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 화, 수 9시 50분에 방영되는 ebs 다큐 프라임은, 지난 주에 이어 월, 화요일까지, 5부작 <생과 사의 강, 브라마푸트라>를 방영하였다. 그리고 수요일 밤, 남은 한 회차의 <다큐 프라임> 시간에는, 2012년 9월 22일 방영하였던 <길위의 천사>를 재방영하였다. 재방영이란 말이 무색하게, <길위의 천사>는 돈에 쫓기어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와 직업적 소명 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마련해 주는 수작이다.

 

길위의 천사라 불리는 '창린 창'의 직업은 우편배달부이다.

편지를 전해주는 우편배달부가 왜 '천사'가 되었을까? 그를 천사로 만든 건, 바로 그가 우편배달일을 하러 다니는 곳이 묘족 마을이기 때문이다.

 

묘족은 중국 남부 귀주, 호남, 운남, 광서, 해남 등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소수 민족으로, 그 중에서도 묘령산맥과 무릉 산맥 등 산간 지방에 주로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다. 여자들이 검은 바탕에 화려한 수가 놓인 옷을 입고, 금빛 장식이 화려한 관과 같은 모자를 쓰는 이들은 중화주의 속에서도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묘족 우편 배달부 창린 창에게로 가면 이런 묘족의 삶의 조건은 곧 고난의 상징이 된다. 그를 천사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산간 벽지의 묘족 마을, 그곳에 우편 배달 일을 하기 위해서는 꼬박 나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나흘이 아니다. 노새나 나귀도 갈 수 없는 99고개라 불리는, 풀이 무성해지는 한 여름에는 제초를 해주지 않으면 길조차 사라져버리는 꼬부랑 길을 60여킬로가 넘는 우편 물을 지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 거리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짐꾼들이 지는 두툼한 장대가 휘어질 정도로 우편 배달 가방을 양쪽으로 매달고 창린 창은 길을 떠난다. 그가 우편 배달일을 하게 되는 바람에 홀로 농사를 짓게 된 아내는 가파른 고개를 넘다 굴러 멍투성이가 되거나, 심지어 앞니를 잃는 우편 배달일을 만류했다. 하지만, 미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길을 떠나는 남편을 보고, 그저 이제는 건강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길 위의 천사 - 귀주성 진핑 우편배달부 창린창   (EBS 다큐프라임) http://www.youtube.com/watch?v=jGLnNpIkg-o

 

서둘러 우편 배달일을 하기 위해 창린 창은 차려 준 아침도 마다하고 길을 서두른다. 23개의 마을을 돌기 위해서 사흘 밤은 묘족 마을의 어느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한다. 손주의 대학 입학 합격 소식도, 반대로 손주만 남기고 돈을 벌러 떠난 아들의 소식도, 세간의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도, 의료진료소의 귀한 약품도 창린 창의 발걸음이 아니고서는 묘족 마을에 닿을 길이 없다. 그저 소식을 전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묭멘 어족 몽어파 먀오어 군'의 독자 언어를 가진 묘족이지만 그것을 표기할 문자를 가지지 못한 묘족은 한자를 빌어 자신의 말을 표기해 왔다. 그러기에, 편지를 가져다 주어도 읽지 못하는 문맹인들이 많아, 창린 창의 임무는, 그것을 읽어주는 것까지이기도 하다. 편지가 전해준 기쁜 소식의 기쁨도, 슬픈 소식의 아픔도 제일 먼저 나누어 주는 것도 창린의 몫이다. 어디 그뿐인가. 친구가 없는 산골 마을 꼬마의 친구 역할까지. 창린의 임무는 끝이 없다.

 

그까이꺼 우편배달부가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창린의 나이의 또 다른 남자들은, 돈을 벌기위해 자식마저 늙은 부모에게 맡기고 도회로 떠난다. 하지만 도회로 떠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파괴된 가정과, 3년이 되도록 보지 못한 자식의 얼굴이다. 자본주의의 공습은 산골짜기 묘족의 마을도 피해가지 않아, 묘족 마을의 젊은이들은 자꾸 문명으로 향한다. 그런 와중에, 창린은 미련하리만치, 자신 한 몸 대신, 묘족 마을의 소식 알리미를 택한다. 고개에서 굴러 아픈 몸으로 장대에 달린 60여 킬로의 무게를 버티는 것은, 낯선 마을, 바닥에 깔린 모포 한 장의 잠자리로 버티는 며칠의 떠돌이 생활을, 밥벌이의 고단함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대신, 다큐는 그에게 '길위의 천사'라는 제목을 붙여주고, 다큐를 보다보면, 진짜 그가 천사의 현신인 듯 느껴진다.

 

물론 묘족 마을의 창린 창 만이 아니다. 99고개를 넘어 나흘을 집 밖으로 떠돌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에도 여전히 시골 마을 노인분들의 말벗을 마다하지 않는, 거센 풍랑을 헤치며 외딴 섬에 소식을 전하는 우편 배달부들이 계신다. 그런 분들이 자신의 직업을 완수하는 과정은, <길 위의 천사>에서 다큐가 지켜보듯이, 단 몇 푼의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흔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는 있지만, 우편 배달부가 행여 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동네 주민들이 나와, 그가 오는 길에 앞서 풀을 베고, 소식을 전해줘서 고맙다며, 손주 대학 합격 잔치의 상석으로 기꺼이 인도하고,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러주는 묘족들의 일상은, 이기적 잣대와, 계산 속에 소통마저 상실해가는 현대인들에겐, 경험해 보지 못한 노스탤지어의 감상을 자아낸다.

 

여전히 느리게 돌아가는 구비구비 99 고개 저 너머의 묘족 마을, 그 마을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바깥 세상의 소식을 가장 빠른 발걸음으로, 가장 느리게 전달하는 창린 창의 모습은, '천사'라는 말로도 설명할 길 없는 인간적 아름다움이다.

 

by meditator 2014. 10. 2. 14:37

10월 1일 394회를 맞이한 <라디오 스타>가 마련한 특집은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특집으로, 가수 설운도와 그의 아들 아이돌 그룹 엠파이어 보컬 루민과 개그맨 장동민과 그의 아버지 장광순씨가 연예인 부자로 출연했다.

 

10월 1일 라디오 스타의 포인트는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라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설운도-루민 부자와, 장동민-장광순 부자의 다른 관계에 있다.

 

아들의 생일도 모르는 아버지 설운도, 아들 루민이 무슨 말을 할라치면, 방송에 나와서 할 말을 가려 해야 한다며 하고픈 말이 많다는 아들의 입을 지레 막는다. 아버지의 무심함에 서운한, 그리고 그에 동조한 mc들이 무심한 아버지 설운도의 자세를 지적할라치면, 역으로 일년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행사를 뛰는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며 불가피한 처지를 역설하고, 그게 아니라면 자신 못지 않게 돈이 필요해야 아버지를 찾는 야속한 아들들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런 설운도 부자와 사사건건 비교 대상이 되는 건 개그맨 장동민과 그의 아버지의 남다른 부자 관계이다. 아버지라기보다는 나이 많은 형같다는 아버지 장광순에게 장동민은 '밥 먹을까' 식으로 늘 친숙하게 반말을 건네며, 일찌기 고집스레 먼지를 집어먹던 고집스런 아기 장동민을 간파하고 그가 무슨 일을 하던 반대를 해본 적이 없다는, 장광순의 '자유방임주의'는 모든 면에서 설운도네 부자와 비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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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 경졔)500,802

 

사고싶은 오픈카가 있어, 방송을 통해 아들에게 확인 도장을 받고 싶어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아직 그리 나이들지 않은 연세에 손주나 보기엔 아깝다며 고깃잡을 준비하는 아들, 격식은 없지만, 격식 없음이 무례가 아니라, 편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걸 보여준 장동민 부자의 관계는, 요즘 젊은 부자들의 이상적 모습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사사건건 mc들의 태클을 받는 설운도는 이제는 과거의 한 장이 되어가는,

이른바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돈을 벌어오는데 치중하며, 그것을 통해 모든 권위가 생성되어가는, 이전 세대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설운도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돈이 필요해야 자신에게 연락하는 아들에게,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면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 힘을 키우라는 아버지 설운도는, 흡사 자신의 새끼를 벼랑 아래로 밀어넣는 맹수들의 제왕 사자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아버지이지만, 단지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 자기 자식을 파악하고,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는 결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이, 시간이 흐를 수록 드러난다.

