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의해 '탄핵'을 당한 전직 대통령의 구속 여부가 화제가 되는 시절이다. 청와대가 비워지자, 정국은 급속도로 다음 청와대 주인공이 될 사람을 향해 몰려간다. 그런데 과연 새로운 대통령을 잘 뽑으면 다 되는 것일까? 거리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그저 새로운 대통령이 아니다. 새로운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체제, 새로운 사회'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회의 시작은 어떻게 해야할까? 그 '시작'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런 고민의 시점에 박경수 작가가 <귓속말>을 들고 찾아왔다. 


<추적자 the chaser(2012)>, <황금의 제국(2013)>, <펀치(2014)>라는 그의 전작들만으로 더 이상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작가다. 일찌기 아내와 딸을 형사 백홍석(손현주 분)을 통한 권력에 대한 복수를 시작으로, 그의 '부도덕한 권력'을 향한 '복수극'은 시작되었고, 매년 그 복수는 정치와 경제, 법의 '카르텔'을 저격해 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사법' 카르텔에 의해 아버지를 '영어의 몸'이 되게 만든 전직 형사 신영주(이보영 분)를 내세워 또 한 편의 '복수'의 시동을 건다. 



하지만 1,2회 아버지에게 '자유'를 안기기 위해 자신이 몸담았던 경찰직은 물론,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헌신하는 신영주보다 더 시선이 가는 건 뜻밖에도 요지부동의 늪에 빠진 판사 이동준(이동준 분)이다. 

위기에 빠진 '정의남' 이동준
서울 지방법원의 촉망받는 판시 이동준은 아버지의 청탁조차 외면한 채 대법원장의 사위를 구속시킬 만큼 법 앞의 정의를 실천하는데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바로 그 '정의로운 판결'로 인해 스스로 '재임용'의 늪에 빠지게 된다.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대법원장이 그와 마찬가지로 이동준의 판결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동료 법관들과 함께 이동준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자 한 것.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동준은 예의 '정의로움'으로 돌파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어려움에 빠진 어머님을 돕기 위해 방문했던 건강보험 평가원행이 뜻밖에 '불법'의 이름으로 그를 옭죄어 오자 고민에 빠진다. 정의로웠던 판사가 하루 아침에 '피의자'의 신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때, 그가 '법비(法匪)'라 경멸해 마지 않았던 거대 로펌 태백의 최일환(김갑수 분)가 손을 내밀었던 것. 그의 요구 조건은 이동준의 마지막 재판이 될 신영주의 아버지 신창호(강신일 분) 재판에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다. 마지막 동앗줄이라며 그를 찾아온 신영주에게 법의 테두리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약속을 했던 이동준, 하지만 그 약속은 '구속'의 위기에 몰린 이동준에 의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만다. 그리고 그 헌신짝처럼 버려진 약속으로 인해 이제 또 신영주라는 또 하나의 늪이 그의 발목을 잡아끈다. 

'정의'의 시대, 박경수 작가가 주목한 것은 뜻밖에도 '정의'의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이다. 지식인이란 어쩌면 이 시대에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이 단어의 주인공을 일찌기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샤르트르는 자신의 출신 계급과 무관하게 자신이 배움을 통해 선택한 사상에 따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고, 비판하면서 소외 계층에 봉사하는 존재라 정의 내렸다. 하지만, 샤르트르의 이 말을 뒤집으면, 노엄 촘스키가 지적한 바, 부와 권력으로 장악된 이 사회에서 그의 하수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짜 지식인'의 정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것을 기반으로 자신이 살아갈 '존재'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 

일찌기 6.25전쟁 이후, 논과 땅과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교육시켜 '입신양명'을 이루고자 했던 한국의 열렬한 자식 사랑은 이 사회를 '학력 사회'로 만들었다. 학교의 교육을 통해 각종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은 뷰로크라트(관료)와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았고. '탄핵'이 된 시점에서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없는 검찰 등의 권력의 '내부자들'로 권력 카르텔의 성실한 수행인이 되었다. 



<귓속말> 속 아버지 세대들은 태백의 대표 최일환, 이동준의 아버지 이호범(김창완 분)처럼 지배 계급의 성공한 '지식인'들과 그런 그들에 대항해 싸웠지만 자신의 직위(기자)와 경제적 능력조차 잃고, 이제 영어의 몸이 된 신창호를 통해 우리 현대사 속 지식인의 서로 다른 길을 이분법적으로 제시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할 수 있었던 지식인의 명확하게 다른 모습이다. 

젊은 지식인의 선택
그리고 이동준이 빠진 '자중지난'을 통해 이제 그 자식 세대가 봉착한 '딜레마'를 드라마의 주제로 내세운다. 정의로웠던 판사 이동준은 불명예에는 맞서 싸워보려 하지만, 스스로 '법'의 심판을 받을 지도 모를 함정에는 무기력했다. 그래서 신영주의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자신은 태백의 사위가 되는 선택을 했다. 

남들은 그가 국내 최고 로펌 태백의 사위가 됐음을 축하하지만 이동준의 미간은 풀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청탁마저 거절하며 그가 살고자 하지 않았던 길에 원치 않게 들었다고 생각한다. 신영주에게는 어떻게든 자신이 그녀를 돕기 위해 애를 써보겠다며 말한다. 

그런 그에게 두 사람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는 '태백 최일환 대표'를 묻는 동준에게 되묻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최일환의 정체가 아니라, 바로 니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위기에 빠졌을 때 너는 거침없이 태백의 손을 잡았다고. 니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또 한 사람, 신영주는 신영주의 아버지를 나중에라도 꼭 구해주겠다고 말하는 이동준에게 '세월호'가 연상되는 답으로 돌려준다. '기다려라'라는 그 말이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는 일이 될 수도 있다며. 또한 시험의 계절, 단 한번의 청탁을 거절하지 못한 교수가 결국 총장 취임을 앞두고 불법 비리 혐의로 구속된 사례를 들며, 시험의 계절은 매년 돌아온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이동준의 선택을 비웃는다. 

최순실 사건이 터지고, 그의 충실한 조력자이자 어쩌면 동반자인 우병우와 김기춘 등의 실체에 대해 샅샅이 밝혀졌다.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소년은 그가 선택한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이자, 스스로 권력의 내부자로 이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잔존하고, 끊임없이 생성되는 '학력 사회'를 통해 합법적 권위와 권력이 된 다수의 '지식인'들의 카르텔이 진짜 문제라는 걸. 



그리고 바로 그 진짜 문제에 대해 <귓속말>은 한때는 정의로웠으나 어느덧 그 '카르텔'의 일원으로 허용된 이동준을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드라마 속 이동준은 태백의 사위이자, 거대 로펌 태백의 촉망받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린다. 여전히 그의 정체성은 '정의로운 판사'지만, 이미 그의 선택은 '부도덕'의 루비콘 강을 건넜다. 과연, 그 '저승'의 강에서 이동준이 어떤 선택을 할지. 또한 신영주를 비롯한 태백의 딸 최수연(박세영 분), 보국산업의 아들 강정일(권율 분) 들 또 다른 '지식인'들의 행보를 통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선택을 묻고자 한다. 

덕분에 혼돈스러운 이동준을 그려내기 위해서였을까? 1,2회의 <귓속말>은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을 떠나, 꽤나 모호하고 혼돈스럽다.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대사들은 떠오르지만, 그 모든 것들이 궁지에 몰린 이동준마냥 뒤엉켜버린다. '선'가 '악'의 경계가 벌써 주인공 자신에게서 결정되지 않았다. 그 '경계'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시청자들도 불편한 선택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불편함은 정의로운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과는 다른 거북스러움이다. 과연 이 거북스러운 질문에 시청자들의 인내심이 견뎌낼 지 그 쉽지않은 길의 여정이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7. 3. 29. 16:08

왜 또 화성일까? 3월 25일 시작한 OCN의 범죄 수사 드라마 <터널>을 보면 이 질문은 당연히 수반될 수밖에 없다. 일찌기 연극 <날 보러와요>의 영화 버전 <살인의 추억> 이래, tvN의 <갑동이> <시그널>까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 소재이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엔 <시그널>에서 조진웅이 연기한 이재한 형사의 잔상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또 한 명의 형사라니! 

