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다.

아마도 16부까지 숨가쁘게 달려 온 <신의 선물>에 대한 한 마디 소감을 말하자면 이 단어가 가장 적절할 듯 싶다.

16부 마지막 강력하게 주사된 알콜 성분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동찬은 샛별이를 안고 강물로 들어간다. 자신의 어머니로 위장된 전화 목소리에 속아, 10년전 자신을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쓴 형처럼 어머니의 죄를 대신하여 샛별이를 강물로 던지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타임워프 하긴 전의 기억이 돌아온다. 자신이 보았던 환상, 즉 누군가를 안고 물 속으로 들어가던 그 환상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결국 자기가 샛별이를 강물에 유기한 당사자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동찬의 옷깃을 잡는 손, 다행히 샛별이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샛별이가 죽지 않았다는 기쁨도 잠시, 동찬은 깨닫는다. 자신이 타임워프하여 돌아와 달려온 그 시간 동안, 결코 운명은 바뀌지 않았음을, 죽어야 할 사람은 늘 죽어갔음을. 그리하여, 결국 샛별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대신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운명을.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수현의 그 두 사람이 바로 자신과 샛별이였음을 동찬은 깨닫는다. 그리고 풍덩!

(사진; 뉴스엔)

1회, 수현이 우연히 마주친 카페 여인의 예언에서 부터 시작된 드라마의 수많은, 이른바 떡밥들은 16부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순차적으로 정교하게 회수되었다. 결국 기동찬이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샛별이 대신 죽음을 택하기 까지(물론 드라마 상에서 기동찬의 죽음을 분명하게 명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후의 맥락으로 보아, 과거에 살인에 휘말리게 된 기동찬이 결국 타임워프를 통하여 죽음으로 속죄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작가가 풀어놓은 모든 사건들은 명확하게 회수되었다. 그런데, 박수를 치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기동찬의 희생 자체가 석연치 않다. 
결국 16부에 이르러 밝혀진 과거 기동찬에 의한 샛별이의 죽음은 이명한과 영부인의 올가미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기동찬 역시 해리성 기억 상실에 의한 우발적 행위였건 희생자인 것이다. 그런 그가 타임 워프하여 한 일은 줄곧 몸이 부서져라 자신의 형과 샛별이를 위해 뛰어다닌 일 밖에 없다. 그런 그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결국 그는 또 한번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의 죽음을 단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로 단정짓기엔 억울하다. 오히려, 진정 운명과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면, 기동찬이 자신의 형의 무죄 증거로 손에 넣었던 귀걸이와 반지를 수현에게 넘겨 준 순간, 기동찬은 용서받았어야 진정한 '신의 선물'이 아닐까. 결국은 단호하게 마무리된 기동찬의 속죄에는 감동도, 여운도 없이, 그저 운명에 이용만 당했다는 느낌에, 단호하다 못해 잔인한 작가의 떡밥 회수만이 느껴진다면, 지나치게 드라마를 감상적으로 바라본 시점이 되는 것일까. 

기동찬의 희생은 수미쌍관의 일관된 작가 정신이나 결국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에 압도된 작가 세계라 치자, 하지만 그런 결론을 차치하고서라도, 16부의 전개는 그간 장르물로서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해온 시청자들의 허무함을 달래주지 못한다. 

아이를 버린 미혼모를 잔인하게 죽인 연쇄 살인범 차봉섭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유괴범 장문수를 거쳐, 기동찬의 어머니, 헤파이토스를 넘어선 사건은 결국 샛별이 유괴 사건의 실체로서 대통령 비서실장 이명한(주진모 분)과 영부인(예수정 분)을 밝혀냈다. 
하지만 밝혀내기만 할뿐 대통령의 아들의 자백과도 같은 병실 장면에서 그 흔한 장르물의 클리셰인 녹음 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울분만 터트리던 기동찬과 김수현의 해결 방식은 전직 형사요, 공개 수배라는 프로그램의 작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기동찬은 그 자신이 살인범이라 자백을 하는 것이고, 김수현은 대통령을 찾아가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을 알아챈 양심적 대통령은 일사천리로 사건을 해결한다. 1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짖눌려 자살을 하고, 죽어가는 가고, 이제 어린 아이까지 죽음의 위기에 몰렸던 그 사건이 대통령의 단호한 결심으로 해결된다. 그럴 꺼였으면 그 고생고생하지 말고, 진작에 대통령에게 모든 걸 말하지 그랬냐는 불평이 나올만큼. 

자기 아들이 살인범이라는 걸 알고 그걸 덮기 위해 자신의 비서실장과 부인이 공모하여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안 후 하야를 결심한 양심적 대통령은 수목 드라마<쓰리데이즈>의 대통령과 비슷하다. 하지만, 어쩐지 <쓰리데이즈>의 이동휘의 신념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큰 주제로 부각된다면, 마지막 회에서야 등장하는 김남준(강신일 분)의 강직함은 뜬금없다. 
그도 그럴 것이, 16회 마지막에 그가 김수현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내내 용의자였다. 드라마는 장르물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각 캐릭터를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살려왔겠지만, 그런 결과로 마지막 회 대통령의 반성은 반전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해프닝처럼만 여겨졌다. 더구나, 16부 내내 김수현과 기동찬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달려온 노력이 무색하게 대통령의 한 마디로 해결되는 사건은 허무하기 까지 하다. 사유화된 권력이 그 보다 더 큰 권력의 한 마디로 해소되는 과정은 운명론만큼이나 조악하다. 

‘신의선물’ 김유빈 유괴사건, 배후에 대통령 부인있었다 ‘충격’

허긴 되돌아 보면 16부에 이르른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별개로, 등장했던 인물들에게 그다지 친절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범인으로 등장했던 차봉섭이나, 장문수, 그리고 헤파이토스의 배경 설명은 친절했지만, 기동찬을 제외한 김수현, 그녀의 남편 한지훈(김태우 분), 딸 샛별이(김유빈 분) 모두에게 가혹한 드라마였다. 딸을 살리기 위해 직접 뛰어 다니는 엄마가 되기 위해 김수현은 정작 엄마로써 딸을 돌보지 않는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고, 한지훈은 으뭉스런 캐릭터를 위해, 토마토를 맞는 것도 불사하며 수호했던 인권 변호사라는 직업을 땅에 팽개치고, 불륜에, 일신의 영달을 위해 딸의 유괴 사건 앞에서도 딜을 하는 비열한 인간이 되었다. 어린 딸 샛별은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스타의 뒤를 쫒아 다니다, 저러니 유괴가 되지라는 비호감의 대상이 되었다. 16부의 허무한 결론에 이르렀을 때, 굳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만들 이유가 무엇이었나 반문하게 된다. 그런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캐릭터가 이중적인, 혹은 유혹에 약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천착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16라는 극의 전개를 위해 희생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16부에 이르러 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부라는 긴 호흡의 장르물로써 <신의 선물-14일>을 단호하게 실패라 몰아붙일 수는 없다. 운명론에 빠진 결론과, 그것에 이르른 조급한 결말, 그리고 사건의 늪에 빠져버린 캐릭터들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16부의 내내 다음 회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이야기의 맛은 반감되지 않는다. 마치 까도 까도 또 깔게 남은 양파의 속살처럼, (물론 그래서 다 까고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 또한 양파와 같지만) 흥미진진하게 이어진 사건의 사슬들은 분명 묻혀서는 안될 <신의 선물-14일>의 장점이었다. 마지막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장르물의 실험 자체가 묻혀서는 안될 일이다. 부디 좀 더 충분한 준비와, 캐릭터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 다음에 좀 더 충실한 장르물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4. 23. 02:21

4월 21일 하루 종일 검색어에 오른 19살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섰고, 대통령 후보로도 나섰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아들이, 제발 자기 딸을 좀 찾아달라고 국무총리에게 애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개하다'는 표현을 내뱉었다. 

