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아이언맨> 아들 주홍빈(이동욱 분)은 자신이 장관을 만나며 아버지를 도운 일이 다름아니라, 바로 자신의 첫사랑 태희(한은정 분)의 부모님을 그분들이 사시는 섬진강변에서 내쫓게 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아버지에게 달려가 분노를 터트린다. 그런 아들의 태도에, 아버지는 뜻밖이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아들을 생각해서, 그래도 그 부모님에게, 시세의 두배에 달하는 보상을 해드렸는데, 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르 하냐는 것이다. 그렇게 '돈'으로 모든 것을 셈하는 아버지 앞에, 아들은 말을 잃는다.

드라마의 이 장면이, 몹시도 가슴아팠던 것은, 그 소통할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이, 지금, 바로,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 분쟁이 일어나는 곳곳에서, 그렇게 주장원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과, 주홍빈 아들같은 사람들이 평행선을 달리며 싸운다. 한쪽에선 개발을 해서 잘 살게 해주고 돈도 주겠다는게 무슨 불평이냐고 하고, 그에 반대하는 쪽에선 겨우 깃들어 사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데, 돈이 다 무슨 소요이냐는 것이다. 
이렇게 지구 끝까지 가도 만날 수 없는 양자의 가운데에 서서, 그것을 정책으로 이끌어 내는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이다.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우리의 정치는, 만날 수 없는 입장의 중재는 커녕, 불난 곳에 부채질을 하거나, 변죽만 울리다 지 밥그릇  싸움에 날이 샐 지경이다. 그렇게, 정치판에서 날이 샌 정치를 보다 못해, tv가 나선다. 

본격 정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치열한 갈등의 현장으로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치의 두 고수가 찾아가, 갈등의 양쪽 입장을 듣고, 조율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첫 회를 연 프로그램에서 현장으로 찾아든 두 고수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주호영 의원과,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과 함께 변호사 임방글이 함께 한다. 두 사람은, 원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된 삼척을 방문한다. 


배를 타고 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원전 건설 예정 부지인 대진리이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주호영 의원은 원전이 건설되면 어업권이 보상되지 않느냐고, 어부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주호영 의원의 말에, 어부는 고개를 젓는다. 땅 가진 사람들이야 보상을 받고 부자가 될 지 몰라도, 바다만 파먹고 사는 사람들은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자미 밭인 이곳 대진리 앞바다에 원전이 들어오면, 가자미에 기대어 사는 자신들의 생계는 막막해진다는 것이다. 

대진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원전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주민들이다. 이미 정치인들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 주민들은,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의 방문에도 불만이 거세다. 오면 뭐하느냐는 거다. 그런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호영 의원과, 노회찬 의원은 그렇게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며 차분히 설득해 마주 않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한 밤의 만찬에 주민 대표를 초대하기에 이른다. 

해가 진 삼척 장근항 소통을 위한 공간인 포장 마차가 마련된다. 그리고, 주호영 의원과 노회찬 의원이 직접 찾아가 설득하여 초대한 변형철 원전 반대 투쟁 위원장과, 김양호 삼척 시장이 원전 반대측 대표로, 문재도 산업 통상부 차관과 이상현 마을 이장이 찬성 측 대표로 자리하게 된다. 

삼척 주민 들은 원전 건설을 놓고 주민 투표를 거쳐 참여 68%, 반대 85%로 원전 건설 반대의 의견을 분명해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방자치법 7조를 들어 국가적 목적을 위해 이미 결정된 사항은 주민 투표의 대상이 아니라며 주민 투표 결정 사항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민들은, 이전 시장이 작성한 엉터리 주민 동의서에 근거한 핵발전소 건립은 애초에 적절한 의사 결정 과정이 아니었다고 반발한다. 
이런 주민들의 의견에, 노회찬 의원은 주민자치법 8조를 들어, 국가 정책이라도 해당 자치 단체장이 주민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그런 반대에 대해, 삼척 울진 지역은 발전이 낙후되어 있으며, 경제를 살리고, 일거리를 살리기 위해서도 원전 유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 맞선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서 어디든 원전을 건설해야 우리나라의 전기 자급률이 가능한 현실에서 정부측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는 읍소도 이어진다. 

중간에 원전 반대 주민들이 난입하는 등 위기에 봉착했던 토론은, 결국 진정 과정을 거쳐, 원전 안정성이라는 원론적 질문으로 들어간다. 
원전 안전성에 대해 문재도 산업통상부 차관은 과학의 시대에, 원전의 안전성은 당연히 과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원론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예로 들은 삼척 주민 의견에, 우리 나라의 원전은 일본의 그것과 다르다는 의견으로 불안을 잠재우려고 한다. 
그런 정부측 의견에 대해 반대측 의견은 예리하다. 삼척 시장은, 그렇다면, 여의도에 원전을 하나 지으면, 앞장 서서 삼척에 유치하겠다고 뼈있는 우스개로 응답한다. 
노희찬 의견은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문재도 차관 의견에, 오히려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현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가동 중단된 원전은 어쩔 것이며, 평균 3,40년, 길어야 60년을 사용하는 원전을 우리가 편하고자 사용하고서, 저준위 폐기물 300년, 고준위 폐기물 1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비효율, 비과학적인 원전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첫 회를 연 <거리의 만찬>에 대해 임방글 변호사는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한 하루였다고 자평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진 삼척의 원전 건설 갈등은, 쉽게 만나질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것을 확인케 해준 시간이었다. 프로그램 중반에 나온 이야기지만, 발전과, 개발이라는 산업 시대의 화두와, 복지와 안녕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만날 접점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몰랐을, 내 문제가 아니라 제껴 두었던 삼척 지역 주민들의 갈등을 수면 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자체가 <거리의 만찬>이 이룬 성과였다. 일부 특정 방송을 통해 어느 한 편의 입장이나, 정부측 결정 사항만, 혹은 시위대의 모습만 보여지던 것들이, 허심타회하지는 않더라도, 속시원하게 가감없이 개진되었다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거리의 만찬>이 이룬 성취는 크다.

굳이 소통의 가능성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외된 지방 자치의 현실과, 주민들의 원맘ㅇ, 그리고, 그속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원전이라는 현실이 읽혀질 수 있다. 판단은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거리의 만찬>은 가감없이 삼척의 현실을 짚어주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는 현실은 비감하다. 주호영 의원은 정부는 안전하지 않다하고, 국민은 안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정부는 앞장서서 괜찮다 하다가, 이곳저곳에서 원전 사고가 터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고,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주민들이 나서서 투표도 하고, 시위도 해야 될까말까 한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없는 것, 정치를 tv가 찾겠다고 나선 현실은 안슬프다. 

하지만, 정치의 외면, 혹은 정치의 스캔들화, 정치의 무용론이 그것을 노린 누군가의 목적이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정치판에서 배제된 정치를 나서서 해주겠다는 시도가 갸륵하다. 더구나, 하루 종일 정치로 판을 벌리는 종편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양자의 입장을 공평하게 전해줄 공중파의 정치 버라이어티의 시도는, 정치의 왜곡의 펴줄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모처럼 뻔한 연예인들의 예능을 넘어선 버라이어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부디, 첫 방송에, 보여준 진솔한 태도들이 앞으로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0. 26. 15:50

'형태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예술상 가치가 높은 문화재'(네이버 시사상식 사전)를 무형(無形) 문화재라 한다. 그 존재가 실존하는 유형 문화재와 대를 이루는 무형 문화재는 구체적으로는 음악, 무용, 공연, 공예 기술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지칭하며, 형태가 없는 특성에 따라, 그것을 보유한 사람이 그 대상이 된다. 처음 무형 문화재가 지정된 것은 1964년 '종묘 제례악'이었다. 그로부터 50년, 무려 126개의 종목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그 중 16개가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무형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2014년, kbs는 무형 문화재 지정 50주년을 맞이하여, 무형 문화재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며, 그 첫번 째 시간으로 마련된 것이, '풍류'로서의 무형 문화 유산이다. 


