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다! 하면 엄마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진다. '학교'에 맡겨두었던, 아이들을, 아니 아이의 시간이 온전히 부모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방학이라고해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는 건 아니지만, 그 나머지 시간을 어쩌랴, 게다가 '방학'인데 아이랑 함께 어디 '좋은 곳'이라도 다녀와야지 하는 '숙제 아닌 숙제'까지 얹어지면 부담 백배이다. 

그 '좋은 곳'이 문제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했던 모 전직 대통령처럼 '안다'해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부모들은 눈에 불을 켜고 '교육적' 효과에 '재미'까지 더해진 좋은 곳을 '픽'하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아이들은 8월 12일 방영된 <sbs스페셜- 아이와 여행하는 법> 속 정종철 네 아이들처럼 부모들이 좋다 감탄하는 외국의 유수 여행지에 심드렁하다. 심지어 그 많은 시간과 비싼 비행기값을 들여 한 외국 여행에 아이들은 최한 38점을 매겼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서 sbs스페셜이 알아봤다. 부모들의 가장 과중한 방학 숙제, 아이와 여행하는 법에 대하여. 




부모는 고행이고 아이는 지루한  '여행'
아니 어쩌면 개그맨 정종철네 집처럼 부모들이 이리저리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기억을 못하는 정도라면 괜찮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경기도 고양시의 승우네 집은 여행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느라 부모들이 쩔쩔맨다. 도대체 왜 승우는 집을 떠나는 것이 싫을까?

겨우겨우 아이를 달래서 떠난 승우네 집, 하지만 여행지로 가는 긴 시간 줄곧 승우는 지루해 한다. 도착해서라고 다를까?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혹시나 아이들이 더위라도 먹을까, 아이들을 '그늘'로 피신시킨 부모들은 둘이서 익숙치 않은 텐트를 치느라 곤욕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노고(?)에 아랑곳없이 그늘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승우와 동생은 이곳이 심심할 뿐이다. 겨우겨우 이웃 텐트의 도움으로 텐트를 친 부모님, 하지만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니 다시 집에서 하던 보드 게임, 그러니 승우는 이 더운 곳보다는 장난감이 다 구비되어 있는 시원한 집이 그리울 밖에. 

다큐가 지적하는 건 바로 여행에 있어서 아이들의 자기 주도성이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황, 승우네 여행에서 '승우'의 주도성을 살려봤다. 부모들이 알아서 다 하던(?) 여정에 승우를 참여시킨 것이다. 아빠와 함께 쌀 씻는 거에서 부터 함께 하고, 개울에 가서 돌로 뚝을 쌓고, 이 '별거 아닌' 여정에 승우의 눈이 반짝인다. 몇 달 후에 승우가 쌓은 돌담을 보러 다시 오자는 아빠의 말에 승우가 기쁜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주도성 실험을 위해 정종철네 가족이 나섰다. 아들 한 명에, 딸 둘, 세 아이 모두 그동안 아빠와 엄마가 '기획'했던 여행에 심드렁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홋카이도의 여행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실험'은 시작됐다. 이전의 여행처럼 엄마가 '기획'한 여행과 아이들 스스로 여행지와 방식을 선택하는 두 가지 방법을 세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에서 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아빠와 함께 자신들이 마련한 여행지로 떠난 두 아이들, 떠나자마다 서로 싸울 것이라는 엄마의 장담과 달리, 아이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고자 했던 곳을 찾아 떠난다. 늘 모든 일에 적극성이라고는 없이 심드렁했던 아이가 맞나 싶게 처음엔 길을 물어보기조차 머뭇대던 아이들이 낯선 이방의 언어로 길을 물어보는 걸 주저하지 않게 되었고, 아마도 엄마, 아빠가 그랬다면 진즉에 지쳐나가 떨어졌을  어긋난 길찾기에서 끈기를 가지고 끝내 자신이 가고자 하던 곳을 향한다.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이라서였을까? 힘들게 찾은 오르골 박물관에서 울려퍼지는 오르골 소리에 '아름답다'며 눈물까지 글썽이고, 알고 봤더니 문어의 빨판이 근육이라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그곳의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소중한 추억으로 빨아들인다. 반면, 동생들과 달리 엄마와 함께 하던대로 쇼핑에,  좋다던 명승지를 따라나선 누나는 금새 지친다. 심지어 하루 종일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마지막에 동생들과 만난 것이라니! 다큐는 말한다. 어디를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이 어느 곳이던,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재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정이어야 한다고. 

자기 주도성도 좋지만, 부모들에게 늘 고민은 매번 방학마다 떠나는 여정이 좀 더 아이에게 보탬이 되고 새로운 건 없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의 고민에 대해 다큐는 다양한 여행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런 여행은 어때? 
다큐의 시작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석달 살기'에 도전한 가족. 평범한 직장인인 아빠, 한국에서의 아빠는 직장 일에 밀려 아이들과의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짧은 휴가 대신 태국으로 잠시 살러온 가족, 원룸의 좁은 방에 부부와 두 아이가 복닦거리는 공간, 하지만 아이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그저 또래와 같은 평범한 도시의 아이였던 누리, 하지만 코끼리 등 온갖 자연 환경이 풍부하게 제공되는 태국에서 석달을 보내는 동안 누리는 장수 풍뎅이 애벌레를 이쁘다고 여기게 된 새로운 '재미'을 찾았다. 

내 아이와 여행하는 22가지 방법을 <이런 여행 어때>로 펴낸 김동욱 작가는 종종 딸과 함께 길을 떠난다. 남들이 다가는 제주도, 하지만 김동욱 부녀의 여정은 다르다. '덤블 숲'이라는 뜻의 곧자왈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아빠, 그 숲에서 아빠와 딸은 텐트를 펴고 밤을 기다린다. 낮에는 볼수 없었던 반딧불이가 하나둘씩 빛을 발하는 시간, 그 시간에 온전히 빠져드는 부녀, 딸은 그저 반딧불이의 발견이 아니라, 낮에도 존재했던 것들이 밤이 되어 빛나는 그 '존재'의 발견에 대해 '철학적 해석'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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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씨는 말한다. 아빠의 기획이 아니라, '아빠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소리도 사냥할 수 있어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답한 여행일 뿐이라고. '소리를 사냥하기 위해 길을 나선 부녀, 눈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가 새로운 제주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질문에 부모의 '첨삭'이 더해진 여행은 그때서야 비로소 '종합 선물세트'로 완성된다. 

전문가는 말한다. 여행은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며 뇌를 활성화시키는 아이에게 생각 꾸러미를 풍성하게 해주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 꾸러미가 누구의 '주도'인가에 따라, '선물'이 될 수도, 그저 '지겨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과정을 통해 '뇌'가 완벽하게 활성화되는 시간, 그 시간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려주기를 거기에 그저 부모는 거들기를  다큐는 권한다. 방학 마다 줄줄이 사탕처럼 여행지를 '선물'하기에 급급했던 부모들에게 다큐는 새로운 여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또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집에서 서로 말 한 마디 섞지 않고 소원했던 아빠 강성민씨와 연지가 짧은 여행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를 풀어낸 것처럼 '관계'의 변환, 그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를 갈까 고민하기 보다, 어떻게 시간을 함께 할 것인가 아이와 함께 의논해 보는 것이 먼저다. 

by meditator 2018. 8. 13.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