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팔과 재미삼아 화투를 치던 장노인 도끼(정종준 분)는 승부에 집착하다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런데 도끼 노인이 입원한 병실, 그의 옆에 홀로 누워 말기 위암과 싸우는 노인은, 한때 도끼와 영역 싸움을 벌이던 '독사'라는 또 다른 전설의 조폭이다. 한때 서로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주먹다짐을 벌이던 그들은 이제 서로 인사 치레도 제대로 못 나눌만큼 운신하기 힘든 병든 몸으로 병실에서 만난다. 독사 노인의 존재를 안 밴댕이(윤용현 분)은 과거 자신을 코피가 터지도록 패고 자신의 돈을 빼앗은 독사의 기억에 이를 갈며 병실을 찾는다. 하지만, 그렇게 잊을 수 없었던 독사는, 그 누구하나 들여다 보는 자 없이 홀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한낱 불쌍한 노인일 뿐이다. 자신이 누군지 알겠냐는 밴댕이의 말에 독사는 힘들게 말한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밴댕이는 떨리는 그의 손을 잡고,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그의 땀을 닦아준다. 


9월 23일 방영된 <유나의 거리>의 이 장면은,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와 상관이 없는, 그져 스쳐지나가는 에피소드임에도, '성스럽기'까지 하다. 한때 조폭으로 자신의 '업'을 쌓던, 독사가, 과거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받은 자를 만나, 속죄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관계 해소이지만, '죄사함'을 받는 종교적인 면죄의 상징까지 띤다. 비록, 그가 과거에 해를 끼쳤던 숱한 피해자 중 한 사람에게 불과하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독사는 자신이 현세에서 쌓은 카르마를 이렇게 풀어내고 간다. 아마도 저승길을 떠나는 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사진; 뉴스엔)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정감 가득히 풀어내는 드라마 <유나의 거리>, 하지만, 김운경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삶은, 한편에서 냉정하다. 저마다, 현세에서 각자가 쌓은 '카르마', 즉 업보는 결국 각자 풀고 가야 할 삶의 과제로 등장한다. 
한때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던 도끼 영감, 자식과도 연을 끊고 만복의 문간방에 얹혀 사는 말년에 춤이나 화투 등 소소한 삶의 재미를 얻어보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이제는 더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그의 나이이다. 춤을 좀 배울까 싶으면, 쓰러지고, 화투 좀 전투적으로 쳐볼까 싶으면 쓰러지는, 그를 두고, 한때 부하였던 밴댕이는, 주책이라 흉을 본다. 그런 그에게,  만복은 말한다. 나라고 늘 도끼 형님이 좋기만 하겠냐고, 싫고 번거로울 때가 더 많지만, 그게 다 과거 조폭의 무리에 몸 담았던 내 업보라 생각하며 감수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나의 거리> 속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업보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36회, 이제 중후반을 넘어서는 <유나의 거리>에서 주된 스토리는 그러기에 당연히 바로 소매치기인 여주인공 유나의 카르마다. 
유나를 사랑하는 창만은 세상에 자기보다 더 큰 도둑놈들이 더 떵떵거리며 잘 산다며, '소매치기'를 그만 둘 뜻이 없는 유나의 손을 씻기기 위해 고심한다. 그런 그가 찾아낸 방법은, 바로 어린 유나가, 소매치기로 들어설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원인을 찾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만이 찾아낸 방법은 어머니가 돌봐주지 않아 소매치기를 하며 살아가야 했던 유나의 어머니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창만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어렵사리 유나의 어머니를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 회장의 아내가 된 유나의 어머니는 어두웠던 자신의 과거를 상징하는 유나를 만나기를 꺼려한다.  현재의 유나가, 유나의 어머니에겐 또한 과거의 카르마가 되는 지점이다. 결국, 창만의 설득으로, 그리고 자신이 홀로 남겨 둔 바람에 소매치기가 되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유나의 엄마는 어렵사리 유나를 만난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유나는, 그렇게 목놓아 불러도 대답해 주지 않던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말만 퍼붓고는 자리를 뜬다. 그래도 혈육인지라,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것도 무색하게, 번듯한 어머니의 존재를 드러내지 말아 달라는 어머니의 노파심에, 유나의 마음은 다시 닫히고 만다. 

하지만 창만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유나의 첫사랑, 그야말로, 유나가 자신의 업이 된 '소매치기'로 유나를 인도한 결정적 인물이라는 것을. 
유나와 함께 활동하던 태식(유건 분)은 유나와 함께 쫓기던 중 경찰에 잡혀, 유나의 죄까지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출소한 후, 손을 씻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큰 건에 유나의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얼마전부터 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아, 주변에서 슬슬 손을 씻게 되는게 아닌가 라며 희망적으로 바라보던, 유나는, 자신때문에 옥살이를 한 태식을 위해 그의 '한 건'에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자신을 처음 '소매치기' 무리로 인도했던 첫사랑, 바로, 유나 자신의 업을, 유나만의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지

어머니의 업보로서의 유나, 그리고 유나의 업보로서의 창만이 뒤얽히며, 과연 그 과정에서, 유나가 소매치기로서 손을 씻게 될지, 아니면, 결국 다시 '재범'의 늪에 빠지게 될지가 <유나의 거리> 후반부 이야기의 관건이 된다. 

거창하게, 카르마니, 업보니 했지만, 결국 <유나의 거리>란 드라마가 풀어내고자 하는 건, '인지상정'이요, '결자해지'이다. 사람으로, 사람답게, 제 할 도리를 다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나의 거리> 속 갈등 들은 극단으로 치닫는 가 싶어도, 결국은 '인지상정'이요, 결자해지인 식이다.  단식하는 부모들 앞에서 '피자 파티'를 벌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밥줄 자르는 건, 남의 목줄 죄는 건 예사로 하는 세상에서, <유나의 거리> 속 이야기와 해결 방식들은, 그래서 때로는 너무 소박하고, 심지어, 환타지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또 그래서, 사람사는 냄새를 맡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푸근한 사람 사는 맛을 찾기 위해, <유나의 거리>를 찾게 된다. 


by meditator 2014. 9. 24. 09:53

한석규가 다시 왕이 되어 돌아왔다. 

왕인데도 불구하고 면류관은 커녕, 맨 상투를 드러내고, 대전 바닥에 털퍼덕 앉아있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제길헐' 등 쌍욕을 하진 않지만, 말투로 보면, 딱 쌍욕을 내뱉고도 남을 말투이다. <뿌리깊은 나무2>인가 했더니, 이번엔 세종이 아니라, 영조란다. 한석규에 의해 구현된 영조는, 여전히 세종처럼 신하들과 '파워 게임' 중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기 아들조차 믿지 못하며, 자신의 왕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7번의 양위 해프닝을 벌인다. 