저 표현은 보통, 우리와는 다른 종족의 사람들에게 쓰던 표현이다. 그런데 그 표현을 같은 나라, 더구나 온 국민이 함께 가슴아파 하고 있는 그 사건의 부모들에게 거침없이 내뱉은 그 소년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에 앞서 어이없음이다. 그리고, 우리를 미개하다고 바라보는 그 소년이, 그들이 사는 다른 세상이다. 그저 한 소년의 감정적 한 마디였지만, 그건 다수의 국민들의 마음에 또 한번의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현실같은 드라마 속 대통령의 아들은 마음의 상처로 끝나지 않았다.  이수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고 결국 샛별이와 기동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려고 한다. 

(사진; osen)

지금까지 <신의 선물-14일>의 이야기 구조가 그래왔듯, 절대 악처럼 보였던 경수(최민철 분)는 그저 비서실장 이명한(주진모 분)의 하수인이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최종 보스는 권력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장난감처럼 데리고 놀다 죽인 살임범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감옥에서 살아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경수는 스스로 이명한의 하수인이 되는 조건으로 아들의 살인범에 대한 사형 확답을 얻어낸다. 그리고 그 살인범을 사형에 이르게 만들기 위해, 이명한이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음모에 가담한다. 그래서 그의 적극적 가담 아래, 연쇄 살인범 차봉섭은 빼돌려 졌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고, 그는 이제 자기 아들의 살임범을 사형시키기 위해 남의 딸을 유괴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15회를 통해 이명한 등이 찾고자 했던 연쇄 살인범의 증거물과 샛별이 사이의 줄다리기는 결국 증거물도 잃고, 샛별이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어버린다. 증거물을 가지고 가면, 샛별이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김수현이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 그때도,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온 지금도 샛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증거물이 사라져도, 과거 사건의 숨겨진 범인, 즉 대통령의 아들이 찍힌 사진을 샛별이가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미에 밝힌다. 

대통령의 아들이 자신을 절름발이라며 밀쳤던 수정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단순 살인 사건은(물론 수정이의 몸에 남은 아홉 번의 칼자국때문에, 결정적 살해 과정에 대해 이론의 여지는 있다) 그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덮기 위해 자신의 동생이 한 일인 줄 알고 자수했던 기동호를 사형수로 만들고, 지금에 이르러 그 사실이 밝혀지면, 그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결국 그 사실을 덮은 대통령에 위해가 되기에, 대통령의 파트너라 자임하는 이명한은 연쇄 살인범이었던 차봉섭을 비롯하여, 그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모든 사람들을 없애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그런 행위는,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을 협박했던, 그래서 정권에 위기를 조성한 합참의장을 없애버린 신규진 비서실장의 행위와 궤를 같이한다. 그 당시 신규진 비서실장도 자신이 대통령의 파트너이자, 이 정권을 자신이 만들었다 자부한다. 바로, <쓰리데이즈>의 신규진과, <신의 선물-14일>의 이명한이 가진, 권력의 사유화가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음을 15회에 이르른 <신의 선물-14일>은 밝힌다. 

현실을 더 닮은 드라마<신의 선물-14일>에는 나는 당신을 위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대통령이 없다. 또한 결국은 국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피 흘리며 진실을 밝히는 비서실장도 없다. 대신, 내가 누군데 감히 니가 나를 건드려 하며  이기죽거리는 파렴치한 대통령의 아들과, 오히려 재벌조차도 그의 피붙이를 이용해 협박하고, 어린 아이를 없애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권력의 개, 비서실장이 있을 뿐이다. <신의 선물-14일>이 건드리고 있는 것은 권력의 부도덕, 내적 모순이자, 자기 궤멸이다. 

(사진; tv리포트)
자신의 삐뚫어진 자의식으로 인해  충동적을 누군가의 목을 조이는 대통령의 아들, 그를 보호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애꿏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권력, 그리고 자신의 사적 복수를 위해 기꺼이 그런 권력의 하수인이 된 사람, 그런 사람들을 <신의 선물-14일>은 이기적 사랑과 집착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전된 극의 전개로 보건대, 그런 위악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사랑으로 귀결될 듯이 보인다. 

15회 초반, 사형을 당할지도 모를 자신의 형을 지켜야 한다는 기동호와, 샛별이를 살려야 한다는 수현은 증거물을 가지고 대립한다. 하지만, 결국 기동호는 샛별이와 한 약속을 기억해 내고는 수현의 손에 증거물을 쥐어준다. 그 바로 전에, 샛별이는 흙더미에 묻히는 기동찬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유괴범의 손을 끌어 당긴다. 그리고 형을 찾아간 기동찬에게 형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나는 괜찮다고, 니가 사람을 죽인게 아니라면 자신은 죽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바로 그런 사랑만이, 저 이기적 권력에 대응할 무기라고 드라마는 15회를 통해 슬며시 비춘다.  기동찬이 혼잣말한 누군가 한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언이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by meditator 2014. 4. 22. 01:55

신입생이 된 작은 녀석의 대학 입학식에 갔었다. 

연단에 서신 총장님도, 그리고 학교 설명을 위해 올라오신 교수님도, 모두 빠짐없이 말씀하시는 건 바로 우리 대학이 얼마나 취업률이 좋은가 하는 거였다. 그런 광경을 보니, 첫 아이 때 입학식도 떠오른다. 아마도 그때도 이런 비슷한 언급이 있었던 거 같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건, 역시나 취업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취업률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그리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대학은 더더욱 자기 학교의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고심한다. 심지어, 재단이 기업에 넘어간 대학들은, 아니 기업이 재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 계열의 과들을 통합하거나, 없애버리는 등의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잘려나가거나, 사라져간 대표적 학과들은 다름아닌 인문학과 관련된 과들이다. 심지어, 국문화가 필요없다는 대학도 나오려고 한다. 

이런 우리의 현실과 정반대로 가는 대학이 있다.  대학의 목적은 취업이 아니라 소리높여 외치는 대학이다. 어라, 그런데, 이 대학 4 년 째 취업률 100%란다. 전 일본 신입 사원 선호도 1위란다. 바로 일본 아키타 현에 자리잡은 일본 아키타 국제 학교(AIU)다. 4월 17일 밤 EBS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대학을 기적의 대학이라며 소개한다. 

(사진; 세계 일보)

2004년 거듭되는 경제 불황에 학생 수가 줄어 폐교하는 대학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개교한 공립대학 아키타 국제학교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나카지마 미네오 초대 총장의 신념이 관철되어 있다. 일찌기 대학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나카지마 총장은 이름값이 아니라, 얼나마 학습했는가에 따라 10년 후 대학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아키타 국제학교를 통해 실현했다. 

당장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조급증에 떠는 우리 대학과 달리,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3시간을 달려 가야 하는 지역 아키타 현에 자리잡은 일본 아키타 국제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오로지 국제 교양학이다.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라도 불은 켜져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24시간 밤을 밝히는 도서관, 아키타 현의 특산인 삼나무로 지어진 그곳을 7만여권의 인문서가 채우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 인문서 들 중 시집, 고전, 비평서 등을 다양하게 읽고 그 중 한 권의 감상문을 졸업 전에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서관, 자정이 넘어서도 학생들의 발길은 이어진다. 

