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백년전만 해도 인간의 평균 수명은 40세 안팍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백 년이 흐른 후 우리는 평균 수명 80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앞 세대보다 무려 30년의 세월을 더 살고, 앞으로는 그 이상 더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인생의 궤도는 수정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일찌기 단체는 그의 작품 '신곡'에서 중년이란 젊은이다운 희망의 빛이 사라진 어두운 숲에 들어가는 것이라 침울하게 정의내렸다. 하지만, 이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생애 주기에서, 마흔 쯤이야, 더 이상 나이듦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지 않는다. 얼마전, 중년의 아저씨들을 데리고 '꽃보다 청춘'이라고 했듯이, 이 시대의 청춘이란, '단순한 젊음이 아니라 길고 오랜 젊음을 향한 시간의 역주행'(대한민국 욕망의 지도)를 대변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보다 오랜 청춘을 누리기 위한 젊음을 향한 시간의 역주행에서 가장 필요로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배움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기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는 그저 학생들에게 필요한 단어가 아니라, 신체는 물론, 정신의 노화를 막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강구해야 하는 100세 시대 강요된 청춘들의 필수 과제인 것이다. 

그에 따라, 추석 특집으로 마련된 2부작 <띠동갑내기 과외하기>(9월8일8시40분, 9월12일 10시 방영)에서는 스타들이 평소 '로망'으로 품고 있던 바로 그 배움의 갈망을 그들보다 '띠동갑'이나 어린 진짜 청춘들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나날이 성장하는 아들들 앞에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어 영어를 배우고 싶은 김성령, 기타를 사놓았지만 정작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이재용, 늦은 나이지만 여전히 sns등 젊은이들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송재호, 그리고 팬들과 중국어로 소통을 하겠다 약속했던 김희철 등이 배움의 당사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을 지도편달하기 위해, '띠동갑', 그것이 12살에서부터 24살, 36살, 아니 그 보다 한참 더 어린 젊은이들이, 선생님으로 등장하여 이들의 로망을 해소해 준다.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송재호 이재용 성시경 김성령 손예음 진지희
(사진;

'띠동갑'인 남자 연예인이라고 하자, 김성령은, 그녀가 평소 관심있는 연예인을 떠올리며 가슴 설레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앞에 일면식도 없는 성시경이 등장하자, 높임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을 놓지도 못한 채, 평소 그녀가 써본 적도 없는 묘한 '~구'를 연발하는 사태에 직면한다. 그런 난감한 처지의 그녀에게, 성시경은, '애교'로 때우지 말라고 근엄하게 학습을 밀어부치고. 
그나마 김성령은 띠동갑이 한번 돌아가니 나았다고 할까? 기타를 배우기 위해 고심하는 이재용 역시 그를 가르칠만한 띠동갑 연예인들을 검색까지 해보았지만, 정작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의 아들뻘인 중학생 손예음이다. 여릿한 몸매에 끼니나 챙겼을까 자식처럼 걱정이 앞서는 것과 달리, 손예음이 기타를 튕기기 시작한 후, 이재용의 눈빛은 감탄으로 변한다. 
아니, 이재용은 그나마 아들 뻘이니 또 나은 편이다. <꽃보다 할배> 이후로, 예능의 블루칩이 된 할배 세대의 송재호를 찾아온 신세대 선생님은 손녀보다도 어린, 60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역 배우 진지희이다. 하지만 당차고 똘망똘망한 소녀 진지희는, '빵꾸 똥꾸'를 내지르던 그때와 다름없이, 60살이 많은 제자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한다. 
이제는 '중후한' 아이돌이 되어가는 김희철과 정준하 앞에는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같은 파랑 머리를 나풀거리는 아이돌 지망생 지헤라가 등장하여, 중국 무술까지 내세우며, 선배 아이돌을 쥐락펴락한다. 

영어, 중국어, 기타, sns 사용법, 아마도 중년과 노년의 세대들에게 앙케이트 조사를 하면 배우고 싶은 항목의 수위에 올라갈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업의 압박으로, 혹은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가 없어, 그저 '로망'으로만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다. 바로 그런 것들이 <띠동갑내기 과외하기>를 통해 예능의 대상이 된다. 
가장 친근한 먹거리의 이름과,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키는 법이라던가, 여배우에게 가장 익숙한 수상 소감, 그리고 친근한 영화의 ost를 통해 이질적인 언어를 배우는 1;1 맞춤 눈높이 교육은, 비록 예능이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도 저렇게 하면 조금은 배우고자 하는 것에 가까워 질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심지어 기계치인 할아버지에게, 단 한번도 '구박'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잘 하신다며' 또박또박 가르쳐 주는 손녀 또래의 교사라니! 그리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생글생글 웃은 손녀뻘의 과제에, 할배 학생은, 할배식의 시스타춤까지 추게 될 줄이야!

처음 띠동갑내기 영어 선생님이라고 하자 설레였던 김성령처럼, 영화<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처럼 과외하다 연애를 해볼 수도 있는 환타지는 아니더라도, 나이가 역전된 이들 관계에서 나오는 또 다른 '화학작용'은, '배움'의 로망 이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사제 관계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홀홀단신 해외 배낭 여행을 하는  날 것의 치열한 금요일 밤 10시 예능 전쟁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떨칠지는 의문이다. 성시경의 말처럼, 두 번의 배움으로는 영어를 가르친다, 배운다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미 두번 째 배움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음식 만들기와, 영화 ost  함께 부르기가 등장한 것을 보면, 두번 이상 신선함을 줄 것이 있을까란 회의가 들기도 한다. 특집의 훈훈함을 넘어선, '정규 편성'? 그건 아직 물음표다. 


by meditator 2014. 9. 13. 11:35

3부작으로 방영된 <나의 결혼 원정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나의 결혼 원정기>를 그대로 본딴 예능 프로그램이다. 영화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갔던 두 노총각이 등장한 것처럼, 연예계의 노총각 네 사람이 가상 결혼을 하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간다. 그리고 영화에서 처럼, 그리스의 아가씨를 소개받고, 데이트도 받는다. 그런데 <나의 결혼 원정기>를 보면 정작 떠오르는 영화는 2002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모은 바 있는 톰 행크스 제작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다. 정반대의 문화를 가진 그리스인 여성과 미국 청교도 집안의 남자가, 장황한 그리스식 결혼 과정을 거쳐 서로 하나의 가족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그린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나의 결혼 원정기>는, 이방의 그리스에 떨어진 김원준, 김승수, 조항리, 박광현이, 그리스 문화의 틀 속에서 그리스 여인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그리스 식 결혼 과정을 거쳐가는 것을 예능으로 담는다. 


시작은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로 시작된다. 조항리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도 노총각으로 정평이 난 네 사람이 '예능'을 매개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아직도 전통적 가족 제도가 여전한 그리스의 문화이다. 아내가 모든 집안 일에 전권을 행사하며, 집안 일에서부터, 가족을 위한 농사일까지,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남편에, 그런 가족의 그늘에서 밝게 자란, 그래서 이십대의 젊은이임에도 여전히 가족이란 울타리가 강고한 그리스 아가씨와의 가상 결혼은,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만의 화합이 아닌, 그리스 문화에의 적응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 색다른 문화 체험이 되었다. 덕분에, 그저 심심한 외국판 <우리 결혼했어요>가 돨 뻔한  푸르다는 말로 부족한 그리스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진 하얀 가옥들을 배경으로, 요안나의 가족들과 어우러진 정감 넘치는 고군분투로 전이된다. 

(사진; 0sen)

그래서 여전한 가족주의 문화가 중심이 된 그리스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 네 명의 주인공들은, 단지 아내가 될 요안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장인, 장모, 심지어 처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혼할 여인은 제껴둔 채, 장모가 될 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장모와의 데이트를 마다하지 않고, 장인이 될 분의 농장에서 땀을 흘리기도 한다. 처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1일 바텐더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리스만의 풍광과, 먹거리와 볼거리는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여전히 <나의 결혼 원정기>는 태생이, 또 하나의 짝짓기 프로그램인 만큼, 우리가 <우리 결혼 했어요> 등에서 이미 너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과정을 답습한다. 예능에 그래도 좀 익숙한 김원준, 박광현, 그리고 조항리 등은, 그런 그들이 맛보았던 예능의 관습대로, 그리스에서도 능숙하게 예능 프로그램의 일원으로서 프로그램에 임한다. 그런데, 정작, <나의 결혼 원정기>를 그저 그런 이국판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탈피하게 만든 것은, 예능이지만, 예능 경험이 없었던, 그래서 '가짜'인 줄 알면서도, 진지해졌던, 요안나의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그런 가족에 대해 진솔하게 다가갔던 예능 경험이 없던 김승수의 진심이었다. 예능 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예능의 세례를 받지 않은, 그래서 그 누구보다 진정성있게, 예능을 예능 답지 않게 임할 수 있는 예능 기대주를 찾아헤매는 이유를, <나의 결혼 원정기>의 김승수와, 요안나의 가족들이 다시 한번 증명한다. 덕분에 장황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 뻔 했던 그리스식 웨딩 과정이, 이질적인 두 사람이 하나의 문화로 화합해 가는 전통의 통과 의례로 새롭게 자리매김된다. 

