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축구의 나라라는 건 이른바 '축알못'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스페인에서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외인 구단'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면?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실제 이루어 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스페인 7부 리그 소속인 꿈 fc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기한 스페인의 외인구단을 이영표 선수가 소개한다. 

7부 리그? 3부 리그까지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한국 축구가 인프라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7부 리그라니, 하지만 축구 선수만 80만 명 우리나라의 40배인 스페인은 7부 리그까지 지역 주민의 호응을 받으며 활성화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축구'하면 유명한 지역이 카스티야 라만차, 그곳의 작은 도시 이에스까스의 7부 리그 팀 꿈 fc는 현재 7부 리그 1위를 질주 중이다. 

 

 

꿈을 찾아 스페인으로 온 한국인들 
그런데 이 이에스까스의 Qum(꿈) fc의 구성이 선수 19면 전원이 한국인이다. 감독과 코치진만 스페인이다.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운동장, 페드로 벨라스코 감독은 말한다. 선수들의 강점이 한국어, 상대가 못알아 들으니 시합 도중 얼마든지 서로 소통하라고. 이렇듯 전원 한국인인 이들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를 따라 만리타국 스페인까지 왔다. 

2017년 여름 올라온 sns 공지, '꿈을 이루고 싶은 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분'이란 문구 하나로 모여든 선수들, 구혁균 선수는 치킨 집 주방에서 닭을 튀기다 왔다. 고현철 선수는 브라질 유소년 리그 출신이다. 21살의 원승현은 신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과 꿈 fc의 두 길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26살의 구성은은 축구를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이 없다. 25살의 허준호는 프로로 활동했지만 경기에 나서본 적이 없다. 한국이라면 애초에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을 법한 사람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거미줄을 뚫기조차 힘든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인정해준 이역만리 스페인 이에스까스로 날아와 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무모한 도전을 벌인 사람은 누굴까?  선수들이 운동하는 곳 한 켠의 작은 방, 태극기가 덩그러니 달린 그곳에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이는 46살의 김대호 씨, 그는 폭발물 전문가로 한때 토목 현장을 누볐던 사람이다. 축구라고는 남들 다 그렇듯이 국가 대표 경기가 보던, 알고 있는 축구 상식이라 봐야 '오프 사이드' 정도였던 그가 이 구단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스페인 유소년 1부 리그에서 활약 중인 아들, 스페인에서는 18세 이하 미성년의 경우 스페인의 체류 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케어를 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회계사인 아내 대신 아들을 케어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온 김대호 씨는, 아들과 같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푼 꿈을 안고 스페인에 왔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의 적응 문제로 자신의 꿈조차 접게 되는 사례를 빈번하게 접하게 된다. 같은 한국인들끼리 어울려 지내면 '적응'이 좀 더 쉽지 않을까라고 해법을 떠올리게 된 김대오씨, 딸의 평가처럼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무모했던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낯선 스페인 땅에 한국인 외인 구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의 노후 자금은 이제 선수들의 용돈과 숙식비, 훈련비가 되고 있는 중이다. 

 

 

전설의 시작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캐치프레이드를 내건 꿈fc는 한국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똘똘 뭉친, 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던 19명의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왔고 함께 합숙하며 지금 그들에게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얼차려 등 군기 잡기에 익숙했던 선수들, 납조끼를 입고 새벽부터 구보를 했던 선수들, 중앙 수비수로 칭찬보다는 욕 먹는 게 일상이었더 선수들,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던 선수들은, 스페인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축구는 선수들의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구랑 공도 선수들도 챙겨주며 선수들을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해주는  감독과 코치진의 한국과는 다른 '케어'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갔다.

그저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스페인 어학원도 빠질 수 없는 이들의 일과다, 스페인 유소년 아이들을 만나 그들이 축구를 매개로 꿈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접하기도 한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한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다. 맘껏 드리블하다. 공을 빼앗기면 다시 뺏으면 된다. 한 골을 먹으면 한 골을 넣으면 된다'는 축구란 꿈을 찾아온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축구만을 바라보는 꿈은 위험하다며 인생에는 사랑도, 가족도 여러 가지 다른 꿈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런 새로운 사고 방식들이 그간 이들을 짖눌렀던 '축구', 혹은 '꿈'에 대한 강압적 의식을 해제하자 이들은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나날이 승승장구, 7부 리그 기간 동안 안타깝게도 마지막 경기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진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스페인의 공포의 외인 구단이다. 아직도 인조 잔디 구장용 축구화가 따로 없어 가혹하게 실격을 당하지만 원정 경기의 일방적 홈팀 응원이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7부 리그 1,2위를 다투고 6부 리그 승격을 결정지었다. 4부 리그의 팀들이 '스타웃'할 인재를 물색하는 팀, 이제는 이에스까스 사람 누구나 알아보고 격려 해주는 팀, '예의 바르다'며 선수도 동네 사람들도 칭찬해 주는 팀, 자칭 '국뽕' 김대호 구단주의 말처럼 이곳 스페인의 한국 대표팀인 이들은 현재 승승장구, 4부 리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스페인 국왕 컵 참가를 팀의 목표가 어쩌면 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뛰는 19명 선수들이 일궈내고 있는 '기적'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왜 젊은이들의 꿈이 여의치 않는가를 점검해 주는 시간이 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돈과 학벌과 지연과 인맥이 없으면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저 단순한 문구가 왜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작은 도시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9. 3. 19. 14:28

3.1운동,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독립 운동에 대한 조명과 환기가 융성하다. 이와 관련된 영화가 제작되고 이 영화들이 박스 오피스의 상위권을 점유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받고, 다양한 사례의 다큐들이 방영되었다. kbs에서는 비록 5분 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 유공자들을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물들이 알리는 100부작의 야심찬 기획을 실행 중이다. 이렇게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 '독립운동', 과연 이런 행사를 넘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ebs 다큐 시선- 100년만에 부르는 노래>가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적막한 가을 강산 야월에
숨어 울며 날아가는 저 기러기야
북방에 소식을 네가 아느냐
여기서 저기까지 몇 리 되는지
아차차 가슴 답답 이내 신세야
 
만주 딸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해외에 널려있는 백두산 하에
나의 일가 동포형제 저곳 있건만
나는 소식 몰라 답답하구나
 
만주 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셔라 왜놈들 죽여라.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정작 안중근 의사가 만드셔서 회자되어 일제가 치안법 위반의 금지곡으로 통제했다던 노래 <옥중가>, 당시 사람들이 안의사를 기리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모른다. 감옥에 갇힌 답답한 마음으로 시작하여 전투적 항일 의지로 마무리되는 이 노래는 4분의 2박자의 민요풍의 씩씩한 리듬을 가졌다. 

 

 

항일 음악 330곡, 그러나 교과서엔 단 한 곡
이 노래가 실린 곳은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 음악 330곡집>이다.  그 시작은 2018년에 개최된 <2018 항일 음악회-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 독립군 아리랑>에서 였다. 이 음악회에 참석하게 된 <다큐 시선>의 제작진들은 왜 이런 노래들을 몰랐을까 싶게 음악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항일 음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것이 평생에 걸쳐 항일 음악을 발굴하다 돌아가신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 음악 330곡집>이다. 

안중근 의사가 만드신 <옥중가>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무지한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제작진의 탐구는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배우면서 자라는가로 귀결된다. 과연 이런 항일 음악들이 우리 교과서에는 있는가라는 의구심에서이다. 

음악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바 있던 교원대 민경훈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찾아본 2009년, 2015년 개정 음악 교과서,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제명의 '그집앞', '희망의 나라로'가 실려있다. 최근 3.1운동 기념식장은 물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불려 논란이 된 대표적 친일 음악 '희망의 나라로', 하지만 기념식에서도 여전히 사용되듯,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 밝고 경쾌한 노래가 일제 말기 친일에 앞장섰던 현제명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에서 제 2의 국가로 불려지는 '우미 유카바(바다에 가면)'와 비슷한 정서의 노래(민족 문제 연구소)라는 것을 알 수 없다. 

현제명만이 아니다. 홍난파, 이흥렬, 조두남 등 친일 인명 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의 곡이 9곡이나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실려있다. 아니 친일 음악가의 곡만이 아니다. 다양한 음악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각국의 민요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 거기에 더해 조용필의 곡도, 장범준의 '벚꽃 엔딩' 등 유행가까지 풍성하게 실린 교과서, 하지만, 그런 교과서에 항일 음악은 2009, 2015년 음악 교과서에 '독립군가' 등 단 2곡 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과서를 담당하고 있는 측에서는 현 '검인정' 교과서의 딜레마를 든다. 즉 교과서에 실리는 음악에 대해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지침, 혹은 통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제도적 한계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항일 음악보다는 친일 음악을 즐겨이, 심지어 국가적 행사에서도 듣고 연주하고 부르는 현실에 놓여있다. 

