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은 영화 평론가이자, 기자이다. 하지만 일찌기 tvn의 <시사콘서트 열광>을 통해 거침없는 입담을 선보이기 시작하여, 이제 <썰전>등의 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싱글족이다.

mbc다큐 스페셜은 바로 우리 시대 대표적 싱글족인 허지웅을 내세워 이제는 보편적 존재가 된 1인 가구, 그리고 1인 가구의 식사 행태인 '혼자 먹는 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시작은 혼자 사는 허지웅이 밥을 찾아 식당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수 중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이제 거의 네 가구 중 한 가구, 즉, 전체의 25.9%를 차지할 정도로 보편적 증상이 되어가고 있는 이 즈음, 하지만, 여전히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보편적'인 증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자신을 위한 푸짐한 한 상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혼자 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의 이목을 덜 받는 시간을 택해 식당을 찾아들거나, 식당에 가더라도 주로 '2인분'이상을 요구하는 메뉴 덕분에 원치 않는 음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위한 식당은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지만, 아직도 혼자 밥을 먹는게 용이하지는 않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는 지적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해온 방식이 늘 무언가를 함께 하면서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적 방식이었기에, 그런 지금까지 관성들을 거스르는 삶의 존재 방식이 인간 전체 문화에서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더구나, 집단주의 문화가 아직도 강고하게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외국인들조차, 혼자 밥을 먹는데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사진; 마이데일리)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 먹는 밥'이 줄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혼자 먹는 밥'에 대한 사고 방식도 전환되어 간다. 2013년 기준, 빅데이터의 조사 결과, sns 상에서 사람들은 이제 '혼자 먹는 밥'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서러워하는' 대신 떳떳하게 인증하고 긍정적으로 사고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혼자 먹는 밥'의 행태가 용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먹는 밥'의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에 대해 <mbc다큐 스페셜>이 꼽고 있는 것은, 바로 [단속 사회]를 통해 저자 엄기호씨가 진단한 우리 '소통'이 끊어진 우리 사회 현실과 다르지 않다. 즉,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관계는 단절시킨 채, sns를 통해 소통한다.

<지금 혼밥하십니까>에 등장한 싱글족도 그렇다.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사진부터 찍어 sns에 올려 소통하는 그는, 전형적인 '단속 사회'의 일원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과 교수는 진단한다. sns 상의 소통은 심리적 품앗이와 같다고. 즉,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을 때, 서로 괜찮다. 공감한다 하며 댓글을 달아주는 sns의 형식은, 바로 심리적으로 거들어 주는 행위 양태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심리적 증상의 결과로 등장하게 된 것이 '혼밥'이라고 다큐는 정리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관계의 소통 대신, 인터넷 공간의 심리적 위로를 택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지금 혼밥하십니까>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한다. 밥을 먹는 행위조차, 일련의 사회적 행위가 된 사회에서,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위로나 소통 대신, 경쟁과 일을 위한 협업의 도구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홀로 밥을 먹기를 택한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 그 누구의 눈치도, 간섭도 받고 싶지 않을 때 홀로 밥을 먹는다고 말한다.

 

물론 이렇게 스스로 택한 혼밥족과 달리 사회 경제적 이유로 불가피하게 '혼밥'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다큐는 짚는다.

식당에 들어가자 마자 사진부터 찍어 sns에 올리던 청년은 입사 지망생이다. 아직 사회적으로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그의 존재가 그를 '혼밥'하게 만든다. 이렇게 일인 가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신분을 차지하지 못한 이른바 88만원 세대들의 혼밥은 고달프다. 편의점의 3000원 짜리 도시락이 가장 풍요로운 영양 공급원이 되거나, 인스턴트 즉석 요리들이, 그의 싱크대 선반을 채우기가 십상이다. 인디 밴드의 멤버들에게는 동료와 나누는 밥 한끼가, 곧 그들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무기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동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젊은 밴드원은 싱크대에 홀로 서서 먹는 '혼밥'을 택한다.

 

<지금 혼밥하십니까>는 이제는 트렌드가 된 '혼밥'을 트렌디한 존재가 된 허지웅을 내세워 트렌디하게 접근한다. 다큐에서 등장한 '혼밥'은 '혼밥'이지만, 실상, 그 혼밥은 우리가 sns상에서 쉬이 만나는, 사진 속의 '혼밥'이다. 물론 모델 지망생이나, 인디 밴드의 현실을 짚어가며, 혼자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경제적 이유를 짚어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다큐의 톤은 트렌디하다. 거기에서 대한민국 일인 가구 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나이든 사람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덕분에, '혼밥'은 트렌디한, 혹은 불가피한,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젊은이들의 행동 양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전체 '혼밥'의 한 부분일 뿐이다.

 

사회적 양식이 되어가는 '혼밥', <지금 혼밥하십니까>는 그 사회적, 심리적, 그리고 경제적 원인을 다양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다큐 속 드러난 '혼밥'은 삶의 행태가 달라지면서 등장한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작 일찌기 '혼밥'을 먹어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외려 '독거노인'을 비롯한 혼자가 된 어른들이다. 그저 이제 나이가 많건, 적건 혼자 살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편적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by meditator 2014. 9. 30. 10:23

28일 11시 30분 kbs1tv를 통해 방영된 <kbs특집 다큐-섬의 선택, 다리의 두 얼굴>은 지난 17일 kbs 광주 방송국을 통해 방영된 후 호평을 받아, kbs1을 통해 전국에 방영하게된 작품이다. 


'연륙교',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전체 섬 3천3백39개 중 65%인 2천2백19개가 몰려있는 전라남도, 그 중에 104개의 연륙교가 놓이거나, 놓일 예정인 상황에서, kbs광주 총국은 연륙교가 놓인 후 변화된 섬의 사회상을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한 섬들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과연 연륙교가 섬의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되짚어 본다. 

최초의 연륙교는 무려 80년 전 부산에 놓인 '영도다리'라 불리는 영도 대교이다. 그 이후 숱한 연륙교, 혹은 연도교가 놓여지고, 놓여질 상황이다. 정부와 각 지방 자치 단체는, 국토 개발 방안의 일환으로 연륙교를 접근한다. 
육지에서 공간적으로 소외된 섬주민들의 소원은, 의료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섬 생활의 편의가 대부분이다. 응급 환자가 생겨도 헬기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 육지와 이어지는 다리는 섬이 상징하는 '고립'을 해소하는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다. 
뿐만 아니라, 육지와 이어진 다리를 통해 유입되는 외부 사람들은, 한정된 경제 자원에 기대어 살아가는 섬 경제의 희망이기도 하다. 
또한 농촌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문제로 고민이 깊어가는 섬 주민들에게서, 육지로 나간 자식들이 그 이어진 다리로 돌아올 기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주민들의 기대와 달랐다. 
다리로 육지와 이어진 '슬로시티' 증도, 하지만, 증도는 올해 가까스로 '슬로시티'의 명예를 이어갈 수 있었다. 육지와 고립된 삶이 가져온 , '슬로우 라이프'의 장점이 점점 없어져 가기 때문이다. 
증도의 빼어난 자연환경이 입소문을 타고, 외지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를 가지고 다리를 건너왔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건, 증도가 소화해 내지 못할 쓰레기이다. 하루에 열 차례를 치워도 끝없이 나오는 쓰레기는 쓰레기라기 보다는 증도의 자연을 훼손하는 재앙에 가깝다. 
그렇다고 엄청난 쓰레기를 남기는 만큼 경제적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이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나아졌다는 중론이기는 하지만, 섬의 곳곳에, 다리가 생기기 이전에 잘 운영되던 작은 식당들이 문을 닫은 모습이 눈에 띤다. 배로만 이곳을 다닐 수 있던 시절, 사람들은 배를 타고와, 쉽게 나가기 힘든 이곳에 머물며, 이곳의 식당을 이용했다. 하지만, 다리가 생긴 이후 사람들은 차를 이용해 먹을 꺼리를 싸들고 와, 먹고 쓰레기만 남기고 떠난다. 