드라마는 시작과 함께,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상상력을 더했음'을 명시한다. 그리고 바로 그 상상력의 영역으로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이끌어 간다. 
왕세제였던 영조는 한밤에 그의 눈앞에서 그를 지키던 사람들이 자객들의 칼부림에 의해 쓰러져 나가는 것을 목도한다. 자객의 칼은 이제 그, 왕세제 이금을 노리는 것 같다. 장면은 바뀌어, 노론의 영수 김택과 노론의 무리들이 왕세제 앞에 앉아있다. 이들은, 왕세제가 자신들과 의견을 같이 할 것을 종용하며, 연판장의 마지막에 서명을 할 것을 강권한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왕세제는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이른바, 드라마 내내 수없이 되풀이 되는 단어, '맹의'의 탄생이다. 이렇게 노론과 정치적으로 야합한 기록을 남긴 왕세제는 왕이 된 후 내내, 노론에 의해 정치적으로 발목을 잡히고, 이를 없애기 위해 맹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예측되는 서고를 불태우기에 이른다. 그후 왕은 자신을 괴롭히던 '맹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마음껏 정사를 펼치고, 그런 왕에 대해 노론은 수그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사라졌다던 '맹의'가 수면 위에 오른다. 왕도, 노론도, 정치적 주도권을 위해, 다시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물론,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맹의'는 가상의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왕이 된 영조와, 노론이 정치적 동반자이자, 애증의 관계인 것만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다. 
드라마에서 자객을 보내 왕세제였던 영조의 목숨을 노리는 것과 달리, 그의 형인 경종 연간에, 왕세제 연잉군이였던 이금은 노론에 의해 노론과, 노론 측인 인원왕후의 적극적 지지를 엎고 왕세제가 되었다. 심지어 병약한 임금을 대신하여 '대리청정'까지 요구되었다. 하지만, 정통성의 문제를 들어 성균관 유생등이 반대하였고, 그 과정에서 노론 대신들은 왕세제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치죄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사학자 이덕일은 그의 책에서 경종의 이른 죽음에, 연잉군과 그를 비호하는 노론의 개입을 주장하는 등, 연잉군이 영조가 되는 과정은, 노론과, 노론을 등에 업은 연잉군의 정치적 음모가 개입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왕이 된 영조는, 드라마에서처럼 '연판장에 서명을 한' 정치적 부담은 아니더라도, 왕제가 아니었던 자신이 왕이 된 과정에서, 노론에게 정치적 빛이 있음을, 또한 궁중 나인 중 가장 지천한 신분인 희빈 숙빈의 소생인 자신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음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복잡한 존재가 되었다. 왕이 된 영조는 그런 자신의 정치적 부담감을 덜기 위해, 혹은 지양하기 위해, 각 정파를 골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통해 노론에 빚을 진 자신의 처지를 덜고자 하나, 그의 의지는 생각만큼 관철되지않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런 복잡미묘한 영조 연간의 물고 물리는 정치적 관계를 '맹의'라는 상징적 문서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드라마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7번의 선위 장면은, 바로 이런, 자신의 정통성에 회의하는 영조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역설적으로 왕좌를 지켜나가는 정치적 해프닝이다. 즉, 궁중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나인의 소생인 그를 왕권의 정통성이 없다 비웃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며, 그를 왕에 올림으로써 정권을 좌지우지하려는 노론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인 자신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정통성이 있건 없건, 이미 왕인, 그가 '선위'를 하겠다는데, 그것을 '긍정'하는 것은, 그것이 설사 아들이라손 치더라도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한석규라는 동일 인물에 의해 연기되는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와 <비밀의 문-의궤 살인 사건(이하 비문)>에서 연기하는 세종과, 영조는, 왕권을 위협하는 신하들의 무리를 상대하여, 자신의 왕좌를 견고히 하고자 한다는데서, 일맫상통한 캐릭터이다. 그런데 세종이, 작가와 배우의 해석을 통해, 쌍욕도 하는 다층적인 캐릭터로 재탄생된 반면, <비문>의 영조는, 실제 52년의 오랜 치세 동안, 자신의 아들조차 정치적 희생양으로 하면서 왕좌를 지켜 나가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불사한, 문제적 인간이었다. 그러기에, 한석규가 연기하는 영조에게서, 세종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비단 그의 연기톤만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해석된 캐릭터의 여지가 그러하다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첫 방을 선보인, <비밀의 문-의궤 살인 사건>은 그렇게 문제적 인간 영조를 근간으로, 드라마에서 등장하듯이, 정통성을 가진 왕자도 태어나, 자신의 정통성에 의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도세자의 자유분방함을 '세책 해프닝'을 통해 엮어낸다. 그리고, 호시탐탐 정권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론과, 그를 상대하는 소론 등의 정치적 반대파의 대치 상황도 드러낸다. 
하지만, 다짜고짜 '맹위'를 앞세우며 진행된 드라마 초반은, 영조 연간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복잡한 설정을 드러내 보인다. 52년의 치세를 '생존'을 위해 그 무엇도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인간 영조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영조의 캐릭터는 그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과 같았고, 정통성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진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정통성을 가진 아들이 가진, '꼰대'같은 노론 세력에 대한 반감의 부피가 명확히 잡혀지지 않는다. 그저 자유분방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식견이 있는 것인지 앞으로 이 <비문>이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아니, 그보다는, '선악'의 가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캐릭터 영조가 워낙 압도적이다. 그런데 그 캐릭터가 익숙하는 것이 나름 <비문>이 가진  부담이기도 하다. 

또한 비문> 출연진의 면면은 화려하다. 영조 역의 한석규를 비롯하여, 군 제대 후 야심차게 돌아온 이제훈,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걸출한 김창완, 최원영, 장현성, 이원종 등의 조연진에, 김유정, 박은빈의 아름다운 여성 출연자까지. 실제 '김유정이 나온다 하'여 본 사람들 중에서는, 단 몇 컷에 불과한 이 소녀의 출연이 아쉬운 사람이 있었듯이, 이렇게 쟁쟁한 면면의 출연자들에게 제 몫을 부여해 주는 것이, <비문>의 또 다른 과제로 보여진다. 


by meditator 2014. 9. 23. 09:15
휴지기를 가졌던 드라마 스페셜이 다시 돌아왔다. 
9월 14일 <그 여름의 끝>에 이어, 9월 21일 <세 여자 가출 소동>까지 두 편이 방영되었다. 공중파 유일의 단막극 드라마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일까? 이제 막 첫 술을 뜬 두 편의 <드라마 스페셜>, 배부르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어쩐지 술이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든다. 

9월 14일에 방엳된 <그 여름의 끝>은 남편이 교통사고 이후 식물인간이 된 후, 주민등록 등본을 통해 알게 된 남편 진우(이광기 분)의 숨겨진 자식을 맞닦뜨린 주부 수경(조은숙 분)의 혼란을 다룬다. 알고보니, 남편의 사고는 업무차 출장이 아니라, 춘천에 사는 첫 사랑 연인과, 그녀의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암으로 죽은 첫사랑 연인의 아들은, 혼란을 겪는 수경에게 떠맡겨진다. 그녀는 처음 자신에게 맡겨진 초록이(전진서 분)를 미워하지만, 엄마를 잃고 누군가에게 살갑게 정을 붙이려고 애쓰는 초록이에게 차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어서 9월 21일에 방영된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제목에서도 대번에 알 수 있듯이, 대뜸 시끌벅적 세 여자 가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랫동안 식당일을 하며 모은 행상 트럭 살 돈을 들고 튄 주부 형자(박해미 분), 룸살롱에서 도망나온 여진(장희진 분), 회사일을 배우기 싫어 학교를 땡땡이 친 수지(서예지 분) 세 여자가 가출과 관련된 해프닝을 연속적으로 벌인다. 도망가다 지쳐 공원에 앉아있던 형자는 아버지의 비서와 실랑이를 벌이던 수지를, 원조 교제남과의 실랑이로 오해하고 개입하고, 그 옆에서 소주를 마시던 여진 역시 나서는 바람에, 형자와 수지는 도망갈 수 있게 된다.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던 형자와 수지 앞에 여진이 등장하고, 여진을 쫓던 나이트 클럽 직원들로 인해 세 사람은 함께 쫓긴다. 엄마의 생일을 맞은 수지를 위해 두 여자는 함께 수지 엄마를 모신 납골당을 찾고, 그 과정에서, 하루 동안, 엄마와, 언니의 가족 관계가 탄생된다. 하지만, 의사 가족 관계는 여진의 나이트 클럽 빚을 갚고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납치 사건으로 둔갑하고, 결국, 세 사람은 백화점 옥상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신세가 된다. 

공교롭게도 새롭게 시작한 드라마 스페셜의 두 편, <그 여름의 끝>과 <세 여자 가출 소동>은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그 여름의 끝>에서 숨겨진 남편의 소생이라 여겼던 초록이는, 친자 검사 결과 남편의 핏줄이 아닌게 밝혀진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들의 핏줄이라며 오매불망 안타까이 여기던 시어머니는 단번에 안면을 바꿔, 아들을 사고로 이끈 '재수없는 녀석'이라며 초록이를 내쫓을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그간 초록이와 정이 든 수경은 고뇌한다. 그리고 과연 지금까지 그저 첫사랑에 대한 사랑으로만 느꼈던 남편의 마음을 다시 한번 헤아리기 시작한다. 결국, 초록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수경의 가족이 된다. 
<세 여자 가출 소동> 역시 마찬가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명의 여자가, '가출'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하나가 된다. 죽은 엄마를 생일날 찾은 수지가 안타까워, 수지 엄마와 동갑인 형자는 그녀의 엄마를 자청하고, 샘이 난 여진은 그럼 자기는 언니가 되겠다 한다. 그렇게 마음 넉넉한 두 사람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는 듯, 수지는 엄마의 놀음 빚을 갚기 위해 룸살롱을 전전하는 여진의 빚 1억을 갚아준다. 가끔씩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혼돈스러워 하면서도, 세 사람은 그들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똘똘 뭉쳐 해결하며, 가족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대안 가족 이야기는 막상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싱겁다. 노희경의 드라마들처럼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서 서로가 머리쥐어 뜯으며 싸우다 공감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대안 가족이 아니라, 너무 쉽게 서로의 정에 기대어,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는 '온정주의'로 모든 사건을 풀어가기 때문이다. 단막극이라는 한 시간의 시간 탓으로 돌리기에도, 수경이 초록이에게 허물어지는 것도, 형자가 쉽게, '너의 엄마가 되어줄게' 하는 것도, 드라마로서는 그렇게 하는게 틀리지 않지만, 어쩐지 쉽다. 2014년의 드라마인데, '응답하라' 때 드라마라 해도 이물감이 없다. 과연, 21세기의 세 여자가, 혹은 가족에 대해 천착한 현실이 담겨있지 않다. 

