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이란 단어가 어느 덧 특별할 것없는 문화가 되었다. 지난 2016년 한 이동통신 회사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9.6%가 '혼밥'을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 더 이상 '혼밥'이 생소한 것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이 응답자 중 66.8%가 1주일에 10회 이상 홀로 밥을 먹는다고 응답했다고 했다. '한국 사회 동향 2015'에 따르면 15세 이상 응답자의 55.8%가 홀로 여가 시간을 보낸다고 답을 했다. 지난 2007년에 비해 12%가 증가한 추세다. 홀로 밥을 먹고, 홀로 시간을 보내고,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나홀로 족'인 사회에서 어쩌면 더는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2015 기준) 하지만 그저 사회적인 현상뿐일까? 자발적이거나, 불가피한 '나홀로 족'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사회에서 '격리'한 '자폐 나홀로 족이라면? 6월 28일 개봉한 <오 루시>는 사회 관계망에서 방출된 '히도리모노'의 이야기를 다룬다. 




히도리모노, 사회인이지만 히키코모리
중년의 여성 세츠코는 오늘도 변함없이 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 역에 섰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지하철, 그 순간 그의 뒤 편에 있던 남자가 그녀의 귀에 이별 인사를 남긴 채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든다. 당연한 참사, 놀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그런데 정작 가장 충격을 받았어야 할 세츠코는 요동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출근을 하여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워 문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걱정해 주는 나이 지긋한 동료 여직원, 하지만 세츠코는 친절하게 그녀가 건넨 과자를 아랫 서랍에 던져 넣는다. 그곳에는 그녀가 준 것으로 보이는 과자 등 군것질 거리가 가득차 있다. 세츠코는 '히도리코모(싱글족)'이다. 언니는 있지만, 일찌기 그녀가 사랑했던 이와 결혼하는 바람에 '의절'한 거나 마찬가지고,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회사 내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다. 콜록거리는 그녀에게 '담배' 좀 끊으라고 상사가 잔소리를 하고, 앞 자리의 나이 지긋한 동료 여직원이 친절을 베풀어도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사회' 내에 속해있지만,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세츠코는 '히키코모리'의 사회적 유형에 가깝다. 그나마 집밖에서 그녀는 멀쩡해 보이지만, 쌓인 고지서를 발로 밀어넣고 들어선 그녀의 집은 발 디딜틈조차 없이 쌓인 옷가지며 물건들, 그녀의 삶이 제대로 순환되고 있지 않음을 한 눈에 알려준다. 

그런 그녀에게 곰살궂게 다가온 사람이 있다. 바로 언니의 딸인 조카 미카. 비싼 돈을 내고 등록한 학원에 대신 다녀달라는 그녀의 응석어린 청을 거절하지 냉정한 세츠코가 거절하지 못한다. 미카 대신 간 영어 학원, 하지만 '학원'이라기엔 '야시시한' 분위기 룸에서 진행되는 1;1 맞춤 수업에 세츠코가 당혹스러워 하는 것도 잠시, 그녀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금발의 가발을 안기며 수업의 시작을 '찐한 포옹'으로 시작한 강사 '조~온'에게 그만 그녀는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다음 날 설레는 마음을 달려간 학원에서 이미 존이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츠코, 더구나 실망해서 학원을 나오던 그녀가 목격한 건 조카 미카와 사랑에 빠져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존. 그러나 세츠코는 포기하지 않는다. 중년 여성 세츠코를 일본에 남기고, '존의 제자 루시'가 되어 선생님 존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미카를 찾는 그녀의 언니와 함께. 

두 자매의 로드 무비인가 싶던 영화는 쉽게 선생 존, 하지만 이젠 미카도 떠나고, 돈도 없는 백수가 된 존을 만나고, 다시 미카를 찾아 길을 떠난다. '오지랖'이라는 언니의 지청구에도 아랑곳없이 존의 밀린 월세도 내주고, 자동차도 빌리고, 그를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세츠코, 아니 루시가 바라는 건, 존이 해주었던 예의 포옹, 그리고 그가 미카를 위해 했듯 '사랑 애(愛)'자를 서슴없이 새기는 맹목적인 사랑이다. 

세츠코와 루시, 냉담과 맹목 사이
세츠코는 대번에 그녀의 나이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꾸미지도 않고, 딱딱한 사무원의 복장이 박제라도 되는 양 입고 다니는 여성이다. 그녀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벽을 두거나, 나이든 직원의 환송회에 그녀에 대한 동료 직원들의 험담을 폭로하며 위장된 사회 관계에 대한 '산통'을 깨는 식의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관계'밖에 맺지 못한다. 혈육이라고 다를까. 오랜만에 온 언니는 집에 발도 못들이게 하고, 실연의 상처를 입은 조카에게 역시나 '악담'을 퍼부어 사고를 유발하고야 만다. 

도대체 세상 그 누구와도 '상종'하기 힘든 그녀, 그런데 그런 그녀가 수업인지 치근거림인지 알 길이 모호한 존의 수업 중 '포옹' 한번에 달라진다. 그를 찾아 미국으로 달려가고, 그에게 맹목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다 못해 추근거릴 정도로 변했다. 존이 준 노란 가발을 쓰고, 그가 발음 교정을 위해 물려준 노란 탁구공을 입에 물고, 길게 끄는 발음으로 느끼하게 '조~온'하며 변신하기 시작한 세츠코, 거기엔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그녀의 고독이 몸부림치는 삶이 있다. 

지난 2009년 일본의 명문 대학 화장실에는 '화장실 내에서의 식사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화장실 청소 용역 분들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서 식사하는 걸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홀로 화장실에서 식사를 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한 양 옆으로 칸막이가 쳐진 일본의 일인 밥집. 이 '나홀로 족'의 문화에는 '나 홀로 식사를 하는 건 친구가 없기 때문이고, 친구가 없는 건 내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식사를 하면, 내가 매력이 없다 주변에서 평가할 것이 두렵다'는 '런치 메이트 증후군'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담겨져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서구 사회로 부터 시작된 '개인화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나홀로 족' 즉 '개인화'의 현상은 아시아 지역에 오면서 지역적 특징이 더해진다. 즉,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일본이나 한국에서 그런 집단주의 문화에 반발하여 '나홀로 문화'를 선택한 '선택적 나홀로 족'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세츠코는 사실은 동료 직원들이 '관종'이라거나, 눈치가 없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래도 퇴직을 앞두고 한껏 칭송해 마지않던 나이든 동료 직원에게 그런 집단의 진실을 폭로하면서, 집단주의의 위선을 한껏 까발린다. 언니나 미카에게도 마찬가지다. '자매'라는 혹은 '이모와 조카'라는 혈연으로 그녀를 얽어맸던 위선을 내던지며, 그녀들이 자신에게 가한 '사랑'이름의 폭력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거칠 것없는 솔직함'에 대해 돌아오는 건 동료의 외면과 결국 암묵적인 사표의 강요다. 그리고 늘 이용하기만 했던 언니와 미카의 '피해자 코스프레'이고. 

선택적 나홀로 족은 '치열한 경쟁 관계로 점철된 사회적 관계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고립시키는 선택'이자, 자기 방어의 수단이라 진단된다. 즉, 현대인은 '관계'로 부터 상처를 받아 차라리 '고독이 몸부림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관계로 부터 상처를 입거나, '관계가 스트레스가 된'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을 단 한번의 포옹으로 맹목적으로 돌변하는 루시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토록 자신을 닫아걸었던 세츠코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며, 얼마나 진심어린 관계에 목말라했는가를 그녀의 외사랑은 대변한다.

'관계'로 부터 상처를 받아 자신을 닫아 건 채, 사회에 속했지만 히키코모리와 같은 삶을 살던 세츠코는 단 한 번의 포옹으로 '루시'로 거듭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 '루시'는 그저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편의적으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인 것처럼, 그녀의 선택에 대가는 공허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쌓아두었던 그녀의 성은 단 한 번의 포옹으로 무너질 만큼 위태로웠던 것이다. 한 사람의 자살로 시작하여, 맹목적인 루시로 삶에 도전을 했던 세츠코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위기. 다행히도 영화는 '진심어린 포옹'의 슬픈 위로로 끝을 맺는다. 다행히도 영화는 위기에 빠진 그녀를 그렇게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었던 '톰'이었던, 그녀만큼 그 '포옹'을 목말라했던 타케시를 통해, 그의 '포옹'을 통해 구원의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그동안 얼마나 세츠코가 외로웠는가를, 사회로 부터 스스로 단절된 이의 고립된 삶이 고단했던가를 보여줘 슬프다. 

