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이 지방인 친구와 함께 그 친구 고향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평을 묻는 내게, 친구는 다짜고짜 말한다. 사투리가 어설퍼서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자연스런 사투리가 영화의 장점으로 손꼽히던 영화였지만, 정작 그 지역에서 살았던 친구에겐 '흉내내기' 이상으로 들리지 않았었나 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경우가 많다. 내가 살아본 것, 내가 경험한 것, 심지어 내가 직업인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타인들이 그것을 아는 척(?)하는 것에 못내 탐탁치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제재로 삼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얼마전,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가지 정신 질환, 그 중에서도 주인공 장재열(조인성 분)이 앓고 있는 스키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정신가 의사의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 의사의 글이 맞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특정한 정신적 질환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임상의 예와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정신과 질환을 미화시키고 있는 면이 있다. 의사의 글에서 처럼, 실제 우리 사회 스키조를 앓는 환자들은 끊임없이 재발되는 증상으로 인해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받으며, 그런 환자들을 돌보다, 애인이, 가족이, 결국은 가족마저도 나가 떯어지는게 현실인 병일 수도 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주인공은 모두 정신과적 질환을 겪고 있다. 여주인공인 지해수(공효진 분)는 어린 시절 엄마가 외간 남자와 키스하는 것을 본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과 그 어떤 스킨쉽을 하려고 들면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증가되면서 식은 땀이 나는 강박 증세에 시달리는 강박 장애 환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병을 앓으면서도, 오히려 그런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다. 남자 주인공 장재열은 어떤가. 엄마가 우발적으로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 후 해리성 기억 상실에 빠져들자, 그 죄를 형에게 뒤집어 씌운 후, 스키조를 겪게 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소녀팬들을 거느린 인기남이다. 
모델같이 길쭉길쭉한 자태를 뽐내며, 그 자태를 능가하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진 두 주인공은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으로 서로의 정신적 장애를 이겨낸다. 나가 떯어지기는 커녕, 스킨쉽을 영원히 못할 거 같던 지해수는 장재열과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장재열은, '사랑하는 우리 애인' 덕분에, 3년 동안 그의 분신이었던 환시 한강우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에 못이겨 1년을 떨어져 있었음에도 어제 본듯 감정은 변하지 않고, 순조롭게 결혼에 골인,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 두 주인공만이 아니다. 장재열의 형도, 엄마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그들의 상처에서 한발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정신적 장애를 겪는 선남선녀가, 서로의 사랑으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병을 너끈히 이겨내고, '하하호호' 행복한 삶을 누린다. 정신과 의사의 비감한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보기 힘든 '환타지'다. 



	사진=SBS 방송캡쳐
(사진; 조선닷컴)

하지만, 이 아름다운 두 배우의 무조건적 사랑의 환타지에 의한 정신과 질환의 극복은, 비록 현실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은 허구일지라도, 많은 소득을 낳는다. 현지인이 듣기에 어설펐던 영화가 그 영화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남기듯이,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 전혀 전문적이지 않았던 내용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과 의사처럼 실질적으로 환자를 고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혹은 심지어 정신과 질환에 대한 오해나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대신,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사로잡혔던 '편견'을 한 겹 덜어내고, 정신과 질환을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정신과 질환이라면, 우리 시대 대표적 개그맨 이경규의 고백으로, '공황장애'가  우리 안으로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스키조는, 그 전문적 용어보다는, '정신분열'이라는 천형의 이름으로 낙인 찍힌 채, 생명이 오가는 암보다도 두려운 우리 사회의 '타자'로 자리잡아왔다. 
일찌기 '빨갱이'를 시작으로, 각종 사회적 역사를 트라우마를 다종다양하게 겪은 우리 사회만큼, 나와 '타자'를 겪하게 구분하는 사회도 없을 것이다. '전염병'처럼 내가 아닌 타자에 대해, 몰인정하다 싶게 외면하는 사회가 바로 한구 사회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빨갱이'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레드 컴플렉스가 사라지는가 싶었는데도, 여전히, 아직도 좌파 콤플렉스가 만능인 양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듯이, 우리 안의 '타자'는 낙인만 찍히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하물며, 정신적으로 분열이 된다는 질환임에랴. 사회는 나날이 원좌화된 개인을 옥죄어, 사회 구성원 중 열 명에 한 명 꼴로, 정신적 질환을 겪는, 말 그대로 '정신 분열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공황 장애' 정도가 조금 이해가 될 뿐, 기타 정신과 질환은 음지에 숨어, 그 누군가와 그 가족의 고통만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렇게 음지의 고통을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사랑을 매개로 세상 속으로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그 내용이 조금 과장되거나, 환타지스럽더라도 큰 성과가 아닐까. 평생 만날 일도 없을 뿐더러, 야곰야곰 그들로 인해 내 삶이 좀 먹어가는 재벌과 만나, 사랑과 화해를 이루는 환타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아닌가 말이다. 내가 좀 아는데, 하지 마지고, 너그럽게 <괜찮아 사랑이야>가 이룬 성취에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란다. 

그러고 보면, 노희경 작가는 언제나 그랬다. 우리 밖에 있는, 우리가 외면했던, 타자였던 것들을, 그녀의 드라마들을 통해 하나씩 끌어 들여 오는게 그녀의 장기였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치매를, <슬픈 유혹>에서는 동성간의 사랑이 그녀의 화두였다. 꼭 어떤 제재만이 아니다. 가족의 이름으로 대신 살아오던 주부도, 깡패도, 창녀도, 가난이 지긋지긋한 청년도 그녀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드러낸다. 때로는 유부남, 유부녀의 사랑도, 몇 십년의 차이를 둔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도, 그녀의 드라마에선 있을 수 있는 일로 재조명된다. 세상에, 우리가 아니라고, 나는 아니라고 외면할 그런 일이 노희경의 드라마에선 없다. 

