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그저 평범한 여자들이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장나라 분)과, <연애 말고 결혼>의 주장미 말이다.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법한 그런 여자들 말이다. 어디 내놓을 것없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손벌리고 살 정도는 아닌 멸치 쌈밥집에, 치킨집을 하는 부모에, 내로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밥벌이 정도는 할 줄 아는, 로펌 계약직 직원에, 백화점 판매원의 직업을 가진 그녀들이다. 거기에 우리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겪었을 법한 경험 한 가지씩은 장착하고 있다. 마음이 약해서 자신이 부탁을 거절한 그 누군가의 낙담을 견뎌내지 못하는 김미영은 거절불능 증후군을 가졌고, <마녀 사냥>에 나올 법한 연애사를 겪은 주장미는 그 덕분에 즉결 재판 처분까지 받는다. 사회에서 대인 관계에 취약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평번한 생각들이 그녀들을 곤란한 처지에 이르게 만드는 그 묘한 기시감도,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의 트라우마에 닿아있다. 

(사진; OSEN)

그렇게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그녀들에게  뜻밖의 사건들이 닥쳐온다. 
운좋게 뽑힌 마카오 행에서 그녀와 함께 동행했던 로펌 변호사가 그녀를 이용했던 것과 달리, 우연히 아니, 불행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된 해프닝을 통해 재벌가의 이건(장혁 분)을 만나, 그와의 결혼 소동에 꼬이게 된 것이다. 
주장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결혼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훈동 때문에 스토커로 몰렸지만, 그 과정에서 훈동의 친구였던 역시나 교수집 자제에, 현재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 공기태(연우진)을 만나 결혼 소동을 벌이게 된다. 

공교롭게도, <연애 말고 결혼>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두 여주인공은, 가장 평범한 여성들이지만, 드라마틱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주장미가 자신의 부모님이 잠시 꿈이라도 꾸실 수 있는게 어디냐며 자위하듯이 평소라면 어울릴 수 없는 상류층 남자와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연애 말고 결혼>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새로운 해프닝과, 그 해프닝을 그려내는 실험적 양식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통한 계층 이전이라는,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전형적 구조에 맞닿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덕분에, 결국은 주장미와 공기태의, 그리고 김미영과 이건의 사랑 찾기로 결론이 나겠지만, 대부분의 스토리는 '결혼'을 매개로 이어진다.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공기태, 하지만 그가 머무는 집이 주인은 어머니이고, 집을 담보로 어머니와 공기태 사이에 결혼에 관한 밀땅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결혼을 원하는 어머니와 달리 결혼에 회의적인 공기태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주장미를 이용한다. 
이씨 문중의 9대 종손 이건 역시 처지가 당장 1년 안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문중이 중요한 권한을 행사하는 회사 대표직 조차 위태로운 상황에서, 하룻밤을 보낸 김미영의 원치않는 임신은, 그에게 닥쳐온 위기를 모면하고, 인간적 책임을 다할 묘수로서의 결혼을 부른다. 

드라마의 배경은 2014년 서울이지만, 트렌디한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갈등을 부추키는 건, 전통적인 제도 결혼이다.
그리고 이 난센스 결혼이 의미하는 바는 상징적이다. 성형외과 의사, 기업 대표라는 그럴 듯한 사회적 지위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에서 완벽하지 벗어나지 못한 채, 하지만,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결혼을 이용한다. 부모들이 제시한 전통적 제도를 당당하게 벗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그들은, 대신 결혼할 상대방 여성들에게 '협잡'을 요구한다. 물론,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원작이 2008년 대만 드라마라는 점도 있지만, 2014년에 여전히 일정한 공감을 얻고 있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또한, 집에서 쫓겨나기 싫어서 결혼할 여자가 있는 척하는 공기태의 상황은, 결국은 부모의 힘에 의존하여, 부와 지위를 거머쥔 이 시대의 능력남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부산일보)

어른들의 눈을 피해, 여주인공과 결혼 해프닝을 벌이자고 하는 남자 주인공들에, 김미영과 주장미는 한결같이 순응적이다. 
물론 김미영에게는 원치않던 하룻밤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임신이란 변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혼율 세계 수위의 대한민국에서, 생면부지의 남자와 원나잇을 통해 임신을 했다고 주변 어른들의 강권(?)에 못이기는 척 결혼부터 하고 보는 김미영은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의 캐릭터을 일관성있게 구현한 것이지만, 수동적이다. 
주장미 역시 다르지 않다. 어머니의 오해에서부터 시작하여, 결혼을 기대하는 어머니의 환상을 깨뜨릴 진상녀가 필요했던 공기태의 얕은 수에서 시작된 주장미-공기태의 연합 작전은, 매번 그로 인해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말로는 열번도 더 아니다 하면서도, 10회에 이르는 동안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부모님에 대항한 결혼 밀땅 작전으로 허비한다.
 
그리고, 이런 김미영의 원치않는 결혼, 하지만 그 상대가 재벌남인 상황과, 마지못한 계약 약혼, 하지만 역시나 그 상대는 성형 외과 의사인 상황이, 어쩌면, 지극히 쿨해 보이는, 하지만 알고 보면 이제는 내 부모에게서도, 계약직이거나, 판매직인 내 직업에서도 위로를 얻기 힘든, 이 시대 여성들의 흔들리는 속내를 유혹하는 달콤한 환타지가 아닐까. 즉, 2014년, 흔들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들에게 필요한 건, 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쟁취하는 진정한 사랑보다도, 어거지로 시작되었어도, 지내고 보니 내 가족이나 '도찐개찐' 그저 사람사는 곳이면 다 비슷한 혹은 그보다도 못한 견딜만한 시가에, ''재수 옴붙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살살 정도 드는 괜찮은 능력남이 아닐까. 즉, 불안한 사랑보다는, 지금의 불안정한 존재를 잡아줄, '취집'말이다. 


by meditator 2014. 8. 7. 15:39

<라디오 스타> 시청률이 상승했다. 닐슨 코리아 기준으로 전국 7.1%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는 전주 대비(5.9%)보다 2.1%나 상승한 것이다. 그렇다면 8월 6일의 <라디오 스타>는 2.1%의 시청률 상승을 가져올 만큼 재미있었을까?


이날의 주인공은 올 여름 개봉할 공포 영화 <터널>을 홍보하러 나온, 손병호, 연우진, 정유미, 도희였다. 영화 홍보하러 나온 주인공들의 면면에서 그리 웃길 가능성이 없어 보였는지 제목부터 아예 '생각보다 웃긴'이었다. 하지만 손병호가 누구인가. <해피 투게더>에 나가 손병호 게임을 창안하고 전파시킨 바로 그 '소문이 자자한' 게임의 주인공 아닌가. 단지 재밌는 게임을 생각해 내서가 아니라, 그 게임이 유포되기 까지, 그 과정에 악역을 밥 먹듯이 한 배우 손병호가 아니라, 소탈한 삶의 재미를 느낄 줄 아는 손병호가 있었고, <해피 투게더>는 바로 그 지점을 제대로 포착해 낸 것이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라디오 스타>의 손병호는 '또 다른 손병호 게임'을 제안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거기에 분위기를 추동시킨 것은 바로 질릴 정도로 반복해서 내보낸 손병호의 웃음이었다. 처음에 잘 웃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다음엔 왠만하면 웃는다로, 마무리에 가서는 할 말 없으면 웃는 걸로 때운다며 손병호의 웃음을 이날의 웃음 키로 잡았다. 덕분에 방송 분량의 상당 부분은 손병호의 웃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손병호가 너털 웃음을 터트리고, 그런 손병호를 보며 함께 나온 연우진과, 정유미에게 웃음이 전파되고, 도희까지 함께 미소를 짓는 모습이 종종 화면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정작 화제가 된 것은, 처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우진이었다. <터널>의 홍보차 나왔지만, 정작 요즘 <연애 말고 결혼>을 통해 화제를 뿌리고 있는 청춘 스타의 예능 나들이가 화제가 된 것이다. 첫 예능이라고 했지만, mc진이 시키는 서태지의 울트라 맨이야를 열창하고, <연애 말고 결혼>의 상반신 탈의 사진을 보고, 그나마 몸을 만든 게 그 정도라며 털털하게 시인했으며, 정유미가 이상형이라며 '썸'을 타기를 마다치 않은 '보기보다 웃긴'이 아니라, 보기보다 더  매력적인 진솔한 매력을 드러냈던 것이다. 