그토록 자유분방하던 아버지 장광순도 아들 장동민이 대학을 나온 장동민이 개그 시험 준비를 한다면 친구들과 방구석에 틀어박힐 땐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결국 아들에게 한 소리를 하고야 말았으며, 집에 온 여자 친구를 '박대하는' 설운도의 속깊은 곳에는, 잦은 아들의 이성 편력을 걱정하는 자상한 배려심이 숨겨져 있다.

 

달라도 너무 다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에선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설운도-루민, 장동민-장광순 부자의 토크는, 말끝마다 '괜히 나왔어'를 반복하는 설운도의 언급이 후렴처럼 반복되었지만, 훈훈한 웃음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훈훈했던 분위기와 달리, 보면 볼수록 연예인 부자의 그 익숙한 구도가 어디서 본 듯하다. 부자 관계에 불을 지피는 김구라의 익숙한 멘트, 그에 대해 발끈하는 설운도, 그런 설운도가 들으라는 듯, 자기 가족 자랑을 하는 장광순, 바로 매주 토요일 밤 찾아오는 <세바퀴>에서 자주 보았던 토크의 스타일이다. 아니 10월 1일의 <라디오 스타>는 아예 <세바퀴>의 출연진 중 한 부분을 담씩 들고온 것 같다. 출연자들이 나이가 중후하기에 함부로 못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은근히 툭툭 건드리며 할 말은 다하고 보는 스타일의 토크에서부터, 서로 다른 관계의 선명한 대비까지. <세바퀴>를 통해 너무 익숙한 것들이다.

 

이런 <세바퀴> 식의 <라디오 스타> 특집은, 무슨 이유때문이었을까?

이제는 온갖 조합을 다 갖다 꿰맞추다 보니, 소재가 고갈되어, <세바퀴>의 스타일조차 베껴야하는, 그게 아니라면, 모처럼 신선하게 <세바퀴>식의 게스트 조합과 토크가 차용한 것이었을까?

혹시나 그도 아니라면, 동시간대 타 방송국에서 중년층을 타깃으로 한 것이 분명한 <풀하우스>를 저격한 공격적인 기획이었을까? 하지만 공격적인 기획이라기엔, 동시간대 경쟁작 <풀하우스>의 시청률은 <라디오 스타>가 견제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신선한 모색이었든 궁여지책 답습이었든,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특집은 훈훈한 재미는 있었지만, 어쩐지 익숙한 허전함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주 노골적인 홍보를 위한 차태현과 그가 출연했던 영화의 감독, 또 다른 출연자로 급조된 특집이 뜻밖에도 전형적인 <라디오 스타>의 맛을 살렸던 것과 달리, 이번 주, 준비된 특집,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특집은 오히려 홍보보다도 그 맛이 덜 <라디오 스타> 같다.

결국 <라디오 스타> 다움은 기발한 특집 문구와 조합에서 마련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가 오더라도, <라디오스타>가 되는, <라디오 스타>만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개성에 있다. 그런 면에서 10월 1일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특집은, 재밌었지만, <라디오 스타> 답지는 않았다.

 

 

 

by meditator 2014. 10. 2. 10:27

kbs2를 통해 방영중인 <연애의 발견>은 시청률표에서 늘 고전한다. 월화 드라마중 1위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뿐더러, 시청률 순위표에서 그 이름을 찾기 조차 힘들 때가 많은 정도로 꼴찌는 따 논 당상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즐겨가는 인터넷 공간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중이나, 방영되는 이후에 다수의 공간에서, 드라마의 내용들을 가지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집계되지 않은 '히트 드라마'이다. 


곰곰히 <연애의 발견>의 스토리를 들여다 보면, 아주 익숙한 것들이다. 
한여름(정유미 분)이라는 공방을 운영하는 젊은 여주인공이 있다. 그녀가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는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남하진(성준 분)이다. 조만간 결혼 약속을 할 거 같은 더할 나위없는 선남 선녀 커플이다. 하지만, 어려운 공방 사정과, 아직 채 다 갚지 못한 학자금때문에, 한여름은 선뜻 남하진과의 결혼을 서두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성형외과 의사를 둔 하진의 어머니는, 하진에게 좀 더 번듯한 조건의 여성과의 맞선을 주선하고, 그 사실을 안 한여름은, 분노에 차, 그의 맞선 장소로 돌진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정작 한여름이 마주친 것은 5년 전 헤어진 전남친 강태하(에릭 분)이다. 
로맨틱했던 하진과 여름의 연애는, 강태하의 등장으로 복잡해진다. 여전히 여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태하는, 여름의 공방 일을 핑계로 여름의 곁에서 맴돌고, 그와의 연애를 신물나 하던 여름 역시,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던, 그에게 흔들린다. 
다음 과정은 익숙하다. 자꾸 엮이게 되는 태하와 여름, 그리고 하진에게 뜻밖에 등장한 어린 시절 동생이었던 아림(윤진이 분), 네 사람의 관계는, 얽히고 섥히며 오해에 오해를 낳고, 그에 따른 해명과, 해프닝으로 이어진다. 
다시 나타난 그룹 대표 전 남친과, 잘 나가는 의사인 두 남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여주인공이라니! 아침드라마에서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익숙해도 너무 익숙한, '막장'의 설정이다. 거기에, 이도 저도 아닌 듯 갈피을 못잡고, 두 남자에게, 사랑인듯 사랑이 아닌 듯, 감정을 '흘리고' 마는 여주인공이라니, 이 정도면, '어장관리'의 최고봉이다.

(사진; 일간 스포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의 발견>이 그 엄마 세대처럼, '욕하면서도 볼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스테디셀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그 '삼각관계'의 원초적이고도 치명적인 매력 때문일 것이다. 
뻔한 드라마를 보고 있다고 엄마를 흉보던 딸이, 엄마가 자러 들어간 거실에서, 사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보던 드라마와 그리 다르지 않는 스토리의 <연애의 발견>을 열중하고 있는 아이러니의 '본질' 이랄까. 어느 틈에, 엄마 세대의 막장 드라마처럼, 젊은 세대들에게, <연애의 발견>같은 로맨틱한, 하지만, 알고보면, 뻔한 구도의 러브 스토리가, 역시나 애용되고 있는 불편한 진실말이다. 