또한 각각의 해프닝을 풀어가는 방식은 실험적인 단막극을 지향하는 <드라마 스페셜>이라기엔 너무 전형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여름의 끝>에서 수경과 초록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의 끝에, 가족으로 보듬기까지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전형적이다. 심지어 시어머니의 이반까지. 
<세 여자 가출소동>의 행로 역시 다르지 않다. 가출 해서 우연히 조우한 세 사람, 그 중 누군가를 쫓는 사람들로 인해, 함께 쫓기다, 차츰 정이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돈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또 다른 누군가가 사심없이 해결해 주고, 마지막에, 회개한 아버지의 사죄로 인한 해피엔딩까지. 
초록이가 사실은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는 <그 여름의 끝>의 반전도, 함께 가출한 세 여자가가, 납치범으로 오인받는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전에 어디선가 본듯 익숙하다. 


그러기에 <드라마 스페셜>의 장점은 무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공중파 유일의 단막극을 방영하는 것 이외에.
아마도, 그것이, 사극, 스릴러, 코미디, 기존 드라마에서 감히 해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해온 실험주의 정신도 있지만, 그에 덧붙여, 그것이 어떤 장르가 되었든, 바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사회가 고뇌하는 문제를 담은 '현재성'에 방점이 찍히기에 때로는 미흡한 완성도에도 빛났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기존 드라마들이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각종 사회 문제들, 인간간의 문제들을, 마치 가장 날선 시선을 가진 단편 소설들처럼, <드라마 스페셜>의 단막극을 통해 발언해 온 것이,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살아온 내력이다. 아름다운 동화같은 드라마들도,되돌이켜 보면, 가장 현실적인 기반에 발을 담글 때, 소통되지 않았었나 싶다. 사극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성에서 길어내어진 역사적 해석이어야 의미를 얻었다. 

그런 면에서, <그 여름의 끝>이나, <세 여자 가출 소동>은 어쩐지 맹숭맹숭하다. 갈등은 첨예하고, 스토리는 완결적이지만, 그뿐이다. 새롭지도 않고, 실험적이지도 않고, 그저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이야기, 전개들이다. 그러니, 배우들의 연기도, 열연이긴 한데, 어딘가 한 구석이 비어있다. 이래서야, 월요일의 부담을 접어두고, 밤 열 두시 넘어 잠을 쫓으며 <드라마 스페셜>을 보아야 할 의미가 부여되겠는가.


by meditator 2014. 9. 22. 11:00

9월 21일 <룸메이트>시즌2는 새로운 출연자들을 선보였다. 

<룸메이트> 출연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물의를 일으켰던 박봄을 비롯하여, 다수의 출연자들이 집을 나가고(?), 배종옥, god의 박준형, 오나티 료헤이, 이국주, 갓세븐의 잭슨, 써니, 카라의 허영지 등이 삼청동 집을 찾았다. 시즌1의 멤버 중, 이동욱, 조세호, 박민우, 서강준, 나나가 잔류하여 이들을 맞이한다.

얼마전 <썰전>에서 추석 특집을 논하며, 최근 예능의 트렌드가 '이방인'이라고 정의했다. 그 과정에서 <룸메이트>가 추석 특집으로 이방인 특집을 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김구라는 그러다, 그 이방인 특집이 시청률이 더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반응이 없는 <룸메이트>의 현 실상을 꼬집었다. 
마치 그런 <썰전>의 평가를 참조하기라도 한듯, 시즌2로 돌아온 <룸메이트>에는 이른바 '이방인'같지 않은 이방인들이 즐비하다. 

우선 박준형, 마흔 여섯 살의, 그룹 god의 맏형인 그는, 외모도 한국 사람같지 않지만, 하는 양도 여전히 이국적이다. 한국 말을 배우던 어린 시절 할머니 품에 자라, 말이 짧다는 그는, 그 짧았던 한국말의 기억만을 가진, 교포의 모습을 그대로 보인다. 사람을 만나면 다짜고짜, '헤이요'하며 팔을 엇갈리며 맞잡는 힙합식의 인사부터, 매사에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그의 스타일은, 외양만 한국인이지, 영락없는 '외쿡사람'이다. 
그런 그를 만나,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 반가운 잭슨도 마찬가지다.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펜싱 선수 출신의, 자신을 소개할라치면 양말을 벗고, 덤블링같은 무술 동작을 선보이는, 아이돌 그룹 갓세븐의 잭슨은, 어눌한 한국말에, 박준형과의 영어가 더 편한 외국인이다. 
천만을 훨씬 뛰어넘은 영화<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을 흠모해, 조국을 배신하고 조선을 위해 헌신하는 왜인으로 분한 오타니 료헤이는, 한국에서 활동한지 10년이나 되었다지만, 일본인이다. 
이렇게, 12명의 멤버 중, 세 명이, 이국적인 인물로 채워진, <룸메이트>는 그 분위기에서 시즌1에 비해 한결 다국적이다. 비록 인원수로는 세 명에 불과하지만, 시즌2 첫회 분량에서도 보여지듯이, 박준형, 잭슨의 활약은, 두 사람이라는 숫자로 설명하기 힘든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진; osen)

그들과 함께, 시즌2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면모 역시, 예능에서는 신선하기 이를데 없다. 나이를 묻지 말라는, 하지만 박준형이 누님이라 부르는 배종옥은 중진 연기자로, 예능에서는 첫 나들이이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예능의 도움을 받겠다는 말과 다르게,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똑부러진, 그녀의 드라마 속 캐릭터가 어디 가지 않은 듯, 즉석 밥으로 김밥을 싸는 후배들에게 '화가 나려고 한다'는 발언에서 벌써, 주관이 뚜렷한 왕언니의 캐릭터가 드러난다. 
대세 개그맨이 된 이국주 역시 고정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진출하는 건 처음이다. 서슴지 않고 웨이브와 자신 버전의 '빨개요'를 선보이는 예의 대세로서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어설픈 요리 실력에  손 걷어부치고 나서는, 또 다른 '맏언니'의 면모로서, 이국주의 활약이 기대된다. 자신의 곁에 들러붙는(?) 잭슨에게, 혹시나 자신과 엮어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이국주의 일침은, 그녀의 당당한 여성 캐릭터가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들과 함께 합류한 카라의 허영지는 아예 연예인으로 출발한 지 겨우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배 소녀시대 써니를 부르러 간 방문 앞에서 노크조차 하기 저어하는' 신참 소녀가, 낙지를 대하자 돌변한다. '맛있겠다'는 입맛 다심이 빈말이 아니게, 낙지를 쭉쭉 늘여, 턱턱 칼질해대는, 그녀의 캐릭터는, 여아이돌로써는 반전의 매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신선한 캐릭터의 세 사람이 <룸메이트> 시즌2를 예측 불허의 기대작으로 만든다.

<룸메이트>를 기대작으로 만드는 것은, 신선한 인물들의 수혈만이 아니다. 그 캐릭터를 다루는 제작진의 시선이 기대 요인 중 하나다. 시즌1의 제작진이, 다수의 인물들을 모아놓고, 일본의 그룹홈을 다루는 예능을 흉내내어, 다짜고짜 러브라인 만들기에 고심했던 것과 달리, 시즌2의 제작진은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노골적으로 그 사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박준형에, 이국주에, 잭슨에, 시즌1과 멤버 구성의 성격도 다르다. 