<kbs파노라마>의 한국 무형문화 유산 50주년 특집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무수한 우리의 문화 유산을 '풍류'라는 관점을 통해 계통을 세우고, 특징을 잡아내려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풍류'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풍류'는 바로 '풍류를 즐긴다'의 그 의미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네이버 지식백과)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풍류란 단어에는 그것을 해석하는 학자나 입장에 따라 다양한 뜻이 담겨있다. 가장 쉽게는 앞서 말한 바 멋이 있고, 예술을 알고, 여자도 알고, 여유가 있다는 삶의 방식에서 부터,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라는 미학적 평가까지 다양한 수준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kbs파노라마>에서는 숙명여대 송혜진 교수와 우리 옛그림에 대한 글로 유명한 손철주씨가 함께 한 풍류 음악 콘서트 현장에서 소개된 옛 그림 속 풍류의 현장을 통해 '풍류'를 접근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김홍도, 신윤복 등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의 수많은 옛그림과, 그 그림을 재현하고, 그 속에 등장했을 법한 음악을 함께 들려주면서, 정의내려진 풍류는, 글과 그림, 악기와, 춤이 한 공간에서 종합 예술로서 만나게 되는 음풍 농월의 현장이다. 

옛 그림 속 선비들은 자연 속에 드리운 공간 정자에 머물며 자연과 함께 하며, 달 아래 노닐며,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벗이 있어 함께 하면, 함께 해서 즐겁고, 혼자라도 즐길 수 있는 것이 풍류에 다름 아니다. 선비들의 풍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석천한유도'를 통해서는 선비의 문방사우처럼, 말과 칼, 매, 기생, 혹은 가야금 등의 악기와 함께 하는 무인들의 풍류를 알 수 있으며,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에서는 기생의 인생이 담긴 풍류를 엿볼 수도 있다. 

거문고를 타고,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시를 읊조리던 조선 전기 선비의 풍류는 '세간의 어떤 일인들 내 마음 속에 들어오랴'는 식의 마음 수양을 그 목적으로 하는 듯했다면,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상업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중인층이 대두되면서, 본격 전문적인 풍류객과 풍류방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른바 '한량'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윤복의 '상춘야흥'을 통해 드러난 기악, 춤, 노래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은 우리 음악의 기본적 형태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그의 또 다른 작품, '주유청강'의 한강에 배띠우고 악공과 기생들이랑 노니는 풍류는 당시 선비들의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이처럼, <kbs파노라마>는 조선의 옛 그림을 통해, 주류 계층이었던 선비들, 그리고 후기 중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통해, 당시 조선의 예술을 규명하고자 한다. 실제 '백사회야유도'에서도 보여지듯이, 당시 홍대용,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풍류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 졌으며, 홍대용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중국에서 악기를 들여와 개량하는 등 풍류의 길을 개척하는데 앞장 섰음을 밝힌다. 또한 술 자리에 합석하는 여인을 넘어, 예술가로서 기생의 존재로 새롭게 부각시킨다. 그리고 이들 예술가로서의 기생들에 의해, 궁중에서 실연되던 검무가, 진주검무등의 무형문화유산으로 계승발전될 수 있었음을 간과치 않는다. 

또한 이런 조선 시대로 부터 이어진 종합 예술로서의 '풍류'가 오늘날 '한류'로 특징지워진 우리 문화의 본류였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풍류를 이어가기 위한 고궁의 음악제 등 노력도 놓치지 않는다. 


풍속화를 통해 본 풍류 음악 콘서트라는 기왕에 진행된 공연 형식에 맞춰 조선의 무형 문화 유산을 짚어 본 <kbs파노라마>는 그림를 실현해 보이는 노력을 경주하며, 조선의 풍류를 규명하고 애썼다는 점에서, 무형 문화 유산의 재정립에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또한 기왕에 진행된 공연에 맞추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보니, 콘서트의 설명과, 때로는 다큐의 내용이 적확하게 맞물리지 못해 산만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풍류를 설명하는 과정이, 만연체이다 못해, 중언부언인 듯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또한, 조선 전기와 후기의 풍류의 주도 계층을 구분하여 설명한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과연, 120가지가 넘는 우리의 문화 유산 중, 그런 주도적 계층 외에, 서민들의 '풍류'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것은 '옛그림을 통해 본' 형식의 한계에 맞물리는 프로그램의 형식 때문이리라. 그저 풍류 음악 콘서트에 기대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선 시대의 '풍류'에 대한 정리를 했더라면 조금 더 깔끔한 프로그램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무형문화 유산 50주년에 특집으로 마련된 우리 문화 유산 풍류 특집에 대한 작은 아쉬움이다.  


by meditator 2014. 10. 25. 17:34

후줄근한 아버지 양복, 머리 하나는 작은 왜소한 몸집, 자신만이 이방인듯한 표정과 눈빛, 원 인터내셔널에 이른바 '낙하산'이 되어 출근한 장그래(임시완 분)는 처음에 그랬다. 하지만 그가 차츰 달라진다. 대학물을 먹은 쟁쟁한 스펙을 가진 동료들 사이에서 고졸 검정고시라는 존재하기 힘든 경력을 가진 그가, 종합 상사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또 하나의 좌절은, 그가 이전에 프로 바둑 기사로 입문하지 못했던 좌절을 복기게 만든다. 과거 자신의 패배가, 지금의 자신을 규정하여, 그를 또 좌절에 빠뜨렸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장그래가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 실패한 것이라며 자신의 지난 날을 치부했던 그가, 바둑판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졸 사원들이 수두룩한 종합 상사에서 생존의 돌을, 승부수를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별거 아닌 딱풀 때문에 장그래가 오해를 받아 전무의 지적까지 받게 된 사건에서 오상식(이성민 분) 영업 3팀 과장은 '우리 애'라는 말로 은연 중에 장그래를 자신의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그가 경험을 앞세운 석률(변요한 분)에게 사사건건 무시당하는 듯한 장그래에게, 경험으로 보나, 잔머리로 보나 지는 게 당연한 그림이지만, 태풍의 핵을 빗대어, 무작정 그의 수에 말리지는 말라는 충고를 전한다.

 

자신을 받아들여 준 오상식에게 연서(?)로 감사함을 전하기 까지 한 장그래는 그의 충고에 고무된다. 그리고, 초를 다투며 승부를 가렸던, 배수진의 전쟁과도 같은 바둑판에서 승부사로 길러졌던 자신의 경험을 길어 올린다. 더는 어수룩한 낙하산이 아니다. 비록 검정고시라는 동료 인턴 사원들이 무시하는 경력의 소유자지만, 남들이 공부를 하고, 진학을 하는 동안, 오로지 승부를 위해 수를 놓았던 시간의 경험을, 되살려 낸 것이다. 흑돌과 백돌의 승부의 세계가, 종합 상사 직원 장그래에게 산 경험이 된다. 조치훈, 조훈현 등 숱한 명인들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결국은 홀로 바둑판에서 수를 결정해야 했던 그 시간이, 이제 대기업 낙하산이 된 장그래의 승부수가 된다.

 

'미생' 방송화면

(사진; 텐아시아)

 

그리고 그런 장그래의 바둑을 통한 경험은, 오히려 이제 오상식에게 배움을 준다. 종합 상사라는 또 하나의 전쟁터에서, 늘 이기는 싸움에만 익숙하여, 물러나기를, 무릎 꿇기를 주저하던 그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고, 물러나는 것이 또 하나의 승부수라는 것을 장그래는 역으로 가르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석률과의 피티 과정에서, 그저 밀려나지 말 것만을 주문하는 오상식을 넘어, 장그래는 석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무작정 그를 누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른바 그가 내세운 경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또 하나의 승부수가 될 수 있음을 장그래는 십여년의 바둑 수련생의 통해 길어올린다.