되돌아 보면 <괜찮아 사랑이야>는 참 희한한 드라마다. 가족내 갈등은 있지만, 그것이 출생의 비밀도 아니요, 돈때문에 이전투구를 벌일 일도 아니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은 있지만, 점찍고 복수할 일도 아니요, 더 많은 것을 쟁취하거나, 얻어내기 위한 이합집산도 없다. 아버지의 투병으로 인한 가난이 원망스러워 엄마에게 외도를 종요했던 딸의 아집이 트라우마요, 폭행에 시달리던 엄마의 범죄를 외면했던 아들의 자기 학대와 죄책감이 주인공의 주된 고뇌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극진하지만, 그 사연들이 그간 우리 드라마를 구성해 왔던 뻔한 사연이 아니라, 우리 사회 누군가가 가질 법한 저마다의 짐이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은 사연들이다. 노희경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사연은 도발적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역시, 예외없이 가장 인간적인 주인공들이 이제 2014년에 와서, 그 상처로 인해 정신병까지 앓게 된, 인간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적인 증후들에 대해, 드라마처럼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스런 인내로, 관심을 가져보고 이겨내자고 말한다. 내가 아니라고 밀어내지 말고, 지켜봐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가고 말한다. 


by meditator 2014. 9. 12. 09:30

이솝 우화 중 멋부리다 된통 당한 까마귀 이야기가 있다. 

시커먼 자신의 털이 보기 흉하다고 생각했던 까마귀는 다른 아름다운 새들의 털을 하나씩 모아 자신을 치장하고 자신도 빛깔이 아름다운 새인양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몸에 꽂은 깃털이 자신의 털인 줄 알던 다른 새들이 그의 몸에서 자신의 깃털을 찾아내고, 결국 까마귀는 초라한 검은 깃털의 자신의 몰골로 돌아와 몹시 창피를 겪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진화동물학으로 가면 좀 달라진다. 새들의 경우, 무리 중 몸이 아프거나, 털 빛깔이 좋지 않은 동료가 있으면, 그로 인해 자신들이 적들에게 노출될까 하는 두려움에, 동료들이 앞장 서서 아픈 새를 쪼아, 심지어는 죽이기도 하는 잔인한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 사회를 빗대어 설명한 이솝 우화 속 까마귀가 인간의 허세를 상징하고 있는 건 당연하지만, 과연 실제 아픈 동료를 앞장서서 쪼아대는 새들의 습성은 인간과 다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착해빠져서'라던가, '착하기만 하면 손해본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그리고, 어느 틈에,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불이익을 당했을 때, 자연스레 반문하곤 한다. 내가 너무 착했나? 라고. 아니, 나만 너무 착했나? 라고. 하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들'은 '착하면 손해보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바로 그 '착한 사람들'의 상처를 <괜찮아 사랑이야>는 논한다. 

(사진; 스포츠 월드)

1회, 형 장재범(양익준 분)이 파티를 벌이던 수영장으로 찾아와 다짜고짜 장재열(조인성 분)을 찌를 때, 그걸 보고 울부짖던 소년 한강우(디오 분)의 정체가 12회에 이르러서야 분명해 졌다. 장재범이 줄곧 동생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던 그 사건의 실체가, 코난같은 정신과 의사 조동민의 조사로 밝혀졌다. 결국, 의붓 아버지를 죽인 건, 형도, 동생도 아니었고, 죽지 않고 정신을 차린 남편을 두려워했던 어머니였던 것이라는 걸. 그리고, 형의 등에 업혀가던 동생은, 어머니가 불을 지르던 장면을 목격했고, 해리성 기억상실로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형을 범인으로 지목하였으며, 하지만, 그렇게 형을 감옥으로 보냈다는 죄책감에서 결코 놓여날 수 없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열 여섯의 나이에 이미 '방어기제'라는 단어를 알 정도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조숙한 소년은, 하지만, 의붓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그리고 그 사건의 충격으로 진실을 망각한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그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썩어야 했던 형에게 한없이 미안함을 느끼는 마음 약한 동생이었다. 그런 그의 '착한' 마음은, 그의 냉철한 이성을 넘어, 그에게, 자신과 같은 한강우를 보살펴 주는 환상을 통해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즉, 그의 정신적 '방어기제'는 그에게 정신증을 선사한 것이다. 

그가 지해수를 사랑하면 할 수록, 즉, 그가 행복을 느끼면 느낄 수록, 한상우가 그에게 나타나는 빈도수가 늘어나는 것은, 그의 무의식이, 그가 행복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결코 침대에서 잘 수 없듯이, 무의식의 장재열은, 자신의 행복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의식의 그는 여전히 죄책감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열 여섯의 나이에 불가항력적인 가족 범죄를 목격한 소년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그런 소년의 안타까움은 훗날 어른이 된 소년에게 나타난 한강우를 보살피는 것으로, 자신의 안타까움을 역설적으로 표명한다. 대신 그는 어머니의 죄를 형게게 넘기고, 형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넘기는 것으로 그 '일'을 해결하려 하지만, 여전히 '착한' 그에게 그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투렛 증후군의 박수광(이광수 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일하는 까페를 찾아온 아버지, 그를 여전히 가치없는 존재로 여기는 아버지에게, 수광은 말한다. 어릴 적 자신이 투렛 증후군을 보였을 때, 아버지가 자신을 보듬어 주었더라면, 자신의 병이 이토록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투렛 증후군을 보이는 그를 소녀(이성경 분)가 안아주자, 조동민 말처럼 오래된 감기같은 그의 증상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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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뉴스)