하지만, 그런 보편적인 뻔한 사랑이야기가 가진 매력 말고도,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연애의 발견>의 매력은, 바로 제목에서도 명시하듯이, 연애를 발견해 가는 듯한, '청춘의 질감'에 있다. 
마치, <마녀 사냥>의 비디오 판이라도 되듯이, 카메라를 향하여 남녀 주인공들은 자신의 연애를 솔직히 토로한다. 네 사람 사이의 상황이 끝나고, 언제나, 마무리는, 그 누군가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감정이 섞인. 그리고, 그것을 통해, 뻔한 연애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개인적 경험과 맞물려 독특한 공감을 낳는다. 
연애의 목적이 무엇일까? 결국 남자와 여자가 성공적으로 만남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큼 답이 없는 것이 없다. 뻔한 사랑 이야기인 <마녀 사냥>이 매회 다른 이야기로 메꾸어 지듯이, 수만 번의 연애사라 한들 답이 없이, 난제인 것이다. 매번 잘 하고 싶지만, 결코 잘 해질 수 없는 어설픔으로, 실패로 끝나게 되는 것이 다반사인 젊은이들의 인생사에서, 여름과의 해후를 통해, 다시 잘해보고 싶은 태하의 마음과, 그런 태하를 미워하면서도, 그와의 추억, 그리고 그 속에서 아팠던 사랑을 지우지 못한 여름이의 안타까움, 그리고 그렇게 태하를 놓쳐야 했기에, 이제는 좀 더 능숙하게 잘 해보고 싶은 하진과의 연애사가, 결결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우러난다. 
엄마가, 막장 드라마를 보며, 자신과 자기 주변의 경험을 투영하며, 열을 내듯이, 어느 틈에, 딸인 그녀들, 심지어, 아들인 그들까지도, <연애의 발견>을 보며, 지난 번 헤어졌던 나의 경험을 되돌아 보며, 그와 그녀의 연애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뻔한데, 그 안에서 던져지는 감각적인 대사와, 혼잣말처럼 카메라를 향해 토로되는, 주인공들의 감정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두 남자에게 얽혀있는 한여름이 '나쁜년'인 줄 알겠는데, 현실의 내 연애사의, 그'년' 혹은, 그'놈'도 만만치 않게 나빴기에,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상황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5년 전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태하와의 사랑을 다하지 못했던 여름은, 어떻게든 이번에는 좀 더 능숙하게, 좀 더 덜 상처받으며, 하진과의 사랑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자 한다. 하지만, 애초에 연애사라는 것이, '미션 임파서블'인 한에서, 이제 여름도 알고, 시청자들도 안다. '발견' 한다고 연애는 익숙해지거나, 답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허무한 연애사로 마무리되는, 또 한 편의 연애사, 초가을,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허허로운 젊은이들의 감성을 움켜쥔다. 

그리고 <연애의 발견>의 또 다른 숨겨진 매력은, '거세된 현실'에 있다. 
<마녀 사냥>의 숱한 연애사들에, 오로지 연애만 있고, 삶의 고단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알바의 시급도, 직장인의 애환도 거기선 그리 짙지 않다. <연애의 발견> 역시 마찬가지다. 잘 되지 않는다는 한여름의 공방은 그림엽서 속 장소처럼 아름답고, 대학 학자금 융자가 남은 여름의 집은 이상적인 그룹홈이다. 잘 되지 않는 공방의 사정이나, 고학생인 아름이의 어려움에는, 잘 나가는 작가인 엄마와, 그룹 대표인 전남친, 그리고 어린 시절 그녀를 버린 키다리 아저씨 같은 고아원 오빠라는 보험이 있다. 
덕분에, 삶의 냉엄함으로 고통받는 현실의 연애는 그 현실성을 거세당한 채, 오로지, 연애, 그 순수한 결정체로만, 젊은이들에게 마취약처럼 다가간다. 몽롱한 그들의 연애에서, 하지만, 사실은 건설업체 대표와 성형외과 의사와 공방 대표의 '부르조아틱'한 연애가, 내 연애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연애의 발견>의 숨겨진 진짜 매력은, 진짜 궁상스러움을 감춰주는, 연애지상주의의 궁상스러움일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4. 10. 1. 17:07

허지웅은 영화 평론가이자, 기자이다. 하지만 일찌기 tvn의 <시사콘서트 열광>을 통해 거침없는 입담을 선보이기 시작하여, 이제 <썰전>등의 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싱글족이다.

mbc다큐 스페셜은 바로 우리 시대 대표적 싱글족인 허지웅을 내세워 이제는 보편적 존재가 된 1인 가구, 그리고 1인 가구의 식사 행태인 '혼자 먹는 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시작은 혼자 사는 허지웅이 밥을 찾아 식당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수 중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이제 거의 네 가구 중 한 가구, 즉, 전체의 25.9%를 차지할 정도로 보편적 증상이 되어가고 있는 이 즈음, 하지만, 여전히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보편적'인 증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자신을 위한 푸짐한 한 상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혼자 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의 이목을 덜 받는 시간을 택해 식당을 찾아들거나, 식당에 가더라도 주로 '2인분'이상을 요구하는 메뉴 덕분에 원치 않는 음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위한 식당은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지만, 아직도 혼자 밥을 먹는게 용이하지는 않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는 지적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해온 방식이 늘 무언가를 함께 하면서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적 방식이었기에, 그런 지금까지 관성들을 거스르는 삶의 존재 방식이 인간 전체 문화에서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더구나, 집단주의 문화가 아직도 강고하게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외국인들조차, 혼자 밥을 먹는데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사진; 마이데일리)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 먹는 밥'이 줄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혼자 먹는 밥'에 대한 사고 방식도 전환되어 간다. 2013년 기준, 빅데이터의 조사 결과, sns 상에서 사람들은 이제 '혼자 먹는 밥'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서러워하는' 대신 떳떳하게 인증하고 긍정적으로 사고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혼자 먹는 밥'의 행태가 용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먹는 밥'의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에 대해 <mbc다큐 스페셜>이 꼽고 있는 것은, 바로 [단속 사회]를 통해 저자 엄기호씨가 진단한 우리 '소통'이 끊어진 우리 사회 현실과 다르지 않다. 즉,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관계는 단절시킨 채, sns를 통해 소통한다.

<지금 혼밥하십니까>에 등장한 싱글족도 그렇다.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사진부터 찍어 sns에 올려 소통하는 그는, 전형적인 '단속 사회'의 일원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과 교수는 진단한다. sns 상의 소통은 심리적 품앗이와 같다고. 즉,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을 때, 서로 괜찮다. 공감한다 하며 댓글을 달아주는 sns의 형식은, 바로 심리적으로 거들어 주는 행위 양태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심리적 증상의 결과로 등장하게 된 것이 '혼밥'이라고 다큐는 정리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관계의 소통 대신, 인터넷 공간의 심리적 위로를 택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지금 혼밥하십니까>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한다. 밥을 먹는 행위조차, 일련의 사회적 행위가 된 사회에서,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위로나 소통 대신, 경쟁과 일을 위한 협업의 도구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홀로 밥을 먹기를 택한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 그 누구의 눈치도, 간섭도 받고 싶지 않을 때 홀로 밥을 먹는다고 말한다.

 

물론 이렇게 스스로 택한 혼밥족과 달리 사회 경제적 이유로 불가피하게 '혼밥'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다큐는 짚는다.

식당에 들어가자 마자 사진부터 찍어 sns에 올리던 청년은 입사 지망생이다. 아직 사회적으로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그의 존재가 그를 '혼밥'하게 만든다. 이렇게 일인 가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신분을 차지하지 못한 이른바 88만원 세대들의 혼밥은 고달프다. 편의점의 3000원 짜리 도시락이 가장 풍요로운 영양 공급원이 되거나, 인스턴트 즉석 요리들이, 그의 싱크대 선반을 채우기가 십상이다. 인디 밴드의 멤버들에게는 동료와 나누는 밥 한끼가, 곧 그들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무기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동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젊은 밴드원은 싱크대에 홀로 서서 먹는 '혼밥'을 택한다.

 

<지금 혼밥하십니까>는 이제는 트렌드가 된 '혼밥'을 트렌디한 존재가 된 허지웅을 내세워 트렌디하게 접근한다. 다큐에서 등장한 '혼밥'은 '혼밥'이지만, 실상, 그 혼밥은 우리가 sns상에서 쉬이 만나는, 사진 속의 '혼밥'이다. 물론 모델 지망생이나, 인디 밴드의 현실을 짚어가며, 혼자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경제적 이유를 짚어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다큐의 톤은 트렌디하다. 거기에서 대한민국 일인 가구 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나이든 사람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덕분에, '혼밥'은 트렌디한, 혹은 불가피한,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젊은이들의 행동 양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전체 '혼밥'의 한 부분일 뿐이다.