더 이상 1인 가구, 나홀로 족이 특별한 것이 아닌 게 된 세상은, 그래서 '소통이나 인간 관계가 취약해지면서 세상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집단에서 방출되어 '나홀로'가 된 이들조차 그저 '나홀로 족'이란 보편적 트렌드에 묻혀져 갈 수도 있다. 바로 그 '보편'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를 영화 <오 루시!>는 테라지마 시노부의 실감나는 연기와 뜻밖의 조쉬 하트넷의 조화로, 그리고 촌철살인같은 야쿠쇼 코지의 등장으로 설득한다. 

by meditator 2018. 6. 30. 15:14

도시에 살아온,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리라. 어릴 적 살았던 동네를 다시 찾았지만, 지명만 같을 뿐 좁은 골목과 올망졸망하던 집들 대신 들어선 쭉쭉 뻗은 넓은 도로와 그 사이를 메운 빌딩, 아파트에 자신의 어린 시절 자체가 사라진 듯한 상실감. 그 황망함은 곧 도시를 고향으로 한 이들을 '실향민'처럼 느끼게 만든다. 압축 성장으로 발빠르게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그렇게 지난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발빠르게 지우며 21세기의 현재에 도달해 있다. 오래된 동네와 낡은 건물은 '철거'의 대상이었고, '개발'로 환산되는 '환금성' 대상일 뿐, 그곳에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6월 28일 방영된 ebs의 <다큐 시선- 수리수리 얍, 청계천 마이스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런 '개발 중심'의 도시 정책에 반문한다. 




다시 재생된 '세운 상가'
1967년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최초의 주상 복합 건물로 기공식을 한 '세운 상가'는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이는 상가'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답게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 한때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전설적인 명성을 날리며 '최첨단 전자기기 상가'의 메카로 그 역할을 다했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80년대 후반 컴퓨터 산업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용산 전자 상가'로 그 영광을 넘기고 '철거' 위기에 내몰렸었다. 2015년 서울시가 '다시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계천을 관통하여 세운 상가와 청계 상가, 대림 상가를 잇는 이노베이션에 착수했다. 그 결과 '현대적 토속'이라는 이노베이션의 주제에 걸맞는 옛 이름 세운 상가와 새 이름 'Makercity sewoon'이 공존하는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여전히 먼지가 쌓인 예전의 상가 공간이 한 편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반면, 세운 상가 상인들이 3d 프린터 작업으로 만든 로봇이 상징 조형물로 자리잡은 이노베이션된 상가에는 이동을 편리하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확 트인 연결 통로와 잘 꾸민 옥상이 새로운 세운 상가의 볼거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세운 상가' 이노베이션의 관건은 '사람들'이다. 여전히 그곳엔 몇 십년의 세월 동안 세운 상가를 지켜온 터줏대감 마이스터들이 있다. 탱크도 만들었다는 전설이 그저 전설이 아니라, 실제 탱크에 들어갈 부품을 은밀히 수리해준 적이 있다는 특허가 5개나 되는 61세의 차광수 장인, 고 백남준 아티스트의 숨은 손, 일흔이 넘은 미디어 아트 기술자 이장성 옹, 마치 환자를 돌보는 의사처럼 진공관 소리를 청진하는 역시나 일흔이 넘은 오디오 수리 기술자 이승근 옹, 한때는 남보다 앞선 기술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추억의 게임이 된 게임기의 장인 주승문 장인, 전선줄이 거미줄처럼 얽혀진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에서 '로봇'을 만들어 내고 수리하는 이천일 장인 등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이들 '마이스터'란 말이 손색이 없는, 지난 발전의 대한민국의 '기술사'가 곧 그들 존재 자체가 되는 이들 기술 장인들이 여전히 먼지 쌓인 상가의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이곳의 '생존'이 '세운 상가'의 존재 이유가 된다. 왜 '철거'가 아닌 '재생'이 도시에 필요한 지를 역설하는 것이다. 
'재미'를, 그리고 '보람'을 자신의 직업에 가장 큰 이유로 삼은 이들 노익장 장인들은 그 자신들의 신념에 맞춰 몇 십년 세월 이곳을 지켰고, 그들이 바로 '이노베이션'의 핵심이다. 여전히 그곳을 지키는 장인들은 '수리수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추억을 고쳐주는' 봉사에 나선다. 그들이 있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저 멀리 신안군의 오래된 로터리 tv가 아버지 대신 추억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낡은 tv처럼 그저 '낡은 건물'에 불과한 세운 상가도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29곳의 창업 공간, 큐브, 그곳에는 선배 장인들처럼, 그러나 선배 장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래 층의 오래된 기계 가공 공장 선배와 신기술을 가진 윗층의 후배의 '콜라보'가 가능한 것이다. 매 과정 새 툴을 가지고 작업을 하던 후배는 그저 단순한 도구 하나로 그 모든 과정을 제어하는 선배 장인에 혀를 내두르고, 아날로그한 선배의 경험은 후배의 하이엔트 테크놀로지와 만나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세대를 달리 할 뿐 '기술'에 대한 열정이다. 그 세대를 막론한 '열정'이야말로 '메이크 시티'가 된 세운 상가의 새로운 풍속도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생'된 도시의 공간이 있는 반면, 여전히 그 옆 청계 3,4지구는 '철거'의 몸삼을 앓고 있다. 정밀 기계 제작을 주로 하던 이곳은 철거 위기에 몰려 있다. 1960년대 이래 기계 공구 상가로 활성화되었던 공간이 2006년 재정비 유통 촉진 지구가 되면서 '도시 부적합' 대상이 되어 '철거'되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45년 동안 기곗밥을 먹던 김진화씨는 '대체 영업장'에 대한 대안 마련이 없는 철거는 그저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의 상실이라 강변한다.

삶의 터전이라는 항변과 보상비라는 팽팽한 맞대응은 결국 피해갈 수 없는 철거의 수순을 밟고 있는 청계 3,4지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도시 재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과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by meditator 2018. 6. 29. 17:39

영화의 시작과 함께 스크린을 뒤덮는 '일본어'의 난, 분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의 웨스 엔더슨 감독 작품이라 했는데 라면 제작자까지 확인하게 되는 영화, 일본에 대해, 그리고 노골적인 일본 풍의 문화에 대해 선입관없이 대하는 게 쉽지 않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 상, <개들의 섬>은 우선 당혹감을 안겨주는 영화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이 영화는 일본, 혹은 일본의 문화에 대한 '찬사'인가, 아니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군국주의적 경향성'에 대한 편견인가 라고. 그렇게 <개들의 섬(Isle of Dogs)>은 '일본'이라는 지역과 지역적 정서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영화 속 일본은 우리가 가진 역사적 불편함을 차치하고서라도 모호한 경계에 서있다. 




흠모인가, 편견인가
센코쿠 시대 이래 서양과 교류해왔던 일본, 일본의 도자기와 우키요에(에도 시대 세속화)등에 서양의 예술가들이 열광했고, 모네, 고흐 등은 적극적으로 이를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며 인상파 미술 등,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프랑스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런 당시의 '일본 문화에 대한 열광'을 '자포니즘'이라 정의한다. '자포니즘'은 이후 헐리우드 영화에서 '오마주'된다. <킬빌>, <라스트 사무라이> 그리고 <매트릭스> 등은 일본 무도를 자신의 철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했으며, 최근 2014년작 <빅 히어로>까지 일본의 문화와 이른바 '일본의 전통적 정신'은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향성의 연장 선상에 <개들의 섬>이 있다. 

동물들을 활용한 <판타스틱 MR 폭스>이후 9년만의 스톱모션 에니메이션으로 돌아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엔더슨 감독. 영화를 여는 건 일본의 전통 설화이다. 영웅적인 소년 장수가 폭군이었던 고바야시의 머리를 잘랐다는 전설이 일본의 신사를 배경으로 소개된 후, 영화는 지금으로 부터 20년 후 일본의 메가사키 시로 배경을 옮긴다. '애완견'이 일상이 된 도시, 하지만 갑자기 '개독감'이 퍼져나가고 그 '독감'이 인간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고, 치료약 개발은 요원한 상황, 시장인 고바야시는 '개'들을 '쓰레기 섬'에 모두 추방할 것을 제의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라지만 마치 2차대전 시기 일본을 보듯, 시장의 제안에 과학자의 반대 제안이 무색하게 절대적인 '찬성'으로 몰아가지는 여론, 그리고 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 개들의 추방은 '군국주의 일본'을 연상케 한다. '범람'하는 개들을 '절멸'시키려는 '고양이 애호가'인 시장을 비롯한 일부 집단의 음모, 그러나 그런 음모에서 비롯된 개 추방 작전은 개를 그저 애완견이 아닌 자신의 친구로 사랑했던 고바야시 조카, 그리고 청소년들의 반발, 그리고 무엇보다 개들의 저항으로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일본의 소년답게 '게다'를 신고 경비행기를 타고 온 소년, 역시나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청소년들을 연상케 하는 '까까머리'의 교복을 입은 소년, 소년들, 광분하는 고바야시 시장의 맹목적인 수하들의 배경에서 드러난 '전범기', 마치 '킬빌'의 사무라이 정신처럼, <개들의 섬>에서 드러나는 '전체주의'는 고스란히 일본 군국주의의 기억을 소환한다. 




