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다! 하면 엄마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진다. '학교'에 맡겨두었던, 아이들을, 아니 아이의 시간이 온전히 부모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방학이라고해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는 건 아니지만, 그 나머지 시간을 어쩌랴, 게다가 '방학'인데 아이랑 함께 어디 '좋은 곳'이라도 다녀와야지 하는 '숙제 아닌 숙제'까지 얹어지면 부담 백배이다. 

그 '좋은 곳'이 문제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했던 모 전직 대통령처럼 '안다'해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부모들은 눈에 불을 켜고 '교육적' 효과에 '재미'까지 더해진 좋은 곳을 '픽'하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아이들은 8월 12일 방영된 <sbs스페셜- 아이와 여행하는 법> 속 정종철 네 아이들처럼 부모들이 좋다 감탄하는 외국의 유수 여행지에 심드렁하다. 심지어 그 많은 시간과 비싼 비행기값을 들여 한 외국 여행에 아이들은 최한 38점을 매겼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서 sbs스페셜이 알아봤다. 부모들의 가장 과중한 방학 숙제, 아이와 여행하는 법에 대하여. 




부모는 고행이고 아이는 지루한  '여행'
아니 어쩌면 개그맨 정종철네 집처럼 부모들이 이리저리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기억을 못하는 정도라면 괜찮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경기도 고양시의 승우네 집은 여행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느라 부모들이 쩔쩔맨다. 도대체 왜 승우는 집을 떠나는 것이 싫을까?

겨우겨우 아이를 달래서 떠난 승우네 집, 하지만 여행지로 가는 긴 시간 줄곧 승우는 지루해 한다. 도착해서라고 다를까?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혹시나 아이들이 더위라도 먹을까, 아이들을 '그늘'로 피신시킨 부모들은 둘이서 익숙치 않은 텐트를 치느라 곤욕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노고(?)에 아랑곳없이 그늘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승우와 동생은 이곳이 심심할 뿐이다. 겨우겨우 이웃 텐트의 도움으로 텐트를 친 부모님, 하지만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니 다시 집에서 하던 보드 게임, 그러니 승우는 이 더운 곳보다는 장난감이 다 구비되어 있는 시원한 집이 그리울 밖에. 

다큐가 지적하는 건 바로 여행에 있어서 아이들의 자기 주도성이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황, 승우네 여행에서 '승우'의 주도성을 살려봤다. 부모들이 알아서 다 하던(?) 여정에 승우를 참여시킨 것이다. 아빠와 함께 쌀 씻는 거에서 부터 함께 하고, 개울에 가서 돌로 뚝을 쌓고, 이 '별거 아닌' 여정에 승우의 눈이 반짝인다. 몇 달 후에 승우가 쌓은 돌담을 보러 다시 오자는 아빠의 말에 승우가 기쁜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주도성 실험을 위해 정종철네 가족이 나섰다. 아들 한 명에, 딸 둘, 세 아이 모두 그동안 아빠와 엄마가 '기획'했던 여행에 심드렁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홋카이도의 여행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실험'은 시작됐다. 이전의 여행처럼 엄마가 '기획'한 여행과 아이들 스스로 여행지와 방식을 선택하는 두 가지 방법을 세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에서 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아빠와 함께 자신들이 마련한 여행지로 떠난 두 아이들, 떠나자마다 서로 싸울 것이라는 엄마의 장담과 달리, 아이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고자 했던 곳을 찾아 떠난다. 늘 모든 일에 적극성이라고는 없이 심드렁했던 아이가 맞나 싶게 처음엔 길을 물어보기조차 머뭇대던 아이들이 낯선 이방의 언어로 길을 물어보는 걸 주저하지 않게 되었고, 아마도 엄마, 아빠가 그랬다면 진즉에 지쳐나가 떨어졌을  어긋난 길찾기에서 끈기를 가지고 끝내 자신이 가고자 하던 곳을 향한다.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이라서였을까? 힘들게 찾은 오르골 박물관에서 울려퍼지는 오르골 소리에 '아름답다'며 눈물까지 글썽이고, 알고 봤더니 문어의 빨판이 근육이라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그곳의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소중한 추억으로 빨아들인다. 반면, 동생들과 달리 엄마와 함께 하던대로 쇼핑에,  좋다던 명승지를 따라나선 누나는 금새 지친다. 심지어 하루 종일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마지막에 동생들과 만난 것이라니! 다큐는 말한다. 어디를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이 어느 곳이던,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재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정이어야 한다고. 

자기 주도성도 좋지만, 부모들에게 늘 고민은 매번 방학마다 떠나는 여정이 좀 더 아이에게 보탬이 되고 새로운 건 없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의 고민에 대해 다큐는 다양한 여행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런 여행은 어때? 
다큐의 시작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석달 살기'에 도전한 가족. 평범한 직장인인 아빠, 한국에서의 아빠는 직장 일에 밀려 아이들과의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짧은 휴가 대신 태국으로 잠시 살러온 가족, 원룸의 좁은 방에 부부와 두 아이가 복닦거리는 공간, 하지만 아이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그저 또래와 같은 평범한 도시의 아이였던 누리, 하지만 코끼리 등 온갖 자연 환경이 풍부하게 제공되는 태국에서 석달을 보내는 동안 누리는 장수 풍뎅이 애벌레를 이쁘다고 여기게 된 새로운 '재미'을 찾았다. 

내 아이와 여행하는 22가지 방법을 <이런 여행 어때>로 펴낸 김동욱 작가는 종종 딸과 함께 길을 떠난다. 남들이 다가는 제주도, 하지만 김동욱 부녀의 여정은 다르다. '덤블 숲'이라는 뜻의 곧자왈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아빠, 그 숲에서 아빠와 딸은 텐트를 펴고 밤을 기다린다. 낮에는 볼수 없었던 반딧불이가 하나둘씩 빛을 발하는 시간, 그 시간에 온전히 빠져드는 부녀, 딸은 그저 반딧불이의 발견이 아니라, 낮에도 존재했던 것들이 밤이 되어 빛나는 그 '존재'의 발견에 대해 '철학적 해석'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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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씨는 말한다. 아빠의 기획이 아니라, '아빠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소리도 사냥할 수 있어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답한 여행일 뿐이라고. '소리를 사냥하기 위해 길을 나선 부녀, 눈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가 새로운 제주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질문에 부모의 '첨삭'이 더해진 여행은 그때서야 비로소 '종합 선물세트'로 완성된다. 

전문가는 말한다. 여행은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며 뇌를 활성화시키는 아이에게 생각 꾸러미를 풍성하게 해주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 꾸러미가 누구의 '주도'인가에 따라, '선물'이 될 수도, 그저 '지겨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과정을 통해 '뇌'가 완벽하게 활성화되는 시간, 그 시간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려주기를 거기에 그저 부모는 거들기를  다큐는 권한다. 방학 마다 줄줄이 사탕처럼 여행지를 '선물'하기에 급급했던 부모들에게 다큐는 새로운 여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또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집에서 서로 말 한 마디 섞지 않고 소원했던 아빠 강성민씨와 연지가 짧은 여행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를 풀어낸 것처럼 '관계'의 변환, 그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를 갈까 고민하기 보다, 어떻게 시간을 함께 할 것인가 아이와 함께 의논해 보는 것이 먼저다. 

by meditator 2018. 8. 13. 16:07

우울하다, 무기력하다. 
이것만큼 오늘날 '현대인'에게 익숙한 단어가 있을까? '우울해서 꼼짝도 하기 싫어'라는 말을 친지에게 한번쯤, 아니 그 이상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익숙한 우울한 정서를 넘어, 그게 '병'이 된다면? 하지만, 일상에 묻혀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의 우울이 '일시적인 감정'인지, 치료가 필요한 병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다큐에 등장한 어머님의 말씀처럼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병'으로서의 '우울증'을 키운다. 감기에 걸렸는데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증상이 심해진다면 '폐렴' 등으로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치료'의 시기를 놓친다면 '생명'의 경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 8월 9일 방영된 <다큐 시선- 우울증이 어때서요?>는 바로 그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매일 웃고 다녀서 제가 힘든 걸 아무도 안믿었어요' -현경 

독립출판물인 현경의 <병동 일기>의 한 문장이다. 그녀의 또 다른 책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우울증을 나타내는 딱 한 마디 단어를 고르라면 바로 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이기에, 그 단어를 통해 '우울증'을 말하고자 했다. 