결국 <터널>의 첫 번째 과제는 과연 이 드라마가 같은 소재를 다루되, 어떻게 다른 지점을 보고 있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첫 회, <터널>은 분명 같은 '화성 연쇄 살인'이지만, 조금은 다른 '포커스'의 이야기임을 '차별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터널

터널ⓒ OCN


<터널>의 첫 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뜬금없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영국 드라마(영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1960년대 영국과 1980년대 한국

영국 itv가 방영한 <endeaver(인데버)>. 2013년에 시작된 이 드라마는 <셜록>처럼 4회차의 미니 시리즈이다. 첫 회 방영 이후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제 시즌 4를 무사히 방영하고, 시즌 5를 준비 중이다. 이 드라마는 1965년 옥스포드를 배경으로 옥스포드를 중퇴한 형사 모스가 주인공으로 끌어가는 수사 드라마이다.

왜 1965년이었을까? 드라마 속 경찰서는 <터널> 속 1980년대의 경찰서와 판박이다. 사건이 나면 동네 양아치들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라는 명목으로 잡아다 다짜고짜 네가 범인이지? 그날 밤 뭐 했어? 라는 식의, 이미 영화<살인의 추억>에서 부터 클리셰가 되었던 그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수사를 한다. 

그러던 그 옥스포드에 <터널>처럼 10대 소녀를 비롯한 여성들의 살해가 연거푸 등장하기 시작한다. 같은 수법, 같은 방식. 경찰은 예의 방식으로 수사를 반복하지만, 도대체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다. <터널>의 형사들이 눈을 씻고 봐도 사건의 단서하나 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1960년대의 영국과 1980년대의 한국은 아직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이라는 '신종 범죄'가 등장하지 않은, 그래서 그런 범죄자에 대한 미개척지이자 그런 수사를 할 준비도 조건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인데버

인데버ⓒ itv


바로 그때 <인데버>에서는 아직 정식 경장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한 젊은 모스가 툭 튀어나온다. 한때 옥스포드를 다녔던, 늘 오페라 음악을 듣고, 취미가 신문의 십자말 풀이인 이 형사는 우락부락한 덩치로 곤봉이나 총을 내세워 범죄자를 제압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당시의 그들과 다르게 '머리'를 써서, '추리'를 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범죄의 도래를 예측한다.

그렇게 영드 <인데버>는 산업의 발전, 사회의 변화와 함께 새로이 등장하는 지능 범죄, 성범죄,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 살인 등 신종 범죄를 그 소재로 하여, 새로운 수사의 지평을 연다.

3월 25일 첫 선을 보인 <터널> 역시 지금까지 화성 연쇄 살인을 다루었던 드라마들과 같은 소재를 다루었지만, <인데버>처럼 그 전과는 달랐던 새로운 범죄 양상에 속수무책인 당시의 경찰의 혼돈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이 드라마의 영역을 드러낸다.

형사 박광호의 30년 타임 슬립

강력반 10년 고참의 형사 박광호(최진혁 분)는 '누군가 봤고, 누군가 들었고, 누군가 알고있다'는 그의 지론에 따라 사건이 나면 '저인망' 식으로 주변을 샅샅이 훑어 결국은 용의자를 찾아내는 베테랑으로 인정받는 경찰이다. 그런데 그의 관내에서 되풀이 되는 여성들의 살인 사건에는 베테랑인 그는 물론 동료 형사들 모두 속수무책이다.

그도, 그의 동료들도 늘 그래왔듯이 피해자 주변 그 누군가일 것이라고 탐문에 탐문을 거듭하지만, 도무지 실오라기 하나 건져지는 것이 없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사건. 2017년을 사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연쇄살인이지만, <터널> 속 1986년을 사는 형사들은 그것을 알리가 없다. 

 터널

터널ⓒ OCN


그 시절 범죄는 피해자와의 어떤 원한이나 피해에 의해서만 일어나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함께 고도화되어 가는 사회는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죽이는 살인마를 잉태하고 탄생시켰다. 바로 이 지점을 첫 회 <터널>은 충실히 보여준다. 부당한 권력이, 부도덕한 사회가 배태한 연쇄살인이라는 <시그널>과, 잡히지 않는 연쇄 살인마와 경찰의 대결이라는 <갑동이>와는 같은 듯 다르게 <터널>이 터트린 프롤로그다.

그리고 그 프롤로그는 역시나 역부족인 형사 박광호가 범인을 따라 훌쩍 30년의 시간을 건너뛰며, 이제는 연쇄 살인이 관례화되고, 그와 함께 그에 대한 범죄 수사 방식도 일취월장한 2017년의 시대와 호흡할 '여지'를 만든다. 그렇게 <터널>은 첫 회를 통해, 박광호 형사의 시간을 건너뛴 수사의 개연성을 닦으며, 1980년대 형사의 21세기적 활약을 기대하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7. 3. 28. 21:18

거개의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일본 영화는 굵직굵직한 현재사의 궤적을 다루거나,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우리 나라 영화에 비하면 '미시적'이다. 대부분 단막극 정도의 소재로 한 개인사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간다. 그래서 '심심하다(?)'. 그런데 그 '심심한 영화 속에 빠져들다 보면 묘하게도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진다. 두 시간 여의 상영 시간이 종료되고 나면, 괜시리 '사는 게 뭘까?'란 자문을 하게 된다. 


아쿠타가와 상에 5번이나 노미네이트되었던 소설가 사토 야스시는 전업작가로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인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기 위해 직업 훈련 학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전직은 실패했다. 그가 새 직업을 구하는 대신, 당시의 경험을 소설 <황금의 옷>으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토 야스시는 <카이탄 시의 풍경>, <그곳에만 빛난다>에 이어 <황금의 옷>으로 하코다테 3부작을 완성했다. 그리고 전작들이 영화화된 것처럼 <황금의 옷>도 영화화되었다. 현재 개봉중인 <오버 더 펜스>가 그것이다. 

이 3부작은 그저 하코다테가 배경이라는 이유만이라면 아쉽다. 카이탄 조선소가 축소되면서 일상의 변화를 겪게 되는 사람들을 그린 <카이탄 시의 풍경>, 자신에게 닥친 뜻하지 않은 뜻하지 않은 운명으로 헤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곳에서만 빛난다>처럼, 모두 어떤 이유로 인해 '자신'을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실'과 '치유'의 3부작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정의다 싶다. 

무심한 남자와 이상한 여자의 만남
그렇듯 <오버 더 펜스>도 가족과도 인연을 끊은 채 도시에서 돌아와 직업 훈련 학교를 다니는 한 남자 시라이와(오다기리 죠 분)로 시작된다. 직업 훈련 학교에 다니지만 그가 딱히 정말 직업 훈련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렇다고 딱히 대놓고 훈련 과정을 방기하지도 않는다. 마치 공기처럼 학교를 흘러다니다, 학교가 마치고 동료들의 한 잔도 마다하고 도시락과 맥주를 사서, 느릿하게 자전거로 짐도 풀지 않은 그의 집에 돌아와 검은 바다를 보며 밤을 보낸다. 

그렇게 그 어느 것에도 무심하던 그가 웃었다. 도시락을 사들고 나오다 마주친 남녀, 여자는 남자에게 '애정'을 운운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타조의 모습을 흉내낸다. 대로에서 마치 전위 예술같은 동작으로 실감나는 새의 소리까지 구현하며. 동행한 남자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질겁하지만, 시라이와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그녀에게 미소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미소를 그녀가 보았다. 

무심한 남자 시라이와와 이상한 여자 사토시(아오이 유우 분)의 인연은 뜻밖의 곳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뜻밖의 인연은 더 뜻밖의 하룻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관심과 끌림으로 시작된 하룻밤은 뜻밖의 봉변과 당혹스러움으로 마무리된다. 세상에 가장 무심한 남자 시라이와가 만난 여자는 남들이 쉬운 여자란 평판과 달리 여리디 여린 유리같은 여자였던 것이다. 

'다중'이 아니라 홀로 고립되어 스스로와 싸우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경영자의 고독이 오늘날의 생산 양식을 특징짓는다. (중략) 신자유주의 성과 사회에서는 실패하는 사람은 사회나 시스템의 의문을 제기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풀꽃같은 사람들
시라이와는 돜쿄에서 대기업까지 다니던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아내와 아이도 있었다. 단지 그에게 부족한 것이라면 '시간'뿐. 일에 너무 바빴던 그는 미처 가정을 돌볼 새가 없었다. 그 부족한 '시간'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 뜻밖의 '사건'을 안겼고, 그 '사건'은 그로 하여금 도시에서 일군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마치 세상과 창을 하나 사이에 둔 것처럼 그렇게 직업 훈련 학교를 핑계로 '시간'을 흘러 떠다니고 있었다. 

