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서 첫 번째로 맞이한 3.1 절 기념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특별했다. 대통령은 솔선하여 역사의 현장인 서대문 형무소에 서서, '과거'는 결코 보상 등의 조치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못박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도닥였고, 당시를 재연한 태극기 행렬의 앞에 섰다. 타종식과 부산 일신 여학교, 충북 옥천, 종로 보신각 등에서 3.1 운동의 현장을 재연하는 등 3.1 운동 99주년을 '특별'하게 보내기 위한 각종 행사가 줄을 이었다. 무엇보다 2018년의 3.1절은 대통령이 선언한 바 있는 2019년 건국 100년을 향해 가는 카운트 다운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그저 100년이 아니다. 지난 정권 들에 의해 '임시 정부에 의한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이라는 정통성 있는 역사는 짓밟힐 뻔 했었고, 얼토당토치 않은 '건국'이 새로운 역사로 대체될 뻔했던 또 한번의 '항쟁'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건국 100년, 그 카운트 다운의 시작인 3.1절 99주년은 더욱 '기념'해야할 시간이다. 


그런데, 공중파 편성표를 보면 kbs1tv를 제외하고는 과연 오늘이 3.1절인가 싶다. 각종 드라마 등의 재방송으로 때운 낮시간, 거기에 특별한 기획 방송 없는 일간의 편성표가 재연된 공중파 편성표는 과연 우리가 거리로 나서며 임시정부 법통의 건국 100주년을 지키려 했던 시절이 있었는가 무색해 진다. 그래도 mbc는 3.1절 특집극 <절정>을 방영하지 않았냐고? 물론 <절정>이 이육사 선생의 삶을 수려하게 재연한 잘 만든 단막극이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달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2011년 8.15 특집으로 방영된 이 단막극을 벌써 몇 번째 재방송하는 것으로 '면피'를 하겠다는 건 너무 낮부끄러운 처사가 아닐까. 하다못해 이제는 명절 특집 영화도 2011년 작을 재방영하지는 않는 세상에서 말이다. 

그런 가운데 다큐들의 고군분투는 주목할 만하다. 99주년을 맞이한 3.1절에 새로울 게 무엇이 있을까 싶지마는, 여전히 발로 뛰는 다큐의 제작진은 여전히 우리가 3.1절을 통해 생각하고 발견해야 할 독립 운동의 역사가 있음을 증명해 낸다. 




   송몽규 
고요히 침전된 어둠 만지울 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도 깊구나 홀로 밤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도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머-ㄹ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독립 운동의 역사 
kbs1을 제외한 공중파들이 그저 또 한번의 휴일을 보내는 동안, ebs을 필두로 공중파가 아닌 ytn이나 최근 신선한 기획물을 선보이고 있는 ktv 등은 새로운 3.1운동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그 중에서 ytn이 기획한 <열도의 독립 운동가들>은 영화 <동주>를 통해 다시 기억된 윤동주, 송몽규, 그리고 이봉창 열사 등 일본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다큐의 취재 과정 송몽규 선생이 '학생의 본분을 지키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사실은  '독립 운동'으로 인해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특종'으로 발견해 냈다. 그런가 하면 ktv는 전국적인 독립 운동으로서의 3.1 운동을 재조명했다. 독립 운동 선언문을 일제로 부터 지켜내어 그걸 전국으로 퍼뜨림으로써 3.1운동의 열기를 국내는 물론 만주, 연해주로까지 목숨을 걸고 확산시켜냈던 순국 선열들의 역사를 복기해 낸 것이다. 

이미 매번 일제 식민지 관련 국경일마다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 나갔던 ebs는 3.1절을 맞이하여 아직까지도 독립 유공자로 등재되지 못했거나 유해 발굴조차 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후손들의 절박한 심정을 <다큐 시선-찾지 못한 이름들>을 통해 알렸다. 



김철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윤봉길, 이봉창 열사들의 거사, 그 배후로 추정되는 김철 선생, 오직 조국을 독립시켜야 하겠다는 열망으로 임시정부가 위기에 빠져있던 시절 주요 문서를 비밀리에 지키기 위해 도피 생활을 하다, 병사를 하고 항저우에 묻힌 채 독립 운동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그가 묻힌 곳이 주택단지로 개발되어 시신조차 되찾을 길이 묘연하다. 이와 같은 경우가 김철 선생 만이 아니다. 백농 이규형 선생의 경우, 후손이 20년 가까이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 숱한 자료와 시간을 바쳤지만 여전히 보훈처의 답은 냉랭하다.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가족과 이별을 기꺼이 선택하고 타향을 전전하며 갖은 고초를 겼었던 선열들, 하지만 독립 운동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밝힐 수 없이 역사의 행간 너머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고 다큐는 안타까워 한다. 당시의 특수한 상황 상 중국의 곳곳을 전전했던 임시정부, 그러나 현실은 방치되어 훼손되어 가는 처지, 이렇게 다큐는 국외 문화재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한다. 



3.1절 하루를 가장 풍성하게 보낸 건 그래도 역시 kbs1 tv 였다. 그 시작을 연 건  3.1절 특집 <다큐 공감- 태극기의 섬 소안도의 노래>이다(물론 새벽 2시의 이른 시간이지만). 3.1 운동의 3대 성지를 아시는가. 제주도가 보이는 남쪽의 섬 소안도, 우리에게는 그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 소안도는 하지만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3.1 운동 3대 성지이다. 1년 365일 태극기가 걸려있는 섬, 설이 되면 함께 모여 마을의 독립 운동가을 위해 따로 상을 차리는 곳, 주민들은 어린 시절 독립 운동가였던 '이별가', '행진가', '애국가'를 들으며 자라나는 '독립운동의 마을'의 이야기를 <다큐 공감>은 3.1절 기획으로 다룬다. 

