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계에서 '시즌제'는 참 희박한 아이템이다. <막돼먹은 영애씨>나 <하이킥>시리즈와 같은 '시트콤'의 요소가 많은 작품이 아니고서는 사실상 시즌제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드물다. ocn의 장르물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신의 퀴즈>나, <뱀파이어 검사>, <특수사건 전담반> 등의 시즌제 드라마가 있었지만, 그 조차도 최근에 들어서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얼마전 종영한 <나쁜 녀석들>의 경우, 말이 시즌제지, 제목만 같았을 뿐 출연한 배우진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나쁜 녀석들> 시즌 1에 출연했던 박해진, 마동석 등의 존재감이 달라지면서, 이후 마동석이 단독 주연이다시피 한 <38사기동대>로 돌아왔듯, 무엇보다 시즌제에서는 출연 배우들의 연속성 여부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추리의 여왕>은 출연했던 권상우, 최강희 등의 두 주연 배우가 시즌제에 적극 호응하며 순조롭게 시즌 2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른바 '미드', 미국 드라마들이 몇 십 시즌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출연 배우들의 협조만이 아니다. 시즌을 이어갈 수 있는 양질의 내용성을 답보할 수 있는가라는 내적 충실성이 또한 시즌제 드라마의 중대한 관건이 된다. 설사 시즌제가 된다 하더라도 전작에 대한 호응을 이어갈만한 작품의 질적 수준을 이어갈 수 있는가가 결국 '시즌제'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게 된다. ocn의 장르물들이 몇 시즌을 넘기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러한 '내용성의 고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 4회를 넘긴 <추리의 여왕 시즌2>의 걸음은 그다지 산뜻하지만은 않다. 

시즌 1의 '일관성'과 '변주', 두 마리 토끼 시즌2
2017년 4월부터 방영된 <추리의 여왕> 시즌 1은 검사인 남편의 아내로, 시집살이를 하며 숨길 수 없는 '추리력'의 본능을 '저어'하지 못한 채 그리고 자살로 처리된 부모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집요한 의지를 펴보였던 주부 유설옥(최강희 분)은 이야기가 기본 줄기였다. 그런 그녀가 범죄 현장에서 조우하게된 역시나 개인적인 사연을 가진 하완승(권상우 분) 형사와 엮이게 되면서 두뇌 플레이의 주부 탐정과 저돌적인 형사라는 걸출한 콤비가 탄생하게 되었다. 유설옥의 친구 김경미(김현숙 분)의 반찬 가게를 배경으로 배방동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그곳이 관할인 '서동서'를 거점으로 '추리'와 '추격'의 두 마리 토끼를 깔끔하게 잡아냈다. 

평균 시청률 9.8%, 객관적으로 그다지 높다할 수 없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를 살린 '연출'과 거기에 어우러진 '동네 추리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설정은 애청자 층을 형성하며 순조롭게 시즌 2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두 주연 배우의 흔쾌한 결정으로 불과 1년 여 만에 시즌2로 돌아오게 된다. 

지난 2월 28일 부터 시작된 <추리의 여왕2>는 시즌제의 고민을 '일관성'을 지켜내며 '변주'를 해내는 이중 포석의 측면에서 살려가고자 고심한다. 우선 시즌제의 일관성을 위해 무엇보다 관건이 된 두 주인공이 건재하게 시즌2로 돌아온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한다. 시즌 1에서 '이혼'의 아픔을 겪은 유설옥은 이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눈치를 보며, 집안 일을 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대고 뛰쳐나오던 주부의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로운 '돌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시즌 1에서 파트너가 되어 '동지애'를 나누었던 하완승 형사와 이제 대놓고 '썸'을 타는 사이로 발전한다. 

여전히 '아줌마'와 '형사님'이지만 두 사람은 '반지'를 놓고 아웅다웅하는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의 건재와 달리,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은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혼을 했기 때문에 시즌1에서 주요한 갈등 관계였던 시댁 식구들이 사라진다. 또한 서동서를 거점으로 유설옥이 살던 배방동 주변의 이야기를 '동네 추리극'으로 펼쳐갔던 이야기는 시즌2에 오며, 그 '거점'을 중진서로 옮겨간다. 또한 시즌2에서 해결되지 않은 하완승 형사의 '구원', 서현수는 이제 하완승을 중진서로 이끄는 매개로 등장하며 시즌1과 시즌2의 여전한 기본 갈등 구조를 이끌어 간다. 배방 파출소의 홍준오(이원근 분) 소장을 비롯한 배광태 팀장(안길강 분) 등이 함께 뭉쳤던 유설옥이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 경미의 반찬 가게는 유설옥 대신 경찰 시험에 합격한 경미마저 자리를 비운 채 아직은 두 주인공만의 고즈넉한 '아지트'로 남겨진 상태다. 



이게 시즌2? 익숙한 듯 낯선 
주부 유설옥이 장바구니를 들고 익숙하게 휘젓고 다니던 배방 시장 등을 배경으로 했던 시즌 1은 시즌 2에 들어서며 여전히 중진동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주부'라는 생활 밀착형의 친근함은 훨씬 덜어졌다. 아마도 '이게 시즌2야?'라며 의아해 하는 시청자들 대부분은 배방 시장을 배경으로 추격전을 벌이고, 마트 앞에서 작전을 짜던 '배방동 시절의 삶이 묻어나는 '추리의 여왕'이 그리운 것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설옥과 하완승과 함께 배방동을 누볐던 '동지'들의 부재, 심지어 때론 견원지간이며, 심지어 유설옥과의 사이에서 미묘한 경쟁 구도였던 우성하(박병은 분)의 모호하면서도 미미한 존재 역시 시즌2를 낯설게 하는 한 요소이다. 