 

 

애국가 대신 국기가? 
멀리 갈 것이 뭐 있는가. 전국민이 제창하는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가 대표적인 친일 음악인에, 최근 나치 협조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이런 애국가를 계속 불러야 하는가라는 딜레마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광복군 제 2지대에서 불려졌던 '국기가'가 눈길을 끈다. 

우리 국기 높이 날리는 곳에
삼천만의 정성 쇠같이 뭉쳐
맹세하네 굳게 태극기 앞에 
빛내려고 길게 배달의 역사  -국기가, 한형석


이 노래를 만드신 분은 한형석 선생이다. 독립군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신화 예술대를 졸업하신 선생은 전장의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셨다. 1940년 당시의 전시적 상황에 대한 현실을 고발하고 공동체적 결의를 다지고자 우리나라 최고 가극인 '아리랑'을 만드셨던 분, 연기에서 부터 감독까지 1인 7역을 두루 해내시며 공연했던 가극 아리랑은 20여회의 공연으로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수익금 4100원을 모금했고, 이는 광복군 등의 군자금으로 쓰였다. 한형석 선생이 만드신 곡들은 '우리는 대한의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는 80년대 운동가로도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항일 음악 중 유일하게 2003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압록강 독립군가를 비롯하여, '여명의 노래' 등 다수의 곡들이 있다. 

그러나 한형석 선생 같은 분의 항일 음악이 지금 우리 곁에서 즐겨이 불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저 현재의 교과서를 만드는 체제의 맹점때문만은 아니다. 스스로 광복군 제 7대에 소속 oss훈련까지 받았던 항일 운동가였지만, 임시 정부의 일원으로 해방된 고국에서 환영은 커녕,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기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음악을 묻고, 중국어를 가르치며 전쟁 고아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 나머지 일생을 바치셨다. 심지어 '한유한'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셨던 그의 기록은 묻혀져 중국의 한 교수가 그의 음악과 그에 대한 발굴을 통해서 뒤늦게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 역사의 격동 속에 사라져간 항일 음악가는 또 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한 정율성 선생이 그 분이다. 팔로군 행진곡으로 알려진 중국의 두 번째 국가와도 같은 곡을 만든 정율성 선생은 3대 중국 혁명 음악가이자, 중국의 100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곧 사상으로 인해 얼룩진 우리 해방 후 역사의 비극 그 자체이다. 4남매가 모두 독립 운동에 헌신했던 집안, 그 중에서도 좌파 계열의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선생은 마오쩌뚱의 군대에서 활약하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연안송','중국 청년 격동가' 등 항일 음악을 만드셨다. 

해방 후 남한으로 귀국하여 조용히 살아가셨던 한형석 선생과 달리, 그가 소속된 연안파 동지들과 북한으로 넘어가셨던 선생, 하지만 연안파는 곧 북한 정권 수립 과정에서 숙청되고 이를 피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셨지만 선생을 기다렸던 건 '문화 혁명', 결국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발 붙일 곳이 없던 선생은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운 강남(강남제비) 가사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하늘이 푸르면 나가 일하고
별 아래 모이면 노래 부르니
이 나라 이름이 강남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 가는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 발목 상한지 오래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그리운 강남, 안기영 


또 다른 선택도 있다. 일제 시대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일제 말기 일본의 극심해 지는 친일 강권에 친일을 피해 절필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칩거하셨던 '그리운 강남'의 안기영 선생의 노래는 장사익 씨의 '아리랑'으로 겨우 돌아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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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을 맞으러 가자/생사적 운명의 판가리로/나가자 나가자 굳게 뭉치여/원쑤를 소탕하러 나가자//(후렴)총칼을 메고 결전의 길로/다 앞으로 동지들아/독립의 기발은 우리 앞에 날린다/다 앞으로 동무들아//무거운 쇠줄을 풀어헤치고/뼈속에 사무친 분을 풀자/삼천만 동포여 모두 뭉치자/승리는 우리를 재촉한다//(후렴).'


조선 의용대의 대표 군가였던 '최후의 결전'은 어떤가? 의열단에 이어 조선 의용대에게 활약하다 태항산 전투에서 돌아가신 윤세주 열사가 폴란드 민요 바르샤마 노래에 가사를 입힌 곡이다. 

우리가 몰랐던 항일 음악들, 평생에 걸쳐, 혹은 자신의 천직을 때려치우고서까지 지키고 발굴하여 겨우 명맥을 이어갔던 항일 음악들, 이제 3.1운동의 100주년, 우리가 할 일은 이 음악들이 다시 회자되고, 불리울 수 있으며,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음악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조용필, 장범준과 함께 이런 음악들도 '버젓이' 실릴 수 있는 음악 교과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9. 3. 15. 13:18

대한민국 입시 교육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던 jtbc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 하지만 이 드라마의 효과는 아이를 초등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학부모들이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입시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거기서 등장한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우리의 학부모들, 그 현실은 이제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이어 아빠들의 '바짓바람'을 불러온다. 
3월 10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바람'에 대해 다뤄본다. 

 

 

아빠들의 바짓바람 
안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김현창 씨, 늦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자녀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잠시 그 역시 고된 치과 일을 마치고 온 몸을 이끌고 아이 방 책상 맞은 편에 앉는다. 그동안 내주었던 중국어 과제를 시험하는 아빠, 곧잘 대답하는 큰 아이,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 미소는 역시나 아빠가 내준 일본어를 읽지도 못하는 작은 아들로 인해 곧 지워진다. 

한때는 아이의 학업에서 아빠가 할 일은 '무관심'이란 정의가 유행했었다. 엄마가 맡아서 하는 아이의 공부, 그저 아빠는 atm 노릇만 잘 하며, 가급적 아이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잔소리는 커녕 말도 되도록이면 적게 시키는 것이 아빠 노릇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웬걸 아빠들이 달라졌다. 입시 교육 설명회에 어떤 엄마들보다 눈을 빛내며 간간히 동영상까지 촬영하며 열성적으로 집중하는 아빠들의 모습을 찾는게 더는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와 함께 마주 앉아서 모르는 걸 가르쳐 주는 걸 넘어, 김주영 쓰앵님처럼 아이의 학업 스케줄을 관리한다. 심지어 퇴근 후 한 잔 술은 옛 말, 아이들 공부에 관심있는 아빠들끼리 차를 마시며 정보를 나눈다. 

한때 유행하던 스칸디 대디, 과거의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 방법을 지양하고,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인성, 책임, 정서 등에 중점을 두고 교육했던 새로운 교육 양식의 아버지 유형 들, 가족 중심의 문화가 대두되며 어릴 적 아이와 놀아주고 캠핑도 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냈던 아버지들이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레 입시 교육에 동참하게 되는데, 아이가 커감에 따라 입시 교육에 총력을 다하는 우리 나라 가족의 특성상 아이에 관심을 가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아이의 입시 교육 전선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아빠들이 지금의 입시 위주 교육 방향을 강력하게 추종하게 되면서 이제 '바짓 바람' 아빠들이 되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를 살아가는 아빠들
그런 '바짓 바람 아빠'들의 <스카이 캐슬> 시청 소감은 그래서 남다르다. 드라마 속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거침없이 '차민혁 교수'를 꼽는다. 세상을 계급에 따라 나뉘는 피라미드로 표현한 그의 정의에 공감한다. 아빠들이 살아본 세상은 바로 차교수의 정의 그대로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란다. 그러니, 차교수처럼 아이들에게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차지하도록 독려할 수 밖에 없다고. 

사회에 잘 적응하고, 좋은 직업을 얻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아빠, 지금 고생이 그래도 적게 고생하는 거라 생각하는 아빠,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며 사는게 벼랑 끝에 선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아빠, 사회 생활을 해보니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 주의를 '절감'하고 보니 그 학벌 에스컬레이션의 보증 수표를 주고싶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아빠. 가슴에 사표를 품고 사는 삶, 아이들에게만은 이 고단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아빠. 

박재원 교육 전문가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 바람의 근원을 그저 계층 상승 욕구가 아니라 계층 하강 공포, 낙오에 대한 불안감에서 찾는다. 각자가 느꼈던 낙오 공포에 대한 체감도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매달리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 낙오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그 '안정된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올려놓기 위해 아빠들은 어떤 사다리라도 구해주고픈 마음이 '바짓 바람'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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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쉽지만 그 어려운 말
하지만 아빠 맘처럼 될까? 쉽지 않다. 김현창 씨의 경우 아이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미 좀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빡세게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 늦은 시간 붙들고 앉아 공부를 시킨다. 학습 스케줄을 짠다 1년 정도 아빠 스케줄 대로 해봤는데 외려 아이들과의 갈등만 깊어진 듯하다. 아빠는 공부를 시킨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공부를 안한다고 화만 내는 아빠로 받아들인다. 엄마는 아이들이 충분히 열심히 한다지만 아빠 눈에는 영 아니다. 그러니 자꾸 잔소리만 늘어나고. 아이들을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할 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고, 바짓바람의 딜레마다. 

