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가 돌아왔다. 날이 차다는데도 공기가 다르다. 겨울의 그 '바람'이 아니다. 그 쌀쌀한 바람 어디선가 느껴지는 봄, 하지만 섣부른 봄마중은 결국 유행처럼 '감기'를 선사하며 혹독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만든다. 누군가에겐 무거운 겨울 옷을 벗어던지고 싶은 계절, 그 '안온했던' 롱파카가 지겨워지는 계절, 하지만 옛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병약해진 노인들이 새로운 계절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기 쉬운 계절이라고. 아직 덜 늙은 사람들에겐 머리 빠짐이나, 감기 등으로 느껴지는 계절이 어느 나이 드신 분의 '목숨'마저 위협할 수 있는 계절, 그렇게 계절의 변화는 '실감'나게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며 새로운 계절을 선사하는데, 이동은 감독은 미경 모자가 겪어내는 삶의 변화를 '환절기'라는 문학적 은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영화를 여는 건 수현의 교통 사고. 사고 순간의 처연함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구급대의 다급한 행적과 잔해들을 통해 그려내며 이 심상치 않은 사건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이 씬을 통해 <환절기>가 매우 '문학적'인 영화가 될 것임을 예측하게 만든다. 





문학적 감수성으로 설명하는 아들의 동성애 

그리고 그 '예측'은 그다지 틀리지 않게, 102분의 런닝 타임 동안 영화는 마치 감당하지 못할 계절을 겪어내는 환절기처럼 엄마 미경(배종옥 분)과 그녀의 아들 수현(지원호 분), 그리고 수현의 친구 용준(이원근 분)이 겪어내는 삶의 변화를 담아낸다. 


'부재'의 남편, 이제 고3인 아들 수현을 뒷바라지하며 사는 '주부' 미경의 삶은 권태롭다. 함께 살지 않는 남편의 불성실을 드러낼 용기도, 자기 중심적인 아들과의 일상을 변화시킬 강단도 없이, 그저 '주부'로서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는 시간은 하루를 버티다 늦은 밤 앉은 채로 tv를 보며 조는 미경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부재한, 엄마와 아들의 뻔한 일상에 활력소처럼 등장한 건 수현의 친구 용준이다. 까탈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아들 수현의 메신저로, 혹은 무심한 아들 수현의 빈자리를 메워가며 용준은 수현과 엄마 미경의 돈독한 '벗'이 된다. 아니 엄마 미경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생각했던 일상, 아들 수현, 그리고 그의 벗 용준이라는 삶의 틀은 수현의 교통사고와 함께 전혀 다른 그림으로 채색되기 시작한다. 


후쿠다 시게오나 앤디 워홀의 팝 아트처럼, 그저 평범한 고 3 수험생과 그의 친밀한 친구를 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라 생각했던 미경의 일상은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그런 그녀를 지탱했던 아들 수현의 교통 사고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금이 가기 시작한 일상을 산산히 부숴버린 건 교통사고 난 아들의 소지품에서 등장한 디카. 디카를 통해 보여진 수현과 용준의 관계는 그저 친한 친구 이상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필리핀으로 돈을 번다는 핑계로 떠나 '별거'를 공식화한 남편과의 관계를 '간과'하고, 아들의 동성애에 '무지'했던 '평범하고 싶었던' 주부 미경에게 다가온 삶의 충격적 변화를 다룬다. 그저 외면하며 버티다 보면 돌아와 다시 자리를 채워주려 했던 남편, 자기 중심적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 여겼던 아들의 다른 '사랑', 그렇게 그녀가 무지하고 외면했던 삶의 이면들이 아들 수현의 교통 사고를 통해 까발려지고 미경은 기약할 수 없는 아들의 상태와 함께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 내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영화는 그런 주부 미경의 망연자실한 충격을,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모성을 배우 배종옥 특유의 담담하고 처연한 분위기의 연기를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배종옥이 연기한 미경의 대척점에 수현의 친구로써 이 가족의 주변을 떠돌았던 용준의 애처로운 사랑을 이원근의 감성 연기를 통해 띄운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의 부재때문이었을까. 자기 중심적인 수현과 달린 늘 미경에게 살가웠던 용준, 하지만 미경은 아들과 함께 타고 가다 교통사고 과정에서 조금 다친, 그리고 디카를 통해 드러난 아들의 '연인'인 용준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수현이 걱정되고, 미안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수현의 곁에 머무르고 싶은 용준을 애써 떼어놓으려는 미경, 이런 두 사람의 갈등이 영화 <환절기>를 이끌어 가는 주요 동력이다.