그 그리움을 대신하는 건 새로운 갈등 구조이다. 대신 명예 경찰이 된 유설옥과 중진서로 발령이 난 하완승을 중심으로 중진서에서 만난 하완승의 동기이자 경쟁자였던 계성우 팀장(오민석 분)과 조인호 과장(김원해 분), 신장구 서장(김종수 분)등, 누구하나 하완승 형사의 '편'이라고는 없는 중진서의 식구들이다. 이 낯선, 하지만, 말썽많은 형사를 왕따시키는 경찰 서내 서열 구조라는 익숙한 수사물의 구도는, <추리의 여왕 시즌2>를 그래서 낯설고, 진부하게 만든다. 

그렇게 아직은 낯설고 그러면서도 진부해진 <추리의 여왕 시즌2>에서 이제 4회에 이르러 새로이 시즌2의 흥미를 유발하는 존재로 정희연(이다희 분)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4개나 케이크 전문점을 차린 미적 감각이 뛰어난 여성, 하지만 어느 틈에 완승과 설옥이 벌이는 추리 수사에 끼어들어 피해자, 목격자, 심지어 회유까지 다양한 역할을 변주하며 이젠 설옥과 '사랑의 경쟁'이라는 야심조차 숨기지 않는 그녀의 '미묘한 캐릭터'가 뻔한 수사물이 될 뻔한 시즌 2에 활력을 불어 넣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하완승의 형으로 등장한 하지승은 그 역을 맡은 김태우란 배우의 존재감만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익숙함과 낯섬, 그리고 진부함이 공존하는 <추리의 여왕 시즌2>에서 하지만 결정적으로 우려가 되는 건, 이제 4회까지의 '사건' 들이다. 첫 회 프롤로그처럼 등장한 결혼 사기단 사건,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중진동 방화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나 방식이 '추리 어드벤처'로서 <추리의 여왕 시즌 2>에 맞게 셋팅되었는가에 대한 우려를 남긴다. 여전히 시즌1의 고질적 병폐였던 사건 진행의 '헐거움'이나, 늘어짐이 시즌 2에 와서도 불식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유설옥의 추리는 기대되고, 하완승의 넉살과 저돌성은 여전한 듯 하지만, 시즌 1이 보여준 배방동 어드벤처의 묘미를 아직 시즌2가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심지어 4회,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을 그대로 옮긴 듯한 어린이 방화 사건의 마무리는 '온정적 미담'으로 종료되면서, 외려 사건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결론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캐릭터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사건이 그 캐릭터의 맛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시즌 2는 <추리의 여왕>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다. 부디, 시즌 1이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받았던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 잘 간파하여, 다시 한번 중진서를 배경으로 한 '동네 추리 활극'을 재연해 내길 바래본다. 그런 의미에서 5회, 고시원으로 간 유설옥의 생활 밀착형 '추리'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3. 9. 07:01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제 우리에게는 마치 우리의 작가처럼 익숙하다. 그의 새 작품이 출간되면 바로 베스트 셀러에 등극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출간한 작품들도 언제나 베스트 셀러 수위를 차지하곤 한다. 


왜 히가시노 게이고 일까? 우선은 1885년 <방과후> 이후 2018년 <연애의 행방>까지 밥 먹고 글만 쓰지 않았을까란 의문이 들 정도의 데뷔 후 20년의 기간 동안 35편의 작품을 쏟아낸 작가의 성실한 작품 활동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백야행>이나 <용의자 x의 헌신>과도 같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범죄 스릴러'에서 일가견이 있는 건 물론, 2018년작 <연애의 행방>처럼 '설산'시리즈로 대변되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야기나 <그대 눈동자에 건배> 등의 단편 작품집에서 보여지는 sf, 블랙 코미디, 심리 서스펜스 등 '만물상'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독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작가이다. 사회비판적인 시선이 견지되는 진지한 주제 의식을 견지하는 본격 사회파 소설에서 부터 '팝콘 무비'와도 같은 소소한 흥미 위주의 작품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종횡무진'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우리에게 기억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범죄 스릴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히가시노 게이고를 이젠 다르게 기억하게 만드는 작품이 등장했으니 바로 다수의 독자가 '인생 책'이라 평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물론 <나미야 잡화점>에도 '범죄'가 등장한다. 한밤 중 어느 집에서 가방을 훔쳐 나온 듯한 세 소년, 추적을 피해 차를 타고 도망치려던 소년들은 낡은 차의 고장으로 우선은 몸을 피할 곳을 찾다 이제는 주인도 없이 폐점한 '나미야 잡화점'으로 피신한다. 이렇게 '범죄 스릴러'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 이야기에 바톤을 이어 받는 건 '환타지'.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잡화점, 그곳에서 소년들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 주인의 낡은 물건들을 뒤적거리다 이곳이 손님들에게 무료 상담을 했었다는 기사를 접하는데, 그때 낡은 상점의 문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생각지도 못한 사연 한 장이 도착한다. 

나미야 잡화점에서 만난 과거와 미래의 청춘들
이렇게 세 소년이 살던 2012년과 나미야 씨가 상담 편지를 써주던 1980년(소설 속에서는 1979년)은 이렇게 만난다. 그리고 그 열려진 시간의 행간 속에서 1980년의 청춘들과 2012년의 청춘들이 만난다. 그리고 또 늙수그레한 잡화점 아저씨였던 나미야 씨와 아키코 아가씨의 청춘이 엇물린다. 