(사진; 뉴스핌)

그런 연우진에 정유미도 뒤지지 않았다. 손병호처럼 대놓고 너털 웃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시종 일관 '눈웃음'을 지우지 않고, 자신의 주량에서부터, 데뷔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제작진들이 연우진과의 '썸'을 강요할 때까지도 여유롭게 넉살 좋게 10년이 넘는 연예계 경력의 내공을 선보였다. 그런 내공 앞에 <응답하라 1994>를 통해 깜짝 스타가 된 도희가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씁쓸한 미소만 띠다 돌아가게 만들 만큼.

그런데 이렇게, 원래도 웃긴, 거기다 방송 분량에 맞춰 최선을 다하고자 몸을 사리지 않았던 손병호에,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두 주인공의 출연에 <라디오 스타>가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방송 초반, 고승덕 코스프레를 하며, 특정인을 방송을 통해 언급하고, 사생활을 거론했던 자신들의 행적을 반성했다. 그리고 그런 반성에 짖눌려서 그랬는지, 다른 방송 분보다도 한결 출연자를 물고 뜯는 것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과거 <화신>에 출연했을 당시 정유미 외모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김구라는 고개를 숙이고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라디오 스타>는 '미안하다'며 손까지 휘저으며 사과를 한 것처럼, 정말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8월 6일의 방송 분량을 보면,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이루는 8할은 냉소와 조롱이 아닐까 싶다. 방송이 시작하자마자, 제작진은 다짜고짜, 연우진의 본명 '김봉회'를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이 본명에 대한 물고 늘어짐은 잊을만 하면 등장한다. 손병호가 '주차 단속반'이라고 지적했던 규현은 음식으로 '회' 이야기가 나와도, 연우진의 본명으로 연결짓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틈날 때마다 하던 식으로 그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본명을 들먹인다. 초등학생들이 이름가지고 놀리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손병호의 웃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웃음을 짓는 사람좋은 사람이라 보는가 싶더니, 결국은 할 말없으면 웃음으로 때운다는 식으로 정의는 변색된다. 좋은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보아 넘기지 못하고 어딘가 트집을 잡아 걸고 넘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방식이다.
화제가 되고 만, 연우진과 정유미의 '썸'도 마찬가지다. 정유미의 이상형을 냅다 연우진에게 연결시켜 두 사람의 '썸'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다행히, 연우진도, 정유미도 오랜 연예계 생활을 한 덕분인지, 그러려니 심지어 끝나고 술이라도 한 잔 할까 여유있게 넘어갔으니 망정이지, 또 한번 제작진의 몰아가기에 민망한 상황이 등장할  뻔했다. 

mc진은 반성을 하고, 김구라는 한결 몸을 낮춘 듯 하지만, 기본적으로,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기본 기조가, '조롱'과 '논란 만들기'라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수위를 어디까지 하는가, 그 조롱과 논란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 국한 시키는가, 애먼 사람까지 끌어들이는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8월 6일 방송분을 보면서, 과연, '미안하다'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누군가의 치부를 들추고, 실수를 꼬투리잡고, 웃음을 웃음으로 넘기지 못하는 <라디오 스타>의 8할의 발목 걸기식 진행이 달라지지 않는 한 어쩌면 논란은 '잠수 중'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논란이 되고, mc진이 사과하고 이런 식이 몇 번째인가 말이다. 즉,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방송 초반 씁쓸한 김구라의 표정에서도 드러나듯이, 김구라라는 mc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이 아니라,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의 기조가 그렇기 때문에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이 괴롭다면,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리라 본다. 


by meditator 2014. 8. 7. 12:09

tvn의 모색은 다채롭다. 

그곳엔 <고교 처세왕>같은 젊은이들만 볼만한 로코만 있는게 아니다. 할배들의 청춘을, 여배우들의 그림자 속 인생을, 그리고 이제 다시, 청춘을 노래했던 뮤지션들의 여전한 청춘을 노래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가두기엔 그 진폭이 너무 큰 <꽃보다> 시리즈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흘러가버릴 시대가 되어버릴 뻔 했던 1990년대의 젊음을, 그리고 음악을 전국민적인 붐으로 되살린 <응답하라> 시리즈도 있다. 시즌제를 거듭하는 그런 화제작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목받는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이제는 공중파에서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곳곳을 들여다 보는  꾸준하고 따뜻한 시선들이 지속된다. 군대를 우물 속에서 건져낸 <푸른 거탑>이 그러했고, 농촌을 길어낸 <황금 거탑>이나, <삼村로망스>가 그렇다. 그리고 이제, 또 한편의 소외받은 문화 영역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담긴 프로그램이 마무리 되었다. 바로 4부작 <국악 스캔들 꾼>이다.

말 그대로 '바람 난 국악'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즉, 국악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러 타 음악과 교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이른바 '퓨전 국악'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국악이라고 하면 그나마 토요일 낮 12시에 면피하듯이 방영되는 kbs의 <국악 한 마당>말고는 공중파에서는 찾아볼 길 없는데, 케이블 tvn이,재미있는 국악을 표방하며, 국악에 한 자리를 내어 주었다. 

로고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은 박칼린이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 여성 마에스트로로 이름을 날린, 뮤지컬 연출자로 알려진 박칼린이지만, 사실 그녀는 파란 눈의 이국적 외모와 달리,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국악통이다. 
그런 박칼린과 함께 4부를 이끌어 간 또 다른 사람은 하림이다. 첫 회 광고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송소희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2부에서부터 등장한 하림은, 이국의 외모 하지만 국악통인 박칼린과 대척점에서, 한국적 외모에 코스코폴리탄의 정서를 가진, 세계 음악의 정통한 사람으로서, <국악 스캔들 꾼>의  지평을 넓힌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진행자와 함께, 매회 국악계의 대표적 명인들이 함께 해 '바람'에 부채질을 한다. 남원을 여행하던 첫 회에는 남원이 낳은 여류 명창 안숙선씨가, 2회 부산 여행지에는 사물놀이의 대가 김덕수씨가, 3회 서울 여행에서는 창작 음악계의 거목 황병기씨가, 4회 안성에서는 국악 마에스트로 박범훈씨가 등장해, 바람의 빛깔을 서로 다르게 채색한다. 

4회에 걸쳐 '춘향전'의 본가 남원을 시작으로 해서, 부산, 서울을 경유하여, 안성에 종착한 <국악 스캔들 꾼>은 2014년 현재 국악이란 음악을 하며, 그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젊은 재주꾼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남도 창의 본가 남원은 그렇다 치고, 부산, 서울, 안성까지, 힘합과 아이돌 음악이 대세인 듯 판을 치는 세상에서, 꾸준히 국악의 길을, 국악의 발전을 모색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지켜보던 보지 않던, 우리 음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으로 전달하기 위해 땀을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해 준다.