또 다른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다. 연륙교, 육지와 연결되었다, 아니 육지가 되었다 좋아했던 주민들이 이제 그 다리를 통해 육지민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거가대교'를 통해 부산과 불과 40분 거리가 된 거제도, 이제 거제도민들은,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장을 보러 나간다. 그 덕분에, 거제의 상권을 심대한 타격을 받는 중이다. 

그렇다고, 섬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사람들이 섬으로 유입되지도 않는다. 자식들은 이제 다리로 연결되었으니, 언제든 부모님들을 보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예전보다 소원해졌다. 다리가 연결 된 후, 사람들이 유입되기는 커녕, 섬 인구는 오히려 줄어드는 형편이다. 섬이 육지가 된 것이 아니라, 다리가 육지로 나아가는 보다 용이한 통로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섬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국토 개발'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이미 시행착오로 결론난 일본이 밟았던 전철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연륙교 연결이 빈번하게 시행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폐해를 겪으면서, 일본 자체 내에서는 연륙교 연결 방식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 지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문화유산이 있는 사슴이 뛰어노는 가고시마 섬의 경우, 겨우 1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는 거리에 있음에도, 섬의 문화재와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연륙교를 거부한 케이스다. 지방 자치단체에서 연륙교를 건설한 곳은, 연륙교 통행료를 설정해, 유입 인원을 제한하고자 한다. 

연륙교 건설에 따른 명암에 대해 연구진은 무엇보다, 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느냐가 고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섬은, 그저 또 하나의 땅이 아니라, 육지와 고립되면서, 각자의 특성을 가지면서, 살아남은 존재로, 섬의 존재론에 대한 고민은, 바로 , 이런 섬만이 가진,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대안을 모색하는 섬도 있다. 예전 섬 주민들이 다니던 길 '비렁길'이 트레킹하기에 좋은 곳으로 소문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금오도는 주민들의 결의로 연륙교를 거부했다. 쓰레기 더미 대신, 자연 훼손 대신, 불편함을, 금오도의 정취를 택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소득도 있다. 작지만 알찬 학교로 소문난 금오도의 고등학교에 도시의 아이들이 찾아오고, 고립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다리 대신 배를 타고 금오도를 찾는다. 

그저,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편리한 다리, 그 이상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연륙교, 하지만, 무심쿄 건설된 다리 하나가, 섬 하나의 운명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 놓을 수 있다는 걸 <섬의 선택, 다리의 두 얼굴>을 통해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저  또 다른 '땅'인 섬이, 삶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또한, 여전히 '국토 개발'의 관념에서 한 치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 행정의 한계가 이젠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스스로 대안을 모색해가는 주민들의 선택이 한줄기 희망처럼 빛난다. 


by meditator 2014. 9. 29. 12:30

tvn의 <인현왕후의 남자>나, <나인>을 재밌게 봤던 독자들은, 이제 7회를 방영한 <삼총사>가, 송재정 작가와 김병수 연출의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이른바 '닥본사'를 해왔다. 하지만, 7회에 이르기까지, <삼총사>는 <인현왕후의 남자>의 절묘한 러브스토리나, <나인>의 운명론적 스토리의 매력을 맛보기 힘들었다. 액션 활극을 내세웠지만, 액션은 둔감했고, 활극에 걸맞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맥을 못추는 시청률만큼이나, 애청자들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7회에 이르러, <삼총사>는 비로소, 이 드라마의 숨겨진 매력을 드러냈다. 7회를 견뎌온 호청자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듯이. 


무엇보다 <삼총사>가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게 된 데는 명청 교체기의 조선에서 각 권력들의 자기 입장이 분명해지면서, 그 대립각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삼총사'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진; tv리포트)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등극했던 중심 세력인 김자점(박영규 분)은 소현 세자(이진욱 분)를 만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소현세자의 아버지, 인조가 왕이 될 깜냥이 아니라는 자기 의견을 드러낸다. '광해을 몰아내고, 임금을 만들었더니, 광해만도 못하다'는 김자점의 생각은, 비록 그의 사저에라도, 한 나라의 세자 앞에서 드러낼 사견이 아니라, 신하로서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정의 주역이었던 그는, 지금의 왕조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자부심과, 그래서 다시 언제라도, 아니 언제까지나 권력의 '뒷배'가 되겠다는 야심을 마구 드러낸다. 세자전의 상궁을 포섭하여, 용골대가 머무는 방의 자물쇠를 바꿔 버리는 노골적인 행동을 보인 김자점은 청에 대한 세자와 자신의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자신과 손을 잡을 것을 세자에게 종용하고, 그 결과를 만 하루 안에 줄 것을 요구한다. 

김자점을 야심을 알게 된 세자는 결코 김자점이 함께 할 수 없지만, 용골대를 세자전에 숨겨둔 처지에서 뾰족한 묘책이 없어 고민한다. 그때, 세자와 칼을 겨누며 맞섰던 박달향(정용화 분)이 찾아와, 미령 혹은 향선(유인영 분)의 소재를 알려주고, 세자는 한 달음에 그녀를 찾아간다. 

6회에서, 7회 초반의 내용은, 마치 세자가 스파이가 되어 나타난 첫사랑을 못잊어 다시 찾아가는 듯한 스토리의 전개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줄곧 그 존재가 의문이었던, 세자빈에 간택되었으나, 세자에게 스스로 목을 매달 것을 명령받은 여인 미령, 아니 사실은 향선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녀와 세자의 애증어린 독대를 넘어선, 김자점과 소현 세자, 그리고 그의 측근인 주화파 최명길과 익위사 허승포(양동근 분), 안민서(정해인 분) 그리고 박달향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드라마 <삼총사>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용골대를 자신의 처소에 숨긴 세자는 김자점의 손아귀에 놓인 처지이고, 그의 고변에 따라 의심이 병적인 왕의 눈밖에 나는 건 시간 문제인 상황을 과연 세자와, 그의 측근들이 어떻게 역전시키는가가 '포인트'였다.
그 지점에서, <삼총사>는 소설<삼총사>의 속고 속이는 파워 게임 못지 않은 흥미진진한 반전을 선보인다. 
안그래도 의심병이 강한 인조는 드디어 세자를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궁에 머물지 않은 세자를 의심해 세자빈을 찾아 닥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등장한 박달향은 세자가 그간 투전판에 몰두해 있으며, 투전판에서 의문의 양반에게 칼을 맞아 피을 흘린 채 정신을 잃었다고 고한다. 그리고 그 시간, 세자의 전갈을 받고 향선의 처소를 찾은 김자점은 거기에서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는 세자를 발견하고 그를 찌른 칼을 발견해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그곳에 궁의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절묘하게도, 김자점은, 세자와 함께, 투전판에서 셈을 논하다 세자를 찌른 높으신 양반네의 혐의를 받게 된다. 또한 그런 김자점의 혐의를 더하기 위해, 허승포와 안민서는 잃은 돈을 찾아내라며 김자점의 집을 뒤집고.
이런 기막힌 삼총사와 박달향의 활약에 힘입어, 위기에 처한 소현 세자는 무사히 궁으로 돌아와 치료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김자점의 농간에서 놓여나, 오히려 그의 집 병풍 뒤의 벽장 안에 숨겨놓은 서신으로 그의 목을 죄는 역전된 처지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삼총사>는 이런 극적인 스토리의 재미를 넘어서, 고지식한 애송이 무사 박달향을 통해, '애국'의 의미를 되짚고자 한다. 신하로서 임금의 명을 받들어 수행하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전부라 생각했던 그는, 적국의 장수를 숨기면서까지 전쟁을 막고자 하는 소현 세자와, 나라의 위기와 상관없이 권력이 중심을 놓치고자 하지 않는 김자점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 진다. 

