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는 영화나 드라마의 대표적 '장르'다. 가장 '인기있지'는 않지만 '꾸준'한 스테디 셀러인 이 '장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배상준 교수는 그의 책 <장르 영화>에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드러나게 하는 절묘한 장치로 설명해 낸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자본주의 사회가 기반한 생산 관계에서 비롯된 각종 사회 관계들, 그 '모순'을 터트려내는 가장 유효적절한 방식이 바로 '스릴러'라는 것이다. 우리가 맞부닥쳐 사는 삶의 곪아터진 부분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고 꼬집어 주는 그 '시금석'으로서의 '스릴러'


그래서 대부분의 스릴러 장르들은 드러난 사건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관계'들이 있고,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이 '숨겨진 관계'들이 '폭로'되고, '징죄'되면서, '장르'의 카타르시스가 최고치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등식이 있다. 바로 '사건'과 '폭로', 그리고 '징죄'로 이어지는 스릴러의 일관성이다.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들에는 사건 이면의 '관계'들이 '폭로'되어야 하기 때문에, '반전'이 중요한 극적 장치로 작용한다. 그러기에 이 '반전'의 정도와 '일관성'이 곧 '스릴러'의 질을 결정짓는 척도로 여겨질 정도다. 



'호러'적 공간이 품어낸 '스릴러의 정석' 
지난 3월 7일 개봉한 <사라진 밤>은 스릴러의 공식을 성실하게 따른다. 한밤중에 국과수에서 사라진 아내 윤설희(김희애 분)의 시체가 드러난 사건이라면,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 이면에 있었던 또 다른 사건이 풀려가면서 드러난 사건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게 되어진다. 그리고 그 '해석'에 있어서 결정적 '반전'이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도 충실하게 '스릴러'의 정석을 따른다. 

영화는 tv 속에 등장하는 심수봉의 노래마저 음산하게 울려퍼지는 국과수의 으스스한 공기를 배경으로 미스터리 호러처럼 시작된다. 뜻하지 않은 정전, 그리고 수상쩍은 인기척을 따라든 경비의 앞에 펼쳐진 '시체' 실종의 현장, 그리고 그의 눈앞에 착시처럼 나타난 사라진 '죽은 여인'. 

이렇게 공포스럽게 시작된 영화의 뒤를 잇는 건, 조사를 위해 국과수에 나타난 우중식(김상경 분)을 비롯한 형사들과, 그들에 의해 호출된 남편 박진한(김강우 분)의 숨막히는 공방전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공방전의 승패를 일찌감치 친절하게 관객들에게 설명한다. 즉, 우중식과 김강우의 '공방전'을 통해 김강우의 숨겨진 비밀을 폭로해가는 '스릴러'의 묘미의 각을 관객들에게 이미 알려진 김강우의 범죄를 통해, 쫓기는 범인과 그 범죄가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알리고자 하는 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신분상승을 꾀한 한 남자, 박진한이 빠지고 만 범죄와 사랑의 딜레마이다. 

거기에서 관건이 되는 건 뜻밖에 평소와 다른 행태를 보인 우중식의 행보다. 한때는 철두철미한 잘 나가던 경찰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폐인'이 되다시피하여 술에 절어 '업무 태만'이 트레이드 마크가 된 우중식, 그런 그가 어쩐 일인지 다른 때와 다르게 박진한에게 '집착'하다시피 시체 실종 사건에 매달린다. 반장의 추궁도, 그 윗선의 압박도 물리치며. 그저 이 사건이 흘리는 힌트와 박진한이 동원하는 권력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도 되는 듯 우중식은 사건에, 아니 사건보다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는 박진한에 집착한다.  

이렇게 영화는 애초에 이 영화가 홍보했던 '사라진 시체'보다, 저돌적인 우중식과 그런 우중식에 의해 하나씩 까발려지는 박진한의 알리바이로 스릴러의 묘미를 더해간다. 그리고 그런 묘미를 극대화시켜주는 건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는 '호러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는 '국과수'라는 공간이다. 아니, <사라진 밤>의 초반을 담당하는 건, 어쩌면 박진한도, 우중식도 아니고, 바로 시체가 사라지고 그 시체가 살아나서 돌아다녀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을 '공간적 장치'이다. 그저 박진한이 홀로 남겨지기만 해도 어디선가 죽은 윤설희(김희애 분)가 문을 열고 나타날 것 같은 공간의 공포.

