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효 기간은 3년이라 했나? 죽고 못살아서 한 이불을 덮은지가 오래 되지 않아, 내가 내 발등을 찍었다 하는게 '사랑'이다. 그런데 50년을 한결같은 사랑이라니? 그게 가능한가? 그런데 가능하다. 왜? 용필 오빠니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ocn의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드라마는 그 시대를 실감나게 재연하기 위해 그 시절의 음악을 등장시킨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래를 만드는 /우리들의 푸른 꿈 /오오오 오오오 '가 울려퍼지는 88년도의 거리를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큼직한 점퍼를 입은 형사들이 질주한다. 그렇게 그 시절 대표적인 가수였던 조용필, 어느덧 그가 데뷔 50주년을 맞이했다. 가수 자신도 어색한 듯, '7순이라매~'라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그 시대가 이젠 '추억'이 되었듯, 그 '가수'도 이젠 과거형이 되었을까? 아니 여전히 목놓아 '오빠'를 부르며 그와 함께 나이들어 가는 '건재'한 팬들이 있다. 스타의 존재 이유, '팬들이 존재하는 한 '스타'는 영원한 '현재형'이다. mbc스페셜은 50년이 지나도 영원한 오빠, 조용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시절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오빠'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부터 시작하여, <창밖의 여자(1979)>, <모나리자(1988)>, <못찾겠다 꾀꼬리(1982)>, <친구여(1983)>, <그대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Q.(1989)>,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1990)>, <여행을 떠나요(1985)>, <꿈(1991)>, <도시를 떠나서(1994)>, <hello(2013)>까지. 노래의 발표 연도에서도 보여지듯이, 1980년대, 거의 매해마다 조용필은 음반을 발표했고, 그가 발표한 음반 속의 곡들은 그 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곡이 되곤했다. 굳이 조용필의 화려한 수상 기록을 들춰내지 않아도,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 중에 과연 한번이라도 조용필의 노래에 마음이 적셔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언젠가 나를 찾아 꽃다발을 전해주던(단발머리) '그 소녀는,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을 잊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못찾겠다 꾀꼬리)' , '하이에나처럼 산기슭을 헤매(킬리만자로의 표범)'듯, '화려한 도시를 ,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 마음을 위로받았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며 우리의 실연을 대신 절규해 주었고, '타버린 그 잿 속에 숨어있는 불씨의 추억라며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해 주었다.' 그리고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라며 함께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렇게 인생의 구비구비, 조용필은 그의 '노래'로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을 '위무'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조용필의 노래는 곧 그 시대의 노래였다. 치열한 경쟁의 도시에서의 삶을 가장 낭만적으로 처절하게 대변한 조용필이었다. 

그리고 조용필의 노래로 위로받고 행복했던 이들은 여전히 '현재형'인 사랑으로 그의 존재를 증명한다. 대중문화의 별이 빛날 수 있는 건, 그 별을 바라봐 주는 이들의 존재때문이다. 7순이 넘어도 조용필이 영원한 오빠이자, 스타인 이유는 여전히 그를 별로 빛내주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큐<고마워요 조용필>은 50주년 스타의 기록을 그 '팬들'의 기록으로 역설한다. 




'오빠'를 빛내준 '팬들
초등학교 5학년 너무도 귀여웠던 오빠의 기억으로 시작된 역사는 사춘기 시절 대책없이 오빠의 집앞에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기다렸던 애닮은 추억으로 이어진다. 공개 방송에서 오빠의 뺨을 닦아줬던 그 10년도 넘은 손수건은 이제 낡아 냄새도 희미해졌지만, 그리고 그 시절 소녀들은 이젠 아줌마에, 할머니가 되어가지만, 그녀들, 혹은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용필'이 오빠가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있었다 입을 모아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슬픔도,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혹은 고단했던 신입 사원의 자리, 인생의 구비구비에서 막막했을 때 먹먹하게 자신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와 눈물을 차오르게 했던 조용필의 노래가, 그들을 여전히 비오는 50주년 잠실 주경기장에서 들썩이게 만든다. 

이른바 '덕질'이라며 한갓 감정 소비, 나아가 쓸데없는 경제적 소비로 치부되는 이 '문화적 행위'들, 하지만 50년의 역사를 가진 용필 오빠의 팬부대들의 위용은 이제는 어느덧 50년이 된 '팬'문화의 역사를 실감케 한다. 1969년 클리프 리차드 내한 공연부터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던 팬들의 열렬한 응원은 그 역사가 깊다. 나훈아와 남진을 좋아했던 이들의 길고도 오랜 쟁투심은 유명했으며, 그런 가운데 용필 오빠의 '위대한' 소녀 부대들은 본격적인 팬문화의 '시발점'이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제사 다시 부활한 'hot'나, '젝키' 팬들이 '선배님'하고 한 수 배워야 할 내공이지만, 세대별 좋아하는 음악의 간극만큼이나,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와 그 스타를 좋아하는 문화의 역사에 대한 '경의'는 박하다. 69세에 세상을 떠난 데이빗 보위는 경배하지만, 그 시절 우리와 동고동락했던 조용필의 50주년은 간과되었다.  마치 낡은 구 도심을 싹 다 갈아엎고 새 아파트를 세우듯이,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문화만 솔깃하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모든 팬클럽이 연합으로 50주년 팬미팅을 하고, 그런 가운데 7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짱짱한 콘서트로 화답하는 조용필, 아직도 건재하다. 그저 건강하게 자신들과 함께 오래오래 무대에 있어달라는 팬들. 더 늦기 전에 나도 그 '별'의 콘서트 한번 가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8. 7. 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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