독서 만이 아니다. 미술, 음악, 서예, 꽃꽂이, 다도, 심지어 아키타 현 전통 의식 등 다양한 예술 수업 중 하나를 선택하여 배우는 것도 수업 중 하나다. 이들 수업의 평가 방식도 다르다.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가의 실력보다도, 얼마나 성실하게 수업에 임했으며, 그것을 즐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이렇게 다른 평가 방식을 통해 예술에 접근하는 학생들은, 함께 악기를 맞춰보며 그 과정에서 협동심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해 간다. 

또한 이 학교 학생이라면 무조건 1년간 머물러야 하는 기숙사는 다국적의 학생들이 함께 지내도록 되어 있어, 자연스레 학생들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나와 다름에 대한 이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다름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을 찾아 성숙해져 간다. 또한 똑같이 1년간의 수업료 700만원 정도를 내고 누구야 한번씩은 다녀와야 하는 해외 유학 과정은 그런 공감대의 확장, 확산의 과정이기도 하다. 

도달해야 할 평균 점수를 얻지 못하면 상위 교양 과정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키타 국제 학교의 수업은 엄격하다. 4학년의 철학 수업은 한 철학자의 사상을 두고 교수와 영어로 토론이 가능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야 할 정도로. 
하지만 20;1의 치열한 경쟁률이 증명하듯, 도쿄대와 아키타 국제 학교를 놓고 고민을 하는 게 현실이 되듯, 현재 일본에서 이 학교는 고등학생들이 선망하는 대상의 학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취업률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100% 취업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취업을 위한 예비학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NO!라고 답하는 아키타 국제 학교의 관계자는 그저 4년간 열심히 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취업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상담 학생과 상담 시간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교수와 학생의 유대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이 학교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학생들 스스로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 편견과 선입견을 떨쳐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도록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 교육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주체적으로 지식, 기술, 사고를 배우고 익히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실제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교수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이 도달한 결론이 바로 대학의 주인공이 학교라는 인식이었다고 밝힌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자신이 뚜렷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대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과라는 한계에 갇혀 대학 생활을,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아키타 대학이 추구하는 교양은 바로, 그런 한계를 지양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대학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요,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취업일 뿐이다. 

(사진; TV리포트)

다큐의 마지막은 아키타 국제 학교 학생들의 인터뷰로 이어진다. 학생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한일 교류를 해보고 싶다. 아키타 현의 전통을 널리 알리고 싶다.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4년의 대학 생활을 통해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건 어느 기업에 가고 싶다는 우리네 대학생들의 희망과는 달라보였다.  

우리 대학에서 지양하려고 하는 보편적 교양, 함께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 찾아가며 배우는 환경만으로 일본 최고의 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는 아키타 대학, 현실의 우물에 갖힌 채 대학을 취업의 방편으로, 학생을 스펙의 노예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우리 대학에 대한 가장 엄격한 질타이다. 


by meditator 2014. 4. 18. 00:55

olive tv를 통해 새로 발진한 예능의 제목 셰어 하우스(share house)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도입되고 있는 새로운 삶의 양식 셰어 하우스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렇다면 셰어하우스란 무엇일까?
이미 서구나 일본에서 익숙한 싱글들의 독신들의 삶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셰어 하우스는 가족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거실, 주방, 식당, 등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주거를 말한다. 1~2인 가구가 많은 서구나 일본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주거 양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그런 따로 또 같이 사는 셰어 하우스를 olive tv의 예능 <셰어하우스>는 그 삶의 형태 그대로, 이상민을 비롯하여, 손호영, 최희, 우희, 김재웅, 천이슬, 황영롱, 송해나, 최성준 등, 예능인, 가수, 모델, 배우, 그리고 구두 디자이너 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한 집에 모여 살게 된다. 

공교롭게도 마찬가지로 공동 주택 프로젝트인 <룸메이트>가 4월 20일 sbs를 통해 시작되는 가운데, '나의 두번 째 가족을 만난다'라는 부제를 걸고 시작하는 프로그램답게, 외로운 독거 생활을 청산하고 함께 사는 삶의 온기에 집중한다. 

1회, 각자 다른 분야와 다른 연령대, 그리고 다른 성격의 출연자들이 함께 한 자리는 서로의 낯설음을 쉽게 좁히기 위한 장기 자랑에서 부터 시작하여, 함께 간식을 만들어 먹고, 밥을 만들어 먹고, 함께 살아가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공동주거 프로젝트 [셰어하우스] 4월 16일 (수) 밤 9시 첫방송

무엇보다 첫 회의 백미는, 가장 음식을 못만들 거 같은 멤버, 우희와 최성준, 천이슬표의 닭볶음탕과, 해파리 냉채 등을 먹으며 느낀 출연진들의 소회였다. 이상민을 비롯하여, 대부분 홀로 살아가는 이들은, 그저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음식에 새삼 감동한다. 그 과정에서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음식을 시켜도 2,3인분을 시켜서 먹는다는 이상민의 고백에 공감하는 모습에서, 이 시대 홀로 사는 사람들의 고충이 드러났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간밤에 술을 마신 출연자들을 위해 이상민이 끓인 북어 해장국을 함께 먹으며 느끼는 아침 식사에서도  전날의 그 함께 먹는 집밥의 온기는 이어진다. 평소에는 먹지 않던 아침밥이지만, 누군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준 그 정성에 감동하고,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해줄 수 있는 기쁨에, 먹는 사람도, 음식을 하는 사람도 모두 감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프로그램은 강조한다.  

실제 대부분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셰어 하우스에 사는 장점은 우선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주거 형태를 누릴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홀로 밥 먹고 생활하는 외로움을 지양할 수 있는, '함께 하는 삶'에 있다. 그래서, 셰어 하우스가 그저 전세나 월세같은 또 다른 주거 형태를 넘어, 우리 시대 새로운 대안적 삶의 형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함께 하는 삶의 온기를 <셰어 하우스>는 첫 회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물론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 있는 것처럼,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셰어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꼽는 공통적인 단점이 '서로 민폐를 끼치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예능 <셰어 하우스>는 바로 그런 단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는 규칙을 정한다. 함께 살아가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시된 것은 당연히 서로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과 달리 깔끔함을 내보인 이상민의 변기 사용법에서 부터 시작된 이야기들을 통해, 손호영이 그럼 우리도 변기를 앉아서 사용해야 하냐는 반문에서 처럼, 생각보다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위해 서로가 조심해야 지점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이 사실적으로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난다. 

첫 날 저녁 식사 후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들 중, 이상민은 말한다. 누구나 아픔이 있다고, 나도 한 팔이 아프지만, 그런 나도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보며 위로를 삼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런 대상으로 자기가 이 프로그램을 함께 하게 되었다고. 그런 이상민의 출연의 변은, 대부분 젊은 출연자들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인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최근 아픔을 겪은 손호영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osen)

실제 방송분에서도 드러나지만, <셰어 하우스>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손호영은 이미 또 한 차례의 구설수를 겪게 된다. 자의가 아닌 사건에 휘말린 시간이 10개월이나 지났음에도 그의 출연 사실만으로 색안경을 낀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이상민의 출연의 변과, 손호영의 출연은, 이미 그 자체로 노이즈 마케팅의 요소를 가지고도 있지만, 그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함께 하는 삶을 통한 치유라는 이 프로그램의 야심찬 목적을 내보인 지점이기도 하다. 첫 회, 이상민이 이끌어 간 함께 하는 공간과 삶을 통한, 서로가 아픔을 나눠보고자 하는 지향은, 그런 <셰어 하우스>의 의도를 십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제 막 우리 사회에서 대안적 삶의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한 셰어 하우스처럼, 예능 <셰어 하우스> 역시 아직 가능태로서 존재한다. 함께 나누는 집밥의 온기를 강조하고, 출연자 사이의 대화에 선뜻 끼어들지 못한 천이슬과 산책하며 그녀의 속사정을 드러내 보이고, 자신의 아픔을 강조하며 손호영의 아픔을 감싸 안으려는 이상민의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계속 프로그램의 색깔로써 유지될지, 그게 아니라, 결국은 케이블의 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처럼,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연예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들의 홍보의 장이 될 지는 결국 제작진들과 출연자들의 진정성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이제 막 붐을 이루기 시작한 셰어 하우스가 투자의 가치로써의 집이 아닌 삶을 함께 하는 대안적 삶의 형태로 자리잡길 바라는 것처럼, 부디 또 하나의 따뜻한 예능의 상징으로 <셰어 하우스>가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4. 17. 00:58