 

사회적 양식이 되어가는 '혼밥', <지금 혼밥하십니까>는 그 사회적, 심리적, 그리고 경제적 원인을 다양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다큐 속 드러난 '혼밥'은 삶의 행태가 달라지면서 등장한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작 일찌기 '혼밥'을 먹어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외려 '독거노인'을 비롯한 혼자가 된 어른들이다. 그저 이제 나이가 많건, 적건 혼자 살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편적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by meditator 2014. 9. 30. 10:23

28일 11시 30분 kbs1tv를 통해 방영된 <kbs특집 다큐-섬의 선택, 다리의 두 얼굴>은 지난 17일 kbs 광주 방송국을 통해 방영된 후 호평을 받아, kbs1을 통해 전국에 방영하게된 작품이다. 


'연륙교',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전체 섬 3천3백39개 중 65%인 2천2백19개가 몰려있는 전라남도, 그 중에 104개의 연륙교가 놓이거나, 놓일 예정인 상황에서, kbs광주 총국은 연륙교가 놓인 후 변화된 섬의 사회상을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한 섬들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과연 연륙교가 섬의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되짚어 본다. 

최초의 연륙교는 무려 80년 전 부산에 놓인 '영도다리'라 불리는 영도 대교이다. 그 이후 숱한 연륙교, 혹은 연도교가 놓여지고, 놓여질 상황이다. 정부와 각 지방 자치 단체는, 국토 개발 방안의 일환으로 연륙교를 접근한다. 
육지에서 공간적으로 소외된 섬주민들의 소원은, 의료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섬 생활의 편의가 대부분이다. 응급 환자가 생겨도 헬기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 육지와 이어지는 다리는 섬이 상징하는 '고립'을 해소하는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다. 
뿐만 아니라, 육지와 이어진 다리를 통해 유입되는 외부 사람들은, 한정된 경제 자원에 기대어 살아가는 섬 경제의 희망이기도 하다. 
또한 농촌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문제로 고민이 깊어가는 섬 주민들에게서, 육지로 나간 자식들이 그 이어진 다리로 돌아올 기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주민들의 기대와 달랐다. 
다리로 육지와 이어진 '슬로시티' 증도, 하지만, 증도는 올해 가까스로 '슬로시티'의 명예를 이어갈 수 있었다. 육지와 고립된 삶이 가져온 , '슬로우 라이프'의 장점이 점점 없어져 가기 때문이다. 
증도의 빼어난 자연환경이 입소문을 타고, 외지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를 가지고 다리를 건너왔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건, 증도가 소화해 내지 못할 쓰레기이다. 하루에 열 차례를 치워도 끝없이 나오는 쓰레기는 쓰레기라기 보다는 증도의 자연을 훼손하는 재앙에 가깝다. 
그렇다고 엄청난 쓰레기를 남기는 만큼 경제적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이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나아졌다는 중론이기는 하지만, 섬의 곳곳에, 다리가 생기기 이전에 잘 운영되던 작은 식당들이 문을 닫은 모습이 눈에 띤다. 배로만 이곳을 다닐 수 있던 시절, 사람들은 배를 타고와, 쉽게 나가기 힘든 이곳에 머물며, 이곳의 식당을 이용했다. 하지만, 다리가 생긴 이후 사람들은 차를 이용해 먹을 꺼리를 싸들고 와, 먹고 쓰레기만 남기고 떠난다. 


또 다른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다. 연륙교, 육지와 연결되었다, 아니 육지가 되었다 좋아했던 주민들이 이제 그 다리를 통해 육지민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거가대교'를 통해 부산과 불과 40분 거리가 된 거제도, 이제 거제도민들은,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장을 보러 나간다. 그 덕분에, 거제의 상권을 심대한 타격을 받는 중이다. 

그렇다고, 섬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사람들이 섬으로 유입되지도 않는다. 자식들은 이제 다리로 연결되었으니, 언제든 부모님들을 보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예전보다 소원해졌다. 다리가 연결 된 후, 사람들이 유입되기는 커녕, 섬 인구는 오히려 줄어드는 형편이다. 섬이 육지가 된 것이 아니라, 다리가 육지로 나아가는 보다 용이한 통로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섬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국토 개발'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이미 시행착오로 결론난 일본이 밟았던 전철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연륙교 연결이 빈번하게 시행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폐해를 겪으면서, 일본 자체 내에서는 연륙교 연결 방식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 지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문화유산이 있는 사슴이 뛰어노는 가고시마 섬의 경우, 겨우 1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는 거리에 있음에도, 섬의 문화재와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연륙교를 거부한 케이스다. 지방 자치단체에서 연륙교를 건설한 곳은, 연륙교 통행료를 설정해, 유입 인원을 제한하고자 한다. 

연륙교 건설에 따른 명암에 대해 연구진은 무엇보다, 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느냐가 고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섬은, 그저 또 하나의 땅이 아니라, 육지와 고립되면서, 각자의 특성을 가지면서, 살아남은 존재로, 섬의 존재론에 대한 고민은, 바로 , 이런 섬만이 가진,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대안을 모색하는 섬도 있다. 예전 섬 주민들이 다니던 길 '비렁길'이 트레킹하기에 좋은 곳으로 소문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금오도는 주민들의 결의로 연륙교를 거부했다. 쓰레기 더미 대신, 자연 훼손 대신, 불편함을, 금오도의 정취를 택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소득도 있다. 작지만 알찬 학교로 소문난 금오도의 고등학교에 도시의 아이들이 찾아오고, 고립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다리 대신 배를 타고 금오도를 찾는다. 

그저,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편리한 다리, 그 이상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연륙교, 하지만, 무심쿄 건설된 다리 하나가, 섬 하나의 운명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 놓을 수 있다는 걸 <섬의 선택, 다리의 두 얼굴>을 통해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저  또 다른 '땅'인 섬이, 삶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또한, 여전히 '국토 개발'의 관념에서 한 치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 행정의 한계가 이젠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스스로 대안을 모색해가는 주민들의 선택이 한줄기 희망처럼 빛난다. 


by meditator 2014. 9. 29. 12:30

tvn의 <인현왕후의 남자>나, <나인>을 재밌게 봤던 독자들은, 이제 7회를 방영한 <삼총사>가, 송재정 작가와 김병수 연출의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이른바 '닥본사'를 해왔다. 하지만, 7회에 이르기까지, <삼총사>는 <인현왕후의 남자>의 절묘한 러브스토리나, <나인>의 운명론적 스토리의 매력을 맛보기 힘들었다. 액션 활극을 내세웠지만, 액션은 둔감했고, 활극에 걸맞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맥을 못추는 시청률만큼이나, 애청자들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7회에 이르러, <삼총사>는 비로소, 이 드라마의 숨겨진 매력을 드러냈다. 7회를 견뎌온 호청자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듯이. 


무엇보다 <삼총사>가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게 된 데는 명청 교체기의 조선에서 각 권력들의 자기 입장이 분명해지면서, 그 대립각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삼총사'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진; tv리포트)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등극했던 중심 세력인 김자점(박영규 분)은 소현 세자(이진욱 분)를 만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소현세자의 아버지, 인조가 왕이 될 깜냥이 아니라는 자기 의견을 드러낸다. '광해을 몰아내고, 임금을 만들었더니, 광해만도 못하다'는 김자점의 생각은, 비록 그의 사저에라도, 한 나라의 세자 앞에서 드러낼 사견이 아니라, 신하로서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정의 주역이었던 그는, 지금의 왕조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자부심과, 그래서 다시 언제라도, 아니 언제까지나 권력의 '뒷배'가 되겠다는 야심을 마구 드러낸다. 세자전의 상궁을 포섭하여, 용골대가 머무는 방의 자물쇠를 바꿔 버리는 노골적인 행동을 보인 김자점은 청에 대한 세자와 자신의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자신과 손을 잡을 것을 세자에게 종용하고, 그 결과를 만 하루 안에 줄 것을 요구한다. 

