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 그 중에서도 어머니, 엄마와 '대화'를 해본 적이 있나요? 직장인 평균 부모님께 안부 전화하는 회수 1년에 37통, 한 달 평균 3통, 열흘에 한 통인 셈이다. 아니 횟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통화를 해봐야 3분을 채우기가 버거운 게 현실, 어른이 되어갈 수록, 어른이 되고 나면 점점 더 부모님과의 대화가 어색해지는 상황, mbc스페셜은 부모님, 그 중에서도 언제나 '엄마'의 자리에 머물렀던 엄마를 '한 사람의 인생'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들여다 보는' 주체는 다름아닌 어느덧 '엄마'가 되어버린 자식이다. 

 

 

시작은 엄마들의 팟 캐스트 방송이다. 45개월, 36개월 고만고만한 아이를 둔 엄마들이 모여 새삼 깨닫게 된 '엄마'를 이야기하며 다큐의 물꼬를 튼다. 김주강 씨는 자신이 아이의 생물학적인 엄마이긴 한데 정말 엄마일까 라는 회의가 든다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워킹맘인 그녀는 아이를 낳기만 했을 뿐 키우는 일은 전적으로 어머님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삼 드는 생각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사셨을까. 박경아 씨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게게 해줄 수 있는 반찬이 김과 미역국 뿐이라는 그녀에게 엄마는 '불가능한 존재'처럼 비춰진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박신애씨의 어머니는 다혈질이셨다. 왜 우리 엄마는 맨날 화만 내나 라고 답답해하며 자랐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절 엄마는 아빠한테,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받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는 것이셨다. 그러면서 이제 엄마가 된 엄마들은 입을 모은다. 이제 와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니, 지금 나같았던 엄마는 어떻게 사셨을까? 물어본 적 없는 엄마의 삶이 새삼 궁금하고 애닮다. 

그래도 물어볼 수 있을 때가 좋다. 취미가 가족 촬영인 개그맨 이홍렬 씨, 하지만 정작 어머니를 촬영할 수 없다. 마흔 아홉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기억이 추억 속 카세트 테이프로 그에게 남아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듣는다는 테이프 속 어머니는 18번인 오기택의 충청도 아줌마를 부르신다. 그리고 돌아가실 즈음 남기신 말, '엄마가 죽어도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 돼', 이제 어머니보다 훌쩍 더 나이를 먹은 아들은 닿지않을 답을 한다. '엄마 나 꿋꿋하게 살았지?'

 

 

엄마와의 인터뷰 -엄마 이전에 여자 사람의 이야기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딸들이 출동했다. 어느덧 엄마처럼 네 아이를 둔 워킹맘이 된 개그우먼 김지선씨, 남편이 정말 친엄마가 맞냐고 할 정도로 무심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엄마를 찾는다.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여 네 아이를 두고, 보험 설계사 일을 하느라 늘 바빴던 엄마, 그래서 김지선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실내화를 빠는 건 물론, 소풍 때 김밥도 스스로 싸서 갔다. 그래서 혼자 자랐다고 생각했다. 라면과 김밥과 설렁탕이 싫어질 정도로 무엇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허기를 때우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셔야 했단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날들, 돌아와 밥도 못먹고 자는 막내가 마음이 아펐던 시절, 그렇게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자식들이 무얼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 시절이 안타깝다. 스물 다섯 살에 홀로 된 어머니 슬하에서 아버지가 안계시니 다른 얘들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고, 독한 시집살이에 가난한 집안 살림을 책임지느라 자식들을 보듬어 줄 수 없었던 것이 이제야 딸에게 전해진다. 그 힘들게 살아왔던 날들, 그래도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기꺼이 지선의 엄마가 다시 되시겠다고 두말 않고 답하신다. 

정아영 씨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하시는 가게는 아영씨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별명을 따서 '아땡이네'다. 10년전 분식을 여신 어머니는 이제 50을 넘겨 중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와 미용 기술을 배워 미장원에 다니던 중, 착해보이던 29의 아빠를 만나 25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앙금빵에 우유를 먹으며 통장을 건네주며 한 청혼, 그렇게 만난 신랑과 신부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자신들이 하던 미용사 일과 그림 그리던 일을 접었다. 그리고 다시 한 여름날 튀김 기름과 씨름하며 삶의 최전선에 계신다. 분식집 주방의 엄마에게서 그 시절 예뻤던 여자 사람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고운 손을 지키고 싶었다지만 엄마의 손을 주방일에 거칠어 진 지 오래다.

최규자 씨의 어머님 유한순 씨는 살아가느라 무심해진 딸에게 엄마는 잘있다. 아무 일없다며 먼저 전화를 하시곤 한다. 그렇게 적극적인 어머니는 7순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신다. 알파벳도 배우셨다. 

 

 

'다라이 공장 억순이, 농약 공장 똑순이', 어머니가 쓰신 시에서 어머니가 정의내란 당신이시다. 학교 들어가던 해 전쟁이 나 한글을 배울 기회를 놓쳤고, 오빠와 동생들 뒷바라지에, 결혼하고서는 굳이 글을 안배워도 철 따라 씨뿌리고 거두는 농사 일을 하느라 배울 기회가 없던 어머니, 이제는 틈만 나면 책상으로 달려가 숙제도 하고, 일기도 쓰시는 어머니, 딸은 그런 어머니의 학구열이 새삼스럽고 경이롭다. 저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분이셨나?

그렇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머니가 글을 몰라 제일 서러웠던 기억은 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등록금을 부치러 우체국에 갔던 일, 창구에 써진 글을 몰라 이리저리 헤맸던 기억이 아직도 아프게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에게 가장 아픈 상처는 자신보다 먼저 둘째 딸을 떠나보낸 일, 끓어오르는 슬픔을 동물의 울부짖음처럼  토해내던 어머니는 그 딸이 다니던 교회의 성경을 며칠 만에 필사를 해내며 그리움을 달래셨다. 그럼에도 딸이 하나 밖에 없어 서운치 않냐는 큰 딸의 말에 어머니는 행여나 딸이 서운할까 생각해 봤자 내 마음만 아프다며 다독이신다. 

다큐는 이제는 엄마가 된 딸을 인터뷰어로 내세워, 이제는 엄마를 한 여자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여자 사람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고자 한다. 평범했지만 엄마로 살아냈기에 찬란했던 그 삶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반추한다. 태어나기는 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여자', 그리고 '엄마'가 되었던 분, 이제야 딸은 말한다. 엄마만큼만 했으면 좋겠어. 다시 태어나면 내 엄마가 아니라, 내가 엄마가 되어 엄마를 돌봐줄게. 

by meditator 2018. 11. 13. 05:16

<sbs스페셜>은 창사 특집으로 야심차게 2018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문제를 다룬다. 바로 운인가 능력인가라는 화두를 통한 '공정성 경쟁'이 그것이다. 

다큐의 시작은 어렵사리 카메라 앞에 선 지난 촛불의 마중물이 된 이대 여학생의 비리 제보이다. 김수경(27) 씨를 통해 우리 사회는 그저 엄마를 잘 둔 덕에 이대 학생이 되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국가 대표에 메달까지 딴 적폐의 상징이 된 정유라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말, 말, 말,  '능력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부터, '이대 딱 한번 갔다. 학점은 나도 의아해'에서, '누가 이대를 가고 싶댔나'로 '청년'들은 공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이 시대 청년들이 가장 고통받는 '아킬레스 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가고, 그런데 다시 또 죽어라 공부해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에,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요즘 청년들 말 대로 '뼈를 때렸다'. 

 

 

공정성의 딜레마 
그래서 창사 특집으로 <sbs스페셜>은 바로 이 청년들의 분노, 그 근원이 된 '공정성'을 헤집어 본다. 그리고 그걸 위해 최근 우리 사회 문제가 되었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다룬다. 

상시, 지속 비정규직을 정규직을 전환하겠다는 지난 대선의 문재인 후보의 공약, 이는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고,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하는데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공약에 따라 일선 학교와 각 공사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서울 교통공사 역시 지난 3월 무기 계약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그 '환영 받던 공약'의 결과는 달랐다. 

역차별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125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교통 공사, 그곳에 다니는 정규직 김성희(31)씨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고시촌에서 2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은 채 노력했던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얻은 능력이 부정당하는 것같다는 억울함. 자신이 '노오력'을 해서 얻은 결실을 누군가는 쉽게 얻는 것같다는 울화통에 '홧병'이 날 지경이다. 

김성희 씨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을 다니며 어렵사리 주경야독을 하며 공채를 통해 정직원이 된 자신의 노력이 허무하고, 심지어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이런 교통 공사 정직원들의 억울함은 결국 김민철 씨 등에 의한 헌법 소원과 행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내세우는 건 '공정성'이다. 자신들은 노력을 통해 금메달만큼 값진 사원증을 목에 걸었는데, 왜 누군가는 거기에 '무임승차'를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분노한다. '시험'이라도 치라며 과정의 공정성을 요구한다. 

