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

'진짜 기대 하나도 안했는데 그게 미안할 정도로 재밌네요'
'딴딴한 스토리와 위트있는 대사들이 역시 1류배우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극찬에 가까운 감상편이 <꽃할배 수사대>에 대한 헌정사일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꽃할배 수사대처럼 노년의 배우들이 주인공이 되어 활약을 펼쳤던 영화<라스트 베가스>와 <레드; 더 레전드>의 소감들이다. 그렇다면, 역시나 노년의 배우들이 활약을 펼친 <꽃할배 수사대>는 어땠을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대표적 할배 배우들인 이순재, 변희봉, 장광이라는 할배 배우들에 대한 헌정사라기엔, 어쩐지 많이 아쉽다. 저 훌륭한, 저 연배에도 여전히 짱짱하게 활동해 주시는 저 분들을 데리고 이렇게 조촐한 작품을 보이다니, 가끔은 보다가 보는 시청자가 부끄럽기도 했다. 단지 그분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했다는 그 점에만 촛점을 맞춘다면, <꽃할배 수사대>는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이라는 것만 빼면,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일선에서 물러나 쉬고계시던 변희봉 선생님을 오랜만에 다시 모셔온 것은, 영화배우 봉준호 감독이었다. <수사반장>시절부터 그분의 팬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변희봉 선생님의 연기가 아쉬워, 그분을 자신의 작품 < 살인의 추억>에 구희봉 반장으로 되살려 냈다. 변희봉 선생님이 연기한 구희봉 반장은 비록 주연은 아니었지만, 그분께 활발한 영화 출연을 선사할 만큼 기억에 남을 캐릭터를 선사한다. '헌정'이라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그분들을 주연을 시킨다고, 그분들께 '에이핑크'흉내를 내게 하고, 젊은 사람인 척 하게 한다고 그런다고 그분들께 영광을 다시 돌릴 수 있는 건 아닐 듯 싶은데.

아마도 <꽃보다 할배>의 원초적 딜레마는 노년의 배우들 이순재, 변희봉, 장광, 이분들을 주연으로 삼았음에도, 정작 그분들 보연의 카리스마를 차치한 채, 젊은  최진혁등의 젊은 배우들의 흉내를 내게 한데 있다. 
'회춘' 느와르를 내건, <꽃할배 수사대>는 말 그대로, 관록있는 이순재, 변희봉, 장광 배우분들을 회춘시켰다. 처음 드라마는 경찰청의 골치덩어리 수사반 이준혁, 한원빈, 전강석을 내세운다. 한번 본 것은 다 기억하는 절대 기억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야심때문에 가족조차 저버린 채 재벌녀와 약혼을 한 독불장군 이준혁, 자신의 미모로는 세상 그 어느 여자도 거칠 것이 없다는 천하의 바람둥이 한원빈,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가졌지만, 뇌는 청순한 전강석,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합류한 이준혁의 영원한 라이벌이지만 허허실실의 박정우(김희철 분)까지, 팀웍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골드 피쉬'라는 정체 불명의 범죄 집단을 수사하던 중 박정우를 제외하고 노년의 할배들이 되어버리고 만다.

꽃할배 수사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할배들이 된 이들 청년들이 노년의 인생을 체험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와 딜레마를 극의 주된 해프닝으로 끌고가며, 자신들의 젊음을 돌려받기 위해 '골드 피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느와르'가 <꽃할배 수사대>를 이끌어 가는 두 기둥이다. 그래서 이순재, 변희봉, 장광, 배우분들은, 늙어버린 젊은 형사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불세출의 배우분들이셨다 하더라도, 노년의 배우들이 젊은 척 연기하는 모습은, 어쩐지 '오글거릴' 수 밖에 없다. 문득 문득 보면서, '회춘'의 의미를 젊음을 되돌려 주는, 혹은 젊음인 척 이라고 정의내리는 우리 사회의 '부박한' 정의를 되새겨 볼 수 밖에 없도로 만드는 상황이다. 꽃할배라면서, 할배들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결국 그분들이 젊은이인 척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만든다. 노년으로서의 당당함이 아니라, 주연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이가 되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변함없는 논리를 <꽃할배 수사대>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며, 내 피부가 늘어졌다며 능청을 떠시던 변희봉 선생님이나, 보다보니 이제 귀여워 보일 정도로, 뇌가 청순한 캐릭터를 에이핑크 춤까지 선보이며 고군분투하신 장광 선생님의 연기는 '애교'를 넘어 '리얼'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노년의 배우분들은 젊음을 연기하는데 어색함이 없는데, 젊은 배우들이 젊음을 연기하는게 어색했던 성의없는 조합이, 그리고 그런 노년의 배우분들이 가감없이 자신을 내던지며 젊음을 연기하는 매회 스토리의 어설픔이 그래도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수도 있었을 <꽃할배 수사대>의 발목을 잡는다.

오히려, 어설픈 젊음에의 복귀보다는, 정말 그분들의 관록과 카리스마가 빛날 수 있었던 ,느와르'였다면 어땠을까? 노년의 할배들이 수사를 하기 위해, 굳이 젊음을 불러들여야 하는 '회춘'이 아쉽다. 


by meditator 2014. 7. 26. 14:14

채집 수렵 사회인 구석기 사회에서 먹거리를 구하는데 보통 일주일에 열 일곱 시간을 노동했지만 농경 사회에서 보다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았다. 농경 사회의 사람들은 18~19세기가 되어서야 구석기 시대의 조상만한 신체적 크기와 수명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이클 폴란, 잡식 동물의 딜레마 중에서)

인간사의 오해에 대한 것 중에 하나가 인류는 역사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는 오해(?)이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하고, 이른바 '농업 혁명'이라고 평가할 만큼, 생산물의 획기적 증산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농업 혁명을 통해 생산물의 증가는, 생산물의 불균등한 분배와 함께, 탄수화물군에 치우친 인간 식생활의 편향을 낳았다. 오늘날 인간 문명이 가진 가장 부조리한 모순과 폐해, 부의 불균등한 분배와 편중된 식생활로 인한 건강 이상은 올곧이 농업 이후의 역사에 그 책임을 넘겨야 한다.

그래서, ebs스페셜 프로젝트는, 위험 적신호에 빠진 7명의 사람들을 원시 구석기 시절로 회귀시켜, 그들의 건강을 구하고자 한다. 7월 3일부터 24일까지 방영된 '구석기인처럼 먹고살기'는 매주 목요일마다 4부작에 걸쳐, 현대의 비만인의 구석기식 생존기를 보여준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 살이 너무 쪄서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창피해 점점 더 방밖으로조차 나가지 않게 된 '히키코모리' 상태가 된 132kg의 30대, 살이 찐 후 근무 시간에 자꾸 졸아서 사표를 쓸 수 밖에 없었던 109kg의 30대 남자, 살이 쪄서 아기가 생기지 않는 36살의 여자까지, 20대에서 60대까지 비만으로 인해 일상 생활에까지 혼란을 겪고 있는 7명의 참가자가 뽑혔다. 당뇨, 지방간, 고지혈증에 시달리는 그들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잠시의 체중 감소 후에 오는 그 이상의 요요 현상 등 계속되는 시도와 실패는, 단지 비만이 아니라, 삶의 의욕마저 잃게 만들었고, 우울증까지 동반된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구석기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7명의 출연자들은 멀리 필리핀의 팔라완 섬의 타투바투족 마을, 가는데만 꼬박 2박3일이 걸린, 이곳 필리핀 정글에서 그들은, ebs판 '정글에서 살아남기'의 주역이 된다. 