차마 가족조차도 조심스러워 하는 그에게 다짜고짜 욕을 하며 니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한 술 더 뜬다. 그가 잘못했는데 자기가 더 펄펄 날뛰질 않나, 달려간 그의 앞에서 동물원을 한바탕 뒤집으며 소란을 피우질않나. 가장 정신없이, 가장 자신을 놓고 살아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삶의 과민증' 환자였다. 마치 햇빛만 비춰도 벌개지는 햇빛 알레르기처럼 그녀는 삶의 사소한 자극조차도 버거워하며 자신을 '가학'한다. 영화는 시라이와와 달리 사토시가 남자 이름을 가지고 낮에는 유원지 알바에 밤엔 술집 여종원업원으로 일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쉽게 자신을 못견뎌하는 그녀의 행동만으로도 지나온 그녀의 삶이 순탄치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에 벽을 친 남자와 세상을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여자가 '남자'와 '여자'로 만나게 되며,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을 두르고 있던 '펜스'를 넘을 용기를 얻고 결국 자신을 두른 그것을 넘는다. 남자는 상처받았다며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삶을 직시하게 되고, 여자는 그런 남자로부터 '최악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는다. '사랑'이다. 

<오버 더 펜스>에는 시라이와만이 아니라, 그가 거리를 두었던 직업 훈련 학교 동료들의 삶도 등장한다. 그저 교관의 잔소리 대상이었던 그들, 하지만 시라이와와 사토시의 사랑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가듯, 그저 멀뚱멀뚱 서로를 '관전'하던 이들이 '소프트볼' 시합 준비를 하며 '돈독'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를 형성해 가며, 아니 그 관계에서 튕겨져나간 인물마저, 무채색의 배경이었던 그들 역시 '시라이와'와 '사토시'처럼 저마다의 '색채'가 있는 '존중받아야 할' 삶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영화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떠올리게 한다. 시라이와도 사토시도,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핑계로 직업 훈련 학교에 모인 모두는 어쩌면 '성공'과 '경쟁'이 된 사회에서는 밀려났다 치부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이들을 결국 사랑스런 풀꽃으로 그려내며, 존재와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마치 나태주 시인의 또 다른 <풀꽃>처럼. 

풀꽃 2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by meditator 2017. 3. 26. 00:12

격세지감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51.6%로 대통령이 된 순간이래, 장미 대선이라는 조기 대선이 이루어지는 날이 돌아오기 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람들은 절망했고, 그 절망에 찬물이라도 끼얹는듯 정권은 사람들을 목조르고 세상은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져만 갔다. '희망'이란 말이 무색하던 시절, 하지만 그 완고하던 권력이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를 통해 누수가 되며, 광장의 촛불이 켜졌다. 모두들 숨죽이고 포기하고 살았던 것만 같던 시절, 그 촛불의 저력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을까? 되돌아보니, 사람들은 일찌기 '불가능'의 시대에 그 불가능을 돌파할 '희망'을 꿈꾸었던듯 하다. 2016년 <시그널>에서 <태양의 후예>, 다시 2017년으로 이어진 <낭만 닥터>, <피고인>, <김과장>까지 높은 시청률과 함께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 중 다수가 그 불가능를 피어올린 주인공들이었다. 이들 드라마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며 시청률과 화제성이란 쌍글이에 성공했던 것이다. 




시작은 <시그널>이었다. 
그 이전 영화 <살인의 추억>, 그리고 드라마 <갑동이>와 동일하게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시그널>, 하지만 드라마가 촛점을 맞춘 것은 바로 그 불가능했던 과거의 사건을 풀어내고자 하는 '과거'와 '현재'의 인간들이었다. 1989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 당시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과 그 시절 목격자이자 희생자였던 소년에서 이제 경찰대 출신의 프로파일러가 된 박해영(이제훈 분),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을 집요한 사건 추적이라는 목적의식으로 승화시킨 형사 차수현(김혜수 분)이 그 주인공들이다. 

결국 이재한의 '실종'으로 마무리되어버린 1989년과 달라지지 않은, 아니 그 시절 사건의 결탁자들이 그것을 빌미로 권력을 공고화시킨 현재는 우리 현대사의 '권력'의 태생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폭로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시대를 상징한 채 씁쓸한 패배로 남았던 화성 연쇄 살인을 과거와 현재 인물들의 '의지'를 통해 '환타지'적으로 해결해 낸다. 그리고 그 사건의 해결은 몇 십년을 통해 공고해진 현대사의 적폐들을 무너뜨리는 과정이었다. 



그 '의지'를 이어받은 건 <태양의 후예>다. 
<태양의 후예>는 20일 방통위 방송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한국 피디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2016년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로맨스 드라마의 대가인 김은숙 작가와 김원석 작가가 함께 한 이 드라마는 '군인'이 나오는 드라마는 인기가 없다는 전례를 불식시키며 38.8%의 압도적 시청률로 작품성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전대통령조차 애청자였다는 아이러니한 인기를 구가했던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끈 가장 큰 요인은 흔히 '정권'의 수호자였던 '군인'이 '여자와 어린이'라는 대사로 상징되듯, '국민 일반'을 위한 보편적 정의의 수호자로 거듭났다는 점에 있다.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지정학적 공간을 탈피하여 이국의 전장터를 배경으로 삼은 '환타지적' 배경과, 총을 맞고도 다음 장면에서 바로 '불사'의 존재로 적과 대치하는 주인공의 '슈퍼맨'을 능가하는 능력치는 '로맨틱 드라마'의 가장 유효한 장치로 작동했지만, 그런 '로맨스'의 줄기를 타고 곳곳에서 두 주인공을 통해 드러나는 정의와 휴머니즘을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은 정의로운 시대를 갈구하는 대중들의 염원을 드러내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전장의 정의는 이어서 <낭만 닥터> 속 의료 현실의 정의로 새롭게 구현된다. 
도라지 위스키가 나오는 옛날 다방에나 어울릴법한 한물 간 '낭만'이라는 단어가 경쟁과 성공시대에  '인간다움'이란 의미로 재해석되며 27.6%의 화려한 성적으로 2017년을 열었다. 

한때 거대 병원에서 가장 잘 나가던 의사, 외과계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신의 손 부용주(한석규 분),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빌어 대리수술을 자행했던, 하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그에에 덮어씌운 병원 측의 모함을 뒤로 한 채 사라졌다. 그런 그가 나타난 곳은 강원도 인근의 돌담 병원. 카지노로 주변의 교차하는 고속도로로 응급 환자가 범람하는 곳, 하지만 '영리'라는 조건에서 보면 한없이 방치된 이곳에, 그는 '김사부'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답게 저 마다의 상처를 지닌 젊은 의사들과 함께 '인간적인 의술'을 구현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한다. 

환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필요한 의술 대신, 돈이 되는 기계와 그럴 듯한 외관으로 환자를 유혹하는 시대, 낭만적인(?) 낡은 병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그곳에서 김사부와 때론 그를 의심하면서도, 그럼에도 그가 보이는 기적같은 의술을 따라 어느 틈에 자신도 '낭만적'이 되어가는 젊은 의사들은 의술이 곧 돈이고 사업인 시대에 '인간적인 의술', 그를 위한 돌담 프로젝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오로지 그들의 '선의'로. 



다음엔 법이다. <피고인> 
3월 21일 역시나 28.3%로 박수를 받으며 떠난 <피고인>의 시작은 뜻밖에도 기억조차 잃은 채 살인범이 되어 감옥에 갇힌 검사 박정우(지성 분)였다. 재벌 앞에 당당했던 검사, 재벌가의 아들 차민호(엄기준 분)이 저지른 패륜적 범죄를 눈감아주지 않은 채 집요하게 그의 뒤를 쫓던 박정우에게 돌아온 것은 아내와 딸의 살인범이라는 무자비한 함정, 심지어 그는 그 충격으로 기억까지 잃었다. 