이런 절차 상의, 과정 상의 공정성의 문제는 뜻밖에도 12년만에 복직한 ktx 해고 승무원들에게 까지 불똥이 튄다. 이들의 복직 기사에는 청년들의 불만이 폭주한다. 떼를 쓰면 복직이 되는구나'라는 비아냥이 가득하다. '다시 시험을 치라'며 야유한다. 

그런데 그 '비아냥'과 분노의 대상이 된 사람들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교통 공사의 정규직 전환에는 2016년에 벌어진 구의역 사고라는 계기가 있다. 구의역 지하철 9-4 승차장에서 끼니로 준비한 컵라면도 먹지 못한 채 스크린 도어 수리를 하다 진 꽃과 같은 김군, 그처럼 억울한 죽음이 다시 없게 하기 위해 그처럼 스크린 도어 안전 관리를 하던 외주 용역업체 직원이던 박창수(30)씨는 정직원이 되었다.

하청업체에서 최저 임금보다 못한 임금과 대우에서의 불이익을 받던 창수씨는 정직원이 된 이후 책임감이 한층 더해졌다고 답한다. 그의 말처럼 용역업체 비정규직들의 전환 이후 사고가 줄었다. 그러나, 창수 씨의 마음은 어쩐지 불편하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12년만에 복직하는 ktx 해고 승무원 오미선(39)씨 역시 자신들의 복직을 떼를 써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항변한다. 12년전 시험을 치고 인턴 근무를 하고 1년 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약속이 비로소 지켜진 것이라 항변한다. 

결국 선의에서 비롯된 정규직 전환과, 해고자 복직은 우리 사회 을 vs. 을의 불편한 동거를 낳았다. 

 

 

시험은 공정한 것인가?
이 불편한 동거의 문제를 풀기 위해 다큐는 최후 통첩 게임을 예를 든다.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 그들을 다시 제안자와 응답자로 나눈다. 그리고 제안자에게 주어진 10만원, 제안자는 임의대로 이를 응답자와 나눈다. 

첫 번째 과정, 대부분의 제안자들은 5만원씩 공평하게 나눈다. 제안자들은 그게 안전하고 공평하다 입을 모은다. 이어서 단 5분간의 공공기관 입사 시험 문제로 치룬 시험을 거친 후 다시 재개된 과정, 그런데 시험 결과 성적 순으로 나뉘어진 제안자와 응답자 그룹의 배분율이 달라진다. 줄어든 응답자의 몫, 제안자도 응답자로 이런 불평등한 배분이 공정한 것이라 입을 모은다. 

그러나 다큐는 반문한다. 겨우 5분의 시험만으로 달라지는 '시험'이 공정한 것이냐고. 즉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혹은 역차별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청년들이 내세우는 '시험'을 통한 자격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의 무용론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 사회 시험의 역사를 논한다. 한국 전쟁 이후 각자의 노력으로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등장한 시험, 그 시험은 한국 사회에서 '출세와 보상의 공정한 장치로 자리 잡아 왔다. 더구나 고도 성장기 평균 이상의 제너럴 리스트를 배출해야 하는 산업 사회에서 '시험'은 그 중요성이 더해만 갔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7년째 공시에 매달리는 33살 박승현씨처럼, 너도 나도 시험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많은데 합격율은 낮아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자의 3/4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공시에 매달리는 현실, 1.8 %만이 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결과는 점점 더 청년들을 무한 노력 경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고 다큐는 말한다. 

더구나 그런 가운데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서는 그 촘촘하다는 그물 사이로 채용 비리가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래서 등장한 국가직무 능력 표준인 NCS, 업무 능력과 연관이 있는지 의심되는, 핀란드 대학생들이 '바보 같다는 시험'을 우리의 청년들은 50분에 50문항을 풀어 내야 한다.  시험의 문제를 또 다른 시험으로 풀어내는 악순환이다. 

<sbs스페셜>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역차별, 공정성의 문제를 그 공정성의 잣대가 된 '시험'이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시험이 문제가 아니다. 
우선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신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채'를 통과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치룬 '시험'이 무용한 것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이니 당신들이 주장하는 '공정성'은 의미가 없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떨까? 저 많은 시간을 시험에 '허비'하는 청춘들이 그들이 파고드는 그 '시험'이 업무와 관련되어 유용하다 믿어서일까? 왜 우리 사회에서 사시 존폐와 관련된 반발과, 입시와 관련되어 수능 절대주의가 등장하는 것일까? 과연 이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사시나 수능이 '좋아서'일까?

아니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라는 대중적 믿음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해야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다. 과연 이런 절박한 동앗줄을 선뜻 누구와 나누겠다는 사람이 쉽겠는가. 이 시대 청년들이 매달리는 시험은 그 어설픈 '최후 통첩 게임의 5분간의 시험'이 아니다. 

다큐의 초반에 등장한 정유라, 남들은 다 시험쳐서 가는 '수능'을 부모 덕에 무임 승차했다. 수능도 그런 세상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공사 정규직 전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교통 공사 정규직 전환자 중 108명이 재직자의 자녀, 배우자, 친인척이라는 현실이 말하는 건 무엇일까? 과연 이런 상황에서 다큐에서 예로 든 뉴욕 메츠에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으로 수시로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의 공정성을 우리 사회가 담보해 낼 수 있을까? 이른바 수능의 보완책으로 마련된 갖가지 수시 요강들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계층이 누구일까? 왜 사람들이 그래도 '시험'이 공정하다는 자기 포기적 반응의 속내가 무엇인지 다큐는 한번쯤 헤아려보기라도 한 것인지. 

문제는 '능력에 걸맞는 다른 시험의 형태'가 아니다. 공시을 통해 정규직이 된 사람들이 내세운 억울함의 촛점은  그들의 '시간'과 '노력'이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이 친 시험이 잘못된 것이니, 양보하라 하면 yes라 할 수 있을까? 즉, 다큐가 내세운 문제 제기 공정성의 문제, 그 사례로 든 공사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역차별 문제와 후반부에 해법으로 내세운 시험의 시대착오적 무용론은 서로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즉, 입시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에게 흡사 선생이 과연 니가 대학을 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원론적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산업 사회적 프레임의 시험 제도와 시스템은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것과 최근 우리 사회에서 청춘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역차별, 공정성의 문제는 다른 이야기다. 그들은 '시험'을 말하고 있지만, '시험'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에 반해 지극히 좁은 문 사이에서 아귀 지옥을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집단적 반발이다. 그런 청춘들의 고통에 대한 '원론적은 시험 무용론'은 안이하다 못해 비겁하다. 

 

by meditator 2018. 11. 12. 14:44

남북 정상은 9월 평양 공동 선언을 통해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빠른 시일에 개소하고 이를 위해 면회소 시설을 조속히 복구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이산 가족 상봉의 정례화, 그 물꼬가 터졌다. 그에 앞서 8월 20일에서 26일에는 2015년 10월로 부터 무려 2년 10개월만에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 졌다. 양국 정상의 상시적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한 '선언', 그에 앞서 모처럼의 이산 가족 상봉 행사, 이렇게 모처럼 남북 이산 가족의 오랜 해원이 정치적 해빙에 발 맞추어 풀려나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런 즈음에 ebs 다큐 시선은 왜 우리가 더 늦기 전에 이산 가족 상봉을 서둘러야 하는 가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들어간다. 바로 2%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상봉 가족들의 또 다른 아픔을 통해서다. 

 

 

조속한 이산 가족 상봉이 필요한 이유는? 
교동도, 강화도 북서부에 있는 섬, 이곳은 북으로부터 불과 2~3km 떨어진 섬이다. 갓난아기의 엄마는 시체들이 즐비한 북을 도망해 수심이 낮은 때 배도 없이 이 섬 저 섬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배를 타면 10이면 북에 닿는 곳이다. 그 '조금' 떨어진 이곳으로 '잠깐' 피신해온 것이 70년의 세월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피란온 소년은 고향집에 숨겨둔 놋그릇을 가져오겠다며 다니러 간 어머니와 누님을 그때이후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들과 헤어진,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동도에 남겨져 있다. 고향이 그리워 '북'으로 창을 내고 그곳으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어도 영 꿈에서 조차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그리워 다 큰 아들은 여전히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부르며 그 일곱 살 아이처럼 뒹군다. 하지만, 이제 낼 모레 팔십을 바라보는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향이 바라보이는 망향대에 올라서는 일.