우울증은 병이다. 
depressive disorder, 우울증, '정신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한 상태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의미한다.'(다음 백과)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병'이기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방 안에 칩거하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어 울고 불고 싸우지만, 그 또한 '병'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병이라 죽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낮다.  '우울증' 약이라도 복용한다고 하면 '직장' 등에서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아니 우선 스스로가 '우울증'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부모나 친지들은 '병'으로 인지하는 대신 '나약함'을 들먹이며 '의지'를 내세운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 '우울증'에 대한 치료율은 5%에 불과하다. 거기에 더해 '정신과 진료'에 대한 불신도 높다. 한번 정신과 약을 먹으면 '중독'이 되어 끊기 힘들 것이란 선입견이 심하다. 그래서, oecd 국가 중 우울증에 대한 약물 치료율이 가장 낮다.

의사들은 씁쓸하게 말한다. 문고리 잡고 5년이라고. 정신과를 가기 까지 주저하는 시간이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같이 방문하고 도와주면 쉽게 달라질 수 있는 질환으로서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 스스로가 나섰다. 스무살 시절부터 우울,  공허감과 싸우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서밤은  '서늘한 마음썰'이란 팟 캐스트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우울증에 대한 그림 일기 <나에게 다정한 하루>를 펴냈다. 아직도 집 밖으로 나서기가 힘들 때가 있지만, 일주일에 5일의 외출을 하고, 하루 두 끼 밥을 먹는 것을 sns의 친구들과 나누며 스스로 용기를 내는 조제는 '우울증 환자들의 책읽기 모임'을 만들고, sns 친구들을 위한 책을 만들고, 동화를 썼다. 폐쇄 병동에서의 한 달 치료 기간을 독립 출판물로 펴낸 현경은 '옛 여관'을 이런 독립 출판물의 전시 공간이자, 작업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기획을 하고,  그곳에 작업실을 꾸렸다. 


 

​​​​​​​'소중한 하루를 이렇게 보낼래?' -조제 


'소진된 사람들'의 질병, 우울증
그들이 처음부터 '우울'했던 건 아니다. 현경은 폐쇄 병동에서 만난 자해를 되풀이 하는 언니에게 말한다.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 스트레스를 흔히 남에게 풀죠. 하지만 착한 사람은 그걸 자신이 품어내죠,' 언니를 위로하기 위해 했던 현경의 말은 곧, 우울증 환자 현경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20대의 현경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던 젊은이였다. 에너지가 넘쳤고, 추진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열정'이 그녀를 다치게 했다.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서밤의 부모님들은 늘 싸우셨다. 집에 있기 힘들 정도로.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방치됐었다.  이제는 못해도 된다고 '팟 캐스트'를 통해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이전의 그녀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조제는 일 욕심많은 회사원이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미래의 자신은 '에너지 넘치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지만, '번아웃'된 그녀는 모니터만 켜면 과호흡이 오는 '공황 장애'와 우울증'에 빠졌다.  지난 다이어리에서 찾아낸 설기의 2013년은 회사에, 드럼, 크로스핏, 재즈 댄스, 토익으로 쉴 틈이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어릴 때부터 알아서 잘 하던 아이였지만, 그녀를 어릴 적부터 괴롭힌 건 내가 잘해야만 부모님들이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는 강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어머니가 찾아온 친척과 함께 '쓸모없는 사람은 왜 안 데려가고'라는 대화를 듣고 이성현(가명) 씨는 집을 나왔다. 절연 상태이지만 차라리 편하다는 그에게 가족은 늘 질곡이었다. 

'물고기가 자라서 물고기가 되고, 고양이가 자라서 고양이가 되듯이
나도 간신히 자라서 내가 되었다. 
살아있는 날 귀여워하고 싶다. 살아있으니까.' -조제

환자들이 말하는 '우울증'
현경을 상담한 의사는 말했다. '죽고 싶은데 정말 죽고 싶을까봐 그게 무서운 거죠?'라고. 현경은 말한다. 자신들이 '순풍에도 흔들리는 꽃들'과도 같다고. 서밤은 그런 상태를 '망망대해'라고도 표현한다.  심리 상담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스스로 자신을 낙인 찍을 까봐 두려웠다고 서밤은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까봐 용기를 내었다. 울고 불고  '의지'를 내세우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우울증이 자신의 병이라는 것을 설득하여 '병원'으로, '상담 심리 센터'로 향했다. 약을 먹고, 상담도 꾸준히 했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자신의 병을 인터넷의 친구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응원을 요청한다. 오늘 먹은 밥을 sns에 알리고 칭찬 댓글을 받는다. 그들의 칭찬이 이제 다시 '조제'를 내일 집 밖으로 나설 용기를 준다. 그리고 자신들의 상태, 자신들의 투병 일지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서밤의 <나에게 다정한 하루>가, 현경의 <병동일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등이 그것이다. 

현경이 죽을 것 같다며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녀에게 돌아온 처방은 '폐쇄 병동'이었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폐쇄 병동', 하지만 현경의 해석은 다르다. 그건 환자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곳이었다고. 그래서 책읽기와 tv 시청, 피아노와 탁구만이 가능한 그곳을 그녀는 '무균실'이라 정의한다.  현경의 북토크에 참석한 '폐쇄 병동' 실습생은 '환자'의 목소리로 알려준 병동 이야기가 그래서 고맙다. 그 누구보다 '당사자'의 이야기이기에 설득력을 가진다. 




서울 시에서 마련한 무료 상담을 비롯한 여러 상담 센터, 그리고 정신과 등의 치료를 통해 우울증 환자들은 '기술'을 배운다.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기술을, '자책'과 '고립'에 갇혔던 스스로의 우물에서 나와 '대인 관계'를 꾸리며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감정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 상담을 받으며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필요하다면 약물의 도움도 받는다. 헤어나올 수 없는 질곡과도 같던 '가족'이 '심리 치료'를 통해 그저 잘못된 가족 뽑기'로 받아들여질 여유를 갖게 된다. 불행을 돌보느라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잊었던 '외로웠지만 마음씨가 예뻤던' 그 아이에 대해 '나라도 잘해줘야 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보건복지부 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61만 3000 명이다. 하지만 전체 국민의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하지만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22%에 그친다.(벨기에 39.5%, 미국 43.1% 등) 우울증과 우울한 상태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며, '감기'와 같은 질병으로 우울증을 다루는 사회적 인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5월 9일 방영된 <다큐 시선- 우울증이 어때서요>는 스스로 용기를 낸 우울증 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독려한다. 치료를 하면 감기 증상이 덜해지듯, 우울증도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 '질환'일 뿐이라고 환자들은 말한다. 의사들도 주장한다. 그 누구보다 '중독'에 대해 민감한 의사들이 '우울증' 치료제를 '중독'시킬리가 있겠냐고.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병원의 문을 열고 오시라 권유한다. 그게 힘들다면 우선 '무료 상담 센터'를 통해 접근해 보는 것도 권한다. 출연한 환자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인에게 온전하게 '부담'을 지우는 사회 속에서 우리 누구라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다면, '치료'를 받고 다시 사회 속으로, 사람들과 함께 '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감기처럼. 

by meditator 2018. 8. 10. 05:49

2018년을 상징할 단어들이 여러 개 있겠지만 그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소확행' 아닐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등장에는  더는 '성장'이나 '발전' 중심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가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일자리 정책에 치중했지만 여전히 취업자 중 대기업에 다니는 비율은 3%에 불과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영역 파괴로 양극화만 가속시켰다. 그래서일까?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청년 층의 비율이 13.2%에 달했다. 작년 동월에 비해 3만 명이나 증가한 추세다. 특히 시간제(아르바이트) 등 1년 이하의 일자리를 선택한 청년들이 작년에 비해 0.2% 증가했다. 이른바 '프리터(free+arbeiter)족과 니트Not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증가 추세임을 반증하는 수치다. 이런 새로운 직업적 선택에 맞물려 등장한 신조어가 '소확행'이다. <다큐 시선>은 이 '신조어'에 걸맞는 삶의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농촌의 개미 부인 송주희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병풍산이 둘러쳐진 길을 바쁘게 자전거로 달려가는 여성이 있다. 송임수 씨네 막내딸 송주희(30)씨,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여전히 평생 농사꾼 부모님 앞에서는 '베짱이'가 되고마는 이제 5년차 농사꾼.  하지만 병풍산을 마주하고 늦을까 조바심을 내며 달려가는 이 시간이 그녀는 행복하다.

도시에서 그녀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공시 도전 10년차, 자존감은 바닥을 내리쳤었다. 예전의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는 귀향했다. 그리고 5년 이젠 그녀를 개미 부인이라 부르는 베짱이 남편도 있다. 단조로운 농사 일의 활력을 찾고자 춘천으로 기타를 배우러 가서 그곳 학원에서 만난 인디 가수 김윤철(31)씨, 그는 낮에는 아내와 함께 '애플 수박'을 키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밤 시간을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자신을 '파머 송 라이터'라 부른다. 