하지만 감옥도 박정우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국판 <프리즌 브레이크>라 빗대어진 드라마는 이제 종영과 함께 미드를 지우며, 박정우를 기억에 남긴다. 검사로서의 출중했던 그의 능력은 기억을 잃은 그 상황 속에서도 차민호가 끊임없이 그를 향해 펼쳐대는 암울한 상황을 뚫고 재심 포기와 사형수라는 족쇄를 뚫고 탈옥과 검사로의 복귀라는 희대의 역전극을 펼친다. 드라마는 늘 박정우라는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고, 그를 '고난'에 빠뜨렸지만,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의에 대한 의지로 그 모든 미션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며 결국 재벌가의 망나니 연쇄 살인범 차민호를 법정에 세운다. <피고인>의 미덕은 재벌과 손잡은 검찰, 그리고 그 하수인이 된 교도 행정의 부도덕한 권력의 고리 아래에서,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오가면서도 결국 '법'의 심판이란 기본적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원칙'의 문제를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권의 심판 과정과 맞물리며 의의가 배가된다. 



<김과장>의 사이다도 빠질 수 없다. 
아직 2회가 남은 <김과장>은 앞선 드라마들에 비하면 18회 17.0%로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취이다. 하지만 매회 김과장을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에 부어준 속시원한 사이다 한 잔으로 차자면 그 어떤 인기 드라마 못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착해서 당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삥땅'이 능력이 된 김성룡(남궁민 분), 그런 그가 우연히 빙판에서 구해준 인연으로 자꾸만 '착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전임자 부인을 도와주고, 더러워서 나가려다 택배 회사 정상화에 앞장서고, 구조 조정에 앞서며, '비리'의 귀재, 그가 '정의로운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그만이 아니다. 그가 몸담게 된 경리부 늘 회사의 궃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사무실에서 음식 냄새 피운다고 구박덩이였던 바람부는대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편한 삶의 방식이라 여겼던 '복지부동'이 삶의 모토였던 사람들이 김과장과 함께 '복마전' 재벌 TQ의 대항마가 되어간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가진 자,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와 질서 아래에서 나 하나 어찌 목숨을 보전하고, 내 가족을 먹여살리면 된다 생각했던 '보통 사람들'이 각자의 '도생'을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하니, 불가능하리라 보였던 '불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드라마 <김과장>은 가장 통쾌하게 그려낸다. 마치 하나 둘씩 피워내기 시작한 촛불이 광장을 덮고, 절대 권력을 이제 법 앞에 세우기에 이르른 것처럼. 

이렇게 <시그널>에서부터, <태양의 후예>, <낭만 닥터>, <피고인>, <김과장>까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시청자들이 열렬히 환호했던 드라마들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시청자라 이름지워진 이 시대의 대중들이 갈구했던 것, 기원했던 것들이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들이 형사이건, 군인이건, 의사이건, 검사이건, 일개 회사원이건, 시청자들은 그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불의에 '복지부동'하는 대신, 싸워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영원할 것같은 재벌과 정치 권력과, 검찰 등 이 시대의 권력들의 '적폐'를 무너뜨려주기를 원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화려한 시청률은 이 시대의 '건강한 시민의식'의 또 다른 발현이요, 갈구였던 것이다. 

by meditator 2017. 3. 24. 17:44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작 영화 <토니 에드만>을 보고 난 후 문득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이 떠올려졌다. 소설 속 챕터를 드골에서부터 시라크까지 주인공이 살아온 시대의 대통령 이름으로 대신했던 책, 그래서 주인공 폴 빌릭은 드골 시대로부터 시라크 시대까지 나고 자라고 가족을 이루며 나이들어 갔지만, 그의 삶이 그 대통령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시대적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야기. 

마치 영화 속 토니 에드만은 독일 버전의 나이든 폴 빌릭 같았다. 오랫동안 외도를 했던 아내가 헬리콥터 사고로 죽고 그의 딸은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그런 상황에 대해 '속수무책'인 아버지 폴 빌릭, 물론 <토니 에드만> 속 딸은 자폐증도, 정신병원도 아니지만, 아버지인 토니 에드만이 보기엔 그에 버금가게 심각해 보이고, 그런 딸의 모습에 폴 빌릭만큼 '망연자실'해 한다. 하지만 그런 무능력해져 버린 노쇄한 가장의 모습을 넘어 <프랑스적인 삶>을 떠올리게 하는 건 바로 영화 속 아버지와 딸이라는 부녀의 갈등이 결국 아버지의 세대와 딸의 세대라는 시대적 충돌을 영화가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개인의 삶이라는 것조차도 결국은 '시대'라는 배경 속에서만 그 형상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암묵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피동적으로 규정되어진다면 '인간'이겠는가? <토니 에드만>의 미덕은 그런 '피동성'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어설픈 토니 에드만의 부정(父情)에서 비롯된, '그럼에도'에 있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폴 블릭과 달리, <토니 에드만>의 아버지는 대책없이 적극적으로 딸의 인생에 뛰어들고, 그것이 '페이소스'가 담뿍 담긴 이 시대의 불랙코미디가 되었다. 그리고 토니 에드만의  '그럼에도'는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 함몰되어가는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이기도 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 놓고서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기보다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보일 듯 말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적인 삶>, 장 폴 뒤부아 


살짝 이상한 아버지 토니와, 너무나도 멀쩡해서 문제인 딸 이네스 
영화가 시작되고 아버지 빈프리드 의 집에 찾아온 택배 기사, 하지만 그 택배 기사를 맞은 아버지의 행동은 어딘가 영 '정상적'이지 않다. 다짜고짜 틀니를 끼고 가발에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한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닌 척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퇴임하는 교장 선생님을 위한 아버지의 지도 아래 마련된 학생들의 공연을 보면 그런 의심은 한결 짙어진다. 

굳이 이상한 가발이나 틀니를 끼지 않아도 종종 가슴에 찬 심장 박동기가 울리는 소리, 다듬어지지 않은 추레한 외모,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적'으로 '유용함'이 사라진 듯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가 이혼한 아내의 집에서 오랜만에 딸과 조우한다. 

그런데 아프신 할머니를 보러 갈 시간조차 없다는 딸은 모처럼 만난 가족들과 눈도 마주칠 시간이 없이 전화기에 매달려 있다. 그런 딸을 지그시 바라보는 아버지,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아버지가 그 '지그시'의 선을 넘어 서면서 부터이다. 

딸은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조차 시간이 없다며 비서를 대신해 응대할 정도로 사무적이다. 그러던 딸이 아버지가 보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에는 반응을 한다. 마치 사람이 죽어나가도 무심히 거리를 지나는 현대인들이 몸개그에 관심을 보이듯. 더구나 그 아버지의 해프닝은 이제 막 체결을 앞두고 거기에 온 신경을 쏟는 딸의 빈틈없는 일상을 자꾸 헤집고 들어오며 불편하게 한다. 심지어 한바탕 퍼부은 딸과 헤어진 그가 예의 틀니와 가발을 뒤집어 쓰고 토니 에드만이라며 그녀의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한다. 

영화 처음부터 보여준 아버지의 '코미디'는 사실 하나도 웃기지 않는다. 오히려 보고 있노라면 그의 코믹한 설정은 어쩐지 불편하다. 심지어 그가 줏어섬기는 거짓말들은 어처구니없다. 그런데 그 기묘한 설정과 어처구니없는 거짓말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틈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딸과도, 딸이 계약하고자 했던 대표와도, 딸의 주변 사람들과도. 영화 속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이젠 뒤켠으로 밀쳐진 세대이고, 그 중에서도 외양으로 보면 가장 뒤쳐져있어 보이지만, 그런 자신의 처지를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꼰대'스러움 대신에, 마치 파티에 온 피에로처럼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만들며 세상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한다. 그 모습이 우리나라의 일부 어르신들이 보이는 '어처구니'없음과 다르게 또 다른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아버지가 애써 거짓말까지 해대며 만들어 내는 '실소의 공간'을 빽빽히 채워가는 건 오늘날 현대인의 전형이라고도 할 딸의 삶이다. 현대적 거간꾼이라고도 하는 루마니아와 독일 기업간의 체결을 위해 일하는 컨설턴트인 이네스는 계약의 성공을 위해서 루마니아 기업의 집단 해고 정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과 계약하면 자신들이 나서서 '해고'를 해주니 좋다는 식이다. 가족간의 관계도, 동료나 부하 직원들과의 문제도, 그리고 그녀가 일하는 루마니아 라는 나라의 처지도 그 모든 것은 그녀의 '계약 성공'이라는 블랙홀 안에 무기력하게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헤집어 놓은 틈은 이런 '성공'만을 향해 다친 발톱을 치료하는 대신 기꺼이 그 고통조차 이겨내며 하이힐을 신는 딸의 삶이다. 아버지의 해프닝은 영화 중반까지는 내내 불편한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그 아버지의 해프닝은 철갑을 두른 듯한 딸의 일상에 조금씩 틈을 만들어 간다. 아버지를 보낸 딸은 그녀에게도 '눈물'이 아직 존재함을 스스로 시인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아버지와 함께 간 낯선 루마니아 가정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The greatest of all'을 열창하고 만다. 이제는 잊혀진 어린 시절 그 언젠가 아버지의 반주에 맞춰 불렀던 그때처럼. 그리고, 자신을 옭죄였던 그 꽉조인 옷과 신발을 훌훌 벗어던진 채 동료들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모두 영웅을 찾고 있죠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 필요한거예요
전 저를 채워줄 사람을 찾지 못했죠
세상이란 외로운 곳이에요
그래서 전 저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웠어요
전 맹세했죠
누군가의 그림자 속을 걷진 않겠다고
(중략)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예요