(사진; osen)

물론, 여전히 아쉬운 점은 남는다. 박달향과 최명길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소현 세자의 애국론은, 막상 그와 향선의 만남에선 죽음을 각오한 채 다시 돌아온 첫사랑의 그녀와 그녀를 잊지 못한 세자만이 드러났을 뿐, 나라를 생각하는 세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드러나지 않은 채 박달향의 후일담으로만 전해진다는 것이다. 즉, 역시나 죽음을 각오하고 첫사랑을 다시 찾아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세자의 '애국관'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과정에서 드러났으면 하는 '사족'으로서의 아쉬움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사족'을 덧붙인다면, 아직도 양념으로만 쓰이는, 양승포, 양동근의 존재이다. 모처런 연기로 돌아온, 양동근, 그는 계속, 극의 긴장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긴장을 풀어주는 조연으로만 쓰여질 것인지하는 아쉬운 의문이 남는다. 허긴, 어디 양동근 뿐이랴. <정도전>에서, '이인임'으로 인생 연기를 보여준 박영규나, 공민왕으로 뚜렷한 궤적을 남긴 김명수가, 전작 캐릭터의 복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채 머물고 있는 점도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기는, <삼총사>의 화룡점정이다. 

하지만, 7회 정도만의 박진감넘치는 스토리와, 재미를 이어간다면, 침체된 <삼총사>는 제작비를 다 어디에 썼느냐는 오명을 벗은 채 시청자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9. 29. 10:14

첫 번째, 매주 목요일 밤 11시 tvn을 통해 방영되었던 <잉여 공주>가 조기종영하기로 확정되었다. 애초에 14부작으로 기획되었던 <잉여공주>는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4부를 줄여 10부작으로 마무리짓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두번 째, 9월 16일 <아홉수 소년> 게시판엔 이 작품이 대학연합 동아리의 <9번 출구>와 유사하다는 의문이 제기 되었다. <아홉수 소년>의 제작사 측은, 이에 대해 이미 2013년 겨울부터 기획되었고, 2014년 1~2월에 최종 시놉시스가 완성되었기에, 표절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제작진의 의견에 대해, <9번 출구>의 이정주 작가는, <9번 출구>가 이미 2013년 9월부터 공연되었고, 기획은 그 이전에 이미 이루어 졌기에, <9번 출구>를 참조하지 않았다는 <아홉수 소년> 제작진의 의견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세번 째, 일요일 밤 9시 20분, 시즌제를 주창하며 100억 블록버스터 대작이라 홍보를 했던 <삼총사>의 궤적이 미미하다. 야심차게,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모티브로 하여, 조선 인조 때 소현 세자와 그 주변인들을, '삼총사'로 엮어, 무협 활극을 주창했던 드라마 <삼총사>는 일요일 밤 단 한 번의 방영이 무색하게, 느리 전개와 지지부진한 스토리로, 작가의 전작 <나인>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네번 째, 월요일 밤 <마이 시크릿 호텔>, 킬링 로맨스를 내걸고, 추리극과 로맨스의 콜라보레이션을 주창하던 이 드라마는, 하지만, 연속적으로 살인이 이루어 지는 것과 달리, 극중 추리극의 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중론이다. 

(사진; osen)

위의 네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거나, 애초에 내걸었던 취지를 도달하지 못한 채 표류하거나, 심지어 조기 종영 사태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젊은 사람들 중에는 채널을 아예 tvn에만 고정시켜 놓고 본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열성적인 독자를 모았던 tvn 드라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애초에, 공중파 드라마를 상대로 tvn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과 같은 연애 드라마를 통해서 이다. 이들 드라마를 멜로 드라마라고 하지 않고 , 굳이 어색한 '연애' 드라마라고 지칭한 것은,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사랑에 이르기 까지, 남녀의 연애 과정을 미시적으로 천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쁜 색지라도 한 겹 덧댄듯한 뽀사시한 화면, 거기에 한껏 트렌디한 패션으로 등장한 남녀 주인공들의, 다종다양한 종종 19금을 불사하는 진솔한 연애 담론이, 로맨스 물에 갈급한 젊은 층의 취향을 정확히 조준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인기를 끈 연애 드라마들은, 이제 kbs2의 <연애의 발견>처럼, 공중파 드라마에까지 진입하며, 그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tvn을 전성기로 이끈 연애 드라마들이, 오히려 최근에는, tvn 드라마들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다. 
tvn의 연애 드라마처럼, 젊은이들의 솔직한 연애 담론을 토크로 다룬 <마녀 사냥>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엔, 이런 신세계가 있어 싶었던 남녀간의 솔직한 연애 이야기가, 회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저번 주에 봤던 이야기나, 이번 주에 봤던 이야기나,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은 경지에 이르른다. 
다른 배경, 다른 등장인물, 다른 스토리이지만, 결국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 소통하지 못해 오해하고, 사랑의 짝대기가 어긋나 마음을 앓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세상에, 병원에서 연애하고, 회사에서 연애하고, 심지어 법원에서 연애하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tvn 드라마라고 무에 그리 다를 것이 있나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부족하지만, tvn의 드라마들이, 유독 연애 과정 그 자체에 흠씬 빠져, 순정만화에서 등장하는 듯한 로맨스들을 마구 분출해 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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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한 두 작품일 때는, 매력적이었는데, 이제 한 주에, 위에 등장하듯이 네 작품이나 되었을 때는, 그 연애 이야기가 적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색다르지 않은 연애 이야기는 <잉여 공주>의 조기 종영을 낳았고,  결국 신선한 연애 이야기에 대한 수급 욕구는, 표절 사태에 이르게 된다. 
매주 월, 화 방영되는 <마이 시크릿 호텔>은 추리극과 로맨스의 두 마리 토끼를 지향하지만, 실제 드라마 방영 시간의 대부분은, 남상효(유인나 분)를 중심으로 전남편 구해영(진이한 분)과 호텔 이사 조성겸(남궁 민 분)의 삼각 관계에 치중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남상효와 구해영을 중심으로, 갖가지 해프닝들이 방영 시간 대부분을 메꿔간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날 구해영의 신부가 줄행랑을 치고, 남상효는 호텔을 위하는 책임감에, 그 결혼을 대신하는 웃지 못할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런 해프닝에 가까운 스토리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는 것은, 주인공 세 사람의 오해와, 그 오해를 해명하지 못해 벌어지는 또 다른 해프닝이다. 호텔에서 사람들은 연신 죽어나가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듯, 이 이야기가, 그저 로맨스물이 아니라는 증거로 간간이 등장한다. 

100억 대작 <삼총사>도 마찬가지다. 대작 블록버스터가 무색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소현 세자와 강빈, 박달향, 그리고 미령의 엇갈린 사각 관계이다. 역사극에서 멜로가 가미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정도전>의 걸출했던 연기자들을 캐스팅하고, 모처럼 돌아온 양동근까지 합류했지만, 스토리는 주인공들의 사각 관계의 울타리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조기 종영이 결정된 <잉여 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된 인어 공주의 사랑 찾기와 함께 잉여 하우스를 배경으로, 88만원 세대의 고군분투를 다루겠다고 했지만, 역시나, 드라마는 지리한 삼각 관계, 엇갈린 사각 관계로 채워진다. 잉여 하우스 멤버들은 그럴 듯하지만, 어쩐지 그들의 고군분투는 다가오지 않는다. 