원작에서 아키코 아가씨네 공장의 기계공이었던 나미야 씨, 소설 속 아키코 씨네 일꾼으로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의 도피는 실패로 끝난다. 또한 미래에서 온 세 청년에게 편지를 보낸 생선가게 뮤지션, 그는 대학마저 포기하고 '음악'의 길을 걸으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음악의 길은 쉬이 열리지 않고, 생선가게를 홀로 짊어진 아버지의 건강마저 위태롭다. 그린 리버의 사정도 막막하다. 아이를 가졌지만 홀로 어렵게 아이를 낳아서 키워나갈 자신이 없다. 또 다른 여성 길잃은 강아지 하루미는 자신을 키워준 은인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낮엔 직장에 나가고 밤엔 술집 여급으로 일하지만, 더 많은 돈을 위해 '현실'과의 타협을 고민한다. 또 마루코헨의 세 청년들은 '부모가 없어서, 혹은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현실에 대한 좌절을 겪고 있는 중이다. 

영화와 소설은 이렇게, 젊은 나미야 씨를 비롯하여 1980년의 청춘, 그리고 2012년의 청춘들을 '나미야 잡화점'을 통해 조우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이제 좌절한 청춘의 시대를 사는 현재 일본으로 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청춘 비망록'이기도 하다. 저성장 시대를 통과하며 가장 큰 희생을 겪은 일본의 청춘들은 자신의 꿈을 접은 채 '프리터족'과 '니트족'으로 살아가며 사회적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런데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 꿈을 잃은 오늘의 젊은이를 '위무'하기 위해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자기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했던 청춘들을 불러온다.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이란 환타지적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 벌어진 시공을 건넨 '상담'을 통해 청춘들의 '절망'을 다독인다. 사랑을 위해 함께 떠나려 했던 나미야 씨와 아키코 아가씨, 그들의 '야반도주'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 '청춘'의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흔한 자기 계발서의 '꿈'을 가져라가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독임에는 과정상의 좌절과 실패라는 통과 의례가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삶과 죽음을 건너 뛴 '인연'을 통한 청춘의 위로 
사랑을 잃었던 두 사람 나미야 씨와 아키코 씨, 죽음을 앞둔 나미야 씨는 그의 앞에 나타난 아키코 씨에게 잡화점을 운영하며 사람들의 상담을 하며 '유명세'까지 겪었던 그의 인생이 '보람'되었다고 말한다. 아키코 씨 역시 사랑에는 실패했지만 그 좌절을 '마루코헨'을 통해 극복한다. 생선가게 뮤지션의 삶은 그의 생애로만 보면 '실패'였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생선 가게를 돕지도 못했고, 뮤지션으로 그의 생애 내에서 성공하지도 못했다. 초라한 음악가로 '마루코헨'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청된 이름없는 가수로서 뜻밖의 사건으로 마무리된 그의 삶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안타까운 죽음'은 그의 음악의 발자욱으로 승화된다. 

나미야 잡화점이란 환타지적 공간을 통한 현재와 과거의 조우는, 바로 그런 청춘의 승화로 귀결된다. 생선 가게 뮤지션의 생애는 비극이지만, 그 존재의 비극은 그의 죽음 뒤에 남겨진 음악으로 길이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한 사람의 짧은 생애로 다할 수 없는 '인생의 비밀'처럼, 영화는, 그리고 소설은 '청춘'을 고무시킨다. 불교의 '인연설'에 의거한 듯  나미야 잡화점을 통해 만난 과거와 현재의 청춘들은 그렇게 삶의 한정적 시간을 넘어, 그 존재를 확장시킨다. 

아키코씨는 마루코헨을 열었고 그 마루코헨은 현재의 청년들에게 도움을 얻어 사업가로 자신을 세운 길잃은 강아지 하루미에게로 이어진다. 그리고 하루미에게 도움을 준 청년들은 '마루코헨'에 자신들을 의탁하고. 청년들에게 상담을 했던 생선가게 뮤지션은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음악은 그가 구한 아이의 누나를 통해 오래도록 남겨진다. 자신의 아이를 구하고 세상을 떠난 그린 리버 엄마처럼. 어쩌면 한 사람의 생애는 보잘 것 없거나, 때론 좌절과 실패로 점철될 지 몰라도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삶은 그 자신이 아니더라도, 세상 속에 '빛'이 될 것이라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강변한다. 

환광원이란 뜻의 마루코헨처럼. 이십 여년 일본이라는 사회를 배경으로 글을 써온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청춘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히가시노 게이고 답게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폐점된 잡화점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환타지적 장치, 거기에 '상담'이라는 절묘한 '카운셀링'의 장치를 통해 오늘의 청춘을 설득한다. 그저 꿈을 가져라, 포기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어쩌면 일본의 현대사일 수도 있는 지나간 역사의 여정을 통해, 당신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발자욱'은 어디선가 빛을 낼 것이라 작가는 강변하고 있다. 영화는 거기에 더해, 마루코헨의 말썽꾸러기들이었던 세 청년이 이 '환타지'의 경험을 통해 '개과천선'하고 각자 삶의 행로를 제대로 찾아가는 꽉 닫힌 결말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멘토링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우리 나라에서 붐을 일으켰던 베스트 셀러의 영화화답게 꽉 찼던 영화관, 환타지적 설정이나 극적인 장치에 취약한 일본 영화답게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소설만큼의 짜릿한 절정을 선사하진 못했다. 하지만 소설 속 생선가게 뮤지션의 음악이 스크린에 현현되는 그 '실사'의 장면만으로 소설을 봤던 독자들에게는 소설의 여운을 다시 한번 재연할 수 있었을 듯하다. 



by meditator 2018. 3. 8. 17:44

원수가 된 두 가문의 아들, 딸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택했다. 자신의 오빠를 죽인 원수 로미오에 대한 사랑을 택한 줄리엣은 그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독배를 택했고, 그 결과 죽음을 맞이했다. 고전 시대의 '사랑'은 지상 최대의 가치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랑도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함께, '사랑' 이야기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도 하고, 자신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기꺼이 이 두 가지를 성취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3포, 5포, 9포 세대의 대변인이 된 <황금빛 내 인생>의 서지안(신혜선 분)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선다.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면서까지 소망한 '핀란드 행'을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조금 미뤄달라는 최도경(박시후 분)에게 분노한다. '니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며, 왜 싫다는,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자기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발을 거냐며 포효한다. 