성공적인 삶, 그리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질문
이네스가 절규하듯 부른 ''The greatest of all'은 이네스 세대의 절규다. 아버지 세대가 일구어 놓았다는 세상이 그녀들에게 물려준 건, '성공,과 경쟁, 자신들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던 그녀가 북받침을 참지 못했듯이, 자신의 삶을 살아왔다던 난, 과연 내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 라는 질문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퇴물같은 아버지가 던진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가 딸에게로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오랫동안 키워오던 개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늙어서 움직이기조차 힘든 개, 그 개를 보고 어머니는 이제 그만 안락사를 시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어머니도 개처럼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아버지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처치 곤란 아버지와 함께 한 딸과의 여정에서 비로소 그 진의가 드러난다. 정리 해고를 위해 방문한 루마니아의 공장, '경영 합리화'를 고민하기 위해 방문한 그곳에서 아버지는 살아숨쉬는 인간으로서의 루마니아 노동자와 그들의 삶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하듯, 아버지는 딸에게서도 그런 걸 되찾아주고자 역부족인 노력을 시도한 것이다. 



토니 에드만이 된 아버지는 마치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정의를 되묻는 듯하다. 일찌기 요한 하위징하는 '시계'의 발명과 함께 중세의 시간 속에서 자유롭게 놀이하던 인간은 '인간적 삶'을 빼앗기고 '시간'이 지배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정리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제 '가속도'가 붙어, 인간에게 그나마 남겨져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미덕' 조차도 '합리'와 '산업'이라는 미명 하에 빼앗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영화는 질문한다. 털북숭이 루마니아 괴물이 된 아버지와 딸의 포옹이 뭉클했다면 당신은 이미 그 답을 얻었다.  


영화를 보고나니 문득 저런 아버지를 가진다는 것이 부러웠다. 이제는 세상이 퇴물이라 불러도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가치관에 대한 믿음이 당당한, 아,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자신이 살아온 세상에 당당한 어르신들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반문하게 된다. 그 분들은 진정 당당해서 저러는 것일까? 오히려 자신들이 살아온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 아닐까?라고. 자신의 세대를 허투로 살아오지 않은 아버지 세대의 당당함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토니 에드만을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7. 3. 21. 16:00

sbs의 금요 예능 <미운 우리 새끼>, 출연자 중 허지웅의 깔끔한 생활이 종종 화제가 되곤 한다. 집안에 음식 냄새가 배는 것이 싫어 냉동밥을 데워먹는다던가, 손님이 오는 것을 '저어'한다던가, 먼지를 못견뎌 각종 청소도구를 갖추고 청소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던가는 그의 기이한 생활 습관은 '결벽증'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 '깔끔함'이 소소한 예능의 화제성을 넘어 한 개인이 살아가는데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면? 3월 19일 <sbs스페셜>은 결벽증을 넘어선 '강박 장애'를 다룬다. 


자신을 옭아매는 정신적 사슬, 강박 장애 
개그맨 오정태 씨의 아내는 '세균'에 대한 강박이 있다. 카메라가 훑은 화장실은 여느 가정집 화장실에 비해 한결 깨끗한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닦고 또 닦는다. 심지어 봉화직염에 걸린 남편이 응급실을 다녀온 사이 세균이 두려워 이불 빨래를 해버려 두고두고 서운함을 살 정도다. 한번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가스불, 전기 등 점검에 점검을 하느라 외출하기가 겁날 정도다. 
가장인 김정민씨와 나이 차이가 14살 나는 그의 아내는 제 아무리 한다해도 남편의 깔끔한 취향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남편 앞에 아내는 매번 청소 점검을 받으러 온 학생의 처지다. 


외출이라도 한번 하고 들어오면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들, 몸을 씻기 위해 비누 하나를 다써버리던 남자의 유일한 위로는 하루 종일 먹다시피하는 약이다. 하지만 다큐가 처음 그를 만난 2005년 이후 그의 증상은 좋아지기는 커녕, 이제 그는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고립시켰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강박 장애를 밝힌 자밀 킴은 '대칭'에 대한 그의 강박으로 인해 늘 고통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한 청년은 매일 베개 커버를 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취침용과 쉬는 용으로 침대를 분리한다. 

'강박 장애'로 나타난 증상들은 대체적으로 '타인, 혹은 자신이 아닌 외부의 어떤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나 공포로 나타난다. 또한 청소나 대칭 등 소위 말하는 어떤 자신이 꼿히는 지점에 대한 '극단'의 집착으로 증상이 드러난다. 그런데 왜 지금 '강박'이 문제가 될까? 

급증하는 강박 장애 
강박 장애는 '선진국병'이라 일컬어진다. 그래서일까? 국민건강 보험 공단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4년까지 강박 장애로 인해 진료를 받은 국민의 수가 2만 490명에서 2만 3174명으로 13.1%나 증가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조사에서 급격하게 증가된 환자의 비율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환자 중 젊은 층의 비율이다. 인구 10만명 당 20대 환자가 83.6%였고, 다음으로 30대, 40대, 70대의 순으로 환자 비율이 높았다. 

자밀 킴의 경우 어린 시절 미국 이민 이후 잦은 이사를 하다 어느 순간 강박 장애가 나타났다고 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의 경우 10대 시절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게 되며 가족이 있는 친구들만큼 번듯해보여야 한다는 조바심이,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명주씨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랑이 그녀를 한 시간이 넘게 머리를 감고, 락스로 숟가락을 닦는 강박으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탄핵 과정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으로 드러났던 전직 대통령의 '변기 집착'은 어떨까? 잠시 들른 인천 시장 사무실에서 심지어 각국 국가원수들과의 정상 회담 과정에서도 전직 대통령의 '변기'나 개인 공간에 대한 '강박적 메뉴얼'이 국민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이것도 '강박 장애'의 일종일까?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오히려 전직 대통령의 경우는 부모님을 외부 공간에서 불의의 사고로 잃은 데서 드러나는 사회적 장애로 판단한다. 사회적 장애와 다른 강박 장애의 제 증상들은 다음과 같다. 

1.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를 제거하려고 하는 오염-청결 강박행동
2.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의심하고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확인 강박행동
3.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행동을 반복하는 반복 강박행동
4. 물건을 반드시 제자리에 놓아야 안정이 되는 정렬 강박행동
5.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수집 강박행동
6. 특정한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는 강박행동

그리고 이런 강박 장애가 문제가 되는 것은 환자 개인에게는 '죽음' 만큼의 고통을 안기며, 그 '고통'으로 인해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격리하는 수준에 이르는 심각한 질병이라는 점이다. 실제 다큐 속 강박 장애 환자 들 중 몇몇은 자신의 병으로 인해 오랜 시간 칩거하거나, 아직도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로 설사 스스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밀 킴의 이모처럼 주변에서 그것을 용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초기에 발견하여 치료가 필요한 병임에도 상당수의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가벼운 '결벽증' 정도로 치부하며 병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전문가들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독일 율리우스-막시밀리안 대학 연구소는 이런 강박 장애의 발병이 뇌 세포의 특정 단백질 부족과 관련이 있으며 항우울제 등의 약이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다큐는 이렇게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강박 장애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다큐의 관점은 '두 얼굴'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강박 장애의 심각함을 알림과 동시에 그 '장애'의 긍정성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줌으로써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발병한 강박 장애로 인해 고통받던 미국의 소녀는 자신의 질병을 인정하고 행동 치료를 통해 이겨내고 그와 관련된 분야의 박사 학위를 받기에 이른다. 그녀는 강박 장애에 있어 약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그를 위해 자신의 강박을 이겨내고자 하는 도전적 행동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깔끔한 성격으로 인해 조직 생활이 힘들었던 곽영문씨는 그의 강박이 직업적 성공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카시트를 다 뜯어내며 한 점의 먼지도 허락치 않는 그의 세차는 거의 예술적 경지다. 예술적 경지에 이른 사람은 또 있다. 남해의 절경을 예술적 리조트로 재탄생시킨 정재봉 사장의 강박은 리조트의 관리에까지 빈틈을 허용치 않는다. 