아예 대놓고, 삼촌, 조카 둘의 사랑 찾기에 천착한 <아홉 수 소년>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음악과 드라마의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한다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방점을 찍고 싶어하는 음악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ost가 과잉인 세상에서, <아홉수 소년>의 음악들이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의 ost의 영광을 되찾고 싶겠지만, 추억이 담기지 않는 이야기의  음악은, 그저 하나의 배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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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영되고 있는 tvn 드라마의 면면을 보면, 사극에, 추리극, 청춘물에, 음악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일주일동안, 이 드라마들을 시청하고 있다 보면, 여전히 트렌디한 연애 이야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듯 보여 아쉽다.사랑 이야기에도 다양한 질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tvn드라마의 연애 이야기들은, 한결같은, 낭만주의적 사랑주의보이다. 취향 저격은 훌륭했지만, 이제 그 취향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킨다.  tvn의 드라마들이 좀 더 많이 방영되는 추세에서,  좀 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을 넘어선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 예로 대표적인 것이, <갑동이>이다. <갑동이>는 24~8일 개최되는 영국 'k-드라마 위크'에서 한국 장르물의 대표작으로 상영된다. 물론, 방영 중, <갑동이> 역시 애매한 사랑의 작대기로 인한 방만함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지만, 연쇄 살인마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뚝심있게 그려낸, tvn의 수작임에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아홉수 소년>의 후속작으로 예정된, 윤태호 작가 원작의 <미생>이 기대된다. 부디 사무실에서 연애 하기가 아니라, 진짜 '미생'의 삶을 그려내기를. 


by meditator 2014. 9. 26. 22:14

플리처 상 후보에 오르고, 137주 연속 전미 베스트셀러에 빛나는 바바라 킹솔버의 [포이즌우드바이블]은 콩고로 전도를 떠난 네이선 목사 가족의 이야기이다. 콩고 오지로 부임해 간 미국 남부의 침례교 목사 네이선은 작은 양이 허락된 짐 속에, 그가 즐겨 키우던 식물들의 종자를 포함시킨다. 하지만, 이방의 콩고의 토양에서, 미국의 종자들은 무기력하다. 겨우 심어놓았는가 싶으면 우기의 비 한 번에 쓸려내려가고, 원주민의 충고에 따라, 무덤만큼 높은 둔덕을 쌓아, 겨우 싹을 틔우고, 아프리카 정글만큼 무성하게 키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건 [포이즌 우드 바이블]의 씨앗들만이 아니다.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후로 우리나라의 씨앗들도 어떤 해는 가물어, 또 어떤 해는 폭우에 그 씨앗의 성취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디 그뿐인가, [포이즌 우드 바이블]에서 미국의 목사는 그의 오만함이 끝내 가족의 희생과, 선교의 실패로 끝을 맺지만, 지금 전세계에서 활약하는 농산물 다국적 회사들은 나날이 그 사세를 확장하는 중이다. 우리의 농부들은, 다국적 품종 회사에서 씨앗을 사고, 그 씨앗에만 듣는 비료를 사서 농사를 지어야만 한다. 한 해 농사 이후에, 다시 씨앗을 받아 다음 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제초제 등의 공급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 해마다 땅은 수없이 퍼부어지는 각종 성장을 촉진하는 보조제로, 특정 성분이 과잉되어 산성화되어 가고, 농부들은 그 비용에 등골이 휜다. 농업뿐인가. 풀대신 좋은 고기를 만드는 여물을 수입해 먹여야 하는 축산 농가 역시 적자를 면할 길이 없다. 

농부가사라졌다 포스터

바로 이런 우리 농업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접근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tvn의 <농부가 사라졌다>가 그것이다. 국제 시장의 변동으로, 각종 씨앗과 농약, 사료의 가격이 폭등하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농부들이 사라져 간다. 가장 현실이면서도, 가장 안이하게 생각한, 우리 먹거리의 현 상황을 기반으로 한, '버츄얼 다큐' <농부가 사라졌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이 비감한 상황을 <농부가 사라졌다>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처럼 접근한다. 식량문제 전문가이자,  농촌 경제 연구가로 2014년 캐나다 올해의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프로듀서 마이클을 등장하여, 사라진 농부들을 찾는 미스터리 스타일로 우리 식량 현실을 짚어간다. 

9월 18일 방영된 1회에서는, 농부가 사라진 후, 과일과 채소 공급이 끊인 현실을 조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비밀리에 거래되는 야채들을 쫓아 사라진 농부들을 추적한다. 치솟는 수입 종자와 사료 값으로 대다수의 농민이 농업과 축산업을 작파한 가운데 에서도 여전히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생산하는 비밀을 파헤치는 식이다. 

강원도 산골의 여성 농부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마이클이 찾아낸 것은, 바로, 거센 다국적 기업의 공세에도 굳굳하게 살아남은 우리 토종 종자의 건재함이다. 그리고, 비료와 영양제 등으로 힘을 잃은 대다수의 농토와 달리, 고되지만, 제초체 등을 사용하지 않고, 본연의 땅힘을 바탕으로 버틴 토종 농법은, 농부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신선한 먹거리를 생산한다. 

9월18일 방송이, 품종의 식민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 존폐 기로에 놓인 농업 현실과, 그 대안으로서 토종 씨앗을 통한, '식량 주권' 문제를 제기했다면, 25일에 방영된 <농부가 사라졌다>는 그 주제를 이어가며, 분야를 다양하게 접근한다.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은 소비자를 스스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전설의 농학자(?) 아이작 뉴튼의 '만농인력의 법칙'이 등장하고, 비밀 결사 집단인 인터러뱅과, 우리나라 버전 인터나방을 통해 그 역사와 근원을 바탕으로, 농부가 사라진 가운데에서도 농업을 면면히 이어가는 비밀 결사 조직의 유래를 찾아낸다. 

콩고의 농부들처럼 고추를 심은 고랑을 두둑하게 하여, 뿌리를 든든히 내리게 함으로써 병충해와 폭우를 피해가는 자생력을 키운 '뿌리 농부'와, 풀어놓은 채 각종 약재며 좋은 풀을 먹여 한 알에 800원자리 달걀을 생산해 내는 농부 등이 마이클이 찾아낸 인터래뱅의 실체이다. 

2회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마이클이 찾아간 소 농장에서 찾아진다.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거세하지도 않고, 그래서 사사건건 싸움박질을 하는 소들을 키우는 이 농장의 고기들은 2,3 등급이거나, 심지어 등급이 없다. 마블링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이 농장의 고기들과, 이른바 1등급 플러스, 플러스의 고기들을 함께 비교 시식했을 때, 맛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2,3 등급이거나, 등급을 받지 못한 농장의 고기가 약간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의 미각을 현혹하는 '마블링' 혹은 등급제의 허실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맛의 문제 만이 아니다. 실제 대다수 농촌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나듯이, 전체적으로 농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농업 종사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고, 고령화 되는 상황에 대한 대안도 등장한다. 제주도에서 약초를 키우는 농장, 이 농장의 일꾼은 제주도 흑돼지이다. 주인이 풀어 놓기가 무섭게, 흑돼지들은 농장 곳곳을 누비며 잡초를 먹어치운다. 친환경 농사의 최대의 주적이랄 수 있는 잡초 제거가, 단숨에 해결된다. 돼지의 동료들도 있다. 세계 각지의 유기농 농장을 돌아다니며 일도 하고, 여행도 즐기는 우퍼 역시, 바쁜 일손을 거둔다.

<농부가 사라졌다>가 근저에 깐 주제 의식은 심각하다 못해 절박하다. 하지만, 다큐는, 그 심각함을 비장한 목소리 대신,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농부들이 사라진다면? 이란 물음을 가지고 재밌게 접근한다. 주제 의식은 강고하지만, 미스터리식 접근 과정은 흥미롭고 신선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토종 씨앗에서 부터, 뿌리 농사, 축산 등급제, 농촌의 일손 부족 현상등, 섬세하게 놓치지 않고 짚고 간다. 오히려, 그래서 다국적 기업에 종속된 농축산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오고, 마이클이 찾아 낸 하나하나의 실마리들이 더 머리에, 눈에, 귀에 쏙쏙 들어온다. 다큐가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경지다.  


by meditator 2014. 9. 26. 13:49

시청률지상주의 세상에서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의 처지라는게 진퇴양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사람들의 주의가 집중되지 않아, 다행이다 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아이언맨>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지 않는 이 드라마의 '한적함'이, <아이언맨>이 그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회를 거듭할수록 든다. 시청률이 낮아 자유로워 보이는 드라마, <아이언맨>이다. 