그리고 멤버 별 각자를 다루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오늘부터 출근>에서 마흔 여섯이나 먹었는데도 사회 생활을 모르는 망나니 같던 박준형은, <룸메이트> 시즌2에서는 여전히 자유분방하지만, 그 누구라도 선입견없이 따스하게 바라봐주는 오빠로 둔갑한다. 마흔 여섯 살의 그에게는, 소녀시대든, 이국주든, 그 누구든 이쁜 동생이다. 여전히 둘러대지 않고, 툭툭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거 같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변 상황을 따스하게 만든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과 함께 하는 예능이 걱정되었던 배종옥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가장 소통할 대상이 되는 것도 박준형이다. 똑같은 사람인데, 전혀 다른 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건, 결국 제작진의 깜냥이다. 
잭슨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소개될 때까지만 해도, 또 한 사람의 '헨리'가 등장하나 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던 그가, 한국어로 인사하며 급 공손해지는 것처럼, 천방지축일 거 같던, 외국인 잭슨대신, 그저 사람이 그리운 이방의 소년이 그려진다. 자신을 소개할 때, 다짜고짜 덤블링하듯 중국 무예를 선보일 때만 해도, 자신을 드러내는데 능숙하구나 싶었던 것이, 새로운 사람이 올때마다, 쿵쿵거리는 착지의 충격을 감수하고, 그것이 되풀이하는 모습에선, 안쓰러움마저 느껴지는 애교스러운 캐릭터로 변모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국주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국주에게 매달리는 그의 모습이, 큰 누나에게 어리광부리는 막내 동생처럼 정겹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겠냐마는, 시즌2를 여는 <룸메이트>는 그래도 어쩐지, 시즌1처럼 무작정 러브라인에 매달리다 침몰하지는 않을 거 같은 기대감을 준다. 이제야 비로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룹 홈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섣불리 해보게도 된다. 시즌1에서 우뚝 솟았던 조세호가, 대번에, 이번에는 만만치 않겠다는 듯 한 발 물러서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가 시즌1을 통해 재조명된 것이기는 하지만, 조세호 혼자 이끌어 가기엔, 주말 리얼리티의 하중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가 드러나보이지 않은 시즌2 멤버들의 존재감과 그들이 빗어내는 대안 가족으로의 하모니가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4. 9. 22. 10:56

새로운 예능 또 한 편이 등장했다. tvn의 <오늘부터 출근>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봉급 생활자 1404만명 시대, 한국 경제의 든든한 기둥, 샐러리맨, 그들의 일상으로 뛰어든 연예인 8명의 리얼 입사 스토리'
그에 따라, 마흔 여섯 살의 박준형, 역시나 사십대의 jk김동욱, 그리고 삼십대 은지원, 김성주, 이현이, 홍진호, 그에 이어 이십대 김예원, 로이킴이 신입사원으로 일주일 동안 회사 생활을 하게 된다. 

회사 생활의 첫 시작은 만만치 않다.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회사 생활을 위해 여덟 명의 연예인들은 8시25분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 이른 아침 이른 시간에 회사에 가기 위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연예인들 여덞 명 모두는 그 생활이 너무나 낯설다. 심지어, 마흔 여섯 살, 대부분 미국에서 거주하는 박준형의 입에서 '토큰'이 튀어 나온다. 세 아이의 아빠로, '퇴직'과 관련하여 아픈 기억이 있는 김성주에게 신입사원으로서의 새로운 출근은 감회가 남다르다. 연예계에서는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저 한낯 회사원으로서의 첫 발은 그 누구에게나 어설프다.

회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줄을 서야 하는 출근길 진풍경에, 회사 사원카드가 없이는 층 조차 제대로 찾아가기 힘든 출근길을 거치고 난, 회사 생활은 첫 날 부터 녹록치 않다. 시간에 딱 맞춰 가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겨우 도착해도, 청바지에, 짧은 치마, 나름 챙겨 입은 의상이 말썽이다. 
업무는 한 술 더 뜬다. 천하의 프로그래머 홍진호가 컴퓨터를 켜고, 켬퓨터와 프린터를 연결하는 걸 몰라서 선배에게 배우는 처지이고, 겨우 기다렸다 맡은 업무 택배 부치는 일조차 시간 내에 제대로 못해 지적을 받는다. 심지어, 재고가 뒤죽박죽 쌓인 창고 정리가 첫 번째 임무이자, 새로운 일에 부풀었던 마음은 지레 주저앉아 버린다. 점심 시간조차 상사와 밥 먹은 속도를 맟춰야 하는 등 쉬운 일이 없다. 심지어 퇴근 후의 회식 조차 회사 생활의 연장이다. 하루 일을 마친 여덟 명의 연예인들은 다같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의 일주일을 막막해 한다. 그렇게 <오늘부터 출근>은 첫 날부터 만만치 않은 '샐러리맨'의 생활을 가장 근접하게 그려내고 애쓴다. 


오래 전부터 홍보를 해온 <오늘부터 출근>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홍진호의 출연을 강조한다. 그런데, 막상 첫 회를 마친, <오늘부터 출근>에서 홍진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일과를 마친 홍진호가 '어휴 힘들다'를 내뱉지만, 시청자들은 그가 무엇이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출근하고, 컴퓨터 연결하는 장면 몇몇을 제외하고, 홍진호는 실종되었다 마지막에 한 컷 등장했기 때문이다. 홍진호만이 아니다. 로이킴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 명이 출연자들 중 그들의 첫 회사 생활이 제대로 보여진 이는 거의 없다.

그렇게 <오늘부터 출근>은 말이 여덟 명의 연예인이지,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로이킴에게 의존한다. 물론, 로이킴이 가장 신입 사원 연령대에 맞는 연예인임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나머지 일곱 명의 분량이 너무 없다. 애초에 한 시간 안에 여덞 명을 다룬다는 것이 무리가 있겠다 싶었지만, 그렇게 한 사람에게 몰아 가려면, 뭐하려 애써서 여덞 명을 출연시켰는지 질문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더구나, 로이킴이 누구인가, '표절', '식언' 등으로 물의를 빚고, 쫓기다시피 미국으로 갔던 사람이다. tvn의 주회사 cj가 운영하는 또 하나의 케이블 방송, m.net의 <슈퍼스타k>의 우승자로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리던 참에, 그 일을 겪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용히 다시 등장한 로이킴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 프로그램에서, 나머지 출연자를 들러리로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로이킴에 이어 가장 많은 분량을 얻은 사람은 박준형이다. 그런데, 이 사람, 마치 마흔 여섯 살의 '헨리'같다. 오랜 외국 생활에 한국의 정서, 사회를 전혀 모른 채 천방지축 날뛰는 한국 사람 얼굴의 이방인말이다. 
그런데, 박준형은 마흔 여섯 살이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god로 한국에서 연예인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제 아무리 회사라는 조직 문화에 낯설다 해도, 나름의 연예계라는 사회에 몸 담았는 사람인데, 그의 태도는 과연 그가 연예계 생활을 제대로 해냈을까 의심이 들 정도이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일을 보는 업무 시간에, 회사를 '주유'하며 이 사무실 저 사무실 전전한다거나, 창고 정리를 하며 동료 김성주가 땀을 뻘뻘 흘리는데 즐겁게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거나, '악마의 편집'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한 그룹 god를 이끌었던 맏형이었는가 의심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더구나, 이제 마흔 여섯 살이나 되었는데, 이십대 헨리와 같은 모습을 보이다니! 그는 그간 무엇을 하고 살아왔단 말인가. 이제 <비정상회담>등을 통해, 더 이상 텔레비젼 속의 외국인이 낯설지 않은 세상에, 외국인보다 더 자유분방한 그를, 그저, '외국 생활을 오래 한'이유 때문에 접어주기엔 도를 넘는다. 