가짜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식 웨딩 과정이 진행될 수록, 요안나의 아버지가 가진 감회는 깊어진다.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자식들의 입맛에 맞는 포도를 각각 재배할 정도로, 세심한 아버지는, 그 과정에서 이제 정말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딸이 자신의 품에서 떠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남다른 소회에 빠진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에 김승수는 어린 시절 일찌기 부친을 잃은 자신의 상처까지 솔직하게 내보이며 진솔하게 다가간다. 분명 가짜인 예능이지만, 그렇게, 딸을 보낼 서운함의 정서를 가진 아버지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어 부정을 막연하게 그리워 했던 김승수의 마음은 그리스라는 이방의 공간에서 어우러진다. 덕분에 그저 흉내만 내었던 그리스식 웨딩은, 가짜인데, 진짜같은, 그리스식 결혼으로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런 진심 앞에, 온갖 미사여구로 장모의 마음을 얻었다고 설레발치던 박광현의 이쁜 짓과,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해보려 했던, 하지만 예능을 좀 아는 듯한 김원준의 노력, 그리고 상대적으로 젊음을 내세웠던 조항리의 자신감은 한 수 아래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쑥쓰러움을 넘어서지 못해 늘 주저주저했지만, 그 누구보다 진정성있었던 김승수를 요안나와 그의 가족들이 선택하면서, 그저 그런 예능이 될 뻔 했던, <나의 결혼 원정기>는 예상 외로, 정감어린, 그래서 자신을 선택해준 장인, 장모에게 큰 절을 올리는 김승수를 보는 순간, 혹시 진짜 아냐? 라며 잠시 홀릴 정도의 그리스식 웨딩으로 승화되었다. 


by meditator 2014. 9. 12. 11:29

얼마 전 고향이 지방인 친구와 함께 그 친구 고향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평을 묻는 내게, 친구는 다짜고짜 말한다. 사투리가 어설퍼서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자연스런 사투리가 영화의 장점으로 손꼽히던 영화였지만, 정작 그 지역에서 살았던 친구에겐 '흉내내기' 이상으로 들리지 않았었나 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경우가 많다. 내가 살아본 것, 내가 경험한 것, 심지어 내가 직업인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타인들이 그것을 아는 척(?)하는 것에 못내 탐탁치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제재로 삼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얼마전,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가지 정신 질환, 그 중에서도 주인공 장재열(조인성 분)이 앓고 있는 스키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정신가 의사의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 의사의 글이 맞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특정한 정신적 질환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임상의 예와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정신과 질환을 미화시키고 있는 면이 있다. 의사의 글에서 처럼, 실제 우리 사회 스키조를 앓는 환자들은 끊임없이 재발되는 증상으로 인해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받으며, 그런 환자들을 돌보다, 애인이, 가족이, 결국은 가족마저도 나가 떯어지는게 현실인 병일 수도 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주인공은 모두 정신과적 질환을 겪고 있다. 여주인공인 지해수(공효진 분)는 어린 시절 엄마가 외간 남자와 키스하는 것을 본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과 그 어떤 스킨쉽을 하려고 들면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증가되면서 식은 땀이 나는 강박 증세에 시달리는 강박 장애 환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병을 앓으면서도, 오히려 그런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다. 남자 주인공 장재열은 어떤가. 엄마가 우발적으로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 후 해리성 기억 상실에 빠져들자, 그 죄를 형에게 뒤집어 씌운 후, 스키조를 겪게 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소녀팬들을 거느린 인기남이다. 
모델같이 길쭉길쭉한 자태를 뽐내며, 그 자태를 능가하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진 두 주인공은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으로 서로의 정신적 장애를 이겨낸다. 나가 떯어지기는 커녕, 스킨쉽을 영원히 못할 거 같던 지해수는 장재열과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장재열은, '사랑하는 우리 애인' 덕분에, 3년 동안 그의 분신이었던 환시 한강우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에 못이겨 1년을 떨어져 있었음에도 어제 본듯 감정은 변하지 않고, 순조롭게 결혼에 골인,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 두 주인공만이 아니다. 장재열의 형도, 엄마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그들의 상처에서 한발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정신적 장애를 겪는 선남선녀가, 서로의 사랑으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병을 너끈히 이겨내고, '하하호호' 행복한 삶을 누린다. 정신과 의사의 비감한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보기 힘든 '환타지'다. 



	사진=SBS 방송캡쳐
(사진; 조선닷컴)

하지만, 이 아름다운 두 배우의 무조건적 사랑의 환타지에 의한 정신과 질환의 극복은, 비록 현실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은 허구일지라도, 많은 소득을 낳는다. 현지인이 듣기에 어설펐던 영화가 그 영화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남기듯이,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 전혀 전문적이지 않았던 내용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과 의사처럼 실질적으로 환자를 고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혹은 심지어 정신과 질환에 대한 오해나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대신,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사로잡혔던 '편견'을 한 겹 덜어내고, 정신과 질환을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정신과 질환이라면, 우리 시대 대표적 개그맨 이경규의 고백으로, '공황장애'가  우리 안으로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스키조는, 그 전문적 용어보다는, '정신분열'이라는 천형의 이름으로 낙인 찍힌 채, 생명이 오가는 암보다도 두려운 우리 사회의 '타자'로 자리잡아왔다. 
일찌기 '빨갱이'를 시작으로, 각종 사회적 역사를 트라우마를 다종다양하게 겪은 우리 사회만큼, 나와 '타자'를 겪하게 구분하는 사회도 없을 것이다. '전염병'처럼 내가 아닌 타자에 대해, 몰인정하다 싶게 외면하는 사회가 바로 한구 사회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빨갱이'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레드 컴플렉스가 사라지는가 싶었는데도, 여전히, 아직도 좌파 콤플렉스가 만능인 양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듯이, 우리 안의 '타자'는 낙인만 찍히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하물며, 정신적으로 분열이 된다는 질환임에랴. 사회는 나날이 원좌화된 개인을 옥죄어, 사회 구성원 중 열 명에 한 명 꼴로, 정신적 질환을 겪는, 말 그대로 '정신 분열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공황 장애' 정도가 조금 이해가 될 뿐, 기타 정신과 질환은 음지에 숨어, 그 누군가와 그 가족의 고통만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렇게 음지의 고통을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사랑을 매개로 세상 속으로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그 내용이 조금 과장되거나, 환타지스럽더라도 큰 성과가 아닐까. 평생 만날 일도 없을 뿐더러, 야곰야곰 그들로 인해 내 삶이 좀 먹어가는 재벌과 만나, 사랑과 화해를 이루는 환타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아닌가 말이다. 내가 좀 아는데, 하지 마지고, 너그럽게 <괜찮아 사랑이야>가 이룬 성취에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란다. 

그러고 보면, 노희경 작가는 언제나 그랬다. 우리 밖에 있는, 우리가 외면했던, 타자였던 것들을, 그녀의 드라마들을 통해 하나씩 끌어 들여 오는게 그녀의 장기였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치매를, <슬픈 유혹>에서는 동성간의 사랑이 그녀의 화두였다. 꼭 어떤 제재만이 아니다. 가족의 이름으로 대신 살아오던 주부도, 깡패도, 창녀도, 가난이 지긋지긋한 청년도 그녀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드러낸다. 때로는 유부남, 유부녀의 사랑도, 몇 십년의 차이를 둔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도, 그녀의 드라마에선 있을 수 있는 일로 재조명된다. 세상에, 우리가 아니라고, 나는 아니라고 외면할 그런 일이 노희경의 드라마에선 없다. 