 

 
 

 

이렇게 잠깐인 줄 알았던 세월이 70여년이 흐르는 동안 이산 가족 1세대들은 많이 세상을 떠났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자로 정해졌던 사람들은 93명, 하지만 그중 4명이 고령의 나이로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7월말 기준 생존해 있는 이산 가족들은 5만 6000여 명., 그런데 생존해 있는 이산 가족들 중 85% 이상이 70대가 넘는 고령들이시다. 현재 한 회에 90~100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 상봉 인원수, 이 인원대로 한다면 600회 가까이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져야 남은 생존자들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시간'을 고령의 생존자들이 견딜 수 있을까? 그러기에 이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고향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조속히'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져야 한다. 



2%의 기적, 그 휴유증
보통 이산 가족 상봉을 2%의 기적이라 한다. 신청한 사람들 중 2%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상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기적'을 이룬 사람들은 여한이 없을까? 하지만 막상 다시 찾아본 상봉 가족들에게는 뜻밖에 휴유증이 심각했다. 

누님은 원산 방직 공장에 돈을 벌러 떠났다. 그리고는 삼팔선이 막혔다. 칠월 칠석이 생일이던 누님, 늘 어머님은 살아만 있으라 정한수를 떠놓고 비셨다. 그 누님이 돈 벌러 떠나던 때 황보우영 씬(69)는 어머니 등에 업힌 갓난쟁이였다. 당연히 어머니의 기억을 통해서만 전해진 누님. 그런 누님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만났다. 기억도 없던 누님, 하지만 그렇게 누님을 만나고 돌아와 황보우영씨는 살이 몇 kg이나 빠졌다. 찰라와 같은 만남의 아쉬움이, 다시 볼 수 없다는 그리움이, 누님에 대한 걱정과 함께 황보우영 씨를 우울증에 빠져들도록 했다. 

 

 

그해 스무 살의 새신부였던 이순규 할머니(87), 겨우 7개월 남짓의 결혼 생활, 남편은 몇 달간만이라던 말이 무색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순규 할머니의 뱃속엔 당시 3개월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아이는 기특하게도 7살 무렵 왜 아버지는 오시지 않냐는 질문 한번을 끝으로 아버지를 묻지 않은 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제사도 지냈다. 한 켤레의 구두로만 남은 남편과 아버지의 추억, 그런데 기적처럼 북쪽의 아버지 오인세 씨의 생존이 전해졌다. 그리고 며칠 간의 만남, 돌아온 아들은 헤어나올 길 없는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한번도 보지 않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자신만의 생각으로 그렸던 아들은 막상 눈 앞에서 만난 쪼그라든 노인인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40년간 그리워했던 마음은 '홧병'처럼 돌아왔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기적의 시간을 가진 이산 가족 상봉자들, 하지만 그 결과는 '기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안부조차 제대로 물을 수 없는 '행사'의 시간들, 그 시간을 꿈처럼 겪어낸 가족들은 대비하지 못한 만남의 휴유증을 앓는다. 불면증, 무력감, 건강 악화, 우울증 등 상봉 후 후유증을 앓는 가족들이 24%에 달한다. 상봉 후 기쁘지 않다는 답을 한 가족들도 39%에 달한다. 그 이유는 자신은 그래도 남한에서 편하게 사는데 고생하며 사는 것같은 모습에, 안부조차 제대로 물을 수 없었던 짧은 만남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이별의 아픔이 상봉 가족들을 다시 고통 속에 빠뜨린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그저 '이벤트성 행사'를 넘어 사전에 상실감 등 휴유증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만으로 다시 생이별의 아픔을 감내할 수 있을까? 결국 답은 하나다. '정치적 목적'으로 치뤄졌던 이산 가족 상봉, 이제 1세대 상봉자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는 현실에서 더는 미루지 않고 '인도적' 차원에서의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며칠의 만남이 아니라, 보고싶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그런 상설적인 만남이 시급하다. 그러기에 이산 가족 상봉 정례화는 더 늦기 전에 구체화되어야 한다. 

by meditator 2018. 10. 26. 18:38

피곤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다. 늘 눕고만 싶다'. 아마도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증상은 심해진다. 마흔 줄에 들면, 상습적인 고질병이다. 그러면 생각하게 된다. '나도 늙었구나',하고, 정말 그럴까? 

원래는 진짜 (체력이) 좋았어요
몸에 근력도 많은 편이고 해서 (체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40대 들어가면서 부터 계속 안좋다고 하더라구요. 
                               -생존 체력 도전자 임창묵 씨 아내 인터뷰 중


피로 사회의 원인은? 
다큐의 주인공들은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마흔 줄의 남성과 여성들이다. 단숨에 지하철 노선도를 외워제끼던 마흔 중반의 강성범씨, 당연히 이젠 이호선만 외우는 것도 벅차다.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숨이 딸린다. 그의 일상은 스케줄이 없으면 '침대', 모닝 커피도 아내가 대령할 정도로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딸 둘의 아빠 임청묵씨, 이제는 부쩍 자라 활동성이 많아진 아이들과 놀아주는게 여간 곤욕이 아니다. 결국 조금 놀아주다 리모컨을 쥐어주고, 소파에서 숙면을 취해버리는게 그의 일상이 된 이른바 '1회용 체력'이다.

내년이면 마흔, 프리랜서 통번역 전문가이자 대학 강사인 서지연씨 하루 네 시간의 출퇴근은 물론, 서울, 경기를 종횡무진하던 거칠 것없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던 별명이 무색하게 이젠 열일을 제치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버린다. 학창 시절 선생님 등에 업혀 겨우 등산을 한 이래 산을 가본 적이 없으며, 윗몸 일으키기 같은 건 꿈도 꿀수 없는 이른바 '모태 저질 체력'의 김보라씨, 이제 겨우 마흔이지만 앉을 자리를 위해 지하철을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한 현장 학습에서 돌아오면 앓기가 일수이다.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고 지치며 늘 피곤에 시달린다는 것. 불혹의 나이 마흔이 이들을 이들의 체력을 '방전' 시켰을까? 다큐는 이들에게 '국민 체력 테스트'를 시켜보았다. 

 

 
그 결과 네 명 모두 3등급에도 들지 못하는 등급 외 판정, 결국 그들의 '피로'는 '나이'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였다.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약해진 걸까? 흔히 방송에도 등장하는 '신체 나이'처럼 '나이'와 '체력'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다큐 후반에 등장한 올해 60의 의사 선생님은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헬스' 등을 했지만 여전히 '피로'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운동법을 변화시켜 '기초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통해 이젠 나이 운운이 무색하게 '피로'를 느낄 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운동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운동'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자존감' 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바로 이 개인의 정신 건강도 '체력'이 따라줘야 한다고 다큐는 말한다. 즉, 자신의 일상 생활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삶의 자존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버텨야 하는 삶, 버티는 힘이 나오는 건 정신력이 아니라, 체력이라 다큐는 강조한다. 

아기 엄마들한테는 아기를 잘 돌볼 수 있는 체력이 먼저 필요하죠. 
무거운 무게를 들고 강하게 펀치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허리가 아프지 않게 아이를 안을 수 있는 체력.
직장인이라면 회의에서 버티고 야근에서 견딜 수 있는 체력.
수험생이라면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
절실한 것들은 다를 거예요. 
그런 절실한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밑바닥의 체력들,
그걸 '생존 체력'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
                             -생존 체력 운동 이주라 트레이너 인터뷰 중 


다큐에서 실제 김보라 씨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전업 주부이지만 그 일상이 버거웠다. 아이들과 외출이라도 하고 나갔다 들어오면 방전된 체력으로 아이들에게 '폭발'하기가 십상이었고, 건조기에서 꺼내온 빨래는 몇 푼의 용돈으로 아이들 몫이 되었다. 그렇게 일상을 버틸 수 없는 체력은 그녀의 성격조차 신경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런 김보라씨에게 생존 체력을 키워주기 위해 등장한 트레이너 이주라씨, 하지만 그녀도 처음부터 생존체력 지도자가 된 건 아니었다, 외국 생활 중 견디기 힘든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던 그녀는 '운동'이 정신은 물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생존 체력' 전도사가 되었다. 

 

 

그런 이주라 씨의 지도 아래, 네 명의 출연자들은 각자 체력 조건에 맞춰 생존 체력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이 즐거워야 하는 거라며 운동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던 개그맨 강성범씨에게는 제대로 된 자세로 단 한번이라도 해내는 푸쉬업, 일회용 체력의 임창묵 씨는 두 팔 벌려 지탱하여 엎드렸다 일어서 박수치기를 반복하는 버피 운동, 같은 버피 운동이라도 서지연씨는 강도와 자세를 완화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 자체가 생소한 김보라씨에게는 바른 자세의 스퀏의 시도부터,  하루 단 10분에서 15분의 운동을 한 달간 꾸준히 시도하고, 그걸 영상으로 기록하도록 하였다. 