 

이렇게 <미생>은, 그 누가보기에도 말이 안되는 검정고시 출신의 낙하산 장그래가, 전쟁터 같은 종합 상사 원인터내셔널에서, 그의 숨겨진 경력을 통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과정을 그려낸다. 지난 회까지, 그저 실패의 복기였던, 그의 숨겨진 이력, 십 여년의 한국 기원 연구생의 경험은, 그저 입단 실패의 쓰라린 추억이 아니라, 이제 종합 상사 직원이 될 만한 경험치로서 손색이 없는 스펙이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학력을 통해서만이 증명되는, 우리 사회의 경력들이 얼마나 일면적인가를 <미생>은 보여준다. 비록 프로 바둑 기사로 등단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장그래의십수년의 세월이 공부에만 매달려 학력을 쌓은 동료 인턴 사원들에 밀리지 않음을, 심지어 때로는 그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생존력있음을 드라마는 증명해 낸다. 그래서, 1회, 그저 불쌍해 보이기만 하던, 장그래가 조금씩 총명한, 때로는 오상식 과장조차, 섣부르게 폄하하지 못할 존재로 보이게 된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만화 <미생>이 바둑이라는 특정한 경험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과 달리, 바둑에 문회한이 다수의 tv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임을 배려하여, 바둑의 구체적인 수를 배제한 이야기들이, 때로는 드라마 속 대사들을 그저 '명언'이나, '경구'처럼만 전달되게 되는 점이 아쉽다. 실제 바둑판에서, 서로의 능력이 차이가 나는 흑돌과 백돌이 경합을 벌여, 때로 수가 밀리는 흑돌이 승리할 수 있는 인생의 묘미를 보여주는 바둑의 매력이 드라마 속에서는 보여지지 않으니, 미생으로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장그래를 설명하는 매력이 반감되어 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검정고시 출신 장그래가, 우월한 학결을 코에 걸고 경쟁만을 내세운 종합 상사에서, 자신의 과거를 바탕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대학생들은 소위 일반고 출신이다. 자사고, 특목고, 그리고 그 나머지 아이들이 간다는 일반고, 요즘 세상 사람들은 마치 일반고에는 공부를 못하는 찌그레기 들만 모아놓은 듯 쉽게 규정을 한다. 학습 분위기와 수업 집중도만을 가지고, 일반고의 아이들을 평가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열반'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우리 사회에서 성공의 한 지름길처럼 여겨진다. 우리집에 같이 사는 대학생들은, 남들처럼 좋은 학원에, 훌륭한 과외 선생님을 통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대학이란 곳을 통과했다. 그래서, 학원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 때로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홀로 견뎌야 하는 대학 생활에 불안감에 여전히 고등학생같은 생활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달리, 대학 이란 사회를 상대적으로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그들과 달리, 그들이 지내 온 일반고 경험에서, 일률적이지 않은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폭넓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쌓기도 한다. 청소년 시절 성공의 잣대처럼 여겨지는, 특성화고에서는 얻지 못할 경험이요, 자신감인 것이다. 아니 우리집 대학생들의 여유를 차치하고, 장그래를 그저 패배자로만 여기는 원인터내셔널 직원 및 인턴 사원의 협소한 시야, 그리고, 공무원 등 사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결코 세상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스펙좋은 그분들의 탁상공론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간의 잣대로만 측정되어지는 평가 기준에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다. 십 여년의 연구생 생활에 대한 복기를 통한 장그래의 생존이, 그래서 더 가치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0. 25. 10:03

'미생'처럼 대기업에 들어간 신참 직장인들의 민낯을 가감없이 들여다 보고자 시도했던 <오늘부터 출근>이 4회의 정규 방송과 1회의 하일라이트 판으로 마무리 되고, 23일 방영된 6회부터, 2기가 시작되었다. 8명의 1기 멤버 중 박준형, jk김동욱, 은지원, 홍진호 등이 생존한 가운데, 새 푸대에 담길 새 술과 같은 신입 멤버로, 무려 51살의 밴드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 카라의 박규리, 그 존재만으로도 신입 사원같은 앰블랙의 미르와 배우 봉태규가 합류했다.

 

이 중 박준형의 잔존은 놀랍다. <룸메이트>에서의 넉넉한 큰 오빠 같은 호감 이미지와 달리, 대기업의 신입 사원으로 출근한 박준형은,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로 인해, 불성실한 신입사원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쭈니가 달라졌어요'를 표방한 제작진의 박준형 이미지 쇄신 과정과, 4회, 팀원들 사이에서 눈물까지 보인 박준형의 진심어린 태도가, 그로 하여금 2기의 멤버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1기 멤버 중 도드라지게 제작진의 편애를 받았던 멤버보다, 오히려 무난하게 직장 생활에 어우러진 듯한 모습을 보였던 은지원, 홍진호, jk김동욱이, 다시 한번 출근의 기회를 얻었다.

 

 

 

(사진; osen)

 

또한 첫 회 박준형의 비호감 이미지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두번 째 직장에 간 박준형은, 예의 자유분방한 태도를 아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제품 리서치 과정에서 기존 직원조차도 연예인이 과연? 이라는 선입관을 깨뜨릴 만큼 진지한 접근과 센스있는 태도 등이라던가, 혹은 광고 제작 과정에서, 예전 광고 회사 경험을 살린 현장감등을 강조하면서, 박준형이, <오늘부터 출근>에 어울리는 멤버라는 걸 강조했다.

 

한 직장의 서로 다른 부서에 배치된 8명의 사원들을 다루면서, 다른 부서로 인한 업무의 차별성을 보이려고 했지만, 결국 한 회사라는 울타리의 한계로 인해, 출연자들의 업무 차별성을 똑부러지게 드러내지 못했던 1기와 달리, 새로운 각오로 시작된 2기에서는 장난감 회사와, 국내 유명 외식업체로 근무 업체를 다각화한다. 온통 분홍빛 인형들로 둘러싸인 회의실, 다짜고짜 요리 실력부터 확인하는 신제품 개발팀 등, 삭막했던 대기업의 근무 환경과 달리, 2기의 근무 환경은, 그 자체로부터 리얼리티의 보는 맛을 살린다.

 

덕분에 8명의 출연자들은, 첫 회부터, 누구 한 사람에 대한 편애 없이, 새로운 성격의 직장 생활에 던져진 각자의 캐릭터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옷차림이 자유분방해, 오히려 조끼까지 갖춰입은 jk김동욱이 민망해 지고, 팀장이 나서서 위화감을 주니, 그런 옷차림을 하지 말라는 완구회사와 달리, 일반 회사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외식업체에 배치된 김도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죽 자켓과, 치렁치렁한 머리가 처치곤란이 된다.

 

1기 멤버 중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박준형이 부각되었다면, 2기 멤버 중 직장과 가장 언밸런스인 멤버는 김도균이다. 거의 퇴직을 할 나이에 가까운 그가, 찰랑이는 로커의 머리와 가죽옷을 착장하고 직장에 나타났다. 직장인이라도 아무나 주차할 수 없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해프닝에, 회의 시간을 앞두고 무념무상 로비의 전시물을 보는 여유로움에서, 직장이라는 조직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김도균을 느낄 수 있는 반면, 1기 때 박준형의 오해를 학습했던 제작진은 김도규의 부조화를 양념삼아 치고, 대신, 새초롬하게 머리를 넘기며 안내 전화에 열중하는 신입 사원 모드에 적응하려 애쓰는 51세의 늦깍이 직장인을 부각시켜 비호감을 피해 오히려 8명의 신입 멤버 중 박규리보다 더 귀여운 캐릭터로 등극시킨다.