14부 마지막 불곰파에게 연쇄 살인범 차봉섭(강성진 분)이 남긴 증거들을 빼앗은 기동찬(조승우 분)는 이제야 비로소 사형의 위기에 놓인 형을 구할 수 있는 증거가 생겼다는 사실에 눈물겨워 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의 앞에 수현(이보영 분)이 달려온다. 증거를 달라고, 그 증거가 있어야 자신의 아이 샛별이를 살릴 수 있다고. 죽을 위기에서 2주 전의 시간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은 가혹하다. 기동찬의 형 기동호와, 수현의 딸 샛별 중 한 사람만을 선택해야 한다. 


부부임에도 각자 자신의 일에만 돌아치느라 따귀는 때렸어도, 대화다운 대화를 해보지 못한 수현과 그의 남편 한지훈은 결국 수현이 기동찬의 어머니(정혜선 분)의 어머니에게서 샛별이를 납치한 사람이 자신이며, 결국 샛별이가 아픈 바람에 아버지 한지훈에게 딸을 넘겼다는 진실을 알아내고서야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아니, 일방적인 수현의 추궁에, 한지훈의 자백이 이어진다. 

'신의 선물'의 주진모가 김유빈 유괴사건의 배후자로 밝혀졌다. ⓒ SBS 방송화면

그리고 그 대화의 결과는 샛별이의 납치 사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발화점은 결국 아버지 한지훈 변호사라는 것이 밝혀진다. 
처음 검사로 발령받은 무진에서 일어난 부녀자 연쇄 살인을 조사하던 중 사건에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한 한지훈은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인 당시의 상관이던 이명한(주진몬 분)에게 보고하였지만 거부당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차봉섭의 집에서 발견된 반지와 귀걸이를 보고 차봉섭을 협박한다. 수현이 다시 살아돌아오기 전의 시간에서, 결국 한지훈은 샛별이가 유괴가 되는 상황에서도 반지와 귀걸이를 넘기지 않아, 샛별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결과를 만든 주범이 되고 만다. 마치 대화를 하지 않는 부부는 위험하다 가 <신의 선물-14일>의 또 다른 주제라도 되는 것처럼, 한지훈과 김수현의 불통은 결국 딸의 유괴 사건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결국 기동호냐, 샛별이냐라는 양자 택일의 기로에 놓이게 만들고야 말았다. (물론, 다음 주에, 기발한 수현의 아이디어로, 혹은 기동찬의 아이디어로 둘 다 살려낼 기지를 발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현과 기동찬의 활약으로 보건대, 그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다)

과연 한기훈이 했던 협박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검사를 그만두고 인권 변호사가 되어 유족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맞아가면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사형 반대라는 신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딸 샛별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그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첫 사건 기동호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했던 것일까?  상관의 거부로 덮어버렸던 불의에 대한 자기 반성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샛별이조차 죽음에 이르게 만들면서, 대통령의 최측근을 협박하여 얻어낼 입신양명이었을까? 
그 결과가 무엇이든, 14부에 까진 이른 과정에서, 그리고 남은 2회의 어떤 해명을 한다해도, 한지훈이란 인물은 아내 모르게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그것이 어떤 의도였던 자신의 이해 관계를 추구하다 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가장 파렴치한 인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만약에 그가 기동호의 구명을 위해 그리한 것이라면 결국 기동찬과 목적이 다르지 않았음에도, 극 중 두 사람은 한번도 협조하지 못한 채 각자의 목적에만 골몰한 것이 되어버리니, 그 또한 아쉽다 못해 어이없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신념인지, 야합인지 모를 이유로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몰고간 한지훈말고도 또 파렴치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직은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헤피아토스(최민철 분)란 이름으로 등장한 범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드라마의 처음 사형 제도를 둘러싸고 대통령과 토론을 벌이고 나오던 한기훈에게 토마토를 던졌던 여자의 남편이자, 자신의 아들을 유괴로 잃은 아버지 헤파이토스는 정작 자신의 신념 사형제도를 부활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편에 서서 샛별이를 유괴하는 범죄자가 되었다. 물론 그에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진 사건의 가담 여부 역시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의 여죄를 차치하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범죄자가 되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다. 자신의 신념인지, 야망인지를 위해 딸을 희생하고만 남자, 그리고 죽은 아들의 회한을 풀기 위해 남의 딸을 유괴하는 남자, 그들의 활약(?)으로 인해, 샛별이의 유괴 사건은 보다 복잡해지고, 악랄해졌다.  

하지만 14회에 이르기까지 밝혀진 한지훈의 이해할 수 없는 집요함, 그리고 그에 필적할만한 헤파이토스의 맹목성은 사실 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과, 그의 측근 이명한, 그리고 아직 그의 속내가 밝혀지지 않은 차회장, 그리고 그 아들들이 벌인 사건의 진실은 마지막 회에 가서야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체 여부에 따라, 그리고 샛별이의 생사 여부에 따라 두 아버지가 치뤄야 할 대가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 아버지들의 음험한 의도는, 대통령의 딸에게 가해를 한 듯 했지만 그 무기가 결국 바나나에 불과했던 수현의 해프닝이나, 자신의 아들 기동호를 살리고자 샛별이를 유괴했지만, 결국 아픈 샛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주는 동찬 모의 갸륵함과 더더욱 대비가 된다. 

(사진;osen)

굽이굽이 돌아 14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범인의 윤곽과, 가장 모호했던 인물의 속내를 밝힌 <신의 선물-14일>은 하지만 여전히 그 전모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는 해녀 정도는 되야 따라갈만한 긴 호흡의 드라마이다. 

13회에도, 14회에도 굳이 주먹들이 우르르 달려드는데, 기동찬이나, 현우진(정겨운 분)을 보고 있노라면, 제 아무리 벚꽃아래 현우진이 각목 세례로 쓰러지는 씬이 멋있다 한들, 씁슬한 웃음이 나오게 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차문을 잠궈놓지도 않아서, 기껏 애써서 정신병원에서 빼낸 증인을 빼앗기는 건 그렇다 치자다.  대통령 주변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쓰리데이즈>의 설정은 <신의 선물-14일>에서는 무색하게, 수현은 버젓이 대통령 앞에서 핸드폰으로 기동찬과 통화를 한다. 그에 앞서 샛별이의 엄마란 말만으로 만찬장에 무사통과는 애교일 정도로. 그렇게 매회 <신의 선물-14일>의 세부적인 설정들은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14회에 와서야 밝혀진 남편의 속내와,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잃어버린 딸, 그리고 결국 두 주인공이 마주 서서 형이냐, 딸이냐를 갈등하는 마지막 장면은 극적이지만, 그  이전의 설정들이 개연성있는 흐름이 아니라, 그 극적인 장면을 위한 그저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게 드라마의 매듭은 꼬이고 또 꼬여왔다. 드라마는 인물의 속내를 들여다 보는 대신, 장르물의 복선과, 반전에 몰입하느라 기동찬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단선적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가장 애끓는 수현조차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물-14일>이 애초에 던진 결국 차봉섭의 것으로 밝혀진 반지와 귀걸이라던가, 샛별이의 피묻은 운동화와 가방처럼 다수의 실마리들이, 고가도로 밑 두 주인공의 대화만으로 풀어내던 어떻든, 결국에는 풀리고야 마는 그 쾌감은 장르물이 아니고서는 맞볼 수 없는 중독성이다. 필요에 따라 주인공 캐릭터 정도는 마구 널뛰듯하던 근자의 드라마들에게서 볼 수 없는, 여전히 이 드라마를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물론 거기에는 마지막 회에 가서야 해결 될 것같은 마지막 퍼즐에 대한 갈증도 남겨져 있다. 