혹시 아빠가 공부하는 노하우를 잘 몰라서일까? 두 아이를 각각 포항 공대와 서울대를 보낸 아빠 배은철씨, 초등 3,4학년 때부터 아빠 은행을 만들어 은행의 역할과 복리 계산법을 가르치는 등 남달랐던 공부 비법을 가진 아빠, 하지만 정작 그가 말하는 건 '공부'보다 중요한 게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 그리고 아이 스스로 자기 통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믿어줘야 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못하게 하기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이 스스로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유도해줘 그걸로 영재고를 갈 수 있게 하고, 때로는 학교를 가기 싫다는 아이를 무조건 존중해 스스로 학교를 다녀야 할 이유를 찾도록 만들었다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에게 공부 잘했니 대신 뭐하고 놀았니?를 물었다던 아빠?

이 아빠의 경우는 특별한 것일까? 160명의 서울대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조사를 해봤다. 10명의 학생 중 8명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갈등을 겪지 않고 심리적 안정을 줬다고 답했다. 또 77.2%가 성적과 입시에 대해 너그럽고 여유있는 태도롤 일관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아빠는 '자상하고, 수시로 아재 개그를 하며 아이들을 웃기려고 노력했으며,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들이 애초에 공부를 잘해서 였을까? 하지만 서울대 생이라고 다 처음부터 공부를 잘 하던 건 아니다. 가출을 밥먹듯 하기도 하고, 재수를 했으며, 내신 4,5등급이던 시절이 있거나, 애초에 대학 갈 생각이 없었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아빠들은 일관되게 '공부를 안해도 되니 뭘 하고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보라'는 식으로 독려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상한 아빠의 독력을 받은 서울대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자기 주도 학습 전문가'라는 것이다. 즉 아빠들의 따뜻한 울타리 덕에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하늘'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대 아빠들이 그토록 원하는 '공부'만이 답일까? 교육 전문가 박재원 씨 아들은 일찌기 우리 나라 교육 제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아버지가 믿어준 아들은 sky에 간 아이들이 부럽지 않다는 북유럽식 목조 주택을 짓는 목수가 되었다. 아빠는 말한다. 떄로는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평생을 잘 지내야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떠올리며 아이가 스스로 경험을 통해 체득해 나가기를 기다려 줬다고. 

교육학자인 신종호 교수는 말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에는 '죄송하다, 미안하다'가 많다고. 이미 아이들도 체감하고 있는 괜찮지 않은 세상, 화려한 지옥에 갇힌 아이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건, 이미 자신들을 위해 많은 것을 주고 있어 미안한 부모들이 먼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큐가 돌아와 던지는 질문은 아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이다. 스스로 사다리에서 떨어질 불안에 떠는 부모가 과연 아이에게 진심으로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괜찮지 않은 세상에서 어쩌면 어른들이 먼저 괜찮아지는 게 진짜 '바짓바람'의 출발점이 아닐까. <스카이 캐슬>의 결말처럼 말이다. 

by meditator 2019. 3. 11. 15:17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조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이다. 흑인들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동등하게 타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인권'을 향해 지난한 과정을 걸어왔듯이, 여성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접받기 위해 111년의 역사가 필요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엔은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정했다. 

 

 

mbc스페셜은 이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의 대가인 윤석남을 이 시대 여성의 워너비인 모델 한혜진이 찾았다.

1939년 만주 봉천 출생, 팔순이 넘었다.  팔순이 넘은 어르신하면 떠오르는 모습들, 하지만 그 상투적인 예상은 한혜진을 맞는 윤석남 화가의 모습에서 대번에 깨어진다. 히끗히끗하지만 자유분방하게 휘날리는 퍼머넌트된 커트, 검버섯은 피었지만 팔순이 넘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생기가 넘치는 표정, 우리가 연상하는 '노인 패션'과는 다른 조거 팬츠에 패딩 조끼 등등 활력넘치는 화가의 작업복, 그리고 툭툭 마디가 불거져 나왔지만 웬만한 목수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두툼하고 단단한 그녀의 손. 한혜진을 맞이한 건 당신은 총기가 허락되는 한이라 하지만 여전히 ing 중인 작업의 세계 속에 흠뻑 빠져있는 한 예술가의 모습이다. 

 

 
핑크를 찢다.
3남3녀의 셋 째,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싶어서 석남이라 지어준 이름, 하지만 그 아버지는 가장의 자리를 다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 나이 서른 아홉, 막내가 겨우 두 살이었다. 집안을 어렵게 이끌어간 어머니를 보며 석남은 학교도 마다하고 가정일을 돌보려 했다. 하지만 학교는 마쳐야 고집하셨던 어머니,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녀는, 그녀 또래의 여성들처럼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를 키웠다. 그렇게 마흔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그림, 꽃과 풍경 대신 그녀는 어머니와 자기 주변의 여성들을 그렸다. 그저 그게 눈에 들어왔다던 윤석남, 그렇게 그린 그림이 아이 키우랴, 돈 벌려, 살림하랴 경황이 없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손이 열 개라도'였다. 그렇게 윤석남의 여성주의 화풍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대표작에는 핑크색 소파가 있다. 화가가 되기 전 그녀인듯한 화려한 자개로 장식된 여성이 앉아있는 소파, 하지만 그 형광빛 화려한 핑크색 소파 한 켠에는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는 소파, 하지만 그 소파에 앉을 때마다 그녀의 삶은 그녀에게 가시방석이 되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삶이지만 이게 과연 나의 삶인가 고민하던 그녀는 그 화려한 소파를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윤석남은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는다. 윤석남의 여성주의는 곧 그녀의 삶이었다. 

남편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들고 화방에 가서 화구를 샀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제부터 그림을 그릴 건데 그게 싫으면 이혼을 하라 선언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에 12시간 씩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를 넘어선 화가의 길을 걸었다. 3년만의 개인전 '추상화풍'이 지배하던 당시의 화단에서 '여성'을 그린 그녀의 화풍은 주목을 받았다. 그림을 그리던 것을 넘어 그녀는 '나무'를 활용하여 설치 미술 작업을 시작했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 등 해외 미술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유화로 시작하여 나무, 드로잉, 설치 미술까지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얼개만 남기고 종횡무진 다양한 시도를 했던 윤석남 화백, 그런 그런 그녀의 활동이 인정받아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이중섭 미술상과 국무총리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성주의 화가로서 
하지만 그저 자기 주변의 여성, 어머니, 그리고 자기 자신에 천착해 있지 않았다. 이매창, 허난설헌, 김만덕 등 재능은 있었지만 뜻을 펼치지 못한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이 그녀 그림 속에서 살아난다. 

페니미즘 작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는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 '명예'에 대해 그녀가 고심한 결과물이다. 또한 사회적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에 화두로 드러나기 이전에 관심을 기울여 나눔의 집이 만들어 질 당시 자신의 설치 작품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을 넘어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서 유기견 1025마리를 나무에 아로새기느라 허리 수술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늘 여전히 그녀는 고민한다. 혹시 자신이 세상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 만족에 빠진 미친 사람들'이라며 자신과 같은 예술가를 허심탄회하게 정의내린 윤석남 화가,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마무리 짓는다. '어쨋든 난 최선을 다했다'고. 

 

 

이제 팔순을 넘어선 작가는 다시 40년 동안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우리의 채색화를 그리느라 자신의 자화상으로 연습만 1000장을 넘게 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원처럼 매일 일정한 시각 출근해서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하는 일상. 주변에서는 하던대로 예술적 감흥이 더 큰 설치 작품을 하는게 작가의 명성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느냐며 새로운 시도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만, 그녀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생애에 기억이 남는 관계들을 남기고 싶다. 우리의 전통 그림 중 여성의 초상화가 없다는 사명감도 있다. 

그렇게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의 삶을 예술로 알려, 그 자신이 여성의 대표가 된 윤석남의 이야기는 또 다른 여성, 그리고 여성의 딸인 한혜진이라는 대상을 통해 친근하게 전달된다. 

또한 그렇게 윤석남이란 화가를 소개하는 걸 넘어, 윤석남이란 화가의 작품을 들고 찾아가는 전시회를 마련하여 세상과 소통을 도모한다. 

 

 

그녀가 그렸던 어머니의 이야기들은 전북 남원 구룡마을을 찾아들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미술 관람, 하지만 할머니들은 곧 '내 모습같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포항 공대 미술관을 '개판'으로 만든 1025마리의 '사람과 사람없이' 작품들은 고상한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대상이기에, 그들의 눈빛을 통해 곧 사람들로 하여금 버려진 생명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나무에 새겨진 서로 다른 표정의 여성들, '빛의 파종'은 청주 여성을 찾아, 이제 곧 사회에 나서야 하지만 도전보다는 제약과 한계에 고민이 많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는다. 