또한 그들의 공연을 통해, 그리고 그 공연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박칼린, 하림, 그리고 매 회의 명창들을 통해, 국악, 그리고 퓨전 국악의 다양한 면면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퓨전' 이제는 그 단어조차도 새로울 것이 없는, '퓨전'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인지를 <국악 스캔들 꾼>은 4부작의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전해주었다. 
그저 섞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악 고유의 음색, 가락, 리듬, 장단이 살아 있어야, 이른바 제대로 '퓨전' 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그저 두루뭉수리 '국악'이 가락이 흐르고, 장단을 놓치지 않고, 정조가 살아있는 살아있는 음악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선 '인형의 집' 로라처럼, 타 장르의 음악과 '바람이 난' 국악을 통해, 국악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정색을 하고, 국악은 이것이고, 타 음악과는 이렇게 만나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4회의 걸친 여행을 맛본 것만으로도, 국악의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해준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논리적인 귀결로 이어지는 것이지만, 그 시작은 역시나, 음악 답게 '듣는 귀'의 트임에서 시작되게 만드는 것도 <국악 스캔들 꾼>이다.
'퓨전'이라지만, 익숙한 드럼, 바이얼린 등 서양 악기에서부터, 모양에서부터 신선한 아프리카, 스위스 등의 이방의 악기들이 가야금, 아쟁 등 우리의 전통 악기들과, 때로는 소리들과 어우러지는 음악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들어서 좋다 싶으면 감상자들의 칭찬과, 제대로 된 모색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것으로  '퓨전'의 방향성과 목적성에 대한 '현장 학습' 그 자체가 되었다. 

4회 박칼린은 말한다. 고리타분한 국악이 아니라 듣고 즐길 수 있는 신선한 국악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동행했던 하림의 말도 그리 다르지 않다. 외국을 여행하며, 아프리카의 리듬이 고스란히 현대의 음악으로 재현된 것을 들으며 느꼈던 그 부러움이, 바람난 국악을 통해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비록 4회였지만, 그저 그런 '퓨전 국악'이 아니라, 얼마든지 아이돌 음악 저리가라할 재미와, 그 이상의 듣는 묘미의 가능성을 전해준 <국악 스캔들 꾼>이었다. 물론 첫 시도인 만큼, 빗 속에서 공연을 강행해야 하는 등 그만큼의 아쉬운 점도 소소하게 남는다. 하지만, 돌려막기, 틀어막기 급급한 프로그램들이 양산되는 과정에서,그저 우선은 이런 실험적 시도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반갑고 대견하다. 


by meditator 2014. 8. 6. 13:23

여름이면 찾아오는 이른바 '납량 특집급'이 올해는 없으려나? 했는데, 역시나 이 여름을 그냥 넘기기는 싫었나 보다. 하지만 올 여름 나타난 귀신은 <반지의 제왕>처럼 스케일이 크고, <디워>처럼 기괴하다. <야경꾼 일지>가 그것이다. 


<야경꾼 일지>의 배경은 조선 왕조라 하지만, 실제 존재치 않았던 왕 해종이 사는, 인간과 귀신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이다. 궁중은 귀신의 침탈을 막기 위해, 해태 등의 석상으로 결계를 만들고 어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침입한 귀기는 그 석상부터 깨뜨림으로써 귀신으로부터 평화를 유지하던 궁궐을 흐트러 놓기 시작했고, 그 귀기의 방향은 해종의 아들, 왕세자를 가르켰다. 

귀기의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고 누운 어린 아들을 자신의 몸을 던져 구할 만큼 사랑했던 해종은 얼마남지 않은 왕세자 책봉식을 앞둔 대군을 구하고자 '천년화'를 구하러 백두산으로 떠난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천년화를 키울 수 있다는  마고족의 여인 '연하'를 구하기 위해 앞장서던 해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귀신의 낙인이 찍힌 연하가 키운 천년화로 인해 귀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사로잡힌 귀기는 광기로 나타났고, 그 귀기는 다시 자신의 아내인 왕후와 아들 대군을 향한다.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 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야경꾼 일지>에서, 아직 이유가 등장하지 않은 것인지, 혹은 애당초 이유가 필요없는 것인지 드라마가 시작한 이후부터, 해종이 광기에 사로잡혀 칼을 휘두르는 그 순간까지, 귀기의 방향이 대군이 되는 까닭은 밝혀지지 않는다. <야경꾼 일지>는 귀기에 사로잡힌 왕이 다짜고짜 칼을 휘둘러 자신의 아들을 해치고자 하고, 결국 그 아들이 왕에 의해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희생양이 될 것이며, 그 희생양이 된 대군이 <야경꾼 일지>을 이끌어갈 주인공임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귀신에 대항하여 전선을 형성할 야경꾼은 안타깝게도 왕의 신하라는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역시나 <반지의 제왕> 속 간달프처럼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을 테니, 그의 본격적인 역할 역시 대군 세대의 활약을 준비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이렇게 얼토당토치 않은 '대군 희생 프로젝트'를 그럴 듯하게 만드는 건, 아니 1회부터 개연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아니 애초에 개연성 따위를 요구하기는 힘든 귀신 이야기에서 개연성이 있는 듯이 극을 이끌어 가는 건, 어린 아들을 다정하게 사랑하는 아버지에서, 미쳐 돌아가 칼을 휘두르는 살부까지를 이물감없이 해낸 해종, 최원영의 연기이다. 

<이웃집 웬수>의 평범한 남자로 부터 시작하여, <천년의 유산>의 찌질한 마마보이를 넘어, <쓰리데이즈>에서 소시오패스 재벌에 이르러,  화려한 빛을 내던 최원영의 연기는, 이제 <야경꾼 일지>에 도달하면, 주인공이 굳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은, 아니 과연 주인공들이, 아버지인 해종의 연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수준에 이르도록 드라마를 휘어잡고 이끌어 간다. 

그런데 은 <야경꾼 일지> 속 해종, 즉 귀기에 사로잡혀 정숙한 왕후를 의심하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왕의 광기, 즉, 지도자의 미혹됨은, 묘하게도 기시감을 주며 다가온다. 다른 세상, 다른 상황 속의 왕인데, 누군가의 의견에 휘둘려, 진짜 자신이 보호하고 보살펴 주어야 할 대상을 외면하고 밀쳐내고, 심지어 목숨마저 거두려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친근하다. 아마도, <야경꾼 일지>의 1,2회의 느닷없는 왕의 광기에 굳이 해석이 필요치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우리가 체감하는 '미혹'에 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디 콘텐츠 대전의 우수상을 받은 좋은 극본의 의도를, 그리고 1,2회를 견인해낸 해종의 종횡무진 활약을, 뒤를 이을 주인공들이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8. 6. 11:35

젊음이 경쟁력인 사회다. 아니, 나이듦이 무가치와, 무능력으로 규정지어지는 사회다. 그래서,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 나이들어 보이지 않기 위해 한 해 10조원 이상의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돈을 투자해서 만든 동안이 젊음일까?