겨우 10분 남짓의 운동, 과연 정말 생존 체력은 변화했을까? 약속한 운동을 지키기 위해 공연의 틈틈이, 일상의 틈새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예의 익숙한 '으~'하는 신음 소리로 알 수 있게된 하루 일과의 시작으로, 그리고 과연 엄마가 하며 딸들도 동참한 한 달간의 체력 운동은 놀랍게도 출연자들을 변화시켰다. 그저 10분 정도 운동을 했을 뿐인데 서지연 씨는 4kg이나 살이 빠졌다. 임성묵 씨는 소파에 '프렌들리'한 대신 두 딸과 열심히 놀 수 있게 되었다. 김보라 씨는 이사 온 지 몇 년 동안 가볼 생각이 없던 아파트 뒷 산을 올랐다. 

하루 10분의 운동, 기초 체력을 끌어올리는 몸의 코어 근육을 살려내는 '스퀏, 팔굽혀 펴기, 플랭크, 버피 운동'등으로 나이를 핑례로 했던 '피로'가 사라졌다. 결국 문제는 '체력'이었던 것이다.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삶을 돌려줬다. 

체력을 기우자는 이 다큐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하다. 운동이 범람하는 거 같지만, '운동'과는 담을 쌓은 사회. 일찌기 학창 시절부터 그저 학습 과정의 형식적 요건으로 따라가는 운동도 어느덧 입시 위주의 교육 과정에서 '영어' 등 다른 과목에게 시간을 빼앗기기 십상이거나, 체육 시간이라 해도 공부에 지친 신체를 단련시켜 주기 보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양지바른 곳에 앉아 햇빛이나 쬐는 시간이 되기 십상인 사회.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체력'이라는 말과 무관한 삶의 스케줄을 짜도록 강제하는 사회 속에서 마흔 줄만 들어도 체력이 방전되고 마는 사회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운동을 한다면 헬스 클럽이나 수영장을 가야 하는 거라 생각해거 그게 귀찮아서 운동을 못하게 되는 사회에서 운동은 더더욱 일부 운동 마니아 들의 몫이 되곤 했을 뿐이고. 그러기에 이 기본의 체력을 강조한 다큐가 의미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기자가 고관절에 좋다는 스퀏 몇 번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기사를 쓰는 지금 허리가 짱짱한 거 같은 건 그저 플라시보 효과만은 아닐 것이다. 아, 중요한 건 시간이나 회차가 아니라, 바른 운동 자세이다. 한번이라도. 




by meditator 2018. 10. 23. 16:05

강남이 배밭이었던 시절부터 살아왔던 토박이 어르신들은 도깨비 같은 세상이라 혀를 내두른다. 25평이 15억, 16억을 호가하는 세상이다. 7개월만에 2억이 올랐단다. 3.3 ㎡가 1억이랬다가 그게 시세 조작이랬다가. 신기루가 따로 없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데 그 누군가는 '아파트'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앉아서 하루가 다르게 '불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임금 몇 천 원에 한 사람의 일자리가 오락가락 하는 세상에. sbs 스페셜은 저 요지경 신기루의 복판 강남을 들여다 본다. 

 

 

여전한 꿈의 땅? 
다큐를 연 건 2018년 머슬 마니아 대회. 건강한 육체가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되며 '머슬 마니가'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이 즈음, 2018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작년 머슬퀸 이연화 씨를 주목한다. 머슬퀸, 하지만 그녀의 이력은 화려하다. 패션 디렉터, 의상 디자이너이자 거기에 머슬 퀸까지. 이른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말하는 '자기 관리'이 표본이다. 그런 그녀가 강남에 산다. 늘 새로운 트렌드에 목말라 하는 그녀에게 강남은 딱 어울리는 곳이다. 

어디 이연화씨 뿐일까. 군 제대 후 고향인 강남에서 홀홀단신 상경하여 8~9년 만에 부동산 사업 등을 하며 강남에 집을 마련한 진수현 씨,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대치동의 길을 걷는 그 순간, 자신의 집 옥탑에서 홀로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그 순간, '강남'을 만끽하는 그 순간 그는 가장 행복하다. 그에게 강남은 '미래'이다. 

하지만 '미래'와 '트렌드'가 늘 보장되는 건 아니다. 배우 지망생인 이한나 씨는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잡혔다.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그녀가 머무는 곳은 강남의 한 고시원, 그녀 역시 하루의 시작과 끝이 강남이고, 그곳은 그녀에게 기회의 땅이지만 현실은 고달프다. 

 

 

지난 11년간 이곳에 머무르며 한국에 대한 글을 써왔던 영국의 칼럼니스트 팀 알퍼는 한국의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강남을 정의한다. 아로마 오일을 파는 한 회사는 비싼 임대료와 수익도 나지 않는 강남의 매장을 포기할 수 없다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부과 고급스러움의 상징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강남 불패의 부동산 신화를 이루는 그 저변에 저렇게 '미래'를 담보로 잡히며 꿈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의 로망이 기저를 이룰까? 다큐는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의 꿈을 말하지만, 그 꿈의 실체를 짚지는 않는다. 그들의 성공과, 성공의 댓가로 얻은 강남의 부동산을 '로망'으로 제시하지만, 그 부작용과 그림자는 짚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한나 씨의 기약할 길 없는 고시원 정도가 다큐가 보여준 한계이다. 과연 그럴까? 강남에서 열렬하게 꿈을 향해 살면 누구나 이연화가 되고, 진수현이 될까? 그들이 이룬 꿈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여전히 강남은 트렌디한 1번지일까? 무엇보다 그 트렌디의 실체는?  이연화씨가 트렌디해서 좋다던 그 '아는 언니' 역시 고급스러움을 놓칠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강남에 매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저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이 정말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기는 한 건가? 마치 불을 향해 모여든 나방을 부각하면서, 그 불의 실체를 말하지 않듯, 다큐는 강남에 모여든 '막연한 꿈'만을 조명한다.  모름지기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던 그 옛 속담에서 한 치도 나가지 못한 인식이다. 

 

 

강남, 그 불평등의 역사 
그렇게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의 로망을 통해 왜 강남인가를 짚어보려하던 다큐는 강남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이 맑아 청담동, 서울로 가던 나룻터가 있던 동네, 당시 서울은 뚝섬 건너 4대문안이었다. 1963년 강동구의 한 구역으로 서울레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곳. 

1979년 혜은이의 노래 <제 3 한강교>의 유행과 함께 강남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경부 고속 도로와 연결된 제 3한강교처럼, 강남은 북한의 위협을 내세운 정권의 의도적인 배려(?)와 특혜로  각종 정부 기관들이 이전하고, 도시 기반 시설이 자리잡으며 1963년에서 1970년 사이에 이미 땅값 차이에서 강북을 훨씬 넘어서기 시작했다. 

거기에 1976년 강북의 명문고들이 이전하고, 노량진의 학원가들이 대치동으로 옮겨가면서 대치동 인근에만 학원 1200여개, 명실상부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9년전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온 하린이는 이미 어릴 적부터 스펙이 차곡차곡 적립된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한 시간 걸리는 강북의 대안 학교로 옮겼다. 강남에서 3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던 박순이마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할 만큼 거침없이 오르는 강남의 임대료는 곳곳에 비어있는 상가에서 보여지듯이 강남 상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폐업률이 창업률을 앞지는 지는 오래되었다. 지난 20년간 대치동에서 떡집을 운영해오는 손영주씨는 말한다. 그 신화의 강남 사람들, 사실 거대한 집 한 채 만이 그들이 가진 자부심의 전부라고. 하지만, 그런 영주씨도 강남에 한번 살아보는 게 여전한 로망이다. 

 

 

길지 않은 강남의 역사는 새롭지 않다. 옛날에 그랬지 라는 식처럼 강남에 대한 다큐에서 매번 등장했던 회고담이다. 거기에 덧붙인 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 과연 이런 강남살이의 분석이 작금의 '도깨비같은 강남 집값'의 실체를 밝히는 것일까? 그저 '강남'이 떠들썩하자 구색맞춰 만든 건 아닐까?