by meditator 2014. 4. 16. 02:30

2년 여의 기다림 끝에 역시나 단 3부작으로 단촐하게 끝낸 영드<셜록> 시즌3에서 가장 무시무시했던 장면은 첫 회 셜록과 그의 조력자 왓슨이 엄청난 폭탄이 설치된 지하철에 갇혔을 때도, 왓슨이 불더미에 휩싸여 목숨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도 아니었다. 정작 <셜록> 시즌3의 백미는 마지막 회, 모든 사건이 끝난 후, 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등장한 모리아티의 재등장이었다. 그런데, 셜록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았던 모리아티가 다시 살아올 수 있을까? 시즌2 마지막에 왓슨이 보는 앞에서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던 셜록의 모습이 결국 적들을 속이기 위한 셜록의 한 수였다는 걸 보여준 마당에, <셜록>의 시청자들은 모리아티의 환생(?)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되었다. 절대악의 귀환, 결국 시즌3는 시즌4에 대한 기대감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리고, 막강 탐정, 셜록을 늘 모험에 빠뜨리는 절대 악 모리아티의 귀환만으로,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가 마구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처럼,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도, 모리아티 못지 않은 절대악들의 활약이 빈번하다.

(사진; OSEN)

셜록의 주인공 셜록이 자신을 소시오패스라 규정하여, 그 용어가 사람들 관심을 끌기 시작했는데, 또 한 사람의 소시오패스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바로 <별에서 온 그대>에서 신성록이 분한 이재경이 바로 그 또 한 사람의 소시오패스다. 카카오 톡의 으르렁거리는 모습의 개를 닮았다 하여, '카톡개'란 별명으로 친근해진 이재경이지만, 드라마 속 그는 정말 화가 난 개처럼, 늘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에 으르렁 거리며 물어뜯어 버리고자 한다. 

그런데, 이재경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제 종반부를 향해 가는 <쓰리데이즈>에서 또 한 사람의 절대악이 등장한다. 바로 재신 그룹의 사장 김도진이다. 자신의 가는 길을 막는 그 누구라도 설사 그게 대통령이라도, 그가 장난감 머리를 메스로 베어버리듯이 가볍게, '죽여' 해버리고 마는 악의 화신이다. 

그리고 거기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인물이 있다. 바로 <골든 크로스>의 마이클 장(엄기준 분)이다. 이제 2회를 마친 <골든 크로스>에서 악의 중심으로 활약을 보이고 있는 것은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 서동하(정보석 분)이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은행과 은행 직원들의 밥줄을 주무르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젊은 여성을 능욕하고, 그녀의 배신에 분노하여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파렴치범이다. 그런데, 그런 서동하를 말 한 마디로 꼼짝못하게 만드는 마이클 장은 다가올 이 드라마의 악의 실세로 보인다. '쌤'이라며 친근하며 불러주며, 하지만, 자신이 아직도 당신이 가르치던 과외 학생인 줄 아느냐며 이기죽거리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다하지 못하면 재미없을거라는 협박은, 그가, 그 누구보다 이 드라마에서 강력한 악의 포스를 지닐 것을 예견한다. 

이렇게 드라마 속 절대악으로 등장한 이재경, 김도진, 그리고 마이클 장 사이에는 묘하게도 공통점이 있다. 

(사진; 스포츠 경향)


우선은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들 모두가 자본을 휘두르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버지의 회사 S&C의 후계자인 이재경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형조차 기꺼이 죽인 사람이다. 자신의 친 혈육조차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되어 제거한 그에게 더 이상 무서울 그 누구도 없다.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되는 그 누구라도 거침없이 밟아버린다. 

이재경이 로맨틱 코미디 속 악역이라는 범주에 갇혀, 자신의 첫 아내와, 내연녀, 그리고 자신의 범죄 행위를 목격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쪼잔한(?) 짓을 저지르는 것과 달리, <쓰리데이즈> 김도진의 행동 반경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합참의장을 사주하여,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하여금 대통령을 암살하도록 종용하고, 그를 위해 EMP탄 몇 기 정도 터트리는 건 예사다. 이익을 위해 팔콘의 개가 되었지만, 수가 틀리면, 팔콘의 하수인조차 매수하고, 자기 뜻에 거스르는 국정원장, 여당 대표의 목숨도 그의 앞에서 가랑잎보다 못하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건 그의 목적 자체가, '아빠'가 가르쳐 준 대로 손해보는 짓은 하지 말라던, 바로 그 유지를 실천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는 북한과 손을 잡고 남한을 위기에 빠뜨리고, 제2의 IMF와 같은 위기 상황을 이용하여, 국가는 망하거나 말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자본주이다. 

아직은 신비에 가린 <골든 크로스>의 마이클 장은, 대한민국 상위  1% 그룹의 핵심 멤버로 소개가 된다. 공홈에 실린 그의 소개에 따르면, 펀드 매니저로서, 이미 멕시코민들의 살점을 발라내어 자신의 이익을 챙긴 전례가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그 멕시코인들의 살점을 발라내던 솜씨가 대한민국민들의 경우로 이전될 것임은 거의 확실시되어진다. 이미 <골든 크로스>는 그의 본격적인 활동 이전에, 강주완이라는 한 가정을 딸이 그녀의 스폰서였던 서동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서동하의 활동에 방해가 되었던 아버지는 아내 가게의 폭파 위협이라는 협박에 못이겨 딸의 살인범으로 자수하는 과정을 통해 철저히 짓밟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 서동하의 배후에서 그의 목을 조르는, 마이클 장의 잠재적 능력이야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목숨, 누군가의 가정, 그리고 누군가의 직장 쯤이 문제가 되지 않는 자본의 무한이기주의를 <골든 크로스>라는 대한민국 상위 1%의 그룹을 통해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재경, 김도진, 마이클 장의 공통점이 단지 자본을 움직이는 힘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속 이재경으로 분한 신성록, 김도진으로 분한 최원영, 마이클 장으로 분한 엄기준의 면면을 보자. 
모두 훤칠하고, 잘 생기고, 게다가 드라마 속 그들은,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전지현 분)와, 그녀의 엄마가 '오빠'라 부르며 속사정을 의논하고, 나아가 자신들을 믿고 의탁할 만큼, 멀쩡하다. 심지어, 꼬박꼬박 존댓말까지 써가며, 매너까지 완벽하다. 
그런데, 그 멀쩡한 그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라며 누군가의 목숨을 거둔다. 악의 축인줄 알았던 이들이 그들의 말 한 마디에 몸서리를 친다. 
이재경의 극 중 설명처럼, 그들은 모두 소시오패스이다. 즉,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 죄책감, 슬픔 등에 대한 일반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히 타인에 대한 동점심 따위조차 없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이다. 
김도진의 방 안에 있는 조립식 장난감 팔 다리을 싹뚝 자르는 것과, 실제 사람을 죽이는 것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장난감을 조립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마이클 장의 모습을 자주 비춰주는 것은 세상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듯한 이들의 심정을 단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연출적 장치들이다. 