다짜고짜 화가 나면 칼이 돋는 남자 주인공에 기겁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만치 물러났다. 아니 칼이 돋는 것만이 아니다. 주인공 주홍빈 역을 맡은 배우 이동욱에게는 버거워 보이는,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부터 위, 아래 없이 화를 분출하는 주인공 캐릭터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한량없이 착하고 씩씩한 '캔디'가 울고 갈 여주인공(신세경 분)이라니!
그런데 가장 기괴한 남자 주인공에, 가장 진부한 이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회를 거듭하면서, 차츰 마음에 들어온다. 스토리가 아니라, 이른바 '김용수 월드'라고 불리는 연출가의 힘에 의해서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아들 창이의 소망을 듣고, 주홍빈은 다짜고짜 아들 창이와 손세동을 끌고 밤 늦은 시간 구례로 향한다. 과열된 차를 버리고 산골 마을 버스를 왁자지껄 할머니들과 타고, 창이 외할아버지가 젓는(?) 배를 타고 창이 외가에 이르는 길은, 이게 괴작인가 싶게, 서정적이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에,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 역의 신세경의 대사는 어색하지만, 그녀의 티없는 얼굴에 버무려져, 슬슬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할머니들의 짐을 들어드리는 손세동의 캐릭터는 어색하지만, 정감이 간다. 


무엇보다 압권은, 외가가 보이는 강가에서이다.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과, 그녀에게서 첫사랑 창이 엄마의 향기를 맡으며 그녀를 떠올리는 주홍빈, 그 두 사람의 정서가 구례의 정취가 물씬 피어나는 강가에서 어우러질 때, 이 말도 안되는 두 사람의 조합에 반기가 가셔진다. 그 어떤 대사와 설명이 필요없다. 

절정은 밤길의 반딧불씬이다. 이 씬의 내용도 뻔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의 밤길, 혼자 집을 지킬 수 있다는 아들 창이 보다, 더 아들같은 주홍빈이, 손세동의 뒤를 따른다. 말이야, 밤 늦은 시간 겁도 없이 혼자 다니냐고 하지만, 사실 밤길을 무서워 하는 건 주홍빈 측이다. 까만 밤 길에, 앞서 가는 손세동, 그 뒤를 쫓는 주홍빈의 그림자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던 두 사람 주변에 한 점, 한 점, 불이 피어난다. 반딧불 떼다. 반딧불 떼에 버무려져 가던 두 사람, 손세동이 겁을 주자, 그만 주홍빈은 손세동을  꽉 안고 만다. 백 마디의 말이 필요없는 연출이 설명해낸, 두 사람의 첫 교감이다. 

그렇게, 서정적인 연출로, 주홍빈의 아픔과, 그 아픔조차 아랑곳없는 손세동의 맑음이 설명이 되니, 그저 기괴하괴만 느껴졌던, 주홍빈 등에서 솟아나는 칼이 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과거 주홍빈 등에서 처음 칼날이 솟아나는 그 장면, 삐죽 솟아오른 아기같은 칼날은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칼이 처음 솟아나기 그 시점부터, 마지막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빌딩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칼이 커지고 늘어가는 것을 통해 주홍빈의 분노가 깊음을 설명한다. 마지막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날뛰다 빌딩에 매달리는 그 모습은, 흡사 포효하는 킹콩을 연상케 하는데, 킹콩의 포효가, 그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애잔하게 느껴지듯, 기괴한 아이언맨 주홍빈이, 기괴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처음엔 버겁게 느껴지던 이동욱의 연기도, 6회쯤 되니, 멜로에, 코믹에, 컬트까지, 종횡무진, 배우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음이 공감된다. 

그러나 아직도 종종 <아이언맨>을 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형식과 내용의 괴리가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이 드라마가 연출이 김용수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가 떠올려진다. 그렇다면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가족으로 인한 상처로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아픈 상처가 심정적으로 도드라지는, 전형적인 김규완 작가 특유의 멜로의 정서가 담뿍 담긴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김규완 작가의 작품에서 대표적 배우였던 이미숙과 김갑수가 존재하고, 그들이 극의 갈등에서 주된 축으로 자리 매김하며, 김규완의 정서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김규완의 전형성이 김용수와 조우하면서,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작, 혹은 신선한 실험작으로 변모한다. 주홍빈이 사는 집의 포스트 모던한 분위기로 대변되는, 그 정서처럼 말이다. 윤여사가 터는 좋은데, 집만 기괴해 졌다는 그 말처럼, 김규완의 터에, 김용수가 지은 <아이언맨>은 때론 여전히 언밸런스하고 기괴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언맨>만의 독특한 정서로 자리잡는다. 6회 마지막, 그토록 분노하던,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하고, 슬퍼하고 좌절하지 만은 않은 묘한 쾌감의 정서가, 생뚱맞기 보다는, 김용수의 세계에서 또한 가능한 반응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칼이 가진, 지극히 모던한 그 도구가, 인간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그 상황이, 김규완의 멜로와 조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가족으로 인한 갈등보다는, 조금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였다면, 그의 분노가, 개인적 인내를 넘어서는 사회적 자각이라면, 그 차가운 칼날의 생경함이 조금 더 공감가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연출로 다 가리지 못하는 극본의 전형성이 아쉽다. 

물론 그럼에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주장원으로 대변되는, 아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성세대와, 아이언맨이 된 주홍빈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이언맨>의 매력이니까. 부디, 그 기괴한 칼이, 한낯, 내 가족만 베고 끝나지 않는 상징적 도구가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9. 26. 10:48

9월 24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는 '널 깨물어 주고 싶어' 특집이라는 명목으로, 개봉을 앞둔 <슬로우비디오> 배우 차태현, 김강현과 김영탁 감독이 출연했다. 

이전 출연 분에서, 홍보를 위해 출연하는 사람들을 제일 혐오한다고 차태현이 스스로 말했던 사실을 mc들이 다시 끄집어 내자, 그래서 아마도 이번 회차는 '쉬어가는' 한 주가 될 것같다고 이른바 '셀프디스'하는 것과 달리, 소소한 웃음으로 채워졌던 393회 <라디오 스타>는 배우 차태현과,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든 <헬로 고스트>의 김영탁 감독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게 해주어, 웃음 속에 이해가 깊어지는 <라디오 스타>의 매력이 모처럼 되살아난 시간이 되었다. 

mc진이 대놓고 차태현과 아이들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황해>를 이긴 혁혁한 성과를 낸 <헬로 고스트>의 감독이지만, 예능 첫 출연인 그래서, 어느 카메라를 봐야할 지도 잘 모르는 김영탁 감독과,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의 매니저 역할로 인지도를 넓혔지만, 아직은 신인같은 김강현의 존재는 생소했다. 그래도 예능으로든, 배우로든 항상 일정 정도의 위치를 놓치지 않은 차태현이기에, 당연히 9월 24일 방송은 차태현을 중심으로 풀어나갈 것이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정작, 반송 분량의 상당 부분은, 예능을 몰라, 두리번거리거나, 매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김영탁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김영탁 감독을 상대로 한 그와의 인터뷰에서 길어올린 '각색'된 질문들은, 최근 <라디오 스타>의 그저 뭐 하나 걸려 웃겨봐라라는 심산의 마구잡이 몰이가 아니라, 웃음을 통해, 김영탁과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웃음 포인트가 된 것은, 상황을 잘 모른 채 던진, 김국진의 차태현의 전작 <바보>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차태현의 작품으로 상대적으로 흥행이 덜 되었던 작품을 이야기하던 중, 유명 만화가 강풀 원작의 <바보>가 떠올려졌고, 그에 대해 김국진은 지나가는 듯이, '만화가 더 재밌었다'라고 말한다. 이후, <바보>가 김영탁 감독의 각색이라는 걸 알게 된 윤종신등이, 김국진을 무안을 주는 듯하면서, 김영탁 감독을 놀리고, 김영탁 감독과 비슷한 색채이지만, 800만을 찍었던 강영철 감독의 <과속 스캔들>을 찍었던 차태현이 강형철 감독과 김영탁 감독을 비교하는 듯한 언급을 하며, 김영탁 감독을 결코 '천만을 찍을 수도, 찍을 깜냥도 되지 않는 감독'이라 정의내리며, 김영탁 몰이에 가담하여, 김영탁 감독을 난감하게 한다. 