111주년을 맞이한 여성의 날, 선언이나 캐치프레이드, 담론이 아니라, 삶에서 부터 시작된 '여성주의'를 우리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 화가를 통해 설득한다. 

by meditator 2019. 3. 5. 15:57

3.1 운동 100주년이다. 유관순 열사, 그리고 일제 시대 인물인 엄복동을 독립 운동과 연관시킨 영화 등이 만들어지고 개봉되는가 하면, 방송사에서도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다큐 및 작품들이 100년의 그날을 기념하고자 한다. 100년 전 그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총칼을 뚫고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2019년의 우리, 오늘의 우리가 있도록 만들어 준 선열들의 뜨거운 독립에의 의지와 열망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동시에 과연 우리가 100년 전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되돌아 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야 당연히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만세를 부르고 독립운동을 하겠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켜간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깨닫게 되는 만큼, 3.1운동 100주년에 신념을 지켰던 조상들의 삶이 더욱 고귀하게 다가온다. 지난 2월 25일과 3월 1일 양일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된  <3.1주년 100주년 특집 마지막 무관 생도들 2부작>은 바로 이런 반추로 부터 시작된다. 대한 제국 마지막 무관 생도였던 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을 통해 독립 운동의 삶을 살았던 선열들의 신념어린 삶을 역설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이 다큐는 이원규 씨의 마지막 무관생도들를 기반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피를 나눈 맹세- 첫 번째 엇갈림 
1896년 대한제국은 무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대한 제국 육군 무관학교를 만들었다. 이응준, 홍사익, 지청천... 이들이 바로 무관학교의 마지막 생도들이다. 1909년 위태로워져가는 나라, 무관학교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대한 제국 무관 학교는 문을 닫게 되고 무관 생도들 중 50 명이 일본의 육군 중앙 유년 학교로 보내졌다. 그리고 1910년 강제 합병 소식이 전해지고, 일본에 남겨진 무관 생도들은 아오야마 묘지에 모였다.

다함께 천황궁 앞에서 자결하자며 울분을 토하며 이응준 등이 무조건 싸우자며 결의를 다지는데, 홍사익은 때를 기다리자 했고, 지청천 역시 홍사익의 의견에 따라 일본군과 싸우려면 지휘관이 필요하다며 이곳에서 일본의 선진 지식을 습득하며 조국이 부를 때까지 기다리자 했다. 이들은 결의를 다지기 위해 다시 육사 23기 였던 김경천의 주도 아래 '우리 민족이 떨쳐 일어나는 날 다 함께 모이자며'요코하마 한 술집에 모여 서로의 피를 나눈 술잔을 나눠 마시며 피의 맹세를 했다. 이들이 이 때 정한 암호는 '요코하마'

1919년 온 민족이 떨쳐 일어난 3.1 운동 김경천은 드디어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그래서 피를 나눈 동지들에게 '요코하마'라는 단어가 들어간 전보를 보내고. 지청천이 합류했다. 육군 현역 장교였던 두 사람의 탈출에 일제는 체포망을 좁혀갔지만 두 사람은 그 허를 찔러 무사히 조국을 탈출하여 서간도의 신흥 무관학교로 갔다. 

반면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이응준과 홍사익, 당시 홍사익은 일본 육사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고, 이응준 역시 홍사익과 다르지 않은 선택을 했다. 이렇게 피를 나눈 맹세의 길은 서로 갈라졌다.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웁시다.
싸우다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는 이 넓은 만주 벌판을 베게 삼아 
죽을 것을 맹세합니다. 
                            지청천 


 

 
독립군과 그 독립군을 진압하는 장교로 마주선 동지들 
1919년 6월 이회영 등이 사재를 털어 만든 무장 항일 투쟁 교육 기관 신흥 무관 학교, 여기에 육군 현역 장교 출신이 김경천, 지청천 두 사람의 합류로 독립 투쟁의 기세는 불타올랐다. 

신흥 무관 학교 출신으로 북간도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신동천과 함께 김경천, 지청천은  '남만 삼천'이라 일컬어졌으며 이들의 합류로 독립 투쟁은 한 단계 승화된다. 일본군을 나오며 군 교재와 지도를 갖춰 나온 지청천 덕분에 현대적 군사 지식과 지도를 얻게 되었으며 이런 전문적 군사 지식에 따라 신흥 무관 학교는 대한 제국 무관 학교의 편제에 따라 14시간 훈련과 학과를 병행하는 체계를 갖춰 나갔다. 

이들 졸업생은 대부분 만주 지역 독립군 부대의 교관과 장교로 활약했고 이들이 이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핵심이 되었다. 이후 이들 '남만 삼천'은 지청천은 서간도로, 김경천은 러시아 연해주로, 신동헌은 북간도로 흩어져 독립 운동의 외연을 넓혀가며 각 지역 독립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 홍사익과 이응준은 일본군이 되었다. 홍사익은 만주 사변에서 공을 세우고 관동군 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가 접한 조선 항일 조직의 서류에서 그는 한때 동지였던 지청천의 이름을 발견했다. 또한 어느날 그에게 온 인편을 통해 지청천은 '친구여 요코하마를 기억하는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라'며 그의 투항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일본군으로 승승장구하던 홍사익은 '친구여 요코하마를 기억하는 이는 더는 내가 아니네'라며 지청천의 청을 거절한다. 

장부가 응당 취하고자 하는 건
만고에 떨칠 이름인데
어찌 하찮은 망아지 구유에 기대어 .....
풍운은 아직 그치지 않고 눈보라 휘날리니
어찌 큰 민족을 세울 용사를 얻을 수 있으랴     -김경천 <경천아일록> 

 

 
소비에트 혁명으로 인한 비극적 생애- 김경천
대대로 무관을 배출한 집안, 사직동 일대에 1000 여평의 집터를 가진 집안, 하지만 가장 김경천이 독립을 위해 조국을 떠나고 남은 가솔들은 그 가옥을 처분하여 근근히 살아가야만 했다. 

러시아 연해주로 온 김경천은 수청 고려 의용대를 만들어 우리 이주민들은 물론 그 지역 토착민들을 괴롭히는 그 지역 마적들을 토벌하는 등 혁혁한 성과로 '백마탄 김장군'으로 칭송받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숨쉬기 조차 힘든 그곳의 사정'을  <경천아일록>으로 남겨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비견되는 전쟁 기록의 산 증인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강대국의 정세에 휩쓸리는 우리의 운명이 그렇듯 김경천 장군의 생애 역시 그 비극에서 비껴서지 못했다.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숙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연해주의 고려인 사회 지식인과 지도층 인사들 다수가 체포되었으며, 김경천 장군 역시 블라디보스톡에서 체포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영향에서 조선이을 분리하고자 한 소련의 정책에 따라 18만 명의 조선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는 과정에서 김경천 장군 역시 카자흐스탄의 집단 농장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하지만 집단 농장 이주도 잠시, 1939년 다시 '인민의 적'이란 명목으로 카라간다 정치범 수용소에 8년 금고형에 처해졌고,  이어 모스크바로, 다시 시베리아 코틀러스 강제 수용소로 보내져 철도 건설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백마탄 조선의 나폴레옹이라 불렸던 독립의 영웅 김경천 장군은 그렇게 소비에트 혁명의 희생자가 되어  1942년 러시아 북부 철도 부설 수용소 병원에서 병명은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심장 질환으로, 하지만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친일의 결말 - 이응준과 홍사익 
일본군 고위장교가 된 이응준은 가야마 다카토시로 창씨 개명을 하고 매일 신보 등의 강연회에서 '충성'을 강변하는 등 일제에 앞장선다. 용산 조선군 사령부 대좌까지 지내던 중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원산항 병참 책임자로 있던 이응준은 '조선인으로 돌아간다'며 원산을 탈출한다. 

하지만 미군정청은 해방 후 칩거하던 그에게  조선 임시 군사 위원회 군사 위원장 직을 맡긴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던 그는 하지만 '일본, 만주, 중국 등지에서 군사학을 전공하고 그 나라에서 각각 군인 노릇을 하던 그 경섬이 신생 조국에서 건국의 역군이 될 '것이란 소회로 건군의 주역이 되고 초대 육군 참모 총장 등의 직위를 역임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할 당시 필리핀 포로 수용소장으로 있었던 홍사익은 그해 12월 b급 전범이 되어 재판을 받는다. 당시 재판을 받던 22명의 장성 중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홍사익,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수재로 입신양명의 길을 걸었던 그, '조선인이 일본에 협력하면 조선인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이씨 왕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창씨 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조선인 권리를 지키겠다던 그의 최후는 일본군의 전범이었다. 

이응준 등, 심지어 김원봉조차 조국 건설에 필요한 인물이라며 구명 운동을 펼쳤지만 항소를 거부했던 그가 형장으로 가며 부탁한 건 '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로 시작하는 시편 51편, 그렇게 조선인으로 일본인과 동등하게 살고자 했던 일본군 대좌 홍사익은 형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응준과 홍사익은 반민족 친일행위자로 친일 인명 사전에 그 이름이 올랐다. 