결국 12회에 이른 <괜찮아 사랑이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만연하고 있는 각종 정신증의 증상이, 상당수가, 그들이 '착해서', 어찌하지 못해, 드러나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착해서 당하고, 착해서 아프다 말하지 못하던 그들이, 보이는, 최후의 자기 표현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착하면 안된다'라고 몇 십년 동안, 다짐하고, 윽박지르던 것들이, 오늘에 이르러 사회적 증후군처런, 정신병증의 범람으로 귀결되게 되었다는 것을, 12회에 이른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오래된 감기'같은 수광의 투렛 증후군이,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소녀의 입맞춤으로 완화되듯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장재열은 왜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하느냐는 지해수의 질문에 답한다. 자신의 어릴 적 상처를 알고, 그에 더해, 여전히 자신에게 짐과 같은 어머니와 형의 상황을 알고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지해수같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없어서 라고. 한강우의 잦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장재열은, 이해받고 싶고, 자신의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받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말한다. 상처입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자고. 착해서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착해도 이해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게 아니냐고, 나즉히 읊조린다. 


by meditator 2014. 8. 29. 06:22

남자와 입만 맞춰도 땀을 뻘뻘 흘리던 지해수가 드디어 장재열과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건 사랑의 시작일 뿐이다. 
연달아 '사랑해'를 남발하는 장재열에게 지해수는 사랑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아직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정'으로서의 사랑을 중시하는 여성의 입장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해수의 생각처럼, 그들의 사랑은 이제 비로소 터널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터널 입구부터 두 사람의 사랑은 덜컥 거린다. 

요즘 범람하고 있는 연애 드라마들은 <마녀사냥>처럼 사랑을 가르쳐 주기에 골몰한다. 남자가 보냈던 이 신호들, 여자가 보였던 그 눈물, 남자가 내뱉었던 그 말들, 여자가 매몰차게 했던 그 행동들의 이면에 숨겨진 '사랑의 코드'를 충실하게 해석해 준다.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사랑'의 또 다른 단어들이라고. 그런 연애 드라마들처럼,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사랑을 시작한 지해수와 장재열도 서로가 보이는 다른 신호로 인해 어렵사리 몸을 나눈 사랑을 한 이후에도 혼란스러워 한다. 하지만, 정신병리학을 다루게다 야심차게 선포한 <괜찮아 사랑이야>의 두 남녀는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인다. 

<연애 말고 결혼(tvn)>에서, 서로의 부모님으로 인해 혹독한 통과 의례를 겪은 주장미는 공기태에게, 그저 편하게 '연애'만 하자고 한다. 하지만, '쿨하게' 연애만 하자고 했던 이 커플, 정작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말수가 점점 줄어든다. 한여름과 함께 동업을 하는 주장미의 가게를 드나들며 공기태는 두 사람이 보이는 친숙한 관계에 불안해 하지만 그걸 드러낼 수 없었고, 공기태가 그의 오랜 친구이자, 같은 직종의 동료인 강세아와 자신의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걸 주장미는 함께 하고 싶지만 물과 기름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면 할수록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쿨한' 연애의 방식을 때려치고, 있는 그대로의 주장미와, 공기태로 돌아간다. 

바로 그런, 요즘 사람들이 지향하는, '쿨한' 연애 방식에 대해 <괜찮아 사랑이야>는 도발적으로, '위선'이라 치부한다. 지해수와 헤어친 채 돌아온 집에 오랫동안 지해수와 사귀었던 방송국 피디가 조동민을 찾아왔다는 핑계로 들이닥친다. 장재열은 불쾌하지만 딱 부러지게 이유를 대는 그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집으로 돌아온 지해수는 반갑게 장재열의 방을 찾아들지만, 장재열은 그런 그녀에게 글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냉담하다. 

괜찮아 사랑이야 9회, 괜찮아 사랑이야 10회 예고
(사진; tv데일리)

쿨한 연애의 방식이라면, 글을 쓰는 그의 사정, 한때 연애를 했지만 이젠 다른 사람의 손님으로 집을 찾아드는 전 애인에 대해 의연하게 넘겨야 한다.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게 무슨 풀 뜯어 먹는 소리냐고 반문한다. 좀 잘 대해주라며, 헤어졌다고 원수가 되지는 말라는 조동민에게 오히려 지해수는 포악하게 반문한다. 그래서, 당신은 전처에게 친구 운운하며 감정 밀땅을 해서, 전처가 감정 정리를 하지 못하게 하냐고. 오히려 자신이 보인 냉담한 태도가, 헤어지자고 말하는 자신에게 매달리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전애인에게 어쩌면 가장 '친절한' 태도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지해수는 당당하게 장재열에게 말한다. 자신의 전애인이 집에서 얼쩡거리는데, 그 쿨한 척 하는 태도는 무엇이냐고. 

<괜찮아 사랑이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현대인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며 노력하는 그런 표피적인 노력들이, 사실은 그들에게 더 상처를 만들고, 관계를 멀리하며, 서로의 이해를 멀리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해수가 자신이 가진 강박 장애로 인해, 누군가와 키스를 하는 것조차 두려워 하듯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것이 두려워, 혹은 이제는 끝인 관계를 놓치는 것이 두려워,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로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드라마는 반문한다. 