 

그런가 하면, 봉태규의 존재는, 영화 속 그의 캐릭터가 그러하듯이, 조직사회의 전혀 없다는 그의 실체와 달리, 그의 존재만으로도, 또 하나의 '미생'을 보는 듯한 현실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봉태규는 그런 존재론적인 이미지에서 머물지 않는다. 미리 학습을 하고 온 듯, 완구회사 정문에 진열된 캐릭터를 yg의 빅뱅과 위너를 빗대 설명하는 촌철살인의 센스에서 부터, 마주 앉은 은지원의 어부지리 영업 성과에 고무된 듯, 영업 실적을 위해 고군분투 애쓰는 모습까지, 신입사원 코스프레를 넘어선 봉태규의 매력을 엿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진지한 고군분투는 영화 속 그의 캐릭터처럼, 운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무시무시한 상사의 질책을 예고함으로써, <오늘 부터 출근>의 다음 회를 기약하게 만든다.

 

첫 회, 새로이 등장한 김도균, 박규리, 봉태규, 미르의 난처한 신입사원 신고식에, 꼴랑 4회차의 경험이지만, 이미 한번의 직장을 경험해 보았던 '신입사원' 선배 은지원, 홍진호, jk김동욱, 박준형이 새로운 직장 속에서 보여주는 파열음이 <오늘부터 출근>의 묘미이다. 거기에, 상황을 설몀하고, 도발하기까지 하는 자막이 옵션처럼, 프로그램의 재미를 살린다.

 

 

by meditator 2014. 10. 24. 12:06

주장원(김갑수 분)의 외면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죽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손세동은, 그로 인해 한참 사랑으로 무르익던 주홍빈(이동욱 분), 유치원에 엄마 대신 동화책을 읽어주러 가마고 약속까지 했던 창(정유근 분)이와의 관계조차도 저만치 미뤄두게 된다. 그리고 오랜 숙고 끝에 다시 주홍빈을 찾게 된 세동이, 뜻밖에도 '원수'인 주장원에게 던진 요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주홍빈의 죄과를 치루라는 것도 아니고,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했던 일로 인해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지게 된 사실에 대해, 그저 그 사람의 사진을 앞에 두고 사과를 해달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아버지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장원이 그간 해왔던 일들을 그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장원은 그런 세동의 요구, 아니 눈물을 머금은 간절한 청탁을 거부한다. 자신은 그런,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니 살면서 누구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국토를 파헤치고, 건물을 올리는 그 일은 그저 자신의 일이었을 뿐이라고. 그걸 더 이상 그만두겠다 말할 수 없다고.

 

주장원과 손세동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화법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던 이 사회의 수많은 폭력들, 그 폭력의 피해자들은, 늘 자그마한 소망을 가질 뿐이다. 관계자의 사과와 진상 규명. 하지만, 주장원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기성 세대들은, 주장원처럼 말할 뿐이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뿐이라고. 즉, 국토를 파헤치고, 건물을 짓고, 그런 '개발'의 과정을 빛나는 이 사회의 영광스런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은, 그저 불가피한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책임지거나, 미안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고.

지금도 광화문 광장을 메우는 많은 부모들의 소망, 그저 왜 자신의 아들, 딸들이 죽어갔는지, 그 진상을 밝혀달라는, 그리고 책임있는 자의 사과를 원한다는 '소박한' 소망에 대한 이 정부의 화법도, 주장원의 화법과 다르지 않다.

 

 힐링 어른동화 '아이언맨', 이동욱-신세경-김갑수가 달라졌어요 / 사진 : KBS2 '아이언맨' 방송화면 캡처

(사진; 더 스타)

<아이언맨>의 아버지 주장원은 상징적이다. 그저 주홍빈의 , 주홍주의 아버지 개인 아니다. 23일 방영된 <아이언맨>에서, 이제 은퇴한 듯 보이던 주장원이 또 한번의 일을 벌인다. 주홍빈까지 동원해 장관에게 허락받은 일, 바로 주홍빈의 첫 사랑 태희의 부모님이 사시는 섬진강 변을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태희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처음으로 주장원의 집에 달려간 주홍빈, 자신을 이용하며서까지 아버지가 하시려던 일이 태희 부모님을 내쫓는 것이었냐는 아들의 원망섞인 질문에, 아버지는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태희 부모님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은 태희 부모님을 생각해서, 시가의 두 배에 해당하는 보상액을 책정했단. 한 몫 단단히 잡게 해주었는데,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아버지 주장원은 큰소리를 친다. 익숙한 화법이 아닌가. '돈'을 벌기 위해, 잘 살게 해주기 위해 한 일이라는.

그렇게 주장원은 한 평생을 바쳐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불철주야 자신을 헌신했다. 그는 부수고 짓고, 세우고, 그러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그의 욕심을, 아들이 사랑하는 하찮은 집안의 여자를 폐자재 치우듯이 해버렸고, 작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못다한 명예를 채우기 위한 공부를 요구한다.

 

허물고 부수고, 거기에 철근을 넣고 짓고, 세우며 살아왔던 아버지 세대, 그 아버지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들은, 분노를 견디지 못해, 몸에서 칼이 돋아난다. 왜 하필, 주홍빈의 몸에서 돋는 것이, '칼'즉, '아이언'인가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아버지 주장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공부에 관심도 없는 작은 아들 홍주에게 다짜고짜 미국 유학을 종용하자, 작은 아들 홍주는 술에 취해, 아버지가 처음 지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곳 난간에 위태위태하게 올라 선 아들, 아버지가 지은 건물 위에서, 죽을 위기에 놓인 아들, 그리고, 아버지로 인해 몸에서 칼이 돋는 아들, 거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집안의 속사정이 아니다. 건설로 나라를 일구어 내었다 자부하는 아버지 세대, 그 아버지 세대가 일군 토대 위해, 부를 이루었을 지 모르지만, 마음을 잃은 아들 세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주장원, 주홍빈, 주홍주 부자를 통해, 작가는 상징적으로 그려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세상을 일구기 위해 도구로 사용했던 아이언은 이제 무기가 되어 아들의 몸에서 돋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종종 등장하는 가파른 건물들, 그리고 그 가파른 건물들 위에 아슬아슬 서있는극중 인물들은,  그저 연출의 남다른 스킬이 아니라, 주장원이 만들어낸 세계의 암묵적 배경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바라는 세동을 단호하게 돌려보낸 주장원은 얼마 후 세동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제 와 새삼 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되돌아 보니, 자신이 했던 일의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그들 역시 자신처럼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을 전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되면, 그런 자신의 깨달음을 염두에 두겠다고 말을 맺는다. 기괴한 칼의 시간을 견디고, 어렵사리 얻은, 기성 세대의 '사과의 변'이다. 비록, 그 어려운 '사과의 변'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단 3% 정도에 불과하지만, <아이언맨>의 극진한 상징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시대에 그런 사과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3%일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런 동화같은 일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3%일 지도. 어른들의 동화같은 <아이언맨>이 사실 말하고 있는 건, 이 시대를 살아왔던 아버지의 세대와, 그 아버지로 인해 상처를 입다 못해 누군가를 피 흘리게 만드는 아들 세대의 이야기이다.

 

by meditator 2014. 10. 24. 10:18

또 한 편의 일본 원작 드라마가 찾아왔다.