다큐에서 가장 솔깃했던 부분은 바로  그곳에 사는 그 '엘리트 층'들이다. 정권이 바껴도 여전히 고위 공직자 33%, 국회의원의 29%가 사는 곳, 부동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자기가 사는 곳의 집값에 합리적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어느 보수 신문이 청와대 경제통에게 거칠 것없는 강남 아파트 값을 두고 우선 당신의 집부터 옮겨 보라는 어깃장이 차라리 속시원해 보이는 시절. 비정상을 넘은 지 한참되는 강남 불패의 신화에 대한 다큐의 접근은 철지난 가요의 도돌이표처럼 평이하다 못해 안이했다. 

by meditator 2018. 10. 15. 15:12

경단녀, 이건 또 무슨 신종 여성 비하적 용언가 싶다. 아니다.  '된장녀'같은 어감의 경단녀는 '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이다. 하지만 이 '경단녀'들이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어쩌면 '된장녀'보다도 못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어쩌다 보니 직업을 얻은 게 감지덕지, 직장 내 눈총도, 아이들도, 집안 일도 혼자 '버텨내야'하는 게 버거워 눈물 흘려도 그 흘린 눈물도 혼자 쓱쓱 훔치고 다시 씩씩하게 삶의 전쟁터로 나아서야 하는 여성들,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10월 11일 <다큐 시선-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가 담았다.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 경단녀는 181만 2천 여명에 이른다. 그 중 30대가 92만 8천명, 30대 중 3명에 1명 꼴이다.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이란 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부'로 전업하지 않겠다는 다시 '직장'을 구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한 공기업의 나이와 경력을 묻지 않고 뽑는다는 '블라인드 면접',  50명을 모집하는데 590명이 지원했다. 12;1, 이들 중 상당수가 이른바 '경단녀'다. 이렇게 나이와 경력을 묻지 않는 조건이 흔치 않기에 몰릴 수 밖에 없단다. 이 엄청난 경쟁률에서 보여지듯이 '경단녀'들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직업을 구하는 이들 중 46%만이 취업에 성공한다. 

 

 

재취업을 위한 조건 
마흔 아홉 주수연 씨는 취업 상담도 해주고 구직도 지원해주는 직업 상담사가 되고 싶어 1년간 공부하여 지난 5월 자격증을 땄다. 시청 콜센터에서 7년간 일을 했고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2년간 경력이 단절되었다. 좀 더 보람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선택한 직업 상담사, 하지만 초졸 경력도 없는 그녀에게 새로운 직업의 길은 쉽지 않다. 20곳을 지원했지만 아직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직접 발로 뛴다. 소규모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 일자리 정보, 채용 의뢰를 '스펙'으로 얻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알바'부터 '직업 상담사'의 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전문적인 자격증'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많다. 주수연 씨가 선택한 '직업 상담사'나 요즘 뜨는 '코딩 지도사'등이 여성들이 찾는 새로운 전문직이다.

38세의 김미란 씨는 코딩을 배우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자격증도 있고, 국내외에서 프로그래머로 활약했고, 학교에서 강의도 했던 그녀지만 9년간의 경력 단절 후 다시 경력을 살리긴 쉽지 않았다. 직장은 그녀에게 무능력이란 '트라우마'를 안겼다. 지각, 조퇴, 잔업 불가는 기혼 여성들에게 따라붙는 이름표같은 것이었다. 아이 컨트롤도 못하는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란 낙인이 찍힌 채 위축되었던 기억만을 남겼다. 그녀는 말한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결국 이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과거 자신이 갔던 그 대학, 그 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 주변엔 '소싯적에 한 가락했던'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그녀들이 20대때 경주했던 그 노력과 노력의 결과물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재활용도 안된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그래서 그녀도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코딩'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경력 단절'로 인한 손실은 195조원에 달한다. 그 중 임금 손실이 184억원으로 94.3%에 달한다. 단절된 경력을 회복하기 위해 하지만 이전의 경력을 다시 되살리지 못한 여성들의 상당수가 '사회 서비스 업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직업의 특징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임금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들은 불안정성을 띠고 있으며 지속적이기가 쉽지 않다. 

23년 경력이 단절된 정인화 씨는 매일 6시면 출근을 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노인 요양원의 '청소'업무. 취미가 회화이고, 사회 봉사도 했고, 강의도 했었지만, 막상 남들 다 따놓은 요양 보호사나, 사회 복지사 자격증 하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도 무기 계약직이 되어 64세 정년도 보장된다. 그러나 '일이 밑바닥이지 사람도 밑바닥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김 할 정도로, 취업 과정에서 그녀가 겪은 좌절감은 컸다. 결국 정인화 씨와 같은 설움을 겪지 않기 위해 다수의 여성들이 각종 자격증 시험으로 몰려든다. 

 

 

경단녀라서 
그런데 '경단녀'를 선호하는 곳도 있다. 성실하고, 결근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긍정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닌 경우도 있다. 

김우희씨는 아픈 작은 아이를 위한 갖가지 약봉투를 챙기고 오늘도 출근 길에 나선다. 10년간 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녀, 매일 10시에 끝나는 강사 일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6년간 두 아이를 낳고 돌보고, 그래서 이제 다시 그녀가 직장을 얻은 곳은 인터넷 기반의 회사. 10시 출근 7시 퇴근, 하지만 아이의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을 하고, 조금 일찍 퇴근을 한다. 12시간 교대를 하는 남편은 집안 일을 도와줄 수 없는 형편, 이른바 '독박 육아'의 처지. 그래서 160만원의 박봉이라도 지금의 직장이 감지덕지다. 

그녀가 제일 힘든 건, 그런 그녀의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친정 엄마표 밑반찬으로 때우는 한 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회사에 죄송해하며 버티는 생활, 그래도 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위로'가 필요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3자녀를 둔 미영 씨도 그리 다른 처지가 아니다. 2년간의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웹 디자이너'가 된 그녀, 오전 10시에서 4시 30분, 한 달에 겨우 130만원 남짓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족하단다. 

이처럼 경력 단절 여성을 고용한 직장은 그녀들의 '약점'을 활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라는 약점, 그녀들의 '시간'이라는 약점이라는 틈새를 파고들어 출퇴근을 보장하며 낮은 임금,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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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자체들이 출산지원금을 주니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국감에서 보고가 됐다고 한다(연합뉴스). 그러나 '자화자찬'과 달리, 출산율의 감소세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02년에서 2016년까지 40만명이던 출생아 수가, 2017년에는 35만명, 올해는 32만 명이 될 것이라 예측된다(중앙일보 시평, 식상한 인구 이야기 중). 젊은이들 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은 이들을 드물다. 

전문가는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장된 육아 휴직과 공보육이라고. 정규직이나, 안정적 일자리에만 국한된, 그조차도 일부 직업군에만 보장된 육아 휴직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것이 곧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헬게이트'의 시작이 된다. 그에 이은 전혀 양질이지 않은 공보육. 

상대적으로 보장된 육아 휴직 제도를 가진 여성 군인들의 경우, 우리 나라 평균 출산율인 1.17%보다 높은 1.15%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군 보육 시설 대기 인원만 3606명, 60 개소의 어린이집이 필요하지만 군은 2022년까지 겨우 27소를 확충할 예정이다.(베이비 뉴스, 10, 11) 그나마 낳은 조건이라는 여군이 이런 상황인대 대다수 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을 거인가는 불을 보듯 훤하다. 어설픈 환심성 정책이 아니라, 진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낮밤으로 홀로 감내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 출산율은 나아질 수가 없다. 



by meditator 2018. 10. 12. 15:45

한글은 언제부더 나랏말이 되었을까? 조선의 국문은 '한문'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양반들은 백성들과 소통할 때 어떤 글을 썼을까? 사대부 남편은 아내와 자식에게 어떤 글로 편지를 썼을까? 한글, 언문은 정말 아녀자들만의 언어였을까? 그 의문으로부터 ebs 다큐 프라임 한글날 특집은 시작된다. 

'임금이 이르되 너희가 처음에 왜에게 후리어(잡히어서) 인하여 다니는 것은 너희의 본마음이 아니라, 나오다 왜에게 들키어 죽을까도 여기며 도리어 의심하되 왜에게 편들었던 것이니, 나라에서 죽일까 두려워 나오지 아니하니, 이제 그런 의심을 먹지 말고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너희를 각별히 죄주지 아니할 뿐아니라 .......' 
​​​​​​​                                              -선조 국문 유서 (번역)


 

 

선조가 언문으로 백성에게 내린 글 
1492년 부산포로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점령해 갔다. 5월에는 한양이 함락되었고, 6월에는 평양이 넘어갔다. 7월에는 함경도에서 두 왕자가 잡혔다. 일본군은 관아를 장악하고 마치 고을 수령인 양 백성들에게 쌀을 풀어 회유하며 백성들을 다스리려 했다. 일본군의 서슬퍼런 조총 등의 무력에,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쌀에 점점 다수의 백성들이 투항했다. 더구나 나랏님도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버린 나라에서 백성들이 택한 자구책이었다. 의주의 선조는 다급해졌다. 전장에서 도망친 군주의 면을 세우기 위해 조정은 고심했다. 그 고심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 바로 위의 '선조 국문 유서'이다. 