출연자의 면면을 떠나,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오늘부터 출근>이라는 샐러리맨 리얼리티의 배경이,  한 눈에도  어느 회사인지 알 수 있는 '대기업'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1404만명의 샐러리맨 시대, 과연 이 중에 대기업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몇 %나 될까? 한 회사의 각 파트별로 사람들을 분산시켜 놓고, 제대로 분량을 뽑아낼 것이 없었다면, 차라리, 이들을 대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아주 조그만 개인 사무실, 생산직까지, 다양한 종류의 직장에 '취직'을 시켰다면 어땠을까? 신입사원의 취직이라며 대번에 대기업의 번듯한 사무실에 출근을 하는, <오늘부터 출근>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취직'하면 '대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은밀하게' 강화시킨다. 제 아무리 케이블이라지만, 이제 tvn하면 명실상부 공중파에 대적할 만한 심지어 그를 능가하는 화제성을 가진 방송국이 되었는데, 예능이라 하더라도, 조금 더 사회적 책임감이 뒤따르는 작품을 만들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9. 21. 12:37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중파 3사의 수목 드라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9월 10일 시작한 kbs2의 <아이언맨> mbc의 <내 생애 봄날>에 이어, 9월 17일 시작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등 세 편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듯한 이 세 편의 드라마, 꼼꼼히 뜯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우선, 이 세 편의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나이가 제법 지긋한(?) 남자 주인공들이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건, 여주인공과 열 여덟 살 나이 차가 설정되어 있는 <내 생애 봄날>의 강동하(감우성 분)다. 마흔 다섯 살의 그는 축산업체 하누라온의 대표이다. 
다음은 <아이언맨>의 주홍빈(이동욱 분)으로 서른 여섯 살의 게임업체 대표이다. 마지막 가장 젊은 남자는,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의 이현욱(정지훈 분)으로 서른 두 살의 작곡가이자, 연예기획사 대표로,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저작권료로 놀고 먹어도 상관이 없이, 애완견과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유산 계급'이다. 


그런데, 이 여유로운 싱글남들에게는 하나같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있다. 그게 과거의 여자들 때문이다. 
강동하는 아내가 죽은 후, 그녀를 떠나 보낸 자책감과 상실감에, 그의 외견을 보면 차마 축산업체 ceo라 차마 연상할 수 없게 홀애비의 추레함과 궁상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살아간다. 
주홍빈도 만만치 않다. 등에서 칼이 돋는 '괴물'이 되는 그의 트라우마에는, 과거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잃은 고통이 담겨 있다.
이현욱은 어떤가? 그가 이제는 작곡도, 연예 기획사 일도 저만치 밀어둔 채 오직 애완견과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그녀를 잃은 때문이다.
그들은 일상 생활을 제대로 영유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받지만(물론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누릴 것은 다 누리지만), 그들의 고통에 사회적 이유는 0.1%도 없다. 

기가 막히게도 하나같이 어쩜 과거의 순애보로 인해, 현재의 삶이 고통받고 있는 이 남자들이,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되는 방식은 또 '기가 막히게도' 과거의 연인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이다. 
아내를 잃은 바다를 쓸쓸히 찾아간 동하, 그는 그곳에서 아내가 죽은 후 처음으로, 그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는 그녀를 만난다. 예전 아내가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처음 만난 그녀가 동하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물론 여기엔 아내의 심장을 이식받은 봄이(수영 분)라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주홍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연히 마주친 손세동(신세경 분)에게서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의 향기를 맡은 후, 그는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현욱도 마찬가지다. 3년전 죽은 애인의 핸드폰에서, 그녀 동생인 여주인공 세나(크리스탈 분)의 음성 메시지를 들은 후, 이현욱은 세나를 쫓는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남자 주인공과 엮인, 과거의 그녀와 연관이 있는 그녀들, 그녀들은, 자신에게서 사랑하는 과거 그녀의 흔적을 잊지 못하는 그들의 집착, 혹은 배려로, 원하던, 혹은 원하지 않던, 도움을 받게 된다. 

정지훈-크리스탈 ‘내그녀’ 티저포스터

자, 여기까지, 이렇게 세 편의 드라마는, 여자 주인공에 비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주인공, 그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그를 등장시킨다. 그는, 현실에서는, 그녀와 맺어지기에는 '도둑놈' 소리를 들을 만한 처지이지만, 그와 그녀를 매개시키는, 과거의 그녀 덕분에, 그들의 사랑은, 개연성을 얻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재벌남, 혹은 그에 버금가는 부유한 남자 주인공과 그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덜한 여주인공의 결합의 변형일 뿐이다. 단지 그런 전형적인 버전이, 동화 버전, 트렌디 버전, 컬트 버전으로 색채만 달리한 것처럼 보인다. <아이언맨>의 경우, 등에서 칼이 돋는 기괴한 설정을 내세우고, 정작, 그걸 풀어가는 건, 지극히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라는 언밸러스한 구성을 보인다. 

단지 이전의 멜로 드라마의 전형에 비해, 남자 주인공의 나이는 지긋해 졌고, 여주인공은 젊어졌다. 그는,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상처를 얻은 시간만큼 부를 축적했다. 대번에, 여주인공의 허기를, 혹은 그녀를 위협하는 주변 상황을 일거해 해결해 줄 만큼의 능력을 지녔다. <아이언맨>의 손세정이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세나는 현재 어렵지만, 시청자들은 다 안다. 그런 그녀가 곧 넉넉한 그로 인해, 그녀가 겪는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것을. 

더구나, 이 가을 새롭게 등장하는 이 드라마들의 설정이 전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심장을 이식받은 그녀, 이건, 이미 윤은경, 김은희 극본, 윤석호 감독 연출의 그 유명한 사계절 시리즈 중 여름에 해당하는 <여름 향기>로 유명해진 설정이다. 그 드라마에서 송승헌이 자신의 사랑했던 여인의 심장을 받은 손예진을 보고 과거의 그녀를 느끼듯이, <내 생애 봄날> 역시, 감우성도, 아내를 잃은 바다에서 만난 그녀에게서 동일한 감정을 공유한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천재 작곡가와 가수 지망생의 만남 역시 몇몇 작품에서 보았떤 익숙한 설정이다. 가요계를 배경으로 신데렐라의 탄생 역시, 낯설지 않다. 

힐링 멜로 <내 생애 봄날>가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 이미지-1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 가을 동시에 이 상처받은 남자들을, 그들을 구원해 줄 어린 동정녀같은 여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멜로 드라마가 출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가을, 더할 나위없이 사랑하기 좋은 계절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장기 불황이 예고된 시점에서, 리모컨을 쥔 여성 시청자들에게, 그녀의 불안한 사회적 정체성을 달래줄만큼 넉넉한(나이 그까이꺼, 차라리 나이가 좀 많더라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자존심을 버틸 만큼,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나잇값을 못하게 아이같은 영혼의, 그래서 그녀가 구원해 주었단 자부할 만한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까?

선선해 지는 날씨와 함께 옆에 누가 있어도 가슴이 스산해 지는 가을, 따스한 멜로 드라마 한 편, 좋다. 하지만, 소리 높여 사회적 의식을 주장하던 상반기 드라마들의 흔적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고,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는, 그 예전에 하던 이야기를 버전만 달리하여 도돌이표처럼 되풀이 하는 공중파 3사의 드라마들, 그렇다고 어느 작품하나, 빼어나게 시청률이 대박을 치지도 못하는 이 작품들을, 온국민이 트라우가 되었던 세월호 사태조차도 그저 이제는 시간이 흘렀으니 지겹다고 하는 이 냉정한 사회적 방기의 계절에, 그저 가을 탓이라고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울 육아 비용이 무서워 아이를 낳기 두려워 하고, 결혼 자금이 없어 결혼도 미루는, 이 처참한 불황기에 말이다. 현실의 사회적 배경은 단 1%도 드리워져 있지 않은, 결국은 부유한 그와, 그보다 가난한 그녀의 만남을, 혹은 부유한 그와 그와 어울릴만한 배경의 그녀가 만나는 이야기를,  그저 아름다운 순애보로 이 가을을 달래야 하는가 말이다. 


by meditator 2014. 9. 19. 13:40

새로 선출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두번에 걸친 평가 결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자사고(자율형 사립 학교) 8곳에 대해 지정 취소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서울시 교육청의 방침에 대해 그 협의 신청을 반려하고, 심지어, 협의하도록 한, 초중등 교육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다. 

<썰전>은 이런 최근의 '자사고' 지정을 둘러싼 서울시 교육감과 교육부의 입장 차이에 대해 다루었다. 

(사진; 아주 경제)

우선, 과연 <썰전>의 두 패널이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객관적인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짚어 보아야 한다.