그래서, 조동민의 전처였던 이영진(진경 분)은 여전히 친구처럼 그녀를 대하는 조동민(성동일 분)에게 날벼락처럼 아직도 그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이 채 그녀의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렇게 친숙하던 조동민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그녀 곁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영진은 알게 된다. 사실은 그녀가 미련을 두고 있었던 건, 조동민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조동민에게 저질렀던 과오, 거짓이었음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지해수와 나누면서, 지해수가 가졌던 강박의 근원도 드러난다. 누군가오 스킨 쉽을 할때마다 그녀를 괴롭히던 외간 남자와 입을 맞추던 엄마의 모습, 하지만, 그런 그녀의 괴로움은, 장재열과 진심으로 함께 나누었던 그 시간을 통해, 의지할 곳 없던 엄마에 대한 이해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드라마가 진행되며, 전처와 재혼한 남편이 한데 어우러지고, 첫사랑과, 첫키스를 함께 나누던 사이가 한 집에서 어우러지던 '막장'의 인간 관계는 분명해지고, 교통 정리가 되어간다. 사랑이란 명목으로 하지만 그 안에 자기 연민이 더 강했던 관계들은, 그 자기 연민의 속내를 들여다 보게 되고, 그리하여, 관계는 때로 깊어지거나, 다른 형태로 전이된다. 이영진과 조동민은 이제 진짜 친구가 되어갈 듯하고, 박수광(이광수 분)은 오소녀(이성경 분)에 대한 자신의 미련을 접어두고자 한다. 지해수와 장재열은 가식 따위는 던져 버리고 인간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간다. 여자와 남자, 암컷과 수컷의 경계심, 혹은 적당한 밀땅, 어장 관리 따위는 던져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에 대한 관계에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선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여전히 다른 연애 드라마와 차별성을 유지하는 지점은, 바로, 연애가 그저 남녀의 연애사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혹은 그런 연애사에 조차 드리워진 각자의 인생사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회를 거듭할 수록, 남녀간의 사랑보다, 남녀를 초월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괜찮아, 사람이야, 사람이니까, 이해해. 라고. 

그런데 묘하게도, 노희경 작가가,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야심차게 인간사의 또 다른 이면인 정신병리학적 세계를 다루고 있고, 그 해결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음에도, 그 해결 방식은, 그녀가, 이전 드라마들을 통해 줄기차게 천착해 왔던, 가식따위는 던져버리는, 날 것 그대로의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궤적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화려한 시절>의 질펀한 욕이 난무하던 그 뒷골목의 정서와, <바보같은 사랑>의 서로의 상처를 보듬던 그 어리석은 사랑이, <괜찮아 사랑이야>의 가장 세련되게 치장한 그들의 사는 모습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일까. 정신병리학적 해석을 곁들건 아니건,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진정성'에서는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일까?


by meditator 2014. 8. 21. 19:14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 

그분께 주변 사람들은 그런 위로라도 전한다. 괜찮아, 기적이라는 것도 있잖아. 희망을 버리지 마. 하지만, 만약 그 병이, 신체가 아닌 정신병이라면? 

감옥에서 외박 허가를 받고 나와 조동민(성동일 분)과 함께 아미탈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장재범(양익준 분)은, 하지만 조동민이 잠시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조동민이 준비해놓은 아미탈이라고 생각되는 주사기를 바꿔치기 한 후, 동생 장재열을 향해 질주한다. 그리고, 장재열(조인성 분)의 어깨에 주사기를 꽂고, 진실을 말하라며 그를 마구 발로 찬다. 심지어, 자신이 주사를 꽂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재열이 전혀 입을 열지 않자, 주사 효과가 없는 것으로 착각해 장재열의 몸에 마구 주사바늘을 난사한다. 

하지만 그런 장재범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꽂은 주사약은 이미 그를 믿지 못해 조동민이 바꿔 놓은 수액에 불과했고, 오히려 동생과 함께 부등켜 안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깨뜨린 유리와 기물 파손으로 인해, 그의 형량만 늘어날 위기에 놓인다. 

(사진; BNT뉴스)

그런 장재범을 뒤늦게 쫓아 온 조동민은 장재열을 안쓰러워하며 너의 형은, '복수형 인간형'이라고 만약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폭력적으로라도 그에게 보복을 하는 유형의 인간이라며, 너의 목숨이 위험하다며, 경찰에 신고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지난 시절 혹독하게 형에게 맞았던, 그래서 장재범이 나타나 자신을 마구 구타했을 때 다시 그 기억에 휩싸여 괴로웠던 장재범은 예상 외의 답을 한다. 만약 형이 나를 죽이려 했다면 3년 전 내 어깨에 칼을 꽂는 대신, 내 목에 칼을 꽂았을 거라고 답한다. 즉, 자신의 형은 폭력적이지만, 자신을 죽일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장재열이 그 말을 한 후, 조동민의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 장재범은 어린 아이처럼, 모처럼 먹는 바깥 세계의 빵 맛에 즐거워 할 뿐이다. 

장재열은 그토록 집요하게 자신을 쫓아다니며 진실을 요구하는 형에게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한다. 심지어 두 사람이 부등켜 안고 쓰러지면 상가의 유리를 깨뜨리고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사람들에게 먼저 형제간의 싸움이라며 말한 사람도 장재열이다. 그리고 흥분한 형을 달랜다. 

