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리스>는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영국 BBC One에서 방영된 드라마이다. 이걸 2013년 미국 ABC에서 시즌제 드라마로 리메이크, 현재 시즌4까지 방송 완료되었다. 그리고 2018년 OCN을 통해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6월 3일까지 12부작으로 방영되었다. 현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관능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이들 드라마는 ABC 드라마의 경우 '미국판 사랑과 전쟁'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를 하였다. 그렇다면 12부작으로 완료된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어땠을까?




미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설정의 한국판 
한국판 <미스트리스>의 각 캐릭터 상 설정은 흡사했다. 알리사 밀라노가 연기한 사바나 역, 잘 나가는 변호사이며 남편이 쉐프였던 이 캐릭터는 역시나 전문직 여성이었던 한정원(최희서 분)과 역시나 쉐프인 그녀의 남편 황동석(박병은 분)으로 등장한다. 또한 이들 부부는 미드 원작에서처럼 불임으로 고민 중이며 같은 학교 선생님과 한번의 정사로 아빠를 알 수 없는 아이를 가지게 된 것 역시 동일한 설정이다. 

우리나라 배우 김윤진이 연기했던 정신과 의사 카렌 킴 역할은 한국판 <미스트리스>에서도 역시나 같은 정신과 의사이며, 환자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감정적 혼란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즐기는 부동산 중개업자 조슬린(제이스 맥클리안 분) 캐릭터 역시 비슷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로펌 사무장 캐릭터 도화영(구재이 분)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가인이 분한 장세연은 남편이 죽은 이후 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워킹맘 캐릭터이며, 그런 그녀의 앞에 남편의 여자가, 심지어 그의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는 설정 역시 원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비슷한 설정, 그리고 원작이 표방한 '관능'이라는 방점에 충실하기 위해 드라마의 초반 선정적인 베드씬을 나열하며 이 리메이크 작도 원작처럼 적나라한 성인들의 속살을 드러내는 이야기임을 가감없이 보여주려 했던 <미스트리스>, 하지만 12부작 한국판 <미스트리스>에서 미드의 흥미진진함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 설정도 비슷하고, 서사도 그리 다르지 않았는데.



여성들의 이야기란? 
그건, '여성'들의 이야기를 표방했음에도, 그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우선 미드 원작에서 드라마의 중심적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건 성공한 변호사였던 사바나 캐릭터였다. 이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뜻밖의 외도를 통해 가지게 된 아이,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설정이지만 한국판 <미스트리스>는 어땠을까? 영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가 무색하게, 드라마<미스트리스>에서 최희서가 분한 한정원은 '전문직' 여성이었지만 학교에서 그녀는 자신만만하지도 당당하지도 않은 채 늘 불안하고 일에 치이고, 학생들에 치이는 심지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여성이었다. 

우리나라 배우 김윤진이 연기했던 카렌 킴 역의 정신과 의사는 한국판에서도 같은 직업이지만 드라마 내내 신현빈이 연기한 김은수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당당한 여성이라기 보다는 불륜이었던 선생님과 그 아들 사이에서 불안에 떨며 직업정 정체성조차 모호한 캐릭터로 보여졌다.

이렇게 원작과 다르게 직업 여성의 주체적인 당당함 대신 그녀를 둘러싼 사건, 사고에 휩쓸려 어쩔줄 모르는 여성의 불안함과 불안정함이 증폭된 캐릭터들도 캐릭터들이지만, 무엇보다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여성'이라는 주체성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건, 미드에서 사바나와 카렌 킴이 주도해가는 서사와 달리, 오랜만의 복귀작이 된 한가인이 분한 장세연이 한국판 <미스트리스> 서사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은 후 아이와 함께 사는 장세연,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모, 그런데 알고보니 남편의 여자, 죽은 줄알았던 남편의 생환, 그리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역시나 정체가 모호한 딸 아이 유치원의 학부모라는 한상훈(이희준 분). 장세연은 12부작 내내 그녀가 원치 않는 사건에 본의 아니게 얽히며 자신과 딸의 운명조차 파국의 상황까지 휩쓸려 가는 인물이다. 

수동적인 캐릭터 장세연이 극의 중심에 놓여지고, 정작 주체적인 한정원과 김은수가 주변 인물로 변형되며 <미스트리스> 전체가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려 '독안에 든 쥐'가 되어버린 여성들의 양상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절대 악 김영대(오정세 분)의 보험 사기극에 휘말린 여성들의 잔혹사로 귀결되었다.



미스트리스란 단어에는 이율배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지배권을 가진 여자라는 뜻과 동시에 다른 여자의 남편과 불륜의 관계를 가진 여성이라는 양 극단의 의미이다. 미드 <미스트리스>는 이 이율배반적인 의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들의 삶을 '관능'이라는 성적 코드를 얹어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한국으로 온 <미스트리스>는 '관능'이라는 코드를 성적 자유분방함이나 주체성이라는 측면보다는 시청자를 위한 눈요기거리로 보여주려 한다. 또한 불륜 등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인 삶의 방향을 위해 고민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16부의 엔딩에 이르기까지는 안타깝게도 부각되지 않는다. 대학 동창생 4명의 굳건한 우정은 듬직했지만 함께 몰려다니던 그녀들은 사건의 주도적인 해결보다, 늘 또 다른 사건의 함정 속에 빠지기 십상이니 그녀들의 집단적 의지는 희석되어 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빛나는 장면은 있다. 전 남친과의 잠시 모호한 관계에 빠졌던 도화영이, 그와 함께 산성을 오르다, 올라올 때는 너와 함께 였지만, 이제 내려갈 때는 각자 내려가자며 자기 삶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장면이나, 누구의 아이인가 내내 혼돈에 빠져있던 한정원이 남편을 면회한 자리에서 아이의 유전자 검사지를 찢으며 아빠가 누구인가 상관없이 내 아이로 키우겠다는 장면은 내내 운명에 어찌할 줄 모르던 그녀들의 삶에서 반짝인다. 또한 한 남자의 두 아내였던 장세연과 박정심(이상희 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각하고, 특히 박정심이 자신을 옭죄고 있던 김영대의 운명적 결박을 풀어내는 장면은 그럼에도 <미스트리스>의 결정적 장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 여성들의 '연대'와 '우정'은 그 표현이 단선적이었지만 <미스트리스>라는 훈훈한 장점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6. 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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