(사진; 서울경제)

이후에도, 예능 울렁증이 있다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남상미가, 왜 안나왔느지 절절하게 공감하는 김영탁 감독에 대한 '몰이'는 지속된다. 
'천만을 찍을 깜냥'이 되지 않는 이유가, 돈을 벌어, '정말 지루한 영화'를 찍고 싶은 그의 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거기서에, 생각보다 지루했던 영화<헬로 고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한 시간 사십 여분을 졸다가, 막판에 울고 나온다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차태현같은 배우가 함께 해줘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김영탁 감독이 고집하는 '지루함'에 대해 다시 보게 되기 시작한다.

'느리고 지루한' 일본 영화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김영탁 감독은, '하림'을 좋아하고, 윤종신을 좋아해, 그의 음반을 가지고 있다며, 그만의 정서를 드러낸다. 스스로 가요계의 '섬'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윤종신처럼, 1000만의 흥행보다는, 조금은 지루해도 사람살이를 깊게 천착하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는 김영탁 감독의 정서가 웃음으로 버무려진 '토크' 속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다. 물론 개봉을 앞둔 감독 답게, 그러면서도 애교스럽게, 이번 슬로우 비디오는 그래도 <헬로 고스트>보다는 덜 지루하며 셀프 홍보도 마다치 않는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자신감은, 이어, 그래서 차태현의, 그래서 자신과 오달수 형님이 고군분투했다는 '역디스'에 의해 무색해 진다. 
21세기 폭스사의 제작 공급이라는 자부심을 감독이 펼쳐 놓는가 싶으면, 그 전작이 망한 <런닝맨>이었음이 언급되고, 최근 성공한 제작자가 된 차태현의 형님이 스타웃 하고 싶은 감독에 김영탁 감독도 들어가지만, 그래도 강형철 감독이 우선 순위라며 여전히 한 끝 차이로 부족한 김영탁 감독의 존재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회차의 상당 부분이, mc진들의 여전히 예능을 어색해 하는 김영탁 감독을 몰이에, 은근슬쩍 한 다리를 걸치는 차태현의 공조로 이어갔지만, 그를 통해, 오히려 김영탁 감독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홍보성 기사들을 통해 <슬로우 비디오>가 개봉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하림과 윤종신의 음악을 좋아하고, 흥행을 위해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소박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조금은 느리고, 그래서 조금 더 지루한 이야기를, 여전히 놓칠 수 없는, 김영탁 감독의 작품 세계를 <라디오 스타>를 통해 엿보게 되면서, 어쩐지 <슬로우 비디오>란 영화가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저 늘 웃기는 작품만을 선택하는가 싶었던 차태현이지만, 김영탁 감독과 의기투합하는 그의 선택을 통해, 웃기는 배우 차태현의 작품 세계 또한 들여보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늘 신인 감독들과 함께 하는 배우, 슈퍼 을이 된 배우 차태현의 배우로서의 존재감도, 신념조차도 슬며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또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맛을 아는 그가 선택한 그저 웃기는 것이 아닌, 좀 지루해도, 그 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슬로우 비디오>가 보고 싶어진다. 

난감해 하며 차태현에게 자신이 중국어 인사를 해야 하냐는 식의, 좀 머쓱한 듯, 그래서 좀 심심한 듯 했던, 하지만, 그래서, 김영탁 감독과 차태현, 그리고 늦깍이 신인 김강현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 시간, 지루해도 감동이 있다는 <슬로우 비디오>란 영화가 떠올려지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9. 25. 09:32

계팔과 재미삼아 화투를 치던 장노인 도끼(정종준 분)는 승부에 집착하다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런데 도끼 노인이 입원한 병실, 그의 옆에 홀로 누워 말기 위암과 싸우는 노인은, 한때 도끼와 영역 싸움을 벌이던 '독사'라는 또 다른 전설의 조폭이다. 한때 서로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주먹다짐을 벌이던 그들은 이제 서로 인사 치레도 제대로 못 나눌만큼 운신하기 힘든 병든 몸으로 병실에서 만난다. 독사 노인의 존재를 안 밴댕이(윤용현 분)은 과거 자신을 코피가 터지도록 패고 자신의 돈을 빼앗은 독사의 기억에 이를 갈며 병실을 찾는다. 하지만, 그렇게 잊을 수 없었던 독사는, 그 누구하나 들여다 보는 자 없이 홀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한낱 불쌍한 노인일 뿐이다. 자신이 누군지 알겠냐는 밴댕이의 말에 독사는 힘들게 말한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밴댕이는 떨리는 그의 손을 잡고,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그의 땀을 닦아준다. 


9월 23일 방영된 <유나의 거리>의 이 장면은,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와 상관이 없는, 그져 스쳐지나가는 에피소드임에도, '성스럽기'까지 하다. 한때 조폭으로 자신의 '업'을 쌓던, 독사가, 과거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받은 자를 만나, 속죄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관계 해소이지만, '죄사함'을 받는 종교적인 면죄의 상징까지 띤다. 비록, 그가 과거에 해를 끼쳤던 숱한 피해자 중 한 사람에게 불과하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독사는 자신이 현세에서 쌓은 카르마를 이렇게 풀어내고 간다. 아마도 저승길을 떠나는 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사진; 뉴스엔)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정감 가득히 풀어내는 드라마 <유나의 거리>, 하지만, 김운경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삶은, 한편에서 냉정하다. 저마다, 현세에서 각자가 쌓은 '카르마', 즉 업보는 결국 각자 풀고 가야 할 삶의 과제로 등장한다. 
한때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던 도끼 영감, 자식과도 연을 끊고 만복의 문간방에 얹혀 사는 말년에 춤이나 화투 등 소소한 삶의 재미를 얻어보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이제는 더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그의 나이이다. 춤을 좀 배울까 싶으면, 쓰러지고, 화투 좀 전투적으로 쳐볼까 싶으면 쓰러지는, 그를 두고, 한때 부하였던 밴댕이는, 주책이라 흉을 본다. 그런 그에게,  만복은 말한다. 나라고 늘 도끼 형님이 좋기만 하겠냐고, 싫고 번거로울 때가 더 많지만, 그게 다 과거 조폭의 무리에 몸 담았던 내 업보라 생각하며 감수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나의 거리> 속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업보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36회, 이제 중후반을 넘어서는 <유나의 거리>에서 주된 스토리는 그러기에 당연히 바로 소매치기인 여주인공 유나의 카르마다. 
유나를 사랑하는 창만은 세상에 자기보다 더 큰 도둑놈들이 더 떵떵거리며 잘 산다며, '소매치기'를 그만 둘 뜻이 없는 유나의 손을 씻기기 위해 고심한다. 그런 그가 찾아낸 방법은, 바로 어린 유나가, 소매치기로 들어설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원인을 찾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만이 찾아낸 방법은 어머니가 돌봐주지 않아 소매치기를 하며 살아가야 했던 유나의 어머니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창만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어렵사리 유나의 어머니를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 회장의 아내가 된 유나의 어머니는 어두웠던 자신의 과거를 상징하는 유나를 만나기를 꺼려한다.  현재의 유나가, 유나의 어머니에겐 또한 과거의 카르마가 되는 지점이다. 결국, 창만의 설득으로, 그리고 자신이 홀로 남겨 둔 바람에 소매치기가 되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유나의 엄마는 어렵사리 유나를 만난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유나는, 그렇게 목놓아 불러도 대답해 주지 않던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말만 퍼붓고는 자리를 뜬다. 그래도 혈육인지라,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것도 무색하게, 번듯한 어머니의 존재를 드러내지 말아 달라는 어머니의 노파심에, 유나의 마음은 다시 닫히고 만다. 