<mbc다큐 스페셜-동안의 비밀>은 미시 선발 대회로 부터 시작된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미시들, 그녀들은 미스코리아 못지 않은 외모와 몸매를 자랑하며, 각자 자신을 뽐낸다. 그들이 결혼했다는 미시라는 이름표가 아니라면, 감히 그 누구도 그들의 나이를 섣부르게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동안으로 이름을 날리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각각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의 여성들은 거리에 나가 그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나이를 물었을 때 평균적으로 그녀들의 원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어보인다 평가를 받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동안의 외모만큼, 유치원에서부터 다 큰 자녀를 둔 엄마임에도 한결같이 이십대의 여성같은 외모와 자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동안에 대해 자타를 불문하고 공인하는 이들이, 정말 젊은 것일까? 또래 보다 10여년은 어려보이는 이들의 신체 나이를 측정해 보았다. 그런데 실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 비장의 먹거리가 있고,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헬스를 하며 체력을 유지하는 이들의 신체 나이가, 그들의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실제 나이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드러났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어려보이는 겉껍데기와 달리, 그들의 신체는 나이듦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외모만이 아니라, 진짜 어려보이는 비결은 없는 것일까?

그 비법에 도달하기 위해, 실험 참가자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나이보다, 몇년에서 심지어 십 여년이 나이들어 보이는 이십대에서 사십대까지의 남녀 다섯 명이다. 이들을 데리고 8주 동안 동안의 '동안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그 결과 정말 동안이 될 것인가 여부를 실험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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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bn 스타)

실험에 앞서, 자신의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참가자들의 현재 상태를 들여다 본다. 서른 중반의 직장인, 바쁜 업무와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생활에 시달리는 그는 여느 남자들처럼 흡연과 음주를 즐겨한다. 업무 중 쉬는 시간은 담배 한 가피를 위해 주어지고, 퇴근 후 여유 시간은 동료들과 나누는 술자리로 채워진다. 또한 모처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주말, 그는 집 소파에서 아이와 뒹굴고, 쉬는 날 하루의 한 끼 정도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다. 여자라고해도 다르지 않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 여성은, 술 대신, 그녀의 마실 거리 대부분을 수도 세기 힘든 커피로 대신한다. 점심 무렵 벌써 다섯 잔에 이른 커피는 그녀의 긴장감을 유지해주는 버팀목이다. 주부의 일상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아침 일찍부터 두 아이의 유치원 등교길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일상은, 두 아이의 학원 스케줄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진다. 하지만 그녀의 밤은 길다.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린 그녀를 버텨 주는 건 텔레비젼과 라면 등의 야식이다. 오전 중의 짧은 잠도 그리 편치는 못하다. 직장을 그만 둔 후 집에 첩거하다시피한 이십대의 젊은이도, 컴퓨터 앞에서 식사를 때우는 등, 화장실 가는 것 이외에는 굳이 한 자리에서 움직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동안 프로젝트'는 이런 불규칙한 생활, 편중된 식습관이, 참가자들의 '노안'의 원인이었다고 진단하며, 8주동안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근거를 위해, 지금까지 동안의 원인이 유전적이라는 기존의 관념이나, 각종 과학 기술의 혜택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 쌍둥이 실험을 통해,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라도 그들이 흡연, 자외선, 생활 습관 등의 차이에 따라, 노년의 모습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예로 든다. 

그런 쌍둥이의 실험 결과처럼, 단 8주 만에 참가자들은 정말 한결 '동안'이 되었을까? 놀랍게도, 정말 채식 위주의, 과식을 하지 않는 식습관과, 하루에 잠시 동안이라도 꾸준히 스트레칭을 계속하는 운동 습관을 유지한 참가자들은, 그 전에 비해 한결 '젊어진' 얼굴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보톡스나, 필러 등의 과학 기술의 혜택없이 젊어진 참가자들은 단지 얼굴이 젊어진 것이 아니라,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삶의 자신감을 얻은 듯이 보였다.

<동안의 비밀>이 제시하는 동안의 요건은 바로 생동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삶의 생동감 되찾기 프로젝트로서 '동안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그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 깨진 생활 습관, 편중된 식습관을 바꿈으로서, 그저 얼굴이 어려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건강해지면서 자연스레 얼굴마저도 젊어보이는 '혁명적 방식'으로서의 '동안 만들기'인 것이다. 거의 마흔이 넘었다고 해도 믿겨졌던 이십대 후반의 청년은 8주만에 원래의 이십대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십대 얼굴의 비밀은,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였다. 채워도 채워도 결국은 채워지지 않는 주름의 골을, 얼굴에 만면한 웃음과 활기를 통해 대체한 것이다.

<mbc 다큐 스페셜-동안의 비밀>이 제시하는 방식은 어쩌면 참 뻔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프로젝트도 어디선가 본듯한 것들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습관의 변화와, 규칙적인 운동만으로, 보톡스와 필러로도 하지 못한 인생의 활기를 되찾는다면, 까짓 몇 번의 복기와 반복이라도 감수할 가치가 있는 듯하다. 


by meditator 2014. 8. 5. 15:06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는다. 그에 맞추어 sbs스페셜은 교황 방한 특집으로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를 방영하였다. 이 프로그램이 여느 유명 인사의 특집과 다른 이유는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 때문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을 쓰는 사람이 특정 종교인이 아님을 밝혀둔다)


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를까?
2013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세계의 유수 인물을 제치고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도안 교황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유독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차근차근 sbs스페셜은 밝혀간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남미 출신의 첫 교황이다. 천주교 사제들의 성추문 등 각종 사건이 교황청을 강타한 가운데 2013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처음으로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 난 이후,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첫 교황이 되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교황의 이름에 선정되지 않았던,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거리의 성자로서 맨발의 헐벗은 옷차림으로 그들과 함께 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교황인 자신의 이름으로 택했다. 또한 프란치스코란 이름에 걸맞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까지의 교황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며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당연히 교황이 되면 교황청에 머무르는 것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 된 이후에도, 바티칸을 방문한 사제들의 숙소에 머물며,  교황이 타고 다니는 방탄차를 거부하고, 이동시에는 소형차를 고집한다.(이번 한국 방문때도 그의 차량은 1600cc급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교황의 행보는 그런 형식적인 면을 뛰어넘는다. 이동하는 차량에서 내려 종종 거리의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아이는 물론, 심지어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섬유종으로 온 얼굴이 뒤덮힌 사람들의 얼굴에 입맞추기를 즐겨한다. 
또한 소리내어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이것을 방해하는 탐욕만이 목적인 돈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을 소리 높여 비난한다. 대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당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며, 이것을 위해 카톨릭이 거리로 나설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간 마피아들의 자금 세탁 창구가 되었던 바티칸 은행의 개혁을 실천한다.


이런 교황의 신념과 실천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학창 시절 오전에 공장을 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던 그는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깨우쳤다. 그에게 인간의 존엄성은 노동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제가 된 이후, 거리에서 폐지를 줍던 까르또네르들이 조합을 만들어 정당한 사회적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했고, 마약에 찌든 거리의 노숙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입을 맞추어, 그들을 거듭나게 하는데 앞장섰다. 물론 그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사제로 재직할 당시 아르헨티나는 군사 독재 시절이었기에 보다 강력하게 거기에 저항하지 못한 호르헤 신부는, 당시 군사 독재에 침묵으로 협조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비난에 단 한번도 변명을 하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장서 저항하는 대신 음지에서 많은 핍박받는 아르헨티나인들을 구하는데 앞장 섰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행보에 반성이라도 하듯이, 거리의 피습 가능성에 대해 하늘의 뜻이라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소리높여, 가진 자들의 탐욕을 비판하며,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을 소리 높여 주장한다. 

