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입만 맞춰도 땀을 뻘뻘 흘리던 지해수가 드디어 장재열과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건 사랑의 시작일 뿐이다. 
연달아 '사랑해'를 남발하는 장재열에게 지해수는 사랑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아직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정'으로서의 사랑을 중시하는 여성의 입장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해수의 생각처럼, 그들의 사랑은 이제 비로소 터널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터널 입구부터 두 사람의 사랑은 덜컥 거린다. 

요즘 범람하고 있는 연애 드라마들은 <마녀사냥>처럼 사랑을 가르쳐 주기에 골몰한다. 남자가 보냈던 이 신호들, 여자가 보였던 그 눈물, 남자가 내뱉었던 그 말들, 여자가 매몰차게 했던 그 행동들의 이면에 숨겨진 '사랑의 코드'를 충실하게 해석해 준다.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사랑'의 또 다른 단어들이라고. 그런 연애 드라마들처럼,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사랑을 시작한 지해수와 장재열도 서로가 보이는 다른 신호로 인해 어렵사리 몸을 나눈 사랑을 한 이후에도 혼란스러워 한다. 하지만, 정신병리학을 다루게다 야심차게 선포한 <괜찮아 사랑이야>의 두 남녀는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인다. 

<연애 말고 결혼(tvn)>에서, 서로의 부모님으로 인해 혹독한 통과 의례를 겪은 주장미는 공기태에게, 그저 편하게 '연애'만 하자고 한다. 하지만, '쿨하게' 연애만 하자고 했던 이 커플, 정작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말수가 점점 줄어든다. 한여름과 함께 동업을 하는 주장미의 가게를 드나들며 공기태는 두 사람이 보이는 친숙한 관계에 불안해 하지만 그걸 드러낼 수 없었고, 공기태가 그의 오랜 친구이자, 같은 직종의 동료인 강세아와 자신의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걸 주장미는 함께 하고 싶지만 물과 기름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면 할수록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쿨한' 연애의 방식을 때려치고, 있는 그대로의 주장미와, 공기태로 돌아간다. 

바로 그런, 요즘 사람들이 지향하는, '쿨한' 연애 방식에 대해 <괜찮아 사랑이야>는 도발적으로, '위선'이라 치부한다. 지해수와 헤어친 채 돌아온 집에 오랫동안 지해수와 사귀었던 방송국 피디가 조동민을 찾아왔다는 핑계로 들이닥친다. 장재열은 불쾌하지만 딱 부러지게 이유를 대는 그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집으로 돌아온 지해수는 반갑게 장재열의 방을 찾아들지만, 장재열은 그런 그녀에게 글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냉담하다. 

괜찮아 사랑이야 9회, 괜찮아 사랑이야 10회 예고
(사진; tv데일리)

쿨한 연애의 방식이라면, 글을 쓰는 그의 사정, 한때 연애를 했지만 이젠 다른 사람의 손님으로 집을 찾아드는 전 애인에 대해 의연하게 넘겨야 한다.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게 무슨 풀 뜯어 먹는 소리냐고 반문한다. 좀 잘 대해주라며, 헤어졌다고 원수가 되지는 말라는 조동민에게 오히려 지해수는 포악하게 반문한다. 그래서, 당신은 전처에게 친구 운운하며 감정 밀땅을 해서, 전처가 감정 정리를 하지 못하게 하냐고. 오히려 자신이 보인 냉담한 태도가, 헤어지자고 말하는 자신에게 매달리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전애인에게 어쩌면 가장 '친절한' 태도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지해수는 당당하게 장재열에게 말한다. 자신의 전애인이 집에서 얼쩡거리는데, 그 쿨한 척 하는 태도는 무엇이냐고. 

<괜찮아 사랑이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현대인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며 노력하는 그런 표피적인 노력들이, 사실은 그들에게 더 상처를 만들고, 관계를 멀리하며, 서로의 이해를 멀리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해수가 자신이 가진 강박 장애로 인해, 누군가와 키스를 하는 것조차 두려워 하듯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것이 두려워, 혹은 이제는 끝인 관계를 놓치는 것이 두려워,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로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드라마는 반문한다. 

그래서, 조동민의 전처였던 이영진(진경 분)은 여전히 친구처럼 그녀를 대하는 조동민(성동일 분)에게 날벼락처럼 아직도 그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이 채 그녀의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그렇게 친숙하던 조동민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그녀 곁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영진은 알게 된다. 사실은 그녀가 미련을 두고 있었던 건, 조동민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조동민에게 저질렀던 과오, 거짓이었음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지해수와 나누면서, 지해수가 가졌던 강박의 근원도 드러난다. 누군가오 스킨 쉽을 할때마다 그녀를 괴롭히던 외간 남자와 입을 맞추던 엄마의 모습, 하지만, 그런 그녀의 괴로움은, 장재열과 진심으로 함께 나누었던 그 시간을 통해, 의지할 곳 없던 엄마에 대한 이해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드라마가 진행되며, 전처와 재혼한 남편이 한데 어우러지고, 첫사랑과, 첫키스를 함께 나누던 사이가 한 집에서 어우러지던 '막장'의 인간 관계는 분명해지고, 교통 정리가 되어간다. 사랑이란 명목으로 하지만 그 안에 자기 연민이 더 강했던 관계들은, 그 자기 연민의 속내를 들여다 보게 되고, 그리하여, 관계는 때로 깊어지거나, 다른 형태로 전이된다. 이영진과 조동민은 이제 진짜 친구가 되어갈 듯하고, 박수광(이광수 분)은 오소녀(이성경 분)에 대한 자신의 미련을 접어두고자 한다. 지해수와 장재열은 가식 따위는 던져 버리고 인간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간다. 여자와 남자, 암컷과 수컷의 경계심, 혹은 적당한 밀땅, 어장 관리 따위는 던져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에 대한 관계에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선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여전히 다른 연애 드라마와 차별성을 유지하는 지점은, 바로, 연애가 그저 남녀의 연애사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혹은 그런 연애사에 조차 드리워진 각자의 인생사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회를 거듭할 수록, 남녀간의 사랑보다, 남녀를 초월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괜찮아, 사람이야, 사람이니까, 이해해. 라고. 

그런데 묘하게도, 노희경 작가가,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야심차게 인간사의 또 다른 이면인 정신병리학적 세계를 다루고 있고, 그 해결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음에도, 그 해결 방식은, 그녀가, 이전 드라마들을 통해 줄기차게 천착해 왔던, 가식따위는 던져버리는, 날 것 그대로의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궤적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화려한 시절>의 질펀한 욕이 난무하던 그 뒷골목의 정서와, <바보같은 사랑>의 서로의 상처를 보듬던 그 어리석은 사랑이, <괜찮아 사랑이야>의 가장 세련되게 치장한 그들의 사는 모습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일까. 정신병리학적 해석을 곁들건 아니건,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진정성'에서는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일까?


by meditator 2014. 8. 21.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