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집으로 선을 보였던 <헬로 이방인>이 외국인 예능 대세라는 트렌드를 타고 정규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였다. 

추석 특집 최악의 mc로 뽑혔다던 김광규가 자신은 mc가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mc'계의 이방인이자, 한국 대표 노총각으로 잔존한 가운데, 추석 특집에서 등장했던, 중국의 레이, 미국의 데이브, 독일의 존, 콩고의 프랭크가 다시 합류하고, 새롭게 캐나다의 조이, 일본의 강남, 일본의 후지이 미나, 파키스탄의 알리, 리비아의 아미라가 새로운 이방인으로 들어왔다. 

헬로 이방인 첫방송

한국말을 쓰지 않으면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의 미움을 살 꺼라는 공고문이 무색하게, 한국 거주 10여년이 넘는 겉모습만 외국인인 아미라와 알리에서 부터, 이미 추석 특집에서 부터 한국인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레이, 그리고 이제 한국에 발을 디딘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조이까지 한국어가 낯설지 않다. 
아니, 한국어만이 아니다. 만나자 마자, 띠까지 들먹이며 아래 위를 따지는 모습은, 딱 한국인이다. 여자들끼리 모여 이쁘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에서 부터, 시장에 가면 값부터 깍는 모양새에, 심지어, 연세대 재학생인 존과, 고대 재학생인 알리의, 고연전, 연고전 실랑이에 이르면, 김광규의 '졌다'하는 실소가 딱 내 맘이다 싶다.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누나 동생하며 왁자지껄하며 어울리는 모습이 딱 우리네 모습이다. 

<헬로 이방인>은 <비정상 회담>이 드러낸 한국 속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외국인의 진솔한 모습과, <나혼자 산다>의 무지개 라이프가 합친 듯한 빛깔을 드러낸다. 
동서양을 두루 배분한 각 나라의 출연자들은, 할랄 닭고기를 사오고, 이층 침대 꼭대기에서 엉덩이를 드러내며 기도를 하는 등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지만, 후지이 미나가 가져온 일본 전통 놀이 기구 켄다마를 서로 해보고, 함께 한국의 닭도리탕을 해 먹는 등 이방인들만이 빚어 낼 수 있는 '따로 또 같이'의 문화를 보는 재미를 톡톡히 선사한다. 

김광규가 들어선 게스트 하우스 현관 앞에는 출연하는 이방인들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그리곤 한국에 거주하는 전체 외국인이 160만 명에 이르는 현실을 밝힌다. 마치 그들이 우리나라 거주 외국인들의 대표인 듯 보인다. <국경없는 청년회 비정상 회담<이하 비정상 회담)>도 마찬가지다. 가나의 샘 오취리, 캐나다의 기욤 패트리, 터키의 에네스 카야, 벨기에 줄리안 퀸타르트, 이탈리아 알베르토 몬디, 중국 장위안, 미국의 타일러 라쉬, 프랑스 로빈 데이아나, 일본의 데라다 타쿠야, 호주의 다니엘 스눅스, 독일의 다니엘 린데만 등에서 보이듯이, 각 나라의 대표를 골고루 뽑아놓은 모양새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비정상 회담>의 타일러 러쉬와 <헬로 이방인>의 아미라는 서울대생이다. 촌놈 취급 당하는 <비정상 회담>의 샘 오취리는 알고보면 서강대생이고, <헬로 이방인>의 존과 알리는 연세대, 고려대생이다. 미국의 데이브의 우스개 말로, <헬로 이방인>에 이른바 sky가 다 모였다. 어디 그뿐인가, 콩고의 프랭크 역시 성균관대생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강남, 후지이 미나, 데라다 타쿠야, 줄리안 퀸타르트, 다니엘 스눅스, 에네스 카야 등 연예계에서 활동하거나, 활동할 예정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면, 유명 자동차 회사 카딜러에, tv아나운서 출신에, 컨설팅 회사 마케팅 매니저란다. 
국적만 외국인이지 연예인이 아니면, 몇 손가락 꼽히는 국내 대학의 학생이자, 내로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색이 맞춰져 있다. 

'비정상회담' 대니 “미국선 부모 자식간에도 계약서 쓴다“


말이 160만 외국인을 대표로 하는 이방인들이라지만, 거기 어디에도 한국에 '노동'인력으로 수급되어 온 동남아 대표들은 없다. 
'한국에 온 10년 동안 때로는 돈을 빼앗기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갖은 욕을 다 먹으면서도, 돈을 벌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그 모든 것을 다 견뎌왔다'는 <인생 수업 프로젝트>의 네팔인과 같은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출연자는 골고루  모은 듯하지만, 상당수가 푸른 눈의 하얀 피부의 백인이요, 거기에 동양권이라 해도 중국와 일본을 넘지 못하고, 아프리카 사람은 말 그대로
구색을 맞춘 듯, 양 프로그램에 단 한 명에, 색다른 국가로, 중동의 몇몇 나라들이 등장한 것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그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들이 개그맨 지망생이건, 모델 지망생이건, 어느 정도 존중감을 가지고 바라봐 주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들이 대학생이건 그렇지 않건, 시골에서 온 촌놈 대하듯 한다. 터키나, 파키스탄, 리비아등 낯선 국가와, 그나라 풍습에 대한 자세 역시 일관되게 신기한 풍물 보듯 하는 모양새를 넘지 못한다.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외국인이란, 그렇게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나, 우리나라에 공부하러 온 대학생, 그도 아니면 한국에 진출한 외국 유수 기업들에서 일하는 사람이 전부인 듯 하다. 실제 우리나라 외국인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저 우리가 고용한 사람들일 뿐,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방인'이 아니라는 듯이. 결국 우리 안의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최근 각광받기 시작하는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의 모양새이다. 말은 우리 안의 이방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하지만, 기실은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감을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by meditator 2014. 10. 17. 10:33

2010년 tvn의 뉴스 시사쇼 <열광>에 등장할 때만 해도 허지웅은 자신의 tv 출연에 회의적이었다. 심지어 월세 방값을 밀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던 그가, 고정 패널에서 부터, 광고, 나레이션, 게스트까지 tv속을 종횡무진으로 휘젓는다. 격세지감이다. 

장동민 역시 마찬가지다. <개그 콘서트>에서 동네 이장님으로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다, 사라진 그가, 오랜만에 tvn의 <코미디 빅리그>에 이상한 동물 분장을 하고 여전히 욕까지 하며 소리를 지르고 등장할 때만 해도 최근의 종횡무진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욕하고 소리지르는 것말고는 할 줄 모를 것같던 그가, 이제 남남북녀 버전 <우리 결혼했어요>같은 걸 찍질 않나, 버젓이 <지니어스3>에 등장하여 최고 학벌의 수재들을 쥐락펴락한다. 조만간 jtbc의 심리토크쇼 <속사정 쌀통>의 mc자리를 꿰어찰 예정이란다. 이게 더 격세지감일까?


허지웅이 처음 뉴스 시사쇼 <열광>에 잠깐 얼굴을 비췄을 때 말하는 시간보다, 부적절한 표현으로 그저 얼굴만 스쳐지나가기가 일쑤였었다. <마녀사냥>이나, <썰전>에 패널로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종종 그는 말을 하되, 시청자들은 그가 그저 19금의 방송에 부적합한 말을 한다고 여길 뿐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의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똑부러지게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지만, 19금의 울타리안에서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표현을 조절한다. 그가 <마녀사냥>과 <썰전>에서 쏟아낸 생각들은 바로 기사화되어 대중들의 호불호의 척도에 걸려든다. 심지어 고등학교에 간 그에게 19금 방송을 볼 수 없는 고등학생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하고, 자신들의 연예 멘토가 되어줄 것을 고소원한다. 그의 웃음, 특유의 표현만으로 구성된 광고가 등장한다. 연예인도 이런 연예인이 없다. 