신데렐라 컴플렉스 따위!!
<황금빛 내 인생>의 구도는 전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도다. 어머니 양미정의 거짓말로 뒤바뀐 친딸, 그 사실이 밝혀지며 '원수' 사이에 된 두 집안의 남녀, 그리고 고전적인 갈등 구조에 맞추어 두 남녀 서지안과 최도경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그저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수지간만이 아니다. 국내 10대 재벌 기업을 바라보는 '해성'가와, 한때 무역맨이었지만 월셋집을 전전하는 어려운 집안의 사랑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그간 익숙하게 차용해 왔던 '신데렐라' 서사이기도 하다. 

소현경 작가는 이런 고전적이면서도 익숙한 갈등의 서사를 2018년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시도한다. 백마탄 왕자의 2018년 버전인 최도경과 사랑에 빠진 서지안, 하지만 2018년의 신데렐라는 과감히 왕자가 타고 온 백마를 걷어찬다. 어려운 가정 형편, 그리고 그 보다 더 난감했던 자신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해성가의 친딸의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서지안은 사실은 친딸이 아니었다는 충격적 상황을 맞이하며 그녀가 그간 가져왔던 가치관의 '아노미'를 '자살 시도'라는 극적인 장치를 통해 겪어낸다. 그리고 김말이 양식장 일까지 거치며 어렵사리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입신양명'을 꿈꾸던 그녀가 아니었다. 대신, 친구 혁의 도움으로 시작한 '목공'의 일을 '새로운 행복의 이상향'으로 바라보며 그곳에서 '성공' 대신 '성취'의 '로망'을 다시 꿈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변화에 대한 응답이 바로 '핀란드행 티켓'으로 구현될 예정이었다. 

이렇게 지난 50회의 여정에서 어렵사리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서지안에게 '사랑'은 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었다. 오빠였던 최도경과는 '다시 보지 말아야 할' 사이였으며, 그가 자신의 집안마저 버리고 서지안의 주변을 맴돌았을 때에도 '해성가'를 지옥처럼 여겼던 서지안은 굳건하게 그의 사랑을 외면하려 애썼다. 드라마는 일관되게 서지안을 통해 2018년의 사랑은 둘이 함께 하는 사랑보다는 '개인의 실존과 정립'이 먼저라 강변해왔다. 그러기에 최도경과 서지안의 사랑은 사랑에 '방패'를 든 서지안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며 그런 그녀에게 달려가는 희생적인 서도경의 저돌적인 질주의 '도돌이표'로 되풀이 되어 왔다. 

이렇게 50부작이 넘는 대장정을 진행해온 드라마에서 '메인' 서사인 두 주인공의 사랑은 '역신데렐라' 스토리의 뼈대를 가지고 진행되어 왔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눈빛만은 간절했던' 두 사람의 관계에 시청자들은 그럼에도 '사랑의 완성'을 꿈꾸었고 응원하여 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해성가'만은 아니다라는 서지안과 그럼에도 '너에게 가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최도경의 일방적인  듯 일방적이지 않은 사랑의 도돌이표는 시청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50회, 다시 한번 최도경과 만남에서 왜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냐며 분노하는 서지안으로 마무리되는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조차 그간의 응원을 포기한다. 그래 이제 그만 '헤어져라'고. 50부의 여정 속에서 결국은 시청자들조차도 '포기'하게 만든 이 '역신데레라 스토리'가 추구했던 것이 2018년의 자기 주도적 사랑의 결말일까? 역시 2018년에는 '사랑'조차 사치인 게 맞는 걸까?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큰 아이, 서지안
사랑을 이루기 보다는 이젠 그만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이 사랑, 그 집요한 사랑의 주인공 서지안을 '걸크러쉬'한 이 시대의 자기 주도적 여성으로 소현경 작가는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자기 주도적'이란 지점에서 서지안의 행보, 과연 그럴까?

극중 서지안이 극적으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스스로를 자살로 몰아가던 그 시점, 해성가에서 쫓겨나 힘들게 집으로 돌아오던 서지안은 해성가의 아버지 최재성(전노민 분)에게 자신의 친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이 얻어맞는 장면을 목격한다. 해성가에 들어가 있는 내내 서지안을 죄책감에 빠뜨렸던 건 바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외면했다는 것, 바로 그런 죄책감의 대상인 아버지가 자신으로 인해 수모를 겪게 되자, 서지안은 그 길로 '현실'을 버린다. 

그 다음, 겨우 김말이 양식장에서 혁의 도움으로 추스리고 나왔지만 아직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을 시점,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던 최도경이 자신의 생환을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는 사실에 서지안은 최도경에게  '그게 너였어!'라며 포효한다. 그리고 이제 50회, 위암에 걸린 아버지가 자신으로 인해 해성가의 할아버지에게 따귀를 맞고, 그 앞에서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무릎까지 끓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은 다시 한번 최도경 에게 분노를 퍼붓는다. 