20일간의 구석기 생활 체험의 요체는 곡류와 소금의 제한이다. 채집과 사냥에 의존했던,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구석기인들처럼, 그들도 사냥을 하고, 정글에서 채집을 하여 수확한 채소와 살코기는 허용된 반면, 그 이외, 일절 가공된 양념과 곡류는 허용되지 않는다. 허용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한끼의 식사 외에, 정글에 던져진 이들은 스스로 먹거리를 구해서 생활해야만 했다. 

스스로 먹거리를 구해야 하는 여정에서 당연히 곡류는 얻어질 수 없다. 하루 종일 정글을 뒤지고 얻어낸 것은 몇 개의 열매와, 하다못해 박쥐 고기조차 반가울 정도의 육류일 정도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평소에 체중때문에 잘 움직이지도 않았던 몸을 이끌며 먹거리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먹거리를 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도시의 거리조차 걷는데 익숙하지 않았던 몸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기 십상인 습한 필리핀 정글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고,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던 에너지원 탄수화물이 고갈되자, 사람들은 어지럼증, 구토 증상을 호소하고, 신경조차 예민해져, 함께 생활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적 상황까지 빈번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 중 누군가가 포기하는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여섯 명의 출연자들은 조금씩 구석기식의 정글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3일마다 측정되는 체중에서, 체중과 허리 둘레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그 중, 복부 비만도 여부를 보여주는 허리 둘레의 감소가 눈에 띤다. 아직 획기적인 몸매의 변화는 없지만, 놀라운 것은, 다이어트를 통해서도 쉽게 감소되지 않던 내장 지방이 먼저 연소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7일간의 성공적인 구석기 체험을 겪은 여섯 명의 참가자들은 다시 두 팀으로 나뉜다. 필리핀에 남아 구석기 생활을 영유하는 팀과, 한국으로 귀국해 구석기처럼 생활하는 팀으로 생활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귀국하여 구석기처럼 생활한 3명의 참가자들은 그 이전에 비해 한층 둔감해진 체중 감소가 드러났다. 제 아무리 구석기인 처럼 생활한다 하여도, 마트에서 음식을 골라 조리를 하게 된 이들은, 결국 소금 등의 양념을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필리핀에서처럼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정글을 누비던 것과 달리, 활동량 역시 한결 줄어 들었던 것도 체중 감소의 정체를 불러왔다.
하지만 단 7일 간의 구석기 체험으로, 변화된 3인은, 체중의 정체 사실을 알고 스스로 노력하기에 이른다. 조금 더 많은 신체적 움직임을 위해, 주변의 농장 등을 찾아가 일하기를 자청했고, 거리에서 맛본 음식에 경탄을 거듭한 것도 잠시, 다시 본연의 구석기 식단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필리핀에 남은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어부의 가정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고기를 잡고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한 이들이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갖은 양념을 한 음식은 손도 대지 않고, 오로지 익힌 고기와, 각종 과일만으로 한끼를 때운다. 

그 결과 여섯 명의 출연자들은 체험 첫 날 측정된 각자의 몸무게에서 한결 줄어든 몸무게는 물론, 그들을 괴롭히고 있던 각종 병적 신체 증상이 한결 감소된 평가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길지 않은 체험을 통해, 탄수화물과 소금이 제한된 식사를 하는 습관을 가지데 된 것이다. 탄수화물이나 각종 양념이 들어간 음식이 맛있다는 건 알지만, 거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리핀 정글을 누비고, 농장 체험을 하면서, 출연자들은 늘어난 체중과 함께 줄어들었던 삶의 자존감을 되찾았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정글을 누비며 자신의 먹거리를 얻어내던 수확의 기쁨, 걷기도 힘들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의 터전을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것이 버거웠던 사람들이 정글에서의 동지애를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 나가면서, 여느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특훈과는 다른, 인간적 자존감을 회복해 간다. 더구나, 주어진 다이어트 식단이 아니라, 정글 속에서 생존을 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먹거리들을 통해 익숙해진 구석기 식단은, 다이어트와 요요를 반복하는 여느 다이어트 프로그램과 달리, 탄수화물과 소금기가 없이도 생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해준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자면, 구석기인처럼 먹고 살기 역시 고도 비만의 출연자들의 체중 감소를 가져온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일종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함의는 깊다. 무엇보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왜곡된 식생활의 시초가 어디였는가를 짚어보며, 그 문제점의 해결에 프로그램의 관점을 놓치지 않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식의 병리학적 다이어트가 아니라, 자력 갱생 프로그그램을 운용했다는 점이다. 스스로 정글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삶을 개척했던 그 몇 일간의 시간들이, 무기력했던 출연자들에게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뿐만 아니라, 삶의 자신감을 되찾아 주었다. 몇 kg의 살이 아니라, 내장 비만에서부터 획기적으로 변화된 출연자들의 신체 조건에서 보여지듯이, 살과의 전쟁이 아니라, 사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우리 사회 비만과의 전쟁의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구석기인처럼 생활하기'는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 DNA는 바로 구석기 시절, 그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구석기인처럼 생활하기는 그저 다이어트를 위한 편의적 선택이 아니다. 바로, 인간 본연의 환경에의 회귀, 본향에의 복귀, 바로 그것이다. 


by meditator 2014. 7. 25. 12:57

<괜찮아 사랑이야>는 2회 전국 기준 9.1%의 시청률을 보였다. (닐슨 코리아) 그 전날 방영된 1회 9.3%에 비해 0.2%가 내려간 결과이다. 더구나 동시간대, <조선 총잡이>와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보이며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홀로 하락한 것이라 수치와 상관없이 그 낙차가 커보인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경우, 10.6%로 10%의 장벽을 넘어서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보였지만, 동시간대 1위는 조선 총잡이에게 내주었다. 한편, 월화 드라마로 가면, 최지우가 주연인 <유혹>은 8,3%로 그 전회 9%에 비해 하락폭을 보이며, 첫 회부터 동시간대 <트라이앵글>에게 1위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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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 투데이)


최지우가 누구인가? 2002년<겨울연가>로 '지우히메'라 불리며 한류 붐을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 하는 권상우 역시, 내용상 논란은 있었지만, 2013년 <야왕>을 통해 25% 내외의 시청률 고공 행진 기록을 세웠던 스타 중의 스타이다. 장나라나, 장혁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새로운 작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조차 그의 전작 <추노>를 패러디할 만큼, <추노>의 이대길을 연기한 장혁은 그 누구도 대체불가능한 스타이다. 장나라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20002년 <명랑 소녀 성공기>를 성공시킨 이래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오가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으며 스타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조인성임에랴, 2001년 <피아노>로 두각을 내기 시작하여, 2002년<별을 쏘다>,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로 정점을 찍었던 그가, 2013년 <괜찮아 사랑이야>의 감독 김규태와 작가 노희경과 함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화려하게 군 제대 이후 복귀를 성공시켰다. 그와 함께 하는 공효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가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주군의 태양(2013년)>, <최고의 사랑(2011년)> 등 늘 동시간대 1위는 물론 가장 트렌디한 화제작들이었다. 