되돌아 보면 <괜찮아 사랑이야>는 참 희한한 드라마다. 가족내 갈등은 있지만, 그것이 출생의 비밀도 아니요, 돈때문에 이전투구를 벌일 일도 아니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은 있지만, 점찍고 복수할 일도 아니요, 더 많은 것을 쟁취하거나, 얻어내기 위한 이합집산도 없다. 아버지의 투병으로 인한 가난이 원망스러워 엄마에게 외도를 종요했던 딸의 아집이 트라우마요, 폭행에 시달리던 엄마의 범죄를 외면했던 아들의 자기 학대와 죄책감이 주인공의 주된 고뇌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극진하지만, 그 사연들이 그간 우리 드라마를 구성해 왔던 뻔한 사연이 아니라, 우리 사회 누군가가 가질 법한 저마다의 짐이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은 사연들이다. 노희경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사연은 도발적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역시, 예외없이 가장 인간적인 주인공들이 이제 2014년에 와서, 그 상처로 인해 정신병까지 앓게 된, 인간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적인 증후들에 대해, 드라마처럼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스런 인내로, 관심을 가져보고 이겨내자고 말한다. 내가 아니라고 밀어내지 말고, 지켜봐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가고 말한다. 


by meditator 2014. 9. 12. 09:30

추석특집으로 9월 9일, 10일 양 일에 걸쳐 '내 인생의  ost'란 부제를 가진 <썸씽>이 방영되었다. 출연진의 면면은 화려하다. 16년만에 무대에 오른 이제는 배우가, 가수이기 보다는 가방 디자이너로 더 이름이 알려진 임상아에, 요즘 한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우 박혁권, 그리고 <꽃보다 할배>를 통해 우리 곁에 조금은 더 다가온 근엄한 배우 박근형, 그리고 이필모 등, 특집에 걸맞는 출연진의 면모이다. 면모만이 아니다. 그들이, 무대에 서서, 그들의 지인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흑백 텔레비젼 시절에 '유쾌한 명랑회'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노래를 선보인게 다였다는 박근형의 말처럼 텔레비젼을 통해 좀처럼 만나기 힘든 분들의, 듣기 힘든 노래이다. 


그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 노래를 조금 더 감미롭게, 혹은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연이 준비되어 있다. 한때 그녀의 미국 생활에서, 홀홀 단신 미국으로 건너 온 그녀에게 유일한 의지가 되었다며 미소를 띠고 등장해 주던 남편이 없는, 싱글맘이 된 임상아의 고독한 뉴욕 생활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역만리 외로운 뉴욕 생활을 견디게 해준 '어머니의 된장 찌개'라는 노래를그 노래의 주인공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부른다. 
박혁권은 몇 달 걸러 휴대폰 요금이 끊기던 시절, 자신을 처음 영화에 캐스팅해주던 임창정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그와 함께 무대에서 '소주 한 잔'을 부른다. 
손자를 인꽃이라 부르며 노년의 사랑을 아낌없이 퍼부어주는 할배이지만, 1년 정도 아들이 음악하는 걸 반대하며 드라마에서 들을 법한 온갖 폭언을 퍼붓던 아버지 박근형은 아직도 서먹서먹한 아들과의 사이를, 뮤지션인 아들과 함께 노래를 연습하며 풀어낸다. 
어머니의 장가가라는 성화를 귓등으로 넘기는 마흔 줄의 이필모는 여전히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첫사랑을 생각하며 '별이 진다네'를 열창한다. 
이런 게스트들의 사연에 뒤질세라, 강호동은 마흔 줄 남자의 정서를 대변하고자, 최백호와 함께 '낭만에 대하여'를 우직하게 열창하고, 시청자의 사연을 접수한 김정은은, 악동 뮤지션과 함께 '붉은 노을'을 귀여운 안무까지 곁들여 공연한다. 

(osen)

일단 <썸씽>의 시도 자체는 신선하다. 그저 토크쇼도 아닌 것이, 공개 음악 프로그램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인간 극장>같은 다큐도 아닌 것이, 그 모든 것들의 장점을 모아, 출연자의 사연과 노래를 풀어낸다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특집분 1,2회의 출연자들은 그 시도에 걸맞에 각약 각색의 감동을 준다. 내로라하는 셀러브레이티들의 사랑을 받는 가방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자신의 뉴욕 생활을 60점 대로 평가하는, 이혼의 상처를 딛지 못해 공황 장애에 시달리는 싱글맘이라는, 성공과 고독의 양면을 고스란히 내보여준 임상아의 자전적 고백에, 가진 것 없어도, 자부심만은 하늘을 찔렀던, 하지만 이제는, 그를 캐스팅해준 임창정이, 내 가족이 잘 된 것 같더라는 소회를 밝힐 정도의 위치에 오른 박혁권의 잔잔한 인생사에, 대배우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애증의 간격을 메우기 힘든, 아버지와 아들의 사연까지, 다양한 감동들이 포진되어 있다. 연예인의 입을 통해 토로되는 우리와 다를바 없는 인간사 숨겨진 속사정의 매력은 여전하고, 심지어 사연이 얹힌 노래는 실력과 상관없이 감동적이다.

그러나, 개별 출연자의 사연이 가진 진정성으로 화제를 일으킨 것과 달리, 프로그램의 완성도 면에서 2회에 걸친, <썸씽>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 사연들을 풀어내랴, 토크를 하랴, 노래를 하랴 분주했다. 분량도 제 각각이다. 풍성한 사연을 구구절절 풀어내려다 보니, 2회의 경우, 상대적으로 '사연팔이'의 내용이 적은 이필모는 거의 게스트 급이 되어 버렸다. 박근형 부자의 가깝고도 먼 사이는 게눈 감추듯 시간이 흘러가 버렸지만, 애절한 임상아의 사연은 안타까웠지만, 중언부언하다보니, 늘어져 버린다. 거기에 굳이 노배우를 들러리 삼아, 강호동의 노래와 로이킴의 노래를 끼워 넣은 것은, 사족처럼 느껴졌다. 시청자의 ost까지 꾸겨 넣은 것은, 야심찼지만, 바구니가 넘쳐 보였다. 

분량이 제 각각인 사연이야,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다큐식으로 풀어낸 사연 끝에, 스튜디오 토크는 아직까지 물과 기름이다. 그런데, 그 물과 기름을 가장 조장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어울리지 않는 mc의 설정이다. 깨놓고, 만약 <썸씽>의 mc가 김정은만이었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감동적인 사연과, 그들의 절절한 노래가 끝나고 그들이 자리에 앉은 후, 강호동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감정은 깨지고, 마치 <스타킹>에 온 듯 어수선해 진다. 강호동의 끊임없는 시도는 가상하지만, <우리 동네 예체능>과 감동이 전하는 음악 프로그램의 달라진 톤을 맞추기엔 역부족이다. 솔직히 일단 그의한 톤 높은 목소리부터 <썸씽>이 주체할 길이 길이 없다.  <1박2일> 이래로 그 '갑툭튀'한 금언식의 한 줄 명언 습관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그의 어색한 돌출 정언을 수습하느라, 김정은은 진땀을 흘린다. 덕분에, 감동의 사연을 담은 다큐와, 사연을 담은 노래에 이은, 감동을 이어갈 토크 쇼는 분위기가 쫘악 깨진 채, 중언부언, 감동을 받았다 하다 끝나버린다. 그 예전의 <김정은의 초콜릿>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진행이야 다듬으면 되지만, 이미 특집으로 보여진 1,2회를 이어갈 다양한 사연들이, 아니 신선한 사연들이, 그리고 그 사연을 풀어낼 만한, 특집을 넘어설 출연자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이 <썸씽>이 특집을 넘어선 정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가의 결정적 관건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9. 11. 11:08

현대에 들어선 예술은 그들이 건너온 중세와 전근대의 흔적을 털끝만치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치 속가를 떠난 사람이 세속의 때를 벗기는 상징으로 머리를 자르듯, 장식적 요소로 작동하던 그 모든 것을 배격하기 시작한다. 또한 그것을 위해 들여졌던 온갖 비용을 경제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것이 건축으로 가면, 집안을 장식하던 커튼이 벗겨지고, 바닥에 깔렸던 카펫이 벗겨지며, 가구의 윤곽이 되었던 모든 틀이 날라가는 것으로 등장한다. 

<아이언맨> 1회, 주인님이 '용천 지랄'을 한다며 윤여사가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하지만 그녀가 뛰어 올라가는 계단엔 손잡이가 없다. 앙상한 계단인 듯한 차곡차곡 쌓인 층계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그녀가 들어선, 그 '용천 지랄'하는 주인님 방 역시 앙상하긴 마찬가지다. 늙수그레한 하녀를 부릴 정도의 주인님인데, 방안을 차지하는 거라곤, 여기저기 툭 튀어나온 부스같은 벽체 몇몇에 덩그머니 침대 하나가 다다. 