김자점을 야심을 알게 된 세자는 결코 김자점이 함께 할 수 없지만, 용골대를 세자전에 숨겨둔 처지에서 뾰족한 묘책이 없어 고민한다. 그때, 세자와 칼을 겨누며 맞섰던 박달향(정용화 분)이 찾아와, 미령 혹은 향선(유인영 분)의 소재를 알려주고, 세자는 한 달음에 그녀를 찾아간다. 

6회에서, 7회 초반의 내용은, 마치 세자가 스파이가 되어 나타난 첫사랑을 못잊어 다시 찾아가는 듯한 스토리의 전개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줄곧 그 존재가 의문이었던, 세자빈에 간택되었으나, 세자에게 스스로 목을 매달 것을 명령받은 여인 미령, 아니 사실은 향선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녀와 세자의 애증어린 독대를 넘어선, 김자점과 소현 세자, 그리고 그의 측근인 주화파 최명길과 익위사 허승포(양동근 분), 안민서(정해인 분) 그리고 박달향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드라마 <삼총사>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용골대를 자신의 처소에 숨긴 세자는 김자점의 손아귀에 놓인 처지이고, 그의 고변에 따라 의심이 병적인 왕의 눈밖에 나는 건 시간 문제인 상황을 과연 세자와, 그의 측근들이 어떻게 역전시키는가가 '포인트'였다.
그 지점에서, <삼총사>는 소설<삼총사>의 속고 속이는 파워 게임 못지 않은 흥미진진한 반전을 선보인다. 
안그래도 의심병이 강한 인조는 드디어 세자를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궁에 머물지 않은 세자를 의심해 세자빈을 찾아 닥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등장한 박달향은 세자가 그간 투전판에 몰두해 있으며, 투전판에서 의문의 양반에게 칼을 맞아 피을 흘린 채 정신을 잃었다고 고한다. 그리고 그 시간, 세자의 전갈을 받고 향선의 처소를 찾은 김자점은 거기에서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는 세자를 발견하고 그를 찌른 칼을 발견해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그곳에 궁의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절묘하게도, 김자점은, 세자와 함께, 투전판에서 셈을 논하다 세자를 찌른 높으신 양반네의 혐의를 받게 된다. 또한 그런 김자점의 혐의를 더하기 위해, 허승포와 안민서는 잃은 돈을 찾아내라며 김자점의 집을 뒤집고.
이런 기막힌 삼총사와 박달향의 활약에 힘입어, 위기에 처한 소현 세자는 무사히 궁으로 돌아와 치료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김자점의 농간에서 놓여나, 오히려 그의 집 병풍 뒤의 벽장 안에 숨겨놓은 서신으로 그의 목을 죄는 역전된 처지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삼총사>는 이런 극적인 스토리의 재미를 넘어서, 고지식한 애송이 무사 박달향을 통해, '애국'의 의미를 되짚고자 한다. 신하로서 임금의 명을 받들어 수행하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전부라 생각했던 그는, 적국의 장수를 숨기면서까지 전쟁을 막고자 하는 소현 세자와, 나라의 위기와 상관없이 권력이 중심을 놓치고자 하지 않는 김자점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 진다. 

(사진; osen)

물론, 여전히 아쉬운 점은 남는다. 박달향과 최명길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소현 세자의 애국론은, 막상 그와 향선의 만남에선 죽음을 각오한 채 다시 돌아온 첫사랑의 그녀와 그녀를 잊지 못한 세자만이 드러났을 뿐, 나라를 생각하는 세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드러나지 않은 채 박달향의 후일담으로만 전해진다는 것이다. 즉, 역시나 죽음을 각오하고 첫사랑을 다시 찾아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세자의 '애국관'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과정에서 드러났으면 하는 '사족'으로서의 아쉬움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사족'을 덧붙인다면, 아직도 양념으로만 쓰이는, 양승포, 양동근의 존재이다. 모처런 연기로 돌아온, 양동근, 그는 계속, 극의 긴장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긴장을 풀어주는 조연으로만 쓰여질 것인지하는 아쉬운 의문이 남는다. 허긴, 어디 양동근 뿐이랴. <정도전>에서, '이인임'으로 인생 연기를 보여준 박영규나, 공민왕으로 뚜렷한 궤적을 남긴 김명수가, 전작 캐릭터의 복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채 머물고 있는 점도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기는, <삼총사>의 화룡점정이다. 

하지만, 7회 정도만의 박진감넘치는 스토리와, 재미를 이어간다면, 침체된 <삼총사>는 제작비를 다 어디에 썼느냐는 오명을 벗은 채 시청자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9. 29. 10:14

첫 번째, 매주 목요일 밤 11시 tvn을 통해 방영되었던 <잉여 공주>가 조기종영하기로 확정되었다. 애초에 14부작으로 기획되었던 <잉여공주>는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4부를 줄여 10부작으로 마무리짓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두번 째, 9월 16일 <아홉수 소년> 게시판엔 이 작품이 대학연합 동아리의 <9번 출구>와 유사하다는 의문이 제기 되었다. <아홉수 소년>의 제작사 측은, 이에 대해 이미 2013년 겨울부터 기획되었고, 2014년 1~2월에 최종 시놉시스가 완성되었기에, 표절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제작진의 의견에 대해, <9번 출구>의 이정주 작가는, <9번 출구>가 이미 2013년 9월부터 공연되었고, 기획은 그 이전에 이미 이루어 졌기에, <9번 출구>를 참조하지 않았다는 <아홉수 소년> 제작진의 의견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세번 째, 일요일 밤 9시 20분, 시즌제를 주창하며 100억 블록버스터 대작이라 홍보를 했던 <삼총사>의 궤적이 미미하다. 야심차게,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모티브로 하여, 조선 인조 때 소현 세자와 그 주변인들을, '삼총사'로 엮어, 무협 활극을 주창했던 드라마 <삼총사>는 일요일 밤 단 한 번의 방영이 무색하게, 느리 전개와 지지부진한 스토리로, 작가의 전작 <나인>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네번 째, 월요일 밤 <마이 시크릿 호텔>, 킬링 로맨스를 내걸고, 추리극과 로맨스의 콜라보레이션을 주창하던 이 드라마는, 하지만, 연속적으로 살인이 이루어 지는 것과 달리, 극중 추리극의 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중론이다. 

(사진; osen)

