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 

그분께 주변 사람들은 그런 위로라도 전한다. 괜찮아, 기적이라는 것도 있잖아. 희망을 버리지 마. 하지만, 만약 그 병이, 신체가 아닌 정신병이라면? 

감옥에서 외박 허가를 받고 나와 조동민(성동일 분)과 함께 아미탈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장재범(양익준 분)은, 하지만 조동민이 잠시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조동민이 준비해놓은 아미탈이라고 생각되는 주사기를 바꿔치기 한 후, 동생 장재열을 향해 질주한다. 그리고, 장재열(조인성 분)의 어깨에 주사기를 꽂고, 진실을 말하라며 그를 마구 발로 찬다. 심지어, 자신이 주사를 꽂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재열이 전혀 입을 열지 않자, 주사 효과가 없는 것으로 착각해 장재열의 몸에 마구 주사바늘을 난사한다. 

하지만 그런 장재범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꽂은 주사약은 이미 그를 믿지 못해 조동민이 바꿔 놓은 수액에 불과했고, 오히려 동생과 함께 부등켜 안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깨뜨린 유리와 기물 파손으로 인해, 그의 형량만 늘어날 위기에 놓인다. 

(사진; BNT뉴스)

그런 장재범을 뒤늦게 쫓아 온 조동민은 장재열을 안쓰러워하며 너의 형은, '복수형 인간형'이라고 만약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폭력적으로라도 그에게 보복을 하는 유형의 인간이라며, 너의 목숨이 위험하다며, 경찰에 신고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지난 시절 혹독하게 형에게 맞았던, 그래서 장재범이 나타나 자신을 마구 구타했을 때 다시 그 기억에 휩싸여 괴로웠던 장재범은 예상 외의 답을 한다. 만약 형이 나를 죽이려 했다면 3년 전 내 어깨에 칼을 꽂는 대신, 내 목에 칼을 꽂았을 거라고 답한다. 즉, 자신의 형은 폭력적이지만, 자신을 죽일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장재열이 그 말을 한 후, 조동민의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 장재범은 어린 아이처럼, 모처럼 먹는 바깥 세계의 빵 맛에 즐거워 할 뿐이다. 

장재열은 그토록 집요하게 자신을 쫓아다니며 진실을 요구하는 형에게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한다. 심지어 두 사람이 부등켜 안고 쓰러지면 상가의 유리를 깨뜨리고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사람들에게 먼저 형제간의 싸움이라며 말한 사람도 장재열이다. 그리고 흥분한 형을 달랜다. 

지금까지, 장재범의 입장에서 보여진 과거의 사건은,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장재열에 대한 의심을 가질 만한 동기를 전해주었다. 장재범의 말처럼, 혹시나, 장재열이?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7회를 통해, 시청자들이 품었던 의혹은, 정반대의 시각을 보여준다. 장재범은 정당방위였지만, 그의 폭력 전과로 인해 억울하게 10년이 넘는 옥살이를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형의 정신병력에 대해, 장재열은, '형제'의 정으로, '사랑'으로 감수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의 사건 전개에 따라, 또 다른 해석 여지는 남아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 노희경은 말하고자 한다. 규정짓고, 선 긋고, 밀어내지 말고, 그들도 그저 우리의 일부처럼, 육체의 병을 '사랑'을 통해 기적을 얻듯이, 그들의 병도 '사랑'으로 품어주면 안되겠냐고? 그리고 본보기라도 되는 양, 우울증으로 인해 자신의 손을 잘랐던 남편에게, 지해수의 충고를 얻은 아내는, 그가 두 손으로 어린 딸을 힘껏 들어올리는 사진을 보여주며 읍소한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우리 아이를 하늘 높이 안아줄 수 있겠냐며, 힘들어도 함께 다시 해보자고. 아내의 간곡한 '사랑'은 의사 앞에서도 맘을 닿았던 남편의 마음을 흔든다. 

그런 작가의 강력한 주장은, 두 주인공의 사랑에서도 일관되게 관통된다. 장재열은 자신이 지해수(공효진 분)과 사귈 의사가 있다는 증거로, 도어락으로 늘 잠궈 두었던, 어린 시절 의붓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들었던 그때 이래로, 장재열에게는 유일한 피난처였던 화장실을 보여준다. 즉, 자신의 상처, 그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그에 대해, 지해수는, 자신의 아픈 상처인 가족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키쓰하는 장재열에게, 식은 땀을 흘리며 불안해 하는 자신을 솔직히 인정한다. 엉뚱하게도, 이런 두 사람의 정의는, 드라마<유나의 거리>의 한 대사로 명쾌하게 정의된다. '상처는 상처로 통한다' 마치 상처입은 짐승의 상처를 서로 핥아 주듯이, 그렇게 장재열과 지해수는 서로의 상처를 열어보이며,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반대다. 상처입은 새를 그가 속한 무리의 새들이 쪼아죽이듯이, 우리는, 내 주변의 누군가의 정신적인 상처를 못견뎌 한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각종 신종의 정신과학적 용어로 인간을 규정한다. 그리고, 장재범의 '복수형 인간형'처럼, 규정되어진 그 틀에 맞춰 그를 예단하고, 한 치의 이해를,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되돌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저마다, 가벼운 강박 장애에서부터, 불안증, 경미한 복수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지, 어쩌면 금 하나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어놓은 그 금밖으로 밀어놓은 사람들을, 작가는, 장재열의 사랑을 통해, 장재열과 지해수의 사랑을 통해, 생각해 보자고 자꾸 권한다. 

물론, <괜찮아 사랑이야>가 보이는 전개는, 작가가 애초에 의도했던 정신병리학적으로 풀어내는 사랑 이야기인 만큼, 때로는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니, 그들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풀어내는 서로의 상처들이, 누군가에겐 허세나, '체'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괜찮아 사랑이야>의 시청률은 대중적 지표로 보면, 전혀 흡족하지 않다. (전국 시청률 9.8% 닐슨 코리아)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는 아닐 지라도, 이 시대에 한번쯤은 서로가 나누어 볼 만한 꼭 필요한 이야기가 소리가 낮다고 폄하당해서는 안될 일이다. '괜찮아, 작은 사랑도 사랑이야' 이 드라마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한 마디다. 


by meditator 2014. 8. 14. 0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