한글날 특집으로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은 이 '선조 국문 유서'에 주목한다. 72주년 한글날 다큐는 그 특집으로 '암글', 언서', '언문', '속문'이라 낮잡아 취급되었다 여겨졌던 '한글'의 존재를 다시 살핀다. 선조가 국문으로 유서를 내린 1593년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150여년이 흐른 뒤였다. 아녀자들이나 배우는 언문으로 취급받은 줄 알았는데,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다다르는 위급한 상황에 나랏님이 한글로 백성들에게 '유서'를 남겼다. 이는 이미 다수의 백성들에게 '한글'이 '소통'의 도구가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다큐는 전문가의 증언을 통해 말한다.

15세기 한글이 창제된 이후 중앙 정부는 <월인석보>등의 불경 출판물을 통해 한글을 보급하였다. 그런 노력과 함께 후에 발견된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한문 독본 '언문 반절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은 금세 실용적인 언어로 조선에 퍼져나간다. 그래서 16세기가 되면 사찰은 물론,  각 지방 관아 등에서 실용 언어로 한글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그 실례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조의 국문 유서이다. 또 다른 예로, 1592년 진주 대첩 과정에서 초유사로 김시민을 목사로 세우고, 병력 모집 등에 힘쓴 학봉 김성일이 아내에게 보낸 서신이 있다. 경남 산청에서 본가가 있는 안동에 보낸 이 편지에는 다가오는 설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이 없어도 잘 지낼 것을 당부하며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토로한다. 김성일은 이 편지를 끝으로 결국 타지에서 생을 다한다. 결국 이 한 장의 언문 편지가 그의 유서가 된 것이다. 

백성들간의 소통의 문자, 언문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은 계층을 뛰어넘는 소통의 문자였다. 학봉 김성일의 경우처럼 남편이 아내에게, 자식에게, 주인이 노비에게, 혹은 관가의 아전들의 기록과 소통에 두루두루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언문의 대중화'는 언제부터 이루어졌을까? 다큐는 그 예를 '언문 편지'를 통해 살펴본다. 대부분 죽은 이와 함께 매장되었다가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언문 편지는 편짓글이라는  특수성으로 당시의 일상어에 대한 가장 살아있는 자료로, 당시 언문의 대중화 정도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료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는 1490년대로 추정되는 신창 맹씨의 남편 군관 나신걸이 그의 아내에게 보낸 언문 편지이다. 대전 회덕이 집이었던 군관 나신걸, 하지만 그는 본가에 들리지도 못한 채 함경도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의 조선 상황에서 한번 부임을 하면 해을 넘겨야 돌아올 수 있는 처지, 아내와 갓난 아이 한번 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편지로 남겼다. 

1490년이라면 한글이 창제된 지 불과 5~60년 후다. 그런데 벌써 그 당시에 군관이 자신의 아내에게 언문 편지를 썼다는 건, 당시 지방의 여성들조차 한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이 빠르게 보편화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조선시대 대중적 언어, 한글 

역시나 이장 작업을 하다 발견된 17세기의 곽주의 편지에는 '자식들이 여럿 갔으니 ...... 수고스러우시겠으나 언문을 가르쳐 보내시옵소서'라며 장모에게 당부한다. 자식들에게는 '언문'을 배워 아비에게 편지를 쓰라 재촉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대부들 사이에 '언문'은 필수요, 그에 대한 교육열조차 엿볼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밝히고 있다. 

 

 
초성, 종성에 씌인 자음과 중성에 씌인 모음을 결합한 글자들을 배열해 놓은 '언문 반절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서당이나 사가에서 언문을 배울 때 널리 씌였던 한글 교재로 장터에서 인쇄하여 팔 정도로 당시 '언문'은 대중적인 언어였다. 

언문의 위력은 어떠했을까? 앞서 선조 국문 유서가 오늘날 사료로 남게지게 된 건 권탁의 공이 크다. 선조의 유서를 받아 본 권탁은 당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상태입에도 칼을 들고 김해로 갔다. 당시 김해는 왜군들이 득실거리는 지역으로 기피 지역이 되어 지방관이 공석이다시피 한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권탁은 스스로 김해 수성장이 되었다. 그리고 왜군 진영에서 부역을 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임금의 유서를 보여주고 회유, 탈출 작전을 펼친다. 권탁의 의기로 100명의 백성이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권탁은 죽고 만다. 이처럼 나랏님이 쓴 언문 교서는 초야의 선비를 움직였고, 백성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일부 사대부들만의 전유물이었던 한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당시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통 수단이 된 언문, 한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문'이 나라의 글이 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894년 고종은 갑오개혁의 공문식 1호로 국문을 사용할 것을 명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50년만에 나랏말이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8. 10. 10. 04:52

sbs스페셜은 지난 1월 4명의 청년을 방에 가두었었다. 이른바 '고독'연습, 공부와 취업, 취직에 내몰린 청년들, 거기에 일상을 사로잡은 sns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청춘들이 강제된 '고독'의 공간 속에서 3박4일을 보내면서 자기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다큐를 통한 젊은이들의 '자기 성찰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두 젊은이를 '산사'로 유폐했다. 다름아닌 '인생 단어'를 찾기 위해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 프랑스 작가 


'인생 단어'라니? - 현실과 꿈의 딜레마를 겪는 청춘들
서강대 기계 공학과 이준우군 ,경희대 역사학과의 유현기 학생,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는 이 청년들은 각자 나름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준우 군은 마술사다. 한강 고수부지에 나가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마술 버스킹'을 하는 한편 각종 생일 잔치나 파티에서 활약 중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료된 마술, 하지만 이제 사회 진출을 앞둔 그는 자신의 전공인 기계 공학과 마술 사이에서 고뇌한다. 마술을 좋아하지만 그걸로 먹고살기엔 미흡하고, 공학도로 취업을 하자니 어쩐지 삶이 무미건조할 듯하고, 그런 그가 '인생 단어'를 매개로 산사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실패를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꿈은 직업보다 윗단계이다. 나에겐 '요리사', '마술사', '디자이너' 등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다. 
                                      -데니스 홍, 기계공학 박사 


그런가 하면 유현기 학생은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한참 <해리 포터>가 인기를 끌 무렵 탄 지하철에서 그곳 승객들 모두가 <해리 포터>를 읽고 있는 모습에서 '글'의 위력을 느낀 이래, 자신의 길을 '글쓰기'로 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비싼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니 비싼 술을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과 '글쟁이'의 현실에서 그는 갈등하는 중이다. 

이렇게 두 젊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유현기 학생의 친구들이 말하는 바, 요즘 젊은이들의 이상, '덕업일치'를 꿈꾸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다. 바로 그런 '딜레마'의 청춘들이 고독한 산사에서 자신의 '인생 단어'를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은 큰 짐이다. 하지만 그 짐을 기꺼이, 흔쾌히 지고 나며 성취감과 행복이 따른다. 
                                                  -이승엽, 국민타자 


 

 

인생 단어를 통해 길어올린 나

산사의 방, 두 청춘에게 주어진 건 이른바 '인생 사전'이라 꾸며진 국어 사전 한 권 뿐이다.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고 산사의 일정 외에는 혼자 사전을 뒤적이며 그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를 '화두'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청춘을 인도할 인생 단어를 찾기에 앞서, 우선 그들이 지나온 날들을 규정할 수 있는 인생 단어를 찾게 한다. 그런게 길지 않지만 지나온 인생의 단어를 찾으며 뜻밖에도 두 젊은이는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공부하고, 또 대학에 와서도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느라 생각하는 것, 더구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익숙치 않다 못해 낯설다는 준우 군이 선택한 지나온 날을 규정하는 단어는 '관심'이다. 

내 인생의 단어는 '탐구'이다. 2006년 사고가 나기 전 나는 자연 과학자로 바다를 탐구해왔다. 이제 장애인이 된 나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탐구한다. 
                           -이상묵, 서울대 해양과학과 교수 


고등학교 시절 관심받고 싶어 일부러 질문하기도 했었다고 자신을 돌아보는 준우군, 그가 좋아하는 마술 역시 관심받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짚는다. '관심'으로 부터 시작한 단어는 '인정', '칭찬', '관계, '자존감', '타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어'로 부터 이준우란 존재가 길어진다. 

그렇게 '관계'에 천착한 준우군과 달리, 현기 군이 길어올린 '과거'의 단어는 '외동'이다. 외동으로 자라 '관계'맺기가 서툴렀던 그는 왕따가 된 적이 있다. '외돌다', 외딸다 등 외로 시작하던 단어의 세계를 헤매던 그가 찾아낸 지나온 시간의 단어는 '부빙'. 물위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을 이르는 부빙으로 자신을 정의한 현기 군은, 얼음이 떠다니며 깍아지듯, 자신도 살아오며 깎여나가며 고유의 장점이 녹아내리기도 했다며 토로한다. 

