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개성 부근 판문점에서는 3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6.25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정전 협정 서명식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북한의 김일성, 중국의 팽덕회, 유엔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정정 협정서에 서명을 하였다.( 그곳에 남한 대표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종이로 된 문서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전 협정이 발효가 되는 시간은 밤 10시, 10시가 되기까지, 155마일의 휴전선 각 고지에서는 마치 그간의 한풀이라도 하듯, 남과 북이 가지고 있는 모든 포탄을 소비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무차별 포격,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밤 10시,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은 적막에 접어 들었다. 정전이다!


그로부터 61년이 지난 2014년의 7월 22일, <다큐 공감>은 정전 협정 61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민족의 운명선이 되어버린, 휴전선의 존재를 되돌아 볼 '운명의 북위 1도'를 방영함으로써, 6.25 전쟁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운명의 북위 1도'는 올해 97세가 된, 6.25참전 당시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이었던 에드워드 로우니의 회고록 제목이다. 그는 맥아더 장군에서 북한의 남침 소식을 최초로 전한 장교였으며, 인천 상륙 작전과 흥남 철수 작전에 참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의 책을 통해 전해준, 우리 민족의 운명선 '38선'의 결정 과정은 바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했지만, 전혀 우리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던 6.25전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1945년 8월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항복 이후, 소련군과 함께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된 미군은 '점령군'으로서 과연 군사 분계선을 어디에 정할 것인가를 놓고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작전팀의 장교들이 여러가지 조사를 통해 취합한 결과는 지금의 38도선이 아닌, 북위 39도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9도선은 한반도의 가장 잘록한 허리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혹시나 있을 지 모를 북의 도발시 방어에 가장 유리한 위치였으며, 그러기에 애초에 '도발'의 의도를 가지기 조차 여의치 않게 만드는 절묘한 위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교들의 조사 결과에 대해 전략 기획단의 링컨 장군은 'NO'라고 답한다. 당시 인기리에 팔리던 책 중에는 니콜라스 스파이크만의 '평화의 지리학'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스파이크만의 주장은 전세계 주요 사건들은 북위 38도선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파이크만의 이론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링컨 장군은 스파이크만의 이론을 신봉했고, 그의 신념에 따라 남과 북의 경계선은 전략적으로 유리했던 북위 39도가 아니라, 155마일의 가장 긴 전선을 가진 38도선이 되었다. 

<다큐 공감>은 미 육군 역사 재단에서 6.25 전쟁과 관련된 역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스토이 부부가 에드워드 로우니를 비롯한 당시 참전 군인과, 38도선 주변에 살았던 민간인 등을 찾아다니며 당시 역사적 상황을 수집하는 과정을 함께 한다. 이제야 회고록을 낸 에드워드 로우니씨는 회한에 젖어 말한다. 당시 자신이 조금 더 강경하게 38도선의 결정을 반대했더라면 하고. 6.25를 연구하는 교수들도 입을 모아 말한다. 39도선이었다면, 어쩌면 전쟁은 없었을지도 모를 거라고, 아니 전쟁이 있더라고 전략적 우위를 점한 39도 선으로 인해, 남침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루어 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고.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퇴역 미군 장교의 후회스런 한 마디를 통해 전해들은 우리가 간여할 수 없었던, 우리 역사의 진실은 안타깝다. 


아버지가 평양 출신이었던 그래서 6.25 이후 다시는 고향을 찾지 못했던, 재미 교포인 스토이 부인은, 말한다. 역사란, 그 기록을 후대에 남겨 전해주어야만 역사로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당대에서 사라지는 사실을 역사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고향에 가지 못한 아버지 대신, 아버지로 하여금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한 6.25 전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한국과 미국을 종횡무진 누빈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 역사재단 연구자의 입을 빌어, <다큐 공감> 역시 61주년을 맞이한 정전 협정 기념의 의미를 되묻는다. 과연, 정전 협정의 그 순간에 조차 참석하지 못한, 우리에게, 38선이 결정된 역사적 아이러니를 통해 6.25 전쟁의 실체를 반문한다. 

그리고 이런 <다큐 공감>의 시도는, 6월 24일 방영된 '마지막 전사자' 등을 통해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 즉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하지만 정작 우리 손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던 비극적 현대사에 대한 꾸준한 발굴 작업이다. 


by meditator 2014. 7. 23.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