 

 

마지막 무관 생도들, 그 후 
충칭 임시정부로 간 지청천은 한국 광복군 총사령관이 되어 국내 진공 작전인 독수리 작전을 주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황의 항복, 태극기, 광복군기를 앞세워 귀국하려던 지청천, 하지만 미 군정은 이를 허락치 않았다. 결국 개인 자격으로 28년에 귀국한 지청천 장군은 대동청년단을 만들어 해방 후 청년 단체 규합에 힘썼다. 

일제 합방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이건모는 퇴교 후 조선 총독부 서기가 되었다. 일본군 장교가 되었던 이종혁은 자신으로 인해 독립군 투사가 죽음에 이르는 걸 목도하고 항일 독립 투쟁에 헌신,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았다. 44명의 마지막 무관 생도들 중 단 5명만이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그리고 그 중 7명이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남은 32명, 그중 일본군 장교가 13명, 관료가 6명, 은행 직원이 3명, 교사가 4명등이다. 일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젊은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 3.1운동 100주년에 저 다섯 명의 독립 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삶, 그 지난했던 선택 더더욱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9. 3. 3. 15:04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만큼 한 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설명해줄 말이 있을까? '백년지대계'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교육은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생산'해주는 인력풀로 요구되어져 왔다. 유학자들이 모여 이상적 군주 체제를 지향했던 조선 사회는 그러기에 '과거'라는 학문의 능수능란한 익힘 정도를 '관리'의 요건으로 삼았다. 수출과 개발 입국을 내세웠던 지난 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그 '산업'의 역군을 담당할 '기술'과 '기능'을 잘 익히고 숙달한 지식인들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 '잘 알고 익힌 지식'일 필요치 않다면? 그 실재의 유무에 대한 논쟁을 차치하고 도래할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지금까지 인간이 수행했던 '지적으로 숙련된 영역'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화된 기계들이 대신할 것이라는 것은 이제 자명해 지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우스개로 시작하여 이제 체감이 되기 시작한 사라질 인간의 직업들이 회자되고 있다. 거기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 변리사, 의사 등의 직업군마저 그 역량의 상당 부분을 빼앗길 태세이다. 과연 지금까지 사람들이 책임지던 일을 일군의 AI들에게 넘기고 만다면 다은 세대에게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교육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각국은 저마다 '교육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집'으로 마련된 <EBS다큐-교육 개혁, 성공의 조건>은 바로 이에 대한 모색이다. 

 

 

일본 교육의 20년 대계 
이제 중학생이 된 히로토는 카이세이 중학교에 다닌다. 학교 수업을 마친 그는 집에 돌아와 여유롭게 엄마와 식사를 한다. 암기하고 문제를 푸는 식으로 공부하던 형이 중학교에 다닐 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상. 

카이세이 중학교의 오전 수업, 히로토가 속한 조는 일본과 외국의 의료 제도를 비교하여 파워 포인트로 작성하는 중이다. 그런데 같은 반 다른 조는 다른 주제에 대해 토론 중이다. 사회 시간, 함께 사는 세상이란 주제를 놓고 아이들이 정보화 시대,복제양 돌리 등의 장, 단점에 대해 토론을 하는 '탐구식 수업'을 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가치관을 접하고, 다양한 테마와 문화를 발견하는데 교사 중심의 설명식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두드러진다. 

일본은 2001년 일찌기 문부 과학성의 조직을 개편하며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수용하여 교육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 20년을 준비해온 정책은 2018년 문부성 교육 개혁안으로 결실을 맺었다.  입시에서 객관식 문항을 없애고, 논술, 서술형 시험을 확대했다. 미래형 인재를 키우기 위해 일본 교육이 선택한 건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 중심의 '탐구식 수업'이다. '덜 가르치고 더 학습하자'는 모토의 새로운 교육 방식, 스스로 생각하고 학생들 상호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하는 이 새로운 방식에 맞춰 2020년 수능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핀란드의 일관된 교육 개혁 
지금이야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통하는 핀란드이지만1970년대만 해도 그저 유럽의 변방 국가 중 한 나라에 불과했었다. 국민들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처지였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한 교육을 받는 교육 개혁을 실시했다. 물론 이런 개혁에 대한 저항은 거셌다. 하지만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교육 개혁 정책은 2000년대 국제 학업 성취도에서 핀란드를 당당하게 1위로 만들었고, 이러한 교육 정책의 변화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대열에 당당하게 한 몫을 하는 핀란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대를 선도한 교육 정책에 핀란드 국민들은 신뢰도 80%로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핀란드 교실, 학생들의 책상 모양은 5각형이다. 각자의 학습도 중요하지만, 언제든 모여 앉아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책상. 종교에 대해 배우는 학생들은 지금까지 역사를 배우는 일반적 방식이던 '시대순' 대신 종교의 성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 선생님의 역할도 다르다.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에서, 학생들 스스로 사실에 접근하는데 도움을 주는 '안내자'로 역할이 변화했다. 대신 방과 후 보다 나은 커리큘럼과 접근 방식을 위한 연구자로서의 부담은 커졌다. 

이렇게 변화된 핀란드 교육의 주역은 행정부에서 독립된 '국가 교육 위원회'이다. 정당의 정치적 결정에서 배제된 교육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국가 교육 위원회, 거기에 교사들은 개혁 대상자가 아니라 현장 지휘자이자 동반자, 그리고 전문가로 개혁 과정의 주체가 된다. 또 빠질 수 없는 주체로 학생이 있다. 요리 학교를 다니는 엠마는 현재 학교를 휴학하고 국가 교육 위원회 이사가 되어 각 실업 학교를 찾아 다니며 자신과 같은 자신과 같은 실업계 학생은 물론,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분주하다. 성적 평가 방법이 3단게에서 5단계로 바뀌는 등 현장의 목소리가 학생 이사를 통해 반영되었다. 학생, 선생을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16명의 이사진은 정치적 환경에서 자유롭게 교육 현장을 반영하여 교육 목표를 수립하고, 과정을 설계하며, 그 내용을 이행하는 교육 전반의 과정을 책임진다. 

 

 



프랑스의 새 바칼로레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통적인 논술 시험의 전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바칼로레아를 통과해도 대학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속출, 입학생의 26%만 졸업장을 받는 게 프랑스 교육의 현실이 되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 2013년 교육 과정 최고 심의 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교육 과정을 분석하고, 41개의 새로운 과정을 설계하고, 이의 실행을 자문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비난과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6년간의 과정을 거쳤다. 

일본, 핀란드, 프랑스 등 각국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교육개혁 정책을 실시했다. 나라는 달랐지만 이들 나라 교육 개혁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촛점이 맞춰진다. 그 첫 번 째는 지금까지의 입시 위주의 암기식 지식, 그리고 그에 기반한 설명식 수업을 지양한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 방식을 마련해 가는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정책과 방식을 입안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김영삼 정부에서 수능 체제가 도입된 이래 크고 작은 교육 정책의 변화가 19번이나 이루어져 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육 개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가 십상이다. 교육 개혁의 '개'자가 나와도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오죽하면, 지난 해 교육 공론화 과정의 결과는 시대적 흐름에 위배되는 듯한 정시 확대, 수능 절대 평가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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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 교육 개혁의 현실 
그건 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새로운 시대에 부응한다는 개혁이 오늘날 우리 교육 시장에서 보여지듯, 잘 사는 학생들이 대학을 잘 가는 온갖 편법적 제도를 양산해놓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능 수시의 다양한 제도들이 애초의 취지인 다양한 교육 기회가 아니라, 이른바 자사고, 외고 등 교육 기관들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입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제도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결과 우리의 학교 교육은 외고, 과학고, 자사고가 상층 레벨을 형성하고, 그 아래 일반고 등이 자리한 신분 서열 체제가 되었다. 사람들이 보이는 교육 개혁에 대한 반발은 이러한 결과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시대적 변화는 다시 우리 사회에 교육 개혁에 대한 요구를 한다. 과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교육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져 할까? 이에 다큐는 '백년지 대계'를 내세운다. 실제 국가 교육 위원회 위원장인 김진경 씨 역시 조급하기 보다는 100년을 갈 수 있는 교육적 합의를 최선의 요건으로 든다. 또한 이를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절대적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일본 카이세이 중학교 학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해 한다. 학교의 새로운 교육이 대학에서 공부하는데는 좋은 학습 방법이지만, 대학을 가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갸웃거린다. 프랑스의 새로운 교육 정책은 마크롱 정부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과 함께 학생, 교사들로 하여금 정부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를 입는 시위 대열에 합류케 했다. 