50회의 여정에서 서지안은 최도경과 사랑의 실랑이를 벌이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사랑, 가장 큰 그늘을 드리운 건 '아버지'다. 소현경 작가의 전작 <검사 프린세스>나, <내 딸 서영이>에서 처럼 여전히 딸에게 가장 큰 사랑은 '아버지'다. 줄리엣이 된 서지안이 선택한 건 내 가족을 죽였어도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 여전한 내 '가족', 그리고 '나'인 것이다. 

사랑은 남녀의 만남이지만, 그건 '성장'이다. 가족의 품 안에서 자란 남녀가 '가족'을 극복하고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성장'의 서사에서는 '사랑'이 중요한 통과 의례로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빛 내 인생>의 서지안은 언뜻 보면 자기 주도적인 '걸크러쉬'이지만, 지난 여정에서 그녀의 비등점을 되돌이켜 보면, 여전히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년이다. 15,6세였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하며 '성인'이 되어 자신의 가족'을 벗어났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그 중에서도 아빠라면 '감정'이 앞서는 서지안은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에 있는 어쩌면 아직 '사랑을 하기엔 준비가 되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신화 속 영웅의 서사에 '살부'가 통과 의례가 된건, 아버지가 걸림돌이 된 건, '어른으로서의 독립'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지안은 '아버지'의 그늘에 여전히 놓여있다. 드라마는 죽어가면서까지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성을 이야기하지만, 그 '부성'은 안타깝게도 딸의 지체다. 

50회 서지안이 보인 '분노의 표출'에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는 반응은 바로 이런 준비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물론 소현경 작가는 가해자였던 서태수네 가족을 명탐정 서태수를 통해 '은인'으로 변화시켰다. 그런 가운데 '해성'이라는 재벌가는 여전한 '갑질'의 상징으로 굳건하다. 심지어 그런 '해성'을 나와 서지안을 향해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려 했던 최도경조차 '이기적인 사랑'의 방식으로 규정내린다. 심지어 '위암 말기'라는 설정으로 서지안의 아버지는 죽어가면서도 희생적인 부성애의 상징으로 승화된다. 

50회 서지안의 대사는 내용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여전한 '갑질'에 '위암 말기'의 아빠가 수모를 겪었다는 것을 안 딸의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그 '태도'의 문제가 시청자들을 등 돌리게 한 것이다. 아버지라면 여전히 '감정'이 앞서는 딸은 '사랑할 '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사랑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며 달려온 연인의 '핀란드 행' 만류에 여전히 분노하는 그 '자기애'라면 차라리 자신의 길을 가라고 권유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마저 걸림돌이 된 서지안, 자신의 가족 속에 웅크린 서지안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드라마는 50회, 사랑 앞에 용기를 내줄 것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러니 이제 '사랑'으로의 성숙 대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역설적 응원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가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 줄기차게 비판적으로 제시해온 '재벌 갑질'의 페해, 그리고 그런 재벌가와의 신데렐라 서사의 극복이라는 야심찬 시도는 안타깝게도 후반부에 들어서 작위적인 부성애의 강조로 인해 방향을 잃고 만다. 작가가 '아버지'를 갸륵하게 만들면 만들 수록, 딸의 사랑은 방향을 잃고 만다. 심지어 이제 사랑의 응원조차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이 '자중지난'을 뚫고 소현경 작가는 주말 가족 드라마의 정석 해피엔딩을 설득해 낼 수 있을지, 아니면 주말 드라마 최초 메인 커플의 이별로 마무리될 것인지. 어쩌면 지금 <황금빛 내 인생>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필요한 건 '해피엔딩' 여부보다 차라리 이별이라도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서사일 듯하다.

by meditator 2018. 3. 5. 09:23

환절기가 돌아왔다. 날이 차다는데도 공기가 다르다. 겨울의 그 '바람'이 아니다. 그 쌀쌀한 바람 어디선가 느껴지는 봄, 하지만 섣부른 봄마중은 결국 유행처럼 '감기'를 선사하며 혹독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만든다. 누군가에겐 무거운 겨울 옷을 벗어던지고 싶은 계절, 그 '안온했던' 롱파카가 지겨워지는 계절, 하지만 옛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병약해진 노인들이 새로운 계절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기 쉬운 계절이라고. 아직 덜 늙은 사람들에겐 머리 빠짐이나, 감기 등으로 느껴지는 계절이 어느 나이 드신 분의 '목숨'마저 위협할 수 있는 계절, 그렇게 계절의 변화는 '실감'나게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며 새로운 계절을 선사하는데, 이동은 감독은 미경 모자가 겪어내는 삶의 변화를 '환절기'라는 문학적 은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영화를 여는 건 수현의 교통 사고. 사고 순간의 처연함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구급대의 다급한 행적과 잔해들을 통해 그려내며 이 심상치 않은 사건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이 씬을 통해 <환절기>가 매우 '문학적'인 영화가 될 것임을 예측하게 만든다. 





문학적 감수성으로 설명하는 아들의 동성애 

그리고 그 '예측'은 그다지 틀리지 않게, 102분의 런닝 타임 동안 영화는 마치 감당하지 못할 계절을 겪어내는 환절기처럼 엄마 미경(배종옥 분)과 그녀의 아들 수현(지원호 분), 그리고 수현의 친구 용준(이원근 분)이 겪어내는 삶의 변화를 담아낸다. 