그런데 건축학적 신사조인 '미니멀리즘'이 보기에는 꽤 새로울지는 모르지만, 소리역학? 혹은 정신과적으로 보자면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구조이다. 벽체, 혹은 바닥 그 어느 곳하나 따스하게 소리를 품어줄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건축은 온갖 소리를 그대로 발산해 낸다. 우리가 패스트푸드 점같은 공간에서 유달리 시끄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가장 첨단의 트렌드를 따른 듯하며 매우 경제적인, 하지만, 그 어떤 일말의 온기라고는 붙어있을 것같지 않은 공간에 사는 '주인님'은 그의 하녀 말처럼, '용천지랄'을 한다. 그 구조를 극대화시킬 듯한 그의 '언성'은 시멘트 벽체를 마치 당구공처럼 이리저리 튕겨 듣는 시청자의 귀까지 한껏 시끄럽게 울린다.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밥을 평소 두 배 정도는 먹기라도 해야 할 듯, 남자 주인공 주홍빈(이동욱 분)은 시종일관 보통 사람보다 '화'가 나있다. 그의 주변은 하다못해 냉장고의 상한 마말레이드에서부터, 그의 회사일까지, 온통 '울화통'은 곧 터지게 만들 것 투성이이다. 그리고 게임개발 업체 대표로 하녀까지 부리고 살 정도의 부를 지닌 그는 '갑'답게, 눈치보지 않고 '갑'질을 한다. 화가 나는 대로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에게 컴퓨터를 날리며, 그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면, 넉넉한 보상금과, 기대치 못한 승진으로 달래는 식이다. '안하무인'이 허락된 그의 존재지만, 오히려 모든 것이 그의 화를 돋굴 뿐이다. 


다짜고짜 1회 내내 화만 내다 못해, 결국 그 화를 내지 못해 등에서 칼이 돋는 주인공, 눈을 씻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유전자 이상 변이로 인해 혼돈을 겪는 <엑스맨>이 아닌가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드는 드라마가 바로 1회의 <아이언맨>이다. 
하지만, 이 기괴함에 묘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일상이, 주인공 주호빈의 '화'를 조장하는 일상과 너무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먹기 싫은 아침밥, 도무지 입을 만한 옷이 없는 옷장,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 단지 다르다면, 주호빈 그는 그 '화'를 '갑질'을 통해 풀 수 있는 반면, '을'인 우리는 그저 속으로 삼키거나, 음주가무를 통하거나, 또 다른 만만한 누군가를 대상으로 풀어내야 하는 양상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결국 화를 견디지 못하고 칼이 돋는 주인공이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하다. 칼이 돋을라 하면 혹은 칼이 돋을 상황이면 후각이 예민하다 못해 '개' 저리가라가 되는 만화같은 설정인데, 낯설지 않다. 엑스맨때문일까?

하지만, 그런 '괴작'의 향기를 차치하고 보면, <아이언맨>의 기본 구도는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괴팍한, 하지만 가진 것은 많은 남자 주인공에, 가진 것 없는 여자 주인공, 아니, 남자 주인공은 과거 그가 사랑하던 여인의 향기( 물론 여기서 진짜 향기>를 그녀에게서 느끼고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여자, 하다못해 길잃은 아이의 울음조차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기가 쫓겨날 처지인데도, 후배들의 밥 한끼에 목을 매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심성, 그리고 당연히 그에 못지 않은 미색을 겸비한 여자이다. 이쯤되면, 아하! 하고 무릎을 탁 칠 수 있듯, 우리가 그간 익히 보아온 로맨스물의 구도 아닌가?

이렇게 <아이언맨>은 우리가 뻔히 알 수 있는 로맨스물의 구도에, 현대인의 전형적 증상인, '화'를 내다 못해, 괴물로 변하는 주인공이란, 독특한 설정을 얹는다. 결국 이 드라마에게 주어진 길은 프로스트의 시처럼 두 갈래 길이 될 것이다. 토핑처럼 주인공의 기괴한 변신을 양념으로 얹은 로맨스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로맨스를 양념으로 친, 현대인의 고뇌와 슬픔을 상징적으로 다룰 것인가?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기괴한 상상력으로 남자 주인공의 등에서 칼을 돋우는 독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1회의 그 나머지 진행은 상당히 '우연'에 의존하는 불길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후각이 예민한 주인공이 과거 연인의 향기를 찾아가다 여주인공 손세동(신세경 분)을 찾아내는 건 그렇다 치고, 하필이면 여주인공이 그에게 회사를 넘기고 외국으로 도망가는 게임개발 업체 대표의 후배이자, 직원이다. 당연히 의협심이 강한 그녀는 빼앗긴 자신의 몫을 찾아 주호빈을 만나고자 하는데, 하필이며 그런 그녀가 거둔 길잃은 아이의 아빠가 주호빈이란다. 이 얽히고 섥힌 미로의 조성 과정은, 상당부분, 우연이라는데, <아이언맨>의 함정이 있다. 

과연 이 뻔한 우연과, 그 우연을 빙자한 만남을 과연 등에서 칼이 돋는 기괴한 설정을 넘어, 현대인의 고뇌를 상징하는 역작이 될 지 1회 <아이언 맨>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는다. 


by meditator 2014. 9. 11. 09:59

2014년 설날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주먹 쥐고 소림사>가 추석을 맞아, 새로운 시리즈 <주먹 쥐고 주방장>으로 돌아왔다. 

중국 무협의 본산 소림사를 김병만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직접 찾아가 소림 권법을 직접 사사받는 과정을 리얼리티로 다루었던 <주먹 쥐고 소림사>는 추석을 맞아, 이번에는 무예 대신 중국 요리 기구인 웍과 칼을 들었다. 월드컵 경기장보다 큰 중국 최대의 식당 '서호루'에 신참 요리사로 들어간 연예인들의 리얼리티이다. 첫 시리즈에 함께 했던 김병만, 육중완과 헨리, 강인, 빅토리아가 새로이 합류했다. 

전직원이 600여명이 넘는 중국 최대의 식당 '서호루'의 신참 요리사로 찾아간 이들에게는 요리사 복장을 전달받는 순간부터 위기가 시작된다. 
청결을 제 1 요건으로 하는 요리사에게, 롹커 육중완의 흩날리는 머리칼과 거뭇거뭇한 수염, 기타를 치기 위해 기른 손톱은 천적이었다. 당연히 이들을 책임진 최고 주방장은 육중완에게 다음 날까지 그것들을 요구한다. 바로 롹커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그것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데 장애가 되자, 육중완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가수로서 정체성을 지킬 것인가, 하지만 그러면 당장 그만 두고 중국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서, 결국 육중완은 수염을 민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듬으며 길러왔던 손톱도 자른다. 
이렇게 비록 예능 프로그램이고, 잠시 잠깐 머무르는 중국의 식당이지만, 육중완은 자기에게 맡겨진 새로운 요리사라는 직책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그의 모습에 주방장은 감동을 받는다. 
그저 독특하게 생긴 가수, 웃긴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넘어, 육중완이라는 캐릭터가 예능을 통해 그의 캐릭터를 지속시킬 수 있는 성실성을 <주먹 쥐고 소림사>를 이어, <주먹 쥐고 주방장>에서 다시 한번 보여준다. 가장 대충할 것 같지만, 한결같이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한껏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육중완이 머리에 비닐을 쓰고, 손톱을 자르고 수염을 밀어도, 김병만의 진정성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수 밖에 없다. <에코 빌리지>에서 하루 안에 땅을 파야 한다니까,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9시간 내내 포크레인을 떠나지 않았던 김병만의 지독한 성실함이 <주먹 쥐고 주방장>에서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한다. 남들보다 키가 작아 중국 전통의 주방 기구인 웍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었던 김병만은 출연진이 철수한 주방에 홀로 남아 웍을 손에 익히기 위해 고심한다.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깔판을 가져다 깔아보기도 하고, 주방에서의 연습이 미흡했던지, 웍을 직접 방으로 가져와 화투장을 담아 연습을 지속한다. 심지어 첫번째 대결에서 허락된 늦잠마저 미룬 채 일어나자마자 웍을 잡는다. 그런 김병만에게 묻는다. 대결 과정에서 누가 김병만의 라이벌이냐고. 앞서 헨리가 키 작은 형, 김병만을 자신의 라이벌로 꼽은 후 이어진 질문이다. 하지만 김병만의 답은 다르다. 그 누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의 한계라는 것이다. 그의 중단없는 도전이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달인'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김병만의 도전은 단지 그의 한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첫번 째 <주먹 쥐고 소림사> 편과 달리, 출연진 대부분이 특정 기획사 소속 연예인들로만 채워진 이번 <주먹 쥐고 주방장> 편은 아쉽게도, 웃음을 주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썩소는 지어질 수 있으되, 흔쾌한 웃음을 줄 수 있는 여지가 한껏 부족했다. 제 아무리 육중완이, 캐릭터 자체로 웃긴다 해도, 그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 김병만은, 아낌없이 자신을 던진다. 일찌기 <개그 콘서트> 달인에서 류담에 낚여 자신을 학대하듯이, 너무 웃음기가 없다 싶자, 머리로 마늘을 깐다하고, 강인이 옆에서 부추키자, 감자도, 무도 머리로 자른다. 600 명의 직원들 앞에서 물구나무 서기 쯤이야 문제도 아니다. 