프로그램 중에서도 밝혀졌듯이, 두 패널 중 강용석은 현재 '자사고'에 다니는 큰 아들을 두고 있고, 또 다른 패널인 이철희는 '자사고'를 졸업한 큰 아들과, 일반고에 다니는 작은 아들을 두고 있다. 즉, 그간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 이철희와 강용석이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자사고'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처한 조건이 상대적이지 않다는데 우선 '자사고' 문제를 다루는 한계가 드리워진다. mc 김구라가 있지 않냐고? 힙합퍼를 지향하는 바람에 평소 공부와 담을 쌓은 김구라의 아들은 일반고를 다니지만, 우리나라 일반 학부모들이 '아들의 학교 성적이 곧 나의 얼굴'이라는 선입견이 지배하듯, '자사고' 문제에서 김구라는 상대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 둔 학부모의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자녀 중 실제 '자사고'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이철희, 강용석은, 당연히 그들이 다루어 왔던 여타 정치적 사안에 대해, 한 발 물러나 평론가연 하는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보다 자신의 이해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해내 나갈 수 밖에 없다. 
아니다. 이런 평가는 어패가 있다. <썰전>에서 늘 강용석은 그래왔다. 늘 자신의 정치적 입장, 혹은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사안을 바라보며 입장을 전개한다. 여당의 저격수로서의 향수인지, 사명감인지, 그도 아니면 차기를 노리려는 정치적 꼼수인지, 그런 자신의 정치적 이해가 분명한 관점에서, 야당의 지도자 안철수와 박원순을 공격하고, 여당의 지도자들을 평가해 왔다. 그의 그런 분명한 정치적 이해는, 그가 준비해온 광범위한 자료와, 그의 풍부한 식견 속에 묻혀, 그의 속된 입장을 포장해 왔으니 '자사고' 문제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오히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자사고'에 대해 호의적이기에 '자사고' 문제에 있어 그저 '새 교육감이 의욕적으로 일을 좀 해보려고 하니, 두고보자'는 식으로 밖에, 혹은 '자기만 사랑하는 학교'가 될 수 있다고 한 줄 평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철희의 어정쩡함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맞겠다. 

그렇듯이, '자사고'에 대한 조희연 교육감의 의욕적이 철회 결정은, 실제 '자사고'를 다녔거나, 다니는 학부모를 두 패널의 사적 이해로 인해, 애초에 객관적 평가를 결여한다. 
객관적으로 논해야 할 사안에, 강용석은, '학교 커리큘럼이 대학 입시에 딱 맞춰져 있다'라거나, '외부 강사를 데려와 독서 강좌를 하'는데 그게 '입시 교육을 위한 것이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라는 식으로, 그리고 다니고 있는 아들이 몹시 만족하고 있다는 지극히 사적인 평가를 한 치도 넘어서지 않는다. <썰전>을 본, 내 아이를 대학 입시에서 승리하고 싶은 어느 부모가 강용석의 말을 듣고는 조희연 교육감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겠는가.
아니, 강용석은 늘 그래왔다고 치자, 정작 문제는 이철희다. 자신의 아들을 만족스럽게 '자사고'를 보냈던 그는 '자사고'의 문제점에 대해, 그저 '자신만을 사랑하는 학교'라는 한 줄 평 이외에 이렇다할 '자사고'의 문제점을 들지 못한다. 
오히려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짚는다면서, 일반고에 다니는 둘째 아들의 사례를 들어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빠져나간, 그래서 1/3이나마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일반고의 수업 환경을 논한다. 그러니 그에 대해 당연히 통계를 좋아하는 강용석은 만약 '자사고'를 폐지한다 해도, 각 반 별로 한 두명 배정되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라는 당당한 반론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 내 자식을 '자사고'에 보내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자사고'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두 패널의 평가는, 형식적으로는 조희연 교육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지만, 결국, 교육부 장관의 강고한 입장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자기 자식 좋은 학교 보내겠다는 학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정치적 공정성이고 나발이고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사고'의 문제에서 이 두 패널이 짚어야 했으나 짚지 않고, 짚을 수 없었던 논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두 패널,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강용석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강용석이 누구인가, 물론 그 자신이 컴플렉스처럼 말하지만 뺑뺑이라도 우리나라 제 1의 명문이라고 하는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를 다니고, 하버드대를 나와 사법 고시에 나온 수재이다. 그뿐인가, 변호사 출신의 그는 여당 국회의원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이력의 이면에서 강용석은 어떤 사람인가. 국회에 있을 때, 여당 저격수랍시고, 상대당의 대표적 정치인에 대해 막말을 불사했으며, 아나운서 들에 대해 성희롱을 하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썰전>에서도 여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패널로 나섰지만, 여당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 혹은 지극히 사적 이해에 충실한,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가진 온갖 지식과 정보를 동원하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자신의 사적 이해에 충실한 자신의 모습을 당연시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강용석인 것이다. '자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그의 식견은 자기는 시험 봐서 경기고 나오고, 자기 자식은 외고 나온 사람이, 나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식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리고 그런 강용석은, 바로 이철희가 겨우 한 마디 내놓은 '자사고'에 대한 한 줄 평, 자기만 사랑하는 학교 자사고라는 평가의 바로 그 '자기만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경우이다. 
'자사고'의 '그들만의 리그'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끼리 모여 그들끼지 공부하고, 그들끼리 지낸, 그 아이들은, 아마도 대부분, 우리나라 상위 몇 %의 직위를 가진 '리더'들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일찌기 그들끼리 지내온 그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공부 시간에 조는 아이들,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눈꼽만치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백날 서울대 나오고, 하버드 나오면 뭐하는가, 자신의 개인적 이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당연히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적 사안, 행정적 사안이 그러하듯,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마치 무슨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도 되는 양 선심쓰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랑 한반에서 공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성향을 지닌 다양한 아이들이 한 반에서 어우러진 문화적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엘리트가 되어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강용석 같은 사람만 양산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왜 '자사고'에서 돈을 들여 외부 강사까지 초빙하여 하는 풍부한 독서 교육을 정작, 공부에 관심이 없는 일반고 학생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공부에 관심이 없으면 없을 수록 또 다른 선택을 위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저 교실에 가둔 채 성의없는 수업으로 고문하게 만드는 지금의 일반고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 하지 않는 것이 무슨 '자사고'에 대한 평론인지? 결국 내 자식 문제에 이르러서는, 내 자식 '대학 잘 보내주는 학교'에 대해서는 약해지고 마는 이중성이 <썰전>의 자사고 문제에 대한 꼭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깨어있지 않은 지식인, 자신의 이해에만 민감한 지식인, 바로 이런 사람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도, '자사고'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9. 19. 11:13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100회를 맞이하여 특집으로, 그간 화려한 무대, 아름다운 음악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수고해 왔던 '세션맨'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덕분에 우리가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본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9월 <ebs다큐 프라임>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지탱하는 악기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름하야,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지만, 그것을 통해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 음악을 한다는 행위, 그 자체이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서두는 슬프게도 악기들의 무덤이 연다. (1부; 악기들의 무덤) 강원도 산골의 창고, 한때는 영광을 누렸던 악기들이 폐품이 되어 모여든다. 200년의 전성기를 누렸던  바이올린도, 음악사의 전기를 이뤘던 전자 기타도, 그 거대한 존재만으로도 아우라를 뿜어냈던 그랜드 피아노도 이제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죽어간다. 마치 영화<토이스토리>의 버려진 장난감들처럼, 한때의 영광을 논하지만, 이젠 그저 무덤과 같은 창고 속에서 숨죽인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던 이곳에, 국내 최고의 악기장 6명이 찾아든다. 그들의 손에 의해, 무덤이었던 창고는 작업장으로 바뀌고, 죽었던 악기는 생명을 얻어간다. 그리고 찾아든 연주자들, 그들과 함께 죽어가던 악기는 음악을 연주하고, 그것을 통해, 악기의 존재 이유를 살핀다.