평생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으시던 어머니는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시다 땀을 식혀주는 한 줄기 바람을 ' 우리 엄마가 나 힘들까봐 보내주는 바람'이라며 시원해 하셨다. 이제 어머니의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두 부부, 하루하루 달라지는 작물로 인해, '노력한 만큼'의 의미를 깨닫는 삶, 그리고 여전히 인디 가수로, 그리고 동네 노인분들의 한글 강사로, 웃음 강사로 분주한 나날들, 그들은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지난 2000년 일본의 시오미 나오키 씨는 다니던 통신 회사를 그만두고 21세기의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반농반x' 연구소를 만들고, 책 <반농반x>를 펴냈다. 지역에 내려가 반은 농사를 짓고, 반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삶, 그가 주장하는 '반농'은 기본적인 먹거리의 자급자족으로 '소비'로 부터 자유로워짐은 물론, 지역을 근거로 사람들과 연계되기 때문에 대도시에 비해 자신의 역할이 대도시 경쟁 시스템에 비해 한결 부각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동네꼬마였던 송주희 씨가 이제 마을 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선생님'이 되고,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김윤철 씨는 2018년의 트렌드 '소확행'을 넘어 시오미 나오키가 주장하는 바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적 생활 방식의 실현이다. 그리고 이런 21세기형 생활 방식이 도시로 오면 '텃밭 공동체'의 형태가 된다. 




도심의 초보 농부 이아름씨 
고양시 덕양구의 텃밭 공동체 그곳에 이 더운 여름 볕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 농부 이상린 씨 (51), 기자 이아름 씨(32), 자신이 키운 먹거리로 한 요리를 하겠다는 '팜투 테이블'의 요리사 로이든 킴과 푸른 눈의 그의 아내 에밀리, sns을 통해 의기투합한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이 농장에 모여 '고정적'인 노동을 하고, 수확물을 함께 나눈다. 

그 중 이아름 씨는 아직은 서툴고 그래서 늘 다른 성원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같아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는 위축되지 않는다. 이 '공동체'에서는 그런 그녀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10년차, 하지만 '경쟁 논리'로 돌아가는  직장 생활은 하면 할수록 그녀에게 고립감을 주었다. 직장을 그만두던가, 아니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모색이 필요하던 그때, 이아름 씨는 '텃밭 공동체'를 만났다. 

자신이, 그리고 이웃이 키운 작물을 가져와서 만든 한 끼니의 식사, 그저 가지고, 호박이고, 갖가지 풀들이지만,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식물'의 맛을 이제 그녀는 음미할 수 있다. 텃밭 공동체 일을 하며 직장을 그만두는 대신 새로운 일도 찾았다. '도심에서 먹거리가 해결된다면 좀 더 여유롭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시작된 이 공동체의 참여가 이제 그녀에게 '먹거리'의 해결 이상, 그와 관련된 직업으로의 이직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더는 '직장에서의 고독'에 시달리던 이아름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행복하고 여유로운 도시 농부가 있다. 




힘들어도 지치지 않으면 그게 행복
행복 지수 전 세계 57위, 선택 지수 139위,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한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 대신, '인생의 한 방'을 위해 자신을 던져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사회적 장벽에 봉착한 젊은이들은 이제 '확실한 한 방' 대신 일상의 소소하 행복이라는 '확실한 처방'을 스스로 찾아냈다. 그 중에 36세의 여행 드로잉 작가 김현길 씨도 있다. 

모두가 바쁘게 걸어가는 도심, 그 가운데 배낭을 메고 여유롭게 걷는 이가 있다. 마을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는 이제 몇 남지 않은 옛 도심북정 마을을 찾은 그는 화첩을 꺼내고 샤프로 밑 선을 그리고 수채화로 채색을 하느라 한 나절을 보낸다. 재개발 되지 않은 낡은 도심, 하지만 그의 화첩 속 도심은 푸른 하늘빛과 그 아래 오래된 집들이  '자세히 보아야만 드러나는 작고 하찮은 것들'의 위안이라는 김현길 씨의 표현 딱 그대로 스며져온다. 

블로그의 취미로 시작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을 출간하고, 이제 드라마의 삽화 작가로도 이름을 날린 그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남들처럼 살기를 원하던 부모님의 뜻대로 소프트 웨어를 전공했고, 전자 회사를 4년이나 다녔다. 하지만 더는 그 삶을 계속할 수 없을 때 그는 용기를 냈다. 사람들이 걷지 않은 제주의 길을 걸으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막막함'에 대한 위로를 얻었다. 알려지지 않은 제주 동네 풍경을 자신의 그림으로 담아내며,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운 작은 것들의 가치를 그려가고자 다짐을 했다. 그는 말한다. '힘들어서 하면 안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지치지 않을 때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행복의 온도를 결정하는 건 내 자신'이라고. 

사회적 발전과 개인적 성장의 삶이 봉쇄된 사회, 그 속에서 등장한 신조어 '소확행'은 '한방을 위해 살아온'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반응이자, 대안이며,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난 젊은 세대의 선택이라 전문가들은 정의내린다.  '프리터'와 '니트' 족이 더는 남의 나라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 '소유 가치' 대신 '이용 가치'의 확인, '규모의 이익'에서 '작은 것'으로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행복론'의 등장을 <다큐 시선-행복의 온도>는 증명해 보인다. 


by meditator 2018. 8. 3. 14:38

5년 만에 드라마 마의 시청률 시청률 40%를 넘은 kbs2의 <황금빛 내 인생>은 올 상반기 지상파 vod 1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따뜻한 주말 가족극을 표방했지만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 건 극중 재벌 3세인 최도경(박시후 분)과 흙수저 서지안(신혜선 분)의 '러브 스토리'였다. 소현경 작가는 주체적인 서지안의 삶을 통해 '역신데렐라' 스토리를 추구했다. 재벌 3세인 최도경은 서지안을 만나, '개과천선'하여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 당연히 계승받을 그룹의 회장 자리를 걷어찬 채 서지안에게 영향을 받은 '나무 사업'을 맨 몸으로 개척함은 물론, 자신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 등 혈연 중심의 그룹 경영을 일소하여 '재벌 개혁'을 해낸다. 그래서 어쩌면 <황금빛 내 인생>이야말로 진짜 '신데렐라 환타지'일지도 모르겠다. '재벌 3세'가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 재벌가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그 내용만으로도.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통해 물불가리지 않는 발로 뛰는 취재로 두각을 나타낸 강유미가 이번엔 재벌3세를 탐구하기 위해 나섰다. 




강유미의 탐구기, 그 시작은 세상을 다시 한번 떠들썩하게 만든 한진 가 재벌 3세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이다. 물컵을 던지고 고성의 폭언을 한 조 전무는 경찰 포토 라인에 서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한다. 과연 그녀는 정말 죄송할까? 다큐의 질문은 바로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돌출되는 재벌 3세를 비롯한 재벌가의 갑질,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넌 어느 별에서 왔니? - 재벌들의 심리는?
고급 승용차 뒷자석에 시승하고, 조현민처럼 물컵을 던지며 악을 써보던 강유미는 다른 세상을 경험한 듯하다 소회를 밝힌다. 일찌기 개그맨이 되기 위해 손목에 무리가 올 정도로 커피 전문점 알바에서 부터 갖은 알바를 전전했던 그녀에게 8살 나이에 외제차를 타는 퍼스트 클래스라는 걸 자부했던 조현민의 삶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나선다. 

심리 연구소 소장 황상민 씨는 이런 재벌 3세들의 '폭언'의 근저에는 오로지 '돈', 가진 것을 통해 구축된 그들의 삶에서 비롯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자기 자신 외에는 가족도, 친지도 믿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피해 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러기에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 타인에 대해 '복수'하고 싶은 '욕망'에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이런 재벌가의 '특별한 피해 의식'에 더하여, '가진 자'들이 가진 '특권 의식'의 무도덕성을 '심리적'으로 분석한다. UCLA의 폴 피프 교수는 100쌍의 사람들에게 동전 던지기 시합을 하도록 한다. 단, 이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그런데 동전 던지기 라는 '하찮은 시합' 과정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례'하며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에 '무지'하며, 심지어 그 '알량한 과정'에서도 물질적 성공을 과시하려 든다는 결과을 도출해 낸다. 