일본의 인기 만화이자, 드라마였던 <노다메 칸타빌레>가 만화적 분위기와 일본의 정서를 한국적으로 걸러내지 못하여 자중지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노다메 칸다빌레>에 못지 않게 한국에서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라이어 게임>이 tvn의 드라마로 찾아왔다. 더구나, 카이타니 시노부 원작의 만화로 상금 100억을 쟁취하기 위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벌이는 극한의 심리 드라마인 <라이어 게임>은 이미 tvn의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와 흡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로 돌아온 <라이어 게임>은 일본 원작과, 그리고 <더 지니어스>와 어떻게 다를까?

 

일본 원작 만화와 드라마에서 총 상금 100억을 쟁취하기 위한 게임을 벌인 곳은 LGT사무국이다, 그에 반해 TVN의 드라마는 보다 현실적으로 JVN이라는 가상의 방송국에서 벌이는 리얼리티쇼로 한국적 현실성을 높인다.

 

그에 따라, <더 지니어스>에서 처럼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게임 호스트는 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의 강도영(신성록 분)이라는 구체적 인물이 되어 등장한다. 그는 위기를 겪는 JVN방송국과 손을 잡고,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투자자를 끌어들여, 총 상금 100억이라는 무지막지한 게임을 벌인다. 첫 회,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사행성 게임에 시니컬한 기자들을 향해, 광고료 5억을 걸고, 단번에 '라이어 게임'을 이슈로 만들어 버리듯, '라이어 게임'을 넘어 강도영이라는 캐릭터의 존재 자체로 드라마에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렇듯 드라마로 돌아온 <라이어 게임>은 상금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대립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파헤치는 것과 달리, 게임 호스트를 구체적 캐릭터로 구현한 것처럼, 보다 사연있는 드라마로써 첫 선을 보인다.

 

 

아직은 그 존재의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을 상대로,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인상깊은 강의를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한 후 잡혀가는 심리학과 교수 하우진(이상윤 분)은 원작의 아키야마 신이치와는 다르지만, 이상윤의 캐스팅으로 호불호가 갈렸던 여론을 첫 회의 한층 날카로워진 모습과 연기로 논란을 기대로 변화시킬 만큼, 신선한 캐릭터로 등장했다.

 

지나치게 순진하고,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라이어 게임에 반강제적으로 휘말리게 된 원작의 여대생 칸자키 나오와 달리, 라이어 게임의 초대장을 받는 과정은 비록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빚에 시달려 사라진 아버지, 그 아버지의 빚 독촉을 대신 받는 처지에서, 고등학교 은사의 부탁을 받아, 참가 결정을 보다 주체적으로 내리는 남다정(김소은 분)의 캐릭터 역시 일본 원작과는 그 주도성에서 결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일본 원작 만화와 드라마가, 게임 자체를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과 달리, TVN의 <라이어 게임>은 <더 지니어스>처럼 공개 리얼리티 게임이다. 물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사기 등 그 어떤 수단도 용인되지만, 공개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게임인 만큼, 일본 만화적 색채가 한결 덜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변화된 한국판 <라이어 게이>의 관전 포인트이다.

 

첫 회, 남다은은 거리 한 복판에서 길을 묻는 할머니를 외면하지 못한 채 길을 가르쳐 드리다 할머니의 가방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 가방은 착한 그녀를 '라이어 게임'에 초대하기 위한 초청장이자, 첫 번 째 관문이다. 매일 매일 찾아오는 사채업자의 유혹을 이겨내고, 돈 가방을 들고 경찰서로 향하는 남다은, 가장 정직한 그녀가 스스로 선택하여, 거짓말 게임에 참여하게된, 그 사연과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가 <라이어 게임>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마치 <더 지니어스> 매 시즌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참가자가 첫 번째 탈락자가 될 가능성이 높듯이, 중가장 정직해 보이는 그녀가, 과연 거짓말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즉, 결국, 진실의 힘이 거짓말이 판 치는 세상에서 무기가 될지, 그것이 <라이어 게임>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이렇게, 첫 선을 보인, <라이어 게임>은 <더 지니어스> 처럼 리얼리티 게임의 성격을 가지고 가지만, 남다은이라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강직한 하지만, 빚에 시다리는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 보통 사람들의 대표자 같은 주인공의 사연을 극진하게 설명함으로써, 게임을 넘어 , 드라마로써의 강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첫 회부터, 고등학교 시절, 위기에서 그녀를 믿어주었던 은사님의 배신을 겪는 만큼, 그녀의 앞길이 순탄치 못할 것도 뻔해 보인다. 바로 그런 위기에서, 그 누구도 믿지 않는 하우진과,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남다은의 콤비가 엮어갈 이야기가 기대된다. '러브 스토리'를 배제했다고 하니, 그 어디서 무엇을 하던, 결국은 '사랑 놀음'으로 귀결되고 마는 TVN의 고질병을 <라이어 게임>이 지양할 수 있을지, 그것이 또한 놓칠 수 없는 관전 포인트이다.

by meditator 2014. 10. 21. 09:57

2015년 1월1일부터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의무 수입 물량을 늘려오다, 2005년 이후 의무 수입 물량을 두 배로 늘려 쌀을 수입해오던 정부는, 2015년 수입 쌀에 대한 관세를 물리는 것을 전제로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일본처럼 고율 관세를 통해 우리나라 쌀 시장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미, 중과 FTA를 통해 연계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고율 관세 부과는 또 비현실적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쌀의 자급률이  2010년 104%에서, 2013년 86%로 떨어지고, 전체 식량 자급률이 44.5%로 OECD회원국 사이에서 꼴찌인 상황에서 쌀 시장 개방은, 그저 농업이 한 부분의 개방이 아니라, 한국 농업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또한 오래 지속된 저농산물 가격 정책으로 인해 낮은 쌀 수매값으로 인해, 농촌의 인력이 사라지고, 쌀을 재배하는 논이 실종되고 있는 상황에서 쌀 시장 개방은, 농촌 붕괴의 지름길이 될거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사진; 뉴시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텔레비젼에서는 '농촌'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40대 이후 세대들의 '귀농' 증가와 함께, 건강을 우선시하는 '친환경적인 음식 문화'가 트렌드가 되면서, 농촌은 현실인 듯한  '이상향'의 존재로 각종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다. 

18일 나영석 이서진의 조합으로 첫 방송부터 4%대의 안정적인 출발을 보인 <삼시 세끼>의 취지는 '내 몸과 내 마음을 위한 충전의 시간, 두 남자의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이다. 프로그램 속 이서진과 옥택연을 떨궈 놓은 마을은 산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 정선 골짜기이다. 비록 한 끼를 해먹는 자체가 전쟁이라지만, 삼시 세끼를 너끈히 해 먹을 수 있는 갖가지 푸성귀로 가득찬 너른 앞뜰은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이런 이서진과 옥택연의 고생을 앞서 체험한 사람들이 바로 <삼村로망스>의 양준혁, 양상국 등이다. 
18일 첫 선을 보인 또 다른 '농촌'이 소재가 된 프로그램, <모던 파머>는 농촌으로 간 청춘들을 다룬다. '엑설런트 소울즈'라는 록밴드 활동을 했지만, 시골 장터를 떠돌며 행사나 전전하던 이민기와 친구들은, 배추 밭을 일궈 그걸 밑천으로 복귀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하드록'리로 향한다. 그를 맞이한 고향에는 활기가 넘친다. 70넘은 노인들이 하루 종일 허리도 펴지 못하고 일을 하는 농촌 현실은 오간데 없이, 서른 살 여자 이장 윤희를 비롯하여, 비록 마흔 살의 노총각 청년 회장에 중년의 가장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화훼 농장을 하는 안주인과 딸은 보톡스에, 손톱 손질을 하러 다닌다. 이런 시트콤같은 <모던 파머>의 케이블 버전은 10월 1일 종영한 TVN의 <황금 거탑>이다. 
매주 일요일 3시 50분 SBS를 통해 찾아오는 <즐거운 家>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시골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아름다운 텃밭을 일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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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과 옥택연은 밥을 한다하며 가마솥과  씨름을 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부터, 도시인 그들에게는 난감한다. 이렇게 농촌을 소재로 하여 등장한 모든 프로그램들의 서막은, 마치 외국이라도 간 듯, 아니 외국보다 더하게 문화적 이질감을 보이는 도시인들의 문화 충격으로 시작된다. <모던 파머>의 1,2회는 온전히, 하드록리에 가서 해프닝을 벌이는 '엑설런트 소울즈'의 해프닝으로 채워진다. 과수원의 사과를 '서리'라며 따먹고, 트렉터를 몰다 사슴을 치어 죽이고, 상수원에 오줌을 누는 등, 물색없는 도시인의 실수담이 재미의 원천이다. 이 정신없는 해프닝의 원조는 <황금거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서 이리저리 직업을 가져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뽀족하게 이룬 것이 없었던 청년이, 농촌 정착 지원금을 받아 시골로 오게 되고, 거기서 사는 여러 사람들과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좌충우돌하는 것이 <황금 거탑>의 주요 스토리이다. <모던 파머>의 여자 이장은, 바로 <삼촌 로망스>의 양준혁 등이 찾아간 마을 여자 이장에게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그래도 현실을 반영한다고, <황금 거탑>에서도, <모던 파머>에서도 외국인 신부의 존재는 필수다. 

