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룸메이트>시즌2는 새로운 출연자들을 선보였다. 

<룸메이트> 출연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물의를 일으켰던 박봄을 비롯하여, 다수의 출연자들이 집을 나가고(?), 배종옥, god의 박준형, 오나티 료헤이, 이국주, 갓세븐의 잭슨, 써니, 카라의 허영지 등이 삼청동 집을 찾았다. 시즌1의 멤버 중, 이동욱, 조세호, 박민우, 서강준, 나나가 잔류하여 이들을 맞이한다.

얼마전 <썰전>에서 추석 특집을 논하며, 최근 예능의 트렌드가 '이방인'이라고 정의했다. 그 과정에서 <룸메이트>가 추석 특집으로 이방인 특집을 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김구라는 그러다, 그 이방인 특집이 시청률이 더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반응이 없는 <룸메이트>의 현 실상을 꼬집었다. 
마치 그런 <썰전>의 평가를 참조하기라도 한듯, 시즌2로 돌아온 <룸메이트>에는 이른바 '이방인'같지 않은 이방인들이 즐비하다. 

우선 박준형, 마흔 여섯 살의, 그룹 god의 맏형인 그는, 외모도 한국 사람같지 않지만, 하는 양도 여전히 이국적이다. 한국 말을 배우던 어린 시절 할머니 품에 자라, 말이 짧다는 그는, 그 짧았던 한국말의 기억만을 가진, 교포의 모습을 그대로 보인다. 사람을 만나면 다짜고짜, '헤이요'하며 팔을 엇갈리며 맞잡는 힙합식의 인사부터, 매사에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그의 스타일은, 외양만 한국인이지, 영락없는 '외쿡사람'이다. 
그런 그를 만나,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 반가운 잭슨도 마찬가지다.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펜싱 선수 출신의, 자신을 소개할라치면 양말을 벗고, 덤블링같은 무술 동작을 선보이는, 아이돌 그룹 갓세븐의 잭슨은, 어눌한 한국말에, 박준형과의 영어가 더 편한 외국인이다. 
천만을 훨씬 뛰어넘은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흠모해, 조국을 배신하고 조선을 위해 헌신하는 왜인으로 분한 오타니 료헤이는, 한국에서 활동한지 10년이나 되었다지만, 일본인이다. 
이렇게, 12명의 멤버 중, 세 명이, 이국적인 인물로 채워진, <룸메이트>는 그 분위기에서 시즌1에 비해 한결 다국적이다. 비록 인원수로는 세 명에 불과하지만, 시즌2 첫회 분량에서도 보여지듯이, 박준형, 잭슨의 활약은, 두 사람이라는 숫자로 설명하기 힘든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진; osen)

그들과 함께, 시즌2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면모 역시, 예능에서는 신선하기 이를데 없다. 나이를 묻지 말라는, 하지만 박준형이 누님이라 부르는 배종옥은 중진 연기자로, 예능에서는 첫 나들이이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예능의 도움을 받겠다는 말과 다르게,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똑부러진, 그녀의 드라마 속 캐릭터가 어디 가지 않은 듯, 즉석 밥으로 김밥을 싸는 후배들에게 '화가 나려고 한다'는 발언에서 벌써, 주관이 뚜렷한 왕언니의 캐릭터가 드러난다. 
대세 개그맨이 된 이국주 역시 고정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진출하는 건 처음이다. 서슴지 않고 웨이브와 자신 버전의 '빨개요'를 선보이는 예의 대세로서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어설픈 요리 실력에  손 걷어부치고 나서는, 또 다른 '맏언니'의 면모로서, 이국주의 활약이 기대된다. 자신의 곁에 들러붙는(?) 잭슨에게, 혹시나 자신과 엮어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이국주의 일침은, 그녀의 당당한 여성 캐릭터가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들과 함께 합류한 카라의 허영지는 아예 연예인으로 출발한 지 겨우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배 소녀시대 써니를 부르러 간 방문 앞에서 노크조차 하기 저어하는' 신참 소녀가, 낙지를 대하자 돌변한다. '맛있겠다'는 입맛 다심이 빈말이 아니게, 낙지를 쭉쭉 늘여, 턱턱 칼질해대는, 그녀의 캐릭터는, 여아이돌로써는 반전의 매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신선한 캐릭터의 세 사람이 <룸메이트> 시즌2를 예측 불허의 기대작으로 만든다.

<룸메이트>를 기대작으로 만드는 것은, 신선한 인물들의 수혈만이 아니다. 그 캐릭터를 다루는 제작진의 시선이 기대 요인 중 하나다. 시즌1의 제작진이, 다수의 인물들을 모아놓고, 일본의 그룹홈을 다루는 예능을 흉내내어, 다짜고짜 러브라인 만들기에 고심했던 것과 달리, 시즌2의 제작진은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노골적으로 그 사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박준형에, 이국주에, 잭슨에, 시즌1과 멤버 구성의 성격도 다르다. 

그리고 멤버 별 각자를 다루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오늘부터 출근>에서 마흔 여섯이나 먹었는데도 사회 생활을 모르는 망나니 같던 박준형은, <룸메이트> 시즌2에서는 여전히 자유분방하지만, 그 누구라도 선입견없이 따스하게 바라봐주는 오빠로 둔갑한다. 마흔 여섯 살의 그에게는, 소녀시대든, 이국주든, 그 누구든 이쁜 동생이다. 여전히 둘러대지 않고, 툭툭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거 같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변 상황을 따스하게 만든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과 함께 하는 예능이 걱정되었던 배종옥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가장 소통할 대상이 되는 것도 박준형이다. 똑같은 사람인데, 전혀 다른 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건, 결국 제작진의 깜냥이다. 
잭슨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소개될 때까지만 해도, 또 한 사람의 '헨리'가 등장하나 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던 그가, 한국어로 인사하며 급 공손해지는 것처럼, 천방지축일 거 같던, 외국인 잭슨대신, 그저 사람이 그리운 이방의 소년이 그려진다. 자신을 소개할 때, 다짜고짜 덤블링하듯 중국 무예를 선보일 때만 해도, 자신을 드러내는데 능숙하구나 싶었던 것이, 새로운 사람이 올때마다, 쿵쿵거리는 착지의 충격을 감수하고, 그것이 되풀이하는 모습에선, 안쓰러움마저 느껴지는 애교스러운 캐릭터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국주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국주에게 매달리는 그의 모습이, 큰 누나에게 어리광부리는 막내 동생처럼 정겹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겠냐마는, 시즌2를 여는 <룸메이트>는 그래도 어쩐지, 시즌1처럼 무작정 러브라인에 매달리다 침몰하지는 않을 거 같은 기대감을 준다. 이제야 비로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룹 홈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섣불리 해보게도 된다. 시즌1에서 우뚝 솟았던 조세호가, 대번에, 이번에는 만만치 않겠다는 듯 한 발 물러서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가 시즌1을 통해 재조명된 것이기는 하지만, 조세호 혼자 이끌어 가기엔, 주말 리얼리티의 하중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가 드러나보이지 않은 시즌2 멤버들의 존재감과 그들이 빗어내는 대안 가족으로의 하모니가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4. 9. 22. 10:56

새로운 예능 또 한 편이 등장했다. tvn의 <오늘부터 출근>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봉급 생활자 1404만명 시대, 한국 경제의 든든한 기둥, 샐러리맨, 그들의 일상으로 뛰어든 연예인 8명의 리얼 입사 스토리'
그에 따라, 마흔 여섯 살의 박준형, 역시나 사십대의 jk김동욱, 그리고 삼십대 은지원, 김성주, 이현이, 홍진호, 그에 이어 이십대 김예원, 로이킴이 신입사원으로 일주일 동안 회사 생활을 하게 된다. 

