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찾아오는 이른바 '납량 특집급'이 올해는 없으려나? 했는데, 역시나 이 여름을 그냥 넘기기는 싫었나 보다. 하지만 올 여름 나타난 귀신은 <반지의 제왕>처럼 스케일이 크고, <디워>처럼 기괴하다. <야경꾼 일지>가 그것이다. 


<야경꾼 일지>의 배경은 조선 왕조라 하지만, 실제 존재치 않았던 왕 해종이 사는, 인간과 귀신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이다. 궁중은 귀신의 침탈을 막기 위해, 해태 등의 석상으로 결계를 만들고 어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침입한 귀기는 그 석상부터 깨뜨림으로써 귀신으로부터 평화를 유지하던 궁궐을 흐트러 놓기 시작했고, 그 귀기의 방향은 해종의 아들, 왕세자를 가르켰다. 

귀기의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고 누운 어린 아들을 자신의 몸을 던져 구할 만큼 사랑했던 해종은 얼마남지 않은 왕세자 책봉식을 앞둔 대군을 구하고자 '천년화'를 구하러 백두산으로 떠난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천년화를 키울 수 있다는  마고족의 여인 '연하'를 구하기 위해 앞장서던 해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귀신의 낙인이 찍힌 연하가 키운 천년화로 인해 귀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사로잡힌 귀기는 광기로 나타났고, 그 귀기는 다시 자신의 아내인 왕후와 아들 대군을 향한다.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 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야경꾼 일지>에서, 아직 이유가 등장하지 않은 것인지, 혹은 애당초 이유가 필요없는 것인지 드라마가 시작한 이후부터, 해종이 광기에 사로잡혀 칼을 휘두르는 그 순간까지, 귀기의 방향이 대군이 되는 까닭은 밝혀지지 않는다. <야경꾼 일지>는 귀기에 사로잡힌 왕이 다짜고짜 칼을 휘둘러 자신의 아들을 해치고자 하고, 결국 그 아들이 왕에 의해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희생양이 될 것이며, 그 희생양이 된 대군이 <야경꾼 일지>을 이끌어갈 주인공임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귀신에 대항하여 전선을 형성할 야경꾼은 안타깝게도 왕의 신하라는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역시나 <반지의 제왕> 속 간달프처럼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을 테니, 그의 본격적인 역할 역시 대군 세대의 활약을 준비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이렇게 얼토당토치 않은 '대군 희생 프로젝트'를 그럴 듯하게 만드는 건, 아니 1회부터 개연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아니 애초에 개연성 따위를 요구하기는 힘든 귀신 이야기에서 개연성이 있는 듯이 극을 이끌어 가는 건, 어린 아들을 다정하게 사랑하는 아버지에서, 미쳐 돌아가 칼을 휘두르는 살부까지를 이물감없이 해낸 해종, 최원영의 연기이다. 

<이웃집 웬수>의 평범한 남자로 부터 시작하여, <천년의 유산>의 찌질한 마마보이를 넘어, <쓰리데이즈>에서 소시오패스 재벌에 이르러,  화려한 빛을 내던 최원영의 연기는, 이제 <야경꾼 일지>에 도달하면, 주인공이 굳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은, 아니 과연 주인공들이, 아버지인 해종의 연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수준에 이르도록 드라마를 휘어잡고 이끌어 간다. 

그런데 은 <야경꾼 일지> 속 해종, 즉 귀기에 사로잡혀 정숙한 왕후를 의심하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왕의 광기, 즉, 지도자의 미혹됨은, 묘하게도 기시감을 주며 다가온다. 다른 세상, 다른 상황 속의 왕인데, 누군가의 의견에 휘둘려, 진짜 자신이 보호하고 보살펴 주어야 할 대상을 외면하고 밀쳐내고, 심지어 목숨마저 거두려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친근하다. 아마도, <야경꾼 일지>의 1,2회의 느닷없는 왕의 광기에 굳이 해석이 필요치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우리가 체감하는 '미혹'에 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디 콘텐츠 대전의 우수상을 받은 좋은 극본의 의도를, 그리고 1,2회를 견인해낸 해종의 종횡무진 활약을, 뒤를 이을 주인공들이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8. 6.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