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아온,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리라. 어릴 적 살았던 동네를 다시 찾았지만, 지명만 같을 뿐 좁은 골목과 올망졸망하던 집들 대신 들어선 쭉쭉 뻗은 넓은 도로와 그 사이를 메운 빌딩, 아파트에 자신의 어린 시절 자체가 사라진 듯한 상실감. 그 황망함은 곧 도시를 고향으로 한 이들을 '실향민'처럼 느끼게 만든다. 압축 성장으로 발빠르게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그렇게 지난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발빠르게 지우며 21세기의 현재에 도달해 있다. 오래된 동네와 낡은 건물은 '철거'의 대상이었고, '개발'로 환산되는 '환금성' 대상일 뿐, 그곳에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6월 28일 방영된 ebs의 <다큐 시선- 수리수리 얍, 청계천 마이스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런 '개발 중심'의 도시 정책에 반문한다. 




다시 재생된 '세운 상가'
1967년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최초의 주상 복합 건물로 기공식을 한 '세운 상가'는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이는 상가'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답게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 한때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전설적인 명성을 날리며 '최첨단 전자기기 상가'의 메카로 그 역할을 다했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80년대 후반 컴퓨터 산업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용산 전자 상가'로 그 영광을 넘기고 '철거' 위기에 내몰렸었다. 2015년 서울시가 '다시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계천을 관통하여 세운 상가와 청계 상가, 대림 상가를 잇는 이노베이션에 착수했다. 그 결과 '현대적 토속'이라는 이노베이션의 주제에 걸맞는 옛 이름 세운 상가와 새 이름 'Makercity sewoon'이 공존하는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여전히 먼지가 쌓인 예전의 상가 공간이 한 편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반면, 세운 상가 상인들이 3d 프린터 작업으로 만든 로봇이 상징 조형물로 자리잡은 이노베이션된 상가에는 이동을 편리하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확 트인 연결 통로와 잘 꾸민 옥상이 새로운 세운 상가의 볼거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세운 상가' 이노베이션의 관건은 '사람들'이다. 여전히 그곳엔 몇 십년의 세월 동안 세운 상가를 지켜온 터줏대감 마이스터들이 있다. 탱크도 만들었다는 전설이 그저 전설이 아니라, 실제 탱크에 들어갈 부품을 은밀히 수리해준 적이 있다는 특허가 5개나 되는 61세의 차광수 장인, 고 백남준 아티스트의 숨은 손, 일흔이 넘은 미디어 아트 기술자 이장성 옹, 마치 환자를 돌보는 의사처럼 진공관 소리를 청진하는 역시나 일흔이 넘은 오디오 수리 기술자 이승근 옹, 한때는 남보다 앞선 기술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추억의 게임이 된 게임기의 장인 주승문 장인, 전선줄이 거미줄처럼 얽혀진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에서 '로봇'을 만들어 내고 수리하는 이천일 장인 등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이들 '마이스터'란 말이 손색이 없는, 지난 발전의 대한민국의 '기술사'가 곧 그들 존재 자체가 되는 이들 기술 장인들이 여전히 먼지 쌓인 상가의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이곳의 '생존'이 '세운 상가'의 존재 이유가 된다. 왜 '철거'가 아닌 '재생'이 도시에 필요한 지를 역설하는 것이다. 
'재미'를, 그리고 '보람'을 자신의 직업에 가장 큰 이유로 삼은 이들 노익장 장인들은 그 자신들의 신념에 맞춰 몇 십년 세월 이곳을 지켰고, 그들이 바로 '이노베이션'의 핵심이다. 여전히 그곳을 지키는 장인들은 '수리수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추억을 고쳐주는' 봉사에 나선다. 그들이 있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저 멀리 신안군의 오래된 로터리 tv가 아버지 대신 추억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낡은 tv처럼 그저 '낡은 건물'에 불과한 세운 상가도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29곳의 창업 공간, 큐브, 그곳에는 선배 장인들처럼, 그러나 선배 장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래 층의 오래된 기계 가공 공장 선배와 신기술을 가진 윗층의 후배의 '콜라보'가 가능한 것이다. 매 과정 새 툴을 가지고 작업을 하던 후배는 그저 단순한 도구 하나로 그 모든 과정을 제어하는 선배 장인에 혀를 내두르고, 아날로그한 선배의 경험은 후배의 하이엔트 테크놀로지와 만나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세대를 달리 할 뿐 '기술'에 대한 열정이다. 그 세대를 막론한 '열정'이야말로 '메이크 시티'가 된 세운 상가의 새로운 풍속도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생'된 도시의 공간이 있는 반면, 여전히 그 옆 청계 3,4지구는 '철거'의 몸삼을 앓고 있다. 정밀 기계 제작을 주로 하던 이곳은 철거 위기에 몰려 있다. 1960년대 이래 기계 공구 상가로 활성화되었던 공간이 2006년 재정비 유통 촉진 지구가 되면서 '도시 부적합' 대상이 되어 '철거'되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45년 동안 기곗밥을 먹던 김진화씨는 '대체 영업장'에 대한 대안 마련이 없는 철거는 그저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의 상실이라 강변한다.

삶의 터전이라는 항변과 보상비라는 팽팽한 맞대응은 결국 피해갈 수 없는 철거의 수순을 밟고 있는 청계 3,4지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도시 재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과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by meditator 2018. 6. 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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