이렇게 2000년대 초반 가장 화려한 정점을 찍던 스타들은 2014년,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분야를 들고 귀환했다. 하지만, <유혹> 첫 회 시청률 7.6%, <운명처럼 널 사랑해> 첫 회 6.6%, <괜찮아 사랑이야> 첫 회 9.3%로 스타의 귀환이라기엔 조촐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엄밀하게 최지우건, 조인성이건, 장나라, 혹은 장혁이건,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값으로 드라마를 보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들 스타의 조촐한 귀환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혁 장나라
(사진; tv데일리)

최지우의 경우, 전작 <수상한 가정부>를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봤지만, 일본 드라마를 복사한 듯한 <수상한 가정부>의 내용은 우리나라 실정에 어울리지 않았으며, 최지우의 연기 역시 원작<가정부 미타>의 마츠시마 나나코의 연기와 비교되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유혹>으로 돌아온 최지우는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빼어들었다. 그녀와 함께 등장한 권상우 역시 마찬가지다. <야왕>을 통해 시청률의 성취는 얻었지만, 여주인공 주대해 역의 수애에 밀려 제대로 활약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겼던 권상우는 <메디컬 탑팀>을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해 보지만 여의치 않았고 이제 <유혹>을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복귀하였다. <유혹>은 멜로물로 최지우, 권상우에 이정진, 박하선까지 네 남녀의 얽히는 상황은 영화 <은밀한 유혹> 등을 통해 뻔하며, 전개는 예측가능하지만 막상 드라마 속 최지우와 권상우는 그런 뻔한 드라마 속에서도, 드라마를 놓지 못하게 할 만큼, 각자 본연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조기 폐경을 맞이하였다지만 자태 자체만으로도 중년의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내뿜는 최지우가 아니라면,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순수해 보이는 눈빛을 잃지않은 권상우의 순수함이 없다면, 유혹이란 드라마는 성립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매력만으로는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 버거운지, 시청률은 주춤하고 있는 편이다.

<학교 2013>에서 선생님 역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장나라 역시 그녀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인 로맨틱 코미리로 복귀했다. 자존감이 떨어지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김미영이란 캐릭터를 표현하는 장나라의 안쓰러운 연기와 눈빛이 아니라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은 그저 민폐녀에 불과할 뿐일 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늘 눈빛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캐릭터만 연기하던 장혁은 모처럼 멜로물로의 귀환이었다. 덕분에, 방송 초반,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추노>의 적을 바라보는 눈빛과 헷깔렸고, 이건의 호탕한 웃음은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연기 잘 하는 배우답게,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이건 캐릭터를, 가장 진지한 자세로 선보이는 장혁의 연기는, 이상한데 중독성 있는 캐릭터로 이건을 변모시킨다. 재벌남과 소심한 평범녀의 그저 그런 뻔한 동거기일 수도 있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독특한 드라마로 변신시킨 건, 두 사람의 호연에 힘입은 바 크다. 덕분에, 가장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획득하며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 

(사진; osen)

그에 반해, 단 2회에 불과하지만, 하락세를 겪고 있는 조인성, 공효진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앞날을 점치기 어렵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조인성, 공효진이 각각 분하고 있는 장재열, 지해수란 캐릭터는 이전의 조인성과 공효진이 연기했던 캐릭터에 비해 역시나 큰 변주가 없는 캐릭터들이다. 아니, 데뷔 이래, 작품의 장르가 어떠하건, 조인성과 공효진은 늘 그다지 큰 변주가 없는 연기를 해왔고, 그것이 시대적 트렌드에 맞추어 두 사람에게 스타의 자리를 넘겨 주었었다. 하지만, 이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해오던 연기를 해오고 있지만, 작품이 변수가 되고 있다. 대놓고 섹스를 논하며, 정신적 장애를 '감기'쯤으로 치부하며 다루고, 흠모했던 선배와, 첫키스를 했던 후배와 한 집에 살며, 원하지 않던 추리 소설가까지 한 집에 들이는, 미드의 소동극과도 같은 <괜찮아 사랑이야>는 시청자들의 호불호에서, '호' 편에 서는 사람들의 입지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치유하겠다는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면면과 행보에서 부터 심상치않은 상황을 들이대며, 그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낯설게 여기고 있기에, 그 속에서 가장 익숙한 장기를 선보이는 조인성, 공효진조차 돋보이기 힘든 상황이다. 과연 이 드라마가 2014년에 어울리는 실험작으로 박수를 받을 것인지, 또 한번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 될지 미지수다. 

비록 동시간대 1위라는 찬란한 성취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 화려한 성취를 보인 이래, 십 여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스타로서의 이름값을 놓지 않는 이들 배우들은 여전히 드라마 속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저절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어야 할 것같은 아련한 최지우의 눈빛,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할 것같은 장나라의 눈빛, 연기를 할때만큼은 세상 그 어느 여배우보다도 아름답게 빛나는 공효진에, 그의 눈빛은 그의 어눌한 대사조차도 잊게 만들만큼 순수한 권상우에, 어색했던 웃음마저도 설득시켜버린 장혁의 연기, 그리고 여전히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적인 조인성의 웃음까지 때론 뻔하고, 그저 그렇거나, 적응하기 힘듬 드라마 조차도, 그들의 연기로 인해 참아내게 만드는 그들은 여전히 스타들이다. 하지만 박한 시청률의 세상에 스타들도 예외없이 고전중이다. 


by meditator 2014. 7. 25. 10:16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농촌 드라마라 하면, <대추 나무 사랑 걸렸네>등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원일기>다.

100세를 넘긴 할머니까지 모시고 사는 층층시하 대가족,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땅'을 은혜라 여기며 사는 사람들, 남의 집 밥 그릇 갯수는 물론, 속사정까지 헤아리며 덮어주는 이웃 사촌들, 산업 사회 이전의 '노스탤지어'가 가득한 농업 사회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그려내던 <전원일기>는 바로 농촌 드라마의 전형으로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현재의 농촌 현실을 배경으로 한, 보다 현실적인 농촌 드라마가 등장한다. <푸른 거탑> 시리즈에 이어, 돌아온 거탑 시리즈, <황금 거탑>이다.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을 패러디한 제목으로 등장했던 <푸른 거탑>은 병원 사회의 거대한 조직 그 이상으로 위계적 질서가 정연하게 갖춰진 군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푸른 거탑>이란 제목을 빗대어 썼다. 그 후속작으로 돌아온 <황금 거탑>은 거탑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군대나, 병원과 같이 드러난 위계적 질서는 없지만, 지도원이 계급이 되고, 땅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관계가, 선배 영농인과 후배 영농인의 처지가  마치 군대의 계급 만큼이나, 나름의 질서가 잡힌 거탑 마을을 배경으로 오늘의 농촌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원 일기>에서 주인공은, 올곧게 농촌을 지켜가는 우직한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세월이 바뀌고, 천하지대본이, 수입 개방의 파고에 맞서 힘겨운 싸움이 되어도, 신념을 가지고 땅을 지켜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4년의 농촌은 다르다. <푸른 거탑>에서 이등병으로 고생하던 이용주는 드라마가 시작되자, 이제 제대를 하고 사회인이 되었다. 하지만 '푸른 거탑'에서 놓여난 기쁨도 잠시,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알바를 해도, 직장을 다녀도, 세상은 자꾸 그를 밀어낸다.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달파 하는 그에게 친구는 귀가 솔깃한 정보를 들려준다. 즉, 농촌에 땅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부가 저리의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가 선택한 것은 농촌행. 한 일년 농사를 짓는 척하면 목돈이 굴러 들어오겠다는 심사에, 그는 농촌을 향한다. 2014년의 농촌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위장 귀농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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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뉴스)