이렇게 대부분 보수적인 행보를 거듭했던 기존 교황들과 달리 사회개혁적 행보를 거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외 순방 역시 남다르다. 교황이 된 후  그가 처음 방문한 곳은, 많은 아프리카 인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밀항을 하다 풍랑에 희생되는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이었다. 그곳에서 난민 500명이 희생된 사건과 관련하여, '부끄러운 비극'이라며, 돈이 사람과 우리가 사는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방관하지 말자'며 교황 취임의 일성을 높였다. 또한, 2014년 5월 분쟁의 도시 팔레스타인 요르단 서안 지구를 방문하여, 그들의 아픔을 함께 했다. 더구나 대부분 팔레스타인 방문이 이스라엘을 통과해야 하는 관례를 깨고, 헬기를 타고 직접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가는, 상징적 행보를 보였다. 그렇기에,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교세의 확장에만 치중해 오던 한국 카톨릭 계에 교황의 방한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번 아시아 청년 대회를 기념하여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전국 순례 길에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과 만나게 되어있다. 또한 광화문에서 구한말 천주교 입교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성인 추도식을 행한다. 윤지충 등 성인들은 그저 카톨릭 성인의 의미가 아니다. 당시 국가 권력에 대해 저항하다 희생된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 카톨릭 성인들임을 카톨릭 쪽은 밝히고 있다. 

리더는 누군가 될 수 있지만, 리더가 누군가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음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행보를 통해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교황의 방한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질 파급 효과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sbs스페셜은 단지 카톨릭의 지도자가 아니라, 무능한, 혹은 부당한 국가 권력의 행사에 신음하는 한국 사회에 방향을 제시해 줄수 있는 등대로, 교황의 방한을 기대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다양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 타 종교에 대한 편협한 이해을 뛰어넘는 종교 개혁적 입장, 하지만, 그 중에서도, sbs스페셜이 주목한 것은 가난한 자, 핍밥받는 자를 향한 전투적이기까지한 교황의 자세이다. 


by meditator 2014. 8. 4. 11:19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게스트 쇼'라는 기획 의도를 내걸고 대한민국 상위 1%와의 1박2일을 보내는 예능 프로그램, <보스와의 동침>이 첫 게스트로 박원순 시장과 함께한 1,2회가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첫 '보스'로 천만 서울 시민을 대표하는 서울 시장을 섭외한 이 프로그램이 서울 시청 홍보 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을까? 고개가 갸웃해진다. 


<보스와의 동침>의 mc는 김구라, 데프콘, 황광희의 조합이다. 박원순 시장을 찾아간 이들은 각자, 정책 보좌관, 비서, 시민의 한 사람이 되어 1박2일에 걸쳐 박원순 시장과 함께 한다. 
우선 시민의 '매의 눈'으로 보여지는 박원순 시장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느 야심 하에, 박원순 시장의 방을 '급습'하고, 그의 방을 빼곡히 채우다 못해 쌓인 서류의 실체를 파헤친다. 숨은 서류 찾기를 통해, 박원순 시장의 즐비한 서류들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이 아님을 증명하고, 소탈한 시장의 모습을 증명하듯, 함께 박원순 시장이 즐겨 먹는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박원순 시장과 일정을 함께 하던 mc들은 잠시 시장과의 동행을 미루고, 거리로 나가 시민들의 시장에 대한 생각을 듣는다. 때로는 방송으로 내보내기 힘들 정도의 욕설도, 무한 찬양도 모두 모아, 저녁 무렵 만난 자리에서 거의 거르지 않고 시장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실 게임, 늘 박원순 시장이 시장으로서 최우선하는 '시민'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아내와 시민이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느냐는 식의 질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에서부터,세간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인지의 여부까지 전기 충격기를 통해 진실을 확인한다. 또한 함께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함께 아침을 먹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포스트잇을 함께 읽으며 하루를 함께 보낸 mc들의 박원순 시장에 대한 평가와 충고 등 훈훈한 마무리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게 박원순 시장과 보낸 1박2일이 그렇게 재밌지도, 충격적 사실을 알려주지도, 심지어 대한민국 상위 1%의 삶을 통한 교훈조차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어쩐다. 
무엇보다, 세 명의 mc가 대한민국 상위 !%의 보스들과 함께 1박2일을 보낼 자질들이 있는가 여부에 첫 번째 의심을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서울 시장을 만나러 간 김구라, 데프콘, 황광희는 한결같이 박원순 시장을 너무 어려워 한다. 서울 시장이 누군인가. 천만 서울 시민을 대표하는 서울 시정의 대표자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손에 뽑혀진 선출직 자리 아닌가. 하지만, 2회의 프로그램 내내, 세 명의 mc들은 '높은 분'을 만나러 왔다는 '황망함'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조심하고, 늘 눈치보고, 해야 할 질문을 던지고서도 그 질문을 '감히' 던졌다는 사실에 본인들이 어쩔 줄 몰라한다. 덕분에 프로그램의 마지막 그들이 하루를 함께 박원순 시장과 보내고 나서, 박원순 시장을 평가한 '소탈함' 등이 그리 새롭지도 정확해 보이지도 않는다. 나름 재밌자고 한, 김구라의 시장님이 말이 많으니 조심하시라는 충고에 이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하루를 높은 분과 보낸다는 황망함에, 혹시나 야당 출신의 시장과 친해 보이면 누가 오해할까 싶어 어쩔 줄 모르다, 기껏 내놓은 충고가 말 많이 하지 말라니!

서울 시장이 누군지 조차 모르는 젊은이, 그리고 서울 시장을 박원순으로 뽑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그의 정책으로 인해 자신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그를 싫어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게 무슨 그렇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양 쩔쩔 매야 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런 장면을 내보내며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박원순 시장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는 건, 우리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직언을 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같아 씁쓸했다. 

그리고 당연히 현재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행보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무에 그리 잘못이라도 되는 양, 그리고 결국은 가장 뻔한 대답 이상을 얻어내지도 못할 꺼면서 그 질문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그렇게 박원순 시장에게 미안해 해야 하는 것인지. 또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어 보이면, 혹시나 그것이 자신의 정치색처럼 보일까 쩔쩔 매야 하는 것인지, 선출직 시장이 아니라,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들 높으신 분을 모셔놓고, 뜨거운 감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일관되었다. 그러자 보니, 2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비춰진 박원순 시장은, 그가 서울 시장이 되기 위해 선거 유세 동안 보여진 모습 그 이상, 아니 그 보다도 못한 내용이었다. 오히려 아쉽게도 소탈한 사람 박원순이 아니라, 높으신 서울 시장 박원순을 발견한 듯 뒷맛이 씁쓸하다.  

가장 소탈하고 일 열심히 하는 시장이라지만, 정작 그가 바쁘게 일하는 하루 일과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았고, 덕분에, 박원순 시장이 공언하는 '시민'을 위한 삶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되지 않으니, 제 아무리 시민이 가장 우선이라 말해도, 그런 말이, 공허하게 정치적 홍보 멘트처럼 전달될 뿐이다. 일상의 소탈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정치인이나 서울 시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딜레마가 프로그램의 발못을 잡는다. 새로운 사실도, 신선한 면모도 전달하지 못한 이런 프로그램이 과연 대한민국 상위 1%의 존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차라리 바쁘게 일하는 그를 쫓아다니는 다큐멘터리의 솔직한 시선이 더 진솔하지 않을까 란 아쉬움마저 남긴다. 그게 아니라면 요즘 유행하는 멘토링식의 강연을 하게 하고, 질의 응답을 받게 하던지. 