'군국주의 일본'을 통해 설명하는 '파시즘'
'파시즘'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199년대 초반 '부다페스트'라는 지역적 공간과 문화적 정서를 차용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개들의 섬>은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경험을 소환하여 다시 한번 '파시즘'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행간을 메우는 건 일본풍의 그림과 같은 화면들, 스모 등의 일본풍의 문화 콘텐츠들, 그리고 결론은 '암살'이지만 그 과정에서 돋보이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들이 영화를 꽉 메운다. 이는 '오리엔탈리즘'이 가진 '찬사'와 '야만'의 양 극단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담론에 맞춰' 의도적으로 '고안된' 동양이 <개들의 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이 영화에서 주요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개들은 지극히 '서양적'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시장의 '휴머니즘'을 포장하기 위해 입양된 소년 아타리가 소년을 지키기 위해 경호견으로 스파츠와 교감을 나누고, 그를 찾아 홀로 쓰레기 섬으로 온다든가, 떠돌이개 치프와 애완견 출신의 나머니 4마리 개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타리와 치프 사이의 우정의 성장기는 일찌기 디즈니, 혹은 서부극을 통해 익숙한 '관계적 서사'들이다. 더구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진취적으로 고바야시 시장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 다름아닌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온 노란 머리의 서양 소녀라는 사실은 '관계 중심적'인 동양과, '목표지향적'인 서양에 대한 선입관을 고스란히 이입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또한 영화 속 인간들의 대사는 번역하지 않는데, 그 대부분의 인간들의 대사는 '일본어'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개들은 '영어'로 대사를 하고, 그건 자막으로 번역되는데, 그저 우화적 대비라고 하기엔 이방의 언어에 대한 앙금을 남긴다. 즉 <개들의 섬>은 찬사와 숭배, 그리고 편견이라는 서양인이 가진 동양에 대한 '관념'을 다시 한번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인식적 한계'를 차치하고 보면, '파시즘'의 융성에 대한 가장 절묘한 '우화'이다. 그저 '개'가 싫었던, 그래서 개들의 번성을 저지하고 싶었던 '엘리트' 그룹이 한 사회의 의식과 의견을 어떻게 조장하고 집단적 결정으로 몰아가는가에 대해 이보다 명쾌하게 설명해 낼 수 있을까. 결국 애초에 '독감'에 대한 위험도 자체에 대한 검증도 없이, '나',와 '우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이 '우리'외의 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맹목적'으로 잔혹해 질 수 있는가에 가장 친숙한 애완동물인 '개'라는 대상을 통해 설명해 낸다. 





by meditator 2018. 6. 26. 20:39

우리나라에서 전후 세대의 문학은 '아들들의 이야기'였다. 황순원, 이문열, 황석영 등 '백정'이었던 아버지, 혹은 '사상범'이었던 아버지, 혹은 부역자였던 아버지 등,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존재했지만 부재해버린, 현실적인 도움보다는 부담이 되었던, 자신의 존재를 규정지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그 아버지의 시대를 발버둥치며 극복하려 노력했던 아들들의 지난한 서사의 기록물들이다. 아니 굳이 전후 세대의 문학만이 그러겠는가. 일찌기 '오이디푸스'가 그러했고, 더 거슬러 제우스로부터 모든 '영웅'들은 '아버지'를 극복하고 나서야 그들의 존재를 온전히 증명해 낼 수 있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그 시절 종잇장을 넘기며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에 몰두하던 사람들은 대신 tv리모컨을 쥔다. 그리고 tv 속 드라마들은 아침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를 막론하고 '세대간의 전쟁'을 진행 중이다. 그 시절 '문학'의 역할을 이제 tv 등의 대중 매체가 이어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총성이 울리는 곳은 '장르물', 지난 6월 9일 시작한 ocn의 <라이프 온 마스>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tv 속 인기 드라마의 메뉴였던 역사극들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 자리를 대신하여 '현대사'의 장르들이 등장하고 있다. kbs1의 아침 드라마의 단골 메뉴였던 6.25 동란 이후의 시대극은 이제 좀 더 현대로 그 영역을 확장하여, <응답하라> 시리즈를 필두로 또 하나의 역사극의 장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 혹은 그와 유사한 현대사의 시점을 다룬 드라마들은 '사극'으로 정의내린 이유는 바로 이 드라마들의 기본적 존재 요건이 '고증'에 있다는 점이다. 일찌기 <응답하라> 시리즈를 필두로 이들 드라마들을 보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끄는 가장 첫 번째 요소가 그 시대를 얼마나 그럴 듯하게 재현해 내고 있는가 라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들을 '사극'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무리가 없다 보는 것이다. 



화성처럼 낯선 쌍팔년도 
그렇게 <라이프 온 마스>도 1988년을 소환한다. 시즌 2까지 이어갔던 영국 드라마 원작에서 주인공이 1970년대로 갔듯이, 교통사고를 당한 한태주(정경호 분)는 30년을 거슬러 88올림픽이 개최됐던 그 해로 떨어진다. 일찌기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최근 <응답하라 1988>, <시그널(2016)><터널(2017)>, 그리고 <란제리 소녀 시대(2017)> 등까지 매해 우리는 1980년대를 '드라마'로 소환해 왔으니 이젠 박남정, 소방차, 나미 등의 음악이 거리에 울려퍼지고, 펑퍼짐한 실루엣의 잠바와 통 넓은 바지를 입은 아저씨들, 그리고 원색의 의상을 입은 아가씨와, 뽀글뽀글 파마 머리의 아줌마들이, 그리고 그들이 깃들어 살던 2018년의 우리가 보기엔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도 아니었던 그 시대가 더는 낯설지 않다. 

<살인의 추억>, <터널>, <시그널>, 그리고 <라이프 온 마스>까지 모두가 80년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의 결은 다르다. 하지만, 심지어 장르물이 아니었던 <응답하라 1988>, 그리고 <란제리 소녀 시대>까지 이들 드라마들이 일관되게 '표현'해 내고자 하는 바는 바로 '야만의 시대'라는 점이다. 1960년대 박정희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유신으로 이어지는 개발 독재가 79년 김재규의 총성으로 종식되고, 그 짧았던 '봄'은 곧 무참한 살육의 계절로 이어지고, 다시 '독재'의 시대가 연장되었던 시대, 경제적으로는 급격한 자본주의적 발전을 축약해 냈지만, 사회적으로는 '전근대적 가부장적 구조가 길게 드리워져 있던 시대, 여전히 '남자'의 권력이 기세 등등했던 그 시대를 드라마들은 '야만'으로 정의내린다. 

그러기에 그 시절 여성들의 '자존'이 무시당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범죄가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시킨' 성범죄라는 사실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그런 면에서 <라이프 온 마스(이하 라온마)> 역시 그러한 시대적 해석의 궤를 함께 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좀 더 진득하게 펼쳐간다. 

30년전 과거로 떨어진(?) 한태주, 졸지에 그는 서울서 부임한 인성시 서부 경찰서 반장이 된다. 2018년의 형사였던 그가 dna 검사가 뭔지도 모르는 인성시 경찰서에서 동료 형사들과 함께 '복고'적 방식으로 수사를 하며 벌이게 되는 해프닝이 극의 주요 흐름이다. 그런 가운데, 종종 그를 괴롭히는 '한태주씨 정신 차리세요'라는 병상의 목소리들, 그는 지금 자신이 몸담은 이 '과거'가 혹시 그의 뇌내 망상이 아닌지 혼란스러워 한다. 그렇게 혼란스럽고 종종 그래서 정신까지 잃는 그의 앞에 등장한 그의 가족, 수사반장을 즐겨보며 형사가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그와 미용실을 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어머니, 그리고 사우디에 돈벌러 간 줄 알았지만 룸싸롱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룸펜 아버지가 다시 아니 그곳에 살고 있었다. 

6회 반환점을 향해가는 <라온마>는 그의 기억 속에 죽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던 아버지를 소환하며, 주인공 한태주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려 낸다. 인성시 골목에서 죽어간 무능력해서 가족과 이별한 아버지의 죽음과, 그 죽음을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는 소년의 사연을 통해, 드라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이야기한다. 한태주의 기억 속에는 '영웅'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아버지,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인성시로 간 성인 태주가 만난 아버지는 그 어린 시절 기억의 영웅이 아니다. 



그 시절 아버지, 그 뒷모습
이 '아버지'에 대한 드라마의 정의는 의미 심장하다. 발전의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80년대는 '찬란한 영광의 시대'이지만, 이제 역사의 돋보기로 들여다 본 그 시절은 드라마 속에서 처럼 수사라는 이름으로 다짜고짜 용의자를 때리고 부터 보는 '폭력'이 상습화된 시대였던 것이다. 마치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알고보니 거짓말만 뻔드르르했던 백수였던 것처럼. 