1부가, 음악을 통해 살아나는, 그리고 역으로 악기를 매개해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폈다면, 2부는 조금 더 악기 자체에 집중하여, 악기의 특성을 살핀다. 2부가 시작되고, 피아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전자기타 등의 연주자들이 저마다 자신있는 곡을  뽐낸다. 하지만, 그들이 제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곡을 연주해도, 저 마다 악기가 뿜어내는 음악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악기의 또 다른 존재론, '함께 하기'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2부; 악기와 악기가 만났을 때) 한양대 작곡가 정건영 교수의 수업을 매개로, 슈페르트 교향곡의 오보에와 클라리넷 합주에서 부터 시작하여, 동요에서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함께 하는' 음악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저 소리가 커진다, 음역대가 넓어진다라는 단순한 특성을 넘어, 결국 통찰력있는 진실에 다가간다. 


2부가 악기의 합주를 통한 존재론의 특성을 살폈다면, 3부는, 악기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학과 학생들, 미디어 아티스트, 카이스트 학생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세상에 없는 악기를 만들기를 도전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이들뿐이 아니다. 악기를 변형하거나 손수 제작하여 연주하는 '저그 밴드'가 연주하는 것은 빨래판, 양동이, 그리고 대걸레자루이다. 명주실에 종이컵을 끼워 모짜르트를 연주하는 스트링그래피도 있다. 멋진 연주가 아니라도, 당근, 브로컬리, 무에 구멍을 뚫으면 그럴 듯한 관악기 소리를 낸다. 얼음이나, 물방울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결국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에 도전하는 전병준 미디어 아티스트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며, 우리가 마음을 연다면 그 음악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의 틀에 박힌 선입견을 깨기 위해, 빛과 소리와, 공기, 그리고 알루미늄 튜브, 피아노의 진공관, 톱니 바퀴, 심지어 총을 사용하여 새로운 악기와 음악을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 악기와, 그 악기들의 합주는, 물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음악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어딘지 음악같다. 마치 잭슨 폴락이 구멍 낸 물감통을 캔버스 위에 일정한 진폭으로 흩뿌려 현대 미술의 새로운 사조를 만들듯이, 그렇게 전병준과 함께 한 동료들은,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대해 전병준은, 그들이 만들어 낸 음악보다도, 그렇게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해 가는 그 움직임, 행위 자체가 음악 같다는 말을 한다.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는 음악의 귀결점은, '듣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음악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상대방이 연주하은 음악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음악을 함께 하기 위해서, 전제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이해이다. 
1부에서 무덤에서 악기를 되살려 낸 것, 그리고 그들을 다시 악기이게 만든 것은 바로 다름아닌, 악기와 동고동락하던 '인간'들이다. 
결국, 3부작 '악기란 무엇인가'는, 한낮 물건에 불과한, 악기를 매개로 한 인간의 도전과,화합, 그리고 창조의 역사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4. 9. 18. 14:27

오락적 성격이 보다 강한 kbs2tv에 대표적 육아 예능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있다면, 그 보다 교양적 성격이 강한 kbs1tv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방영하는 <엄마의 탄생>이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가 육아를 전담하는 이벤트적 성격이 강한 육아 예능이라면, <엄마의 탄생>은 아기의 임신, 출산, 육아 과정을, 육아의 직접적 담당자인 엄마를 중심으로 그려내는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지향한다. 하지만,  kbs1의 편성이고, 시사 교양이라는 구분에도 불구하고, 막상 지켜본 <엄마의 탄생>은 이제는 빼곡히 채워져가는 육아 예능의 남은 행간을 채우는 또 하나의 관찰 예능적 성격이 강하다. 


<엄마의 탄생>이 시작부터 화제성을 끌기 시작한 것은, 바로 어렵게 아이를 가진 강원래-김송 부부의 출산 과정을 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이제 개편과 함께 수요일 저녁으로 시간을 옮긴 <엄마의 탄생>은 강원래-김송 부부의 재등장으로 다시 화제성을 이어가고자 하고, 그런 제작진의 판단이 옳았음을 동시간대 1위의 성적표로 증명한다. 어쨋든 여전히 '육아 예능'은 대세다. 

image
(사진; 스타뉴스)

9월 17일 방영된 <엄마의 탄생>은 세 개의 꼭지로 진행되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박지윤이 mc를 보는 가운데, 엄마가 아닌, 세 아빠가 자리를 함께 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육아 과정을 지켜본다. 
첫 번 째 꼭지로 등장한 것은, 화제의 강원래-김송 부부이다. 감격의 출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슈퍼 베이기가 된 우람한 강원래- 김송 부부의 2세 강선을 키우는 과정이 그려진다. 집안 서열 1위로 막말도 불사하던 카리스마 가장 강원래는 사라지고, 아들 선이와, 그에게 모든 관심이 쏠린 아내 김송이 중심이 되어버린 육아가 중심이 된 가정의 밀려난 아빠 강원래의 적응기가 그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갖은 감탄사와, 즐거운 비명, 그리고 아이와 대화를 빙자한 갖은 희한한 육성을 발산하는 아내를 외계인 보듯하면서도, 밀려난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기는 커녕, 아이로 인해,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고 그리고 기쁘게 감내해 가는 달라진 아빠 강원래를 만날 수 있다. 

강원래- 김송의 출산 과정에서의 화제성을 이어가려는 듯, 두 번째 꼭지의 부모는 아직 출산을 앞둔 염경환-서현정 부부이다. 9월 17일 방영분에서, 염경환과 그의 큰 아들이 태어날 아기를 위해 신생아용 침대를 직접 만드는 과정은, 이미 다수의 육아 예능에서 등장했던 이벤트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던 환경에서 첫째를 키우고, 그 보다 여유가 생긴 환경에서 침대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 염경환의 형편이, 평범한 침대 만들기를 잔잔한 감동으로 이끈다. 작은 아기 침대에 들어가 있는 큰 아들을 보며, 그리고 아내가 보관해 온 큰 아들의 배냇옷을 다시 보며, 여유가 없어 침대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큰 아이에게 미안해 하는 염경환 부부의 회고가, 뻔한 이벤트에 다른 질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9월 17일 방영분의 백미는 이제 7개월이 되어가는 지아를 키우는 여현수-정혜미 부부의 이야기이다. 육아책을 선생님처럼 신봉하던 엄마 정혜미, 하지만, 그런 모범생같은 엄마의 이면에는,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노심초사가 드리워져 있다. 혹시나 아이가 잘못될까 하는 불안감에 아이를 띠어 놓지 못하는 첫 아이 엄마 정혜미의 불안감이, 결국 스스로 기는 것을 연습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성장발달 검사의 부진으로 이어지자, 부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육아 방식을 고민한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장치를 마련하고, 부부는 딸 지아를 혼자 앉혀보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앉혀 놓기가 무섭게 쓰러지는 지아를 보고, 엉마는 늘 그랬듯이 달려가 일으켜 주려고 하지만, 아빠 여현수는 소아과 의사의 충고를 들며 그런 엄마를 제지한다. 아빠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해 하는 엄마, 하지만, 그런 엄마의 고뇌(?)가무색하게 몇 번을 넘어지던 지아는, 허리를 쭉 펴고, 팔로 지탱하며 스스로 앉아 보인다. 결국 엄마의 과보호가 아이가 스스로 발육할 수 있는 상황을 막았음을 지아 스스로 증명해내 보인다. 

(사진; 스포츠 월드)

여현수-정혜미네 가족의 해프닝은 그저 과보호 엄마의 웃픈 상황이 아니다. 첫 아이를 키우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두고 벌일 수 있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요, 거기에는 앞으로 내 아이를 어떤 육아관을 가지고 키워가야 할 것인가라는 부모의 육아 철학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담겨있다. 
'육아', 말 그대로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는 것이지만, 지아가 넘어지면서 스스로 앉는 법을 터득해 내듯이, 때로는 그 아이를 키운다는 말 속에는, 그 아이가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 이제 아이를 낳아도 하나 정도씩만 낳는 것이 관행이 되어가는 현재의 대한민국 육아 상황에서, 여현수-정혜미 부부의 해프닝은 '보호'가 아닌, 진정한 '육아'가 무엇인가에 대해, 모두가 한번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현수-정혜미 부부의 육아 과정을, 그저 예능적 재미가 아니라, 육아의 진지한 고민으로 들여다 볼 때, <엄마의 탄생>은 한낮 관찰 예능의 경계를 넘어선다. 