이런 폴 피프 교수의 실험 결과를 제작진은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비싼 차가 불법을 자행하는 경향이 많다는 보고서에 근거하여 강남 교차로에서 불법 유턴하는 차량의 가격을 분석한 것이다. 불법 유턴은 벌칙금 6만원에 벌점이 30점 적립되는 '불법적 행위'이다. 그런데 3시간 동안 교차로에서 불법 유턴을 한 차량은 4800만원 이하 차량보다, 5800만원 이상 대의 차량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천만원 대 이하 가격의 차량은 대부분 법 질서를 충실히 지켰다. 반면, 5천만원에서 7천만원 대 차량의 70% 이상이 '불법'을 자행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규범'을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경향성, 이런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책임을 맡는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재벌'의 문제가 그 결과가 아닐까. 이른바 '갑질'로 나타나는 재벌들의 행태는 이중적이다, 경찰 포토라인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던 조현민, 조현아 자매는 정작 카메라 가 사라진 법정에서 안하무인의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공적으로는 가장 '품위'있는 듯하지만, '사적'이 되는 순간 '돌변'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이상 심리를 알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 중 하나가 역시나 빈번하게 문제시 되고 있는 운전기사 폭행 사건'이다. 이른바 '리모컨질'이라 통칭되는 이 행태는 이름대신  '야!', '개새끼야'로 불려지며 '달려'라는 지시 하나로 갓길 운행은 물론 빨간 불이라도 달려야 하고, 그 명령을 어겼을 때 돌아오는 구타를 의미한다.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된 'M&m 최철원 회장의 한 대에 백만원이라는 야구 방망이 폭력이 그 세계에서는 '범사'이다. 




재벌에 '관대한 사회'
<황금빛 내 인생>의 최도경이 서지안과 엮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 걱정을 하듯이 이들 '가진 자'들은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라난다. 외국인 학교를 나와 아버지가 후원하는 미국 남가주 대학을 다닌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만 관계를 맺고 자란다.   인간의 공동체 의식은 나와 상호작용을 하는 이들을 통해 자라난다.  어려운 반 아이들을 보며 타인에 대한 '이해심'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는 이들에게 '없는 사람'들은 이해불가의, 아니 애초에 이해할 가치조차 없는 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고, 돈을 주고 '명령'을 내리는 대상이 될 뿐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돈'은 그들에게 '객관적 판단의 능력'을 앗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재벌'가의 자제란 이유만으로 국민 경제의 책임을 맡긴다는 건, '자살 행위'와도 같다고 박노자 교수는 단언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 재벌에 대해 어떤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법은 그들에 대해 오랜 불처벌의 관행을 가져왔다. 이러저러한 법적 조항을 제시하지만 사실상 면제부를 쥐어준다. 
대통령도 감옥에 가지만 재벌들은 이른바 '징3집5'라는 속설처럼 대부분 '집행 유예'의 판정을 받아 유유히 걸어나온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 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 전자 부회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듯이 전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진 일가 중 그 누구도 감옥에 갈 가능성은 없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 최철원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2심에서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 반면 야구 방망이로 폭행을 당했던 유호준 씨는 마치 앙갚음이라도 당하듯 업무 방해, 일반 교통 방해 등으로 법적 처벌을 받았다. 조현아의 갑질 대상이 된 박창진 사무장은 온갖 소문에 시달리며 회사를 다니기 위해 오늘도 아침에 정신과 약을 털어넣는다. 

재벌과 같은 동종 범죄의 경제 사범 중 단 44%만이 집행 유예를 받는 반면, 재벌들 72%가 '집행 유예'로 풀려난다. 더구나 그들의 '집행 유예' 사유는 대부분  '사회 공헌'과 '경제 발전에 기여'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과 관련하여 그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한 각종 의혹이 등장했지만, 다큐가 지적하는 건, 판결을 내린 개인이 아니라, '법조계' 전반을 지배하는 '인지 포획'이다. 즉, 재벌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 재벌이 곧 한국 경제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도그마'가 법 앞에서 그들을 '자유롭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리를 분석하고, '다른 별'의 사람들이라는 걸 이해하면 뭐하는가.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이해는 외계인보다도 소통 불가한 재벌이라는 먹먹한 현실에 도달할 뿐이다. 다큐는 묻는다. 과연 언니 조현아에 대한 처벌이 강력했다면 연이어 동생 조현민과 그 엄마 이명희 씨의 오만한 '갑질'이 되풀이 되었을까? 재벌들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강유미의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재벌'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처벌'이라고. 

by meditator 2018. 7. 31. 15:48

사랑의 유효 기간은 3년이라 했나? 죽고 못살아서 한 이불을 덮은지가 오래 되지 않아, 내가 내 발등을 찍었다 하는게 '사랑'이다. 그런데 50년을 한결같은 사랑이라니? 그게 가능한가? 그런데 가능하다. 왜? 용필 오빠니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ocn의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드라마는 그 시대를 실감나게 재연하기 위해 그 시절의 음악을 등장시킨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래를 만드는 /우리들의 푸른 꿈 /오오오 오오오 '가 울려퍼지는 88년도의 거리를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큼직한 점퍼를 입은 형사들이 질주한다. 그렇게 그 시절 대표적인 가수였던 조용필, 어느덧 그가 데뷔 50주년을 맞이했다. 가수 자신도 어색한 듯, '7순이라매~'라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그 시대가 이젠 '추억'이 되었듯, 그 '가수'도 이젠 과거형이 되었을까? 아니 여전히 목놓아 '오빠'를 부르며 그와 함께 나이들어 가는 '건재'한 팬들이 있다. 스타의 존재 이유, '팬들이 존재하는 한 '스타'는 영원한 '현재형'이다. mbc스페셜은 50년이 지나도 영원한 오빠, 조용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시절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오빠'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부터 시작하여, <창밖의 여자(1979)>, <모나리자(1988)>, <못찾겠다 꾀꼬리(1982)>, <친구여(1983)>, <그대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Q.(1989)>,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1990)>, <여행을 떠나요(1985)>, <꿈(1991)>, <도시를 떠나서(1994)>, <hello(2013)>까지. 노래의 발표 연도에서도 보여지듯이, 1980년대, 거의 매해마다 조용필은 음반을 발표했고, 그가 발표한 음반 속의 곡들은 그 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곡이 되곤했다. 굳이 조용필의 화려한 수상 기록을 들춰내지 않아도,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 중에 과연 한번이라도 조용필의 노래에 마음이 적셔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언젠가 나를 찾아 꽃다발을 전해주던(단발머리) '그 소녀는,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을 잊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못찾겠다 꾀꼬리)' , '하이에나처럼 산기슭을 헤매(킬리만자로의 표범)'듯, '화려한 도시를 ,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 마음을 위로받았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며 우리의 실연을 대신 절규해 주었고, '타버린 그 잿 속에 숨어있는 불씨의 추억라며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해 주었다.' 그리고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라며 함께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렇게 인생의 구비구비, 조용필은 그의 '노래'로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을 '위무'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조용필의 노래는 곧 그 시대의 노래였다. 치열한 경쟁의 도시에서의 삶을 가장 낭만적으로 처절하게 대변한 조용필이었다. 

그리고 조용필의 노래로 위로받고 행복했던 이들은 여전히 '현재형'인 사랑으로 그의 존재를 증명한다. 대중문화의 별이 빛날 수 있는 건, 그 별을 바라봐 주는 이들의 존재때문이다. 7순이 넘어도 조용필이 영원한 오빠이자, 스타인 이유는 여전히 그를 별로 빛내주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큐<고마워요 조용필>은 50주년 스타의 기록을 그 '팬들'의 기록으로 역설한다. 




'오빠'를 빛내준 '팬들
초등학교 5학년 너무도 귀여웠던 오빠의 기억으로 시작된 역사는 사춘기 시절 대책없이 오빠의 집앞에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기다렸던 애닮은 추억으로 이어진다. 공개 방송에서 오빠의 뺨을 닦아줬던 그 10년도 넘은 손수건은 이제 낡아 냄새도 희미해졌지만, 그리고 그 시절 소녀들은 이젠 아줌마에, 할머니가 되어가지만, 그녀들, 혹은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용필'이 오빠가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있었다 입을 모아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슬픔도,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혹은 고단했던 신입 사원의 자리, 인생의 구비구비에서 막막했을 때 먹먹하게 자신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와 눈물을 차오르게 했던 조용필의 노래가, 그들을 여전히 비오는 50주년 잠실 주경기장에서 들썩이게 만든다. 