지금까지, 장재범의 입장에서 보여진 과거의 사건은,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장재열에 대한 의심을 가질 만한 동기를 전해주었다. 장재범의 말처럼, 혹시나, 장재열이?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7회를 통해, 시청자들이 품었던 의혹은, 정반대의 시각을 보여준다. 장재범은 정당방위였지만, 그의 폭력 전과로 인해 억울하게 10년이 넘는 옥살이를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형의 정신병력에 대해, 장재열은, '형제'의 정으로, '사랑'으로 감수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의 사건 전개에 따라, 또 다른 해석 여지는 남아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 노희경은 말하고자 한다. 규정짓고, 선 긋고, 밀어내지 말고, 그들도 그저 우리의 일부처럼, 육체의 병을 '사랑'을 통해 기적을 얻듯이, 그들의 병도 '사랑'으로 품어주면 안되겠냐고? 그리고 본보기라도 되는 양, 우울증으로 인해 자신의 손을 잘랐던 남편에게, 지해수의 충고를 얻은 아내는, 그가 두 손으로 어린 딸을 힘껏 들어올리는 사진을 보여주며 읍소한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우리 아이를 하늘 높이 안아줄 수 있겠냐며, 힘들어도 함께 다시 해보자고. 아내의 간곡한 '사랑'은 의사 앞에서도 맘을 닿았던 남편의 마음을 흔든다. 

그런 작가의 강력한 주장은, 두 주인공의 사랑에서도 일관되게 관통된다. 장재열은 자신이 지해수(공효진 분)과 사귈 의사가 있다는 증거로, 도어락으로 늘 잠궈 두었던, 어린 시절 의붓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들었던 그때 이래로, 장재열에게는 유일한 피난처였던 화장실을 보여준다. 즉, 자신의 상처, 그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그에 대해, 지해수는, 자신의 아픈 상처인 가족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키쓰하는 장재열에게, 식은 땀을 흘리며 불안해 하는 자신을 솔직히 인정한다. 엉뚱하게도, 이런 두 사람의 정의는, 드라마<유나의 거리>의 한 대사로 명쾌하게 정의된다. '상처는 상처로 통한다' 마치 상처입은 짐승의 상처를 서로 핥아 주듯이, 그렇게 장재열과 지해수는 서로의 상처를 열어보이며,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반대다. 상처입은 새를 그가 속한 무리의 새들이 쪼아죽이듯이, 우리는, 내 주변의 누군가의 정신적인 상처를 못견뎌 한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각종 신종의 정신과학적 용어로 인간을 규정한다. 그리고, 장재범의 '복수형 인간형'처럼, 규정되어진 그 틀에 맞춰 그를 예단하고, 한 치의 이해를,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저마다, 가벼운 강박 장애에서부터, 불안증, 경미한 복수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지, 어쩌면 금 하나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어놓은 그 금밖으로 밀어놓은 사람들을, 작가는, 장재열의 사랑을 통해, 장재열과 지해수의 사랑을 통해, 생각해 보자고 자꾸 권한다. 

물론, <괜찮아 사랑이야>가 보이는 전개는, 작가가 애초에 의도했던 정신병리학적으로 풀어내는 사랑 이야기인 만큼, 때로는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니, 그들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풀어내는 서로의 상처들이, 누군가에겐 허세나, '체'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괜찮아 사랑이야>의 시청률은 대중적 지표로 보면, 전혀 흡족하지 않다. (전국 시청률 9.8% 닐슨 코리아)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는 아닐 지라도, 이 시대에 한번쯤은 서로가 나누어 볼 만한 꼭 필요한 이야기가 소리가 낮다고 폄하당해서는 안될 일이다. '괜찮아, 작은 사랑도 사랑이야' 이 드라마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한 마디다. 


by meditator 2014. 8. 14. 07:49

우리집엔 거의 스물에 가까운 노견이 한 마리가 계신다. 스물이라는 개로써는 어마어마한 나이로 인해, 이 개는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집을 찾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구동성으로 그런 개를 안타까워한다. 불쌍해서 어쩌냐는 것이다. 하지만, 늘 개와 함께 생활해오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개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은, 그저 자연스러운 노년의 일상이다. 개 자신도 그저 예전보다 조금 더 돌아다니는게 불편하지만 그것을 크게 개의치않아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은 우리들도, 특별히 불쌍해 하기 보다, 조금 더 배려해야 할 점이 많아져가는 것 뿐이다. 노견의 현재를 안쓰러워 하는 대신,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그 날을 미리 두려워하기 보다, 그저 그때까지 충분하지 않더라도 함께 사랑하며 살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생각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나이들어 가며 달라진 개와, 그런 개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의 관계가 겹쳐진다. 개와 사람의 관계? 아니,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조금 다른 모습, 그거 말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한 집에 살게된, 네 명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저마다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알고보니, 굴러온 돌이 아니라 집주인이었던 장재열(조인성 분)은 스스로 자신이 강박 장애라는 것을 인정한다. 도어락이 달린 욕실, 색깔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수건, 자신의 수건을 내주기 위해 몇 번의 주저함이 필요한 시간, 자신의 오피스텔과 전혀 다른 공간임에도 흡사한 인테리어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벌써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정작 문제가 되는 건, 그의 드러난 강박 장애가 아니라,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들이닥쳐 그를 찔렀던 그의 형의 억울함이요, 시도때도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나는 한강우(디오 분)라는 소년이라는 것을. 