(사진; 뉴스엔)

이렇게 가장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 기실은 가장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를 가진, 피도 눈물도 없는 자기 이익만 탐하는 인물로 그려낸 드라마적 묘사는, 바로 우리 사회 자본주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가장 선의의 포장을 하지만, 가장 추악하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이 시대 자본의 모습을 드라마는 이런 소시오패스적인 절대악을 그려내는 것으로 설명해 내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젼을 틀면 나오는 대대적인 기업의 이미지 광고 뒤에, <또 하나의 가족> 속의 횡포를 부리는 자본이 존재한다는 걸, 드라마는 상징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시대 상황에 따라 드라마 속 악인 들은 변화한다. 한때는 지역 유지가 가장 최종 보스였는가 싶던 때가 있는가 싶더니, 정치적 실권자가 모든 악의 축으로 규정받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 속 절대악은 무한 이기주의의 자본주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대통령의 암살조차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시도한다. 원칙도 없고, 논리도 없고, 자비란 더더욱 없다.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라면 한 나라의 운명 따위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쓰리데이즈> 속 김도진이 처음 경호관 한태경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듯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은 그가 가지고 노는 체스판의 말 취급도 받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멀쩡한 모습을 하고, 가장 비이성적인 모습을 횡행한다. 그래서 그 번듯한 미친놈들이 더 공포스럽다. 그리고 그 공포는 바로 우리들 삶의 공포로 전이된다. 모리아티는 영드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드라마는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 


by meditator 2014. 4. 15. 16:51

4월 14일 tvn에서 새로 시작한 <마녀의 연애>는 2009년 대만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던 <패견 여왕>의 리메이크물이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패견 여왕>에서 33세에, 자기 중심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하지만, 날카로운 콧매와, 가녀린 얼굴 선에서 풍기는 이지적인 선무쌍(양진화 분)이 떠오르기 보다는 오히려 얼마전 <관능의 법칙>에서 어린 남자를 만나 당당히 연애에 빠졌던 엄정화가 연기했던 신혜라는 캐릭터가 떠오른다.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싱글즈>의 동미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가 떠오른다. 

물론 엄정화가 연기한 캐릭터는 다양하다. <오로라 공주>의 딸을 잃은 엄마 정순정도 있었고,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따스한 선생님 김지수도, 가수를 꿈꾸던 열혈 아줌마 <댄싱 퀸>의 정화까지 손가락으로 꼽기가 힘들 정도이다. 어디 영화뿐인가, <12월의 열대야>에서 상처받은 주부 오영심에서, <아내>의 순둥이 윤현자까지, 그녀가 했던 캐릭터의 진폭 역시 새삼 살펴보면, 그 어떤 연기파 배우 저리가라할 정도다. 

하지만, 그토록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음에도, 여전히 엄정화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캐릭터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지금 그녀가 <마녀의 연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관능의 법칙>에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mr. 로빈 꼬시기>, 그리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까지, 그녀가 했던 캐릭터 중 다수가 지금 그녀가 <마녀의 연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물론 이들이 모둔 같다고 하는 단언할 수는 없다. 각각의 캐릭터는, 각각의 작품 속에서, 그 작품에 맞는 빛깔로 변주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 작품에서 엄정화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가장 모던하게, 현대 사회에 적응한 캐릭터로써, 자신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일에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며, 그 못지않게 전문적이다.(연애 따로, 결혼 따로 충실한 삶을 사는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연희 역시 그런 일련의 현대인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엄정화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몹시 섹시하다. 그녀가, 드라마 상에서, 혹은 영화 상에서 노처녀이건, 결혼을 원하지 않는 워커 홀릭이건, 그런 캐릭터 적 성격과 상관없이 매우 섹시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 <관능의 법칙>에서 예능 피디인 신혜의 옷차림이나, 독거사를 고민하는 드라마<마녀의 연애>의 반지연이나, 그녀들은 쫙 달라붙은 치마에,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를 입고, 짙은 화장에, 붉은 입술을 하고서, 고민에 빠진다. 그간 사귀어 온 남자가 다른 여자랑 결혼을 한다고, 혹은 사랑하던 남자가 떠난지 6년이 되었다고, 그리고 홀로 늙어죽을 거 같다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녀만 보면 침이 흘러내릴 거 같은 모습을 하고. 

그간 엄정화가 가수 활동을 통해 쌓아온 섹시 이미지를 고스란히 반영한 듯한 뇌쇄적인 모습으로 드라마 속 주인공은 고뇌에 빠진다. 물론, 전혀 독거사 할 수 없는 것만 같은 모습으로 화면을 종횡무진하는 섹시한 그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드라마 속 그녀는 또한 엄정화만의 내공으로 다져진 연기로 보는 사람들을 설득해 낸다. 
<마녀의 연애>의 시작은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파파라치 사진을 찍기 위해 학교로 잠입한 열혈 기자 반지연에, 자신이 찍은 기사를 올리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의 자전거를 타고 날르다 젊은 남자와 조우하게 되는, 전형적인 로코의 뻔한 설정이지만, 엄정화 특유의 통통 튀는 분위기로 그걸 살려낸다. 마치 드라마는, 엄정화를 위한, 엄정화에 의한 드라마임을 공인하듯, 실연의 슬픔조차, 스피카의 노래를 따라하며 섹시 댄스를 추는 장면으로 승화시킨다. 

결국, <마녀의 연애>는 예측 가능한 뻔한 로코의 정석을 엄정화라른 전설의 로코 퀸을 통해 변주해 나가는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함께 하는 박서준은, 그의 매력이, <금 나와라 뚝딱>,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관심을 끌기 시작했지만, 과연, 로코의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끌어 갈 만한가 여부가 미지수인 상태에서, 이 드라마가 엄정화에게 의지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결국 드라마는 엄정화, 혹은 엄정화의 연기에 대한 호불호에 의해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33세의 여자가 8년 연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고민하던 대만 드라마 <패견 여왕>은 바다를 거너 <마녀의 연애>가 되면서, 39세의 반지연이, 스물 다섯의 윤동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단다. 2009년에 서른 셋만 되도, 패견, 즉 패한 개, 시집 못간 노처녀라 대접받는 대만의 이야기는, 2014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서른 아홉의 노처녀가 스물 다섯의 청년을 도발할 수 있는 러브스토리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관능의 법칙>에서 한참 어린 젊은 남자를 만나는 신혜에게 친구가 애랑 미쳤다고 하자, 신혜는 말한다. '그 애가 내 애는 아니'라고. 과연 내 애가 아닌 또 다른 남자 애와의 연애도 성공할 지, 대만판 <내 이름은 김삼순> 열풍을 일으켰던 <패견 여왕>의 리메이크, <마녀의 연애>가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키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4. 4. 15. 02:34

드디어 김숙, 김신영, 김지민, 김영희 등 여성 멤버들이 <인간의 조건> 고정 멤버가 되었다. 그와 함께 새로운 게스트로 천이슬과 김민경이 합류했다. 

지난 해 연말 kbs 연예 대상 우수상에 빛나는 개그우먼 김민경은, 아마도 자신과 같이 덩치있는 사람을 합류시킨 걸 보고 개그맨 동료들이 다이어트와 관련된 미션이라고 했다는 말이 그리 틀지지 않듯이, 처음 고정 멤버가 된 <인간의 조건>의 첫 미션은, 밀가루와 고기 없이 살기였다. 