이른바 '덕질'이라며 한갓 감정 소비, 나아가 쓸데없는 경제적 소비로 치부되는 이 '문화적 행위'들, 하지만 50년의 역사를 가진 용필 오빠의 팬부대들의 위용은 이제는 어느덧 50년이 된 '팬'문화의 역사를 실감케 한다. 1969년 클리프 리차드 내한 공연부터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던 팬들의 열렬한 응원은 그 역사가 깊다. 나훈아와 남진을 좋아했던 이들의 길고도 오랜 쟁투심은 유명했으며, 그런 가운데 용필 오빠의 '위대한' 소녀 부대들은 본격적인 팬문화의 '시발점'이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제사 다시 부활한 'hot'나, '젝키' 팬들이 '선배님'하고 한 수 배워야 할 내공이지만, 세대별 좋아하는 음악의 간극만큼이나,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와 그 스타를 좋아하는 문화의 역사에 대한 '경의'는 박하다. 69세에 세상을 떠난 데이빗 보위는 경배하지만, 그 시절 우리와 동고동락했던 조용필의 50주년은 간과되었다.  마치 낡은 구 도심을 싹 다 갈아엎고 새 아파트를 세우듯이,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문화만 솔깃하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모든 팬클럽이 연합으로 50주년 팬미팅을 하고, 그런 가운데 7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짱짱한 콘서트로 화답하는 조용필, 아직도 건재하다. 그저 건강하게 자신들과 함께 오래오래 무대에 있어달라는 팬들. 더 늦기 전에 나도 그 '별'의 콘서트 한번 가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8. 7. 24. 14:34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던 날, 평양냉면을 먹으로 간 이들이 많았다. 2018년 '평양 냉면'은 그저 냉면 중에 한 종류가 아니다. '어렵사리 평양으로부터 랭면을 가져 왔습니다.'의 그 '남과 북'의 가교이다. 남북 정상 회담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 냉면을 맛본 이들의 '동정'이 화제가 되었다. 어느덧 시대의 상징이 된 음식, '평양 냉면' 그에 대해 mbc 다큐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평양 냉면, '덜덜이'라고 했단다. 황교익 평론가에 따르면 찰기가 없어 뜨거운 국물에 넣으면 풀어져 버리는 이 '메밀'을 국수로 만들어 먹기 위해 김치 국물 등의 찬 물에 담갔고, 특히 추운 겨울 밤 덜덜 떨면서 먹던 그 '밤참'의 매력 덕분에 '덜덜이'라 불리던 음식, 벼농사가 흔했던 남쪽과 달리, 척박한 밭 농사의 지역에서 흔히 수확할 수 있었던 특산물에서 비롯된 음식, '냉면'이다. 




냉면으로 하나된 민족
냉면 집에 가면 홍해 바다 갈리듯 나뉘는 취향, 함흥과 평양, 비빔과 물이라는 냉면을 마는 방식, 하지만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만나, 그 상징적 음식으로 '옥류관의 평양 냉면이 등장하면서, 이 시대 어느새 냉면의 대명사는 '평양 냉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평양 냉면'의 성지로 '옥류관'이 떠올랐다. 꼭 먹어봐야 하는 맛, 먹고 싶은 맛, 옥류관의 평양 냉면을 먹고싶어서라도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는 맛, 그게 '먹방'의 시대 떠오르는 아이콘 '평양 냉면'이다. 

다큐는 당연히 '성지', '옥류관'으로 부터 시작된다. 냉면 집이라기엔 어마어마한 규모, 1,2층 합쳐서 1,2800㎡, 장충 체육관보다 넓은 옥류관, 이곳에선  한번에 2000 명이 냉면을 먹을 수 있다.  하루에 팔리는 냉면의 양만 만 그릇이 넘는 곳. '육수물이 제일 맛있다'는 평양 냉면, 순 메밀로 만든 사리에, 김치, 무김치, 소, 돼지, 닭고기, 실지단, 달걀 반 알, 잣 세알을 띄운 음식, 꼭 사리에 식초를 쳐서 먹어야 하는 '비법'까지 곁들여지는 김일성의 지시로 1961년 평양 대동강변에 만들어진 '부심' 짱짱한 옥류관의 대표 메뉴이다. 

하지만, 냉면을 그저 '옥류관'에 가두는 건 아쉽다. 다큐는 냉면을 타고 흐르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추적한다.  북한에 옥류관이 있다면, 남한에도 '옥류관' 못지 않은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1.4 후퇴 당시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 박근성 씨의 '평양 모란봉 냉면집'.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냉면집을 하시던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대전의 피난민들이 많은 숯골에서 냉면을 말아 팔기 시작했다던 그 냉면집이 이제 아들의 대까지 이은 대전의 냉면 맛집이 되었다. 초가집 앞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먹던 냉면이 이제 한 해 무 만개, 배추 7천 포기의 소문난 맛집이 될 동안에도 부모님이 하시던 방식 그대로 메밀의 겉 껍질을 살린 거무죽죽한 면발에, 겨울 무로 담근 동치미의 전통은 변하지 않는다. 방송이 나가기 얼마 전 결국 고향을 그리워 한 채 눈을 감고 만 박근성 씨, 박근성 씨처럼 남한의 전통있는 냉면 집은 '실향'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다.

냉면으로 이어진 '민족'은 한반도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 교포인데도 워낙 냉면을 좋아해 어느 덧 냉면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된 존박과 함께 찾아간 일본 효고현 고베시, 그곳에 옥류관보다도 몇 십년 앞선 1039년에 문을 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 있다.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한 장모란 부부, 그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조선'의 국적, 아니 남도, 북도 아닌 무국적인 채 이곳에서 '냉면'의 가업을 잇고 있다. 어릴 적 아버님이 뽑던 전래의 냉면 틀을 기억하는 부부의 자손, 오늘도 평양식 물김치를 담그고, 손반죽으로 냉면을 뽑아내며 숙연한 전통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도 옥류관 평양 냉면을 맛보는 게 가능하다. 고난의 행군 시절 혹독한 북한 사회를 견디지 못했던 옥류관 요리사 윤종철 씨는 딸을 북한에 남겨두고 서울로 내려와 옥류관 시절의 맛을 되살린다. 그에게 냉면은 낯선 서울 땅에서의 안착이자, 두고 온 딸에 대한 다할 수 없는 미안함이다. 

2018년에 되살린 평양 냉면 '팝업 스토어'까지, 다큐는 냉면을 통해 남과 북을 잇고, 민족을 되살린다. 단 250그릇 한정으로 만들어진 옥류관 서울 1호점에 냉면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의 음식으로 대동단결된 민족이다. 

정말 평양 냉면이 맛있을까? 
그런데, 평양 냉면이 정말 맛있을까? 이 글을 쓰는 이도 그 유명하다던 평양 냉면들을 먹어봤다. 인터넷에 농담처럼 '걸레빤 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솔직히 호불호가 갈리는 '밍밍한 맛'이다. 비빔과 물의 취향 차이만큼이나 또 하나의 '취존'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 '밍밍한 맛'이 남기는 묘한 여운으로 인해 또 먹고 싶지만, 함께 갔던 이들이 다시 '이름값'을 넘어 '평양 냉면'의 마니아가 될 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북한 옥류관의 냉면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2010년대, 2018년에 먹은 옥류관 냉면은 맛이 달랐다고 한다. 순 메밀이라 자부했던 면에는 찰기를 살리기 위해 전분이 더해지고, 심지어 2018년의 옥류관 냉면에는 붉은 다다기까지 제공됐다고 하니,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밍밍한' 평양 냉면이 정작 그곳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결국, 평양 냉면이라는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냉면의 맛', 혹은 '이상향'이 어쩌면 또 다른 '냉면'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양 냉면이라 하여, 심심한 물에 담긴 메밀 국수에 길들여지고자 노력할 동안, 정작 본고장 냉면은 세상의 트렌드에 맞춰 간이 진해지고 있으니. 

음식이란 게 시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한다. 똑같은 평양 냉면이라도 '대전'의 평양 냉면과 , 고베의 '평양 냉면'이 다르듯이. 애초에 집집마다 긴 밤을 지내기 위해 말아먹던 '덜덜이 ' 국수에 정석이 어디 있으랴. 각 집의 손맛이 다르듯이, 김치 맛이 다를테고, 당연히 재료에 따라 냉면 맛도 달라질 테니. 늘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음식'들이 트렌드가 된다. 한때는 비빔밥이, 또 한 때는 한식이, 부디 평양 냉면이 그런 호들갑스런 잔칫상에 올려진 품목이 아니길 바란다. 냉면으로 하나된 민족을 확인하는 일은 뜨겁지만, '평양 냉면 제일일세'는 '과찬'이다. 

by meditator 2018. 7. 17. 15:24

장미여관의 2013년 곡 <서울살이>는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게 이래가꼬 언제 집을 사노'란 가사로 시작된다. 이 가사에서 보여지듯 우리가 어느 곳에 터를 잡고 성공적으로 살아냈느냐의 기준이 되는 건 '집'이다. '서울'에 집 한칸 가지는 게 서울 살이의 상징이 되듯. 여전히 '서울'에서 '집'을 가지는 건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면, 아니 같은 서울이라 하더라도 '빈집'이 수두룩하다면? 한 쪽에서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빈집'이 늘어만 가고 있다. 바로 이 '집'의 불균형, '빈집'의 이야기를 7월 12일 ebs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이 다룬다. 




노후되는 구도심, 늘어나는 빈집들
다큐가 시작되는 곳은 부산 영도구.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닮았다 입소문이 난 흰 여울 문화 마을에도, 아기자기한 벽화가 골목골목 해돋이 마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진 마을에서 한 블럭만 지나면, 낮에도 인기척을 찾기 힘든 '빈집'들이 즐비한 동네로 들어서게 된다. 