회사 생활의 첫 시작은 만만치 않다.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회사 생활을 위해 여덟 명의 연예인들은 8시25분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 이른 아침 이른 시간에 회사에 가기 위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연예인들 여덞 명 모두는 그 생활이 너무나 낯설다. 심지어, 마흔 여섯 살, 대부분 미국에서 거주하는 박준형의 입에서 '토큰'이 튀어 나온다. 세 아이의 아빠로, '퇴직'과 관련하여 아픈 기억이 있는 김성주에게 신입사원으로서의 새로운 출근은 감회가 남다르다. 연예계에서는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저 한낯 회사원으로서의 첫 발은 그 누구에게나 어설프다.

회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줄을 서야 하는 출근길 진풍경에, 회사 사원카드가 없이는 층 조차 제대로 찾아가기 힘든 출근길을 거치고 난, 회사 생활은 첫 날 부터 녹록치 않다. 시간에 딱 맞춰 가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겨우 도착해도, 청바지에, 짧은 치마, 나름 챙겨 입은 의상이 말썽이다. 
업무는 한 술 더 뜬다. 천하의 프로그래머 홍진호가 컴퓨터를 켜고, 켬퓨터와 프린터를 연결하는 걸 몰라서 선배에게 배우는 처지이고, 겨우 기다렸다 맡은 업무 택배 부치는 일조차 시간 내에 제대로 못해 지적을 받는다. 심지어, 재고가 뒤죽박죽 쌓인 창고 정리가 첫 번째 임무이자, 새로운 일에 부풀었던 마음은 지레 주저앉아 버린다. 점심 시간조차 상사와 밥 먹은 속도를 맟춰야 하는 등 쉬운 일이 없다. 심지어 퇴근 후의 회식 조차 회사 생활의 연장이다. 하루 일을 마친 여덟 명의 연예인들은 다같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의 일주일을 막막해 한다. 그렇게 <오늘부터 출근>은 첫 날부터 만만치 않은 '샐러리맨'의 생활을 가장 근접하게 그려내고 애쓴다. 


오래 전부터 홍보를 해온 <오늘부터 출근>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홍진호의 출연을 강조한다. 그런데, 막상 첫 회를 마친, <오늘부터 출근>에서 홍진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일과를 마친 홍진호가 '어휴 힘들다'를 내뱉지만, 시청자들은 그가 무엇이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출근하고, 컴퓨터 연결하는 장면 몇몇을 제외하고, 홍진호는 실종되었다 마지막에 한 컷 등장했기 때문이다. 홍진호만이 아니다. 로이킴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 명이 출연자들 중 그들의 첫 회사 생활이 제대로 보여진 이는 거의 없다.

그렇게 <오늘부터 출근>은 말이 여덟 명의 연예인이지,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로이킴에게 의존한다. 물론, 로이킴이 가장 신입 사원 연령대에 맞는 연예인임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나머지 일곱 명의 분량이 너무 없다. 애초에 한 시간 안에 여덞 명을 다룬다는 것이 무리가 있겠다 싶었지만, 그렇게 한 사람에게 몰아 가려면, 뭐하려 애써서 여덞 명을 출연시켰는지 질문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더구나, 로이킴이 누구인가, '표절', '식언' 등으로 물의를 빚고, 쫓기다시피 미국으로 갔던 사람이다. tvn의 주회사 cj가 운영하는 또 하나의 케이블 방송, m.net의 <슈퍼스타k>의 우승자로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리던 참에, 그 일을 겪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용히 다시 등장한 로이킴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 프로그램에서, 나머지 출연자를 들러리로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로이킴에 이어 가장 많은 분량을 얻은 사람은 박준형이다. 그런데, 이 사람, 마치 마흔 여섯 살의 '헨리'같다. 오랜 외국 생활에 한국의 정서, 사회를 전혀 모른 채 천방지축 날뛰는 한국 사람 얼굴의 이방인말이다. 
그런데, 박준형은 마흔 여섯 살이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god로 한국에서 연예인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제 아무리 회사라는 조직 문화에 낯설다 해도, 나름의 연예계라는 사회에 몸 담았는 사람인데, 그의 태도는 과연 그가 연예계 생활을 제대로 해냈을까 의심이 들 정도이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일을 보는 업무 시간에, 회사를 '주유'하며 이 사무실 저 사무실 전전한다거나, 창고 정리를 하며 동료 김성주가 땀을 뻘뻘 흘리는데 즐겁게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거나, '악마의 편집'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한 그룹 god를 이끌었던 맏형이었는가 의심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더구나, 이제 마흔 여섯 살이나 되었는데, 이십대 헨리와 같은 모습을 보이다니! 그는 그간 무엇을 하고 살아왔단 말인가. 이제 <비정상회담>등을 통해, 더 이상 텔레비젼 속의 외국인이 낯설지 않은 세상에, 외국인보다 더 자유분방한 그를, 그저, '외국 생활을 오래 한'이유 때문에 접어주기엔 도를 넘는다. 

출연자의 면면을 떠나,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오늘부터 출근>이라는 샐러리맨 리얼리티의 배경이,  한 눈에도  어느 회사인지 알 수 있는 '대기업'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1404만명의 샐러리맨 시대, 과연 이 중에 대기업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몇 %나 될까? 한 회사의 각 파트별로 사람들을 분산시켜 놓고, 제대로 분량을 뽑아낼 것이 없었다면, 차라리, 이들을 대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아주 조그만 개인 사무실, 생산직까지, 다양한 종류의 직장에 '취직'을 시켰다면 어땠을까? 신입사원의 취직이라며 대번에 대기업의 번듯한 사무실에 출근을 하는, <오늘부터 출근>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취직'하면 '대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은밀하게' 강화시킨다. 제 아무리 케이블이라지만, 이제 tvn하면 명실상부 공중파에 대적할 만한 심지어 그를 능가하는 화제성을 가진 방송국이 되었는데, 예능이라 하더라도, 조금 더 사회적 책임감이 뒤따르는 작품을 만들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9. 21. 12:37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중파 3사의 수목 드라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9월 10일 시작한 kbs2의 <아이언맨> mbc의 <내 생애 봄날>에 이어, 9월 17일 시작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등 세 편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듯한 이 세 편의 드라마, 꼼꼼히 뜯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우선, 이 세 편의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나이가 제법 지긋한(?) 남자 주인공들이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건, 여주인공과 열 여덟 살 나이 차가 설정되어 있는 <내 생애 봄날>의 강동하(감우성 분)다. 마흔 다섯 살의 그는 축산업체 하누라온의 대표이다. 
다음은 <아이언맨>의 주홍빈(이동욱 분)으로 서른 여섯 살의 게임업체 대표이다. 마지막 가장 젊은 남자는,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의 이현욱(정지훈 분)으로 서른 두 살의 작곡가이자, 연예기획사 대표로,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저작권료로 놀고 먹어도 상관이 없이, 애완견과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유산 계급'이다. 


그런데, 이 여유로운 싱글남들에게는 하나같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있다. 그게 과거의 여자들 때문이다. 
강동하는 아내가 죽은 후, 그녀를 떠나 보낸 자책감과 상실감에, 그의 외견을 보면 차마 축산업체 ceo라 차마 연상할 수 없게 홀애비의 추레함과 궁상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살아간다. 
주홍빈도 만만치 않다. 등에서 칼이 돋는 '괴물'이 되는 그의 트라우마에는, 과거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잃은 고통이 담겨 있다.
이현욱은 어떤가? 그가 이제는 작곡도, 연예 기획사 일도 저만치 밀어둔 채 오직 애완견과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그녀를 잃은 때문이다.
그들은 일상 생활을 제대로 영유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받지만(물론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누릴 것은 다 누리지만), 그들의 고통에 사회적 이유는 0.1%도 없다. 