어디 불편한 건 장재열 뿐이랴. 그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지해수(공효진 분)도 만만치 않다.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애인과 3년이 되어가도록, 아니 어쩌면 30년이 된다해도 잠자리를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앓는 그녀와 달리, 함께 사는 박수광(이광수 분)은 숨길 수 없는 툴렛 증후군의 환자이다. 긴장이 극한에 이르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말과,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전처와의 이혼 과정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전력이 있는 조동민(성동일 분) 역시 매사 그리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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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텐아시아)

이 어색하다 못해 언밸런스한 네 사람의 조합,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상 범위를 벗어난 상태를 작가 노희경은 그저 덤덤하게 그려낸다. '강박 장애야' 라고 장재열은 무심하게 말하며, 지해수의 심각한 성적 혐오를 감기 증상처럼 측근들은 회자한다. 박수광의 투렛 증후군은 그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증상일 뿐이다. 네 사람의 등장인물뿐이 아니다. 지해수가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게 되는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극단의 모습들을 보여도, 그것도 그저 '감기'같은 것들일 뿐이다. 우리가 감기가 걸리듯이, 그렇게 정신과를 찾은, 혹은 찾지 않고 저마다 겪고 있는 증상들이 '장애'나, '낙인'이 아니라, 그저 정신의 '감기'같은 것들이라고 작가는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성기를 그리는 소년의 문제로 고심하던 지해수가, 장재열의' 뭐 어때서? 그것도 그림인데' 라는 말을 통해 환자와의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고, 강박 장애 환자와의 상담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이켜 보듯이, 가장 극단적인 증상과, 일상의 불편함같은 각자의 증상들이 겹쳐지고, 그것들이 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감기'처럼 찾아온 불편한 증상일 뿐이라는 것을 작가는 강변한다. 

그런데 이제 4회를 지나고 있는 <괜찮아 사랑이야>는 이 감기같은 증상들의 원인이 드러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를 애지중지 안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그런 엄마의 증상을 살펴보기 위해, 지해수는 그녀의 남편의 병력을 조사해 보라고 시킨다. 그녀를 정신적 충격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바로 그녀의 가족인 남편이다. 성기를 자세히 그리는 증상을 가진 소년의 원인은 어린 시절 그가 자는 줄 알고 옆방에서 남자와 성행위를 나누었던 엄마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상처는, 역시나 어린 시절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던, 그래서 누군가와 나누는 사랑의 행위가 부정의 행위로 각인된 지해수의 상처로 이어진다. 자신의 동생이 의붓 아버지를 죽였음에도, 정작 그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형인 자신을 위해 그 사실을 토로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꿈을 밤마다 꾼다는 장재범(양익준 분),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두고 도망치지 못해 함께 맞다가, 결국은 어느 날 아버지를 쳐서, 아버지가 나가버려, 오히려 놀란 소년 한강우처럼, <괜찮아 사랑이야> 속 등장인물들의 상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비롯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의 가장 든든한 바람막이이자, 안전판이 되어야 할 가족이, 아니 개인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대상이 가족이기때문에,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그를 가장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괜찮아 사랑이야>가 노골적으로 지적해 내고 있지 않더라도, 이미 가족 지상주의의 많은 드라마들이 갈등의 주소재로 가족을 오래도록 울궈 먹어 왔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단지, 다른 드라마에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갈등의 동인이자, 흥밋거리이며, 동시에 구원의 대상이기도 했던 가족이, 이제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본격적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병리학적 원인으로 대두된 것이다. 우리가 그간 '괜찮아 가족이야'라며 덮어두었던 치부들이,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한 개인을 정신적 고통으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정의내려진다.

그런 면에서 네 명의 등장인물이 홈메이트로 함께 살아가는 설정은 상징적이다. 네 명이 불가피하게 한 집에서 살게 된 설정은, 그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드'의 쿨한 생활 방식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해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전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할 계기를 가진다는 대안적 삶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애인과 헤어지는 순간 그녀의 격정적 토로를 가만히 숨죽여 들어주고,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강박을 참아가며 색깔별로 수건을 건네주고, 그녀의 아픔을 너스레를 떨며 걱정해주는 홈메이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부러워 지는 마음이 들고, 그들이 왁자지껄 벌이는 소동극에 얼굴 근육이 풀려가는 게, 이미 4회 만에 함께 하는 그들로 인해 마음의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제목 <괜찮아 사랑이야>에 대한 정의도 재고될 가능성이 높다. 조인성과 공효진의 로맨틱 멜로로서 괜찮아 사랑이야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들에게 위로가 될, '괜찮아 사랑이야'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까.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 홈메이트들의 공동 생활과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 치유를 통해, <괜찮아 사랑이야>는 고통받는 개인들을 치유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4. 8. 1. 10:03

<괜찮아 사랑이야>는 2회 전국 기준 9.1%의 시청률을 보였다. (닐슨 코리아) 그 전날 방영된 1회 9.3%에 비해 0.2%가 내려간 결과이다. 더구나 동시간대, <조선 총잡이>와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보이며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홀로 하락한 것이라 수치와 상관없이 그 낙차가 커보인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경우, 10.6%로 10%의 장벽을 넘어서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보였지만, 동시간대 1위는 조선 총잡이에게 내주었다. 한편, 월화 드라마로 가면, 최지우가 주연인 <유혹>은 8,3%로 그 전회 9%에 비해 하락폭을 보이며, 첫 회부터 동시간대 <트라이앵글>에게 1위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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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투데이)


최지우가 누구인가? 2002년<겨울연가>로 '지우히메'라 불리며 한류 붐을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 하는 권상우 역시, 내용상 논란은 있었지만, 2013년 <야왕>을 통해 25% 내외의 시청률 고공 행진 기록을 세웠던 스타 중의 스타이다. 장나라나, 장혁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새로운 작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조차 그의 전작 <추노>를 패러디할 만큼, <추노>의 이대길을 연기한 장혁은 그 누구도 대체불가능한 스타이다. 장나라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20002년 <명랑 소녀 성공기>를 성공시킨 이래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오가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으며 스타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조인성임에랴, 2001년 <피아노>로 두각을 내기 시작하여, 2002년<별을 쏘다>,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로 정점을 찍었던 그가, 2013년 <괜찮아 사랑이야>의 감독 김규태와 작가 노희경과 함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화려하게 군 제대 이후 복귀를 성공시켰다. 그와 함께 하는 공효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가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주군의 태양(2013년)>, <최고의 사랑(2011년)> 등 늘 동시간대 1위는 물론 가장 트렌디한 화제작들이었다. 