위의 네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거나, 애초에 내걸었던 취지를 도달하지 못한 채 표류하거나, 심지어 조기 종영 사태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젊은 사람들 중에는 채널을 아예 tvn에만 고정시켜 놓고 본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열성적인 독자를 모았던 tvn 드라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애초에, 공중파 드라마를 상대로 tvn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과 같은 연애 드라마를 통해서 이다. 이들 드라마를 멜로 드라마라고 하지 않고 , 굳이 어색한 '연애' 드라마라고 지칭한 것은,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사랑에 이르기 까지, 남녀의 연애 과정을 미시적으로 천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쁜 색지라도 한 겹 덧댄듯한 뽀사시한 화면, 거기에 한껏 트렌디한 패션으로 등장한 남녀 주인공들의, 다종다양한 종종 19금을 불사하는 진솔한 연애 담론이, 로맨스 물에 갈급한 젊은 층의 취향을 정확히 조준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인기를 끈 연애 드라마들은, 이제 kbs2의 <연애의 발견>처럼, 공중파 드라마에까지 진입하며, 그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tvn을 전성기로 이끈 연애 드라마들이, 오히려 최근에는, tvn 드라마들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다. 
tvn의 연애 드라마처럼, 젊은이들의 솔직한 연애 담론을 토크로 다룬 <마녀 사냥>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엔, 이런 신세계가 있어 싶었던 남녀간의 솔직한 연애 이야기가, 회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저번 주에 봤던 이야기나, 이번 주에 봤던 이야기나,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은 경지에 이르른다. 
다른 배경, 다른 등장인물, 다른 스토리이지만, 결국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서로 소통하지 못해 오해하고, 사랑의 짝대기가 어긋나 마음을 앓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세상에, 병원에서 연애하고, 회사에서 연애하고, 심지어 법원에서 연애하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tvn 드라마라고 무에 그리 다를 것이 있나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부족하지만, tvn의 드라마들이, 유독 연애 과정 그 자체에 흠씬 빠져, 순정만화에서 등장하는 듯한 로맨스들을 마구 분출해 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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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한 두 작품일 때는, 매력적이었는데, 이제 한 주에, 위에 등장하듯이 네 작품이나 되었을 때는, 그 연애 이야기가 적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색다르지 않은 연애 이야기는 <잉여 공주>의 조기 종영을 낳았고,  결국 신선한 연애 이야기에 대한 수급 욕구는, 표절 사태에 이르게 된다. 
매주 월, 화 방영되는 <마이 시크릿 호텔>은 추리극과 로맨스의 두 마리 토끼를 지향하지만, 실제 드라마 방영 시간의 대부분은, 남상효(유인나 분)를 중심으로 전남편 구해영(진이한 분)과 호텔 이사 조성겸(남궁 민 분)의 삼각 관계에 치중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남상효와 구해영을 중심으로, 갖가지 해프닝들이 방영 시간 대부분을 메꿔간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날 구해영의 신부가 줄행랑을 치고, 남상효는 호텔을 위하는 책임감에, 그 결혼을 대신하는 웃지 못할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런 해프닝에 가까운 스토리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는 것은, 주인공 세 사람의 오해와, 그 오해를 해명하지 못해 벌어지는 또 다른 해프닝이다. 호텔에서 사람들은 연신 죽어나가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듯, 이 이야기가, 그저 로맨스물이 아니라는 증거로 간간이 등장한다. 

100억 대작 <삼총사>도 마찬가지다. 대작 블록버스터가 무색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소현 세자와 강빈, 박달향, 그리고 미령의 엇갈린 사각 관계이다. 역사극에서 멜로가 가미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정도전>의 걸출했던 연기자들을 캐스팅하고, 모처럼 돌아온 양동근까지 합류했지만, 스토리는 주인공들의 사각 관계의 울타리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조기 종영이 결정된 <잉여 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된 인어 공주의 사랑 찾기와 함께 잉여 하우스를 배경으로, 88만원 세대의 고군분투를 다루겠다고 했지만, 역시나, 드라마는 지리한 삼각 관계, 엇갈린 사각 관계로 채워진다. 잉여 하우스 멤버들은 그럴 듯하지만, 어쩐지 그들의 고군분투는 다가오지 않는다. 

아예 대놓고, 삼촌, 조카 둘의 사랑 찾기에 천착한 <아홉 수 소년>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음악과 드라마의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한다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방점을 찍고 싶어하는 음악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ost가 과잉인 세상에서, <아홉수 소년>의 음악들이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의 ost의 영광을 되찾고 싶겠지만, 추억이 담기지 않는 이야기의  음악은, 그저 하나의 배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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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영되고 있는 tvn 드라마의 면면을 보면, 사극에, 추리극, 청춘물에, 음악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일주일동안, 이 드라마들을 시청하고 있다 보면, 여전히 트렌디한 연애 이야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듯 보여 아쉽다.사랑 이야기에도 다양한 질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tvn드라마의 연애 이야기들은, 한결같은, 낭만주의적 사랑주의보이다. 취향 저격은 훌륭했지만, 이제 그 취향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킨다.  tvn의 드라마들이 좀 더 많이 방영되는 추세에서,  좀 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을 넘어선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 예로 대표적인 것이, <갑동이>이다. <갑동이>는 24~8일 개최되는 영국 'k-드라마 위크'에서 한국 장르물의 대표작으로 상영된다. 물론, 방영 중, <갑동이> 역시 애매한 사랑의 작대기로 인한 방만함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지만, 연쇄 살인마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뚝심있게 그려낸, tvn의 수작임에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아홉수 소년>의 후속작으로 예정된, 윤태호 작가 원작의 <미생>이 기대된다. 부디 사무실에서 연애 하기가 아니라, 진짜 '미생'의 삶을 그려내기를. 


by meditator 2014. 9. 26. 22:14

플리처 상 후보에 오르고, 137주 연속 전미 베스트셀러에 빛나는 바바라 킹솔버의 [포이즌우드바이블]은 콩고로 전도를 떠난 네이선 목사 가족의 이야기이다. 콩고 오지로 부임해 간 미국 남부의 침례교 목사 네이선은 작은 양이 허락된 짐 속에, 그가 즐겨 키우던 식물들의 종자를 포함시킨다. 하지만, 이방의 콩고의 토양에서, 미국의 종자들은 무기력하다. 겨우 심어놓았는가 싶으면 우기의 비 한 번에 쓸려내려가고, 원주민의 충고에 따라, 무덤만큼 높은 둔덕을 쌓아, 겨우 싹을 틔우고, 아프리카 정글만큼 무성하게 키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건 [포이즌 우드 바이블]의 씨앗들만이 아니다.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후로 우리나라의 씨앗들도 어떤 해는 가물어, 또 어떤 해는 폭우에 그 씨앗의 성취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디 그뿐인가, [포이즌 우드 바이블]에서 미국의 목사는 그의 오만함이 끝내 가족의 희생과, 선교의 실패로 끝을 맺지만, 지금 전세계에서 활약하는 농산물 다국적 회사들은 나날이 그 사세를 확장하는 중이다. 우리의 농부들은, 다국적 품종 회사에서 씨앗을 사고, 그 씨앗에만 듣는 비료를 사서 농사를 지어야만 한다. 한 해 농사 이후에, 다시 씨앗을 받아 다음 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제초제 등의 공급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 해마다 땅은 수없이 퍼부어지는 각종 성장을 촉진하는 보조제로, 특정 성분이 과잉되어 산성화되어 가고, 농부들은 그 비용에 등골이 휜다. 농업뿐인가. 풀대신 좋은 고기를 만드는 여물을 수입해 먹여야 하는 축산 농가 역시 적자를 면할 길이 없다. 

농부가사라졌다 포스터

바로 이런 우리 농업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접근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tvn의 <농부가 사라졌다>가 그것이다. 국제 시장의 변동으로, 각종 씨앗과 농약, 사료의 가격이 폭등하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농부들이 사라져 간다. 가장 현실이면서도, 가장 안이하게 생각한, 우리 먹거리의 현 상황을 기반으로 한, '버츄얼 다큐' <농부가 사라졌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이 비감한 상황을 <농부가 사라졌다>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처럼 접근한다. 식량문제 전문가이자,  농촌 경제 연구가로 2014년 캐나다 올해의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프로듀서 마이클을 등장하여, 사라진 농부들을 찾는 미스터리 스타일로 우리 식량 현실을 짚어간다. 

9월 18일 방영된 1회에서는, 농부가 사라진 후, 과일과 채소 공급이 끊인 현실을 조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비밀리에 거래되는 야채들을 쫓아 사라진 농부들을 추적한다. 치솟는 수입 종자와 사료 값으로 대다수의 농민이 농업과 축산업을 작파한 가운데 에서도 여전히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생산하는 비밀을 파헤치는 식이다. 