이렇듯 다큐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강박 장애의 실상을 알림과 동시에 그 '편견'의 시선을 피하기에 노력한다. 하지만, 최근 젊은 층에서 급증하고 있는 '선진국병'의 원인을 좀 더 사회적이고 구조적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장애'가 성공이 될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강박'과 결벽증의 경계에서 다큐조차 헤매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을  다큐가 미처 말하지 못한 강박 장애 자가진단 테스트를 더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다음의 증상 중 자신이 다섯 가지가 넘는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7. 3. 20. 15:52

공교롭게도  mbc 수목 드라마 <미씽 나인>의 후속 작품은 kbs2의 <김과장>과 동일한 배경인 '오피스물' <자체 발광 오피스> 이다. 하지만 동일한 소재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미 김과장이 17.1%(닐슨 코리아 전국)의 압도적인 1위를 선점하는 가운데, 후속 작품인 <자체 발광 오피스>는 3.9%로 고전하는 중이다. 수목 드라마 따논 1위와 꼴찌, 하지만 이 서로 다른 결과를 보이는 두 드라마 들여다 보면 오피스물이라는 공통적 소재 외에도 비슷한 점이 많다. 


수목 1위로 매회 속시원한 '사이다 한 잔'을 쭈욱 들이키게 <김과장>은 극의 구성이 2013년 <직장의 신>과 흡사하다. 비정규직 미스 김(김혜수 분)의 기상천외한 행보로 전형적인 '갑을' 관계였던 직장 내의 관계가 속시원하게 역전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직장 내의 가장 존재감이 없는 '비정규직'이 가장 '능력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상황은 당시 '갑을' 관계와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대던 우리 사회의 문제 의식을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풀어가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관련한 비선 실세의 권력 농단 못지 않게 승계를 위해 동조한 대기업의 부도덕한 행태가 공분을 사는 이 시점, 복마전인 대기업에 들어간 똘끼 충만한 '김과장'의 '사이다'식 해프닝이 역시나 시청자들의 답답한 가슴을 확 뚫어주며 호응을 얻고 있다. 



변방에서 온 흑기사들 
그런데 일찍이 <직장의 신>에서 부터 <자체 발광 오피스>까지 주인공들을 보면 오피스 물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왜 무슨 이유로 그런지 알 수 없는 부장보다 이사보다 더 능력자인 미스 김, 하지만 그녀의 직책은 단기 계약의 비정규직이다. 이렇게 오피스물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들은 '오피스'의 변방으로부터 등장하다. 

<김과장>의 주인공 김성룡은 능력자 미스 김 못지않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근성과 깡, 비상한 두뇌, 돈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을 지녔지만 지방에서 조폭들 자금 세탁이나 해주던 처지, 그러던 그가 자신의 꿈이었던 덴마크 이민을 위해 뜻하지 않게 도달하게 된 곳이 바로 '비리'의 온상 TQ그룹이다. 그가 들어간 곳은 '비리' 혐의로 죽은 전임 과장의 후임, 회사에서 가장 대우받지 못한 채 혹사당하며 위에서 시키는 일만 식사하러 갈 사이도 없이 죽도록 하는 회계과다. 

이처럼 <직장의 신>이나, <김과장> 모두, 주인공들은 '능력자'이지만 그 능력에 대한 제대로된 과정으로 '오피스'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런가 하면 <자체 발광 오피스>는 이 시대의 '을'인 청춘 세 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집안이 어려워 학교 다니면서 스펙 대신 알바를 하며 겨우 학점만을 따야했던 여주인공 은호원(고아성 분)은 무려 100번의 입사 원서를 내지만 번번히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패를 한다. '스펙'이 만땅인 장강호(이호원 분)는 너무도 모범 답안인 그의 스펙과 더더욱 모범 답안인 그의 면접 답안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극적 태도'로 말미암아 역시나 번번히 미역국을 먹는 처지다. 서른 두 살이 먹도록 변변한 스펙하나 없이 시험 준비만 하다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만 도기택(이동휘 분)이라고 나을 것이 없다. 



블랙코미디 현실의 환타지로서의 오피스물
이렇게 현재 대한민국 88만원 세대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지닌 세 명의 인물이 바로 <자체 발광 오피스>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인연으로 맺어지며 급기야 서현(김동욱 분)의 배려로 하우라인 3개월 계약직에 위촉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간 곳은 하우라인 영업부와 판촉부, 거기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비리'와 갑을 관계, 남녀간의 불균형적 처지 등이 고스란히 집합된 전형적인 직장 부서이다. 

이렇게 이들 '오피스' 물의 배경이 되는 직장은 곧 현실, 바로 우리 사회로 등치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주인공은 정통이 아닌 존재로 등장하며, 그곳에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회사'의 일에 얽매이며,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의 주도적 존재가 되어간다. '덴마크'로 이민 가기 위한 한 탕 장소로 들어간 회사에서 그의 전직과는 전혀 다른 '의로운' 인물이 되어가는 김과장이나, 사실은 그들에게 돌아갈 수 없는 기회를 잡은 3개월 계약직 <자체 발광 오피스>의 은호원, 장강호, 이동휘 세 사람 역시 '시한부'라는 설정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태도의 삶을 살아간다. 2회 회사의 고질적인 진상 고객을 자신의 처지로 설득해 내는 은호원을 통해, 이들의 존재가 <김과장> 처럼 역설적으로 '힘'이 될 것임을 드라마는 예고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자신을 옭죄인 가족, 사회적 관계의 틀에서 옴싹달싹 못하지만, '이민'이라던가, '죽음'이라는 삶의 이탈적 요소를 지닌 주인공들은 그래서 용감하고, 그 용감함이 그들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끌며 평범한 주변 인물을 독려함은 물론, 역시나 일상의 삶에 지쳐가는 평범한 시청자들에게 '삶의 사이다' 한 잔을 들이키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코믹'한 요소들은 사실 '사이다'같은 시국과 맞물려 박수를 받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노오력'을 해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 기회, 고착된 갑을 관계 속에서 나 하나의 도태 아니고서는 쉬이 변화를 바래보기 힘든 '블랙 코미디'인 현실의 '환타지'이다. 

2013년 <직장의 신>으로 '갑을 관계'라는 것이 전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로 부터 몇 년이 지난 현재 그 '갑을 관계'는 잠깐의 환기 이후 더 고착되었다.  과연 <김과장>이 매회 권하는 이 '사이다'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88만원 '노오력' 세대의 고군분투는? 아직은 사이다의 강렬한 시원함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그 의미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과제일 듯하다. 

by meditator 2017. 3. 17. 16:24

14일 영화 <해빙>이 누적 관객수 총 116만4966명으로 손익 분기점을 돌파했다. 꾸준히 박스 오피스 3위를 유지해왔던 소기의 성과다.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반성'와 '회의'의 기조를 가진 '스릴러' 장르 영화가 모처럼 '손익 분기점'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2016 <비밀은 없다>, <미씽, 사라진 여자>, 그리고 2017의 <싱글 라이더>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반전'을 곁들인 '스릴러', '미스터리'를 통해 접근해 봤지만 결국 모두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실패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실험적인 장르적 접근이 주제를 괴리시켰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타자에 대한 백안시가 아예 접근조차 봉쇄하기도 했다. 그리고 '반전'이라는 떡밥이 영화를 집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핑계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의 부진을 낳은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어쩌다 어른>에서 사회심리학자 하태균씨가 지적한 이른바 '비현실적 낙관주의'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가능성이나 현실과 상관없이 '낙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픈 심리가 현실을 냉정히 재단하고 비판하며 되돌아보는 '실존'적 기조의 영화들에 대한 '저어'하는 기조를 형성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그래서 현실은 불가능해도 '통쾌하게' '한 방' 치고 보는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흥행'의 순위를 달린다. 덕분에 평론가들이 보기엔 작품적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는다. 마치 시청률 30%의 고지를 넘보는 (닐슨 코리아 수도권 기준 화요일 27.1%) <피고인>처럼 현실적으로 따지면 엉성한 구성이지만 탈옥까지 감행하며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의 속시원한 활약을 대체적으로 선호하는 것이다. 