또한 핀란드처럼 정부의 기부와 독자적인 기구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국가 교육 위원회는 취지와 달리 위원회 의원을 뽑는 과정에서 정치적 성향의 배제 여부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대두된 가운데, 교육부와 상치된 조직이 되지 않을까란 우려도 등장한다. 이런 가운데 연내 출범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다. 

by meditator 2019. 3. 1. 16:07

<시프트>의 막을 연 건 '미세먼지'이다. <호모더스트쿠스> 매일 아침 오늘의 날씨보다 오늘의 미세먼지를 먼저 챙기는 세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가 된 슬픈 족속, 바로 미세먼지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건강한 삶을 꿈꾸는 오늘의 한국인들, 그들이 <시프트>의 첫 주인공이다. 

미세먼지가 걱정될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한 대씩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집에 공기청정기가 7대가 되었다는 이 시대 대표적 호모더스트쿠스 정시아, 하지만 그녀만이 아니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네이버 까페 회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에 나섰다. 정부의 미세먼지 치수를 믿지 못해 '어스널스쿨' 등의 사이트에 올라온 미세먼지 예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셀프 예보족'도 등장했다. 까페에 올라오는 '셀프 예보', 순식간에 2000 명이 조회를 한다. 심지어 어디를 가든 미세먼지 측정기를 들고 다니고, 집에서 미세먼지 지수가 0이 안되면 두려워 하는 '미세먼지 불안장애'까지 등장했다. 

미세먼지 천동설? -미세먼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과연 외부 유입 물질에 대해 갖는 반감과 분노가 건강한 사회 문제에 대한 각성인가 하는 것이다.  외려 우리 안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주대학교 예방의학 교실 장재연 교수는 '미세먼지 천동설'을 제기한다. 그 옛날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는 '좁은 지식'에 갇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을 신봉했듯이 오늘날 사람들 역시 미세먼지에 대한 왜곡된 정보로 인해 데마고기나 마타도어에 휩쓸리고 있는 건 아닐지 의문을 제기한다. 

  

   

장교수가 제기하는 첫 번째 오해는 환기에 대한 것이다. 미세먼지 지수가 높은 날 창문을 열어놓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장교수는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집에서 조리할 때가 밖의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마스크가 꼭 좋은 건 아니라고 덧붙인다. 외국의 경우, 특히 싱가폴에서는 미세먼지 지수가 200이상일 때에만 이른바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를 쓰도록 권장하거나, 불편하면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가 앞장 서서 마스크를 쓰도록 권장하는 상황, 장교수는 '산소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숨차다는 신체의 즉각적 반응에 유의해야 하며 외려 미세먼지를 잘 막는 마스크가 산소 공급이 안돼 신체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심지어 지금의 미세먼지 상황이 최악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산업화가 극심하던 1950년대 런던처럼, 우리나라 역시 산업화가 한참이던, 굴뚝산업이 융성하던 1970년대, 즉 지금의 엄마들이 한참 자라나던 그 시기가 가장 미세먼지가 심하던 시절이었으며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울 등의 공기는 좋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장교수만이 아니다. 각 계의 전문가들 100 중 53%가 지금의 미세먼지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적 반응에 대해 '지나친 걱정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즉 각약각색의 정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부정적 정보에 대해 더 큰 가중치를 두는 인간의 생존 본능적 반응이 판단을 방해하며, 거기에 현상만을 부각시켜 보도하는 언론 등의 보도 태도 등이 대중들을 불안장애 이를 정도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해외 언론이 중국 스모그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우리나라 언론의 중국 책임론이 증가되며 정작 우리 안의 원인에 대한 해결할 이성적 계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즉 좀 더 차분한 접근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소통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데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심각한 초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은? 
그렇다면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공기질의 문제 중 심각한 건 2차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이다. 

자동차 매연 등 기체 상태의 유기 화합물질, 정유 산업 시설 들에서 발생하는질 소 산화물이 자외선과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 대기 중 초미세먼지는 이러한 2차 생성물질로 인한 것이 76%나 된다. 최근들어 초미세먼지에 대한 위험성이 알려지고 있지만, 정부나 사람들 모두 그 원인과  대책에 있어 인식은 미비하다. 

   

 

1952년 12월 열 발자국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런던의 스모그 5일 동안의 이 나쁜 공기의 역습으로 무려 1200 명이 사망했다. 추운 겨울 급작스레 늘어났던 석탄 난방에 그 원인이었던 것, 영국 의회는 1956년모든 굴뚝에서 매연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시 처벌하는  '청정대기법'을 발의했다. 또한 도시 내에서 석탄을 때우는 걸 금지시켰다. 거기에 더해 영국은 2025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소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사회는 최근 원자력과 관련된 논의는 활발하지만 정작 화력 발전에 대한 인식은 미흡하다. 석탄 화력 61기가 가동중인 우리나라 발전 동력에서 석탄 화력에대한 의존도는 높다. 심지어 OECD 중 국토 면적 대비 석탄 발전 밀집도가 세계 1위다. 

 

 

  
경유차의 문제도 심각하다. 일본은  8~90년대 대기 오염이 심각해지고 주민 소송까지 발생하자, 그 원인을 자동차에서 찾고 경유차 NO 작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2003년부터 도쿄에서 경유차 주행이 금지하는 등 정책에 따라  2000년대 10년 동안 경유차의 절반을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보다 적고 연비도 좋다는 이유로 디젤 차량을 권장하는 '클린 디젤' 정책으로 외려 디젤(경유)  차량이 더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환경'보다는 '연비'를 우선하는 시민들의 의식도 한 몫을 하며 초미세먼지의 역습을 낳게 된 것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자동차 누적대수 22,882,035대로 인구 2,3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그 중 수도권 차량만 44.4%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초미세먼지 공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거기에 부산 공기 질의 51.4% , 인천, 울산 등 지역별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유차 50만대에 해당하는 선박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부재하다. 

2018년에서야 겨우 폐기된 '클린 디젤 정책', 다큐는 정책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책의 변화까지 추동해낼 시민들의 의식 변화,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 독일 슈트트가르트, 그 중에서도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네카토어 지역 시민들은 '미세먼지가 우리를 죽인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 정부의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요구하고 법적 조치를 끌어냈다.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왜곡된 정보로 부터 벗어나 우리 주변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인식의 변화이다. 실제 런던보다도 3배가 넘는 4대문 안의 교통 혼잡에 대해 런던의 경우처럼, 혼잡 통행료라던가, 공해를 일으키는 차에 대한 독성 부담금 등 정책적 규제에 대한, 즉 내가 손해보더라도 기꺼이 환경을 위해 그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시민 의식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by meditator 2019. 2. 7. 16:41

tvn에도 다큐가 있다고? 아니 있었다고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기존 공중파 드라마의 아성에 '신선한 기획'을 통해 드라마의 제왕 자리를 나꿔챈  tvn답게 다큐도 달랐다. 2018년 10월에서 12월까지 '미세먼지, z세대' 등 현대인들이 관심이 높은 주제에 대해 관점의 전환을 제안하는 <시프트>가 방영되었다. 정시아, 김원준,  대도서관 등이 직접 출연하여 다큐에 대한 대중적 접근을 도왔던 이 신선한 시도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7부작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사라져도 <시프트>가 제안한 '인식의 전환'은 남았다. 

<시프트>의 막을 연 건 '미세먼지'이다. <호모더스트쿠스> 매일 아침 오늘의 날씨보다 오늘의 미세먼지를 먼저 챙기는 세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가 된 슬픈 족속, 바로 미세먼지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건강한 삶을 꿈꾸는 오늘의 한국인들, 그들이 <시프트>의 첫 주인공이다. 

미세먼지가 걱정될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한 대씩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집에 공기청정기가 7대가 되었다는 이 시대 대표적 호모더스트쿠스 정시아, 하지만 그녀만이 아니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네이버 까페 회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에 나섰다. 정부의 미세먼지 치수를 믿지 못해 '어스널스쿨' 등의 사이트에 올라온 미세먼지 예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셀프 예보족'도 등장했다. 까페에 올라오는 '셀프 예보', 순식간에 2000 명이 조회를 한다. 심지어 어디를 가든 미세먼지 측정기를 들고 다니고, 집에서 미세먼지 지수가 0이 안되면 두려워 하는 '미세먼지 불안장애'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세먼지'에 대해 걱정을 지나 과민, 공포 등을 느끼고 사는 현대인들 이들에게 물었다. 독일처럼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자동차에 세금을 많이 매기면 어떻겠냐고, 파리처럼 자동차가 도심에 진입할 수 없도록 통행료를 높이면 어떻겠냐고, 그러자 사람들이 반문한다. 중국이 저렇게 미세먼지를 쏟아붓는데, 자동차 좀 줄인다고 미세먼지가 나아질 거 같냐고, 과연 그럴까?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오는 한에서 우리의 하늘은 깨끗해질 수 없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호모더스크쿠스'의 대표 정시아가 나섰다. 