강원도 산골의 여성 농부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마이클이 찾아낸 것은, 바로, 거센 다국적 기업의 공세에도 굳굳하게 살아남은 우리 토종 종자의 건재함이다. 그리고, 비료와 영양제 등으로 힘을 잃은 대다수의 농토와 달리, 고되지만, 제초체 등을 사용하지 않고, 본연의 땅힘을 바탕으로 버틴 토종 농법은, 농부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신선한 먹거리를 생산한다. 

9월18일 방송이, 품종의 식민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 존폐 기로에 놓인 농업 현실과, 그 대안으로서 토종 씨앗을 통한, '식량 주권' 문제를 제기했다면, 25일에 방영된 <농부가 사라졌다>는 그 주제를 이어가며, 분야를 다양하게 접근한다.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은 소비자를 스스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전설의 농학자(?) 아이작 뉴튼의 '만농인력의 법칙'이 등장하고, 비밀 결사 집단인 인터러뱅과, 우리나라 버전 인터나방을 통해 그 역사와 근원을 바탕으로, 농부가 사라진 가운데에서도 농업을 면면히 이어가는 비밀 결사 조직의 유래를 찾아낸다. 

콩고의 농부들처럼 고추를 심은 고랑을 두둑하게 하여, 뿌리를 든든히 내리게 함으로써 병충해와 폭우를 피해가는 자생력을 키운 '뿌리 농부'와, 풀어놓은 채 각종 약재며 좋은 풀을 먹여 한 알에 800원자리 달걀을 생산해 내는 농부 등이 마이클이 찾아낸 인터래뱅의 실체이다. 

2회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마이클이 찾아간 소 농장에서 찾아진다.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거세하지도 않고, 그래서 사사건건 싸움박질을 하는 소들을 키우는 이 농장의 고기들은 2,3 등급이거나, 심지어 등급이 없다. 마블링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이 농장의 고기들과, 이른바 1등급 플러스, 플러스의 고기들을 함께 비교 시식했을 때, 맛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2,3 등급이거나, 등급을 받지 못한 농장의 고기가 약간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의 미각을 현혹하는 '마블링' 혹은 등급제의 허실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맛의 문제 만이 아니다. 실제 대다수 농촌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나듯이, 전체적으로 농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농업 종사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고, 고령화 되는 상황에 대한 대안도 등장한다. 제주도에서 약초를 키우는 농장, 이 농장의 일꾼은 제주도 흑돼지이다. 주인이 풀어 놓기가 무섭게, 흑돼지들은 농장 곳곳을 누비며 잡초를 먹어치운다. 친환경 농사의 최대의 주적이랄 수 있는 잡초 제거가, 단숨에 해결된다. 돼지의 동료들도 있다. 세계 각지의 유기농 농장을 돌아다니며 일도 하고, 여행도 즐기는 우퍼 역시, 바쁜 일손을 거둔다.

<농부가 사라졌다>가 근저에 깐 주제 의식은 심각하다 못해 절박하다. 하지만, 다큐는, 그 심각함을 비장한 목소리 대신,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농부들이 사라진다면? 이란 물음을 가지고 재밌게 접근한다. 주제 의식은 강고하지만, 미스터리식 접근 과정은 흥미롭고 신선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토종 씨앗에서 부터, 뿌리 농사, 축산 등급제, 농촌의 일손 부족 현상등, 섬세하게 놓치지 않고 짚고 간다. 오히려, 그래서 다국적 기업에 종속된 농축산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오고, 마이클이 찾아 낸 하나하나의 실마리들이 더 머리에, 눈에, 귀에 쏙쏙 들어온다. 다큐가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경지다.  


by meditator 2014. 9. 26. 13:49

시청률지상주의 세상에서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의 처지라는게 진퇴양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사람들의 주의가 집중되지 않아, 다행이다 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아이언맨>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지 않는 이 드라마의 '한적함'이, <아이언맨>이 그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회를 거듭할수록 든다. 시청률이 낮아 자유로워 보이는 드라마, <아이언맨>이다. 


다짜고짜 화가 나면 칼이 돋는 남자 주인공에 기겁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만치 물러났다. 아니 칼이 돋는 것만이 아니다. 주인공 주홍빈 역을 맡은 배우 이동욱에게는 버거워 보이는,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부터 위, 아래 없이 화를 분출하는 주인공 캐릭터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한량없이 착하고 씩씩한 '캔디'가 울고 갈 여주인공(신세경 분)이라니!
그런데 가장 기괴한 남자 주인공에, 가장 진부한 이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회를 거듭하면서, 차츰 마음에 들어온다. 스토리가 아니라, 이른바 '김용수 월드'라고 불리는 연출가의 힘에 의해서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아들 창이의 소망을 듣고, 주홍빈은 다짜고짜 아들 창이와 손세동을 끌고 밤 늦은 시간 구례로 향한다. 과열된 차를 버리고 산골 마을 버스를 왁자지껄 할머니들과 타고, 창이 외할아버지가 젓는(?) 배를 타고 창이 외가에 이르는 길은, 이게 괴작인가 싶게, 서정적이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에,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 역의 신세경의 대사는 어색하지만, 그녀의 티없는 얼굴에 버무려져, 슬슬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할머니들의 짐을 들어드리는 손세동의 캐릭터는 어색하지만, 정감이 간다. 


무엇보다 압권은, 외가가 보이는 강가에서이다.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과, 그녀에게서 첫사랑 창이 엄마의 향기를 맡으며 그녀를 떠올리는 주홍빈, 그 두 사람의 정서가 구례의 정취가 물씬 피어나는 강가에서 어우러질 때, 이 말도 안되는 두 사람의 조합에 반기가 가셔진다. 그 어떤 대사와 설명이 필요없다. 

절정은 밤길의 반딧불씬이다. 이 씬의 내용도 뻔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의 밤길, 혼자 집을 지킬 수 있다는 아들 창이 보다, 더 아들같은 주홍빈이, 손세동의 뒤를 따른다. 말이야, 밤 늦은 시간 겁도 없이 혼자 다니냐고 하지만, 사실 밤길을 무서워 하는 건 주홍빈 측이다. 까만 밤 길에, 앞서 가는 손세동, 그 뒤를 쫓는 주홍빈의 그림자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던 두 사람 주변에 한 점, 한 점, 불이 피어난다. 반딧불 떼다. 반딧불 떼에 버무려져 가던 두 사람, 손세동이 겁을 주자, 그만 주홍빈은 손세동을  꽉 안고 만다. 백 마디의 말이 필요없는 연출이 설명해낸, 두 사람의 첫 교감이다. 

그렇게, 서정적인 연출로, 주홍빈의 아픔과, 그 아픔조차 아랑곳없는 손세동의 맑음이 설명이 되니, 그저 기괴하괴만 느껴졌던, 주홍빈 등에서 솟아나는 칼이 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과거 주홍빈 등에서 처음 칼날이 솟아나는 그 장면, 삐죽 솟아오른 아기같은 칼날은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칼이 처음 솟아나기 그 시점부터, 마지막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빌딩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칼이 커지고 늘어가는 것을 통해 주홍빈의 분노가 깊음을 설명한다. 마지막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날뛰다 빌딩에 매달리는 그 모습은, 흡사 포효하는 킹콩을 연상케 하는데, 킹콩의 포효가, 그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애잔하게 느껴지듯, 기괴한 아이언맨 주홍빈이, 기괴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처음엔 버겁게 느껴지던 이동욱의 연기도, 6회쯤 되니, 멜로에, 코믹에, 컬트까지, 종횡무진, 배우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음이 공감된다. 