<해빙>과 <싱글 라이더>의 같고도 다른 길 
그런 '지배적인 한국인의 사회심리'에도 불구하고 <해빙>이 꾸준히 박스 오피스 3위를 지키며 손익 분기점을 넘었다는 지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렇다면 <해빙>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해빙>과 얼마전 개봉한 <싱글 라이더>는 공교롭게도 '가장의 몰락'을 다룬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반전'을 통해 '가장'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모두 '반성'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반성'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두 영화의 길은 달라진다. 



<싱글 라이더>가 한국에서 출세와 성공에 독주하던 가장 강재훈(이병훈 분)이 이제 그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홀로 호주에 남은 아내와 아이의 삶 속으로 유영해 들어가며 영화는 철저히 삶을 반추하는 자세를 지닌다. 그리고 그 '반추'하는 시선은 '반전'을 통해 경악과 충격 대신,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진짜 이 영화에서 아쉬운 것은 '반전'의 용도이다. '반전'이 남긴 문제 의식이 해프닝으로 덮여버렸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해빙>의 반전은 이 영화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다. 영화 <해빙>은 홀로 아직 개발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신도시로 대중 교통 수단인 버스를 이용해서 떠나는 가장 승훈(조진웅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한때는 강남에서 병원을 개업했지만 이제는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도시의 의원에서 하루 종일 내시경 검사나 해야 하는 처지의 '고용'인이 된 의사. 하지만 영화는 미처 그의 추레한 처지에 이입하기도 전에 그가 세든 빌라 1층의 정육점 식당 주인 성근(김대명 분)과 그의 아버지 정노인(신구 분)의 이상한 행동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승훈과 성근, 두 가장의 섬뜩한 대결 
내시경 수술 중에 자신의 살인 행적을 고백한 정노인, 그 노인의 말에 홀려 승훈은 정육점 냉동고에 있을지도 모를 시신의 '머리'에 집착한다. 그리고 영화는 중반까지 의심하는 승훈과 그런 승훈을 더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성근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이런 주된 갈등으로 인해 승훈의 이혼이나, 아들의 양육, 그리고 그를 찾아온 아내의 실종 등 주인공의 실종적 문제들은이 갈등의 회오리 안에 휩쓸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실종되고 의심이 가는 성근 부자 대신 승훈이 경찰의 의심을 받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승훈'의 관점이 되어 영화를 따라간다. 덕분에 그의 몰락과 이후에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을 완화시킨다. 심지어 마지막 추가 영상같은 마무리까지. 영화는 승훈이 의심을 받는 지점에 이르러 승훈의 의심을 밀고가는 대신, 암전의 효과를 환기시킨다. 문득 그의 방문 앞에서 멈춰지면 어두어지는 화면을 통해 관객은 문득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온 것의 진실을 되짚게 된다.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하지만 관객은 충격보다는 보여지는 진실이 '프레임'의 문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폭발하는 무너진 중산층 가장을 열연하는 조진웅의 연기, 그리고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설명'하는 영화로 인해 허겁지겁 다시 새로운 서사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는 묘하다. <해빙>을 통해 드러나는 건, 성공이란 환상이 풀려난 중산층 가장의 처절한 몰락의 생태계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몰락'의 생태계에 던져진 가장의 추레한 모습을, 그와 대비되는 또 다른 외국인 아내를 맞이하는 등 그와는 다른 계급의, 또 다른 가장의 모습을 통해 장식한다. 어쩌면 싱글라이더의 강재훈과 승훈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보인 몰락의 행로가 주는 심리적 충격파는 중산층 가장 전체의 대변자인듯한 강재훈과 그로 부터 파기된 한 비정상적 인물처럼 보이는 승훈을 통해 다른 색채를 가지고 전달된다. 또한 그의 처절한 몰락조차 마지막 성근 부자의 에필로그 등을 통해 한 줄기 '구원' 하지만 그 '구원'마저 봉쇄된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페이소스'의 여지를 남긴다. 

사실 영화 초반 이미 보여지듯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조건에 놓인 것은 몰락한 승훈이다. 하지만 관객은 그가 여전히 번듯한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의 의심에 동조한다. 영화 초반 간호사는 늘 긴 팔만 입는 그의 행색을 지적하지만, 그런 힌트조차도 성근의 초라한 행색에 덮여버린다. 그러면서 영화는 조진웅과 김대명의, 가장과 가장의 섬뜩한 심리 대결로 나아간다. 승훈의 처지는 난감하지만, 아버지 대에서 부터 아내를 갈아치우는 수상한 부자의 '핏빛' 직업은 더더욱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이런 관객들의 '속물적' 편견에 힘입어, 영화는 순조롭게 감독이 펼쳐놓은 그물 사이로 나아간다. 

승훈의 의심조차도 유의미해지는 결말, 결국 이는 몰락한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사회의 주도적 계층이라 자부하는 화이트 칼라 계층과 그런 그들을 비웃는듯한 '전근대적인 폭력적 가부장제'의 대결이지만, 결국 이런 저런 가장들의 행태가 귀결되는 궁극적 지점은 언제든 편의적으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우리 사회 '남성주의'이다.  <싱글 라이더>와는 또 다른 방식의 '실존'에 대한 반성이자, 반문이다. 
by meditator 2017. 3. 15. 15:49

사건 번호 2016 헌 나 1은 작년 12월 9일 국회의 탄핵 결의 이후 헌법 재판소에 접수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 사건 번호이다. 3월 12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탄핵안이 접수된 이래 92일 동안 '국민들 마음의 심판' 과정을 들여다 본다. 특히, 다큐가 보다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박사모'라 지칭되는 탄핵안이 가결되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4%, 그리고 탄핵안이 기각되기를 바랬던 15%의 마음과 생각의 행로를 짚어보고자 한다. 왜 하필 이들이었을까? 이들의 생각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다큐가 증명하듯이, 광장을 밝힌 촛불의 의미이다. 즉, 진부하다 생각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희망'이며, '과제'가 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성장통이다. 




박정희 왕가의 신민들
다큐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박 전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그 중에서도 대구를 찾을 때마다 빠짐없이 찾았던, 심지어 지난 11월 30일 서문 시장에 불이 나자, 탄핵으로 인해 칩거 와중에도 찾았던(물론 그 찾았던 과정 자체가 지나치게 겉치레식이라 시장 상인들의 반발을 샀지만) 서문 시장이다. 서문 시장에서 1975년부터 국숫집을 여신 74살의 김숙연 할머니, 대선 과정에서 할머니의 응원 과정이 동영상으로 제작될 만큼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었던 할머니는 박근혜를 사랑했다. 박근혜와 포옹했던 감촉조차 잊지 않았다. 그랬던 할머니였기에 지금의 이 사태가 할머니를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또 다른 74살의 라종임 할머니는 '박사모' 집회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밥상머리에서 자식들과 설전에서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송된 각종 음모론과 '삐라' 수준의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대통령 박근혜 지키기에 열을 올린다.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투표'를 강력히 독려하는 건 물론이다. 



밤을 세워 자신에게 전달된 박근혜 탄핵과 관련된 음모론을 유포하느라 밤을 세우는 김철영씨(73)와 임영택(62)씨 역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근혜를 사수해야 한다 주장한다. 이 모든 사태에는 '북'의 지령을 받은 촛불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을 굳게 믿으며, 법과 언론을 의심하고 자신이 믿는바를 선동하는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 

김숙연, 라종임, 김철영, 임영택 씨 등 이들에게 박근혜는 그저 국민들이 뽑은 한 사람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12살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청와대에 들어간 영애이자, 아버지를 잃고 자신의 집을 잃은 불쌍한 딸이었고, 결국 자신의 집을 되찾은 공주였다. 그렇게 41년을 박근혜를 봐왔다. 그리고 그 41년은 박정희로 인해 도로가 만들어 지고, 수출이 잘 되었던 '부국'의 세월이었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장기 집권'한 독재자가 아니라, '왕'이었고, 박근혜는 그 왕의 딸로 당연히 그 자리를 물려받아야 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충성'하는 것은 '백성'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다. 