그 문제라는 중국의 미세먼지 
2015년 중국이 동부연안에 소각장 227개를 세울 계획이란다. 거기다 공장들을 우리나라와 가까운 산둥 반도로 이전한단다. 안그래도 중국으로부터 오는 미세먼지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인데, 중국의 이런 정책을 시행한다 하니 '분노'가 끓어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산둥반도 공장 대거 이전 설은 실체가 없었다. 소각장을 더 짓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우리나라와 가까운 동부 연안에 짓는 건 아니란다. 이런 자료를 펴냈던 아주대 김순태 교수조차 중국의 미세먼지가 줄었다는 새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미세먼지로 문제가 되었던 공장들은 헐렸고, 엄격한 배출 장치 규제로 대기 질은 한결 좋았져다고.

 

 
그렇담 결국 우리를 분노케했던 실체는 없었던 건가. 아니 우리나라는 더 심각해 지는데 중국의 공기질은 좋아지고 있다니. 그렇다면 종종 그 중국에서 대거 이동해 오는 저 노란 미세먼지 위성 사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른바 '엘로우 한반도'라 알려진 중국발 미세먼지의 사진, 하지만 이에 대해 연세대 지구환경 연구소 김준 교수는 이게 미세 먼지라기 보다는 해상 안개라 정의한다. 해상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를 위성에서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고. 물론 그 안개에 미세먼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온 것 뿐만 아니라, 서해안 제철소나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온 것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가 해외에서 왔다고 관측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싶다. 도대체 중국이 우리 공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래서 한국과 미국은 대기질을 공동연구에 돌입했다(korus-aq). 2016년 5월부터 6주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대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건 국내적 요인이 52%, 중국이 34%, 북한이 9%에 이른다. 이 40일의 조사 기간 동안 38일이 기준치를 넘겼고, 그 중 24일이 나쁨이었다. 고정관념과 달리, 중국의 영향을 받은 건 단 3일에 불과했다고 연구 결과는 말한다. 
 

 

같은 영향, 다른 반응-일본 
그런데 중국과 가까운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일본, 그 중에서도 큐슈는 중국과 밀접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60%가 중국 탓이다. 하지만 중국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영향도 10%나 된다. 

그런데 큐슈 사람들 반응은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냐는 반응이다. 우리나라처럼 분노하고 항의를 해야한다기 보다는, 공기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삼아 환경 개선에 대한 기술 지원이라던가, 기술 협력의 방향으로 문제를 풀려 한다. 

이러한 일본의 다른 접근은 그저 국민적 정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찌기 50년전부터 미세 먼지에 대해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해온 '내력'의 차이라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일찌기 산업화와 함께 도쿄의 심각한 공해를 경험한 바 있었던 일본은 미세먼지 인벤토리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에 따라 노후 경유차 운행 금지 등 그에 맞는 정책을 오랫동안 실시해 왔다. 그러기에 똑같이 미세먼지의 역습을 당했지만 큐슈와 우리나라의 공기는 달랐다. 

 

 
우리는 분노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공기의 문제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국제적 보상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다.  한중일도 그렇지만 나라와 나라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유럽에서도 이 문제는 골칫거리이자, 오래된 역사적 과제이다. 30년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럽이 산성비 논쟁에서도 알수 있듯이, 어느 한 나라만 좋아진다고 해서 산성비의 피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은 유럽은 '대기오염 물질의 장거리 협약(CLRTAP, 1979)를 통해 정기적 모니터링 등을 통해 공동의 과제로 해결해 나가고자 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9. 2. 7. 16:40

선견지명이다. 지난 2013년 ebs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세먼지'의 위험성, 그 중에서도 특히 자라나는 성장이 아이들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다루었다. 그로부터 햇수로만 6년, 다큐가 제시한 해법에 우리는 얼마나 접근했을까? 무려 6년 전의 다큐를 통해 '미세먼지' 해법에 있어 여전히 지지부진한 우리의 현실을 실감해 본다. 

 

   

 

2013년, 초미세먼지를 주목하다 
2013년의 다큐는 '미세먼지'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한 연무가 아직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던 시절, 정연신 국립 기상 연구소 황사 연구과장은 토양 입자가 주성분인 1~20 ㎛(마이크로미터)의 '흙비'로 중국 북부나 몽골 사막으로 부터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건 주로 1~10㎛로 '계절적' 요인이 크다. 2013년 기준 한 해 130일 이상 연중무휴로 한반도를 뒤덮은 '연무'는 지름 pm2.5(2.5㎛) 이하의 초미세먼지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1㎛은 1m의 백만 분의 1, 초미세먼지 pm 2.5는 머리카락의 1/20~1/30분의 1정도이다. 이 상상하기 힘든 사이즈의 가장 비근한 사례를 들자면 '담배 연기'가 가장 흡사하다. 인간 문명이 만들어 낸 화석 연료의 연소 과정, 즉  '난방, 자동차, 공장'등 우리 문명의 결과물이 주원인이 된다. 

왜 이 '미세한' 먼지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대부분 큰 먼지들은 우리의 목에 걸리고, 인후부에서 제거되지만, 이 '미세먼지'들은 이러한 호흡기의 장막들을 거뜬히 통과하여 우리 몸 깊숙이 스며들어 온몸 구석구석 영향을 미친다. 코털을 거쳐 기관지 섬모를 넘어 폐포에 흡착하여 염증과 각종 폐질환의 원인이 되는가 하면, 혈관에 스며들어 모세 혈관을 수축시키는 등 심혈관계에도 문제를 발생시킨다. 지금까지 비소 세포 암등 비흡연환자의 폐암에 대해 간접 흡연이나 라돈 등의 영향이라 알려졌다면 최근에는 미세먼지의 영향을 주목한다. 다큐는 그 대표적 예로 울산 화최근의 새로운 학설에 따르면 치밀 조직이라 외부 물질의 유입이 힘들다고 알려진 뇌에 조차 미세 먼지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후신경을 통해 후점막에 침적된 미세먼지는 행동기능 장애 및 각종 뇌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성장기라서 더 치명적인 
이렇게 우리 몸 구석구석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 다큐는 특히 아이들을 위협한다고 밝힌다. 흔히 오해를 하는 게 아이들을 어른의 축소판이라 하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우려를 표명한다. 아이들은 그저 덜 자란 어른이 아니라, 성장기의 아이들은 모든 신체 조직이 급격한 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로, 그만큼 외부적 요인에 대한 흡수가 빠른 시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것들 뿐만 아니라, 미세 먼지와 같은 나쁜 환경적 요인에 대해서도 성장기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빨리 많이 흡수하게 되며, 이런 측면에서 아이들에 대한 미세먼지의 습격은 보다 '민감하고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다큐는 밝힌다. 

찻길 옆 아파트에 사는 두 살의 승찬이와 다섯 살의 민찬이는 환절기가 아닌데도 비염 약을 달고 산다.  이렇게 계절성 질환으로 알려졌던 비염 등의 호흡기 질환이 이제는 1년 내내 기승을 부린다, 대표적인 알러지 질환인 소아 천식 등도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임산부의 태아에 대한 영향도 심각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10㎛ 증가할 때마다 태아의 좌우 머리뼈가 0.16㎛ 감소되며 대퇴골의 길이 역시 줄어들고, 조산의 위험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해결을 위해 노력한  '청정국가'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청정 국가로 스웨덴으로 시선을 옮긴다. 청정국가로 알려졌지만 스웨덴이 첨부터 청정국가였던 건 아니었다. 수도 스톡홀름의 훈스가탄 거리, 하루 300만 대의 차량이 이동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테헤란로 같은 거리, 이곳 역시 한 때 미세먼지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추운 나라인 스웨덴은 스노우타이어의 징이 도로 바닥과 마찰하며 생기는 미세 먼지의 폐해가 심각했다. 2011년 스웨덴 정부는 이 지역을 다니는 차량에 스노우 타이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했다. 그러자 미세먼지 배출이 반으로 줄었다. 

그런가 하면 청정 도시로 알려진 하마비 시의 경우 미세 먼지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민 중 30%가 알러지 환자인 하마비 시는 알러지와 관련된 제품을 '인증'하며, 특히 '미세먼지'와 관련하여 청소기 필터의 '인증'에 있어 까다로운 조건을 거치도록 한다. 

전세계적으로 미세 먼지가 심하기로 소문난 미국의 뉴욕시, 뉴욕시의 퀸즈 중학교 앞에는 애즈마(asthma; 천식) 프리 스쿨 존 표지판이 놓여져 있다. 대표적인 알러지 질환인 천식 환자, 나아가 미세먼지로 부터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애즈마 프리 스쿨 존 법을 만들어 실천하다. 우선 미세먼지가 심한 낮시간, 창문을 열지 않고 대신 에어컨을 켜며, 스쿨 버스는 주차와 동시에 시동을 꺼야 하며, 이를 어길 시 벌금과 위반 티켓을 끊고,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오전 7시에서 오후 4시까지 학교 앞에 주차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법의 실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학부모 교육에 주력한다. 