장동민에게 장착된 무기라고는 그저 누구보다 크게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이나, 욕을 하는 것밖에 없는 줄 알았다. 유세윤, 유상무와 함께 돌아온 <코미디 빅리그>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여전히 히한한 복장을 뒤집어 쓰고, 욕을 퍼부으며 등장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던 그가 케이블과 공중파 동시간대 예능에 동시에 등장할 정도로 대세가 되었다. 예능의 황제 유재석이 새롭게 선보이는 <나는 남자다>에서 그간 자신과 함께 해왔덩 가신같은 동료들대신 장동민을 선택했다. 파일럿으로 만들어진 <연애 고시>에서 당당하게 여성들의 선택을 요구하는 미혼남 대표로 등장하는가 하면, 추석특집 남북한 화합 프로젝트 <한솥밥>에서는 듬직한 북한 여성의 남편 역이었다. <에코 빌리지-즐거운 가>에서 그 누구보다 정통한 시골통이요, <지니어스3>에서 예상을 깨고, 전체 판을 들여다 볼 줄 아는 폭넓은 시야로 느그하게 생존하고 있는 중이다. 각종 프로그램의 단골 게스트다. 첫 선을 보인 <비정상 회담>에서 분위기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mc들 사이에서 영민하게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던 것은 첫 게스트 장동민이었다. 

전형적인 안티 히어로랄까? '일반적인 영웅상에는 맞지 않지만 보통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이'(엔하위키 미러)에 어울린다. 
애초에 두 사람의 존재는 히어로라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았다. 토크쇼나 예능에 등장해서, 남들이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솔직한 의견, 솔직한 감정들을 마구 발산하는 게스트에 불과한 존배였었다. 그런데, 이들이 내뱉는 표현들, 혹은 감정들이 그것들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금하게 할 만큼, 직언직설들이다 보니, 자꾸 그들의 표현, 표출에 방점이 찍혀가게 되었고, 어느 틈에, 그들은 이제, 고등학생조차 열광할 '히어로'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솔직한 의견을 표출하는 게스트들은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도 이들의 강점은 우선 '초연함'에 있다. 뭇 여성들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무성욕자'라며 세상 연애사에 한 발 물러선 듯한 태도를 취하거나,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세상 살이에 의견을 피력하면서, 정작 삶에 대해 긍정적 의지는 20%도 되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삶의 태도를 잃지 않는다. 연애 상담을 바라는 고등학샏을에게, 이렇게 말해 부끄럽지만, 공부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단다. 
장동민 역시 마찬가지다. <연애 고시>에서 밀땅을 하는 상대방 여성에게 당당하게 '시끄러'라며 사랑 놀음을 거부한다. 초조하게 서로를 견제하는 <지니어스3> 멤버들 사이에서, 그들의 심리를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판에 연연해 하지 않는 듯한 장동민이다. 

(사진; 마이데일리)

초연할 뿐만 아니라, '촌철살인'의 자세를 놓치지 않는다. <마녀 사냥>이란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중심에는 그저 야한 이야기를 드러낸 프로그램의 취향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솔하게 현실을 논할 줄 아는 허지웅의 의견 피력이 있었다. 아줌마, 아저씨들의 찜질방 방담같은 <썰전>예능 심판자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심판자 같은 언급으로 기사화되는 건 허지웅의 의견이다. 심지어, 그가 한 말 실수 하나가 회자되어 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그가 가진 언어의 파급력이 커졌다. 
어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가서도 주눅들지 않으면서 자기 할 말을 다하고야 마는 장동민의 당당함은 정평이 나있다. 13일 공개된 <속풀이 살롱> 티저 영상에서,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속옷 차림을 요구하는 제작진에게 다짜고짜 야동을 찍으려고 그러느냐 욕부터 지르고 보는 게 장동민이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그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마치 돈내고 욕을 쳐들으러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을 찾아가듯이, 장동민이 내지르는 한 마디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이런, 세상의 무리에 섞여 있으면서도 거기에서 독야청청하는 '초연함'과, 그 와주에 자기의 할말은 하고야 마는 '촌철살인'이야 말로, 무리 속에 섞여 눈치 보느라 등골 빠지는 현대인에게 가장 부러운 캐릭터다. 바로 그렇게마치 가려운 내 대신 내 등을 긁어주는 듯한 존재로, 허지웅, 장동민은 사랑받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그것은 곧, 매력있는 남자의 상징인, '시크함'이 되어, 뭇 여성들의 환호와 찬사의 대상이 되어간다. 늘 자신은 여자에게 인기 있다고 말해도 그 말을 듣던 좌중이 코웃음을 치게 만들었던, 그저 아저씨 역할이나, 이상한 동물 분장이나 하던 장동민이, 어느 틈에 유상무보다, 더 멋진 남자의 대세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대세가 된 이들의 뒤를, 한국인으로는 할 수 없는 '쿨함'으로 무장한 외국인들이 쫓아가고 있다. 




by meditator 2014. 10. 16. 11:57

이명박 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인터넷 상에서 비판을 했던 김기백씨는 선거법 위반으로 8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김기백씨는 이런 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하여 헌법 재판소(이하 헌재)에 헌법 소원을 신청했고, 이에 헌재는 김기백씨의 사건에 대해 '위헌을 결정'했다. 하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김기백씨의 사건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4일 방영된 kbs1tv의 <시사 기획 창>에서는 헌재에서 위헌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대법원 등이 재심 청구를 기각하는 희한한 우리 법조계의 풍경을 다룬다. 이른바 '한정 위헌' 판례이다. '법률 및 법률 조항의 전부, 혹은 일부에 대해 위헌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개념이 불확정적이거나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경우, 해석의 범위를 정하고 이를 확대하는 경우 위헌으로 보는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하여 내린 결정이다. 예를 들면 민법 제764조의 명예회복에 관한 조항은 합헌이지만 그 조항을 근거로 사죄광고를 강제하는 행위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위헌 결정과는 달리 해당 법률 조항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범위나 적용기준의 제한을 두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불합치처럼 전면위헌은 아니다. 법 조문은 그대로 둔 채 특정한 법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의 해석과 적용범위에 관한 헌재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다'(네이버 지식 백과) 

김기백씨의 인터넷 상 이명박 전 대통령 비판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은 서로 해석을 달리한다. 법원이 선거법 위반 사례에 인터넷도 들어간다며 위법이라는 입장인 반면, 헌재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한정 위헌'과정에서 헌재의 결정은 어떤 법적 구속력이 없다. 다시 대법원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해석의 차이가 낳은 헌재의 결정에, 대법원이 권한이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함으로써, 헌재 결정의 유효성을 무화시킨다는데 있다. 


김기백씨의 경우는 벌금 80만원 정도니 약소한 수준으로 보여진다. 묘봉산 환경 영향 평가 과정에서 개발 업자에게 돈을 받아 뇌물죄로 기소된 남모씨의 경우, 대법원이 심의위원을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으로 보고 공무원 법에 의거하여 3년 징역의 엄한 판결을 내린데 대해, 헌재는 심의위원은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며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린다. 이 경우는 벌금 얼마가 아니라, 징역 기간이 문제가 된다. 실제 남모씨와 함께 헌법 소원을 신청한 동료 심의위원의 경우, 헌재에 헌법 소원을 신청하고, 위헌 결정을 받고, 하지만 대법원에서 재심 청구를 기각하여 다시 헌재로 가는 과정에서 7년의 세월을 보냈으며, 징역살이는 덜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법률 기관의 '핑퐁 게임'에 가운데 낀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그것에 대해 <시사 기획 창>은 헌재 탄생하기까지의 숙명적 운명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그간 독재 정권에게 유린당해 온 헌법적 권리를 다시 심판해야 할 법률적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탄핵', '정당 해산' 등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것에 대해 대법원은 정치적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야당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독일식 헌법 소원제도이고, 그 결과, 1988년 헌법 재판소가 설립되었다. 이런 설립 과정의 의도에서도 보여지듯이, 대법원은 각종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만 헌재가 다뤄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달랐다. 실제 독일 헌재 소원의 90%가 개인의 헌법적 소원이듯이, 헌재의 역할을 정치적 사안에만 국한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헌재법에서, 68조 1항을 통해 대법원의 의견을 따라 법원 판결을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68조 2항, '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이 헌법에 위반한다고 생각될 때 당사자가 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통해, 개인의 헌재 소원의 길을 열어두게 된 것이다. 