그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극대화하면서 평소와 다르게 집착하는 우중식에 의해 박진한의 비밀을 한꺼풀씩 벗겨지고, 그 비밀의 실체를 영화는 일찌감치 드러내 보이면서, 이제 관객은 박진한의 거짓말이 어떻게 '폭로'되는가, 그 귀추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초반부터 박진한이 가장 집착했던 그의 내연녀 혜진(한지안 분)의 또 한 번의 실종과 함께 박진한은 스스로 무너져 내리며 우중식이 집착에 가깝게 추궁했던 그의 '범죄'는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반전'은 그 이후부터이다. 지금껏 박진한을 추궁하는 '제 3자'의 입장에 서있던 우중식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한국적 스릴러의 안타까운 '사연풀이
<사라진 밤>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스릴러의 명작으로 회자되는 2014년작 오리올 파올로 감독의 스페인 영화 <더 바디>의 리메이크 작이다. 서사는 원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라진 아내의 시체, 그리고 그 시체의 실종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드러나는 남편의 '음모', 그걸 집요하게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반전'을 통해 풀려지는 '관계의 이면'. 얼마전 호평을 받은 <인비저블 게스트>처럼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영화가 진행되어 가면서, 그의 숨겨진 이면이 드러나고, 사건의 실체 자체가 전혀 다른 각도로 그리하여 결국은 '피해자'가 피해자가 아닌 것으로, 조력자여야 할 인물이 사건의 또 다른 주체로 부각되어지는, 캐릭터의 변주로 사건을 설명해 내는 방식의 영화이다.  한 개인이 저지르는 부도덕한 범죄가 마치 '토네이도' 처럼 범죄에 또 다른 범죄를 부르는 스페인의 스릴러는 우리의 상황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친숙할 수 있는 소재의 이야기다. 

한국으로 온 이 스페인 영화는 원작의 설정와 플롯에 변주를 주며 '한국적 스릴러'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호세 코로나도가 분한 형사 하이메 페냐의 속을 알길 없는 캐릭터는 김상경의 '허허실실'한 캐릭터로 재해석된다. 또한 이 영화의 키를 쥔 '혜진'의 캐릭터에 있어서도 변주를 가한다. 또한 원작의 서사에 '방점'을 달리 찍어 서사의 변화를 꾀한다. 

그런데 스릴러로서의 <사라진 밤>이란 영화에서 '관건'이 되는 건, 바로 그 제목에서부터 제시된 '사라진 아내의 시체'이다. 바로 그 지점을 풀어내고, 그 풀어내는 과정 속에 숨겨진 이면의 관계를 풀어가는 것이 '스릴러'로서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런데, 바로 이 애초에 관객에게 제시된 질문을 풀어가는 지점에 있어서 '한국적 스릴러'들은 자꾸만 방향을 흔든다. 특히 <사라진 밤>은 충실하게 스릴러의 정석을 따랐음에도 가장 '카타르시스'를 줘야 할 부분 이후 영화가 어쩐지 힘을 잃고 만다. 

영화 속에 숨겨진 '반전'의 퍼즐을 풀어내고, 그것에 전율하고, 그리고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 의식에 이르러야 할 주체는 '관객'이다. 그런데 <사라진 밤>이나, 얼마 전 개봉한 또 한편의 한국적 스릴러 <기억의 밤>에서 제작진은 그걸 '인내'하지 못한다. 마치 관객이 혹시나 자신들이 숨겨놓은 퍼즐을 이해하지 못할까 하는 노파심에 섣부르게 가지고 있는 패를 드러내고, 그 패에 대한 부연 설명을 충실하게 '사연'을 풀어가며 구구절절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은 안타깝게도 애초에 '차가운 장르'로써의 '스릴러'의 묘미를 반감시킨다. 굳이 나서서 감정을 주입시키지 않아도, 스릴러는 '사건' 뒤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율'을 느낄 수 있는데, 조바심을 치며 모든 것을 구구절절 설명해 준다. 

가장 감동적이어야 할 '절정'에서 장르의 힘을 잃고마는 이런 '자가당착', 그 이유는 안타깝게도 '한국식 스릴러'의 맹점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타깝다. 국과수라는 '미스터리한 공간', 거기서 펼쳐지는 우장식과 박진한의 공방전, 거기서 결판이 났어야 할 영화는 숨겨진 '퍼즐'이 아니라 '사연'을 통해 '전율' 따위 없는 자명한 결론으로 관객을 이끈다. 결국 '사라진 시체'에서 출발한 '스릴러'는 제작진이 마지막 퍼즐까지 알아서 맞추어 주며 박진한의 숨겨진 범죄의 잔혹사를 통해 꽉 닫힌 결말로 마무리된다. 영화가 애초에 던진 퍼즐은 신선했지만, 여운은 없다. 스릴러라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장르로 시작하여 절정에서 영화는 언제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복받치는 슬픈 사연으로 마무리된다. 

거기에 더해 아쉬운 건 원작을 달리 해석하기 위해 변주시킨 주인공의 캐릭터들이 복선으로 파고들어 가기 위한 관객들의 퍼즐 고리를 방해한다. <사라진 밤>의 우장식 캐릭터는 마치 '이건 몰랐지'하며 관객에게 '반전'으로 다가오지만, 그래서 생뚱맞다. 반면, 어쩌면 주체가 되었어야 할 사라진 아내의 윤설희(김희애 분)나, 남편 박진한에 대해서는 불친절하다. 김희애라는 배우의 출연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던 영화에서 정작 윤설희는 소모적이다. 왜 그녀가 박진한에 대한 모든 것을 덮어줄 만큼 집착을 했는지, 사랑을 했는지, 영화는 스쳐지나가 버리며, 영화의 동력 한 가지를 놓치고 만다. 마찬가지로 윤설희를 선택할 만큼 '계산적'이었던 박진한의 뜻밖의 사랑도 일관성을 놓친다. 영화가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이 우장식의 계산된 복수였는지, 박진한의 부도덕이었는지, 풋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거기에 숨겨진 우장식의 순애보였는지, 그래서 오히려 모호해진다. 


by meditator 2018. 3. 1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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