(사진; 스포츠 서울)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먹 쥐고 주방장>이란 프로그램은, 재밌는 육중완과 제 한몸 아낌없이 던지는 김병만 대신, 헨리를 이번 특집의 주된 주인공으로 삼는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듯이, 이번 특집의 주인공은, 요즘 인기있는 '천재 소년' 헨리이다. 
그런데, 군대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군대 보다도 더 살벌한 요리의 현장인, 그것도 이방인 중국 식당에서, '천재 소년' 헨리가 요리사로 적절한 '에티듀드'를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애초에 천재 소년에게는 요리사로서의, 혹은 이방의 식당의 신참으로서의 '에티듀드'가 필요하지 않다 제작진은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자유분방함이, 예절과 기본적 예의를 뛰어넘을 매력이 있다고 보았을 듯하다. 
하지만, 한 시간 여의 프로그램 동안, 보여진 헨리의 모습은, 자유분방함보다는, 무례나, 불손에 가깝게 느껴졌다. 
육중완과 한 방을 쓰게 된 헨리는, 롹커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수염과 손톱을 가지고 고민할 때, 대놓고 가위질을 손가락으로 해대며 머리를 자를 것을 종용한다. 친한 사이라 해도, 조심스러운 영역인데, 한참 어린 가요계 후배인데, 헨리에겐 도무지 그런 개념이 없다. 
자신과 요리 대결을 벌이는 김병만에게는 대뜸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으르렁거린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보다는, 김병만을 이기지 못하는데 어쩔 줄 몰라한다. 심지어, 김병만을 '키 작은 형'이라 지칭한다. 그 좋은 이름을 놔두고, '키 작은 형'이라니.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헨리처럼 위 아래도 없이 다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존 박 등의 연예인을 보면, 예절이 보수적이다 할 만큼, 깍듯하고, 서로간의 거리가 느껴질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분명한데, 아니, 외국에서 살다온 교포가 아닌,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는 외국인들만 봐도 헨리와는 다르다. 그런데 헨리의 경우는, 자유분방함이라기 보다는 '천방지축'이나, '안하무인'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를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 그의 그런 모습을 외국인들의 자유로움으로 느낄까 오해할 만큼. 

그런 헨리의 천방지축의 모습이 그저 선배 연예인들에 대한 '천진한' 모습에서 그치면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의 그런 모습이, <주먹 쥐고 주방장>의 주된 재미 요소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헨리는 요리사로 들어간 주방에서 다짜고짜 주방에 만들어 놓은 찐방을 그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집어든다. 그 다음, 요리사로 처음 배정받은 양파를 써는 코너에서 제대로 양파를 썰지 않는다. 김병만이 만두를 빗는 걸 부러워 하다, 요리를 하고 싶다며 주방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심지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이것 저것 맛본다. 점심 시간을 앞두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불을 사용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요리사들이 그득한 그곳에서 말이다. 허락도 없이 웍을 잡고 요리를 하는 헨리를 보고 주방장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법규를 위한 것이라며 헨리를 데리고 나온다. 결국 주방장 두 명이 그를 지키고 서있는 지경에 이른다. 과연 이것을 요리사를 하겠다고 중국 최고의 요리집에 간 한국의 연예인들이 보여줄 모습일까. 과연 그런 모습을 '헨리'가 아닌, 우리나라의 다른 아이돌들이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걸 '자유분방함'이라고 흔쾌히 넘어갈 수 있을까? 외국 국적의 연예인에 대한 이 여유로운 잣대의 근저에 놓인 건 무얼까?

그래도 헨리는 열심히 요리라도 하겠다고 하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를 제외한 강인과 빅토리아는 그저 다른 출연자가 열심히 해서 분량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보낼 내용이 없는 것인지, 어늘한 빅토리아의 통역 분량 외에는 그다지 기억에 남을 것이 없다. 아니다, 식용으로 들어온 도살된 양과, 거위, 닭을 보며, '맛있겠다', '삼계탕 먹고 싶다' 등, 제 아무리 식탐이 있다 하더라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반응을 보인 것도 활약이라며 활약이라고 해야 할까? 

산만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소림사의 권법을 익히려고 고군분투하던 개성 강한 연예인들의 분전기를 다루었던 <주먹 쥐고 소림사>에 비해, <주먹 쥐고 주방장>은 마치 천재 소년 헨리 밀착 취재기이에 양념으로 김병만, 육중완이라는 전편에 비해 뻔한, 혹은 심심한 구도가 되어 버렸다. 마치 <진짜 사나이>의 주방 버전이랄까. 하지만 주방의 소년 헨리는 천재라기 보다는 악동에 가까웠으니, 악동이 휘저은 주방은 불안하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김병만의 진정성과, 육중완의 수염까지 깍은 고군분투가 아깝다. 


by meditator 2014. 9. 10. 02:52

매우 심심한 추석 특집 프로그램이 하나 찾아왔다. 

별 거 없다. 50여분의 시간 동안 세 쌍의 노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고즈넉히 담는다. 별 다른 사건도 없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밥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 다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별 다른 일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머쓱해 온다. 사람사는게 저런 건가 싶어 허무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저렇게 함께 친구처럼 나이 들어 가는게 복인가 싶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아름답지만 쓸쓸한 노년의 부부 이야기, <추석 특집 백년해로 참 고마운 당신>이다. 

<추석 특집 백년해로 참 고마운 당신>에는 세 쌍의 노부부가 등장한다. 
첫번 째 부부는 강원도 강릉 성산면에 사는 70년을 살면서도 한번도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동갑내기 심재은(88) 할아버지, 탄용문(88)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는 부부의 삶은 싱겁기 이를데 없다.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본 적 없으며 부부 싸움 한번 한적 없는 이유가 오로지 할머니가 매사에 다 할아버지 뜻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할머니의 해석에, 할아버지는 당신만의 결혼관으로 동문서답한다. 요즘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살다 좋아하는 맘이 없으면 헤어지는데, 그게 말이되냐고, 부부란게 좋든 싫던 그저 함께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대신 혼자 논에 나간 할아버지는 말한다. 땅 한뙈기 없는 자신에게 시집와서, 이 정도의 일가를 이루도록 함께 살아내기 까지 할머니가 참 고생했다고. 그런 할아버지 맘은 할머니를 애써 불러 앉으라며 마련한 마당 한 구석의 비치 파라솔과 테이블로 드러난다. 하지만, 새삼스러운 할아버지 맘은, 어설픈 비치 파라솔 구색이 뒤집어지듯 아직은 할머니에게 닿기엔 어색하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랑 결혼하겠다는 할머니 역시  그런 할아버지의 검버섯이 핀 늙은 등에 지청구 하며 약을 바르는 것과, 늙은 나이에 여전히 일 욕심을 부리는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으로 사랑 표현을 대신한다. 평생 쓰신 할머니의 일기에는 늘 할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가 손수 쓰신 자서전에는 할머니와의 사연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노부부는 기록으로, 기억으로, 그리고 이제 역사가 되어 함께 한다. 