'부재'의 남편, 이제 고3인 아들 수현을 뒷바라지하며 사는 '주부' 미경의 삶은 권태롭다. 함께 살지 않는 남편의 불성실을 드러낼 용기도, 자기 중심적인 아들과의 일상을 변화시킬 강단도 없이, 그저 '주부'로서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는 시간은 하루를 버티다 늦은 밤 앉은 채로 tv를 보며 조는 미경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부재한, 엄마와 아들의 뻔한 일상에 활력소처럼 등장한 건 수현의 친구 용준이다. 까탈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아들 수현의 메신저로, 혹은 무심한 아들 수현의 빈자리를 메워가며 용준은 수현과 엄마 미경의 돈독한 '벗'이 된다. 아니 엄마 미경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생각했던 일상, 아들 수현, 그리고 그의 벗 용준이라는 삶의 틀은 수현의 교통사고와 함께 전혀 다른 그림으로 채색되기 시작한다. 


후쿠다 시게오나 앤디 워홀의 팝 아트처럼, 그저 평범한 고 3 수험생과 그의 친밀한 친구를 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라 생각했던 미경의 일상은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그런 그녀를 지탱했던 아들 수현의 교통 사고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금이 가기 시작한 일상을 산산히 부숴버린 건 교통사고 난 아들의 소지품에서 등장한 디카. 디카를 통해 보여진 수현과 용준의 관계는 그저 친한 친구 이상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필리핀으로 돈을 번다는 핑계로 떠나 '별거'를 공식화한 남편과의 관계를 '간과'하고, 아들의 동성애에 '무지'했던 '평범하고 싶었던' 주부 미경에게 다가온 삶의 충격적 변화를 다룬다. 그저 외면하며 버티다 보면 돌아와 다시 자리를 채워주려 했던 남편, 자기 중심적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 여겼던 아들의 다른 '사랑', 그렇게 그녀가 무지하고 외면했던 삶의 이면들이 아들 수현의 교통 사고를 통해 까발려지고 미경은 기약할 수 없는 아들의 상태와 함께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 내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영화는 그런 주부 미경의 망연자실한 충격을,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모성을 배우 배종옥 특유의 담담하고 처연한 분위기의 연기를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배종옥이 연기한 미경의 대척점에 수현의 친구로써 이 가족의 주변을 떠돌았던 용준의 애처로운 사랑을 이원근의 감성 연기를 통해 띄운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의 부재때문이었을까. 자기 중심적인 수현과 달린 늘 미경에게 살가웠던 용준, 하지만 미경은 아들과 함께 타고 가다 교통사고 과정에서 조금 다친, 그리고 디카를 통해 드러난 아들의 '연인'인 용준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수현이 걱정되고, 미안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수현의 곁에 머무르고 싶은 용준을 애써 떼어놓으려는 미경, 이런 두 사람의 갈등이 영화 <환절기>를 이끌어 가는 주요 동력이다.



배종옥, 이원근의 연기는 좋았지만

그리고 거기까지이다. 평범한 주부가 아들의 교통 사고라는 뜻밖의 사건을 통해 아들의 동성애와 자기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삶의 변화를, 그리고 교통사고를 통해 '이별' 아닌 '이별'을 겪게 된 용준의 사랑을 영화는 '문학적 감성'으로 들여다 본다. 마치 '혹독한 감기'처럼 겪어내듯 영화는 미경과 용준, 그리고 수현이 겪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그래서 아쉽다. 이제 우리 영화에서 다른 사랑인 '동성애'의 영화가 더 이상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기에, 이젠 '동성애'를 한다를 넘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절기>는 여전히 수현과 용준이 '남다른 사랑'을 한다에 지체되어 있다. 오히려 이 <환절기>에서 신선한 건, 그런 '뜻밖의 사랑'을 목도한 엄마 미경이란 존재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에 들어서며 '용준'이 겪는 '사랑'의 아픔에 경도되면서 '미경'이 겪는 혹독한 변화를 들여다 보는데 게을러 진다. 


아니, 어쩌면 <환절기>는 우리 사회에서 '문학적'이란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작품일 지도 모른다. '감기'처럼 겪는것, '환절기'처럼 한바탕 겪어내고 나는 것, 이상으로 감성적인 접근 그 이상이 아닌 것 말이다. <환절기>를 보면 용준과 미경의 아픔이 다가온다. 그들이 겪는 환절기 같은 삶의 변화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삶의 격변들이 그저 용광로처럼 타다 시간이 흐르면 꺼져 버린다. 그저 평범한 가정의 주부로 안주했던 미경이 아들의 사고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고, 기꺼이 남편과의 이혼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반추와 객관화'가 아쉽다. 마찬가지로, 가족에게서도 외면받았던 용준이 그나마 의지했던 수현의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겪는 혼돈의 과정을 통해, 그럼에도 수현과 미경에게로 다가가는 혹은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한 '이성적 설득'이 아쉽다.


문학에 왜 이성이 필요하냐고? 작금의 우리의 베스트 셀러를 채우는 것이 우리의 문학이 아닌 현실을 되돌이켜 보면, '감성'으로 설득해 내는 삶의 역부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숱한 문학적 수사는 난무하지만, 삶에 대한 냉정한 반추가 없는 <환절기>는 그래서 허황하다. <환절기>는 아주 좋은 소재로 시작한다. 자기 스스로 어쩌지 못한 채 삶의 바퀴에 쫓아가던 중년의 엄마, 그런 엄마가 맞딱뜨린 아들의 '다른 사랑', 하지만 영화 <환절기>는 이런 현실적 문제를 '문학적 감수성'으로 대변하려 하다보니, 정작 이 '현실적 문제'가 가닿아야 할 고민의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단막극'에서 쉽게 차용하는 방식으로 미경과 용준의 문제를 '안이하게' 풀어내고 만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중산층 주부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의 지점들, 그리고 자신의 집안에서 외면 받은 채, 자신과 함께 교통 사고를 겪은 동성의 연인에 맹목적인 사랑, 이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원근과 배종옥의 연기에 기대어 '안이하게' 넘어가고자 한다. 그래서 예측 가능하게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여 허허롭다. 


