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중 멋부리다 된통 당한 까마귀 이야기가 있다. 

시커먼 자신의 털이 보기 흉하다고 생각했던 까마귀는 다른 아름다운 새들의 털을 하나씩 모아 자신을 치장하고 자신도 빛깔이 아름다운 새인양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몸에 꽂은 깃털이 자신의 털인 줄 알던 다른 새들이 그의 몸에서 자신의 깃털을 찾아내고, 결국 까마귀는 초라한 검은 깃털의 자신의 몰골로 돌아와 몹시 창피를 겪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진화동물학으로 가면 좀 달라진다. 새들의 경우, 무리 중 몸이 아프거나, 털 빛깔이 좋지 않은 동료가 있으면, 그로 인해 자신들이 적들에게 노출될까 하는 두려움에, 동료들이 앞장 서서 아픈 새를 쪼아, 심지어는 죽이기도 하는 잔인한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 사회를 빗대어 설명한 이솝 우화 속 까마귀가 인간의 허세를 상징하고 있는 건 당연하지만, 과연 실제 아픈 동료를 앞장서서 쪼아대는 새들의 습성은 인간과 다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착해빠져서'라던가, '착하기만 하면 손해본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그리고, 어느 틈에,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불이익을 당했을 때, 자연스레 반문하곤 한다. 내가 너무 착했나? 라고. 아니, 나만 너무 착했나? 라고. 하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들'은 '착하면 손해보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바로 그 '착한 사람들'의 상처를 <괜찮아 사랑이야>는 논한다. 

(사진; 스포츠 월드)

1회, 형 장재범(양익준 분)이 파티를 벌이던 수영장으로 찾아와 다짜고짜 장재열(조인성 분)을 찌를 때, 그걸 보고 울부짖던 소년 한강우(디오 분)의 정체가 12회에 이르러서야 분명해 졌다. 장재범이 줄곧 동생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던 그 사건의 실체가, 코난같은 정신과 의사 조동민의 조사로 밝혀졌다. 결국, 의붓 아버지를 죽인 건, 형도, 동생도 아니었고, 죽지 않고 정신을 차린 남편을 두려워했던 어머니였던 것이라는 걸. 그리고, 형의 등에 업혀가던 동생은, 어머니가 불을 지르던 장면을 목격했고, 해리성 기억상실로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형을 범인으로 지목하였으며, 하지만, 그렇게 형을 감옥으로 보냈다는 죄책감에서 결코 놓여날 수 없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열 여섯의 나이에 이미 '방어기제'라는 단어를 알 정도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조숙한 소년은, 하지만, 의붓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그리고 그 사건의 충격으로 진실을 망각한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그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썩어야 했던 형에게 한없이 미안함을 느끼는 마음 약한 동생이었다. 그런 그의 '착한' 마음은, 그의 냉철한 이성을 넘어, 그에게, 자신과 같은 한강우를 보살펴 주는 환상을 통해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즉, 그의 정신적 '방어기제'는 그에게 정신증을 선사한 것이다. 

그가 지해수를 사랑하면 할 수록, 즉, 그가 행복을 느끼면 느낄 수록, 한상우가 그에게 나타나는 빈도수가 늘어나는 것은, 그의 무의식이, 그가 행복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결코 침대에서 잘 수 없듯이, 무의식의 장재열은, 자신의 행복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의식의 그는 여전히 죄책감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열 여섯의 나이에 불가항력적인 가족 범죄를 목격한 소년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그런 소년의 안타까움은 훗날 어른이 된 소년에게 나타난 한강우를 보살피는 것으로, 자신의 안타까움을 역설적으로 표명한다. 대신 그는 어머니의 죄를 형게게 넘기고, 형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넘기는 것으로 그 '일'을 해결하려 하지만, 여전히 '착한' 그에게 그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투렛 증후군의 박수광(이광수 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일하는 까페를 찾아온 아버지, 그를 여전히 가치없는 존재로 여기는 아버지에게, 수광은 말한다. 어릴 적 자신이 투렛 증후군을 보였을 때, 아버지가 자신을 보듬어 주었더라면, 자신의 병이 이토록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투렛 증후군을 보이는 그를 소녀(이성경 분)가 안아주자, 조동민 말처럼 오래된 감기같은 그의 증상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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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뉴스)

결국 12회에 이른 <괜찮아 사랑이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만연하고 있는 각종 정신증의 증상이, 상당수가, 그들이 '착해서', 어찌하지 못해, 드러나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착해서 당하고, 착해서 아프다 말하지 못하던 그들이, 보이는, 최후의 자기 표현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착하면 안된다'라고 몇 십년 동안, 다짐하고, 윽박지르던 것들이, 오늘에 이르러 사회적 증후군처런, 정신병증의 범람으로 귀결되게 되었다는 것을, 12회에 이른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오래된 감기'같은 수광의 투렛 증후군이,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소녀의 입맞춤으로 완화되듯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장재열은 왜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하느냐는 지해수의 질문에 답한다. 자신의 어릴 적 상처를 알고, 그에 더해, 여전히 자신에게 짐과 같은 어머니와 형의 상황을 알고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지해수같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없어서 라고. 한강우의 잦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장재열은, 이해받고 싶고, 자신의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받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말한다. 상처입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자고. 착해서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착해도 이해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게 아니냐고, 나즉히 읊조린다. 


by meditator 2014. 8. 29. 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