방송의 시작과 함께 아침 밥을 먹고 모이라는 전갈에 각 멤버들은 자기만의 아침 식사하는 보여준다. 빵 가게로 가서 갓 나온 따끈한 빵에 황홀해 하는 김숙, 그리고 엄마가 삼겹살까지 구워 갖가지 반찬까지 잔뜩 차린 밥상을 받은 김영희에, 간밤에 먹고 남은 치킨에, 즉석밥, 거기에 컵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는 김민경까지 각양각색의 아침 먹는 모습이 등장했다. 

(사진; 뉴스엔)

아침을 먹고 새로운 아지트로 합류한 멤버들은 새로운 미션이 밀가루와 육식 없이 사는 일주일이라고 하자, 당연히 '멘붕'에 빠진다. 
천이슬이나 김지민처럼 날씬하건, 혹은 이미 각고의 노력을 통해 다이어트에 성공을 한 김신영이건, 다이어트가 필요한 김민경이나 김숙이건, 모두 입을 모아 자신들에게 육식과 밀가루는 절대적이라고 탄원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미션은 가혹한 실행을 기다릴 뿐,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 것 같은 미션 과정을 위해, 제작진은 이번 미션을 3명씩 밀가루와 육식 차단의 팀으로 나눠 실천하는 아량을 베푼다. 그리고 출연진의 기대와 전혀 반대로, 밀가루를 원하던 팀에겐, 밀가루 없이, 육식을 원하던 팀에겐 육식이 없는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물론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던 밀가루와, 흰쌀, 설탕의 이른바 3백(白) 식품없이, 그리고 소고기, 돼지 고기, 닭고기 등의 육식 없는 일주일을 선포당했을 때만 해도, 멤버들은 밀가루라면, 그저 좋아하던 과자나, 라면, 국수를 안먹으면 되는거려니 했다. 육식도 마찬가지다. 그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내어 자신들을 유혹하던 고기만 참으면 되는 거려니 했었다.

하지만, 막상 미션에 돌입하면서 멤버들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미션의 폭과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고기 만두는 안되니, 김치 만두라도 먹겠다던 김민경은 김치 만두 속에 들어있는 고기에 냄새만 맡고 만두를 후배에게 돌려준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은 김숙과 천이슬은 식당 간판에 있는 음식 사진을 보고 고르다, 결국은 밀가루가 들어있지 않은 음식은 과일 모둠 밖에 없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심지어 먹을 거리를 찾아 마트에 들어간 밀가루 없이 살아야 하는 일행은, 하다못해 된장, 고추장에도 들어있는 밀가루 성분에 좌절하고 만다. 하다못해 쥬스 한 잔, 두유 한 봉지에도 들어있는 설탕 성분은 경악을 불러온다. 
고기 없는 사는 일행도 마찬가지다. 밀가루는 된다면 희희낙락하는 것도 잠시, 라면 소스 성분 표에 들어있는 사골 양념 분말, 조미 육수에 생각보다 자신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새로 시작된 <인간의 조건> 밀가루, 흰 쌀, 설탕의 3백(白)식품 없이 살기와, 고기 없이 살기 미션이 보여준 점은 충격적이다.
일단은 마르고 살찌고 사람들의 몸집에 상관없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얼마나 아무 생각없이 밀가루와, 육식의 삶에 길들여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나, 아침부터 어제 남은 치킨을 뜯는 김민경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게스트로 합류한 천이슬의 경우, 보기에도 상당히 마른 모습이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과자나, 밀가루에 거의 중독 수준이라는 건, 살찌고, 마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일반의 식습관,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의 식습관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나 천이슬과 젊은 여성들이 스트레스가 쌓이면 폭식으로 마구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쏟아 붓고, 그리고 굶는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또한 김숙처럼 자신이 고지혈증으로 치료 받아야 할 상황에 있으면서도 입에 당기는 빵식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먹거리의 중독 역시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또한 단 한 회지만, 미션을 시작하면서 놀라움을 준 것은, 우리 먹거리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밀가루 등과 육식의 영향이다.
그저 국수나 흰 쌀 밥을 안 먹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양념인 된장, 고추장에서 부터 시작된 하얀 탄수화물의 공격은 생각보다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육식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고기 반찬이 문제가 아니라, 라면에서 부터, 우리가 사서 먹는 모든 것들의 기본 육수를 장악하고 있는 육식의 존재감에 새삼 고개를 내두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고,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영역까지 점령하고 있는 3백(白) 식품과 육식의 존재에, 새삼 우리 먹거리 전반을 돌아보게 만든다. 

(사진; 동아닷컴)

방송 초반만 해도, 그저 양상국의 애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천이슬의 등장은 생뚱맞았다. 하지만, 첫 방송이라는 설레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만으로 그녀의 선정에 대한 논란은 사그러들만 하다. 그저 지병이 있는 김숙이나, 보기에도 정말 다이어트가 필요해 보이는 김민경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아니라, 그리고 천이슬로 상징되는, 이른바 날씬함을 지향하는 요즘 여성들의 모습이 그녀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질 수 있어 캐스팅의 의문을 1회 만에 어느 정도 해소되게 되었다. 누구를 캐스팅하느갸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묘미로 인해, 캐스팅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던 제작진의 역량을 보여준 한 회였다. 


by meditator 2014. 4. 13. 12:51

4월 12일 <정도전>은 이성계(유동근 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최영(서인석 분)에 이은, 우왕(박진우 분) 축출까지 거침없이 달려오던 반군 세력이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차기 왕 옹립을 둘러싸고 입장을 달리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은, 이성계 일파가 밀었던 왕족이 아닌, 왕가의 사람들과 조민수 (김민수 분)장군 일파, 그리고 왕통을 중시한 이색(박지일 분) 등의 신진 사대부들이 민 우왕의 왕자 왕창, 창왕의 등극이다. 

드러나는 사건은 귀양을 가 있음에도 여전히 중앙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는 이인임과 손을 잡은 조민수 세력이 정통성을 중시하는 신진 사대부 유림 세력과 손을 잡아, 새롭게 대두된 실세 이성계를 정치적으로 패배시킨 사건이다. 하지만, 정치적 세력의 이합집산 외에,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보다 결정적이다.

극중 정도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고려를 부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이유를 꿈꾼 가장 본질적 이유는, 바로 지금의 고려가 어떻게 해도, 기존 권문 세족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12일 방영된 방송분 중, 정도전은 함께 할 인물로 염두에 둔 조준(전현 분)의 집은 찾는 장면이 방영된다.
조준 집 벽에는 고려의 지도가 걸려있고, 그 곳곳에 서로 다른 색으로 표기된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 지도의 표식에 대한 정도전의 집요한 추궁 끝에, 조준은 그 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색이 바로 권문 세족의 땅이라는 것을 밝힌다. 경계를 세우는 것조차 무색하여, 산과 강으로 경계를 세우게 되었다는 고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버린 고려의 현실을 밝힌다. 
그런 조준에게 정도전은 자신의 꿈에 함께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계민수전(計民授田)이라 적은 종이를 건넨다. 즉,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란 바로, 지주도 없고, 소작도 없고, 제 땅을 일구는 자작농의 나라라는 것을 의미하는 네 단어이다.