메인이미지
이렇게 헌재에 대한 개인의 소원의 길이 열림으로써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은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어진다. 
즉, 대법원은 헌재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3심제도를 우리나라의 법률적 제도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면, 결과적으로 3심제도를 무시하고 4심제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라는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즉, 판결의 최고 기관으로서 대법원의 위상이 헌재로인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불편한 속내이다. 
이에 대해 법률적 판단으로 인해,침해받는 개인의 헌법적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헌재의 존재는 불가피하며, 그 결정을 대법원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헌재측의 입장이다.

이런 대법원과 헌재측의 입장에 대해, <시사기획 창>은 '게임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서울대 안도경 정치학교 교수의 해석을 통해, 양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하지만, 양자가 마땅한 타협점이 존재치 않음을 지적한다. 헌재는 한정 위헌 결정을 최소화할테니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기를 원하지만, 4심제도의 딜레마는 대법원의 발목을 잡는다. 무엇보다, 최고 법원의 위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감정싸움의 양상으로 번지고,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대법원과 헌재는 국회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결국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헌재의 한정 위헌과, 법원의 재심 청구 기각 사이를 오가는 시민들 뿐이다. 

막상 내가 당하지 않고서는 관심을 기울이기 힘든 대법원과 헌재 사이의 파워 게임에 대해,<시사 기획 창>은 그 유래에서 부터 시작하여, 힘겨루기의 실례까지를 들며 상세히 분석해 나간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김기백씨의 사건의 경우와는 다르게, 헌재 한정 위헌 결정의 사례로 등장한, 제주도 남모씨의 뇌물죄라던가, 양도 소득세 판결 등은, 실제, 헌법의 개인의 자유나 권한보다는, 사회적 정의가 앞서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들이다. 비록 심의의원이라는 공무원법에 애매한 직위이지만, 그 직위를 이용해 뇌물을 받은 사람에게,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해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던가, 양도 소득세에서 기준시가가 아니라, 실거래가에 의거 엄중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상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사례들이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헌재가 개인의 헌법적 권한을 보호한다고 나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헌법적 권한은 소중한 것이야 라고 해도, 그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내세운 사례로는 취약한 것들이었다. 개인의 헌법적 권리 보장을 위해서 좀 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를 들어야 헌재의 권한에 대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암묵적으로 <시사 기획 창>이 대법원의 4심제도에 대해 동의하는 게 아니라면.

내세우기는 게임 이론에 의거하여 대법원과 헌재의 파워 게임을 분석하겠다고 했지만, 게임 이론에 의거한 분석 도구가 명확하지 않다. 굳이 왜 게임 이론을 현재의 법률적 상부 기관의 파워 게임의 해석 도구로 썼는지도 이유가 불분명하다. 이미 그 이전 헌재의 태생적 이유, 대법원의 정치적 사안을 피하고자 하는 꼼수를 설명하는 것으로 , 양자의 최고 법원 권한을 둘러싼 딜레마는 다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내가 그런 문제에 닥치지 않고서는 체감하기 힘든, 대법원과 헌재의 힘겨루기를 그 역사에서 부터 훑어, 3심제도 딜레마까지 설명해낸 시도는 좋았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건, 시민들이라는 해석은, 그 사례의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있게 다가온 문제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4. 10. 15. 12:10

'전 남편의 결혼식에 시체가 떨어졌다'며 '킬링 로맨스'를 내걸고 흥미진진하게 시작했던 <마이 시크릿 호텔>이 16부작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마이 시크릿 호텔>의 결론은 조성겸(남궁민 분)의 한 마디로 결론 내릴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게 사랑 때문이라는 거군요. 내 어머니를 위해 진실을 덮은 총지배인도, 총지배인을 대신한 양경희도, 양경희를 대신한 차동민도 결국 모든 게 다 사랑 때문이라는 거군요.'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웨딩 플래너가 되어  주관하던 남상효(유인나 분)의 전남편 구해영(진이한 분)의 결혼식에 느닷없이 천장 유리를 깨고 떨어졌던 시체 황동배(김영춘 분)에서 시작되어 미스터리처럼 이어지던 살인 사건의 결말은, 러브스토리로 결론 맺어졌다. 

그리고, 그 시체로 인해 깨진 구해영의 결혼은 다행히도(?) 두 주인공의 사랑의 확인으로 달콤하게 역시나 러브스토리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 다 사랑이야'라고 부르짖는 결론을 향해, 오는 여정은 너무나 길고도 지리했다. 


(사진; 서울 경제)


마지막 회, 결국 구해영과 남상효의 그간 16부의 길고 지리했던 줄 다리기가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 수많은 이야기를, 심지어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사정없이 퍼붓지만, 정작 해야 할 단 한 마디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빙빙 돌리다, 마지막에 가서야, 사실은 이랬어? 요걸 몰랐지? 하는 그 전형적 수법이 다시 한번 <마이 시크릿 호텔>에 등장한다.

미국에서 사랑에 빠져 결혼식까지 올렸던 구해영과 남상효는 남상효의 호텔리어라는 직업과, 그 직업적 특성과 그에 대한 남상효의 열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리고 자신의 일정까지 겹쳤던 구해영의 뉴욕 행으로 인해 겨우 짧은 3개월이라는 결혼 생활과 서로에 대한 원망만은 쌓고 헤어졌다. 

하지만, 16회,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던 서로에 대한 원망이 실은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호텔리어라는 직업마저도 내팽겨친 채 남상효는 구해영을 찾아갔으며, 구해영 역시 남상효를 찾으러 다시 돌아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그들의 사랑이 여전함을 확인한다. 첫 회에 만나서, 사실은 내가 너를 만나러 갔었다.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서로 믿는다, 안믿는다. 이러면서 16부작의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심지어 시체까지 등장하며 난리를 치루었던 구해영의 결혼마저 정수아(하연주 분)의 애걸에 넘어가 준 것이라니! 한참 무르익던 조성겸과 남상효의 러브 라인을 정리하기 위해 뜬금없이 등장한 남상효의 출생의 비밀에 이르면 막판 반전이라기 보다는 실소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마이 시크릿 호텔>의 중심 러브 스토리는 구해영과 남상효의 사랑을 둘러싼 해프닝으로 이어진다. 미워하는데 웨딩 플래너와 고객으로 만나게 되고, 어려운 호텔때문에 심지어 대신 결혼까지 해주는 해프닝으로, 두 사람의 사연은 16부를 어렵게 이어간다. 남상효 주변으로 다가간 조성겸이 멋지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안다. 한번에 두번 결혼까지 한 두 사람이 다시 헤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마지막회, 다시 한번, 구해영의 뉴욕행으로 시청자들을 낚고 남상효는 울고 앉았지만, 이미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가 긴장감을 잃은 지 오래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이 시크릿 호텔>이 재미를 놓친 것은 이른바 킬링 로맨스라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 혹은 네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와,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서로 따로 놀았다는 점이다.

남상효가 주관하는 구해영의 결혼식에 느닷없이 떨어진 시체, 그로 인해 살인 사건에 얽매여 들어가는 두 주인공, 이런 클리셰는 이미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하게 보아왔던 설정이다. 더구나, 두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 특히나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용의자가 되는 미묘한 상황이, 바로 이런 스토리의 매력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매력적인 스릴러에, 정작 두 주인공의 몫이 없었다. 

웨딩 플래너였던 남상효가 앞장 서서 사건을 해결할 만도 하건만, 용의자로 심문 한 번 받고는 일찌감치 사건으로 부터 달아나 버려, 구해영과 조성겸과 삼각 로맨스에 열중한다. 그렇게 달아난 주인공은, 해프닝으로 치뤄진 결혼식 첫 날 밤, 그들의 호텔 방에서 또 한 사람 허영미(김보미 분)가 죽음으로써 살인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하지만 그뿐, 두 주인공은 신혼여행이랍시고 달아나 버리고 살인 사건의 해결은, 촉 좋은 형사 김금보(안길강 분)의 손에 맡겨질 뿐이다. 

보통 이렇게 살인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주인공은, 범인의 의심을 받거나, 불가피하게 오해를 뒤집어 쓰고 그 사건 해결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주인공들의 러브 스토리는, 살인 사건 해결과 맞물려 진행되게 마련인데, 초반 그럴 듯하게 남상효를 용의자 심문까지 하던 스토리는 버거웠는지, 두번 째 살인 사건에 이르면 일찌감치 주인공들을 호텔 밖으로 보내 버린다. 그러다 보니, '킬링' 도, '로맨스'도 삐걱거리면서, 길고 지리한 주인공들의 사랑의 줄다리기만이 16부를 채워간다. 