이렇게 최근 등장한 '농촌' 프로그램들에는 농촌에 대해 뭘 모르는 도시인과, 친환경적인 농촌이라는 대립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불편해하고, 뭘 잘 모르던 도시인들이 하나하나 시골에서의 삶을 배우가면, 친환경, 유기농 라이프에 적응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취지는 마치 텔레비젼으로 배우는 '귀농' 강습과도 같다. 아니, 귀농 홍보 프로그램에 더 어울린달까? 하지만, 현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택하지만, 이제 그만큼의 사람들이 귀농에 실패하고 시골을 나서는 것이 현실이 된 것처럼, '농촌'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에 농촌은 지극히 부분적으로만 존재한다. 즉, TVN을 통해 4부작으로 방영되었던 <농부가 사라졌다>의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의 조건>에서 '농활'로 시골 마을을 찾아간 개그맨들을 반긴 것은 70이 넘은 촌로들이다. 가장 젊은 사람이라 봐야, 마흔 줄의, 오십 줄이다. 그런 사람들마저도 드물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을 별 수 없이 지키고 있는 노인들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허리 필 틈도 없이, 도와줄 인력이 귀한 농촌의 일을 홀로 해낸다. <모던 파머>에서 한갓지게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부채질을 느긋하게 하며 마을 어른입네 하는 노인은 없다. 그런 노인들을 돕기 위해 등장한 농촌 기계화? 말이 좋아 편리한 기계화지, 그 기계를 임대하거나, 사기 위해 들어간 돈이 전부 다 농촌의 빚이다. 어디 그뿐인가, <농부가 사라졌다>에서 농부가 사라지게 된 이유인, 거대 외국 종자 회사가 독점한 작물 씨앗과, 각종 비료들, 그리고 수입 사료들로 인해, 우리 농촌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 수록 빚만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농약 과용으로 산성화된 농토와 치워가지 않는 쓰레기 더미가 점령한 비감한 농촌, 유기농 라이프의 아름다운 친환경 농촌은 없다. 무엇보다 '쌀 시장 개방'등으로 위기에 빠진 농촌이 없다.  물론 <농부가 사라졌다>에서도 역설적 대안으로 닥파머(의사처럼 치유를 해주는 농업을 하는 농부)와 인터러뱅이라는 대안 농부 집단이 등장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가상 다큐로서, 대안을 희망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희망이지만, 아직 농촌 현실의 대세는 아니다. 하지만, TV속 농촌에는 대안과 희망과, 아이러니하게도 회고적 농촌 공동체의 기억만이 넘쳐난다. 

하지만, 텔레비젼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 농촌은 여전히 이웃간 정이 넘쳐나며, 젊은이들과 중년층의 노동 인력이 풍부하고, 친환경적 유기농 삶이 그득하다. 마치 그 옛날 서양인들이, 풍문으로 전해들은 동양을 이상향으로 그리고, 찾아나서듯이, 도시 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농촌은 비감한 삶의 현실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쉬게 해줄 휴식처로서만 존재한다. 산업화 속에 몰락해 갔던 농촌을 서정적으로만 그려냈던 <전원일기>의 2014년판이다.


by meditator 2014. 10. 20. 15:26
10월 19일에서 20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한적했던 그 자리에, 새삼 피튀기는 혈투가 시작되었다. kbs드라마 스페셜과, mbc드라마 페스티벌이 동시에 방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1. kbs단막극의 모색
10월 19일 방영된 <kbs드라마 스페셜>의 한 시간은 '일각이 여삼추(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여 아주 짧은 시간도 삼년같았다)'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3일부터 시작하여 매일 10분씩 네이버케스트를 통해 웹드라마의 형태로 방영되었던 <간서치 열전>의 마지막 결말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20일까지 누적 조회수 60만을 돌파한 <간서치 열전>은 그간 새로이 시작된 kbs드라마 스페셜이, kbs단막극을 기다렸던 이들의 기대에 못미쳤던 완성도와 내용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제야 비로소 kbs 단막극이지! 라며 무릎을 탁 칠만한, 내용과 연기, 완성도를 보여, 웹드라마로서 첫 발을 성공적을 딛게 되었다. 



<간서치 열전>은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을 둘러싼 당대 인물들의 갈등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이를 위해 드라마를 끌고가는 인물은, 오늘날의 오덕후에 해당하는 '간서치'를 등장시킨다. 
간처치, 看書痴, 말 그대로 책만 읽는 바보는, 조선 후기 유몀한 실학자 이덕무의 '간서치'전으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간서치전'에서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를 못하였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도록 일찍이 하루도 손에서 옛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으며 글을 읽었다”라고 썼다. 가난한 서얼출신인 이덕무는 남의 책을 베껴주는 품을 팔면서 책을 읽었고, 풍열로 눈병이 걸려 눈을 뜰수 없는 가운데 실눈을 뜨고 책을 읽었으며.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 피가 터질 지경인데도 책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쓸 정도였다' 드라마상의 간서치로 분한 수한(한주완 분)은 바로 이덕무가 설명해낸 간서치 딱 그 자체였다. 이덕무처럼 서얼 출신인 그는, 자신을 외면한 세상 대신에 책을 벗삼는다. 어머니가 그런 간서치인 아들을 견디다 못해 책을 불사르려 할 정도로, 책을 불사르려는 어머니에게 수한은 '그럼 왜 나를 낳으셨냐'는 말로 그 상황을 겨우 모면하고, 그럼에도 '간서치'다운 행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장서가 풍부하기로 유명한, 그리고 그 자신의 창작물 역시 만만치 않은 허균의 서재에 드나들다, 그 서재에서 죽어간 허균 집 마름의 살인자로 누명을 쓰기에 이른다. 

이렇게 허균 집 마름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서 시작된 간서치 열전은, 매일 10분씩 개봉되는 새로운 편에서 사라진 홍길동전을 이용해 허균을 옭아매려는 이이첨과, 한번 책을 보면 모조리 기억해 내는 책 돼지'서돈', 세상에 단 한 권의 책을 소유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서랑' 등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으로, 새로 시작된 웹드라마로서의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또한 그저 신간 홍길동전을 소유하고자 하는 책 욕심을 넘어, 서얼의 등용이 가로막힌 경직된 신분제 국가 조선에 대한 비판을 고스란히 작품화 한 혁신적 사상가 허균과, 그런 그의 사상이 담긴 홍길동전을 이용하여, 허균을 숙청하려는 이이첨의 야심이라는, 광해군 시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드라마의 저변에 깔려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간서치 열전>에서 등장한 '홍길동전'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허용받고 감읍하고, 임금 앞에 충성을 맹세하고 병조판서를 제수받는 충신이자 효자 홍길동이 아니다. 서얼인 신분을 극복하고, 그 스스로 왕이 되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혁명가 홍길동으로, 그 책의 존재 자체가, 혁명이 되는, 바로 그런 책를 둘러싼 혈투가 <간서치 열전>의 내용을 흐른다. 