(사진; 연합뉴스)

카메라가 두번 째로 시선을 돌린 곳은 충북 옥천군의 시골 마을이다. 그곳에선 아침 댓바람부터 94세의 차상육 할아버지의 91세 이복례 할머니 찾기가 한참이다. 집 마당에서부터 시작하여, 논으로, 마을 골목골목을 지나, 결국 경로당에서 할머니를 찾아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한다. 이유가 있다. 얼마전 부터 할머니가 치매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를 이유로 대지 않아도, 할아버지는 평생 할머니에게 자상한 남편이었다. 역시나 부부 싸움 한번 하지 않았으며, 욕 한 자락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할머니는 자랑이다. 그 덕인지, 치매 증상이 나타난지 몇 년이 지났지만, 가끔 할아버지랑 먹으려고 맛난 걸 장농 속에 숨겨놓고 잊은 등 건망증 말고는 이렇다할 징후가 없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뇌에 좋다는 호두를 잔뜩 사와서는 할머니에게 깨준다. 호두 알을 손에 한 움큼 쥐어주고 이걸 먹어야 기억도 좋아지고, 망령도 나지 않는다며.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찾아간 곳은 경남 하동군 지리산 자락의 외딴 집이다. 이종수(94)할아버지가 없으면 무섭다는 김순규(93)할머니는 저녁밥을 준비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엌 문 앞을 떠나지 않는다. 모처럼 찾은 막내딸은 이들 노부부의 삶을 소꿉장난이라 표현한다. 평생을 아내의 봉사를 받은 남편, 깡보리 도시락을 싸서, 수천 평의 콩밭, 팥밥을 일구며 허리 한번 펼 사이도 없이 살았던 이 부부는, 노년에, 남편보다 먼저 기력이 쇠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밥을 지어 바치는 일상을 지내고 있다. 자식들이 산을 내려오라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젖는다. 어머니 밥 해줄 기력이 남아있을 때까지만 산에 머물겠노라고. 밥 한 술 뜬 부부는 그것도 힘들었는지 툇마루에 마주 보며 쓰러지듯 잠을 청한다. 다음 날 기력이 쇠해 일어나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할머니 밥해줄 시간이 그리 길게 남아 보이지 않는다. 

노년의 삶은 고즈넉하다 못해 쓸쓸하다. 계절이 젊다는 차상육 할아버지 말에, 이복례 할머니는 그 젊은 계절도 곧 늙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말을 덧붙인다. 늙어도 내년이면 다시 젊어질 것이라고, 할머니는 쓸쓸하게 답한다. 계절은 젊어져도, 사람은 늙어지면 그뿐이라고. 아기같은 웃음을 짓는 김순규 할머니도 말한다. 꽃도, 사람도 한 철이라고. 시인의 비유보다, 한 평생을 살아낸 노인들의 비유 속의 삶은, 더 진솔하다. 그분들이, 바로 그 계절에 빗댄, 꽃에 빗대어진 짦은 생을 거의 살아낸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없어 몸을 재산으로 한 평생을 살아, 굽은 등에, 갈고리 같은 손에, 닳은 손톱을 가진 노인들은, 자연의 부분 같다. 부부란 이름으로 살아낸 그분들의 인생은, 도회에서 아우성거리며 사랑을 논하는 우리네 인생과는 류가 달라 보인다. '가난'이라는, 혹은 그저 '삶'이라는 지게를 함께 지어왔던 동반자일  뿐. 하지만, 그런 노목같은 부부들도, 남편이 만들어 준 나무 비녀를 꼿으며 없는 자신의 머리숱을 부끄러워 하는 할머니에 이르면, 그래도 다시 태어나도 남편이랑 결혼하겠다는 새색시같은 미소를 띠는 할머니에 이르면, 갓 결혼한 신혼 부부 저리 가라하는 '사랑'이 느껴진다.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십년을 살기도 버거운 남남이, 육십 년을 해로하면, 저렇게 은근해 지는 것인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그저 이젠 할아버지, 할머니인 그분들이지만, 우리가 보기엔 친구같은 그분들이, 여전히 남편으로, 아내로 손을 맞잡고 그분들에게 남겨진 삶의 행로를 충실히 마무리하고자 하신다. 

십대의 나이에 부부로 연을 맺어 60년의 세월 이상을 함께 한 세 부부를 조명한, <추석 특집 백년해로 참 고마운 당신>은 기묘하다. 굳이 전통의 삶을 논하지 않고, 그저 90이 넘은 노부부의 일상을 돌아보는데, 새삼,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사랑'이라는 변덕이 죽끓는 듯한 감정을 넘어, 일가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남은 세월을 견뎌 가야 하는가,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 많은 것들을, 50여분의 짦은 담담한 다큐를 통해 무수히 물어본다. 


by meditator 2014. 9. 10. 01:10

추석날 들른 바닷가, 대가족인지, 계모임인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참 신나서 놀이 마당을 펼친다. 노래방 기계의 반주음이 울려퍼지고,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트롯트, 한번도 불러 본 적이 없어도, 딱히 들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어도 너무나 익히 아는 트로트, 전통가요라 불리우는 곡들이 불려진다. 그 노래를 듣던 아이가 말한다.

'그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가나 노래만 부르면 결국 트로트구나'라고. 
그렇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래방을 가면, 결국은 흥이 오를 즈음에 한껏 편하게 불러제끼는 건 트로트, 전통 가요다. 
추석날 저녁, <힐링 캠프> 바로 그 전통 가요만 55년을 부르신 이미자씨가 출연하셨다. 아니, 이분이 <힐링 캠프>에 나오지 않으셨던가. 그간 출연할 만한 사람든 다 나와서, 출연자의 고갈론이 솔솔 지펴지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이미자씨가 이제야 나오셨다니. 
트로트의 여왕답게, 토크 한 소절에, 노래 한 소절, 정말 모처럼 이미자씨의 목소리로 듣는, 동백 아가씨나 섬마을 선생님이 새롭다. 왜색이 짙다 방송 금지곡이 되어, 내 어머니의 흥얼거림으로나 익숙했던 그 노래를 저렇게 들으니, 괜히 감개가 무량하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 어느때보도다, 이미자씨의 노래가 흘러간 추억처럼 들척지근하다. 

이미자씨의 노래인생 50년을 추억하는 노래, '나의 노래'로 시작을 연 <힐링 캠프>는, 엘레지의 여왕 대신에,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하며, 55년의 노래 인생을 살아온 이미자씨의 삶을 역추적한다. 55년의 시간만큼 많았던 이미자씨를 둘러싼 숱한 소문들 중, 애교로 여겨지는 것들이 다시 등장하여, 그것을 통해 소녀 이미자가, 국민 가수, 나아가 민족 가수 이미자로 살아왔던 인생 역정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마치 그 시절 '대한 뉴우스'를 보는 기분으로, 노래 자랑만 하면 달려가 1등을 했던 소녀 이야기에서, 그 상품으로 양은 냄비, 세탁비누 등을 받았다던 이야기에서 부터, 연락을 받기 위해 다방 앞을 전전하거나, 선배 연예인의 머리 속까지 긁어주다 서러워 '주반도주'를 해야 했던 연예 초년생의 고생담이 비록 한 세기도 안되는 시간의 이야기지만,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새록새록 전해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살아온 55년의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노래자랑만 하면 당연히 나가서 1등을 했던, 그녀의 삶에서 2등의 삶을 이해해야 할 시간이 거의 없었음을 자부심 반, 당연함 반으로 내세우던 이미자의 삶은 오히려, 방송 말미, 그녀가 전하는 아주 소박한 '성실성'에서 비롯되었음은 아이러니한 반전이다. 그저 아침 먹고, 점심 적고, 저녁 먹고, 삼시 세때를 또박또박 챙기듯 그렇게 사는 삶이, 뜨개질을 시작하면 모자를 백 개도 떠내고, 조끼를 칠십 여개도 떠내버리는 진득함이, 바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를 55년 동안 구성해온 삶의 내력임을 짦은 시간의 토크를 통해 살짝 엿보게 해주었다. 