<마이 시크릿 호텔>을 통해서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tvn은 킬링 로맨스를 내걸고 미스터리 스릴러와 러브 스토리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러브 스토리의 변주를 시도했지만, 결국 킬링도, 로맨스도 제대로 만족시킬 수 없었다. 과연 이 스토리를 가지고 굳이 tvn이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케이블에서 16부작을 고집할 이유가 있었나 의심해 본다. 차라리 조금 더 회차를 줄여 압축적인 스토리로 풀어냈다면, 지금 보다는 나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러브 스토리의 신선한 변주, 그건, <마이 시크릿 호텔>의 다음 작품, <라이어 게임>으로 넘어간다. 흡족치 않음에도, '킬링 로맨스'를 내건, 장르적 변주의 신선한 시도는 그럼에도 <마이 시크릿 호텔>의 성취이다. 부디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다음엔 좀 더 그럴 듯한 '킬링 로맨스'가 되어 돌아오기를. 

by meditator 2014. 10. 15. 10:57

10월 13일 kbs2 새 월화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가 첫 선을 보였다.

제목에서부터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본 사람이라면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듯이, <내일도 칸타빌레>는 2009년에 방영된 우에노 주리와 타마키 히로시가 출연했던 <노다메 칸타빌레>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두 주인공의 개성 넘치는 연기와 만화적 상상력이 넘쳐 흘렀던 <노다메 칸타빌레>였기에, 이 작품을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일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십중 팔구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내었었다. 심지어 여주인공으로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가 하마평에 오르내리다, 우에노 주리가 열연했던 노다 메구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한 발 물러서는 해프닝까지 발생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심은경이 노다메구미 역으로 낙점되고,<수상한 그녀>를 통해 검증받았던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기대로 <노다메 칸타빌레>의 리메이크에 대한 우려도 불식되는 듯 싶었다.

그리고 10월 13일 첫 방송을 선보인 <내일도 칸타빌레>, 불행히도, <수상한 그녀>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였던 심은경이 무색하게,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했던 한국 드라마들이 노정했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리메이크 된 일본 드라마를 떠올려 보자. <직장의 신>을 비롯하여, <여왕의 교실>, <수상한 가정부>까지가 기억에 남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그 중 <직장의 신>은 파견직 사원의 애환을 다루었던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우리 실정에 맞는 비정규직 사원의 애환을 '미스김'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빗대어 재탄생시켜 리메이크의 성공적 사례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에 반해 <여왕의 교실>은 교육의 현실을 드러낸 좋은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 마여진(고현정 분)을 비롯하여, 상황 설정등이 우리 현실에 맞지 않아, 그 본래의 취지마저 펴폄하된 케이스이다. 마지막 <수상한 가정부>의 평가는 더 열악하다. 마치 복사기로 찍어내듯 일본 드라마 <가정부 미타>를 베끼듯 만들었지만, <가정부 미타>가 제시하고자 했던 가정의 행복에 대한 의미 마저도 희석시킨 어설픈 흉내내기란 평가만을 받은 채 조용히 퇴장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섣부르지만 첫 선을 보인, <내일도 칸다빌레>가 차지한 좌표는 저 세 드라마 중 어디에 가까울까? 안타깝게도, <내일도 칸다빌레>는 대사부터 일본 드라마를 마치 그대로 베껴온 듯 <노다메 칸타빌레>와 흡사했지만, 역설적으로 <노다메 칸타빌레>와 가장 다른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내일도 칸타빌레>의 첫 회 드라마 속 모든 설정들은 <노다메 칸타빌레>의 그것도 거의 똑같다. 비행기 공포증을 가져서 은혜하는 선생님이 계신 유럽으로 유학을 갈 수 없는, 하지만 그럼에도 현재 자신이 속한 대학이 추구하는 콩쿨 경력 따기 위주의 교육에는 반발하는 남자 주인공. 쓰레기 더미에서 살며 악보를 보지 못하고, 박자마저 제대로 맞출 수 없지만 천부적 연주 실력을 가진 4차원의 여주인공, 그들이 우연히 술 취한 남자 주인공으로 인해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계속 만나게 되는 해프닝은 이미 일본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것들이다. 주원이 연기한 차유진은 타마키 히로시처럼 뭇 여성들의 찬사를 받는 자뻑 캐릭터이고, 심은경이 연기하는  설내일은 우에노 주리처럼 명랑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존재감을 보인다. 심지어 그들이 매번 마주치는 상황은 해프닝의 연속이며, 대사마저도 만화적이다.

 

물론 일본 원작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역시 첫 회부터 손발이 오그라드는 정서를 견뎌내야 드라마의 재미로 다가갈 수 있는 만화적 정서로 가득하다. 그리고 <내일도 칸타빌레> 역시 이 드라마의 촛점이 바로 그런 만화적 설정과 캐릭터에 있다고 판단 한 듯, 원작의 분위기를 충실히 옮기려 노력한다.

그런데, 비록 첫 회지만, 보고 있다보면 자꾸 드는 생각은, <노다메 칸타빌레>가 그랬었나? 타마키 히로시가 그랬었나? 우에노 주리가 그랬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상황도 설정도 일본 원작과 비슷하고, 주원은 타마키 히로시처럼 자존감이 넘치다 못해 자뻑이 된 대학생을 연기하고, 심은경은 그녀 자신의 세계에 갇힌 4차원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충실한데, 그 맛이 전혀 다르다. 리메이크니, 맛이 달라야 하는 건 맞는 말인데, 그 다른 맛이 그저 열심히 흉내를 내는데, 전해 다른 맛을 준달까? 마치 <수상한 가정부>나, <여왕의 교실>에서 최지우나, 고현정이 일본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말투와 행동거지까지 똑같이 하는데도, 어색했던 그 느낌을 <내일도 칸다빌레>가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노다메 칸다빌레>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스런 여주인공의 우스꽝스런 4차원 연기, 잘 생긴 남주인공의 도를 넘친 자뻑 캐릭터, 만화적 해프닝들? 그런 만화적 설정 뒤에 숨겨진 것은,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경력을 따기 위해 경쟁적으로 콩쿨이나 나가는 학습을 하고 있는 대학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면에서 <노다메 칸다빌레>는 그런 현실에서 튕겨져 나온 이단아들, 괴짜들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우화이자, 대안인 것이다. 과연 그런 숨겨진 고민들을 <내일도 칸타빌레>가 담고 있을까? 그러기에는, 첫 회를 선보인 <내일도 칸다빌레>가 보여준 모습은, 그런 현실을 고민한 캐릭터라기 보다는, 타마키 히로시를, 우에노 주리를 고민한 두 주인공이 앞서 보인다. 무엇보다, 한국으로 들어온 일본 드라마가, 일본의 정서에 맞게 각색된 만화적 상상력을 한국의 정서에 맞게 재창조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내일도 칸타빌레>는 아직 아쉬워 보인다.

 

또한 <노다메 칸타빌레>는 기본적으로 음악을 매개로 한 드라마이다. 그렇다면 <내일도 칸타빌레>는 어떨까? 이미 <베토벤 바이러스>를 시작으로, 최근 <밀회>까지, 음악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드라마들이 있었기에, <내일도 칸타빌레>에 대한 평가는 더 냉정해 질 수 밖에 없다. 드라마 내내 흘러나오는 클래식은 듣기 좋았지만, 드라마로서 클래식에는 의문 부호가 붙여진다. 피아노 연주자로 나오는 두 주인공의 연주 모양새와 음악의 부조화는 옥의 티라기엔, 음악 드라마로서 아쉬움을 남기고, 클래식 레슨에 등장한 정체 불명의 음악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유진의 경쟁자로 나오는 지휘자의 연주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내내 클래식이 만연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요 ost에 이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직 첫 방을 선보인 <내일도 칸타빌레>가 가야할 여정은 길다. 부디 우에노 주리를 흉내낸 <노다케 칸다빌레>의 어설픈 짝퉁이 아니라, 설내일의 <내일도 칸타빌레>가 되기를 바란다. 심은경의 내공과 주원의 성실성이라면, 불가능한 도전이 아닐꺼라 믿어본다.  