덕분에 매일 매일 생각지도 못했던 스토리와 캐릭터의 열전으로 <간서치 열전>의 일주일은 흥미진진했다. 확실히 일요일 밤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혹은 내일의 출근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기다리던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부담감이, 웹드라마로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로 인해 한결 덜어진다. 변해가는 세상에 변해가는 형식으로 ,생존'을 넘어, 발전을 이룬 성취이다. 마치 그간 지리멸렬했던 <드라마 스페셜>은 이 <간서치 열전>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운동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웹드라마로 동시에 시작된 kbs드라마 스페셜의 모색은 신선하고, 출발은 성공적이다. 물론 과제는 남아있다. 웹 드라마의 특성상, 10분 안에 승부를 봐야하는 드라마 형식에 대한 고민 역시 따를 것이다. 또한 이렇게 <간서치 열전>을 통해 한껏 높아진 기대를 좋은 작품으로 이어가야, 형식적 모색이 꾸준한 시청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2. mbc 단막극의 추수주의? 혹은 생존 전략?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 12시, 언제부터 이 시간이 tv 시청하기에 적절한 황금시간대라도 되었었나?
<kbs드라마 스페셜>이 밀리고 밀려, 일요일 밤 12시에 시작되는 것도 안타까웠는데, 그 자리에 냉큼 mbc가 <드라마 페스티벌>이라며 단막극을 편성했다. 그 시간에 두 편의 단막극이 융성하는데서 오는 관심끌기?  일종의 족발 골목이나, 꽃게찜 골목같은 전략이라고 보아야 하나? 그게 아니면 그래도 그 시간이라도 기다려 단막극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려는 속깊은 배려? 그도 아니면, 알량한 그 시간대 시청률이라도 나눠먹자는 심뽀?
굳이 하고 많은 시간을 놔두고, kbs드라마 스페셜조차, 낮은 시청률로 인해 '웹드라마'라는 형식을 모색하고자 하는 밤 12시대에 <드라마 페스틸벌>을 시작한 mbc의 속내가 그다지 곱게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를 위해, 유일한 mbc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코미디의 길>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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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간서치 열전)

게다가 2014년 하반기 들어 첫 선을 보이는 <드라마 페스티벌>의 첫 작품은 더더욱 마땅치 않다. 
29일 방영된 다시 돌아온 <드라마 페스티벌>의 첫 선은 이윤정 피디의 <포틴>이다. 이 작품은 mbc 드라마 페스티벌 홈페이지에 소개되기론 9회로 예정된 단막극 시리즈의 3회분으로 예정된 작품이다. 일본 작가 이시다 이라의 '4teen'을 각색한 작품으로, 이윤정 피디가 퇴사하기전 2013년에 촬영을 마쳤던 작품이다. 

'경쟁력있는 연출가와 신인 작가들의 만남을 통해 기존에 볼 수 없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탄생시켜왔던 mbc드라마 스페셜은 올해도 장르와 소재의 경계를 뛰어넘는 재기발랄한 시도'를 하겠다는 것이 새로이 시작된 mbc 드라마 스페셜의 개막사이다. 
그런데 이런 야심찬 포부와 달리, 굳이 3회로 예정되어 있던 일본 작가 원작의 작품, 이미 퇴사한 피디의 작품을 굳이 첫번째로 끌어 올려 방영하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끌려는 꼼수까지 부려야 했을까?

주인공 영훈의 30대 역으로 차태현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포틴>은 이른바 중2병을 앓는, 어리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열 네살 남자 중학생들의 고민과, 짙은 우정을 잔잔하게, 하지만 가슴시리게 다룬다. 역시나 지리한 청춘의 숨겨진 열정을 감성어린 화면으로 담아내는데 능숙한 이윤정 피디의 벼려진 칼날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데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이미 이피디는 mbc에 없는 걸. 자리에 없는 피디의 작품까지 내세우면서, 알량한 시청률대의 시간까지 나눠먹기까지 하면서 찾아온 mbc드라마 스페셜, 겨우 9편의 방영을 선보인면서, 너무 시끌벅적한 등장아닌가 싶다. <mbc 베스트 셀러 극장>의 전통이 무색하다. 


by meditator 2014. 10. 20. 11:00

좀 과장되게 말해서 나영석 피디, 아니 나영석 피디로 상징되는 제작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듯 싶다.

나영석 피디와 그의 제작진이 연예인들과 함께 '꽃보다' 시리즈를 제작한 이후, 공중파를 비롯한 국내 유수 방송사의 여러 제작진들이 연예인들과 함께 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꽃보다 시리즈 보다 뒤늦게 시작한 <7인의 식객>도, <sns원정대 일단 뛰어>도 이제 방송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꽃보다 시리즈만이 버전을 달리하며 생존 아니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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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끼>도 마찬가지다.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남자의 자격>에서 농촌 집을 빌어 사계절을 나보겠다는 시도를 일찌기 했었으며, 같은 방송국 tvn에서 <삼村 로망스>라며 양상국, 양준혁, 강레오를 시골에 보내 생활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똑같이 시골에 가서, 시골 집 빌어 생활하는 건데, 심지어, <삼시 세끼>는 한 술 더 떠서, 삼시 세떄 밥만 먹겠다는 건데도, <삼시 세끼>에는 <남자의 자격>이나, <삼村 로망스>에선 없던 웃음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냥 별거 안하는데 웃긴다. 묘하다.

 

아마도 나영석 피디와 그 제작진의 신의 한수는 늘 가장 적절한 출연진의 섭외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이미 <꽃보다 할배>를 통해, 투덜거리면서도, 늘 제 몫을 해내고야 마는, 심지어는 집에서는 밥 한 끼 안해 먹으면서도, 할배들을 위해 얼큰한 찌개를 대령해 올리는 이서진의 기막힌 캐릭터를 또 한 사람의 '매의 눈' 나영석 피디는 놓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연예인들의 농촌 생활을 다룬 거의 모든 예능에서 출연진들은, 흔쾌히 농촌에서 삶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농촌에서의 삶을 꿈에도 그렸다던가, 혹은, 귀농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던가, 혹은 건강한 삶을 해보고 싶다던가 하는 식으로, 농촌에서의 생활을 유토피아처럼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있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를 비롯한 출연진이 그랬고, <삼촌 로망스>의 강레오는 쉐프로서의 직업적 관점에서 농장을 가지고자 하는 야심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물론, 그런 환상이 현실에 맞부닥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그런 프로그램들의 재미의 발생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삼시 세끼>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집에 있으면 밥도 해먹지 않는다는 이서진은, 심지어, 농촌에서의 삶을 부정한다. 도시가 좋단다. 유기농이 싫단다. msg가 좋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좋은 환경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 것이 환타지가 되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그는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런 그가, 농촌에 던져졌다. 바로 이 지점, 농촌에서의 삶에 대해 그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도시인의 농촌 라이프가 가진, 새로운 질감이, 기존에 시도되었던 농촌 라이프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농촌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하루, 아니 반 나절만에, 농촌에서의 삶을 불편하게 느낄 그 현실감을, <삼시 세끼>는 이서진을 통해 충분히 구현해 낸다.