기가 막히게도 하나같이 어쩜 과거의 순애보로 인해, 현재의 삶이 고통받고 있는 이 남자들이,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되는 방식은 또 '기가 막히게도' 과거의 연인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이다. 
아내를 잃은 바다를 쓸쓸히 찾아간 동하, 그는 그곳에서 아내가 죽은 후 처음으로, 그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는 그녀를 만난다. 예전 아내가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처음 만난 그녀가 동하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물론 여기엔 아내의 심장을 이식받은 봄이(수영 분)라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주홍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연히 마주친 손세동(신세경 분)에게서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의 향기를 맡은 후, 그는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현욱도 마찬가지다. 3년전 죽은 애인의 핸드폰에서, 그녀 동생인 여주인공 세나(크리스탈 분)의 음성 메시지를 들은 후, 이현욱은 세나를 쫓는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남자 주인공과 엮인, 과거의 그녀와 연관이 있는 그녀들, 그녀들은, 자신에게서 사랑하는 과거 그녀의 흔적을 잊지 못하는 그들의 집착, 혹은 배려로, 원하던, 혹은 원하지 않던, 도움을 받게 된다. 

정지훈-크리스탈 ‘내그녀’ 티저포스터

자, 여기까지, 이렇게 세 편의 드라마는, 여자 주인공에 비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주인공, 그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그를 등장시킨다. 그는, 현실에서는, 그녀와 맺어지기에는 '도둑놈' 소리를 들을 만한 처지이지만, 그와 그녀를 매개시키는, 과거의 그녀 덕분에, 그들의 사랑은, 개연성을 얻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재벌남, 혹은 그에 버금가는 부유한 남자 주인공과 그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덜한 여주인공의 결합의 변형일 뿐이다. 단지 그런 전형적인 버전이, 동화 버전, 트렌디 버전, 컬트 버전으로 색채만 달리한 것처럼 보인다. <아이언맨>의 경우, 등에서 칼이 돋는 기괴한 설정을 내세우고, 정작, 그걸 풀어가는 건, 지극히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라는 언밸러스한 구성을 보인다. 

단지 이전의 멜로 드라마의 전형에 비해, 남자 주인공의 나이는 지긋해 졌고, 여주인공은 젊어졌다. 그는,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상처를 얻은 시간만큼 부를 축적했다. 대번에, 여주인공의 허기를, 혹은 그녀를 위협하는 주변 상황을 일거해 해결해 줄 만큼의 능력을 지녔다. <아이언맨>의 손세정이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세나는 현재 어렵지만, 시청자들은 다 안다. 그런 그녀가 곧 넉넉한 그로 인해, 그녀가 겪는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것을. 

더구나, 이 가을 새롭게 등장하는 이 드라마들의 설정이 전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심장을 이식받은 그녀, 이건, 이미 윤은경, 김은희 극본, 윤석호 감독 연출의 그 유명한 사계절 시리즈 중 여름에 해당하는 <여름 향기>로 유명해진 설정이다. 그 드라마에서 송승헌이 자신의 사랑했던 여인의 심장을 받은 손예진을 보고 과거의 그녀를 느끼듯이, <내 생애 봄날> 역시, 감우성도, 아내를 잃은 바다에서 만난 그녀에게서 동일한 감정을 공유한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천재 작곡가와 가수 지망생의 만남 역시 몇몇 작품에서 보았떤 익숙한 설정이다. 가요계를 배경으로 신데렐라의 탄생 역시, 낯설지 않다. 

힐링 멜로 <내 생애 봄날>가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 이미지-1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 가을 동시에 이 상처받은 남자들을, 그들을 구원해 줄 어린 동정녀같은 여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멜로 드라마가 출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가을, 더할 나위없이 사랑하기 좋은 계절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장기 불황이 예고된 시점에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들에게, 그녀의 불안한 사회적 정체성을 달래줄만큼 넉넉한(나이 그까이꺼, 차라리 나이가 좀 많더라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자존심을 버틸 만큼,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나잇값을 못하게 아이같은 영혼의, 그래서 그녀가 구원해 주었단 자부할 만한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까?

선선해 지는 날씨와 함께 옆에 누가 있어도 가슴이 스산해 지는 가을, 따스한 멜로 드라마 한 편, 좋다. 하지만, 소리 높여 사회적 의식을 주장하던 상반기 드라마들의 흔적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고,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는, 그 예전에 하던 이야기를 버전만 달리하여 도돌이표처럼 되풀이 하는 공중파 3사의 드라마들, 그렇다고 어느 작품하나, 빼어나게 시청률이 대박을 치지도 못하는 이 작품들을, 온국민이 트라우가 되었던 세월호 사태조차도 그저 이제는 시간이 흘렀으니 지겹다고 하는 이 냉정한 사회적 방기의 계절에, 그저 가을 탓이라고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울 육아 비용이 무서워 아이를 낳기 두려워 하고, 결혼 자금이 없어 결혼도 미루는, 이 처참한 불황기에 말이다. 현실의 사회적 배경은 단 1%도 드리워져 있지 않은, 결국은 부유한 그와, 그보다 가난한 그녀의 만남을, 혹은 부유한 그와 그와 어울릴만한 배경의 그녀가 만나는 이야기를,  그저 아름다운 순애보로 이 가을을 달래야 하는가 말이다. 


by meditator 2014. 9. 19. 13:40

새로 선출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두번에 걸친 평가 결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자사고(자율형 사립 학교) 8곳에 대해 지정 취소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서울시 교육청의 방침에 대해 그 협의 신청을 반려하고, 심지어, 협의하도록 한, 초중등 교육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다. 

<썰전>은 이런 최근의 '자사고' 지정을 둘러싼 서울시 교육감과 교육부의 입장 차이에 대해 다루었다. 

(사진; 아주 경제)

우선, 과연 <썰전>의 두 패널이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객관적인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짚어 보아야 한다.

프로그램 중에서도 밝혀졌듯이, 두 패널 중 강용석은 현재 '자사고'에 다니는 큰 아들을 두고 있고, 또 다른 패널인 이철희는 '자사고'를 졸업한 큰 아들과, 일반고에 다니는 작은 아들을 두고 있다. 즉, 그간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 이철희와 강용석이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자사고'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처한 조건이 상대적이지 않다는데 우선 '자사고' 문제를 다루는 한계가 드리워진다. mc 김구라가 있지 않냐고? 힙합퍼를 지향하는 바람에 평소 공부와 담을 쌓은 김구라의 아들은 일반고를 다니지만, 우리나라 일반 학부모들이 '아들의 학교 성적이 곧 나의 얼굴'이라는 선입견이 지배하듯, '자사고' 문제에서 김구라는 상대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 둔 학부모의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자녀 중 실제 '자사고'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이철희, 강용석은, 당연히 그들이 다루어 왔던 여타 정치적 사안에 대해, 한 발 물러나 평론가연 하는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보다 자신의 이해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해내 나갈 수 밖에 없다. 
아니다. 이런 평가는 어패가 있다. <썰전>에서 늘 강용석은 그래왔다. 늘 자신의 정치적 입장, 혹은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사안을 바라보며 입장을 전개한다. 여당의 저격수로서의 향수인지, 사명감인지, 그도 아니면 차기를 노리려는 정치적 꼼수인지, 그런 자신의 정치적 이해가 분명한 관점에서, 야당의 지도자 안철수와 박원순을 공격하고, 여당의 지도자들을 평가해 왔다. 그의 그런 분명한 정치적 이해는, 그가 준비해온 광범위한 자료와, 그의 풍부한 식견 속에 묻혀, 그의 속된 입장을 포장해 왔으니 '자사고' 문제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오히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자사고'에 대해 호의적이기에 '자사고' 문제에 있어 그저 '새 교육감이 의욕적으로 일을 좀 해보려고 하니, 두고보자'는 식으로 밖에, 혹은 '자기만 사랑하는 학교'가 될 수 있다고 한 줄 평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철희의 어정쩡함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맞겠다. 