믿고 싶지 않다.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 
                             -칼 세이건, 천문학자 


 

 

인생의 나침반- 인생 단어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달리, 마치 무에서 유를 만들듯 앞으로의 삶을 이끌 '나침반'같은 단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이에 두 청춘이 머무는 월정사의 도연 스님은 '인생 단어'라는 거창한 명제에 가로막힌 두 젊은이들에게 기본의 전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왜 당신의 인생 단어를 찾아야 하는가부터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그 자신 물리학도로 카이스트에 입학 후 1년 만에 도반의 생활에 든 경험이 있던 바, 그의 인생 단어는 '자유', 그가 말한 자유는 스스로 자신이 찾아낸 이유라는 뜻의 자유이다. 남들은 왜 전도유망한 물리학도를 팽개치고 도반의 길에 올랐는가 지금도 의아해 하지만, 그는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낸 자유의 길이었다며 두 젊은이에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라 충고한다. 

그러자 현기 군이 떠올린 건 학교 선배 진남현씨, 전남 오나주 고남면에서 농사를 짓는 서른 살 진남현 씨, 그는 남들처럼 출퇴근을 하며 살아갈 생각은 없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다 '농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 농터에 이제 2회 째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너멍굴 영화제'를 개최한다. 진남현이 말한 행복은 '포기'의 과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과정. 

준우군과 현기군과 함께는 아니지만 인생 단어를 찾는 여정에 동참한 또 한 명의 젊은이 안은섭군은 그 방식을 친구들의 인생 단어 수집으로 부터 시작한다. 서울대에 들어왔다는 성취감도 잠시 한 학기만에 그를 엄습한 건 공허감과 허탈감이었다. imf로 어려워졌던 집안 형편, ceo가 되고 싶어 선택했던 경영학과, 하지만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건지, 되야 했던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연 내 꿈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그 역시 인생 단어를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결정의 기준은 나, 인생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이현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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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 꿈도 부등켜 안고 
세 명의 젊은이는 결국 각자 자신의 인생 단어를 찾는데 성공한다. 제일 먼저 결정한 건 현기군이다. 비싼 술도 좋지만, 생각해 보니 '무위도식'을 바라진 않았다. 고달파도 자신의 글로 먹고 사는 삶의 보람을 그렸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단어는 '꺼리낌없이 주장되고 발휘된다'는 '창달'이다. 마술과 공학도의 길에서 헤매이던 준우군이 선택한 단어는 뜻밖에도 '책임'과, '중도'이다. 되돌아보니 자신이 소소하게 책임을 다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더라는 준우 군, 왜 그런 자신을 몰랐을까 신기하더던 준우 군은 그 '책임'을 다하는 삶을 위해 마술과 공학도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도를 해보겠다며 산사를 떠난다. 은섭군 역시 '공감각'이란 단어를 통해 자신이 하고픈 '디자인'과 현재 자신이 공부하는 '경영'의 '조화'를 찾는다. 

가장 피상적인 단어'를 통해 접근해 들어간 젊은이들의 인생 나침반 찾기. 자신의 과거로 부터 길어진 단어를 통해, 뜻밖에도 처음과는 다른 자신을 '직시'해가는 과정이 의미있다. 그리고 그로 부터 세상과 함께 살아갈 '나침반'을 찾아가는 여정은 어렵지만 '꿈'도, '현실'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by meditator 2018. 10. 8. 16:19

올해 들어 벌써 3번째 한진 조양호 회장이 소환됐다. 압수 수색은 18회,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부사장, '물벼락 갑질' 전 조현민 진에어 이사장, '운전기사 폭행' 이명희 일우 재단 이사장까지 구속영장만 다섯 번 발부되었다. 그런데,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고, 조양호 회장은 건재하다. 심지어 땅콩 회황으로 잠시 배제된 조현아 부사장은 3년 4개월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sbs스페셜>은 총수 중심의 경영, 각종 갑질과 인성 논란이 반복되는 '오너 중심'의 우리 기업 문화에 대한 화두를 내건다. 바로 <ceo, 사표를 쓰다> 이런 오너 일가 중심의 황제경영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법적 시도는 이루어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확고한 경영 체제, 책임지지 않는 경영, 그에 대해 다큐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목소리를 높인다. 

 

 

쫓겨나는 미국의 ceo들
이제는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하지만 우리는 그 '신화'의 여정에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의 과거 이력이 있음을 기억한다. 과연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아이폰'의 신화는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황제' 경영은 그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한 '경제 전반'의 적폐, 나아가 경제의 적체, 바로 그 지점을 다큐는 꼬집는다. 

우리 나라에서도 잠시 화제가 되었던 '우버 택시', 이 화제의 우버 택시 사주는 이제 '실업자'다. 108개국에 우버 택시 앱을 개설하여 80조원의 이익을 남겼던 스타트업 기업의 신화, 그는 지난 2017년 사퇴했다. 

포춘지의 기자 아담 라신스키가 취재한 우버 택시를 만든 트래비스 갈라익은 강렬한 개성과 전투적인 리더쉽을 가진 인물이다. 우버 택시로 전세계적 슈퍼 ceo로 우뚝 섰지만 그 스스로 '실패의 선구자'라 칭할 만큼 4번의 사업 실패 끝에 우버 택시를 전세계적 기업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실패의 아이콘이던 그는 우버 택시의 성공으로 인기와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전투적인 리더쉽과 강렬한 리더쉽의 그림자는 그를 ceo 자리에 머무를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다. ceo로서는 부적절한 사내 메일의 여성 차별적 발언들, 여성을 배려치 않는 사내 문화 등은 우버 엔지니어였던 수전 파울러가 미투 운동의 촉발자가 되도록 했으며, 무인 차량 개발을 위해 타사의 사내 비밀을 훔쳤다는 등 불법적이며 비도적적인 경영 방식에 대한 비난은 '우버 앱 삭제 운동'으로 이어지며 '악몽같은 ceo'라는 평판의 주인공이 되었다. 

탁월한 ceo와 비행을 저지르는 청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평가를 받던 트래비스에 대해 이사회는 트래비스에 대한 사임을 결정했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 문제로 인해 그가 더 이상 집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건 그의 비행이 원인이 아니었어요. 그를 둘러싼 많은 논란, 그의 비행과 태도가 그로 하여금 직무에 집중하고 잘 해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하루를 다른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는데 보낸다면, 어떻게 CEO로서 해야 할 업무를 볼 수 있겠어요. 그것 때문에 그가 해고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담 라신스키, 우버 인사이드, 


 

 
ceo도 자르는 미국의 이사회 
여기서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ceo도 자를 수 있는 미국의 '이사회' 제도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사외 이사 제도가 있다. 하지만, 종종 사외 이사들이 과도한 '수당'을 챙겼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듯이 우리의 사외 이사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뿐만 아니라, 사외 이사의 비중이 크지도 않고, 기업 임원들로 채워진 이사진에 비해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오너 일가와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로 채워져 독립성 보장은 커녕 오너 일가 권익 보장에 힘을 보태기가 십상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이사회는 권력의 중심이다. 이 이사회에는 외부 인사들로 이루어진 독립 이사들이 있다. 우버 택시에서 트래비스에게 사퇴 결정을 내린 이사진들 중  에릭 홀더 전 법무부 장관 등의 독립 이사진의 역할이 텄다. 

이들의 입장은 단 하나다. '남의 자본을 끌어 들여 사업'을 하는데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 문화에서 경영은 스포츠 팀과 같다. ceo는 황제가 아니다. 스포츠 팀의 감독과 같은 역할일 뿐이다. 잘 나갈 때 감독은 칭송받지만 팀이 패배하면 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듯이, 경영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언제든 ceo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파존스 피자의 존 슈내터, 직접 광고에 출연하는 등 역시나 입지전적으로 이 피자 브랜드를 성공시켜낸 인물, 하지만 전화 회의 중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켜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이유로 사임당했다.

 

 

한 개인의 독단이어서는 안되는 경영 

이렇게 미국은 ceo의 독단적 경영을 제어하기 위해 이사회란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 같은 이사회지만 독일의 경우는 성격이 다르다. 독일 최대의 드럭스토어 로스만, 아버지에 이어 아들로 이어진 이 가족 기업, 아버지와 아들은 공동 경영을 한다. 하지만 경영 체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유럽의 3500여개 100억 달러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비가족 ceo  두 명과 함께 공동 경영 체제를 갖춘다. 거기에 다시 외부 고문단에 더해지고, 이사회에는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 또 다른 독일 기업 지멘스 역시 감독 위원회를 두고 거기에 전문 경영인을 참여 시킨다. 