 

by meditator 2014. 10. 14. 09:30

간만에 sbs의 단막극이 한 편 찾아왔다. 주말 드라마 <기분 좋은 날>이 종영하고, <모던 파머>가  아직 그 자리를 메우기 전 빈 틈을 메꾸기 위해서이다. 비록, 불현듯 찾아든 2부작 단막극이지만, 김미숙이 호연했던 <사건 번호 113>에 이어  자식 앞에서 딜레마에 빠진 모성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사회적으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당사자건, 피해자건을 떠나, 부모된 자의 입장에선 등골 서늘한 고민을 던져준다. 아니, 극중에서 등장한 성폭력 범죄만이 아니다. '맹목적' 부성이나, 모성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암묵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엄마의 선택>은 오늘을 사는 부모들에게 현실적인 질문은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2부작으로 이루어진 <엄마의 선택>에서, 선택에 기로에 놓인 엄마는 이제 막 시사프로그램의 간판 mc가 된 잘 나가는 앵커우먼 진소영(오현경 분)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이끌고 갈 만큼 사회적 인식도 높다. 그런 그녀가 아침 출근 길에 차 앞으로 뛰어든 소녀 서현아(화영 분)를 만난다. 흐트러진 옷 매무새, 바지 아래로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피, 정신줄을 놓은 듯 당황한 기색, 진소영은 그녀가 성폭력 피해자임을 짐작하고,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현아에게 산부인과로 가 폭력 상대방의 정액을 채취할 것을 설득한다. 
하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막상 자신이 적극적으로 설득했던 그 소녀의 가해자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진소영은 혼란을 느낀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부인하는 아들의 말을 믿고, 아들의 범죄 사실을 전제로 하여 사건을 진행하려는 변호사마저 바꾸려 든다. 그러나, 바로 그녀의 설득으로 남긴 정액에서 채취한 dna 검사 결과가 자신의 아들 역시 가해자임을 드러내자, 그녀는 오열한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처음에는, 예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던 자각을 가진 이성적 존재로, 아들의 사건을 접근하고자 한다. 아들을 설득하여, 모든 죄를 자백하고, 대가를 치루자고 한다. 하지만,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숨쉬는 거 외에 공부만 해왔다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준게 있느냐는 남편 앞에, 심지어, 지금까지 해온 것을 포기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아들의 자살 시도에, 냉철한 사회적 인식을 가졌던 진소영은 흔들린다. 

엄마의 선택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결국 아들을 위해, 진소영은 '맹목적' 모성의 길을 택하고, 그런 그녀가 선택한 수단은 또 다른 모성을 유린하는 것이었다. 즉, 도박 빚에 몰린 현아의 어머니를 찾아가, 도박판 앞에서 물불을 안가리는 그녀에게 2억을 쥐어주고 합의서를 들이민 것이다. 그 결과 당장은, 아들의 소원대로, 재판정은 아들의 무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진소영이 가린 하늘은 그녀의 손바닥만했다. 현아의 엄마는 딸에게 또 한번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는 재판을 목격하고, 죄책감에 죽어가며 탄원서를 남긴다. 진소영이 처음 현아를 설득했던 블랙박스가 재판장 앞으로 배달되었다. 결국, 진소영의 말대로, 아들의 성폭력 범죄는 에돌아, 이제 진소영조차 위증죄로 얽어매어 아들과 함께 감옥행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엄마의 선택>이 그 어떤 스릴러보다 섬뜩한 것은, 바로 이 드라마가 던지는 '선택'에 대한 질문에 있다.  잘 나가는 앵커 진소영조차, 아들의 범죄 사실과, 아들의 탄원 앞에서 무릎을 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부모된 자, 그 누구도, <엄마의 선택>을 두고 자신의 입장을 떳떳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을 옮긴 영화 <고백>(2010년 일본)처럼, 내 자식이 피해자라, 엄마로써 그들을 단죄하는 위치라면 당당하게 자신의 범죄를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지만, 같은 맹목적 모성인데, <엄마의 선택>처럼 내 자식이 가해자라면, 자신은 진소영과 다를 것이라고 쉬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성의 위대함은 역사 이래 늘 칭송의 대상이었기에, 그 모성이 이렇게 왜곡되게 씌여졌을 때, 그 앞에서 우리는 난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맹목적 모성을 논하기에 앞서, 바로 그런 맹목적 모성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우리 사회 학부모의 현주소를 직시해야만 한다. 극중 진소영의 아들은 하버드 대학 입시를 앞둔 모범생이다. 그런 아들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음 진소영은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 모든 처벌을 감수하자고. 그런 엄마에게 아들은 말한다. 그럴 수 없다고, 1000시간이 넘는, 자신이 중학교를 들어 간 이래,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자신은 숨을 쉬는 시간 외에, 공부만 했다고. 바로, 그 맹목적 모성의 전제에 깔린 것은, 우리 사회의 맹목적 입신주의, 학력주의인 것이다. 내 자식이 그저 좋은 대학만 간다면 다 된다는 입장으로, 자식을 키워 온 우리 사회의 부모들의 현주소를 <엄마의 선택>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단지 <엄마의 선택>의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우리의 자녀들이, 도덕성이나, 사회적 의식 따위는 내팽겨쳐 둔 채, '상위 1%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하는지 새삼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다. '카르페디엠'을 포기한 채, 맹목적으로 입시에 희생된 아이들에게 어떻게 부모가 맹목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부인하고, 기소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법칙을 똑부러지게 말하는 괴물들을, 키운 것은, 바로 우리 부모들이라는 걸, <엄마의 선택>은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갈림길에 선 모성의 맹목성에 공감하기에 앞서, 그런 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우리의 진짜 '맹목적'인 교육관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 아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결국 에돌아 죄과를 치루게 된 것 뿐이라는 진소영이 낯설다. 재판정에 선 아들의 반성과 사과도 낯설다. 심지어 위증 죄로 감옥을 향해 걸어가는 진소영은 현실감이 없다. 

아마도 오늘도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자식의 좋은 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국적 따위는 쉽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재벌가의 기사들을 보면서, 죄값을 치루는 진소영이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의 진소영은 단죄를 받게 되지만, 현실의 진소영들은, 자신이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여전히 이리저리 법망을 잘 피하거나, 피하지 못해도 최소화하고 있다는 현실은 또 어떨까. 아니, 남의 부모를 논하기에 앞서, <엄마의 선택>을 보며, 반성은 커녕, 부모된 자, 자식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맹목성'이 여전히 기세 등등한 '나'의 현실 때문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4. 10. 13. 09:28

텔레비젼 속의 허지웅이란 캐릭터는 언제나 '방관자'에 가깝다. 평론가라는 직업 때문일까 흥분을 해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는 제시되는 사안이나, 연애 사건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자 한 발 물러나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마녀 사냥>에서 등장한 성적 본능에 초월하다는 '사마천'이라는 별명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학창 시절이래 가장 좋았다는 자신의 짝꿍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객관을 유지하던 그가, 자신이 유지하던 틀을 깨고, 쓰윽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놀라웁다.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동시에, <학교 다녀왔습니다>가 뭐길래?

 

처음 연예인들이 고등학교로 간다고 했을 때만 해도, 지금의 고등학교 현실에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회의가 앞섰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번씩은 손을 봐야 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러나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이 사회의 경쟁 이데올로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그 누가 손을 대도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는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공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군대보다도 더 끔찍한 곳이 고등학교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에서, 고등학교로 간 예능이라니?

 

<학교 다녀왔습니다>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과중한 수업을 허겁지겁 따라가는 연예인들의 모습,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되어, 혹은 외국에서 생활하여 낯선 연예인들의 당혹스러운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 졌었다. 그러던 것이, 회를 거듭하면서, '학교'와 '연예인'들의 시너지가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중구난방이었던 다수의 연예인의 조합도, 회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거의 고정이 된 출연자와, 거기에 맞추어 신선한 피를 수혈하며, 학교별로 색다른 구성을 만들어 낸다.