그 뒤를 잇는 건 11시부터 2부작으로 방영된 <이방인의 3.1운동>이다.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 캐나다 선교 재단이 발굴한 3.1운동 자료, 일기, 서신 등의 미공개 희귀 자료 등을 총망라하여 3.1운동에 동참했던 이방인의 행적을 쫓는다. 19세기 말 문호 개방과 함께 조선을 찾은 이방인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는 한편, 신문물과 지식을 전달하는데 앞장섰다. 무엇보다 다큐는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가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주목한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이방인들의 처지로 인해 오랜 시간 역사에 수면 아래 잠겨져 있던 사실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드러나며 전국 각지에서 이방인들이 세운 학교가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의 거점이 되었음을 밝힌다. 또한 해외 각지에서도 조선 독립의 정당함과 식민 지배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던 다른 피부의 '동지'들의 이야기를 더한다. 



3.1운동의 정신을 이어간 '노블리스 오블리제' 김순애 가문
3.1절의 대미를 장식한 건  <특선 다큐-어느 가문의 선택>이다. 흔히들 쉽게 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하지만 대부분 그 문구에 숨겨진 핏빛 역사처럼, 자신을 던져 대의를 실현하는 길은 쉽지 않다. 조국과 결혼했다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조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했던 김마리아, 두 번의 투옥 끝에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선생을 기억한다. 하지만, 김마리아 선생의 가문은? 재야 사학자 이덕일의 책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이회영 선생 가문의 이야기가 재조명되었다면, 건국 100년을 향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99주년 3.1절에 임시 정부의 거름이 된 김마리아 선생 가문의 이야기를 특집 다큐는 다룬다. 

가문의 일원이 6명이 모두 '건국 훈장'을 받은 가문, 3. 1운동의 역사에는  이른바 '김순애 가문'이다. 1차 대전이 종전되고, 그 후속 조치를 위해 열린 '파리 강화 회의' 이곳에 김규식과 그의 아내 김순애가 있었다. 중국 상해에서 신한 청년당을 주도적으로 결성한 두 사람은 당시 결혼한 지 불과 2주일 된 신혼 부부였다. 남자와 여자이기보다는 '동지'였던 두 사람, 남편 김규식은 파리 강화 회의를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유럽 등에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렇게 김규식의 활약이 전해지며 일본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이 준비되고 김순애의 조카인 김마리아는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 회장'으로 이에 깊이 관여한다. 남편 김규식을 해외로 보낸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국내로 들어와 대구에서 김마리아, 광주에서 동생 김필례 부부를 만나 만세 운동의 확산에 고군분투했다. 



이후 김순애는 다시 상해로 탈출하여 '대한 애국 부인회'를 결성, 독립 자금 모금 및 독립 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돌보며 해외 각지에 한국 지도와 태극기 보급 운동에 앞장선다. 이런 김순애의 상해 '대한 애국 부인회'는 서울에서 김마리아에 의해 조직된 '대한 애국 부인회'와 연계를 가지며 김마리아가 모금한 군자금을 조달하고 여성 독립 운동에 앞장 선다. 한편 남편 김규식은 파리에 이어 미국에서 구미 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임시 정부가 만들어진 이후 독립 전쟁을 준비하며 '대한 적십자회'를 조직하였다. 아내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적십자회 활동의 일환으로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였다. 

또한 김순애의 오빠는 세브란스를 1회 졸업한 우리 나라 최초 서양의 중 한 명이었다. 세브란스 의전을 이끌어 나갈 재목으로 촉망받던 이 인재는 하지만, 조국에서의 보장된 의사로서의 성공 대신 중국으로 망명,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에서 북제 진료소를 독립금 군자금을 모집하고 이상촌 건설 등 독립 운동에 헌신하던 중 독살당하고 만다. 하지만 김필순가의 독립 정신은 그의 가계로 남아, 그의 아들 김염은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항일 영화의 주역으로 활동한다. 가장 잘생기고 인기있는 배우이기 이전에 독립 운동 가문의 후손으로 상업 영화 출연을 거부하고 일본 제국주의 투쟁에 힘을 보탠다. 그런가 하면 광주에 남았던 김순애의 동생 김필례는 애국 계몽 운동과 여성 운동에 앞장서 한국 YWCA창립을 주도했고 광주 수피아 학교와 정신 여학교를 복교하는 등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에 앞장 섰다. 




비록 시청률에 담보되는 공중파의 대부분은 면피를 하거나, 3.1절을 그저 또 하나의 휴일로 때웠다. 하지만, KBS1을 비롯하여 EBS, YTN, KTV 등의 다큐는 여전히 우리의 3.1절이 마무리 되지 않았음을 강변한다. 하지만 이런 강변은 그저 조용한 목소리로 요식 행위로 지나갈 처지다. 이러다 내년이면 떠들썩하니 건국 100년이라 팡파레만 울리다 말 지도 모른다. 과연 이 미미한 시청률의 다큐들로 우리 임시정부의 정통성, 독립운동의 역사가 환기될 수 있을까? 여전히 채 다 씌여지지 않은 독립 운동사, 건국 100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역사적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그리고 대중적 인식의 확산을 위해 방송이, 문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숙제'를 남긴 시간, 그것이 바로 2018년의 3.1절이 되었다. 

by meditator 2018. 3. 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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