프로그램 중에서도 나왔듯이, 한번 입었던 옷이 벌써 작아서 입을 수 없듯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육아 과정은, 프리즘처럼 다채롭다. 아직 출산전부터 시작하여, 생후 5개월, 7개월, 비록 몇 개월의 차이이지만, 엄마의 뱃속에서 부터, 스스로 앉을 수 있게 되기 까지, 성인의 몇 십년 보다도 더 다이내믹한 과정이 보여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다. 범람하는 육아 예능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빽빽거리고 울며 보채지 않는, 남의 집 아이 키우는 걸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by meditator 2014. 9. 18. 11:18

지난 2월 종영한 <유혹>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에서, 주제 의식을 끌고가는 화자는 송미경(김지수 분)이다. 그녀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이 자신 외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걸 '감지'한 송미경은 나은진(한혜진 분)과 같은 쿠킹 클래스를 다니며 그녀를 지켜본다. 하지만, 송미경의 분노는, 그녀보다 한 발 빠른 동생 송민수(박서준 분)의 섣부른 복수로 일찌감치 행적이 드러나 보이고 만다. 하지만 송미경은 당당하다. 비록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가정을 꾸려왔던 남편, 자신과의 사이에 아이를 둔 아빠인 남편을 빼앗아 간 그녀를 '단죄'하는 것에. 
<따뜻한 말 한 마디>란 드라마 역시 처음 견지했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유재학과 나은진이 잠시 서로에게 '미혹'되지만,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가정이 있는 존재임을 놓지 않는다. 결국 덕분에 드라마는 흔들렸던 두 가정의 행복으로 끝난다.
그런데 만약,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가, 가정의 행복과, 안녕을 주제 의식으로 삼지 않았다면, 나은진의 자아 찾기, 사랑 찾기가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 버렸다면 어땠을까? 동시간대 1위는 아니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공감가는 송미경의 처지로 인해 화제를 불어일으켰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아마도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했던 바로 그 월,화 10시에 방영된 드라마 <유혹>은 바로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대척 지점에 있는 주제 의식을 논하고자 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치자면, 나은진이 사랑을 찾아 유재학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막장'을 피하고자, <유혹>은 여러가지 장치를 준비한다. 우선 '사랑'을 도발하는 주인공 유세영(최지우 분)는 사랑도 모른채 마흔이 넘어 조기 폐경이 오도록 회사 일에만 매달리는 ceo로 그려진다. 그러던 그녀가 홍콩에서 만난 사이좋은 차석훈(권상우 분)-나홍주(박하선 분)를 보고 알 수 없는 질투를 느낀다. 자신은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데, 한없이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 부부부에 대해, 뜬금없이, '파멸'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세영은, 선배와 운영하던 회사의 자금으로 인해 막판으로 몰린 차석훈에게 '돈'을 매개로 한 '사랑'의 딜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보험금을 바라며 '자살'까지 감행하려던 사랑하는 아내을 생각하며, 유세영이 던진, '함께 하는 3일'의 딜에 손을 맞잡는다. 

(사진; 스포츠 투데이)

굳이 몇 달전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끄집어 낸 것은, 바로 <유혹>의 시작점에 놓인,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의식에 따른 부도덕한 계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결국 '순애보'로 마무리 지어져도 두 사람의 만남을 매개했던 '돈'으로 얽혀진 '원죄'를 <유혹>은 넘어설 수 있었을까?또한 과연 종영을 맞이한 <유혹>은 이런 부도덕했전 가정 파괴의 원죄를 극복했을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유혹>은 갖은 장치를 마련한다. 
정작 차석훈 가정을 파멸에 이를 '딜'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세영은 차석훈을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그에 반해,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차석훈을 구하려 했던 나홍주는 불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나홍주의 계속되는 의심과, 그에 이은 불신은, 차석훈과의 가정을 깨는 주체를 나홍주로 만든다. 심지어 '이혼'하기도 홀가분하게 차석훈과 나홍주 사이에는 억지로 두 사람의 결혼을 이어붙어야 하는 '아이'조차도 없다. 덕분에, 홍콩에서 유세영의 딜은 그저 해프닝으로 덮어진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정을 깨뜨린 유세영과, 그녀에게 미련을 놓지 못하는 차석훈에 대해 나홍주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녀 자신이 먼저 복수의 도구로, 강민우(이정진 분)의 가정을 이용한다. 나홍주가 유세영만큼, 혹은 유세영보다 더 부도덕한 길로 가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차석훈과 나홍주의 가정을 깨뜨리고 싶다는 유세영의 '욕망'은 어느 틈에, 평생을 사랑 한번 못해 본, 그리고 이제 '암'까지 걸린 고통받는 운명의 자아 성찰이자, 순애보로 돌변한다. 

물론 유세영의 순애보의 여정도  만만치 않다. 자신을 망가뜨리며 덤벼드는 나홍주의 복수심에 손을 잡은 강민우 덕분에 유세영의 회사는 위기에 빠지고, 차석훈은 하는 일마다 태클을 받는다. 하지만, 단 한번의 유세영의 딜에,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남편을 구하려던 나홍주가 결혼을 파괴하는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과 달리, 유세영은, 그런 위기 상황을 겪으며 오히려 차석훈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키워간다. 나홍주가 믿지 못했던 '사랑'을 유세영은 오히려 의지한다. 
하지만, 댓가는 치명적이다. 유세영은 마치 그녀의 도덕적 딜의 죄가라도 되는 양,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수술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차석훈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일말의 기회조차 놓친다. 그리고 이제, 언제 끝날 지 모를 항암 치료의 여정만 남아있다. 하지만, 유세영은 다시 일어선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차석훈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에서 유세영의 순애보로 명명한 것은, <유혹>의 주체가 유세영이기 때문이다. 안스럽게도 차석훈은, 지금까지 일반적인 멜로 드라마의 '사랑받아 마땅한' 그녀처럼, 그저 사랑받아 마땅한 그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삶을 위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유세영이 던진 며칠 밤의 딜을 마다지 않았던 책임감있는 가장(?)이었던 차석훈은, 아내가 홀로 떠나자 뜬금없이 유세영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홍콩을 주유하는가 싶더니, 언제부터인가, 유세영에게 사랑을 바치는 순애보의 기사가 되었다. 그게 나홍주이든, 유세영이든, 그는 언제나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셋팅된 사랑의 로봇과도 같다. 

만약 <유혹>의 캐스팅이, 지금처럼 유세영 역에 여전한 당대의 스타 최지우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최지우가 나홍주의 역을 맡았다면, <유혹>의 스토리가 지금처럼 전개되었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떠올리면 그래서는 안되는 건데, 이상하게도, <유혹>은 첫 회부터, 고고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최지우가 연기한 유세영에게 마음이 쏠리게 된다. 분명, 나홍주와 차석훈이 부부인데, 불륜인 유세영과 차석훈에게 마음이 간다. 정식 아내는 나홍주인데, 어쩐지 그녀가 미덥지 않다. 오히려 이 부부를 탐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유세영에게 마음이 자꾸 쓰인다. 이것이, <유혹>의 매력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최지우의 매력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독설을 내뿜던 송미경에게 열광했던 바로 멜로 드라마의 애청자층이, 이번에는 <유혹>의 불륜을 품은 순애보에 열광했다는 것이다. 가정 파괴를 부르는 불륜을 징벌하고자 하는 도덕적 잣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서도 놓치지 않는 순애보로 포장된 유혹은 그저 또 다른 이야기였을 뿐일까? 그게 아니면, 현실에서는 가정을 공고히 하고 싶지만, 나도 유세영처럼, '돈'으로 시작해서라도, 다시 한번 누군가와 순애보를 이루고 싶다는 숨겨진 욕망의 발현이 <유혹>이라는 기괴한 판타지로 드러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남편의 신실함을 믿지 못했던 나홍주의 어리석음에 대한 우화였을까?

주 시청자층의 아이러니한 열광만큼, <유혹>은 비록 차석훈과 유세영의 앞날을 알길 없는 모호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실한 순애보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드라마의 시작을 지켜 본 사람으로 뒷맛은 개운치 않다. 과연, 비록 몸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하룻밤의 딜이, 저렇게 순애보로 기승전결이 이루어 지는 것인지, 도덕적, 논리적 딜레마에서 놓여나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서슴없이 욕망을 순애보로 마무리하는 그 얕은 환타지에 쉬이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일까? 


by meditator 2014. 9. 17.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