그렇듯이, '자사고'에 대한 조희연 교육감의 의욕적이 철회 결정은, 실제 '자사고'를 다녔거나, 다니는 학부모를 두 패널의 사적 이해로 인해, 애초에 객관적 평가를 결여한다. 
객관적으로 논해야 할 사안에, 강용석은, '학교 커리큘럼이 대학 입시에 딱 맞춰져 있다'라거나, '외부 강사를 데려와 독서 강좌를 하'는데 그게 '입시 교육을 위한 것이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라는 식으로, 그리고 다니고 있는 아들이 몹시 만족하고 있다는 지극히 사적인 평가를 한 치도 넘어서지 않는다. <썰전>을 본, 내 아이를 대학 입시에서 승리하고 싶은 어느 부모가 강용석의 말을 듣고는 조희연 교육감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겠는가.
아니, 강용석은 늘 그래왔다고 치자, 정작 문제는 이철희다. 자신의 아들을 만족스럽게 '자사고'를 보냈던 그는 '자사고'의 문제점에 대해, 그저 '자신만을 사랑하는 학교'라는 한 줄 평 이외에 이렇다할 '자사고'의 문제점을 들지 못한다. 
오히려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짚는다면서, 일반고에 다니는 둘째 아들의 사례를 들어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빠져나간, 그래서 1/3이나마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일반고의 수업 환경을 논한다. 그러니 그에 대해 당연히 통계를 좋아하는 강용석은 만약 '자사고'를 폐지한다 해도, 각 반 별로 한 두명 배정되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라는 당당한 반론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 내 자식을 '자사고'에 보내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자사고'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두 패널의 평가는, 형식적으로는 조희연 교육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지만, 결국, 교육부 장관의 강고한 입장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자기 자식 좋은 학교 보내겠다는 학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정치적 공정성이고 나발이고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사고'의 문제에서 이 두 패널이 짚어야 했으나 짚지 않고, 짚을 수 없었던 논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두 패널,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강용석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강용석이 누구인가, 물론 그 자신이 컴플렉스처럼 말하지만 뺑뺑이라도 우리나라 제 1의 명문이라고 하는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를 다니고, 하버드대를 나와 사법 고시에 나온 수재이다. 그뿐인가, 변호사 출신의 그는 여당 국회의원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이력의 이면에서 강용석은 어떤 사람인가. 국회에 있을 때, 여당 저격수랍시고, 상대당의 대표적 정치인에 대해 막말을 불사했으며, 아나운서 들에 대해 성희롱을 하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썰전>에서도 여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패널로 나섰지만, 여당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 혹은 지극히 사적 이해에 충실한,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가진 온갖 지식과 정보를 동원하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자신의 사적 이해에 충실한 자신의 모습을 당연시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강용석인 것이다. '자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그의 식견은 자기는 시험 봐서 경기고 나오고, 자기 자식은 외고 나온 사람이, 나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식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리고 그런 강용석은, 바로 이철희가 겨우 한 마디 내놓은 '자사고'에 대한 한 줄 평, 자기만 사랑하는 학교 자사고라는 평가의 바로 그 '자기만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경우이다. 
'자사고'의 '그들만의 리그'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끼리 모여 그들끼지 공부하고, 그들끼리 지낸, 그 아이들은, 아마도 대부분, 우리나라 상위 몇 %의 직위를 가진 '리더'들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일찌기 그들끼리 지내온 그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공부 시간에 조는 아이들,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눈꼽만치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백날 서울대 나오고, 하버드 나오면 뭐하는가, 자신의 개인적 이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당연히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적 사안, 행정적 사안이 그러하듯,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마치 무슨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도 되는 양 선심쓰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랑 한반에서 공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성향을 지닌 다양한 아이들이 한 반에서 어우러진 문화적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엘리트가 되어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강용석 같은 사람만 양산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왜 '자사고'에서 돈을 들여 외부 강사까지 초빙하여 하는 풍부한 독서 교육을 정작, 공부에 관심이 없는 일반고 학생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공부에 관심이 없으면 없을 수록 또 다른 선택을 위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저 교실에 가둔 채 성의없는 수업으로 고문하게 만드는 지금의 일반고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 하지 않는 것이 무슨 '자사고'에 대한 평론인지? 결국 내 자식 문제에 이르러서는, 내 자식 '대학 잘 보내주는 학교'에 대해서는 약해지고 마는 이중성이 <썰전>의 자사고 문제에 대한 꼭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깨어있지 않은 지식인, 자신의 이해에만 민감한 지식인, 바로 이런 사람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도, '자사고'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9. 19. 11:13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100회를 맞이하여 특집으로, 그간 화려한 무대, 아름다운 음악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수고해 왔던 '세션맨'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덕분에 우리가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본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9월 <ebs다큐 프라임>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지탱하는 악기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름하야,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지만, 그것을 통해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 음악을 한다는 행위, 그 자체이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서두는 슬프게도 악기들의 무덤이 연다. (1부; 악기들의 무덤) 강원도 산골의 창고, 한때는 영광을 누렸던 악기들이 폐품이 되어 모여든다. 200년의 전성기를 누렸던  바이올린도, 음악사의 전기를 이뤘던 전자 기타도, 그 거대한 존재만으로도 아우라를 뿜어냈던 그랜드 피아노도 이제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죽어간다. 마치 영화<토이스토리>의 버려진 장난감들처럼, 한때의 영광을 논하지만, 이젠 그저 무덤과 같은 창고 속에서 숨죽인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던 이곳에, 국내 최고의 악기장 6명이 찾아든다. 그들의 손에 의해, 무덤이었던 창고는 작업장으로 바뀌고, 죽었던 악기는 생명을 얻어간다. 그리고 찾아든 연주자들, 그들과 함께 죽어가던 악기는 음악을 연주하고, 그것을 통해, 악기의 존재 이유를 살핀다.


1부가, 음악을 통해 살아나는, 그리고 역으로 악기를 매개해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폈다면, 2부는 조금 더 악기 자체에 집중하여, 악기의 특성을 살핀다. 2부가 시작되고, 피아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전자기타 등의 연주자들이 저마다 자신있는 곡을  뽐낸다. 하지만, 그들이 제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곡을 연주해도, 저 마다 악기가 뿜어내는 음악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악기의 또 다른 존재론, '함께 하기'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2부; 악기와 악기가 만났을 때) 한양대 작곡가 정건영 교수의 수업을 매개로, 슈페르트 교향곡의 오보에와 클라리넷 합주에서 부터 시작하여, 동요에서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함께 하는' 음악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저 소리가 커진다, 음역대가 넓어진다라는 단순한 특성을 넘어, 결국 통찰력있는 진실에 다가간다. 


2부가 악기의 합주를 통한 존재론의 특성을 살폈다면, 3부는, 악기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학과 학생들, 미디어 아티스트, 카이스트 학생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세상에 없는 악기를 만들기를 도전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이들뿐이 아니다. 악기를 변형하거나 손수 제작하여 연주하는 '저그 밴드'가 연주하는 것은 빨래판, 양동이, 그리고 대걸레자루이다. 명주실에 종이컵을 끼워 모짜르트를 연주하는 스트링그래피도 있다. 멋진 연주가 아니라도, 당근, 브로컬리, 무에 구멍을 뚫으면 그럴 듯한 관악기 소리를 낸다. 얼음이나, 물방울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결국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에 도전하는 전병준 미디어 아티스트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며, 우리가 마음을 연다면 그 음악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의 틀에 박힌 선입견을 깨기 위해, 빛과 소리와, 공기, 그리고 알루미늄 튜브, 피아노의 진공관, 톱니 바퀴, 심지어 총을 사용하여 새로운 악기와 음악을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 악기와, 그 악기들의 합주는, 물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음악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어딘지 음악같다. 마치 잭슨 폴락이 구멍 낸 물감통을 캔버스 위에 일정한 진폭으로 흩뿌려 현대 미술의 새로운 사조를 만들듯이, 그렇게 전병준과 함께 한 동료들은,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대해 전병준은, 그들이 만들어 낸 음악보다도, 그렇게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해 가는 그 움직임, 행위 자체가 음악 같다는 말을 한다.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는 음악의 귀결점은, '듣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음악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상대방이 연주하은 음악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음악을 함께 하기 위해서, 전제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이해이다. 
1부에서 무덤에서 악기를 되살려 낸 것, 그리고 그들을 다시 악기이게 만든 것은 바로 다름아닌, 악기와 동고동락하던 '인간'들이다. 
결국, 3부작 '악기란 무엇인가'는, 한낮 물건에 불과한, 악기를 매개로 한 인간의 도전과,화합, 그리고 창조의 역사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4. 9. 18. 14:27

오락적 성격이 보다 강한 kbs2tv에 대표적 육아 예능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있다면, 그 보다 교양적 성격이 강한 kbs1tv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방영하는 <엄마의 탄생>이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가 육아를 전담하는 이벤트적 성격이 강한 육아 예능이라면, <엄마의 탄생>은 아기의 임신, 출산, 육아 과정을, 육아의 직접적 담당자인 엄마를 중심으로 그려내는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지향한다. 하지만,  kbs1의 편성이고, 시사 교양이라는 구분에도 불구하고, 막상 지켜본 <엄마의 탄생>은 이제는 빼곡히 채워져가는 육아 예능의 남은 행간을 채우는 또 하나의 관찰 예능적 성격이 강하다. 