그런데 그 '백성으로서의 도리'를 땅바닥에 후쳐친 채 '탄핵'이라니, 청천벽력이다. 아랫 사람이 잘못했다고 왕을 내치는 법을 없다에서 부터,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동정론까지 구구절절 토를 달지만, 결국 그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박정희 왕가'의 붕괴'에 대한 '분노'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알맹이는 '너네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과 가난을 겪은 세대의 '자기 동일시'이자, '자아 분열'이다. 

그들에게 박근혜의 몰락은 그들이 살아온 박정희 왕조의 붕괴요, 자신들이 살아왔던 시대와 가치관의 부정이요, 이제는 넘겨주어야 할 '생'의 주도권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결국 '탄핵이 '기각'되기를 바란다. 후손들이 자신들이 해왔던 바의 삶의 방식과 체제를 '연민'을 가지고  '눈 감아주기를' 바란다. 

촛불= 민주주의 혁명
하지만 후손들은 '연민' 대신 촛불을 들었다. 라종임씨네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아들과 딸은 입을 모아 말한다. 대통령의 딸이니까 왕가의 자손을 운운하는 어머니의 말씀 따윈 귓등으로 넘겨 버리고. 선출직으로서의 대통령, 그 대통령이 자신의 할 일을 다하지 못했을 때,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서의 '탄핵'을 주장한다. 어머니가 박사모 집회에 나선 날, 마흔 두 살의 딸은 촛불을 들었다. 

하나의 국가, 하지만 그 국가를 바라본 국민들의 생각은 '박사모'와 '촛불'로 나뉘듯이 갈라진다.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여전히 왕조 국가 속의 신민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국가'의 붕괴로 '아노미'를 겪는 사람들은 '박정희 왕조'의 마지막 신민들이다. 그들의 귀에는 박 전대통령으로 인해 벌어진 국정의 참사는 모조리 '음모'요, 북의 '지령'일 뿐이다.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난 혼자 살겠다고 내뺀 초대 대통령, 그 대통령은 살아돌아온 서울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버리고 간 서울에서 어쩔 수 없이 북에 협조할 수 밖에 없던 시민들을 빨갱이 앞잡이로 몰았다. 그리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씨 왕가의 시조는 자신이 했던 좌익 활동에 제 발이 저려 자신의 친구조차 빨갱이로 몰아 고문을 했다. 그렇게 정권의 이해로 시작된 빨갱이 몰이는 몇 십년의 세월을 거쳐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신민'으로 만들고, 조작된 신념의 신봉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씨와 박씨가 만든 '반공주의' 왕조는 2017년에도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주의'에 입각하여,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15%에게 그림자가 되어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는다. 

3월 12일 방영된 <SBS스페셜- 사건 번호 2016헌 나 1>은 그저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우리 시대 세대간 갈등 보고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라는 헌법 1조로 시작되는 법치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여전히 '성장통'을 겪는 미완성의 '민주주의'라는 것을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그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탄핵'이 아니라, 여전히 왕조 시대의 신민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세대에 대한 법치주의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는 것을 되짚는다. '박사모'의 이야기를 전하면 전할 수록, 촛불의 정당성이 밝혀지는, 그래서 탄핵의 당위성이 드러나는 사건 번호 2016 헌 나1이다. 

by meditator 2017. 3. 13. 14:16

3월 10일 헌법 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의 20분 여 낭독이 끝나고, 드디어 현직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었다. 지난 10월 29일 부터 133일 19회에 걸쳐 광장을 밝혀온 '촛불'이 비로소 결실을 얻는 순간이었다. 비록 '세월호' 등과 관련된 대통령의 책임론에 대해서는 일부 재판관들의 의견이라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러나 임기 내내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방기하고 적극적으로 도운 존재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8명의 재판관은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그리고 3월 11일 20번 째 광장의 촛불 집회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그러면 이제 광장에 모인 촛불의 의미는 다 이루어진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끝이 아니라, 궁국적 목표가 아니라, 어쩌면 이제 진짜 '시작'일 수 있다고 '축제 분위기'를 환기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물론 조만간 치뤄질 대선에 입후보하는 후보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적폐 청산'을 이야기한다. '구속 수사'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막연한 방향성과 목적 의식성 속에서 3월 11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는 어쩌면 우리가 이런 때 들뜨기 보다 진짜 제대로 정신을 차려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어느 복부인의 이상한 행적 
다큐의 시작은 어떤 한 '복부인'의 이상한 행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복부인'은 여느 복부인이 아니었다. 평창의 땅을 휩쓸고 다니면서 땅을 그러모았던, 땅을 보러다니기에 부족하자, 다음에 나타날 때 대번에 외제 suv를 바꿔타고 나타나는 그녀, 마치 그 동네 사람들이 어울릴 수 없는 종족이라도 되는 듯이, 물 하나도 외제 생수에, 밥 한 번 식당에서 사먹지 않고, 그 비싼 땅값을 덥석 오만원짜리 뭉치로 내놓은 그 복부인은 바로 최순실이다. 

이미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왜 다시 최순실인가? 제 아무리 박근혜를 탄핵하고, 최순실을 법정에 보내도, 그들에게 '은닉'한 재산이 있다면? 바로 이 문제 의식이 다큐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최순실은 은닉 재산이 있을까?

최순실은 자신의 재산에 대해 '단 한 푼도 없다'라며 단언한다. 과연? 최순실은 커피 심부름을 시켜도 '카드 대신 오만원 권 지폐를 쥐어 주었다 한다. 왜? 전문가들은 '출저를 밝힐 수 없는 자금'을 쓸 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금을 운용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 입을 모은다. 심지어 최순실의 집에서 일하셨던 분은 정유라가 펄펄 뛴 사라진 두루마리 휴지 속에 오만원 권 지폐 다발이 돌돌 말아 숨겨져 있었다고 증언할 정도로. 최순실에게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현금이 있을 거라는 걸 보여준다. 

최순실은 이 많은 현금을 타인의 명의로 평창 등의 땅을 사모았다. 그리고 그 '타인'의 변절에 대비하여, 산 땅의 금액보다 많은 채권 증서로 명의를 빌려준 이를 얽어매는 방식으로 자신의 현금을 관리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페이퍼 컴퍼니의 마이너스 손, 최순실? 
독일을 드나들었던 최순실, 거기서 만난 '데이비드 윤' 등의 독일 교포를 이용하여 '페이커 컴퍼니'를 만들기 시작한다. 다큐는 '페이퍼 컴퍼니'는 만들 수 있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하지만 최순실이 만든 페이커 컴퍼니들은 만든지 몇 년만에 '폐업'을 거듭했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페이커 컴퍼니, 독일과 합자한 회사를 만들면, 그걸 핑계로 '외화 유출'이 쉬워진다. 하지만 몇 년 뒤 그 합자 회사가 망했다고 하면, 그 동안 그 회사에 투자한 돈은 '망했다는 것'을 전제로 '공중'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최순실은 2002년부터 독일 내에서 수많은 사업체를 만들고 망하게 하며 자신의 돈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유출했다고 다큐는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기상천외한 방식을 최순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최순실의 돈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유치원을 해서 벌었다는 최순실의 말, 하지만 다큐가 추적한 결과에 따르면 유치원은 했지만 그 정도의 돈을 벌지는 못했다는 것. 오히려 그보다는 아버지 최태민이 남긴 유산으로부터 지금의 최순실의 돈이 시작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전한다. 또한 최순실의 자금 세탁 방식 또한 아버지 최태민이 남긴 노란 수첩에 적힌 방식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더하며. 

하지만 이런 '세탁'된 자금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전문가 200명이 달라붙어 2년이 걸려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도 한다. 특검이 손을 대지도 못한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관계자는 말한다. 이 돈이 국가에 환수되지 않는다면, 지금이야 '법정'에 섰다하더라도, 언젠가 이들이 그 '돈'을 무기로 우리 사회에 또 어떤 검은 커넥션의 주인으로 등장할 지도 모른다고. 

3월 11일 <그것이 알고싶다>는 11.9%(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런 시청자들의 관심은 곧, 광장의 촛불이 지속적인 진짜 '적폐 청산'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그것이 알고싶다>는 빵빠레가 아닌, 탄핵 정국에서 방송이 해야할 제 몫을 가장 제대로 보여준 방송이다. 

by meditator 2017. 3. 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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