미국,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건, '실천'이다. 즉 스웨덴과 같은 국가가 청정 국가가 된 건 애초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그 '실천'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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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벽만 있어도 
다큐는 우리나라의 사례를 돌아본다. 우리나라 전체가 이런 미세먼지의 습격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곳이 동일하지는 않는다. 탄소의 불완전 연소로 인한 발생하는 대표적 발암물질인 블랙 카본이 미세먼지의 핵심 물질로 추정되는 가운데, 당연히 차량이 많은 곳의 미세먼지가 더 심하다. 버스 터미널은 기준치의 3배를 넘으며, 4차선 도로 옆 공원은 말뿐인 공원이다.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다큐는 두 표본 사례의 초등학교에서 실험을 한다. 운동장의 2면이 차도와 맞닿은 A학교, 또 하나는 산과 인접한 B학교, 학교 주변을 돌며 작성한 오염지도에서 미세 먼지를 만들어 내는 질소 산화물이 당연하게도 A학교가 평균보다도 높았으며, B학교는 낮았다. 심지어 A학교 교실의 미세먼지 농도는 낮시간에 환기를 하면 안될 정도로 표준치의 두 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지어진 학교를 옮길 수도 없고, 다큐는 그 해법을 '방음벽'에서 찾는다. 차도 주변이지만 방음벽이 둘러쳐진 C학교,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음벽이지만, 이 방음벽이 미세먼지를 10배까지도 차단하는 고무적 실험 결과를 얻었다. 즉 '방음벽'이라는 어찌 보면 원칙적인 대안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을 미세먼지로부터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비책이 된다는 것을 다큐는 보여준다. 

즉, 사소한 듯 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시간 '환기'를 한다며 창문을 열지 않는다던가, 미세먼지가 심한 시간을 체크하여 교실 내 환기 시간을 조절한다던가, 반면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청소 시간 함께 꼭 환기를 한다던가 하는 사소한 실천에서부터, 학교 앞 방음벽 설치 등 자라나는 성장기 아이들을 위한 '노력'이 우리 아이들을 미세 먼지의 습격으로 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다큐는 강변한다. 


by meditator 2019. 1. 28. 17:32

삼한사온이 아니다. 삼한사 아니 오미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회자된다. 맞다, 여기서 '미'는 미세먼지의 그 '미'다. 예전이면 황사와 함께 '봄철'의 특별한 연례 행사였던 미세먼지가 '연중 관례'가 되어간다. 날이 추워지면 좀 나아지려나 했더니, 웬걸 겨울 하늘이 뽀얗다. 추워서 마스크를 쓰는 게 아니라,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  특히 초미세먼지(PM 2.5)농도가 2017년기준 연평균 초미세 먼지 농도 25.1㎍/㎥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미세먼지를 30% 감축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이 무색한 결과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의 습격
미세먼지는 공장, 건설 현장, 자동차 등에서 고체 상태로 직접 배출되는 1차 미세 먼지와 가스 상태로 나와 공기 중의 다른 물질과 화학 반응을 일으켜 생성되는 2차 미세 먼지로 나뉘어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72%가 2차 미세 먼지이다. 또한 이러한 미세 먼지 발생에 자동차의 기여도가 27%나 된다. 

특히 최근에는 직경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미세먼지 PM2.5)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머리카락의 1/30 정도되는 초미세먼지는 주로 자동차나 발전 기관 등의 내연 기관에서, 즉 연료 등의 불완전 연소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들로 입자가 작은 만큼 우리 몸에 흡수될 가능성이 더 커서 폐 질환 등의 발병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인다.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 나라의 미세 먼지는 그 '원인'에 있어 최악의 미세먼지 보유국 중국(초미세먼지 기준 53.5㎍/㎥)을 빼놓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스모그가 발생하면 서풍을 타고 2,3일 후 우리나라 서쪽을 중심으로 그 영향력이 미치는 것이 영상 관측을 통해 한 눈에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미세먼지에 있어 평상시에는 국내적 요인이, 고농도의 미세 먼지일 때는 중국 쪽의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다. 양쪽의 비율로 봤을 때 어느 한 편이 우세하다 말하기 힘든 5;5 정도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 아무리 엄마가 공기 정화 식물을 키우고 집안을 소독용 에탄올로 닦아내도 미세먼지 속에서 등하교를 하는 아이의 아토피는 나날이 심해져 물집이 생기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정부의 미온적인 대책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미세먼지 속에서 운전을 하는 아버지는 마스크를 써도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을 겪는다. 호흡기와 피부, 안과 질환을 넘어 자율 신경계 조절에 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미세먼지, 과연 해법은 없을까? 

 

 

공장을 부쉈다. - 중국 
그 '역지사지'의 사례를 우선 당사국 중국으로 부터 찾아본다. 베이징 뿌연 하늘이 구슬 장식품이 되고, 혼탁한 공기가 고향을 그리는 향수 상품이 되는 곳, 2017년 기준 보건기구의 기준치를 20배나 훌쩍 넘었던 곳, 하지만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벌이는 지금 이곳에서 미세먼지는 35%나 줄었다. 

그 시작은 시민들로부터이다. 사진작가는 미세 먼지를 적나라한 실상을 한 컷에 담았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항의했다. 그리고 이런 시민들의 분노에 정부가 움직였다. 

허이짱후 마을, 미세먼지가 심하던 시절 10M 앞도 보이지 않던 곳, 시민들은 공기청정 모터가 달린 6만원 짜리 마스트를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마을의 거리엔 빨래가 걸려있다. 마스크들은 서랍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곳 사람들이 주로 쓰던 석탄 보일러가 물로 순환하는 전기 보일러로 거의 교체됐다. 비용의 90%를 국가가 보조했다. 이곳 마을에서 조금 나가면 있던 물류 회사, 하루의 시작을 자동차의 시끌벅적한 배기음으로 시작됐던 곳, 하지만 이젠 허물어진 공장터만이 남겨져 있다. 

중국이 미세먼지와의 전쟁은 '적극적'이다. 허이짱후 마을만이 아니다. 공장들이 즐비했던 헤베이선 랑팡시 역시 공장을 폐쇄하고, 건물을 부수는 중이다. 석탄 보일러들은 LPG 보일러로 교체시켰다. 당연히 공기의 질이 좋아질 밖에. 

 

 
 

 

경유차는 NO - 파리 
여행자들의 천국 프랑스는 어땠을까? 프랑스하면 상징인 에펠탑, 하지만 이곳이 2016년만해도 스모그에 가려 보이지 않았었다고 한다.  미세먼지로부터 정부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다하여 몇 년간 미세 먼지로 인한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은 시민 등으로부터 보상 소송까지 벌어졌고, 4만 8천 여명이 미세 먼지로 인해 조기 사망에 이르렀다며 르몽드 지 등이 사회적 이슈로 미세 먼지를 제기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는 푸른 하늘을 되찾았다. 에펠탑은 우뚝 파리의 상징으로 잘 보인다. 

2012년 국제 암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히 경유차의 엔진이 불완전 연소할 때 발생하는 블랙 카본, 전체 미세먼지 유해성 중 경유차의 발암 기여도가 8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유형별로 따졌을 때 LPG 차에 비해 10배나 많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2016년 6월 미세 먼지를 잡기 위해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제'를 실시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2011년 이후 출고한 LPG 겸용 차량을 0등급으로 하여, 경유차나 연식이 오래된 차들의  4,5등급까지 나누고, 미세 먼지가 심한 날 4.5 등급의 파리 진입을 불허했다. 그리고 이를 어길 시에는 3.5 유로, 우리 돈으로 약 4만 3천원의 벌금을 물렸다. 

또한 2~300유로에 해당하는 번호판 등록세를 무료로 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LPG 차량을 사도록 유도했다. 당연히 시민들도 운행 제한 등이 없는 LPG 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기 오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차 한 대를 더 보태지 말자'는 슬로건 아래  2007년 이래 프랑스 100여 개 도시에서 택시보다 1/5~1/6이나 싼 전기 자동차 대여 서비스를 활성화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저감 정책에도 불구하고 2500 여명이 미세 먼지로 인해 사망한 결과가 드러나자 프랑스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실시한다. 차도를 폐쇄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도를 없애고, 대신 자전거나 보행자 전용 도로를 늘린 파리 시, 이러한 강력한 교통 정책은 시민들의 라이프 스타일마저 변화시키며 파리에 푸른 하늘을 되찾아 주었다. 

 

 
다큐가 찾아본 중국과 프랑스의 사례, 이는 결국 '미세 먼지'의 습격이 우리 사회 공기 오염의 원인은 되겠지만, 그게 '운명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정부와 지자체가 어떤 결의와 각오로 이 문제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맑은 하늘과 공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 바로 이것아야말로 2019년 새해부터 혼탁한 하늘과 숨쉬기 힘든 공기로 인해 고통받는 우리들에게 가장 반가운 희소식이다 

by meditator 2019. 1. 21.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