늘 '독설'의 대가라지만, 정작, '힐링'을 목적으로 한, '힐링 캠프'의 이경규 만큼도 직설을 해내지 못한 김구라를 통해, 시청자들이 어떤 보스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차라리 자신들이 감당못한 보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데프콘이나 황광희 대신, <썰전>에서 김구라와 함께 야대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이철희나, 강용석이 그 자리에 함께 하며 서로 다른 생각이 마주쳤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mc들이 보스와의 대면에서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은 전제로 해야, 보스를 배우던지, 알던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스를 모셔다 놓고, '예능'을 한다는 목적으로 인해, 결국 '예능적 재미'도, 보스의 실체도, 그를 통한 교훈도, 끄집어 내지 못한, <보스와의 동침>은 자신들이 입속에 굴리지도 못할 대한 민국 상위 1%의 요리 방식과, 요리사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듯 싶다. 


by meditator 2014. 8. 3. 11:05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되고, 세간에 화제를 몰고 온 것 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가라앉기 시작했던 90년대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다시 부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국 음악의 르네상스 90년대 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들 중에, 유희열, 이적, 윤상이 한 자리를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이름은 90년대를 시작으로, 2014년 지금까지 예전의 그들의 이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청춘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유희열, 윤상, 이적은 그렇게 그들의 이름을 기억시킨다. 그리고,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할배들과, 여배우들, 그리고 이서진, 이승기 두 짐꾼을 새롭게 각인했던 시리즈는 이번에도 예외없이, 중년들의 청춘의 대명사였던 유희열, 이적, 윤상을 새로운 의미로 불러내기 시작한다.

 

 

 

또 한번의 새로운 <꽃보다> 시리즈를 과연 어떻게 시작할까? 그것도 느닷없이, 마흔을 훌쩍 넘기다 못해 낼 모레 쉰을 바라보는, 이 중년의 남자들에게 과부하가 분몀한 '청춘'이란 명제를 들이대기 시작하는 것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었는데, 그런 기우가 무색하게, '청춘'답게 <꽃보다 청춘>은 시작되었다.

 

 

청춘에 대한 여러 화려한 명제가 있겠지만, 그 중 청춘을 청춘답게 만드는 불가피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충동성'이 아닐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의 체계 속에 맞물려 들어가며, 사람들은 젊은 시절 무작정 그들을 몰고갔던 그 '무대뽀'의 마인드로 부터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년의 할배들을 꽃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년에 불가능해보였던 '배낭 여행'을 시켰던 나영석 피디는, '청춘'이 물건너 간지 한참인, 한 때 청춘의 상징이었던 유희열, 이적, 윤상을 '청춘'으로 불러내기 위하여, 젊을 때만 가능한 '충동적' 여행을 가장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여 시작한다.

 

 

도대체 왜 유희열, 이적, 윤상을 불러놓고, '청춘'이란 이름의 여행을 시작했는가 라는 의문을 미처 던지기도 전에, 자유로의 한 음식점에 모인 이들은, 모인 그 모습 그대로 공항으로 떠나야만 했다. 나 영석 피디가 전해 준 여행 계획서를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발견한 출발 시간을 보고 기함할 여유조차 없이. 그렇게, 여행짐따위는 쌀 시간은 당연히 없이, 입은 옷차림 그대로, 맨발에 슬리퍼차림으로, 기껏해야 들고 온 배낭 하나가 짐의 전부인, 그래서 공항 직원이 페루를 가는데 부칠 짐이 없냐고 몇 번이나 확인하게 만드는 행색으로, 겨우 아내가 퀵서비스로 보내준 공진단과 홍삼등만을 부랴부랴 챙긴 채 페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른다.



 꽃보다 청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 시리즈 이후,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꽃보다> 시리즈를 벤치 마킹한 많은 프로그램들은, 나영석 피디가 한 것처럼, 생각보다 예능을 통해 때가 덜 묻은 배우들 등에게 배낭 하나 달랑 메게 만들고 전세계 각지로 할배처럼, 누나들처럼 떠나게 만들었다. 늘 빠듯한 일정에, 예측하지 못한 여행지의 상황, 거기에 느닷없이 주어지는 미션까지, <꽃보다> 시리즈의 복사판들이었다. 그렇게 <꽃보다 > 시리즈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범람하고 있는 가운데, 하지만, 나영석 피디는 다시 한번 <꽃보다> 시리즈가 그들과 다른 차원의 프로그램이란 걸, <꽃보다 청춘> 첫 회를 통해 증명해 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런 나영석 피디의 증명을 위해, 중년의 이적, 유희열, 윤상은 '청춘'답게 충동적인 여행에 자신들을 맡긴다.

 

 

나영석 피디의 <꽃보다> 시리즈는 여행 프로그램이지만, 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다. 어디를 어떻게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래서, <꽃보다> 시리즈를 벤치 마킹한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모두 어디를 떠나기에 급급하지만, 사실은, '꽃보다 **'이란 프로그램 제목이 대놓고 말해주고 있듯이, 바로 **의 재발견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꽃보다 할배>들을 통해, 정말 꽃같은 할배들이 재발견되었고, 누나들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이제, 중년의 유희열, 이적, 윤상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을 준비한 자리에서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서로의 이름을 빠짐없이 호명한 세 사람은 다시 불려온 자유로의 음식점에서 설마 이 사람은 아니겠지 하는 기대도 무색하게 함께 합류하게 된다. 이적의 말 처럼, 참신함이라고는 1%도 없는, 유희열이 진행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특집 행사마다 불려지는, 최다 출연이라는 당연한 친분을 과시하는 유희열, 이적, 윤상은 그렇게 오래된 지기로, 이전의 꽃보다 시리즈에서 화제가 되었던 캐스팅의신선함을 차치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90년대 이후 늘 때로는 그들의 음악으로, 라디오의 진행하는 사람으로,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심지어 케이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찌질한 주인공에서, 야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 진행자까지 종횡무진 활약상을 보이는 이들 세 사람이 <꽃보다 청춘>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감성 변태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수식어가 된 유희열은 여전히 그만의 매의 눈을 숨기지 않고, 7000원짜리 여러 여행객이 함께 머물러 하는 여행지에서도 여성만 발견하면 행복해지는 '변태'로서의 감성을 이어가지만, <꽃보다 청춘>에서 만난 유희열은 우리가 알던 유희열이 아니다. <꽃보다 할배>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여행을 끌어가던 직진 순재가 있듯이, <꽃보다 청춘>에는 유희열이 있었다. 다짜고짜 가져갈 물건에 공진단과 홍삼부터 챙기는 그래서 하루라도 버틸까 싶은, 선병질의 외모를 가진 유희열은 반전의 리더로 거듭난다. 오랜 친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3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열 시간의 수다 후에 잠이 든 친구들 옆에서 꼼꼼히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공부를 한 그는, 뚝딱 가장 싼 하룻밤의 숙식처를 찾아내고, 단 한 마디의 외국어로 재래 시장을 발견한다. 가장 예민할 거 같은 외모와 달리, 어디서자 잘 자고, 잘 먹는 가장 털털한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던 유희열이 아닌 상남자 유희열로 재 탄생되어, <꽃보다 청춘> 첫 회의 백미를 장식한다.

 

유희열만이 아니다. 유창한 영어로 어디서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는 막내에, 꼼꼼한 회계까지, 그리고 때로는 사려깊은 배려가 상처가 될 정도로 마음이 깊은 친구까지, 유희열 못지 않은 인간다운 냄새을 뿜어내는 이적 역시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런 유희열과 이적의 배려 아래, 맏형이지만 애초에 여행을 가기도 전에, 찡찡이라 찍힌 윤상의 예민함,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매력은 아마도 <꽃보다 청춘>이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일 것이다.