<엄마의 탄생>이 시작부터 화제성을 끌기 시작한 것은, 바로 어렵게 아이를 가진 강원래-김송 부부의 출산 과정을 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이제 개편과 함께 수요일 저녁으로 시간을 옮긴 <엄마의 탄생>은 강원래-김송 부부의 재등장으로 다시 화제성을 이어가고자 하고, 그런 제작진의 판단이 옳았음을 동시간대 1위의 성적표로 증명한다. 어쨋든 여전히 '육아 예능'은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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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뉴스)

9월 17일 방영된 <엄마의 탄생>은 세 개의 꼭지로 진행되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박지윤이 mc를 보는 가운데, 엄마가 아닌, 세 아빠가 자리를 함께 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육아 과정을 지켜본다. 
첫 번 째 꼭지로 등장한 것은, 화제의 강원래-김송 부부이다. 감격의 출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슈퍼 베이기가 된 우람한 강원래- 김송 부부의 2세 강선을 키우는 과정이 그려진다. 집안 서열 1위로 막말도 불사하던 카리스마 가장 강원래는 사라지고, 아들 선이와, 그에게 모든 관심이 쏠린 아내 김송이 중심이 되어버린 육아가 중심이 된 가정의 밀려난 아빠 강원래의 적응기가 그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갖은 감탄사와, 즐거운 비명, 그리고 아이와 대화를 빙자한 갖은 희한한 육성을 발산하는 아내를 외계인 보듯하면서도, 밀려난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기는 커녕, 아이로 인해,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고 그리고 기쁘게 감내해 가는 달라진 아빠 강원래를 만날 수 있다. 

강원래- 김송의 출산 과정에서의 화제성을 이어가려는 듯, 두 번째 꼭지의 부모는 아직 출산을 앞둔 염경환-서현정 부부이다. 9월 17일 방영분에서, 염경환과 그의 큰 아들이 태어날 아기를 위해 신생아용 침대를 직접 만드는 과정은, 이미 다수의 육아 예능에서 등장했던 이벤트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던 환경에서 첫째를 키우고, 그 보다 여유가 생긴 환경에서 침대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 염경환의 형편이, 평범한 침대 만들기를 잔잔한 감동으로 이끈다. 작은 아기 침대에 들어가 있는 큰 아들을 보며, 그리고 아내가 보관해 온 큰 아들의 배냇옷을 다시 보며, 여유가 없어 침대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큰 아이에게 미안해 하는 염경환 부부의 회고가, 뻔한 이벤트에 다른 질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9월 17일 방영분의 백미는 이제 7개월이 되어가는 지아를 키우는 여현수-정혜미 부부의 이야기이다. 육아책을 선생님처럼 신봉하던 엄마 정혜미, 하지만, 그런 모범생같은 엄마의 이면에는,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노심초사가 드리워져 있다. 혹시나 아이가 잘못될까 하는 불안감에 아이를 띠어 놓지 못하는 첫 아이 엄마 정혜미의 불안감이, 결국 스스로 기는 것을 연습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성장발달 검사의 부진으로 이어지자, 부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육아 방식을 고민한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장치를 마련하고, 부부는 딸 지아를 혼자 앉혀보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앉혀 놓기가 무섭게 쓰러지는 지아를 보고, 엉마는 늘 그랬듯이 달려가 일으켜 주려고 하지만, 아빠 여현수는 소아과 의사의 충고를 들며 그런 엄마를 제지한다. 아빠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해 하는 엄마, 하지만, 그런 엄마의 고뇌(?)가무색하게 몇 번을 넘어지던 지아는, 허리를 쭉 펴고, 팔로 지탱하며 스스로 앉아 보인다. 결국 엄마의 과보호가 아이가 스스로 발육할 수 있는 상황을 막았음을 지아 스스로 증명해내 보인다. 

(사진; 스포츠 월드)

여현수-정혜미네 가족의 해프닝은 그저 과보호 엄마의 웃픈 상황이 아니다. 첫 아이를 키우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두고 벌일 수 있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요, 거기에는 앞으로 내 아이를 어떤 육아관을 가지고 키워가야 할 것인가라는 부모의 육아 철학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담겨있다. 
'육아', 말 그대로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는 것이지만, 지아가 넘어지면서 스스로 앉는 법을 터득해 내듯이, 때로는 그 아이를 키운다는 말 속에는, 그 아이가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 이제 아이를 낳아도 하나 정도씩만 낳는 것이 관행이 되어가는 현재의 대한민국 육아 상황에서, 여현수-정혜미 부부의 해프닝은 '보호'가 아닌, 진정한 '육아'가 무엇인가에 대해, 모두가 한번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현수-정혜미 부부의 육아 과정을, 그저 예능적 재미가 아니라, 육아의 진지한 고민으로 들여다 볼 때, <엄마의 탄생>은 한낮 관찰 예능의 경계를 넘어선다. 

프로그램 중에서도 나왔듯이, 한번 입었던 옷이 벌써 작아서 입을 수 없듯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육아 과정은, 프리즘처럼 다채롭다. 아직 출산전부터 시작하여, 생후 5개월, 7개월, 비록 몇 개월의 차이이지만, 엄마의 뱃속에서 부터, 스스로 앉을 수 있게 되기 까지, 성인의 몇 십년 보다도 더 다이내믹한 과정이 보여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다. 범람하는 육아 예능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빽빽거리고 울며 보채지 않는, 남의 집 아이 키우는 걸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by meditator 2014. 9. 18. 11:18

지난 2월 종영한 <유혹>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에서, 주제 의식을 끌고가는 화자는 송미경(김지수 분)이다. 그녀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이 자신 외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걸 '감지'한 송미경은 나은진(한혜진 분)과 같은 쿠킹 클래스를 다니며 그녀를 지켜본다. 하지만, 송미경의 분노는, 그녀보다 한 발 빠른 동생 송민수(박서준 분)의 섣부른 복수로 일찌감치 행적이 드러나 보이고 만다. 하지만 송미경은 당당하다. 비록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가정을 꾸려왔던 남편, 자신과의 사이에 아이를 둔 아빠인 남편을 빼앗아 간 그녀를 '단죄'하는 것에. 
<따뜻한 말 한 마디>란 드라마 역시 처음 견지했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유재학과 나은진이 잠시 서로에게 '미혹'되지만,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가정이 있는 존재임을 놓지 않는다. 결국 덕분에 드라마는 흔들렸던 두 가정의 행복으로 끝난다.
그런데 만약,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가, 가정의 행복과, 안녕을 주제 의식으로 삼지 않았다면, 나은진의 자아 찾기, 사랑 찾기가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 버렸다면 어땠을까? 동시간대 1위는 아니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공감가는 송미경의 처지로 인해 화제를 불어일으켰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아마도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했던 바로 그 월,화 10시에 방영된 드라마 <유혹>은 바로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대척 지점에 있는 주제 의식을 논하고자 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치자면, 나은진이 사랑을 찾아 유재학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막장'을 피하고자, <유혹>은 여러가지 장치를 준비한다. 우선 '사랑'을 도발하는 주인공 유세영(최지우 분)는 사랑도 모른채 마흔이 넘어 조기 폐경이 오도록 회사 일에만 매달리는 ceo로 그려진다. 그러던 그녀가 홍콩에서 만난 사이좋은 차석훈(권상우 분)-나홍주(박하선 분)를 보고 알 수 없는 질투를 느낀다. 자신은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데, 한없이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 부부부에 대해, 뜬금없이, '파멸'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세영은, 선배와 운영하던 회사의 자금으로 인해 막판으로 몰린 차석훈에게 '돈'을 매개로 한 '사랑'의 딜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보험금을 바라며 '자살'까지 감행하려던 사랑하는 아내을 생각하며, 유세영이 던진, '함께 하는 3일'의 딜에 손을 맞잡는다. 