그가 농촌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양하다. 다른 마을과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은 거탑 마을이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녹록치 않다. 장가 못간 노총각에, 우즈베키스탄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슈퍼 주인에,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소작농에, 그것도 감투라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드는 지도원에, 실제 우리 농촌 어느 마을에선가 만날 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거기다 이 농촌 마을의 첫 번 째 에피소드는 한 술 더 뜬다. 위장 귀농인의 첫 마을 정착기인가 싶더니, 난데없이 최종훈이 파던 구덩이에서 나온 돌 한 덩이를 둘러싸고 벌이는 위성 해프닝이다. 실제 얼마전 비닐 하우스를 뚫고 떨어졌던 위성 조각 사건을 빗댄 이 해프닝을 통해 '황금'을 지향하는 거탑 마을 사람들의 맹목적 '추수주의'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거기엔 이장이고, 지도원이고, 땅을 가진 사람이고, 소작농이고가 없다. 온 마을 사람들이 너도 나도 땅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 그 자체다. 

이렇게 가장 농촌적이지 않은 주인공으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첫 회를 연 <황금 거탑>은 하지만, <푸른 거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을 유발하듯, 항상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 부대 전체를 들쑤시는 해프닝으로 번져가듯, 최종훈이 우연히 발견한 돌 한 덩이는 마을 전체를 위성 찾기라는 난리법석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푸른 거탑> 출연자들의 캐릭터는, <황금 거탑>에서도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된다. 잘난 체 젠체 하지만 기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닌 김호창이라던가, 군대 내 말년 병장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노총각 영농인의 모습으로 재현해낸 최종훈이라던가, 음험한 행동파까지, 이게 푸른 거탑 병사들이 농활을 나온게 아닌가 싶게, 캐릭터와 이야기의 구조는 <푸른 거탑>과 흡사하다. 

이렇게 신선한 듯, 익숙한 <황금 거탑>의 화룡점정은, 오히려 극 중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가 마무리 된 후 보여진, 김재우의 '농기어'에 있다. 
<탑기어>를 패러디한 '농기어'는 트랙터를 등장시켜, 김진표의 멘트를 그대로 모사한 김재우의 진행에 따라, '탑기어' 식으로 트랙터의 성능을 하나하나 검증한다. 가장 진지한 자세로 검증해 들어가는, 하지만 그래서 더 시속 20km 농기계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농기어'는 어떤 면에서는 본편보다도 더 다음 회차가 기대되는 <황금 거탑>의 매력적 요소로 대번에 자리잡았다. 


by meditator 2014. 7. 24. 11:25

또 한 편의 노희경표 드라마가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와의 노희경표 드라마와 달리, 언제나 그의 드라마라면 만나게 되던 배종옥, 김규철 등 익숙한 조연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전히, <괜찮아 사랑이야>를 노희경표 드라마라고 정의내리게 하는 걸까?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흰머리의 사내(양익준 분)가 교도소를 나가게 되었다고 동료 죄수들과 환호작약한다. 그리고 다시 장면이 바뀌어, 시끌벅적한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파티, 디제잉을 하는 인기 추리 소설가 장재열(조인성 분)을 향해 그의 생일 케익이 등장한다. 그 생일 케익을 보고 장재열은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분위기에 맞추어 촛불을 끈다. 그 순간, 등장한 조금 전 교도소의 흰 머리 사내, 다짜고짜 조인성의 얼굴을 가격하고, 집어든 포크로 그를 찌른다.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듯한 그 사내를 제압하기 위해 너도 나도 덤벼들고, 그 소란 속에서 쓰러지던 조인성, 미소를 띠며, '또라이같은 새끼'라며 나직이 읍조린다. 바로 이 장면,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역설적으로 태연한 척, 그 상황에 냉소적으로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주인공, 바로 그것이 이른바 '노희경 표' 드라마라는 도장 '꾹'의 상황이다. 그렇게, <괜찮아 사랑이야>는 노희경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음을 알린다. 

거침없이 '섹스'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혼자 '자위'를 한 듯한 상황이 번연히 보이고, 자신의 문제가 성행위를 할 수 없음을 시인하는 등, 공중파에서 대놓고 '성인 드라마'임을 인증하는 각종 장치들이 등장하는 것도, 가식 따위는 던져 버리고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하고 살지 않아 라는 듯한 극적 요소들 역시 예의 노희경 식 직설이다. 낯뜨거운 동화 따위는 던져 버리고, 어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겠다는 각오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제목의 '사랑지상주의'적인 정의와 달리 온통 미친 놈 투성이이다. 다짜고짜 교도소를 나오자 마자 동생을 포크로 찍어대는 형에서 부터, 식구들이 돌아가먀 뚜드려 패는데도 저항 한 번 하지 않는 성전환 수술 환자, 그리고  클럽에서 자신의 주치의를 날라차기하고 택시를 뺏어 광란의 질주를 하는 정신분열증 환자까지, 세상은 온통 미쳐돌아가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런 '미친 놈들'이 주인공이 되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소설을 쓰는 추리 소설가 장재열과, 그런 '미친 놈들'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 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진; 스포츠 경향)

그런데 가만히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누가 누구를 미친 놈이라 할 만 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형에게 포크에 찔린 지 몇 개월 후, 샤워를 하고 수건을 꺼내 닦고 욕실을 나오는 장재열, 그의 욕실은 하다못해 수건 색깔에 이르기까지 극단적 색감의 대비로 모던하지만, 정작 그가 그런 욕실에서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편집증'이라 정의내리기에 손색이 없다. 
지해수와 그 주변도 그리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 스스로 관계 부적응이라 정의내리는 지해수는 그렇다 쳐도, 그녀의 어깨에 다정스레 팔을 두르면서도 부하 직원과 키쓰를 나누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애인도 또 다른 의미의 '미친 놈'이요, 그녀와 함께 살게 되는 조동민 역시 전처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정신과 상담 전력을 가진 정신과 의사요, 또 다른 동거자 박수광의 '뚜렛 증후군' 역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몇 분, 몇 십 분 늦은 채, 혹은 빠르게 돌아가는 시계처럼, 등장인물 모두가, 어딘가 정상의 궤도와는 비껴있는 사람들뿐, 또 하나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이처럼, 정신병리학적 분석이 필요한 다수의 등장인물이 1회부터 번다하게 벌려진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병리학적'인 진단이 필요한 현대인들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런 상징적인 드라마적 장치는 동시에 <괜찮아 사랑이야>의 딜레마가 될 것임을 1회부터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희경의 전작, <그들이 사는 세상>이 방송가 사람들을 통해, 방송국이라는 특수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통해, 현대인의 보편적 삶의 단편을 길어올리려고 했던 노력이, 이제 <괜찮아 사랑이야>을 통해 '정신병리학적'으로 접근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분석해 내려는 시도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러기에, <괜찮아 사랑이야>를 호의적으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지점, 과중한 경쟁과 삶의 성공을 온전히 개인적 존재로서 부담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드러나는 부작용인 정신병리학적 증후군에 대한 '동의'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웬 미친 놈들이야!'라는 반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다분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저 그들이 사는 세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이 보여질 수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자신을 공격한 정신 분열증 환자를 대신 나서서 제압하는 장재열을 오히려 병을 들어 머리를 깨면서 말리는 지해수, 그런 환자를 자신이 탈골이 되는 아픔을 참으면서 끝내 놓치지 않고 무사히 병원으로 돌려보냈던 지해수, 극악한 범죄적 성향에 대해 끝내, 그것을 참아내는 인간의 보편적 성선설을 주장하는 지해수의 '긍정성'을 통해, 이미 1회에서, 드라마는 이 드라마가 '정신병리학적'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그 무엇을 제시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아니, 드라마는 온통 미쳐 돌아가는데, 역설적으로 제목은 '괜찮아 사랑이야'라며 다독인다. 