하지만 <라온마>는 그저 그 아버지의 뒷모습을 '폭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8년의 수사관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용의자를 폭력적으로 겁박하고, 심지어 범인으로 몰기 위해 증거 조작을 서슴치 않는 서부 경찰서 강력계 계장 강동철(박성웅 분)은 현대의 한태주와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무대뽀의 수사 방식은 시대적으로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라는 비극을 낳았지만, 일선의 경찰서에서는 그 수사 방식이 정반대로 '과학'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대의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가장 '야만적'이지만, 동시에 '전근대적인 인간미'라는 아이러니의 결을 드라마는 다루며, '아버지'의 시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드라마 속 아버지는 이제야 등장했지만, 사실 <라온마>에서 '아버지'의 세대를 상징하는 건  강동철이다. 온세상의 편법을 다 가져다 쓸 거 같은 꼼수에, 다짜고짜 손부터 올라가는 이 우격다짐의 형사 계장은, 그러나 한태주를 알뜰살뜰 챙겨주고, 이제 막 경찰로서 성장해 가는 윤나영(고아성 분)의 구겨졌던 존재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준다. 집을 나가 변사체로 발견되어 슬퍼할 겨를도 없었지만, 떨어져 있는 아들을 위해 개막전 표를 준비했던 아버지, 그리고 룸싸롱 잔심부름꾼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주방을 털고 사탕을 주머니에 쑤셔넣던 아버지들, 그리고 강동철 계장처럼, 드라마는 선과 악 그 어느 한 경계로 나눌 수 없는 80년대를 살아냈던 생동감있는, 그래서 아이러니한 모순적 존재였던 그 시절 아버지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걸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가장의 뒷모습으로,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냈던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내고자 애쓴다. 
by meditator 2018. 6. 25. 16:27
순례'의 사전적 정의는 '신앙 행위의 일환으로 종교 상의 성지나 영장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산티아고나 인도를 '종교적' 의미로만 '순례'하지 않는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길을 걷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순례'의 의미를 찾는다. 어쩌면 묵묵히 걸어가야 할 우리네 삶 자체가 '순례'일지도. 지난 2017년 kbs대기획으로 방영된 UHD <순례 4부작>은 바로 이런 '순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고자 했다. 인도 북부 라다크의 '패드 아트라'의 9개월, PCT(pacific crest trail) 6개월 등 총 450여일, 12,000km이상의 여정을 최첨단 4k 카메라를 통해 UHD 영화처럼 구현한 화면 속에 길 위에 선 인간의 오롯한 숙명을 압도적인 자연에 대비하여 풀어낸다. 이러한 영상과 서사의 획기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깊이가 돋보인 시도는 국내적으로 2018년 방송대상, 백상 예술상, 카톨릭 매스컨 대상, 해외에서는 뉴욕 페스티벌 TV&필름 상, 아시아 태평양 방송개발 기구(AIBD) 월드 TV 상 등을 받으며 극찬을 받았다. 



안녕, 나의 소년 시절이여- 살아있는 날들이 곧 '순례' 
다큐를 연 건 영하 30도 해발 5200M 희말라야 산맥 질룽카포 산을 넘는 200여 명의 승려 무리이다. 티벳 불교의 한 종파 드루크 파 승려들은 수행의 일환으로 희말라야 산맥의 여정에 나선다. 원주민들조차 고산 병에 시달리는 높은 산악지대를 자신의 짐을 진 채 묵묵히 걸어가는 승려의 무리, 조금 나은 평원이라도 나올라치면 온몸으로 던져 오체투지로 길을 지나야 하는 그 고행에 결국 가장 어린 16살 '쏘남 왕모'는 정신을 잃는다. 

종교 순례로 시작하지만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종교'가 아니다. '종교적 순례'길을 선택한 겨우 16살 소녀의 삶이다. 7개월전 소녀는 라다크 산악 지대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맏딸이었다. 보리 농사와 양을 키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빠뜻한 집안, 그 집안의 큰 딸인 '왕모'는 일찍이 7살 때 도회로 나가 가정부 살이를 해야했다. 가정부 일을 하면 학교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주인, 결국 왕모는 집으로 돌아와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왕모의 바로 아래 동생을 입을 덜기 위해 어린 시절 불교에 받쳐졌고, 그 아래 동생은 왕모처럼 가정부 일을 해야 하는 형편, 집에 돌아와 있다지만 밤중에 양을 훔쳐가는 늑대를 지키기 위해 왕모를 노숙을 해야 한다. 

잡지 속 화려한 스타들을 흠모하던 친구의 뜻밖의 선택처럼, 그리고 입 하나 덜기 위해 부처님에 귀의했던 동생처럼, 결국 '왕모'도 가난한 집안에선 불가능한 엔지니어의 꿈을 접고 가난한 산골 마을을 떠나 승려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작이 된 곳이 바로 '인내만이 요구되는 가혹한 순례길', 소녀는 말한다. '안녕, 나의 소년 시절이여, 저는 이제 하나의 여행을 끝내고, 또 하나의 새로운 여행을 떠납니다.'



신의 눈물- 힘들어도 함께 가는 '순례'
희말라야의 소녀 스님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은 건 지구 반대편 역시나 해발 5200m 안데스 산맥의 콜케푼쿠 산을 오르는 68세의 노인 우아만 노인이다. 이제는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도달하는 이곳, 다큐 제작진의 청을 받아 이제는 그저 '게임'처럼 축제를 즐기는 청년들에게 '코이요리티 축제' 본연의 의미를 되살려주기 위해 노인은 길을 나선다. 

안데스 산맥 해발 4500m 만년설이 뒤덮힌 시나카라 계곡, 200여년 전 그곳에 가난한 목동으로 '현현'하신 예수를 기리고,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만년설에 씻어내기 위해 잉카인들이 그곳에 모인다. 이제는 기후 변화로 쌓였던 눈이 점점 녹아내린 계곡, 형형색색의 깃발을 들고 지역적 특색을 살린 복장과 춤을 추며 모여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떠들썩한 마을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들고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긴 행렬을 마다하지 않는다. 

예수와 만년설 계곡의 만남, 거기엔 잉카의 슬픈 생존의 역사가 전해진다. 일찌기 태양신을 믿고 산신을 숭배하던 잉카인들, 그러나 500여 년전 잉카의 땅에 온 스페인들은 강제로 잉카의 왕을 카톨릭으로 개종한 후 처형했다. 스페인의 치하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잉카인들은 잉카의 수많은 신들 중 하나로 예수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산신으로 부터 살아갈 힘을 얻었던 잉카의 축제는 '예수'도 함께 하게 되었고, 그 축제의 현장은 우리네 마당놀이처럼 잉카의 왕에게서, 스페인 인들로, 그리고 지주로 수백년 동안 주인만 바뀌던 대농장, 탄광에서 채찍을 맞으며 '수탈'당하던 잉카인들의 슬픈 가난의 '해학적 승화'로 채워진다. 잉카의 순례는 곧 그들의 함께 버텨왔던 생존의 여정이다. 



집으로 가는 길- 인생이란 '순례'
그래도 '종교'라는 형식을 가졌던 1부와 2부와 달리, 3부 <집으로 가는 길>이야 말로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 그 자체가 곧 '순례'의 본원적 의미에 가장 가닿는다. 세네갈의 레트바 호수, 장미 호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지만, 실은 염도 90% 이상 플랑크톤 외엔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이다. 하지만 이 '죽음의 호수'는 주변 국가에서 온 이주 노동자 500여 명에게는 '생업'의 장이기도 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도 거른 채 물 속에서 소금을 건져내며 사는 이들 중에 지난 58살의 이주 노동자 '우리쌈바'가 있다. 

고향을 떠나온 지 16년 그의 '오롯한 소망'은 고향 기니로 돌아가 아버지처럼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땅이 없어 떠나온 땅,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땅을 사려면 2백만 세파,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버는 돈은 겨우 900세파(약 8000원), 그 조차도 그의 소금을 사서 이웃 나라에 열 배 정도의 폭리를 취해 파는 중간 상인이 떼어먹기 일쑤다. 

빈 통조림 깡통에 채워지지 않는 돈만이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니다. 소금 호수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눈에 이상이 생겼지만, 그는 자신의 몸보다 돌봐야 할 가족이 더 많은 가장이다. 일손이 필요해 거둔 두 명의 아내, 첫 번 째 아내에게서 난 자식이 일곱, 두 번 째 아내 사이에서 난 자식이 여섯, 심지어 두번 째 아내는 만삭이다. 이웃 나라에 돈을 벌겠다고 떠난 아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고, 아이를 낳기 위해 집을 떠나온 딸은 집에 돌아갈 비용이 없어 이곳에 1년 째 머무르는 처지다. 첫 번째 아내는 물론, 만삭의 두 번 째 아내마저 하루 800원 벌이의 소금 나르는 일을 하며 가사를 돕지만 '우라쌈바'의 형편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이 보이지도 않는 현실, 우리쌈바는 걸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평생의 소원이 소금지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라는 아내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세네갈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전망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도 않는 이 '이주 노동자'에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고행이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터벅터벅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 길은 진창 속에서 구르고 뒹굴어도 포기하지 않는 쇠똥구리의 일생과 다르지 않은 '삶의 순례'다. 