(사진; 스포츠 투데이)

굳이 몇 달전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끄집어 낸 것은, 바로 <유혹>의 시작점에 놓인,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의식에 따른 부도덕한 계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결국 '순애보'로 마무리 지어져도 두 사람의 만남을 매개했던 '돈'으로 얽혀진 '원죄'를 <유혹>은 넘어설 수 있었을까?또한 과연 종영을 맞이한 <유혹>은 이런 부도덕했전 가정 파괴의 원죄를 극복했을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유혹>은 갖은 장치를 마련한다. 
정작 차석훈 가정을 파멸에 이를 '딜'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세영은 차석훈을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그에 반해,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차석훈을 구하려 했던 나홍주는 불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나홍주의 계속되는 의심과, 그에 이은 불신은, 차석훈과의 가정을 깨는 주체를 나홍주로 만든다. 심지어 '이혼'하기도 홀가분하게 차석훈과 나홍주 사이에는 억지로 두 사람의 결혼을 이어붙어야 하는 '아이'조차도 없다. 덕분에, 홍콩에서 유세영의 딜은 그저 해프닝으로 덮어진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정을 깨뜨린 유세영과, 그녀에게 미련을 놓지 못하는 차석훈에 대해 나홍주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녀 자신이 먼저 복수의 도구로, 강민우(이정진 분)의 가정을 이용한다. 나홍주가 유세영만큼, 혹은 유세영보다 더 부도덕한 길로 가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차석훈과 나홍주의 가정을 깨뜨리고 싶다는 유세영의 '욕망'은 어느 틈에, 평생을 사랑 한번 못해 본, 그리고 이제 '암'까지 걸린 고통받는 운명의 자아 성찰이자, 순애보로 돌변한다. 

물론 유세영의 순애보의 여정도  만만치 않다. 자신을 망가뜨리며 덤벼드는 나홍주의 복수심에 손을 잡은 강민우 덕분에 유세영의 회사는 위기에 빠지고, 차석훈은 하는 일마다 태클을 받는다. 하지만, 단 한번의 유세영의 딜에,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남편을 구하려던 나홍주가 결혼을 파괴하는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과 달리, 유세영은, 그런 위기 상황을 겪으며 오히려 차석훈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키워간다. 나홍주가 믿지 못했던 '사랑'을 유세영은 오히려 의지한다. 
하지만, 댓가는 치명적이다. 유세영은 마치 그녀의 도덕적 딜의 죄가라도 되는 양,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수술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차석훈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일말의 기회조차 놓친다. 그리고 이제, 언제 끝날 지 모를 항암 치료의 여정만 남아있다. 하지만, 유세영은 다시 일어선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차석훈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에서 유세영의 순애보로 명명한 것은, <유혹>의 주체가 유세영이기 때문이다. 안스럽게도 차석훈은, 지금까지 일반적인 멜로 드라마의 '사랑받아 마땅한' 그녀처럼, 그저 사랑받아 마땅한 그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삶을 위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유세영이 던진 며칠 밤의 딜을 마다지 않았던 책임감있는 가장(?)이었던 차석훈은, 아내가 홀로 떠나자 뜬금없이 유세영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홍콩을 주유하는가 싶더니, 언제부터인가, 유세영에게 사랑을 바치는 순애보의 기사가 되었다. 그게 나홍주이든, 유세영이든, 그는 언제나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셋팅된 사랑의 로봇과도 같다. 

만약 <유혹>의 캐스팅이, 지금처럼 유세영 역에 여전한 당대의 스타 최지우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최지우가 나홍주의 역을 맡았다면, <유혹>의 스토리가 지금처럼 전개되었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떠올리면 그래서는 안되는 건데, 이상하게도, <유혹>은 첫 회부터, 고고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최지우가 연기한 유세영에게 마음이 쏠리게 된다. 분명, 나홍주와 차석훈이 부부인데, 불륜인 유세영과 차석훈에게 마음이 간다. 정식 아내는 나홍주인데, 어쩐지 그녀가 미덥지 않다. 오히려 이 부부를 탐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유세영에게 마음이 자꾸 쓰인다. 이것이, <유혹>의 매력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최지우의 매력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독설을 내뿜던 송미경에게 열광했던 바로 멜로 드라마의 애청자층이, 이번에는 <유혹>의 불륜을 품은 순애보에 열광했다는 것이다. 가정 파괴를 부르는 불륜을 징벌하고자 하는 도덕적 잣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서도 놓치지 않는 순애보로 포장된 유혹은 그저 또 다른 이야기였을 뿐일까? 그게 아니면, 현실에서는 가정을 공고히 하고 싶지만, 나도 유세영처럼, '돈'으로 시작해서라도, 다시 한번 누군가와 순애보를 이루고 싶다는 숨겨진 욕망의 발현이 <유혹>이라는 기괴한 판타지로 드러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남편의 신실함을 믿지 못했던 나홍주의 어리석음에 대한 우화였을까?

주 시청자층의 아이러니한 열광만큼, <유혹>은 비록 차석훈과 유세영의 앞날을 알길 없는 모호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실한 순애보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드라마의 시작을 지켜 본 사람으로 뒷맛은 개운치 않다. 과연, 비록 몸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하룻밤의 딜이, 저렇게 순애보로 기승전결이 이루어 지는 것인지, 도덕적, 논리적 딜레마에서 놓여나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서슴없이 욕망을 순애보로 마무리하는 그 얕은 환타지에 쉬이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일까? 


by meditator 2014. 9. 17. 09:45

4월 14일 폐막한 '인디 다큐페스티발 2014'에서 관객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관객상'을 받은 작품은 바로 이진우 감독의 <전봇대 당신>이다.

<전봇대 당신>은 kt를 다녔던 이진우 감독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작품이다.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 이만구 씨는 1990년대 중반까지 kt사내 교육 연수원에서 직원들 사내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로 일하시던 분이다. 하지만, kt가 민영화된 이후, 승진에서 탈락한 뒤, 비연고지 업무와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다 겨우 2010년 12월 퇴직하셨고, 아들인 이진우 감독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래도 영화 <전봇대 당신>에서 아버지는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면서도 결국 회사 생활을 '퇴직'으로 마무리하셨다. 하지만, 2003년 5000명, 그리고 2014년 8300명 등, 민영화 이후 kt에서는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처럼 그래도 나이를 꽉 채워 '퇴직'하지 못한 '희망 퇴직'이 대규모 양산되고 있다. 그리고 mbc 다큐 스페셜은 지난번 <pd수첩>1000회에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kt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서 거의 '직장인 학살'이다싶은 '희망 퇴직'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룬다. 