과연, 야심차게 시작한 노희경의 치유적 시도가 과연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런지, 아니면 또 한편의 '웰 메이드' 그들이 사는 세상이 될런지, 첫 회, 동시간대 3위는 어쩐지 불안한 출발선이다. 


by meditator 2014. 7. 24. 09:39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개성 부근 판문점에서는 3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6.25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정전 협정 서명식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북한의 김일성, 중국의 팽덕회, 유엔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정정 협정서에 서명을 하였다.( 그곳에 남한 대표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종이로 된 문서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전 협정이 발효가 되는 시간은 밤 10시, 10시가 되기까지, 155마일의 휴전선 각 고지에서는 마치 그간의 한풀이라도 하듯, 남과 북이 가지고 있는 모든 포탄을 소비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무차별 포격,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밤 10시,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은 적막에 접어 들었다. 정전이다!


그로부터 61년이 지난 2014년의 7월 22일, <다큐 공감>은 정전 협정 61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민족의 운명선이 되어버린, 휴전선의 존재를 되돌아 볼 '운명의 북위 1도'를 방영함으로써, 6.25 전쟁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운명의 북위 1도'는 올해 97세가 된, 6.25참전 당시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이었던 에드워드 로우니의 회고록 제목이다. 그는 맥아더 장군에서 북한의 남침 소식을 최초로 전한 장교였으며, 인천 상륙 작전과 흥남 철수 작전에 참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의 책을 통해 전해준, 우리 민족의 운명선 '38선'의 결정 과정은 바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했지만, 전혀 우리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던 6.25전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1945년 8월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항복 이후, 소련군과 함께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된 미군은 '점령군'으로서 과연 군사 분계선을 어디에 정할 것인가를 놓고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작전팀의 장교들이 여러가지 조사를 통해 취합한 결과는 지금의 38도선이 아닌, 북위 39도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9도선은 한반도의 가장 잘록한 허리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혹시나 있을 지 모를 북의 도발시 방어에 가장 유리한 위치였으며, 그러기에 애초에 '도발'의 의도를 가지기 조차 여의치 않게 만드는 절묘한 위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교들의 조사 결과에 대해 전략 기획단의 링컨 장군은 'NO'라고 답한다. 당시 인기리에 팔리던 책 중에는 니콜라스 스파이크만의 '평화의 지리학'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스파이크만의 주장은 전세계 주요 사건들은 북위 38도선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파이크만의 이론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링컨 장군은 스파이크만의 이론을 신봉했고, 그의 신념에 따라 남과 북의 경계선은 전략적으로 유리했던 북위 39도가 아니라, 155마일의 가장 긴 전선을 가진 38도선이 되었다. 

<다큐 공감>은 미 육군 역사 재단에서 6.25 전쟁과 관련된 역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스토이 부부가 에드워드 로우니를 비롯한 당시 참전 군인과, 38도선 주변에 살았던 민간인 등을 찾아다니며 당시 역사적 상황을 수집하는 과정을 함께 한다. 이제야 회고록을 낸 에드워드 로우니씨는 회한에 젖어 말한다. 당시 자신이 조금 더 강경하게 38도선의 결정을 반대했더라면 하고. 6.25를 연구하는 교수들도 입을 모아 말한다. 39도선이었다면, 어쩌면 전쟁은 없었을지도 모를 거라고, 아니 전쟁이 있더라고 전략적 우위를 점한 39도 선으로 인해, 남침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루어 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고. 역사에 'if'는 없다지만, 퇴역 미군 장교의 후회스런 한 마디를 통해 전해들은 우리가 간여할 수 없었던, 우리 역사의 진실은 안타깝다. 


아버지가 평양 출신이었던 그래서 6.25 이후 다시는 고향을 찾지 못했던, 재미 교포인 스토이 부인은, 말한다. 역사란, 그 기록을 후대에 남겨 전해주어야만 역사로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당대에서 사라지는 사실을 역사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고향에 가지 못한 아버지 대신, 아버지로 하여금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한 6.25 전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한국과 미국을 종횡무진 누빈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 역사재단 연구자의 입을 빌어, <다큐 공감> 역시 61주년을 맞이한 정전 협정 기념의 의미를 되묻는다. 과연, 정전 협정의 그 순간에 조차 참석하지 못한, 우리에게, 38선이 결정된 역사적 아이러니를 통해 6.25 전쟁의 실체를 반문한다. 

그리고 이런 <다큐 공감>의 시도는, 6월 24일 방영된 '마지막 전사자' 등을 통해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다. 즉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하지만 정작 우리 손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던 비극적 현대사에 대한 꾸준한 발굴 작업이다. 


by meditator 2014. 7. 23. 17:19

tvn은 7월 8일에서 7월 22일, 3회에 걸쳐 명문대 출신 멘토들이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공부 솔루션'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방송의 제목이 된 <이것이 진짜 공부다>는 이미 2012년에서 2013년까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화제를 모았던 강연회였으며, 2013년 12월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이 강연회의 주된 연사들이자, 책의 저자들은, mc를 맡은 서경석을 비롯하여, 2001년 수능 상위 1%이자, 공부 멘토링 기업 '공신 닷컴'의 강성태, 자기 주도학습 '에듀플렉스'의 이병훈, <하루라도 공부할 수 있다면>의 저자이자, '데이스터디'의 박철범이다. 

강연과 달리, 프로그램은 이들 이른바 '호모 아카데미쿠스'라 불리는 이들 멘토들의 지원 아래, 공부 열들아 세 명을 선정하여, 이들이 일정 시간 동안 변화된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멘토링의 효율성을 극대화시켰다. 

그에 따라 첫 회는 멘토링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을 선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 고등학교 1학년이지만, 잦은 방송 출연과, 래퍼가 되겠다는 이유로 중학교 때 이후로 공부를 등한시 해, 전교 꼴찌를 겨우 면한 성적을 보인다. 아버지 김구라를 공부, 하다못해 독서의 필요성을 강권하지만, 김동현은 그저 책상 앞에서 앉아있을 뿐이다. 
조갑경, 홍서범의 딸인 중학교 1학년생 홍석주, 꿈은 서울대 출신 가수이지만, 현실은 수업 시간 내내 이쁜 필기를 하느라 수업 내용을 채 쫒아가지 못하는 산만한 학생이다. 부모들은 잔소리를 많지만 딸의 산만함에 일조할 뿐이다. 
김학철의 아들, 중학교 2학년생인 김요셉, 중학교에 들어와서 점점 더 떨어지는 성적, 하지만 좋아하는 과목에만 열성적이며, 그런 요셉에게 부모들은 과잉 관심과 무관심의 양 극단의 태도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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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짜 공부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7316 테스트'라 하여, 1000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출한 통계에 근거한 공부 유형 검사법을 실시한다. 그 결과 김동현은 그의 꿈이 래퍼인 게 무색하지 않게 외골수 형이었고, 홍석주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속이 없는 허영형 등이었다. 그리고 그 유형에 맞게 각자 맞춤형 공부 해법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를 죽기보다 싫어 했던 김요셉에게 굳이 영어 단어를 외울 것을 강요하지 않고 독해를 중심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이렇게 요셉이처럼 수학이 어려운 김동현에게는 수학 비법을, 국어가 어려운 석주에게는 단기간에 국어 점수 올리는 법을 통해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해 가고, 그 결과 몇 주만에 놀라울 정도의 성적을 얻어내게 되었다. 