(사진; tv리포트)

즉, 정도전의 개혁이란, 단지 정치적 실권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지금의 권문세족들을 개혁하고, 그들이 점횡한 토지를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고려에서는 더 이상 그런 그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고 보았기에 고려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야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고자 한 이성계는 여전히 고려라는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이성계와 보조를 맞추고자 과도기적 과정으로 선택한 것이 자신들의 입장에 서줄 수 있는 왕의 등극과 함께 권문 세족에대한 개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2일 방송에서도 보여졌듯이, 고려라는 틀을 어찌되었든 유지해 보고자 했던 이성계와 정도전의 마지막 시도는 결국 조민수라는 권문 세족과 유림 세력의 합종연횡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조민수와 이인임의 결탁 과정에서도 보여지듯이, 고려에서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권문 세족의 발호이다. 광대한 농장을 기반으로 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그것이 몇몇 정치적 인물의 거세만으론 정도전과 이성계가 지향하는 개혁에 이르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정치적 혈통을 운운하며 기존 정치 세력과 합류하는 이색 등의 유림 세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진 사대부라고 불리워지는 유림 세력 내에서도 기득권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원칙적인 유교적 입장을 견지하는 듯 하면서도, 왕통이라는 명분에 매달리는 이색 등의 입장은, 결국, 고려라는 틀 속에서 자기 세력의 부흥을 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세력으로 신진 사대부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색 일파와 그와 입장을 달리하는 정도전, 그리고 거기에 합류한 윤소종, 조준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신진 사대부라며 고려 말에 대두되었던 유림 세력이, 고려말 조선 건국 과정에서 서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과정을 또한 12일의 방송분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2일의 <정도전>은 위화되 회군 이후의 또 한 번의 분수령이 된다. 당장의 정치적 사건으로 이성계는 실패하지만, 결국 권문 세족과 신진 사대부 세력의 연합에 의한 이성계의 정치적 실각은, 결국 이성계로 하여금 역성 혁명을 앞당기게 만드는, 혹은 역성 혁명을 결심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도록 한 사건이다.

의식있는 드라마가 반영하는 현실은 극명하다. <정도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정치적 이합집산의 그 배후에는 결국 당대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태도가 존재하며, 각각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결국 패가 갈리고 입장을 달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땅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땅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2014년에조차 가장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정도전에게 있어, 고려는 거둬 던져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허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려라는 나라를 통해 쬐금의 이해 관계라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에 집착하거나, 거기에 연연한다. 바로 그런 기본적 이해관계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게 된다는 것을, 드라마<정도전>은 보여주고 있다. 이성계의 앞에서 충성 충자를 쓴 정몽주의 한계가 또한 그것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정도전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의 지도자의 운명이 걸린 <쓰리데이즈>에서 이동휘 대통령과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재벌 김도진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울 한 복판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조차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 조국이 없는 무한 이익주의의 경제적 동물과의 전쟁을 이동휘는 선포하였다. 
<골든 크로스>도 마찬가지다. 강주완이라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가정을 뒤흔든 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상위 1%의 집단의 경제적 이해 관계를 향항 무한 이기주의이다. 
몇 백년전의 과거가 되었든,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을 다룬 드라마건, 한 개별 가족의 복수극이건, 드라마들은 말한다. 본질은 내 삶의 밥줄을 쥐고 흔드는 경제적 문제라고, 그리고 그 본질을 뒤덮고, 나와는 상관없는 저들간의 노름처럼 보이는 정치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것은 단순한 경제 환원주의나 경제 결정론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보다는 우리을 무관심으로 끌고가는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라는 걸, 그래서 저들의 리그려니 하지 말고, 정신 똑똑히 차려야 한다는 각성을 촉구하는 입장에 가깝다. 바로 이것이 최근 드라마들이 줄기차게 부르짖고 있는 담론의 본질이다. 이성계가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를 통해, 백성에게 땅을 골고루 나눠주려 했던, 정도전의 혁명이 실현되느냐가 본질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이 <정도전>이다. 


by meditator 2014. 4. 13. 11:34

4월 11일  tvn을 통해 또 한 편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갑동이>가 첫 방영되었다. 드라마의 제목 갑동이는, 영국의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처럼 드라마 속 가상의 도시 일탄에서 부녀자 연쇄 살인을 저지른 후 사라진 범인을 지칭하는 상징적 이름이다. 


제작발표회를 통해 조수원 감독은 <갑동이>가 영화<살인의 추억>과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드라마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면, 흡사 <갑동이>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후일담과 같은 영화이다. 

<갑동이>에서 형사 과장으로 등장하는 성동일이 분한 양천곤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로,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분했던 박두만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헤드카피 '미치도록 잡고 싶다'처럼, 17년 전 그때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것을 공소 시효가 지난 지금에 와서라도 다시 해결하겠다는 집념을 보이는 인물이다. 
영화 속 송강호의 박두만이 전형적인 소시민이자, 하지만 점점 연쇄 살인 사건에 빠져드는 형사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었다면, 성동일의 양철곤은 하무염의 아버지를 범인이라 단정짓고, 그와 그의 아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영화 속 박두만과, <갑동이>의 양철곤은 다른 듯하지만, 결국 80년대의 과학적 수사 방식 보다 주먹과 협박이 앞서는 주먹구구식 시대의 수사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박두만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혹은 양철곤이 자기만의 아집에 사로잡혀 동네의 만만한 바보를 범인으로 몰아가버렸다는 점에서, 결국 다르지 않은 그 시대의 우매한 사고 방식을 내재화한 인물들이다. 영화 속 박두만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열패감에 사로잡혀 영화와 함께 사라졌지만, 마치 그가 17년이 지나 되살아 난 듯이, 양철곤이 되어 <갑동이>에서 과거의 범인을 다시 추적한다. 


<갑동이>의 또 한 사람의 주인공 하무염은, 영화<살인의 추억>에서 천진난만했던 동네 바보의 아들이다. 결국 경찰들의 겁박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아버지를 그렇게 몰고 간 형사 양철곤에 대한 복수심으로, 스스로 형사가 되어 갑동이를 찾아나선 인물이다. 

드라마 <갑동이>는 이렇게 쉽게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 속 인물이 떠오르는 주인공들 외에, 과거 사건의 목격자이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속이며 정신과 의사로 살아가는 오마리아(김민정 분), 우리가 흔히 미드나, 추리 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연쇄 살인범을 흠모하며 범죄를 통해 그를 오마주하는 사이코패스 류태오(이준 분)도 등장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80년대라는 시대가 가진 폭력성과 우매함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나가는 데 치중했다면, 공소 시효가 지난 17년 전의 연쇄 살인 사건의 관련자들이 등장하는 <갑동이>는 여전히 그 사건으로 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상흔에 주목한다. 

단 1회만으로,  형사로써 그 시절의 범인을 잡지 못했던 트라우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어 그것이 아집이 되어 그를 똘똘 감아버린 듯한 양철곤이나, 범인의 아들로써의 낙인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어 발버둥치는 하무염, 그리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지만 누군가의 접촉만으로도 소스라치는 오마리아의 상흔들을 충분히 전달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적과, 이제 그 아들조차 의심스러운 또 한 사람의 가해자라는 극과 극의 존재들이, 새로이 발생하는 과거의 사건을 연상케 하는 사건을 통해, 조우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해원들을 풀어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미 다수의 장르 물을 선보였던, 그리고 공중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률에 대해 자유로운 케이블이라는 이점을 안고 <갑동이>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또한 이미 공중파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조수원 피디는 공중파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로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풀어내는 듯 보였다. 거기에, 이미 <로얄 패밀리>를 통해 필력을 인정받은 권음미 작가 역시 1회 만에 <갑동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드러내 보인다. 또한 늘 드라마를 통해서는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왔던 성동일이 분한 양철곤은 그가 우리가 알고있던 그 배우가 맞나 싶게, 집요하면서도 냉정한 인물로 다가온다. 성동일 만이 아니다. 다. 늘 가벼운 캐릭터로 일관했던 윤상현의 변신도, 김민정의 미묘함도, 이준의 섬뜩함도, <갑동이>를 즐길 또 하나의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될 듯하다.


by meditator 2014. 4. 12.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