전봇대 가장(家長)-희망퇴직 이야기_1

연수원 교수였던 이진우 감독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발령난, 상당수의 kt퇴직자들이, 심지어 여성들까지 보직 발령된 '전봇대 업무'라는 건 무얼까? 
다름 아닌 전국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kt의 전봇대를 관리하는 업무이다.  kt 영업소 뒷마당에는 전선줄이 연결되지 않은 전봇대가 놓여있다. 바로 전봇대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연습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연습을 위한 전봇대는, 때로는 희망 퇴직자들에게 '고문'을 위한 장소로 씌여진다. kt를 다녔던 중년의 여성은 전봇대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잃는다. 남편이 위암 수술을 받아, 희망 퇴직만은 피하고 싶었던 그녀에게 '전봇대 업무'가 주어졌다. 전근 발령된 영업소,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희망 퇴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전 처음 전봇대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 직장에서 버텨야 한다는 마음으로 겨우겨우 올라간 전봇대, 하지만, 눈앞이 까마득해지고. 결국 그녀는 kt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전봇대 업무'가 아니라고 해서 나을 것도 없다. imf 시절, adsl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kt의 부흥을 이끌었던 공규식씨가 지금 하는 일은, 또 다른 전봇대 업무이다. 핸드폰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잘못 설치된 전봇대를 찍는 일이 그의 업무의 전부다. 그와 함께 '전봇대 업무'를 하는, 즉, 그처럼 희망퇴직예정자이지만, 안나가고 버텨서 전봇대 업무를 배정받은 이들은, 한때 kt의 핵심 두뇌였던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영광이란다. 공로를 인정받기는 커녕, 그에게 돌아온 것은 '토사구팽', 말이 좋아 '희망 퇴직'이다.

kt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에서 일하던 대신증권 직원은, 하루 아침에,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근한다. 그저 버티라는 아내의 말을 외면할 수 없어, '희망 퇴직' 대상자임에도 회사를 나가지 않은 그에게 지금 주어진 일은 대신증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다. kt의 전봇대 업무와 같은 대신증권의 프로그램에는 별 희안한 업무가 다 있다. 직접 발로 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심지어 식당 주방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한 흔적을 사진을 찍어 보내야 하는 것은 물론, 각 식당 별로 돌아다니며 명함을 모아다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쓸쓸히 명함을 모으며, '희망 퇴직 대상자'가 된 직원은 말한다. 이게 '희망'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저 '희망 퇴직'을 하라는 전조등일 뿐이라고.

대신증권, 현대 증권 등, 회사의 경영 합리화를 직원들의 정리 해고를 통해 해소하고 있는 증권사 직원들의 경우, '희망 퇴직'을 피하기 위해, 성과를 내려고, 자신의, 그리고 주변의 자금을 끌어들인다. 그 과정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증권맨'의 숙명인, '빛'이 눈더미처럼 불어난다. 결국, 버티다 못해, '희망 퇴직'을 한 퇴직자들에게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빛'뿐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희망 퇴직'이 선포된 현대 증권 회사 앞, '먼저 가겠다'는 희망 퇴직자의 편지를 듣는 직원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말이 좋아 '희망 퇴직'이지, 하루 아침에, 메신저로, 혹은 은밀하게 쪽지로 전달되는 '희망 퇴직' 통지는 대다수 직장인들에게는 '사형선고'이다.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충성'을 다했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직장인들은, 대부분,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때로는 그 감정적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채 정신적 상처를 입고 세상과 담을 쌓기도 한다. '희망퇴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쌍용 자동차 퇴직자 직원은 결국 그 과정에서 가족을 잃었다. 아내와 이혼 한 후,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이제 그는 한 달에 한번 보는 아버지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는, 자기 키만한 짐 더미를 오르내리는 평택항의 일용직 근로자로 살아간다. 

기사 관련 사진

<전봇대 당신>을 연출한 이진우 감독은, '순이익 50%를 무조건 주주들을 위해 배정하겠다는' 이석채 전 회장이 주관한 주주총회 광경을 영화에 담는다. 그는 말한다. 민영화 이후,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더 피폐해지고, 직원들 보다 '주주'를 위한 회사가 되었다고. 
kt만이 아니다. 불황을 견디는 대다수 기업들의 해결 방식은, 평생을 직장을 위해 살아온 직원들을 '홀로코스트'처럼 대규모적으로 감원하는 것이다. 말이 좋아, '희망 퇴직'이지, 하루 아침에 직장을 벗어난 중년의 가장들은 정신적 내홍과,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기에 버겁다. 그렇다고 '희망 퇴직'을 하지 않고 버티자니, 남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모멸'뿐이다. 

<pd수첩>에 이어 다시 한번 다루어진 '희망 퇴직'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oecd회원국중, 근로자 평균 근로 연수가 가장 짧은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전봇대 가장'은 그 어떤 비극보다 '리얼'하다. 
물론, <pd수첩>이 말하지 않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비극도 있다. '희망 퇴직'이 아니라, mbc의 '건강한' 보도를 위해 싸우다가, 해직당한, 그리고 복직되지 않은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직장인들의 무덤, '희망퇴직' 이야기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by meditator 2014. 9. 16. 11:42

글로벌 코리아'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외국인들이 패널로 나와 한국에서의 삶을 한국말로 여유롭게 논하는 토크쇼가 인기리에 방영된다. 하지만,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이방인들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어떨까?


독특하게도 이방인들의 한국 정착기를 다룬 3부작 특집 프로그램은, kbs 1에서 방영되었다. 아마도, 예능인지, 다큐인지, 그 경계에 선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이리라.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은 이태원 한 복판에 커다란 여행 슈트케이스가 설치됐다.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주제로 그곳을 오가는 외국인들과 상담을 하는 곳이다. 이 상담을 위해, 영어에 능통한 알렉스가 상담자로 등장하여, 100 여몀의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알렉스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그들은, 각자의 소회대로, 자신의 앞에 높인 떠나거나 남는 선택키를 누른다. 그리고 그렇게 알렉스와 이야기를 나눈 100 명 중에서 골라진 3명의 한국 생활 100 여일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 바로 <리얼 정착기-이방인>이다. 

(사진; 코리아 데일리)

<리얼 정착기-이방인>의 세 주인공은 이탈리아인 다비드, 케냐 출신의 아디와, 독일 출신의 로미나이다. 

이탈리아인 다비드는 아일랜드에서 만나 결혼한 한국인 아내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와 6개월째 처가에 머물며 이탈리안 레스토랑 개업을 준비 중이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그는,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아내가 없인 옴짝달싹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그의 야심은, 연남동에 즐비한 각종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혼돈을 겪는다. 

장학생으로 이대를 수료한 아디의 직장은 한국에 온 유학생들에게 각종 도움을 주는, 비영리 단체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재원이지만,고국 케냐에서 우리나라의 대학을 알지 못해, 한국에서 직장을 얻은 아디는 이제 겨우 6개월차의 신입 사원이다. 이방의 그녀가 겪는 한국의 회사 생활은, 밥 한 끼에서부터, 인간 관계까지 쉬운 게 없다. 

독일 출신의 로미나는 독특하게도 트로트 가수 지망생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그럴 듯하게 부르는 그녀가 화제가 되면서 이미자씨의 전국 순회 공연에 초대 가수로 동행하게 되었고, 덕분에 가수의 꿈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빨리 <가요 무대>에 서는 행운을 얻지만, '외국인으로 진짜 트로트 가수를 하려면 한국인의 100배의 노력을 하던가, 일찌감치 그만두라는' 혹독한 문희옥 등의 평가에서 주춤거린다. 

아디와 로미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국어가 능숙하고, 그에 비해 다비드는 몇 마디 말은 해도, 알아듣는 건 영 젬병이지만, 그들이 머무는 곳 어느 곳에서나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한국인의 주식 쌀밥만 먹으면 장이 탈이 나는 아프리카인 아디는 그 덕분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어 나홀로 점심 시간을 보내는 등 한국 사회의 인간 관계에 서투르다. 로미나도 마찬가지다. 위계적 질서가 '군대'보다도 엄정한 트로트 가수 사회에서, 로미나는 자칫 예의를 모르는 그저 화제꺼리의 파란 눈의 아가씨로 보이기 십상이다. 일단 언어로 소통이 안되는 다비드는, 한국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대화를 시작하면 눈만 껌뻑껌뻠 귀머거리가 따로 없다. 

