 못하던 학생들이 그저 함께 즐기는 이 뉴스포츠를 맛본 이후로 학교에 재미를 붙였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뉴스포츠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스포츠가 강도높은 훈련과 고도의 기술을 획득해야 도달할 수 있는 차마 다가가기 힘든 분야였다면, 뉴스포츠는 누구나 함께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생활 체육이 광번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일본에서는 노년층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전통 화살을 변형시켜 호흡을 강화시키는 스포츠 후키야나, 컬링을 실내에서도 용이하게 할 수 있게 만든 유니컬 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전해줍니다. 
또한 장애인들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볼링을 변형시킨 롤볼이나, 소리로만 공의 위치를 파악하여 골을 넣는 골볼 등도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온 가족이, 하다못해 겨우 발걸음을 뗀 아들과 아빠가 함께 할 수 있는 열 두개의 컵을 쌓았다 부수는 스포츠 스태킹이나, 지도, 나침반만 가지고 최종 목적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에 이르면 스포츠라기 보다는 함께 하는 게임의 재미가 더 강조됩니다.


뉴스포츠의 영역은 규정될 수 없음을 다큐는 거듭 알려줍니다.
야구를 보다 쉽게 접근하도록 만든 티볼이나, 하키를 변형시킨 플로어 볼, 탁구를 변형시킨 넷볼처럼 기존의 스포츠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변형시키고 결합시킨 종목이 있는가 하면, [해리포터]에서 등장했던 경기를 단지 날 지 못할 뿐 실제화한 퀴디치나, 고대 로마 검투사들의 격투기에서 착안한 저거처럼 뉴스포츠가 가진 상상력의 영역은 무한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길고 지리한 마라톤을 변형시킨 나이트런 시합은 경주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16억 전기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한 기부 운동으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3부작 다큐가 강조하는 것은, 뉴스포츠를 통한 삶의 담론의 변화입니다. 경쟁이 아닌 화합, 승부가 아닌 재미를 통해 삶이 변화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엔터테인먼트와 구경꾼으로서의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온가족이, 능력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과정으로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매개로서의 새로운 스포츠를 제시합니다. 


by meditator 2014. 4. 24. 15:12

공교롭게도 이틀 연속 드라마 속에서 두 분의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했다.


4월22일, <신의 선물-14일> 마지막 회, 자신의 비서실장과 부인이 아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덮기 위해 지난 10년간 기동찬의 형 기동호를 범인으로 몰고, 그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그것도 부족해 이제 어린 샛별이까지 유괴하여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통령 김남준(강신일 분)은 스스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다. 그간 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몰렸던 대통령이었고, 그간 벌어진 모든 사건이 대통령의 결심 하나로 해결되어 버리는 허무한 결론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신의 선물-14일> 속 이 나라의 최고 책임자는 그 진흙탕같은 권력의 비리에 발을 담그지 않은 채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보영이 국가의 의무에 대해 물으며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SBS 신의 선물-14일 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그에 이어, 4월 23일,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 이동휘는 경호관 한태경에게 하야 선언이 담긴 usb를 남긴다. 더 이상 자신때문에 죽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결심에서 비롯된 하야이다. 팔콘의 앞잡이가 되어 협조한 양진리 사건을 시작으로, 그리고 16년이 지나,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또 그 사건으로 인해 김도진의 농간에 휘말려 죽어간 사람들이 이동휘의 뇌리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이제, 김도진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이동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차영 경호관은 납치가 되었고, 윤보원 순경은 부상을 입었다. 이동휘를 지키려는 이유만으로 한태경도, 그리고 다른 경호관들도 위험하다. 그래서 이동휘는 결심한다. 자신이 나서기로.(물론 그의 하야 선언이 진짜 하야로 곧바로 이어질 지는 마지막 회까지 두고 볼일이다. 하지만, 하야라는 선언 속에 담긴 이동휘의 책임 의식은 하야를 하든, 하지 않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똑같이 하야를 선언했다는 공통점 외에, <신의 선물-14일>의 김남준과 <쓰리데이즈>의 이동휘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책임이다. 아니 '하야'라는 외형적 형식이 담보해내는 본질이 책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하야는 책임의 극단적 상징이다. 
물론, 그 책임의 성격은 다르다. <신의 선물-14일>의 김남준의 경우, 자신의 아들이 살인범이요, 자신의 비서실장과 부인이 그 살해 사건을 덮기 위해 국가 권력을 이용한 측근 비리에 연루된 사례다. 
그에 반해, <쓰리데이즈>의 담론은 거창하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다국적 기업의 컨설턴트로 일하는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조장하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선량한 시민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통령의 결자해지이다. 그리고 그 결자해지의 과정은 결국 더 많은 돈을 위해 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자본과 그에 결탁한 정관계 세력과의 전쟁이 된다. 

그것이 왜곡된 국가 권력의 행사였든지, 혹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국민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 과거사였던지, 드라마 속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물론, 따지고 보면 <신의 선물-14일>의 김남준이 하야까지 할 일일까 되묻게 될 수도 있다. 왜? 그가 한 일은 아니니까, 그는 지난 10년간의 일을 몰랐으니까. 하지만, 김남준은 책임지겠다고 한다. 
<쓰리데이즈>에서 죽은 신규진 비서실장은 이동휘 대통령을 설득한다. 지금에 와서 16년전 일을 밝힌다고 누가 알아줄 거 같냐고, 그런다고 경제가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끄집어 내서 밝히려고 하냐고. 하지만 이동휘는 반문한다.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옳은 일이잖아요? 라고.

그리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울컥한다. 왜?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유치원을 다니기도 이전에 배웠던 사람들이, 그저 한 나라의 대표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그 말 한 마디에 감동을 받는다. 

<신의 선물-14일> 속 대통령이나, <쓰리데이즈>의 대통령은 청와대에 살지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그들도 대통령이라는 직을 수행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 그래서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들이 잘못을 하면 책임을 지는 보통 시민의 한 사람으로 드라마에서 표현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지도자들은 다르다. 늘 대부분의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았다. 잠시 책임 지는 척 눈가리고 아웅하고서는 몇 수십년이 지나도 국가가 부과한 벌금조차 내지 않으려 갖은 애를 쓴다. 혹은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표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못들은 다 아래 사람탓이라고 한다. 아랫 사람 몇 사람 쳐내면, 다 해결된 듯, 여전히 청와대 안의 그 분은 국민 위에 군림해 왔다. 사과 한번 받아보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멀리 청와대까지 갈 것도 없다. 크고 작은 집단을 가릴 것없이, 우리가 만나는 지도자들은 늘 그래왔었고,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은 지도자에 대한 결핍을 차곡차곡 쌓아왔고, 그런 현실 속 결핍을 해소해 주는 드라마 속 지도자들에게 울컥 마음이 울린다. 최근 빈번하게 지도자에 담론을 그려내는 tv는 결국 고이 접어둔 환타지이자, 억눌린 소망의 참을 수 없는 발설이다.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참담한 시간들 속에서, <신의 선물-14일>든 <쓰리데이즈> 든 사적이든, 공적이든, 현재의 사건이든, 과거사든 책임을 다하는 그 누군가를 드라마에서라도 본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by meditator 2014. 4. 24. 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