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으로 방영된 <나의 결혼 원정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나의 결혼 원정기>를 그대로 본딴 예능 프로그램이다. 영화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갔던 두 노총각이 등장한 것처럼, 연예계의 노총각 네 사람이 가상 결혼을 하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간다. 그리고 영화에서 처럼, 그리스의 아가씨를 소개받고, 데이트도 받는다. 그런데 <나의 결혼 원정기>를 보면 정작 떠오르는 영화는 2002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모은 바 있는 톰 행크스 제작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다. 정반대의 문화를 가진 그리스인 여성과 미국 청교도 집안의 남자가, 장황한 그리스식 결혼 과정을 거쳐 서로 하나의 가족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그린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나의 결혼 원정기>는, 이방의 그리스에 떨어진 김원준, 김승수, 조항리, 박광현이, 그리스 문화의 틀 속에서 그리스 여인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그리스 식 결혼 과정을 거쳐가는 것을 예능으로 담는다. 


시작은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로 시작된다. 조항리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도 노총각으로 정평이 난 네 사람이 '예능'을 매개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아직도 전통적 가족 제도가 여전한 그리스의 문화이다. 아내가 모든 집안 일에 전권을 행사하며, 집안 일에서부터, 가족을 위한 농사일까지,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남편에, 그런 가족의 그늘에서 밝게 자란, 그래서 이십대의 젊은이임에도 여전히 가족이란 울타리가 강고한 그리스 아가씨와의 가상 결혼은,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만의 화합이 아닌, 그리스 문화에의 적응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 색다른 문화 체험이 되었다. 덕분에, 그저 심심한 외국판 <우리 결혼했어요>가 돨 뻔한  푸르다는 말로 부족한 그리스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진 하얀 가옥들을 배경으로, 요안나의 가족들과 어우러진 정감 넘치는 고군분투로 전이된다. 

(사진; 0sen)

그래서 여전한 가족주의 문화가 중심이 된 그리스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 네 명의 주인공들은, 단지 아내가 될 요안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장인, 장모, 심지어 처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혼할 여인은 제껴둔 채, 장모가 될 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장모와의 데이트를 마다하지 않고, 장인이 될 분의 농장에서 땀을 흘리기도 한다. 처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1일 바텐더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리스만의 풍광과, 먹거리와 볼거리는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여전히 <나의 결혼 원정기>는 태생이, 또 하나의 짝짓기 프로그램인 만큼, 우리가 <우리 결혼 했어요> 등에서 이미 너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과정을 답습한다. 예능에 그래도 좀 익숙한 김원준, 박광현, 그리고 조항리 등은, 그런 그들이 맛보았던 예능의 관습대로, 그리스에서도 능숙하게 예능 프로그램의 일원으로서 프로그램에 임한다. 그런데, 정작, <나의 결혼 원정기>를 그저 그런 이국판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탈피하게 만든 것은, 예능이지만, 예능 경험이 없었던, 그래서 '가짜'인 줄 알면서도, 진지해졌던, 요안나의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그런 가족에 대해 진솔하게 다가갔던 예능 경험이 없던 김승수의 진심이었다. 예능 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예능의 세례를 받지 않은, 그래서 그 누구보다 진정성있게, 예능을 예능 답지 않게 임할 수 있는 예능 기대주를 찾아헤매는 이유를, <나의 결혼 원정기>의 김승수와, 요안나의 가족들이 다시 한번 증명한다. 덕분에 장황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 뻔 했던 그리스식 웨딩 과정이, 이질적인 두 사람이 하나의 문화로 화합해 가는 전통의 통과 의례로 새롭게 자리매김된다. 

가짜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식 웨딩 과정이 진행될 수록, 요안나의 아버지가 가진 감회는 깊어진다.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자식들의 입맛에 맞는 포도를 각각 재배할 정도로, 세심한 아버지는, 그 과정에서 이제 정말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딸이 자신의 품에서 떠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남다른 소회에 빠진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에 김승수는 어린 시절 일찌기 부친을 잃은 자신의 상처까지 솔직하게 내보이며 진솔하게 다가간다. 분명 가짜인 예능이지만, 그렇게, 딸을 보낼 서운함의 정서를 가진 아버지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어 부정을 막연하게 그리워 했던 김승수의 마음은 그리스라는 이방의 공간에서 어우러진다. 덕분에 그저 흉내만 내었던 그리스식 웨딩은, 가짜인데, 진짜같은, 그리스식 결혼으로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런 진심 앞에, 온갖 미사여구로 장모의 마음을 얻었다고 설레발치던 박광현의 이쁜 짓과,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해보려 했던, 하지만 예능을 좀 아는 듯한 김원준의 노력, 그리고 상대적으로 젊음을 내세웠던 조항리의 자신감은 한 수 아래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쑥쓰러움을 넘어서지 못해 늘 주저주저했지만, 그 누구보다 진정성있었던 김승수를 요안나와 그의 가족들이 선택하면서, 그저 그런 예능이 될 뻔 했던, <나의 결혼 원정기>는 예상 외로, 정감어린, 그래서 자신을 선택해준 장인, 장모에게 큰 절을 올리는 김승수를 보는 순간, 혹시 진짜 아냐? 라며 잠시 홀릴 정도의 그리스식 웨딩으로 승화되었다. 


by meditator 2014. 9. 12.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