또한 획일적일 거 같았던 고등학교 생활도, 인천 외국어 고등학교처럼 기숙사 생활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함으로써, 일률적인 연예인 학교 가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10월 11일로 마무리 된 인천 외국어 고등학교에 간 연예인은 성동일, 윤도현, 남주혁, 오상진, 허지웅, 강남이었다. 그 중, 성동일, 윤도현, 남주혁은 이미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해왔던 출연자이고, 거기에 새로운 피로 오상진, 허지웅, 강남이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 시선을 끈 것은 1987년생 일본 출신의 강남이었다. 현재 고등학생들보다는 한참 형이지만, 아직 신인 아이돌 그룹 멤버로 연예계의 능란함이 덜 묻어나는 그는, 동료 학생들에게 물량 공세를 펴며 호의를 얻던 동료 연예인들과 달리 혼자만 매점행을 강행하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같은 반 학우들과 마음을 열고, 제작진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매점의 군것질을 나누고, 그들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이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의 백미가 되었다.

 

기숙사라는 함께 지내는 공간이 있었기에, 인천 외고 편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는 새로운 예능의 재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선생님 몰래 함께 컵라면을 나누어 먹다 걸리는 모습은 학창 시절이 아니고서는 경험해 보지 못하는 해프닝인 것이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강남이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어설프게 나누어 먹다 걸려서 톡톡히 혼을 나는 것과 달리, 성동일은 거의 스파이 작전을 불사하며 같은 반 아이들에게 '치킨'을 먹인다. 물론 그런 행동은 학칙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아이들을 둔 아빠 성동일이 밤늦게 까지 공부하는 같은 반 친구들을 안쓰러워 하며 준비한 작전에 눈쌀이 찌푸려지기보다는, 흐뭇한 미소가 먼저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치킨을 다 먹고 교장 선생님께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옵션의 애교다.

 

같은 반 아이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형님이지만, 아빠같이 푸근한 모습을 보이는 성동일, 여전히 모범생의 포스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마흔이 넘는 나이에도 같은 반 학우의 연애가 신기해 한 달음에 달려가는 순진함을 잃지 않는 윤도현, 19금 방송을 주로 해와, 그런 그가 고등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말이 안되는, 하지만, 가장 자유로울 것 같던 그가, 낮져 밤이의 당혹스런 질문을 넘어 고등학생의 연애에 대해,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뜻밖의 답을 보여, 오히려 진솔해 보였던 허지웅, '이게 뭐라고' 하면서도, 한국사 퀴즈건, 학급티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오상진 등이, 새로운 학교에 걸맞는 새로운 재미 이상을 준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무엇보다 회를 거듭하면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가 회를 거듭하면서 재미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그저 연예인의 학교 체험기, 적응기가 아니라, 연예인과 학생, 학교간의 교감이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인천 외고 마지막 회, 겨우 일주일 남짓 연예인들과 함께 생활했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운다. 심지어 코피까지 흘리며 엉엉 운다. 이제는 한달 동안 교생 선생님이 실습을 다녀가도 덤덤한 아이들이, 겨우 일주일 만에,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학교 방송에 게스트로 나간 허지웅은 그에게 전달된 학생의 편지 서두만 보고도 그 학생이 바로 자기 반 학생 누구라는 걸 알아챈다. 그 이야긴, 겨우 일주일이지만 그의 속사정까지 알아챌 정도로 서로가 깊은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 학생들도 연예인들을 보내기 위해, 이벤트와 선물을 준비하지만, 허지웅 등은 자신의 짝꿍을 위해, 자신이 쓰는 것과 똑같은 수첩에 자신의 글을 담아 선물로 남긴다. 학창 시절 이래 가장 좋은 짝꿍이었다는 말을 남기며.

강남 역시 학생들에게 말한다. 자신이 학교에서 짤렸다며, 너희같은 친구들을 만났다면 자신의 학창 시절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런 강남은 자기 반의 반장까지 하면서, 그러면서도 샤워하는 동료 학생의 욕실을 도발할 정도로 개구진 모습도 보이며 열심히 잃어버린 학창 시절을 다시 열심히 해보고자 한다. 함께 공부하던 정자에서 친구의 무릎을 베고 누은 강남의 모습이 어느덧 어색하지 않게 될 정도로.

 

하지만 한편에서 단 일주일을 함께 생활하는 연예인들에게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사람이 그리운 학생들이 보여져 안쓰럽기도 하였다.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까지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지만, 단 일주일 동안이지만, 공부와, 경쟁과, 규칙이란 것을 벗어나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생활하는 그런 여유를 가지게 해준 연예인들의 방문이 준 일탈이 그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지 않았나 해서 안쓰러운 것이다. 자신들을 성적이 아니라, 그저 같은 반 친구로 다가온 그들에게 눈물 흘리는 아이들에게서 순수함과 함께 고립감을 느꼈다면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한참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질 나이에, 낮져밤이가 궁금해, 19금 프로에 등장하는 허지웅이 인기인이 되는 나이의 그들에게, 연애도 좋지만, 유한한 학창 시절이 아쉬우니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진심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통해 드는 생각이다.

 

뻔할 것 같다는 예측과 달리, 회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예능적 재미를 만들어 가고 있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다음 회는 한국 학교로 간 외국인들이다. 과연 이들은 또 우리에게 몰랐던 학교의 어떤 모습을 알게 해줄까?

 

 

by meditator 2014. 10. 12. 12:50

10월 10일 밤 10시부터 방영되는 <kbs파노라마>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자본론]을 다루고 있다.

 

칼 맑스가 [자본론]을 통해 19세기의 자본주의를 정의내렸듯이,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을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의 자본주의를 새롭게 정의내리고자 한다.

영어로 695페이지, 우리 말로는 820페이지에 이르는 피케티의 책은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을 2014년 4월 하버드 대학 출판부가 출간하자마자, 전세계 각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심지어 책은 과거 200년 동안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부의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세무 통계를 기초로 하여 그 추이를 수치화한 책으로, 수많은 그래프와 통계적 내용들로 가득찬 전문 경제 서적이다. 하지만, 2011년 월가 시위에서도 보여지듯이 전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각 국민의 소득 불균형을 정확하게 수치화한 피케티의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바이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kbs 파노라마>는 지난 9월 한국어판 발행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피케티를 밀착 취재하면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의 내용을 되짚어 간다. 그저 책의 내용을 되짚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걸맞는 각종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지금 한국에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고자 노력한다.

 

피케티는 그의 책 [21세기 자본론]에서,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20세기에서 21세기 초까지 상위 1%의 소득 계층이 차지하는 소득 비율을 추적한다. 2007년을 기준으로 상위 1%는  23.5나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 해의 차지하는 비율이 아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노동 계층의 실질 임금율은 물가 상승률에 비해 감소되었다는 결론이 나올 만큼 전체 소득 비율 중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반면, 자본 소득의 비중은 늘어났다는 것이다.  회사는 커져도 노동자들의 삶은 위축되고, 노동 생산성에 미치지 못한 실질 임금의 감소는 기업이 잘 되도 가계에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들의 삶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단언한다. 새로운 세습 사회가 등장하고 있다고. 노동 소득 비율이 증가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세습된 부의 존재가 중요하고, 심지어 노동을 하는 것보다, 부를 물려 받는 것이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kbs파노라마>는 이런 피케티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마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주부를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근속' 표창장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해 온 그녀, 하지만, 그녀의 월급은 동결되었거나, 일년에 50원을 오르는 정도라, 10년 전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금액을 받고 있다. 그러니 결국 실질임금은 감소하고, 10년 동안, 맘 편히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한 채 일에 매달린 그녀는 여전히 마이너스인 삶에 시달린다. 피케티의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열풍의 근저에는 바로 이런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현실 인식이 존재함을 다큐는 보여준다.