4300km 한 걸음씩 나에게로- 인생을 배우는 학교로서의 '순례'
1,2,3부가 불가피한 선택과 생존, 그리고 인생 그 자체로서 순례를 정의했다면, 4부에서 순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의 대안, 치유로서의 '순례'를 더한다. 미국 서부 지역, 멕시코 국경에서 부터, 거슬러 캐나다 국경지역까지 4279km, 매년 4~5월 시작하여, 폭설이 쏟아지기 전 10월까지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나'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순례'를 떠난다. 

크로아티아의 방송국 엔지니어로 일하는 39살의 니콜라 역시 그 길에 나섰다. 먼 타국의 낯선 행로, 일찌기 20대의 시절, 종교를 통해 자신을 찾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그는 마흔을 앞둔 나이에 홀로 다시 길에 섰다. 그리고 그가 선 길에는 그처럼 자연에 자신을 '오체투지'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30여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미뤄뒀던 소망이었기에 70넘어 늦은 퇴직과 함께 나선 이도, 걸을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라 생각해서 기꺼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온 60대도, 걷기 조차 힘들었던 릴랑바레 증후군에서 겨우 몸을 추스린 20대도 그 길 위에서 오로지 의지할 것은 자신 뿐이다. 따로 또 같이, 걸어가는 길에서 미처 한 구간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서로의 무사를 기원하는 동지가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물조차 구하기 힘들고, 단 이틀 만에 등산화가 구멍이 나버리는 폭염과, 폭우가 오가는 요세미티 국립 공원, 모하비 사막, 시에라네바다 산맥 등의 극한의 자연 속을 하루 13km씩 강행군으로 몰아쳐도 겨우 16%만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여정은 그들을 한없이 극한으로 몰아친다. 

모든 것이 다 구해지고 가능한 도시를 떠나, 20kg이 넘는 짐을 지고 배고픔과 피곤과 싸우며 걸어가노라면 가장 기본적인 필요 외에 모든 것은 기꺼이 버릴 수 있게 되고, 그 극단의 상황 속에서 걷는 이들은 자연을 마주하며 '작은 입자로 흩어져 존재하는 신의 작은 조각'과 만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도달하게 된다. '국경없는 의사회'로 콩고 내전 지역에서 활동하다 마음의 상처를 얻었던 30대의 간호사는 비로소 그곳에서 잃은 동료와 자신을 도망치듯 두고 온 그러나 도망칠 수 없었던 콩코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오직 자연만이 존재하는 그 '순수한 경지' 속에 자신을 돌아보고 비로소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치유의 시간, 마지막 한 구간을 앞두고 결국 내리는 눈 앞에 여정을 완주하지 못했다 해도, '자신'을 찾은 이들에게는 '실패'가 아니다. 그곳에서 인생을 배운 이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떠나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인간이 두 손을 땅에서 떼고 두 다리로 걷는 순간, 인간은 드디어 인간다워 졌다. 그의 자유로워진 두 손은 많은 것을 만들어 냈으며, 두 다리로 지탱하는 뇌는 동물들과 다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 '걸음',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 본연의 '인간다움'을 잊은 채 살아가는데, kbs 대기획 <UHD 순례 4부작>은 바로 그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UHD 화면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두 다리로 굳건히 버텨내는 인간의 고된 삶, 거기에 바로 우리 인간의 존재론이 있다. 

by meditator 2018. 6. 25. 06:02

<오션스 11(2001)>과 <오션스 12(2004)>, <오션스 13(2007)>이 그랬다. 대니 오션이라는 사기꾼을 중심으로 범죄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라스베거스를 터는 이 영화들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시리즈의 서사도, 재미도 반감되었지만, 그럼에도 조지 클루니를 비롯하여 브래드 피트, 멧 데이먼, 앤디 가르지아 등의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던 영화들이다. 그로부터 다시 십여 년 <오션스> 시리즈를 만들었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다시 시리즈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앞선 시리즈의 주역이었던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분)을 납골당에 모셔둔 채, 그의 여동생을 소환했다. 그 오빠의 그 여동생 아니랄까봐, 가석방된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 분)은 출소하자 마자 동지들을 규합한다. 단, 규합하는 동지들에게는 조건이 있다. 오로지 '여성'이어야 한다는 것. 2018년의 <오션스8>은 그렇게 '아마조네스' 군단으로 돌아왔다., 




아마조네스 오션스 8
<오션스> 시리즈 대니에게 참모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 분)이 있듯이, 가석방되어 예의 실력(?)으로 쇼핑을 하고, 하룻밤을 호텔에서 보낸 데비를 맞이한 건 '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청혼을 할 수도 있다는 동료 루(케이트 블란쳇 분)이다. 가짜 위스키 제조로 살아가던 루에게 데비는 그의 오빠가 그랬듯 5년간 감옥에서 '시뮬레이션' 해본 1천 5백억원 짜리 목걸이 절도의 공모를 제의한다. 그리고 의기투합한 이들은 자신의 작전에 가장 걸맞는 동지들을 규합하는데, '살상은 금물, 평민들의 재산에 눈독들이지 말 것, 그리고 게임처럼 즐길 것'이라는 대니의 원칙과 달리, '남자'가 섞이면 '관계'와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오로지 여성들'만의 규합을 단 하나의 원칙으로 삼는다. 

그 원칙에 따라, 2000년대 초반에 라스베이거스에서 1억 5천만 달러를 훔치기 위해 오빠가 '카드의 달인 러스티(브래드 피트 분), 소매치기 라이너스(맷 데이먼 분), 폭파 전문가 배셔(돈 치들 분), 중국인 곡예사 등을 불러들였다면, 2018년의 동생은 수장고 안에 모셔져있던 그 천 배나 되는 1천5백억 짜리 목걸이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패션 갈라 행사에서 '납치'하기 위해 3d 프린터를 동원해 짝퉁을 만들어 내는 전업 주부(?) 태미(사라 폴슨 분), 천재 해커 나인 벨(리한나 분), 보석 전문가 아미타 (민디 캘링 분), 그리고 소매치기 콘스탄스(이콰피나 분), 디자이너 로즈(헬레나 본햄 카터 분)를 불러 모은다. 그렇게 영화는 2001년에도, 그리고 2004년에도, 그리고 2007년에도 남성들, 혹은 한 명 정도의 조력자 여성으로 꾸려졌던 '남성 중심'의 작전을 온전히 '여성'들만의 힘으로 이루어 낸다. 

그들이 한 팀이 되는 이유는 제 각각이다. 오랜 동지와 벗으로, 혹은 연인으로, 여전히 가족의 그늘과 어려운 형편을 벗어나기 위해, 남편에게 이베이에서 샀다 거짓을 할 수 밖에 없는 '범죄에의 숨길 수 없는 욕망'때문에, 그리고 어린 동생이 필요로 하는 게 가짜 신분증인 어려운 처지 때문에,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디자이너지만 조만간 감옥에 갈 지도 모를 경제적 위기때문에, 혹은 외로움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사랑에 대한 복수 때문에. 하지만 저마다 제 각각의 이유로 모인 그녀들은 한 팀이 된 순간, 일고의 의심도 없이 작전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다. 그 흔한 작전 가운데의 흔들림이나, 회유, 배신은 2018년판 <오션스> 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는 '여성들'이 모이면 흔히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의 관행이 여성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었다고 이의를 제기하듯 영화 전편에서 그녀들의 동지애는 진득하게 유지된다. 심지어, 영화 후반, 그들의 '이용 대상'이었던 데프네(앤 해서웨이 분) 조차 그들이 자신을 이용한 줄 알았음에도 그들을 '고발'하는 대신, '우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자들이 모이면~?
기존의 오션스 시리즈가 당대의 대표적 배우들의 '멋짐'을 한껏 소비하는데 주력했듯이, 2018년 여성 버전으로 돌아온 오션 시리즈 역시 '비싼 목걸이'을 훔치는 과정에서의 박진감이나 스릴 대신 각각의 캐릭터로 등장한 여성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작전에 주력한다. <오션스 11> 시리즈에서 조지 클루니가 26번, 브래드 피트가 24번의 의상을 갈아입으며 '눈호강'을 시켰듯이, 데비가 감옥을 출소하는 그 장면에서 부터 시작하여, 케이티 홈즈, 킴 카사디안, 다코타 패닝 등의 까메오 군단이 등장하는 갈라 파티와 베르사이유 궁전을 연상케하는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의 배경, 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데비, 다프네의 화려한 드레스 의상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화려한 드레스만이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가 바로 루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출연이었듯, 이미 <토르; 라그나로크>를 통해 압도적 존재감을 선보인 케리트 블란쳇이 빚어낸 기획자 루의 보이시한 캐릭터와 해커다움을 발휘한 리한나의 자유로운 스타일, 그리고 팀 버튼 감독의 영화에 출연 중인 그녀를 잠시 빌려온 듯한 분위기의 헬레나 본 햄 카터의 독특한 분위기가 그녀들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낸다. 