by meditator 2018. 3. 3. 22:27

새 정부 들어서 첫 번째로 맞이한 3.1 절 기념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특별했다. 대통령은 솔선하여 역사의 현장인 서대문 형무소에 서서, '과거'는 결코 보상 등의 조치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못박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도닥였고, 당시를 재연한 태극기 행렬의 앞에 섰다. 타종식과 부산 일신 여학교, 충북 옥천, 종로 보신각 등에서 3.1 운동의 현장을 재연하는 등 3.1 운동 99주년을 '특별'하게 보내기 위한 각종 행사가 줄을 이었다. 무엇보다 2018년의 3.1절은 대통령이 선언한 바 있는 2019년 건국 100년을 향해 가는 카운트 다운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그저 100년이 아니다. 지난 정권 들에 의해 '임시 정부에 의한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이라는 정통성 있는 역사는 짓밟힐 뻔 했었고, 얼토당토치 않은 '건국'이 새로운 역사로 대체될 뻔했던 또 한번의 '항쟁'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건국 100년, 그 카운트 다운의 시작인 3.1절 99주년은 더욱 '기념'해야할 시간이다. 


그런데, 공중파 편성표를 보면 kbs1tv를 제외하고는 과연 오늘이 3.1절인가 싶다. 각종 드라마 등의 재방송으로 때운 낮시간, 거기에 특별한 기획 방송 없는 일간의 편성표가 재연된 공중파 편성표는 과연 우리가 거리로 나서며 임시정부 법통의 건국 100주년을 지키려 했던 시절이 있었는가 무색해 진다. 그래도 mbc는 3.1절 특집극 <절정>을 방영하지 않았냐고? 물론 <절정>이 이육사 선생의 삶을 수려하게 재연한 잘 만든 단막극이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달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2011년 8.15 특집으로 방영된 이 단막극을 벌써 몇 번째 재방송하는 것으로 '면피'를 하겠다는 건 너무 낮부끄러운 처사가 아닐까. 하다못해 이제는 명절 특집 영화도 2011년 작을 재방영하지는 않는 세상에서 말이다. 

그런 가운데 다큐들의 고군분투는 주목할 만하다. 99주년을 맞이한 3.1절에 새로울 게 무엇이 있을까 싶지마는, 여전히 발로 뛰는 다큐의 제작진은 여전히 우리가 3.1절을 통해 생각하고 발견해야 할 독립 운동의 역사가 있음을 증명해 낸다. 




   송몽규 
고요히 침전된 어둠 만지울 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도 깊구나 홀로 밤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도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머-ㄹ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독립 운동의 역사 
kbs1을 제외한 공중파들이 그저 또 한번의 휴일을 보내는 동안, ebs을 필두로 공중파가 아닌 ytn이나 최근 신선한 기획물을 선보이고 있는 ktv 등은 새로운 3.1운동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그 중에서 ytn이 기획한 <열도의 독립 운동가들>은 영화 <동주>를 통해 다시 기억된 윤동주, 송몽규, 그리고 이봉창 열사 등 일본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다큐의 취재 과정 송몽규 선생이 '학생의 본분을 지키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사실은  '독립 운동'으로 인해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특종'으로 발견해 냈다. 그런가 하면 ktv는 전국적인 독립 운동으로서의 3.1 운동을 재조명했다. 독립 운동 선언문을 일제로 부터 지켜내어 그걸 전국으로 퍼뜨림으로써 3.1운동의 열기를 국내는 물론 만주, 연해주로까지 목숨을 걸고 확산시켜냈던 순국 선열들의 역사를 복기해 낸 것이다. 

이미 매번 일제 식민지 관련 국경일마다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 나갔던 ebs는 3.1절을 맞이하여 아직까지도 독립 유공자로 등재되지 못했거나 유해 발굴조차 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후손들의 절박한 심정을 <다큐 시선-찾지 못한 이름들>을 통해 알렸다. 



김철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윤봉길, 이봉창 열사들의 거사, 그 배후로 추정되는 김철 선생, 오직 조국을 독립시켜야 하겠다는 열망으로 임시정부가 위기에 빠져있던 시절 주요 문서를 비밀리에 지키기 위해 도피 생활을 하다, 병사를 하고 항저우에 묻힌 채 독립 운동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그가 묻힌 곳이 주택단지로 개발되어 시신조차 되찾을 길이 묘연하다. 이와 같은 경우가 김철 선생 만이 아니다. 백농 이규형 선생의 경우, 후손이 20년 가까이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숱한 자료와 시간을 바쳤지만 여전히 보훈처의 답은 냉랭하다.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가족과 이별을 기꺼이 선택하고 타향을 전전하며 갖은 고초를 겼었던 선열들, 하지만 독립 운동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밝힐 수 없이 역사의 행간 너머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고 다큐는 안타까워 한다. 당시의 특수한 상황 상 중국의 곳곳을 전전했던 임시정부, 그러나 현실은 방치되어 훼손되어 가는 처지, 이렇게 다큐는 국외 문화재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한다. 



3.1절 하루를 가장 풍성하게 보낸 건 그래도 역시 kbs1 tv 였다. 그 시작을 연 건  3.1절 특집 <다큐 공감- 태극기의 섬 소안도의 노래>이다(물론 새벽 2시의 이른 시간이지만). 3.1 운동의 3대 성지를 아시는가. 제주도가 보이는 남쪽의 섬 소안도, 우리에게는 그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 소안도는 하지만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3.1 운동 3대 성지이다. 1년 365일 태극기가 걸려있는 섬, 설이 되면 함께 모여 마을의 독립 운동가을 위해 따로 상을 차리는 곳, 주민들은 어린 시절 독립 운동가였던 '이별가', '행진가', '애국가'를 들으며 자라나는 '독립운동의 마을'의 이야기를 <다큐 공감>은 3.1절 기획으로 다룬다. 