이렇게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방인의 경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알렉스가 특별한 미션을 내민다. 그 특단의 미션 덕분에, 아디는 자신을 싫어한다던 직장 상사가 사실은 그저 과묵한 경상도 남자일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로미나는 이방인인 자신을 싫어할 거라는 한국인들의 호의와 관심을 얻었다. 다비드는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지만, 아내 없는 하루를 견딜 용기가 생겼다. 

(사진; 코리아 데일리)

하지만,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세 사람 중 아디의 말은 각별하다. 한국 사회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고. 글로벌 코리아에서 이방인은 여전히, 한국이라는 꽉 짜여진 틀 안에 맞물려 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우선된다. 직장 생활을 아디에게 사람들은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아디가 한국의 전형적인 직장 생활에 맞춰 적응해 주기를 당연히 바란다. 케냐인 아디가 아니라, 외형은 아니라도, 문화적으로는 한국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레스토랑을 여는 과정에서 다비드가 사사건건 부딪힌 사안도 바로, 이탈리아를 알리기 위한 그의 취지와 한국의 실정인 것처럼. 로미나 역시 마찬가지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진짜 한국의 트로트 가수가 되기 위한 벽은 생각보다 높다. 글로벌 코리아라고 하지만, 정작, 글로벌은, 한국화된 조건 한에서만, 코리아의 일원일 수 있다. 트로트 가수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게 선배들에게 인사하기인 것처럼, 우리 사회는 글로벌을 품기에는, 여전히 강고하다. 

텔레비젼을 통해 늘 한국인보다 더 한국에 익숙해진 외국인들을 마주하다, <리얼 정착기-이방인>을 통해 마주한 우리 나라의 외국인들의 삶은 그래서 더 상대적으로 신선하다. 그리고,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지만, '글로벌 코리아'를 내건 우리 사회의 융통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아직도 이방인의 경계선에  케냐, 이탈리아, 독일에서 온 세 사람의 이방인, 그래도  이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나아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머물 것을 택한다. 


by meditator 2014. 9. 15. 11:09

또 한편의 무지막지한 예능이 왔다. 바로 <에코 빌리지 즐거운 가>가 그것이다. 

취지는 목가적이다. 최근 문화적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는 5도2촌, 즉 5일은 도시에서 보내고, 나머지 2일은 시골에서 생활을 즐긴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시골에서 지낼 집을 자연친화적으로 직접 지어보는 예능이다. 

제작진이 마련한 단 돈 1억으로 자연친화적인 주택을 짓기 위해, 자신의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달인' 김병만과, 십수년 째 무료로 집짓기 봉사를 하는 '해비타트' 운동에 꾸준히 참여해 오고 있는 이재룡이 주축이 된다. 이들과 함께 집을 짓기 위해, 배우 송창의, 정겨운, 아이돌 걸스데이 민아, 비투비 민혁, 그리고 개그맨 장동민이 함께 한다.

내 집을 짓는다. 말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출연진들이 첫 날부터 맞이한 집짓기 현장은 아름답기 보다는 처절하다. 노동의 땀방울이 아름답다고 하기엔, 35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더위와, 밤이 되어도 쉬이 끝나지 않는 하루 일과는, 쉽게 아름다움을 논할 계제가 아니다. 

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숲과 들이 펼쳐져 있는, 이른바 '배산임수'의 명당, 하지만, 허허벌판에 집을 짓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출연진들이 스스로 해내야 한다. 집을 짓기 위해, 굴착기 기능사 자격증을 딴 김병만에, 여자의 몸으로 트렉터를 배워 온 민아까지, 의욕은 대단하지만, 직접 집을 짓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기초 공사를 위해, 김병만은 하루 종일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9시간을 넘게 굴착기에 앉아 있어야 하고, 여자 아이돌이라는 특권은 커녕, 그녀보다 허당인 다른 남자 출연자들이 미처 해내지 못한 일까지 처리하느라, 민아의 손놀림은 분주하다. 날 것도 이런 날 것이 없다. 


3회의 걸친 방영 횟수 동안, <즐거운 가>의 식구들은 자신들이 꿈꿔온 집을 각자 설계를 해보고, 모두의 의견을 조율하면서도, 에너지 제로 하우스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설계를 채택한다. 또한 1억원이라는, 실질적으로 집을 짓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집을 짓기 위해 프리캐스트 공법(공장에서 미리 규격화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와서 설치하는 공법)에 의거한 규격화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집구조 기반으로 설치하는 것까지 완성한다. 

하지만 이 첨단의 혹은, 신공법의 집집기를 채운 것은, 출연자들의 땀이다. 하필이면 35도가 넘는 한여름 시작된 공사는 하루 안에 일정을 끝내기 위해 느린 자신들의 일손을 하염없이 재촉하는 출연진들을, 오히려 탈진한 제작진들이, 쉬기를 종용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되풀이 된다. 
그 과정에서, 예능으로 재미를 주는 것은, 지지대를 고정하기 위해 굳이 햄머를 옆으로 치는 못 한번 쳐보지 않은 티를 푹푹 내는 허당 송창의와, 허우대는 멀쩡한 채, 말끝마다, '나만 믿어'라고 하지만, 결국은 여자 아이돌 민아에게 의지하고 마는 허세남 정겨운 등 초짜 일꾼들의 고군분투이다. 
김병만의 성실함과, 이재룡의 노련함으로 일정이 밀어내어지고, 거기에 초짜 일군들의 허덕이는 삽질이 따른다. 그리고, 서로가 그저 일하느라 말 한 마디도 잊을 팽팽한 긴장이, 잔머리 장동민의 한 마디로 풀어진다. 늘 가장 쉬운 일자리를 그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는 장동민이지만, 동네 터줏대감 못지 않은 그의 실전 생활 경험은, 요소요소에서 초짜 일꾼들의 튀어나온 입을 막아버린다. 

하지만 제 아무리 초짜라고 해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강행되는 하루 일정에서 그들의 허당과 허세는, 늘 땀으로 마무리 되곤 한다. 제 아무리 못을 제대로 빼지 못해도, 페인트 뚜겅 하나 따지 못해도, 결국은 그날 하루 그들이 해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콘크리트 붓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수가, 다음날 구조물 하나를 설치하는데 두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듯이, 스스로 집을 짓는 과정은 그 무엇하나 만만치 않다. 그래서, 민혁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가슴이 옥죄어 오는 고통이 생겨나도록 발에 땀나도록 뛰고, 김병만은, 모두가 예민해지는 위기 상황에서, 화를 내는 대신, 햄머 드릴을 챙겨든다. 일은 버겁고, 늘 상황은 여의치 않지만, 그 극한의 상황에서, 함께 하는 멤버들은 늘 지혜와, 여유를 놓치지 않는다. 흉통으로 인해 하루 종일 일을 못해 미안해 하는 막내 민혁에게, 오늘 하루만 일을 할 거 아니니 체력을 챙기라는 이재룡의 한 마디와, 괜찮다며, 니 체력만큼만 하라는 김병만의 한 마디가, 그 어느 때보다도 든든하면서도,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비처럼 땀을 흘리고 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에코 빌리지 즐거운 가>는 역설적으로 즐겁지 않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자막은 '모두가 말을 잃었다'라는 문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잃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일하고, 가끔 웃기는 그 사람들이, 한 회, 한 회,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 첫 회에는 집을 계획하고, 두번 째는 땅을 파고, 집 앞의 텃밭을 만들더니, 이제 세번 째는 집의 기초가 될, 프리캐스트 구조물을 세웠다. 헛 망치질을 해도 결국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 막 웃기지도 않고, 별 이야기가 없는데, 끌리는 묘한 성취의 시간이다. 


by meditator 2014. 9. 14.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