시작은 그녀를 감옥으로 보낸 대비의 실연이자, 사기 사건이었다. 사기를 쳐야 할 그녀가 외려 사기를 당하여 감옥에 가고, 그 동안 오빠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 그 '억울한 사연'이 '작전'의 시작이자, 마무리이다. 하지만, 그런 대비의 '보복 작전'만으로 <오션스>를 제껴버리기엔 그녀들의 엔딩이 무색하다. 원래 함께 하려 했던 목걸이 외에, 어부지리, 혹은 애초에 그림자 작전으로 계획된 성과로 인해 약속된 이상의 보상을 얻게 된 그녀들은 백인 명사들이나 활보하는 그 메트로폴리탄 레드 카펫을 당당하게 우아한 블랙 드레스로 활보한 그 당당함으로 <오션스8>을 정의내린다. 감독의 선택을 받는 대신, 스스로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고, 다시 한번 디자이너로 재기를 하며, 남편의 눈치따위 보지 않는 사업가가 되고, 사랑을 찾고, 가족과의 화목을 찾고, 여유를 누린다. 비록 '목걸이 납치 사건'의 범죄 행위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의 '전문적 능력'을 통해 당당하게 자신들의 주체적인 삶을 누리는 것으로 아마조네스 작전을 영화는 마무리한다. 



영화는 남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동지애적 동성의 사랑으로 치유하는 과정으로, 그리고 오로지 여성들만으로 능력으로 성공한 작전으로, 또한 무엇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작전 과정에서 다양한 인종의 융화, 이질적이며 차별적인 계급 사이의 조화를, 또한 그 결과로 신분과 인종을 상관없이 주체적 삶의 실현으로 전세계적으로 열기를 더해가지만 한편에서는 쉬이 해소되지 않는 각종 논쟁의 대상이 되는 '페미니즘' 흐름 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무리없이 담아내고자 한다. 

앞서 <오션스> 시리즈가 그랬듯이, 이 작전에 개연성이나, 장르 영화로서의 스릴 등을 기대한다면 아마도 역시나 <오션스 8>도 '미흡'한 면이 많은 영화이다. 하지만, 산드라 블록,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리한나 등 당대 그 존재감만으로 보고 싶어지는 이 배우들이 한 영화에서 큰 고생없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션스8>는  어쩌면 그 값을 제법했다는 데 동의한다면 그리 아깝지 않은 영화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6. 17. 12:16

<탐정; 리턴즈>는 <탐정; 더 비기닝>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시리즈 영화다. 첫 번째 시리즈가 2015년이었으니 햇수로 3년 꽤난 적조했던 시리즈이다. 그런데 웬걸, <탐정;리턴즈> 속  주인공 권상우와 성동일이 한 열 번째 시리즈로 만난 것처럼 친숙하다. 그건 전작 '더 비기닝' 때문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맡아왔던 두 배우 덕분이다. 드라마에서 매번 '카리스마' 넘치던 김명민 배우가 영화 <조선 명탐정>으로 오면 코믹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과는 달리. 권상우는 '그' 권상우 같고, 성동일은 '그' 성동일인 게 적어도 '리턴즈'까지 <탐정> 시리즈엔 '친밀감'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 '친밀감'이 다음 시리즈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두 번째 시리즈인 <탐정; 리턴즈>에서 권상우와 성동일은 친숙해서 반갑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탐정> 
<탐정; 리턴즈(이하 탐정)> 속 권상우는 그 권상우다. 관객들에게 '권상우'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시절 그가 연기했던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말죽거리 잔혹사(2004)>, <청춘 만화(2006)> 속 그 '권상우'말이다. 그리고 가깝게는 얼마전 역시나 두 번째 시리즈를 마친 <추리의 여왕 시즌2> 속의 하완승으로 분했던 그 '권상우'이기도 하다. 마치 고등학생이었던 권상우가 나이가 들어, ''김하늘'과 연애도 좀 하고, 나이가 좀 더 먹어서는 형사가 되어 '최강희'와 함께 탐정을 하다, '서영희'와 결혼을 해서 아이가 딿린 유부남이 되어 돌아온 듯하다. 그는 지나간 시간 동안 다른 역할 속 다른 연기를 했지만, 관객들이 기억하는 바, 껄렁껄렁하고, 시덥지않은 농담을 던지며, 소심하게 여자들을 비롯한 남들의 눈치를 보며, 그 무슨 일을 해도 그다지 누군가에게 해를 주지 않는, 어눌한 말투의 착한 남자, 그 '권상우'란 트레이드 마크로 '강대만'이란 옷을 입고 돌아왔다. 

똑같은 장르물이지만 <추리의 여왕> 속 권상우가 분한 하완승이란 캐릭터가 경찰대 출신 엘리트로 탁월한 추리 능력을 가진 여주인공 유설옥을 도와주며 로맨스로 엮이는 몸짱 얼짱에 격투력이 뛰어난 형사인 반면, <탐정>에서는 유설옥이 했던 역할인 '탁월한 추리 능력'을 강대만이 선보이며 하던 만화가게를 엎고 탐정 사무소를 차릴 만큼 추리 능력은 뛰어나지만 현장에서 싸움 능력은 젬병인 소시민이지만 두 작품을 공히 본 시청자, 혹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대사'나 '설정'의 차이 외에 <탐정>과 <추리의 여왕> 속 두 권상우에 대해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둘 다 '허허실실' 그 권상우가 나오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메디컬 탑팀(2013)>이나 <야왕(2013)> 속 캐릭터에 대한 호평을 할 수 없듯이 이제 마흔 줄의 배우로서 권상우란 배우의 연기 변신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질 수는 없지만 지나간 시간 속에 그가 쌓아왔던 예의 '권상우'란 캐릭터에 대한 시간의 내공은 여전히 시청자, 혹은 관객에게 익숙한 친밀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탐정; 리턴즈>는 그 익숙함을 능숙하게 활용한다. 

성동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함께 했던 이일화가 영화 속 아내로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말투는 거칠고, 배려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가족에 대한,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그득한 아버지, 심지어 영화 속 그의 쌍둥이 딸들은 미처 자라지 않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개딸'들 같다. 거기에 더해 '형사' 성동일 또한 익숙하다. <라이브(2018)> 속 지구 대장이 승전하여, <청년 경찰(2017)>의 경찰대 교수가 되기도 하는 등 여러 보직을 거치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자신이 놓친 범인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해 치매가 걸린 상황에서도 그 추격의 끈을 놓지 않는 <반드시 잡는다> 퇴직 경찰의 지나온 한 시절이<탐정> 속 노태수로 찾아온 듯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탐정;리턴즈>는 첫 시리즈 <탐정; 더 비기닝>에 대한 기억보다, 배우 권상우, 성동일에 대한 친숙한 기억을 가지고 관객을 소환한다. 거기에, 언제나 그가 '여치'였던 듯 역시나 제 몸에 맞는 캐릭터로 돌아온 이광수의 '조미료'같은 합류로 시리즈의 재미를 확장한다. 



가장이 된 권상우와 성동일, 그래서 인간미 넘치고, 그래서 아쉬운 
의기 투합하여 개업한 탐정 사무소, 하지만 우리 사회 '탐정'에 대한 생소한 인식처럼 사무소는 파리를 날린다. 결국 그로 인해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각자 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고, 그러던 중 경찰서에 우연히 만나게 된 '약혼자 실종 사건'은 뜻밖에도 거대한 음모의 실마리가 되는데.....라는 영화 속 사건은 '신선'하지는 않다. 장르물을 조금만 본 사람이라면 한 눈에 약혼자의 출신 보육원이 문제가 있을 거란 걸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사건이지만, 전직 형사이지만 까칠한 새 팀장의 방해를 받는 노태수의 내공과 어설프지만 순간순간 빛나는 추리 능력을 가진 강대만 콤비에 여치 이광수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아들이었던 최성원 등이 분한 동료 형사의 '인간미' 넘치는 협업이 '뻔한' 서사를 채워간다. 

<탐정>을 엮어가는 건, 권상우와 성동일, 그리고 조력자들의 '인간미' 넘치는 활약과, 그들의 생활인으로서의 '애환'이다. 의논도 없이 만화 가게를 팔고 탐정 사무소를 차린 남편 때문에 아이를 내버려두고 나가버린 아내 때문에 아이를 띠로 메고 쩔쩔매는 아빠 권상우와, 서슬퍼런 아내의 칼질 앞에 입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워커홀릭 아빠 성동일의 고뇌가 시리즈의 행간을 메운다. 