그런 기적같은(?) 성취를 1,2회에 걸쳐 보여주고, 이어서 3회, 그런 성취를 얻어낸 호모 아카데미쿠스 3인방의 짧은 공부 비법 강연과 질의 응답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것이 진짜 공부다>의 3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단 몇 주만에 놀라운 성취를 보인 학습 지진아 세 사람의 성취를 보면서 사람들은 놀라워 하며, 연단에 선 3인의 호모 아카데미쿠스의 말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랴 꼭꼭 받아적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무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 정작 그 아이들은 한 아이도 빠짐없이 방송 출연 등의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면 학교를 빼먹지도 않았고, 학교 공부는 물론, 당연히 학원에, 과외까지 받는 실정인데, 아직도 공부하는 법을 모른다? 어디 그 학생들 뿐인가, 서울과 부산에서 이들이 했던 강의장을 꽉꽉 매웠던, 그리고 이들의 책을 베스트 셀러로 만들고, 3회 짧은 이들의 강연이나마 듣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학부모와 학생들, 그들의 갈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습다고 할른지 모르겠지만, 공부에도 유행이 있다. 국영수가 최고인 양 하더니, 언제인가 부터는 논술 열풍이 한바탕 휩쓸고 가고, 이제는 자기 주도 학습이란다. 말로는 '자기 주도' 학습이라면서, 멘토가 필요하단다. 그리곤 학습 부진아를 데려다 놓고 단기간에 시험 성적 올리기 비법을 가르쳐 준다. 
이른바 1000 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 뽑았다는 유형 검사 결과는, 한동안 유행했던 성격 유형 검사와 그리 다르지 않고, 화려한 수사로 소개받은 호모아카데미쿠스 강사들의 공부 비법은, 수학하면 개념, 영어에는 단어, 국어에는 객관성! 졸면서 들었던 수업 시간 선생님의 충고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학생 좀 가르쳐 본 사람이면 안다. 아니 대학생 때 과외라도 해본 사람이면 안다. 가장 쉬운 것이, 성적 낮은 학생 단기간에 성과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왜? 학생이 공부할 의지만 있다면, 그만큼 손대기 쉬운 상대가 없는 것이다. 조금만 그들이 가진 공부의 빈틈을 공략한다면 당장의 성과를 보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학생들이다. 문제는, 정말, 그들이, 그런 방식의 공부를 계속 '자기 주도적'으로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게 된다면, 전국의 수많은 학원들이 왜 성업을 하겠는가 말이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학원을 보내다보내다 안되니, 이젠 자기 주도 학습이라며, 학습 개조 프로그램까지 등장한다.

결국 이런 열풍의 근원에는, 어떻게든 남들보다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남들과는 다른 획기적인 비법으로 내 아이를 대학에 보내겠다는 부모의 왜곡된 열망이 자리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국영수를 선행학습 시키고, 남들보다 앞서 논술을 시키고, sky 학생들을 통계 조사 해보니,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한 아이들이 많다는 통계 조사가 나오자, 너도 나도 내 자식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혁신하겠다 멘토들을 불러 들인다. 

애초에 '자기 주도'와 공부 솔루션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멘토라는 단어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고민해 보지도 않고, '자기 주도'라는 말에 숨겨진 진짜 의미는, 자기 스스로 도전과 실패를 겪어 내야 한다는 것을 외면한 채, '자기 주도'의 열매만을 따먹기 위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한 사람의 방법론만을 이식해 오겠다는 것이, 최근 자기 주도 열풍의 실체가 아닐까.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슬픈 진실은, 사실 교실에서 선생님이 해주시는 진심 어린 충고와 그리 다르지 않은 그 멘토들의 해법에 많은 학부모들이 감격해 마지 않는 우리의 무너진 교육 현실이다.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전해주시는 공부 해법은 '알량하고, 그저 돈을 들여 배우는 '멘토링'이어야 그럴 듯해 보이는 슬픈 현실, 그래서, 이제는 교육 방송도 아닌, 텔레비젼이 공부를 가르치겠다고, 공부의 비법을 전수하겠다고 큰소리치는 현실, 아니, 그것보다 래퍼가 되고 싶어도, 가수가 되고 싶어도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 그게 우리의 교육이다. 


by meditator 2014. 7. 23. 10:50

2011년 7월 18일 시작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3주년을 맞이하였다. 

'힐링'이란 말 그 자체만으로도, 어쩐지 위안이 될 것 같은 시기에 태어나, 이제 '힐링'이란 말 자체에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는, '힐링'마저 둔감해져 버린, 아니, '힐링' 만으로는 그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는 고단한 시대까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시대적 감수성과 그 치료 방법의 '난치'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누가 나오는가에 따라 화제가 되었던 <힐링 캠프>도 이젠 그 누가 나와도 어쩐지 뻔한 그저 그런 토크쇼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3주년 초대 손님은 신애라였다. 왜지? 왜 신애라가 3주년 특집의 초대 손님일까? 의아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간간히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mc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 차인표 덕분에 신애라는 그녀 남편의 언급처럼 월드컵 경기라도 되는 듯 4년에 한번 텔레비젼에 출연할까 말까 하는데도, 어쩐지 익숙한 인물이다. 
더욱이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전국민적 드라마의 남여 주인공으로 만나 화제를 몰며 결혼까지 한 그들 부부의 삶은 그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전국민적 관심의 영역 바깥에 놓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굳이 궁금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부부의 아내, 신애라가 3주년 특집이라니!

하지만, 이제는 신애라 그 자신보다도, 차인표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텔레비젼에 등장하게 된 그녀는, 그 예전 '피비 케이츠'에 비유될만한 상큼한 외모가 세월에 그리 빗겨가지 않은 듯이 여전한 모습으로, 아니 그 외모보다도, 더 유쾌상쾌 발랄한 성격을 지닌 아내이자, 엄마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를 빛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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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리나라 연예인들 중 몇 손가락안에 드는 '잉꼬 부부'로 자타가 공인하는 차인표, 신애라 부부이지만, 되돌아 보면, 언제나 그 시점은 차인표라는 남편의 관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로그램의 주된 촛점이 등장인물 차인표에게 맞춰지다 보니, 그가 여전히 사랑하는, 심지어 다시 태어나도 다시 결혼하고픈 완벽한 아내 신애라라는 보여지는 아내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3주년은, 늘 그렇게 차인표의 시점으로 보여진 완벽한 아내 신애라를, 신애라의 입장에서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내의 입장에서 신애라는 차인표를 통해 그려지던, 그 완벽한 아내의 정반대편에 위치한다. 아니, 완벽하다고 칭해지던 그 칭송의 이면을, 신애라 자신이 낱낱이 까발려 낸 것이다. 