하지만 창만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유나의 첫사랑, 그야말로, 유나가 자신의 업이 된 '소매치기'로 유나를 인도한 결정적 인물이라는 것을. 
유나와 함께 활동하던 태식(유건 분)은 유나와 함께 쫓기던 중 경찰에 잡혀, 유나의 죄까지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출소한 후, 손을 씻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큰 건에 유나의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얼마전부터 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아, 주변에서 슬슬 손을 씻게 되는게 아닌가 라며 희망적으로 바라보던, 유나는, 자신때문에 옥살이를 한 태식을 위해 그의 '한 건'에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자신을 처음 '소매치기' 무리로 인도했던 첫사랑, 바로, 유나 자신의 업을, 유나만의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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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업보로서의 유나, 그리고 유나의 업보로서의 창만이 뒤얽히며, 과연 그 과정에서, 유나가 소매치기로서 손을 씻게 될지, 아니면, 결국 다시 '재범'의 늪에 빠지게 될지가 <유나의 거리> 후반부 이야기의 관건이 된다. 

거창하게, 카르마니, 업보니 했지만, 결국 <유나의 거리>란 드라마가 풀어내고자 하는 건, '인지상정'이요, '결자해지'이다. 사람으로, 사람답게, 제 할 도리를 다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나의 거리> 속 갈등 들은 극단으로 치닫는 가 싶어도, 결국은 '인지상정'이요, 결자해지인 식이다.  단식하는 부모들 앞에서 '피자 파티'를 벌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밥줄 자르는 건, 남의 목줄 죄는 건 예사로 하는 세상에서, <유나의 거리> 속 이야기와 해결 방식들은, 그래서 때로는 너무 소박하고, 심지어, 환타지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또 그래서, 사람사는 냄새를 맡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푸근한 사람 사는 맛을 찾기 위해, <유나의 거리>를 찾게 된다. 


by meditator 2014. 9. 24. 09:53

한석규가 다시 왕이 되어 돌아왔다. 

왕인데도 불구하고 면류관은 커녕, 맨 상투를 드러내고, 대전 바닥에 털퍼덕 앉아있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제길헐' 등 쌍욕을 하진 않지만, 말투로 보면, 딱 쌍욕을 내뱉고도 남을 말투이다. <뿌리깊은 나무2>인가 했더니, 이번엔 세종이 아니라, 영조란다. 한석규에 의해 구현된 영조는, 여전히 세종처럼 신하들과 '파워 게임' 중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기 아들조차 믿지 못하며, 자신의 왕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7번의 양위 해프닝을 벌인다. 

드라마는 시작과 함께,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상상력을 더했음'을 명시한다. 그리고 바로 그 상상력의 영역으로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이끌어 간다. 
왕세제였던 영조는 한밤에 그의 눈앞에서 그를 지키던 사람들이 자객들의 칼부림에 의해 쓰러져 나가는 것을 목도한다. 자객의 칼은 이제 그, 왕세제 이금을 노리는 것 같다. 장면은 바뀌어, 노론의 영수 김택과 노론의 무리들이 왕세제 앞에 앉아있다. 이들은, 왕세제가 자신들과 의견을 같이 할 것을 종용하며, 연판장의 마지막에 서명을 할 것을 강권한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왕세제는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이른바, 드라마 내내 수없이 되풀이 되는 단어, '맹의'의 탄생이다. 이렇게 노론과 정치적으로 야합한 기록을 남긴 왕세제는 왕이 된 후 내내, 노론에 의해 정치적으로 발목을 잡히고, 이를 없애기 위해 맹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예측되는 서고를 불태우기에 이른다. 그후 왕은 자신을 괴롭히던 '맹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마음껏 정사를 펼치고, 그런 왕에 대해 노론은 수그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사라졌다던 '맹의'가 수면 위에 오른다. 왕도, 노론도, 정치적 주도권을 위해, 다시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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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맹의'는 가상의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왕이 된 영조와, 노론이 정치적 동반자이자, 애증의 관계인 것만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다. 
드라마에서 자객을 보내 왕세제였던 영조의 목숨을 노리는 것과 달리, 그의 형인 경종 연간에, 왕세제 연잉군이였던 이금은 노론에 의해 노론과, 노론 측인 인원왕후의 적극적 지지를 엎고 왕세제가 되었다. 심지어 병약한 임금을 대신하여 '대리청정'까지 요구되었다. 하지만, 정통성의 문제를 들어 성균관 유생등이 반대하였고, 그 과정에서 노론 대신들은 왕세제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치죄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사학자 이덕일은 그의 책에서 경종의 이른 죽음에, 연잉군과 그를 비호하는 노론의 개입을 주장하는 등, 연잉군이 영조가 되는 과정은, 노론과, 노론을 등에 업은 연잉군의 정치적 음모가 개입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왕이 된 영조는, 드라마에서처럼 '연판장에 서명을 한' 정치적 부담은 아니더라도, 왕제가 아니었던 자신이 왕이 된 과정에서, 노론에게 정치적 빛이 있음을, 또한 궁중 나인 중 가장 지천한 신분인 희빈 숙빈의 소생인 자신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음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복잡한 존재가 되었다. 왕이 된 영조는 그런 자신의 정치적 부담감을 덜기 위해, 혹은 지양하기 위해, 각 정파를 골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통해 노론에 빚을 진 자신의 처지를 덜고자 하나, 그의 의지는 생각만큼 관철되지않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런 복잡미묘한 영조 연간의 물고 물리는 정치적 관계를 '맹의'라는 상징적 문서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드라마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7번의 선위 장면은, 바로 이런, 자신의 정통성에 회의하는 영조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역설적으로 왕좌를 지켜나가는 정치적 해프닝이다. 즉, 궁중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나인의 소생인 그를 왕권의 정통성이 없다 비웃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며, 그를 왕에 올림으로써 정권을 좌지우지하려는 노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인 자신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정통성이 있건 없건, 이미 왕인, 그가 '선위'를 하겠다는데, 그것을 '긍정'하는 것은, 그것이 설사 아들이라손 치더라도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한석규라는 동일 인물에 의해 연기되는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와 <비밀의 문-의궤 살인 사건(이하 비문)>에서 연기하는 세종과, 영조는, 왕권을 위협하는 신하들의 무리를 상대하여, 자신의 왕좌를 견고히 하고자 한다는데서, 일맫상통한 캐릭터이다. 그런데 세종이, 작가와 배우의 해석을 통해, 쌍욕도 하는 다층적인 캐릭터로 재탄생된 반면, <비문>의 영조는, 실제 52년의 오랜 치세 동안, 자신의 아들조차 정치적 희생양으로 하면서 왕좌를 지켜 나가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불사한, 문제적 인간이었다. 그러기에, 한석규가 연기하는 영조에게서, 세종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비단 그의 연기톤만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해석된 캐릭터의 여지가 그러하다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첫 방을 선보인, <비밀의 문-의궤 살인 사건>은 그렇게 문제적 인간 영조를 근간으로, 드라마에서 등장하듯이, 정통성을 가진 왕자도 태어나, 자신의 정통성에 의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도세자의 자유분방함을 '세책 해프닝'을 통해 엮어낸다. 그리고, 호시탐탐 정권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론과, 그를 상대하는 소론 등의 정치적 반대파의 대치 상황도 드러낸다. 
하지만, 다짜고짜 '맹위'를 앞세우며 진행된 드라마 초반은, 영조 연간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복잡한 설정을 드러내 보인다. 52년의 치세를 '생존'을 위해 그 무엇도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인간 영조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영조의 캐릭터는 그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과 같았고, 정통성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진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정통성을 가진 아들이 가진, '꼰대'같은 노론 세력에 대한 반감의 부피가 명확히 잡혀지지 않는다. 그저 자유분방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식견이 있는 것인지 앞으로 이 <비문>이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아니, 그보다는, '선악'의 가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캐릭터 영조가 워낙 압도적이다. 그런데 그 캐릭터가 익숙하는 것이 나름 <비문>이 가진  부담이기도 하다. 