 

그런 이서진이 <꽃보다 할배>에서 처럼 궁시렁거리면서도 시키면 또 꾸역꾸역 다 해낸다  '망했어요'라는 당당하게 말하는 첫 방의 <삼시 세끼>에서 정작 많은 일을 실제로 해낸 것은 화분에 뿌린 씨앗을 정성스레 키워오며 열의을 보인 택연이 아니라, 이서진이었다. 첫 선을 보인 <삼시 세끼>에서도 그렇다. 대충 하는 듯하지만, 택연이 불을 피우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궁시렁 대며 몇 번을 오가며 벽돌을 날라 무쇠솥을 걸 아궁이를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삼시 세끼>는 <꽃보다 할배>가 첫 방의 이서진 몰래 카메라를 통해 프로그램의 재미 요소를 각인했듯이,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그래서 재미가 기대가 되는 이서진이란 캐릭터에 온전히 의존해 가며 첫 회를 채워간다.

 

거기에 이서진과 대비되는 택연의 캐릭터도 양념과도 같은 요소다. 택연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다. 가장 가깝게는 2013년 12월 <인간의 조건>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기'편에 합류한 적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시키는 대로 가로수 길 한 가운데에서 춤을 추는 등 열의를 보였지만, 그의 예능 출연이 화제를 일으키진 못했다. 연예인이라기엔 평범한, 그래서 심심한 청년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함께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형,동생으로 출연했던 이서진과 함께, <삼시 세끼>에 등장하자, 그의 캐릭터가 달라진다. 제작진은, 평범해서 심심한 그의 모습을, 멀쩡하고 아는 것도 좀 있고, 열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실속은 없는, '빙구' 캐릭터로 구상하여, 궁시렁대는데도 실속은 있는 이서진과 대비시킨다. 멀쩡한 외모의, 대비되는 캐릭터의 두 인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누구도 시골 생활에서 실속이 없는 두 사람의 존재가, 첫 선을 보인 <삼시 세끼>의 웃음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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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를 가지고 요리할 줄 몰라서 달래 뿌리는 놔둔채 줄기만 떼어 오고, 수수를 타작할 줄 몰라 딱딱한 수수밥을 만들고, 무밥에 무채 대신 깍뚝 썰기한 무를 넣고, 파전에 실파를 넣는 것은, 사실 어설픈 농촌 생활에서 그리 낯선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농촌에서의 삶의 이유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서진과, 열심히는 해보려고 하지만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택연이 하기 시작하니, 그저 밥만 해먹는데도 웃긴다.

도대체 삼시 세끼 해먹으면서 무슨 웃음을 만들까 싶었는데,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서 밥을 먹이며 새로운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갈 태세다. 심지어, 게스트를 초대해 그들에게 밥 한끼를 먹일 때마다, 대접하는 고기로 인해, 두 출연자의 무지막지한 수수 추수 노동이 기다리고 있으니, 왜 아니 기대가 되지 않겠는가. 고기와 수수 농삿일의 딜, 역시나, '사기꾼' 나영석 피디다운 발상이다.

by meditator 2014. 10. 18. 11:17

만화 원작으로도, 그리고 이미 동명의 만화를 이용해 모바일 무비라는 신선한 시도로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던 <미생>이 tvn의 드라마가 되어 찾아왔다. 모바일 무비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 편에서 잠깐의 출연으로 이미 그 존재감을 드러냈던 임시완이, 다시 한번 주인공 장그래가 되어 등장한다. 장그래이미지

 

스물 여섯 살, 대학은 커녕 고졸 검정고시 출신에, 영어는 커녕, 겨우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하나만 달랑 가진 장그래가 '낙하산'이 되어 종합 상사 원 인터내셜널에 취직이 된다.

'딱 이등병이네'

제대를 하고 나온 아들이 <미생> 첫 방송에서 회사에서 어리버리한 장그래를 보고 던진 말이다. 아니 회사를 다닌 이들이라면, <오늘부터 첫 출근>에서 첫 출근해 눈만 이리저리 굴리던 회사원 코스프레를 하던 연예인들처럼, 자신의 출근 첫 날을 떠올렸을 것이다.

스물 여섯에 대학도 나오지 않고, 종합 상사를 다니기에는 한참 부족한 능력으로 낙하산이 되어 던져진, 장그래를 보며, 사회 생활을 한 누군가는, 다 자신의, 혹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첫 날을 떠올리며 씁쓸해 진다.

 

 

 

그렇게 어눌하고, 일 처리 하나 제대로 못해 걸치적거리던 장그래에게 울컥 감정 이입이  되기 시작하는 건, 그의 회상 부분부터이다.

일곱 살에 바둑에 입문, 한국 기원 연구생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내던 장그래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바둑을 그만둔다. 그런 그가 바둑책 뭉치를 들고 기원을 나서며 자신에게 던지는 대사가 있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기원 스승의 우려처럼 기원 연구생에서 정식 프로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알바를 가정 형편 때문에 놓지 못했던 자신의 처지, 그리고 그마저도 꿈꿀수 없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죽음, 즉 자신의 형편과 조건 때문에, 입단에 실패했던 그 경험을,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퉁친다.

그리고 이 말에는 역설적으로 희망이 담겨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할 것이다 라는.

그래서 오상식(이성민 분)의 '잘 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질과, 양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말로 장그래는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좌절을 ,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의지로 승화시킨, 장그래의 일성은, 우리 사회 속 젊은이들의 현실과 각오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이런 젊은이들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반영된 세상은 한병철의 <피로 사회> 속 성과 사회를 상징한다.

한병철은 그의 <피로 사회>에서 현대 사회, 즉 포스트 모던 사회를 성과 사회로 정의내린다. 즉, 그 이전 규율 사회가 '~ 해야 한다'라는 규율, 규제, 강제 등, 강요된 패러다임의 사회였다면, 오늘날의 사회는, 긍정성을 패러다임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과 사회에서, 성과의 주체가 되어, 자기 자신을 경영하며 '무한정 할수 있음'에 도전한다. 이런 긍정성의 이면에는, '생산의 최대화'라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정'의 당위성보다, '능력'의 긍정성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하는 주체가 되어, 성과를 위해, 자기 자신을 강제하는 '자유'를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

첫 회 <미생>에서 장그래가 자신의 노력을 증명하기 위해 오징어 젓 통에 어머니가 새로 산 80만원이 넘는 새 양복을 입고 손을 휘젓듯이.

그렇게 과잉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늘 피로할 수 밖에 없다. 공항에 내려 바로 다시 외국 바이어와 상담을 하러 가야 하는 오상식 과장의 빨갛게 충혈된 눈 처럼.

 

오상식이미지

 

이렇게 첫 선을 보인, <미생>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습에의 공감으로 시작한다. 이런 드라마 미생에 대해 인터넷 백과 사전,위키백과는 2014년만 <tv손자병법>이라 정의내린다. <tv손자병법>은 1987년에 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종합 상사 직장인들의 삶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 직장인들의 삶을 병서 '손자 병법'에 비유했다. 즉, 당시 직장인들의 삶이란 게 무기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4년판으로 돌아왔다는 <미생>은 직장인들의 삶을 바둑에 빗댄다. 바둑 역시 또 하나의 전쟁이다. 네모난 바둑 판에서, 흑돌과 백돌이 서로 누가 더 많은 진영을 차지하는 가를 두고 벌이는 소리없는 혈전이 바로 바둑이다. 역시나 또 하나의 전쟁이다. 하지만, 바둑이 인생을 반영한다고 하듯, 이기는 병서 '손자 병법'을 넘어, 인생의 바둑을 담은 <미생>에는 자기 자신을 착취할 자유를 가진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치유해줄 담론과 위로가 담겨있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10. 18.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