배종옥, 이원근의 연기는 좋았지만

그리고 거기까지이다. 평범한 주부가 아들의 교통 사고라는 뜻밖의 사건을 통해 아들의 동성애와 자기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삶의 변화를, 그리고 교통사고를 통해 '이별' 아닌 '이별'을 겪게 된 용준의 사랑을 영화는 '문학적 감성'으로 들여다 본다. 마치 '혹독한 감기'처럼 겪어내듯 영화는 미경과 용준, 그리고 수현이 겪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그래서 아쉽다. 이제 우리 영화에서 다른 사랑인 '동성애'의 영화가 더 이상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기에, 이젠 '동성애'를 한다를 넘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절기>는 여전히 수현과 용준이 '남다른 사랑'을 한다에 지체되어 있다. 오히려 이 <환절기>에서 신선한 건, 그런 '뜻밖의 사랑'을 목도한 엄마 미경이란 존재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에 들어서며 '용준'이 겪는 '사랑'의 아픔에 경도되면서 '미경'이 겪는 혹독한 변화를 들여다 보는데 게을러 진다. 


아니, 어쩌면 <환절기>는 우리 사회에서 '문학적'이란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작품일 지도 모른다. '감기'처럼 겪는것, '환절기'처럼 한바탕 겪어내고 나는 것, 이상으로 감성적인 접근 그 이상이 아닌 것 말이다. <환절기>를 보면 용준과 미경의 아픔이 다가온다. 그들이 겪는 환절기 같은 삶의 변화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삶의 격변들이 그저 용광로처럼 타다 시간이 흐르면 꺼져 버린다. 그저 평범한 가정의 주부로 안주했던 미경이 아들의 사고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고, 기꺼이 남편과의 이혼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반추와 객관화'가 아쉽다. 마찬가지로, 가족에게서도 외면받았던 용준이 그나마 의지했던 수현의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겪는 혼돈의 과정을 통해, 그럼에도 수현과 미경에게로 다가가는 혹은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한 '이성적 설득'이 아쉽다.


문학에 왜 이성이 필요하냐고? 작금의 우리의 베스트 셀러를 채우는 것이 우리의 문학이 아닌 현실을 되돌이켜 보면, '감성'으로 설득해 내는 삶의 역부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숱한 문학적 수사는 난무하지만, 삶에 대한 냉정한 반추가 없는 <환절기>는 그래서 허황하다. <환절기>는 아주 좋은 소재로 시작한다. 자기 스스로 어쩌지 못한 채 삶의 바퀴에 쫓아가던 중년의 엄마, 그런 엄마가 맞딱뜨린 아들의 '다른 사랑', 하지만 영화 <환절기>는 이런 현실적 문제를 '문학적 감수성'으로 대변하려 하다보니, 정작 이 '현실적 문제'가 가닿아야 할 고민의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단막극'에서 쉽게 차용하는 방식으로 미경과 용준의 문제를 '안이하게' 풀어내고 만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중산층 주부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의 지점들, 그리고 자신의 집안에서 외면 받은 채, 자신과 함께 교통 사고를 겪은 동성의 연인에 맹목적인 사랑, 이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원근과 배종옥의 연기에 기대어 '안이하게' 넘어가고자 한다. 그래서 예측 가능하게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여 허허롭다. 


by meditator 2018. 3. 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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