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인격 장애,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즉 사이코패스라는 정신 의학적 용어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 일상 용어가 되었다. 허긴 아이들이 물에 잠기고 있는 그 순간 머리 롤을 말고 있는 대통령과 그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전횡을 부렸던 모녀의 행태를 보면, '사이코패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tv 드라마들은 극의 가장 결정적 역할을 '사이코패스'인 악인에게 맡겨 드라마를 굴러 가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피고인>의 차민호(엄기준 분)으로 한 주를 열고, 종영한 <미씽 나인>의 최태호(최태준 분)가 그 바톤을 받고, 그 뒤를 새로이 시작한 <힘쎈 여자> 도봉순의 미지의 마스크 쓴 연쇄 납치 살인마와 <보이스>의 모태구(김재욱 분)가 어깨를 겨룬다. <미씽 나인>이 종영해서 섭섭하다고? 걱정마시라. 아마도 분명 그를 능가할 또 다른 사이코패스가 등장할 것이고. 여전히 '사이코패스'와 함께 하는 일주일을 완성해 줄 것이다. 




측은과 미친 놈을 오가는 차민호 
적을 잡기 위해 스스로 감옥 행을 택하는 살인마라니! 검사 박정우(지성 분)와 차민호의 숨막히는 대결은 <피고인>의 주요한 동력이다. 형을 죽이고 스스로 형 차선호인 척 하는 차민호에게 박정우는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그런 박정우를 차민호는 그의 아내와 딸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아 '사형수'로 만들어 버리며 승기를 쥔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재심을 포기한 박정우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겠다면 형의 아내가 벌인 교통 사고의 죄를 핑계로 감옥 행을 택한 차민호의 기상천외한 선택은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며 <피고인> 시청률 상승에 견인차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박정우의 아내를 죽이고 딸을 뒤쫓는 파렴치한 차민호지만, 늘 형의 우월한 존재에 밀려 사랑하는 이까지 빼앗기고 결핍된 애정에 목말라하는 차민호는 뜻밖에도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딸을 다시 빼앗긴 박정우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의 친자식을 이용하고 그 수에 무방비하게 당하는 그는, 묘하게 '인간적'인 사이코패스이다. 



태호가 또!!
중국 순회 공연을 떠난 연예 기획사의 항공기 추락 사고로 시작된 <미씽 나인>은 일찌기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이래 또 하나의 신선한 괴작의 탄생을 알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무인도에 갇힌 생존자들 사이에서 발군의 생존력를 보인 '최태호'로 인해 또 한 편의 <왔다 최태호>가 되고 말았다. 

부상당한 기장에 이어 동료 열, 윤소희, 서지아, 김기자, 선원 등 그의 살인 행각은 거침이 없다. 하지만 이런 무인도 행 이전에 그는 서준오의 잘못으로 알려진 재현의 죽음도 사실은 그의 책임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살인으로 덮으려는 최태호, 그의 능력치는 '살인 병기'에 그치지 않고, 절벽에서 떨어져도, 돌에 맞아도, 칼을 맞아도, 심지어 홀로 무인도에 남겨져 있어도 'I'll be back'한다. <미씽 나인> 속 그는 막장 드라마 <왔단 장보리>처럼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동력으로 작동한다. 심지어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마지막 회 그의 참회까지. 드라마는 <불사의 최태호전>이 되고만다. 

본투비 사이코패스 
하지만 박정우의 머리 위에서 노는 듯한 차민호도, 죽인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죽이고 보는 최태호도 어쩐지 <보이스>의 모태구 앞에서는 '쫄'리는 듯 하다. 아마도 그건 박정우나, 최태호에게는 일말의 '인간적' 지점에 보이는 반면, 모태구는 일찌기 어린 시절 자신을 보고 짖었다는 이유만으로 키우던 개를 마구 때려죽이던 어린 시절 이래, '살인' 충동을 위해 '인력'까지 조달하고, 조력자를 두었던 '본투비 살인마'라는 설정 때문이다. 

피해자의 피에 목욕을 하고, 피해자를 죽이는 과정을 즐기며, 자신의 목적에 따라 시신을 훼손하고, 피해자의 가족들을 정신적으로 '유린'하는 그의 행태는 앞서 두 사람의 사이코패스와 궤를 달리 한다. 아마도 이들 사이코패스의 '레벌'을 서로 견준다면, <보이스>의 모태구가 가장 앞지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직 예단은 금물이다. 새로이 등장한 <힘쎈 여자 도봉순>의 마스크 납치범도 만만치 않다. '파놉티콘' 형태의 사설 감옥을 만들어 놓고, 마치 푸른 수염처럼 '신부'들을 납치해 감금하는 그의 행태는 또 다른 새로운 사이코패스의 탄생을 알린다. 





이렇게 월화수목금토일, 우리의 드라마 속에서 우리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는 사이코패스들. 하지만 이젠 그들이 정치 세상 속의 사이코패스들처럼 이젠 낯설지 않게 당연한 '악의 주구'로 다가온다. 덕분에 드라마들은 '쉽게' 그들의 악행에 기대어(미씽 나인) 드라마를 꾸려가고, 새로운 드라마들은 보다 더 잔인하게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이코패스를 등장시키기 위해 고민하다 도를 넘기도 한다.(보이스) 또한 이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한결같이 '권력'의 비호를 받는다는 점이다. 비록 형을 죽였지만 형인 척 차명 그룹의 그늘 아래 숨은 차민호, 아들이 잔인한 살인마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있는 한 아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없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태구의 아버지이자 성운 통운 회장은 바로 우리 사회 '사이코패스'들의 온상이 '돈'과 '권력'임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된 그 사람과 그의 소울메이트의 온상이 청와대였던 것처럼. 

물론 조금 더 색다른 사이코패스, 조금 더 잔인한 사이코패스를 들고 나오며 사이코패스의 진기명기를 벌이는 드라마들, <미씽 나인>은 스스로 자충수를 두고 말았지만, 결국 더하냐, 덜하냐의 차이일 뿐, '악인'에 기대어 드라마를 이끌어 나간다는 지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우병우나 김기춘 등의 모습에서 제기되고 있듯 '특별한' 사이코패스 보다 어쩌면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배태하는데 문제가 된다는 반성이 잇따르고 있는 시점에서, 드라마들도 조금 더 '평범한', 하지만 '구조적인' 악의 문제에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란 바램을 가져본다. 
by meditator 2017. 3. 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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