(사진; tv리포트)

또한 항상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패티김의 은퇴에 안타까워 하며, 팬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기다린다며 무대에 서야 한다는 남편의 말을 빌어, 아직 은퇴의 염이 없음을 밝히는 노년의 가수에게서는, 여전한 무대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55년을 버티어 온 성실성의 또 다른 진지함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국민이 노래방에 가면 결국 마이크를 들고 트로트를 불러제끼는 현실에서도, 아이돌들의 노래가 범람하면서, 전통 가요의 자리가 위축됨을 안타까워 하고, 랩 등의 장르가 인기를 끌며, 자신처럼 또박또박 가사를 전달하고, 그 정서를 올곧이 전달하는 방식이 한 켠에 밀려남을 '단호박'처럼 요즘 좋아하는 노래가 없다는 말로 안타까움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한번도 애써 배워보지도 않았음에도 어린 시절 어른들이 즐겨 듣고, 부르시는 것만 보고 자란 것만으로도 '황성 옛터'란 노래가 가끔은 울컥하게 느껴지고, '동백 아가씨'가 정겨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저 어머니가 좋아하셔던 가수, 이미자가 아니라, 55년을 한결같은 성실성으로, 아직도 전성기 못지 않은 가창력을 뽐내는 이미자에게, 이젠 새삼스레 친근함과 그녀의 55년을 구성해 왔던 시간을 이해하면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생긴다. 모처럼 추석의 정서가 제대로 되살아난 <힐링 캠프> 였다. 


by meditator 2014. 9. 9. 11:26

연예인 남녀가 만나 가상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프로그램만 해도 벌써 몇 개째인가? mbc의 <우리 결혼 했어요>이 화제를 끌기 시작하더니, 케이블에서는 글로벌 편이라 하여, 일본과 대만의 연예인들과 우리 아이돌들이 신혼을 꾸린다. 그런가 하면, jtbc의 <님과 함께>에서는 돌싱과 상처를 한 사람에게까지 '재혼'의 혜택이 주어진다. 결혼의 혜택만 주어지는 게 아니다. jtbc의 <대단한 시집>에서는 젊은 여자 스타들에게 시집살이를 미리 시켜보기도 하고, 연예인들끼리 가족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 일반인 가족에 뭍어 며칠을 사는 <우리집에 연예인이 산다(mbcevery1)>까지 있으니, 남남북녀의 결합에, 남한의 언니와 북한의 동생이란 조합이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다. 오히려 하다하다 이젠 '탈북자'까지 예능에 끌어들이나 싶어 색안경까지 끼고 보게 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막상, 추석 특집으로 마련된 <한솥밥>은 남북한 화합 프로젝트 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예인들의 말처럼,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 새터민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장막을 한 겹 들어내는 것에는 영향을 미친 듯하다. 


'탈북자'는 공식 명칭이 아니다. 1997년 제정된 법률은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에게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했고, 다시 2005년 보다 긍정적 의미를 강조한 '새터민'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공식 명칭이 된 새터민을 아직도, 관슶화된 단어 '탈북자'로 방송 내내 지칭하는 것처럼, 추석 특집 <한솥밥>의 경우,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진의 마련이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출연하는 새터민도 그렇다. 김정일 앞에서 가무를 선보이던 소품조 출신의 아기 엄마 한서희와, 평양 영화 음악 방송단 가수 출신 명성희는 말이 새터민이지, 외모며 출중한 노래실력이 우리나라 연예인 저리 가라다. 일반적인 새터민이라기 보다는 북한의 연예인과 남한의 연예인이 만나, 가상 가족을 이루고, 가상 결혼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는게 맞아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가족'과 '연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정서가 그러하듯, 그들이 북한의 연예인이건, 남한의 연예인이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빚어내는 화학적 작용은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런 선입관의 장벽을 스르르 무너지게 만든다. 의지가지없는 남한에서, 여전히 북한의 육아 방식을 고집하는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을 줄 '언니'가 절실한 한서희의 슈네 1박2일과,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홀홀단시 남으로 내려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명성희의 장동민네 시집살이는 남과 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주는 감동을 만끽하게 한다.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아이에게 주고, 간식으로 문어 다리를 쥐어주는 엄마에게 질색하는 한서희에게, 요즘 귀염둥이 딸들로 인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슈네 집 방문의 기회가 주어졌다. 남한식 육아에 대한 기대로 부푼 마음을 안고 슈네 집을 방문한 한서희, 하지만, 쌍둥이에, 유치원생 남자 아이를 둔, 자유방임형의 슈식의 육아법이 문화 충격이다. 
세 아이를 둔 슈는 그녀의 '말대로' 일일이 먹여줄 수 없어서 비닐을 쫘악 깔고, 음식을 늘어 놓은 채 아이들이 스스로 손을 이용해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또 송편 만드는 과정 등에,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만 맘껏 참여하게 만든다. 당연히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과정은 먹는 거 반, 흘리는 거 반, 심지어 밟고 깔고 앉기까지 한다. 말이 송편이지, 그야말로 쌀가루 범벅이다. 하지만 이것을 슈는 오감 체험법 육아라 주장한다. 

(사진; 마이데일리)

그에 반해 한서희는, 집에서 그랬듯이 직접 수저를 들고 떠서 아이에게 먹여준다. 남과 북의 이질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서희가 이전의 우리네 엄마들의 육아법에 가깝고, 슈가 이른바 요즘 최신식 육아법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밥알 한 톨이라도 흘리는 것을 아까워한다는 한 마디가 새삼스럽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음식을 흘리는 것이 큰 흉이 되어, 아이들이 먹다 흘리면, 그것을 엄마가 주워먹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세월이 풍족해 져서, 지천에 음식을 흘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서희의 그 지적은 여전히 북한에서는 물론 아프리카에서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 세상에서 뼈저리다. 

그런 식이다. 이제는 대놓고 우리보다 못사는 북한에서 온 한서희가 문화 충격인듯 받아들이는 슈네 최신 육아법에는 변화된 '남한'의 문화가 정서를 발견하게 된다. 아깝지 않은 먹을 거리도 그렇고, 예절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먼저인 육아의 정서가 바로 그것이다. 대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주도성과 긍정성을 얻는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예전에 비해 얼마나 잘 살게 되었으며, 얼마나 아이들을 때로는 자유로움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 중심의 세상을 꾸리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그런 '슈'네 집 최신 육아 방식이, 남한의 문화가 갈급했던 한서희에는 오아시스같아 보인다. 아마도 집에 돌아간 한서희는 북한식, 아니 어찌보면 우리네 전통의 육아 문화를 고집하는 엄마와 더 치열하게 전쟁을 벌일 것이다. 

문화적 충격으로서의 육아 전쟁과 달리, 명성희가 찾아 들어간 장동민의 대가족은 시종일관 훈훈함을 놓치지 않는다. 이상형으로 현빈과 송승헌을 꼽은 명성희가 장동민을 보고 받은 정신적 충격도 잠시, 이제는 이방의 신부가 하는 게 더 어울릴 북한의 명성희를 품은 장동민의 가족은 넉넉한 품을 보여준다.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아버지였지만 이제는 돌아가시고 안계신, 북한식의 꾀고리 발성법으로 주체사상만을 노래하는 그곳이 싫어 평양 상류층의 생활을 마다하고 엄마와 둘이 남한으로 넘어온 명성희에게 부모님은 물론, 누나와 조카, 심지어 아는 동생들까지 함께 사는 그 기묘한 가족구조가 신의 한수로 작용한다. 

만나자마자 2세를 계획하는 섣부른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았던 것과 달리, 우리가 예능을 통해 알던 막말을 마다하지 않는 '무뢰배' 였던 그의 캐릭터와 달리,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장동민은 명성희에게는 푸근한 보호자같았다. 그리고, 상견례 자리에서 시집살이, 시누이 살이의 걱정을 자아내던 대가족은 오히려 그녀가 머무는 1박2일동안, 그녀에게 잊었던 가족의 정서를 한껏 발산한다. 시아버님은 그녀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할테니 마음 놓고 기대라 하고, 어린 조카들은 이쁜 숙모에게 사랑이 담긴 스케치북 공세를 마다하지 않는다. 성격좋은 하숙생들은 마음 넉넉한 시동생들같다. 

화려한 화장을 하고 등장했던 명성희의 다소곳한 반전도 흥미롭다. 장동민의 외모에 충격을 숨기지 않고, 결혼을 해도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던 강단있는 의사 표현과 달리,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자기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새벽 잠을 포기하기를 마다치 않는다. 

'탈북자'라는 말하기도 어색했던 어감의 젊은 엄마 한서희나, 새신부 명성희의 1박2일은, 가장 이질적인 그들이 아닐까 라는 우려와 달리, 그 어떤 외국인보다도 친근한 그저 우리와 다르지 않는 같은 민족임을 깨닫게 해준다. 오히려 '금강산'을 노래한 가곡을 부르며 이슬이 맺히는 한서희의 눈가와, 생일 파티를 준비한 가족들에게 감동한 명성희의 촉촉한 눈빛에서, 고향을 잃은 또 다른 실향민의 아픔이 전해져 온다. 훈훈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 가슴아픈 추석 특집 프로그램이다.


by meditator 2014. 9. 6. 13:25

9월 4일 <조선 총잡이> 마지막 회,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후 겨우 목숨을 건진 박윤강(이준기 분)과 정수인(남상미 분)은 산채를 꾸려 사람들과 생활을 한다. 고부에서 탐관오리 군수가 백성을 괴롭힌다는 소식을 들은 윤강은 부하들을 이끌고 출동하고, 고부 군수 조병갑은 '총잡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혼비백산 하는 걸로,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고부 군수 조병갑이라? 다름아닌 동학 농민 전쟁의 도화선이 된 바로 그 고부 민란의 그 문제적 인물 아닌가? 그렇다면, 그 조병갑을 혼내주러 온다는 박윤강은? 전봉준이 되는 것인가? 아니, 말을 타고 총을 쏘며 나타나는 의적 전봉준이라니? 
이렇게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아는 역사적 사실에, 의인 박윤강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조선 총잡이>는 마지막으로 무리수를 둔다. 하지만, 어쩌면, 이 마지막 회의 무리수는, <조선 총잡이>란 드라마를 내내 지탱해 왔던 딜레마의 한 증표일 뿐일 지도.