 

이런 불평등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피케티가 제시한 통계 자료에서 이른바 피케티 지수라고 하는 국민 소득대 자본 소득의 비율을 의미하는 베타지수가 제시된다. 베티 지수의 증가는 곧 불평등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인데, 1950년대 이후 베타 지수가 증가 일로에 있고, 앞으로도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 피케티는 주장한다. 즉, 존이 돈을 버는 속도가 일을 해서 버는 속도보다 빠르기에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어 왔으며 그 부는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오늘날의 교육이 부모의 계급을 강화시켜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버드에 다니는 대학생들 학부모의 소득을 조사해 보니, 미국 상위 2%의 소득과 동일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국가에서 마찬가지였다. 저성장, 저출산이 심화된 사회에서, 신분 세습, 즉 부의 세습은 사회의 출발선에 선 젊은 층에게 중요한 부의 결정 요인이 되고 있다.

 

카메라는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온다. 하루 종일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대학생,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힘들어 뒤뚱뒤뚱거리며 걷는 그녀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취업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런 그녀를 짖누르는 것은 그녀는 본 적도 없는 1000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 빚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장미빛 미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비 조달에 따른 정규직 지원 현황은 피케티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부모에게 학비를 조달받은 학생들이 더 많이 정규직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부모의 계급을 강화시켜주는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듯이 사회는 이런 심화된 불평등을 간과한 채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한 성장만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런 성장 도그마가 허상이라는 것을 피케티는 그의 통계를 통해 논박한다.

미국의 지난 역사에서, 자본 소득 비율이 높았던 즉 소득 불평등이 최대였던 1928년, 그리고 2007년 바로 다음 해 미국은 경제 위기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빈곤한 가정이 많아지고, 그들이 빚을 지고, 그러면서 그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자본의 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용이해지지 않음으로써 사회 전체가 위기를 겪게 된다는 것을 피케티는 엄연한 통계를 통해 증명해 낸다.

즉, 레이건, 대처 등이 규제 완화를 시키고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 시킨 시기 경제는 위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루스벨트 대통령 시기 미국은 상위 1%에게 소득세를 물리는 등 상위 1%의 소득비율은 감소했지만 경제는 황금기였다는 것을 통해 경제는 곧 정치이며,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해 피케티가 제시한 대안은 크게 글로벌 부유세, 교육 공공투자, 고소득자 누진과제 등 세 가지이다. 이 중에서, 피케티가 강조하는 것은 고소득자의 누진과세이다. 루스벨트가 상위 1%에게 82%의 누진세를 적용해도 자본주의가 파괴되지 않았음을, 아니 오히려 당시 경제 성장률이 80년대 이후보다 오히려 높았음을 들면서, 누진과세가 지금의 불평등을 해소할 좋은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tv파노라마>는 피케티의 주장을 넘어 실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한다. 미국 상위 1%에 속하는 닉 하나우어는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불평등이 심화되면 물건을 구매할 사람이 없어진다면서, 부자 증세 찬성론을 펼친다. 즉 소비자들이 돈을 더 많이 가져야 기업가들이 돈을 더 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본 요코하마 게임 업체는 기업의 이익을 한 달에 하루 주사위를 던져, 그 나온 비율만큼 직원의 월급에 추가로 지불함으로써 이익을 환원하고자 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로 알려진 일본의 작은 빵가게 와타나베 이타루는 가게 수익을 골고루 나눠주는 혁신적 경영 방식을 보여준다. 심지어 매출에 비례해 직원의 월급은 늘어나지만, 주인은 그대로 받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의 재분배가 정말 피케티가 말하는 바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올까?카메라는 미국의 최저임금 시위로 시선을 돌린다. 맥도날도 노동자들을 위시하여 미국의 노동자들은 오랜 시위 끝에 15달러라는 최저 임금의 상승을 얻어냈다. 시간당 그 금액의 인상은 큰 건 아니지만, 미국 전체 경제로 보면, 엄청난 금액이 되고, 이제 최저 임금이 상승된 노동자는, 자시만의 집 등 소비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보안관인 김진훈씨 2012년 5월 정규직이 되어 월급이 두 배가 된 그의 삶이 달라졌다. 비정규직으로 살던 당시에는 소비란 개념이 없이 먹고 살기에 급급하던 그가, 정규직이 되면서 자녀의 보험에서 부터, 보금자리까지 규모있는 소비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결국 소득이 소비를 낳는다는 것을 카메라는 발품을 팔아 증명해 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극명한 피케티의 획기적인 진단이 곧 현실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tv파노라마>는 보여준다. 여전히 현실은 불평등의 심화보다는 성장만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이다. 피케티의 나라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상위 1%에 대한 소득세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프랑스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tv파노라마>의 마지막은 피케티의 질문을 맺는다. 피케티는 묻는다. 우리 사회가 정말 민주적일까? 21세기 자본주의가 나아갈 길은 어때야 할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우스개 소리가 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산 사람은 많아도 막상 그걸 완독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21세기 자본론]에 대한 해설서가 다시 나오는 등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고, 갑론을박이 되고 있는 책이지만, 정작 800여 페이지가 넘는 그 책을 소화해 내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tv파노라마>는 피케티의 자본론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저 설명만이 아니다. 우리와, 일본의 각종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피케티가 주장하고 있는 각종 통계들이 얼마나 정확한 현실 진단인가를 확인해 준다. 뿐만 아니라, 미국 상휘 1% 기업가의 입을 통해, 그리고 우리나라 정규직 전환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피케티의 해결책이 그저 이상향이 아님을 부연 설명한다. 비록 한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쉽고, 설득력있는 21세기 자본론 독해였다.

by meditator 2014. 10. 11. 12:15

<해피 투게더>를 잡기 위해 무수한 예능을 런칭하는 mbc가 이제 방향을 선회해, 목요일 밤 11시 15분, 공익적 성격을 내세운 다큐 프로그램을 파일럿으로 등장시켰다. <제 3의 눈 써드아이>

 

<제 3의 눈, 써드 아이>는 말 그대로, 이제 우리 사회 요소요소에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cctv, 블랙박스, 핸드폰 카메라를 공익의 도구로 불러온다. 하지만,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 하는 듯한 스릴러의 제목과 같은, 제3의 눈, 써드아이라는 제목과 달리,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의 공공성을 프로그램의 근간으로 삼는다.

 

제일 처음 등장한 사건은 지난 7월 광주 도심 한 가운데에서 폭발하여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광주 헬기 추락사고이다.

70~80도, 거의 수직으로 내리 꼿듯이 추락한 광주 헬기 추락 사건을 <제 3의 눈,  써드 아이>는 주변 cctv 영상, 차량 블랙 박스 영상을 동원하여 다시 한번 재조명한다.

우선 이를 통해 다시 부연 설명된 것은, 왜, 헬기는 그곳에 그렇게 가파른 각도로 추락하게 되었은가이다.

cctv 영상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작은 공터에 추락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인명 보호를 우선으로 훈련받아왔던 소방관들이기에, 헬기를 조종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도, 상가와, 아파트, 심지어 버스까지 피하며, 좁은 공터에 헬기를 추락시키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헬기가 추락할 시점에 바로 그 자리를 지나던 버스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바로 그 공터 옆에 정류장에 서게 되어 있던 버스, 하지만 천재일우로, 버스는 새로 신설된 정류장에 내릴 사람이 없어서 그냥 지나칠 수 있었으며, 마치 하늘이 돕기라도 한듯이, 신호등도 바뀌지 않아 버스와 헬기의 추락을 피할 수 있었다는 간담이 서늘한 우연을 보여준다.

헬기를 탄 소방관들의 살신성인의 희생을 cctv 영상을 통해 재조명한 것도 감동적이었지만, 9일 방송에서, <제 3의 눈 써드아이>란 프로그램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준 것은, 헬기의 각도나, 버스의 우연한 행운보다는, 마지막에 설명된, 버스 정류장의 여고생이었다.

사고 전 cctv를 통해 확인된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던 여고생, 그 학생이 앉아있는 정류장은 헬기가 추락한 지점으로부터 불과 어른 걸음으로 열 다섯 걸음이었다. 하지만 헬기가 폭발을 일으킨 후, 울면서 버스로 달려온 여고생은 겨우 다리에 2도 화상을 입은 정도일 뿐이었다.

그 학생이, 건너편 상가 유리창이 폭발의 잔여물로 인해 다 깨질 정도의 상황에서 그나마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류장 때문이었다.