19세기말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가 세어진 이래 '조선소'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 하지만 조선 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곳엔 이제 그저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좌판을 벌인 노인들과 아이들이 없어 이제 곧 문을 닫게 된 교복 상점처럼 조만간 이곳을 떠날 상인들만이 남아있다. 관련 공무원들과 함께 걸어가는 골목골목엔 사람 대신 차지한 고양이들과 쓰레기들이 차지한 빈집들. '공폐가'가 즐비하다. 영도구에만 700여세대가 넘고, 아파트까지 합산하면 1000 채가 넘는다. 2015년 기준으로 부산에만 이런 '빈집'들이 4000여 채에 이른다. 

길 건너에는 고층의 아파트가 지어지는데 바로 길 건너 편에는 밤이 되도 불빛이 밝혀지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네가 공존하는 곳, 사람들이 모여드는 신도심과, 사람들이 떠나가는 구도심의 부조화, 하지만 이건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집 얻기 힘들다는 서울에도 '해방촌'이 그렇고, 도심을 떠나 전국으로 시선을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농촌과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가는 빈집, 2050년에 이르면 전체 가구의 10%에 이를 전망이라니 심각하다. 



영도구의 강정원씨, 한때는 원양 어선을 타던 선원이었지만 배를 타던 중 다리에 마비가 온 후 적절한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한 쪽 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처지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다섯 가구가 살던 집에 이제 홀로 남았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다른 가구들이 남긴 쓰레기와 같은 짐을 치우지도 못하고, 쓰러져 가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며 한때는 이웃으로 벅적이던 하지만 이제는 수풀이 우거진 빈집 아닌 빈집을 홀로 지키고 있다. 영도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관절염이 걸린 다리를 절둑이며 물조차 나오지 않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며 낮에도 어두컴컴한 아파트를 지킨다. 

배에 붙은 해조류와 녹을 닦아내는 '깡깡이'로 아이를 키워냈던, 그래서 깡깡이 마을로 불리던 동네엔 이젠 다 자란 아이들은 떠나고, 늙은 어머니들만 드문드문 빈집을 지키고 있다.젊은이들은 일자리 때문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지키던 구도심, 그마저도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고양이들의 차지가 되어버리는 집들, 우리 사회의 급격한 노령화는 '공폐가'의 증가율을 급격하게 높인다. 구청 등에서 예산을 들여 정리를 하고는 있지만 한 채에 적게는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를 넘어서는 철거 비용에 늘어나는 빈집의 수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렇다고 낡은 집만 '빈집'이 되는 건 아니다. 창원 시의 경우, 신도시 전체의 규모에 맞먹는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있지만 거의 단 한 집도 분양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건축붐' 시절의 아파트 산업 논리로 우선 짓고 보자는 식의 건설 방식이 또 다른 '빈집'의 이유가 된다. 

빈집의 딜레마 
그러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 그 빈집들 놀리지 말고 세를 주거나, 농촌의 경우 귀농하는 도시인들에게 대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바로 여기에 '빈집'의 딜레마가 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 되어 쓰레기 더미가 쌓여가고 동네 고양이들의 귀곡성에 이웃 사람들이 밤잠을 설쳐도, 그 '빈집'은 '빈집'이 아니다. 즉, 현재 사는 사람은 없어도 엄연히 소유주가 있는 집들이 많다는 것이다. 때로는 주인조차 찾기 힘든 집들도 있지만, 자손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집들은 엄연히 '사유재산'이다. 

그래서 도시의 원룸을 떠나 넓은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귀농을 결심한 젊은 부부는 그 많은 '빈집'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안식처'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빈집이지만 다 소유주가 있던 집들은 막상 '귀농'을 위한 이 젊은 부부에게 매번 '거절'을 했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겨우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빈집'이지만 소유주가 있는 집들은 '방치'되었지만, 국가조차 함부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개인의 소유물'이다. 언젠가 돌아올 지도 모른다 '방치'해둔 고향집이 귀농인들에게는 넘볼 수 없는 '남의 집'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한 채 관리되지 않은 집들, 하지만 그 집에 쌓인 쓰레기와 그 곳에 모여든 고양이들의 동물과, 그들의 분면들과 거기에 몰려든 파리, 모기 등은 그저 '빈집' 이상으로 이웃들에게 '민폐'가 된다. 문제는 그런 '위생상'의 문제점만이 아니다. 부산 영도구에서 벌어졌던 성폭력 전과자였던 김길태가 여중생을 공폐가에 납치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시신을 빈집의 물탱크에 유기한 채 다시 '빈집'들을 돌아다니며 피신했던 사건처럼 이들 '빈집'들이 '범죄'의 '온상'이 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즉,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사적 재산'이 '관리'되지 않았을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변 이웃과 사회에 전가된다는 점에서, 과연 '공폐가'의 소유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를 다큐는 <빈집의 두 얼굴>을 통해 묻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 토지 공개념은 이 경우에도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토지 공개념이란, 토지의 소유, 처분에 대한 권리를 토지의 공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공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토지 공개념은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적 급등을 막기 위한 정부의 통제를 위한 '사상'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공폐가의 경우처럼 개인의 사유 재산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변과, 사회가 불이익을 받을 때 또한 '공공재'로서의 '토지'의 개념을 고려해 보아야 할 지점이 된다. 실제 외국에서는 빈집이 방치되고 관리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제제 법안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급격한 노령화에, 사회적 제도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보다 더 빠르게 노령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본의 '빈집 쇼크'가 남의 일이 아니지만, '집'을 '재산'으로 여기는 우리의 사고 방식이 공폐가의 '황폐화'를 조장한다. 

실제 나주를 비롯한 지방에서는 역사적 유산이 그대로 남아있는 오래된 빈집들을 지자체가 사들여 '문화 마을'로 되살려내는 복원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대들보, 1930년식의 건축 양식 등, 각 시대 별로 지어진 집들이 그 역사를 고스란히 남긴 채 '문화'의 공간을 탈바꿈한다. 그러자 그곳에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심지어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든다.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쓰레기 더미'가 될 빈집이 유적과 문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8. 7. 14. 00:06

나의 어머니는 종종 당신의 어머님과 아버님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리고 형제들도. 그분들과 함께 한 시절은 어머니의 삶에서 아주 오래 전, 하지만 어제인 듯 그 분들과 함께 지낸 시간을 기억해 낸다. '치매'는 아니지만, 그 순간마다 어머니는 지금의 80이 넘은 할머니가 아니라, 그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 그늘에서 살던 딸이 된 듯하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를 난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의 외로움에 대한 '반작용'인 듯해서 '도대체 언젯적인데'라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지금의 시절을 기꺼이 살아내지 못하는 노인네에 대한 아쉬움이 앞서는 거다. 아마 노인분들과 가까이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리라. 바로 그 '복잡함'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다큐가 있다. 바로 7월 8일 방영된 <sbs스페셜-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이다. 




오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정작 잊지 못하는 짐처럼 무겁게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이종민, <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中


전북대학교 이종민 교수는 매일 촌에서 출퇴근을 한다. 그가 현재 사는 곳은 그의 늙으신 어머님이 사시는 곳이다. 여러 형제 중 막내, 하지만 어머니 황정례씨가 치매 판정을 받자, 그는 기꺼이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형수님도, 아내도 아니고, 주 이틀 형의 도움을 받으며. '치매' 걸린 어머님 그래도 자식이 낫지 않겠냐고. 그래서 자신이 살던 본가를 놔두고 어머니가 사시는 집 옆에 새로이 머물 곳을 지었다. 언제나처럼 끼니 때가 되면 밥을 하고 상이 차려진다. 단지 예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것을 이젠 막내 아들인 이종민 교수가 할 뿐, 어머니의 공간, 어머니의 삶에 아들이 들어 앉았다. 

콩새가 된 어머니 
그의 어머니 황정례 씨는 올해 아흔 두 살이다. 하지만 누가 물어보면 그만 자신의 연세를 잊은 채 일흔 여덟이라 답하신다. 늘 도돌이표처럼 되돌아 가는 시간, 그 일흔 여덟에는 무엇이 있을까?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현재'의 시간 대신 어머니가 머물고 싶은 시간 속으로 어머니의 기억을 끌고 간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파란 대문'을 훔쳐간 도둑놈이 있고, 분홍 모시 치마를 입고 옛사랑을 만난 새댁이 있다. 다큐는 '치매'을 빌어, 어머니의 사라져가는 역사를 복기한다. 