그 뒤를 잇는 건 11시부터 2부작으로 방영된 <이방인의 3.1운동>이다.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 캐나다 선교 재단이 발굴한 3.1운동 자료, 일기, 서신 등의 미공개 희귀 자료 등을 총망라하여 3.1운동에 동참했던 이방인의 행적을 쫓는다. 19세기 말 문호 개방과 함께 조선을 찾은 이방인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는 한편, 신문물과 지식을 전달하는데 앞장섰다. 무엇보다 다큐는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가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주목한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이방인들의 처지로 인해 오랜 시간 역사에 수면 아래 잠겨져 있던 사실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드러나며 전국 각지에서 이방인들이 세운 학교가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의 거점이 되었음을 밝힌다. 또한 해외 각지에서도 조선 독립의 정당함과 식민 지배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던 다른 피부의 '동지'들의 이야기를 더한다. 



3.1운동의 정신을 이어간 '노블리스 오블리제' 김순애 가문
3.1절의 대미를 장식한 건  <특선 다큐-어느 가문의 선택>이다. 흔히들 쉽게 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하지만 대부분 그 문구에 숨겨진 핏빛 역사처럼, 자신을 던져 대의를 실현하는 길은 쉽지 않다. 조국과 결혼했다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조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했던 김마리아, 두 번의 투옥 끝에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선생을 기억한다. 하지만, 김마리아 선생의 가문은? 재야 사학자 이덕일의 책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이회영 선생 가문의 이야기가 재조명되었다면, 건국 100년을 향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99주년 3.1절에 임시 정부의 거름이 된 김마리아 선생 가문의 이야기를 특집 다큐는 다룬다. 

가문의 일원이 6명이 모두 '건국 훈장'을 받은 가문, 3. 1운동의 역사에는  이른바 '김순애 가문'이다. 1차 대전이 종전되고, 그 후속 조치를 위해 열린 '파리 강화 회의' 이곳에 김규식과 그의 아내 김순애가 있었다. 중국 상해에서 신한 청년당을 주도적으로 결성한 두 사람은 당시 결혼한 지 불과 2주일 된 신혼 부부였다. 남자와 여자이기보다는 '동지'였던 두 사람, 남편 김규식은 파리 강화 회의를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유럽 등에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렇게 김규식의 활약이 전해지며 일본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이 준비되고 김순애의 조카인 김마리아는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 회장'으로 이에 깊이 관여한다. 남편 김규식을 해외로 보낸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국내로 들어와 대구에서 김마리아, 광주에서 동생 김필례 부부를 만나 만세 운동의 확산에 고군분투했다. 



이후 김순애는 다시 상해로 탈출하여 '대한 애국 부인회'를 결성, 독립 자금 모금 및 독립 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돌보며 해외 각지에 한국 지도와 태극기 보급 운동에 앞장선다. 이런 김순애의 상해 '대한 애국 부인회'는 서울에서 김마리아에 의해 조직된 '대한 애국 부인회'와 연계를 가지며 김마리아가 모금한 군자금을 조달하고 여성 독립 운동에 앞장 선다. 한편 남편 김규식은 파리에 이어 미국에서 구미 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임시 정부가 만들어진 이후 독립 전쟁을 준비하며 '대한 적십자회'를 조직하였다. 아내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적십자회 활동의 일환으로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였다. 

또한 김순애의 오빠는 세브란스를 1회 졸업한 우리 나라 최초 서양의 중 한 명이었다. 세브란스 의전을 이끌어 나갈 재목으로 촉망받던 이 인재는 하지만, 조국에서의 보장된 의사로서의 성공 대신 중국으로 망명,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에서 북제 진료소를 독립금 군자금을 모집하고 이상촌 건설 등 독립 운동에 헌신하던 중 독살당하고 만다. 하지만 김필순가의 독립 정신은 그의 가계로 남아, 그의 아들 김염은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항일 영화의 주역으로 활동한다. 가장 잘생기고 인기있는 배우이기 이전에 독립 운동 가문의 후손으로 상업 영화 출연을 거부하고 일본 제국주의 투쟁에 힘을 보탠다. 그런가 하면 광주에 남았던 김순애의 동생 김필례는 애국 계몽 운동과 여성 운동에 앞장서 한국 YWCA창립을 주도했고 광주 수피아 학교와 정신 여학교를 복교하는 등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에 앞장 섰다. 




비록 시청률에 담보되는 공중파의 대부분은 면피를 하거나, 3.1절을 그저 또 하나의 휴일로 때웠다. 하지만, KBS1을 비롯하여 EBS, YTN, KTV 등의 다큐는 여전히 우리의 3.1절이 마무리 되지 않았음을 강변한다. 하지만 이런 강변은 그저 조용한 목소리로 요식 행위로 지나갈 처지다. 이러다 내년이면 떠들썩하니 건국 100년이라 팡파레만 울리다 말 지도 모른다. 과연 이 미미한 시청률의 다큐들로 우리 임시정부의 정통성, 독립운동의 역사가 환기될 수 있을까? 여전히 채 다 씌여지지 않은 독립 운동사, 건국 100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역사적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그리고 대중적 인식의 확산을 위해 방송이, 문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숙제'를 남긴 시간, 그것이 바로 2018년의 3.1절이 되었다. 

by meditator 2018. 3. 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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