 

친구를 진짜 알고 싶으면 함께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때로는 그 여행을 통해, 친구의 몰랐던 모습으로 인해 오래된 친구가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머쓱해 지기도 한다. 과연 <꽃보다 청춘>은 어떤 쪽일까? 우리들의 오래된 스타였던 유희열, 윤상, 이적은, 그렇게 우리가 몰랐던 유희열, 윤상, 이적이 되어, 우리 곁에 다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 친구들과의 여행이 궁금해 진다



by meditator 2014. 8. 2. 10:51

우리집엔 거의 스물에 가까운 노견이 한 마리가 계신다. 스물이라는 개로써는 어마어마한 나이로 인해, 이 개는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집을 찾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구동성으로 그런 개를 안타까워한다. 불쌍해서 어쩌냐는 것이다. 하지만, 늘 개와 함께 생활해오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개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은, 그저 자연스러운 노년의 일상이다. 개 자신도 그저 예전보다 조금 더 돌아다니는게 불편하지만 그것을 크게 개의치않아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은 우리들도, 특별히 불쌍해 하기 보다, 조금 더 배려해야 할 점이 많아져가는 것 뿐이다. 노견의 현재를 안쓰러워 하는 대신,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그 날을 미리 두려워하기 보다, 그저 그때까지 충분하지 않더라도 함께 사랑하며 살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생각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나이들어 가며 달라진 개와, 그런 개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의 관계가 겹쳐진다. 개와 사람의 관계? 아니,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조금 다른 모습, 그거 말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한 집에 살게된, 네 명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저마다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알고보니, 굴러온 돌이 아니라 집주인이었던 장재열(조인성 분)은 스스로 자신이 강박 장애라는 것을 인정한다. 도어락이 달린 욕실, 색깔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수건, 자신의 수건을 내주기 위해 몇 번의 주저함이 필요한 시간, 자신의 오피스텔과 전혀 다른 공간임에도 흡사한 인테리어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벌써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정작 문제가 되는 건, 그의 드러난 강박 장애가 아니라,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들이닥쳐 그를 찔렀던 그의 형의 억울함이요, 시도때도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나는 한강우(디오 분)라는 소년이라는 것을. 

어디 불편한 건 장재열 뿐이랴. 그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지해수(공효진 분)도 만만치 않다.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애인과 3년이 되어가도록, 아니 어쩌면 30년이 된다해도 잠자리를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앓는 그녀와 달리, 함께 사는 박수광(이광수 분)은 숨길 수 없는 툴렛 증후군의 환자이다. 긴장이 극한에 이르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말과,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전처와의 이혼 과정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전력이 있는 조동민(성동일 분) 역시 매사 그리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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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텐아시아)

이 어색하다 못해 언밸런스한 네 사람의 조합,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상 범위를 벗어난 상태를 작가 노희경은 그저 덤덤하게 그려낸다. '강박 장애야' 라고 장재열은 무심하게 말하며, 지해수의 심각한 성적 혐오를 감기 증상처럼 측근들은 회자한다. 박수광의 투렛 증후군은 그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증상일 뿐이다. 네 사람의 등장인물뿐이 아니다. 지해수가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게 되는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극단의 모습들을 보여도, 그것도 그저 '감기'같은 것들일 뿐이다. 우리가 감기가 걸리듯이, 그렇게 정신과를 찾은, 혹은 찾지 않고 저마다 겪고 있는 증상들이 '장애'나, '낙인'이 아니라, 그저 정신의 '감기'같은 것들이라고 작가는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성기를 그리는 소년의 문제로 고심하던 지해수가, 장재열의' 뭐 어때서? 그것도 그림인데' 라는 말을 통해 환자와의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고, 강박 장애 환자와의 상담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이켜 보듯이, 가장 극단적인 증상과, 일상의 불편함같은 각자의 증상들이 겹쳐지고, 그것들이 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감기'처럼 찾아온 불편한 증상일 뿐이라는 것을 작가는 강변한다. 

그런데 이제 4회를 지나고 있는 <괜찮아 사랑이야>는 이 감기같은 증상들의 원인이 드러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를 애지중지 안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그런 엄마의 증상을 살펴보기 위해, 지해수는 그녀의 남편의 병력을 조사해 보라고 시킨다. 그녀를 정신적 충격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바로 그녀의 가족인 남편이다. 성기를 자세히 그리는 증상을 가진 소년의 원인은 어린 시절 그가 자는 줄 알고 옆방에서 남자와 성행위를 나누었던 엄마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상처는, 역시나 어린 시절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던, 그래서 누군가와 나누는 사랑의 행위가 부정의 행위로 각인된 지해수의 상처로 이어진다. 자신의 동생이 의붓 아버지를 죽였음에도, 정작 그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형인 자신을 위해 그 사실을 토로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꿈을 밤마다 꾼다는 장재범(양익준 분),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두고 도망치지 못해 함께 맞다가, 결국은 어느 날 아버지를 쳐서, 아버지가 나가버려, 오히려 놀란 소년 한강우처럼, <괜찮아 사랑이야> 속 등장인물들의 상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비롯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의 가장 든든한 바람막이이자, 안전판이 되어야 할 가족이, 아니 개인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대상이 가족이기때문에,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그를 가장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괜찮아 사랑이야>가 노골적으로 지적해 내고 있지 않더라도, 이미 가족 지상주의의 많은 드라마들이 갈등의 주소재로 가족을 오래도록 울궈 먹어 왔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단지, 다른 드라마에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갈등의 동인이자, 흥밋거리이며, 동시에 구원의 대상이기도 했던 가족이, 이제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본격적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병리학적 원인으로 대두된 것이다. 우리가 그간 '괜찮아 가족이야'라며 덮어두었던 치부들이,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한 개인을 정신적 고통으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정의내려진다.

그런 면에서 네 명의 등장인물이 홈메이트로 함께 살아가는 설정은 상징적이다. 네 명이 불가피하게 한 집에서 살게 된 설정은, 그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드'의 쿨한 생활 방식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해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전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할 계기를 가진다는 대안적 삶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애인과 헤어지는 순간 그녀의 격정적 토로를 가만히 숨죽여 들어주고,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강박을 참아가며 색깔별로 수건을 건네주고, 그녀의 아픔을 너스레를 떨며 걱정해주는 홈메이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부러워 지는 마음이 들고, 그들이 왁자지껄 벌이는 소동극에 얼굴 근육이 풀려가는 게, 이미 4회 만에 함께 하는 그들로 인해 마음의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제목 <괜찮아 사랑이야>에 대한 정의도 재고될 가능성이 높다. 조인성과 공효진의 로맨틱 멜로로서 괜찮아 사랑이야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들에게 위로가 될, '괜찮아 사랑이야'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까.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 홈메이트들의 공동 생활과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 치유를 통해, <괜찮아 사랑이야>는 고통받는 개인들을 치유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4. 8. 1. 10:03

묘하다. 

마치 사귀던 애인에게 느닷없이 이별 선언을 들은 것과 같다. 달콤한 데이트를 기대하며 나갔던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친 이별 선언, 처음엔 이게 뭐지? 얼떨떨하다가,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이별의 아픔이 치고 올라오듯이, 영화가 암전된 후, 극장을 벗어나는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흐를 수록, 전진호와, 거기에 올라탄 여섯 선원들이 가슴으로 스며 들어온다. 

영화 <해무>에서 전진호는 IMF의 파고 속에 헐떡인다. 이제는 폐기될 고물처럼 여겨지는 배, 그리고 한때는 여주 다방가에 짜한 소문을 내던 돈 잘 쓰는 선장이었지만, 이제는 온갖 서류를 들이대봐도 돈 몇 푼 꾸기도 힘든 처지의 선장 철주, 하지만 여전히 그에겐 포기할 수 없는 배와, 그를 포함한 여섯 선원이 있다. 