어머니 황정례 씨는 말끝마다 자신이 이제는 그만 '콩새'가 됐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콩새는 '밥새'의 반댓말, 이제 더는 밥도 할 줄 몰라 아들이 밥을 해야 하는 처지를 어머니는 그러게 빗대어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런 '콩새' 어머니가 아들이 차를 타고 출근하자마자 바뻐지신다. 뒤주에서 쌀을 잔뜩 꺼내 언제 무기력하게 앉아계셨냐는 듯 썩썩 씻어 밥솥에 밥을 안치신다. 거기까지는 일사천리였던 밥하기, 그런데 노련한 밥새 황정례 씨의 발목을 첨단의 전기 밥솥이 잡는다. 이리 저리 눌러봐도 좀처럼 '취사' 코스로 가지 않는 밥솥, 설사 취사 코스로 간다 하더라도 예전 가마솥밥을 하던 기억을 가진 어머님은 전기 밥솥이 빠른 취사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결국 한 솥 가득 설어버린 밥,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어 기르는 개 차지. 하지만 개조차 맨날 쌓이는 설은 밥을 외면해 버린다. 

물론 어머니의 이 위험한 도발을 막기 위해 뒤주에 자물쇠를 채워도 보았다. 하지만 '열중'을 넘어 집착을 보인 어머니가 병이 나시겠다 싶어 결국 뒤주에 채운 자물쇠를 버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집을 떠나자마다 매번 밥과의 전쟁을 벌이신다. 평생 그렇게 밥을 하며 살아왔던 일상의 기억 속을 헤집어 내신다. 



어머니의, 아니 황정례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치매'는 노령화되어 가는 사회의 가장 큰 부담 중 하나다. '기억'을 잃어가는 걸 떠나서, 많은 후유증들이 노인 본인은 물론, 부양 가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의 케어에 따라 예후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연구는 밝힌다. 삶의 근거지를 잃은 도시의 치매 노인들이 증상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사례가 많은 반면, 시골에서 자신의 삶의 테두리을 벗어나지 않은 노인들의 경우 약간의 기억 상실 정도로 '치매'를 약하게 앓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큐의 황정례 씨는 자신의 나이도 매번 기억하지 못하고, 아들이 없는 사이 대책없이 설은 밥을 해대지만, 일상을 벗어나지 않은 황정례 씨의 치매는 그저 '일상의 해프닝'으로 침잠된다. 대신 아들은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은 어머니의 '미스터리한 역사'를 기록하고자 한다. 

어머니는 매번 마루 끝에 앉아 대문 참을 노려본다. 그러시며 당신이 애지중지하시는 파란 대문을 도둑놈이 훔쳐갔다며 끌탕을 하신다. '파란 대문을 훔쳐간 도둑놈'을 추적했다. 장본인은 '파랗다'라고도 할 수 없는 낡은 철대문을 멀끔한 나무 대문으로 바꿔달은 사람,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면서 아들이 바꿔 달은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그 '새 대문으로의 교환'이 그저 '도둑질'로 기억될 뿐이다. 아들은 헤아려 본다. 아마도 그 '교환'이 '도둑질'이 된 착각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가 살아낸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있으리라고.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파란 철대문을 다셨던 그 '살림을 일구던 찬란한 시절'의 기억을 아마도 어머니는 '도둑맞았다'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라고. 

그렇게 다큐는 어머니 황정례 씨의 치매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아버지와 단란하게 일가를 꾸리며 살았다고 자식들이 기억한 어머니의 입에서 '공방'이란 단어다 툭 튀어 나온다. 열 여덟 친정 아버지의 대번의 결정으로 산골 마을로 시집을 오게 된 어머니. 새댁이 된 어머니는 남편을 거부하였다. 첫사랑을 물어도 그런 건 없다 하시던 어머님이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읇조리며 술술 흘러나온 이야기, 어머니의 물동이를 기꺼이 날라주던 동갑내기 동네 총각과 당연히 결혼하리라 생각했던 어머니에게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산골 마을 남정네와의 결혼은 청천벽력이었고, 그건 남편을 거부하는 몇 년의 세월로 이어졌다. 시집까지 찾아왔던 그 동갑내기 첫사랑을 다시 만나던 날 입었던 옷까지 기억하는 어머니의 묘한 기억력. 그렇게 어머니의 치매는 어머니를 '어머니'로 살아낸 시절 이전의 꽃다운 황정례의 역사를 소환한다. 

아들이 찾아가보니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축에 속했다던 집도, 주정뱅이 아버지도, 이제 어머니의 기억에선 그럴 듯한 장사치에, 번듯했던 집에 대한 기억으로 왜곡되었지만, 어머니에게 그 시절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 이전의 꿈같던 시절이다. 초등학교도 못나와 아버지에 비해 배움이 짧았다고 자식들에게 기억되었던 분이 아니라, 어릴 적 서당에서 천자문은 물론, 고문진보까지 떼시고 시집을 와서 동네 여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줄 정도로 열정이 넘치던 분이 계신다. 지금도 한자 책으로 하루 종일 소일을 하실 정도로, 아들을 대학 교수를 만들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배움의 열정을 가진 황정례라는 '인물'의 재발견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열 여덞이란 나이를 안타깝게 읊조리시듯, 그 꽃다운 시절에 가난한 집안의 입을 줄이고자 산골 마을로 시집이 보내졌다. 그리고 결국 '공방'의 시절을 넘어 일곱 자식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매번 어머니가 자신의 나이를 일흔 여덟이라 말씀하시는 그 시절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 미웠다지만, 그래도 남편보다 오래 사는 자신이 면구스러워 매번 아흔 두살의 나이를 일흔 여덟로 착각하시는 어머니. 황정례 씨만이 아니라, 많은 '치매 노인'들의 얼토당토한 기억 속에는 이렇게 장구한 개인의 역사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치매 어머니의 기억 속을 더듬는 아들 이종민 교수의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를 통해 다큐는 '치매'를, 노년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8. 7. 9. 15:45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이 노래 가사 같은 한 마디가 플라스틱과 함께 하는 당신의 일상을 묻는 것이라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샴푸로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며 하루를 여는 당신, 물은 건강을 위해 생수를 마시고, 점심 식사 후엔 졸음을 쫓는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다시 오후를 버티며, 퇴근 후엔 마트에 들러 삼겹살 포장육에, 비닐 봉지에 든 마늘과 상추를 사서 푸짐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시원한 캔 맥주 한 잔과 함께 그 날의 피로를 풀어내며 하루를 마감하는,일찌기 조선 시대 어느 부인네가 반짇고리 속의 물품들을 자신의 벗이라 칭했듯, 2018년 우리의 가장 친근한 '벗'은 어느 틈에 '플라스틱'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벗'인 줄 알았던 플라스틱이 알고보니 '소리없는 암살자'였다면? 




폐기되는데 400년? 
7월 1일 방영된 < sbs스페셜- 식탁 위로 돌아온 미세 플라스틱> 과도한 사용으로 이제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더운 여름 대표적인 아이스 커피 한 잔, 이 커피를 마시는데 얼마나 걸릴까? 평균 1인당 이런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는 시간은 20여분, 그런데 이들 플라스틱 제품이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건 대부분 1분, 그런데 비해 1회용 컵이 지구에서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20~50년, 플라스틱 빨대는 200년, 비닐 포장재는 200~400년, 페트병은 450년 정도가 걸린다. 

1회용 플라스틱 용품 소비에 익숙해진 우리들, 한 해 소비되는 빨대는 5억개, 1년 동안 1회용 컵을 한 개인이 사용하는 수량은 평균 257개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포장용 플라스틱 소비는 세계 2위, 플라스틱 원료 소비량은 132톤으로 세계 1위다. 지난 66년동안 63억톤의 플라스틱을 세계는 써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만들어내고, 마구 써대며, 반면 폐기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결국 지구 전체가 '플라스틱 폐기물'로 범람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건, 지구의 마지막 정수장이라는 '바다 속 플라스틱 오염'이다. 

영덕에서 온몸이 붉은 색으로 변한 채 죽은 바다 거북이 발견되었다. 수령 30년 정도로 추정되는 바다 거북의 내장에서 발견된 건 플라스틱 비닐 봉지, 비닐 전단지, 비닐 끈 등 쓰레기 들. 바다 생물들에게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죽음의 덫이다. 바다 거북만이 아니다. 놀래미, 아귀 등 익숙하게 우리 밥상에 오르는 생선들의 몸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해조류는 어떨까? 담치를 실험용 비이커에 넣고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물을 담았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해져 있다. 그 모든 오염물을 담치가 흠입한 것이다. 