이렇게 2000년대 초반 가장 화려한 정점을 찍던 스타들은 2014년,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분야를 들고 귀환했다. 하지만, <유혹> 첫 회 시청률 7.6%, <운명처럼 널 사랑해> 첫 회 6.6%, <괜찮아 사랑이야> 첫 회 9.3%로 스타의 귀환이라기엔 조촐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엄밀하게 최지우건, 조인성이건, 장나라, 혹은 장혁이건,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값으로 드라마를 보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들 스타의 조촐한 귀환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혁 장나라
(사진; tv데일리)

최지우의 경우, 전작 <수상한 가정부>를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봤지만, 일본 드라마를 복사한 듯한 <수상한 가정부>의 내용은 우리나라 실정에 어울리지 않았으며, 최지우의 연기 역시 원작<가정부 미타>의 마츠시마 나나코의 연기와 비교되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유혹>으로 돌아온 최지우는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빼어들었다. 그녀와 함께 등장한 권상우 역시 마찬가지다. <야왕>을 통해 시청률의 성취는 얻었지만, 여주인공 주대해 역의 수애에 밀려 제대로 활약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겼던 권상우는 <메디컬 탑팀>을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보지만 여의치 않았고 이제 <유혹>을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복귀하였다. <유혹>은 멜로물로 최지우, 권상우에 이정진, 박하선까지 네 남녀의 얽히는 상황은 영화 <은밀한 유혹> 등을 통해 뻔하며, 전개는 예측가능하지만 막상 드라마 속 최지우와 권상우는 그런 뻔한 드라마 속에서도, 드라마를 놓지 못하게 할 만큼, 각자 본연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조기 폐경을 맞이하였다지만 자태 자체만으로도 중년의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내뿜는 최지우가 아니라면,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순수해 보이는 눈빛을 잃지않은 권상우의 순수함이 없다면, 유혹이란 드라마는 성립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매력만으로는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 버거운지, 시청률은 주춤하고 있는 편이다.

<학교 2013>에서 선생님 역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장나라 역시 그녀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인 로맨틱 코미리로 복귀했다. 자존감이 떨어지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김미영이란 캐릭터를 표현하는 장나라의 안쓰러운 연기와 눈빛이 아니라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은 그저 민폐녀에 불과할 뿐일 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늘 눈빛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캐릭터만 연기하던 장혁은 모처럼 멜로물로의 귀환이었다. 덕분에, 방송 초반,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추노>의 적을 바라보는 눈빛과 헷깔렸고, 이건의 호탕한 웃음은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연기 잘 하는 배우답게,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이건 캐릭터를, 가장 진지한 자세로 선보이는 장혁의 연기는, 이상한데 중독성 있는 캐릭터로 이건을 변모시킨다. 재벌남과 소심한 평범녀의 그저 그런 뻔한 동거기일 수도 있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독특한 드라마로 변신시킨 건, 두 사람의 호연에 힘입은 바 크다. 덕분에, 가장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획득하며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 

(사진; osen)

그에 반해, 단 2회에 불과하지만, 하락세를 겪고 있는 조인성, 공효진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앞날을 점치기 어렵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조인성, 공효진이 각각 분하고 있는 장재열, 지해수란 캐릭터는 이전의 조인성과 공효진이 연기했던 캐릭터에 비해 역시나 큰 변주가 없는 캐릭터들이다. 아니, 데뷔 이래, 작품의 장르가 어떠하건, 조인성과 공효진은 늘 그다지 큰 변주가 없는 연기를 해왔고, 그것이 시대적 트렌드에 맞추어 두 사람에게 스타의 자리를 넘겨 주었었다. 하지만, 이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해오던 연기를 해오고 있지만, 작품이 변수가 되고 있다. 대놓고 섹스를 논하며, 정신적 장애를 '감기'쯤으로 치부하며 다루고, 흠모했던 선배와, 첫키스를 했던 후배와 한 집에 살며, 원하지 않던 추리 소설가까지 한 집에 들이는, 미드의 소동극과도 같은 <괜찮아 사랑이야>는 시청자들의 호불호에서, '호' 편에 서는 사람들의 입지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치유하겠다는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면면과 행보에서 부터 심상치않은 상황을 들이대며, 그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낯설게 여기고 있기에, 그 속에서 가장 익숙한 장기를 선보이는 조인성, 공효진조차 돋보이기 힘든 상황이다. 과연 이 드라마가 2014년에 어울리는 실험작으로 박수를 받을 것인지, 또 한번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 될지 미지수다. 

비록 동시간대 1위라는 찬란한 성취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 화려한 성취를 보인 이래, 십 여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스타로서의 이름값을 놓지 않는 이들 배우들은 여전히 드라마 속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저절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어야 할 것같은 아련한 최지우의 눈빛,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할 것같은 장나라의 눈빛, 연기를 할때만큼은 세상 그 어느 여배우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는 공효진에, 그의 눈빛은 그의 어눌한 대사조차도 잊게 만들만큼 순수한 권상우에, 어색했던 웃음마저도 설득시켜버린 장혁의 연기, 그리고 여전히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적인 조인성의 웃음까지 때론 뻔하고, 그저 그렇거나, 적응하기 힘듬 드라마 조차도, 그들의 연기로 인해 참아내게 만드는 그들은 여전히 스타들이다. 하지만 박한 시청률의 세상에 스타들도 예외없이 고전중이다. 