즉,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아내라고 보여지던 인물이, 사실은, 어쩌면, 남편 입장에서는 '외롭기까지 할 정도로, 자기 주도형의 인물이라는 신애라의 분석이다. 즉 이사를 해도 남편에게 의논한 적이 없고, 남편이 바깥 일을 보는 동안 이사를 해치우고, 집안 일 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는 남편을 큰아들이려니 하는 그런 '독재자' 아내의 모습으로. 

그러면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신애라를 3주년 특집에 초대한 첫 번째 이유를 신애라를 통해 설명해 내고 있는 듯하다. 힐링 이란 이름의 위로, 즉, 그 누군가로부터의 막연한 위로보다, 이제 어쩌면 정말 필요한 것은, 신애라처럼 자기 자신을 직시해 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라고.
그렇듯, 신애라는 세간의 평처럼 행복한 가정, 그리고 남편의 절대적인 신뢰의 이면에, 자기가 아니고서는 견뎌내지 못하는, 자기 중심적인, 자기 주도적인 그 자신의 편향된 성격이 있음을 털털하게 정의내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가정의 행복이란 것이, 그런 자신의 성격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주는 남편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음을 자인한다. 심지어, 다시 태어나도 신애라와 결혼하겠다는 남편 차인표와 달리, 다시 태어난다면, 당연히 결혼이란 것을 해야했던 자신의 세대의 삶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보겠다고 말한다. 자신과 차인표의 만남이, 그리고 세간에 회자되는 두 사람의 행복이 드라마처럼 절대적인 운명, 그 무엇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온 지혜의 산물이라는 것을 덤덤하게 설명한다. 
덕분에 어쩌면 이제는 뻔한 유명인 부부의 그럴 듯한 삶은, 강한 자아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내, 그리고 그런 아내를 존중해주는 남편의, 현명한 부부의 삶으로 재조명된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 특별해지는 과정으로서의 부부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 시간의 토크쇼에서 부터 시작하여, 충만하다 못해 넘쳐나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식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신애라의 자기 평가는 냉엄하고 통쾌했지만, 그 또한 넘치고도 넘치는 연예인 부부의 살아가는 이야기 한 자락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가 3주년의 주인이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이 핵심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 외에, 쉰 명이 넘는 아이를 전세계에 가지고 있고, 그중 두 명을 한 집에서 키우고 있다는 기적같은 사실말이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호혜의 결과에 대해 신애라는 찬사를 거부한다. 그저, 자기가 좋아서, 자기 좋자고 한 일이라고. 

처음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게 되었던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린 나이에 코끼리처럼 두터운 발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운동화를 신은 자신의 발에 박힌 가시를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운동화라도 신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전 세계 자녀들의 입양, 하지만 그들이 오십 명이 되면서, 이제는 그 편지조차도 제대로 읽게 되지 않는 무성의(?)한 과정에 이르기까지를 신애라는 오로지,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라고 정의내린다. 
심지어 한 집에서 키우고 있는 자녀에 대해, 자신은 배 하나 안아프고, 자신의 배아파 낳은 아들과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두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찬사에 찬사를 거듭한다. 

격의없는 그녀의 태도는 자신이 입양한 아이들에게도 견지된다. 굳이 '입양'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고,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가슴으로 낳은 그 과정을 담백하게 공유하는 엄마 신애라는, 그 자체로 감동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들이 입양되었음을 깨닫게 하고, 그러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공유하는 엄마로서의 모습은, '늘 내 자식만은' 하면서, 내 자식을 위해서라며 세상의 온갖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인 부모의 편협한 사랑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게 이방의 아이들에게 그저 조금의 여윳돈을 나눔으로써,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몸을 대신해 가슴으로 낳은 두 딸을 통해, 그녀 자신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신애라의 자신만만한 정의는, 3주년 특집의 '힐링'의 정의가, 바로 나눔이고 베품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힐링'은 상처받은 존재를 전제로 한다. 즉, 자신이 상처받았으니, 그것에 대한 치유가 필요하다는 수동적 자아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좋은 말, 좋은 음악, 갖가지 좋은 치유가 필요하다는 식이, 그간 우리 사회 '힐링'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런 '힐링'조차도 시들해지는 시점에, 3주년을 맞이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신애라라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래서 더 반전인 한 사람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힐링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즉,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며, 그래서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것을 나누고, 베품으로써 행복을 얻어가는 적극적 행복찾기의 자세가, 바로 진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이다. 힐링의 새로운 해석이요, 3주년을 맞이하여, 여전히 유효한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찾아가는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4. 7. 22. 10:02

올 상반기 인터넷과 관련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인터넷 세상에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것이다. 

물밑에서 논의되던 이 화두가 수면 위로 급부상된 계기는 지난 5월 13일  유럽 사법 재판소(ECJ)가 내린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판결이었다.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곤잘레스가 이미 소송이 종료된 자신의 개인적 내용이 담긴 기사를 쓴 신문과 그 기록을 남긴 구글에 대해 '관련 링크'를 유럽 사법 재판소가 '삭제'를 판결해 '잊힐 권리'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sbs스페셜은 이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의 잊힐 권리에 대한 다큐를 마련했다. 

우선 다큐가 제기하고 있는 것은 마리오 곤잘레스와 관련된 '디지털 주홍글씨'의 피해자들이다.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했던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되어 27살의 권영진씨는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한번 유출된 동영상은 수십 개의 사이트로 퍼날라졌고, 이제 그녀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결혼 후 이혼한 임혜진씨는 이혼한 전 남편이 올린 자신의 과거 사진 덕분에 고통을 받고, 결혼 경력이 있는 연예인 A씨는 자신의 결혼 사실만이 남아있는 인터넷 기록 덕분에, 이혼한 지금도 그 누구를 만날 수가 없다. 청소년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미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섹스팅'이 우리 사회에서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혹은 사귀는 사이라 안심하고 올린 자신의 사진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유포되거나, 협박의 빌미가 되었을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청소년은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감당하지 못한 자신의 기록에 대해 개인들은 삭제를 시도한다. 하지만 무한 복사가 가능한 인터넷 세상에서, 개인은 수없이 증식되는 자신의 기록에 거의 대부분 백기를 들고 만다. 그래서 이들을 대신하는 '인터넷 기록 삭제' 업체가 있지만, 그 대표는 말한다. 처음 1년, 그리고 다음 또 1년, 집중적인 삭제로 기록은 점점 줄어들기는 하지만, 혹시나 개인의 하드에 소장되었을 지도 모르는 기록에 대한, 그 싸움이 어쩌면 평생 걸릴 수도 있다고. 

(사진; 뉴스엔)

평범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인터넷 기록에 대해 자신한다. 하지만, '구글링'등을 통해 참가자들의 기록이 나열되었을 때, 대부분 그들은, 기록된 자신의 흔적 중 상당수를 지우고자 했다. 7월 20일 방영된 <1박2일>의 한 선생님처럼, 대학 시절 별 생각없이 쓴 인터넷 댓글이, 그의 예능 프로그램 참가를 계기로 '검증'의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원한다면 그의 인터넷 기록은 무조건 삭제되어야 할까?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잊혀질 권리'와 '알 권리' 사이의 충돌이다. 즉 개인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의 충돌인 것이다. 개인의 신상에 대한 자의적 삭제는, 또 다른 면에서, 한 개인의 과거사에 대한 윤색이나, 왜곡의 우려가 있다고 다큐는 말하고 있다. 실제 유럽 사법 재판소의 판결이 있자, 미국 커뮤니케이션 협회는, 이런 결과가, '정치인이나 무엇을 숨기려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우려가 높다'고 성명을 냈었다. 