미세 플라스틱이란 5mm이하의 플라스틱을 말한다. 처음부터 미세 플라스틱으로 제조된 것들도 있고, 플라스틱 제품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부서지면서 생성되기도 한다. 이제는 너무도 쉽게 눈에 띄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생활 쓰레기들, 그리고 양식 등에 사용되는 스티로폼이 해양 생물 및 바다의 주오염원이 되고 있다. 한국 해양 과학 기술원 연구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 비해 우리 나라는 10배나 많이 해양이 오염되어 있으며 모래 사장이나 갯펄 역시 일본이나 러시아에 비해 월등히 높은 오염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 976n/ , 러시아 293n/ , 우리나라 평균 3.936n/ )

플라스틱 사회
문제는 이런 해양 오염이 결국 우리의 식탁 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먹거리는 물론, 우리가 안심하고 사먹는 생수까지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되고 있다. 물 그 자체, 대기, 용기등으로 인해 전세계 생수의 93%가 오염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10개의 생수 중 4 종에서 폴리스틸렌, 폴리카보네이트가 발견되었다. 수돗물은 다를까, 국내 정수장 10곳 중 3곳에서 역시나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먹고 마시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플라스틱'을 벗어날 수 없는 플라스틱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만지고 닿는 거의 모든 것은 플라스틱이다. 환경 호르몬의 일종인 프탈레이트가 아이들이 사용하는 리듬악깅, 사인펜, 리코더, 미니 가방에서 기준치를 한참 초과하여 검출되고 있다. (리듬악기 174.4배 초과, 사인펜 174배 초과, 리코터 232.6배 초과, 미니 가방 96.7배 초과)



해양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바다를 오염시킨 미세 플라스틱은 '역주행'을 거듭하여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 자리에 있는 인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미세 플라스틱은 그저 플라스틱보다 한층 더 위험하다. 태양이나 자외선, 파도 등으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표면적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 증가된 표면적은 바다 속에 부유하는 독성 물질의 흡착을 한결 더 쉽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 위장 기관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지만 더 나노로 쪼개진 플라스틱은 세포벽을 통과하여 몸에 머물게 되는데, 물고기의 간세포에 흡착된 미세플라스틱은 종양을 유발한다고 연구는 밝히고 있다. 

사인펜, 악기 등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제품에서 검출되는 프탈레이트는 발달 자체를 저하시키며, 자폐, 지적 장애 등의 심각한 장애의 원인으로 추측된다. 전문가는 최근 늘어가는 아동 신경계 질환이 방어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미친 미세 플라스틱에서 그 원인을 추측한다. 



일본에서 지난 1968년 단 몇 달 동안 식용유를 만드는 과정에서 폴리염화비페닐(PCB)이 흘러들어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가네미 지방 1만 4000여 명이 피부 질환 등의 이상을 호소했다. 여기서 문제는 당사자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피부가 검은 아이가 태어나기 시작했으며, 이 아이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내내 피부, 신장 , 위 등의 질환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이들의 자녀까지 이들처럼 검은 피부의 아이로 휴유증을 고스란히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3대에 걸친 비극이야말로 우리가 무심히 쓰고 버리는 미세 플라스틱이 낳은 재앙을 경고하는 시금석이다.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60년전에 금지를 해도 지금까지 그 휴유증이 대를 이어 나타나고 있는데, 지금 금지한다고 해도 반감기가 긴 이 '플라스틱의 난'에 대해 우리는 너무 무방비한 것이 아니냐고. 환경 운동가들이 예측하는 2050년의 바다는 물 반 쓰레기 반이다. 플라스틱 지구, 플라스틱 사회의 재앙이 분명해진 세상, 그러나 오늘도 점심 시간 거리의 횡단보도는 저마다 1회용 컵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찬다. 
by meditator 2018. 7. 2. 16:16

도시에 살아온,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리라. 어릴 적 살았던 동네를 다시 찾았지만, 지명만 같을 뿐 좁은 골목과 올망졸망하던 집들 대신 들어선 쭉쭉 뻗은 넓은 도로와 그 사이를 메운 빌딩, 아파트에 자신의 어린 시절 자체가 사라진 듯한 상실감. 그 황망함은 곧 도시를 고향으로 한 이들을 '실향민'처럼 느끼게 만든다. 압축 성장으로 발빠르게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그렇게 지난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발빠르게 지우며 21세기의 현재에 도달해 있다. 오래된 동네와 낡은 건물은 '철거'의 대상이었고, '개발'로 환산되는 '환금성' 대상일 뿐, 그곳에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6월 28일 방영된 ebs의 <다큐 시선- 수리수리 얍, 청계천 마이스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런 '개발 중심'의 도시 정책에 반문한다. 




다시 재생된 '세운 상가'
1967년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최초의 주상 복합 건물로 기공식을 한 '세운 상가'는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이는 상가'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답게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 한때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전설적인 명성을 날리며 '최첨단 전자기기 상가'의 메카로 그 역할을 다했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80년대 후반 컴퓨터 산업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용산 전자 상가'로 그 영광을 넘기고 '철거' 위기에 내몰렸었다. 2015년 서울시가 '다시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계천을 관통하여 세운 상가와 청계 상가, 대림 상가를 잇는 이노베이션에 착수했다. 그 결과 '현대적 토속'이라는 이노베이션의 주제에 걸맞는 옛 이름 세운 상가와 새 이름 'Makercity sewoon'이 공존하는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여전히 먼지가 쌓인 예전의 상가 공간이 한 편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반면, 세운 상가 상인들이 3d 프린터 작업으로 만든 로봇이 상징 조형물로 자리잡은 이노베이션된 상가에는 이동을 편리하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확 트인 연결 통로와 잘 꾸민 옥상이 새로운 세운 상가의 볼거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세운 상가' 이노베이션의 관건은 '사람들'이다. 여전히 그곳엔 몇 십년의 세월 동안 세운 상가를 지켜온 터줏대감 마이스터들이 있다. 탱크도 만들었다는 전설이 그저 전설이 아니라, 실제 탱크에 들어갈 부품을 은밀히 수리해준 적이 있다는 특허가 5개나 되는 61세의 차광수 장인, 고 백남준 아티스트의 숨은 손, 일흔이 넘은 미디어 아트 기술자 이장성 옹, 마치 환자를 돌보는 의사처럼 진공관 소리를 청진하는 역시나 일흔이 넘은 오디오 수리 기술자 이승근 옹, 한때는 남보다 앞선 기술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추억의 게임이 된 게임기의 장인 주승문 장인, 전선줄이 거미줄처럼 얽혀진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에서 '로봇'을 만들어 내고 수리하는 이천일 장인 등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이들 '마이스터'란 말이 손색이 없는, 지난 발전의 대한민국의 '기술사'가 곧 그들 존재 자체가 되는 이들 기술 장인들이 여전히 먼지 쌓인 상가의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이곳의 '생존'이 '세운 상가'의 존재 이유가 된다. 왜 '철거'가 아닌 '재생'이 도시에 필요한 지를 역설하는 것이다. 
'재미'를, 그리고 '보람'을 자신의 직업에 가장 큰 이유로 삼은 이들 노익장 장인들은 그 자신들의 신념에 맞춰 몇 십년 세월 이곳을 지켰고, 그들이 바로 '이노베이션'의 핵심이다. 여전히 그곳을 지키는 장인들은 '수리수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추억을 고쳐주는' 봉사에 나선다. 그들이 있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저 멀리 신안군의 오래된 로터리 tv가 아버지 대신 추억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낡은 tv처럼 그저 '낡은 건물'에 불과한 세운 상가도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29곳의 창업 공간, 큐브, 그곳에는 선배 장인들처럼, 그러나 선배 장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래 층의 오래된 기계 가공 공장 선배와 신기술을 가진 윗층의 후배의 '콜라보'가 가능한 것이다. 매 과정 새 툴을 가지고 작업을 하던 후배는 그저 단순한 도구 하나로 그 모든 과정을 제어하는 선배 장인에 혀를 내두르고, 아날로그한 선배의 경험은 후배의 하이엔트 테크놀로지와 만나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세대를 달리 할 뿐 '기술'에 대한 열정이다. 그 세대를 막론한 '열정'이야말로 '메이크 시티'가 된 세운 상가의 새로운 풍속도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생'된 도시의 공간이 있는 반면, 여전히 그 옆 청계 3,4지구는 '철거'의 몸삼을 앓고 있다. 정밀 기계 제작을 주로 하던 이곳은 철거 위기에 몰려 있다. 1960년대 이래 기계 공구 상가로 활성화되었던 공간이 2006년 재정비 유통 촉진 지구가 되면서 '도시 부적합' 대상이 되어 '철거'되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45년 동안 기곗밥을 먹던 김진화씨는 '대체 영업장'에 대한 대안 마련이 없는 철거는 그저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의 상실이라 강변한다.

삶의 터전이라는 항변과 보상비라는 팽팽한 맞대응은 결국 피해갈 수 없는 철거의 수순을 밟고 있는 청계 3,4지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도시 재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과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by meditator 2018. 6. 29.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