강화 유리와, 철제 기둥으로 만들어진 정류장이, 학생의 폭발로 인한 부상을 막아주었던 것이다. 공무원의 인터뷰를 통해 혹시나 차량이 인도로 들이닥칠 경우를 대비해서 강화 유리와 철제 기둥으로 만들어진 정류장을 선택했다는 인터뷰를 통해, 그저 별 의미없이 표지판처럼 서있던 정류장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보기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디자인의 의미도 새롭게 부각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본을 지키는 것들이, 유사시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제 3의 눈, 써드 아이>는 광주 헬기 폭발 사고의 정류장을 통해 강조한다.

 

헬기 폭발 사고 현장의 정류장과, <제 3의 눈 , 써드 아이>의 소재가 되는 cctv, 블랙박스, 핸드폰 카메라는 비슷한 성격을 지닌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평상시에, 일상 생활에서 드러나지 않은 존재, 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묵묵히 성실하게 지켜 감으로써 유사이에 인명과 재물의 손상을 최소화하거나, 진실을 밝혀주는 존재로서의 '공공성'을 지닌 존재로써 말이다.

이후 이어진 13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부산 마을 버스 사건도 마찬가지다. 폭우 속 고무 대야로 목숨을 구한 아이의 사연 역시 시민들의 공공성이 부각되는 사건이다.

이처럼 <제 3의 눈, 써드 아이>는 cctv, 블랙박스, 핸드폰 카메라처럼 일상화된 존재가 된 것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그 공공성을 강조한 프로그램이다. 첫 회, 광주 헬기 사건이나, 부산 마을 버스 사건에서 처럼, 이들 기기를 통해, 시청자들은 몰랐던 진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osen)

 

 

하지만, 어쩐지 그, 제 3의 눈, 써드아이의 공공성에 흔쾌히 맞장구만을 쳐줄 수는 없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다음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서 보여지듯이,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각종 정보 기기들이 우리 삶을 항시적으로 주시하고 있는 '빅브라더' 의 역할 때문이다.

이 기기들은, <제 3의 눈, 써드아이>에서처럼, 흘려지나가는 사건의 숨겨진 문제를 찾아내는 공공적 성격을 지니지만,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는 무서운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해 내고 있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cctv, 블랙박스, 핸드폰 카메라 가 숨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그들의 지켜봄을 용인하게 되지만은 않는 것이다.

 

첫회, <제 3의 눈, 써드 아이>는 숨겨진 1인치를 찾아내듯 재미있었다. 심지어, 광주 헬기 추락 사고의 소방관들의 살신성인과, 정류장의 공공성이 살려낸 학생에 이르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구성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사실이 전하는 감동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공공성에의 편향이, 혹은 '빅브라더'에 나를 양도하는 백지 수표가 될까 두렵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양자의 딜레마를 수용한 <제 3의 눈, 써드 아이>는 힘들까

by meditator 2014. 10. 10. 12:28

프로그램 제목이 아니라 진짜 농부가 사라지고 있다.

국정감사 보도 자료에 따르면, 2007년 327만명이던 농업 인구는 2012년 291만 명으로 무려 12%나 감소되었다고 한다. 1970년 1442만 명이래 지속적으로 감소되어 왔던 것이다. 그 이유는, <농부가 사라졌다> 1부를 통해 사실적으로 보고 되었다.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온, 2,3차 산업 위주의 농업 희생 정책, 그 와중에서 농가들은 밀려드는 저렴한 외국 농산물과 거대 외국 자본이 장악한 사료와 종자, 비료, 농약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귀농 인구가 늘어났다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고령의 노인들이다. 그런 현실에 <농부가 사라졌다>라는 가상 다큐의 근거가 마련된다.

 

1,2부에서 사라졌던 농부들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돌아온 농부는 예전의 그 농부들이 아니다. 거대 자본에 씨앗과 농약을 사야만 했던 농부, 가축값보다도 비싼 사료값을 지불해야 했던 농부가 더 이상 아니다.

인터러뱅, 만농인력의 법칙, 스스로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기른 농부 조직은 이제 더 이상,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에서 그들의 역할을 국한시키지 않는다.

마지막 4부에서는 인터러뱅 농부들의 궁극적 지향을, 닥파머로 규정한다.

 

farmer_ep03.mp4_20141007_160549.776.jpg

 

골다공증을 걱정하는 주부의 주방, 주부는 모든 음식에  카레와 비슷한 색깔을 띤 황금색 가루를 넣는다. 황금색 부침, 황금색 국, 밥상은 온통 황금색 천지이다. 맛도 마치 조미료를 넣은 듯하단다. 인터러뱅 농부를 통해 얻은 비법이다. mc 마이클은 그 비법을 찾기 위해 농촌을 찾아간다. 전라남도 곡성에서 마이클이 만난 것은 옥수수와 비슷한 마이클 키를 넘는 작물들이다. 하지만 비법은, 그 웃자란 작물이 아니었다. 작물을 잘라내고, 흙을 캐내어, 찾아낸 뿌리, 마치 생강과도 비슷한 '울금'이 골다공증의 비기였다.

그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해 뼈를 다쳐 운신을 하지 못하다 울금을 먹고 기사회생한 경험을 가진 농부는 그 경험을 살려 울금 재배에 나섰다고 한다. 생강 과의 울금은, 고등어에 넣고 조리를 하면 비린내를 없애 주는 등, 요리의 밑재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커큐민' 성분이, 골다공증 등에 특효가 있다는 것이다.

 

특효는 울금만이 아니다. 마이클이 찾아간 까페에서 비밀의 재료를 넣은, 연두빛의 해독 쥬스를 만난다. 역시나 그 비법을 찾아 해독 쥬스의 원료를 재배하는 농장에서 찾아낸 것은, 바로, 우리밀 싹이다. 15센티 정도 자란 밀싹은, 그대로 즙을 내어 쥬스로 마셔도, 부침개 등 각종 요리의 재료로 쓰여지며,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의 공급은 물론, sodg효소가 많아 암과 노화를 유발하는 활성 산소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인터래뱅의 농부들은 적극적으로, 편협한 식생활로 인해 병들어 가는 국민 식생활을 바로 잡는 '의사'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다.

그것을 위해 이제 그들이 키우는 것은, 골다골증에 좋다는 울금, 해독에 효과가 좋은 밀싹, 당뇨에 특효약인 여주 등이다.  이들 작물을 키우면서 그들은, 소극적인 생산자를 넘어, 주체적인 건강 지킴이로 되살아 난다.

어디 그뿐인가, 사과로 와인을 만들고, 도시 양봉을 개척하며, 집밥 트렌드에 맞춘 계절 밥상이라는 새로운 농업의 트렌드를 개척하는 농부들도 있다.

 

farmer_ep03.mp4_20141007_160954.105.jpg

 

3,4부를 통해 다시 돌아온, 이른바 인터래뱅 농부들을 통해 <농부가 사라졌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침체되어 가고 있는 농업의 대안이다.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저가의 쌀 생산 정책을 유지해왔던, 거기에 이제 쌀시장 마저 개방한 우리나라에서 우리쌀을 지키기 위한 농부들의 고육지책은 농업의 고사를 낳았다. 곡창 지대마저, 하나 둘씩 논을 갈아엎어, 꽃 등의 화훼 농가로 전업을 하는 실정이다.

그렇게 고사되어 가는 농업 현실에서, <농부가 돌아왔다>가 모색한 해결책은, 바로 '닥파머' 혹은 직접 트렌드를 개척해가는 인터래뱅 농부로 귀결된다. 각종 현대병에 시달리는 도시인들에 맞춤 건강 식품을 생산하고, 주체적으로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만농 인력의 법칙'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또한 <농부가 사라졌다>는 농가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가운데에서도, 2012년 8706가구에서 2013년 상반기에만 17745가구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귀농 트렌드의 발맞춘 제안이기도 하다. 실제 귀농을 했다가도 적응을 하지 못해 역귀농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농부가 사라졌다>는 이 시대의 트렌드 귀농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또한 유의미하다.

 

농사비와 사료값도 나오지 않아 사라졌던 현실의 농부들로 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트렌드에 맞춰 현대인의 건강을 지키고, 트렌드에 맞춘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농부상을 구현해 냄으로써, <농부가 사라졌다>는 대안적 농업의 지평을 열어보인다

by meditator 2014. 10. 10.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