그와 관련하여 다큐가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블라인드' 처리이다. 특정 사이트에 게시된 글에 대해 신고가 들어 올 경우, 그 글에 대해 삭제하거나,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관행을 말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신고가 될 경우, 사이트가 그 신고 내용을 판단치 않고, 신고 여부만으로 무작정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가 있으며, 이런 관행을 잘 아는 혹은 이런 관행을 조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나, 연예인들의 기획사가 이를 자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다음, 네이버 등 포탈 사이트에 명예 훼손을 이유로 삭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실제 이 지난 국정 감사 기간 동안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이 요청을 한 상당수가 정치인들이라고 하니, '알권리'의 우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SBS스페셜-나를 잊어주세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회>는 개인의 모든 정보가 무한한 공간 안에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인터넷이란 공간 속에서 잊혀질 권리와, 그 잊혀질 권리의 이면에 숨겨질 수 있는 알 권리에 대해 설명한다. 유럽 사법 재판소의 판결 이후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가 되고 있는, 그러면서 수면 아래에서 쉬쉬하며 문제시되고 있던 디지털 주홍 글씨에 대해, 사례를 들어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또한 그런 인터넷 세상에서의 개인적 권리가 소중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만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알 권리'의 의미도 짚어본다. 결국 개인의 사적 공간을 뛰어넘은, 또 하나의 세계로서 인터넷 세상, 그 권리와, 한계에 대한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균형적으로 담고자 했다. 


by meditator 2014. 7. 21. 11:40

7월 20일 방영된 <1박2일>은 좀 이상했다. 방영 시간이 프로그램 내용으로 미어지다시피 꽉꽉 채워넣던 기존 방영 시간에 비해 방영 시간이 조금 짧아진 듯 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말미에 뜬금없이 출연하신 선생님들이 아닌 다른 선생님들의 인삿말이 들어 앉았기 때문이다. 대신 밤이 새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고 함께 보낸 1박2일 멤버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한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  저녁 복불복 중 첫 번째 턱걸이 시합은 그래도 친절하게 내용이 다 들어갔지만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잠자리 복불복도, 저녁 복불복 중 나머지 내용도 이렇게 했다는 빠른 영상으로 내용을 대신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이유를 다 추측할 수는 없지만, 그중 하나는 지난 주 방송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벌어진 세종고 정일채 선생님에 대한 '신상 털이'와 관련된 논란으로, 애초에 제작진이 원했던 방송 내용을 충분히 다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7월 20일 방영된 <sbs스페셜> '나를 잊어주세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회'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바로 <1박2일>에 출연한 세종고 정일채 선생님에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1박2일>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네티즌들이 정일채 선생님을 '구글링' 했고,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 단 댓글에서 '일베' 회원인 듯한 용어가 드러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고, 그 논란은 결국 7월 20일 방영분에서 정일채 선생님과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들어낸 듯 보이는 상황으로 드러났다. 

논란은 정일채 선생님이 과거에 단 댓글에서 비롯되지만, 엄밀하게 그 시작을 조장한 것은 <1박2ㅣ일> 제작진 측이었다. 7월 13일 방영분에서, 제작진은 전국 방방 곡곡에서 각 과목의 이른바 '스타' 선생님을 모시고 여름 특집을 마련했다. 하지만, 방송의 상당 부분은 이른바 세종고 김탄으로 회자되는 정일채 선생님이 중심적으로 다루어 졌다. 제작진이 앞장서 여러 선생님들 중 '잘생긴' 선생님에게 촛점을 맞추어 방송을 진행시켰고, 그에 관심을 가지게 된 네티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을 인터넷을 통해 해소했고,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 과거에 단 댓들이 문제시되었다. 

제작진의 표나는 한 선생님의 외모에 대한 편애가, 시청자 중 일부의 과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 인해 결국 선생님이 과거 자신의 댓글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전체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물론 시작은 철 모르는 시절이라지만, 뚜렷하게 정치적 편향이 드러난 댓글을 인터넷에 흔적으로 남긴 선생님의 잘못도 있다.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을 모셔 놓고, 그 중 굳이 외모라는 드러난 이미지로 한 선생님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이끌고 간 제작진의 '속된' 편집 방침도 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반인 출연자에게 까지 '검증'을 시도한 일부 네티즌의 과도한 관심 역시 논란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세상에 주목한  이른바 '공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불신'과, 그 드러난 이미지가 상충될 때 쏟아지는 '분노', 즉 우리 사회 지도층에 대한 깊은 배신이 낳은 '단말마적' 분노의 파급 효과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논란의 배경 요인이 된다. 

덕분에, 야심차게 시도한 올스타 선생님 특집은 밤인가 싶더니 어느 틈에 아침에 잠자리에 드는 뜬금없는 편집의 결과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선생님들의 매력과 진정성조차 훼손되지는 않았다. '잘생긴' 선생님의 분량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다른 선생님들의 매력이 드러났다. 한 선생님의 얼굴에 집중하는 대신, 걸그룹 시스타를 보고 반색하는 대신, '옷차림이 그렇다'며 데문데문하게 대하는 '본투비' 선생님인 안산 송호고 김명호 선생님의 매력이 더 부각된 것이다. 1박2일 동안 와이셔츠 단 한 벌의 단벌신사로 버틴 김명호 선생님은, 이미 첫 회에서 부터 독특한 아우라를 뽐내기 시작하더니, 정일채 선생님이 사라진 분량을 대신 '선생님'다운 모습으로 빛낸다. 특히나, 프로그램의 마지막, '말 좀 들어라'로 시작하여, 반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여 불러준 선생님의 1분 스피치는 '스승'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진; 뉴스엔)

결국 '새옹지마'가 된 것이다. 정일채 선생님이 겨우 다섯 번의 턱걸이를 해도 환호작약하는 제작진의 호들갑이 걷혀지고, 대신 그 자리를 다른 선생님들의 매력이, 선생님이란 직업이 편하자고 해서는 안되는 직업이라는 선생님들의 진심이 채워 나갔다. 또한 애초에 준비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분량의 삭감으로 허겁지겁 채워넣은 것인지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선생님들의 진심어린 1분 스피치 이후 이어진 각 학교 선생님들의 한 마디들이, 세속적 관심이 거세된, <1박2일>을 예능 이상의 감동으로 남게 만들었다.

스승의 날 특집 kbs의 <나는 선생님입니다>를 보면, 우리 시대에 교단을 지켜간다는 것이 녹록치 않은 일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직업과, 스승 사이에서 갈등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결국, <1박2일>이란 예능에서, 아직은 처음이라 학생들 등교 지도 하는 것조차 버겁다며, 앞으로 배우고 나아지겠다고 다짐하는 방송을 통해 보여진 새내기 정일채 선생님의 수줍은 고백과, 이후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친 공개적인 반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김명호 선생님처럼 선생님의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며, 장기 자랑에서는 그 누구보다 웃기다라도, 아이들을 향해서는 자신의 진심어린 말을 들어달라 호소하는 광주 성덕고 고영석 선생님의 진심이 있다. 철지난,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진솔했던 '스승' 특집이었다. 


by meditator 2014. 7. 21. 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