또한 비문> 출연진의 면면은 화려하다. 영조 역의 한석규를 비롯하여, 군 제대 후 야심차게 돌아온 이제훈,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걸출한 김창완, 최원영, 장현성, 이원종 등의 조연진에, 김유정, 박은빈의 아름다운 여성 출연자까지. 실제 '김유정이 나온다 하'여 본 사람들 중에서는, 단 몇 컷에 불과한 이 소녀의 출연이 아쉬운 사람이 있었듯이, 이렇게 쟁쟁한 면면의 출연자들에게 제 몫을 부여해 주는 것이, <비문>의 또 다른 과제로 보여진다. 


by meditator 2014. 9. 23. 09:15
휴지기를 가졌던 드라마 스페셜이 다시 돌아왔다. 
9월 14일 <그 여름의 끝>에 이어, 9월 21일 <세 여자 가출 소동>까지 두 편이 방영되었다. 공중파 유일의 단막극 드라마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일까? 이제 막 첫 술을 뜬 두 편의 <드라마 스페셜>, 배부르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어쩐지 술이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든다. 

9월 14일에 방엳된 <그 여름의 끝>은 남편이 교통사고 이후 식물인간이 된 후, 주민등록 등본을 통해 알게 된 남편 진우(이광기 분)의 숨겨진 자식을 맞닦뜨린 주부 수경(조은숙 분)의 혼란을 다룬다. 알고보니, 남편의 사고는 업무차 출장이 아니라, 춘천에 사는 첫 사랑 연인과, 그녀의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암으로 죽은 첫사랑 연인의 아들은, 혼란을 겪는 수경에게 떠맡겨진다. 그녀는 처음 자신에게 맡겨진 초록이(전진서 분)를 미워하지만, 엄마를 잃고 누군가에게 살갑게 정을 붙이려고 애쓰는 초록이에게 차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어서 9월 21일에 방영된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제목에서도 대번에 알 수 있듯이, 대뜸 시끌벅적 세 여자 가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랫동안 식당일을 하며 모은 행상 트럭 살 돈을 들고 튄 주부 형자(박해미 분), 룸살롱에서 도망나온 여진(장희진 분), 회사일을 배우기 싫어 학교를 땡땡이 친 수지(서예지 분) 세 여자가 가출과 관련된 해프닝을 연속적으로 벌인다. 도망가다 지쳐 공원에 앉아있던 형자는 아버지의 비서와 실랑이를 벌이던 수지를, 원조 교제남과의 실랑이로 오해하고 개입하고, 그 옆에서 소주를 마시던 여진 역시 나서는 바람에, 형자와 수지는 도망갈 수 있게 된다.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던 형자와 수지 앞에 여진이 등장하고, 여진을 쫓던 나이트 클럽 직원들로 인해 세 사람은 함께 쫓긴다. 엄마의 생일을 맞은 수지를 위해 두 여자는 함께 수지 엄마를 모신 납골당을 찾고, 그 과정에서, 하루 동안, 엄마와, 언니의 가족 관계가 탄생된다. 하지만, 의사 가족 관계는 여진의 나이트 클럽 빚을 갚고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납치 사건으로 둔갑하고, 결국, 세 사람은 백화점 옥상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신세가 된다. 

공교롭게도 새롭게 시작한 드라마 스페셜의 두 편, <그 여름의 끝>과 <세 여자 가출 소동>은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그 여름의 끝>에서 숨겨진 남편의 소생이라 여겼던 초록이는, 친자 검사 결과 남편의 핏줄이 아닌게 밝혀진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들의 핏줄이라며 오매불망 안타까이 여기던 시어머니는 단번에 안면을 바꿔, 아들을 사고로 이끈 '재수없는 녀석'이라며 초록이를 내쫓을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그간 초록이와 정이 든 수경은 고뇌한다. 그리고 과연 지금까지 그저 첫사랑에 대한 사랑으로만 느꼈던 남편의 마음을 다시 한번 헤아리기 시작한다. 결국, 초록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수경의 가족이 된다. 
<세 여자 가출 소동> 역시 마찬가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명의 여자가, '가출'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하나가 된다. 죽은 엄마를 생일날 찾은 수지가 안타까워, 수지 엄마와 동갑인 형자는 그녀의 엄마를 자청하고, 샘이 난 여진은 그럼 자기는 언니가 되겠다 한다. 그렇게 마음 넉넉한 두 사람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는 듯, 수지는 엄마의 놀음 빚을 갚기 위해 룸살롱을 전전하는 여진의 빚 1억을 갚아준다. 가끔씩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혼돈스러워 하면서도, 세 사람은 그들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똘똘 뭉쳐 해결하며, 가족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대안 가족 이야기는 막상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싱겁다. 노희경의 드라마들처럼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서 서로가 머리쥐어 뜯으며 싸우다 공감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대안 가족이 아니라, 너무 쉽게 서로의 정에 기대어,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는 '온정주의'로 모든 사건을 풀어가기 때문이다. 단막극이라는 한 시간의 시간 탓으로 돌리기에도, 수경이 초록이에게 허물어지는 것도, 형자가 쉽게, '너의 엄마가 되어줄게' 하는 것도, 드라마로서는 그렇게 하는게 틀리지 않지만, 어쩐지 쉽다. 2014년의 드라마인데, '응답하라' 때 드라마라 해도 이물감이 없다. 과연, 21세기의 세 여자가, 혹은 가족에 대해 천착한 현실이 담겨있지 않다. 

또한 각각의 해프닝을 풀어가는 방식은 실험적인 단막극을 지향하는 <드라마 스페셜>이라기엔 너무 전형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여름의 끝>에서 수경과 초록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의 끝에, 가족으로 보듬기까지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전형적이다. 심지어 시어머니의 이반까지. 
<세 여자 가출소동>의 행로 역시 다르지 않다. 가출 해서 우연히 조우한 세 사람, 그 중 누군가를 쫓는 사람들로 인해, 함께 쫓기다, 차츰 정이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돈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또 다른 누군가가 사심없이 해결해 주고, 마지막에, 회개한 아버지의 사죄로 인한 해피엔딩까지. 
초록이가 사실은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는 <그 여름의 끝>의 반전도, 함께 가출한 세 여자가가, 납치범으로 오인받는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전에 어디선가 본듯 익숙하다. 


그러기에 <드라마 스페셜>의 장점은 무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공중파 유일의 단막극을 방영하는 것 이외에.
아마도, 그것이, 사극, 스릴러, 코미디, 기존 드라마에서 감히 해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해온 실험주의 정신도 있지만, 그에 덧붙여, 그것이 어떤 장르가 되었든, 바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사회가 고뇌하는 문제를 담은 '현재성'에 방점이 찍히기에 때로는 미흡한 완성도에도 빛났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기존 드라마들이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각종 사회 문제들, 인간간의 문제들을, 마치 가장 날선 시선을 가진 단편 소설들처럼, <드라마 스페셜>의 단막극을 통해 발언해 온 것이,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살아온 내력이다. 아름다운 동화같은 드라마들도,되돌이켜 보면, 가장 현실적인 기반에 발을 담글 때, 소통되지 않았었나 싶다. 사극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성에서 길어내어진 역사적 해석이어야 의미를 얻었다. 

그런 면에서, <그 여름의 끝>이나,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어쩐지 맹숭맹숭하다. 갈등은 첨예하고, 스토리는 완결적이지만, 그뿐이다. 새롭지도 않고, 실험적이지도 않고, 그저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이야기, 전개들이다. 그러니, 배우들의 연기도, 열연이긴 한데, 어딘가 한 구석이 비어있다. 이래서야, 월요일의 부담을 접어두고, 밤 열 두시 넘어 잠을 쫓으며 <드라마 스페셜>을 보아야 할 의미가 부여되겠는가.


by meditator 2014. 9. 22.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