그러나 아직도 종종 <아이언맨>을 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형식과 내용의 괴리가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이 드라마가 연출이 김용수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가 떠올려진다. 그렇다면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가족으로 인한 상처로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아픈 상처가 심정적으로 도드라지는, 전형적인 김규완 작가 특유의 멜로의 정서가 담뿍 담긴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김규완 작가의 작품에서 대표적 배우였던 이미숙과 김갑수가 존재하고, 그들이 극의 갈등에서 주된 축으로 자리 매김하며, 김규완의 정서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김규완의 전형성이 김용수와 조우하면서,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작, 혹은 신선한 실험작으로 변모한다. 주홍빈이 사는 집의 포스트 모던한 분위기로 대변되는, 그 정서처럼 말이다. 윤여사가 터는 좋은데, 집만 기괴해 졌다는 그 말처럼, 김규완의 터에, 김용수가 지은 <아이언맨>은 때론 여전히 언밸런스하고 기괴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언맨>만의 독특한 정서로 자리잡는다. 6회 마지막, 그토록 분노하던,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하고, 슬퍼하고 좌절하지 만은 않은 묘한 쾌감의 정서가, 생뚱맞기 보다는, 김용수의 세계에서 또한 가능한 반응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칼이 가진, 지극히 모던한 그 도구가, 인간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그 상황이, 김규완의 멜로와 조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가족으로 인한 갈등보다는, 조금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였다면, 그의 분노가, 개인적 인내를 넘어서는 사회적 자각이라면, 그 차가운 칼날의 생경함이 조금 더 공감가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연출로 다 가리지 못하는 극본의 전형성이 아쉽다. 

물론 그럼에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주장원으로 대변되는, 아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성세대와, 아이언맨이 된 주홍빈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이언맨>의 매력이니까. 부디, 그 기괴한 칼이, 한낯, 내 가족만 베고 끝나지 않는 상징적 도구가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9. 26. 10:48

9월 24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는 '널 깨물어 주고 싶어' 특집이라는 명목으로, 개봉을 앞둔 <슬로우비디오> 배우 차태현, 김강현과 김영탁 감독이 출연했다. 

이전 출연 분에서, 홍보를 위해 출연하는 사람들을 제일 혐오한다고 차태현이 스스로 말했던 사실을 mc들이 다시 끄집어 내자, 그래서 아마도 이번 회차는 '쉬어가는' 한 주가 될 것같다고 이른바 '셀프디스'하는 것과 달리, 소소한 웃음으로 채워졌던 393회 <라디오 스타>는 배우 차태현과,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든 <헬로 고스트>의 김영탁 감독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게 해주어, 웃음 속에 이해가 깊어지는 <라디오 스타>의 매력이 모처럼 되살아난 시간이 되었다. 

mc진이 대놓고 차태현과 아이들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황해>를 이긴 혁혁한 성과를 낸 <헬로 고스트>의 감독이지만, 예능 첫 출연인 그래서, 어느 카메라를 봐야할 지도 잘 모르는 김영탁 감독과,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의 매니저 역할로 인지도를 넓혔지만, 아직은 신인같은 김강현의 존재는 생소했다. 그래도 예능으로든, 배우로든 항상 일정 정도의 위치를 놓치지 않은 차태현이기에, 당연히 9월 24일 방송은 차태현을 중심으로 풀어나갈 것이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정작, 반송 분량의 상당 부분은, 예능을 몰라, 두리번거리거나, 매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김영탁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김영탁 감독을 상대로 한 그와의 인터뷰에서 길어올린 '각색'된 질문들은, 최근 <라디오 스타>의 그저 뭐 하나 걸려 웃겨봐라라는 심산의 마구잡이 몰이가 아니라, 웃음을 통해, 김영탁과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웃음 포인트가 된 것은, 상황을 잘 모른 채 던진, 김국진의 차태현의 전작 <바보>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차태현의 작품으로 상대적으로 흥행이 덜 되었던 작품을 이야기하던 중, 유명 만화가 강풀 원작의 <바보>가 떠올려졌고, 그에 대해 김국진은 지나가는 듯이, '만화가 더 재밌었다'라고 말한다. 이후, <바보>가 김영탁 감독의 각색이라는 걸 알게 된 윤종신등이, 김국진을 무안을 주는 듯하면서, 김영탁 감독을 놀리고, 김영탁 감독과 비슷한 색채이지만, 800만을 찍었던 강영철 감독의 <과속 스캔들>을 찍었던 차태현이 강형철 감독과 김영탁 감독을 비교하는 듯한 언급을 하며, 김영탁 감독을 결코 '천만을 찍을 수도, 찍을 깜냥도 되지 않는 감독'이라 정의내리며, 김영탁 몰이에 가담하여, 김영탁 감독을 난감하게 한다. 

(사진; 서울경제)

이후에도, 예능 울렁증이 있다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남상미가, 왜 안나왔느지 절절하게 공감하는 김영탁 감독에 대한 '몰이'는 지속된다. 
'천만을 찍을 깜냥'이 되지 않는 이유가, 돈을 벌어, '정말 지루한 영화'를 찍고 싶은 그의 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거기서에, 생각보다 지루했던 영화<헬로 고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한 시간 사십 여분을 졸다가, 막판에 울고 나온다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차태현같은 배우가 함께 해줘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김영탁 감독이 고집하는 '지루함'에 대해 다시 보게 되기 시작한다.

'느리고 지루한' 일본 영화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김영탁 감독은, '하림'을 좋아하고, 윤종신을 좋아해, 그의 음반을 가지고 있다며, 그만의 정서를 드러낸다. 스스로 가요계의 '섬'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윤종신처럼, 1000만의 흥행보다는, 조금은 지루해도 사람살이를 깊게 천착하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는 김영탁 감독의 정서가 웃음으로 버무려진 '토크' 속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다. 물론 개봉을 앞둔 감독 답게, 그러면서도 애교스럽게, 이번 슬로우 비디오는 그래도 <헬로 고스트>보다는 덜 지루하며 셀프 홍보도 마다치 않는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자신감은, 이어, 그래서 차태현의, 그래서 자신과 오달수 형님이 고군분투했다는 '역디스'에 의해 무색해 진다. 
21세기 폭스사의 제작 공급이라는 자부심을 감독이 펼쳐 놓는가 싶으면, 그 전작이 망한 <런닝맨>이었음이 언급되고, 최근 성공한 제작자가 된 차태현의 형님이 스타웃 하고 싶은 감독에 김영탁 감독도 들어가지만, 그래도 강형철 감독이 우선 순위라며 여전히 한 끝 차이로 부족한 김영탁 감독의 존재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회차의 상당 부분이, mc진들의 여전히 예능을 어색해 하는 김영탁 감독을 몰이에, 은근슬쩍 한 다리를 걸치는 차태현의 공조로 이어갔지만, 그를 통해, 오히려 김영탁 감독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홍보성 기사들을 통해 <슬로우 비디오>가 개봉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하림과 윤종신의 음악을 좋아하고, 흥행을 위해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소박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조금은 느리고, 그래서 조금 더 지루한 이야기를, 여전히 놓칠 수 없는, 김영탁 감독의 작품 세계를 <라디오 스타>를 통해 엿보게 되면서, 어쩐지 <슬로우 비디오>란 영화가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저 늘 웃기는 작품만을 선택하는가 싶었던 차태현이지만, 김영탁 감독과 의기투합하는 그의 선택을 통해, 웃기는 배우 차태현의 작품 세계 또한 들여보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늘 신인 감독들과 함께 하는 배우, 슈퍼 을이 된 배우 차태현의 배우로서의 존재감도, 신념조차도 슬며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또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맛을 아는 그가 선택한 그저 웃기는 것이 아닌, 좀 지루해도, 그 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슬로우 비디오>가 보고 싶어진다. 

난감해 하며 차태현에게 자신이 중국어 인사를 해야 하냐는 식의, 좀 머쓱한 듯, 그래서 좀 심심한 듯 했던, 하지만, 그래서, 김영탁 감독과 차태현, 그리고 늦깍이 신인 김강현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 시간, 지루해도 감동이 있다는 <슬로우 비디오>란 영화가 떠올려지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9. 25. 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