그래서 '돌아갈 집'이 없는, 철주는 그에게 남은 유일한 '집', 배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믿고 따라오는 '가족같은' 선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독단적으로 물고기 대신 사람을 낚기로 한다. 하지만 처음 해본 '밀항'을 낡은 배는 소화할 수 없었고, 배에 들이친 해무처럼 여섯 선원들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운명 속에 휘말려 들어간다. 

POSTER

<해무>의 쇼케이스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심성보 감독은 뜻하지 않은 상황 속에 놓인 여섯 선원들의 서로 다른 인간적 선택을 주목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 그대로, 여섯 명의 인간들은, 뜻하지 않게 그들에게 닥친 상황 속에서,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하지만 그래서,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다. 

올해 들어 유난히도,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그 중에서도, <명량>, <바다로 간 해적>, 그리고 <해무>까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런데 그 중에서, 현재의 우리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을 고르라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해무>다.  

영화 속 '전진호'는 그 살기 힘들었다던 IMF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제 오늘을 사는 누군가는 말한다. 차라리 그때는 견딜만 했다고. 그렇게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들던 IMF 시절에, 선장 철주는, 이제는 한물갔다고, 그래서 보상금이라도 받으라는 낡은 어선을 고집한다. 그의 모습은, IMF 때 한참 우리 사회에서 화자되었던, 바로 그 '무기력한 아버지'상을 다시 한번 재연한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살아왔던 인생을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 세대가 바로 철주다.
그래도 아버지 철주는 어떻게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책임지려고 마지막 까지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이가 든, 기관장 완호에게 가면, 인생은 처참하다. 배에 등록된 선원 명부에도 올라갈 수 없이, 숨어 살아햐 하는 그의 인생의 내력은 그의 허물어진 표정만으로도 짐작 가능하다. 70년대 문학에서 만났던, 산업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몇 켤레의 구두를 남긴 채 사라졌던 인물이, <해무> 속 완호 아재로 버티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래도 전진호에 기대 안간힘을 쓰며 붙들던 그의 삶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진짜 무너져 버린다. 
선장이 '밀항' 흥정을 하는 동안 밖에서 지키고 섰던,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선장이 '밀항'을 하라면, '밀항'을 하고, 그보다 더한 일을 시키면, 더한 일도 해치우는 호영,  또한 자기 자식을 거느리고 살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우직한 어느 집안 가장의 현현이다. 

그렇게, 허물어져 가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던 아버지 세대와 함께, 그보다 젊은 경구, 창욱, 동식이 있다. 
<해무> 속에서 그들이 어우러지고, 엉클어지는 사건의 중심에, '성'과 '여자'가 놓인 것은, IMF를 이끌던 세대의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장치이다. 약삭빠르게 자기 것은 챙기려는 경구와, 그 누구보다 욕망의 화신같지만 정작 뒷북만 치는 창욱도, 그리고, 첫 눈에 본 여자와 사랑에 빠져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던 동식은, 아버지 이후 세대, 젊음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삶의 이유를 가진 여섯 명의 선원들의 처음은 '가족'과도 같았다. 동식이 해온 음식을 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함께 온기를 나누고, 모처럼 만난 병어 떼를 동식이의 다리와 맞바꾸어도 '다행'이라며 동식이를 다독일 줄 아는 가족이었다. '밀항자'를 처리해야 하는 과정에서도 '해양고' 출신이 이럴 때도 통하냐며 이기죽거리면서도 막내는 접어주려던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 '가족'은 그들이 살기 위한 이기적 선택의 풍랑 속에 해체되고, 무너져 간다. IMF 때이후로 끊임없이 해체되어 가는 우리 사회처럼. 
같은 하지만 다른 뉘앙스의 조선족을 '상품'으로 여기며, 그들을 다루는 철주, 그들의 저항에, 그들이 이 살기 힘든 세상에 내 밥그릇을 빼앗아 먹는 '것'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경구, 그리고, 묵묵히 그들을 '상품'답게 뒤탈없이 처리하려는 전진호 선원들의 행태는, 완호의 정신적 아노미가 일탈처럼 여겨질 정도로, 우리 사회의 냉혹한 '민족 이기주의'를 복사한다. 
그리고 그런 '민족적' 이기주의는 상황에 따라, 완호 아재마저 거추장스러워지고, 그가 사라지자, 그의 돈과 물건을 챙기는, '나 하나의', 이기주의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그렇게 경계를 넘어선 인간다움은 끝을 모른 채 추락해 간다. 
영화 속 그들은 뜻하지 않은 운명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전진호와 함께, 혹은 따로 운명이 갈리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그들은 이 시대을 사는 우리들의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단지, 우리는, 우리가 아직, '인간적'이라고 믿고, 우리가 탄 이 배가, 아직 침몰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을 뿐,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 닻을 포기하지 못한 선장 철주처럼, 우리도 우리의 가슴께까지 차오른 물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 군상의 극단적 선택들 속에서, 맹목적인 동식의 '사랑'은 그래서 더 대비된다.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가이내 내꺼'라는 창욱과, 내 목숨을 다해 너를 지켜주겠다는 동식의 사랑 사이에, 욕망과 순정의 지수를 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홍매를 만난 처음 순간부터, 마지막 6년 후까지, 포기할 줄 모르고 자신을 던진 동식의 사랑은, '욕망' 그 이상의 '연민'을 남긴다. 덕분에, <해무>제작 발표회 이후 계속 풍문으로 떠돌던, 홍매와 동식의 베드신은, 아마도 우리 영화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랑' 그 이상의 공감을 나누는 교감의 나누는 씬으로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몸을 나누는 그 순간의, 절망과, 두려움과, 슬픔,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삶에 대한 갈구의 정서가 '정사'를 뛰어넘는다. 

STILLCUT

영화적 화법을 두고 논하자면, <해무>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동안의 영화적 기법에 익숙한 누군가는, 좀 더 스릴있게, 좀 더 서스펜스가 강하게, 좀 더 하나, 하나의 캐릭터를 진하게 라는 아쉬움을 피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처음에 서두를 띄웠듯이 묘하다. 어쩐지 아쉽다고 했던, 그런 것들이, 영화가 끝난 후, 묘하게, '인간적 조심스러움'이나 '존중'처럼 남는다. 그들은, 좀 더 '극악'해질 수 있었지만, 여전히 한 자락, 인간이기에, 라는 연민을 위해, 어쩌면, 그 미진함이, <해무> 전진호의 여섯 선원에 대한 기억을 당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오래 저장시키도록 만드는 건, 김윤석, 박유천, 김상호, 이희준, 유승목, 문성근, 진짜 전진호에 있을 것만 같은 여섯 배우들이다. 결국은 '악의 화신'같은 폭발적 연기력을 보이면서도, 스러져가는 아버지 세대의 허망함을 놓치지 않는 김윤석의 카리스마도, 오랜만에 돌아와 그림자처럼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고 하지만, 그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연민이 울컥 솟아오르게 하는 문성근도, 끝까지 '욕망'에 충실한데, 그게 결코 미워지지 않는 이희준의 창욱에 대한 훌륭한 해석도,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갑판장의 우직함이 드러나는 김상호의 뚝심도, 이제야 유승목이라는 배우가 있었구나 깨달음을 주는 경구 역의 유승목도, 그리고, 그의 사랑이 안쓰럽게 못해 미어지게 만드는 동식 역의 박유천까지, 좋은 배우들의 진솔한 연기의 향연으로 <해무>는 남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7. 28.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