by meditator 2014. 7. 25. 10:16

또 한 편의 노희경표 드라마가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와의 노희경표 드라마와 달리, 언제나 그의 드라마라면 만나게 되던 배종옥, 김규철 등 익숙한 조연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전히, <괜찮아 사랑이야>를 노희경표 드라마라고 정의내리게 하는 걸까?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흰머리의 사내(양익준 분)가 교도소를 나가게 되었다고 동료 죄수들과 환호작약한다. 그리고 다시 장면이 바뀌어, 시끌벅적한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파티, 디제잉을 하는 인기 추리 소설가 장재열(조인성 분)을 향해 그의 생일 케익이 등장한다. 그 생일 케익을 보고 장재열은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분위기에 맞추어 촛불을 끈다. 그 순간, 등장한 조금 전 교도소의 흰 머리 사내, 다짜고짜 조인성의 얼굴을 가격하고, 집어든 포크로 그를 찌른다.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듯한 그 사내를 제압하기 위해 너도 나도 덤벼들고, 그 소란 속에서 쓰러지던 조인성, 미소를 띠며, '또라이같은 새끼'라며 나직이 읍조린다. 바로 이 장면,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역설적으로 태연한 척, 그 상황에 냉소적으로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주인공, 바로 그것이 이른바 '노희경 표' 드라마라는 도장 '꾹'의 상황이다. 그렇게, <괜찮아 사랑이야>는 노희경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음을 알린다. 

거침없이 '섹스'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혼자 '자위'를 한 듯한 상황이 번연히 보이고, 자신의 문제가 성행위를 할 수 없음을 시인하는 등, 공중파에서 대놓고 '성인 드라마'임을 인증하는 각종 장치들이 등장하는 것도, 가식 따위는 던져 버리고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하고 살지 않아 라는 듯한 극적 요소들 역시 예의 노희경 식 직설이다. 낯뜨거운 동화 따위는 던져 버리고, 어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겠다는 각오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제목의 '사랑지상주의'적인 정의와 달리 온통 미친 놈 투성이이다. 다짜고짜 교도소를 나오자 마자 동생을 포크로 찍어대는 형에서 부터, 식구들이 돌아가먀 뚜드려 패는데도 저항 한 번 하지 않는 성전환 수술 환자, 그리고  클럽에서 자신의 주치의를 날라차기하고 택시를 뺏어 광란의 질주를 하는 정신분열증 환자까지, 세상은 온통 미쳐돌아가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런 '미친 놈들'이 주인공이 되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소설을 쓰는 추리 소설가 장재열과, 그런 '미친 놈들'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 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진; 스포츠 경향)

그런데 가만히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누가 누구를 미친 놈이라 할 만 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형에게 포크에 찔린 지 몇 개월 후, 샤워를 하고 수건을 꺼내 닦고 욕실을 나오는 장재열, 그의 욕실은 하다못해 수건 색깔에 이르기까지 극단적 색감의 대비로 모던하지만, 정작 그가 그런 욕실에서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편집증'이라 정의내리기에 손색이 없다. 
지해수와 그 주변도 그리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 스스로 관계 부적응이라 정의내리는 지해수는 그렇다 쳐도, 그녀의 어깨에 다정스레 팔을 두르면서도 부하 직원과 키쓰를 나누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애인도 또 다른 의미의 '미친 놈'이요, 그녀와 함께 살게 되는 조동민 역시 전처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정신과 상담 전력을 가진 정신과 의사요, 또 다른 동거자 박수광의 '뚜렛 증후군' 역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몇 분, 몇 십 분 늦은 채, 혹은 빠르게 돌아가는 시계처럼, 등장인물 모두가, 어딘가 정상의 궤도와는 비껴있는 사람들뿐, 또 하나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이처럼, 정신병리학적 분석이 필요한 다수의 등장인물이 1회부터 번다하게 벌려진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병리학적'인 진단이 필요한 현대인들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런 상징적인 드라마적 장치는 동시에 <괜찮아 사랑이야>의 딜레마가 될 것임을 1회부터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희경의 전작, <그들이 사는 세상>이 방송가 사람들을 통해, 방송국이라는 특수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통해, 현대인의 보편적 삶의 단편을 길어올리려고 했던 노력이, 이제 <괜찮아 사랑이야>을 통해 '정신병리학적'으로 접근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분석해 내려는 시도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러기에, <괜찮아 사랑이야>를 호의적으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지점, 과중한 경쟁과 삶의 성공을 온전히 개인적 존재로서 부담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드러나는 부작용인 정신병리학적 증후군에 대한 '동의'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웬 미친 놈들이야!'라는 반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다분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저 그들이 사는 세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이 보여질 수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자신을 공격한 정신 분열증 환자를 대신 나서서 제압하는 장재열을 오히려 병을 들어 머리를 깨면서 말리는 지해수, 그런 환자를 자신이 탈골이 되는 아픔을 참으면서 끝내 놓치지 않고 무사히 병원으로 돌려보냈던 지해수, 극악한 범죄적 성향에 대해 끝내, 그것을 참아내는 인간의 보편적 성선설을 주장하는 지해수의 '긍정성'을 통해, 이미 1회에서, 드라마는 이 드라마가 '정신병리학적'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그 무엇을 제시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아니, 드라마는 온통 미쳐 돌아가는데, 역설적으로 제목은 '괜찮아 사랑이야'라며 다독인다. 

과연, 야심차게 시작한 노희경의 치유적 시도가 과연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런지, 아니면 또 한편의 '웰 메이드' 그들이 사는 세상이 될런지, 첫 회, 동시간대 3위는 어쩐지 불안한 출발선이다. 


by meditator 2014. 7. 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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