그래서 아쉬운 장면들이 있다. <탐정> 속 뜻밖에도 빛나는 장면은 권상우, 성동일 콤비와 여치의 합이 맞는 활약상들 가운데에서도, 아이를 납치당할 뻔한 장면에서 빛의 속도로 등장하여 납치범을 제쳐버린 강대만의 아내 서영희의 존재감이다. 영화 속 서영희가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스타카토'처럼 통통 튄다. <미씬; 사라진 여자(2016)> 로 여성의 이야기를 잘 그려냈던 이언희 감독에게 바란다면, 만약 다음 시리즈가 가능하다면, 이 '강대만의 아내'의 활약을 좀 더 늘려, 가장 탐정극의 확장 버전인 '가족 탐정극'으로 시리즈를 변주시켜 보면 어떨까 싶을 만큼 아내 서영희의 존재감은 빛났다. 그에 덧붙여 뜻밖의 복병이었던 손담비 캐릭터의 활용이 장르물의 전례를 넘어서지 못한 점이 역시나 아쉬움을 남긴다. 이처럼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은 '스테레오' 타입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은 그저 영화가 '남성중심적'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그래서 캐릭터의 해석과 서사의 측면에서 뻔하게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점에서 <탐정>이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으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8. 6. 15. 16:04

'지니, 음악 좀 틀어줘'의 세상이다. 아이들의 외국어 공부를 걱정하던 엄마들의 귀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자연스런 외국어 발음, 따라나가보니 인공 지능이 선별한 외국어 영상이었다. 원하는 음악에서 부터, 아이 돌보미, 학습 도우미를 넘어 외로운 솔로들의 마음까지 달래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 드라마 남자 주인공 역할을 'AI(인간이 가진 지적 능력을 컴퓨터를 통해 구현하는 기술, artificial intelligence)가 맡는다는 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바로 6월 4일 부터 시작한 kbs2의 미니 시리즈 <너도 인간이니?>의 이야기다. 




아들이 된 AI
하지만 드라마로 온 AI의 시작은 '고전'적이다. 마음씨 좋은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 토막을 깍아 자식삼아 만든 인형 '피노키오'처럼, 아들을 시아버지에게 빼앗긴 인공 지능 로봇 연구자 오로라 박사(김성령 분)는 아들과 똑닮은 '남신1'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따라 그녀의 'AI'도 '남신Ⅱ', '남신Ⅲ'로 변화해 갔다. 그렇게 AI를 아들삼아 지내려던 오로라 박사, 하지만 그녀를 찾아 공항에서 해프닝을 벌이며 체코까지 찾아온 친아들 남신(서강준 분)이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맨다. 아들의 부재가 곧 PK그룹 내 아들의 위치를, PK그룹을 서종길(유오성 분)에 의한 위기로 빠뜨릴 것이란 걸 직감한 엄마는 아들처럼 여겨왔던 '남신Ⅲ'에게 부탁한다. '엄마의 아들을 지켜줘' 

그리고 엄마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 아들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남신Ⅲ의 캐릭터는 스필버그의 역작 AI(2001)로 부터 벤치 마킹한다. '천문학적 속도로 발전한 과학 문명 AI 들의 봉사를 받고 살아가는 인간들, 그런 가운데 하비 박사가 만들어 낸 '감정이 있는 AI'는 아이가 없는 인간의 가정에 '입양'되는데....'로 시작한 영화<AI>는 인간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된 소년 로봇 데이빗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너도 인간이니?> 역시 세상에 눈을 뜬 순간, 감정이 없다면서도 엄마바래기인 AI 남신Ⅲ를 등장시킨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사들고 오는 길에 엄마가 늘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넘어 그리워했던 남신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남신Ⅲ는 기꺼이 남신을 대신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
<너도 인간이니?>라는 드라마는 제목처럼 이중적 질문을 던진다. 당연히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남신Ⅲ라는 AI이듯, 인간이 아닌 AI가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을 통해, AI의 인간적 딜레마를 재연해 낸다. 아들과 헤어져 위로가 필요했던 어머니가 프로그래밍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안아줘요'라는 제 1원칙에서 부터, 삭제를 시켰음에도 본능적(?)으로 발현한 재난 모드 시 인명 구조 행동 등을 통해 영화 <AI>에서 인간의 아이보다 더 귀엽고 그래서 더 가여웠던 데이비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남신Ⅲ의 존재론을 묻는다. 

그리고 프로그래밍된 AI주제에 넘치는 인간미를 보이는 남신Ⅲ와 달리, 그를 아들로 여겼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친 아들이 나타나자 그를 기꺼이 아들 대용으로 '사용'하는 어머니에서 부터, 그룹과 자신을 위해 아들과 손자를 독점하려는 할아버지 남건호 회장(박영규 분)과 그의 순종적인 하수인인 척하며 호시탐탐 그룹을 노리는 서종길 이사와 그 측근들은 흔히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에게 낮잡아 쏘아붙이는 '너도 인간이니?"의 구어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비인간적' 모습을 폭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이 아닌 이종의 존재를 통해 '인간'됨'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이미 1818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래 고전적인 주제이다. 



6%를 넘겼지만(6회 6.3%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너도 인간이니?>는 동시간대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3,4%의 시청률로 고전하던 MBC의 <로봇이 아니야>처럼 역시나 인간이 아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의 '난망'함을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여주인공이었던 공승연의 전작인 <써틀; 이어진 두 세계>처럼 대중과 소통하기엔 버거운 SF물의 여정을 되풀이 하고있지는 않은까 우려도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100억 대작이라는 제작진이 내세우는 CG등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와 함께, '괴작'이었지만, 문명이 낳은 슬픈 동화로 기억되는 김규완 극본, 김용수 연출의 <아이언맨>에 버금가는 또 한편의 '현대적 동화'로 남겨지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6. 13. 02:22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젊은이들, 그러나 여전히 취업이 어려운 현실, 그에 반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 기업들, 이 취업 시장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sbs스페셜이 나섰다. 6월 10일 방영한 <취준진담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배우 조우진을 내세운 '노오력 인력 사무소'를 통해 지금까지 취업을 하기 위해 취업자가 기업의 담당자들과 면접을 보는 발상을 전환하여, 취업자들이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을 '면접'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의 '노오력'에 대해 살펴 '취업자' 중심의 구직을 시도해 본다.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이를 위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대표 혹은 담당자들이 젊은이들에게 면접을 '당'하기 위해 나섰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저비용 항공사 티** 항공 경영본부 김형이 상무, 한방차 카페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전국에 100여 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고 있고 최승윤 대표,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스타트업 회사 여기 **의 인사 총괄 맥스 이사. 이들은 각자 회사의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다던가,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에 주 4.5일 근무, 6시 정시 퇴근 독려 등 일하고 싶은 환경, 그리고 주 35시간 하루 세 끼 식사 제공에 각종 복지 정책을 자신감있게 내세우며 면접장에서 자리한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하던 자신감은 취준생 면접관들과의 몇 마디 대화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이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400여 개의 지원 서류를 작성해 본 김연재 , 취업을 위해 대학에 적을 둔지 8년차인 11학번 김은하, 장래를 위한 자신의 전공인 성악 외에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는 김희원, 인턴 2번, 정규직 1년차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32살의 중고 신입 김필립, 각종 단기 알바를 섭렵하고 이제 계약직 만료를 앞둔 서자영, 그리고 취업 준비 2년차 자소서만 155개째 작성하고 있는 김희원이다. 

면접을 하는 위치이지만 이미 그 자리에 나설 기업에 대해 조사를 다 하고 나온 이들은 예리하게 각 기업의 문제점을 파고든다. 급성장하고 있는 자부심을 피력한 티** 항공의 상무는 회사 내 잦은 퇴직에 대해 '열정'이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답을 했다가, 취준생들에게 '꼰대'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는가 하면 주 4.5일의 근무 환경에 대표 면담이라는 화려한 근무 조건을 내세운 최대표는 대표 면담이라는 게 대표만의 자의적 소통 방식이 아닌가 라는 반문에서 부터, 연봉 2000 만원이라는 낮은 급료가 혹시나 '열정 페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그만 말이 막히고 만다. '여기 **'역시 마찬가지다. '맥스'라는 생소한 외국 이름에서 부터, 1년 안에 획기적인 근무 환경 개선이라는 그의 장담은 취준생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 취준생들과 기업 담당자들 사이에 가장 큰 '간극'을 보인 건 '야근'에 대한 문제이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때로는 '야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업 측의 생각에 취준생들은 그게 바로 '열정'을 거저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 맞선다. 그리고 잦은 이직을 그 증거로 내세우며, '열정' 대신 '페이'를 요구한다. 