알리바바는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나는 영원히 알리바바에 속할 것입니다.” 
                                                     - 마윈



그런가 하면 중국의 대표적 기업이자 세계적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10일 알리바바 창설 19주년이 되던 날 은퇴를 선언했다. 중국 시장 점유율 1위, 시가 총액 4000억 달러의 회사를 물려받은 이는 그의 아들도, 손자도 아닌 11년전 알리바바에 합류해 능력을 인정받은 조력자 장융이었다. 

1999년 항저우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마윈 회장.  그는 회사가 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한 2005년부터 승계를 준비해 왔따. 승계에 앞서 그는 한 개인의 역량이 지배하는 조직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집단 지도 체제인 '파트너쉽' 제도를 만들었다. 6명의 대표가 1인 1표를 행사하는 이 집단 경영 체제는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워내며, 동시에 조직의 신선함을 유지시킨다. 이를 위해 일정 나이가 되면 파트너에서 물러나도록 제도화하여 현재는 70년 이후 출생자들로 이 조직이 채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파트너쉽 참여를 적극 독려한다. 

미국, 독일, 중국 등 이들 나라의 세계적 기업이 보여주는 경영의 유연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마윈이 말하듯 한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영의 위험성이 가장 크다. 알리바바의 파트너쉽 체제가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 맞추어 가고자 계속 젊은 세대로 물갈이를 하는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세계적 기업들은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조직적 변화를 꾀한다. 뿐만 아니라, 우버 택시에서 보여지듯, 기업이 한 개인이 만들었다 해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자본이 유입된 경우 더 이상 개인에 의존한 기업이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세계 유수의 국가들, 그곳의 세계적 기업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경영 방식을 변화시켜가고 있다. 과연 이런 세계적 기업의 흐름에서 황제 경영 방식을 고집하며 오너 일가와 관련된 부도덕한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우리의 기업들은 경쟁력이 있을까? 자본은 변화요, 흐름이다. 과연 그 흐름에서 우리의 기업들은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 거일까. 다큐는 묻는다. 

by meditator 2018. 10. 2. 21:36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손님이 오시면 설탕물을 타서 대접하기도 했을 만큼 설탕은 귀했다. 하얀 설탕이 오가는 명절 풍경도 낯설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이제 '설탕'이, 단 맛이  우리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당뇨'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질병으로 등장하면서, 그와 더불어 '단맛', 혹은 그 단맛의 대명사인 '설탕'은 건강에 있어 '터부'적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겉치레일 뿐이다.

단맛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 당을 올리지 않는 단맛이라는 매혹적인 문구로 우리를 유혹했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약, 각종 식재료, 심지어 담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 생활속으로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다. 아침으로 먹은 현미 시리얼에도, 케첩 바른 토스트에도, 피자와 함께 먹은 피클에도, 얼큰하게 넣어 끓인 고추장에도 '단 맛'은 빠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만 변했을 뿐, 심각한 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이 '가공된 단맛'이 우리의 몸에 더욱 해롭다는 것이다. 


 




바로 <mbc스페셜- 당신, 독을 먹고 있나요?>는 끊을 수 없는 단맛의 역사와 오늘날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공된 단맛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단맛, 그 중독의 역사 
단맛, 그 시작은 기원전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 뉴기니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사탕수수, 기원전 350년전 인도로 건너가 비로소 '설탕'으로 탄생되었다. 베어낸 사탕수수를 착즙하여 불순물을 거르고 정제하여 만들어낸 천연 설탕 구르(gur)가 만들어 졌다. 여전히 설탕을 물에 타서 먹을 정도로 인도인에게 설탕은 삶의 일부이다. 설탕을 밀가루에 버무려 튀기고 그걸 다시 설탕물에 졸인 튀김 설탕 과자 잘레비(jalebi)를 비롯하여 다양한 섵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단과자(스위트)들이 만들어지면 인도인들의 삶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인도의 설탕은 바클라바(baklava), 로쿰(lokum)으로 대표되는 스위트의 천국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갔다. 하지만 첨부터 '설탕'이 모두에게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으로 간 설탕은 왕실과 귀족들에게 허용된 '귀한 식재료'였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싼 스위트인 '마카롱'의 경우, 명품으로 대접받는 프랑스의 피에르 메스메 중 주문 제작 상품은 약 7천 달러(778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에게 설탕은 고급 식재료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설탕은 익숙한 맛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몇 십 년전 설탕이 선물이 되었을까. 그러나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초콜릿>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단 맛'을 맛본 사람들은 이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산업의 발달은 '설탕'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 2017년 기준 전세계 설탕 소비량은 1억 7천만 톤이다. 이는 1800년대에 비해 24배나 증가한 속도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단맛'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질병의 문제는 급격하게 증가한 설탕 소비에 1차적으로 기인한다. 


 




가공된 단맛, 액상 과당, 각종 대사 질환의 주범 
우리가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의 단맛, 하지만 이건 '설탕'이 아니다. 1967년 일본에서 개발되어  1975년 미국에서 대중화된 '액상 과당'이 그 주인공이다. 액상 과당은 사탕수수에서 추출된 자연의 단 맛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단맛'이다. 포도당으로 이루어진 옥수수 전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과당을 첨가하여 만들어진 고과당 옥수수 시럽이다. 액상 과당은 설탕보다 물에 잘 녹아 가공하기가 쉬우며 저렴하여 '단맛'의 대량 소비에 가속화를 붙였다. 

우리가 먹는 설탕은 포도당으로 전환되어 간에서 분해되고 남은 건 온몸에 에너지로 씌인다. 반면에 과당은 간에 축적되는데, 이는 '과잉 축적'을 부른다. 이로 인해 지방간이 발생하며,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도가 높아지며 당뇨 발생률을 높인다. 

거대아로 태어난 존, 하지만 엄마는 따로 식이요법을 하는 대신 또래 아이들처럼 빵, 케잌, 음료수 등을 먹이며 키웠다. 그 결과 결국 2017년 소아 당뇨 판정을 받았다. 혼자 신발끈조차 묶기 힘들어진 상황, 치료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존은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그간 즐겨 먹었던 가공된 단맛을 가진 음식들 대신 하루 5종류 이상의 과일로 단맛을 대체했으며, 1시간 여의 운동을 하고, 군것질을 부른 , tv 시청을 하루 2시간 이하로 줄였다. 각종 음료수 대신 물을 자주 마셨다. 그것만으로도 존은 무려 18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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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칼로리 음료, 노슈가 음료의 함정 
과당만이 문제일까? 실험실에서 탄생한 단 맛은 또 있다. 살이 찌지 않고 싶지만 단맛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노 슈가, 제로 칼로리 음료', 역시 단맛으로 인한 각종 질환의 주범이다. 

설탕과 제로 칼로리의 인공 감미료를 먹인 실험실 쥐, 놀랍게도 실험 결과 제로 칼로리 단맛을 복용한 쥐는 비만쥐가 되었다. 그 원인은 '홀몬'이다. 우리가 일반 설탕을 먹었을 때 우리 몸에서는 포만감과 함께 식욕 억제 홀몬인 GLPI가 배출된다. 하지만, 칼로리가 없는 인공 감미료의 경우 이 식욕 억제 홀몬이 나오지 않아, 계속 먹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단맛'에 대한 과학의 잔꾀가 현대인의 각종 질환의 주범이 되었다. 편리함과 싼 가격, 쉽게 부패되지 않는 대량 생산된 인공적 단 맛이 우리의 건강을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다. 

중독된 단 맛의 대안은? 
미국 심장병 학회는 어린이의 경우 하루 당 허용량을 25g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각종 음식에 들어간 인공적인 단맛들로 인해 이 규정을 지키기는 어려워 졌다. 이에 '법'적인 해결을 미국의 버클리 주는 도모했다. 인공 감미료, 액상 과당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2015년부터 시행했다. 이런 법적 제재 조치만으로도 25% 정도의 감소 효과를 나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매일 자신이 먹는 단 맛의 칼로리를 계산해보며 권장량과의 차이를 스스로 점검해 보는 방식을 권장한다. 

'고진 감래'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인류에게 있어 단맛은 '최고의 행복'을 상징하는 맛이다. 하지만 어느덧 그 '감미로운' 행복은 인류에게 독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당신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짜 단 맛을 찾으라고. 다큐는 보리 싹으로 만들어진 엿기름을 발효시키고 오랜 시간 끓여 만든 천연 당의 갱엿을 그 예로 제시한다.  

새삼스럽지 않은 '단맛'의 경고, 다큐는 그 일률적인 단맛의 병폐를 액상 과당과 인공 감미료를 등장시켜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물론 거기엔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럼에도 과잉 섭취된 단맛에의 중독이다. 

by meditator 2018. 9. 11.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