가장 전근대적인 국가 '조선'과, 근대적인 무기 '총잡이'를 역설적으로 합침으로써, <조선 총잡이>는  근대의 물결에 휘말린 조선 말기 인물의 드라마틱한 삶을 그리고자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조선 제일의 무관인 아버지를 둔 아들이,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나서지만, 그 또한 아버지를 저격했던 자들에 의해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 만다. 바로 그때, 운명적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준 인물이 바로 김옥균! 그렇게 박윤강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본에 보내지고, 근대적 인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에 반해, 어찌보면 운명적으로 개화를 선택하게 된 박윤강과 달리, 일찌기 통역관으로 외래의 문물에 일찌기 눈을 뜬 아버지 덕분에, 조선 말기 '신지식인'으로 활약하는 박윤강의 사랑 정수인의 경우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개화파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권신의 서자로서 태생적 한계를 개화 사상과 일본 유학을 통해 풀어보려 했던 김호경(한주완 분)이야말로 어찌보면 가장 개화파의 전형적 인물에 가까운 모습이다. 

뜻하지 않게 김옥균의 도움으로 일본을 가게 되어 운명적으로 개화적 인물이 된 박윤강과, 철학적 세계관으로 자기 확신이 확고했던 정수인,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그들의 활약은, 임오군란,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의 조선을 살아낸 현실적 인물이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사극의 주인공으로서 정의로운 의인과 그가 사랑한 강단있는 여인의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한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이렇게 전형적인 두 주인공 덕분에, 고생하는 것은 역사가 된다. 개화적 인물이 된 두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드라마 중후반에 이르도록 드라마적 갈등의 구도는 마치 정조의 현신인 듯 개혁 군주로서의 포부를 지닌 고종과, 그에 대립되는 척신 세력으로 이어진다. 개화파에 속하는 주인공들, 심지어 신식 군대 별기군에 중요 직책을 맡은 김호경 덕분에, '임오군란'은 척신들의 손아귀에 놀아난 구식 군대의 해프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척신들의 전횡에 대항하여 자신의 세력으로 개화파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던 고종 캐릭터는, 무기력한 그의 역사적 현실로 인해, 드라마의 중반 이후 방향을 잃는다. 오죽하면, 마지막 회, 갑신정변을 겪고 갑오개혁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그 승인의 이유가, 더는 자신의 주변 인물이 자기로 인해 죽기를 원하는 않는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상을 가진 초라한 인물로 귀결된다. 
명성황후 역시 마찬가지다.  개화 세력인 수인을 자신의 측근으로 들이는 등 개화 세력에 친근한 인물이었다가, 정작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권신 영의정을 활용해 청국군을 불러 들이는데 앞장서는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하지만, 명성황후의 취약한 외세관은 드러나지 않은 채, 현명한 국모이거나, 지아비인 고종을 대신할 만한 강단있는 리더의 모습으로만 그려지기 십상이다. 
이런 고종의 모습이 옳다거나, 저런 명성황후의 모습이 맞았다가 아니라, 드라마가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주인공들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역사적 인물을 일관성 없이 편의적으로 재해석해 냈다는데 <조선 총잡이>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개화기의 문제적 인물 김옥균으로 가면 한술 더 뜬다. 우리 역사에서 실패한 혁명으로 규정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그는, 박윤강을 구해 일본으로 보내준 의인이었다가, 드라마 후반 등장하여, 박윤강, 정수인과 함께 개혁을 추진하는가 싶더니, 갑신정변 과정에서, 느닷없이 주인공들을 배신한 채, 무모한 개혁을 시도하는가 싶더니, 그 마저도 주인공은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상황에서 비겁하게 일신의 안전만을 도모한 비겁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역사적으로 '갑신정변'은 일본 유학등을 거쳐 개화에 눈을 뜬 급진적인 신진 엘리트에 의해 주도된 하향식 개혁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이들의 급진적인 성향에 '정변'으로 불을 붙인 것은, 명성황후의 측근인 민영익과, 명성황후의 '변심'이다. 이들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이들의 후원을 얻어 정권의 힘을 확장시켜 나갔던 이들이, 자신들의 권력의 편의에 따라, 급진 개화파인 김옥균 등을 소외시킨데서 '갑신정변'의 단초는 마련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개혁 세력인 김옥균은, <조선 총잡이>에서 비겁한 권력욕을 가진 사람으로만 그려진다. 그럼으로써, 이들과 함께 한 박윤강, 정수인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윤강과 정수인은 김옥균등이 인지하지 못한 '신분제 타파' 등의 갑오개혁의 진정성을 실천하고자 한 혁명적 의식의 소유자이며, 김옥균등이 깨닫지 못한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위험성을 미리 간파한 현자들이다. 박윤강과, 정수인은 비록 갑신정변에 합류했지만, 당시 급진적 개혁 세력들이 가진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은 인물들로, 덕분에 그들은, '갑신정변'의 주역이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되어, 그들이 도모한 정변의 책임을 모면해 갈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완벽한 역사적 인식을 가진 인물들로, 역사적 원죄를 뒤집어 쓸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앞장서 왕과 왕비를 궁궐 밖으로 유인하고, 그를 위해 폭약을 폭파하려던 시도를 하기까지 한 이들은, 김옥균 등의 오판으로 실패한 '개혁'에 대해 그 어떤 죄책감이나, 반성도 없이, 다시 한번 '백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전봉준같은 식이라니? 역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만, 개화파의 사상적 계보를 그나마 가지고 있는 조선 말기의 운동 방식이라면, 그나마 '애국 계몽 운동'이 어울릴 법도 하건만, 가장 이질적인, 동학 농민 운동이라니? 그것도 쾌걸 조로식으로 총을 들고 악인을 혼내주러 출동하다니 말이다. 역사적 패러디라 해도, 이건 '썩소'를 불러올 상상력이다. 

애초에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의 도움을 받아, 일본인으로 행세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박윤강이 어떻게 그리 현명한 일본관을 가질 수 있었으며, 고종의 청조차 마다한 채 아비의 원수를 갚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던 그가, 어떻게 갑자기 '민중의 대변자' 연 하며 갑신정변의 성격을 확대시키는지, 드라마는 타당한 설명을 부여하지 못한다. 아비의 죽음을 고민하는 과정에 척신들의 권력에 항거한 거까지는 맥락이 닿지만, 그것이, 이후의 개화파의 한계를 뛰어넘는 '의인'으로서 박윤강을 설명해 내기에 드라마의 전개는 역부족이었다.  

조선 말기, 가족적 상처를 입은 젊은이가 뜻하지 않게 개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어 '갑신정변'에 이르게 된 젊은이를 그리고자 한 역사적 상상력은 그간 드라마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반가운 시도다. 하지만 친일과, 개화라는 우리 역사가 가졌던 딜레마를 소화해 내기에 <조선 총잡이>버거워 한다.  개화기의 지식인으로 그리자니, 그의 결말이 김옥균과 같은 친일파가 되어야 할 것같고, 그렇지 않은 인물로 표현하려니, 역사적 현실성을 상실한 뻔한 영웅이 되고 만다. 

역사를 극복하는 것과, 역사를 윤색하는 것은 다르다. 역사적 인물로서, 당대를 살아낸 인물로서의 현실감을 놓쳐서는 안된다. <조선 총잡이>의 박윤강은, 해석으로서의 역사보다는, 역사를 밑밥으로 한 영웅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차라리, 박윤강이 김옥균처럼, 한정된 역사 인식으로 인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면, <조선 총잡이>의 운명적 정취는 한결 배가되었을 것이다. 총알도 피해가는 고수 총잡이의 비현실성이 드라마의 전개 속에서까지 이어진듯한 드라마, <조선 총잡이>, 그래서 아쉽다. 


by meditator 2014. 9. 5. 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