1박 2일에 걸친 합숙과 술자리까지 거친 심층 면접, 취준생들의 평가처럼 기업 담당자들은 면접의 요소요소에서 여전히 젊은이들의 노오력에 대해 '안이하게' 바라봤으며, 그들의 '열정'에 무임승차하려는 가치관을 숨길 수 없었다. 또한 젊은이들이 구직 시장에서 자신을 내던지며 전투에 임하는 태도와 달리, 술자리에만 가도 긴장이 풀려 예의 '꼰대'다운 훈계를 내놓고 만다. 심지어 '노오력'에 대한 마지막 정의의 과정에서 기업 담당자들은 어설픈 비누 조각이나, gps 인증, 혹은 영화 속 설정을 통해 어설픈 이벤트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으려 해 실소를 자아내고 만다. 결국 1박 2일의 노오력 면접이 보여준 건 여전한 '꼰대'들의 '열정'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사고 방식과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열정과 페이의 간극 
하지만, 정작 이 '역지사지'다큐가 보여준 건, 이 쉽게 잇닿을 수 없는 구직자와 구직 담장자의 사고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1박2일의 합숙이 끝나고 최종 선택이 있던 순간, 가장 꼰대스러워 젊은 구직자들에게 지탄을 받던 티** 항공사가 성과급을 준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룻밤을 보내던 구직자들은 그들이 면접 과정에서 지적했던 이러저러한 사안과 달리, 결국 의견을 '돈'과 '비전'으로 모은다. 그러기에 3개의 직장 중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티** 항공사와 여기 **가 취준생들의 선택을 받는다. 거기에 반해 현실적으로 가장 직원 복지가 좋고, 대표의 노력과 열의가 돋보였던 카페 프랜차이즈 회사는 단 한 명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만다. 

결국 울음을 터트린 최대표, 그는 울며 말한다. 그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이 현실이, 결국 자신과 함께 일하면서도 남들에게 자랑스레 자신의 직장에 대해 자부심을 내보일 수 없는 자기 회사 직원들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회한의 눈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준생'의 역지사지 면접으로 시작하여, 연봉 2000만원 밖에 줄 수 없는 중소기업의 비극사로 끝을 맺게 된 다큐. 

6명의 취준생들 중 그 자리에 나온 기업을 택한 3명은 '꼰대'라도 확실한 경제적 보장과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한 명은 노력가능해 보이는 미래에 투자했다. 반면 6명 중 2명은 여전히 그 어느 회사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야근 등에 대한 정당한 노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지 않으며, 수평적 인간 관계를 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8년이 넘는 구직 기간도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대한 로망을 접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과연 저 자리에 나와 여전한 '꼰대'스런 사고 방식과 어설픈 노오력(?)을 보인 기업 담당자가 대기업에 속한 사람이라도 수평적 기업 문화와 삶의 질이 선택하지 않는 핑계가 될까? 애초에 청년들의 '노오력'과 열정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드러내기 위해서 였다면 역지사지 면접에 나서야 할 사람들은 대기업 담당자들이 아니었을까? 

구직자의 3%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대기업, 그에 비해 기업 문화를 변화시키며 노력해도 구직자가 원하는 페이를 줄 수 없는 반면, '열정'이 필요한 심지어 미래조차 불투명한 중소 기업, 이 딜레마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삶의 질과 안정을 추구하려는 구직자들의 구직 행렬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서로 잇닿을 수 있는 길은 희박하지 않을까라는 '현실'을 다큐는 다시 한번 보여주고 만다. 
by meditator 2018. 6. 11. 16:32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을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과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두고. 하지만 그 누가 주인공이라고 선뜻 결론내릴 수 없는 영화. 장준환 감독은 바로 그렇게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민주 시민 모두가 만들어 낸 6.10 항쟁의 역사를 영화 <1987>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단순 사고로 묻힐 뻔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으로 전한 '비둘기', 배우 유해진이 분한 한재동씨의 이야기 <1987, 그날의 비둘기>를 tbs가 6. 10 항쟁 31주년 기념으로 방영한다.

ⓒ tbs

기적과도 같았던 진실의 폭로, 이어진 6.10항쟁 
이 다큐는 지난 1월 14일로 박종철 고문 치사 31주기에 맞춰 <뉴스 타파>가 1월 19일 방영했던 프로그램이다. 지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1987>의 상영 덕분이었을까. 올 초 31주기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식이 열린 모란공원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제야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감회를 피력하는 박종철 열사의 형님, 그리고,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선 이부영 씨.

1987년 1월 14일 22살의 박종철 씨는 가파른 나선 계단으로 끌려 올라간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걸어서 되돌아 나올 수 없었다. 조사 과정에서 과도한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그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단순 사고로 묻힐 뻔했던 사건. 그러나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경관 2명이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되고, 감옥 안에서는 그들 외에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더 있었으며, 이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 동아일보 기자 이부영 씨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하기로 결심한 이부영 씨는 그와 12,3년 동안 지기이자, 동지였던 교도관 한재동씨에게 볼펜과 종이를 청해 그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에게 바깥 세상으로 전할 것을 부탁한다. '걸리면 우리도 죽을 수도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전한 이 쪽지는 비둘기가 된 한재동 씨를 통해 세상에 '폭로'되었고. 전국은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로 화답했다. 이어진 독재 정권의 항복 선언과 직선제 개헌. 그 시절을 이부영 씨는 '그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 많은 사람들이 시계 속 톱니 바퀴처럼 자신들의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했던', '신의 오묘한 손길'이 닿은 '기적같은 사건'이라 회고한다.

ⓒ tbs

민주 교도관 한재동이기에 가능했던 비둘기 
그리고 그 '기적'이 가능케 했던 비둘기 한재동 씨, 당시 젊은 교도관이었던 그도 30여년의 세월을 건너 칠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건너 그 시절의 일을 그에 대해 한재동씨는 '공권력이 사람을 죽인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며,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며 '민주화에 보탬이 될 수 있어'외려 '행운'이었다 겸손하게 물러선다.

하지만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이 고문으로 죽어나가던 시절, 그 소식을 몰래 전하는 것이 직업적 규정의 위반은 물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전한 당사자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던 시절 용기를 낸다는 건 그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민주적 교도관'으로 투쟁해 왔던 그의 순탄치 않은 이력에서 비롯된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단체 관람'으로 <1987>을 봤다며 자랑스레 전하는 한재동 씨의 동료들, 이제는 다들 한재동 씨처럼 70줄의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한때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다. 한재동씨가 바로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 낸 비둘기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30년 동안 함구했던 이들, 한재동 씨의 헌신은 그래서 뒤늦게서야 알려져 2007년에서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감사패를 받을 수 있었다.

왜 그들은 '함구'해야 했을까? 동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 한재동 씨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비둘기 역할을 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 보다 한재동 씨 일생의 큰 투쟁은 그가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때까지 버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 '보통' 일이 아니었던 한재동 씨의 교도관 일이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는 교도관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얼마전 인기 리에 방영된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등장한 그런 인간적인 교도관? 실제 감옥을 다녀온 다수의 민주 인사들 중에는 교도관을 벗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감옥에 갇힌 이와, 그들을 지키는 이의 '우정'이라니. 바로 그곳에 민주 교도관 한재동 씨의 자리가 있다.

'비둘기'로서의 운명을 '하늘이 준 뜻이다', '이게 내 팔자자' 그리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다'라고 받아들였던 한재동 씨의 선택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한재동 씨는 퇴직할 때까지 평생 교도관으로 살았지만 교도관으로서의 그의 여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교도소내 인권 개선에 앞장 서는 바람에 지방으로 전출되기도 했고, 시국 사범, 정치범, 양심수와 친근한 관계를 맺고 이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애쓰고, 나아가 교도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 조합을 만드는데 앞장 서다 인사 조치를 당해 파면에 이은 구속까지 당한 '전력'이 '비둘기'의 숙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적극적인 동료들의 도움으로 1979년 징계에 이은 파면 조치가 1981년 10월 대법원까지 가서야 취소되고 복직 후 첫 부임지였던 곳이 바로 당시 시국사범들이 많았던 영등포 교도소. 동료들은 한재동씨의 복직이 영등포 교도소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미제 사건이 되었을 지도 모르다며 그 '우연의 기적'을 회고한다. 하지만 그 '한재동 씨의 결단'을 교도관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한재동 씨를 위해 동료들은 지난 30년 동안 함구했었다.

몰래 편지를 밖으로 나르는 일, 분명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 그러나 동료들은 '더 고매한 이상이었던 민주화'를 위한 일이었다며, 한재동 씨와의 민주적 유대 의식을 피력한다. 한재동 씨 역시 독재 정권 시대의 '정부'가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에 따라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결정한 일이라며 직업적 딜레마에 대해 정의내린다.

영화 <1987> 속 한 씬의 인물에 불과한 한재동 씨, 그리고 그 영화에 등장했던 수많은 주인공 아닌 주인공들, 그들이 그 영화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1987년 6.10 항쟁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그들의 삶이 있기에 가능했다. 직선제 개헌, 미완의 혁명, 그 이후로도 이어진 전진과 후퇴의 여정, 그 가운데에서도 한재동 씨와 같은 포기하지 않는 '민주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by meditator 2018. 6. 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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